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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에게 사랑받고 싶어요

아직 제대로 된 연애를 한 번도 못해봤어요.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 사랑 받고 싶어요. 외로움을 못이겨 음란물을 보게 되었고, 제 몸에 자극을 주게 되었어요. 그럴 때마다 죄책감이 들어요. 벗어날 수 있을까요. 정작 호감이 가는 남자를 만나면, 멀리 도망쳐버려요. 
 
나는 자매님이 스스로를 정죄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마음 편히 지금처럼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죄책감 없이 지금의 습관을 유지하라는 말이 아니에요. 잘못되었다 생각하시고, 벗어나고 싶다니까 드리는 말입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추측을 해봅니다. 자매님이 보내주신 사연을 읽어보면, 그 안에 결핍이 있는 것 같아요. 살아오면서 누군가에게 안정적이고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했을 겁니다. 가족마저도 사랑해주지 못한 것 같아요. 추측일 뿐입니다. 
 
나름의 근거가 있어야 겠지요. 질문 안에 근거가 있습니다. 자매님은 아직 연애를 못해보셨다고 했어요.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정작 호감가는 남자를 만나면 멀리 도망가버립니다. 이성과의 관계가 불편한 거예요. 서툰 겁니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들여다 봐야 합니다. 그래야, 돌볼 수 있어요. 
 
자신을 다르게 바라보면 좋겠어요. 자신을 음란물을 보면서 죄를 짓는 나쁜 사람으로 만들지 마세요. 반복해서 죄를 짓는 어리석은 사람으로 만들지 마세요. 그러면, 벗어날 수 없습니다. 
 
행위 그 자체만 가지고 평가하지 마시고, 왜 그런 행위를 하는가를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그 중심에는 외로움이 있습니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다룰 수 있어야 외로워서 반복하는 행위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배고픈 꼬마 아이가 있습니다. 집에서 밥을 주지 않아요.  엄마 아빠는 하루 종일 일하느라 바쁩니다. 아이가 밥을 먹었는지, 밥을 굶었는지도 모릅니다. 아이는 혼자 밥을 지어먹기에는 너무 어립니다. 밥을 안주면 굶어야 해요.  
 
배고픈 아이는 터벅터벅 문방구 앞에 갑니다. 친구들이 빨갛고 파란 불량식품을 나눠줍니다. 입에 넣고는 충격을 받습니다. 자극적인 맛이에요. 머리가 띵합니다. 자극적인 맛에 정신이 팔려 불량식품을 허겁지겁 주워 먹습니다. 
 
아이가 거울을 보다가 깜짝 놀랍니다. 불량식품으로 입술이 새파랗게 물들었습니다. 물로 닦아도 지워지지 않습니다. 엄마에게 혼나지 않을까 무섭습니다. 그대로 주저 앉아 웁니다. 후회합니다. 다시는 불량식품을 먹지 않을 거라고 다짐합니다. 울면서 집에 갑니다. 
 
집은 평소처럼 조용합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밥솥도 비었습니다. 아이는 혼자 누워 있다, 일어섭니다. 새파란 불량식품이 생각납니다. 자극적인 맛이 그립습니다. 그러면 안된다 하면서도, 발걸음을 멈출 수 없습니다. 문방구를 향해 뚜벅뚜벅 걷습니다. 
 
배고픈 아이에게 필요한 건 회초리가 아니라 따뜻한 밥 한 그릇입니다. 입술 파란 아이를 찾았다면, 그 아이를 때리지 마세요. 불량식품을 왜 먹냐고 다그치지 마세요. 사랑으로 안아주시고, 데려다가 잘 먹이세요. 따뜻한 밥 잘 챙겨 먹은 아이는 불량식품을 먹지 않아요. 
 
이제부터 자신을 돌보세요. 그때는 어려서 아무 것도 몰랐지만, 지금은 자매님 자신을 스스로 돌볼 수 있어요. 말처럼 쉽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우리 주님이 필요한 거죠. 
 
주님 앞에 나아가서 외롭다고 우세요. 외로운 자신을 안아달라고 기도하세요. 더 이상 불량식품에 매달리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세요. 주님이 매일 매일 따뜻한 밥을 지어 주실 겁니다. 시간 오래 걸리니까 조급해하지 마시고, 매일 매일 잘 챙겨드세요.

내 말 들어줄 사람 아무도 없어요

아무도 없네요.
말할 사람이 없어요.
 
어릴 적부터
그랬어요.
 
아빠도 엄마도
내 말 들어주지 않았죠.
 
난 내가 왜 고통받는지 알아요.
외로워서 그래요.   
 
그렇군요.
묻고 싶어요.
 
만약 모든 고통이 사라진다면
당신은 어떤 삶을 살게 될까요.
 
몰라요. 나는.
생각해본 적 없어서.
 
고통이 익숙해지면
고통이 삶이 됩니다.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면
원하는 대로 살 수 없어요.
 
상점에서 물건을 고르듯
원하는 걸 말하라는 게 아니에요.
 
당신의 삶에서 오래전에
희망이 사라져 버렸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희망을 말하려 할 때마다
말문이 막히는 당신이
답답해 보여요.
 
오래전에 혀가 굳어
말 못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입에서 소리는 났지만
무슨 소리인지 모르니
옆 사람이 통역을 해줘야 했죠.
 
소리를 못 내서 일까요.
그의 귀가 막혀버렸어요.
 
입과 귀가 막힌 그는
절망으로 고통받았죠.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예수님을 만났어요.
 
예수님은 그의 귀에
손가락을 넣고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말씀하셨죠.
 
에바다.
열려라.
 
그의 귀가 열렸어요.
그의 혀가 풀렸어요.
 
예수님의 말씀으로
그는 치유되었어요.
 
신기하게도
성경에는 귀가 열렸다는
표현이 맨 앞에 나와요.
 
귀가 열리고
혀가 풀리고
말이 나왔죠.
 
나는 당신의 입보다
귀가 먼저 열리기를 바라요.
 
에바다.
열려라.
 
귀가 열리면
당신은 들을 수 있어요.
그분의 말씀을.
 
너는 혼자가 아니야.
나는 너와 함께 있어.
언제나 그랬단다.
 
당신은 말할 사람이 없어
슬프지만
 
그분은 듣는 사람이 없어
슬프답니다.
 
당신이 들을 수 있다면
말할 수 있어요.
 
당신이 원하는 것을.
그분이 원하는 것을.

한 번 떠났던 사람은, 두 번 떠날 수 있어요

“내 상처 때문에 
그 사람을 힘들게 했어요. 
 
더 나은 사람이 되어서, 
그 사람을 다시 만나보고 싶어요.” 
 
당신 안의 외로움이 
당신을 비난하고 있어요. 
 
당신의 일방적인 잘못으로 
헤어진 것처럼 말하거든요. 
 
한 사람만의 잘못으로 
헤어질 수 없어요. 
 
당신의 상처로 
그 사람이 힘들었던 만큼, 
당신도 그 사람 때문에 힘들었어요. 
 
이별의 모든 책임이 
당신에게 있는 것처럼 말하지 마세요. 
관계를 깨뜨린 건 그 사람이에요.
 
당신은 그 사람이 그리운 거예요. 
다시 만나고 싶고, 
다시 사랑받고 싶은 심정이 전해져요. 
 
그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감정을 
억제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 사람을 찾아가느냐 마느냐는 
오롯이 당신의 선택이에요. 
당신의 선택을 존중해요. 
 
다만, 당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을 되찾고 싶어, 
당신이 아닌 모습이 될까 
걱정스러워요.
 
있는 모습 그대로의 
당신을 사랑해 주세요. 
 
그리고, 
있는 모습 그대로의 당신을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세요. 
 
한 번 떠났던 사람은, 
두 번 떠날 수 있어요. 
 
또다시 당신을 버릴 기회를 
주지 마세요. 
 
이 세상 그 누구도 
당신을 두 번 버릴 수 없어요.  
 
마약을 끊을 때 
금단현상이 일어나듯이,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면 
정서적 금단현상이 일어나요. 
 
당신이 식은땀을 흘리며 
괴로움에 눈물 흘릴 때, 
예수님이 당신의 손을 
잡아 주실 거예요. 
 
한순간도 
당신 곁을 떠나지 않고 
당신을 보살펴 주세요. 
 
잠시 괴로운 시간이 지나면, 
당신 안의 그리움의 독기가 
빠져나갈 거예요. 
 
이별의 고통을 이겨낸 당신은, 
생존자예요.   
 
다른 사람이 원하는 당신이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의 당신이 되어주세요. 
당신은 이미 충분해요.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하나님을 원망해요

결혼을 전제로 6년 동안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졌어요. 2년이 지난 지금은 남자친구에 대한 원망은 없어요. 차라리 헤어지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요. 하나님이 너무 원망스러요. 내 20대를 다 바쳐서 주님을 섬겼는데, 이제 남은 게 없어요. 하나님이 싫어서 교회도 가지 않아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원망스럽다고 말하면 편안하게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하면서 논리적으로 따져보겠지요.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내가 더 나은 사람이라서가 아니에요. 자매님이 진심을 알기 때문이에요. 
 
자매님은 그런 말할 자격 있어요. 주님을 위해 20대를 바쳐 봉사했기 때문이 아니에요. 주님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기 때문이 아니에요.  자매님이 주님의 딸이라서 그래요. 
 
딸은 아버지를 원망할 자격이 있잖아요. 말 그대로 딸이니가요. 딸이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으면 누구를 원망할 수 있을까요. 아버지를 사랑하니까 아픈 거예요.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해야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어요. 사랑하지 않으면 미련도 없지요.   
 
하나님이 진심을 담아 사과하면, 그 마음 누그러질까요. 하나님이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한다면, 그 마음이 풀릴까요. 하나님은 자매님의 아픈 마음 위로하고 싶을 거예요. 하나님도 자매님을 사랑하시니까요. 
 
자매님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는 자매님의 삶에서 일어난 작은 기적을 목격했어요. 자매님 안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난 일이지만, 다른 사람은 쉽게 이룰 수 없는 일이에요. 자매님은 과거의 남자친구에서 벗어났어요. 
 
헤어진 이성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은 쉽게 떨쳐내기 힘든 감정이에요. 누군가에게는 아마 평생 동안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는 복잡한 감정이랍니다. 자매님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동안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난 거예요. 원망을 담은 편지라도 주소는 정확히 적어주신 거예요. 
 
원망의 대상이 남자친구가 아니라 하나님이라서 감사해요. 만약 과거의 주소지에 끊임없이 편지를 보냈다면, 자매님의 편지는 길가에 버려졌거나, 다른 사람 손에 갈기갈기 찢겨졌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에게 보낸 편지는 하나님이 소중히 뜯어 읽어보셨어요. 잘 펴서 예쁜 상자에 담아 보관하고 계시고요. 
 
지금 하나님은 답장을 쓰고 계신 거예요. 생각보다 오래 걸리나봐요. 하나님의 시간 계산법은 우리와 조금 달라서 예측하기 어렵지요. 조급해하진 마세요. 머지 않아 하나님의 진심이 가득 담긴 편지가 도착할 거예요. 
 
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 정확한 주소를 적어주세요. 자매님이 하나님께 진심으로 듣고 싶은 말이 뭔가요. 하나님이 어떻게 해주시면 마음이 풀릴까요. 잃어버린 모든 시간이 아깝지 않을 만큼, 하나님께 받고 싶은 선물이 있으신가요. 주저하지 말고 말하세요. 하나님은 이미 알고 계시고 보내주실 준비를 마치셨어요. 
 
다시 교회에 나가려면,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나는 조급하게 지금 당장 교회에 다시 나가라는 말은 못하겠어요. 꽁꽁 얼어버린 자매님의 마음이 따스한 사랑으로 녹아내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내게 물어주신 덕분에 정답은 못 드려도, 진심은 전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 어디 있나요

어디 있나요.
살아 있나요.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아요.
 
글자 속에 있군요.
동화처럼.
 
나도 남들처럼
만나고 싶어요.
 
배운 대로 했어요.
소용없어요.
 
하늘에 있을까
안구에 하얀 먼지
내려앉아도
 
땅에 있을까
눈물이 망막을
잡아당겨도
 
없어요, 당신은.
절대로, 없겠죠.
 
나타나세요.
어디 있나요.
 
그를 찾고 있군요.
나도 그랬죠.
 
저기 계시나.
여기 계시나.
 
말똥말똥
눈으로 못봐요.
 
두근두근
마음으로 보여요.
 
어디 계시나.
찾지 마세요.
 
그가 계시니
여기 계세요.
 
기록된 말씀,
그분이 계시[啓示].
 
보고 싶은 만큼 볼 수 없어요.
보여주신 만큼 보여요.
 
먼지 후후 불어내고
가죽 표지 들춰보세요.
 
그는 온 세상에 계시지만
그의 말씀은 그 안에 있어요.
 
말씀으로 그를 봅니다.
말씀으로 나를 봅니다.
 
나를 보면 그가 보이고
그를 보면 내가 보여요.
 
말씀을 펼치세요.
말씀을 읽으세요.
 
바람이 불면
마음이 떠집니다.
 
언젠가
보게 될 겁니다.
 
그가 여기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지 않는 남자친구를 만나요

내 마음속에 외로움이 가득 있어요. 주님 한 분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제 신앙이 부족하다고 느껴져요. 제 신앙이 부족해서 그런지 교회를 건성으로 다니거나 아예 다니지 않는 남자 친구를 만나요. 솔직히 저는 지금 남자 친구가 좋아요. 신앙이 없어서 문제에요. 헤어지고 싶지 않아요. 계속 만나고 싶어요. 세상적인 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제 신앙이 부족해서 일까요?
 
아빠는 악마 같아요. 술만 먹으면 엄마를 때렸어요. 무책임하고 무기력한 아빠 때문에 가정이 고통받았어요. 엄마는 천사 같아요. 늘 제 편이 되어줬어요. 아빠 때문에 고생했는데, 언제나 밝은 모습을 잃지 않으셨어요. 그런 엄마를 보면 마음이 아파요. 늘 저와 제 동생을 위해 사셨거든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있었던 일이에요. 밤 11시쯤 학원을 마쳤어요. 아빠가 데리러 왔어요. 아빠 차를 타고 집에 가는데, 아빠가 말씀하실 때 너무 피곤해서 하품을 했어요. 아빠가 운전하다가 말고 제 뺨을 때렸어요. 아빠가 말하고 있는데 버르장머리 없이 하품을 한다고. 화나고 무섭고 슬펐어요. 집에 와서 엄마에게 말했어요. 두 분이 제 앞에서 싸웠어요. 아빠는 엄마를 또 때렸어요. 나 때문에 엄마가 맞았잖아요. 마음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어요.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내 답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요. 자매님은 자신의 신앙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믿지 않는 남자 친구를 사귀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계시고요. 나는 자매님이 처한 상황보다 믿지 않는 남자 친구를 만나면서 느끼는 죄책감이란 감정에 더 많은 관심이 있어요.
 
반대로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자매님의 신앙이 깊고, 믿음이 좋은 남자 친구를 만났다고 해보죠. 그러면, 외로움이 사라질까요. 아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아니에요.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아요. 외로움은 없애야 할 감정이 아니라 돌봐야 하는 감정이에요.
 
자매님은 외로움에 취약한 삶을 살아오셨어요. 폭력적인 아버지, 희생하는 어머니, 불안한 두 분의 관계. 자매님의 정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거예요. 고등학교 1학년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버지에게 맞았던 사실을 어머니에게 말했어요. 도움을 주려던 어머니 역시 아버지에게 맞았어요. 어머니는 자매님을 지켜줄 수 없었어요. 아마 그 후로는 자매님이 힘든 일이 있어도 어머니에게 말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조심스럽게 추론하는 거예요. 혼자 참고 견디는 것에 익숙해졌을 거예요.
 
나는 자매님의 신앙이 깊어지기를 바라고, 믿음 좋은 남자 친구를 만나기를 바라요. 하지만, 그전에 나는 자매님이 스스로를 정죄하지 않기를 부탁드려요.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그 누가 손가락질 할 수 있겠어요. 얼마나 외로우면 그러겠어요.   
 
불안정한 관계 속에서 자매님이 얼마나 고통받으며 살아왔는지 하나님도 알고 계세요. 하나님은 믿지 않는 남자 친구를 만났다고 화를 내시는 분이 아니세요. 오히려, 하나님은 마음 아파하세요.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 누구라도 곁에 있어주기를 바라는 자매님을 보시며 안타까워하는 하나님의 얼굴이 나는 보여요. 하나님은 자매님이 사랑받기 원하세요.
 
그렇다고, 아무나 만나라는 말은 아니에요. 가능하다면, 예수님을 의지하고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세요.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믿음 있다고 좋은 남자 아니고, 믿음 없다고 나쁜 남자 아니에요. 복음이 없다면 복음을 전해주세요. 복음이 있다면 복음을 공유하세요. 서로의 진심이 중요해요.   
 
신앙이 성숙하고 성경 지식이 많아져도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아요. 제아무리 믿음이 좋은 남자 친구를 만나도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아요. 그 누구도 자매님 안에 결핍을 채워줄 수 없어요. 외로움은 스스로 돌봐야 하는 감정이에요. 예수님의 사랑과 그분의 말씀으로 외로움을 돌봐주세요. 절대로 포기하지 말아주세요.
 
나같이 부족한 사람에게 질문해주셔서 감사해요. 외로운 당신을 하나님이 따뜻하게 안아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기억은 지독하다

사람마다 끔찍한
기억이 있어요.
 
기억이 떠오르면
우울해져요.
 
벗어나고 싶으니까
잊으려 해요.
 
잊으려 마세요.
잊을 수 없어요.
 
잊으려 할수록
생생해져요.
 
증명해볼까요.
따라 해보세요.
 
지금 이 순간부터 절대로
토끼 생각하지 마세요.
 
하얀색 털이 뽀송뽀송한
토끼를 떠올리지 마세요.
 
토끼 등에 빨간색으로
숫자 5라고 쓰여 있어요.
 
보면 안 돼요.
절대로 떠올리지 마세요.
 
아….
당신은 결국 보고 말았네요.
 
이제 아시겠죠.
기억은 지독한 녀석이에요.
 
잊으려 할수록
더 생생해지죠.
 
새로운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잊지 않고
기억하는 거예요.
 
끔찍한 기억을 계속
떠올리는 말인가요?
 
아니요.
그런 말이 아니에요.
 
기억하는 방식을
바꿔보자는 말이에요.
 
기독교는
기억하는 종교에요.
 
사람은 자꾸 잊어버리고
하나님은 자꾸 기억나게 하세요.
 
성경 전체에서
계속되는 이야기죠.
 
사람이 은혜를
잊으면
 
하나님은 은혜를
기억나게 하세요.
 
사람이 사랑을
잊으면
 
하나님은 사랑을
기억나게 하세요.
 
언제나 하나님은
잊혀진 기억을 되살려주시죠.
 
기억이 끔찍한 이유는
그곳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이에요.
 
잊지 말고
기억하세요.
 
그곳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지금 무슨 말하는 거예요!
난 완전히 혼자였다고요!
 
하나님은커녕
상처 입은 나만 보여요.
 
맞아요.
쉽지 않아요.
 
부탁드려요.
포기하지 마세요.
 
하나님을
끝까지 찾아내세요.
 
하나님은 그곳에 계세요.
당신은 혼자일리 없어요.
 
어둠 속에서 울고 있는
꼬마가 있어요.
 
울긋불긋 온몸에
멍 자국 난 아이.
 
죽은 시체처럼
담요에 덮여 있었죠.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어요.
 
잊혀지지 않아요.
어제처럼 생생하죠.
 
난 고통받을까요.
아니요.
 
난 혼자가
아니었어요.
 
끔찍한 기억에 찾아와 주신
하나님 덕분에
 
이제 나는 마음 편히
그 사건을 기억할 수 있죠.
 
그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살아나거든요.
 
삶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
나는 그 꼬마와 눈이 마주쳐요.
 
너도 살았으니
나도 살 거다.
 
당신이 내 글을 읽는
이유를 알아요.
 
내 기억 때문이고
당신의 기억 때문이죠.
 
내가 혼자가 아니듯이
당신도 혼자가 아니에요.
 
사건을 기억하면
당신은 불행해져요.
 
하나님을
기억하세요.
 
나는 당신이 행복하기를
바라니까요.

아빠가 돌아가셨어요

아빠가 오랜 투병생활을 하시다가, 지난달에 돌아가셨어요. 아버지의 죽음이 너무나 슬퍼요. 교회 공동체에서 맡았던 일을 내려놓고 잠시 쉬려했는데, 주변에서 그러지 말래요. 그럴수록 하나님을 더 붙잡으라고. 슬픔의 영에 사로잡히면 일어서기 어렵다고 참고 견디래요. 
 
슬퍼하세요.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슬프지 않겠어요. 일 년이든, 십 년이든, 평생이든 슬프면 우세요. 아버지가 일생 동안 그립다면, 그건 감사한 겁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는 감정에 죄책감을 느낀다면, 그건 잘못된 겁니다. 
 
나는 자매님에게 “슬픔의 영”에 사로잡히지 말라고 말한 사람의 의도를 모르겠습니다. 성경 어디서 나온 말인가요. “슬픔의 영”이란 표현은 처음 들어봅니다. “슬픔의 영”이란 말은 문맥상 부정적인 뜻이겠지요. 나는 목사입니다. 성경을 진지하게 연구하는 사람이에요. 이 순간만큼은 권위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성경에 그런 말 없습니다.      
 
그 말을 전해 들을 당시의 상황과 분위기 나는 모릅니다. 섣불리 그분에 대해서 평가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하고 싶습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성경에 없는 말을 하면 위험합니다. 성경을 왜곡하면 안 됩니다.  
 
쉬고 싶으면 쉬세요. 교회 일을 감당하는 것 자체가 본질이 아닙니다. 자매님이 원하시는 대로 결정하세요. 교회 봉사할 사람 항상 부족해도, 교회 문 안 닫습니다. 하나님이 잘 이끌어가십니다. 자매님 하나 쉰다고 교회 멈추는 거 아니에요. 잠시 쉬다가 기운 나면 다시 섬겨주세요. 
 
아버지 잃은 슬픔은 잘 간직하세요. 울고 싶으면 울고, 슬프면 슬프세요. 나는 몇 년 전, 3월에 장인어른을 잃었는데, 지금도 슬퍼요. 보고 싶고 생각나고 그래요. 매년 3월이 되면, 울적하고 괴롭습니다. 보고 싶고 그리우면 장인어른 묻혀 계신 추모 공원에 아내 몰래 다녀오고 그럽니다. 내 아내의 아버지를 잃은 슬픔도 이리 큽니다. 자매님의 슬픔은 말로 할 수 없지요.
 
누군가 아직도 거기에 머물러 있냐고 비웃어도 상관없어요. 내 믿음을 똥값으로 취급해도 상관없습니다. 나는 자매님의 믿음이 고귀하다고 생각합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세요. 그 눈물 마를 때까지 주님이 위로해주실 거예요. 오늘부터는 마음 편히 우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아

하나님 사랑이
느껴지지 않아요.
 
하나님은
날 사랑하지 않아요.
 
사랑받은 적 있나요.
누구에게라도.
 
아무도 없었군요.
내 마음이 아파요.
 
내 부모도 날 사랑하지 않았어요.
이제 하나님도 날 거부해요.
 
하나님이라고 부르면
그나마 괜찮은데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면
마음이 불편해요.
 
아버지라고 하는 순간
복잡한 감정이 밀려와요.
 
무서운 아버지.
무관심 아버지.
 
그 아버지가
이 아버지가 아닌데.
 
이상하다.
참 이상하다.
 
외롭고
쓸쓸해져요.
 
그렇군요.
그럴 수 있어요.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을 수 있죠.
 
사랑받은 적 없어서
사랑받는 게 뭔지 모른다고 하셨죠?
 
자녀를
사랑하시나요.
 
조건 없이
사랑하신다고요.
 
자녀 대신
죽을 수도 있다고요.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했다면서
자녀를 사랑하는 이유가 뭔가요.
 
어디에서
시작된 사랑일까요.
 
당신 안에 사랑이 없잖아요.
사랑받지 못했다면서요.
 
자녀 대신 죽을 수 있다는 말,
진심이란 걸 알아요.
 
혹시,
정말 혹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랑
받은 적 있나요.
 
누군가 당신을 위해
대신 죽기라도 한 것처럼
 
당당해서
물었어요.
 
이제 아시겠나요.
당신은 사랑받고 있어요.
 
부모 사랑으로
하나님 사랑을 느낄 수 없다면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추적하세요.
 
상처투성이 당신도
자녀를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으면서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쉽게 결론 내릴 수 있나요.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사랑을 느껴보세요.
 
내 이야기
잠시 해도 될까요.
 
내 딸이 이마에 깊은 상처를 입어
피를 콸콸 쏟은 적이 있어요.
 
이 삼십 바늘 꿰매서
치료했어요.
 
딸을 지켜주지 못했단 생각에
나는 괴로웠어요.
 
밤이면 밤마다 딸이 잠들면
그 옆에서 울고 또 울었죠.
 
속상해 죽겠는데
하나님이 한 마디 툭 던졌어요.
 
네 딸 살이 찢기니 괴롭겠구나.
나도 내 아들 살이 찢길 때 괴로웠다.
 
온 세상이 멈춘 것처럼
고요했어요.
 
내가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내 딸이 다치지 않았다면.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토록 깊이 느낄 수 있었을까요.
 
부모인 우리는 자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어요.
 
나 외로워요.
당신은 어디 있나요.
 
당신이 하나님을 찾을 때마다
그가 말씀하시기를 바랍니다.
 
네가 네 자녀를 사랑하듯
나도 너를 사랑한다.
 
하나님,
하나님 아버지.
 
당신이 하나님을
어떻게 부르든지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이
당신에게 전해지기를 기도합니다.

연약해도 괜찮아요

나 힘들었어요. 
잘 이겨냈어요. 
 
지금은 괜찮아요. 
다 지난 일이에요. 
 
예수 믿고 나아졌어요. 
계속 좋아지겠죠. 
 
더 이상 과거의 내가 아니니까요. 
나는 새로운 사람이에요. 
 
예전처럼 고통받고 싶지 않아요. 
예수님 붙잡고 이겨낼 거예요. 
 
당신의 말에 동의해요. 
잘 견뎌줘서 고마워요. 
 
하지만, 알고 있나요?
당신 이야기를 말할 때
남의 이야기를 말하듯 해요. 
 
나는 왜 이렇게 
당신의 목소리가 슬프게 들릴까요. 
조심스럽지만 그냥 말할게요. 
 
당신은 강해질 필요 없어요.  
말씀은 당신을 강하게 만들지 않아요. 
오히려 의존적으로 만들어요. 
 
세상에서는  
약하고 의존적인 사람을   
실패한 사람이라고 불러요. 
 
예수님은 그렇지 않아요. 
예수님은 당신이 약해지기를 바라세요. 
예수님만 바라보기 원하세요. 
 
예수님 앞에서 씩씩할 필요 없어요.
작고 초라해지세요. 
예수님 없으면 못 사는 사람처럼. 
 
당신에게는 힘들지 몰라요. 
살아오면서 강해야만 했잖아요.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이 
혼자서 일어서야 했어요. 
 
모든 사람이 당신을 보며 
이제는 끝났다고 말했을 때도 
몇 번이나 다시 일어났어요. 
 
기적처럼 살아줘서 고마워요. 
정말 정말 고마워요. 
 
살아난 당신에게 필요한 건 
독립심이 아니에요. 
 
더 이상 혼자가 아닌데 
자꾸 혼자가 되려고 하면 
당신은 더 외로워요. 
 
약하다는 느낌
의존적이라는 느낌 
그 자체로 나쁜 게 아니에요. 
 
대상이 분명하면 괜찮아요.
주님이면 안전해요. 
 
복음에서는 
약하고 의존적인 사람을 
강한 사람이라고 불러요. 
 
약할수록 강해지니까. 
강할수록 약해지니까. 
 
울고 싶으면 우세요. 
그래도 괜찮으니까요. 
 
언젠가 당신을 다시 만나는 날, 
나는 보고 싶어요. 
 
약해도 괜찮은 당신을. 
약해도 편안한 당신을.

엄마가 전화할게

민수는 자정이 넘어 집에 들어왔다. 수능이 10개월 앞으로 다가온 시점이었다. 학원에서, 독서실로 갔다가 집으로 오는 것이 하루 일정이었다. 
 
민수가 집에 도착했을 때, 집은 난장판이었다. 아빠와 엄마가 부부 싸움을 한 것이다. 민수는 깊은 한숨을 내뱉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민수는 바로 잠에 들 수가 없었다. 학원에서 내준 과제가 적지 않았다. 졸린 눈을 비벼가며, 책상 앞에 앉았다. 
 
밖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지만, 익숙한 소리였다. 책에 집중하려고, 이어폰으로 귀를 막았다. 
 
그때였다. 이어폰 너머로 와장창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민수는 깜짝 놀라 밖으로 뛰어나갔다. 거실에서 부모님을 마주한 민수는 짜증이 극에 달했다. 
 
장식장이 쓰려지면서, 거실 바닥에 유리 파편을 쏟아냈다. 엄마와 아빠는 거칠게 몸싸움을 했다. 엄마는 아빠의 손목을 잡고, 사력을 다해 버텼다. 아빠는 엄마의 손목을 뿌리치려고 안간힘을 썼다. 
 
아빠가 엄마의 손을 떨쳐내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엄마의 뺨을 내리쳤다. 
 
찰싹.
 
아빠의 솥뚜껑 같은 손에 엄마는 힘없이 쓰려졌다. 민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아빠에게 눈을 부릅뜨고, 소리를 질렀다. 
 
“제발 그만 좀 하라고!” 
 
민수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아빠가 깜짝 놀랐다. 아빠는 민수에게 가까이 다가와서 말했다. 
 
“뭐라고? 다시 한 번 말해 봐.” 
 
“그만 좀 하라고!” 
 
민수가 아빠에게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아빠가 민수의 멱살을 잡았다. 
 
“이 자식이, 어디서 아빠한테 그딴 식으로 말해?” 
 
민수는 바닥에 쓰려져 울고 있는 엄마와 눈이 마추쳤다. 
 
민수는 이성을 잃었다. 
 
아빠의 손을 뿌리치고, 아빠의 멱살을 잡았다. 
 
“이제 그만하라고 했지! 당신이 아빠야? 왜 술만 처먹으면,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민수의 아빠도 이성을 잃었다. 민수를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했다. 민수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아빠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죽자 살자 덤벼들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고 유리 파편 위로 넘어졌다. 민수가 아빠 위로 올라앉아서, 아빠를 사정없이 팼다. 
 
아빠는 민수를 떨쳐내고 일어서려고 온몸을 비틀었다. 유리 파편이 등에 비벼졌다. 
 
민수의 엄마는 오열하면서, 민수를 뜯어말렸다. 엄마의 울음소리를 들은 민수는 그제서야 이성을 되찾았다. 
 
미끄럼을 타듯이 아빠 몸에서 떨어져 나간, 민수는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질렀다. 
 
민수의 아빠는 터진 입술에서 새어 나온 피를 빨아당겼다가, 침으로 뱉어냈다. 몸을 일으켜, 벽에 기대고는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아빠의 등 뒤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엄마가 흐느껴 울면서, 아빠의 등에 박힌 유리 파편을 빼내고, 수건으로 흐르는 피를 막았다. 
 
민수는 견딜 수 없었다. 아빠를 때린 자기 손을 잘라버리고 싶었다. 주먹을 쥐고 거실 벽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시멘트로 차갑게 굳어진 벽은 민수의 손을 부러뜨렸다.  
 
퍽.
 
민수의 손가락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엄마의 귓가를 울렸다. 엄마는 민수를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민수도 엄마의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엄마를 끌어안은 민수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빠는 비틀비틀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갔다. 
 
#  
 
“며칠 지나고, 아빠가 이야기 좀 하자고 했어요. 아빠가 맨 정신에 이야기하기 힘들다고, 술 한 잔 하자고 하시더라고요. 술은 원래 아빠한테 배우는 거라고 하셨어요.” 
 
#
 
민수의 아빠는 말없이 소주 한 잔을 따라 민수에게 건넸다. 민수는 잔을 받아들고 머뭇거렸다. 
 
아빠가 말했다. 
 
“마셔. 아빠가 주는 술은 일단 받는 거야.” 
 
민수는 소주를 입속에 털어 넣었다. 학교 사물함에 있는 가그린 맛이었다. 가그린을 삼켜버린 듯 찝찝한 기분이었다.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데, 아빠가 한 잔을 더 따르며 말했다. 
 
“민수야. 아빠가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아빠는 반쯤은 울먹거리는 목소리였다. 
 
소주 병을 입에 물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꺼억하고 트림을 내뱉으면서, 민수에게 말했다. 
 
“있잖아. 아빠하고 엄마 사이에는 네가 모르는 일이 있어.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야. 어른들의 문제니까, 네가 끼어들면 안 돼.” 
 
민수는 하고 싶은 말을 참았다. 민수가 들이킨 알코올이 민수의 목구멍을 틀어막았다. 뜨거운 숨만 콧구멍 밖으로 새어 나올 뿐이었다. 
 
아빠의 연설은 세 시간이나 지속되었다. 아빠의 말이 장황하게 무한 반복되었지만, 민수는 아빠의 말을 경청했다. 
 
아빠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다혈질의 아빠는 풀이 죽어지냈다. 민수가 아빠에게 달려든 후로, 아빠는 집에서 존재감 없이 지냈다. 무기력한 아빠의 모습을 볼 때마다, 민수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아빠의 처량한 모습이 날개가 부러진 독수리 같았다.    
 
#
 
“아빠와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한 달이 넘도록 민수는 아빠와 말을 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서로 말다툼을 하다가도, 민수가 들어오면 서로 말을 멈췄다. 아빠는 방으로 들어가고, 엄마는 밤늦게 들어온 민수를 챙겼다. 
 
“늦게 피곤하지?” 
 
엄마가 물었다. 
 
“엄마, 나 어떻게 하지?” 
 
민수가 엄마에게 되물었다. 
 
“뭘 어떻게 해?” 
 
“답답해서 미쳐버릴 것 같아.” 
 
엄마는 할 말을 잃었다. 말없이 민수를 바라볼 뿐이었다. 
 
“어떻게 평생을 그렇게 살아? 나 때문에 참고 사는 거면, 그럴 필요 없어. 나는 괜찮으니까, 엄마도 그냥 엄마 인생 살아.” 
 
엄마는 민수의 침대에 힘없이 걸 터 앉았다.  
 
“일단, 수능부터 끝내. 그다음에 이야기하자.”   
 
민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눈물이 터지기 직전이었다. 
 
“알겠어, 엄마. 이제 나가.” 
 
엄마가 방문을 닫고 나가자, 민수는 책상에 엎드려 울었다. 지우개를 삼킨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PC방으로 와.” 민수의 친구 K가 말했다. 
 
“알겠어, 기다려.” 민수는 터벅터벅 걸어, 학원 근처 PC방으로 들어갔다. 
 
PC방을 한 바퀴 돌아봐도 K와 친구들이 없었다. 민수는 K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야?” 
 
민수가 물었다. 
 
“아, 우리 밖으로 나왔어. 분식점으로 와.” 
 
K가 말했다. 
 
민수는 슬슬 짜증이 밀려왔다. 때마침 지나가던 택시를 잡아타고, 분식점 앞에 내렸다. 분식점에서도 친구들은 보이지 않았다. 
 
민수는 다시 K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야?” 
 
“우리 다시 PC방으로 왔어. 빨리 이쪽으로 와. 우리 지금 세 명이라, 한 명 더 필요해. 최대한 빨리 와라.” 
 
민수는 화가 치밀었다. 
 
PC방에서 마주한 친구들은 게임에 빠져있느라 민수가 온 것도 몰랐다. 민수가 K의 옆자리에 앉았다. 
 
K가 말했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조금만 기다려. 이 판 끝나면, 2 대 2로 붙자.” 
 
민수는 K의 옆에 앉아, 인터넷 브라우저를 켜면서 짧게 말했다. 
 
“알겠어.” 
 

 
“화나지 않았을까? 보통 고등학생이면, 욕하고 소리 지르고 난리 한 번 났을 텐데….” 
 
내가 민수에게 물었다. 
 
“화는 났지만, 표현할 수 없었어요.” 
 
민수가 말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어?” 
 
“두려웠던 것 같아요.” 
 
“무엇이?” 
 
“친구들이 나를 따돌릴까 봐요. 예전에도 그런 적이 있어요.” 
 
“그 친구들이?”
 
“아니요. 중학생 때 친구들이요. 제가 화를 한 번 냈는데, 친구들이 나를 멀리했어요. 중학교 2학년 때 있었던 일인데, 졸업할 때까지 혼자 다니고, 혼자 밥 먹었어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어볼 수 있을까?” 
 
#
 
“빌려 간 만화책 언제 갖다 줄 거야?” 
 
민수가 L에게 물었다. 
 
“아, 깜빡했다. 내일 갖다 줄게.” L이 대답했다.  
 
“자꾸 왜 그래?” 
 
“뭘? 내일 준다고 했잖아.”
 
“그 소리 벌써 세 번째야.”
 
“뭐래? 갖다 준다고 이 새끼야.” 
 
L은 민수의 멱살을 잡았다. 
 
민수와 L은 서로가 휘두른 주먹에 얼굴이 상했다. 민수가 L을 힘으로 눌러 넘어뜨렸다. L의 위에 올라타, 주먹으로 L의 얼굴을 때리기 직전이었다. 
 
그 순간, 눈앞이 번쩍했다.
 
L의 절친, C가 주먹으로 민수의 관자놀이를 가격한 것이다. 민수는 의식을 잃고 쓰려졌다. L과 그의 친구들이 민수를 사정없이 짓밟았다. 
 
만화책을 돌려달라는 말 한마디, 그 대가는 혹독했다. 친구들은 민수를 괴롭혔다. 같이 어울려주는 친구 하나 없이 중학교를 쓸쓸히 졸업했다. 
 

 
“그래서, 말을 못 했어요.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긴장돼요. 내가 뭔가 작은 실수라도 하면, 친구들이 나를 어떻게 하지 않을까 두렵기도 하고….” 
 
나는 민수에게 중학교 시절 그 친구들의 이름을 묻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 달려가, 그 녀석들을 박살 내주고 싶었다. 
 
나는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고, 민수에게 물었다. 
 
“솔직하게 한 번 말해주지 않을래? 다시 PC방에 찾아갔을 때,  미안한 내색 하나 없던, K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뭐였을까?” 
 
민수는 생각에 잠겼다. 
 
“글쎄,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요? 막상, 말을 하려니까 생각이 잘 안 나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떡였다. 
 
민수가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다, 두 손을 겹쳐서 깍지를 끼더니 생각이 났다는 듯 말했다.
 
“어차피 다시 PC방으로 올 거면, 분식집으로 왜 부른 거야? 무슨 똥개 훈련시키는 것도 아니고.” 
 
“지금 감정이 어때?” 
 
“말하고 나니까 그냥 시원한데….”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줄래?” 
 
“솔직히 저는 제가 친구들에게 말을 잘 못하고, 제 표현을 못 하는 게, 집 안에서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해요. 저는 외동이고, 부모님과도 대화를 별로 안 하니까요. 제 감정, 제 생각을 표현할 줄 모르는 것 같아요. 혼자만 계속 답답하고….” 
 

 
민수가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어느 날, 도둑이 든 것처럼 집 안이 어수선했다. 
 
당황한 민수는 큰 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집에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다급하게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당황해서 닫지 못한 현관문 앞에 아빠가 나타났다.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였다. 비닐봉지에 소주와 맥주, 오징어와 땅콩 같은 것들이 담겨있었다. 
 
“엄마는요?” 
 
아빠는 대답하지 않았다. 소주 병을 손에 쥔 채, 벌컥벌컥 들이켜고, 손등으로 입술을 닦았다. 여전히, 현관 앞에 기댄 채였다. 
 
“엄마는 어디 갔냐고요?” 
 
아빠가 소주 병을 현관 대리석 바닥에 내리꽂으며 소리를 질렀다. 소주 병이 깨지면서 유리 파편이 사방에 흩어졌다.  
 
“몰라, 이 새끼야. 내가 어떻게 알아?” 
 
민수의 예상이 맞았다. 엄마는 급하게 짐을 챙겨 집을 나간 것이다. 
 
민수가 수능을 마칠 때까지 곁에 있어주고 싶었던 엄마의 바람은 물거품이 되었다. 
 
민수는 아빠를 밀치고, 밖으로 걸어나갔다. 계단을 뛰어내려가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의 전화기는 꺼져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민수는 계단을 헛디뎌 우당탕 넘어지고 말았다. 민수에게는 일어날 기운이 남아있지 않았다. 엎드린 채로 엉엉 울었다. 
 
엄마와 함께 살고 싶었던 것이 민수의 바람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엄마와 따로 나와 살고 싶었다. 민수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민수는 그날 밤, 엄마를 잃고 자신을 잃었다. 
 

 
“민수야, 엄마야.” 
 
일주일이 지나고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 어디야?” 
 
“지금 독서실 앞이니까, 얼른 내려와.” 
 
민수는 번개처럼 계단을 뛰어내려와 엄마 앞에 섰다. 
 
“엄마!”
 
민수는 어린아이처럼 엄마를 끌어안았다. 엄마도 민수를 끌어앉고 소리 없이 울었다. 엄마를 끌어안은 채로 민수가 물었다. 
 
“엄마, 어떻게 된 거야? 왜 갑자기 집을 나갔어?” 
 
엄마는 민수에게서 몸을 떼어내고 조용한 곳에 앉아 대화를 나누자고 말했다. 두 사람은 독서실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았다.
 
엄마가 민수에게 그날 밤의 일을 말했다.  
 

 
민수의 아빠는 여느 때처럼,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왔다. 민수의 엄마는 빨래를 개고 있었다. 민수의 아빠는 다짜고짜 엄마에게 시비를 걸었다. 
 
짜증이 난 엄마는 아빠의 말을 무시했다. 엄마가 아빠를 무시하자, 아빠는 이성을 잃었다. 엄마가 개놓은 빨래를 발로 차서 헝클어뜨렸다. 
 
엄마는 아빠를 쳐다보지도 않고, 빨래를 주섬주섬 집어 들었다. 다시 자리에 앉아, 침착하게 빨래를 갰다. 
 
아빠는 엄마를 사정없이 때렸고, 엄마는 아빠에게 달려들었다. 감정이 격해진 아빠는, 주방에서 칼을 꺼냈다. 
 
엄마에게 칼을 휘두르며, 같이 죽자고 말했다. 엄마는 어디 한 번 죽여보라며, 목에 핏대를 세우고 아빠를 자극했다. 
 
아빠가 칼로 엄마를 내리쳤다. 엄마가 팔로 얼굴을 가렸다. 칼은 엄마의 팔 등에 부딪히고 멈췄다.
 
그 순간 아빠는 하얗게 질렸다.
 
아빠는 엄마를 위협할 생각이었다. 실제로 칼이 엄마의 몸에 닿을 줄을 몰랐던 것이다. 
 
칼날 부위가 아닌 칼등이 엄마의 팔에 내려앉았지만, 이미 늦었다. 엄마 눈에 아빠는 짐승이었다. 
 
엄마는 아빠를 밀쳐내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아빠가 뭐 하는 짓이냐고 힘으로 뜯어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이번에 칼을 집어 든 사람은 엄마였다. 칼을 휘두르며, 아빠에게 소리쳤다. 
 
“나 한 번만 더 건드리면, 그때는 죽여버릴 거야.” 
 
아빠는 물러섰다. 
 
엄마가 작별 인사도 없이 민수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엄마의 말이 끝나고, 민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집으로 뛰어가 아빠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중요한 사람은 엄마였다. 
 
민수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그럼 이제 집에 안 오는 거야?” 
 
“응, 그럴 것 같아.” 
 
“그럼, 지금은 어디서 지내?”
 
“나중에 알려줄게. 지금은 말 못 해.” 
 
“그럼, 어떻게 먹고살아? 돈은?” 
 
“그것도 천천히 생각해보려고….” 
 
민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뿐이었다. 
 
잠시의 침묵을 깨고, 엄마가 말했다. 
 
“민수야. 넌 엄마 이해하지? 엄마가 왜 이럴 수밖에 없는지….” 
 
엄마가 울먹거렸다. 
 
민수는 엄마의 손을 잡고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전에도 말했잖아. 나는 괜찮다고. 엄마는 엄마 인생 살아. 나도 조금만 시간 지나면 독립할 거야. 그때는 내가 다시 엄마 찾으러 갈게. 우리 같이 살자. 조금만 참아, 엄마.”
 
민수의 말이 끝나자 엄마는 흐느껴 울었다. 그리고, 조금은 단호한 말투로 민수에게 말했다. 
 
“민수야. 엄마는 걱정하지 마. 너도 네 인생 살아야 해. 엄마는 씩씩하게 잘 살 거야. 너 가고 싶은 대학에 가고, 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야 해. 엄마 때문에 희생하지 말고, 알겠지?” 
 
민수는 불안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민수에게 말했다. 
 
“민수야, 너무 늦었다. 우리 이제 일어나자. 아빠한테는 엄마 만났다는 말 하지 마, 알겠지?” 
 
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 언제 다시 만나?” 
 
“엄마가 다시 전화할게.” 
 

 
민수는 독서실에 올라가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아빠에게 달려가 따질 작정이었다. 모든 것이 아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민수 역시 맨 정신으로 대화할 수 없었다. 냉장고를 열어, 아빠가 사다 놓은 술을 사정없이 마셨다.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졌다. 머리가 어지러워서 똑바로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퇴근한 아빠가 집에 들어와서, 술에 취한 민수와 마주했다. 
 
아빠는 기가 막혔다. 
 
“너 지금 뭐 하는 짓이냐?”
 
“아빠 때문이야.” 
 
“뭐? 이게 미쳤나?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아빠 때문에 엄마가 나갔어.”
 
그 순간 뭔가 번쩍했다. 아빠가 민수의 뺨을 때린 것이다. 
 
“정신 차려, 이 새끼야. 어디서 아빠한테 술 주정이야!”
 
“아빠한테 배웠지. 내가 어디서 배워?” 
 
민수는 바닥에 넘어진 채로, 소금에 담근 미꾸라지처럼 온몸을 비틀었다. 머리를 쥐어뜯고, 발버둥을 치면서, 오열했다. 
 
아빠는 바닥에 누워 미쳐 날뛰는 민수에게 차가운 물 한 바가지를 쏟아부었다. 
 
“정신 차리고, 여기 앉아 봐.” 
 
민수는 어안이 벙벙했다. 몸을 일으켜 앉았는데, 머리카락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래서, 엄마 지금 어디서 지낸다고 말해주디?” 
 
민수는 고개를 저었다. 
 
“아빠가 예전에 말했지. 어른들 문제니까 끼어들지 말라고.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고 말한 거 기억나지?” 
 
민수가 고개를 끄떡였다. 
 
“3년 전부터, 엄마가 이상했어. 처음에는 내가 오해하나 싶었어. 엄마가 아니라고 잡아떼니까, 뭐 방법이 있어야지.” 
 
민수의 정신이 또렷해졌다. 아빠의 말을 토씨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듯, 상체를 바로 세웠다. 
 
“그러다, 큰맘 먹고 흥신소에 부탁을 했더니, 아니나 달라? 딱 걸렸지. 진명이 삼촌, 너도 알지? 그 새끼랑 네 엄마랑….”
 
민수는 고개를 가로 저였다. 그럴 리 없다고 말하려던 참이었다. 
 
“엄마가 왜 어디있는지 말 못하는 지 알아? 그 자식이랑 같이 살림 차린 거야. 네 눈에는 엄마가 천사로 보이지? 엄마가 뭐 집에 붙어있은 줄 알아? 나 회사 가고, 너 학교 가면 엄마도 집에 없었어. 아빠가 맨 정신으로 살 수 있었겠냐? 아빠 인생은 3년 전에 끝났어.” 
 
아빠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인생의 쓴맛을 담배 연기로 누그러뜨렸다. 
 
“내가 너한테 별말을 다한다. 너는 신경 쓰지 말고 너 할 일이나 잘해. 정신 똑바로 차리고, 대학이나 가라고. 
 
아빠가 뼈빠지게 번 돈 너한테 다 쓰는 거야. 꼭 성공해서, 보란 듯이 잘 살아. 아빠처럼 살지 말고, 알겠어?” 
 
민수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바닥에 떨어지는 것이 물방울인지 눈물방울인지, 민수조차 알 수 없었다. 
 

 
정식 상담에서 민수를 만난 것이 아니었다. 
 
청소년 수련회 강사로 초대를 받아 저녁 집회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을 때, 담당 전도사님이 조심스럽게 민수의 이야기를 꺼냈다. 
 
수련회 일정 중에, 잠시 시간을 내어 민수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느냐는 부탁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물놀이를 할 시간에, 민수와 조용히 앉아 두 시간 정도의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나, 두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민수의 이야기가 끝나고 남은 시간은 고작 10분이었다. 
 
산더미 같은 질문을 뒤로하고, 나는 억지로 대화를 마무리해야 했다. 
 
나는 아빠의 관계, 엄마와의 관계, 그리고 친구들과의 관계를 언급했다. 
 
교과서에서 나올 법한 진부한 말들이었다. 듣는 사람이 마음만 답답해지는 그런 말들이었다. 
 
고맙게도, 민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떡이며 경청했다. 
 
다음 집회 일정 때문에, 우리는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했지만, 못내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나는 민수의 등을 두드려주면서, 힘내라고 말했다. 
 
민수는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고, 출입구를 향했다. 나는 그 자리에 선 채로, 민수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민수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돌아서서 내게 말했다. 
 
“그런데, 목사님…. 저도 치유될 수 있을까요?” 
 
나는 블랙홀에 몸이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민수는 어쩌면 나 자신이었다.
 
내가 민수를 향해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갈라진 자아가 하나로 합쳐지는 것을 느꼈다. 
 
그대로 민수를 내보낼 수 없었다. 나는 민수에게 다가가 민수를 끌어안았다. 
 
민수는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그리고,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나도 목사님처럼, 치유돼서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좋은 아빠가 되고 싶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어요. 부모님처럼 살고 싶지 않아요. 제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나는 민수의 손을 꼭 붙잡고, 고개를 끄떡였다. 
 
내가 위로랍시고 한마디를 내뱉는다면, 민수의 어깨에 내려앉은 희망이 깃털처럼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민수가 나가고, 나는 의자에 힘없이 걸 터 앉았다. 
 
나는 인정해야 했다. 민수는 내게 모든 것을 말했지만, 나는 민수에게 진실을 말하지 못했다. 
 
정작 나 자신은 치유되지도 않았고, 좋은 아빠도 아니었으며, 행복한 가정을 이루지도 못했다. 
 
아버지와 단둘이 마주 앉으면 어색함이 흐르고, 어머니를 향한 연민으로 잠을 뒤척인다. 
 
아내에게는 여전히 서투른 남편이고, 자녀들에게는 욱하고 사과하는 일을 반복하는 일관성 없는 아빠다. 
 
오히려, 나는 민수에게 묻고 싶었다. 
 
‘민수야. 목사님도 치유될 수 있을까? 내가 자격 있는 사람일까? 언젠가 네가 아빠가 되어 나타난다면, 나도 그때 진실을 말할게.’  
 
무능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예수님을 찾았다. 집회 장소 어딘가에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앉아 있는 민수를 찾아가셔서, 따뜻하게 안아주시기를 바랐다.  
 
또다시 아이러니였다. 
 
정작 나는 방문을 열고 나갈 용기가 없었다. 작은 방 안에 조용히 머무르고 싶었다. 잠시라도, 감정을 추스르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없었다. 
 
문밖에서, 누군가 노크를 했다. 담당 전도사님의 목소리가 문 너머로 들려왔다. 
 
“목사님, 이제 나가실 시간입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나는 자격을 갖추지 못한 채로, 사람들 앞에 섰다. 
 
내 시선이 군중을 향했다. 아이들은 와글와글 시끄러웠다. 밝은 조명에 눈이 부셨다. 
 
나에게는 오직 한 사람, 상처 입은 한 사람만이 중요했다. 내 관심은 민수를 향했다. 
 
저 멀리 맨 뒷자리에, 민수가 보였다. 민수의 옆자리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다. 민수는 말없이 조용했다.  
 
그날 밤, 설교는 기도였다.

내 마음 아무도 모를 거야

요즘 사람들이 나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어요.
 
나도 당신처럼
상처를 극복하고 싶어요.
 
상처받은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요.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상처를 극복하지 못했답니다.
 
당신이 모르는
내 문제가 있어요.
 
어디 가서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처지라 나도 힘들답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약함이 강함이라고.
 
뻔한 말 같지만,
나는 그 말을 받아들였어요.
 
학교 다닐 때
천재 수학 선생님이 있었어요.
 
수학 문제 하나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풀어내는 사람이었죠.
 
해답에 없는 풀잇법을
수시로 만들어 내기도 했지요.
 
연필 없이 눈동자 몇 번 굴리면
답이 척하고 나와버리니 처음 보는 사람은 놀라지요.
 
안타깝게도 그 선생님은
학생들을 오래 가르치지 못했어요.
 
답답했나 봐요.
문제 못 푸는 학생을 이해 못했어요.
 
몇 달 있다가
어디론가 훅 떠나버렸습니다.
 
남들보다 뛰어나면 그 나름
힘든 것도 있나 봐요.
 
수학을 못했던 내게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있어요.
 
내가 질문하면 선생님은 말했죠.
어디, 같이 한 번 풀어볼까?
 
한참을 기다리면
멋쩍어하며 말씀하셨죠.
 
야, 이거 어렵네.
자, 이제 알려줄게.
 
나는 왜 그 선생님이
그렇게 좋았을까요.
 
내담자가 상담실에 들어오면
나도 모르게 말합니다.
 
같이 한 번
이야기해 볼까요?

내 옆에는 아무도 없어요

나는 혼자야.   
그래서 외로워.  
 
당신이 혼자라는 말. 
그래서 외롭다는 말. 
반은 맞고 반은 틀려요. 
 
사람은 절대로 혼자일 수 없어요. 
생각과 함께 지내니까요. 
 
혼자 있다고 해서 
무조건 외로운 게 아니에요. 
 
혼자 있는 그 자체보다 
혼자 있을 때 찾아오는 
생각이 더 중요해요. 
 
내 옆에는 아무도 없어. 
나는 평생 그랬어.
벗어날 수 없어.  
 
한 번 찾아온 생각은 
떠날 생각을 하지 않고 
마음을 짓밟거든요. 
 
수도꼭지를 잠그듯 
생각을 틀어막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참 어렵죠. 
말처럼 쉽지 않아요. 
 
나라고 별 수 있나요. 
나도 답답할 때 많아요. 
 
나를 괴롭게 하는 생각이 
모래알처럼 많지만 
하나만 말해볼게요. 
 
읽어주는 사람 없을 때는 
글이 잘 써졌어요. 
 
읽는 사람 늘어나니까 안 써져요.
미칠 노릇이죠. 
 
글이 막히면 
파도처럼 생각이 밀려와요.  
 
네 글을 누가 읽어. 
아무도 안 읽어. 
유치하고 편협해. 
 
생각이 안 사라져요. 
글 쓸 때마다 찾아와서 괴롭혀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방법 없어요. 
그냥 끌려다녔죠. 
 
정말 잘 쓰고 싶은데 
뜻대로 안되니까 괴로웠어요.  
 
고생고생하다가 
좋은 방법 하나 찾았죠. 
 
내가 나한테 
단호하게 말했어요. 
 
야, 그냥 써. 
잘 쓰지 말고 그냥 쓰라고. 
 
그래서 그날부터 
그냥 써요. 
 
매일 새벽 4시 기상. 
200자 원고지 20장, 
글자로 4천 자.
 
아무 생각 없이 
모니터 화면을 글자로 
채워 넣어요.
 
가끔 이 방법이 
안 통하는 날이 있어요. 
울죠. 많이 울어요. 
 
이래도 안되는구나. 
정말 안되는구나. 
 
막 울고 있으면 
주님이 옆에 오신 것처럼
마음이 따뜻해져요. 
 
한 사람. 
오직 한 사람. 
상처 입은 한 사람에게 
나를 전해주렴. 
 
아, 그랬구나. 
내가 욕심부렸구나. 
잘못 생각했구나.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글을 써요.  
오직 한 사람을 위해.  
 
아가페 사랑. 
긍휼의 마음. 
진정성. 
 
내가 글쓰기 전에 
입버릇처럼 
반복하는 말이에요. 
 
당신에게 전해주고 싶어요. 
그분의 따뜻한 사랑을. 
 
당신이 외로운 것처럼 
나도 외로워요. 
 
내가 외롭지 않으면 
당신이 한심해 보일지 몰라요. 
다행히 나도 외로워요. 
 
내 글이 당신에게 닿고 
당신이 그분께 닿으면  
우린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에요. 
 
나와 당신 사이
새로 놓인 다리로 
그분이 건너가시기를 바라요. 
 
투닥투닥 망치를 두드려 
다리를 짓는 마음으로
타닥타닥 글을 써요. 
 
그분이 당신에게 
건너가실 수 있을 만큼 
튼튼한 다리를 
만들고 싶어서. 
 
당신이 혼자라서 
외로운 게 아니에요. 
 
주님이 계시지 않아 
외로운 거예요.
 
당신이 혼자라고 느낄 때 
주님을 전해주고 싶어요.  
 
나는 더 이상 나쁜 생각이 
당신을 짓밟도록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내 몸 상해도 돼요. 
망치질을 쉬지 않을 거예요. 
 
다리가 튼튼한가요. 
그래요. 
그분을 전해드릴게요. 
 
주님이 건너가세요. 
당신을 안아주세요. 
 
이제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요.

너만 내가 싫은 게 아니야

“남편이 애들한테 욕하는 모습을 보면 참을 수가 없어요.”
 
F에게는 초등학교 5학년 딸, 여섯 살 남자 아이가 있다. 둘째 아이가 산만해서 사람들이 집에 오면 곤란한 일이 생긴다. 손님 어깨에 발을 올리면서 목말을 태워달라고 말하거나 먹는 음식에 손을 넣고 장난을 친다. 그녀에게 스트레스였다. 
 
그녀가 말했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스트레스를 받지만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은 게 더 힘들어요. 자주 싸우거든요. 성격이 안 맞아요. 연애기간도 짧았고, 사랑해서 결혼했다는 확신도 없고….” 
 
그녀는 남편이 다혈질이라고 했다.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고 욕하고 윽박질렀다. 그녀는 참을 수 없었다. 퇴근해서 육아를 돕지 않고, 혼자 씻고 자는 모습이 보기 싫었다. 남편에게 막내를 씻겨 주고 재워달라고 부탁했다. 남편은 마지못해 아이를 씻긴다. 아내는 불안하다. 아이는 눈에 물이 들어갔다며 징징거리고, 남편은 “사내자식이 눈에 물이 들어갔다고 우냐”고 짜증을 낸다. 
 
“당신, 나와! 내가 씻길게. 아이 하나 씻기면서 짜증내고 그래. 애 상처 받아.” 아내가 말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지금 잘 씻기고 있었어.” 남편이 말했다. 
 
“당신 매번 그러잖아. 뭐 부탁하면 짜증내고. 나한테 짜증 못 내니까 애들한테 그러는 거잖아. 내가 어려운 부탁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애 좀 씻겨달라고 하는데, 그게 그렇게 힘들어?” 
 
“누가 힘들대? 나는 당신이 중간에 끼어들어서 애 앞에서 나 무시하는 게 이해가 안가. 당신이 그러니까 애들도 날 무시하잖아.” 
 
“똑바로 하면 되잖아. 애들한테 상처 주지 말고. 아빠라는 사람이 툭하면 애들한테 화내고 짜증내고.”
 
“됐어. 그만해. 당신만 옳지. 난 나쁜 사람이고.” 
 
“자기가 그렇게 느끼나 봐. 난 그런 말 한 적 없어.”
 
두 사람의 연애 기간은 4개월. 짧았다. 
 
“제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어요. 그러다 남편을 만났어요. 이 사람이면 괜찮겠다 싶어서 결혼했죠. 부모님 집에서 탈출하고 싶었거든요. 벗어나고 싶었어요.” 
 
남편은 자상하고 따듯한 남자였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만. 아내는 아이들을 대하는 남편의 태도가 불만이었다. 그는  아이들에게 여유가 없어 보였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그럴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아이들에게 화내는 모습을 보면 견딜 수가 없었다. 
 
“아주 조금만 더 노력하면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는데 사소한 일로 화를 내서 모든 것을 망친다.” 
 
아내가 남편을 바라보는 관점이었다. 
 
아내는 삼남매 중 첫째였다. 아버지와 관계가 좋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이들 앞에서 어머니를 무시했다. 경제적인 능력도 없었다. 어머니가 장사를 해서 생계를 책임졌다. 
 
아버지는 술과 도박에 빠져 가정을 돌보지 않았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많이 맞았다. 첫째라는 이유로. 동생들이 잘못하면 아버지는 그녀를 혼냈다. 사춘기에 접어든 그녀는 아버지의 분노를 견딜 수 없었다. 내성적인 그녀는 아버지에게 반항하지 못했다. 일기를 쓰면서 견뎠다. 글을 쓰면 마음이 편해졌다. 
 
어느 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말했다. 
 
“나도 네가 싫다. 너만 내가 싫은 게 아니야. 나도 네가 싫어.” 
 
그녀는 그 자리에 서 있을 수가 없어서 도망치듯 집을 나왔다. 눈물이 앞을 가려 걸을 수 없었다. 다리가 풀리면서 돌에 걸려 넘어졌다. 무릎이 까져 피가 났지만 통증을 느낄 수 없었다. 마음에 난 상처가 더 아팠다. 
 
아버지가 그녀의 일기장을 봤다. 아버지가 혼내고 때릴 때마다 아버지에 대한 욕을 썼다. 아버지가 정말 싫어서가 아니라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어서 그랬다. 
 
그녀가 말했다. 
 
“저는 아버지가 싫은 게 아니었어요…. 일기장에는 뭐든 쓸 수 있는 거죠? 다들 그렇게 하잖아요. 아버지를 사랑하고, 이해하고 싶었어요. 그날 아버지는 제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어요. 그 충격이 너무 커서 제가 아닌 모습으로 살았어요. 나중에 알았죠. 그게 우울증이었더라고요. 아버지의 말을 잊을 수가  없어요. 어떻게 자기 딸한테 ‘나도 네가 싫다’라고 말할 수 있죠? 그러면 안 되잖아요. 아버지란 사람이….”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그녀는 남편을 만났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남편은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 남자라면….’ 
 
그녀는 결혼을 결심했다. 해방감을 느꼈다. 두 번 다시 아버지를 보고 싶지 않았다. 남편은 그녀의 상처를 보듬어 줬다. 처음으로 자신을 아껴주고 사랑해준 사람이다. 그러나 남편이 아이들에게 화를 내면 그에 대한 고마움이 싹 사라졌다. 남편이 던진 말 때문에 아이들이 상처받을 것이 두려웠다.  
 
남편 역시 깨달아야 했다. 그의 말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해로운지. 그녀는 남편이 잘못을 인정할 때까지 물러서지 않고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자녀들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남편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어요. 아버지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요. 아버지 역할에 대해 보고 느끼고 배울 시간이 없었던 거죠. 그래서 아빠로 살아가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면 안쓰러워요. 그를 도와줘야 하는데 제 마음에 상처가 있어서 그런가 봐요. 남편은 내 아버지가 아닌데 왜 이렇게 남편 말에 민감할까. 그는 아버지보다 훨씬 낫거든요. 가끔 아버지가 없었던 남편이 부러워요. 그런 아버지 밑에서 상처 받고 사느니, 차라리 없는 게 낫지 않았을까….”  
 
***
 
 
상처를 인식하면 상처는 치유된다. 인지는 감정, 행동과 연결되어 있다. 상처를 인지하는 순간, 감정에 변화가 일어난다. 사람은 로봇이 아니기 때문에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도식화해서 단순하게 말할 수는 없다. 사람 안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을 추적하면, 인지․감정․행동으로 변화가 일어난다고 추론해 볼 수 있을 뿐이다. 
 
변화를 위한 첫 단계는 상처를 인지하는 것이다. 상처를 발견하고 깨닫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상처에 다가갈 수 없도록 왜곡된 신념이 겹겹이 싸여 있어 상처를 쉽게 인지할 수 없다. 상처의 실체를 발견하기 위해 왜곡된 신념을 하나씩 풀어헤쳐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한 사람이 길을 걷다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쳐다봐서 기분이 나빠졌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사람마다 다르게 대처할 것이다. 쳐다보는 사람을 무시하고 지나칠 수도 있고, 왜 쳐다보냐며 따져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행동하기 전에 자신이 왜 기분이 좋지 않은지 생각해보는 게 먼저다. 
 
누군가 자신을 쳐다볼 때, 기분이 나빠졌다면 마음 어딘가에 왜곡된 신념이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다. 왜곡된 신념은 감정을 결정한다. 감정을 망치는 것이다. 
 
‘저 사람이 날 계속 쳐다보네. 나를 무시하는 건가?’
 
진실을 보려면 왜곡된 신념을 걷어내야 한다. 왜곡된 신념을 변화시키면 상황을 다르게 볼 수 있다. 다르게 생각해보자. 지나가는 사람은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이다. 혹시 아는 사람 아닌가 하고 빤히 쳐다보았다.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는 정보가 새롭게 들어오면 인지에 변화가 일어난다. 
 
‘아, 날 무시하는 것이 아니구나. 시력이 좋지 않아 쳐다본 거네.’ 
 
감정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저, 그 사람 아니에요. 길 조심히 걸으세요.” 
 
상처가 만든 왜곡된 신념은 감정을 망치고, 망가진 감정은 잘못된 행동을 만든다. 사람은 진실에 의해 상처입지 않는다. 왜곡된 신념으로 상처입고 파괴된다. 감정이 망가진 채, 잘못된 행동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간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가 크다. 아버지의 경제적인 무능력, 폭력과 학대. 그녀는 상처 때문에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남편 역시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버지와 망가진 관계가 남편에게서 재현된다고 생각할 때, 삶이 무너진다고 생각한다. 왜곡된 신념이 그녀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진실을 볼 필요가 있다. 왜곡된 신념이 그녀를 더 이상 파괴하지 못하도록. 
 
아버지가 일기장을 훔쳐본 날, 솥뚜껑 같은 아버지 손으로 뺨을 맞은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 마음은 입술보다 부드럽고 약하다. 살짝 때려도 찢어져서 피가 난다. 그녀의 상처는 치유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그때 그 일을 다시 말하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그녀는 다시 생각해야 한다. 
 
“아빠가 제 책상을 청소해주려고 했나 봐요. 그날 일기장을 숨기지 못했어요. 책상 위에 있었죠. 딸의 노트를 보고 싶었나 봐요. 노트를 펼치는 순간, 그 안에 상상하지 못했던 내용이 담겨 있었던 거죠. 딸이 아버지 욕을 했으니까요. 아버지도 상처받았을 거예요. 
 
노트를 손에 들고 있는 아버지 모습이 떠올라요.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화나서 참지 못했다면 학교에서 돌아온 즉시 저를 때렸겠죠. 그날 맞지는 않았어요. 그때 아버지의 목소리는 마치 삶에서 중요한 것을 잃은 듯 절망적이었어요. 
 
아, 잠깐만요. 그건 아버지가 제게 한 말이 아닐 수도 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건 아버지가 스스로에게 한 말일지 몰라요. ‘나도 내가 싫다. 너만 내가 싫은 게 아니야. 나도 내가 싫어.’ 아니에요. 분명히 제가 싫다는 말이었어요. 아, 혼란스럽네요. 잊었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엄마가 그랬어요. 그날 아버지가 이불에 누워 우셨다고. 그렇게 서럽게 우는 모습을 처음 보셨다고….” 
 
아버지는 딸에게 상처 준 가해자였다. 그러나 그녀는 아버지가 상처의 희생자일 수 있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했다. 아버지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많은 상처를 남겼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에 대해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엄마와 친척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모아서 아버지의 어린 시절을 희미하게 그려보았다.
 
“아버지도 불쌍한 사람이었어요.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아버지 큰형이 할머니를 설득해 집을 담보로 사업을 했나 봐요. 사업이 망했죠. 아버지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는데, 할머니는 쓰러지고, 큰형은 도망가고, 아버지와 누나들이 집 마당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대요. 가족이 다 흩어졌고, 아버지는 고아원 같은 데서 살았다고 했어요. 막노동을 시작했고, 결혼해서 처자식 먹여 살리려고 무리하게 일하다 허리를 다쳤어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인생이 뜻대로 안 되니까, 술에 의지하신 거죠….” 
 
아버지가 상처의 희생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되어버린 것처럼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그녀 역시 누군가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어떤 방식으로든 타인에게 전가된다. 아픈 상처가 건드려질수록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을 공격한다. 사람은 상처받기 싫은 만큼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며 살게 된다. 상처받은 사람이 언제나 희생자가 아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가해자가 된다. 
 
남편의 절제되지 않은 분노는 자녀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 다행히, 하지만 남편은 분노조절 장애, 이중인격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화가 나면 화를 내고, 짜증나면 짜증을 내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분노 자체를 없앨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분노,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표현 방식이 문제다. 아내는 남편과 상호작용을 통해 협력해야 한다. 남편은 분노를 적절히 다스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고, 아내는 그녀의 상처가 부부관계에 반영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남편은 절 사랑하지 않을 거예요. 남편보다 덩치도 크고, 목소리도 크니까 부담스럽지 않을까요? 매일 잔소리만 하니까 정떨어졌을 거예요. 물어본 적은 없지만….” 
 
남편이 말했다.
 
“아내가 잘못 알고 있네요. 아내는 사랑스러워요. 제가 아내가 원하는 만큼 좋은 남편이 되지 못해 미안하죠. 못된 성격 고치는 것도 힘들고. 아버지가 된다는 것도 어렵고.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려면, 아내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아내가 조금만 방법을 바꿔주면 좋겠지만, 하루아침에 바뀌는 건 힘드니까 서로 노력해야죠.” 
 
남편은 아내 어깨에 손을 올렸고, 아내는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덩치 큰 아내의 어깨가 조용히 떨렸다.

말을 잃어버린 남자

감정을 표현하지못하는
남자를 만났어요.
 
사랑하는 마음을
가족에게 전할 수 없었죠. 
 
표현할 수 없었어요.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말 안 해도 알겠지.
내 마음 알 거야.
 
그는 그렇게 믿고 있었죠.
나는 안타까웠어요.
 
그의 가족들은
그를 오해하고 있었거든요.
 
상처 주는 남편.
상처 주는 아빠.
 
가족이 말하는
그의 모습이었어요.
 
그와 마주하고 하고
난 알게 되었죠.
 
그의 얼굴 속 해맑은 소년이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어요.
 
소년이 대신 말해주더군요.
그의 진심을 말입니다.
 
그의 진심을 조심히 받아들어
가족들 두 손에 전해주고 싶었어요.
 
아내의 눈물이 멈출 테니까.
가족의 눈물이 멈출 테니까.
 
당신은 알고 있나요?
 
그가 어릴 때 아무도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가 혼자서 슬픔을 삭이며
긴긴밤 눈물로 지새웠던 나날을.
 
그는 표현하는 방식을
잃어버렸어요.
 
슬픔이 슬픔인지
절망이 절망인지
억울이 억울인지
모르고 살았죠.   
 
그 남자가
내 앞에 앉아 있어요.
 
나는 그에게서
내 모습을 봅니다.
 
내가 새로 배운 언어,
당신에게 전해주고 싶어요.
 
A, B, C.
가, 나, 다.
 
처음에는 어려워요.
그래도, 우리 포기하지 말아요.
 
당신과 내가 힘을 합치면
우리 가족이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
 
당신은 아직 서투를 뿐이에요.
시간이 필요해요.
 
내가 당신의 가족에게 부탁할게요.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엄마를 지켜줄 거예요]
 
엄마를 위해 살아가는
청년이 있었어요.
 
그의 엄마는 약하고
슬프고 외로운 사람이었어요.
 
아빠가 술을 먹고 들어와
집안 살림을 때려 부수는 날이면,
 
엄마는 뒤돌아 누워
하염없이 울었지요.
 
그는 생각했어요.
엄마를 지켜주겠노라고.
 
엄마는 아들에게
걱정을 털어놓았어요.
 
아들은 말없이
엄마의 걱정을 들어줬어요.
 
듬직한 아들이다.
아들이 있어 살아간다.
 
엄마는 그런 아들이 고마웠어요.
아들 덕분에 포기하지 않았죠.
 
하지만, 아들은
조용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어요.
 
대가를 치러야 했어요.
언제나 외로웠어요.
 
채워지지 않았어요.
뻥 뚫린 가슴을 메울 수 없었죠.
 
용기 내어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무례하다면 용서해주세요.
 
이야기 잘 들어주는 자녀는
부모에게 축복이 아니에요.
 
그 아이는 언젠가 홀로
혹독한 대가를 지불해야 해요.
 
부모 대신 무거운 짐을 지고
숨조차 수 없는 자녀들을 나는 만납니다.
 
상처투성이 자녀가
부모를 원망하지 않아요.
 
얼굴을 가리고
엎드려 엉엉 울어요.
 
아빠가 불쌍하다며.
엄마가 불쌍하다며.
 
이제 당신 차례가 왔어요.
 
기운 내 일어나
자녀의 눈물을 닦아주세요.
 
당신의 그 무거운 짐은
주님께서 들어주실 테니.

고개를 돌리지 말아요

나는 무서워요. 
현실을 마주할 수 없어요. 
 
하나님이 없었다면
나는 살 수 없었을 거예요. 
 
무너지는 순간마다 
버틸 힘을 주셨죠. 
그래서 살았어요. 
 
그렇군요. 
지금은 왜 힘든가요. 
 
하나님이 멀게 느껴져요. 
기도해도 대답하지 않으세요. 
 
난 알고 있어요. 
계속 버텨야 해요.  
 
이 시간이 지나면, 
하나님이 날 만나주실 거예요.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어요. 
당신에게는 패턴이 있어요. 
 
현실을 마주하기 두려워
고개를 돌려버려요. 
 
고개를 돌린 쪽에 
하나님이 계신 건 다행이에요. 
하나님을 찾아줘서 고마워요. 
 
하지만, 당신의 하나님은 
언제나 멀리 계세요. 
평소에는 보이지 않아요. 
 
당신이 고통받는 문제 속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아요. 
 
고개를 돌린 쪽에 계세요. 
아주 멀리. 
 
당신에게 부탁할게요. 
고개를 돌리지 말아요.
 
고통스러워도 
끝까지 현실을 바라보세요.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아요. 
당신이 고통받는 문제 속에 계세요. 
 
고개를 돌려버리면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없어요. 
 
눈물만 닦아주시는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죠. 
 
고통을 해결하시는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죠. 
 
하나님이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신다는 말이 아니에요.  
 
문제 속으로 걸어가는 
당신의 손을 꼭 붙잡아주신다는 말이에요. 
 
고개를 돌리지 않고 만날 수 있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당신에게 필요해요. 
 
더 이상 닫힌 문 앞에서 울지 마세요.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 하나님을 찾지 마세요. 
당신은 고아가 아니에요.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 옆에 계세요. 
아주 가까이. 
당신의 숨소리마저 듣고 계시죠. 
 
멀리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당신 가까이에서 안아주시는 
하나님을 선물하고 싶어요. 
 
내 마음 전해졌나요.
자, 그럼 앞을 보세요.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 
 
씩씩하게 걸으세요. 
하나 둘. 하나 둘. 
당신이 두려워하는 현실을 향해. 

상자 안으로 들어와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죠? 저는 이해가 안 돼요. 문자도 남고, 부재중이라고 뜨잖아요. 몇 시간 동안 전화를 안 받으면 당연히 걱정되지 않겠어요?” 
 
남편이 말했다. 
 
“미용실 갔다고 말했잖아. 여자는 남자와 달라. 몇 시간 걸린다고. 아는 언니하고 밥 먹고 머리하느라 확인을 못했어. 문자보고 바로 전화했잖아.” 
 
아내가 남편 말을 잘랐다. 
 
두 사람은 대화를 이어갔다. 
 
“말이 안 되잖아. 밥 먹으면서 문자 확인 못해? 미용실 가기 전에도 마찬가지야. 확인할 시간 있었잖아. 미용실에서 요즘 다 휴대폰 가지고 이것저것 하던데, 당신은 휴대폰을 맡겼다고 했잖아.”
 
“휴대폰만 따로 맡긴 게 아니라, 가방에 넣고 통째로 맡겼다고. 오랜 만에 만난 언니랑 대화해야 하니까.”
 
“참 나, 내가 보통 점심 먹고 전화하잖아.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여보, 내가 어린애가 아니잖아. 전화를 안 받으면 그냥 사정이 있다고 생각하면 안 돼? 미용실에서 나와 바로 전화했잖아.” 
 
“세 시간이나 지난 다음이지.”
 
“됐어. 그만해.”
 
“당신이 걱정 되어서 그런 건 알지?”
 
“내가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는 건 이해했어?” 
 
“아니, 솔직히 이해는 안 가.”
 
“이해가 안 된다고? 내가 계속 설명했는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앞으로 개선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지.”
 
“내가 한 말을 못 믿겠다는 거잖아.”
 
“아니, 믿는데 이해가 안 간다고.”
 
“나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누가 거짓말한데? 그건 논점을 벗어난 거야. 당신이 전화를 안 받은 이유에 대해서만 말해. 주제에서 벗어나지 말고.”
 
“나는 당신이 날 이해 못하는 게 이해가 안 돼. 사실대로 말했잖아. 다음부터는 전화 받겠다고 했고.”
 
“그래. 다음부터는 전화를 받아. 그럼 대화 끝난 거지?”
 
“당신 정말 답답하다. 나 숨 막혀 죽을 것 같아.”
 
J는 결혼 8년차 두 아들의 엄마이다. 남편의 가정적인 모습에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때로 그가 자신을 구속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힘들다고 말했다. 남편은 회사와 집 밖에 모른다. 다른 취미 활동도 하지 않는다. 활동적이고 사교적인 사람이지만 두 아이를 키우며 아내가 힘들어하자 아내에게 우선순위를 두었다. 
 
“남편이 도와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반쪽짜리 고마움이죠. 제가 뭘 해달라고 하면 싫어하는 게 눈에 보여요. 자기 방식이 있다고, 잔소리 하지 않아도 알아서 하니 명령하지 말라고요. 제가 무슨 명령을 하겠어요? 남편이 무시하니까 더 이상 부탁하고 싶지 않아요. 도와준다고 뭘 해놔도 제가 다시 해야 돼요. 부탁한대로 해주면 좋겠는데 자기 방식으로 하니까 저도 피곤하고 힘들죠.” 
 
남편은 계획대로 일이 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의 규칙에는 점심에 아내에게 전화하고 안부 묻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정해진 시간에 전화를 하기 위해 나름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회의 중이거나 출장을 가서 동료들과 차를 마시다가도 잠깐 나와 전화를 한다. 집에서 혼자 고생하고 있는 아내를 위해 다짐한 행동 수칙을 지킨다. 
 
아내가 전화를 받으면 기분이 좋다. 가족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하고 싶다. 그런데 전화를 받지 않으면 기분이 묘하다. 아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걱정이 되면서도 약간은 무시당한다는 생각이 든다. 몇 번 전화해도 받지 않으면 기분이 나빠진다.  
 
남편이 말했다. 
 
“아내가 좀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저는 아내를 통제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제 마음을 표현하는 거예요. 주변 사람들은 아내를 속이면서 자기 시간을 가져요. 저는 그런 사람들이 싫어요. 무엇을 위해 일하나요? 가족을 위해서죠. 제 신념입니다. 
 
가족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제게는 최고의 보상이죠. 아내는 모를 거예요.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만족을 줄 수는 없거든요. 그때 마음이 좀 힘듭니다. 제가 어린애처럼 느껴져서 자책감이 들어요. 그러다 다 잊고 새로운 마음으로 아내를 돕죠. 아내는 잔소리하고 투정하고, 계속 원하는 것을 말하지만 묵묵히 합니다. 완벽한 건 없잖아요.” 
 
아내가 말했다. 
 
“이 사람이 뭘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자기 방식 대로 하고 혼자 보람을 느끼죠. 남편이 상처받을까봐 직접 말한 적은 없지만요. 
 
자기가 하는 일, 한 말에 대해 원하는 방식으로 반응해주지 않으면 얼마나 괴로운지 몰라요. 남편은 자기가 얼마나 가정적인 사람인지에 대해 인정해달라고 하지만 저는 동의할 수 없어요. 제가 고맙다고 느껴야 고마운 거죠. 답답하니까 답답하다고 말하는 거예요.”
 
남편은 대학에서 행정업무를 보고 있다. 각 부서의 업무가 충돌할 경우, 중재하는 역할을 한다. 그는 업무 스트레스가 크다고 말한다. 서로 의견이 좁혀지지 않으면 개인적으로 찾아가 충분한 대화를 하고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회사는 경직되어 있어서 윗사람에 말에 그대로 따라야 했다. 업무지시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대화 역시 상사가 명령하듯 말했다. 
 
“회사라서 어쩔 수 없죠. 명령하듯 말해도 다 따라야 해요. 아내가 명령하듯 말하는 게 싫어요. 도와줘야지 생각하다가도  명령하듯 짧게 말하면 얼마나 기분이 나쁜지. ‘내가 집에서도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나?’ 싶어요. 다정하게 말해주면 좋잖아요. 아내가 말만 예쁘게 하면 무엇이든 도와줄 수 있어요. 제가 여러 번 말했는데 아내는 못 알아듣더라고요.” 
 
아내는 남편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말했다. 뉴스 기사를 보고  의견을 말하면 그는 조용히 비웃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은 자기 생각이 분명했고, 그것을 관철시켰다. 아내 생각은 늘 모자라고 부족한 듯이 말했다. 
 
그래서 그녀는 받은 대로  되돌려 주고 싶었다. 아내가 남편보다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영역은 육아와 살림이었다. 그녀가 남편을 가르칠 수 있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무시당한 감정을 그대로 돌려줬다. 
 
***
 
아이들은 종이 상자 안에 들어가기 좋아한다. 이유는 모른다. 상자 안이 아늑해서 일까 아니면 혼자만의 영역이라 생각해서 그런가? 혼자 들어가 놀 수 있는 상자는 아이들에게 놀이 공원만큼 즐겁다. 
 
상자 안에 들어가 좌우로 몸을 흔들면 상자는 배가 된다. 부모가 상자를 끌어주면 기차가 되고, 아이가 상자 안에서 잠들면 침대가 된다. 상자가 익숙해진 아이는 상자를 자기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상자만 보면 본능적으로 들어가 앉는다. 
 
때론 상자 때문에 싸운다. 좁은 상자 안에 다른 친구가 들어오려고 하면 나가라고 떠민다. 충분한 공간이 있어도 못 들어오게 한다. 다른 친구는 들어가려고 발버둥을 친다.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상자가 찢어진다. 혼자 놀기에는 충분한 공간이지만 둘이 들어가기에는 좁다. 찢어진 상자를 보면서 서로 비난하면서 울고 난리다. 
 
부모는 찢어진 상자를 버린다. 다시 고치고 붙여서 둘이 같이 들어가라고 말하지 않는다. 더 이상 물건을 담는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찢어진 상자는 버리는 것이 맞다. 
 
부부가 서로 만나 결혼하기 전에는 각자의 상자에서 살았다. 혼자 들어가기 적당한 상자이다. 둘이 들어가기는 좁다. 두 사람은 결혼하고 나서 상자를 합친다. 나란히 붙여놓고 노는데 재미가 없다. 
 
남자 꼬마가 말한다. 내 상자에 들어오라고. 여자 꼬마가 말한다. 싫다고. 두 사람은 힘겨루기를 한다. 결국, 가위바위보를 한다. 여자 꼬마가 졌다. 남자 꼬마의 상자로 옮겨간다. 남자 꼬마는 다리를 모으고 공간을 만들어준다. 여자 꼬마는 조심성 없이 막 들어와 자기 상자인 것처럼 행동한다. 불편하다고 다리를 펴다가 상자 모서리 부분이 찢어진다. 
 
남자 꼬마가 말한다. 
 
“조심해!” 
 
자기가 오라고 해놓고 막상 오니까 푸대접이다. 여자 꼬마는 자기 상자로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남자 꼬마는 그냥 있으라 말한다. 둘이 서로 밀치고 싸우다가 상자가 찢어진다. 남자 꼬마는 화가 나서 여자 꼬마의 상자를 발로 찬다. 상자가 찢어진 채로 너덜거린다. 둘은 서로를 비난한다.
 
종이 상자는 생각, 기준을 의미한다. 결혼 전,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지고 살았다. 결혼하면 그것을 합쳐야 한다.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희생할 수 없다. 정확히 절반씩 합치는 것도 불가능하다. 
 
방법은 하나다. 종이 상자를 찢어버리고 새로운 상자를 만드는 것이다. 종이 상자는 힘이 없고 약해서 두 사람이 들어갈 수 없다. 둘이 들어갈 넉넉한 상자를 만들어야 한다. 집착은 하지 말자. 익숙해지면 버려야 한다. 곧 세 사람, 네 사람이 쓰는 상자로 갈아타야 한다. 상자 안에 들어갈 가족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부부가 서로 만나 유연한 사고를 하지 못하면 위기를 만난다. 연애, 결혼, 출산. 단어 몇 개로 표현할 수 있지만 각 단어 사이에 띄어쓰기가 만든 공간 안에는 혼란과 불안이 자리 잡고 있다. 서로 다른 기준을 조정하기 위해 가위바위보를 하면 안 된다. 종이 상자는 미련 없이 쓰레기통에 버리고, 상자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 잠깐 쓰고 버릴 상자를 만들다가 우리는 인생의 끝을 만나게 된다. 
 
남편은 혼자 쓰던 상자를 버리고 아내가 원하는 상자에 새롭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내가 쓰던 상자를 유심히 살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상자 속 아내가 혼자 가지고 놀던 인형과 장난감, 즐겨 먹던 사탕 봉지와 과자 부스러기를 살펴보자. 아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모르면 물어보자. 아내가 원하는 것을 새로운 상자에 채워 넣어라. 그녀가 좋아한다.  
 
아내는 남편의 상자를 발로 걷어차지 말자. 정성이 깃든 상자이다. 버리라고 하면 아까워서 버릴 수가 없다. 버리는 걸 쉽게 생각하지 말자. 지금 당장 버리라고 재촉하면 남편은 그 상자 안에 머문다. 미련이 남는다. 너덜너덜해진 종이 상자 안에서 혼자 산다. 
 
가족과 단절된다. 남편을 모질게 대하지 말고, 따뜻하게 대하라. 새로운 상자로 남편을 초대하자. 그가 새 것과 낡은 것 사이에 걸쳐 있는가? 새로운 상자로 완전히 넘어 올 수 있도록 그를 격려하라.

과거로 돌아갈까 두려워요

여러 번 삶을 포기한 적이 있어요.
극단적인 선택을 했어요.
다행이죠. 죽지 않고 살았어요.
 
절망뿐인 나에게
누군가 예수님을 전해줬어요.
살아갈 소망을 얻었죠.
 
이제 막 1년 지났어요.
지금이 너무 좋은데 가끔은 두려워요.
예전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하지.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무너지고 싶지 않아서.
쓰러지고 싶지 않아서.
버티고 견디고 참아요.   
 
고마워요, 용기 내줘서.
당신 덕분에 깨달았어요.
내가 요즘 왜 힘들었는지.
이제 알게 되었네요.
 
먼저 사과하고 싶어요.
내가 조급했어요.
조언을 구하는 줄 알았어요.
방법을 알려주면 될 줄 알았죠.
 
그게 아니었어요.
당신에게는 같이 있어줄 사람이 필요했어요.
아주 잠시 동안이라도
괜찮다고 다독여주며 함께 있어줄 사람,
그런 사람이 필요했던 거예요.
 
솔직히 말해줘서 고마워요.
실망해서 조용히 문 닫고 나갔으면
나는 영원히 몰랐을 거예요.
당신이 말해줘서 알았어요.
 
나도 솔직해지고 싶어요.
요즘 마음이 답답했어요.
몸과 마음이 지쳐갔죠.
탈진이라고 하나요.
 
내가 원하지 않았는데
목회할 때처럼 바빠졌어요.
가야 할 곳이 늘어나고
만날 사람이 많아지고
해야 할 일이 쌓여갔죠.
 
나는 바빠지면 불안해요.
뭔가를 놓치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러면 안 되는데
정말 그러면 안 되는데
한 사람을 마주한 게 아니라
일정을 해치우고 있었나 봐요.
 
차분해야 했는데 나는 분주했어요.
요 며칠 예수님 대신
내가 상담했을 거예요, 아마.
가슴에 뭐가 걸린 것처럼 답답했어요.
이유를 몰랐죠.
 
당신 때문에 알게 되었어요.
내가 해결하려고 했구나.
능력 없는 내가 마음이 앞서
해결하려 드니 꼬이기 시작한 거예요.
참 어리석죠.
매번 같은 실수를 하네요.
 
그래도 다행이에요.
예수님이 당신을 보내주셨어요.
당신이 예수님을 다시 모시고 들어올 때까지
예수님은 상담실에 계시지 않으셨어요.
나는 그것도 모르고 그저 열심히 했네요.
바보같이. 정말 바보같이.
고마워요. 큰일 날 뻔했어요.
당신 덕분에 나도 살았어요.
 
과거로 되돌아갈까 두렵다고 했죠.
듣고 보니까 나도 그렇네요.
아등바등 살면 나아질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네요.
 
그래도 포기하지 말아요, 우리.
우리가 찾아가다 지치면
예수님이 찾아와주실 거예요.
너무 걱정은 마세요.
 
당신이 말했죠.
안개 낀 것처럼 인생이 두렵고 답답하다고.
화창한 날 하루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아세요.
안개는 영원하지 않아요.
수명이 짧아요.
해가 뜨면 금방 사라져요.
 
예수님 없이 어두웠던 당신 인생
드디어 찬란한 빛이 비쳤죠.
새벽이 왔어요. 동이 터요.
안개로 자욱하지만
오늘 하루 맑을 거예요.
안개 짙은 날은 유독 맑았으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시겠어요.
괜찮다고 말해주시겠어요.
곧 해가 뜬다고.
파란 하늘 빨갛게 떠오른 태양이
눈부시게 아름다울 거라고.
 
두 번 다시 예전 같지 않을 거예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어요.
절대로 그럴 수 없어요.
당신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에요.
 
마음속 담아두었던 말,
이제 전하고 싶어요.
 
살아줘서 고마워요.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와줘서
정말 정말 고마워요.
당신 덕분에 나도 살았어요.

당신은 그 소년을 알고 있다

“지금까지 열심히 살았는데,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네요. 돈, 가정, 친구, 다 잃었어요….”  
 
E는 서른아홉 살 여자다. 6년의 결혼 생활을 끝내고 혼자된 지 3년 지났다. 남편은 교회 목사님 소개로 만났다. 목사님은 남편이 진지하고 성실한 남자라고 하셨다. 첫눈에 호감이 느껴지는 남자는 아니었지만, 목사님이 인정한 사람이니 한두 번 만나보자고 생각했다. 따뜻한 성품이 좋았다. 8개월 만나고, 결혼했다. 
 
신혼집은 다세대 주택에서 시작했다. 4층 건물 맨 꼭대기 주인세대에 시어머니가 살고, 그녀와 남편은 2층에서 살았다. 결혼 일주일 만에 남편과 다퉜다. 그가 급여를 아내에게 갖다 주지 않았다. 생활비는 여자가 관리해야 한다며 남편을 설득했다. 그러자 그는 “그런 게 어디 있냐? 돈 버는 사람이 관리하자”라고 말했다. 아내는 자존심이 상했지만 물러섰다. 
 
두 달 뒤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편은 결혼 전에 대출을 받아 주식에 돈을 투자했다가 2억 정도 빚을 지고 있었다. 그래서 급여가 모두 대출금 상환으로 쓰였다. 기약 없는 기간 동안 수입 없이 살아야 했다. 
 
시어머니는 “알고 있었고, 부부가 함께 짊어져야 할 짐이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분노했다. 남편과 시어머니가 자신을 속였다고 생각했다. 
 
이혼을 생각했지만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임신 4개월이었다. 남편은 집안일을 도와줄 생각이 없었다. 저녁마다 침대에 누워 휴대폰만 만지작거렸다. 그녀는 속이 터졌다. 남편에게 화를 내고 잔소리를 했다. 그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아내 얼굴에 베개를 던지며 싸늘하게 말했다. 
 
“입 닥쳐.” 
 
이후로 던지는 물건이 달라졌다. 베개에서 시계로, 시계에서 컵으로. 컵이 깨지던 날,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아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남편은 울고 있는 그녀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아내는 휴대폰 게임을 그만하라고 말했다. 남편은 무시했다. 남편이 게임으로 100만 원 넘는 돈을 썼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그녀는 그동안 쌓였던 불만을 터트렸다. 
 
남편이 소리 지르며 욕을 했다. 아내는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밤새도록 말다툼을 했다. 신경이 예민해졌다. 배가 아팠다. 두려움에 싸인 아내는 의식을 잃었다. 아기는 유산되었다. 시어머니는 주변 사람들에게 며느리가 몸을 돌보지 않고 무리해서  유산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를 불러 말했다. 
 
“내가 그 놈을 혼내줄 테니까, 이번 한 번만 눈 감고 넘어가자.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야.” 
 
그러고 5만원 권 한 뭉치를 그녀의 손에 쥐어줬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돈을 한 장씩 찢기 시작했다. 눈물이 흘렀다. 돈을 갈기갈기 다 찢을 때까지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돈도 눈물도 말없이 땅에 떨어졌다. 
 
그녀는 이혼했다. 
 
어린 시절, 그녀는 아버지에게 맞고 자랐다. 술 취한 아버지는 매일 엄마를 때렸다. 참다못한 엄마는 집을 나갔다. 혼자 남겨진 그녀는 아버지의 주정과 매질을 당해야 했다. 
 
몇 달 뒤, 엄마가 집에 돌아왔다. 아빠가 없는 틈에 짐을 가지러 온 것이었다.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애원했다. 엄마에게 매달리다시피 하여 같이 문을 나서는데 처음 보는 아저씨가 서 있었다. 엄마는 그녀에게 미안하다는 한 마디를 남기고 그 아저씨와 가버렸다. 
 
4년이 지났다. 견디다 못해 엄마를 찾아갔다. 그리고 예전에 만났던 아저씨를 “아빠”라고 부르며 살았다. 너무나 그리웠던 엄마였다. 하지만 헤어져 산 시간이 길어서 인지 아니면 상처가 많아서 인지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엄마는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뭘 물어봐도 짧게 대답했다. 그녀에게 소리 없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너 때문에 난처해졌어. 불편해졌다고.” 
 
아저씨 표정도 달라졌다. 그 집에 오래 살 수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나왔다. 
 
“제 안에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이 있어요. 외로움에 미쳐버릴 것 같았어요. 매일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세요? 남편에게 전화해서 ‘욕하지 않고, 돈 관리 내가 하고, 게임 안 하고, 빚 갚기로 약속하면 우리 다시 시작할 수 있어’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언젠가 전화를 걸지도 몰라요. 남편은 바뀌지 않을 거예요. 제가 너무 외로워서 그래요. 주변에 아무도 없으니까.” 
 
외로움이 찾아오면, 그녀는 잠을 잔다. 그러면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밤과 낮이 바뀐 채 3년이 지났다. 깨어있는 시간은 TV를 본다. 외로움을 느끼고 싶지 않아 선택한 방법이다. 자신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과 전쟁을 치르고 있다. 조용하지만 치열하다. 그녀는 승리한 적이 없다. 
 
외로움은 갑자기 찾아와서 그녀를 휘젓는다. TV보다가 눈물이 흐르고, 잠에서 깨면 슬픔이 밀려온다. 휴대폰에 전남편의 번호를 누르고, 통화 버튼을 바라본다. 번호를 다시 지우고 입력하는 일을 반복한다. 휴대폰을 소파에 던지고, 수면제를 먹고 잠든다.    
 
***
 
외로움은 견디기 힘든 감정이다. 외로움이 속삭이는 말은 무섭다. 
 
‘넌 혼자야. 아무도 없어.’ 
 
거짓말이지만 진실처럼 들린다. 거짓을 거부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지만 외로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노력이 무의미하다고 느껴지는 순간, 거짓이 진실이 된다. 전기고문 의자에 꽁꽁 묶인 채 저항하지 않고 고통을 받아들인다. 외로움은 사람을 서서히 파괴한다.    
 
사람은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외로움과 싸워 이긴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누구나 외롭다. 외로움은 그림자처럼 항상 따라다닌다. 그것과 싸우면 질 것이 뻔하다. 의미 없는 싸움이다. 외로움이 삶을 파괴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다른 방법을 택해야 한다. 
 
외로움과 싸우지 않고 
외로움을 돌보는 것이다. 
 
외로움을 돌보려면 그것에 대해 알아야 한다. 외로움을 “꼬마”라고 부르겠다. 언제 꼬마가 활동하는지 알아야 한다. 특정한 상황이나 분위기나 시기에 꼬마가 활동한다면 어디서 나타는지 따라가 본다. 쥐구멍에 갇힌 쥐를 찾는 것처럼 자세히 살핀다. 
 
그다음에 꼬마가 활동하기 시작하면 자신에게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확인한다. 꼬마가 나타나면 자신이 하는 행동을 관찰한다. 반응은 다양하다. 자는 사람, 먹는 사람, 우는 사람, 화내는 사람. 패턴을 발견할 때까지 유심히 관찰한다. 
 
외로움에 이름을 붙인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으로부터 감정을 분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기감정을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착각하는 것이다. 감정은 감정일 뿐이지 자신이 아니다. 감정과 자신을 분리하지 않으면 감정을 변화시킬 수 없다. 
 
외로움이 느껴지면 절망하지 말고, 차분하게 말한다. 
 
“또 시작이군.” 
 
만약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난다. 감정이 분리된 사람은 감정을 돌볼 수 있다. 
 
상상해 보자. 당신은 상담자다. 꼬마는 상담실에 찾아온 내담자다. 꼬마는 통제불능이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 사랑받지 못했다. 관심 받고 싶어 과도한 행동을 한다. 작은 말 한 마디에 상처받고, 우울해진다. 다들 기분 좋아서 웃고 있는데, 뭐 하나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물건을 집어던지고 난리다. 설득하고 달래도 소용없다. 
 
꼬마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미안하지만 변화되지 않는다. 꼬마는 피터팬처럼 영원히 나이 먹지 않는다. 철들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그 꼬마를 돌보는 게 의미가 있을까? 물론이다. 꼬마를 대하는 자기 자신이 변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는 꼬마에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대하는 자신에게 일어난다. 
 
감정을 바꿀 수 없지만
감정에 대한 반응을 바꿀 수 있다. 
 
나는 내 안에 있는 꼬마를 “소년”이라고 부른다. 소년은 다섯 살 정도 된다. 발가벗겨졌다. 온몸이 멍 자국이다. 파랗고 빨갛다. 파란 자국은 생긴 지 오랜 된 것이고, 빨간 자국은 방금 생긴 것이다. 머리는 지저분하고, 얼굴은 눈물자국, 땟자국으로 얼룩졌다. 
 
소년은 불안해 보인다. 시선을 어디다 둘지 몰라 눈알을 이리저리 굴린다. 어깨는 움츠러들어 있고, 두 손은 덜덜 떨린다. 아무리 설득하고 달래고 돌봐주고 씻겨줘도 항상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있다. 소년은 내가 원치 않을 때 갑자기 나타나 말을 건다. 
 
‘못 하겠어…. 두려워…. 안 하면 안 돼? 그만하자. 뭘 위해서 그래. 도대체 원하는 게 뭐야? 사람들이 알아줄 거라고 생각해? 의미 없는 일이야. 소용없는 일이라고. 현실은 달라. 너는 실패할 거야. 망할 거라고. 멈춰. 이대로 있어. 하지 마. 그만해!’
 
나는 소년과 오랫동안 함께 지냈다. 익숙할 법도 한데, 쉽지가 않다. 그가 입을 열면 움찔한다. 때로는 깊은 절망에 빠진다. 마음을 가다듬고 말한다. 
 
‘알아. 네가 얼마나 두려운지…. 나 만나서 고생이 많구나. 그래도 우리 가야 해. 무서워도 같이 가자. 내가 도와줄게. 힘들어도 조금만 참자.’
 
나는 그 소년을 따뜻하게 안아준다. 
 
나는 당신 마음 속 소년이 누군지 모른다. 
그러나 당신은 그 소년을 알고 있다. 
 
그녀의 마음 속에 소녀가 있다. 길가에 버려진 소녀. 지나가는 사람은 많지만 아무도 그녀에게 관심 갖지 않는다. 때리는 아빠가 무서워 집을 도망쳐 나온 소녀. 엄마를 찾아갔지만 커다란 대문은 잠겨있다. 소녀는 발걸음을 돌려 길을 걷는다. 길에서 날리는 먼지가 머리에 뽀얗게 앉는다. 
 
두 눈에 눈곱이 구슬처럼 박혀있고, 눈물과 콧물자국이 얼굴에 굽이굽이 골목을 냈다. 비가 와서 옷이 젖고, 해가 떠서 다시 마르고. 옷은 종이처럼 너덜거린다. 신발은 닳아서 뒤꿈치가 땅에 닿는다. 소녀는 갈 곳이 없다. 
 
걷다 지친 소녀는 길가에 앉는다. 지나가는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한 사람이 다가왔다. 손가락은 두툼하고 굳은살이 박였다. 소매 밖으로 팔을 타고 오르는 용의 꼬리가 보인다. 짧은 머리카락은 송곳처럼 삐쭉 서있다. 껌을 씹으면서 소녀에게 말한다. 
 
“나랑 가자. 좋은 데 알려줄게.” 
 
소녀는 무섭다. 가면 안 된다. 그러나 소녀는 남자를 따라간다. 길가에 버려진 것보다 나으니까. 누군가 뒤에서 소리친다.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남자에게서 소녀를 빼앗는다. 남자는 놀란다. 눈치를 보다가 멀리 도망쳐 버린다. 그녀가 소녀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내가 널 돌봐줄 거야. 넌 버려진 아이가 아니야. 그렇게 아무나 따라다녀서는 안 돼. 사랑을 구걸해서는 안 된다고. 이제 외롭지 않을 거야. 같이 있을 거니까.” 
 
소녀를 찾아 나선 사람은 바로 그녀, 
그녀 자신이었다. 
 
외로움은 그녀 자신이 아니다. 외로움은 그녀 감정이다. 그녀는 소녀를 돌보기 시작했다. 그녀가 한 눈 판 사이에 소녀가 사라질지 모른다. 누군가 내민 손을 잡고 어디론가 가버릴 것이다. 소녀는 아무나 따라간다. 소녀를 해칠지 모르는 위험한 사람이라도. 소녀와 함께 하는 삶이 익숙해지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소녀는 변하지 않으니까. 
 
상처와 싸우는 사람은 고통 받지만,    
상처를 돌보는 사람은 치유된다.

당신이 살아나기를

“갑자기 남편이 죽었어요. 작년 어느 날, 사고로 떠나버렸죠. 남편을 따라 죽고 싶었지만 아이들만 두고 갈 수는 없잖아요. 힘들어도 참고 또 참았어요. 나중에 천국에서 남편을 만나면 수고했다고 말해주지 않을까 싶어서요.” 
 
T는 마흔일곱, 두 아들의 엄마다. 남편은 포크레인 기사였다. 신도시 예정지구에 대규모 공사가 진행되면, 그의 얼굴을 몇 달 동안 볼 수 없었다. 아내는 남편이 보내오는 돈으로 살림을 하고 아이를 키웠다. 날씨가 춥거나 더운 날이면 남편이 걱정스러웠다. 
 
가족을 위해 고생하는 남편에게 어떻게든 힘이 되고 싶어 아이들 사진을 열심히 찍어서 보내줬다. 남편이 집에 오는 날이면 그가 좋아하는 삼계탕을 끓어주며 힘내라고 말했다. 남편은 그저 말없이 웃을 뿐이었다. 아내는 남편이 표현을 못해도 가족을 끔찍하게 사랑한다고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과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서 전회가 왔다. 남편이 교통 사로고 숨졌다고. 다급하게 병원으로 가서 싸늘하게 식은 남편을 보는 순간, 그녀는 기절했다. 
 
남편은 고속도로 갓길에 차를 세웠다가 변을 당했다. 차에서 내려 담배를 한 대 태우고 다시 차에 타려는 순간, 자동차 타이어에서 뭔가를 발견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아 플래시를 가져와 바닥에 엎드려 타이어를 살펴보고 다시 몸을 일으키는 순간, 쾅 소리가 났다. 도로 위를 달리던 1톤 트럭 사이드 미러에 머리를 부딪쳤다. 병원으로 옮겼지만 이미 그는 숨을 거둔 뒤였다. 
 
남편 죽음에 대해 말하던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손가락 사이로 그녀의 울음소리가 새어나왔다. 하루아침에 남편을 잃은 슬픔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의 가녀린 어깨가 흔들렸다. 그녀는 울어야 했다. 남편을 떠나보내고 그녀는 두 아이들을 위해서 꿋꿋이 살아야 했다. 강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감정을 억누르며 살았다. 
 
갑작스럽게 떠난 남편을 뒤로 하고, 그녀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그녀는 누워 일어나지 못했다. 그렇게 두 달이 흘렀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 유품을 정리하다가 남편의 트럭에서 낯선 휴대폰을 발견했다. 
 
그 안에는 낯선 여자와 찍은 사진이 담겨 있었다. 주고받은 문자에는 성적인 농담, 진한 애정 표현이 가득했다. 마음속에서 흙탕물이 일었다. 남편을 그리워하던 감정이 증오심으로 바뀌었다.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제가 남편을 잘못 본 걸까요? 남편에 대한 모든 신뢰가 무너졌어요.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이제 더 물어볼 수도 없어요. 가슴 속에 묻고 살아야겠죠. 남편이 미워요.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요?”
 
그녀는 삶을 포기하려고 수면제를 사 모았다. 유서를 지니고 다녔지만 실행할 수 없었다. 아이들 때문이었다. 두 아이는 엄마가 아니면 아무도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 고아원에서 자랐다. 
 
시댁은 남편이 죽고 나서 돈 문제로 갈라섰다. 트럭을 매입할 때 돈이 모자라 남편 형의 명의로 대출을 받았다. 남편이 죽자 아주버니는 트럭을 자신의 회사에 귀속시키고 돈 한 푼 가져다주지 않고 인연을 끊었다. 아이들에게는 엄마뿐이었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유일한 이유였다. 
 
***
 
그녀를 위로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떤 영화나 소설보다도 비극적이다. 하루아침에 남편을 잃은 그녀에게 남겨진 것은 유산이 아니라 남편의 불륜 증거뿐이었다. 그 고통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마치 길을 걷다 강도 만난 사람 같다. 어두운 밤길을 걷던 그녀는 강도가 휘두른 칼에 배를 찔린다. 길에 쓰러진 그녀는 살아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두 아이가 생각나서 더듬더듬 주머니에 손을 넣고 휴대폰을 꺼내 구급차를 부른다. 사이렌 소리를 들은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구급차 안에서 그녀는 생각한다. 
 
‘살아야 한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살아야 한다. 살아서 아이들 곁으로 가야 한다.’   
 
상담실을 찾은 사람은 용기 있는 사람이다. 그녀는 자기 손으로 상담실에 전화를 걸었다. 피를 흘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 신고를 한 것이다.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위해 꼭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이다. 수술대 위에 누워 상처 부위를 치료받기 원했다. 찢고 꿰매는 수술의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기 원했다.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길 위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간다. 자신을 기다리는 소중한 가족을 남기고 눈을 감는다. 그녀는 생존자다. 극적으로 살아남은 생존자다. 
 
수술대 위에 누운 그녀에게 필요한 처방은 ‘격려’다. 격려는 절망을 넘어 용기로 나아가게 한다. 진부한 말이지만 진실을 말하고 싶다. 그녀는 자신을 절망을 확대하는 동시에 잠재력을 축소하고 있다. 승리의 소식은 묵인하고, 패배의 소식을 수용한다. 이미 일어난 일을 바꿀 수는 없다. 남편을 살릴 수 없다.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고 물을 수 없다. 과거에 일어난 일이다. 
 
그녀를 짓누르는 절망의 실체는 미래에 관한 것이다. 미래에 대한 절망에는 근거가 없다. 미래에 대한 절망은 그녀의 추측으로 구성되어 있을 뿐이다. 그 절망의 근거는 무엇인가? 그녀는 자신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없다고 한다. 자신이 죽어 없어지면 아이들이 살아남을 수 없다. 그래서 그녀는 생존한다. 
 
하지만 살아남을 가능성이 없다고 말하는 건 진실이 아니다. 그녀는 이미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감정이 그녀를 속인다. 살아남은 그녀에게 죽으라고 말한다. 
 
희망의 근거는 무엇인가? 그녀가 살아남은 경험이다. 이 경험이 그녀를 끝까지 지켜줄 것이다. 그녀의 본능 속에 생존의 DNA가 숨어있다. 절망이 축소되면 잠재력이 고개를 든다. 그녀는 책임지는 사람이다. 회피하거나 외면하거나 변명하지 않는다. 아이들에 대한 책임을 고스란히 그녀의 두 어깨에 짊어지고 있다. 
 
그 무게는 상당하지만, 그녀는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기운을 차릴 동안 누군가 그녀를 포기하지 않도록 격려해준다면 그녀는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고통스런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더 깊은 의미를 발견하며 미래로 나아갈 것이다. 
 
그녀는 한 달 전부터 집 앞 공방에 나가 퀼트를 배우기 시작했다. 교회에서 가족처럼 지내던 한 언니의 부탁을 더 이상 거절 할 수 없었다. 손으로 작은 천 조각을 이어 붙이는 게 무슨  도움이 될까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에 대한 슬픔, 원망이 머릿속에서 잠시나마 사라진 경험을 했고,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일주일 동안 매달려 작은 작품 하나를 완성하자 성취감이 밀려왔다. 일상의 변화가 찾아왔다. 아이들 간식을 준비하고, 숙제를 도와주는 자신을 발견했다. 
 
집 앞에 작은 공방을 열고 싶다는 꿈도 생겼다. 아이들 등교 시간에 공방을 열고, 하교 시간에 맞춰 공방을 닫으면 된다. 아이들 곁을 지키면서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었다. 차분히 준비하고 기다리면서 그녀는 다음 인생을 준비했다. 
 
“지금은 제 몸 하나 추스르기 힘들지만 언젠가는 다른 사람은 돕고 싶어요. 이번 일로 많은 것을 깨달았거든요. 예전처럼 살고 싶지 않아요.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니까. 제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을 고민하면서 살아야죠. 모든 고난에는 뜻이 있어요. 단지 아직 그걸 발견하지 못한 것뿐이죠.” 
 
죽음과 생명의 경계에는 사건이라는 울타리가 있다. 그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은 우리의 선택이다. 사건은 사건일 뿐이다. 그 사건에 대한 관점이 우리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나는 바란다. 당신이 살아나기를. 소소한 행복에 대해 잠시 떠올리며 미소 짓는 것만으로 당신은 살아날 수 있다. 어서 일상으로 돌아오라. 그것이 당신이 그토록 바라는 행복일 테니.

당신은 답을 알고 있어요

사귀던 남자에게 상처받고
다시는 남자를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오랜 시간 혼자 지냈죠.
결국 다시 남자를 만났어요.
나는 왜 나 좋다는 사람
거부할 수 없을까요.
누군가를 먼저 좋아한 적이 없어요.
나 좋다는 사람 만났어요.
 
그동안 주님 안에서
성장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전혀 성장하지 못했어요.
똑같아요. 그대로예요.
 
그 사람을 온전히 믿지 못해요.
계속 확인하고 싶어요.
나를 어디까지 받아줄 수 있을까.
이 정도는 받아주겠지.
받아주면 또 시도해요.
이건 못 받아줄 거야.
그런 식으로 여러 사람 떠났어요.
 
상처 주고
상처받고
다시 외로워지고.
이제 지쳤어요.
더 이상 못할 것 같아요.
차라리 혼자가 나아요.
 
잠시만요.
급할 것 없어요.
조금만 천천히 대화해요, 우리.
 
당신 마음 느껴져요.
내 마음이 아파요.
조심스럽게 내 생각 말해도 될까요.
 
나는 왜 당신이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고 느껴질까요.
전혀 성장하지 못했다고
혼자가 차라리 낫다고 말하지만
진실이 아닌 것 같아요.
억지 위로가 될까 두렵지만
솔직히 말하고 싶어요.
 
당신은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어요.
 
자기 문제 스스로 
인식하기 어려워요.
 
문제와 자신이 섞여서 
분리되지 않아요.
 
당신은 문제가 보이나 봐요.
그건 성장이에요.
 
당신은 답도 알고 있어요.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낸 거죠.
당신은 답을 말하고 있어요.
아무도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거예요.
당신 안의 그 지독한 외로움을.
 
그다음은 뭘까요.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거예요.
 
오직 그리스도 한 분으로
마음속 빈자리를 
채우고 싶은 거예요.
 
당신이 맞아요.
백 퍼센트 옳아요.
 
하지만, 답을 안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에요.
쉽지 않아요.
 
답을 몰라서 힘든 게 아니라
과정이 힘들어서 힘든 거예요.   
 
조급할 필요 없어요.
당신에게는 시간이 필요해요.
아주 많이.
다른 사람 보다 많이.
 
당신 잘못 아니지만,
당신이 사랑받으며 
자랐다고 말하기 어려워요.
 
부모에게 절망한 당신은
남자에게 희망을 걸었어요.
자신이 이룰 가정을 꿈꿀 수 있으니까요.
 
마지막 남은 희망마저 내려놓은
당신은 얼마나 불안하고 고통스러울까요.
 
희망이 사라졌다고 절망하지 마세요.
그 희망은 낡은 희망이에요.
새로운 희망이 다가왔어요.
 
새로운 희망을 드릴게요.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유일한 희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지요?
그 고백이 당신을 치유할 거예요.
 
내 마음에 물통이 하나 있어요.
물을 부으면 물이 새요.
구멍이 너무 많아서.
 
나는 구멍 없는 물통을 
받고 싶었는데
내가 받은 물통은 
처음부터 구멍이 많았어요.
 
누구를 탓할 수 있나요.
그건 주어진 거예요.
내가 선택할 수 없었어요.
 
선택할 수 있었다면 
구멍 없는 것을 골랐겠죠.
 
나중에 알았어요.
구멍을 탓하고 있으면
물이 금방 말라 버려요.   
나만 손해죠.
끔찍한 고통이 반복되니까요.
 
나는 구멍을 탓하지 않기로 했어요.
쉬지 않고 물을 부었어요.
부어도 부어도 바닥이 드러날 듯
빠르게 물이 빠져나가지만
포기할 수 없었어요.
더 열심히 했죠.
 
손목 아프고 손에 물집 잡혀서
주전자를 놓쳤어요.
너무 속상해서 고개를 떨구고 있는데
세상에나 비가 내려요.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폭포수 같은 장대비가 쏟아져 내려요.
나 처음으로 하늘에 난 구멍을 봤어요.
그 사이로 엄청난 비가 내렸어요.
 
내 마음에만 구멍 난 거 아니에요.
하늘에도 구멍 났어요.
그 틈으로 주님이 오셨지요.
그 덕분에 난 살았고요.
 
당신 마음에도 구멍이 보여요.
하늘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이
구멍 난 손으로 당신의 손을 잡아주실 때
폭포수 같은 사랑이 쏟아져 내리기를
나는 바랍니다.

상처가 많아서 그런가봐

혜연은 용기를 내서 목사님과 마주했다. 교회 목사님이 혜연의 집을 방문한 것이다. 
 
밤새 고민하며, 정리해 두었던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사막에 혼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엄마는 그런 혜연이 답답했는지, 옆구리를 꾹 찌르며 속삭이듯 말했다. 
 
“뭐 한다냐? 목사님 모셔다 놓고.” 
 
혜연은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는 목사님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제가 오랫동안 고민해 온 문제가 있어요. 저는 목사님이 무서워요.” 
 
목사는 당황했다. 그러다, 이내 차분해졌다. 오랜 경륜으로 산전수전 다 겪어봤다는 표정이었다. 
 
“제가 무섭다고요?” 
 
혜연은 움찔했다. 파도처럼 후회가 밀려왔다. 엎질러진 물이었다. 목사는 이유를 알고 싶어 했다.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겠어요?” 
 
혜연은 혹시라도 목사님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다. 
 
“주일 설교를 하실 때와 수요 예배 설교를 하실 때, 목사님의 설교 스타일이 조금 다르신 것 같아요….” 
 
“네, 정확히 아시네요. 주일 설교와 수요 설교는 청중이 다르잖아요. 주일에는 교회에 처음 나오시는 분들이 계시니까, 아무래도 부드럽게 설교하지요. 하지만, 수요 예배는 청중이 달라요. 헌신된 분들이고, 말씀을 사모하는 분들이니까 그에 맞게 설교하지요.” 
 
“저는 수요 예배에 가면 무서워요, 목사님.” 
 
“그러니까, 뭐가 무섭다는지 말씀해 주세요.” 
 
혜연은 다시 움츠러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도망치고 싶었다. 심장이 요동치고, 호흡이 가빠졌다. 그녀는 억지로 마음을 진정시켰다. 
 
“말씀을 전하시다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시면 저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요.” 
 
목사는 이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아, 충분히 그럴 수 있죠. 수요 예배에서는 제가 조금 강하지요.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요즘 마음 편하게 신앙생활을 하려는 분들이 많아서요. 
 
언제까지나 새가족일 수는 없잖아요. 교회 오래 다니셨으면, 말씀을 듣고 자라나야죠.자매님도 시간이 조금 지나면 적응이 되실 거예요.”
 
벌써 6년이었다. 혜연은 적응할 수 없었다. 
 
생각에 잠긴, 혜연에게 목사가 다시 물었다. 
 
“최근에 그런 적 있으세요?” 
 
“지난주에, 목사님께서 설교를 하시다가 성도들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드셨나 봐요. 갑자기 소리를 지르셨어요. 말씀을 듣는 태도가 그게 뭐냐고. 그게 성도의 바른 자세냐고. 저는 목사님이 소리를 지르시자마자,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어요.” 
 
“아, 기억나요. 그날 몇 사람이 꾸벅꾸벅 졸더라고요. 그래서, 깨워준 거예요. 제가 소리를 질렀다고 해서, 화가 났다고 생각하시면 안 돼요. 제가 소리를 지른 건,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서예요. 항상 깨어서 말씀을 들어도 모자란 판에, 예배 시간에 졸다니요. 그럴 수는 없지요.” 
 
목사는 혜연의 반응을 살폈다. 
 
“맞아요, 목사님. 저도 목사님이 무슨 말씀 하시는지 알아요. 일상생활에서 목사님 말투는 설교하실 때와 다르시거든요. 평소에는 지금처럼 편안하게 말씀해주시잖아요. 하지만, 저한테는 설교하는 목사님과 대화하는 목사님이 구분이 되지 않아요. 지금처럼 편하게 대화하다가도 목사님이 버럭 화를 내실까 무섭거든요.” 
 
목사는 시계를 바라보며, 조급한 심정을 드러냈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던 것이다. 
 
“혹시, 어릴 때 상처받은 기억이 있으세요? 저는 한 교회에서 10년 넘도록 목회를 했는데, 자매님처럼 말씀하시는 분은 처음 만나보거든요.” 
 
혜연은 깜짝 놀랐다. 친정 엄마가 옆에 있는 상황에서, 어린 시절의 상처에 대해 말할 수 없었다. 어머니가 서운하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혜연의 그런 모습이 답답했는지, 그녀의 엄마가 나섰다. 
 
“목사님, 말씀 들으니께, 생각나는 것이 있네유. 사실, 얘 시아버지가 그리 무섭다네유. 신혼 초에 아주 무서워서 혼났다고, 그리 말한 기억이 나유. 혹시 그게 무슨 상관이 있을까유?” 
 
목사는 “아하!”하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그랬구나’라는 단서를 발견한 것이었다. 혜연을 대하는 태도가 급변했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자매님, 그럴 수 있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실 거예요. 저도 당분간은 소리를 지르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자매님 역시, 그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셔야 해요. 주님이 도와주실 겁니다.” 
 
혜연은 엄마가 야속했다. 
 
목사는 심방을 마무리하는 기도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상처가 치유될 것이라고 강하게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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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연은 감정을 추슬러야 했다. 엄마에게 공격적으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 평정심을 되찾기까지 꼬박 하루가 걸렸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가는 길에, 차 안에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어제 목사님 앞에서 왜 그렇게 말했어? 나 속상했어. 내가 무슨 환자 같았잖아. 엄마까지 그렇게 말하면 난 어떻게 하라고. 목사님이 나를 얼마나 오해하시겠어.” 
 
혜연의 엄마는 태연하게 말했다. 
 
“내가 뭐 잘못했다냐. 니가 그래 말을 안하고 있으니까, 내가 대신 말해준 것이여! 니가 또박또박 말을 했으면, 엄마가 그리 말을 했것어? 답답하면 말을 해야지, 왜 말을 한 마디도 못 혀…. 다 커 가지고 답답해 죽것네. 그래서, 지금 엄마한테 따지고 있는 겨?” 
 
운전대를 잡고 있던 혜연은 엄마가 내던진 말에 화가 났다. 빨간색 신호 앞에서 차가 멈춰 섰을 때, 혜연은 엄마를 돌아보며 말했다. 
 
“엄마는 왜 항상 그런 식으로 말해? 나 정말 답답해.” 
 
엄마는 뒷자리에 앉아, 딸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이고, 이게 뭔 일이래. 엄마가 입을 처닫고 쥐 죽은 듯이 있어야, 니 속이 편하제? 알것어. 이제 그럴 겨. 교회도 이제 너 혼자 나가 이것아. 억지로 늙은 애미 끌고 나가지 말고!” 
 
마트에 도착할 때까지, 혜연은 엄마의 푸념을 들어야 했다. 그녀는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마트 사이를 거닐었고, 택배 직원처럼 식재료를 차에 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도, 혜연의 엄마는 쉬지 않고 푸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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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되었는지 모르겠어요. 교회 목사님 말씀대로, 제 상처 때문에 그런 걸까요? 이런 문제로 상담받는 게 조금 웃기지만, 상처 때문이라면 치유받고 싶어요.” 
 
나는 가만히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가, 의도적으로 무례한 질문을 던졌다. 진실에 한 걸음 다가가기 위한, 직설적인 질문이라고 말했다. 
 
“교회를 옮기고 싶은 생각은 없으신가요? 더 건강하고 따뜻한 교회도 있어요.” 
 
“아니요, 그런 생각은 전혀 없어요.” 
 
혜연은 밝은 목소리로 즉시 대답했다. 의외였다. 
 
“그럴 수는 없어요. 저는 제가 다니는 교회가 좋아요. 목사님의 말씀으로 은혜받고 있고요. 단지, 목사님의 표현 방식이 제게 고통스러운 것 같아요. 목사님이 심방 오셨을 때, 제 생각을 솔직히 표현을 못 해서 답답했던 거예요.”
 
그녀는 잠시 기억에 잠긴 듯했다. 
 
“이 교회가 저의 첫 교회에요. 여기서 예수님을 처음 만났거든요. 나는 내 발로 교회를 떠나지는 않을 거예요. 절대로 그럴 수는 없어요.” 
 
나는 마음이 울컥했다. 감동의 파장은 컸다. 나는 잠시 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추슬러야 했다. 내가 아는 한, 그녀는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그녀의 청량한 말투는, 먹구름 사이에서 직선으로 쏟아져 내리는 강렬한 빛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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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나 몸이 조금 이상한 것 같아. 아기가 나오려나 봐.” 
 
예정보다 두 달이나 빨리 산통이 찾아왔다. 남편은 아내를 급하게 챙겨, 병원으로 데려갔다. 
 
“괜찮습니다. 너무 무리하신 것 같아요. 스트레스 관리를 잘하셔야 해요. 엄마가 마음이 편해야, 아이도 뱃속에서 마음 편하게 잘 지냅니다.” 
 
의사가 혜연을 안심시키며 말했다. 
 
돌아오는 길에, 혜연은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내가 극성떨어서 미안해. 당신 잠도 못하고 피곤할 텐데….” 
 
남편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혜연의 손을 꼭 붙잡았다. 
 
큰일이 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아기는 뱃속에서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두 달 뒤에 태어날 아기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부부는 행복했다.
 
일주일 뒤, 혜연에게 똑같은 증세가 나타났다. 배가 찢어질 듯 아팠다. 남편은 어제 저녁 야근으로 피곤해서 잠을 자고 있었다. 
 
혜연은 지난번의 경험을 떠올렸다. 남편을 깨우고, 병원에 가는 동안 통증이 가라앉았다. 남편을 깨워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았다. 소파에 몸을 기대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두세 시간만 버티면, 통증이 사라질 것이라고 믿었다. 
 
“여보!” 
 
남편이 부르는 소리에 혜연은 의식을 되찾았다. 눈을 뜨고, 맞이한 것은 하얀색 가운을 입은 의사와 간호사였다. 
 
혜연은 소파에서 의식을 잃고, 기절해버렸다. 잠에서 깬 남편이 의식을 잃은 아내를 병원으로 데려온 것이다. 
 
곧바로 수술이 이어졌다. 
 
혜연은 예정보다 이른 시기에, 아기를 받아들었다. 그러나, 그녀를 기다린 것은 축복의 메시지가 아니었다. 
 
의사는 혜연에게 끔찍한 소식을 전했다. 
 
엄마가 기절해 있는 동안, 아기는 치명적인 사고를 당했다. 산소가 원활히 공급되지 않아, 아기의 뇌가 망가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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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기다려야지. 손으로 음식을 먹으면 안 돼.” 
 
혜연의 남편은 아들에게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들은 가만히 손을 내리고, 아빠의 눈치를 봤다. 아빠가 한 눈을 판 사이에, 손으로 스팸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 
 
“내려놔! 아빠가 몇 번 말했어? 손으로 음식을 집어 들면 안 된다고!” 
 
남편이 큰 목소리로 말하자, 혜연은 깜짝 놀랐다. 
 
“태호야. 아빠 말 들어야지. 엄마랑 있을 때는 잘하잖아. 조금만 기다려. 엄마가 국만 뜨고, 바로 갈게.” 
 
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식사를 마쳤다. 태호가 엄마의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주말 아침 두 시간 동안은, 마음껏 스마트폰을 쓰게 해준다는 규칙을 따른 것이다.  
 
태호가 방으로 들어가자, 혜연은 남편에게 타이르듯 말했다. 
 
“여보, 내가 부탁했잖아. 소리는 지르지 말라고. 태호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깜짝깜짝 놀란다니까.” 
 
남편이 말했다. 
 
“그러게. 알면서도 잘 안되네. 답답해서 그랬어.” 
 
“아니야, 여보. 나도 심하게 말해서 미안해. 당신 같은 아빠 없어. 우리 태호가 특별한 거잖아.”
 
남편은 식탁에서 일어났다. 야구 배트와 글러브를 챙겨서 태호를 불렀다. 태호는 신이 나서, 아빠를 따라나섰다. 
 
혜연은 현관까지 걸어 나와, 남편의 볼과 태호의 이마에 차례로 입을 맞췄다. 
 
“태호랑 조금만 놀다 올 테니까, 당신도 집안일 하지 말고 눈 좀 붙여. 내가 갔다 와서 할 테니까.” 
 
“응, 알았어.” 
 
두 사람을 내보내고, 혜연은 싱크대에 서서 물을 틀었다. 수세미에 거품을 내고, 접시를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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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호야! 너 정말 왜 그래? 제발 좀 가만히 있으라고, 엄마가 몇 번을 말해?” 
 
태호는 공중에 팔을 휘저으며, 엄마 품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태호를 당해낼 수 없었다. 팔을 휘젓고 몸을 비틀어서, 엄마 품에서 빠져나온 태호가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가며 말했다. 
 
“엄마, 미워.” 
 
혜연은 지쳐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엄마가 왜 미워? 엄마가 얼마나 힘들게 노력하는데, 태호는 그것도 몰라?” 
 
“몰라. 엄마 나가. 엄마 내 방에서 나가.” 
 
“태호야. 엄마가 왜 나가. 제발 엄마 말 좀 들어. 엄마 힘들어서 미치겠어.” 
 
“싫어. 엄마 싫어.”
 
혜연은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어깨를 떨면서, 그 자리에서 한참을 울었다. 
 
감정을 추스르고 고개를 들어보니, 태호는 책상 밑에서 새근새근 잠에 들었다. 차분해진 아이를 품에 안아, 침대에 눕혔다. 
 
잠에 든 태호는 여느 아이와 다를 것이 없었다. 태호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혜연은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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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호가 오래 못 버틸 것 같아요.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겠습니다.” 
 
혜연이 피곤해 잠시 눈을 붙인 사이, 태호가 자전거를 타고 아파트 주변을 돌아다녔다. 
 
호기심이 많은 태호는 마음 가는 대로 자전거를 몰았고, 결국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도로 위를 달렸다. 
 
그러다, 거세게 달리는 레커차와 부딪혔다. 무전기로 교통사고 소식을 수신 받은 레커차가 무리한 속도로 갓길을 달리다가, 태호를 치어버린 것이다. 
 
사고가 난지 사흘 만에 태호는 세상을 떠났다. 태호가 세상을 떠나는 날, 혜연의 세상은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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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제를 처방받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 없었어요. 남편도 마찬가지였어요. 주말이면, 남편과 저는 소파에 앉아, 태호의 사진을 바라봤죠.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예요.” 
 
혜연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무기력했다. 기력이 없이 침대에 누워있는데, 현관의 벨이 울렸다. 
 
혜연의 반응이 없자,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교회에서 나왔어요. 잠시 문 좀 열어주실 수 있나요?”라는 말이 들렸다. 
 
혜연은 침대에 누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목소리는 옆집으로 옮겨갔고, 옆집의 옆집으로 옮겨갔다. 목소리는 점차 멀어졌고, 이내 안 들리게 되었다.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틈에 꽂혀있는, 전단지 뭉치를 가지고 들어왔다. 식탁 구석으로 던져놓고, 피곤한 듯 넥타이를 풀었다. 
 
그날 밤, 혜연은 태호의 꿈을 꾸었다. 
 
꿈에서 태호는, 아픈 아이가 아니었다. 하고 싶은 말을 또박또박 말했다. 
 
“엄마, 자살하면 지옥 가요?” 
 
“그게 무슨 소리야, 태호야.” 
 
“내가 엄마를 너무 힘들게 하는 것 같아요. 차라리 죽고 싶어요, 엄마.” 
 
“태호야, 아니야. 그러면 안 돼.” 
 
“미안해요, 엄마. 엄마를 너무 힘들 게 해서….” 
 
“태호야….” 
 
태호는 점점 작아지더니, 어두운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혜연이 태호를 애타게 불렀지만, 태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태호를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가 벽에 부딪혀 메아리로 돌아왔다. 
 
그녀는 잠에서 깼다. 눈물이 베개를 적셨다. 목이 메어,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거실로 걸어 나와 물 한 컵을 들이킨 혜연은 식탁 위에 놓여 있는 교회 전단지를 발견했다. 
 
푸른 초장 위에 세워진 아담한 교회 건물과 아이들이 밝게 웃는 사진이 파스텔톤으로 합성된 전단지였다. 
 
교회 이름이 익숙했다. 잊혀진 기억이 떠올랐다. 태호와 잠시 함께 다녔던 바로 그 교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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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호가 교회를 좋아하네요. 자주 나오시고 그러세요.” 
 
무뚝뚝해 보이는 목사가 다정하게 말하려고 애를 쓰는 것 같았다. 혜연은 어색한 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어린이집에 다닐 수 없는 태호가 혹시라도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싶어 아파트 단지 내의 교회에 잠시 들렀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에게 솜사탕을 나눠주던 교회 봉사자들을 만나고, 호기심이 생긴 터였다. 
 
태호는 교회를 좋아했지만, 혜연은 교회가 편하지 않았다. 새로운 사람들을 한꺼번에 만난다는 것이, 혜연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두어 달 교회를 나가다 그만두었다. 
 
태호는 교회에 가자고 고집을 부렸고, 그때마다 혜연은 태호를 타일렀다. 
 
일요일 아침, 혜연은 늦잠을 자고 일어났다. 태호의 방문을 열었을 때, 태호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남편이 부리나케 옷을 챙겨 입고 태호를 찾으러 나섰다. 혹시나 하고 교회를 찾아갔을 때, 신나게 놀고 있는 태호를 발견했다. 남편이 씻지도 않은 얼굴로 교회에 들어가 태호를 끌어안고 나오는 민망한 일이 여러 번이었다. 
 
교회 전단지를 붙잡고 있던 혜연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전단지에 합성된 이름 모를 소년과 태호의 얼굴이 겹쳤다.
 
“엄마….” 
 
그녀는 그대로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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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교회를 나갔는 때는 모든 것이 낯설기만 했어요. 목사님 설교도 하나도 못 알아들었어요. 남편이 혼자 가면 민망하니까, 함께 가준다고 해서 그나마 다행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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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연은 꾸준히 교회에 나갔다. 목사님의 설교가 조금씩 귀에 들어왔다. 아는 사람도 늘어갔다. 혜연은 용기를 냈다. 태호와 같은 또래 아이들을 가르치는 주일학교 교사가 된 것이다. 
 
교회를 나간 첫해, 여름 수련회 준비로 바빴다. 목사님은 마음이 분주할수록, 더욱 기도로 준비해야 한다면서, 교사들을 기도의 자리로 이끌었다. 여름 수련회를 앞두고, 일주일 동안 새벽 예배에 나오라고 독려했다. 
 
세 번째 날이었다. 그녀가 눈을 감고 기도하는데, 어디선가 다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혜연아, 많이 힘들지?” 
 
그녀는 목이 메어 한 마디도 내뱉지 못했다. 고개를 숙이고 흐느껴 울 뿐이었다. 
 
그날 밤, 혜연은 수면제를 복용하지 않고, 편안히 잠들었다. 
 
주일 학교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보면서, 혜연은 생각했다. 
 
“이 아이들이 태호다. 예수님이 나에게 새로운 자녀를 맡겨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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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호를 잃은 슬픔을 예수님이 위로해주셨어요. 마음이 조금 안정되나 싶었을 때, 엄마가 전화를 했죠.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혜연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아버지의 젊은 날, 가정은 쑥대밭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아내와 아이들을 두들겨 팼다. 술과 도박에 빠져, 가정은 가난에 찌들었다. 
 
혜연의 어머니는 가족을 먹여 살려야 했다. 건어물 노점상을 시작해서, 죽도록 일을 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쉬지 않았다. 어머니가 밖에서 벌어준 돈으로 입에 풀칠을 하며 살았다. 
 
혜연은 말이 없는 아이였다. 항상 혼자였다. 그녀는 사춘기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존재감 없는 아이로 자란 것이다. 대학에 가서도, 흔한 미팅 한 번 하지 않았다. 같은 과 선배였던 남편이, 적극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면 결혼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말을 듣고, 혜연의 마음은 복잡했다. 
 
억지로 병원을 찾았던 혜연은, 막상 의식 없이 누워있는 아버지를 바라보자, 생각이 달라졌다. 
 
아버지 옆에 앉아,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혜연은 다짐했다. 
 
‘제가 아빠를 돌봐줄게요.’ 
 
의사는 ‘아버지가 의식은 깨어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혜연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혜연은 남편에게 양해를 구하고, 병원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아버지를 간호했다. 여름에 쓰러진 아버지는, 그 해 첫눈이 내리고 며칠이 지나, 세상을 떠났다. 
 
혜연은 말했다. 
 
“아빠가 의식을 잃고 쓰러지신 몇 달은 제게 치유의 시간이었어요. 그동안 아빠에게하지 못한 말을 마음껏 했거든요. 혼자 웃고 울고 하면서, 정말 하고 싶은 말을 다 했어요. 눈을 감고 있는 아빠가 친밀하게 느껴질 정도였거든요. 나중에는 복음을 전했어요. 천국에서 아빠를 다시 만나고 싶어서요. 아버지가 복음을 듣고, 주님 품에 안기셨기를 바랐거든요.
 
그리고, 아빠에게 부탁했어요. 천국에서 우리 태호를 만나면, 아빠가 잘 돌봐주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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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연은 혼자 남은 어머니를 돌보고 싶었다. 남편도 흔쾌히 동의했다. 까다로운 시부모를 자기 부모처럼 생각해주는 아내에게 고마웠다. 예상과 달리,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힘들어진 사람은 남편이 아니라, 그녀 자신이었다. 
 
그녀는 말했다. 
 
“저는 엄마와 친밀하지 않아요. 같이 있으면, 너무 불편하거든요. 생각해보니까, 엄마와 함께했던 기억이 전혀 없어요. 
 
그렇게 술 주정을 했던 아빠도 나중에는 친밀하게 느껴지던데, 엄마는 왜 이렇게 어색할까요?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지겠지 했는데, 점점 심각해지는 것 같아요.” 
 
혜연의 어머니는 거친 성격이었다. 술주정하는 남편 대신 생계를 책임지고, 살림을 해야 했으니, 억세게 살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혜연은 기억했다. 
 
“엄마는 아빠처럼, 집안 살림을 부수거나 우리를 때리지는 않았지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죠. 이렇게 말하면 웃기지만, 저는 차라리 맞는 게 나았을 거라는 생각을 해요. 일곱 살 때였을까요? 엄마가 소리를 지르니까, 제가 기절을 했어요. 어린애가 무서웠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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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시대가 좋아졌다고 해도, 스마트폰으로 성경을 찾는 게 지금 말이 됩니까? 북한이 쳐들어와서, 전쟁이라도 나면, 스마트폰 들고 싸울 거예요? 총 들고 싸워야 될 것 아니에요! 영적 전쟁은 그보다 더 치열한 싸움이에요. 성경을 손에서 놓으면  안 된다고요! 예배 오실 때, 성경 좀 가지고 다니세요! 말씀을 의지할 생각을 해야지,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도대체 어떻게 합니까?!” 
 
수요 예배였다. 목사는 또다시 소리를 질렀다. 혜연은 성경을 가지고 왔지만, 그 자리에 앉아 독설을 들어야 했다. 심장이 뛰고, 식은땀이 났다.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혜연의 엄마가 억세게 말했다. 
 
“그딴 교회를 뭣 하러 나가는 겨? 목사라는 사람이, 오늘도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피우더구먼. 나는 도대체 너 속을 모르것어. 왜 나까지 데리고 나가서, 이렇게 화병이 나게 하는 겨? 말 좀 해봐, 이것아!” 
 
그녀는 말없이 운전만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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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신앙이 올바른 건지는 모르겠지만, 상담을 받고 있으니까 솔직히 말하고 싶어요.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겠지만, 혹시라도 목사님이 교회 돈을 횡령하거나, 여자 문제로 교회를 쑥대밭을 만들어도 저는 교회를 떠나지 않을 거예요. 
 
그곳에서 예수님을 만났고, 우리 태호처럼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돌보고 있어요. 세상 어느 교회를 가도, 예수님이 계시겠죠. 하지만, 우리 교회에도 예수님이 계세요.  
 
예수님만 바라보고 싶어요. 예수님처럼 어린 아이들을 사랑하면서 신앙생활 하고 싶어요. 목사님이 서툰 방식으로 성도들을 대하시더라도 이해할 수 있어요. 제가 상처가 많아서 그런 거니까요. 
 
엄마도 여자로 보면, 정말 불쌍하다는 생각을 해요. 지금까지 고생만 하셨잖아요. 저한테 투정을 안 부리면 어디 가서 그러시겠어요. 힘들어도, 이해하고 싶어요. 아빠도 전도했으니까, 엄마도 전도해야죠. 
 
제 꿈이 뭔지 아세요? 
 
천국에서 우리 가족이 다 같이 만나는 거예요.”
 
그녀는 손가락을 구부려가며, 셈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태호…. 아빠, 엄마. 남편, 그리고 나…. 천국에서 다 함께 만나는 꿈을 꿔요.”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흐느꼈다. 그리고, 부끄러운 듯 내게 물었다. 
 
“제가 이상하게 믿죠? 상처가 많아서 그런 가봐요.” 
 
나는 눈물을 머금은 채로, 고개를 살며시 저었다. 
 
내 진심이 그녀에게 전해지기 바랐다. 
 
그녀는 상처 입은 치유자다.

그 마음 표현하기 힘들 거예요

혼자가 익숙했어요. 
점점 말이 없어졌죠. 
 
말할 사람이 없으니까 
힘들고 답답해도 혼자 삭였어요. 
 
사람이 다 그렇잖아요. 
처음에는 이해가 안되서 화나지만
생각해보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잖아요. 
 
처음에는 부모님을 이해 못했어요. 
많이 원망했어요. 
 
제가 엄마가 되어보니까 
부모님 마음 알겠더라고요.
 
아, 내가 몰랐구나.
부모님이 날 사랑한 거구나.  
 
이해하고 사랑하기로 했어요. 
지금은 잘 지내요. 
 
내가 힘든 건 남편이에요. 
대화가 안되요. 
 
사실 오래전에 포기했어요. 
내 마음 표현하고 싶지도 않고 
남편 생각 듣고 싶지도 않아요. 
 
그렇군요. 
속상하네요. 
 
당신 이야기를 들으면서 
혼자 생각해봤어요. 
 
어린 시절 부모님으로 인해 
받은 상처가 깊었을 텐데 
어떻게 용서할 수 있었을까. 
 
하나님을 만나서 그래요. 
그래서 용서할 수 있었어요. 
  
놀라워요. 
사람으로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이 해내셨군요. 
 
하지만, 조심스럽게 
내 생각을 말하고 싶어요. 
 
힘든 시간을 혼자 보내면서 
혼자 삭이는 법을 배우신 것 같아요. 
 
혼자 울고 혼자 위로하고 
혼자 정리하고 혼자 일어서요. 
 
슬프게도 당신은
혼자가 익숙해졌어요.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할 때는 괜찮아요. 
당신은 정말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어요. 
 
언제나 밝아요. 
혼자 일어설 수 있으니까요. 
 
부모님이 혜택을 보셨죠.  
부모님을 사랑하게 되었어요.
 
부모님의 노력이 아닌
당신의 노력으로.  
 
당신에게 상처 준 사람들 역시 
혜택을 받았을 거예요. 
 
이미 용서했을 거예요.
이해하고 받아들였을 거예요. 
 
그들이 노력이 아닌 
당신의 노력으로. 
 
하지만, 배우자는 달라요. 
그 방법이 남편에게는 통하지 않아요.  
 
배우자와의 관계는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상처받을 수 있어요. 
 
남편이 오해할 수 있거든요. 
당신이 원래 그런 성격이라고.
 
아닌데. 
힘든데.
노력하는 건데.  
 
당신의 그 피나는 노력 덕분에 
남편이 모를 수 있어요. 
 
내가 아내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었는지. 
 
내가 아내에게 
얼마나 필요한 사람인지.  
 
당신은 힘들면 
조용히 입을 닫아요. 
 
생각의 방으로 들어가 
하나님과 해결해요. 
 
하나님께 말하고 
하나님께 위로받아요. 
 
하나님이 정리해주니 
남편이 해줄 게 없어요.   
 
남편이 무시하며 말해도 
성실하게 대답해주고 
 
남편과 다투고 난 다음날도 
평소처럼 아침을 차려주고   
 
밥 먹듯 야근을 해도 
답답한 마음 표현하지 않아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아무리 커도 
당신은 외로울 수 있어요.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에요.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지으셨어요. 
 
사람은 혼자 못 살아요. 
하나님도 아세요. 
 
그 좋은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혼자 있는 게 
좋아 보이지 않으셨어요. 
 
아담이 잠든 사이 
돕는 배필을 보내주셨잖아요. 
 
배우자는 나의 일부에요. 
나는 배우자의 일부이고. 
 
내가 나와 대화하는 방식이 
내가 배우자와 대화하는 방식이에요. 
 
당신 안에 슬픔이 쌓이고 있어요. 
히말라야 산맥처럼. 
 
그 마음 표현하기 힘들 거예요. 
하나님, 자기 자신, 배우자에게. 
 
나는 당신의 남편을 만난 적 없어요. 
어떤 사람인지 몰라요. 
 
나쁜 사람일 수도 있어요. 
못된 사람일 수도 있죠. 
 
나는 그 사람을 만날 수 없기에 
당신에게 희망을 걸어봅니다.
 
그 사람 나쁜 사람이 아니라 
서툰 사람일 수 있어요.
 
그 사람 못된 사람이 아니라 
무딘 사람일 수 있어요. 
 
그 사람 당신이 얼마나 힘든지 
모를 수 있어요. 
 
당신이 표현하기 힘든 만큼 
배우자도 알아듣기 힘들 거예요. 
 
바로 지금 그곳에 하나님이 필요해요.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기를 바라요.
 
당신이 용기 내어 입을 열 때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나오기를 바라요.
 
정죄와 비난이 아니라 
당신의 필요와 원함을 말하기 바라요.  
 
하나님은 눈앞에서 남편을 
순식 간에 바꿔주시지 않아요. 
 
나와 내 남편. 
그 고통스러운 관계 속에서 
하나님은 나를 변화시켜 가시죠. 
 
손해는 아니에요. 
조금만 견뎌주세요. 
 
나의 변화는 
대화 방식의 변화가 되고 
 
대화 방식의 변화는
배우자의 변화가 될 거예요. 
 
내 편협한 말 
들어주셔서 고마워요. 
 
당신을 위해 기도할게요.
당신이 다시 웃는 그날까지.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아요

결혼에 한 번 실패했어요.
혼자 아이를 키우는데 힘들어요.
외로워 견딜 수 없어요.
 
참고 살아보고 싶었어요.
남편의 폭력이 시작되었을 때
더 이상 안되겠다 싶었죠.
혼자 아이를 키우며 사는 게
이렇게 힘든 건지 몰랐어요.
 
아이한테는 미안하지만
나는 누군가를 계속 만나야 해요.
좋은 아빠를 찾아줘야죠.
아이와 날 책임질 사람.
 
사랑?
그런 건 바라지도 않아요.
감정보다 중요한 건 현실이에요.
나는 사랑에 실패했잖아요.
외롭지만 않으면 돼요.
 
이제 누구라도 나와 내 아이를
받아줄 수 있다면 좋겠어요.
같이 있으면 지금보다
외롭지는 않겠죠.
 
누군가를 만나면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거라는 말,
진심인가요.
 
조급한 당신이 혹시라도
지금보다 외로워질까 걱정돼요.
 
결혼해서 당신은 외로웠어요.
혼자일 때보다 더 고통받았어요.
결혼이 당신을 외로움에서
구원해줄 수 없다는 뜻이에요.
 
실패했다고 좌절하지 않았으면 해요.
실패가 아니에요.
당신 잘못도 아니에요.
오히려 당신은 폭력에서
아이를 구해 낸 영웅이에요.   
 
샴페인을 터뜨릴 수는 없어요.
전쟁 영웅의 뒷모습이
트라우마로 얼룩져 있듯이
당신의 삶 역시
상처로 고통스러울 거예요.
 
모진 말 같지만
진실을 말하고 싶어요.
불편하시면 언제든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외로움은 사라지는 감정이 아니에요.
이 세상 사는 동안
당신을 따라다닐 거예요.
 
갈등 많은 부부는 서로의 관계가 회복되면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진실이 아니에요.
 
부부가 행복해도 외로울 수 있어요.
나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지는 몰라도
외롭지 않은 게 아니에요.
외로워요.
말할 수 없이 외로울 때가 있어요.
내 아내도 그럴 거예요, 아마.
 
이유는 설명 못해요.
알 수 없어요.
그냥 그런 거예요.
 
부부가 서로만 바라보고
전혀 외롭지 않다면
하나님을 찾을 수 없어요.
서로만 바라보면 답이 없어요.
서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라고
외로운 감정을 주셨나 봐요.
 
마음속 깊은 곳에   
부부 각자의 나침반을 숨겨두신 거죠.
하나님을 더듬더듬 찾아가도록.
 
외로움은 스스로 돌봐야 해요.
아무도 해결해 줄 수 없어요.
돌보는 게 힘드니까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사람 있어요.
영원히 외로울 수 있어요.
다른 대상으로 해소하는 사람 있어요.
반드시 부작용 나요.
 
외로움을 스스로 돌보면서
아닌 사람은 일단 떠나보내세요.
정말로 원하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힘들어도 견디세요.
 
당신은 알게 되었어요.
누구를 만나면 안 되는지.
당신을 때리는 사람을 만나면 안 돼요.
만나자마자 알 수 없어요.
그러니 조급하면 안 돼요.
 
원하는 사람과 새로운 삶을 시작해도
자신 안에 외로움을 계속 돌봐야 해요.
나 대신 내 외로움을 달래줄 배우자는
세상에 없어요.
 
나 그동안 혼자 외로웠다.
이제 당신이 채워줘라.
그래서 우리 결혼했다.   
서로 외로워져요.
 
자신을 잘 돌봐주세요.
자신을 돌보면서 배우자도 돌봐주세요.
적어도 내 옆에서는 외롭지 않도록.
그래야 서로 외롭지 않아요.
 
내가 잠시 떠든 입바른 소리로
당신이 위로받지는 못했을 거예요.
나도 말하는 내내 미안했어요.
그래서 불편하면 내 말을 끊어달라고 부탁했어요.
끝까지 내 말 들어줘서 고마워요.
 
마음속 외로움 때문에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을 만나면서
당신이 비참해지지 않기를 바랐어요.
 
먼저 자신을 돌봐주세요.
정말로 원하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참고 기다려주세요.
 
백마 탄 왕자는 아니어도
자기를 돌볼 수 있는 남자,
아내를 돌볼 수 있는 남자,
그런 남자가 당신 앞에 나타나기를 바랄게요.

외롭지만 애써 괜찮은 척 해요

청년부 소그룹 리더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건강하고 좋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아요. 솔직히 말하면, 제 이야기를 다른 누군가에게 꺼내지 못합니다. 저 스스로가 사람들에게 마음을 닫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애써 괜찮은 척하지만, 가끔은 너무 외롭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질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외로운 감정은 사라지는 감정이 아닙니다. 누구나 외로움을 느낍니다. 그러니,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외로움은 기회일지 모릅니다. 외로운 감정을 혼자 간직하지 않고 예수님께 가져가고 있으니까요. 외로울 때마다 주님을 찾는다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 역시 그렇습니다. 외로운 감정을 거의 하루 종일 느낍니다. 자주 말씀드리지만, 외로운 감정은 누가 옆에 있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거든요. 내 가정은 행복합니다. 아내와 나,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내게 말할 수 없는 행복을 줍니다. 그래도, 외롭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문제가 아닙니다. 외로운 감정은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감정입니다. 만약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로 충분하다면, 그래서 전혀 외롭지 않다면, 하나님을 찾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부족함을 느낄 수 없으니까요. 그러나, 세상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갈지라도, 근원적인 결핍은 결코 다른 사람을 통해 채워질 수 없습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어도 외로울 수밖에 없는 겁니다. 하나님으로만 채워져야 하는 빈자리가 있습니다. 세상 그 누구도 채워줄 수 없는 빈자리입니다. 
 
지금처럼 주님께 시시콜콜 다 말해주세요. 아무리 사소한 이야기라도 주님께 가져가서 말해주세요. 그러면, 안전합니다. 외로움을 돌보면서, 성장하고 계신 거예요. 가끔 말할 수 없이 외로울 수 있지요. 걱정 마세요. 주님이 안아주십니다. 그 감격과 기쁨으로 당당하게 일어나실 거예요. 감정이 당신을 속일지라도 절대로 속지 마세요. 당신은 절대로 혼자가 아닙니다. 언제나 주님이 함께 계시니까요. 

울어도 괜찮아요

슬픈 이야기네요.
마음이 아파요.
 
나는 울고 싶었어요.
당신이 웃는 바람에
나도 따라 웃었죠.
 
어쩌면 그 웃음으로
지금까지 버텨왔겠죠.
 
누가 아나요.
웃음 뒤에 슬픔을.
슬픔 뒤에 절망을.
 
아마 울면 안 됐을 거예요.
당신마저 무너지면 안 됐겠죠.
 
버티고 견디면서
밝은 모습 보여줬을 거예요.
 
같이 있는 당신
혼자 있는 당신
서로 다른 당신.
 
안심하세요.
여기서는 울어도 괜찮아요.
 
울어야만 해요.
그래야 사니까.
 
나 있잖아요.
사람들이 울보래요.
 
설교하다 울고
기도하고 울고
상담하다 우니까.
 
울지 말란 말
많이 들었어요.
 
설교하다 울면 안 돼.
감정에 호소하는 거잖아.
 
기도하다 울면 안 돼.
성도가 걱정해.
 
상담하다 울면 안 돼.
내담자가 의존해.
 
다 맞는 말이에요.
하지만, 안되는걸요.
안되는 걸 어떻게 해요.
 
오히려 나는 내 마음이
메마를까 걱정이에요.
 
내 몸에도 눈물이 있다는 걸 알고
얼마나 기뻤는데요.
 
오랫동안 눈물이 마른 적이 있어요.
그 시기에 자주 들은 말이 있어요.
 
든든하다.
듬직하다.
 
그 말 때문에 더 못 울었어요.
든든한 사람 되고 싶어서.
듬직한 사람 되고 싶어서.
 
눈물을 되찾은 날 행복했어요.
슬플 때 울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눈물이 마르면
난 사람들 곁을 떠날 거예요.
 
사람이 앞에서 우는데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프로는 될 수 있지만
목자는 될 수 없어요.
 
기능할 수 있지만
사랑할 수 없어요.
 
울고 싶으면 우세요.
울어도 괜찮아요.
 
민망하지 않을 거예요.
나도 따라 울 거예요.
 
당신을 치유하는 건
내가 아니니까
울음 참지 않으려고요.
 
나와 당신 사이
그분이 함께 계시죠.
 
울고 나면
당신도 알게 될 거예요.
 
말할 수 없는 평안을.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우리 헤어질 시간이에요

내 이야기 들어줄 사람 없어요.
내 말을 중간에 끊어요.
자기 생각만 말해요.
 
네 잘못도 있겠지.
그 사람이 오죽하면 그래.
나라도 그랬겠다.
아픈 말이 화살처럼 날아와
상처에 꽂혔어요.
 
더 이상 말하지 말자
다짐해보지만 못하겠어요.
가슴이 터질 듯 답답해요.
 
내가 사람 많이 의지해요.
처음에 잘해주던 사람도
하나 둘 날 떠나요.
내가 부담스러운가 봐요.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한다고.
 
오늘은 안심하세요.
내가  들어줄 수 있어요.
내가 좋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잘 듣는 기술을 가진 사람이라서 그래요.
 
내가 들어보니
사람들이 모르는 게 있네요.
당신이 누군지 몰라요.
당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당신이 들려준 말을 정리해 볼게요.
어릴 때 부모님이 서로 때리고
물건을 집어던지며 싸웠다고 하셨죠.
 
부모님이 싸우면 당신은 무서워서
침대 밑에 웅크리고 숨었어요.
머리를 땅에 박고 벌벌 떨면서 울었어요.
 
엄마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침대 아래 숨어 있는 당신과
두 눈이 마주한 순간
당신은 집 밖으로 뛰쳐나갔어요.
 
길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경찰에 신고해달라고 했지요.
아무도 신고해주지 않았고요.
그때 나이 7살이라 했나요.
 
나는 지금 당신이 7살로 보여요.
키는 자랐어도 정서는 자라지 않은 거죠.
 
내 팔을 붙잡고 말하고 있어요.
경찰에 신고해달라고.
어떤 방식으로든 도와달라고.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뿌리칠 뻔했어요.
당신이 누군지 몰랐다면,
당신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면,
나도 그럴 뻔했어요.
 
사람들은 당신의 얼굴을 보겠죠.
그리고 거리를 두겠죠.
다 큰 어른이 제구실을 못한다고.
비아냥거릴지도 몰라요.
길가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은
당신을 도와줄 수 없어요.
 
하나만 물어볼게요.
경찰을 찾은 이유가 뭔가요.
경찰이면 도와줄 수 있다고 믿으신 거죠?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안전한 사람이 필요했던 거예요.
그때나 지금이나.
 
당신 말 끝까지 들어줄 사람 세상에 없어요.
사람들은 이미 귀를 닫은 것 같아요.
 
내가 지금 잘 들어준다고 해서
나를 의지하지 마세요.
상담이 끝나면 들어줄 수 없어요.
상담은 영원하지 않으니까요.
 
나는 당신을 그리스도에게로
연결시킬 거예요.
 
두려워 울부짖으며
길가로 뛰쳐나온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품으로
곧바로 달려가 안길 수 있도록
내 모든 노력을 집중할 거예요.
 
얼마나 무서웠니.
얼마나 외로웠니.
이제 괜찮아.
 
나는 보고 싶어요.
당신이 그리스도의 품에 안겨
편안하게 웃는 모습을.
 
당신이 그 품에 안기면
내 역할은 끝나요.
우리 헤어질 시간이 다가와요.
 
떠나보낸 슬픔보다
바라보는 기쁨이 크기에
나는 오늘도 우두커니 당신을 기다립니다.

커터칼로 자해를 합니다

남자친구와 헤어졌어요. 석 달 전부터 손목에 커터칼로 자해를 해요. 피가 송글 맺힌 걸 보면 마음이 놓인다고 할까요. 엄마가 알았어요. 등짝을 때리고 울고 불고 했는데, 나는 마음이 편했어요. 누구라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내가 얼마나 아픈지.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시군요. 마음이 아픕니다. 절망적인 순간에 나에게 질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짧은 말 몇 마디보다 내 진심이 먼저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용기 내어 몇 자 적어봅니다.  
 
당신의 힘든 마음, 사람은 몰라도 주님은 아십니다. 
 
사람은 모른다는 말을 먼저 하고 싶습니다. 여기에는 당신도 포함됩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자신이 얼마나 외롭고 힘든지 모르고 살아왔을 가능성이 큽니다. 의존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거나, 다른 일에 몰두해서 외로움을 잊으려 했을 겁니다. 자세한 정보가 없으니 추측할 뿐입니다.  
 
추측을 했으니, 근거가 있어야겠지요. 남자친구와 헤어졌을 때, 당신이 선택한 행동은 당신의 모든 세계가 무너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별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며, 스스로를 비난할지 모릅니다. 공격 대상이 상대방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 근거입니다. 
 
이별에는 서로의 이유가 있는 겁니다. 아무도 일방적으로 잘못하지 않아요. 아무리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도 소용 없겠지요. 이별이 주는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으니까요. 
 
당신은 하루 아침에 극단적인 행동을 한 게 아닙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을 겁니다. 말할 사람 조차 생각나지 않을 거예요. 슬픔을 어떻게 표현할 지 몰라 답답할 겁니다. 아픈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서, 자신을 파괴하는 행동을 선택한 겁니다. 
 
어머니가 그 장면을 목격했을 때, 당신이 느낀 감정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어머니가 당신의 자해를 발견했을 때, 그 순간 마음이 편해졌다는 건 상황과 맞지 않는 독특한 감정입니다. 감정을 말로 표현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준 거니까요. 
 
주변에 마음 터놓고 말할 사람이 없을까요. 단 한 사람이라도 당신을 지켜줄 사람이 있기를 바랍니다. 남자친구와 헤어진 슬픔이 때문에, 일시적으로 자신을 고립시킨 것이기를 바랍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을 때, 한 사람이라도 당신을 안아주기를 바랍니다. 
 
만약 생각나는 사람이 없다면, 전문적인 도움을 받으셔야 합니다. 상담이나 치료를 받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손목의 상처는 가벼워도, 마음의 상처는 심각합니다. 잠시라도, 자신을 돌볼 시간을 가지세요.   
 
당신이 얼마나 아픈지 당신 스스로 모릅니다. 당신이 표현하지 않으니, 다른 사람도 모릅니다. 그러나, 절망할 필요 없습니다. 
 
당신이 다른 누군가를 찾기 전에 목사인 나에게 질문한 이유가 있겠지요. 나는 그에 맞게 대답을 하겠습니다. 사람은 몰라도 주님은 아십니다. 
 
 당신의 모든 감정, 예수님께 전부 표현하세요. 서투르게라도 예수님께 표현하다 보면, 언젠가는 사람들에게도 편안하게 자신의 감정을 말할 수 있을 겁니다.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아주세요.

나 정말 왜 이럴까

하나님은 언제나
변함없으신  분 맞죠?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나는 왜 매일
다르게 느껴지나요.
 
하나님.
부르면 좋은데.
 
하나님 아버지.
부르면 화나요.    
 
하나님께 미안하고
아버지께 미안해요.
 
나 잘 믿고 있나.
나 상처 있나.
 
나 왜 이럴까요.
뭐가 잘못된 건가요.
 
나도 그래요.
당신만 그런 거 아니에요.
 
나는요, 바보같이
하나님께 도와달라는
말을 못해요.
 
도와달라 말하고 싶은데
자꾸 자책이 돼요.
 
너 최선 다했니.
죽도록 노력했니.
 
처음에는 이유를 몰랐죠.
나 왜 이럴까.
 
결국 알게 되었죠.
나는 아버지에게도 도와달라는
말을 못했어요.
 
내 부모님 많이 힘드셨거든요.
내가 도와달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릴 때는 장난감 사달라고
때도 쓰고 그랬겠죠.
 
철들고 나서는
뭐 사고 싶은 게 있어도
말을 못 했어요.
 
철이 일찍 들었나.
학교에서 돈 내라는 게 있어도
말을 못 했어요.
 
부모님을 도와드리지 못할망정
도와달라니요.
 
스스로 해결했어요.
부모님은 힘드시니까요.
 
걱정 말라고.
나 할 수 있다고.
항상 말했지요.
 
뉘 집 자식인데 그렇게 잘 컸냐.
부모님 어떤 분이냐.
 
가끔 그런 말 들으면 좋았어요.
효도하는 기분이었죠.
 
아버지는 아버지고
하나님은 하나님이지
서로 무슨 상관?
 
그러게요.
나도 상관없으면 좋겠는데
난 왜 이럴까요.
 
아직도 하나님께
도와달라는 말을 하기 힘들어요.
 
하나님,
저 사람 도와주세요.
기도 잘 해요.
말이 술술 나와요.
 
하나님,
나 도와주세요.
기도 못 해요.
말이 턱턱 막혀요.
 
도와달라는 말은 안 나오고
눈물만 흘러요.
 
언젠가 내 문제가 해결되면
당신에게도 알려줄게요.
 
아, 됐고요.
그나저나 힘들지 않아요?
하나님께 도와달라는 말을
안 하고 어떻게 사나요?
 
나 안 힘들어요.
내 마음은 전해요.
 
나 그렇다고.
그냥 그렇다고.
 
하나님도 아실 거예요.
내가 얼마나 답답한지.
 
도와달라는 말 못한다고
안 도와주시는 거 아니에요.
 
다 도와주셨어요.
말 못하고 바보처럼 우니까
불쌍하지 않을까요.
 
생각해보니까 사람한테도 그래요.
도와달라는 말을 못했어요.
목회하는 내내 그랬죠.
 
목사가 혼자 사역 못하잖아요.
도와달라는 말을
얼마나 많이 해야 되는데요.
 
도와달라는 말 한 마디 못해서
종이 자르고 풀칠하고 붙이고
혼자 다 했어요.
 
나중에는 사람들이 알아요.
와, 이 사람은 도와달라고
말을 못하는 사람이구나.
 
내 마음 알아주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생겨났어요.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 나요.
 
나 같은 사람을 데리고
사역해준 사람들.
정말 고맙죠.
 
나 못난 거 사람들도
알고 도와줬어요.
 
하나님이 모르실까요.
그럴 리 없죠.
 
당신 힘들다고 말했는데
나 못난 거 말해서 미안해요.
 
하나님이 그 마음 아신다고.
아실 거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하나님. 하나님 아버지.
같은 하나님이길 바라요.
 
함께 기도할게요.
당신을 도와달라는 말은
편하게 할 수 있으니까.

예수님이 멀게 느껴져요

예수님만 바라보라고 하잖아요.
나는 그 말이 뭔지 몰라요.
예수님이 친밀하지 않아요.
멀게만 느껴지고.
 
사람들하고 기도하면서 같이 울잖아요.
같이 울어도 똑같이 우는 게 아니에요.
내 눈물은 성분이 달라요.
감사해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에요.
서러워서 흘리는 눈물이에요.
 
왜 나를 만들었나.
왜 나만 차별하나.
서럽고 외로워서 눈물만 흘러요.
어떻게 해야 주님을 만날 수 있나요.
방법을 알고 싶어요.
 
상투적인 말부터 해야겠네요.
지루하더라도 참고 들어주시겠어요?
듣다 보면 남는 건 있을 거예요.
 
데이트해보셨지요.
상대방을 알아가는 과정이 있어요.
그 사람이 누군지 알아야 해요.
그 사람이 했던 말과 행동.
그 사람의 태도와 감정.
알면 알수록 좋아요.
 
친구들을 만나보는 것도 좋겠죠.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에 대해
뭐라 말하나 들어봐야죠.
 
주변 사람들이 하나같이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운다면
좋은 사람이란 뜻이죠.
 
결혼을 전제로 만난다면
더욱 신중해야겠죠.
섣불리 결론 내리면 안 돼요.
따질 건 전부 따져봐야죠.
 
예수님도 마찬가지예요.
신랑을 고르는 것과 비슷해요.
많이 알면 알수록 좋아요.
따질 건 전부 따져보세요.
 
예수님이 하신 말,
예수님에 대한 말,
모두 성경에 있어요.
신중하게 읽고 생각하세요.
 
예수님에 대해 알았다고 해서
바로 믿어지는 건 아니에요.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려면
성령님의 도움이 필요해요.
 
마른 장작에 불을 붙여야죠.
그래야 활활 타오르니까요.
성령님이 불을 붙어주시면
고백할 수 있어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나는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까요.
설명하기 힘들어요.
어느 날, 예수님이 찾아와 주셨어요.
 
나도 혼자라고 생각했어요.
아무도 날 지켜주지 않았으니까요.
저러다 애 죽겠다 싶으니까
급하게 찾아 오셨나 봐요.
조금만 늦게 오셨어도 나는 세상에 없겠죠.
간신히 살았어요, 정말로.
 
바로 질문하겠죠.
왜 나에게는 안 오시나요?
나도 믿고 싶은데.
사람 차별하는 것도 아니고.
 
혼자라고 느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예수님은 차별하지 않으세요.
예수님은 당신 곁에 오셨어요.
당신도 혼자가 아니에요.
 
당신이 내 앞에서
혼자라고 말하면서 우는데
이상하게 나는 불안하지 않아요.
이제야 알 것 같아요.
당신의 진심을.
 
당신은 그리워하고 있어요.
예수님과 친밀했던 그 시절을.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것처럼 말해서
정말 그런 줄 알았어요.
내가 잘못 알아들었어요.
주님의 따뜻한 품이 그리운 거예요.   
 
처음부터 당신의 마음을 알았다면
길게 말하지 않았을 거예요.
내가 무뎠어요.
 
이제 알았으니 부탁할게요.
조급할 필요 없어요.
기다려주세요.
주님이 다시 만나주실 거예요.
 
옛사랑을 그리워하는 당신이 아니라
오늘 주신 사랑으로 설레는 당신이 되기를
나는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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