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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혼전순결

교회를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고 있어요

교회를 싫어하고 핍박하는 남자를 만나고 있어요. 하지만, 성경에는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지 말라는 구절이 있잖아요.  마음이 편치 않아요. 교회를 싫어하는 건 불편하지만 나머지는 괜찮은 사람이에요. 헤어지고 싶지 않아요. 이 사람과 결혼해도 될까요? 
 
좋은 질문이에요. 하지만, 그건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내가 뻔한 말을 하는 이유는 간단해요. 질문자님께서 내게 동의를 구했기 때문이에요. 정확히 말하면, 이 질문은 궁금해서 던진 질문이 아니라 찬반을 묻는 여론 조사에 가까운 질문이에요. 왜 동의를 구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을까요? 그만큼 불안하고 두려운 것이지요.  
 
왜 두려운지 함께 고민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교회마다 분위기가 조금씩 다르겠지만, 전체적으로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에 관대하지 않아요. 하지만,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면 절대 안 된다’라는 구절은 성경에 없지요.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해서 아름다운 믿음의 가정을 이룬 사례도 있고요. 그러니까, 교회 분위기와 상관없이 본인이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한다고 결정하면, 아무도 뭐라 할 수 없어요. 
 
진짜 문제는 자신의 내면 안에 있어요. 교회 분위기에 매몰되어 깊이 고민하지 못하는 거죠. 교회 공동체 모든 사람이 손뼉을 치면서 만장일치로 결혼을 찬성한다면, 그 남자와 마음 편히 결혼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세요.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 걸까요? 
 
나는 잠시 신앙의 주제를 내려놓고 대화하고 싶어요. 신앙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보고 싶기 때문이에요. 잠시만 참고 들어주세요. 
 
종교가 없는 남녀가 연애를 해요. 여자가 좋아하는 작가가 있어요. 그래서, 그 작가의 책을 사서 모아요. 작가의 북콘서트를 가기도 해요. 남자친구가 여자친구의 행동을 보면서 그 작가 욕을 해요. 작가의 사생활을 들먹여요. 대놓고 싫다고 말해요. 내 입장에서 보면, 그 남자는 여자친구를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그건 바보 같은 짓이거든요. 
 
그 남자친구는 말하겠지요. “나는 내 여자를 사랑해. 하지만, 내 여자의 가치관이 마음에 안 들어. 가치관을 통째로 뜯어고칠 필요는 없어. 그 작가만 안 좋아하면 돼. 그거 하나 빼고 우리 잘 맞아. 결혼하고 싶어? 그럼 그 작가 좋아하는 마음 버려. 책도 버리고. 그럼, 아무런 문제 없이 우리 결혼할 수 있어.”  
 
나는 묻고 싶어요. “지금 뭐 하시는 건가요? 그게 사랑이라고요? 사랑의 의미를 아시나요?” 사람마다 사랑의 정의가 다르겠지만, 적어도 이 남자의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는 건 동의할 거예요. 
 
당신이 왜 두려운지 이제 아시겠죠? 신앙이 문제가 아니라 사랑이 문제에요. 당신은 그 남자를 만나서 결혼하면 신앙을 잃을까 걱정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더 근본적인 고민을 하고 있는 거예요. 
 
‘이 남자가 정말로 나를 사랑하는 걸까?’ 
 
당신이 느끼는 두려운 감정은 정당한 거예요. 불안하고 두려울 수밖에 없지요. 그 남자와 당장 헤어지라는 말이 아니에요. 그건 당신 선택이에요. 아무도 대신 선택해줄 수 없어요.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고민해보세요. 그 남자와 결혼한다면, 사랑받으며 살 수 있을지 말이에요. 

혼전순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혼전순결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부담스러워요. 요즘 사회적 분위기와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요. 순결을 지켜낸다고, 행복한 결혼 생활이 보장되는 건 아니잖아요. 혼전순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당연히 순결해야죠. 결혼은 인간이 만든 제도이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정하신 약속입니다. 인류 최초의 결혼이 에덴동산에서 있었고, 신성하고 거룩했습니다. 성경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결혼 이외의 모든 성관계는 용납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결혼 전 청년이라면 순결이라는 말에 더욱 민감해야 합니다. 그러니, 순결하세요. 
 
“누가 몰라서 질문했니? 나도 알아. 힘들게 질문했더니 가슴에 못을 박고 난리야. 괴롭고 힘들어서 질문한 거잖아. 피도 눈물도 없는 놈. 너 잘났어. 의인 놀이 계속하면서 잘 먹고 잘 살아라.”
 
잠시만요. 내가 조금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조금만 더 들어주세요. 손해 보지는 않을 거예요. 내 진심을 전하고 싶습니다. 
 
오해를 바로잡고 싶어요. 순결에 대해 이분법적으로 생각하지 말아주세요.“혼전순결은 결혼하기 전까지 성관계를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단순하게 정의 내리면 안 됩니다. 결혼 전이나, 결혼 후에나 그리스도인은 순결해야 합니다. 결혼하면 괜찮다는 말은 성경을 오해한 결과입니다. 부부의 성관계를 무조건 거룩하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거룩하게 다루어야 거룩한 겁니다. 거룩하지만 거북하게 다루어질 수 있어요. 충분히.  
 
나는 상담하는 사람이니 알지요. 부부의 성관계 역시 왜곡될 수 있어요. 부부가 서로 사랑하는 마음 없이 욕구 충족의 도구로 성관계를 사용한다면, 아무리 부부의 성관계라도 거룩하다 말할 수 없어요. 법적으로도 부부 사이에 강간죄가 성립해요. 결혼했으니까, 괜찮다는 말은 진실이 아닙니다. 섬세하게 자기를 점검하고, 살펴야 해요. 혼전순결만큼 혼후 순결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같은 관점으로 혼전순결을 말해보겠습니다. 혼전순결이라는 말을 들으면, 긴장하는 쪽은 순결을 잃은 사람이겠지요. 순결한 사람은 그나마 마음이 편하겠지요. 하지만, 수위를 넘은 스킨십이 발목을 잡고 있지요. 조마조마합니다. 아직까지는 괜찮지만, 당당할 수는 없습니다. 조심스럽지만, 더 솔직해지겠습니다. 아마도 남자보다 여자가 긴장할 겁니다. 여성의 피해가 더 큽니다. 여자가 더 취약합니다. 나를 여성 우월주의자로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내 성별은 남자고, 상식 있는 상담자일 뿐입니다. 
 
나는 말합니다. 혼전순결을 잃은 여자, 정죄의 대상이 아니라 보호의 대상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사람이라면, 상처 입은 주님의 딸을 돌보고 사랑해야 합니다. 
 
질문하신 분의 의도가 있을 겁니다. 혼전순결이라는 말을 의식하지 않고 살았다면, 질문하지 않았을 겁니다. 혼전순결에 민감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추측합니다. 혹시라도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면, 나는 상황을 바로잡고 싶습니다.  
 
이미 내 몸은 더럽혀졌다. 
나는 끝났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거짓말입니다. 진실이 아닙니다. 원치 않는 성관계를 했다면, 더더욱 진실이 아닙니다. 죄책감에 사로잡힌 사람은 은혜를 쉽게 간과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어떤 죄 가운데 있더라도 은혜로 용서하십니다.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순결을 잃었다고 좌절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여전히 순결한 주님의 자녀입니다. 
 
누군가 말할 겁니다. 사람들과 타협하지 말라고. 그렇게 타협하면, 말씀을 왜곡하는 거라고. 아니요. 나는 내 말에 책임을 질 겁니다. 순결을 말할 때, 나는 죄책감에 흐느껴 울고 있는 여자 앞에서 말하는 겁니다. 혼전순결이라는 말을 비웃으면서 자신의 몸을 쾌락의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을 나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습니다. 만약 내가 그런 사람을 만난다면, 나도 다시 생각해보겠습니다. 하지만, 당분간은 내 생각 바꿀 마음 없습니다. 
 
주님 앞에 바로 서고 또 바로 서도 넘어지고 또 넘어질 겁니다. 다른 사람에게 몸을 맡기면, 상처는 심해집니다. 따뜻한 품이 그립다고 남자 품에 안기면 안 됩니다. 그럴수록 외로워집니다. 안지 못하게 한다고, 떠나는 남자라면 떠나보내세요. 두려워 마세요. 주님이 안아주십니다. 당신은 영원히 안전합니다.  

내 몸이 더러워졌어요

남자친구와 관계를 맺었어요. 내 몸이 더러워진 것 같아요. 남자친구는 계속 관계를 요구해요. 이전 남자도 그랬고, 지금 남자도 그래요. 관계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 이해해주는 척하지만 실망한 얼굴이 보여요.
 
마음이 아픕니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살고 계실 거예요. 가벼운 말로 위로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내 진심을 알아줄 것을 알기에 용기 내서 답변하려 합니다. 
 
자매님의 몸은 더러워지지 않았습니다. 소중하고 고귀한 존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어요. 성관계를 거부하고 싶은 마음은 자신 안에 있는 고귀함에서 시작되는 겁니다. 고귀함은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죄책감은 그 자체로 부정적인 감정이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죄책감이 고귀함을 회복할 기회입니다. 죄책감은 현재 상황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식하게 만듭니다. 고귀한 자신을 되찾게 돕고 있어요. 회복을 전제로 한 죄책감은 축복입니다. 통증은 고통스럽지만, 통증을 느껴야 아픈 부위를 찾고 치료할 수 있습니다.   
 
원치 않는 성관계를 지속하고 있다는 건 자매님 안에 돌봐야 할 상처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저 추론해볼 뿐이지만, 거절과 애착에 관한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을지 모릅니다. 이대로 관계를 유지하면 위험합니다. 남자친구가 떠나는 날, 모든 게 무너질 겁니다. 
 
지금 남자친구를 사랑한다면, 그리고 사랑받고 있다고 믿는다면, 솔직하게 말하세요. ‘나는 관계를 맺고 싶지 않다. 관계를 맺고 나면 죄책감으로 고통받는다. 내 몸이 더러워진 것 같다.’남자친구가 그러지 말라고 설득하려 들면, 지금 잘못된 사람을 만나고 계신 겁니다. 관계를 못해 떠날 사람이라면, 떠나보내세요. 
 
자매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남자라면, 사과할 거예요. 용서를 구할 겁니다. 자매님을 지켜주려 애를 쓸 겁니다. 물론, 서로에게 힘든 시간이겠지요.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참고 견디는 법을 배워야 성숙해질 수 있습니다. 남을 사람이라면, 남을 겁니다. 그 남자는 자매님의 진심을 알아주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스스로를 소중하게 생각해주세요. 그래야 남자친구도 자매님을 소중하게 대합니다. ‘사랑하니까 괜찮다.’는 말은 속임수입니다. 사랑하니까 안되는 거예요. 사랑하니까 지켜줘야 하는 겁니다. 
 
아픈 마음 주님이 치유해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내 알량한 몇 마디 말로 자매님이 위로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언제나 그랬듯 주님의 능력을 바라고 기도하겠습니다. 자매님은 소중한 사람입니다. 소중한 자신을 잘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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