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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예배

설교를 들어도 아무 의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주일 예배 시간에 설교를 들어도 아무 의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닙니다. 예배 시간에 뜨겁게 은혜받은 기억도 있습니다. 요즘은 정말 억지로 교회를 나가고 있습니다. 제게 어떤 문제가 있는 걸까요? 
 
아무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말이 의심스럽습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주일 아침 피곤한 몸을 이끌고 교회를 나가시는 걸까요. 나는 조심스럽게 추측합니다. 아마 주일에 예배를 가지 않는 것보다 교회 가서 자리라도 지키며 앉아 있는 게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이상 되지 않아서 괴로운 것이지, 아무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말은 솔직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교회에 나가 자리는 지키고 앉아 있는데, 원하는 만큼 감동할 수 없는 것이 깊은 고민이겠지요.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해보면 좋겠습니다. 만일 지금이 최악의 상황이고,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더 이상 교회에 나갈 이유가 없다고 결론 내려보겠습니다. 그럼, 이제 정반대의 상황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최악의 상황이 있다면, 최선의 상황도 있겠지요? 최선의 상황은 무엇인가요? 설교를 들을 때, 가장 이상적인 상황이 무엇인지 떠올릴 수 있으신가요? 아마 떠올리기 힘들 겁니다. 그런 상황은 없으니까요. 
 
결핍이 크면 원하는 욕구를 과장하는 경향이 사람마다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상태를 과장하려는 욕구는 자칫 위선으로 전락합니다. 안 그런데 그런 척하는 상황이 오면, 오히려 나쁜 상태가 됩니다. 느껴지면 느껴지는 대로, 안 느껴지면 안 느껴지는 대로 자리를 지키세요.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은혜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이야 가슴이 답답하겠지만, 남은 인생 계속 답답하지는 않을 겁니다. 가슴이 뻥 뚫릴 만큼 은혜받는 날도 있을 거예요. 그럴 일 없다고 결론 내리지는 마세요. 만약 당신의 일생에서 단 한 번도 은혜받은 적이 없다고 하면, 주일마다 억지로 그 자리를 지킬 이유도 없을 겁니다. 지난날 받은 은혜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되신 것이지요. 
 
모태신앙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겸손한 척 마세요. 부모님 손잡고 억지로 교회 나오시는 거 아니잖아요. 다 커서 제 발로 교회 나오시는데, 자신의 신앙을 하찮게 볼 필요 있나요. 부모의 신앙은 부모의 신앙이고, 당신의 신앙은 당신의 신앙이지요. 싸구려로 만들지 마세요. 고귀한 믿음입니다. 나는 당신에게 정말로 고맙습니다. 남모르게 주님을 만나신 겁니다. 그러니, 예배의 자리를 지키고 계시죠. 
 
내가 목사라고 예배드릴 때마다 의미를 발견하고, 감동하고 그러지 못합니다. 어떤 때는 졸기도 하고, 졸다 깨서 설교 내용을 비판하기도 합니다. 목회할 때는 예배에 집중하기도 힘들었습니다. 내가 예배에 가장 집중하는 날은 내가 설교하는 날이었습니다. 말도 못 하게 부끄럽지요. 
 
모자라고 부족한 거 다 똑같습니다. 내가 능력되서 여기서 이러는 게 아닙니다. 부끄럽지만 참고 자리를 지키는 것이지요. 내 말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된다면, 힘들어도 참고 자리를 지켜주세요. 은혜가 임할 겁니다. 당신이 그렇게 그리워하는데, 하나님이 안 주실리가 없지요. 나도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존재를 받으신다

<창세기 4:4-5>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면 기뻐하실까요? 가장 좋은 것을 드려야겠지요. 동의해요. 하나님께 대충 드릴 수는 없잖아요. 
 
그러면, 무엇이 가장 좋은 것인가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잘 모르겠어요.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을 드리고 있나요? 누군가 물으면, 가만히 고개를 숙이죠. 누가 이 질문에 떳떳하겠어요.  
 
열정적으로 헌신해 보세요. 가장 좋은 것을 드리고 싶지만, 항상 부족한 것 같아요. 더 열심히 해야 하는데…. 습관처럼 내뱉은 말이죠.  
 
과감하게 큰 금액을 헌금해보세요. 왠지 더 드려야 할 것 같아요. 불현듯 아깝다는 생각이라도 해버리면,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에 부끄러워요.  
 
직업적 성취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해보세요. 원하는 대로 안돼요. 자신보다 성공한 사람의 신앙 간증을 들으면, 나름대로 도전은 되는데, 내 인생은 이게 뭔가, 은근히 주눅 들어요. 
 
뭘 드릴까 고민하면, 하나님을 오해해요. 하나님은 당신이 가져온 것에 별로 관심 없으세요. 하나님은 당신에게 관심이 있으세요.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을 드리고 싶다면, 당신이 가진 무엇이 아니라 당신 자신을 드리세요. 하나님에게 가장 좋은 것은 당신이에요. 당신이 예수님으로 기뻐하는 그 모습을,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세요. 
 
내 주장이 아니에요. 하나님 말씀이에요. 가인과 아벨이 아시죠? 하나님은 가인의 것은 거절하시고, 아벨의 것은 받아주셨어요. 차이가 뭘까요? 
 
제물의 종류일까요? 아벨은 피의 제사를 드려서 받아주셨고, 가인은 곡식으로 제사를 드려서 거절했을까요? 아니에요. 하나님은 곡식 제사도 받아주세요(레위기 2:2). 종류 차이는 아니에요.   
 
제물을 준비한 정성일까요? 아니요. 얼마나 정성을 다하면, 하나님이 만족하시겠어요. 아무리 정성을 다해도 부족해요. 정성 그 자체로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는 없어요. 
 
그럼 뭘까요? 가인과 아벨의 제사 장면에서, 성경은 독특한 표현을 쓰거든요. 한 번 살펴볼게요. 
 
아벨과 그의 제물. 
가인과 그의 제물. 
 
제물을 드린 사람과 제물이 서로 묶여 있지요? 사람과 제물이 동시에 하나님께 드려진 거예요. 하나님은 제물을 드리는 사람과 제물 그 자체를 하나로 보세요.  
 
만약 제물이 서로 바꿔서 드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벨이 곡식을 드리고, 가인이 어린 양을 드렸다면요? 하나님이 가인의 것을 받아주셨을까요? 아니에요. 아벨의 것만 받으셨을 거예요. 
 
제물보다 사람이 중요해요. 하나님은 아벨의 중심, 다시 말해 진심을 아신 거예요. 
 
가장 좋은 것을 드린다는 명분으로, 혼자 애쓰지 마세요. 더 좋은 것을 드리다가, 가장 좋은 당신이 사라져요. 그러면, 나는 속상해요.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세요. 남들 보여주기 부끄럽고, 정성이 부족해도, 용기 내서 하나님께 나아가세요. 
 
하나님 앞에서 절대로 주눅 들지 마세요. 있는 모습 그대로의 당신을 드린다면, 그것으로 충분해요. 하나님은 말할 수 없이 기뻐하세요.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은 당신이에요.

존재를 받으시는 하나님

<창세기 4:4-5>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면 기뻐하실까요? 가장 좋은 것을 드려야겠지요. 동의해요. 하나님께 대충 드릴 수는 없잖아요. 
 
그러면, 무엇이 가장 좋은 것인가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잘 모르겠어요.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을 드리고 있나요? 누군가 물으면, 가만히 고개를 숙이죠. 누가 이 질문에 떳떳하겠어요.  
 
열정적으로 헌신해 보세요. 가장 좋은 것을 드리고 싶지만, 항상 부족한 것 같아요. 더 열심히 해야 하는데…. 습관처럼 내뱉은 말이죠.  
 
과감하게 큰 금액을 헌금해보세요. 왠지 더 드려야 할 것 같아요. 불현듯 아깝다는 생각이라도 해버리면,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에 부끄러워요.  
 
직업적 성취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해보세요. 원하는 대로 안돼요. 자신보다 성공한 사람의 신앙 간증을 들으면, 나름대로 도전은 되는데, 내 인생은 이게 뭔가, 은근히 주눅 들어요. 
 
뭘 드릴까 고민하면, 하나님을 오해해요. 하나님은 당신이 가져온 것에 별로 관심 없으세요. 하나님은 당신에게 관심이 있으세요.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을 드리고 싶다면, 당신이 가진 무엇이 아니라 당신 자신을 드리세요. 하나님에게 가장 좋은 것은 당신이에요. 당신이 예수님으로 기뻐하는 그 모습을,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세요. 
 
내 주장이 아니에요. 하나님 말씀이에요. 가인과 아벨이 아시죠? 하나님은 가인의 것은 거절하시고, 아벨의 것은 받아주셨어요. 차이가 뭘까요? 
 
제물의 종류일까요? 아벨은 피의 제사를 드려서 받아주셨고, 가인은 곡식으로 제사를 드려서 거절했을까요? 아니에요. 하나님은 곡식 제사도 받아주세요(레위기 2:2). 종류 차이는 아니에요.   
 
제물을 준비한 정성일까요? 아니요. 얼마나 정성을 다하면, 하나님이 만족하시겠어요. 아무리 정성을 다해도 부족해요. 정성 그 자체로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는 없어요. 
 
그럼 뭘까요? 가인과 아벨의 제사 장면에서, 성경은 독특한 표현을 쓰거든요. 한 번 살펴볼게요. 
 
아벨과 그의 제물. 
가인과 그의 제물. 
 
제물을 드린 사람과 제물이 서로 묶여 있지요? 사람과 제물이 동시에 하나님께 드려진 거예요. 하나님은 제물을 드리는 사람과 제물 그 자체를 하나로 보세요.  
 
만약 제물이 서로 바꿔서 드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벨이 곡식을 드리고, 가인이 어린 양을 드렸다면요? 하나님이 가인의 것을 받아주셨을까요? 아니에요. 아벨의 것만 받으셨을 거예요. 
 
제물보다 사람이 중요해요. 하나님은 아벨의 중심, 다시 말해 진심을 아신 거예요. 
 
가장 좋은 것을 드린다는 명분으로, 혼자 애쓰지 마세요. 더 좋은 것을 드리다가, 가장 좋은 당신이 사라져요. 그러면, 나는 속상해요.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세요. 남들 보여주기 부끄럽고, 정성이 부족해도, 용기 내서 하나님께 나아가세요. 
 
하나님 앞에서 절대로 주눅 들지 마세요. 있는 모습 그대로의 당신을 드린다면, 그것으로 충분해요. 하나님은 말할 수 없이 기뻐하세요.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은 당신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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