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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는 숨을 곳을 찾는다

“목사님, 그런 식으로 하시면, 당회가 무슨 필요가 있습니다. 절차를 밟아서 일을 진행하세요. 주변 사람들 의견도 경청하시고요. 참다 참다 말씀드리는 겁니다.” 
 
최도훈 장로가 얼굴이 시뻘게 지도록 목소리를 높였다. 옆에 앉은 동갑내기 장로가 최도훈 장로의 팔을 붙잡고 진정하라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김호열 목사는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를 어쩌나 하는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장로님, 죄송합니다. 제가 장로님을 불편하게 한 것 같습니다.  진정하시고, 차분하게 대화를 해보는 게 어떨까요?”
 
최도훈 장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기세등등하게 말했다. 
 
“그딴 식으로 목회하지 마세요.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최도훈 장로의 협박스러운 말투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참다못했는지, 나이 많은 장로가 최도훈 장로에게 말했다. 
 
“이봐, 최 장로. 너무 나갔어. 그렇게 감정이 앞서면 옳은 말도 틀린 말로 들리는 거야. 일단, 자리에 앉게. 대화로 해결해야지, 이 사람아.” 
 
그리고, 나이 많은 장로는 목사님을 바라보며 말했다. 
 
“목사님, 아무래도 회의를 일찍 마쳐야 할 것 같습니다. 너무 심려 마시고, 다음 주에 만나 뵈시죠.” 
 
김호열 목사는 고개를 끄떡일 뿐이었다. 달리 다른 방도가 없었다. 
 
다른 장로들 역시 나이 많은 장로의 지혜로운 처사에 안심하는 표정이었다. 
 
최도훈 장로만 예외였다. 나이 많은 장로에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장로님, 그런 식으로 좋은 게 좋다고 하니까, 목사님이 당회를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하는 겁니다. 나는 용납 못해요. 끝장을 볼 겁니다.” 
 
최도훈 장로는 화가 풀리지 않는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문이 부서져라 힘껏 닫았다. 쾅 하는 소리를 끝으로, 당회실은 적막해졌다. 다들 심각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킬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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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표정이 왜 그래? 오늘 교회에서 무슨 일 있었어?”
 
얼굴이 시커멓게 변해서 들어온 최도훈 장로에게 그의 아내가 물었다. 그는 아무 말도 없이 소파에 앉아 TV를 켰다. 
 
아내는 하던 일을 멈추고, 남편에게 다가왔다. 
 
“여보, 무슨 말 좀 해봐. 왜 그래 도대체?” 
 
남편이 말없이 TV만 응시하자, 아내는 뭔가를 눈치챘다는 듯 말했다. 
 
“오늘 당회하고 왔구나. 또 목사님한테 험한 말 했지? 이제 그만해, 여보. 당신 그거 완전히 오해라니까. 다른 사람들은 괜찮다는데, 왜 당신만 그렇게 핏대를 세우고 반대를 해?”
 
아내의 말은 그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었다. 그는 손에 쥐고 있던 리모컨을 바닥에 내던지며 소리쳤다.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는 거야? 그 쓰레기 같은 목사가 위선을 떨면서 앉아 있는 거 안 보여? 목사가 되기 전에, 사람이 돼야지. 기본적인 인성도 안 된 사람이 무슨 목사야? 두고 봐. 내가 그 자식을 가만히 두나. 끝까지 물고 늘어질 거야, 알겠어? ” 
 
그의 아내는 발을 동동 구르며, 울기 시작했다. 
 
“여보! 당신 완전히 오해라니까. 계속 왜 그래. 당신 그날 말하는 거지? 목사님 우리 집에 심방 오신 날? 그거 아니라고 내가 몇 번을 말해. 당신 정말 오해하는 거라고!” 
 
그는 아내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어떻게 그딴 짓을 당하고도, 그놈을 감싸고돌아? 내 편을 안 들고, 어떻게 그놈 편을 드냐고!” 
 
그의 아내는 포기한 듯,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흐느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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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도훈은 젊은 시절, 의류 유통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세상 무서운 게 없었다. 아내가 아무리 교회에 가자고 해도, 들은 체도 안 했다. 
 
그러다, IMF를 만났다. 돈과 사람,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었다. 살던 집에 빨간 색 딱지가 덕지덕지 붙었다. 옷 가지 몇 개를 챙겨 나온 게 전부였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장모님이 당분간 시골에 내려와 지내라고  설득했다. 괜찮다고 여러 번 말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모텔, 여관방을 전전하다가 시골로 내려갔다. 
 
장모님이 살던 시골집은 최도훈의 가족이 함께 살기에는 비좁았다. 마당 한 귀퉁이에 컨테이너 박스를 가져다 놓고, 온 가족이 그 안에서 생활을 했다. 가까이 지내던, 이웃이 딱한 사정을 듣고, 컨테이너를 잠시나마 빌려준 것이다.  
 
시골에 내려온 그날부터, 그의 아내는 새벽마다 교회에 가기 시작했다. 밤새 한숨도 잘 수 없었던 최도훈은 아내의 인기척을 느꼈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말없이 아내를 따라나섰다. 어두운 밤길을 혼자 걷게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시골 교회 새벽 예배의 풍경은 가관이었다. 피곤에 쩔은 목사가 대충 설교를 하는데, 앉아서 듣는 사람이라고는 머리가 새하얀 노인  세 사람뿐이었다. 그중 한 사람은  장모님이었다. 어이가 없었는지, 최도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 
 
목사의 설교가 끝나고 교회 안이 어두워지자 아내가 소리 없이 울었다. 그의 마음이 뭉클했다. 아내가 기도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내는 남편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돈을 실컷 벌어다 줄 때는, 아내가 마음 편히 사니까 교회 나가서 교양이나 떠는 줄 알았다. 사업이 망한 후에도 한결같이 신앙생활을 지속하는 아내에게 숙연한 감정을 느꼈다.
 
사업할 때는, 사업으로 바쁘다고 아내를 돌봐주지 못했다. 사업을 하지 않는 지금은, 그야말로 돈이 없어서 아내를 돌봐주지 못한다. 아내에게 미안할 뿐이었다. 
 
아내가 진심을 다해, 기도하는 소리를 듣게 되자, 그의 눈이 촉촉해졌다. 어딘가, 신이 존재한다면, 바지 가랑이라도 붙잡고 매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그의 마음이 열렸다. 처음에는 새벽어둠 속에 자신을 숨기고 민망한 듯 교회에 나갔지만, 이내 조금씩 용기가 났다. 밝은 낮에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교회에 나간 것이다. 
 
모든 것이 어색했지만, 마음을 활짝 열고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몸과 마음이 새롭게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의 인생을 새롭게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최도훈은 농사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지만, 유통에 밝았다. 인터넷이 활성화되던 시기를 기회로 잡고, 직접 재배한 농작물을 고객에게 직접 유통했다. 수익은 고스란히 사업의 규모를 키우는데 투자했다. 땅을 사고, 재배량을 늘리는 일에 집중했다. 
 
그러다, 뉴스에서 신도시 계획을 듣게 되었다. 소파에 앉아 뉴스를 보고 있던 그는, 아내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가 사 모은 땅은  기하급수적으로 가격이 올랐고, 땅을 매각해서 큰돈을 벌었다. 
 
상가 건물 몇 채를 사들였다. 임대료 수익으로 먹고 살 수 있게 되자, 제법 시간이 많아졌다. 자연스럽게 교회 이곳저곳에서 봉사할 일이 늘어났다. 그는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었다.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싶었다. 
 
사람들도 그의 진심을 알았는지, 그는 어느덧 장로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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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사업이 번창하듯, 교회 역시 성장했다. 신도시가 조성되고 사람들이 몰려들자, 교회는 두 번에 걸쳐 넓고 좋은 곳으로 이사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김호열 목사는 예배시간에 중대한 발표를 하겠다는 말로 입을 열었다. 기도 중에, 교회 건축을 하라는 응답을 받았다고 했다. 성도들은 비좁고 불편한 상가 건물이 불편했던 터라, 담임 목사의 기도 응답에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최도훈 장로는 심기가 불편했다. 다른 장로들의 얼굴을 힐끔 쳐다봤다. 표정을 제대로 읽어낼 수 없었다. 표정이 모두 제각각이었다. 
 
김호열 목사는 예배를 마치고, 당회를 열었다. 당회에서 겸손한 태도로 장로들에게 사과의 말을 먼저 덧붙였다. 장로님들과 먼저 상의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이었다. 
 
그러고 나서, 나름의 논리로 장로들을 설득했다. 높아지는 임대료와 몰려드는 사람들을 계산했을 때, 땅값이 더 오르기 전에 서둘러 교회를 짓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논리였다. 
 
가만히 목사의 말을 경청하던 장로들 사이에 냉랭한 기운이 돌았다. 이치에 맞는 말이었지만, 손뼉을 치면서까지 동의할 내용은 아니었던 것이다. 
 
최도훈 장로는 참았던 말을 하고 말았다. 
 
“목사님, 땅값이 오르기 전에 교회를 서둘러 지어야 한다는 말이 성경 어디에 나옵니까?” 
 
예상치 못한 질문에, 김호열 목사는 당황했다. 그리고, 어색하게 웃으며 답변했다. 
 
“장로님, 성경에 그런 말은 안 나옵니다. 지혜로운 선택을 내리자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지 않았습니까? 성경을 잘 풀고 해석해서 지혜로운 선택을 내려야지요.” 
 
최도훈 장로는 물러서지 않았다. 목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곧바로 되물었다. 
 
“성경 어느 구절을 해석하면, 그런 지혜가 나옵니까?”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김호열 목사는 한 걸음 물러섰다. 
 
“아이고, 장로님. 제가 장로님 심기를 불편하게 했나 봅니다. 제가 죄송합니다.” 
 
최도훈 장로는 다른 장로들을 둘러보며,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장로님들, 어떻게 이런 말을 듣고 가만히 계십니까? 땅값 오르기 전에 땅을 사서 교회를 짓자는 게 말이 됩니까? 이게 땅 투기하는 사람이 하는 말이지, 목사님이 하실 말씀이냐고요?” 
 
김호열 목사의 이마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수습해야 했다. 이대로 당회를 마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차분한 어조로 애써 태연하게 말했다. 
 
“제 말에 오해가 있으신 것 같아요. 제가 조금 더 설명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교회 건축, 안 해도 됩니다. 불편해도 그냥 참고 지내면 되는 거예요. 
 
하지만, 다음 세대는 어떻게 합니까. 아이들이 예배드리는 곳을 한 번 둘러보세요. 아주 난리예요. 교회마다 아이들이 없어서 고민인데, 우리는 아이들이 너무 많이 와서 걱정입니다. 
 
기도할 때마다 아이들이 생각납니다. 아이들이 마음 편하게 예배드리는 장면을 생각할 때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요. 
 
그래서, 어려운 말씀드린 겁니다. 교회 건축 안 해도 되니까, 제발 노여움 푸세요.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김호열 목사의 말을 듣고, 다른 장로들은 공감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장면을 본 최도훈 장로는 미칠 지경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목사의 멱살이라도 움켜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야, 이 가식적인 놈아. 말만 그럴듯하지. 나는 네놈의 실체를 다 알고 있어. 이 쓰레기 같은 놈아.” 
 
마음속으로 그렇게 말했지만, 최도훈 장로는 그런 말을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오랜 시간, 가슴에 담아둔 말이었다. 세상 그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이었다. 
 
아무리 세월이 흘렀어도, 그는 잊지 못했다. 김호열 목사가 자신의 눈앞에서 저지른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집사님, 저와 같이 심방을 가셔야 할 것 같아요.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으신가요?” 
 
같은 마을 김 씨가 교회에 등록했다. 서울에서 반듯하게 살다가,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 시골에 내려온 것이다. 김 씨가 시골에 내려온다는 소식을 온 마을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 김 씨는 도시로 유학을 떠났다. 혼자 공부해서 어렵다는 사관학교에 들어갔다. 별을 달고 예편해서 군수물품을 제조하는 중소기업의 임원이라고 했다.   
 
김 씨는 2층짜리 전원주택이 완공된 다음에 심방을 받고 싶다고 했다. 목사님을 누추한 곳에 모실 수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김호열 목사는 남자 성도가 귀한 마당에, 외지에서 내려와 시골에서 잘 정착한 최도훈이 김 씨에게 좋은 말벗이 되어줄 것이라 했다.  
 
김호열 목사가 최도훈에게 김 씨의 집에 함께 심방을 가자고 제안한 이유였다. 
최도훈은 목사의 말을 따를 생각이 없었다. 며칠 전, 길에서 김 씨를 만나지 않았다면, 절대로 목사와 마주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이, 자네. 목사님 심방 오실 때, 같이 올 거지? 내가 귀한 음식 차릴 거니까, 자네도 꼭 와. 절대 후회 안 할 거라고.” 
 
최도훈은 마지못해 알겠다고 말했다. 심방 당일, 김호열 목사와 심방 전도사, 그리고 최도훈 장로와 그의 아내가 김 씨의 집을 방문했다. 
 
간단히 예배를 드리고, 음식을 대접받았다. 김 씨의 말은 허세가 아니었다. 잔치라도 벌어진 듯, 온갖 음식이 나왔다. 김 씨는 목사님에게 말했다. 
 
“목사님, 이것 좀 드셔보세요. 이게 뭐냐면요. 과메기라는 거예요. 제 친구가 포항에 사는데, 이게 딱 한 철에만 나오는 거라, 그 동네 사람에게도 귀한 음식이라고 하네요. 철마다 친구가 보내주는데, 저는 이거 먹는 게 한 해의 낙이랍니다.” 
 
김호열 목사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그래요?”라고 물었다. 들뜬 얼굴로 과메기를 미역에 싸더니, 초장에 찍어 입에 넣었다. 그리고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다른 사람들이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특히, 김 씨가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그러나, 최도훈은 웃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김 씨는 집안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호열 목사는 “그럼, 그럴까요?”라는 말과 함께 심방 전도사에게 눈빛을 보냈다. 심방 전도사는 전화기를 들고, 거실 구석으로 가더니, 다음 심방을 뒤로 미루는 듯 보였다. 서로 이야기가 잘 되었는지, 밝은 표정으로 김호열 목사에게 “편안히 보셔도 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김 씨의 안내로 집안 구석구석을 들여다봤다. 그러다, 2층 서재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김 씨가 만년필을 수집하는지, 유리로 된 장식장에 다양한 만년필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서글서글 대충대충 보이던, 김 씨의 이미지가 한순간에 바뀌던 순간이었다. 
 
함께 서 있던 모든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만년필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때, 김 씨가 입을 열었다. 
 
“목사님, 관심 가는 물건 있으시면, 하나 골라보세요. 다 제 자식 같은 놈들이지만, 목사님께 하나 드리려고 생각해서 오늘 오시라고 했습니다. 걱정 마시고, 하나 골라보세요.”
 
김호열 목사는 거듭 사양했지만, 김 씨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만년필 하나를 집어 들었다. 김 씨는 그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봤다. 
 
김호열 목사가 차에 올라타서, 김 씨의 집을 떠나려고 하자, 김 씨는 농담처럼 목사에게 말했다. 
 
“목사님, 역시 보는 눈이 있으세요. 지금 타고 가시는 자동차보다 비싼 녀석을 주머니에 넣고 가시는 거예요. 오래오래 간직해주세요.” 
 
김호열 목사는 어쩔 줄 몰라 하며, 감사하는 말을 두세 번 내뱉었다. 김호열 목사가 돌아간 뒤, 최도훈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세 시간이 넘도록 김 씨에 집에 머문 것이다. 최도훈은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실룩거리며 말했다. 
 
“쓰레기 같은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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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도훈이 아내를 따라, 교회를 나간지 얼마 되지 않아, 목사님이 심방을 오신다고 했다. 최도훈은 컨테이너 박스에서 누추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아내는 남편을 여러 번 설득했다. 
 
“여보, 목사님이 무슨 성도들이 얼마나 잘 먹고 사나 보시는 줄 알아? 그런 거 아니야. 편안하게 생각해.” 
 
최도훈은 마지못해 심방을 받기로 했다. 
 
막상 심방을 받게 되자, 목사님이 방문하기 며칠 전부터 이상하게 마음이 설레었다. 
 
최도훈의 마음이 힘들 때마다, 어떻게 알았는지 그에 딱 맞는 설교 말씀을 해주시는 목사님에게 고마웠다. 교회에서 데면데면 할 때는 민망해서 표현을 못 했지만, 심방을 받을 때는 제대로 감사하다는 말을 할 작정이었다.  
 
없는 돈에, 나름대로 저녁 상을 차리고 목사님을 기다렸다. 시간에 맞춰, 김호열 목사가 나타났다. 
 
컨테이너 박스에 들어선 김호열 목사는 안을 들여다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컨테이너 박스도 잘 꾸미니까 그럴 듯하군요.” 
 
무슨 의도였는지는 모르지만, 단 번에 최도훈의 기분이 상했다. 그의 아내는 속도 없는지, 다정한 말투로 목사에게 말했다. 
 
“옆집에서 쓰던 거 잠시 빌려주셨어요. 이렇게라도 살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죠. 하나님 은혜에요, 목사님” 
 
김호열 목사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두 분 고생하시는 거 하나님이 아십니다. 그렇게 좋은 마음 가지고 계신데, 하나님께서 좋은 집으로 인도해주실 거예요.” 
 
아내는 손뼉을 치며, 아멘이라고 말했다. 최도훈은 이게 뭔가 싶었다.  
 
김호열 목사는 성경을 펴고, 말씀을 한 줄 읽었다. 그리고는, 잠시 동안 설교했다. 그리고는, 시계를 들여다보더니, “아이고, 죄송합니다. 다음 심방이 있어, 이만 일어나 봐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아내가 최도훈의 옆구리를 꾹 찔렀다. 아내 눈치를 살피던, 최도훈은 어색하게 웃으며 김호열 목사에게 말했다. 
 
“목사님, 저녁 식사라도 하고 가시죠? 차린 건 별로 없지만, 목사님 오신다고 식사를 준비했어요. 금방  차릴테니까, 5분만 드시고 가세요.”
 
김호열 목사는 정중히 말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오늘 무리하게 일정을 잡았나 봐요. 시간이 조금씩 뒤로 밀려서, 이렇게 됐습니다. 이해 부탁드리겠습니다, 형제님.”
 
아쉬운 마음에 최도훈은 “설교 참 감사합니다. 많이 위로받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김호열 목사는, “제가 감사하지요.”라는 말과 함께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김호열 목사가 최도훈의 집에 도착해 차를 타고 떠나기까지 십오 분이 걸렸다. 교회의 모든 것이 낯설었던 최도훈은 아내에게 물었다. 
 
“여보, 목사님이 시간이 철저하신 분인가 봐. 15분 단위로 사람을 만나네. 나는 사업할 때, 저런 식으로 안 했는데. 사람들이 좋아할까? 나는 기분이 별로야.” 
 
아내는 남편을 꾸짖듯이 말했다. 
 
“당신이 몰라서 그래. 목사님들이 얼마나 바쁘신데. 휴일도 없이 저렇게 일하시는 거야. 당신이 옆에서 많이 도와드려.” 
 
최도훈은 끝내 시계를 들여다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원래 저런 거야, 아니면 나를 무시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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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도훈은 손목시계를 만지작거리며, 나에게 말했다.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시간이 흐르니까, 말도 안 되는 일을 당한 거예요. 앞뒤를 맞춰보니까, 완전히 무시를 당한 거죠. 
 
그 목사는 내 사업이 성공할지 몰랐을 거예요.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관심도 없었겠죠. 
 
그날 컨테이너 박스에서 가난하게 사는 나를 보면서,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겠죠. 별 볼 일 없는 내가 장로까지 되었으니 얼마나 당황스러울까요.
 
표현은 못 해도 아마 속으로 미칠 지경이겠죠. 장로가 항존직이라고 그랬나요? 한 번 직분을 받으면, 죽을 때까지 유효하다면서요? 어디 보세요. 내가 끝까지 괴롭혀 줄 거니까.”  
 
그는 화가 나서, 주먹을 움켜쥐며 말했다. 그 손으로 테이블이라도 내리칠 것만 같았다. 
 
그가 꽉 움켜쥔 손에 무엇을 숨겼는지 궁금했다. 그는 스스로 손을 펴지 못했다. 움켜쥐는 것으로 근육이 적응했을 것이다. 상처는 언제나 숨을 곳을 찾는다. 그의 상처는 분노 뒤에 숨었다.  
 

 
“난 고아였어요. 부모님의 얼굴을 알지 못해요. 부모도 없는 게, 싸가지도 없었는지, 12살에 고아원에서 쫓겨났어요. 
 
밤낮으로 나를 괴롭히는 친구가 있었어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그 친구 손등을 망치로 내려쳤거든요. 고아원 원장한테 뺨 한 대 얻어맞고, 그날로 쫓겨났죠. 그 녀석이 원장님 아들이었거든요.  
 
고아원에서 쫓겨나서, 개처럼 살았어요. 구걸도 해보고, 도둑질도 해봤는데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요. 동대문에서 트럭에 옷을 실어주는 일을 했는데, 거기 사장님이 날 좋게 본 거죠. 
 
일을 가르쳐 주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정도 먹고살게 됐고, 아내도 만나고 그랬죠. 
 
사장하고 잘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사장이 날 보는 눈빛이 이상해요. 알고 보니까, 거래처 사람들이 이간질을 하고 있더라고요. 아니, 자기 밑에서 뼈빠지게 일하는 내 말을 안 믿고, 계산기나 두드리는 그런 사람들을 믿는 게 말이 되나요. 기분 더러워서 당장 그만뒀어요. 
 
보란 듯이 성공해서,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마음먹었죠. 더 좋은 조건으로 그 사장의 거래처를 내가 다 빼앗아 왔어요. 거래처 사장들은 내가 잘 데리고 있다가, 물량을 확 끊어버려서 망하게 했고요. 다른 곳에서도 내 눈치 보느라 그쪽에 납품 안 했어요. 나한테 잘못 보이면, 끝장난다는 소문이 업계에 돌았죠. 
 
내가 왜 이런 성격인가 생각을 해봤어요. 연관성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기억이 났으니까 일단 이야기를 해볼게요. 
 
그 고아원 원장 있죠? 아이들 열 명 정도 데리고 있었는데, 완전히 위선 덩어리였어요. 거기 오는 후원자들 중에 잘 사는 사람, 못 사는 사람 있는데, 유독 잘 사는 사람한테 그렇게 잘했어요. 
 
어려운 살림에 쌀 20Kg짜리 하나 어깨에 짊어지고 온 사람이 있었는데, 그 앞에서는 감사하다 뭐다 갖은 말을 다하더니, 그 사람 가니까 표정이 싹 변해요. 
 
“요즘 세상에 누가 쌀을 줘. 돈으로 가져와야지. 이거 몇 푼이나 한다고 생색을 그리 내. 내가 자존심이 상해서, 이 짓도 못해 먹겠다, 진짜.” 
 
돈 많은 집에서 후원하러 오잖아요. 그러면, 신발도 안 신고 마당으로 뛰어나가서 인사를 해요. 그거 보고 있으면, 구토가 나오죠. 나는 그 여자 사람으로 안 봤어요. 
 
그 아들자식은 고아원 애들 후원 들어온 걸로, 아주 호강을 했어요. 어린 제 눈에는 없는 게 없는 걸로 보였으니까요. 그 자식이 심심풀이로 애들 때리고, 괴롭히고 그래도, 아무도 말 못 했죠. 
 
그놈하고 싸움 붙는 놈은, 가차 없이 쫓겨나거든요. 갈 곳 없는 어린애들이 어쩌겠어요. 그냥 참는 거죠. 
 
자고 있는데, 그 자식이 내 발가락에 불침을 놨어요. 발가락 사이에 휴지를 끼워서 불을 붙이면, 화상을 입죠. 여름이었는데, 물집이 잡히고 터지고 곪아서 걷기도 힘들더라고요. 그만두라고 해도, 계속 그 짓을 해요. 발가락이 성할 날이 없었어요. 
 
자다가 느낌이 이상해서 깼는데, 또 그 짓을 하고 있어요.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 되었죠. 당장 죽여버릴 생각으로 망치를 가져왔어요. 차마, 죽일 수는 없어서 손등을 내려친 거죠. 
 
지 자식이 아프다고 울고불고 하니까 원장이 깜짝 놀라 잠에서 깼죠. 지 자식을 끌어안고, 내 뺨을 때리더라고요. 그 새벽에 날 쫓아낸 거죠. 홧김에 불이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다른 애들 때문에 참았죠. 그 아이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어요. 아직도 가끔 그날이 생각나요. 그 쓰레기 같은 원장 얼굴도 떠오르고요.” 
 
그의 말을 듣고, 잠시 동안 내 생각을 전해주었다. 그는 긴 한숨을 쉬더니, 한참을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말했다. 
 
“흥미롭네요. 원장에게 쓰던 쓰레기라는 말을 목사에게 같이 쓰고 있네요. 생각지도 못했거든요.” 
 
그는 여유를 되찾았는지, 미소 띤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에효. 목사도 사람인데, 그럴 수도 있죠. 나도 뭐 사람인데요. 예수님 앞에서 도토리 키재기죠. 사람한테 뭐 기대할 게 있겠어요. 다 부질없는 짓이죠. 이제 교회에서 목사하고 싸움박질하는 것도 지쳤어요. 때가 되면 떠나야죠. 
 
소박한 꿈이 하나 있거든요. 시골 마을에 조용하고 따뜻한 고아원 하나 짓는 거예요. 사실, 아내와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나처럼 부모 없는 아이들, 갈 곳 없는 아이들, 상처받지 않도록 잘 키워내고 싶어요. 
 
그렇게 하려면, 제 상처부터 먼저 치유해야겠지요?”
 
최도훈은 그의 꿈을 말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의 머리카락에 하얀 새치가 드문드문 보였지만, 내 눈에는 그가 12살 꼬마로 보였다. 그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살며시 잡아주었다. 그는 아주 잠시 동안 나를 끌어안고, 아이처럼 울었다.

아이를 지운 건 미안해

“제가 오죽하면 그랬을까요? 남편은 육아와 집안일에 전혀 관심이 없어요. 저 혼자 감당 못하겠다고 여러 번 말했어요. 저도 일해요. 남편보다 돈을 못 버는 것도 아니에요. 첫째를 키우는 일도 벅찬데 남편은 둘째를 낳으라고만 하니 도무지 신뢰를  할 수 없었거든요. 낳지 말자고 남편을 설득하려고 해도, 대화 자체를 거부했어요. 제 마음은 어떻겠어요? 수술실에 누워 남편을 원망했다고요.” 
 
두 달 전, 아내는 남편 동의 없이 아이를 지웠다. 남편은 둘째를 원했지만 아내는 반대했다.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첫 아이가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아내는 홀로 육아를 했다고 생각했다. 똑같이 야근을 해도 아이를 챙기는 일은 그녀 몫이었다. 일과 육아를 동시에 감당하기가 벅찼다. 
 
친청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3년 전부터 함께 살면서 아이를 돌봐주고 있다. 아내는 혹시 임신이라도 될까 싶어 침실에서 신중했다. 극도로 예민해진 상태에서 남편에게 조심하라고 말했다. 
 
남편이 아이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대화는 산으로 갔다. 남편은 아이에 대해, 아내는 역할 분담에 대해 말했다. 보이지 않는 벽이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감기에 걸린 것처럼 몸이 아팠다. 음식을 먹으면 속이 편하지 않았다. 아내는 몰래 임신테스트를 했다. 빨간색 두 줄이 유난히 선명해 보였다. 산부인과에 찾아가 최종확인을 받았다. 일주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남편에게 솔직히 말하기로 했다. 아이를 지우자고. 
 
그러나 남편을 믿을 수 없었다.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그는  육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지만 거짓말이었다. 친정 엄마와 함께 들어와 살면서 그는 더 편해졌다. 뒤로 물러나서 그나마 도와줬던 소소한 일마저 친정 엄마에게 떠넘겼다. 
 
한 번 쓰라린 고통을 맛본 아내는 남편의 달콤한 말을 믿지 않았다. 남편이 꼭 약속을 지킬 테니, 아이를 낳자고 말해도 아내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에게 전화로 최종 통보를 하고 아이를 지웠다. 
 
그날부터 남편은 밖으로 돌기 시작했다. 퇴근 시간이 평소보다 늦어졌고, 술에 취해 들어오는 날이 늘었다. 아내는 미안한 마음, 원망스런 마음이 뒤섞여 그에게 뭐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시간을 주고 싶었다. 그도 마음이 아플 테니까. 
 
그러나 상황을 알지 못하는 친정 엄마는 남편에게 쉬지 않고 잔소리를 퍼부었다. 딸이 일과 육아로 힘들다고 해서 발 벗고 나섰건만 사위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것도 모자라 하루가 멀다 하고 술에 취해 들어오니 속 터지는 일이었다. 
 
그녀가 엄마네게 적당히 하라고 부탁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솔직히 말할 수도 없었다. 비난의 화살이 자신에게 돌아올 테니까. 노인들은 아이를 지우면 천벌이라도 받는 줄 아니까. 
 
남편에게 수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어느 날부터 집에서 샤워를 하지 않았다. 쉬는 날에도 저녁 식사를 하기 전에는 샤워를 하는 깔끔한 남자였다. 왜 씻지 않느냐고 물으면 “피곤해서…”라고 짧게 대답했다. 
 
불안한 아내는 남편의 뒤를 밟았다. 그는 붉은 조명 아래 여성들이 반나체로 서 있는 골목을 서성거렸다. 아내의 두 다리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아이를 죽인 대가로 벌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남편에게 아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말없이 서로 같은 공간을 거닐 뿐이었다. 소리 없이 걸었지만 아팠다. 깨진 유리 조각 위를 맨발로 걷는 것처럼. 
 
“어떻게 아내가 제 동의 없이 아이를 지울 수 있나요? 이건 말이 안 돼요. 너무 상처가 커서 말로 표현을 못하겠어요.”
 
그는 엄마 역할이 힘들다고 아이를 죽일 생각을 하는 아내에게 정이 떨어졌다. 육아를 충분히 돕지 못했고, 살림을 아내에게만 떠넘겼다. 그러나 그의 부족함이 아내가 저지르고자 하는 일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내를 말렸다. 울면서 제발 그러지 말라고 부탁까지 했다. 그녀는 흔들리지 않았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짧고 냉담했다. 
 
“나 병원이야.” 
 
더 이상 회사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조퇴하고 회사 옆 산책로를 따라 한강까지 갔다. 걷고 또 걸었다. 걷다 치쳐 인도에 걸터앉았다.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그대로 집에 들어갈 자신이 없어 술을 마셨다. 곤드레만드레 비틀거리며 술집을 나왔다. 
 
붉은 불빛 가득한 거리가 나타났다. 붉은 불빛은 낯설었지만, 자극적이지 않았다. 그는 환상을 보았다. 상점 안에 있어야 할 마네킹들이 유리창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에게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걸기도 했다. 그는 다시 한 번 도망쳐야 했다. 그에게 달려드는 마네킹으로부터. 
 
정신을 차려보니 경찰서였다. 술에 취해서 길에서 잠이 들은 것 같았다. 아침에 집에 들어서자 현관문을 닫기도 전에 장모님이 달려들어 그의 등짝을 후려쳤다. 
 
“자네 지금 제 정신이야? 어디 가서 뭐하다 지금 들어왔어? 당장 말해!” 
 
신발을 벗는 동안 생각했다. 
 
‘뭐라고 말할까?’ 
 
아내가 그의 얼굴은 보지도 않은 채, 아들의 옷을 입혀주면서 말했다.  
 
“엄마, 지금 뭐하는 거야, 내버려둬요!” 
 
남편은 생각했다.
 
‘아내에게 고마워해야할까? 아니면, 내 집 같지 않은 이곳에서 뒤돌아 나가야 할까?’ 
 
남편은 집이 더 이상 편하지 않다. 계속 장모님과 아내를 볼 생각을 하니 끔직했다. 그들의 눈빛이 싫었다. 방문이 열렸다. 아들이 아빠 품으로 달려왔다. 아들이 억지로 손을 잡아끄는 바람에 거실로 나왔다. 그는 소파에 앉아 TV를 켜놓고 눈물 없이, 소리 없이 울었다.    
 
***
 
 
깨어진 부부는 힘겨루기를 한다. 힘의 균형이 동등하지 않다. 둘 중 한 사람이 주도권을 쥔다. 다른 한 쪽은 더 많이 양보하고, 희생한다. 주도권을 쥔 사람은 모른다. 주도권을 잃은 사람이 겪는 고통에 대해. 승자가 결정되지 않는 경우, 힘겨루기는 치열하다. 승자가 결정되기까지 힘겨루기는 계속된다. 서로 주도권을 쥐려 한다. 
 
두 사람은 전쟁 중이다. 양보 없이 서로가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상대를 제압하려한다. 남편은 아내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집안일을 도우라고 말한다. 해결은 간단하다. 아내는 아이를 낳고, 남편은 집안일을 도와주면 된다. 그러나 둘은 힘겨루기에 정신이 팔려 간단한 해결책을 버렸다. 그 대가는 혹독하다.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한 소중한 생명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아내의 단정적인 사고와 빠른 결론과 결정은 남편 자격, 아버지 자격을 박탈시켰다. 가정 안에 남편을 위한 자리는 없어 보인다. 아내는 주관적인 결론을 먼저 내리고, 그에 맞춰 선별적으로 정보를 선택한다. 이것이 파괴적인 패턴으로 이어진다. 결론이 내려지면 새로운 정보는 힘을 잃는다. 결론과 맞지 않는 정보는 쓰레기통으로 직행이다. 
 
아내는 남편에 대해 결론을 내렸다. “육아와 살림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고. 잘못된 정의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남편은 “내가 원하는 만큼 도와주지 않는 사람”이다. 원하는 것에 대해 서로 대화해야 하는데, 아내는 친정 엄마를 데려왔다. 남편에게 더 이상 기회가 없다는 뜻이다. 결론이 빠르니 결정도 빠르다.  
 
또한 아내가 남편의 뒤를 발고 내린 결론도 성급했다. 그는 “가지 말아야 할 곳에 간 사람,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남편은 그 거리를 걸은 것은 맞지만 그 장소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는 술에 취해 전날 있었던 일에 대해 기억하지 못한다. 비난받을 수 있다. 그러나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 비난받을 수는 없다. 그는 성매매를 하지 않았다.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부부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배우자가 원하는 대로 해줬으면 하는 바람은 의무와 강요로 변질된다. 의무를 앞세워 강요하면 배우자는 멀리 도망간다. 
 
“내 남편/아내는 ~한 사람이어야 한다. 내 남편/아내는 ~해야만 한다.”
 
배우자를 숨 막히게 한다. 직접 문장으로 말하지 않아도 상대는 안다. 원하는 바를 완전히 만족시킬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그래도 이 정도는 해야지…’라고 생각한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남편은 문제에 직면하지 않고 회피했다. 출산은 두 사람 사이에 매우 중요한 문제인데도 남편은 소극적이었다. 대화를 끝까지 하지 않고, 중간에 물러났다.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대로 아이를 낳는다면 그에 대한 책임이 따른다. 그에 대한 논의를 충분히 했어야 했다. 아이를 낳느냐 마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출산 이후다. 아이 존재에 대한 말싸움을 하다가 남편은 아내에게 신뢰를 잃었다.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그러나 물러서지 말아야 한다. 자신 안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 배우자에게 솔직하게 말하면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다. 그러나 숨기거나 왜곡시켜 표출하면 관계가 어려워진다. 
 
남편은 숨기는 방식에 익숙하다. 술에 취해 잊으려고 했다. 그의 회피가 더 많은 오해와 갈등을 일으켰다. 회피하면 문제는 커진다.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계속된다. 멈추고 직면해야 한다. 솔직한 내면을 표현해야 한다. 배우자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그 다음 문제이다. 
 
배우자가 공감한다면 이해받는 것이다. 거절하면 서로의 차이를 발견하고 인정하면 된다. 불편해도 멈추지 않고 자신을 표현해야 건강한 관계로 나아갈 수 있다. 그것은 아무도 대신 해줄 수 없다. 
 
장모님의 존재는 남편에게 혜택이자 손실이다. 육아와 살림에 대한 책임에 대해서는 혜택이비만 그의 존재감에 대해서는 손실이다.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자녀, 모두 각자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 
 
장모님의 존재로 인해 빼앗긴 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육아와 살림에 대한 막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 남편은 편안함과 불편함의 미묘한 경계에서 혼란스럽다. 주어진 환경에 몸을 맡기고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가정을 온전히 책임질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고통이 따르지만 마땅히 짊어져야 하는 짐이다. 기꺼이 자신이 짊어져야 할 짐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긴 시간들에 대해 후회하는 것이 맞다. 책임지는 사람만이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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