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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 실수

“엄마 자격이 없다고 해야 할까요. 아이들을 보면 미안한 마음뿐이에요. 남편에게도 마찬가지죠.”  
 
K, 그녀는 서른세 살, 두 아이의 엄마이다. 남편은 그녀보다 열 살 이상 나이가 많다. 그는 젊은 시절 유통 업체에서 일하다, 독립해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은 성장했다. 바쁜 시간 속에서도 남편은 가정에 최선을 다했다. 주말은 가족과 함께 보내기 위해 애를 썼다. 남편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사랑받는다고 느꼈다. 
 
어느 날, 갑자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그녀는 햇살 좋은 아침에 혼자 마트에 갔다. 물건을 사서 집에 돌아오는 길, 자동차에 주유경고등이 들어왔다. 그녀는 주유소에 방문했다. 자동차 기름 냄새를 맡자마자 불현듯 잊혀진 기억이 떠올랐다. 그녀에게 분명한 목소리가 들렸다. 
 
“너는 자격 없는 여자야.” 
 
이 문장이 떠오른 그날부터 우울증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남편과 아이들의 눈을 보면 죄책감이 느껴졌다. 주유소 기름에서 기름 냄새를 맡았을 때, 죄책감이 찾아왔다고 했다. 왜 그랬을까? 주유소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사실 남편에게 말 못할 비밀이 있어요. 언젠가는 말하고 싶지만, 남편은 저를 용서하지 못할 거예요. 젊은 날에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했거든요.” 
 
그녀는 상고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했다. 처음 일하던 곳은 직원이 10명이 되지 않는 작은 회사였다. 서류 업무로 시작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다. 매일 똑같은 업무가 지루했다. 그녀는 회사를 그만두고 의류 회사 점원으로 취직했다. 매장에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어울리는 옷을 추천하고 구매로 이어지는 일이 적성에 맞았다. 2년 지나고, 부모님 도움으로 자기 매장을 차렸다.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틀에 박힌 일이 정말 싫었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좋아요. 이런 제가 좋았어요. 그 일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말이죠.” 
 
어느 날, 매장에 남자 손님이 찾아왔다. 티셔츠 한 장을 구매하고 갔다. 그날부터 매주 정해진 요일이 되면 그가 나타났다. 월요일 오후 7시. 그 남자가 매일 매장을 방문했던 날이다. 짧은 대화가 시작되었다. 사업을 하느라 그동안 제대로 연애 한 번 해보지 못해서 일까. 그 남자의 따뜻한 눈빛과 조금 썰렁한 유머가 좋았다. 
 
그 남자가 데이트 신청을 했다. 그녀는 응했다. 두 사람은 연애를 시작했다. 추운 겨울이 두 번 지났다. 그녀는 남자 친구에게 결혼할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그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결혼은 나중에 생각하자고 했다. 그렇게, 또 한 번의 겨울이 지났다.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매장에 손님이 많아서 받지 못했다. 전화가 다시 왔다. 받지 못했다. 두 세 차례 전화가 걸려왔지만, 그녀는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 손님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전화기를 들여다보았다. 전화기에는 짧은 문자가 와 있었다. 
 
“000의 아내입니다. 시간 되실 때 전화 부탁 드립니다.” 
 
그녀는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의 남자 친구, 그의 아내에게 문자가 온 것이다. 그녀는 탈의실에 들어가 울기 시작했다. 이성을 잃은 그녀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몰랐다.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100번이 넘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그녀는 남자 친구의 회사도, 집에도 가본 적이 없었다. 그녀가 알고 있는 것은 그의 전화번호뿐이었다. 일주일 동안 전화기를 붙잡고 살았지만, 남자 친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그의 아내와 통화할 수도 없었다. K는 그녀의 남자 친구에게, 그의 아내는 K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통화에 성공한 사람은 없었다.
 
한 달이 지난 후, 그의 아내로부터 다시 문자가 왔다.
 
“그 사람, 세상을 떠났어요.” 
 
K는 반쯤 미친 사람이 되었다. 그녀의 모든 삶이 무너져 내렸다.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했다. 그녀는 그날 이후 6개월 동안 방에 틀어박혀 밖에 나오지 않았다. 매장 매출이 급감했다. 그녀의 부모님은 매장 문을 닫았다. 그녀를 살리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녀의 부모님은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 전국에 유명한 목사님을 찾아다니며 상담 받고 기도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높은 곳에 올라가 떨어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녀가 뛰어내리지 못하는 유일한 이유는 부모님이었다. 부모님을 슬프게 만들 수 없었다. 아파트 옥상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다 내려온 것이 여러 번 이었다. 부모님의 기도 덕분이었을까. 그녀는 조금씩 안정감을 찾았다. 
 
일 년이 지난 후, 그녀는 부모님 일을 돕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주유소를 경영하고 있었다. 딸이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전에 바람이나 쐬라고 주유소 경리 일을 맡겼다. 매장을 경영해본 그녀는 주유소 경리 일이 어렵지 않았다. 20대 젊은 아르바이트 직원들과 같이 일하는 것이 즐거웠다.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같이 밥을 먹고, 함께 어울리면서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큰 트럭 한 대가 주유소 안으로 들어왔다. 트럭을 운전하던 남자는 기름을 가득 채워달라고 말한 후에 차에서 내렸다. 화장실에 다녀온 그는 유리창 너머로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K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날부터 그 남자는 주유소에 매일 기름을 넣으러 왔다. 한 달이 지난 후, 그가 말을 걸었다. 
 
“시간 되세요?” 
“아니요.”
“밥이나 한 번 먹죠?” 
“아빠한테 혼나요.”
“다 큰 어른이 아빠 눈치는.”
“나가세요.”
“알겠어요. 내일 또 봅시다.”
 
어색한 첫 인사를 나눈 그 남자는 현재 그녀의 남편이 되었다.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그에게 말해야 했어요. 자격 없는 여자라고. 그럴 수 없었어요. 용기가 나지 않았거든요. 평생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 남자에게 더 이상 만날 수 없다. 나는 당신이 아는 그런 여자가 아니다 말하기로 결심한 날, 남편의 프러포즈를 받았어요. 끝내 말하지 못했죠. 가슴 속 깊은 곳에 진실을 묻어 둔 채 살았어요.”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녀는 행복했다. 두 아이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변함없이 아내를 사랑했다. 성실하게 일했고, 가정을 돌보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겉으로 보기에 부족함 없어 보이는 그녀에게 우울증이 찾아온 원인을 남편은 알 수 없었다. 
 
“제게는 모든 것이 과분해요. 남편도, 아이들도. 저는 자격 없는 사람이니까요. 솔직한 생각을 말해 드릴까요? 언젠가는 제가 이렇게 행복하게 사는 것을 그 여자가 알게 될 거예요. 그리고 제 남편에게 전화 하겠죠. 그리고 모든 진실을 까발릴거예요. 남편이 모든 진실을 알게 되면, 저는 버려질 거예요. 두 번 다시, 아이들 얼굴을 볼 수 없겠죠. 저의 행복은 유통기한이 정해져 있는 냉장고 음식 같은 거예요. 차갑게 식어버린, 그러나 아직은 상하지 않은. 그럴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되요.” 
 
***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일어날지 모르는 사건이 그녀의 삶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녀가 가진 두려움은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일이다. 행복한 일상을 누리다가 어느 날, 전화를 받는다. 이전 남자 친구의 아내다. 남편에게 연락이 간다. 남편이 모든 것을 알아버린다. 그녀를 버린다. 아이들을 두고 집을 떠난다. 홀로 남겨진다. 비참한 삶을 산다. 
 
누구도 원망할 수 없다.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정해진 기한만큼, 모든 것이 밝혀지기 전까지만, 그녀는 현재의 삶을 유지할 수 있다. 그녀만의 세상이 흘러가는 방식이다. 
 
과거의 고통으로 인해 비틀어진 관점은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쉽게 제자리로 돌아가지 않는다. 깨진 유리 조각을 다시 붙여서 원래의 모습으로 만드는 것만큼 어렵다. 그녀에게 “당신이 두려워하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아요”라고 말한다면 그녀에게 위로가 될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녀에게는 이미 일어난 일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그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설득할 방법은 없다. 그녀는 이미 일어난 일처럼 생각하고 느낀다. 
 
이 상황을 정면 돌파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이 있다. 가장 두려워하는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가정하고 대화를 하는 것이다. 가장 두려워하는 일,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을 때, 벌어지는 최악의 상황에 그려본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가장 두려워하는 사건을 외면한다. 두려움의 중심에 서지 않는다. 
 
태풍 변두리가 바람이 가장 세다. 용기를 내어 바람을 뚫고 태풍의 중심에 가 본 사람은 안다. 태풍의 중심은 고요하다. 그 일이 벌어지면 인생이 파멸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그 사건을 머릿속에 떠올리기만 할 뿐, 그 사건을 전개하지 않는다. 멀리서만 지켜보고 두려워 떠는 것이다. 
 
그 사건을  끝까지 전개해야 한다. 상상력을 발휘해 그 사건을 머릿속에서 전개해야 한다. 사건을 끝까지 전개시키고 나면, 자신이 맞이할 가장 두려운 상황이 의외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의 삶을 파괴할지 모르는 최악의 상황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으로 들어온다. 
 
고통의 대가를 지불하고 태풍의 중심으로 들어간 사람은 삶이 고요해진다. 최악의 상황을 대처할 수 있는 강인한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녀는 태풍의 위력을 느낀다. 멀리서 태풍이 불어오고 있다. 시커먼 비구름이 몰려와서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태풍이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앞집이 무너진 것처럼 내 집이 무너질지 모른다. 그녀는 두려워서 눈을 감는다. 눈을 감으면 태풍이 위력은 더욱 거세진다. 엎드려 운다. 다 끝났다고. 모든 것이 파괴될 것이라고 말한다. 
 
우르르 쾅쾅! 번개 소리를 들은 그녀는 갑자기 정신을 차린다.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갑자기 차를 몰고 태풍으로 달려든다. 강한 바람에 차가 흔들리지만, 그녀는 속도를 올린다. 흔들리던 차는 다시 고요해진다. 시커먼 비구름 역시 사라져 버렸다. 고요함만이 남는다. 그녀는 깨닫는다. 태풍은 강했지만, 자신의 집을 파괴해 버릴만큼은 아니었다고. 태풍을 미리 경험해보고 나서 깨닫게 된 사실이다.
 
남편이 모든 것을 알게 되면, 어떻게 반응할까. 그녀를 버릴까. 아니면,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평소처럼 살아갈 것인가. 아무도 모른다. 태풍의 바람은 거셀 것이다. 남편이 흔들리다 쓰러질지, 아니면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설지. 남편의 반응은 예상할 수 없다. 
 
견뎌주면 아내와 살고, 견디지 못하면 아내를 버리게 될 것이다. 남편의 반응이 태풍이라고 전제한다면,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남편 반응은 태풍이 아니다. 태풍의 실체는 그녀 마음 속 두려움이다. 
 
그녀는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다. 그녀는 이전 남자친구가 유부남인 것을 알지 못했다. 유일한 잘못은 그녀의 남자 친구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것이다. 그녀는 신이 아니다. 그녀의 잘못이 아니란 뜻이다. 그녀가 죄책감을 느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는 무죄이다. 그녀는 비난받아야 할 사람이 아니라,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다. 
 
그녀가 남편에게 모든 사실을 미리 말해야 할 책임은 없다. 끝까지 숨겨야만 한다는 말도 아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인생을 살면서 때로는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일이 있다. 가장 두려운 일을 마음속으로 미리 경험한 사람은, 다가올 일에 대해 편안하다. 
 
그 일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것이다. 그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세상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마음의 준비를 오랫동안 한 사람이라면, 그 일이 일어난 다음부터, 자신의 진정한 가치가 빛을 발하기 발한다.

당신은 좋은 부모인가요

당신은
좋은 부모인가요?
 
네, 물론이죠.
나는 좋은 부모입니다.
 
두 번 자녀를 키워도
이렇게 못 키워요.
 
우리 애들 부족한 거 없어요.
나는 얼마나 어렵게 컸는데.
 
내가 해줄 말이 별로 없네요.
그럼, 안녕히.
 
당신은요?
당신은 좋은 부모인가요.
 
아니오.
나는 좋은 부모가 아니에요.
 
애들한테 너무 미안해요.
못 해준 게 너무 많아요.
 
나 같은 부모 만나서
우리 애들 고생 많이 했어요.
 
그렇군요.
대화 좀 할까요, 우리.
 
당신은 좋은 부모일지도 몰라요.
한 가지만 조심한다면.
 
그건 뭔가요?
죄책감입니다.
 
죄책감이 자녀를
망칠 수 있어요.
 
자녀 앞에서
당당한 사람 불안해 보여요.
 
자신감 없는 게
오히려 다행이에요.
 
당당한 부모를
만난 적이 있어요.
 
당당한 부모는   
주눅 든 자녀가 있어요.
 
나는 최선 다한다.
넌 이게 뭐냐.
 
왜 노력 안 하냐.
결과가 이게 뭐냐.
 
자녀는 고개만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못해요.
 
그런데, 참 이상하죠.
정반대의 경우도 있어요.
 
주눅 든 부모 옆에는
당당한 자녀가 있어요.
 
내가 이렇게 된 게
다 부모 때문이다.
 
내 인생 망가졌다.
내 멋대로 살 거다.
 
터무니없는 말을 하고
그 말을 믿고 살아요.
 
부모가 죄책감을 느끼는 사이
자녀는 책임감에서 벗어난 거죠.
 
부모가 당당하면
자녀가 주눅 들고
 
부모가 주눅 들면
자녀가 당당하니
 
어떻게 할까요.
답답하죠, 정말.
 
내 이야기 잠시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내 부모님은 나에게
늘 미안하다고 말해요.
 
아니라고 괜찮다고 말해도
소용없어요.
 
많이 우세요.
난 속상하죠.
 
나는 진심이에요.
정말 감사해요.
 
내 부모님은 나에게
예수님을 전해줬어요.
 
모든 것을 받은 거죠.
예수님을 선물 받았으니까.
 
아버지가 시골에서 목회할 때
성도 한 명 없어요.
 
그때는 몰랐죠.
정말로 몰랐죠.
 
내게 복음이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처받은 내가 자녀를
잘 키우고 있을까요.
 
정말 모르겠어요.
확신이 없어요.
 
언젠가 청년이 된 내 아들과
대화하는 장면을 상상해요.
 
아빠, 나 아빠한테
하고 싶은 말 있어.
  
아빠가 나 사랑하고
아빠가 최선을 다했다는 거 알아.
 
하지만, 아빠가 했던 말과 행동이 내게
상처 될 때도 있었어.
 
솔직히 말하면,
나 아빠처럼 살고 싶지 않아.
 
나 이해해줄 수 있지,
아빠?
 
하지만, 나….
예수님처럼 살고 싶어.
 
그래, 아들.
아빠는 괜찮아.
 
아빠처럼 살지 말고
예수님처럼 살아다오.
 
속상해야 하는데.
서운해야 하는데.
 
아빠는 왜 이렇게
눈물이 나고 행복할까.
 
그날을 꿈꾸면서 나는
자녀에게 꾸준히 예수님을 전해요.
 
내 상처가 혹시라도
자녀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무섭고 두려울 때마다
예수님께 말해요.
 
나 대신 내 자녀들
잘 키워주세요.
 
당신과 함께 하고 싶어요.
약속해요, 우리.
 
죄책감이 찾아올 때마다
우리 자녀에게
예수님의 따듯한 사랑 전해주기로.

내 믿음이 형편없어요

내 믿음이 형편없어요.
나 어떻게 하죠?
 
하나님 앞에 부끄러워
나아갈 수가 없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믿음이 제자리에 있으니
괴로워요.
 
믿지 못해 괴롭고
믿고 싶어 괴롭다면
그건 믿음이에요.
 
당신의 믿음을
싸구려 취급하지 말아주세요.
 
사람들은 믿음에
레벨이 있는 것처럼 말해요.
 
진실이 아니에요.
믿음에는 레벨이 없어요.
 
믿음이 있냐, 없냐.
둘 중 하나에요.
 
문제에 집중하면
불안해져요.
 
감기가 낫느냐
암이 낫느냐.
 
1억을 갚느냐.
10억을 갚느냐.
 
암보다는
감기를 고치기 쉽고
 
10억보다는
1억을 갚기 쉬우니까.
 
암이나 10억을 놓고
기도하는 사람에게
 
더 큰 믿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다시 말하지만,
진실이 아닙니다.
 
믿음의 대상이
분명하기 바랍니다.
 
문제에 집중하면 불안해서
더 믿으려고 발버둥 쳐요.
 
문제 너머에 계시는
하나님을 믿어봐요, 우리.
 
감기와 암.
10억과 1억.
 
하나님은 차이를
느끼지 못하세요.
 
예수님이 이방 여인에게 말씀하셨죠.
네 믿음이 크도다.
 
예수님은 믿음의 크기에
놀라신 게 아니에요.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믿으니까
예수님이 감격하신 거예요.
 
얼마나 잘 믿느냐.
그만 고민하세요.
 
무엇을 믿느냐.
고민하세요.
 
문제 해결을 믿으시나요.
하나님을 믿으시나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감사할 수 있으려면
 
문제 너머에 계시는
하나님을 믿는 방법뿐입니다.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아

하나님 사랑이
느껴지지 않아요.
 
하나님은
날 사랑하지 않아요.
 
사랑받은 적 있나요.
누구에게라도.
 
아무도 없었군요.
내 마음이 아파요.
 
내 부모도 날 사랑하지 않았어요.
이제 하나님도 날 거부해요.
 
하나님이라고 부르면
그나마 괜찮은데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면
마음이 불편해요.
 
아버지라고 하는 순간
복잡한 감정이 밀려와요.
 
무서운 아버지.
무관심 아버지.
 
그 아버지가
이 아버지가 아닌데.
 
이상하다.
참 이상하다.
 
외롭고
쓸쓸해져요.
 
그렇군요.
그럴 수 있어요.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을 수 있죠.
 
사랑받은 적 없어서
사랑받는 게 뭔지 모른다고 하셨죠?
 
자녀를
사랑하시나요.
 
조건 없이
사랑하신다고요.
 
자녀 대신
죽을 수도 있다고요.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했다면서
자녀를 사랑하는 이유가 뭔가요.
 
어디에서
시작된 사랑일까요.
 
당신 안에 사랑이 없잖아요.
사랑받지 못했다면서요.
 
자녀 대신 죽을 수 있다는 말,
진심이란 걸 알아요.
 
혹시,
정말 혹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랑
받은 적 있나요.
 
누군가 당신을 위해
대신 죽기라도 한 것처럼
 
당당해서
물었어요.
 
이제 아시겠나요.
당신은 사랑받고 있어요.
 
부모 사랑으로
하나님 사랑을 느낄 수 없다면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추적하세요.
 
상처투성이 당신도
자녀를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으면서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쉽게 결론 내릴 수 있나요.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사랑을 느껴보세요.
 
내 이야기
잠시 해도 될까요.
 
내 딸이 이마에 깊은 상처를 입어
피를 콸콸 쏟은 적이 있어요.
 
이 삼십 바늘 꿰매서
치료했어요.
 
딸을 지켜주지 못했단 생각에
나는 괴로웠어요.
 
밤이면 밤마다 딸이 잠들면
그 옆에서 울고 또 울었죠.
 
속상해 죽겠는데
하나님이 한 마디 툭 던졌어요.
 
네 딸 살이 찢기니 괴롭겠구나.
나도 내 아들 살이 찢길 때 괴로웠다.
 
온 세상이 멈춘 것처럼
고요했어요.
 
내가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내 딸이 다치지 않았다면.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토록 깊이 느낄 수 있었을까요.
 
부모인 우리는 자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어요.
 
나 외로워요.
당신은 어디 있나요.
 
당신이 하나님을 찾을 때마다
그가 말씀하시기를 바랍니다.
 
네가 네 자녀를 사랑하듯
나도 너를 사랑한다.
 
하나님,
하나님 아버지.
 
당신이 하나님을
어떻게 부르든지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이
당신에게 전해지기를 기도합니다.

용서 못 하는 나 자신이 싫어요

상처 준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는 건 머리로는 알겠어요. 하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아요. 용서 못 하는 제 자신이 싫어요.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는 것 같거든요. 오랫동안 이 문제를 피해 도망 다녔지만 벗어나지 못했어요. 정말 용서하고 싶지 않은데, 용서해야만 하나요.  
 
용서 못 하는 자신을 용서해주세요. 용서는 과정이지, 성취가 아닙니다. 용서하겠다는 마음을 가진 그 순간부터 용서가 시작된 겁니다. 조급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용서하는 삶이 시작되었으니, 용서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정죄하시면 안 됩니다. 끔찍한 일을 당한 건 당신입니다. 당신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입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자신을 비난한다면, 나는 슬픕니다. 세상에 그런 일은 없습니다. 억울한 일이에요. 그러니, 자신을 비난하지 말아주세요.
 
아직 용서하지 못했다는 생각은 감정에서 비롯되었을 겁니다. 마음으로는 용서하고 싶은데 그 사람, 그 상황을 생각하면 분노가 일어나겠지요. 분노라는 감정과 용서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용서는 지난 일이고, 감정은 지금 일이죠. 감정이 남아 있다고 해서, 용서 못 한 게 아닙니다. 감정과 용서를 구분할 수 있어야,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용서는 끝나도 감정은 느껴집니다. 없애려 하지 마세요. 사라지지 않습니다. 숨기면 강해지는 게 감정이고, 표현하면 사라지는 게 감정입니다. 격한 감정을 사람에게 표현하면, 부작용 있으니 예수님께 표현하세요. 차분히 누그러질 때까지 마음껏 표현하세요. 예수님은 하품 한 번 안 하고 끝까지 들어주십니다. 
 
용서하고 싶은데 감정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면, 이미 용서하신 겁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감정을 돌보세요. 분하고 화나도 참지 말고 표현하세요. 그 과정에서 감정마저 편안할 날 올 겁니다. 감정을 느끼는 동안, 자책하지 마시고 기다려주세요. 용서의 삶을 시작한 당신을 바라보시며, 예수님이 기뻐하십니다.

엄마를 지켜줄 거예요

엄마를 위해 살아가는
청년이 있었어요.
 
그의 엄마는 약하고
슬프고 외로운 사람이었어요.
 
아빠가 술을 먹고 들어와
집안 살림을 때려 부수는 날이면,
 
엄마는 뒤돌아 누워
하염없이 울었지요.
 
그는 생각했어요.
엄마를 지켜주겠노라고.
 
엄마는 아들에게
걱정을 털어놓았어요.
 
아들은 말없이
엄마의 걱정을 들어줬어요.
 
듬직한 아들이다.
아들이 있어 살아간다.
 
엄마는 그런 아들이 고마웠어요.
아들 덕분에 포기하지 않았죠.
 
하지만, 아들은
조용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어요.
 
대가를 치러야 했어요.
언제나 외로웠어요.
 
채워지지 않았어요.
뻥 뚫린 가슴을 메울 수 없었죠.
 
용기 내어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무례하다면 용서해주세요.
 
이야기 잘 들어주는 자녀는
부모에게 축복이 아니에요.
 
그 아이는 언젠가 홀로
혹독한 대가를 지불해야 해요.
 
부모 대신 무거운 짐을 지고
숨조차 수 없는 자녀들을 나는 만납니다.
 
상처투성이 자녀가
부모를 원망하지 않아요.
 
얼굴을 가리고
엎드려 엉엉 울어요.
 
아빠가 불쌍하다며.
엄마가 불쌍하다며.
 
이제 당신 차례가 왔어요.
 
기운 내 일어나
자녀의 눈물을 닦아주세요.
 
당신의 그 무거운 짐은
주님께서 들어주실 테니.

딸에게 장애가 있어요

막내 딸에게 장애가 있어요.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삶이 망가지기 시작했어요. 제가 생각한 결혼 생활은 이게 아니었는데, 모든 게 엉망이 된 것 같아요. 어릴 적 아빠가 일찍 돌아가셨어요. 엄마가 고생했어요. 엄마의 스트레스를 제가 다 받으며 자랐어요. 엄마로부터 탈출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결혼을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숨쉬기 조차 힘드네요.
 
딸에게 사랑을 듬뿍 주고 싶은데, 쉽지 않아요. 우울증이 온 것 같아요. 다른 사람 도움 없이 장애가 있는 딸을 키우면서 재활, 육아, 살림은 혼자 다 하고 있어요. 딸에게 스트레스를 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상처가 되물림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됩니다. 정말 행복하게 살고 싶었어요. 아이를 꽃처럼 예쁘게 키우고 싶었는데, 아이들을 사랑으로 보듬어 줄 수 없어서 항상 죄를 짓는 것 같아요.
 
자매님, 지금 정말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세요. 자매님이 겪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거예요. 몸이 불편한 아이를 키우며 힘든 시간을 보내던 내담자를 만난 적이 있어요. 아이에게 미안하다며 흐느껴 우는 모습에 나도 따라 울었어요. 자신 때문에 아이가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자책했어요. 그런 아이를 부담스러워하는 자신을 보며 하나님 앞에서 죄책감을 느끼며 고통 받았죠. 그분이 느꼈던 고통의 무게는 상상을 초월했어요. 자매님이 보내주신 사연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그분과의 기억 때문이에요.
 
가장 먼저 자매님께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요. 자매님은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죄책감을 느끼시면 안돼요. 무작정 덮어 놓고 위로하는 게 아니에요. 내 나름의 근거가 있어요. 내게 질문하신 이유는 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일 거예요.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이 있다고 믿는 거죠. 아이들에게 더 나은 삶을 선물하고 싶은 거예요. 아이들의 행복이 곧 자신의 행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보다 좋은 엄마가 세상에 있나요? 나는 자매님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어요.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몸이 불편한 아이를 키우는 어려움이 몇 마디 위로하는 말로 쉬워지지 않기 때문이에요. 자매님이 몸이 아픈 자녀를 돌보며 살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잘 돌보며 살아야 해요. 그래야, 오래 동안 지치지 않을 수 있어요. 자매님의 상처를 돌보면서 아이를 돌보자고 말하고 싶어요.
 
자매님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 암투병을 했어요. 일찍 돌아가셨고, 자매님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어요. 어머니는 자녀들을 혼자 키우며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막내인 자매님이 희생양이었죠. 어머니의 스트레스를 받아주는 사람이었어요. 어머니를 이해하는 마음과 원망하는 마음이 뒤섞어 혼란스런 시간을 보냈고, 결혼이 탈출구였어요.
 
자매님이 자녀들에게 불편한 감정느껴서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짜증을 낼 때, 어머니와 자신이 겹치는 것 같아요. 아이에게 짜증 내고 화를 내는 상황은 어쩔 수 없는 거예요. 아픈 아이에게 짜증내고 화내도 괜찮다는 말이 아니라, 그만큼 육아가 힘들다는 말이에요.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 자매님의 욕구 깊숙한 곳에는 엄마처럼 아이들을 키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어요.
 
자매님이 몸과 마음이 치져서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고 있을 때, 그 장면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이 어떤 표정인가요? 인상을 찌푸리시며 화난 표정으로 자매님을 바라보신다면, 하나님을 오해하고 계신 거예요. 내가 생각하기에 하나님은 슬픈 표정으로 자매님을 바라보고 계실 것 같아요. “내 딸 너무 힘들어 보인다. 많이 힘들지? 너에게 힘이 되고 싶구나.”라고 말씀하시지 않을까요.
 
지금 이 순간은 상담자로서가 아니라 목사로서 말하고 싶어요. 자매님은 자매님의 엄마처럼 아이들을 키우지 않을 거예요. 예수님처럼 키울 거예요. 자매님이 부족하니까 엎드려 기도하면서 울잖아요.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어요. 하나님은 그 기도 받으실 거예요. 자매님이 최선을 다해도 부족한 거 있어요. 우리 부모가 어떻게 자녀들 앞에서 떳떳하겠어요. 하나님이 우리 자녀 길러 주실 거예요. 우리의 상처를 돌봐주시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아이들 덮어주실 거예요.
 
자매님 역시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기억해주세요. 하나님 앞에서 만큼은 무너져도 괜찮아요. 상처로 고통받는 우리를 돌보며 이끌어주시듯, 자매님의 딸 아이는 하나님이 돌보고 사랑해주실 거예요. 예수님의 사랑과 말씀으로 자신을 먼저 돌봐주세요. 자신을 돌볼 수 있어야 자녀를 돌볼 수 있으니까요.

당신은 좋은 부모가 될 수 없어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아요.
용서했지만 친밀해지기 힘들어요.
그냥 그런가 보다 해요.
어쩔 수 없으니까요.
 
나도 엄마가 되었어요.
아이가 어릴 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말이 통하지 않아요.
아이가 날 원망하면 어떻게 하죠.
엄마가 내 인생 망쳤다고.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어요.
나처럼 키우고 싶지 않아서
최선을 다했는데
결국 이렇게 돼버렸어요.
 
나 때문이에요.
내가 상처 없이 자랐다면
내가 사랑받고 자랐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거예요.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당신은 좋은 엄마예요,
라는 말은 안 할게요.
그런 말 많이 들었을 거예요, 아마.
가벼운 위로는 안 하고 싶어요.
 
그 대신 질문할게요.
당신은 당신 엄마보다 좋은 엄마인가요.
네,라고 말씀하셨어요.
나도 동의해요.
당신은 노력했어요.
 
내가 당신의 말을 잘 이해했다면
당신은 희망을 품고 날 찾아온 거예요.
그 마음을 잘 표현하면 이런 뜻이에요.
나는 지금보다 더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
 
지금까지 아이를 잘 키우다가
특정한 상황에 놓여
잠시 절망하신 것 같아요.
지금이 힘든 거예요.
지금까지 잘 견뎌주셨어요.
 
앞으로 어떻게 할까 알려드리고 싶은데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어요.
 
좋은 부모가 되는 방법
나는 몰라요.
내가 좋은 부모가 아니라서요.
어쩌면 당신보다 내가 더 심각한 상황일지 몰라요.
아이들을 끌어앉고 절벽으로 뛰어내렸으니까요.
아빠로서 죄책감이 심해요.
 
가끔 상상을 해요.
누군가 다가와서 말해요.
너는 상처가 많아서 좋은 아빠가 될 수 없어.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가 있어.
내가 화내며 대꾸하겠죠.
 
상처받으며 산 건도 억울한데
상처 때문에 좋은 아빠가 될 수 없다니요.
어릴 때 맞은 매보다 그 말이 더 아파요.
차라리 나를 벌거벗겨 놓고
온몸이 파래질 때까지 때리세요.
그게 덜 아플 것 같아요.
나한테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에이, 말이 그렇다는 거죠?
누가 그런 나쁜 말을 하겠어요.
다들 상식이 있는데.
 
남 일이라고 쉽게 생각하시네요.
내가 나한테 자주 그런 말해요.
애써 부인해보지만 사실이에요.
내 상처 때문에 좋은 아빠 되기 힘들어요.
내가 살면서 느껴요.
 
아무도 모를 거예요.
내가 얼마나 못난 아빠인지.
애들만 생각하면 눈물이 흘러요.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하겠어요.
내 몸에서 나쁜 피를 전부 뽑아내고
새로운 피로 바꿔서라도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어요.
 
나중에 깨달았어요.
그럴 필요 없다는 사실을.
이제 내 몸에는 새로운 피가 흐르거든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그 보혈의 능력으로
나는 새로운 혈액형을 받았죠.
 
내 아이들은 나의 피를 물려받지 않아요.
내 아이들의 몸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흘러요.
그 피로 심장이 뛰고
그 피로 키가 자라고
그 피로 강해질 거예요.
 
예수님을 사랑하는 엄마,
기도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당신 덕분에
아이들은 당신처럼 자라지 않을 거예요.
예수님처럼 자랄 거예요.
 
예수님 닮은 당신을 통해
당신의 아이가 예수님 닮기를
나는 간절히 바랍니다.

내 몸이 더러워졌어요

남자친구와 관계를 맺었어요. 내 몸이 더러워진 것 같아요. 남자친구는 계속 관계를 요구해요. 이전 남자도 그랬고, 지금 남자도 그래요. 관계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 이해해주는 척하지만 실망한 얼굴이 보여요.
 
마음이 아픕니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살고 계실 거예요. 가벼운 말로 위로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내 진심을 알아줄 것을 알기에 용기 내서 답변하려 합니다. 
 
자매님의 몸은 더러워지지 않았습니다. 소중하고 고귀한 존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어요. 성관계를 거부하고 싶은 마음은 자신 안에 있는 고귀함에서 시작되는 겁니다. 고귀함은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죄책감은 그 자체로 부정적인 감정이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죄책감이 고귀함을 회복할 기회입니다. 죄책감은 현재 상황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식하게 만듭니다. 고귀한 자신을 되찾게 돕고 있어요. 회복을 전제로 한 죄책감은 축복입니다. 통증은 고통스럽지만, 통증을 느껴야 아픈 부위를 찾고 치료할 수 있습니다.   
 
원치 않는 성관계를 지속하고 있다는 건 자매님 안에 돌봐야 할 상처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저 추론해볼 뿐이지만, 거절과 애착에 관한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을지 모릅니다. 이대로 관계를 유지하면 위험합니다. 남자친구가 떠나는 날, 모든 게 무너질 겁니다. 
 
지금 남자친구를 사랑한다면, 그리고 사랑받고 있다고 믿는다면, 솔직하게 말하세요. ‘나는 관계를 맺고 싶지 않다. 관계를 맺고 나면 죄책감으로 고통받는다. 내 몸이 더러워진 것 같다.’남자친구가 그러지 말라고 설득하려 들면, 지금 잘못된 사람을 만나고 계신 겁니다. 관계를 못해 떠날 사람이라면, 떠나보내세요. 
 
자매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남자라면, 사과할 거예요. 용서를 구할 겁니다. 자매님을 지켜주려 애를 쓸 겁니다. 물론, 서로에게 힘든 시간이겠지요.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참고 견디는 법을 배워야 성숙해질 수 있습니다. 남을 사람이라면, 남을 겁니다. 그 남자는 자매님의 진심을 알아주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스스로를 소중하게 생각해주세요. 그래야 남자친구도 자매님을 소중하게 대합니다. ‘사랑하니까 괜찮다.’는 말은 속임수입니다. 사랑하니까 안되는 거예요. 사랑하니까 지켜줘야 하는 겁니다. 
 
아픈 마음 주님이 치유해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내 알량한 몇 마디 말로 자매님이 위로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언제나 그랬듯 주님의 능력을 바라고 기도하겠습니다. 자매님은 소중한 사람입니다. 소중한 자신을 잘 지켜주세요.

생각보다 오래 걸릴 거야

목사님,
사실 제가  떳떳하지 못해요.
안 좋은 습관이 있거든요.
끊어야 하는데 아직 못 끊었어요.
 
죄책감이 심해요.
순종하면 달라질까 싶어
몇 번 시도해봤는데
계속 실패하네요.
 
예배 시간에 앉아 있기 힘들었어요.
다른 사람 모두가 편하게 듣는 말을
편하게 들을 수 없었거든요.
낙오자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교회를 떠났어요.
이대로는 안된다.
고치고 다시 오자.
마음 먹었죠.
 
혼자 고민하다
용기를 내서 말했어요.
친구가 말하더군요.
 
그렇게 자꾸 미루면 안 돼.
마음 단단히 먹고 끊어.
계속 그렇게 변명하지 마.
하나님이 참는 것도 한두 번이야.
 
마음이 아팠어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집에 와서 알게 되었어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나도 알아.
몰라서 그러는 거 아니야.
그래서 어떻게 하라고.
나도 끊고 싶다고 했잖아.
쉽게 안된다고 말한 거야.
이 바보야.
 
어려운 주제를 가져오셨네요.
쉽게 대답하기 어려워요.
솔직히 이야기해주신 덕분에
당신의 진심은 알았어요.
 
교회를 떠났다는 게
걱정되고 불안하기는 해요.
다시 돌아가기로 한 거니까
조급하게 굴지는 않을게요.
 
대신 부탁이 있어요.
예수님은 떠나지 말아주세요.
예수님과 함께 있어주세요.
 
부모님께 인정받고 싶어서
집 나가 성공하겠다는
계획은 실패할 거예요, 아마.
자식 걱정에 처마 밑에 앉아
먼 산 바라보는 부모님 모습은
보이지 않을 테니까.
 
사람 생각하지 마세요.
교회 생각하지 마세요.
오직 예수님만 생각하세요.
그분만이 당신의 진심을 알아요.
당신의 진심을 전하세요.
 
진심을 전하셨나요?
그래요. 잘 하셨어요.
이제 용기를 내세요.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가세요.
 
발이 떨어지지 않을 거예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한 걸음 떼세요.
조금만 가까이 가요, 우리.
 
가까이 가면 볼 수 있어요,
당신을 바라보시며
따뜻하게 웃으시는 예수님 얼굴.
그가 당신을 안아주며 말씀하세요.
 
얘야, 조급할 필요 없단다.
나는 기다릴 수 있단다.
생각보다 오래 걸릴 거야.
자책하지 말아주렴.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이 틈에 숟가락 하나 얹어도 될까요.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아, 그렇군요.
오늘 다시 태어난 걸로 하죠.
 
지난 30년 동안 상처받고 살았으니까
오늘부터 당신에게 30년 시간 주세요.
상처받으며 살아온 시간만큼
상처 아무는데 시간 걸려요.
 
나도 마음속에 달력 있어요.
조급하지 않을 거예요.
비난하지 않고 자책하지 않고
나를 돌봐줄 거예요.
 
떨리는 손으로
달력을 한 장 한 장 찢어 넘기며
나는 기도합니다.
 
달력 뒤에 벽을 만나 절망하기 전에
예수님이 먼저 오시기를.
 
지친 이 삶을 뒤로하고
주님 품에 안겨 안식하기를.

다른 사람을 소개 받는 게 죄가 되나요?

교회에서 만난 남자친구가 있어요. 남자친구는 저와 결혼하고 싶어 해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이런저런 조건을 따져보고 있어요. 이 와중에 더 좋은 조건의 소개가 들어와요. 다른 사람을 소개받으면 죄가 되나요? 
 
궁금해서 던진 질문이 아니라, 불안해서 던진 질문처럼 느껴집니다. 만약 내가 괜찮다고 하면, 마음이 조금 편해질까요? 하지만, 나는 단답식으로 대답하고 싶지 않습니다. 
 
연애는 OX 게임이 아닙니다.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새로운 남자를 소개받으면 유죄 판결을 받고, 지금 남자친구와 결혼하면 무죄를 받는 식으로 생각한다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심하게 왜곡된 거예요. 죄의 여부를 떠나서, 진실된 판단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조건을 따지면서 결혼하면, 행복하기 어렵습니다. 조건을 보기 전에 먼저 존재를 보세요. 그게 성경의 원리와 더 가깝습니다. 조건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지만, 지금은 조건이 너무 앞서고 있어요. 조금만 신중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결혼은 쇼핑이 아닙니다.   
 
내가 보기에 지금의 남자친구를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확신이 없다면,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건 서로에게 유익하지 않습니다. 곁에 두고 관리하는 건 옳지 않아요. 
 
남자친구와 결혼하는 것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건 서로 별개의 문제입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먼저 지금의 남자친구를 정리하는 게 맞습니다. 이렇게 답변하는 게 마음이 편하지 않지만, 결혼하시기 전이니 아무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한참 돌려 말했는데, 죄가 되냐는 질문에 답하겠습니다. 지금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유지한 채로 다른 사람을 소개받는 것이 죄가 된다는 직접적인 성경 구절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마음 편히 다른 누군가를 만나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죄가 되는가를 따져보기 이전에, 동기를 따져보면 좋겠습니다. 선택보다 중요한 건 동기입니다. 동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선택의 기준이 됩니다. 동기의 옳고 그름은 자신만이 알 수 있습니다. 자신 안의 동기가 올바른가 점검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동기가 바르지 않다면, 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잘못된 동기는 결국 자신과 남자친구에게 상처를 남기게 될 테니까요.

아내가 과거의 잘못을 들춰냅니다

아내가 지난 일에 대해 자주 이야기합니다. 과거에 상처 준 시간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아내가 알아주지 않아 괴롭습니다. 그동안의 모든 노력이 아무 의미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솔직한 질문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이 아무 의미 없다는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동안 최선을 다해 노력하신 것, 아내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아내가 고마운 마음을 남편에게 안심하고 표현하지 못한 겁니다. 포기하기에는 이릅니다. 조금만 참고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아내의 상황을 먼저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 상처는 시간이 흐른다고 쉽게 잊혀지지 않습니다. 아내가 지난 일에 대해 말할 때, 남편을 비난하는 게 아닙니다. 과거의 잘못을 들춰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남편에게 솔직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겁니다. 과거에는 남편에게 아무리 표현해도 이해 못 한다 생각했기 때문에 아내가 말하지 않고 혼자 참은 겁니다. 아내가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다는 건 남편이 그동안 노력한 결과입니다. 그러니, 힘들어도 잘 들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상처는 순간입니다. 치유는 과정입니다. 진심으로 용서받기 원하신다면, 아내가 남편에게 지난 일을 말할 때마다, 치유되는 시간이라고 믿고 아내에게 반복해서 용서를 구하세요. 용서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래 걸립니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풀릴 일이라면, 아내가 긴 시간 상처로 고통받지 않았겠지요. 아내가 지난 일 웃으며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자존심 내려놓고 진심으로 사과해주세요. 
 
아내 역시 용서하려니 고통스러울 겁니다. 아내가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조심스럽게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남편이 포기하지 않도록 자신의 내면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말해주세요. 남편이 노력하는 모습이 고마울 겁니다. 고마운 건 고맙다고 말해주세요. 하지만,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해주세요. 
 
그리고, 예수님께 나아가세요. 남편이 천 번을 미안하다고 말해도 용서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남편이 아내 옆에서 일생 동안 죄책감으로 고통받으며 살아간다고 해도 그 마음 풀리지 않을지 모릅니다. 예수님께 아픈 마음 가져가세요. 예수님이 위로해주셔야 그 마음 풀립니다. 지난 일이니 다 잊으라는 말 아닙니다. 잊지 마세요. 하지만, 상처만 기억하지 마시고 예수님도 기억해주세요. 그래야, 삽니다.

아내가 기도를 안 해요

장모님이 건강이 안 좋으세요. 아내를 도와주고 있기는 한데, 가끔은 제 마음도 힘들어요. 아내가 힘든 건 이해하는데, 아내가 기도를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이럴 때일수록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더 의지하면 좋겠어요.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아내가 힘들 때, 곁에 있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질문에 조심스럽게 답하겠습니다. 
 
아내는 기도하고 있을 거예요. 다만, 남편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뿐이죠. 상황이 힘든 만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있지 않을까요. 어머니가 아픈 상황은 딸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다 줍니다. 실제로 기도하지 못하고 있다면, 아마 기도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지금 아내에게 필요한 건 조언이나 해결책이 아닙니다. 아내에게 필요한 건 위로입니다. 많은 말을 하지 말고, 많은 말을 들어주세요. 아내가 하고 싶은 말 있을 거예요. 끊지 말고 끝까지 들어주세요. 쉽지 않을 거예요. 남편 역시 하고 싶은 말이 있잖아요.
 
아내가 남편에게 푸념한다 생각하지 마시고, 예수님께 기도한다 생각해주세요. 남편 마음 안에 예수님이 계시지요. 아내가 고통을 말할 때, 남편 안에 계신 예수님께 간절히 기도한다 생각해주세요. 아내가 말하는 내용 하나하나 마음에 담으세요. 절박한 아내의 기도입니다. 기도가 끝나면, 아내가 말할 거예요.   
 
“여보, 고마워. 내 상황 이해해줘서. 나 힘내서 다시 일어설게.” 
 
남편은 해결책을 제시하고 싶지만, 아내는 위로받고 싶은 거예요. 힘든 시간 동안 아내 곁에 있어주시면, 아내는 힘을 낼 수 있을 거예요. 상황은 쉽게 바뀌지 않아요. 아내 마음이 든든해야 해요. 
 
절대로 손해 보는 일 아니에요. 인생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어요. 항상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지만, 누구도 보장할 수 없죠. 남편에게도 힘든 시기가 올 거예요. 남편이 무너졌을 때, 함께 있어줄 사람은 아내뿐입니다. 아내가 무너졌을 때, 남편이 곁에 있어 줬던 것처럼, 아내 역시 남편 곁에 있어줄 거예요. 
 
아내를 사랑해서 질문해주신 남편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엄마, 미안해

“모든 것이 제 잘못처럼 느껴져요. 사람들이 직접 말하지 않지만 느낄 수 있어요.” 
 
B가 세 번째 직장을 그만둔 직후였다. 마케팅 회사를 다녔던 그녀는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에 선배와 참여했다. 발표를 맡은  선배의 자료 파일 화면을 넘겨주기로 했다. 그런데 프레젠테이션이 중간 정도 진행되었을 쯤, 동영상 파일이 열리지 않았다. 
 
B는 식은땀을 흘렸다. 선배는 당황하면서도 노련하게 상황에 대처했다. 그가 시간을 끌 동안 동영상이 다시 플레이 되었다. 청중은 실수를 알아채지 못했다. 프레젠테이션이 끝나고 선배는 그녀에게 수고했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3일 후, 선배로부터 다른 업체가 선정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선배가 말했다. 
 
“실망하지 마. 경쟁이 원래 치열해. 이번 주에도 프레젠테이션 두 개 더 있으니까 준비 잘하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회사를 그만뒀다. 세 번째 회사를 그만둔 그녀가 다시 취업하는 건 쉽지 않았다. 면접을 볼 때마다 똑같은 질문을 받았다. 
 
“우리 회사가 네 번째네요. 지난 번 회사는 7개월 동안 다니셨네요. 나머지 두 회사는 1년 정도고,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적성에 맞지 않아 회사를 옮겼다고 말했지만 면접관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3개월이 지났다. 그녀는 취업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프리랜서로 살아갈 준비를 했다. 
 
“어릴 때 만화 작가가 되고 싶었거든요. 웹툰을 그리고 있어요. 지금은 시작 단계니까 열심히 노력해야죠.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려고요. 모아둔 돈이 있으니까 잠깐은 버틸 수 있어요.” 
 
그녀는 자신이 실수했다는 느낌이 싫었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짓눌리는 것처럼 답답했다. 밀폐된 공간에 머물 수 없어 사무실 밖으로 뛰쳐나가야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런 날이면 밤잠을 이룰 수가 없다. 머릿속에서 그날 그 장면이 반복적으로 생각났다. 
 
‘그 사람은 왜 내게 그런 말을 한 걸까? 무슨 뜻일까? 나는 왜 그렇게 대답을 했을까?’
 
머릿속 생각을 멈추기 위해 TV를 보고, 샤워를 해도 소용없었다. 잠시 사라졌던 생각은 금방 다시 찾아왔다. 해 뜨는 게 두려웠다. 암막 커튼으로 햇살을 가리고 알람 소리를 의지해 일어났다. 수면부족으로 몸이 무거워졌다. 사무실 밖으로 뛰쳐나가는 횟수가 늘어났다. 한 달에 한 번에서 일주일에 한 번으로, 일주일에 한 번에서 매일 한 번으로. 
 
12년 전 어느 날, 그녀는 엄마에게 짜증을 냈다. 고등학교 입학하고 야간자율학습에 적응하지 못했다. 집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여러 번 말했다. 
 
“시간이 조금 필요하지 않겠니? 이번 여름 방학 때까지만 잘 버텨봐. 그래도 힘들면, 엄마가 선생님께 말해줄게.” 
 
다음 날,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저녁 먹고 책상 앞에 앉은 그녀는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선생님께 배가 아프다고 핑계를 대고, 엄마에게 전화했다. 가방을 챙겨 교실 밖으로 나가 엄마를 기다렸다. 30분이 지나도 엄마가 오지 않았다. 다시 30분이 흘렀다. 벨소리가 들렸다.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왜 안 와? 빨리 와.” 
 
전화기 너머로 아빠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엄마가 운전했던 차는 음주운전 차량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그날 전화하지 않았다면…. 그날 그냥 교실에 있었다면…. 엄마는 죽지 않았을 거예요.” 
 
그녀는 고개를 떨구고 울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끊었던 술을 다시 입에 대면서 간경화가 진행되고, 아버지가 성급하게 재혼해서 새엄마와 관계가 엉망이 된 것. 모두 자기 탓이라고 말했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가 되면 혀가 꼬부라져 하는 말이 있다. 
 
“네 잘못이 아니야…. 네가 그런 말 할 때마다 아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아. 그날 내가 갔어야 했어. 엄마가 아니라 아빠가 운전을 했어야 했다고…. 아빠 잘못이야….” 
 
그녀는 마음속으로 대답했다. 
 
‘아니에요. 아빠, 제 잘못이에요.’ 
 
그녀 아버지, 친척, 친구, 모두가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도 소용없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비난 받을 사람이 있다면 그날 술을 먹고 운전한 그 자식이야. 그 자식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그녀의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애써 위로하려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녀는 더 깊은 어둠 속으로 자신을 숨겼다. 
 
***
 
사람이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하면, 그 사건 이전을 기억하지 못할 수 있다. 충격과 함께 기억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12년 전, 사고가 일어난 이후 그녀는 엄마를 기억하지 못했다. 기억의 창고 후미진 곳에 엄마에 대한 기억을 가두고 문을 걸어 잠갔다. 
 
엄마를 기억하면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의도적으로 기억하지 않는 편을 택했다. 엄마가 그리워지면, 그녀는 사건이 일어난 그날 밤 고통스런 순간으로 되돌아간다. 내면에 구간반복 기능이 켜진다. 고통스러운 장면을 무한 반복한다. 누군가 구간반복 기능을 꺼준다면, 엄마에 대한 소중한 기억을 되살릴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 기능을 끌 수 있는 사람은 그녀 자신뿐이다. 아무도 대신해줄 수 없다. 엄마에 대한 기억을 되찾으려면, 걸어 잠근 문을 열어야 한다. 고통스런 기억을 꺼내는 것이다. 그곳에 자유가 있다.  
 
“제가 다섯 살쯤인 것 같아요. 엄마가 동화책을 읽어주는 장면이 생각나요. 엄마 무릎에 앉으면 엄마는 두 팔을 둥그런 원으로 만들어 그 안에 저를 담았죠. 두 손으로 책을 들고 있었고요. 엄마가 만든 둥그런 원이 좋았어요. 아늑하고….” 
 
다섯 살 꼬마로 되돌아간 그녀는 엄마 품에 안겨 말했다. 
 
“엄마, 미안해.” 
 
“뭐가?” 엄마가 말했다. 
 
“내가 그날 전화만 하지 않았어도…. 나 때문에 많이 아팠지?” 
 
“아니야, 엄마가 미안해. 같이 있어주지 못해서…. 우리 딸 엄마 없이 잘 할 수 있지?”
 
“응….”
 
현실의 그녀는 오열했다. 
 
사건을 바꿀 수는 없지만,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꿀 수 있다. 그날의 기억을 지울 수 없지만, 그날의 사건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날 그 사건은 그녀 잘못이 아니다. 아버지 잘못 또한 아니다.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고, 아무도 대비할 수 없었다. 그 일이 일어났고, 그 일은 막을 수 없었다. 이것이 진실이다. 
 
진실을 받아드리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다른 사람의 설득으로 외부에서 주입될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 내면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일이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두려움과 마주할 용기이다. 현실에서 그녀는 두려운 상황과 마주할 것이다. 사랑, 일,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그녀의 구간반복 기능이 켜진다. 
 
“모든 것이 다 내 잘못이야.” 
 
그때마다, 그녀는 리모컨 버튼을 누르듯, 자기 비난의 목소리를 꺼야 한다.  
 
“전부 내 잘못은 아니지. 어쩔 수 없는 일도 있잖아.”   
 
사람마다 자기 비난의 목소리가 들린다. 다른 사람에게는 관대하고 자신에게는 무자비한 목소리. 우리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산다. 목소리를 만드는 것도 자신이고, 고통받는 것도 자신이다. 반대로, 목소리를 거부하는 것도 자신이다. 왜 그 목소리가 들리는지 아무도 모른다. 선택만이 남았다. 듣느냐, 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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