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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아브라함

나도 당신처럼 두려웠어요

<창세기 22장 7절>

이삭이 아브라함을 불렀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왜 그러느냐?” 하고 대답했습니다. “불과 장작은 있는데, 번제로 바칠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고 이삭이 물었습니다.
 
From 이삭
 
어느 날부터 아버지가 이상했어요. 항상 밝게 웃던 아버지가 웃음을 잃으셨거든요. 내가 태어난 그 순간부터 아버지는 내 앞에서 웃음을 잃은 적이 없어요. 오죽하면 내 이름을 “웃음”이라고 지었겠어요. 
 
웃음을 잃은 아버지는 며칠 동안 시름 시름 앓아누우셨어요. 그러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러 가자고 말씀하셨죠. 
 
몸도 안 좋으면서 그 높은 산을 어떻게 올라가려 하는지 걱정스러웠어요. 가는 내내 아버지는 쉬었다 걸었다를 반복했어요. 산이 가까워질수록 아버지의 발걸음은 점점 느려졌죠. 
 
산 입구에서 아버지는 종들에게 더 이상 따라오지 말라고 했어요. 나와 아버지, 단둘이 산을 오르기 시작했죠. 나는 불안했어요. 아버지가 평소와 달랐거든요. 하나님께 바칠 어린 양이 없었어요.  
 
나는 그제야 알았죠. 아버지가 나를 죽여서 바치려 한다는 사실을. 미치도록 두려웠어요. 다리가 후들거려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아버지를 거역할 수 없었죠. 
 
아버지가 날 죽이려 한다면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온몸이 꽁꽁 묶일 때까지 나는 반항하지 않았어요. 제단에 누워 눈물만 흘렸지요.
 
아버지는 내 눈을 쳐다보지 않았어요. 칼을 뽑아들고 내 목을 찌르려 했어요.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숨을 멈췄어요. 이렇게 끝이구나 생각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어요. 아버지를 부르는 목소리였죠.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아라. 아무 일도 하지 말아라.”
 
역시 그랬어요. 하나님이 아버지를 시험하셨던 거예요. 아버지가 아무 이유 없이 날 죽일 리 없었어요. 아버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자마자 미친 사람처럼 흐느끼며 날 묶었던 끈을 풀어줬어요. 나를 힘껏 끌어안아주시며 엉엉 우셨어요. 날 안아주신 아버지의 품을 잊을 수 없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금도 그 품이 그리울 정도니까요. 
 
하나님은 나 대신 숫양을 준비해주셨어요. 날 대신해서 죽은 숫양 덕분에 내가 살 수 있다는 감정이 정말 묘했어요.  
 
사람들이 묻더군요. 어떻게 어린아이가 모든 장면을 정확히 기억하냐고요? 오해하고 계세요. 어리지 않았어요. 영화에서 보니까 내가 꼬마 아이던데, 맞나요? 사실이 아니에요. 
 
나는 청년이었어요. 산을 오를 때, 장작을 짊어진 사람은 아버지가 아니라 나예요. 나는 아버지보다 힘도 세고 발도 빨랐어요. 
 
아버지는 백 살에 나를 낳았어요. 아버지가 날 힘으로 결박한 게 아니라, 내가 반항하지 않은 거예요. 내가 먼저 제단에 올라가 눕지 않았다면, 아버지는 힘으로 나를 제단 위로 올릴 수 없었지요. 
 
사람들이 내게 가끔 물어요. 아버지가 당신을 죽이려 했는데, 상처받지 않았냐고. 대답은 간단해요. 상처받지 않았어요. 그날 나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어요. 
 
하나님은 언제나 아버지의 하나님이셨어요. 처음으로 하나님 목소리를 직접 들었죠. 아버지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는 순간이었어요. 만약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상처받은 채 고통받으며 살았겠죠. 
 
내가 서 있었던 그 자리는 상처와 눈물의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장소가 되었어요. 하늘의 별처럼 많아진 나의 후손들은 이 산을 바라볼 때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기억했어요.    
 
나는 이 사건을 떠올릴 때마다 아버지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사람들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아버지가 주인공처럼 보일 거예요. 이 사건의 주인공은 아버지가 아니에요. 이 사건의 주인공은 바로 하나님이죠. 
 
일의 시작도 하나님이고, 일의 마침도 하나님이에요. 나와 아버지는 그저 무서웠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어요.   
 
나도 당신처럼 두려웠어요.
하나님이 살려주셨죠.

하나님을 비웃어 버렸다

<창세기 17:17> 

아브라함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 채 웃으며, 마음으로 혼잣말을 했습니다. “어떻게 백 살이나 먹은 사람이 아기를 낳을 수 있을까?
 
From 아브라함 
 
하나님이 아들을 주신다고 하셨을 때, 나는 비웃었어요. 당연하지요. 나는 이미 100세였고, 아내 사라는 90세였습니다. 늙을 대로 늙은 두 사람이 어떻게 아들을 낳겠어요? 
 
나는 말했습니다. “아이고, 하나님. 됐으니까, 지금 있는 아들에게나 복을 주세요. 종의 몸을 통해서 낳았지만, 그래도 내 자식입니다.” 
 
믿음 없는 말이지요? 하나님을 조롱할 의도는 없었지만, 그렇게 됐습니다. 무심결에 말해놓고, 잔뜩 긴장했지요.  
 
믿음 없다고 혼내실 줄 알았거든요. 별 볼일 없는 믿음에 실망해서, 나를 버리고 다른 사람을 찾아 떠나버리실까 걱정했지요. 
 
하나님의 반응은 내 예상과 달랐습니다. 
 
“그래, 네가 말한 그 아들에게도 복을 주겠다. 하지만, 그 아들이 내가 약속한 자녀는 아니다. 내년 이맘때 네가, 자녀를 낳을 것이다. 내가 약속한 아들이다.” 
 
하나님은 믿음이 부족한 나를 이해하셨습니다. 은혜를 베푸셨지요. 나는 당황했습니다. 덤으로, 종의 몸에서 난 아들까지 축복해주셨으니까요.    
 
내 아내 사라도 믿음이 부족한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남편에 그 아내였을까요? 아내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속으로 비웃어버렸습니다. 
 
“그렇면 좋게요? 남편과 내가 이렇게 늙었는데, 어떻게 아이를 낳을 수 있겠어요?” 
 
그 당시 나와 아내는 하나님을 잘 모르고, 우리의 처지를 스스로 비웃고 조롱했지요. 
 
나도 내 나름대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내 현실이 너무나 슬프고 끔찍해서, 하나님이 바꾸실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지요. 
 
“아무리 하나님이시라도, 내 상황은 못 바꾸신다.”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믿음 없는 나에게 막상 아들을 주시자,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을 비웃던 사라는, 기쁨의 웃음이 터져버렸습니다. 아이를 품에 안고 하나님을 찬양했지요.   
 
“하나님께서 내게 웃음을 주셨다. 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도 나처럼 웃게 될 것이다. 내가 아이를 낳을 수 있으리라고 어느 누가 알았겠는가!”
 
그제서야, 나는 기억났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아셨던 겁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말씀입니다. 
 
“네 아내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니, 아들을 낳으면 그 이름을 이삭이라고 하여라.” 
 
내 아들의 이름은 처음부터 “이삭”이었어요. 이름의 뜻이 “웃음”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웃음”을 주신다고 했는데, 나는 믿지 못해서, 하나님을 비웃어 버렸습니다.  
 
내가 훗날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린다니, 부끄러울 뿐입니다. 내 믿음으로 이룬 결과가 아닙니다. 믿음 없는 나에게 거저 주신 은혜입니다. 
 
인생이 힘들 때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고개를 숙이고 땅만 쳐다봅니다. 엄연한 현실 앞에서, 감히 꿈조차 꿀 수 없습니다. 형편과 처지를 탓하며, 자신을 조롱하고 비웃습니다.  
 
나는 부탁합니다. 당신의 믿음을 하찮게 여기지 마세요. 당신의 믿음이 부족해서, 하나님이 못 도와주실 것이라 단정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입니다.  
 
당신이 힘들어서 웃을 수 없다는 걸 압니다. 나도 그랬으니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셔서, 우리를 잘 아십니다. 우리의 연약한 믿음마저도 배려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입니다. 
 
나는 당신을 모르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약속하신 모든 일을 이루십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마세요.   
 
결국, 당신도 웃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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