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무서워 피해요

고등학생 때 선생님께 성추행을 당했어요. 그 이후로 그 나이대의 남성을 만나면 무서워서 피하고 배척해요. 그 분들이 아무 잘못이 없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사랑의 마음으로 감싸지 못해요. 결국, 잘못을 저에게 돌리게 돼요. 어떻게 하면 좋지요. 저도 편하게 살고 싶어요. 
 
자매님은 아무 잘못 없습니다. 자신을 탓하지 말아주세요. 선생님께 성추행을 당하신 일도, 지금 그 나이 때의 남성을 피하는 것도, 모두 자매님 잘못이 아닙니다. 
 
상처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가해자가 되시면 안됩니다. 먼저, 피해자가 되어주셔야 해요. 과거에 머물면서 고통스럽게 살라는 말이 아니에요. 다른 누군가를 탓하며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과거를 덮어두지 말고, 제대로 살펴보고 수용해달라는 부탁입니다.  
 
과거에 겪은 끔찍한 일은 가능하다면, 지금이라도 처벌해야 합니다.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른 사람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죄값을 치러야 합니다. 한 여자의 인생을 파괴한 사람을 그대로 내버려 두면 안 됩니다. 
 
다만, 선택권은 자매님에게 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자매님이 옳습니다. 나는 그 선택을 존중합니다. 자매님이 겪은 일은 오직 자매님만이 결정할 권리가 있어요. 다른 사람은 조언만 해줄 뿐, 이래라저래라 할 권한이 없습니다.   
 
나는 상담하는 사람이니, 자매님의 상처에 집중하겠습니다. 질문하신 내용에 계속 답하겠습니다.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다면, 자매님도 처벌하지 말아주세요. 가해자는 자유롭게 풀어주고, 피해자인 자신을 결박하고 짓누르면 안됩니다. 
 
과거를 수용한다는 말은, 그때 그일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겁니다. 사건에 대한 기억은 시간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기억 자체를 지우려는 시도는 언제나 실패할 거예요. 지우려할수록 고통 받습니다. 
 
기억을 바꿀 수 없다면, 기억하는 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기억이 데려오는 감정에 집중해야 합니다. 기억은 혼자찾아오지 않습니다. 감정을 데리고 옵니다. 자매님의 기억은 왼편에는 공포, 오른편에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데려옵니다. 무서운 감정들의 손을 잡고 싱글벙글 자매님을 찾아옵니다. 자매님을 파괴할 수 있으니까요. 
 
기억이 데려오는 감정을 쳐다보지 마세요. 공포나 죄책감은 쳐다보지 말고, 기억을 마주보고 당당하게 말하세요. “공포나 죄책감 없이 혼자는 못오지? 혼자 오면, 너는 아무 것도 아닌 거 너도 알지? 너 혼자 와봐. 그럼, 넌 아무 것도 못할 걸.”  
 
기억이 자존심이 상해서 날뛰기 시작할 거예요. 그렇지만, 절대로 혼자 오지 않아요. 기억은 알거든요. 혼자 오면 자매님을 파괴할 수 없어요. 공포나 죄책감을 잡은 손을 놔버리면, 기억은 고개도 못들고 자매님 옆을 지나쳐 버릴 거예요. 영화 속 악당이 아니라, 지나가는 행인으로 전락해버린 거죠. 
 
설명하려니 간단하게 말했지만, 실제로는 말처럼 쉽지는 않을 거예요. 내 기억 역시 혼자 오지 않으니까요. 어찌되었건, 나는 여전히 기억이 데려오는 감정에게 말을 걸지 않아요. 기억만 쳐다보고 말합니다. “혼자 오라니까. 자존심도 없어?” 
 
비유적으로 말하다보니, 자매님의 고통스런 문제를 가볍게 말한 것처럼 보일까 걱정됩니다. 내 진심은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나는 자매님이 기억이 데려오는 감정으로 더 이상 고통받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과거는 지난 일이니까 잊고 과거에서 벗어나 남자분들을 편하게 대하라는 말은 하지 않겠어요. 다만, 소심한 부탁을 하겠습니다. 상처의 책임을 자매님에게 떠넘기면서 자책하지 말아주세요.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