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자존감

못난 척할 필요 없어요

요즘 하도 잘난 척하는 사람이 많아서
눈에 잘 띄지 않는 사람이 있어요.
 
못난 척하는 사람이죠.
 
열 개 중 아홉을 잘 하고
하나를 못하면 괴롭습니다.
 
나는 왜 그랬을까.
나는 왜 그 말을 했을까.
 
속으로 생각하다 입 밖으로
생각이 흘러나와요.
 
배우자가 들어주다 지칩니다.
친구들이 들어주다 지칩니다.
 
사람이 떠나가는 게 보입니다.
알약을 새로운 친구 삼습니다.
 
소리 소문 없이, 죽은 듯이
조용히 혼자 삽니다.
 
밤마다 침대에 누워
안방 천장에서 상영되는
실수 비디오를 무한 반복하면서.
 
남의 일 말하듯 하지만,
나부터도 하나 실수하면 괴롭습니다.
 
우승을 다투는 자리에서
귀한 손님이 가져온 꽃다발을
손으로 밀어낸 적이 있어요.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해서 그랬어요.
 
부끄러웠어요.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거든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머릿속 비디오 플레이를 했어요.
 
실수한 거,
반복해서 보고 또 보고.
 
두 번 다시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
괜찮다고 말하지만, 거짓말이에요.
 
실수는 당연히 반복되니까요.
 
절대로 멈출 수 없어요.
실수하는 건.
 
잘난 척할 필요 없지만,
못난 척할 필요 없어요.
 
내 질문에 답변해보세요.
 
당신은 살면서 가족에게 자랑하고 싶은
무언가를 이룬 적이 있나요?
 
당연히 있죠.
 
그렇군요.
 
그럼, 괜찮습니다.
이제 집에 가셔도 됩니다.
 
당신은요?
 
나는 없어요. 전혀.
 
아, 그렇군요.
우리 친구합시다.
 
나도 그렇거든요.
 
알약 친구보다
내가 낫잖아요.
 
아, 그리고.
친구 하나 더 소개하고 싶어요.
 
내가 매일 만나는
따뜻하고 인자한 친구가 있어요.
 
날 있는 그대로 다 받아주는
그런 친구 말입니다.
 
그 친구가 도와줄 거예요.

실수는 실패가 아니에요

어릴 때 운동회가 싫었어요.
난 달리기가 느리거든요.
 
출발선에 서면 다리가 떨렸어요.
꼴찌는 면해보자, 생각했죠.
 
땅!
 
화약 소리와 함께,
친구들 뒷모습이 보여요.   
 
결승점에 도착하면
손등에 도장이 찍혀요.
 
내가 원하던 숫자는 아니었죠.
 
손등에 보랏빛 숫자가 싫어도
지우면 안 돼요.
 
선생님께 혼나요.
 
번호가 있어야 끝나고
노트를 주거든요.
 
난 못 받은 적도 많았지만
번호는 끝까지 지우지 못했죠.
 
어느 날, 삼겹살을 먹는데
고기가 파래요.
 
엄마한테 물었죠.
이게 뭐야.
 
그거 도장이야.
고기 급수 나눈 도장.
 
나는 사람들이 돼지를 때려서
생긴 멍인 줄 알았는데.
 
도장 자국이었어요.
 
내 식탁에 올라온 걸 보면,
적어도 1이라고 찍히지 않았을까 싶었죠.
 
돼지도 달렸나.
달리기 1등 해서 내 식탁에 올라왔나.
 
어린 마음에
쌈 싸먹으면서 피식 웃었죠.
 
나는 이제 달리기 싫어서
달리지 않아요.
 
옆 사람이 아무리 빨리 달려도
나는 걸어요.
 
비웃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요.
등 떠미는 사람도 있고요.
 
나는 뿌리치고 그냥 걸어요.
 
저 앞 편에서 도장 찍어주고
줄 세우는 게 보이네요.
 
아, 내가 길을 잘못 들었구나.
다른 방향으로 걸어요.
 
온 땅이 길인데요, 뭐.
 
참 이상하죠.
사람들이 어떻게 알고 따라왔는지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네요.
 
하얀 분으로
자꾸 레일을 만들어요.
 
끝자락에 하얀 끈을 치고
빨리 뛰라고 손짓하죠.
 
계속 피해 다니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네요.
 
자꾸 길을 정해주고
벗어나지 말고 빨리 뛰라 하니
나는 귀찮을 수 밖에요.
 
달리기하는 사람은
생각할 시간이 없어요.
 
중간에 실수라도 하면
스스로 말하죠.
 
나는 실패했어.
나는 바보야, 정말.
 
힘겹게 도착한 결승점에서
도장을 꽝 찍어줘요.
 
실패자.
바보.
 
그런 도장을 받으러 뛰어갈
필요 있나요.
 
실수는 그냥 실수예요.
실패가 아니고.
 
도장이 싫다면
다른 길로 가세요.
 
가고 싶은 길로.
당신 만의 길로.
 
계속 거기 남아 있으면,
둘 중 하나에요.
 
스스로 낙인찍거나.
남에게 낙인찍히거나.

감정 필터 사용법

나는 유명한 사람이 아니니까
댓글이 별로 안 달립니다.
 
댓글 하나가 소중해서
꼼꼼히 살피는 편이에요.
 
대 여섯 개 달리면
일일이 답장해줍니다.
 
언젠가 한 번은
기분 나쁜 댓글이 달렸습니다.
 
댓글이 몇 개 안되니까
나쁜 댓글 하나가 전체 댓글 20%로 느껴집니다.
 
사람 참 이상합니다.
 
좋은 댓글 80% 놔두고
나쁜 댓글에 속상합니다.
 
사람마다 마음속 필터가 있습니다.
좋고 나쁨을 걸러내지요.
 
부르기 편하게 감정 필터라고
이름 붙여볼까요?
 
감정 필터가 정상적으로 기능할 때는
좋은 말은 담고, 나쁜 말은 걸러냅니다.
 
가끔 고장이 납니다. 
나쁜 말이 필터 틈에 끼어서
밖으로 나가지 않아요.
 
정체 현상이 일어납니다.
나쁜 말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덩어리가 됩니다.
 
시커먼 말이 필터에 가득 끼어버려요.
 
필터를 갈아야 하는데
그냥 살아가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나쁜 말을
걸러내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귀찮더라도 뭔가 조치를 해야 합니다.
 
주의할 점이 있어요.
 
필터를 씻어내려 마세요.
괜히 손만 더러워집니다.
 
큰맘 먹고 필터를 교체하세요.
구멍 큰 것으로 바꾸세요.
 
넉넉한 크기의 필터가 좋습니다.
너무 촘촘하면 이것저것 다 걸립니다.
 
작은 말은 그냥 흘려보낼 정도로
넉넉한 크기면 좋습니다.
 
나쁜 말 하나 붙잡고
하루 종일 반복해서 마음에 되새기면
속 쓰리고 잠 안 옵니다.
 
항상 살펴주세요.
필터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자, 구멍 크기 확인하셨나요?
넉넉해야 합니다.
 
어, 방향도 바뀌면 안 됩니다.
좋은 말을 담아야 합니다.
나쁜 말이 아니라.
 
지금까지 감정 필터 사용법
설명드렸습니다.

당신은 좋은 부모가 될 수 없어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아요.
용서했지만 친밀해지기 힘들어요.
그냥 그런가 보다 해요.
어쩔 수 없으니까요.
 
나도 엄마가 되었어요.
아이가 어릴 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말이 통하지 않아요.
아이가 날 원망하면 어떻게 하죠.
엄마가 내 인생 망쳤다고.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어요.
나처럼 키우고 싶지 않아서
최선을 다했는데
결국 이렇게 돼버렸어요.
 
나 때문이에요.
내가 상처 없이 자랐다면
내가 사랑받고 자랐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거예요.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당신은 좋은 엄마예요,
라는 말은 안 할게요.
그런 말 많이 들었을 거예요, 아마.
가벼운 위로는 안 하고 싶어요.
 
그 대신 질문할게요.
당신은 당신 엄마보다 좋은 엄마인가요.
네,라고 말씀하셨어요.
나도 동의해요.
당신은 노력했어요.
 
내가 당신의 말을 잘 이해했다면
당신은 희망을 품고 날 찾아온 거예요.
그 마음을 잘 표현하면 이런 뜻이에요.
나는 지금보다 더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
 
지금까지 아이를 잘 키우다가
특정한 상황에 놓여
잠시 절망하신 것 같아요.
지금이 힘든 거예요.
지금까지 잘 견뎌주셨어요.
 
앞으로 어떻게 할까 알려드리고 싶은데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어요.
 
좋은 부모가 되는 방법
나는 몰라요.
내가 좋은 부모가 아니라서요.
어쩌면 당신보다 내가 더 심각한 상황일지 몰라요.
아이들을 끌어앉고 절벽으로 뛰어내렸으니까요.
아빠로서 죄책감이 심해요.
 
가끔 상상을 해요.
누군가 다가와서 말해요.
너는 상처가 많아서 좋은 아빠가 될 수 없어.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가 있어.
내가 화내며 대꾸하겠죠.
 
상처받으며 산 건도 억울한데
상처 때문에 좋은 아빠가 될 수 없다니요.
어릴 때 맞은 매보다 그 말이 더 아파요.
차라리 나를 벌거벗겨 놓고
온몸이 파래질 때까지 때리세요.
그게 덜 아플 것 같아요.
나한테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에이, 말이 그렇다는 거죠?
누가 그런 나쁜 말을 하겠어요.
다들 상식이 있는데.
 
남 일이라고 쉽게 생각하시네요.
내가 나한테 자주 그런 말해요.
애써 부인해보지만 사실이에요.
내 상처 때문에 좋은 아빠 되기 힘들어요.
내가 살면서 느껴요.
 
아무도 모를 거예요.
내가 얼마나 못난 아빠인지.
애들만 생각하면 눈물이 흘러요.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하겠어요.
내 몸에서 나쁜 피를 전부 뽑아내고
새로운 피로 바꿔서라도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어요.
 
나중에 깨달았어요.
그럴 필요 없다는 사실을.
이제 내 몸에는 새로운 피가 흐르거든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그 보혈의 능력으로
나는 새로운 혈액형을 받았죠.
 
내 아이들은 나의 피를 물려받지 않아요.
내 아이들의 몸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흘러요.
그 피로 심장이 뛰고
그 피로 키가 자라고
그 피로 강해질 거예요.
 
예수님을 사랑하는 엄마,
기도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당신 덕분에
아이들은 당신처럼 자라지 않을 거예요.
예수님처럼 자랄 거예요.
 
예수님 닮은 당신을 통해
당신의 아이가 예수님 닮기를
나는 간절히 바랍니다.

사랑보다는 현실이죠

배우자를 결정할 때 사랑보다 돈이나 배경이 더 중요하게 느껴져요. 사랑은 오래가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들었어요. 어차피 결혼해서 살 거면 넉넉하게 살고 싶어요. ‘이건 아니지’, 하면서도 현실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결혼을 앞두고 고민하고 계시군요. 누군가를 만나고 계시다면, 상대방의 경제적 상황이 불안해서 던진 질문이겠지요. 서로 사랑하지만, 결혼해서 마주할 빠듯한 삶이 걱정되는 건 당연합니다. 누군가를 만나기 전이라도 상황은 다르지 않습니다. 누구를 만나더라도 걱정은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요. 
 
먼저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았으면 해요. “나는 세속적인 사람이다.”라는 식의 사고는 옳지 않아요. 나는 오히려 솔직한 질문을 해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하나만 묻고 싶어요. 어느 정도의 경제적 안정감을 말하고 계신 건가요? 정확한 재산 규모가 아니라 상대적인 안정감을 말하고 계신 것 같아요.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고 싶은 거죠. 
 
그 안에 결핍이 있을지 몰라요. 아마도 가난의 고통을 아는 사람이 아닐까 싶어요. 가난의 고통을 아는 사람은 가난하고 싶지 않아요. 오히려, 가난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가난을 가볍게 생각하지요. 만약 가난의 고통을 아는 사람이라면, 스스로를 비난하면 안 됩니다. 결핍에서 두려운 감정이 시작된 것이니까요.
 
조심스럽지만, 용기 내어 말씀드립니다. 두렵다고 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시험지를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면 안 됩니다. 정직하게 공부해서, 아는 만큼 써야 해요. 시험 점수가 낮아서 실망스럽더라도 어쩔 수 없어요. 공부 잘하는 친구와 짝을 해서 커닝으로 성적을 올린다면, 나중에 철들고 후회합니다. 좋은 대학은 가도 좋은 인생은 못 살아요. 
 
자기 문제는 자기 스스로 풀어야 해요. 결혼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누구를 만나더라도 행복하기 어렵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이라도 다른 것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주변에 사랑이 대수롭지 않은 듯이 말하는 사람이 있어 안타까울 뿐입니다.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결혼이라는 배는 결국 침몰하고 말 거예요. 암초에 걸리면, 초호화 크루즈나 화물선이나 침몰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말은 현실적인 말이 아닙니다. 모든 부부는 서로 사랑해서 고통받아요. 사랑은 사라진 게 아닙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고통받지도 않아요. 부부의 모든 고통은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단지, 사랑을 서로 공유하지 못해서 불행해지는 거예요. 사랑은 오래갑니다. 나는 그렇게 믿어요.  
 
누구를 만나 결혼해도 괜찮아요. 그건 각자의 선택이니까요. 나는 당신이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자신 안의 결핍을 자세히 살펴보면 좋겠어요.

거절하기 힘들어요

교회에서 리더로 섬기고 있어요. 고민을 들어줄 일이 많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회의가 들기 시작했어요. ‘나는 바쁜 시간을 쪼개서 어렵게 시간을 냈는데, 이 사람은 과연 그걸 알고 있는 걸까.’ 굳이 내가 필요할까. 그냥 말할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닐까 생각이 들면,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먼저 고맙다는 말을 드리고 싶어요.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습니다. 쉽지 않은 자리 포기하지 않고 잘 견뎌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매님의 질문은 저 역시 오랫동안 고민해온 문제에요. 정답은 없습니다. 하루하루 고민하면서 결정을 내려야 해요. 내 말이 정답은 아니지만, 조심스럽게 몇 자 적어보려고 합니다.
 
일단 자매님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을 아껴 쓰세요. 리더 역시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을 돌봐줄 수 없어요. 자신 안에서 기준을 세우세요. 기준은 복잡하지 않아야 합니다. 일주일 단위로 만날 사람과의 시간과 횟수를 제한하세요. 시간대 역시 고정적이면 좋습니다. 최대한 단순하게 만드세요. 그래야 지속 가능한 사역을 할 수 있습니다.
 
상황에 대한 기준 역시 중요합니다. 모든 사람을 만날 수는 없어요. 인생에서 고민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만나도 만나도 끝이 없을 거예요. 최소한의 기준이 필요해요. 마음이 어렵겠지만, 꼭 그렇게 해야 합니다. 지속 가능한 사역을 위해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해요.   
 
고민을 가진 사람이 도움을 요청하는 방식을 세 가지 비유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니 참고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껌종이에 고민을 뱉어 던져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실은 고민이 나누려고 온 게 아니라 감정을 배출하고 싶은 사람이에요. ‘나 지금 이런데, 내가 이런 일을 당하는 게 말이 돼?’
 
감정 뱉어서 버린 껌종이 펼쳐보지 마세요. 기분 상합니다. 받아서 쓰레기통에 잘 버리세요. 상대방이 착각한 겁니다. 자매님이 쓰레기통인 줄 안 거예요. 직접 버리라고 말하고 돌아보지 마세요.
 
그다음은, 종이 한 장에 고민을 대충 쓴 다음 수 백장 복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마다 나눠줍니다. 누구 하나 걸리라는 식으로 마구 뿌리는 겁니다. 착한 사람이 멈춰 섭니다.
 
당연히 대화가 힘듭니다. 그 사람은 자매님과 대화하는 중에도 종이 뭉치를 손에 쥐고 있습니다. 자매님과의 대화에 온전히 집중하지 않아요. 설문조사하듯, 질문합니다. ‘이 사람은 이렇게 말하네. 다른 사람은 무슨 말을 해줄까’ 궁금해합니다. 자매님이 사라지고 나면, 그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을 찾아다닐 겁니다.
 
마지막으로, 손편지를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종이는 허름해도 정성스럽게 한 글자 한 글자를 써 내려간 편지를 보냅니다. 손편지를 받아보면, 얼룩져 있습니다. 눈물로 써 내려간 편지라 그렇습니다. 여기저기 눈물이 떨어져 잉크가 번진 겁니다. 종이는 귀퉁이가 닳아서 구깃구깃합니다. 다 쓰고 나서 보낼까 말까 손에 쥐고 긴장한 까닭입니다.
 
손편지를 받았다면, 예수님이 되어 주세요. 태평양을 건너가서라도 만나야 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찾아가 돌봐주세요. 그 사람이 흘린 눈물만큼 함께 울어주세요. 오늘이 세상 마지막 날이라고 해도, 그 사람 하나 살리고 떠난다 생각해주세요. 거절하면 안 됩니다.    
 
상처 입은 사람이 소중하듯이, 자매님 역시 소중합니다. 스스로를 지키고 보호할 수 없다면 언젠가는 촛불처럼 닳아 없어질 거예요. 인생은 불꽃놀이가 아닙니다. 잠시 피웠다 꺼지는 불이 되지 마세요. 연료를 아껴 써야 추운 겨울 잘 보낼 수 있습니다. 차디찬 세상을 따뜻하게 녹여주는 난로가 되어주세요.  

누구 말이 옳은 걸까요?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편이에요. 다양한 의견을 듣는 건 좋은데, 가끔은 혼란스러워요. 교회 안에서 목사님, 리더들이 서로 다른 조언을 해주거든요. 누구 말이 옳은 건지 모르겠어요. 
 
아무도 올바르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조언이 전부 틀렸다는 말이 아닙니다. 아무리 옳은 답을 내놔도 자매님이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 틀린 답이 됩니다. 사람들의 조언을 너무 많이 듣지 마세요. 그러다가, 길을 잃습니다. 이리저리 헤매다 인생 낭비할 수 있어요. 
 
사람들의 조언을 듣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의존적이에요. 상담실 안에서도 흔히 있는 일입니다. 나에게 자기 인생을 결정해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 안에는 자신만의 이야기가 숨어 있어요. 자기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이유가 있습니다. 찾아내서 돌봐줘야 해요. 
 
이제부터 조언을 구할 때, 상대방의 표정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자신은 오랜 시간 고민하다가 조언을 구했는데, 상대방은 질문을 받은 순간부터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1초도 생각하지 않고 즉시 말합니다. 상대방이 즉흥적으로 던진 조언에 자기 인생을 맡기는 건 정말 위험합니다. 
 
교회 청년들 중에 목사님이나 리더의 말 한마디로 대학 전공이나 직업을 바꾸고, 심지어 진지하게 교제하는 형제자매와 헤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말씀해 주신다고 해도, 신중하게 생각하세요. 그분들은 자매님의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습니다. 함께 고통을 겪지도 않아요. 말 한마디하고 사라집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들도 자매님이 누군지 잘 몰라요. 목사님, 공동체 리더, 소중한 친구들, 멘토, 가족처럼 가까워도 자매님을 온전히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보다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러니, 절대로 선택권을 넘겨주면 안 됩니다.  
 
제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사람들의 의견을 듣다 보면, 나중에 그들의 생각에 파묻혀 버려요. 그들의 말에 영향력이 생기면, 그 말을 어기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들의 말이 규범이 됩니다. 사람들 눈치 보면서 인생 살면 그때부터는 불행해집니다. 
 
나도 글 쓴다고 할 때, 주변에서 좋은 소리 못 들었습니다. 나를 잘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반대했어요. “글로 먹고사는 사람 없다. 네 글을 누가 읽어주냐. 글은 써 본 적 있냐.” 헤아릴 수 없는 말을 들었어요. 마음이 아팠죠. 하지만, 나는 스스로 선택했고 계속 글을 썼어요. 
 
막상 책 한 권 나오니까, 똑같은 사람들이 예전과 다른 말을 합니다. “나는 결국 네가 해낼 줄 알았다. 정말 잘 했다.” 만약 내가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선택권을 넘겨줬다면 나는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했을 겁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죠.     
  
귀를 닫고 살면서 사람들을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에요. 최대한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의견을 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선택은 자기 자신이 내리라는 말이에요. 처음부터 결심해야 합니다. “의견은 듣지만, 선택은 내가 한다.” 그래야 조언을 해주는 사람도 부담이 없습니다. 사람들의 말은 조언일 뿐이지, 법칙이 아닙니다. 
 
자매님을 가장 잘 아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사람들의 조언은 적당히 들으세요. 나도 목회해봤지만, 목사가 세상만사 다 아는 거 아닙니다. 목사 의지하지 마세요. 리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의지하시고 하나님 말씀을 들으세요. 답답하고 두려운 거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걱정 마세요. 실수해도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나는 잊혀도 괜찮아

혼자 있으면 
마음속에서 소리가 들려요. 
 
넌 쓰레기야. 
가서 죽어. 
 
정신분열이 오는 걸까요. 
이러다 미치는 건 아닌지. 
 
너무 걱정은 마세요.  
나도 그렇거든요.  
 
나도 끔찍한 소리를 듣고 살아요. 
우울해서 견딜 수가 없죠. 
 
하나만 말해볼까요.
아주 못된 말이에요. 
 
야, 너 요즘 조금씩 알려지니까 좋지. 
시작한 지 얼마 안되서 그래. 
 
이 삼 년 지나봐. 
너 잊혀. 
 
사람들이 지루하다 그래. 
너 그때 어떻게 할래. 
 
그러니까 내가 그냥 교회에 
가만히 있으라 했잖아. 
 
지어낸 이야기 아니에요.
어제도 들었어요. 
 
그 소리 듣고 나면 우울해져요.  
견딜 수 없을 만큼. 
 
공원을 이리저리 헤매면서 
발바닥 아플 때까지 걸어요. 
 
소용없어요. 
사라지지 않아요. 
고통스러운 생각이. 
 
보세요. 
나는 경지에 오른 사람이 아니에요. 
당신처럼 고통받아요.  
 
내 상처도 끔찍한데 
무슨 자격으로 상처에 대해 말할까요. 
 
그러게요. 
나는 과정을 공유하고 싶었어요. 
 
내가 나를 어떻게 돌보고 있는지 
함께 나누고 싶었어요. 
 
끔찍한 소리를 들으면 
나는 따뜻하게 말해요. 
 
그래. 나 잊혀. 
그게 뭐 어때서 그래. 
 
나는 잊혀도 괜찮아. 
내가 바라는 건 딱 하나야. 
 
사람들이 예수님을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상처 입은 한 사람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싶어. 
 
나 그래서 이 길 택한 거야.
후회 없어. 
 
조명이 켜졌어. 
춤을 춰. 
 
조명이 꺼졌어. 
사라져. 
 
그게 다야. 
그 이상은 없어. 
 
나는 잊혀도 괜찮아. 
나는 그분이 잊히는 게 두려워. 
 
그분을 전할 거야. 
일생 동안. 
 
잠시 동안 마음이 편안해져요. 
다음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안타깝게도 
다음 목소리는 1초 뒤에 
다시 들려요. 
 
돌봄은 잠깐이고 
고통은 계속이에요.  
 
그래도 나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끝까지 나를 돌볼 거예요.   
 
수준 높은 삶은 바라지도 않아요. 
망가진 나를 돌볼 뿐이에요. 
 
당신에게 말하고 싶어요.
자신을 돌볼 시간이에요. 
 
그 목소리 사라지지 않아요. 
계속 따라다닐 거예요. 
 
고개 돌리지 말아주세요.  
마주 보고 전해주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그 따뜻한 사랑을. 

나 같은 실수는 하지 마세요

이 사람은 이 말하고 
저 사람은 저 말하고 
갈피를 못 잡겠어요. 
 
무엇이 옳은 선택일까요.  
분명하게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렇군요. 
누구에게 물었나요. 
 
중요한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이요. 
 
뭐라던가요. 
도움 되던가요.  
 
헷갈려요. 
사람마다 
서로 다른 말을 해요. 
 
상처 줘요. 
사랑하는 사람한테 
더 상처받았어요. 
  
당연히 그렇죠. 
비꼬는 말 좀 할게요. 
미안해요. 
 
사람들은 말해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너를 위해 해주는 말이야. 
아니요. 
당신이 답답해서 그렇겠죠.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아니요. 
당신 생각해서 하는 말이죠.  
 
큰 기대 마세요. 
당신은 오래 고민했는데
그 사람은 그 즉시 생각하고 
말하잖아요. 
 
원하는 답을 얻을까요.
그렇지 않아요. 
 
그 사람은 당신보다 
당신을 몰라요.  
 
그럼, 자신을 믿으라는 말인가요?
아니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어요. 
하나님을 믿으세요.  
 
나는 내 선택이 아직도 
올바른 건지 모르겠어요. 
 
나는 믿음으로 이 길을 간다.
아니에요. 아닌 것 같아요. 
 
사람 의지하지 말고 
교회 의지하지 말고 
의연하게 너의 길을 가라. 
그럼, 하나님이 책임지신다. 
 
만약 내가 이 말을 한다면 
나는 망가질 대로 망가진 거죠.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이런 말 하면 안 돼요. 
 
나는 실수했을지도 몰라요. 
어리석은 선택을 한 거죠. 
 
좋은 길 있었어요.
적어도 먹고사는 걱정은 
덜 할 수 있었죠. 
 
그걸 박차고 나오다니 
뭐 그리 대단한 일을 하겠다고. 
 
나 같은 실수는 하지 마세요.
장밋빛 인생 없어요. 
 
아, 빨리 말해주지. 
나 이미 선택했는데. 
 
그래요? 괜찮아요. 
너무 걱정은 마세요. 
 
인생에 답은 없어요. 
하나님께 답이 있어요. 
 
인생에는 수많은 문이 있죠. 
선택의 문. 
 
종류도 다르고 
크기도 다르고 
색깔도 다르죠. 
 
문 하나 잘 열면 
성공할 것 같고 
 
문 하나 잘못 열면 
실패할 것 같죠. 
 
그 문 열어보세요. 
또 문이 있어요. 
 
또 그 문 열어보세요. 
또다시 문이 있어요.
 
열어도 열어도 
끝없이 문이 있다면 
멈춰 서서 생각해봐요, 우리. 
 
어떤 문을 여느냐 
중요하지 않아요. 
 
어떤 마음으로 문을 여느냐.
중요해요. 
 
중간중간 잘못된 문을 열었어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문을 열까 말까 고민하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요. 
 
과감하게 손잡이를 비틀어 열죠. 
결국 목적지에 도착할 테니까. 
 
가끔 예상하지 못한 일도 있죠. 
문 넘어 문이 있을 줄 알았지 
절벽인지는 나도 몰랐거든요. 
 
떨어져 죽는 줄 알고 
울고불고 했는데 
그물도 있고 사다리도 있고
죽지는 않더라고요.   
 
죽으란 법 없어요. 
하나님의 은혜가 있죠. 
 
나는 분명히 실수했어요. 
돌이킬 수 없어요, 이제는. 
 
기분 어떠냐고요?
좋아요. 나쁠 거 없죠. 
 
내가 실수했다고 
내가 실수는 아니잖아요.
 
내 존재가 실수가 아닌데
절망할 필요는 없죠.  
 
내가 실수했을지라도 
내 존재 가치는 변하지 않아요. 
 
편안하게 문을 여세요.
잘못된 문이든 낭떠러지든 
우린 결국 목적지에 도착할 테니까.

그러다 완전히 낚인다

아는 사람들과
낚시를 같이 간 적 있어요.
 
낚시가 처음이라 그런지 반나절 동안
나만 물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았어요.
 
옆에 큰 물고기를 두 마리나 잡은 형이
나한테 계속 말했어요.
 
잡을 수 있을 거야.
곧 잡힐 거야. 파이팅!
 
한 번은 들을만했지요.
계속 들으니까 기분이 나빠요.
 
난 여기 놀러 온 건데.
물고기 잡으러 온 게 아니라.
 
위로한답시고 등을 두드려 줄 때
짜증이 절정에 다다랐어요.
 
아, 이 형 옆에서 안되겠다.
자리를 옮겼죠.
 
누가 얼굴에 침을 뱉는 거예요.
손으로 만져봤더니, 하얀 새 똥이에요.
 
아무리 얼굴이 커도 그렇지,
이렇게 넓은 바다에서 얼굴에 새 똥이라니.
 
끼륵끼륵 갈매기 새끼들도
나를 조롱하는구나.
 
하루 종일 한 마리도 못 잡고
집으로 돌아왔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요.
나는 낚으러 갔다가 완전히 낚였어요.
 
편안하게 시작한 일
주위 시선이 부담이죠.
 
내가 좋아서 한 건데
다른 사람 좋은 대로 하고 있죠.
 
이리저리해보다가
더러워서 못 해먹겠다고 때려치웁니다.
 
나처럼 낚인 거예요.
절대로 못 낚습니다.
 
나는 말하고 싶어요.
아주 차분하게.
 
못 낚으면 어때요, 뭐.
못 낚으면 못 낚은 거죠.
 
마음 편히 먹고 바다 한 번 보세요.
낚싯대만 보지 마시고.
 
파도 소리, 새소리.
저 멀리 수평선, 마음에 담아보세요.
 
우리 여기 쉬러 온 거예요.
뭐 하나 낚으러 온 게 아니라.
 
누가 그랬죠.
인생은 잠시 잠깐이다.
 
하루가 천 년이고
천 년이 하루다.
 
바다를 누가 만들었는지 안다면
낚이지 않을 수 있어요.
 
낚이지 않고
낙낙(樂樂) 하게 되죠.
 
드리워진 낚싯대에 존재를 걸지 말고
드넓은 바다를 보며 꿈을 꾸세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그분의 영광이 온 세상에 가득하기를.
 

*희희낙락(喜喜樂樂): 매우 기뻐하고 즐거워함

내가 항상 이렇지 뭐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면
무심코 말해 버립니다.
 
내가 항상 이렇지 뭐.
언제나 그랬어.
 
실수를 일반화해버리면
인생에 꼬리표가 붙습니다.
 
실패한 인생.
 
그렇게 성급하게 결론 내리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요.
 
질문 하나 해보겠습니다.
 
증거 있나요?
당신이 실패했다는 증거 말입니다.
 
아마 당신은 당황해서
같은 말을 반복할 겁니다.
 
실패했으니까 실패한 거지,
무슨 증거가 필요해?
 
아니에요.
조금 더 생각해보세요.
 
당신이 실패했다고 말하기에는
구체적인 증거가 모자랍니다.
 
감정이 앞서고 있어요.
 
감정에 근거해서
실패했다고 말하는 겁니다.
 
감정은 증거가 아니죠.
 
증거를 가져오세요.
명확하고 구체적인 증거 말입니다.
 
증거가 충분하면
내가 결론 내려드릴게요.
 
당신은 실패했다고.
 
아쉽게도 나는 증거가 충분한 사람을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어요.
 
한 사람이 기억납니다.
그녀는 말했어요.
 
나는 나쁜 엄마입니다.
내 딸이 나처럼 살면 안 돼요.
 
아, 그렇군요.
당신이 나쁜 엄마라는 거죠?
증거 있나요?
 
네?
 
증거 있냐고요?
 
증거라니요?
 
증거가 있어야죠.
결론을 내린 근거 말입니다.
 
없어요.
 
그래요?
 
하지만, 난 알아요.
내가 나쁜 엄마라는 걸.
 
나는 모르겠는데요.
증거를 제시해주세요.
 
침묵.
 
성급하게 결론 내리면
당신은 파괴됩니다.
 
판단을 미루세요.
성급할 필요 전혀 없습니다.
 
정 불안하면 증거를 모아
그분에게 가져가세요.
 
그분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없이 당신을 안아줍니다.
 
토닥토닥.
 
수신호와 함께
따뜻한 바람이 붑니다.
 
당신이 가져온 증거 뭉치는
바람에 날려 사라집니다.
 
바람에 몸을 실은 당신은
깃털처럼 가볍게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성급해서 좋을 것은 딱 하나,
그분을 찾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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