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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아빠와 딸

너만 내가 싫은 게 아니야

“남편이 애들한테 욕하는 모습을 보면 참을 수가 없어요.”
 
F에게는 초등학교 5학년 딸, 여섯 살 남자 아이가 있다. 둘째 아이가 산만해서 사람들이 집에 오면 곤란한 일이 생긴다. 손님 어깨에 발을 올리면서 목말을 태워달라고 말하거나 먹는 음식에 손을 넣고 장난을 친다. 그녀에게 스트레스였다. 
 
그녀가 말했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스트레스를 받지만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은 게 더 힘들어요. 자주 싸우거든요. 성격이 안 맞아요. 연애기간도 짧았고, 사랑해서 결혼했다는 확신도 없고….” 
 
그녀는 남편이 다혈질이라고 했다.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고 욕하고 윽박질렀다. 그녀는 참을 수 없었다. 퇴근해서 육아를 돕지 않고, 혼자 씻고 자는 모습이 보기 싫었다. 남편에게 막내를 씻겨 주고 재워달라고 부탁했다. 남편은 마지못해 아이를 씻긴다. 아내는 불안하다. 아이는 눈에 물이 들어갔다며 징징거리고, 남편은 “사내자식이 눈에 물이 들어갔다고 우냐”고 짜증을 낸다. 
 
“당신, 나와! 내가 씻길게. 아이 하나 씻기면서 짜증내고 그래. 애 상처 받아.” 아내가 말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지금 잘 씻기고 있었어.” 남편이 말했다. 
 
“당신 매번 그러잖아. 뭐 부탁하면 짜증내고. 나한테 짜증 못 내니까 애들한테 그러는 거잖아. 내가 어려운 부탁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애 좀 씻겨달라고 하는데, 그게 그렇게 힘들어?” 
 
“누가 힘들대? 나는 당신이 중간에 끼어들어서 애 앞에서 나 무시하는 게 이해가 안가. 당신이 그러니까 애들도 날 무시하잖아.” 
 
“똑바로 하면 되잖아. 애들한테 상처 주지 말고. 아빠라는 사람이 툭하면 애들한테 화내고 짜증내고.”
 
“됐어. 그만해. 당신만 옳지. 난 나쁜 사람이고.” 
 
“자기가 그렇게 느끼나 봐. 난 그런 말 한 적 없어.”
 
두 사람의 연애 기간은 4개월. 짧았다. 
 
“제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어요. 그러다 남편을 만났어요. 이 사람이면 괜찮겠다 싶어서 결혼했죠. 부모님 집에서 탈출하고 싶었거든요. 벗어나고 싶었어요.” 
 
남편은 자상하고 따듯한 남자였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만. 아내는 아이들을 대하는 남편의 태도가 불만이었다. 그는  아이들에게 여유가 없어 보였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그럴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아이들에게 화내는 모습을 보면 견딜 수가 없었다. 
 
“아주 조금만 더 노력하면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는데 사소한 일로 화를 내서 모든 것을 망친다.” 
 
아내가 남편을 바라보는 관점이었다. 
 
아내는 삼남매 중 첫째였다. 아버지와 관계가 좋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이들 앞에서 어머니를 무시했다. 경제적인 능력도 없었다. 어머니가 장사를 해서 생계를 책임졌다. 
 
아버지는 술과 도박에 빠져 가정을 돌보지 않았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많이 맞았다. 첫째라는 이유로. 동생들이 잘못하면 아버지는 그녀를 혼냈다. 사춘기에 접어든 그녀는 아버지의 분노를 견딜 수 없었다. 내성적인 그녀는 아버지에게 반항하지 못했다. 일기를 쓰면서 견뎠다. 글을 쓰면 마음이 편해졌다. 
 
어느 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말했다. 
 
“나도 네가 싫다. 너만 내가 싫은 게 아니야. 나도 네가 싫어.” 
 
그녀는 그 자리에 서 있을 수가 없어서 도망치듯 집을 나왔다. 눈물이 앞을 가려 걸을 수 없었다. 다리가 풀리면서 돌에 걸려 넘어졌다. 무릎이 까져 피가 났지만 통증을 느낄 수 없었다. 마음에 난 상처가 더 아팠다. 
 
아버지가 그녀의 일기장을 봤다. 아버지가 혼내고 때릴 때마다 아버지에 대한 욕을 썼다. 아버지가 정말 싫어서가 아니라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어서 그랬다. 
 
그녀가 말했다. 
 
“저는 아버지가 싫은 게 아니었어요…. 일기장에는 뭐든 쓸 수 있는 거죠? 다들 그렇게 하잖아요. 아버지를 사랑하고, 이해하고 싶었어요. 그날 아버지는 제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어요. 그 충격이 너무 커서 제가 아닌 모습으로 살았어요. 나중에 알았죠. 그게 우울증이었더라고요. 아버지의 말을 잊을 수가  없어요. 어떻게 자기 딸한테 ‘나도 네가 싫다’라고 말할 수 있죠? 그러면 안 되잖아요. 아버지란 사람이….”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그녀는 남편을 만났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남편은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 남자라면….’ 
 
그녀는 결혼을 결심했다. 해방감을 느꼈다. 두 번 다시 아버지를 보고 싶지 않았다. 남편은 그녀의 상처를 보듬어 줬다. 처음으로 자신을 아껴주고 사랑해준 사람이다. 그러나 남편이 아이들에게 화를 내면 그에 대한 고마움이 싹 사라졌다. 남편이 던진 말 때문에 아이들이 상처받을 것이 두려웠다.  
 
남편 역시 깨달아야 했다. 그의 말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해로운지. 그녀는 남편이 잘못을 인정할 때까지 물러서지 않고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자녀들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남편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어요. 아버지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요. 아버지 역할에 대해 보고 느끼고 배울 시간이 없었던 거죠. 그래서 아빠로 살아가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면 안쓰러워요. 그를 도와줘야 하는데 제 마음에 상처가 있어서 그런가 봐요. 남편은 내 아버지가 아닌데 왜 이렇게 남편 말에 민감할까. 그는 아버지보다 훨씬 낫거든요. 가끔 아버지가 없었던 남편이 부러워요. 그런 아버지 밑에서 상처 받고 사느니, 차라리 없는 게 낫지 않았을까….”  
 
***
 
 
상처를 인식하면 상처는 치유된다. 인지는 감정, 행동과 연결되어 있다. 상처를 인지하는 순간, 감정에 변화가 일어난다. 사람은 로봇이 아니기 때문에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도식화해서 단순하게 말할 수는 없다. 사람 안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을 추적하면, 인지․감정․행동으로 변화가 일어난다고 추론해 볼 수 있을 뿐이다. 
 
변화를 위한 첫 단계는 상처를 인지하는 것이다. 상처를 발견하고 깨닫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상처에 다가갈 수 없도록 왜곡된 신념이 겹겹이 싸여 있어 상처를 쉽게 인지할 수 없다. 상처의 실체를 발견하기 위해 왜곡된 신념을 하나씩 풀어헤쳐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한 사람이 길을 걷다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쳐다봐서 기분이 나빠졌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사람마다 다르게 대처할 것이다. 쳐다보는 사람을 무시하고 지나칠 수도 있고, 왜 쳐다보냐며 따져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행동하기 전에 자신이 왜 기분이 좋지 않은지 생각해보는 게 먼저다. 
 
누군가 자신을 쳐다볼 때, 기분이 나빠졌다면 마음 어딘가에 왜곡된 신념이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다. 왜곡된 신념은 감정을 결정한다. 감정을 망치는 것이다. 
 
‘저 사람이 날 계속 쳐다보네. 나를 무시하는 건가?’
 
진실을 보려면 왜곡된 신념을 걷어내야 한다. 왜곡된 신념을 변화시키면 상황을 다르게 볼 수 있다. 다르게 생각해보자. 지나가는 사람은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이다. 혹시 아는 사람 아닌가 하고 빤히 쳐다보았다.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는 정보가 새롭게 들어오면 인지에 변화가 일어난다. 
 
‘아, 날 무시하는 것이 아니구나. 시력이 좋지 않아 쳐다본 거네.’ 
 
감정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저, 그 사람 아니에요. 길 조심히 걸으세요.” 
 
상처가 만든 왜곡된 신념은 감정을 망치고, 망가진 감정은 잘못된 행동을 만든다. 사람은 진실에 의해 상처입지 않는다. 왜곡된 신념으로 상처입고 파괴된다. 감정이 망가진 채, 잘못된 행동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간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가 크다. 아버지의 경제적인 무능력, 폭력과 학대. 그녀는 상처 때문에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남편 역시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버지와 망가진 관계가 남편에게서 재현된다고 생각할 때, 삶이 무너진다고 생각한다. 왜곡된 신념이 그녀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진실을 볼 필요가 있다. 왜곡된 신념이 그녀를 더 이상 파괴하지 못하도록. 
 
아버지가 일기장을 훔쳐본 날, 솥뚜껑 같은 아버지 손으로 뺨을 맞은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 마음은 입술보다 부드럽고 약하다. 살짝 때려도 찢어져서 피가 난다. 그녀의 상처는 치유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그때 그 일을 다시 말하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그녀는 다시 생각해야 한다. 
 
“아빠가 제 책상을 청소해주려고 했나 봐요. 그날 일기장을 숨기지 못했어요. 책상 위에 있었죠. 딸의 노트를 보고 싶었나 봐요. 노트를 펼치는 순간, 그 안에 상상하지 못했던 내용이 담겨 있었던 거죠. 딸이 아버지 욕을 했으니까요. 아버지도 상처받았을 거예요. 
 
노트를 손에 들고 있는 아버지 모습이 떠올라요.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화나서 참지 못했다면 학교에서 돌아온 즉시 저를 때렸겠죠. 그날 맞지는 않았어요. 그때 아버지의 목소리는 마치 삶에서 중요한 것을 잃은 듯 절망적이었어요. 
 
아, 잠깐만요. 그건 아버지가 제게 한 말이 아닐 수도 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건 아버지가 스스로에게 한 말일지 몰라요. ‘나도 내가 싫다. 너만 내가 싫은 게 아니야. 나도 내가 싫어.’ 아니에요. 분명히 제가 싫다는 말이었어요. 아, 혼란스럽네요. 잊었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엄마가 그랬어요. 그날 아버지가 이불에 누워 우셨다고. 그렇게 서럽게 우는 모습을 처음 보셨다고….” 
 
아버지는 딸에게 상처 준 가해자였다. 그러나 그녀는 아버지가 상처의 희생자일 수 있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했다. 아버지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많은 상처를 남겼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에 대해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엄마와 친척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모아서 아버지의 어린 시절을 희미하게 그려보았다.
 
“아버지도 불쌍한 사람이었어요.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아버지 큰형이 할머니를 설득해 집을 담보로 사업을 했나 봐요. 사업이 망했죠. 아버지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는데, 할머니는 쓰러지고, 큰형은 도망가고, 아버지와 누나들이 집 마당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대요. 가족이 다 흩어졌고, 아버지는 고아원 같은 데서 살았다고 했어요. 막노동을 시작했고, 결혼해서 처자식 먹여 살리려고 무리하게 일하다 허리를 다쳤어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인생이 뜻대로 안 되니까, 술에 의지하신 거죠….” 
 
아버지가 상처의 희생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되어버린 것처럼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그녀 역시 누군가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어떤 방식으로든 타인에게 전가된다. 아픈 상처가 건드려질수록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을 공격한다. 사람은 상처받기 싫은 만큼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며 살게 된다. 상처받은 사람이 언제나 희생자가 아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가해자가 된다. 
 
남편의 절제되지 않은 분노는 자녀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 다행히, 하지만 남편은 분노조절 장애, 이중인격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화가 나면 화를 내고, 짜증나면 짜증을 내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분노 자체를 없앨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분노,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표현 방식이 문제다. 아내는 남편과 상호작용을 통해 협력해야 한다. 남편은 분노를 적절히 다스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고, 아내는 그녀의 상처가 부부관계에 반영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남편은 절 사랑하지 않을 거예요. 남편보다 덩치도 크고, 목소리도 크니까 부담스럽지 않을까요? 매일 잔소리만 하니까 정떨어졌을 거예요. 물어본 적은 없지만….” 
 
남편이 말했다.
 
“아내가 잘못 알고 있네요. 아내는 사랑스러워요. 제가 아내가 원하는 만큼 좋은 남편이 되지 못해 미안하죠. 못된 성격 고치는 것도 힘들고. 아버지가 된다는 것도 어렵고.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려면, 아내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아내가 조금만 방법을 바꿔주면 좋겠지만, 하루아침에 바뀌는 건 힘드니까 서로 노력해야죠.” 
 
남편은 아내 어깨에 손을 올렸고, 아내는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덩치 큰 아내의 어깨가 조용히 떨렸다.

교회 일을 내려놓고 잠시 쉬려 해요

아빠가 오랜 투병생활을 하시다가 돌아가셨어요. 아버지의 죽음이 너무나 슬퍼요. 교회에서 맡았던 일을 내려놓고 잠시 쉬려는데 주변에서 그러지 말래요. 그럴수록 하나님을 더 붙잡으라고 해요. 슬픔의 영에 사로잡히면 일어서기 어렵다고 참고 견디라고요. 
 
슬퍼하세요.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슬프지 않겠어요. 일 년이든, 십 년이든, 평생이든 슬프면 우세요. 아버지가 일생동안 그립다면 감사한 겁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는 감정에 죄책감을 느낀다면 잘못된 겁니다. 
 
당신에게 ‘슬픔의 영’에 사로잡히지 말라고 말한 사람의 의도를 모르겠네요. 이 말은 문맥상 부정적인 뜻이겠지요. 성경에는 그런 말이 없습니다. 나는 그 말을 전해 들을 당시의 상황과 분위기는 모르지만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성경에 없는 말을 하면 위험합니다. 
 
쉬고 싶으면 쉬세요. 교회 일을 감당하는 것 자체가 본질이 아 닙니다.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결정하세요. 교회 봉사할 사람이 항상 부족해도 교회 문은 안 닫습니다. 하나님이 잘 이끌어 가십니다. 잠시 쉬다가 기운이 나면 다시 섬겨주세요.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세요. 그 눈물 마를 때까지 주님이 위로해주실 거예요. 오늘부터는 마음 편히 울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과 돌아가신 아버지 사이에는 예수님이 계세요. 천국에서 그분이 아버지를 돌봐주고 계십니다. 슬플 때마다 예수님 품에 안겨 있는 아버지를 생각하세요. 주님은 친절하게도 이 땅에서 슬퍼하는 당신에게도 찾아오세요. 눈물을 닦아주시며 위로해 주시지요. 
 
예수님이 계시기에 머지않아 슬픔은 소망이 될 것입니다. 슬플 때마다 그분 품에 꼭 안겨주세요. 다시 힘을 얻으면 주님의 일을 잘 감당하실 수 있을 겁니다.

아빠가 돌아가셨어요

아빠가 오랜 투병생활을 하시다가, 지난달에 돌아가셨어요. 아버지의 죽음이 너무나 슬퍼요. 교회 공동체에서 맡았던 일을 내려놓고 잠시 쉬려했는데, 주변에서 그러지 말래요. 그럴수록 하나님을 더 붙잡으라고. 슬픔의 영에 사로잡히면 일어서기 어렵다고 참고 견디래요. 
 
슬퍼하세요.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슬프지 않겠어요. 일 년이든, 십 년이든, 평생이든 슬프면 우세요. 아버지가 일생 동안 그립다면, 그건 감사한 겁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는 감정에 죄책감을 느낀다면, 그건 잘못된 겁니다. 
 
나는 자매님에게 “슬픔의 영”에 사로잡히지 말라고 말한 사람의 의도를 모르겠습니다. 성경 어디서 나온 말인가요. “슬픔의 영”이란 표현은 처음 들어봅니다. “슬픔의 영”이란 말은 문맥상 부정적인 뜻이겠지요. 나는 목사입니다. 성경을 진지하게 연구하는 사람이에요. 이 순간만큼은 권위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성경에 그런 말 없습니다.      
 
그 말을 전해 들을 당시의 상황과 분위기 나는 모릅니다. 섣불리 그분에 대해서 평가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하고 싶습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성경에 없는 말을 하면 위험합니다. 성경을 왜곡하면 안 됩니다.  
 
쉬고 싶으면 쉬세요. 교회 일을 감당하는 것 자체가 본질이 아닙니다. 자매님이 원하시는 대로 결정하세요. 교회 봉사할 사람 항상 부족해도, 교회 문 안 닫습니다. 하나님이 잘 이끌어가십니다. 자매님 하나 쉰다고 교회 멈추는 거 아니에요. 잠시 쉬다가 기운 나면 다시 섬겨주세요. 
 
아버지 잃은 슬픔은 잘 간직하세요. 울고 싶으면 울고, 슬프면 슬프세요. 나는 몇 년 전, 3월에 장인어른을 잃었는데, 지금도 슬퍼요. 보고 싶고 생각나고 그래요. 매년 3월이 되면, 울적하고 괴롭습니다. 보고 싶고 그리우면 장인어른 묻혀 계신 추모 공원에 아내 몰래 다녀오고 그럽니다. 내 아내의 아버지를 잃은 슬픔도 이리 큽니다. 자매님의 슬픔은 말로 할 수 없지요.
 
누군가 아직도 거기에 머물러 있냐고 비웃어도 상관없어요. 내 믿음을 똥값으로 취급해도 상관없습니다. 나는 자매님의 믿음이 고귀하다고 생각합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세요. 그 눈물 마를 때까지 주님이 위로해주실 거예요. 오늘부터는 마음 편히 우셨으면 좋겠습니다. 
 

믿지 않는 남자친구를 만나요

내 마음속에 외로움이 가득 있어요. 주님 한 분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제 신앙이 부족하다고 느껴져요. 제 신앙이 부족해서 그런지 교회를 건성으로 다니거나 아예 다니지 않는 남자 친구를 만나요. 솔직히 저는 지금 남자 친구가 좋아요. 신앙이 없어서 문제에요. 헤어지고 싶지 않아요. 계속 만나고 싶어요. 세상적인 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제 신앙이 부족해서 일까요?
 
아빠는 악마 같아요. 술만 먹으면 엄마를 때렸어요. 무책임하고 무기력한 아빠 때문에 가정이 고통받았어요. 엄마는 천사 같아요. 늘 제 편이 되어줬어요. 아빠 때문에 고생했는데, 언제나 밝은 모습을 잃지 않으셨어요. 그런 엄마를 보면 마음이 아파요. 늘 저와 제 동생을 위해 사셨거든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있었던 일이에요. 밤 11시쯤 학원을 마쳤어요. 아빠가 데리러 왔어요. 아빠 차를 타고 집에 가는데, 아빠가 말씀하실 때 너무 피곤해서 하품을 했어요. 아빠가 운전하다가 말고 제 뺨을 때렸어요. 아빠가 말하고 있는데 버르장머리 없이 하품을 한다고. 화나고 무섭고 슬펐어요. 집에 와서 엄마에게 말했어요. 두 분이 제 앞에서 싸웠어요. 아빠는 엄마를 또 때렸어요. 나 때문에 엄마가 맞았잖아요. 마음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어요.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내 답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요. 자매님은 자신의 신앙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믿지 않는 남자 친구를 사귀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계시고요. 나는 자매님이 처한 상황보다 믿지 않는 남자 친구를 만나면서 느끼는 죄책감이란 감정에 더 많은 관심이 있어요.
 
반대로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자매님의 신앙이 깊고, 믿음이 좋은 남자 친구를 만났다고 해보죠. 그러면, 외로움이 사라질까요. 아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아니에요.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아요. 외로움은 없애야 할 감정이 아니라 돌봐야 하는 감정이에요.
 
자매님은 외로움에 취약한 삶을 살아오셨어요. 폭력적인 아버지, 희생하는 어머니, 불안한 두 분의 관계. 자매님의 정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거예요. 고등학교 1학년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버지에게 맞았던 사실을 어머니에게 말했어요. 도움을 주려던 어머니 역시 아버지에게 맞았어요. 어머니는 자매님을 지켜줄 수 없었어요. 아마 그 후로는 자매님이 힘든 일이 있어도 어머니에게 말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조심스럽게 추론하는 거예요. 혼자 참고 견디는 것에 익숙해졌을 거예요.
 
나는 자매님의 신앙이 깊어지기를 바라고, 믿음 좋은 남자 친구를 만나기를 바라요. 하지만, 그전에 나는 자매님이 스스로를 정죄하지 않기를 부탁드려요.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그 누가 손가락질 할 수 있겠어요. 얼마나 외로우면 그러겠어요.   
 
불안정한 관계 속에서 자매님이 얼마나 고통받으며 살아왔는지 하나님도 알고 계세요. 하나님은 믿지 않는 남자 친구를 만났다고 화를 내시는 분이 아니세요. 오히려, 하나님은 마음 아파하세요.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 누구라도 곁에 있어주기를 바라는 자매님을 보시며 안타까워하는 하나님의 얼굴이 나는 보여요. 하나님은 자매님이 사랑받기 원하세요.
 
그렇다고, 아무나 만나라는 말은 아니에요. 가능하다면, 예수님을 의지하고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세요.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믿음 있다고 좋은 남자 아니고, 믿음 없다고 나쁜 남자 아니에요. 복음이 없다면 복음을 전해주세요. 복음이 있다면 복음을 공유하세요. 서로의 진심이 중요해요.   
 
신앙이 성숙하고 성경 지식이 많아져도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아요. 제아무리 믿음이 좋은 남자 친구를 만나도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아요. 그 누구도 자매님 안에 결핍을 채워줄 수 없어요. 외로움은 스스로 돌봐야 하는 감정이에요. 예수님의 사랑과 그분의 말씀으로 외로움을 돌봐주세요. 절대로 포기하지 말아주세요.
 
나같이 부족한 사람에게 질문해주셔서 감사해요. 외로운 당신을 하나님이 따뜻하게 안아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남자다운 남자가 싫어요

다정다감하고 온유한 사람을 만나고 싶은데, 남자친구가 남자 성격이에요.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요. 남자친구의 표정과 말투에 민감해요. 남자친구는 웃는 인상이 아니에요. 말투도 거칠어요. 사랑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헤어졌어요. 노력하겠다는 말에 다시 만나요. 노력하는 모습은 보이지만, 실망스러운 건 마찬가지예요.
 
그건 자매님 선택이에요. 나에게 물어도 나는 답을 모릅니다. 힘들게 질문하셨는데, 쉽게 대답해서 미안합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나는 진실을 말해야 하니까요. 자매님이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면 됩니다. 아니다 싶으면 헤어지면 됩니다. 서로 노력해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갈 수 있으면 계속 만나면 되는 거고요. 내 말에 감정이 상했다면, 미안합니다. 하지만, 이 이상의 답을 줄 수는 없어요. 
 
나는 상담하는 사람이니 이대로 대화를 끝내면 안 되겠지요. 조심스럽지만, 대화를 이어가겠습니다. 자매님이 원하는 대로 선택하지 못하는 상황을 이해합니다. 자매님은 딜레마에 놓인 겁니다. 남자친구가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한 거죠. 
 
남자친구가 무섭기만 했다면, 이미 헤어졌을 겁니다. 아무리 다시 만나자고 해도, 헤어진 남자를 다시 만나지 않았을 겁니다. 그 남자는 분명 자매님이 원하는 것을 갖고 있을 거예요. 다시 기회를 준 이유일 겁니다. 그 남자의 전부가 싫은 게 아니라 그 남자의 일부가 두려운 것이지요. 일부라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자매님의 상처와 맞닿아 있으니까요. 폭력적인 아버지의 성향과 남자 친구의 성향이 서로 닮은 것이지요. 그렇게 된 이상, 일부는 전체를 덮어버립니다.
 
남자친구와의 관계에 집중하지 말고, 자신에게 집중해보세요. 가만히 멈춰 서서 깊이 생각해보세요. 남자친구가 자매님에게 주는 그 무엇이 다른 남자를 만나도 받을 수 있는 건 가요? 사람이 바뀌어도 지속될 수 있는 건가요? 그렇다면, 그 남자가 꼭 필요한 건 아닙니다. 선택이 쉬워졌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다른 누구로 대체할 수 없는 그 남자만의 특별한 무언가가 있나요? 그 남자가 아니면 절대로 안 되는 그 무언가가. 그렇다면, 그 남자를 놓치면 안 됩니다. 표현 방식이 서투를 뿐, 그 남자의 진심이 자매님에게 전해진 겁니다. 
 
그 누구를 만나도 자매님의 상처는 새로운 관계 안에서 영향을 미칠 겁니다. 그러니, 관계에 집중하지 말고 자신에게 집중하세요. 남자가 바뀌어도 반복되는 패턴이라면, 관계를 통해 상처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꼭 그 남자여야 한다면, 힘들고 어려워도 함께 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그 남자가 아니어도 된다면, 지금은 자신을 추스르고 돌볼 때입니다.

아빠에게 소리를 질렀어요

아빠가 큰 수술을 세 번이나 받았어요. 병원에서는 더 이상 술을 마시지면 위험하다고 했어요. 엄마가 속상해서 전화를 했어요. 아빠가 어제 저녁 술을 마셨다고. 처음으로 아빠에게 소리를 질렀어요. 이제 그만하고 싶어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요. 
 
먼저 자매님을 위로하고 싶습니다. 삶의 무게가 느껴집니다. 아빠에게 소리를 질렀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겁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빠도 아마 아실 거예요. 딸이 아빠를 사랑하니까 걱정돼서 그런 거라고. 
 
엄마가 딸에게 전화를 했다는 사실은 여러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 엄마가 딸에게 도움을 요청한 한 것 같아요. 단지 아버지가 술을 마셨다는 사실을 정보로서 알려준 것과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말하는 건 차원이 다릅니다.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곧바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소리를 질렀다는 사실은 자매님이 어머니를 도와줬다는 의미가 있어요. 엄마가 아무리 말해도 소용 없으니까 딸이 나선 겁니다. 해결사 역할을 하신 거예요.  
 
아빠에게 소리를 지르고 나서, 자매님이 느끼는 감정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아빠가 술을 마셔서 실망스러워요.”. “아빠가 술을 마셔서 정말 화가 나요.”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자매님은 “이제 더 이상 못하겠어요. 버틸 수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자매님이 현재 상황의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는 뜻입니다. 
 
건강을 챙겨야 할 때에, 술을 마신 아버지가 계십니다. 딸에게 도움을 요청한 어머니가 계십니다. 자매님은 부모님을 돌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매님을 돌봐줄 사람이 없어 보여요. 외롭고 힘든 마음이 내게 전해집니다. 
 
아버지가 병원 안에서 세 번의 수술을 받으시는 동안, 자매님은 병원 밖에서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셨을까요. 아버지는 아버지 대로, 자매님은 자매님 대로 힘든 시간을 보내신 거예요. 자매님은 어떻게든 아버지를 살려보고 싶으신 거예요. 그 안에는 진심 어린 사랑이 있습니다. 
 
조심스럽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자매님도 자신도 살려주세요. 두 발로 걸어다닌다고 해서 멀쩡한 게 아니에요. 두 발에 모래 주머니, 어깨에 쌀 가마니 짊어지고 걸어다니면 온몸이 상해요. 무거운 짐을 내려 놓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살 수 있어요. 
 
자녀가 부모님를 책임지는 건 당연하지만, 지금 자매님에게는 다른 말을 하고 싶어요. 부모를 책임지지 마세요. 부모님을 예수님께 떠넘기세요. 모든 책임을 예수님께 떠넘기세요. 말처럼 되지 않을 거예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이를 악물고 해내야 합니다. 그래야, 조금이나마 자신을 되찾을 수 있어요. 
 
급류에 휩쓸린 사람을 구하려면, 물살 밖에 있어야 합니다. 앞뒤 생각 안하고 구해준다고 들어가면, 같이 물살에 휩싸입니다. 급한 마음에 소리라도 질러보지만, 소용 없습니다.  그러다 죽는다고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질러도 급류에서 휩쓸린 사람은 혼자 나올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 살려달라고 외치세요. “우리 아빠 엄마 살려달라”고 목이 쉬도록 소리지르세요. 예수님이 “내 아들, 내 딸 내가 구하겠다”고 말씀 한 마디만 해주시면, 자매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어요. 딸의 자리로 돌아가세요. 자매님의 부모님,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자식된 도리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에요. 최선을 다해 부모님을 돌봐주세요. 하지만, 지금과 같은 방식은 아닙니다. 자매님을 먼저 돌봐주세요. 주님께 넘치는 사랑을 받으세요. 기도 시간 만이라도 모든 책임을 주님께 떠넘기세요. 그래야, 부모님을 오랫동안 돌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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