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은혜

교회에서 봉사하고 상처받아요

보상을 바라지 않고 봉사하는 방법이 없을까요? 바쁜 시간 쪼개가면서 최대한 봉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고맙다는 말을 해주기를 바라지는 않아요. 최소한 상처를 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힘들게 봉사하고 돌아오는 건 상처뿐입니다. 
 
보상이라는 단어를 어떤 의미로 쓰셨는지 묻고 싶습니다. 보상은 “받는다”라는 뜻이 아닙니다. “갚는다”라는 뜻입니다. 남을 위해 애쓴 것에 대한 대가를 인정받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미리 받은 혜택을 돌려주는 것입니다. 플러스알파가 아니라 플러스제로입니다. 성경적인 의미를 말하는 게 아니라 사전적 의미를 말하는 겁니다. 내 말이 의심스럽거든 국어사전을 찾아보세요. 
 
봉사라는 단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남을 돕기 위해 애를 쓴다는 뜻입니다. 받은 것이 없는 사람이 대가 없이 순수하게 봉사하면 아름다워 보입니다. 그러나, 받은 것이 많은 사람이 받은 것의 일부를 다시 돌려주는 건 상식입니다. 봉사했다고 생색내면, 본인의 순수한 의도마저 사라져 버립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남는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아마 발끈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교회에서 받은 게 없다. 교회에서는 자기들 필요할 때만 실컷 부려먹다가 힘들어서 잠깐 쉰다고 하면 믿음 없는 사람이라고 정죄한다. 그동안 참았다. 더 이상은 못하겠다”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 마음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우리 서로 같은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성도니까 목사에게 분풀이라도 할 수 있지만, 나는 목사니까 어디다 하소연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말했습니다. 화가 잔뜩 난 채로 말입니다. 
 
교회 사람, 교회 구조를 먼저 생각하면 당연히 화납니다. 봉사할 맛 안 납니다. 관점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봉사하는 대상이 잘못되면, 실망하고 지칩니다. 봉사하는 대상을 바꾸세요. 봉사의 대상은 사람이 아닙니다. 올바른 대상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위해 봉사하면, 상처받을 일 없습니다. 
 
예수님을 생각하면, 받은 은혜가 먼저 떠올라야 합니다. 감격으로 봉사해야 상처 안 받습니다. 예수님께 받은 게 없으면 봉사하면 안 됩니다. 봉사 먼저 하고 나중에 보상받으려고 하면 사람 망가집니다. 예수님 없이 봉사하는 삶,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러니, 잘 분별하세요.  
 
지금 하고 있는 봉사 안 해도 하나님 나라에 지장 없습니다. 은혜 먼저 받으세요. 차고 넘치도록 받으세요. 은혜받은 만큼만 봉사하세요. 그래도, 충분합니다. 은혜가 비어버리면, 다 끝입니다. 은혜 없이 죽도록 봉사해도 자기만족입니다. 당신의 삶에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가 넘쳐흐르기를 바랍니다.

기억은 지독하다

사람마다 끔찍한
기억이 있어요.
 
기억이 떠오르면
우울해져요.
 
벗어나고 싶으니까
잊으려 해요.
 
잊으려 마세요.
잊을 수 없어요.
 
잊으려 할수록
생생해져요.
 
증명해볼까요.
따라 해보세요.
 
지금 이 순간부터 절대로
토끼 생각하지 마세요.
 
하얀색 털이 뽀송뽀송한
토끼를 떠올리지 마세요.
 
토끼 등에 빨간색으로
숫자 5라고 쓰여 있어요.
 
보면 안 돼요.
절대로 떠올리지 마세요.
 
아….
당신은 결국 보고 말았네요.
 
이제 아시겠죠.
기억은 지독한 녀석이에요.
 
잊으려 할수록
더 생생해지죠.
 
새로운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잊지 않고
기억하는 거예요.
 
끔찍한 기억을 계속
떠올리는 말인가요?
 
아니요.
그런 말이 아니에요.
 
기억하는 방식을
바꿔보자는 말이에요.
 
기독교는
기억하는 종교에요.
 
사람은 자꾸 잊어버리고
하나님은 자꾸 기억나게 하세요.
 
성경 전체에서
계속되는 이야기죠.
 
사람이 은혜를
잊으면
 
하나님은 은혜를
기억나게 하세요.
 
사람이 사랑을
잊으면
 
하나님은 사랑을
기억나게 하세요.
 
언제나 하나님은
잊혀진 기억을 되살려주시죠.
 
기억이 끔찍한 이유는
그곳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이에요.
 
잊지 말고
기억하세요.
 
그곳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지금 무슨 말하는 거예요!
난 완전히 혼자였다고요!
 
하나님은커녕
상처 입은 나만 보여요.
 
맞아요.
쉽지 않아요.
 
부탁드려요.
포기하지 마세요.
 
하나님을
끝까지 찾아내세요.
 
하나님은 그곳에 계세요.
당신은 혼자일리 없어요.
 
어둠 속에서 울고 있는
꼬마가 있어요.
 
울긋불긋 온몸에
멍 자국 난 아이.
 
죽은 시체처럼
담요에 덮여 있었죠.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어요.
 
잊혀지지 않아요.
어제처럼 생생하죠.
 
난 고통받을까요.
아니요.
 
난 혼자가
아니었어요.
 
끔찍한 기억에 찾아와 주신
하나님 덕분에
 
이제 나는 마음 편히
그 사건을 기억할 수 있죠.
 
그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살아나거든요.
 
삶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
나는 그 꼬마와 눈이 마주쳐요.
 
너도 살았으니
나도 살 거다.
 
당신이 내 글을 읽는
이유를 알아요.
 
내 기억 때문이고
당신의 기억 때문이죠.
 
내가 혼자가 아니듯이
당신도 혼자가 아니에요.
 
사건을 기억하면
당신은 불행해져요.
 
하나님을
기억하세요.
 
나는 당신이 행복하기를
바라니까요.

말씀을 읽어도 은혜가 없네요

말씀을 읽어도 은혜가 없다는
사람을 만납니다.
 
내가 제대로 이해했다면
이런 말이겠지요.
 
예전에는 말씀을 읽을 때
마음이 뜨겁고 감동이 되었는데
요즘에는 뭐가 잘못되었는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가 없어요.
 
은혜가 없으면 조급해집니다.
만회할 방법을 찾습니다.
 
뭔가 잘못되었다.
그러니, 은혜가 없지.
 
불안 요소를 하나둘 제거합니다.
거리끼는 게 없나 계속 살핍니다.
 
그러다 지치면 본색이 드러납니다.
슬슬 화가 나고, 분노가 치밉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안되네.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지?
 
나는 묵상과 글쓰기가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남이 쓴 글을 읽기만 할 때는
전혀 몰랐던 게 있어요.
 
글을 잘 쓰려면
특별한 영감이나
재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특별한 영감이 떠올라야
특별한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틀린 말이에요.
 
가끔 글을 쓰는 사람은
영감을 기다릴 수 있겠지요.
 
유유자적 편하게 지내다가
영감이 떠오르면 글을 쓰는 거죠.
 
미안하지만
그건 영화의 한 장면일 뿐
실제 벌어지는 일은 아니에요.
 
영감을 기다리는 사람은
오랫동안 글을 쓸 수 없어요.
 
매일 글을 쓰는 사람은
저마다 자신만의 루틴이 있습니다.
 
절제된 삶을 살면서
공장처럼 일정 분량의 글을
매일 찍어냅니다.
 
영감 따위는 믿지도 않고
기다리지도 않아요.
 
그런데, 어떻게 매일 글을 쓰나요?
특별한 비결이라도….
 
없어요. 그런 거.
그냥 쓰는 겁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냥 써 내려가는 거예요.
 
반복하다 보면 가끔
놀라운 일을 겪어요.
 
내 수준을 넘는
특별한 생각이 떠오릅니다.
 
아마 사람들이 이런 걸
영감이라 부르나 봅니다.
 
아쉽게도 영감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냥 왔다가
그냥 사라져요.
 
붙잡아두고 싶지만,
어쩔 수 없어요.
 
인정할 건 빨리
인정하는 게 나아요.
 
아! 내가 글쓰기와 묵상이
닮았다고 했지요.
 
나는 매일 글을 쓰기 전에
항상 성경을 읽습니다.
 
특별한 은혜가 없어도
매일 꾸준히 읽습니다.
 
마음이 메마르지 않았나.
그런 고민은 아예 하지 않습니다.
 
하루 세 끼 밥 먹듯이
그냥 앉아서 말씀을 섭취해요.
 
야금야금
잘 씹어 먹습니다.
 
매일 말씀을 읽다 보면
가끔 폭포수 같은 은혜가 느껴져요.
 
매일이 아니라
아주 가끔.
 
성경을 펼칠 때마다
은혜가 있기를 바라죠.
 
하지만, 그건 내 바람일 뿐
현실이 아니에요.
 
내가 통제할 수 없잖아요.
은혜를 만들어 낼 수도 없고.
 
쥐어짜도
발버둥 쳐도
소용없어요.
 
그건 선물이거든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
 
선물을 보내야
선물을 받지요.
 
아까 했던 질문
다시 해볼까요?
 
어떻게 성경을 매일 읽나요?
비결이라도….
 
없어요. 그런 거.
그냥 읽는 겁니다.
 
은혜가 있든 없든
매일 성경을 펼쳐야
평생 동안 읽을 수 있습니다.
 
매일 내리는 비는 장마.
가끔 내리는 비는 단비.
 
둘 중 하나 선택하라면
나는 단비가 좋습니다.
 
매일 비가 내리면
비의 소중함을 모를 테니까요.
 
자책은 이제 그만.
그냥 성경을 펼치세요.

예수님이 멀게 느껴져요

예수님만 바라보라고 하잖아요.
나는 그 말이 뭔지 몰라요.
예수님이 친밀하지 않아요.
멀게만 느껴지고.
 
사람들하고 기도하면서 같이 울잖아요.
같이 울어도 똑같이 우는 게 아니에요.
내 눈물은 성분이 달라요.
감사해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에요.
서러워서 흘리는 눈물이에요.
 
왜 나를 만들었나.
왜 나만 차별하나.
서럽고 외로워서 눈물만 흘러요.
어떻게 해야 주님을 만날 수 있나요.
방법을 알고 싶어요.
 
상투적인 말부터 해야겠네요.
지루하더라도 참고 들어주시겠어요?
듣다 보면 남는 건 있을 거예요.
 
데이트해보셨지요.
상대방을 알아가는 과정이 있어요.
그 사람이 누군지 알아야 해요.
그 사람이 했던 말과 행동.
그 사람의 태도와 감정.
알면 알수록 좋아요.
 
친구들을 만나보는 것도 좋겠죠.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에 대해
뭐라 말하나 들어봐야죠.
 
주변 사람들이 하나같이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운다면
좋은 사람이란 뜻이죠.
 
결혼을 전제로 만난다면
더욱 신중해야겠죠.
섣불리 결론 내리면 안 돼요.
따질 건 전부 따져봐야죠.
 
예수님도 마찬가지예요.
신랑을 고르는 것과 비슷해요.
많이 알면 알수록 좋아요.
따질 건 전부 따져보세요.
 
예수님이 하신 말,
예수님에 대한 말,
모두 성경에 있어요.
신중하게 읽고 생각하세요.
 
예수님에 대해 알았다고 해서
바로 믿어지는 건 아니에요.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려면
성령님의 도움이 필요해요.
 
마른 장작에 불을 붙여야죠.
그래야 활활 타오르니까요.
성령님이 불을 붙어주시면
고백할 수 있어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나는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까요.
설명하기 힘들어요.
어느 날, 예수님이 찾아와 주셨어요.
 
나도 혼자라고 생각했어요.
아무도 날 지켜주지 않았으니까요.
저러다 애 죽겠다 싶으니까
급하게 찾아 오셨나 봐요.
조금만 늦게 오셨어도 나는 세상에 없겠죠.
간신히 살았어요, 정말로.
 
바로 질문하겠죠.
왜 나에게는 안 오시나요?
나도 믿고 싶은데.
사람 차별하는 것도 아니고.
 
혼자라고 느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예수님은 차별하지 않으세요.
예수님은 당신 곁에 오셨어요.
당신도 혼자가 아니에요.
 
당신이 내 앞에서
혼자라고 말하면서 우는데
이상하게 나는 불안하지 않아요.
이제야 알 것 같아요.
당신의 진심을.
 
당신은 그리워하고 있어요.
예수님과 친밀했던 그 시절을.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것처럼 말해서
정말 그런 줄 알았어요.
내가 잘못 알아들었어요.
주님의 따뜻한 품이 그리운 거예요.   
 
처음부터 당신의 마음을 알았다면
길게 말하지 않았을 거예요.
내가 무뎠어요.
 
이제 알았으니 부탁할게요.
조급할 필요 없어요.
기다려주세요.
주님이 다시 만나주실 거예요.
 
옛사랑을 그리워하는 당신이 아니라
오늘 주신 사랑으로 설레는 당신이 되기를
나는 바랍니다.

너라서 버틴 거야

“용서가 힘들어. 
슬퍼서 눈물 나.” 
 
울고 싶으면 울어. 
넌 그럴 자격 있어. 
 
약한 거 아니야. 
너라서 버틴 거야. 
 
지금까지 잘 했어. 
여기까지 잘 왔어. 
 
이제, 
하나님 차례야. 
 
천 배, 만 배로 
하나님이 갚아주실 거야. 
 
요셉이 큰 소리로 우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창세기 45:2> 

과거를 그리워할 필요 없어

“열정이 식었어.
뜨거웠던 시절이 그리워.”  
 
봄바람은 봄에만 불어. 
겨울에는 불지 않아. 
 
성령의 바람은 
하나님이 몰고 와. 
 
선풍기를 켜듯, 
간단한 게 아니야. 
 
민들레 씨앗은 
바람을 탄데. 
 
그러다, 
땅에 내려앉아
뿌리를 내린데. 
 
뿌리를 내린 씨앗은 
바람만으로는 못 자라.
 
땅속으로 파고들어 
양분을 당기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은혜를 구걸하지 마.
 
씨앗이 뿌리를 내리듯 
성경에 파묻혀. 
 
한 장 한 장 
성경을 넘기면 
바람이 불 거야. 
 
어디서 어떻게 불어오는지 모르는 
성령의 바람. 
 
종이 한 장이 일으키는 바람이 
너의 가슴을 뛰게 할 거야. 
 
과거를 그리워할 필요 없어. 
오늘 부는 바람으로  
훨훨 날아올라 뜨거워질 테니.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요한복음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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