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예수님

내 옆에는 아무도 없어요

나는 혼자야.   
그래서 외로워.  
 
당신이 혼자라는 말. 
그래서 외롭다는 말. 
반은 맞고 반은 틀려요. 
 
사람은 절대로 혼자일 수 없어요. 
생각과 함께 지내니까요. 
 
혼자 있다고 해서 
무조건 외로운 게 아니에요. 
 
혼자 있는 그 자체보다 
혼자 있을 때 찾아오는 
생각이 더 중요해요. 
 
내 옆에는 아무도 없어. 
나는 평생 그랬어.
벗어날 수 없어.  
 
한 번 찾아온 생각은 
떠날 생각을 하지 않고 
마음을 짓밟거든요. 
 
수도꼭지를 잠그듯 
생각을 틀어막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참 어렵죠. 
말처럼 쉽지 않아요. 
 
나라고 별 수 있나요. 
나도 답답할 때 많아요. 
 
나를 괴롭게 하는 생각이 
모래알처럼 많지만 
하나만 말해볼게요. 
 
읽어주는 사람 없을 때는 
글이 잘 써졌어요. 
 
읽는 사람 늘어나니까 안 써져요.
미칠 노릇이죠. 
 
글이 막히면 
파도처럼 생각이 밀려와요.  
 
네 글을 누가 읽어. 
아무도 안 읽어. 
유치하고 편협해. 
 
생각이 안 사라져요. 
글 쓸 때마다 찾아와서 괴롭혀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방법 없어요. 
그냥 끌려다녔죠. 
 
정말 잘 쓰고 싶은데 
뜻대로 안되니까 괴로웠어요.  
 
고생고생하다가 
좋은 방법 하나 찾았죠. 
 
내가 나한테 
단호하게 말했어요. 
 
야, 그냥 써. 
잘 쓰지 말고 그냥 쓰라고. 
 
그래서 그날부터 
그냥 써요. 
 
매일 새벽 4시 기상. 
200자 원고지 20장, 
글자로 4천 자.
 
아무 생각 없이 
모니터 화면을 글자로 
채워 넣어요.
 
가끔 이 방법이 
안 통하는 날이 있어요. 
울죠. 많이 울어요. 
 
이래도 안되는구나. 
정말 안되는구나. 
 
막 울고 있으면 
주님이 옆에 오신 것처럼
마음이 따뜻해져요. 
 
한 사람. 
오직 한 사람. 
상처 입은 한 사람에게 
나를 전해주렴. 
 
아, 그랬구나. 
내가 욕심부렸구나. 
잘못 생각했구나.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글을 써요.  
오직 한 사람을 위해.  
 
아가페 사랑. 
긍휼의 마음. 
진정성. 
 
내가 글쓰기 전에 
입버릇처럼 
반복하는 말이에요. 
 
당신에게 전해주고 싶어요. 
그분의 따뜻한 사랑을. 
 
당신이 외로운 것처럼 
나도 외로워요. 
 
내가 외롭지 않으면 
당신이 한심해 보일지 몰라요. 
다행히 나도 외로워요. 
 
내 글이 당신에게 닿고 
당신이 그분께 닿으면  
우린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에요. 
 
나와 당신 사이
새로 놓인 다리로 
그분이 건너가시기를 바라요. 
 
투닥투닥 망치를 두드려 
다리를 짓는 마음으로
타닥타닥 글을 써요. 
 
그분이 당신에게 
건너가실 수 있을 만큼 
튼튼한 다리를 
만들고 싶어서. 
 
당신이 혼자라서 
외로운 게 아니에요. 
 
주님이 계시지 않아 
외로운 거예요.
 
당신이 혼자라고 느낄 때 
주님을 전해주고 싶어요.  
 
나는 더 이상 나쁜 생각이 
당신을 짓밟도록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내 몸 상해도 돼요. 
망치질을 쉬지 않을 거예요. 
 
다리가 튼튼한가요. 
그래요. 
그분을 전해드릴게요. 
 
주님이 건너가세요. 
당신을 안아주세요. 
 
이제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요.

더 이상 희생하지 마세요

가족을 위해
희생하지 말고
자신을 돌보세요.
 
안돼요.
그럴 수 없어요.
 
나 하나 희생하더라도
가족이 살 수 있다면
나는 괜찮아요.
 
예수님도
말씀하셨잖아요.
 
내가 밀알처럼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오열하는 그녀의 눈물을
누가 닦아줄 수 있을까요.
 
나는 먼저
그녀의 아픈 마음을
위로하고 싶어요.
 
눈물이 마르고
마음이 진정되면
말해주고 싶어요.
그 말씀의 의미를.
 
밀알의 비유는
우리에 대한 명령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에 대한 예고였어요.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많은 생명이 살아날 것이란 의미에요.
 
당연히, 우리도 예수님처럼 살아야죠.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이 아니랍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셨지만,
내가 가는 길을
너희가 결코 따라올 수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내가 주는 잔을 마시라고 하셨지만
내가 마시는 잔을
결코 마실 수 없다고 하셨어요.
 
예수님을 따르기는 하지만,
예수님이 될 수는 없는거죠.
 
밀, 길, 잔.
모두 예수님의 죽음을
예고하는 말이에요.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죽어야 하지만,
우리가 죽어도 예수님의 죽음과는 다르죠.
 
나는 당신에게
말하고 싶어요.
 
가족을 위해 희생할 사람은
당신이 아니에요.
 
가족을 위해 희생할 사람은
더 이상 필요 없어요.
 
예수님이 이미 희생하셨어요.
단번에 완전히 희생하셨죠.
 
당신이 아무리 희생해도
예수님 자리를 대신 할 수 없어요.
 
예수님이 되지 마시고
예수님과 하나가 되세요.
 
어떻게 예수님과 하나
될 수 있나요.
 
예수님은 땅에 떨어진
한 알의 밀이에요.   
썩어져 죽으셨어요.
 
그리고,
예수님은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진
생명의 떡이에요.
다시 살아나셨어요.   
 
밀은 땅에 떨어져 썩어서
많은 열매를 맺고
생명의 떡이 되었죠.
 
예수님이 말씀하셨어요.
나는 생명의 떡이다.
이 떡을 먹으라.
영원히 살 것이다.
 
생명의 떡을 먹으면
예수님과 하나 되어
영원히 살아요.
 
이제는 더 이상 죽지 마세요.
죽을 필요 없어요.
 
살아나세요.
더욱 살아나세요.
 
죽고 싶을 때마다
생명의 떡을 먹으세요.
그래야 살아요.
 
당신이 죽으려 할 때마다
예수님이 되려고 하는 거예요.
 
생명을 떡을 먹을 때마다
예수님과 하나 되는 거예요.
 
예수님이 되지 마시고,
예수님과 하나가 되세요.
 
예수님과 하나 된 당신은
올바른 방식으로
가족과 마주할 거예요.
 
가족을 위해 희생하지 말고
가족을 사랑하세요.
 
희생 대신
사랑을 선택할 때
당신도 살고
가족도 살 수 있답니다.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아

하나님 사랑이
느껴지지 않아요.
 
하나님은
날 사랑하지 않아요.
 
사랑받은 적 있나요.
누구에게라도.
 
아무도 없었군요.
내 마음이 아파요.
 
내 부모도 날 사랑하지 않았어요.
이제 하나님도 날 거부해요.
 
하나님이라고 부르면
그나마 괜찮은데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면
마음이 불편해요.
 
아버지라고 하는 순간
복잡한 감정이 밀려와요.
 
무서운 아버지.
무관심 아버지.
 
그 아버지가
이 아버지가 아닌데.
 
이상하다.
참 이상하다.
 
외롭고
쓸쓸해져요.
 
그렇군요.
그럴 수 있어요.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을 수 있죠.
 
사랑받은 적 없어서
사랑받는 게 뭔지 모른다고 하셨죠?
 
자녀를
사랑하시나요.
 
조건 없이
사랑하신다고요.
 
자녀 대신
죽을 수도 있다고요.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했다면서
자녀를 사랑하는 이유가 뭔가요.
 
어디에서
시작된 사랑일까요.
 
당신 안에 사랑이 없잖아요.
사랑받지 못했다면서요.
 
자녀 대신 죽을 수 있다는 말,
진심이란 걸 알아요.
 
혹시,
정말 혹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랑
받은 적 있나요.
 
누군가 당신을 위해
대신 죽기라도 한 것처럼
 
당당해서
물었어요.
 
이제 아시겠나요.
당신은 사랑받고 있어요.
 
부모 사랑으로
하나님 사랑을 느낄 수 없다면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추적하세요.
 
상처투성이 당신도
자녀를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으면서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쉽게 결론 내릴 수 있나요.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사랑을 느껴보세요.
 
내 이야기
잠시 해도 될까요.
 
내 딸이 이마에 깊은 상처를 입어
피를 콸콸 쏟은 적이 있어요.
 
이 삼십 바늘 꿰매서
치료했어요.
 
딸을 지켜주지 못했단 생각에
나는 괴로웠어요.
 
밤이면 밤마다 딸이 잠들면
그 옆에서 울고 또 울었죠.
 
속상해 죽겠는데
하나님이 한 마디 툭 던졌어요.
 
네 딸 살이 찢기니 괴롭겠구나.
나도 내 아들 살이 찢길 때 괴로웠다.
 
온 세상이 멈춘 것처럼
고요했어요.
 
내가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내 딸이 다치지 않았다면.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토록 깊이 느낄 수 있었을까요.
 
부모인 우리는 자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어요.
 
나 외로워요.
당신은 어디 있나요.
 
당신이 하나님을 찾을 때마다
그가 말씀하시기를 바랍니다.
 
네가 네 자녀를 사랑하듯
나도 너를 사랑한다.
 
하나님,
하나님 아버지.
 
당신이 하나님을
어떻게 부르든지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이
당신에게 전해지기를 기도합니다.

계속 고통받아요, 우리는

내가 더 잘 믿으면
이런 일 없을 텐데.
 
이런 일?
어떤 일을 말씀하시는거죠.
 
더 이상 이런 문제로
고통받지 않을 텐데.
 
아, 그 뜻이군요.
아니에요.
 
그건 진실이 아니에요.
진실을 말할게요.
 
계속 고통받아요,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계속.
 
엥, 아닌데.
다른 사람은 잘 믿고 잘 되던데.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세요.
고통받고 있어요.
 
남의 인생 대충 둘러보고
쉽게 평가하지 마세요.
 
모두, 전부
고통받으며 살아요.
 
그럼, 뭐 하러 하나님을 믿나요.
어차피 고통받으며 산다면.
 
좋은 질문이에요.
답해볼게요.
 
복음의 본질은
문제 해결이 아니에요.
 
복음의 본질은
관계 회복이에요.
 
왜곡된 관계가
온전한 관계가 되는 겁니다.
 
예수님은 왜곡된 관계를
회복시켜주셨어요.
 
하나님과 우리 사이
끊어진 관계를 이어주신 거죠.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누릴 수 있어요.
 
이제 눈치채셨나요?
진짜 문제는 따로 있어요.
 
주변에서 뭐라 하든
성경에서 뭐라 하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는 거죠.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끊임없이 물어요.
 
왜 나만?
왜 나만 이런 거지?
 
아니에요.
우리 모두 그래요.
 
나라고 다르겠어요.
나도 매일 고통받아요.
 
문제 해결에 집착하면
우리는 빠르게 고갈돼요.
 
문제 해결에 전전긍긍하며
믿음을 낭비하지 마세요.
 
미안하지만,
고통은 사라지지 않아요.
 
고통을 피하려고 하면
더 고통스러워져요.
 
하나님은 예수님을
고통 속에서 꺼내주지 않았어요.
 
도와주시지 않고
고통의 잔을 마시게 했죠.
 
예수님이 고통의 잔을 피하셨다면
우린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은 하나님만의
방식이 있어요.
 
고통 한가운데서
의미를 찾아내세요.
 
의미를 찾는 사람은
성장할 수 있어요.
 
의미를 발견하면
고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에요.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지요.
 
말도 안 된다.
어떻게 고통 속에서 기뻐하냐.
 
결국에 뻔한 소리 하네.
뭔가 다를 줄 알았다.
 
맞아요.
고통 속에서 기뻐하기 어려워요.
 
하지만, 아시나요?
 
항상 기뻐한다는 건
물리적인 시간이 아니에요.
 
24시간 하루 종일 기뻐하면
그 사람은 병원에 가야 해요.
 
말도 안 되는 기준을 세워놓고
스스로를 정죄하지 마세요.
 
아침에 잠깐 주님을 찾고
하루 종일 분주할 수 있지요.
 
절망할 필요 없어요.
하나님은 쉬는 시간이 없으시니까.
 
당신이 하나님을 찾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은 당신을 찾아내실 거예요.
 
하나님 한 분 만으로
영원토록 기뻐하는 것.
 
당신과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이자 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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