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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탈진

교회 일을 내려놓고 잠시 쉬려 해요

아빠가 오랜 투병생활을 하시다가 돌아가셨어요. 아버지의 죽음이 너무나 슬퍼요. 교회에서 맡았던 일을 내려놓고 잠시 쉬려는데 주변에서 그러지 말래요. 그럴수록 하나님을 더 붙잡으라고 해요. 슬픔의 영에 사로잡히면 일어서기 어렵다고 참고 견디라고요. 
 
슬퍼하세요.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슬프지 않겠어요. 일 년이든, 십 년이든, 평생이든 슬프면 우세요. 아버지가 일생동안 그립다면 감사한 겁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는 감정에 죄책감을 느낀다면 잘못된 겁니다. 
 
당신에게 ‘슬픔의 영’에 사로잡히지 말라고 말한 사람의 의도를 모르겠네요. 이 말은 문맥상 부정적인 뜻이겠지요. 성경에는 그런 말이 없습니다. 나는 그 말을 전해 들을 당시의 상황과 분위기는 모르지만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성경에 없는 말을 하면 위험합니다. 
 
쉬고 싶으면 쉬세요. 교회 일을 감당하는 것 자체가 본질이 아 닙니다.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결정하세요. 교회 봉사할 사람이 항상 부족해도 교회 문은 안 닫습니다. 하나님이 잘 이끌어 가십니다. 잠시 쉬다가 기운이 나면 다시 섬겨주세요.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세요. 그 눈물 마를 때까지 주님이 위로해주실 거예요. 오늘부터는 마음 편히 울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과 돌아가신 아버지 사이에는 예수님이 계세요. 천국에서 그분이 아버지를 돌봐주고 계십니다. 슬플 때마다 예수님 품에 안겨 있는 아버지를 생각하세요. 주님은 친절하게도 이 땅에서 슬퍼하는 당신에게도 찾아오세요. 눈물을 닦아주시며 위로해 주시지요. 
 
예수님이 계시기에 머지않아 슬픔은 소망이 될 것입니다. 슬플 때마다 그분 품에 꼭 안겨주세요. 다시 힘을 얻으면 주님의 일을 잘 감당하실 수 있을 겁니다.

바쁜 사역으로 탈진하지 않으려면

크리스천은 쉴 수 없다. 
 
왜 그럴까? 
 
도와야 할 사람들이 끊임없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자기를 돌볼 겨를도 없이 다른 사람을 열심히 돕고 섬기다가 탈진을 반복하는 것이 크리스천의 일상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을 외면하기 힘들다. 
 
더 빠르게 소진되어 탈진해 버린다. 
 
나라고 예외였을까? 
 
목사라는 직업은 출퇴근이 없다. 
 
굳이 말하자면, 새벽 5시 출근, 퇴근은 10시 넘어서다. 
 
목사가 하는 일 중에 나쁜 일은 없다. 
 
전부 좋은 일이다. 
 
사람을 차별해서도 안된다.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해야 한다. 
 
당연히 거절도 안 된다. 
 
다른 사람 상처받는다. 
 
모든 일을 다하고, 모든 부탁을 다 들어주고, 모든 사람을 다 돌보려고 하니, 금방 탈진한다. 
 
목사마저 이런데, 성도들은 오죽하겠는가. 
 
몸과 마음이 탈진해서 고통받는 목사, 성도가 너무나 많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예수님께 배워야 한다.
 
누가복음 5:15-16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수많은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고침을 받고자 하여 모여 오되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예수님은 항상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계셨다. 모두가 예수님을 절박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들뿐이었다. 
 
혼자 만의 시간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예수님은 어떻게 고갈되지 않고 한결같이 그의 자녀들을 사랑할 수 있으셨을까? 
 
그 비결은 다음 한 문장에 있다.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그 뜻을 살펴보자. 
 
물러가시다: 예수님이 사람들과 물리적 정서적 거리를 두셨다는 뜻이다.
 
한적한 곳: 조용히 하나님을 만날 장소가 필요했다는 뜻이다. 
 
기도하시니라: 반복적이고 습관적인 동작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기도는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반복적이었다. 
 
예수님은 아무리 바쁘고 고된 사역 속에서도, “물러나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는 시간”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그 어떠한 일정과도 타협하지 않으셨다. 
 
기도를 최우선 순위에 놓고 사역하신 것이다. 
 
몸이 피곤하면 며칠 쉬면 된다. 
 
그러나, 정서가 고갈되면 회복에 기약이 없다.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사역을 위해, 적정한 바운더리는 필수다. 
 
예수님은 다른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하신다. 
 
예수님께 죄송한 마음을 가질 필요 없다. 
 
예수님도 그렇게 하셨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예수님을 따라 해라. 
 
그래야, 기쁨으로 지치지 않고 사역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돌보다 지쳐버린 당신에게

나는 상담하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상처를 가져온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아프고 힘든 이야기이다. 
 
부족한 내가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할 뿐이다. 
 
하지만, 나 역시도 슬럼프가 온다. 
 
여러 번의 슬럼프를 겪으면서, 그 원인을 알게 되었다. 
 
마음이 조급해지면, 어김없이 슬럼프가 왔다. 
 
‘내가 더 상담을 잘했다면…’
‘내가 더 관심을 기울였다면…’
‘내가 더 기도했다면…’ 
 
상처 입은 한 사람을 마주하면 절박해진다. 
 
정말로 돕고 싶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예수님보다 앞서가게 된다. 
 
어김없이 넘어진다. 
 
상처 입은 한 사람을 돌보려면, 내 위치를 잘 알아야 한다. 
 
나는 상처를 치유할 능력이 없다. 
 
당연히 알고 있지만, 절박한 상황과 마주하면 마음이 급해진다. 
 
마음이 앞서갈수록, 나 스스로에게 말해줘야 한다. 
 
“나는 상처를 치유할 능력이 없다. 나의 역할은 상처 입은 한 사람을 예수님께 데려다주는 것이다. 예수님이 치유하실 것이다. 나는 목격자일 뿐, 치유자가 아니다.” 
 
나 혼자만 겪는 일은 아닐 것이다. 
 
다른 사람을 돌보는 사람이라면, 자주 겪는 일이다. 
 
아무 능력 없는 자기 자신과 마주하더라도 실망할 필요 없다. 
 
예수님은 당신을 기뻐하신다. 
 
누가복음 5:20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데려다준 친구들의 이야기이다.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를 데려갔지만 사람이 많아 예수님께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그들은 지붕으로 올라가 천장을 뜯었다. 
 
예수님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그들의 믿음에 감동하셨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즉시 중풍병자를 치유하셨다. 
 
그뿐만 아니라, 그를 구원하셨다. 
 
우리는 여기서 분명한 역할 분담을 목격한다. 
 
친구들은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데려다주었고, 예수님은 치유하셨다. 
 
우리의 무능함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에게 부여된 역할이 있다면, 상처 입은 한 사람을 예수님께 데려다 주는 것이다. 
 
내가 치유하고 고치려 들면, 결국 그 무게를 감당 못해 무너지고 만다. 
 
우리는 목격자일 뿐, 치유자가 아니다. 
 
상처를 치유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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