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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애도

아빠가 돌아가셨어요

아빠가 오랜 투병생활을 하시다가, 지난달에 돌아가셨어요. 아버지의 죽음이 너무나 슬퍼요. 교회 공동체에서 맡았던 일을 내려놓고 잠시 쉬려했는데, 주변에서 그러지 말래요. 그럴수록 하나님을 더 붙잡으라고. 슬픔의 영에 사로잡히면 일어서기 어렵다고 참고 견디래요. 
 
슬퍼하세요.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슬프지 않겠어요. 일 년이든, 십 년이든, 평생이든 슬프면 우세요. 아버지가 일생 동안 그립다면, 그건 감사한 겁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는 감정에 죄책감을 느낀다면, 그건 잘못된 겁니다. 
 
나는 자매님에게 “슬픔의 영”에 사로잡히지 말라고 말한 사람의 의도를 모르겠습니다. 성경 어디서 나온 말인가요. “슬픔의 영”이란 표현은 처음 들어봅니다. “슬픔의 영”이란 말은 문맥상 부정적인 뜻이겠지요. 나는 목사입니다. 성경을 진지하게 연구하는 사람이에요. 이 순간만큼은 권위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성경에 그런 말 없습니다.      
 
그 말을 전해 들을 당시의 상황과 분위기 나는 모릅니다. 섣불리 그분에 대해서 평가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하고 싶습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성경에 없는 말을 하면 위험합니다. 성경을 왜곡하면 안 됩니다.  
 
쉬고 싶으면 쉬세요. 교회 일을 감당하는 것 자체가 본질이 아닙니다. 자매님이 원하시는 대로 결정하세요. 교회 봉사할 사람 항상 부족해도, 교회 문 안 닫습니다. 하나님이 잘 이끌어가십니다. 자매님 하나 쉰다고 교회 멈추는 거 아니에요. 잠시 쉬다가 기운 나면 다시 섬겨주세요. 
 
아버지 잃은 슬픔은 잘 간직하세요. 울고 싶으면 울고, 슬프면 슬프세요. 나는 몇 년 전, 3월에 장인어른을 잃었는데, 지금도 슬퍼요. 보고 싶고 생각나고 그래요. 매년 3월이 되면, 울적하고 괴롭습니다. 보고 싶고 그리우면 장인어른 묻혀 계신 추모 공원에 아내 몰래 다녀오고 그럽니다. 내 아내의 아버지를 잃은 슬픔도 이리 큽니다. 자매님의 슬픔은 말로 할 수 없지요.
 
누군가 아직도 거기에 머물러 있냐고 비웃어도 상관없어요. 내 믿음을 똥값으로 취급해도 상관없습니다. 나는 자매님의 믿음이 고귀하다고 생각합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세요. 그 눈물 마를 때까지 주님이 위로해주실 거예요. 오늘부터는 마음 편히 우셨으면 좋겠습니다. 
 

속마음을 말하면 눈물이 나요

저는 지금까지 제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말한 적이 없어요.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교회에서는 속마음을 말할 자리가 많은 것 같아요. 공동체에서 속마음을 말할 때 계속 눈물이 나요. 부끄러워서 울고 싶지 않은데, 멈출 수가 없어요.  
 
괜찮아요. 우세요. 안심하고 울어도 돼요.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모든 사람이 겪는 일이에요. 마음이 복잡할 거예요.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겠죠. 나는 내 경험에 비추어서 잠시 그 감정을 표현해보려고 합니다. 
 
장례식에 가면 눈물이 납니다. 누군가를 잃었다는 슬픔때문이죠. 예수님을 처음 믿는다는 건 이전에 내가 죽었다는 뜻이에요. 지금까지 붙잡고 살았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으려니 무섭기까지 하겠지요. 눈물이 나는 건 당연합니다. 
 
예수님을 믿게 된 순간부터 자매님은 다시 태어납니다. 새로운 생일을 맞이한 겁니다. 깜짝파티를 상상해보세요. 생일 날, 축해해주는 사람 하나 없어 실망한 채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엽니다. 어두운 방 안에 불을 켰을 때, 소중한 사람들이 한가득 모여 폭죽을 터트리며 환호성을 지릅니다. 감동받겠지요. 감동이 크면 눈물이 납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은 결혼식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신부로 일생을 사는 겁니다. 결혼식은 기쁘지요. 부모와 헤어지는 슬픔도 있습니다. 복잡한 감정입니다. 결혼식에서 신부가 흘리는 눈물은 보석입니다. 성분이 H2O가 아닙니다. 
 
장례식, 깜짝파티, 결혼식을 동시에 겪었으니 얼마나 정신이 없을까요. 누군가 말을 걸면, 두서 없이 말하게 될 거예요. 그동안 자신을 꼭꼭 숨겨 온 사람이라면, 표현하기 더욱 힘들겠지요. 말보다 마음이 앞설 겁니다. 울음이 먼저 터지는 건 당연합니다.
 
처음이라 부끄럽겠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공동체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 비슷한 일을 겪었습니다. 사람들이 이해해줄 거예요. 울고 싶은 만큼 우세요. 어쩌면 누군가는 자매님이 흘리는 눈물을 보면서, 첫 사랑을 떠올릴 겁니다.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첫 사랑 말입니다. 
 
자매님은 공동체의 선물입니다. 갓 태어난 자매님을 공동체가 사랑으로 안아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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