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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참음에 관하여

“미워하는 사람이 있어요. 
참아야지, 받아줘야지
다짐하지만 하루를 못 가요.
 
성경에서 
오래 참으라고 하잖아요. 
나도 오래 참고 싶어요. 
 
하루도 못 참고 
다시 미워하는 
나 자신이 실망스러워요.” 
 
도를 닦듯이 
오래 참으려고 노력한다면  
하루가 아니라 잠시도 못 버텨요. 
 
오래 참으라는 말, 
다른 종교에서도 가르쳐요. 
착하게 살면서 참으라고 말하죠. 
 
복음과 종교
무엇이 다를까요?
맞아요, 은혜에요. 
 
오래 참음은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은혜의 결과에요.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하려고 애쓴다고 
사랑할 수 없어요. 
 
잠시 잠깐 마주치기만 해도 
화가 나는데 어떻게 해요. 
 
그 사람은 내가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도 몰라요. 
 
매일 똑같은 방식으로
기분 나쁘게 말하는데   
어떻게 견디겠어요. 
 
하루하루 은혜받고 
은혜받은 만큼 받아주는 거예요. 
 
성격 같았으면 
소리 지르면서 싸울 일
따뜻하게 말하고
지나가는 거죠.  
 
은혜가 마르면 싸우고
은혜가 넘치면 받아주는 거예요. 
 
무작정 희생하고 
참으라는 말은 아니에요. 
 
은혜받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세요. 
 
은혜받은 사람의 말은 
따뜻해서 잘 들리거든요. 
 
미운 감정으로 
내던진 말에는 
가시가 돋쳐 있어요.
 
따가워서 
받아낼 수 없어요.
냅다 받아치죠. 
 
진심이 담긴 말은 
매끄럽고 푹신해요. 
 
엉겁결에 받아들고 
한참을 품고 있어요. 
 
안 듣는 것 같아도 
두고두고 생각하거든요.  
 
잘 지내다 
또 폭발하면요?
 
괜찮아요. 
과정이에요. 
 
내일 아침 은혜받고 
다시 시작하시면 돼요. 
 
은혜받으면서 
하루하루 살았는데 
지나보면 오래 참은 거예요.
 
넘어지고 쓰려져도 
포기하지 않았잖아요. 
 
지나온 모든 날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해요. 
 
오래 참으려고 애쓰지 말고 
은혜받으려고 애쓰세요. 
 
하나님은 
오래 참은 당신보다 
지금 이 순간의 당신을 
사랑하시니까요. 

조금만 쉬고 싶어요

교회는 언제나 바빠요. 
봉사하는 사람이 부족해요. 
 
주보에 사람 구하는 광고가 
매주 빠지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헌신된 사람은 
목사만큼 바빠져요. 
 
주일에 봉사하다가   
목사보다 늦게 집에 가는 
사람도 있어요.   
 
이게 맞나. 
그만할까. 
 
이래저래 생각하다 
받은 은혜가 떠올라요. 
 
감사한 게 더 많으니까 
계속하기로 결심하죠. 
 
잠깐만요.
너무 힘들면 잠깐 쉬어도 돼요. 
 
엥, 정말요?
막상 쉬면 조금 불편해지는데. 
 
알아요.
그래도 힘들면 쉬어야죠.  
 
당장 그만두라는 말이 아니에요. 
억지로 버티지 말라는 말이에요. 
 
교회 일 거절해도 
하나님을 거절하는 건 아니거든요. 
 
교회 일 잘해도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도 아니고요. 
 
사람들이 부탁한 봉사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은  
비슷해 보여도 서로 다른 거예요.   
 
교회 일 하나만 하는 사람 드물어요. 
일단 시작하면 사람들 눈에 띄어서 
여기저기 불려 다녀요. 
 
탈진하는 순간이 와요. 
의지로 버티는 순간이 오죠. 
 
“조금만 쉬고 싶어요.” 
 
그 말 한 마디 못해서 참고 참다가 
조용히 교회를 떠난 사람 많이 봤어요. 
 
하나님께서 얼마나 
마음 아프실까요. 
 
남 이야기만 할 수 있나요. 
나도 고민 많았어요. 
 
내가 목사라서 직업으로  
교회 일을 열심히 하는 건지. 
 
주님을 사랑해서 순종으로 
교회 일을 열심히 하는 건지. 
 
신학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교회 일이 내 직업이 되었으니까요. 
 
내가 아무리 교회 일을 열심히 해도 
사람들은 생각했을 거예요.  
목사니까 그렇지.
 
당연한 거죠. 
내 직업이잖아요. 
 
반대로,
교회 일을 대충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목사가 왜 저래. 
그러지 않았을까요. 
 
분명히 알고 싶다고 
목회를 그만둘 수는 없잖아요. 
그대로 살았죠. 
 
직업인지 봉사인지 
구분되지 않은 채로 
그냥 열심히 했어요. 
 
어쩌다 보니 남들과 
다른 길을 가게 되었어요. 
 
더 이상 교회 일을 안 하니까 
안 보이던 게 보이더라고요. 
 
교회 건물
교회 행정 
교회 사람 
다 교회죠. 
 
평범한 건물이 교회라고 
불리는 이유는 아시죠?  
 
당신이 교회이기 때문이에요. 
자, 그럼 나는 묻고 싶어요.
 
당신을 위한 봉사는 
열심히 하고 있나요. 
 
당신이 예배에 집중하도록 
자신을 잘 돕고 섬기나요.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들려주듯
자신에게 복음을 들려주고 있나요. 
 
그렇다면 다행이에요. 
나는 그러지 못했어요. 
너무 바빠서. 
 
자신을 돌보면서 
교회를 돌봐주세요. 
 
교회를 돌보면서 
자신을 돌봐주세요. 
 
그래야 당신도 살고 
교회도 삽니다. 
 
걱정 마세요.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아, 그리고 하나 더. 
 
마음에 부담이 돼서 
교회 일을 전혀 하지 않는 분에게는 
조심스럽게 부탁드리고 싶어요.  
 
부담되지 않는 
작은 일 하나만 맡아주세요.  
 
고객이 아닌 성도가 될 때 
돌봄을 배울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돌보는 법을 배우면 
자신을 더 잘 돌볼 수 있답니다. 
 
걱정 마세요.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울어도 괜찮아요

슬픈 이야기네요.
마음이 아파요.
 
나는 울고 싶었어요.
당신이 웃는 바람에
나도 따라 웃었죠.
 
어쩌면 그 웃음으로
지금까지 버텨왔겠죠.
 
누가 아나요.
웃음 뒤에 슬픔을.
슬픔 뒤에 절망을.
 
아마 울면 안 됐을 거예요.
당신마저 무너지면 안 됐겠죠.
 
버티고 견디면서
밝은 모습 보여줬을 거예요.
 
같이 있는 당신
혼자 있는 당신
서로 다른 당신.
 
안심하세요.
여기서는 울어도 괜찮아요.
 
울어야만 해요.
그래야 사니까.
 
나 있잖아요.
사람들이 울보래요.
 
설교하다 울고
기도하고 울고
상담하다 우니까.
 
울지 말란 말
많이 들었어요.
 
설교하다 울면 안 돼.
감정에 호소하는 거잖아.
 
기도하다 울면 안 돼.
성도가 걱정해.
 
상담하다 울면 안 돼.
내담자가 의존해.
 
다 맞는 말이에요.
하지만, 안되는걸요.
안되는 걸 어떻게 해요.
 
오히려 나는 내 마음이
메마를까 걱정이에요.
 
내 몸에도 눈물이 있다는 걸 알고
얼마나 기뻤는데요.
 
오랫동안 눈물이 마른 적이 있어요.
그 시기에 자주 들은 말이 있어요.
 
든든하다.
듬직하다.
 
그 말 때문에 더 못 울었어요.
든든한 사람 되고 싶어서.
듬직한 사람 되고 싶어서.
 
눈물을 되찾은 날 행복했어요.
슬플 때 울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눈물이 마르면
난 사람들 곁을 떠날 거예요.
 
사람이 앞에서 우는데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프로는 될 수 있지만
목자는 될 수 없어요.
 
기능할 수 있지만
사랑할 수 없어요.
 
울고 싶으면 우세요.
울어도 괜찮아요.
 
민망하지 않을 거예요.
나도 따라 울 거예요.
 
당신을 치유하는 건
내가 아니니까
울음 참지 않으려고요.
 
나와 당신 사이
그분이 함께 계시죠.
 
울고 나면
당신도 알게 될 거예요.
 
말할 수 없는 평안을.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말씀을 읽어도 은혜가 없네요

말씀을 읽어도 은혜가 없다는
사람을 만납니다.
 
내가 제대로 이해했다면
이런 말이겠지요.
 
예전에는 말씀을 읽을 때
마음이 뜨겁고 감동이 되었는데
요즘에는 뭐가 잘못되었는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가 없어요.
 
은혜가 없으면 조급해집니다.
만회할 방법을 찾습니다.
 
뭔가 잘못되었다.
그러니, 은혜가 없지.
 
불안 요소를 하나둘 제거합니다.
거리끼는 게 없나 계속 살핍니다.
 
그러다 지치면 본색이 드러납니다.
슬슬 화가 나고, 분노가 치밉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안되네.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지?
 
나는 묵상과 글쓰기가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남이 쓴 글을 읽기만 할 때는
전혀 몰랐던 게 있어요.
 
글을 잘 쓰려면
특별한 영감이나
재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특별한 영감이 떠올라야
특별한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틀린 말이에요.
 
가끔 글을 쓰는 사람은
영감을 기다릴 수 있겠지요.
 
유유자적 편하게 지내다가
영감이 떠오르면 글을 쓰는 거죠.
 
미안하지만
그건 영화의 한 장면일 뿐
실제 벌어지는 일은 아니에요.
 
영감을 기다리는 사람은
오랫동안 글을 쓸 수 없어요.
 
매일 글을 쓰는 사람은
저마다 자신만의 루틴이 있습니다.
 
절제된 삶을 살면서
공장처럼 일정 분량의 글을
매일 찍어냅니다.
 
영감 따위는 믿지도 않고
기다리지도 않아요.
 
그런데, 어떻게 매일 글을 쓰나요?
특별한 비결이라도….
 
없어요. 그런 거.
그냥 쓰는 겁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냥 써 내려가는 거예요.
 
반복하다 보면 가끔
놀라운 일을 겪어요.
 
내 수준을 넘는
특별한 생각이 떠오릅니다.
 
아마 사람들이 이런 걸
영감이라 부르나 봅니다.
 
아쉽게도 영감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냥 왔다가
그냥 사라져요.
 
붙잡아두고 싶지만,
어쩔 수 없어요.
 
인정할 건 빨리
인정하는 게 나아요.
 
아! 내가 글쓰기와 묵상이
닮았다고 했지요.
 
나는 매일 글을 쓰기 전에
항상 성경을 읽습니다.
 
특별한 은혜가 없어도
매일 꾸준히 읽습니다.
 
마음이 메마르지 않았나.
그런 고민은 아예 하지 않습니다.
 
하루 세 끼 밥 먹듯이
그냥 앉아서 말씀을 섭취해요.
 
야금야금
잘 씹어 먹습니다.
 
매일 말씀을 읽다 보면
가끔 폭포수 같은 은혜가 느껴져요.
 
매일이 아니라
아주 가끔.
 
성경을 펼칠 때마다
은혜가 있기를 바라죠.
 
하지만, 그건 내 바람일 뿐
현실이 아니에요.
 
내가 통제할 수 없잖아요.
은혜를 만들어 낼 수도 없고.
 
쥐어짜도
발버둥 쳐도
소용없어요.
 
그건 선물이거든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
 
선물을 보내야
선물을 받지요.
 
아까 했던 질문
다시 해볼까요?
 
어떻게 성경을 매일 읽나요?
비결이라도….
 
없어요. 그런 거.
그냥 읽는 겁니다.
 
은혜가 있든 없든
매일 성경을 펼쳐야
평생 동안 읽을 수 있습니다.
 
매일 내리는 비는 장마.
가끔 내리는 비는 단비.
 
둘 중 하나 선택하라면
나는 단비가 좋습니다.
 
매일 비가 내리면
비의 소중함을 모를 테니까요.
 
자책은 이제 그만.
그냥 성경을 펼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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