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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이별

커터칼로 자해를 합니다

남자친구와 헤어졌어요. 석 달 전부터 손목에 커터칼로 자해를 해요. 피가 송글 맺힌 걸 보면 마음이 놓인다고 할까요. 엄마가 알았어요. 등짝을 때리고 울고 불고 했는데, 나는 마음이 편했어요. 누구라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내가 얼마나 아픈지.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시군요. 마음이 아픕니다. 절망적인 순간에 나에게 질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짧은 말 몇 마디보다 내 진심이 먼저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용기 내어 몇 자 적어봅니다.  
 
당신의 힘든 마음, 사람은 몰라도 주님은 아십니다. 
 
사람은 모른다는 말을 먼저 하고 싶습니다. 여기에는 당신도 포함됩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자신이 얼마나 외롭고 힘든지 모르고 살아왔을 가능성이 큽니다. 의존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거나, 다른 일에 몰두해서 외로움을 잊으려 했을 겁니다. 자세한 정보가 없으니 추측할 뿐입니다.  
 
추측을 했으니, 근거가 있어야겠지요. 남자친구와 헤어졌을 때, 당신이 선택한 행동은 당신의 모든 세계가 무너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별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며, 스스로를 비난할지 모릅니다. 공격 대상이 상대방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 근거입니다. 
 
이별에는 서로의 이유가 있는 겁니다. 아무도 일방적으로 잘못하지 않아요. 아무리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도 소용 없겠지요. 이별이 주는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으니까요. 
 
당신은 하루 아침에 극단적인 행동을 한 게 아닙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을 겁니다. 말할 사람 조차 생각나지 않을 거예요. 슬픔을 어떻게 표현할 지 몰라 답답할 겁니다. 아픈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서, 자신을 파괴하는 행동을 선택한 겁니다. 
 
어머니가 그 장면을 목격했을 때, 당신이 느낀 감정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어머니가 당신의 자해를 발견했을 때, 그 순간 마음이 편해졌다는 건 상황과 맞지 않는 독특한 감정입니다. 감정을 말로 표현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준 거니까요. 
 
주변에 마음 터놓고 말할 사람이 없을까요. 단 한 사람이라도 당신을 지켜줄 사람이 있기를 바랍니다. 남자친구와 헤어진 슬픔이 때문에, 일시적으로 자신을 고립시킨 것이기를 바랍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을 때, 한 사람이라도 당신을 안아주기를 바랍니다. 
 
만약 생각나는 사람이 없다면, 전문적인 도움을 받으셔야 합니다. 상담이나 치료를 받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손목의 상처는 가벼워도, 마음의 상처는 심각합니다. 잠시라도, 자신을 돌볼 시간을 가지세요.   
 
당신이 얼마나 아픈지 당신 스스로 모릅니다. 당신이 표현하지 않으니, 다른 사람도 모릅니다. 그러나, 절망할 필요 없습니다. 
 
당신이 다른 누군가를 찾기 전에 목사인 나에게 질문한 이유가 있겠지요. 나는 그에 맞게 대답을 하겠습니다. 사람은 몰라도 주님은 아십니다. 
 
 당신의 모든 감정, 예수님께 전부 표현하세요. 서투르게라도 예수님께 표현하다 보면, 언젠가는 사람들에게도 편안하게 자신의 감정을 말할 수 있을 겁니다.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아주세요.

남자에게 사랑받고 싶어요

아직 제대로 된 연애를 한 번도 못해봤어요.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 사랑 받고 싶어요. 외로움을 못이겨 음란물을 보게 되었고, 제 몸에 자극을 주게 되었어요. 그럴 때마다 죄책감이 들어요. 벗어날 수 있을까요. 정작 호감이 가는 남자를 만나면, 멀리 도망쳐버려요. 
 
나는 자매님이 스스로를 정죄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마음 편히 지금처럼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죄책감 없이 지금의 습관을 유지하라는 말이 아니에요. 잘못되었다 생각하시고, 벗어나고 싶다니까 드리는 말입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추측을 해봅니다. 자매님이 보내주신 사연을 읽어보면, 그 안에 결핍이 있는 것 같아요. 살아오면서 누군가에게 안정적이고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했을 겁니다. 가족마저도 사랑해주지 못한 것 같아요. 추측일 뿐입니다. 
 
나름의 근거가 있어야 겠지요. 질문 안에 근거가 있습니다. 자매님은 아직 연애를 못해보셨다고 했어요.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정작 호감가는 남자를 만나면 멀리 도망가버립니다. 이성과의 관계가 불편한 거예요. 서툰 겁니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들여다 봐야 합니다. 그래야, 돌볼 수 있어요. 
 
자신을 다르게 바라보면 좋겠어요. 자신을 음란물을 보면서 죄를 짓는 나쁜 사람으로 만들지 마세요. 반복해서 죄를 짓는 어리석은 사람으로 만들지 마세요. 그러면, 벗어날 수 없습니다. 
 
행위 그 자체만 가지고 평가하지 마시고, 왜 그런 행위를 하는가를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그 중심에는 외로움이 있습니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다룰 수 있어야 외로워서 반복하는 행위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배고픈 꼬마 아이가 있습니다. 집에서 밥을 주지 않아요.  엄마 아빠는 하루 종일 일하느라 바쁩니다. 아이가 밥을 먹었는지, 밥을 굶었는지도 모릅니다. 아이는 혼자 밥을 지어먹기에는 너무 어립니다. 밥을 안주면 굶어야 해요.  
 
배고픈 아이는 터벅터벅 문방구 앞에 갑니다. 친구들이 빨갛고 파란 불량식품을 나눠줍니다. 입에 넣고는 충격을 받습니다. 자극적인 맛이에요. 머리가 띵합니다. 자극적인 맛에 정신이 팔려 불량식품을 허겁지겁 주워 먹습니다. 
 
아이가 거울을 보다가 깜짝 놀랍니다. 불량식품으로 입술이 새파랗게 물들었습니다. 물로 닦아도 지워지지 않습니다. 엄마에게 혼나지 않을까 무섭습니다. 그대로 주저 앉아 웁니다. 후회합니다. 다시는 불량식품을 먹지 않을 거라고 다짐합니다. 울면서 집에 갑니다. 
 
집은 평소처럼 조용합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밥솥도 비었습니다. 아이는 혼자 누워 있다, 일어섭니다. 새파란 불량식품이 생각납니다. 자극적인 맛이 그립습니다. 그러면 안된다 하면서도, 발걸음을 멈출 수 없습니다. 문방구를 향해 뚜벅뚜벅 걷습니다. 
 
배고픈 아이에게 필요한 건 회초리가 아니라 따뜻한 밥 한 그릇입니다. 입술 파란 아이를 찾았다면, 그 아이를 때리지 마세요. 불량식품을 왜 먹냐고 다그치지 마세요. 사랑으로 안아주시고, 데려다가 잘 먹이세요. 따뜻한 밥 잘 챙겨 먹은 아이는 불량식품을 먹지 않아요. 
 
이제부터 자신을 돌보세요. 그때는 어려서 아무 것도 몰랐지만, 지금은 자매님 자신을 스스로 돌볼 수 있어요. 말처럼 쉽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우리 주님이 필요한 거죠. 
 
주님 앞에 나아가서 외롭다고 우세요. 외로운 자신을 안아달라고 기도하세요. 더 이상 불량식품에 매달리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세요. 주님이 매일 매일 따뜻한 밥을 지어 주실 겁니다. 시간 오래 걸리니까 조급해하지 마시고, 매일 매일 잘 챙겨드세요.

헤어진 남자친구를 다시 만나고 싶어요

3년 동안 만난 남자 친구가 있어요. 9개월 전에 헤어졌지만, 지금도 그 남자 친구가 그립습니다.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연애할 때 많이 싸웠어요. 그때는 몰랐지만, 헤어지고 나서 돌아보니 제 어린 시절 상처가 보였어요. 지극히 정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상처투성이였어요. 불안정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거든요.
 
이별을 극복하기 힘들어서 하나님께 매달렸어요. 바쁜 와중에 교회 가서 예배하고 기도하고 성경 읽으면서 하나님을 의지했어요.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어요. 그전에 먼저 제 가족이 회복되어야 할 것 같아요.
 
남자 친구를 다시 만나고 싶어요. 단순히 그리워서가 아니라 가족과 관련해서 꼭 말하고 싶은 게 있어요. 새로운 관계를 이어가고 싶어요. 더 늦기 전에 하나님이 다시 만날 수 있게 길을 열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자매님,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요. 헤어짐의 원인을 상대방에게 돌리지 않고 자신에게서 찾는 건 어찌 보면 감사한 일인지 몰라요. 자매님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요. 자매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나님께서 전 남자 친구를 다시 만나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나는 잠시 자매님과 마주 앉아 전해드려야 할 말이 있어요.
 
자매님 안에 상처가 치유되는 것과 전 남자 친구를 다시 만나는 것을 서로 나누어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이 둘을 분리하지 않으면 자매님은 더 큰 상처를 입을 수 있어요. 나는 자매님이 더 이상 상처 입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내 진심을 전하고 싶어요.
 
상처 치유와 남자 친구를 다시 만나는 게 미묘하게 섞여서 전제 조건을 만들었어요. “내가 치유되면, 내 가족이 회복되면,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면….” 여기가 전제 조건이에요. 전제 조건이 만족되면, 예상되는 결과가 있어요. 자매님이 원하시는 결과는, “다시 남자 친구를 만날 수 있어. 만날 수만 있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두번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하지 않을 거야.”와 같은 문장들이에요.
 
선명하지 않지만, 희미하게라도 원인과 결과가 성립되는 문장이 만들어지면, 자매님은 더욱 고통받을 거예요. 원인도 원인이 아니고, 결과도 결과가 아니니까요.
 
힘든 말을 할게요.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세요. 오로지 자매님 자신을 위해서 치유의 여정을 시작하세요.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매님 자신을 위해서 말이에요. 다른 누군가의 지분이 1%라도 반영된다면, 치유는 오염돼요. 보상 심리가 작동해요. “내가 이렇게까지 하나님을 의지했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나한테 이러실 수 있을까.” 시간이 흐를수록 절망감은 더 커질 거예요.
 
나는 자매님이 보상받기를 바라지 않아요. 선물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보상을 받는 사람은 언제나 아쉬워요. 노력한 만큼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선물을 받는 사람은 언제나 감사해요. 노력 없이 거저 받았으니까요. 기대가 없으니 감동 역시 크겠죠.
 
남자 친구를 지우세요. 모진 말 해서 미안해요. 나는 자매님이 보상이 아니라 선물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드린 말이에요. 남자 친구를 지우기 힘들어요. 사람이 컴퓨터도 아닌데 어떻게 기억을 지우겠어요. 하나님과 자매님 사이에 그 누구도 끼어들지 못하게 해달라는 부탁이에요. 오직 하나님만 사랑해주세요. 하나님이 해주실 그 무엇을 붙잡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봐 주세요. 진심이 전해지면, 하나님은 선물을 주실 거예요.
 
하나님이 자매님을 치유해주시기를 바라요. 그리고, 자매님을 사랑해줄 누군가를 보내주시기를 원해요. 전 남자 친구가 자매님에게 정말 필요한 사람이라면 다시 보내주실 거라 믿어요. 만약 더 좋은 사람을 준비하셨다면,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때에 보내주실 거예요. 꼭 과거에 그 사람이라고 단정하지는 마세요. 자매님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세요.
 
사람들은 상처를 보면 떠나요.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로 떠나지 않으세요. 이별의 아픔 때문에 상처를 탓하며 조급하게 치유를 말하지 마세요. 치유되지 않은 당신이라도 하나님은 온전히 사랑하시니까요. 당신이 다시 사랑받았으면 좋겠어요. 그날이 오면, 어떤 방식으로든 내게 알려주세요. 나도 함께 기뻐하고 싶어요.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하나님을 원망해요

결혼을 전제로 6년 동안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졌어요. 2년이 지난 지금은 남자친구에 대한 원망은 없어요. 차라리 헤어지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요. 하나님이 너무 원망스러요. 내 20대를 다 바쳐서 주님을 섬겼는데, 이제 남은 게 없어요. 하나님이 싫어서 교회도 가지 않아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원망스럽다고 말하면 편안하게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하면서 논리적으로 따져보겠지요.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내가 더 나은 사람이라서가 아니에요. 자매님이 진심을 알기 때문이에요. 
 
자매님은 그런 말할 자격 있어요. 주님을 위해 20대를 바쳐 봉사했기 때문이 아니에요. 주님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기 때문이 아니에요.  자매님이 주님의 딸이라서 그래요. 
 
딸은 아버지를 원망할 자격이 있잖아요. 말 그대로 딸이니가요. 딸이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으면 누구를 원망할 수 있을까요. 아버지를 사랑하니까 아픈 거예요.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해야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어요. 사랑하지 않으면 미련도 없지요.   
 
하나님이 진심을 담아 사과하면, 그 마음 누그러질까요. 하나님이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한다면, 그 마음이 풀릴까요. 하나님은 자매님의 아픈 마음 위로하고 싶을 거예요. 하나님도 자매님을 사랑하시니까요. 
 
자매님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는 자매님의 삶에서 일어난 작은 기적을 목격했어요. 자매님 안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난 일이지만, 다른 사람은 쉽게 이룰 수 없는 일이에요. 자매님은 과거의 남자친구에서 벗어났어요. 
 
헤어진 이성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은 쉽게 떨쳐내기 힘든 감정이에요. 누군가에게는 아마 평생 동안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는 복잡한 감정이랍니다. 자매님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동안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난 거예요. 원망을 담은 편지라도 주소는 정확히 적어주신 거예요. 
 
원망의 대상이 남자친구가 아니라 하나님이라서 감사해요. 만약 과거의 주소지에 끊임없이 편지를 보냈다면, 자매님의 편지는 길가에 버려졌거나, 다른 사람 손에 갈기갈기 찢겨졌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에게 보낸 편지는 하나님이 소중히 뜯어 읽어보셨어요. 잘 펴서 예쁜 상자에 담아 보관하고 계시고요. 
 
지금 하나님은 답장을 쓰고 계신 거예요. 생각보다 오래 걸리나봐요. 하나님의 시간 계산법은 우리와 조금 달라서 예측하기 어렵지요. 조급해하진 마세요. 머지 않아 하나님의 진심이 가득 담긴 편지가 도착할 거예요. 
 
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 정확한 주소를 적어주세요. 자매님이 하나님께 진심으로 듣고 싶은 말이 뭔가요. 하나님이 어떻게 해주시면 마음이 풀릴까요. 잃어버린 모든 시간이 아깝지 않을 만큼, 하나님께 받고 싶은 선물이 있으신가요. 주저하지 말고 말하세요. 하나님은 이미 알고 계시고 보내주실 준비를 마치셨어요. 
 
다시 교회에 나가려면,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나는 조급하게 지금 당장 교회에 다시 나가라는 말은 못하겠어요. 꽁꽁 얼어버린 자매님의 마음이 따스한 사랑으로 녹아내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내게 물어주신 덕분에 정답은 못 드려도, 진심은 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별을 견딜 수 없어요

누군가와 헤어지는 상황을 견딜 수 없어요.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어요. 졸업식이 힘들었어요. 선생님, 친구들과 헤어진다는 슬픔 때문에요. 선생님이 전근가실 때도 울고, 목사님이 바뀔 때도 울고, 함께 일하던 동료가 회사를 그만 둘 때 울어요. 친구들 결혼식도 못 봐요.
 
이제 동생이 결혼을 해요. 동생을 떠나보낸다는 생각에 눈물이 나요. 교회 상담실에서 상담을 받아봤어요. 그런데, 심각한 게 아니라는 듯 끝났어요. 동생 결혼식에서 웃으며 축복해주고 싶어요. 하지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울음을 참을 수 없으니 걱정이에요.
 
저는 3남매 중 첫째에요. 한 살 어린 남동생, 네 살 어린 여동생이 있어요. 남동생이 생기면서 저는 할머니에게 갔어요. 할머니가 엄마인 줄 알고 지냈어요. 여동생이 엄마 뱃속에 있을 때,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저는 다시 엄마 집으로 오게 되었어요. 아이가 셋이다 보니 엄마는 주로 저를 집에 혼자 두고 다녔어요. 막내인 여동생은 늘 데리고 다녔고요.
 
할머니 돌아가신 날이 기억나요. 할머니와 살던 저는 엄마 집에 놀러 왔어요. 할머니는 평소와 다름없이 막걸리를 한 잔 드시고 낮잠을 주무셨어요. 어린 저와 동생은 할머니 양옆에 누워 같이 잠을 잤어요. 잠이 깬 저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걸 제일 먼저 발견했어요. 눈을 뜨고 돌아가셨어요.
 
엄마가 그랬어요.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 제가 할머니가 꽃가마 타고 가는 꿈을 꿨다고. 할머니가 내 꿈을 듣고 말했다고 했어요. “아이고, 내가 꽃가마를 타고 어디를 간다는 거 보니까 세 밤 자면, 죽으려나 보다.” 그날 이후, 엄마가 꿈에 나올까 무서웠어요. 내 꿈 때문에 돌아가실까 봐….
 
자매님, 용기 내어 사연 보내주셔서 감사드려요. 자매님이 보내주신 사연을 읽어보면, 자매님은 누군가와 헤어질 때 슬픈 감정을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어요. 하지만, 내 생각에 자매님은 이별의 슬픔으로 고통받는 게 아니에요. 나는 다른 관점으로 이 상황을 보고 싶어요. 자매님은 혼자 남겨지는 게 두려울지 몰라요. 외로워서 우는 게 아니라 무서워서 우는 것 같아요.
 
부족한 정보로 추측할 뿐이에요. 하지만, 그 나름의 근거가 있어야겠지요. 자매님은 바로 아래 동생이 엄마 뱃속에 있을 때 할머니 댁에 맡겨졌어요. 한 살 어린 남동생이니까 자매님은 돌이 되기도 전에 할머니 댁에 맡겨진 거예요. 그리고, 여동생과 세 살 차이가 나니까 할머니 댁에서 최소 3년 이상 산 거예요.
 
애착 형성에 중요한 생후 3년 전후로 자매님은 두 번의 큰 상실을 경험했어요. 엄마와의 이별이 있었어요. 동생의 존재만으로 자매님은 이미 존재감에 큰 타격을 입었을 거예요. 엄마와 생이별을 했으니 고통은 더 컸을 거예요. 단지 어려서 표현할 수 없었던 거죠.
 
할머니와의 이별이 있었어요. 자매님은 할머니를 엄마처럼 생각했어요. 그런 할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어요. 자매님에게는 할머니의 죽음이 엄마의 죽음과 같았어요. 세상이 하루아침에 멸망한 것처럼 무서웠을 거예요. 할머니가 눈을 뜨고 돌아가셨다는 표현에는 자매님이 느끼는 두려움의 정서가 반영되어 있어요. 어린아이가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자매님은 혼자 있을 때 외롭기보다 무서울 거예요. 성인이 된 지금 외롭다는 말은 할 수 있어도 무섭다는 말을 하기 어려울 거예요. 하지만, 괜찮아요, 자매님. 누군가 떠날 때 무서운 감정을 느끼는 건 자매님에게 정당한 감정이에요. 스스로를 자책하지 마세요.
 
자매님은 마음속 어린아이를 돌봐줘야 해요. 눈을 뜨고 돌아가신 할머니를 보고 겁먹은 네 살짜리 여자아이가 있어요. 성인이 된 자매님이 그 아이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어떻게 위로해 줄 수 있을까요. 그 아이는 너무 놀라 울지도 못해요. 소리쳐 주변에 알리지도 못해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 해요.
 
우리 그 아이를 위로해 줄까요. 겁먹은 그 아이를 들어 올려 안아주세요. 등을 다독여 주세요. 품에 안고 따뜻하게  말해주세요.
 
“괜찮아, 아가. 많이 무서웠지. 이제 괜찮아. 네 잘못 아니야. 할머니는 네가 꾼 꿈 때문에 돌아가신 게 아니야. 괜찮아, 아가…. 정말로 괜찮아….”
 
마음속 그 아이는 여전히 무서워해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아요. 누군가 떠날 때, 무서워서 옷자락이라도 잡고 싶어 해요. 그 아이를 비난하거나 정죄하지 마세요. 무서워서 그러는 거예요. 그 아이는 아무 잘못이 없어요. 다독여 주세요. 그 아이가 안심할 때까지 따뜻하게 안아주세요. 남은 삶 동안 포기하지 않고 돌봐주셔야 해요.
 
사람들은 자매님을 떠나요. 목사님도, 선생님도, 친구들도, 가족들도. 언젠가 모두 떠날 거예요. 필요할 때 옆에 없을 거예요. 하지만, 걱정은 마세요. 예수님은 절대로 자매님을 떠나지 않으실 거예요. 언제나 어디서나 따뜻하게 자매님을 안아주시는 예수님을 믿기에 나는 여기서 글을 마칩니다.

한 번 떠났던 사람은, 두 번 떠날 수 있어요

“내 상처 때문에 
그 사람을 힘들게 했어요. 
 
더 나은 사람이 되어서, 
그 사람을 다시 만나보고 싶어요.” 
 
당신 안의 외로움이 
당신을 비난하고 있어요. 
 
당신의 일방적인 잘못으로 
헤어진 것처럼 말하거든요. 
 
한 사람만의 잘못으로 
헤어질 수 없어요. 
 
당신의 상처로 
그 사람이 힘들었던 만큼, 
당신도 그 사람 때문에 힘들었어요. 
 
이별의 모든 책임이 
당신에게 있는 것처럼 말하지 마세요. 
관계를 깨뜨린 건 그 사람이에요.
 
당신은 그 사람이 그리운 거예요. 
다시 만나고 싶고, 
다시 사랑받고 싶은 심정이 전해져요. 
 
그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감정을 
억제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 사람을 찾아가느냐 마느냐는 
오롯이 당신의 선택이에요. 
당신의 선택을 존중해요. 
 
다만, 당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을 되찾고 싶어, 
당신이 아닌 모습이 될까 
걱정스러워요.
 
있는 모습 그대로의 
당신을 사랑해 주세요. 
 
그리고, 
있는 모습 그대로의 당신을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세요. 
 
한 번 떠났던 사람은, 
두 번 떠날 수 있어요. 
 
또다시 당신을 버릴 기회를 
주지 마세요. 
 
이 세상 그 누구도 
당신을 두 번 버릴 수 없어요.  
 
마약을 끊을 때 
금단현상이 일어나듯이,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면 
정서적 금단현상이 일어나요. 
 
당신이 식은땀을 흘리며 
괴로움에 눈물 흘릴 때, 
예수님이 당신의 손을 
잡아 주실 거예요. 
 
한순간도 
당신 곁을 떠나지 않고 
당신을 보살펴 주세요. 
 
잠시 괴로운 시간이 지나면, 
당신 안의 그리움의 독기가 
빠져나갈 거예요. 
 
이별의 고통을 이겨낸 당신은, 
생존자예요.   
 
다른 사람이 원하는 당신이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의 당신이 되어주세요. 
당신은 이미 충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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