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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우상

하나님보다 자녀를 사랑해요

자녀가 우상이 되면 안 된다는 설교를 자주 듣습니다. 말 자체에는 동의가 되는데, 구체적으로 실천하려면 답답해집니다. 자녀가 우상이 되지 않으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자녀를 양육해야 할까요? 
 
뻔한 답변부터 하겠습니다. 자녀가 우상이 되면 안 된다는 말뜻은 단순합니다. 자녀가 하나님보다 앞서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같은 말을 들어도, 듣는 사람에 따라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당당한 사람이 있습니다. “당연한 말이지. 어떻게 자녀가 하나님보다 앞설 수 있겠어. 하나님이 우선이야.”하나님이 최우선이라고 믿으니까, 그다음부터는 별 고민 없이 마음 편하게 삽니다. 자녀에게 올인하더라도, 위기의식이 없습니다. 자녀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면 되니까요. 바른 적용 아닙니다. 자기 합리화입니다. 
 
자책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자녀를 하나님보다 사랑했구나. 잘못 살았어. 회개하자.”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회개하고 난 다음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반복되는 죄책감을 느낍니다. 자녀 앞에서는 부모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자책합니다. 하나님과 자녀 사이에 끼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괴롭습니다. 바른 적용 아닙니다. 자기 비하입니다. 
 
조심스럽게 내 생각을 말해보겠습니다. 질문 자체에 해답이 있습니다. 당신은 자녀가 우상이 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어디까지가 하나님의 뜻인지 정말로 알고 싶은 겁니다. 문제를 붙잡고 고민하는 그 과정 자체가 해답입니다. 고민이 멈추지 않는 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내가 정답이라고 말하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정답과 해답은 뉘앙스가 다릅니다. 정답은 이미 정해진 답입니다. 해답은 풀이 과정에서 도출된 결과입니다. 자녀 양육에 정답은 없습니다. 해답이 있을 뿐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자녀를 제대로 키우고 있느냐, 중간에 채점할 정답지가 없습니다. 자녀를 다 키워보고 나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평가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그러니, 정답이 아니라 해답입니다. 
 
계속 고민하면서 자녀를 키우면 좋겠습니다. 자만하지 말고, 확신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계속 고민하면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계속 고민하면서, 자녀 앞에 서야 합니다. 엎드리고 서기를 반복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목사라고 자녀 잘 키우는 거 아닙니다. 오히려, 빈틈이 많습니다. 아이들 어릴 때, 목회 바쁘다고 함께 있어주지 못한 게 미안합니다. 보상해주고 싶은 게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자녀 욕심이 앞서면, 공감 없는 명분 앞세워 교회와 세상 앞에서 부끄러운 선택을 하게 됩니다. 목사라고 예외 없습니다. 나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부탁입니다. 계속 고민하세요. 고민이 끝나면 성장도 멈춥니다. 고민하는 당신은 안전합니다. 고민 없는 당신은 불안합니다. 다행입니다. 아직은 고민하고 계시니까요. 고민하는 한, 당신의 최우선 순위는 하나님입니다. 우상 숭배 그리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은 참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결핍의 또 다른 얼굴, 우상

예수님보다 사랑하는 대상이 있다면
그건 우상입니다.
 
맞습니다.
우상은 모든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이
우상을 대하는 방식에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대상이
눈앞에 있으면
바로 고개를 돌려버립니다.
 
자세히 살피지 않습니다.
무시하고 거리를 두려고 합니다.
 
죄책감 때문일 겁니다.   
우상이란 말을 듣기만 해도
죄책감이 밀려오니까요.
 
나는 우상에게 더 가까이 가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적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적을 제대로 알아야 이길 수 있습니다.
 
질문해보세요.
왜 그 우상을 섬기게 되었을까.
나는 왜 예수님보다 다른 것을 사랑하는가.
 
그 안에는 결핍이 있습니다.
결핍을 다른 것으로 채우려 했던 것이죠.
 
자신 안의 결핍을 직면하기 전에
고개를 돌리면 안 됩니다.
 
우상을 자세히 살펴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 우상에게 굴복하지 않습니다.
 
결핍을 정확히 모르면
똑같은 우상이
계속 다른 색 옷을 갈아입고
평생 당신을 쫓아옵니다.
 
위장술에 속아서
우상을 못 알아보면
평생 괴롭힘당합니다.
 
계속 같은 녀석에게
고통받기 싫다면
그 녀석 얼굴을
제대로 기억해야 합니다.
 
나는 생존해야 한다는
강박이 심합니다.
 
내 안에 자리 잡은
결핍입니다.
 
“아무도 날 지켜주지 않아.”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진다.”
 
나는 성취를 숭배했습니다.
자극적이고 매력적이었습니다.
 
사명으로 포장되니
속도가 붙고 성능이 좋아졌습니다.
 
믿음으로 도전하는 삶을 산다고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도전하고 이루고
도전하고 이루었습니다.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면
나는 전율을 느꼈습니다.
 
군침이 돌았습니다.
이루어내서 보여주고 싶었으니까요.
 
나는 중독되었고
망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내가 숭배하던 실체와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소름 끼쳤고
무서웠습니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더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드디어 그 녀석 얼굴을
보게 되었습니다.
 
검을 꺼내 그 녀석 심장에
박아주고 싶었습니다.
 
그 녀석을 숭배하는 동안
나는 너무나 고통스러웠으니까요.
 
그 녀석을 제거하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난 이제 압니다.
그 녀석 얼굴을.
 
제아무리 변장을 하고 찾아와도
나는 그 녀석을 분명히 알아볼 수 있습니다.
 
당신도 자세히 살펴야 합니다.
당신 안의 결핍을.
 
교묘히 찾아와 더러운 손으로
당신 안의 결핍을 어루만지는 우상을
물리쳐야 합니다.
 
오직 주님만이
당신의 결핍을 채울 수 있습니다.
 
자신 안의 결핍을 직면하고
그 결핍을 주님으로 채우는 것.
 
이것이 우상을 대하는
더 나은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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