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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의심

성경이 믿어지지 않아요

나는 성경이 믿어지지 않아요. 
문제가 있는 걸까요. 
 
언제 온전한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내가 의심이 많데요. 
그래서 믿음이 자라지 않는다고.
 
나도 믿고 싶어요. 
뜻대로 안되는 걸 어쩌죠. 
 
도저히 믿기 어려워요.  
성경에는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섞여 있어요. 
 
바다가 둘로 갈라졌다든지
바위에서 물이 나온다든지. 
 
말이 안 되잖아요. 
목사님은 다 믿으시나요. 
 
네, 믿어요. 
하지만, 믿기까지 힘들었어요. 
 
주변에서 무조건 믿으라고 할 때 
마음이 답답했어요. 
 
나중에 믿고 나니까 
그게 그 뜻이구나 했죠. 
내가 느낀 걸 말해볼게요. 
 
믿음에는 순서가 중요해요. 
순서가 바뀌면 오해가 생겨요. 
 
지식은 이해되면 믿어져요.
말씀은 믿어지면 이해돼요.
 
무슨 말인지 설명해 볼게요. 
잘 들어보세요.  
 
우리가 지식을 배울 때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되지만 
이치를 깨달으면 믿어져요. 
 
지식이 이해되지 않을 때까지는 
지식이 나보다 우월해요. 
 
지식을 이해하고 나면 
지식은 나보다 열등하죠. 
 
어려워서 풀지 못하는 
수학 문제를 만나면 주눅 들지만  
 
한 번 풀어버린 문제는 
시시하잖아요. 
 
이해된 지식은 나보다 열등해요. 
내가 정복하고 그 위에 올라서요. 
 
말씀은 어떤가요. 
완전히 이해되지 않아요. 
 
처음 읽는 순간부터 
팔짱을 끼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돼요. 
 
어떤 사람은 말하죠. 
이해를 못하는데 어떻게 믿어. 
 
나는 거꾸로 말하고 싶어요. 
이해되는데 왜 믿어. 
 
이해되면 이해된 거예요.
믿고 안 믿고 할게 없어요. 
 
말씀은 지식과 달라요. 
믿고 난 다음에 이해돼요. 
 
하나님이 내 머리로 다 풀려버리면 
하나님이 아닌데 믿을 이유가 없죠. 
 
오해하지는 마세요. 
덮어놓고 믿는 건 아니에요.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요. 
조금만 더 들어주세요. 
 
바다가 둘로 갈라지는 이야기 
바위에서 물이 나오는 이야기
나도 믿기 어려웠어요. 
 
상식적으로 말해볼게요. 
사람을 처음 만나면 우리는 신중해져요.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먼저 살피죠.
쉽지는 않아요.   
 
말과 행동이 전부가 아니거든요.
같은 말을 하더라도 느낌이 달라요.  
 
말은 거칠어도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있죠. 
 
말은 따뜻해도 
마음이 차가운 사람도 있어요. 
 
처음에는 몰라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해요. 
함께 오래 있다 보면 알게 되죠. 
 
우리는 무엇으로 그 사람을 
느끼고 있는 걸까요.  
 
생각을 깊게 안 해서 그렇지 
따져보면 정확하게 몰라요.  
 
하지만, 일단 사람을 신뢰하면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신뢰해요.  
 
가끔 황당한 말을 하더라도
저 말을 왜 할까. 
이유가 있겠지 생각하죠. 
 
나는 말하고 싶어요. 
성경을 전부 믿고 싶다면.  
먼저 하나님을 믿어야 해요.
 
사건에 집착하면 
하나님 못 믿어요. 
 
사람을 처음 만나 
계산기를 두드리는 사람은
친구 사귀기 힘들어요.  
 
하나님을 알기도 전에 
사건을 따지기 시작하면 
하나님 만나기 어려워요. 
  
하나님을 알고 싶다면 
먼저 하나님과 친해지세요. 
 
함께 대화하면서 
시간을 보내세요.  
 
조급할 필요 없어요.
자책할 필요 없어요. 
시간이 필요할 뿐이에요. 
 
그가 느껴지기 시작하면
당신은 결국 믿게 될 거예요.
 
그가 하신 모든 말을. 
그가 이루신 모든 일을. 

하나님을 비웃어 버렸다

<창세기 17:17> 

아브라함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 채 웃으며, 마음으로 혼잣말을 했습니다. “어떻게 백 살이나 먹은 사람이 아기를 낳을 수 있을까?
 
From 아브라함 
 
하나님이 아들을 주신다고 하셨을 때, 나는 비웃었어요. 당연하지요. 나는 이미 100세였고, 아내 사라는 90세였습니다. 늙을 대로 늙은 두 사람이 어떻게 아들을 낳겠어요? 
 
나는 말했습니다. “아이고, 하나님. 됐으니까, 지금 있는 아들에게나 복을 주세요. 종의 몸을 통해서 낳았지만, 그래도 내 자식입니다.” 
 
믿음 없는 말이지요? 하나님을 조롱할 의도는 없었지만, 그렇게 됐습니다. 무심결에 말해놓고, 잔뜩 긴장했지요.  
 
믿음 없다고 혼내실 줄 알았거든요. 별 볼일 없는 믿음에 실망해서, 나를 버리고 다른 사람을 찾아 떠나버리실까 걱정했지요. 
 
하나님의 반응은 내 예상과 달랐습니다. 
 
“그래, 네가 말한 그 아들에게도 복을 주겠다. 하지만, 그 아들이 내가 약속한 자녀는 아니다. 내년 이맘때 네가, 자녀를 낳을 것이다. 내가 약속한 아들이다.” 
 
하나님은 믿음이 부족한 나를 이해하셨습니다. 은혜를 베푸셨지요. 나는 당황했습니다. 덤으로, 종의 몸에서 난 아들까지 축복해주셨으니까요.    
 
내 아내 사라도 믿음이 부족한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남편에 그 아내였을까요? 아내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속으로 비웃어버렸습니다. 
 
“그렇면 좋게요? 남편과 내가 이렇게 늙었는데, 어떻게 아이를 낳을 수 있겠어요?” 
 
그 당시 나와 아내는 하나님을 잘 모르고, 우리의 처지를 스스로 비웃고 조롱했지요. 
 
나도 내 나름대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내 현실이 너무나 슬프고 끔찍해서, 하나님이 바꾸실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지요. 
 
“아무리 하나님이시라도, 내 상황은 못 바꾸신다.”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믿음 없는 나에게 막상 아들을 주시자,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을 비웃던 사라는, 기쁨의 웃음이 터져버렸습니다. 아이를 품에 안고 하나님을 찬양했지요.   
 
“하나님께서 내게 웃음을 주셨다. 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도 나처럼 웃게 될 것이다. 내가 아이를 낳을 수 있으리라고 어느 누가 알았겠는가!”
 
그제서야, 나는 기억났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아셨던 겁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말씀입니다. 
 
“네 아내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니, 아들을 낳으면 그 이름을 이삭이라고 하여라.” 
 
내 아들의 이름은 처음부터 “이삭”이었어요. 이름의 뜻이 “웃음”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웃음”을 주신다고 했는데, 나는 믿지 못해서, 하나님을 비웃어 버렸습니다.  
 
내가 훗날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린다니, 부끄러울 뿐입니다. 내 믿음으로 이룬 결과가 아닙니다. 믿음 없는 나에게 거저 주신 은혜입니다. 
 
인생이 힘들 때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고개를 숙이고 땅만 쳐다봅니다. 엄연한 현실 앞에서, 감히 꿈조차 꿀 수 없습니다. 형편과 처지를 탓하며, 자신을 조롱하고 비웃습니다.  
 
나는 부탁합니다. 당신의 믿음을 하찮게 여기지 마세요. 당신의 믿음이 부족해서, 하나님이 못 도와주실 것이라 단정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입니다.  
 
당신이 힘들어서 웃을 수 없다는 걸 압니다. 나도 그랬으니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셔서, 우리를 잘 아십니다. 우리의 연약한 믿음마저도 배려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입니다. 
 
나는 당신을 모르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약속하신 모든 일을 이루십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마세요.   
 
결국, 당신도 웃게 될 겁니다.  

하나님이 해결해주셔야죠

하나님이
해결해주셔야죠.
 
그렇군요.
나도 그러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당신 얼굴이
왜 이리 슬퍼 보일까요.
 
못다 한 이야기가 있군요.
하나님께 서운한가요.
 
네. 그래요.
이제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아무리 기도해도
상황이 좋아지지 않으니까요.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해요.
나는 더 이상 못하겠어요.
 
당신이 내게 한 말,
언뜻 보면 믿음 같지만
자세히 살피면 절망입니다.
 
내 환경이 달라지겠어?
저 사람이 달라지겠어?
 
바뀌지 않을 거야.
바뀌지 않을 거야.
절대로 절대로.
 
당신의 문제가 풀리기 전에
당신의 마음이 풀리기를
나는 바랍니다.
 
믿음과 절망은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마음이 엉키면
절망입니다.
 
마음이 풀리면
믿음입니다.
 
눈물이 강을 이루고
탄식이 산을 이룰지라도
마음이 엉키면
낙원이 아닙니다.
 
강 없고 산 없어도
얼어붙은 땅이 풀리고
작은 겨자씨 하나 피어나면
그곳은 낙원입니다.
 
나는 기도합니다.
나는 소망합니다.
 
당신 마음이 풀어지기를.   
당신 마음이 낙원 되기를.

너 주님 사랑하는 거 맞아?

나 예수 믿는데
내 인생 왜 이렇죠?
 
불행하고
우울하고
힘들어요.
 
예수님 사랑하세요?
네?
 
예수님 사랑하시냐고요?
네….
 
내가 볼 때는 아닌데.
그 정도로는 안돼요.
 
그럼 어떻게 하죠?
알려주세요.
 
더 사랑해야죠.
예수님 사랑하시는 거
정말 맞죠?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사실 잘 모르겠어요.
 
거봐요.
그렇게 확신이 없는데
어떻게 행복하겠어요.
 
목숨 다해 주님만
사랑하세요.
 
주님만 사랑하면
다 해결되는데
주님을 사랑하지 않으니까
괴로운 거예요.
 
옆에서 지켜보려니
나는 마음이 괴롭습니다.
 
나는 당신과
생각이 다릅니다.
 
주님 사랑하자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확신이 부족하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어요.
 
아니, 그럼
예수님 사랑 안 합니까.
확신 없이 천국 갑니까.
 
나는 당신처럼
강한 확신은 없지만,
당신이 부럽지 않아요.
 
내가 불안한 건
맞습니다.
 
솔직히 나는
내가 너무 불안합니다.
 
나는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일까요.
 
모르겠어요.
확신이 서지 않아요.
 
주님을 사랑한다면
내가 이래서는 안되죠.
 
나는 알고 있어요.
내가 얼마나 형편없는지.
 
내가 실수해서 고통받는지
나를 사랑해서 고통을 주시는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정확한 판별법이 있으면
내게 알려주세요.
 
나도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그런 확신도 없이
무슨 목사라고.
 
맞아요.
당신 말이 맞아요.
 
하지만, 나도 당신만큼
주님을 사랑해요.
 
당신만큼 확신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당신이 확신하는 동안
나는 계속 불안할 거예요, 아마.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어요.
확신했던 사람들.
 
베드로는 확신했어요.
다른 사람 몰라도
나는 주님 부인하지 않겠다고.
 
도마는 확신했어요.
내가 손가락으로 예수님 옆구리를
후벼보기 전까지는 믿지 않겠다고.
 
바울은 확신했어요.
내가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되게 하는
그리스도인을 모조리 잡아 처넣겠다고.
 
확신도 그리 안전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어떠세요.
 
내가 확신 없어도
행복한 이유 알려드릴까요.
 
나는 내가 얼마나
주님 사랑하는지
별로 고민 안 해요.
 
생각할수록 좌절되니까요.
내가 주님을 얼마나 사랑해야
나도 안심되고 주님도 만족할까요.
 
어려워요.
다르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주님이 날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루 종일 생각해요.
 
생각할수록 행복하거든요.
너무 너무 행복해요.
 
내가 주님을 사랑하면
얼마나 사랑하겠어요.
 
주님이 날 사랑하시는 거에 비하면
공중에 떠다니는 먼지 같죠.
 
당신하고 나하고 누가 더 주님 사랑하는지
따져 봤자 도토리 키재기에요.
 
당신이 이겼다고 해줄게요.
그래도, 난 손해 볼게 없어요.
 
당신과 나.
주님은 차별 없이 사랑해주시니까요.
 
내가 얼마나 주님 사랑하는가에
집중하지 말고
 
주님이 날 얼마나 사랑하시는가에
집중하세요.
 
내가 불안해도 행복한 이유
이제 아시겠죠.
 
계속 고민하세요.
나 주님 사랑하나.
나 믿음 있나.
 
그게 사랑이고
그게 믿음이니까요.

내 믿음이 형편없어요

내 믿음이 형편없어요.
나 어떻게 하죠?
 
하나님 앞에 부끄러워
나아갈 수가 없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믿음이 제자리에 있으니
괴로워요.
 
믿지 못해 괴롭고
믿고 싶어 괴롭다면
그건 믿음이에요.
 
당신의 믿음을
싸구려 취급하지 말아주세요.
 
사람들은 믿음에
레벨이 있는 것처럼 말해요.
 
진실이 아니에요.
믿음에는 레벨이 없어요.
 
믿음이 있냐, 없냐.
둘 중 하나에요.
 
문제에 집중하면
불안해져요.
 
감기가 낫느냐
암이 낫느냐.
 
1억을 갚느냐.
10억을 갚느냐.
 
암보다는
감기를 고치기 쉽고
 
10억보다는
1억을 갚기 쉬우니까.
 
암이나 10억을 놓고
기도하는 사람에게
 
더 큰 믿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다시 말하지만,
진실이 아닙니다.
 
믿음의 대상이
분명하기 바랍니다.
 
문제에 집중하면 불안해서
더 믿으려고 발버둥 쳐요.
 
문제 너머에 계시는
하나님을 믿어봐요, 우리.
 
감기와 암.
10억과 1억.
 
하나님은 차이를
느끼지 못하세요.
 
예수님이 이방 여인에게 말씀하셨죠.
네 믿음이 크도다.
 
예수님은 믿음의 크기에
놀라신 게 아니에요.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믿으니까
예수님이 감격하신 거예요.
 
얼마나 잘 믿느냐.
그만 고민하세요.
 
무엇을 믿느냐.
고민하세요.
 
문제 해결을 믿으시나요.
하나님을 믿으시나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감사할 수 있으려면
 
문제 너머에 계시는
하나님을 믿는 방법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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