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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비난

남편이 목사님을 욕합니다

남편은 모태신앙입니다. 어릴 때 시아버지가 큰 병으로 죽다 사셨어요. 그 과정에서 남편이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교회와 목사님에 대한 반감이 심합니다. 제 앞에서 목사님 욕을 합니다. 교회 흉을 보고요. 감당하기 힘들 만큼 괴롭습니다. 남편이 점점 싫어집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남편을 싫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누구나 교회와 목사를 욕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도 정치를 잘못하면 욕을 먹는데, 목사라고 예외가 있으란 법은 없지요. 목사라도 잘못하면 당연히 욕먹어야지요. 욕먹고 고치면 좋은데, 고치기 힘듭니다. 그러니까 욕하는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내가 목사니까 편하게 말하는 겁니다. 
 
혹시 목사가 잘못한 게 없는데 남편이 목사를 욕하면 그대로 두세요. 잘못 없는데 욕먹는 목사는 하나님께 인정받습니다. 목사에게 좋은 일입니다.  
 
문제의 본질은 남편이 교회와 목사를 비판하는 것 자체가 아닙니다. 남편의 비판이 아내에게 수용되지 않는 상황 속에 진짜 문제가 있습니다.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부부의 문제로 잠시 다뤄보겠습니다. 신앙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신앙에 가려 문제의 본질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회사를 다닌다고 해보겠습니다. 남편이 아내의 회사와 사장을 욕하면 아내의 기분이 어떨지 궁금합니다. 교회와 목사를 욕하는 것만큼 기분이 나쁘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남편을 싫어하는 겁니다. 남편의 신앙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태도와 가치관, 말투 같은 게 싫을 수 있습니다. 상호작용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앙보다 급한 건 서로의 관계입니다. 서로를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서로의 생각에 공감하지 못하는 겁니다.
 
회사와 사장을 욕하는 것보다 교회와 목사를 욕하는 것이 훨씬 더 기분 나쁘다면, 남편을 조금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남편이 예수님을 욕하는 건 아니니까요. 혹시 예수님을 욕하더라도, 그런 남편을 받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내가 예수님 사랑해서 방어하느라 기분 나쁜 건데, 괜찮습니다. 예수님은 이해하십니다. 조금만 참고 기다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남편이 교회와 목사를 비난하는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남편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을지 모릅니다. 아내가 아는 것만큼 간단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남편이 교회 욕하는 소리 듣기 싫을 겁니다.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부탁드려봅니다. 마음 단단히 먹고 남편이 왜 그렇게 교회를 싫어하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만 참고 들어주세요. 다 듣고 나서 말해주세요. 
 
“그랬구나. 많이 힘들었겠다. 그런 상처가 있는데, 나 교회 다니는 거 허락해줘서 고마워. 나도 고마운 마음 담아서 당신 위해서 기도할게.” 
 
구체적인 상황은 몰라도, 내가 부탁한 말이 효력 있을 거예요. 적어도 남편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셨으니까요. 하루아침에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을 거예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해요. 남편의 비판이 계속되면 마음이 어렵겠지만, 포기하지 말고 힘껏 들어주세요. 
 
아내가 고생이 많습니다. 혼자 신앙생활하는 것도 서럽고 힘든데 무리한 부탁해서 죄송합니다. 예수님이 그 마음 아십니다. 아내의 기도, 예수님이 들어주실 겁니다. 예수님의 따뜻한 사랑으로 남편의 마음이 녹아져서 두 분이 행복하게 신앙생활하시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아내가 과거의 잘못을 들춰냅니다

아내가 지난 일에 대해 자주 이야기합니다. 과거에 상처 준 시간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아내가 알아주지 않아 괴롭습니다. 그동안의 모든 노력이 아무 의미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솔직한 질문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이 아무 의미 없다는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동안 최선을 다해 노력하신 것, 아내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아내가 고마운 마음을 남편에게 안심하고 표현하지 못한 겁니다. 포기하기에는 이릅니다. 조금만 참고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아내의 상황을 먼저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 상처는 시간이 흐른다고 쉽게 잊혀지지 않습니다. 아내가 지난 일에 대해 말할 때, 남편을 비난하는 게 아닙니다. 과거의 잘못을 들춰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남편에게 솔직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겁니다. 과거에는 남편에게 아무리 표현해도 이해 못 한다 생각했기 때문에 아내가 말하지 않고 혼자 참은 겁니다. 아내가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다는 건 남편이 그동안 노력한 결과입니다. 그러니, 힘들어도 잘 들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상처는 순간입니다. 치유는 과정입니다. 진심으로 용서받기 원하신다면, 아내가 남편에게 지난 일을 말할 때마다, 치유되는 시간이라고 믿고 아내에게 반복해서 용서를 구하세요. 용서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래 걸립니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풀릴 일이라면, 아내가 긴 시간 상처로 고통받지 않았겠지요. 아내가 지난 일 웃으며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자존심 내려놓고 진심으로 사과해주세요. 
 
아내 역시 용서하려니 고통스러울 겁니다. 아내가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조심스럽게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남편이 포기하지 않도록 자신의 내면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말해주세요. 남편이 노력하는 모습이 고마울 겁니다. 고마운 건 고맙다고 말해주세요. 하지만,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해주세요. 
 
그리고, 예수님께 나아가세요. 남편이 천 번을 미안하다고 말해도 용서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남편이 아내 옆에서 일생 동안 죄책감으로 고통받으며 살아간다고 해도 그 마음 풀리지 않을지 모릅니다. 예수님께 아픈 마음 가져가세요. 예수님이 위로해주셔야 그 마음 풀립니다. 지난 일이니 다 잊으라는 말 아닙니다. 잊지 마세요. 하지만, 상처만 기억하지 마시고 예수님도 기억해주세요. 그래야, 삽니다.

아내가 기도를 안 해요

장모님이 건강이 안 좋으세요. 아내를 도와주고 있기는 한데, 가끔은 제 마음도 힘들어요. 아내가 힘든 건 이해하는데, 아내가 기도를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이럴 때일수록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더 의지하면 좋겠어요.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아내가 힘들 때, 곁에 있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질문에 조심스럽게 답하겠습니다. 
 
아내는 기도하고 있을 거예요. 다만, 남편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뿐이죠. 상황이 힘든 만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있지 않을까요. 어머니가 아픈 상황은 딸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다 줍니다. 실제로 기도하지 못하고 있다면, 아마 기도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지금 아내에게 필요한 건 조언이나 해결책이 아닙니다. 아내에게 필요한 건 위로입니다. 많은 말을 하지 말고, 많은 말을 들어주세요. 아내가 하고 싶은 말 있을 거예요. 끊지 말고 끝까지 들어주세요. 쉽지 않을 거예요. 남편 역시 하고 싶은 말이 있잖아요.
 
아내가 남편에게 푸념한다 생각하지 마시고, 예수님께 기도한다 생각해주세요. 남편 마음 안에 예수님이 계시지요. 아내가 고통을 말할 때, 남편 안에 계신 예수님께 간절히 기도한다 생각해주세요. 아내가 말하는 내용 하나하나 마음에 담으세요. 절박한 아내의 기도입니다. 기도가 끝나면, 아내가 말할 거예요.   
 
“여보, 고마워. 내 상황 이해해줘서. 나 힘내서 다시 일어설게.” 
 
남편은 해결책을 제시하고 싶지만, 아내는 위로받고 싶은 거예요. 힘든 시간 동안 아내 곁에 있어주시면, 아내는 힘을 낼 수 있을 거예요. 상황은 쉽게 바뀌지 않아요. 아내 마음이 든든해야 해요. 
 
절대로 손해 보는 일 아니에요. 인생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어요. 항상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지만, 누구도 보장할 수 없죠. 남편에게도 힘든 시기가 올 거예요. 남편이 무너졌을 때, 함께 있어줄 사람은 아내뿐입니다. 아내가 무너졌을 때, 남편이 곁에 있어 줬던 것처럼, 아내 역시 남편 곁에 있어줄 거예요. 
 
아내를 사랑해서 질문해주신 남편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나는 지극히 정상이야

“정상적인 삶을 원했어요. 제 인생이 이 정도로 망가질 줄은 몰랐죠.” 
 
O는 마흔한 살, 결혼 12년 차, 두 딸의 아빠다. 그는 우울증, 분노 조절 장애가 있는 아내와 사는 것이 힘들다고 말했다. 결혼 초부터 아내의 정신적인 문제가 심각해보였다. 
 
부부 싸움을 했던 어느 날, 아내는 안방으로 들어가 울부짖으며 옷장 안에 있는 옷들을 꺼내 가위로 자르고 손으로 찢기 시작했다. 그가 그만하라고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그녀는 무서운 눈으로 그를 노려보더니 가위로 위협했다. 
 
그날 이후, 부부 싸움 할 때마다 이상한 행동을 했다. 신발을 모조리 꺼내 현관문으로 던진다든지, 다리미로 문을 부순다든지. 아내에게 정신질환이 생긴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남편은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 힘들고 답답한 마음이 들 때마다 새벽에 교회에 가서 기도했다. 12년 동안, 아내를 위해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침묵하셨다. 더 이상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목 놓아 우는 순간,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셨다.
 
‘상처 많은 딸을 네게 맡겼으니 절대로 버리지 마라.’
 
그는 더욱 힘을 냈다.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목사님을 비롯한 교회 사람들에게 아내의 상황을 알렸다. 아내에게 상담을 받자고 설득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거절했다. 
 
아내의 반발은 갈수록 심해졌다. 남편은 다른 사람들에게 아내 문제를 말하고 동의 없이 상담을 신청했다. 아내는 분노했다.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 그녀를 볼 때마다 남편은 속이 터졌다. 견딜 수가 없어서 혼자 상담실을 찾아왔다. 
 
“제가 바라는 것은 기본적인 것들이에요. 아이가 아프면 엄마가 밥에 물이라도 말아 먹이고, 그 다음 약을 먹여야죠. 아내는 애가 아파도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어요. 제가 뭐라도 좀 먹어야 하지 않겠냐고 하면 아내가 기다렸다는 듯 말합니다. ‘당신이 해. 당신은 손이 없어 발이 없어?’ 제가 ‘그건 당신이 좀 해줘야지’라고 해도 아내는 눈 하나 깜짝 안 해요. 답답하니까 제가 편의점에 가서 삼각김밥을 사와서 먹여요. 이게 정상입니까?”
 
그는 반복적으로 아내의 문제 행동에 대해 말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저는 아내가 화장실에서 뭘 하고 있는지 몰랐어요. 그런데 갑자기 딸이 배가 아프다는 거예요. 너무 급하다고 해서 아내에게 화장실 문을 열어달라고 했죠. 아내는 안 된다고 해요. 너무 화가 나서 아내에게 당장 문을 열라고 했는데도 안 열어줘요. 
 
아이가 울려고 하기에 손잡이를 힘으로 비틀어 열었죠. 아내가 당황하더라고요. 제가 아내에게 막 뭐라고 했어요. 그것  하나 때문에 아내가 일주일 내내 말을 안 하더라고요. 저는 그런 아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어요.” 
 
남편이 계속 말했다.
 
“명절에 제 어머니, 여동생, 아내와 어디 다녀올 일이 있었어요. 운전하는데 길이 막혀 제가 짜증이 난 상태였어요. 그런데 아내와 여동생이 별 것도 아닌 일로 예민하게 대화를 하는 거예요. 서로 싸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아내에게 그만하라고 했더니 저를 째려보더라고요. 여동생보다 아내가 나이가 더 많아요. 언니가 참는 게 당연하죠. 아내가 뭐하는 짓이냐고 따지기에 그만하라고 했어요. 아내는 멈추지 않았죠. 시어머니 앞에서 못하는 말이 없더라고요. 
 
저를 막 비난하는 거예요. 참을 수가 없어서 갓길에 차를 대고 아내에게 소리를 질렀어요. ‘제발, 그만하라고!’ 아내는 혼자 막 울더니 차에서 내렸어요. 그러고는 반대편 도로 쪽으로 건너가더니 골목으로 쏙 들어가 버리는 거예요. 미칠 노릇이었죠.” 
 
교회 모임에서 그가 마음을 열고 고민을 나누면, 교회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했다. 
 
“고생이 많다. 아내를 위해 기도하자. 언젠가는 변화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기도에 응답해주실 것이다.”
 
사람들이 위로해줬지만, 그는 위로받지 못했다. 도저히 버틸 수 없어 포기하고 싶은 생각 찾아올 때, 하나님이 그에게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상처 많은 딸을 네게 맡겼으니 절대로 버리지 마라.’ 
 
그는 생각했다. 힘들다고 아내와 이혼하면 하나님 말씀을 어기는 것이다. 아내만 변화된다면 그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그는 더욱 간절히 기도했다. 
 
그는 반복해서 말했다. 아내가 상처 많은 사람이라 계속 문제가 일어난다고. 어린 시절, 그녀는 엄마에게 신체적 학대와 언어폭력을 당했다.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 않았는지 아내는 엄마 얼굴을 보지 않는다. 남편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아내와 장모님의 관계는 나아지지 않았다. 
 
남편은 아내가 장모님을 용서하지 않으면 좋은 엄마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더 이상 시간 끌지 말고 엄마를 용서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내가 아이들에게 던지는 거친 말들이 거슬렸기 때문이다. 
 
“그만해! 너네 미친 거 아니야? 누구 닮아서 저러는 거야.” 
 
아내 입에 습관처럼 달라붙은 말이다. 거친 말을 들을 때마다 피가 거꾸로 솟는다. 그녀는 자신이 상처 입은 사람이라는 것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남편 역시 역기능 가정에서 성장했다. 그의 아버지는 술에 취하면 가정 살림을 부수거나 어머니를 때렸다. 폭력적인 아버지 모습을 보면서 청소년기에 방황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했고, 그는 어머니를 따라 집을 나왔다. 
 
남편은 자신 안에 상처가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 상처를 신앙의 힘으로 극복했다고 말했다. 군대 생활을 포함한 다른 어떤 대인관계에서도 화를 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상처 많은 가정에서 자랐지만, 그 상처를 극복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확신이 있는 듯 했다.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일주일 전에 부부 싸움을 하고 아내가 집을 나갔어요. 인도네시아로 가버렸어요. 거기에 아는 선교사님이 계시거든요. 지금 아이들이 방학 기간도 아닌데 혼자 가버리니까 어처구니가 없죠. 
 
제가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어머니, 장모님이 교대로 아이들을 봐주고 계세요. 깊이 고민하고 있어요. 결혼생활을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아내 얼굴을 다시 보게 되면 미쳐버릴 것 같아요. 저는 아무리 힘들어도 버텼는데 아내는 힘들다고 아이들을 버려두고 다른 나라로 떠나버렸어요. 엄마가 아닌 거죠. 
 
아내에게 연락이 오기는 했어요. 한 달 뒤에 다시 돌아올 거라고.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다고 말하네요. 미쳐버릴 사람은 아내가 아니라 접니다. 이제 정말 그만하고 싶어요.”
 
아내가 집 나가기 전날 밤, 남편은 이성을 잃었다. 아내가 침대에 누워 휴대폰으로 게임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 짜증이 났다. 남편은 아내에게 말했다. 
 
“내일 새벽 출근해야 하니까, 아이들 재워주고 와.”
 
아내는 아직 잘 시간이 아니라고 말했다. 세탁기 타이머가 10분 정도 남았으니까 조금 있다 재운다고 했다. 그는 아내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아 벽에 던져버렸다. 아내도 지지 않았다. 남편의 노트북을 바닥에 던져버렸다. 노트북이 산산조각이 났다. 남편은 이성을 잃고 베란다에서 락스를 꺼내왔다. 그것을 방바닥에 뿌리면서 말했다. 
 
“우리 같이 죽자. 더 이상 살아서 뭐해. 이렇게 살 수는 없잖아.” 
 
락스의 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의 아내는 하얗게 질렸다. 다음날, 남편이 출근한 틈에 아내는 남편 곁을 떠나버렸다. 
 
***
 
그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논리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끊임없이 주장한다. 
 
“나는 항상 옳다.” 
 
아마  교회 사람들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이 그의 아내를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남편 입장에서 그의 아내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아내의 이상 행동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그의 아내를 만날 기회가 없었기에 추측할 뿐이다. 남편의 유창한 말은 아내를 끔찍한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아내의 이상 행동은, 사람의 감정이 극단적으로 억눌렸을 때 나타는 행동이다. 손으로 옷을 찢거나, 다른 물건으로 문을 부수는 행동은 억눌린 감정을 표출하기 위한 생존수단이다. 
 
안전핀이 빠진 수류탄을 혼자 끌어안고 있다가 내면이 여러 번 산산조각 난 아내는 수류탄을 밖으로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야 그녀도 사니까. 아내의 폭력적인 행동을 정당화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녀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살핀 것이다. 
 
남편과 대화하면 아내는 벼랑 끝에 몰린다. 남편은 싸울 때마다 아내의 감정을 무시하고 오직 이치에 맞는 말, 논리적인 대화만을 원한다. 말 잘하는 남편과 말싸움을 하면 아내는 불리하다. 승자는 언제나 남편이다. 
 
그에게 조용히 묻고 싶다. 그렇게 말을 잘할 필요가 있을까? 또박또박 유창한 말을 하면서 아내를 짓밟고 나면 무엇이 남는가?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물러서고 싶지 않은 마음은 안다. 아내를 짓밟을 의도가 없다는 것도 안다. 그렇다면 당신의 의도는 무엇인가? 진지하게 생각해보라.  
 
남편은 반복해서 말했다. 
 
“나는 정상적인 가정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비정상적인 가정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보이지 않는 문장이 하나 숨어 있다. 
 
“나는 지극히 정상입니다.”
 
이 문장을 앞의 두 문장 사이에 끼워 넣으면 그의 신념을 분명이 알 수 있다. 
 
“나는 정상적인 가정을 원했습니다. 나는 지극히 정상입니다. 그러나 비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결혼생활을 파괴하고 있던 왜곡된 신념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 신념의 실체는 다음과 같다. 
 
“나는 정상적인 가정을 원했습니다. 나는 지극히 정상입니다. 그러나 비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내가 정상이 아니거든요.”
 
남편은 무의식 중에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있다. 
 
“내 아내는 정상이 아니에요. 당신도 그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고통 받고 있는지 아셔야 해요. 내가 비정상적인 여자와 결혼을 해서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하기 위해 얼마나 헌신적으로 노력하는지. 저는 신앙의 힘과 강한 의지력으로 이혼하지 않고 버텨왔습니다. 당신도 이것을 인정해줘야 합니다. 하나님도 인정하셨거든요. 상처 많은 아내를 위해 내가 얼마나 희생하고 있는지.” 
 
남편은 정상이고, 아내는 비정상이라는 말은 전혀 근거가 없다. 여기 등장하는 남편뿐만 아니라 많은 부부가 자신이 아닌 배우자에게 문제가 있다고 근거 없는 결론을 내린다. 
 
“나는 문제가 없어. 당신이 문제야.”  
“제가 왜 상담을 받아요? 저는 문제가 없어요.” 
“왜 저한테 뭐라고 하세요? 저는 잘못이 없는데.” 
“아무리 노력하면 뭐합니까? 저 사람은 노력하지 않는데.” 
 
부부 상담은 개인 상담보다 효과가 낮은 경향이 있다. ‘비난할 대상’이 눈앞에 있기 때문이다. 
 
결혼 전 남녀는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의지를 가진다. 부모에게 받은 상처, 다른 사람에게 받은 상처, 어찌되었건 피해자는 자신이다. 그것을 극복하지 않으면 피해를 입는다는 것을 안다. 상처를 인정하고 그것을 돌보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부부 상담은 다르다. 비난할 대상이 바로 눈앞에 있기 때문에 문제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음을 인정하기 어렵다. 
 
“잘못한 사람은 바로 접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제게 있습니다. 저만 변화되면 우리 가정은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다 제 잘못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나는 아직 한 번도 만난 본 적이 없다. 
 
남편이 아내보다 월등히 성숙한 사람이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남편 말이 사실이라면, 아내가 아무리 상처 많은 사람이라도 결혼생활 12년 동안 치유되고 성장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아내의 상처가 악화된 것처럼 보인다. 없던 상처도 생긴 것 같다. 그러므로 남편의 말은 사실이 아니다. 
 
남편은 아내보다 월등히 성숙한 사람이 아니다. 남편과 아내, 두 사람에게 책임이 있다. 그 증거가 현재 둘의 상황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남편의 폭력적인 성향이 아내를 두렵게 했고, 아내는 남편과 아이들을 내버려두고 다른 나라로 떠나버렸다.  
 
하늘에서 내린 비는 낮은 곳에 고인다. 높은 곳에는 절대로 물이 고이지 않는 법이다. 참회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있는 말이다. 참회하는 사람만이 성장할 수 있다. 참회를 모르는 사람에게 은혜가 임할 자리는 없다. 
 
은혜가 사라진 기독교는 종교가 되어버린다. 내용은 사라지고 형식만 남은 껍데기가 되는 것이다. “자기 의로움을 주장하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입증하라”라는 교리는 기독교에 없다. 
 
‘상처 많은 딸을 네게 맡겼으니 절대로 버리지 마라.’ 
 
남편이 마음에 간직한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닐 것이다. 자기 의로움에서 비롯된 말이다. 자기 위선이 하나님 말씀으로 위장하는 순간, 행복은 더욱 멀어진다. 
 
“차라리 속이 시원하네요.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거든요. 주위 사람들은 제가 옳다고 말했죠. 이제 알 것 같아요. 왜 그렇게 아내가 힘들어했는지. 맞아요. 제 잘못도 있어요. 100퍼센트는 아니지만. 어떻게 그 사람에게만 잘못이 있다고 말하겠어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그의 말이 진심이기를 바랄 뿐이다. 그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 적나라하게 지적해달라고 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그의 진심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수술대에 누워있는 환자가 의사에게 “다른 부위에도 암이 퍼졌다면 모조리 제거해주세요”라고 말할 때, 알겠다고 말하는 의사는 없을 것이다. 
 
수술 부위를 열었을 때, 암이 사방팔방 퍼져있으면 일단 덮는 것이 맞다. 여기저기 헤집다가 봉합도 못한 채 환자가 깨어난다면, 그것은 재앙이다. 보인다고 다 떼어낼 수는 없지 않은가. 한 번에 하나씩이다. 환자가 여러 번 수술대 위에 눕더라도 천천히 가야 한다. 
 
시간이 없다면 악성 종양부터 떼어내자. 악성 종양은 ‘자기 우월감’이다. 빨리 떼어내지 않으면 ‘결혼’이라는 환자는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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