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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헌신

조금만 쉬고 싶어요

교회는 언제나 바빠요. 
봉사하는 사람이 부족해요. 
 
주보에 사람 구하는 광고가 
매주 빠지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헌신된 사람은 
목사만큼 바빠져요. 
 
주일에 봉사하다가   
목사보다 늦게 집에 가는 
사람도 있어요.   
 
이게 맞나. 
그만할까. 
 
이래저래 생각하다 
받은 은혜가 떠올라요. 
 
감사한 게 더 많으니까 
계속하기로 결심하죠. 
 
잠깐만요.
너무 힘들면 잠깐 쉬어도 돼요. 
 
엥, 정말요?
막상 쉬면 조금 불편해지는데. 
 
알아요.
그래도 힘들면 쉬어야죠.  
 
당장 그만두라는 말이 아니에요. 
억지로 버티지 말라는 말이에요. 
 
교회 일 거절해도 
하나님을 거절하는 건 아니거든요. 
 
교회 일 잘해도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도 아니고요. 
 
사람들이 부탁한 봉사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은  
비슷해 보여도 서로 다른 거예요.   
 
교회 일 하나만 하는 사람 드물어요. 
일단 시작하면 사람들 눈에 띄어서 
여기저기 불려 다녀요. 
 
탈진하는 순간이 와요. 
의지로 버티는 순간이 오죠. 
 
“조금만 쉬고 싶어요.” 
 
그 말 한 마디 못해서 참고 참다가 
조용히 교회를 떠난 사람 많이 봤어요. 
 
하나님께서 얼마나 
마음 아프실까요. 
 
남 이야기만 할 수 있나요. 
나도 고민 많았어요. 
 
내가 목사라서 직업으로  
교회 일을 열심히 하는 건지. 
 
주님을 사랑해서 순종으로 
교회 일을 열심히 하는 건지. 
 
신학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교회 일이 내 직업이 되었으니까요. 
 
내가 아무리 교회 일을 열심히 해도 
사람들은 생각했을 거예요.  
목사니까 그렇지.
 
당연한 거죠. 
내 직업이잖아요. 
 
반대로,
교회 일을 대충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목사가 왜 저래. 
그러지 않았을까요. 
 
분명히 알고 싶다고 
목회를 그만둘 수는 없잖아요. 
그대로 살았죠. 
 
직업인지 봉사인지 
구분되지 않은 채로 
그냥 열심히 했어요. 
 
어쩌다 보니 남들과 
다른 길을 가게 되었어요. 
 
더 이상 교회 일을 안 하니까 
안 보이던 게 보이더라고요. 
 
교회 건물
교회 행정 
교회 사람 
다 교회죠. 
 
평범한 건물이 교회라고 
불리는 이유는 아시죠?  
 
당신이 교회이기 때문이에요. 
자, 그럼 나는 묻고 싶어요.
 
당신을 위한 봉사는 
열심히 하고 있나요. 
 
당신이 예배에 집중하도록 
자신을 잘 돕고 섬기나요.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들려주듯
자신에게 복음을 들려주고 있나요. 
 
그렇다면 다행이에요. 
나는 그러지 못했어요. 
너무 바빠서. 
 
자신을 돌보면서 
교회를 돌봐주세요. 
 
교회를 돌보면서 
자신을 돌봐주세요. 
 
그래야 당신도 살고 
교회도 삽니다. 
 
걱정 마세요.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아, 그리고 하나 더. 
 
마음에 부담이 돼서 
교회 일을 전혀 하지 않는 분에게는 
조심스럽게 부탁드리고 싶어요.  
 
부담되지 않는 
작은 일 하나만 맡아주세요.  
 
고객이 아닌 성도가 될 때 
돌봄을 배울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돌보는 법을 배우면 
자신을 더 잘 돌볼 수 있답니다. 
 
걱정 마세요.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존재를 받으시는 하나님

<창세기 4:4-5>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면 기뻐하실까요? 가장 좋은 것을 드려야겠지요. 동의해요. 하나님께 대충 드릴 수는 없잖아요. 
 
그러면, 무엇이 가장 좋은 것인가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잘 모르겠어요.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을 드리고 있나요? 누군가 물으면, 가만히 고개를 숙이죠. 누가 이 질문에 떳떳하겠어요.  
 
열정적으로 헌신해 보세요. 가장 좋은 것을 드리고 싶지만, 항상 부족한 것 같아요. 더 열심히 해야 하는데…. 습관처럼 내뱉은 말이죠.  
 
과감하게 큰 금액을 헌금해보세요. 왠지 더 드려야 할 것 같아요. 불현듯 아깝다는 생각이라도 해버리면,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에 부끄러워요.  
 
직업적 성취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해보세요. 원하는 대로 안돼요. 자신보다 성공한 사람의 신앙 간증을 들으면, 나름대로 도전은 되는데, 내 인생은 이게 뭔가, 은근히 주눅 들어요. 
 
뭘 드릴까 고민하면, 하나님을 오해해요. 하나님은 당신이 가져온 것에 별로 관심 없으세요. 하나님은 당신에게 관심이 있으세요.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을 드리고 싶다면, 당신이 가진 무엇이 아니라 당신 자신을 드리세요. 하나님에게 가장 좋은 것은 당신이에요. 당신이 예수님으로 기뻐하는 그 모습을,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세요. 
 
내 주장이 아니에요. 하나님 말씀이에요. 가인과 아벨이 아시죠? 하나님은 가인의 것은 거절하시고, 아벨의 것은 받아주셨어요. 차이가 뭘까요? 
 
제물의 종류일까요? 아벨은 피의 제사를 드려서 받아주셨고, 가인은 곡식으로 제사를 드려서 거절했을까요? 아니에요. 하나님은 곡식 제사도 받아주세요(레위기 2:2). 종류 차이는 아니에요.   
 
제물을 준비한 정성일까요? 아니요. 얼마나 정성을 다하면, 하나님이 만족하시겠어요. 아무리 정성을 다해도 부족해요. 정성 그 자체로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는 없어요. 
 
그럼 뭘까요? 가인과 아벨의 제사 장면에서, 성경은 독특한 표현을 쓰거든요. 한 번 살펴볼게요. 
 
아벨과 그의 제물. 
가인과 그의 제물. 
 
제물을 드린 사람과 제물이 서로 묶여 있지요? 사람과 제물이 동시에 하나님께 드려진 거예요. 하나님은 제물을 드리는 사람과 제물 그 자체를 하나로 보세요.  
 
만약 제물이 서로 바꿔서 드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벨이 곡식을 드리고, 가인이 어린 양을 드렸다면요? 하나님이 가인의 것을 받아주셨을까요? 아니에요. 아벨의 것만 받으셨을 거예요. 
 
제물보다 사람이 중요해요. 하나님은 아벨의 중심, 다시 말해 진심을 아신 거예요. 
 
가장 좋은 것을 드린다는 명분으로, 혼자 애쓰지 마세요. 더 좋은 것을 드리다가, 가장 좋은 당신이 사라져요. 그러면, 나는 속상해요.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세요. 남들 보여주기 부끄럽고, 정성이 부족해도, 용기 내서 하나님께 나아가세요. 
 
하나님 앞에서 절대로 주눅 들지 마세요. 있는 모습 그대로의 당신을 드린다면, 그것으로 충분해요. 하나님은 말할 수 없이 기뻐하세요.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은 당신이에요.

아내의 빈자리

From 엘가나 (한나의 남편, 사무엘의 아버지)
 
내 아내 한나는 사랑스러운 여자입니다. 아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주고 싶은 것이 솔직한 내 심정이지요. 내가 최선을 다하면, 아내가 행복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인생이 뜻대로 안 되더군요. 
 
우리는 신혼 초부터 일찌감치 아이를 낳기로 했습니다. 한나는 하루라도 빨리, 아이를 품에 안아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질게도, 한나에게 아이를 주시지 않았습니다. 
 
아내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습니다. 밤마다 슬프게 우는 아내를 안아주는 것이 일상이 되어갔습니다. 하루는 아내가 울면서 제게 말하더군요. 
 
“여보, 나는 당신을 위해 아이를 낳아줄 수가 없어요. 나를 버리시든가, 나를 대신할 다른 여자를 얻으셔야 해요.” 
 
나는 그게 무슨 소리냐고 화들짝 놀랐어요. 두 번 다시 그런 소리를 하지 말라고 했지만, 아내는 물러서지 않았어요. 내가 없는 틈을 타서, 브닌나라는 다른 여자를 데려다 놓았지요. 
 
나는 억지로 그 여자와 동침했고, 아이를 낳았어요. 모두 한나를 위한 것이었지요. 한나가 시키는 대로 하면, 한나가 행복할 것이라고 믿었어요. 역시나,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더군요.  
 
브닌나가 한나를 핍박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내 눈치를 보는 것 같더니, 아이를 낳은 이후부터는 대놓고 한나를 무시하더군요. 나는 두 여자 사이에서 말할 수 없이 괴로웠지요. 
 
하지만, 나는 한나를 더 사랑했어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나에게 더 많은 것을 주었지요. 브닌나도 그것을 알았고, 한나는 더 큰 고통에 놓이게 된 것이지요. 
 
한나는 성품이 온유한 사람이었어요. 정면으로 대응하는 법이 없었지요. 억울하고 답답할 때마다, 항상 하나님을 찾았어요. 남편이 얼마나 무능한지 알았던 것이지요. 
 
내가 어찌 그런 여자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겠어요. 한나는 지혜롭고, 현명하고, 성숙한 여인이었어요. 남편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한나에게 늘 반했지요. 
 
어느 날부터인가, 한나는 밝은 웃음을 되찾았어요. 마치 아기를 낳은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했지요. 나는 은근히 마음이 불안했어요. 하루아침에 사람이 그렇게 달라지니, 혹시 정신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닌가 싶었지요. 
 
내가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한나가 내게 말하더군요. 
 
“여보,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셨어요. 제게 자녀를 주신다고 약속했어요.” 
 
한나의 들뜬 감정을 망치고 싶지 않았어요. 분위기를 맞춰줬지요. 한나의 의견을 존중하고, 따랐어요. 내게 믿음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어요. 한나는 이미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하나님이 보란 듯이 아이를 주셨을 때, 나는 부끄러웠지요. 한나의 말은 모두 진실이었고, 하나님은 한나의 말대로 모든 상황을 인도해 주셨어요. 한나의 하나님은 참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이셨어요. 
 
한나가 사무엘을 애지중지 키우는 것을 보며, 나는 한편으로 마음이 아팠어요. 한나는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칠 것이라 말했고, 그 표정이 슬퍼 보였거든요. 나는 조심스럽게 한나에게 부탁했어요. 
 
“여보, 그냥 아이를 우리가 데리고 키우면 안 되겠소? 어차피, 이 아이는 나실인이요. 우리가 품에 안고 거룩하게 키웁시다.” 
 
한나는 그럴 수 없다고 주저하지 않고 말하더군요. 한나의 목소리와 말투가 사뭇 진지해, 그다음부터는 말도 못 꺼냈지요. 한편으로는, 한나가 과연 사무엘을 떠나보낼 수 있을까, 걱정스럽더군요. 
 
사무엘이 젖을 떼자, 한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성전으로 올라가자고 말했어요.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목소리였지요. 성전으로 올라가는 여정 내내, 한나는 사무엘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어요.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프더군요. 
 
한나는 결국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쳤고, 사무엘은 성전에서 자라게 되었지요. 하나님은 사무엘을 민족의 지도자로 세워주셨고, 우리에게 또 다른 다섯 자녀를 선물로 주셨지요.  
 
나는 아내를 마음속 깊이 존경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연약한 여자처럼 보이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요. 그녀의 믿음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나는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이지만, 아내를 위해 모든 것을 해줄 수 없습니다. 아내를 위해 최선을 다해도, 언제나 빈자리가 있기 마련입니다. 같이 있어주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무력감을 경험해본 남편이라면, 내 말에 공감되시겠지요. 
 
당신이 나와 같은 남편이라면, 하나님이 절실합니다. 하나님만이 아내의 빈자리를 채워주실 수 있습니다. 아내가 하나님 앞에 엎드릴 때, 아내 곁에 있어주셔야 합니다. 기도는 아내의 몫이라고, 뒷짐을 지고 계시면 안 됩니다. 
 
내가 못해주는 것을 하나님이 해주실 때,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아내의 기도를 통해, 당신뿐만 아니라 당신의 자녀 역시 혜택을 봅니다. 당신은 아내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아내가 원할 때, 언제든 따뜻하게 안아주세요. 
 
하나님이 아내의 빈자리를 채우시고, 아내의 기도와 헌신은 당신의 빈자리를 채웁니다. 절대로 손해 보는 일 아닙니다. 목숨을 다해, 아내를 사랑하세요.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존재를 받으신다

<창세기 4:4-5>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면 기뻐하실까요? 가장 좋은 것을 드려야겠지요. 동의해요. 하나님께 대충 드릴 수는 없잖아요. 
 
그러면, 무엇이 가장 좋은 것인가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잘 모르겠어요.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을 드리고 있나요? 누군가 물으면, 가만히 고개를 숙이죠. 누가 이 질문에 떳떳하겠어요.  
 
열정적으로 헌신해 보세요. 가장 좋은 것을 드리고 싶지만, 항상 부족한 것 같아요. 더 열심히 해야 하는데…. 습관처럼 내뱉은 말이죠.  
 
과감하게 큰 금액을 헌금해보세요. 왠지 더 드려야 할 것 같아요. 불현듯 아깝다는 생각이라도 해버리면,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에 부끄러워요.  
 
직업적 성취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해보세요. 원하는 대로 안돼요. 자신보다 성공한 사람의 신앙 간증을 들으면, 나름대로 도전은 되는데, 내 인생은 이게 뭔가, 은근히 주눅 들어요. 
 
뭘 드릴까 고민하면, 하나님을 오해해요. 하나님은 당신이 가져온 것에 별로 관심 없으세요. 하나님은 당신에게 관심이 있으세요.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을 드리고 싶다면, 당신이 가진 무엇이 아니라 당신 자신을 드리세요. 하나님에게 가장 좋은 것은 당신이에요. 당신이 예수님으로 기뻐하는 그 모습을,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세요. 
 
내 주장이 아니에요. 하나님 말씀이에요. 가인과 아벨이 아시죠? 하나님은 가인의 것은 거절하시고, 아벨의 것은 받아주셨어요. 차이가 뭘까요? 
 
제물의 종류일까요? 아벨은 피의 제사를 드려서 받아주셨고, 가인은 곡식으로 제사를 드려서 거절했을까요? 아니에요. 하나님은 곡식 제사도 받아주세요(레위기 2:2). 종류 차이는 아니에요.   
 
제물을 준비한 정성일까요? 아니요. 얼마나 정성을 다하면, 하나님이 만족하시겠어요. 아무리 정성을 다해도 부족해요. 정성 그 자체로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는 없어요. 
 
그럼 뭘까요? 가인과 아벨의 제사 장면에서, 성경은 독특한 표현을 쓰거든요. 한 번 살펴볼게요. 
 
아벨과 그의 제물. 
가인과 그의 제물. 
 
제물을 드린 사람과 제물이 서로 묶여 있지요? 사람과 제물이 동시에 하나님께 드려진 거예요. 하나님은 제물을 드리는 사람과 제물 그 자체를 하나로 보세요.  
 
만약 제물이 서로 바꿔서 드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벨이 곡식을 드리고, 가인이 어린 양을 드렸다면요? 하나님이 가인의 것을 받아주셨을까요? 아니에요. 아벨의 것만 받으셨을 거예요. 
 
제물보다 사람이 중요해요. 하나님은 아벨의 중심, 다시 말해 진심을 아신 거예요. 
 
가장 좋은 것을 드린다는 명분으로, 혼자 애쓰지 마세요. 더 좋은 것을 드리다가, 가장 좋은 당신이 사라져요. 그러면, 나는 속상해요.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세요. 남들 보여주기 부끄럽고, 정성이 부족해도, 용기 내서 하나님께 나아가세요. 
 
하나님 앞에서 절대로 주눅 들지 마세요. 있는 모습 그대로의 당신을 드린다면, 그것으로 충분해요. 하나님은 말할 수 없이 기뻐하세요.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은 당신이에요.

교회에서 봉사하고 상처받아요

보상을 바라지 않고 봉사하는 방법이 없을까요? 바쁜 시간 쪼개가면서 최대한 봉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고맙다는 말을 해주기를 바라지는 않아요. 최소한 상처를 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힘들게 봉사하고 돌아오는 건 상처뿐입니다. 
 
보상이라는 단어를 어떤 의미로 쓰셨는지 묻고 싶습니다. 보상은 “받는다”라는 뜻이 아닙니다. “갚는다”라는 뜻입니다. 남을 위해 애쓴 것에 대한 대가를 인정받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미리 받은 혜택을 돌려주는 것입니다. 플러스알파가 아니라 플러스제로입니다. 성경적인 의미를 말하는 게 아니라 사전적 의미를 말하는 겁니다. 내 말이 의심스럽거든 국어사전을 찾아보세요. 
 
봉사라는 단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남을 돕기 위해 애를 쓴다는 뜻입니다. 받은 것이 없는 사람이 대가 없이 순수하게 봉사하면 아름다워 보입니다. 그러나, 받은 것이 많은 사람이 받은 것의 일부를 다시 돌려주는 건 상식입니다. 봉사했다고 생색내면, 본인의 순수한 의도마저 사라져 버립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남는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아마 발끈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교회에서 받은 게 없다. 교회에서는 자기들 필요할 때만 실컷 부려먹다가 힘들어서 잠깐 쉰다고 하면 믿음 없는 사람이라고 정죄한다. 그동안 참았다. 더 이상은 못하겠다”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 마음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우리 서로 같은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성도니까 목사에게 분풀이라도 할 수 있지만, 나는 목사니까 어디다 하소연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말했습니다. 화가 잔뜩 난 채로 말입니다. 
 
교회 사람, 교회 구조를 먼저 생각하면 당연히 화납니다. 봉사할 맛 안 납니다. 관점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봉사하는 대상이 잘못되면, 실망하고 지칩니다. 봉사하는 대상을 바꾸세요. 봉사의 대상은 사람이 아닙니다. 올바른 대상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위해 봉사하면, 상처받을 일 없습니다. 
 
예수님을 생각하면, 받은 은혜가 먼저 떠올라야 합니다. 감격으로 봉사해야 상처 안 받습니다. 예수님께 받은 게 없으면 봉사하면 안 됩니다. 봉사 먼저 하고 나중에 보상받으려고 하면 사람 망가집니다. 예수님 없이 봉사하는 삶,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러니, 잘 분별하세요.  
 
지금 하고 있는 봉사 안 해도 하나님 나라에 지장 없습니다. 은혜 먼저 받으세요. 차고 넘치도록 받으세요. 은혜받은 만큼만 봉사하세요. 그래도, 충분합니다. 은혜가 비어버리면, 다 끝입니다. 은혜 없이 죽도록 봉사해도 자기만족입니다. 당신의 삶에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가 넘쳐흐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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