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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내가 이상해?

“소희 선생님, 잠깐 나 좀 봅시다.” 교무실 중앙에 책상을 놓고 앉은 교감 선생님이 말했다. 
 
한소희는 중저음의 목소리를 듣고 얼어붙고 말았다. 권위적인 말의 무게에 짓눌려,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잠깐 이리 와보시라니까!” 더 커진 교감의 목소리에 한소희는 움찔했다. 
 
그녀는 의자에서 일어나 천천히 교감 선생님을 향해 걸어갔다. 주위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사람들의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 레이저 반점이 그녀의 온몸을 가득 매웠다. 걷다가 주춤하면, 일제히 쏴버릴 기세였다. 
 
“아니, 말 길을 한 번에 못 알아들으시는 거야? 바로 앞에 앉은 사람을 몇 번을 불러야 대답을 해요?” 
 
“죄송합니다….”
 
“내가 왜 부른지 알죠?”
 
“….” 
 
“두 달 동안 교육감 온다고 학교 전체가 들썩거리면서 준비를 했잖아. 왜 한소희 선생님만 준비를 안 한 거야? 개망신을 당했잖아! 어떻게 책임질 거야!”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면, 다야? 지금 기간제라고 대충대충 하는 거야?”
 
“….” 
 
“어떻게 두 달 동안 가만히 있다가, 교육감 오는 당일에 준비를 못 했다는 거야? 실험실에서 아이들이 교과서만 가지고 공부하는 게 말이 돼! 빔 프로젝터도 안되고 말이야.” 
 
한소희의 옆자리에 앉은 K 교사가 보다 못해 나섰다. K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교감에게 말했다. 
 
“교감 선생님, 사석에서 이야기하는 게 어떨까요? 사람들 다 보는데, 너무 심하시잖아요.” 
 
교감의 얼굴빛이 붉게 변했다. 헛기침을 하더니,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제 됐으니까, 자리로 돌아가 보세요. 그리고, 내년에는 다른 학교 알아보세요. 정교사처럼 일하라고 했더니, 건성건성….” 
 
다음 수업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교무실에 울려 퍼졌다. 선생님들은 썰물처럼 교무실을 빠져나갔다. 교감은 인파에 몸을 숨겨 도피하듯이, 책상 위에 놓인 담배와 라이터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K 교사 역시, 한소희에게 한 마디도 건네지 못한 채, 다급하게 교무실을 빠져나갔다. 
 
교무실은 고요했다.
 
한소희는 천천히 돌아섰다. 그녀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
 
이른 아침, 상담 일정을 확인했다. 나의 시선이 월요일 오후 7시에 머물렀다. 한소희가 첫 세션을 시작하기로 예정된 시간이었다. 그녀와의 통화를 떠올렸다. 다급했던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듯했다. 
 
“저는 한소희라고 해요. 목사님이 쓰신 책을 읽고, 연락드렸어요. 지금 제 상황이 절박해서, 당장 내일이라도 상담을 받고 싶어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그녀의 목소리였다. 
 

 
한소희는 서른두 살의 여성이었다. 긴 머리를 하나로 묶고, 푸른색 긴 코트를 입은 채였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해 보였다. 
 
“급하게 연락드렸는데, 시간 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감사하지요.”
 
한소희는 교무실에서 그녀가 겪은 사건을 말했다. 그날 이후, 그녀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상담실에 오기 전까지, 그녀는 이틀 밤을 꼬박 뜬 눈으로 지새웠다. 소화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틀 동안 간단한 음식을 두 끼 밖에 먹지 못했다. 
 
정서적인 문제도 심각했다.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몸살 기운과 두통, 어깨결림, 손떨림 증상까지 그녀를 괴롭혔다. 해가 뜨는 것이 두려웠다. 교감 선생님, 동료 선생님, 그리고 학생들 마저도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았다. 
 
학교를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무리 기간제 교사라도 학교의 평가는 중요했다. 다른 지역 다른 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를 지원한다고 하더라도, 무책임하게 학교를 떠난 교사에게 기회를 줄 가능성은 낮았다. 남은 두 달을 어떻게든 버터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결론이었다. 
 
남은 두 달을 혼자 버틸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상담을 택한 것이다. 
 
“마음을 열고 이야기해주신 덕분에, 소희 씨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제가 궁금한 것들을 차례대로 질문해 볼게요. 지금처럼 편안하게 답변해주시면 됩니다.” 
 
교무실에서 그녀에게 일어난 사건을 자세히 알고 싶었다. 교감이 그녀를 부르기 전에,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소희 선생님, 교육감 참관수업 많이 긴장되지?” K 교사가 물었다. 
 
“네, 조금이요.” 
 
“너무 긴장하지 마. 어차피 내가 다 준비해야 하는 거니까. 소희 선생님은 내가 부탁하는 것만 옆에서 도와주면 돼.” 
 
“네, 선생님.” 
 
K 교사는 책상 위 책꽂이에서 파일첩을 꺼내들었다. 그 사이에 끼어 있는 서류 한 장을 한소희에게 넘겼다. 
 
“여기 이 목록에 있는 물품들 한 번 확인해주고, 없는 물품은 체크 좀 해줘. 이것만 확인해서, 나한테 넘겨주면 돼.” 
 
한소희는 K 교사가 넘겨주는 종이 한 장을 받아들었다. 의외로 간단한 일이었다. 
 
“간단한데요.” 
 
“그럼, 간단하지. 내가 뭐 그렇게 어려운 일 시키겠어? 나머지는 내가 할 거야. 수업 내용 정리해서 이메일로 보내주면, PPT만 하나 만들어줘. 내가 나이가  있다 보니까, 센스가 떨어지는 것 같아. 소희 선생님은 아직 젊잖아. 센스 있게 잘 만들어 봐.”  
 
“지난번에 보니까, 잘 만드시던데요?”
 
“그것도 내 딸한테 부탁한 거야. 이제 고3이라고, 내가 시중들고 있어.”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다, 풋 하고 웃음이 터졌다.
 
“알겠어요, 선생님. 나중에 이메일 보내주세요.” 
 
“항상 고마워, 소희 선생님.” 
 
“제가 고맙죠. 항상 도와주시잖아요.” 
 
한소희는 점심시간에 과학실에 내려갔다. K 교사에게 받은 물품 목록을 확인했다. 단순한 일이었다. 점심시간마다 내려와서 물품을 확인한다면, 한 주 내로 충분히 끝날 일이었다. 
 
일주일 후, 한소희가 평소보다 일찍 출근해 책상 앞에서 수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K 교사가 정시에 맞춰 허겁지겁 교무실에 들어왔다. 
 
“오늘 출근길에 접촉사고가 났어. 사고 처리하느라고 늦었네. 운전에도 나이 제한이 있어야 할 것 같아. 연세 많으신 할아버지가 뒤에서 내 차를 받았지 뭐야.” 
 
한소희는 깜짝 놀랐다. 
 
“병원에 가보셔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 정도는 아니야. 살짝 부딪혔어. 걱정해줘서 고마워.” 
 
“그래도, 병원에 가보셔야 해요. 교통사고는 사고 난 당시에는 잘 모르거든요.” 
 
“그래, 그렇게 할게.” 
 
“참, 선생님께서 지난 번에 부탁한 물품 확인 끝냈어요.” 
 
한소희는 파일첩을 펼쳐들어, K 교사에게 확인을 부탁했다. 
 
“잘 했네. 이렇게 하면 돼. 나도 수업 내용 정리 거의 끝냈으니까, 이번 주 내로 이메일 보내줄게.”
 
K 교사는 한소희에게 전해 받은 파일첩을 책상 위 책꽂이에 끼워 넣었다. 첫 수업을 알리는 벨이 울리자,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의 교실로 향했다. 
 
다음 날, 아침 K 교사는 출근하지 않았다. 한소희는 K 교사가 걱정돼, 문자를 보냈다. K 교사는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나 방심했나 봐. 어젯밤에 허리가 아파서 한숨도 못 잤어. 일주일 정도 입원해서, 치료받으려고.” 
 
“잘 하셨어요. 아무 걱정 마시고, 일주일 푹 쉬다 오세요.”  
 
한소희는 교육감 참관 수업이 은은하게 걱정되었다. 혹시라도 K 교사의 퇴원이 늦어진다면, 열흘 뒤에 있을 교육감 참관 수업이 자신의 몫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소희는 교육감 참관수업 일정이 다가올수록 불안하고 초조했다. K 교사에게 하루라도 빨리 퇴원하라고 다그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한 주 내로 보내주겠다던, 이메일은 깜깜무소식이었다. 
 
그녀는 불안한 마음에 새벽 예배를 나가기 시작했다. K 교사가 하루라도 빨리 퇴원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아니면, 이메일이라도 하루빨리 받아보기 원했다. K 교사가 이메일을 보낸다는 것은, K 교사가 직접 수업하겠다는 의사 표현이었다. 
 
한소희의 기대와는 달리, K 교사는 일주일 내내 연락을 하지 않았다. 교육감 참관 수업이 3일 앞으로 다가온 시점이었다. 한소희는 K의 문병을 갔다. 만나서 직접 확인할 생각이었다. 
 
한소희는 K가 입원한 병실에 들어가, 인사치레의 안부를 묻고 나서, 참관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선생님, 혹시 참관 수업은 예정대로 진행하실 수 있으신 거죠?” 
 
“그래야지. 내일이나 모레 퇴원할 생각이야.” 
 
한소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소희 선생님, 많이 걱정했구나. 뭘 그런 걸 걱정해? 그거 확인하려고 병원까지 온 거야?”
 
한소희는 움찔했다. 
 
“그런 거 아니에요.” 
 
K가 피식 웃었다. 
 
“뭘 그런 게 아니야. 솔직히 말해도 돼.” 
 
K의 말에, 한소희 역시 긴장이 풀렸다. 
 
“솔직히 조금 걱정됐어요. 혹시라도, 내가 수업을 맡게 되면 어떻게 하지…. 평소에 안 나가던, 새벽 예배까지 나갔다니까요.” 
 
“걱정도 팔자다, 소희 선생님.”
 
K는 한소희의 한쪽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제가 소심한 성격이라니까요.” 
 
한소희는 어색하게 웃었다. 
 
한소희는 일단 안심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주말을 보내면 될 일이었다. ‘월요일이 되면 K 교사가 퇴원을 할 것이다. 그러면,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K 교사는 퇴원하지 않았다. 한소희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참관 수업을 맞이했다. 과학실의 보조교사 역할을 맡았던, 한소희가 교육감이 참관하는 수업에서 홀로 서서 수업을 진행해야 했던 것이다. 
 
결과는 최악이었다. 
 
모든 책임을 한소희가 짊어져야 했다. K 교사는 참관 수업 일정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퇴원을 했다. 당일 오후가 돼서야, 학교에 들른 것이다.
 
상식적으로 보면, K 교사가 비난받아야 하겠지만 아무도 나서서 한소희를 두둔해주는 교사는 없었다. 전후 맥락을 모르는 다른 교사들은 아마도 K 교사의 부득이한 사정으로, 한소희가 책임지고 수업을 진행해줄 것이라 예상했을 것이다. 
 
교감 선생님의 혹독한 비난이 쏟아져 내릴 때, 한소희를 감싸준 K 교사였다. K 교사의 행동을 지켜본 다른 교사들은 지레짐작 판단했을 것이다. 신입 기간제 교사의 명백한 실수라고. 
 

 
“그날 사건에 대해, K 교사와 따로 이야기해보셨나요?” 내가 물었다. 
 
“네, 아주 짧게 대화를 나눴어요.” 
 
“K 교사가 뭐라고 하던가요?” 
 
“미안하다고 했어요. 몸이 계속 아파서, 도저히 퇴원할 수가 없었다고 했죠. 상황이 이렇게 될지 몰랐다면서, 이해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자매님의 반응은요?” 
 
“그래도 너무하신 거 아니냐고 물었어요. 그 말을 할 때는 저도 흥분한 상태라 예민한 말투였어요.”
 
“K 교사 자기 잘못을 인정하던가요?” 
 
“아니요. 제가 공격적으로 말하니까, K 선생님도 당황하셨나 봐요. 갑자기 태도를 바꾸시더라고요.” 
 
“어떻게요?”
 
“그날 소희 선생님이 문자로 “아무 걱정 하지 말고 푹 쉬라고” 말하지 않았냐고. 그래서, 아무 걱정 없이 쉬다 왔는데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면 어떻게 하냐고. 오히려 저한테 따지시더라고요. 거기서 제가 할 말을 잃었어요. 대화가 중단됐죠.”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으셨어요?”
 
“아니요. 머리가 멍해지면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어요.”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으시겠어요? 어떤 심정이었는지?” 
 
“솔직히 말씀드리면, 두려웠던 것 같아요. 이미 지나간 일이고, 상황은 바꿀 수 없잖아요. 나는 기간제 교사이고, 그분은 정교사이고요.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내 잘못 아니라고 말할 자신까지는 없었어요.” 
 
“무엇에 대한 두려움일까요?”
 
“….”
 
한소희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두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티슈로 눈물을 닦아내며, 감정을 애써 진정시키고자 했다.
 
 나는 침착하게 기다렸다. 그녀가 천천히 생각하기를 바랐고,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둔 진실을 말하기 원했다. 
 
“사람들이 저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봐 두려웠어요. 제가 조금 더 강하게 말했다면, K 선생님뿐만 아니라, 주변 모든 선생님들이 저를 이상하게 봤을 거예요. 그런 상황을 감당할 힘이 저한테 없거든요. 저는 그냥 사람들의 눈에 띄고 싶지 않아요. 조용히 지내고 싶거든요.” 
 
그녀가 진실을 말했다. 그녀의 마음속에 숨겨진 비밀의 문이 비스듬히 열렸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까 두렵다는 말이 무슨 뜻이죠?” 
 
“제가 살짝 이상하지 않나요? 말투도 어눌하고, 걷는 모습도 조금 이상하고. 목사님은 제가 상담실을 들어올 때, 제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셨나요?” 
 
그 순간이었다. 비디오테이프가 빠른 속도로 뒤로 감기듯이, 한소희가 상담실에 처음 들어오는 장면이 머릿속에서 재생되었다. 
 
한소희는 미세하게 절뚝거렸다. 상담실 입구와 상담실 내부까지의 거리는 짧았다. 내담자를 안내해야 하는 상황에서, 나는 한소희보다 한 걸음 앞서 걸어야 했다. 한소희가 걷는 것을 볼 수 있었던 유일한 기회는 상담실에 들어선 그녀가 의자에 앉기까지였다. 굳이 걸음걸이를 세어본다면, 세네 발자국이었다.  
 
한소희의 말투 역시 느리고 차분했다. 가끔 복잡한 단어를 말할 때, 발음이 정확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상담과 관련해서 중요한 정보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의 발음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에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면, 상담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소희가 자신의 말투와 걸음걸이를 상담실 테이블에 올려놓는 순간, 그녀의 말투와 걸음걸이는 반드시 언급하고 넘어갈 중요한 의제가 됐다. 열리다 멈춰버린, 비밀의 문을 그녀가 활짝 열어젖힌 것이다.
 

 
한소희가 9살이었던, 3월의 주말이었다. 그녀의 가족은 가까운 놀이공원에 갈 예정이었다. 마음이 들뜬 한소희는 부모가 준비하는 동안, 집 안에 머무를 수 없었다. 
 
“엄마, 나 먼저 나가서 기다릴게.” 
 
“안돼, 같이 나가. 조금만 기다려.” 
 
“나 잠깐 슈퍼에서 살 거 있단 말이야.” 
 
“안 된다고. 어차피 우리도 슈퍼 잠깐 갈 거야. 같이 나가.” 
 
“싫어. 나 혼자 갔다 올 거야.” 
 
한소희가 신발을 신고, 현관 밖으로 나가는 동안 엄마는 거울 앞에서 화장을 하고 있었다. 두 손가락에 로션을 잔뜩 묻혀 얼굴에 바르면서, 현관 밖을 나가는 한소희에게 소리쳤다. 
 
“너 차 조심해야 돼! 앞에 잘 보고 다녀.”
 
화장실에서 씻고 나오던, 그녀의 아빠가 아내에게 말했다. 
 
“아니, 소희 혼자 나가게 내버려 뒀어?” 
 
“몰라, 혼자 간 데. 바로 집 앞인데, 뭐.” 
 
“걱정인데….”
 
“그렇게 걱정되면, 당신이 나가봐. 당신은 옷만 입으면 되잖아.” 
 
그녀의 아버지는 이상하게 불안했다.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딸을 따라나섰다. 
 
한소희가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걸을 때,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한소희는 까치발을 하고, 집집 사이에 좁은 골목 틈새로 연기가 나는 곳을 찾았다. 그녀의 눈에 펼쳐진 것은 봄날의 맑은 하늘뿐이었다. 연기가 나는 곳은 없었다. 
 
한소희는 손바닥으로 담장을 짚어가며, 골목을 따라 걸었다. 그녀가 코너를 돌아, 슈퍼 앞 사거리에 들어섰을 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하얀색 승합차가 그녀를 들이박은 것이다. 그녀의 몸이 공중에 떴다가,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졌다. 
 
응급환자를 싣고 가던 구급차가 좁은 골목길을 과도한 속도로 달리다, 한소희를 치어 버린 것이다. 구급 대원이 부리나케 차에서 내려, 한소희를 살폈다. 
 
그녀의 머리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무릎은 반대쪽으로 꺾여 있었다. 그녀가 얼마나 중대한 상황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구급 대원은 한소희를 구급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이송했다. 
 
멀리서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사이렌 소리에, 한소희의 아버지는 불안감을 느꼈다. 그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가 사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  슈퍼의 사장이 덜덜 떨리는 손짓으로 상황을 설명했다. 한소희의 아버지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시멘트 바닥에 흥건한 피를 보고, 잠시 기절했다. 
 

 
“머리를 심하게 다쳐서 큰 수술을 여러 번 받았어요. 일 년 내내 병원에 살다시피 했죠. 어렸지만, 정말 힘들었던 것 같아요. 이마부터 뒤통수를 가로지르는 수술 자국이 생겼거든요. 지금은 머리카락으로 가릴 수 있는데, 당시에는 수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머리카락이 없었어요. 
 
부모님이 조금만 신중하셨더라면, 머리카락이 자란 다음에 학교에 보내셨을 텐데, 저희 부모님은 그러지 않으셨어요. 출석 일수를 채우지 못하면 큰일 나는 줄 아셨나 봐요. 머리에 수술 자국이 선명한데, 바로 학교에 갔어요.”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녀가 긴 머리를 하나로 묶은 이유, 그녀의 얼굴이 유독 하얗고 창백한 이유를 그제서야  알게 된 것이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파란 코트 역시, 그녀의 걸음걸이를 조금이라도 숨겨볼 의도였던 것이다. 
 
9살의 교통사고 이후, 한소희가 받은 고통을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목이 메였다. 내가 입술을 떼서, 그녀에게 말을 건네려고 하는 순간, 눈물이 터져버렸다. 한소희도 함께 울었다. 
 
“그날 차라리 죽었어야 했나 봐요. 살아가는 게 너무 힘들어요, 목사님….” 
 

 
“괴물이래요, 괴물이래요.” 
 
한소희의 같은 반 남학생들이 떼를 지어 노래를 불렀다. 그녀는 친구들이 두려웠다.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에 숨어들었다. 변기에 앉아 다음 수업을 알리는 벨이 울리기만을 기다렸다.  
 
“엄마, 나 학교 가기 싫어.” 
 
한소희는 엄마에게 참아왔던 말을 내뱉었다. 
 
“친구들이 나를 이상하게 본단 말이야.” 
 
엄마는 딸의 이야기를 한참 동안 들어주었다. 한소희가 말을 마치자, 엄마는 딸을 끌어안고 하염없이 울었다. 
 
“엄마도 내가 이상한 것 같아?” 엄마 품에 안겨 있던, 한소희가 물었다. 
 
“아니, 엄마는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소희가 아파서 그런 거야. 다 나으면 괜찮아져. 조금만 참아, 소희야.” 
 
한소희는 엄마의 위로에 힘을 얻었다. 학교 친구들을 상대하는 것이 불편하고 힘들었지만, 견디고 견뎠다. 해가 바뀌고, 학년이 바뀌고, 친구들도 바뀌었다. 그녀의 머리카락 속에 감춰진 흉터를 기억하는 사람도 하나 둘 사라졌다.  
 

 
더운 여름날의 체육시간이었다. 체육 선생님은 내리쬐는 햇볕을 피하고자, 학교 공터 그늘로 아이들을 이끌었다. 한소희도 줄을 맞추어 걸었다. 그때였다. 한소희는 갑자기 몸의 균형을 잃고 맥없이 넘어졌다. 일어나려고 해도,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소희야, 괜찮니?” 
 
한소희는 대답하지 못했다. 혀가 굳어버린 것 같았다. 온몸의 근육에 경련이 일어났다. 반 아이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선생님은 다급하게 한소희를 들쳐 업고, 양호실로 뛰었다. 
 
학교 운동장에 구급차가 도착했다. 한소희는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구급차로 옮겨졌다. 체육 선생님이 구급차에 함께 올랐다. 의사에게 상황을 설명할 의도였다. 
 
한소희는 그날 이후 미세하게 다리를 절게 되었다. 뇌 수술의 후유증이었다. 
 
한소희는 몸에 일어난 변화를 감지했다. 두려움이 그녀를 집어삼켰다. 학교에도 갈 수 없었다.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끔찍한 기억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그녀의 엄마가 딸을 위로했다. 마음을 추스를 수 있도록 옆에서 도운 것이다. 
 
“소희야, 괜찮아. 의사 선생님이 약만 제때 잘 먹으면, 두 번 다시 그런 일 없을 거라고 했어.” 
 
“거짓말이잖아. 엄마는 맨날 나 걱정할까 봐 일부러 거짓말하잖아.” 한소희가 울면서 말했다. 
 
“아니야. 소희야. 엄마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 오늘 병원에 같이 가서, 의사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 들어보면 되잖아. 엄마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 
 
엄마는 속상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남편과 함께, 딸을 챙겨 집을 나섰다. 셋이 나란히 걷다가, 엄마가 지갑을 두고 나왔다며,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한소희는 무심결에 앞서 걸었고, 그녀의 아버지는 길가에 멈춰 엄마를 기다렸다. 지갑을 챙겨 나온 엄마가 빠른 걸음으로 아빠에게 다가왔다. 한소희는 부모님보다 열 걸음 앞서 걸었다. 
 
아빠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 거야?”
 
“몰라. 요즘 내 정신이 아니야.” 
 
“그나저나 갑자기 병원은 왜 가는 거야?” 
 
아빠가 그렇게 말하자, 엄마는 아빠의 팔을 세게 꼬집으면서,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엄마가 작은 목소리로 아빠에게 말했다.
 
“저거 안 보여? 소희가 지금 다리를 절잖아. 당신은 그것도 몰랐어?” 
 
“뭐가? 난 모르겠는데.” 아빠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세히 좀 봐. 이상하잖아. 어떻게 아빠가 그것도 몰라.” 
 
한소희는 충격에 빠졌다. 부모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속삭 말한 모든 대화를 듣고 만 것이다. 한소희는 울음을 터뜨렸다. 뒤돌아서서 부모를 가로질러 집으로 들어갔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침대에 엎드려 하염없이 울었다. 
 
그녀를 따라, 집으로 들어온 부모님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엄마가 문을 두드리며,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돼서 그랬어, 소희야. 엄마 착각일 수도 있잖아. 괜히 너 걱정할까 봐 말 못 했어. 미안해, 소희야. 문 좀 열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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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이해할 수 있어요. 제가 걱정할까 봐 그러셨겠죠. 엄마 한 사람이라도 괜찮다고 말해주시지 않았다면, 제가 견딜 수 없었을 거예요. 하지만, 아쉬워요. 제 상태를 부정하거나 숨기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주셨으면 어땠을까? 혼자 생각해보거든요. 어차피, 다 지난 일이지만요.”
 
한소희가 들려준 이야기를 마음속으로 되새겨보았다. 한소희는 스스로를 “이상한 사람”으로 정의 내렸다. 자신이 “이상한 사람”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아마도 교무실에서 일어난 사건은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걸었던 골목길로 그녀를 소환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 끔찍한 교통사고를 극복하고 살아돌아온 한소희를 세상은 반겨주지 않았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마저도 비웃음거리가 되었던 어린 시절이 그녀가 살아갈 세상을 두렵게 만든 것이다. 
 
그것은 아이러니였다. 이상한 사람은 한소희가 아니라, K 교사이며 교감이었다. 
 
사소한 접촉사고를 핑계로, 자신의 업무적 과실을 한소희에게 떠넘긴 K교사는 이상한 사람이다. 한소희가 K를 대신해, 교감 선생님에게 인격적인 모독을 당할 때, 좋은 사람인 척 한 K 교사는 위선적인 사람이다.  
 
교감은 자초지종을 들어보지도 않은 채, 한소희를 인격적으로 모독했다. 정교사와 기간제 교사를 운운하며, 사람을 자기 방식으로 평가하는 태도 역시 옳지 않다. 그는 여러 면에서 이상한 사람이다. 
 
한소희는 이상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정작 자신이 온전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몸이 불편한 한소희를 은은하게 무시했던 사람들은, 그녀가 어린 시절에 “괴물”이라고 놀리며 비웃던 사람들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괴물의 사전적 의미는 괴상하게 생긴 물체다. 교무실에서 그녀에게 쏠린 다수의 시선은, 그녀를 괴상하게 여겼다. 어린 시절 교실에서, 사리분별하지 못했던 악동들에게 받았던 고통이 십수 년 뒤에 고스란히 되살아난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들은 진실을 알지 못했다. 
 
한소희는 죽음을 이긴 진정한 승리자였다. 
 

 
“참 이상하네요. 정말 이상한 사람이에요.” 내가 말했다. 
 
한소희는 가만히 고개를 떨구었다.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내가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K 교사 말이에요. 상식 이하의 사람이군요. 어떻게 그런 식으로 행동할 수가 있죠? 교감도 마찬가지예요. 그런 사람 꼭 있죠. 권위적이고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요. 제가 볼 때, 두 사람 모두 이상한 사람들이에요.” 
 
한소희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만약에 소희 씨가 나를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준다면, 나는 이 상황을 간단히 정리하고 싶어요. ‘이상한 사람들은 정작 자신이 이상하다는 것을 모른다. 정작 멀쩡한 사람이 상담을 받으러 왔다.’ 제가 전해드린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한소희는 머뭇거렸다. 그러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내담자라서 그런 말을 해주시는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너무 제 입장에서만 말했나 봐요. 그분들 이야기를 들어보시면, 생각이 달라지실 거예요. 그분들께 괜히 죄송하네요.”
 
나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 
 
“나도 나름 상식적인 사람이에요. 한 사람 말만 듣고 쪼르르 달려가 그 사람 편을 들 정도로 어리석지 않아요. 소희 씨가 의도한 건 아니지만, 소희 씨는 나를 설득하고 있어요. 내 생각을 바꾸고 싶어 해요. ‘내가 이상한 사람이에요.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해주세요.’ 진실은 그게 아니죠. 이상한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에요.”
 
한소희의 볼이 붉게 달아올랐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소희 씨, 속지 마세요. 당신은 정상이에요. 그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이라고요. 세상에는 의외로 이상한 사람들이 많아요.” 
 
한소희는 감정이 격해져, 큰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한소희와 여섯 번의 상담 세션을 지속했다. 그 과정에서 한소희가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현재의 대인관계에서 적절히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제시하고 연습했다. 
 
관계에서 갈등이 일어날 때, 방아쇠처럼 당겨지는 “나는 이상한 사람이야.”라는 파괴적인 생각은 적어도 완화되거나 지연되었다. 그러나, 언제든 반복될 수 있었다. 그에 따른 후속 조치로 긴급 상담을 이어갈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한소희를 배웅하고 돌아와, 상담 일지에 간단한 메모를 남겼다. 
 
언제나 한소희가 옳으냐고? 물론, 아니다. 상대방 잘못이라고 결론을 내리면 뭐가 달라지냐고? 모르는 소리다. 그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다른 사람을 비난하지 않았다. 정당하지 못한 비난마저도 스스로의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관계의 문제는 언제나 상대방이 존재한다.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잘못하지 않는다. 갈등은 상호 책임이다. 
 
한소희는 상대방의 책임을 빼앗아버렸다. 모든 것을 그녀의 잘못으로 여긴 것이다. 극단은 좋지 않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객관적으로 따져볼 기회를 가져야만 했다. 그것은 곧, 그녀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표현한다는 뜻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았다. 한소희가 건물 밖을 걸어나고 있었다. 절뚝거리는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울컥 눈물을 흘렸다. 동정심은 아니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그것은 경외심이었다. 
 
그녀는 생존자이며, 위대한 승리자였다.

너 주님 사랑하는 거 맞아?

나 예수 믿는데
내 인생 왜 이렇죠?
 
불행하고
우울하고
힘들어요.
 
예수님 사랑하세요?
네?
 
예수님 사랑하시냐고요?
네….
 
내가 볼 때는 아닌데.
그 정도로는 안돼요.
 
그럼 어떻게 하죠?
알려주세요.
 
더 사랑해야죠.
예수님 사랑하시는 거
정말 맞죠?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사실 잘 모르겠어요.
 
거봐요.
그렇게 확신이 없는데
어떻게 행복하겠어요.
 
목숨 다해 주님만
사랑하세요.
 
주님만 사랑하면
다 해결되는데
주님을 사랑하지 않으니까
괴로운 거예요.
 
옆에서 지켜보려니
나는 마음이 괴롭습니다.
 
나는 당신과
생각이 다릅니다.
 
주님 사랑하자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확신이 부족하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어요.
 
아니, 그럼
예수님 사랑 안 합니까.
확신 없이 천국 갑니까.
 
나는 당신처럼
강한 확신은 없지만,
당신이 부럽지 않아요.
 
내가 불안한 건
맞습니다.
 
솔직히 나는
내가 너무 불안합니다.
 
나는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일까요.
 
모르겠어요.
확신이 서지 않아요.
 
주님을 사랑한다면
내가 이래서는 안되죠.
 
나는 알고 있어요.
내가 얼마나 형편없는지.
 
내가 실수해서 고통받는지
나를 사랑해서 고통을 주시는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정확한 판별법이 있으면
내게 알려주세요.
 
나도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그런 확신도 없이
무슨 목사라고.
 
맞아요.
당신 말이 맞아요.
 
하지만, 나도 당신만큼
주님을 사랑해요.
 
당신만큼 확신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당신이 확신하는 동안
나는 계속 불안할 거예요, 아마.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어요.
확신했던 사람들.
 
베드로는 확신했어요.
다른 사람 몰라도
나는 주님 부인하지 않겠다고.
 
도마는 확신했어요.
내가 손가락으로 예수님 옆구리를
후벼보기 전까지는 믿지 않겠다고.
 
바울은 확신했어요.
내가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되게 하는
그리스도인을 모조리 잡아 처넣겠다고.
 
확신도 그리 안전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어떠세요.
 
내가 확신 없어도
행복한 이유 알려드릴까요.
 
나는 내가 얼마나
주님 사랑하는지
별로 고민 안 해요.
 
생각할수록 좌절되니까요.
내가 주님을 얼마나 사랑해야
나도 안심되고 주님도 만족할까요.
 
어려워요.
다르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주님이 날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루 종일 생각해요.
 
생각할수록 행복하거든요.
너무 너무 행복해요.
 
내가 주님을 사랑하면
얼마나 사랑하겠어요.
 
주님이 날 사랑하시는 거에 비하면
공중에 떠다니는 먼지 같죠.
 
당신하고 나하고 누가 더 주님 사랑하는지
따져 봤자 도토리 키재기에요.
 
당신이 이겼다고 해줄게요.
그래도, 난 손해 볼게 없어요.
 
당신과 나.
주님은 차별 없이 사랑해주시니까요.
 
내가 얼마나 주님 사랑하는가에
집중하지 말고
 
주님이 날 얼마나 사랑하시는가에
집중하세요.
 
내가 불안해도 행복한 이유
이제 아시겠죠.
 
계속 고민하세요.
나 주님 사랑하나.
나 믿음 있나.
 
그게 사랑이고
그게 믿음이니까요.

상처가 많아서 그런가봐

혜연은 용기를 내서 목사님과 마주했다. 교회 목사님이 혜연의 집을 방문한 것이다. 
 
밤새 고민하며, 정리해 두었던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사막에 혼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엄마는 그런 혜연이 답답했는지, 옆구리를 꾹 찌르며 속삭이듯 말했다. 
 
“뭐 한다냐? 목사님 모셔다 놓고.” 
 
혜연은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는 목사님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제가 오랫동안 고민해 온 문제가 있어요. 저는 목사님이 무서워요.” 
 
목사는 당황했다. 그러다, 이내 차분해졌다. 오랜 경륜으로 산전수전 다 겪어봤다는 표정이었다. 
 
“제가 무섭다고요?” 
 
혜연은 움찔했다. 파도처럼 후회가 밀려왔다. 엎질러진 물이었다. 목사는 이유를 알고 싶어 했다.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겠어요?” 
 
혜연은 혹시라도 목사님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다. 
 
“주일 설교를 하실 때와 수요 예배 설교를 하실 때, 목사님의 설교 스타일이 조금 다르신 것 같아요….” 
 
“네, 정확히 아시네요. 주일 설교와 수요 설교는 청중이 다르잖아요. 주일에는 교회에 처음 나오시는 분들이 계시니까, 아무래도 부드럽게 설교하지요. 하지만, 수요 예배는 청중이 달라요. 헌신된 분들이고, 말씀을 사모하는 분들이니까 그에 맞게 설교하지요.” 
 
“저는 수요 예배에 가면 무서워요, 목사님.” 
 
“그러니까, 뭐가 무섭다는지 말씀해 주세요.” 
 
혜연은 다시 움츠러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도망치고 싶었다. 심장이 요동치고, 호흡이 가빠졌다. 그녀는 억지로 마음을 진정시켰다. 
 
“말씀을 전하시다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시면 저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요.” 
 
목사는 이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아, 충분히 그럴 수 있죠. 수요 예배에서는 제가 조금 강하지요.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요즘 마음 편하게 신앙생활을 하려는 분들이 많아서요. 
 
언제까지나 새가족일 수는 없잖아요. 교회 오래 다니셨으면, 말씀을 듣고 자라나야죠.자매님도 시간이 조금 지나면 적응이 되실 거예요.”
 
벌써 6년이었다. 혜연은 적응할 수 없었다. 
 
생각에 잠긴, 혜연에게 목사가 다시 물었다. 
 
“최근에 그런 적 있으세요?” 
 
“지난주에, 목사님께서 설교를 하시다가 성도들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드셨나 봐요. 갑자기 소리를 지르셨어요. 말씀을 듣는 태도가 그게 뭐냐고. 그게 성도의 바른 자세냐고. 저는 목사님이 소리를 지르시자마자,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어요.” 
 
“아, 기억나요. 그날 몇 사람이 꾸벅꾸벅 졸더라고요. 그래서, 깨워준 거예요. 제가 소리를 질렀다고 해서, 화가 났다고 생각하시면 안 돼요. 제가 소리를 지른 건,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서예요. 항상 깨어서 말씀을 들어도 모자란 판에, 예배 시간에 졸다니요. 그럴 수는 없지요.” 
 
목사는 혜연의 반응을 살폈다. 
 
“맞아요, 목사님. 저도 목사님이 무슨 말씀 하시는지 알아요. 일상생활에서 목사님 말투는 설교하실 때와 다르시거든요. 평소에는 지금처럼 편안하게 말씀해주시잖아요. 하지만, 저한테는 설교하는 목사님과 대화하는 목사님이 구분이 되지 않아요. 지금처럼 편하게 대화하다가도 목사님이 버럭 화를 내실까 무섭거든요.” 
 
목사는 시계를 바라보며, 조급한 심정을 드러냈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던 것이다. 
 
“혹시, 어릴 때 상처받은 기억이 있으세요? 저는 한 교회에서 10년 넘도록 목회를 했는데, 자매님처럼 말씀하시는 분은 처음 만나보거든요.” 
 
혜연은 깜짝 놀랐다. 친정 엄마가 옆에 있는 상황에서, 어린 시절의 상처에 대해 말할 수 없었다. 어머니가 서운하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혜연의 그런 모습이 답답했는지, 그녀의 엄마가 나섰다. 
 
“목사님, 말씀 들으니께, 생각나는 것이 있네유. 사실, 얘 시아버지가 그리 무섭다네유. 신혼 초에 아주 무서워서 혼났다고, 그리 말한 기억이 나유. 혹시 그게 무슨 상관이 있을까유?” 
 
목사는 “아하!”하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그랬구나’라는 단서를 발견한 것이었다. 혜연을 대하는 태도가 급변했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자매님, 그럴 수 있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실 거예요. 저도 당분간은 소리를 지르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자매님 역시, 그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셔야 해요. 주님이 도와주실 겁니다.” 
 
혜연은 엄마가 야속했다. 
 
목사는 심방을 마무리하는 기도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상처가 치유될 것이라고 강하게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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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연은 감정을 추슬러야 했다. 엄마에게 공격적으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 평정심을 되찾기까지 꼬박 하루가 걸렸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가는 길에, 차 안에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어제 목사님 앞에서 왜 그렇게 말했어? 나 속상했어. 내가 무슨 환자 같았잖아. 엄마까지 그렇게 말하면 난 어떻게 하라고. 목사님이 나를 얼마나 오해하시겠어.” 
 
혜연의 엄마는 태연하게 말했다. 
 
“내가 뭐 잘못했다냐. 니가 그래 말을 안하고 있으니까, 내가 대신 말해준 것이여! 니가 또박또박 말을 했으면, 엄마가 그리 말을 했것어? 답답하면 말을 해야지, 왜 말을 한 마디도 못 혀…. 다 커 가지고 답답해 죽것네. 그래서, 지금 엄마한테 따지고 있는 겨?” 
 
운전대를 잡고 있던 혜연은 엄마가 내던진 말에 화가 났다. 빨간색 신호 앞에서 차가 멈춰 섰을 때, 혜연은 엄마를 돌아보며 말했다. 
 
“엄마는 왜 항상 그런 식으로 말해? 나 정말 답답해.” 
 
엄마는 뒷자리에 앉아, 딸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이고, 이게 뭔 일이래. 엄마가 입을 처닫고 쥐 죽은 듯이 있어야, 니 속이 편하제? 알것어. 이제 그럴 겨. 교회도 이제 너 혼자 나가 이것아. 억지로 늙은 애미 끌고 나가지 말고!” 
 
마트에 도착할 때까지, 혜연은 엄마의 푸념을 들어야 했다. 그녀는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마트 사이를 거닐었고, 택배 직원처럼 식재료를 차에 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도, 혜연의 엄마는 쉬지 않고 푸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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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되었는지 모르겠어요. 교회 목사님 말씀대로, 제 상처 때문에 그런 걸까요? 이런 문제로 상담받는 게 조금 웃기지만, 상처 때문이라면 치유받고 싶어요.” 
 
나는 가만히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가, 의도적으로 무례한 질문을 던졌다. 진실에 한 걸음 다가가기 위한, 직설적인 질문이라고 말했다. 
 
“교회를 옮기고 싶은 생각은 없으신가요? 더 건강하고 따뜻한 교회도 있어요.” 
 
“아니요, 그런 생각은 전혀 없어요.” 
 
혜연은 밝은 목소리로 즉시 대답했다. 의외였다. 
 
“그럴 수는 없어요. 저는 제가 다니는 교회가 좋아요. 목사님의 말씀으로 은혜받고 있고요. 단지, 목사님의 표현 방식이 제게 고통스러운 것 같아요. 목사님이 심방 오셨을 때, 제 생각을 솔직히 표현을 못 해서 답답했던 거예요.”
 
그녀는 잠시 기억에 잠긴 듯했다. 
 
“이 교회가 저의 첫 교회에요. 여기서 예수님을 처음 만났거든요. 나는 내 발로 교회를 떠나지는 않을 거예요. 절대로 그럴 수는 없어요.” 
 
나는 마음이 울컥했다. 감동의 파장은 컸다. 나는 잠시 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추슬러야 했다. 내가 아는 한, 그녀는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그녀의 청량한 말투는, 먹구름 사이에서 직선으로 쏟아져 내리는 강렬한 빛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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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나 몸이 조금 이상한 것 같아. 아기가 나오려나 봐.” 
 
예정보다 두 달이나 빨리 산통이 찾아왔다. 남편은 아내를 급하게 챙겨, 병원으로 데려갔다. 
 
“괜찮습니다. 너무 무리하신 것 같아요. 스트레스 관리를 잘하셔야 해요. 엄마가 마음이 편해야, 아이도 뱃속에서 마음 편하게 잘 지냅니다.” 
 
의사가 혜연을 안심시키며 말했다. 
 
돌아오는 길에, 혜연은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내가 극성떨어서 미안해. 당신 잠도 못하고 피곤할 텐데….” 
 
남편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혜연의 손을 꼭 붙잡았다. 
 
큰일이 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아기는 뱃속에서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두 달 뒤에 태어날 아기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부부는 행복했다.
 
일주일 뒤, 혜연에게 똑같은 증세가 나타났다. 배가 찢어질 듯 아팠다. 남편은 어제 저녁 야근으로 피곤해서 잠을 자고 있었다. 
 
혜연은 지난번의 경험을 떠올렸다. 남편을 깨우고, 병원에 가는 동안 통증이 가라앉았다. 남편을 깨워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았다. 소파에 몸을 기대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두세 시간만 버티면, 통증이 사라질 것이라고 믿었다. 
 
“여보!” 
 
남편이 부르는 소리에 혜연은 의식을 되찾았다. 눈을 뜨고, 맞이한 것은 하얀색 가운을 입은 의사와 간호사였다. 
 
혜연은 소파에서 의식을 잃고, 기절해버렸다. 잠에서 깬 남편이 의식을 잃은 아내를 병원으로 데려온 것이다. 
 
곧바로 수술이 이어졌다. 
 
혜연은 예정보다 이른 시기에, 아기를 받아들었다. 그러나, 그녀를 기다린 것은 축복의 메시지가 아니었다. 
 
의사는 혜연에게 끔찍한 소식을 전했다. 
 
엄마가 기절해 있는 동안, 아기는 치명적인 사고를 당했다. 산소가 원활히 공급되지 않아, 아기의 뇌가 망가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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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기다려야지. 손으로 음식을 먹으면 안 돼.” 
 
혜연의 남편은 아들에게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들은 가만히 손을 내리고, 아빠의 눈치를 봤다. 아빠가 한 눈을 판 사이에, 손으로 스팸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 
 
“내려놔! 아빠가 몇 번 말했어? 손으로 음식을 집어 들면 안 된다고!” 
 
남편이 큰 목소리로 말하자, 혜연은 깜짝 놀랐다. 
 
“태호야. 아빠 말 들어야지. 엄마랑 있을 때는 잘하잖아. 조금만 기다려. 엄마가 국만 뜨고, 바로 갈게.” 
 
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식사를 마쳤다. 태호가 엄마의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주말 아침 두 시간 동안은, 마음껏 스마트폰을 쓰게 해준다는 규칙을 따른 것이다.  
 
태호가 방으로 들어가자, 혜연은 남편에게 타이르듯 말했다. 
 
“여보, 내가 부탁했잖아. 소리는 지르지 말라고. 태호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깜짝깜짝 놀란다니까.” 
 
남편이 말했다. 
 
“그러게. 알면서도 잘 안되네. 답답해서 그랬어.” 
 
“아니야, 여보. 나도 심하게 말해서 미안해. 당신 같은 아빠 없어. 우리 태호가 특별한 거잖아.”
 
남편은 식탁에서 일어났다. 야구 배트와 글러브를 챙겨서 태호를 불렀다. 태호는 신이 나서, 아빠를 따라나섰다. 
 
혜연은 현관까지 걸어 나와, 남편의 볼과 태호의 이마에 차례로 입을 맞췄다. 
 
“태호랑 조금만 놀다 올 테니까, 당신도 집안일 하지 말고 눈 좀 붙여. 내가 갔다 와서 할 테니까.” 
 
“응, 알았어.” 
 
두 사람을 내보내고, 혜연은 싱크대에 서서 물을 틀었다. 수세미에 거품을 내고, 접시를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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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호야! 너 정말 왜 그래? 제발 좀 가만히 있으라고, 엄마가 몇 번을 말해?” 
 
태호는 공중에 팔을 휘저으며, 엄마 품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태호를 당해낼 수 없었다. 팔을 휘젓고 몸을 비틀어서, 엄마 품에서 빠져나온 태호가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가며 말했다. 
 
“엄마, 미워.” 
 
혜연은 지쳐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엄마가 왜 미워? 엄마가 얼마나 힘들게 노력하는데, 태호는 그것도 몰라?” 
 
“몰라. 엄마 나가. 엄마 내 방에서 나가.” 
 
“태호야. 엄마가 왜 나가. 제발 엄마 말 좀 들어. 엄마 힘들어서 미치겠어.” 
 
“싫어. 엄마 싫어.”
 
혜연은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어깨를 떨면서, 그 자리에서 한참을 울었다. 
 
감정을 추스르고 고개를 들어보니, 태호는 책상 밑에서 새근새근 잠에 들었다. 차분해진 아이를 품에 안아, 침대에 눕혔다. 
 
잠에 든 태호는 여느 아이와 다를 것이 없었다. 태호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혜연은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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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호가 오래 못 버틸 것 같아요.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겠습니다.” 
 
혜연이 피곤해 잠시 눈을 붙인 사이, 태호가 자전거를 타고 아파트 주변을 돌아다녔다. 
 
호기심이 많은 태호는 마음 가는 대로 자전거를 몰았고, 결국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도로 위를 달렸다. 
 
그러다, 거세게 달리는 레커차와 부딪혔다. 무전기로 교통사고 소식을 수신 받은 레커차가 무리한 속도로 갓길을 달리다가, 태호를 치어버린 것이다. 
 
사고가 난지 사흘 만에 태호는 세상을 떠났다. 태호가 세상을 떠나는 날, 혜연의 세상은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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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제를 처방받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 없었어요. 남편도 마찬가지였어요. 주말이면, 남편과 저는 소파에 앉아, 태호의 사진을 바라봤죠.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예요.” 
 
혜연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무기력했다. 기력이 없이 침대에 누워있는데, 현관의 벨이 울렸다. 
 
혜연의 반응이 없자,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교회에서 나왔어요. 잠시 문 좀 열어주실 수 있나요?”라는 말이 들렸다. 
 
혜연은 침대에 누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목소리는 옆집으로 옮겨갔고, 옆집의 옆집으로 옮겨갔다. 목소리는 점차 멀어졌고, 이내 안 들리게 되었다.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틈에 꽂혀있는, 전단지 뭉치를 가지고 들어왔다. 식탁 구석으로 던져놓고, 피곤한 듯 넥타이를 풀었다. 
 
그날 밤, 혜연은 태호의 꿈을 꾸었다. 
 
꿈에서 태호는, 아픈 아이가 아니었다. 하고 싶은 말을 또박또박 말했다. 
 
“엄마, 자살하면 지옥 가요?” 
 
“그게 무슨 소리야, 태호야.” 
 
“내가 엄마를 너무 힘들게 하는 것 같아요. 차라리 죽고 싶어요, 엄마.” 
 
“태호야, 아니야. 그러면 안 돼.” 
 
“미안해요, 엄마. 엄마를 너무 힘들 게 해서….” 
 
“태호야….” 
 
태호는 점점 작아지더니, 어두운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혜연이 태호를 애타게 불렀지만, 태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태호를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가 벽에 부딪혀 메아리로 돌아왔다. 
 
그녀는 잠에서 깼다. 눈물이 베개를 적셨다. 목이 메어,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거실로 걸어 나와 물 한 컵을 들이킨 혜연은 식탁 위에 놓여 있는 교회 전단지를 발견했다. 
 
푸른 초장 위에 세워진 아담한 교회 건물과 아이들이 밝게 웃는 사진이 파스텔톤으로 합성된 전단지였다. 
 
교회 이름이 익숙했다. 잊혀진 기억이 떠올랐다. 태호와 잠시 함께 다녔던 바로 그 교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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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호가 교회를 좋아하네요. 자주 나오시고 그러세요.” 
 
무뚝뚝해 보이는 목사가 다정하게 말하려고 애를 쓰는 것 같았다. 혜연은 어색한 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어린이집에 다닐 수 없는 태호가 혹시라도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싶어 아파트 단지 내의 교회에 잠시 들렀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에게 솜사탕을 나눠주던 교회 봉사자들을 만나고, 호기심이 생긴 터였다. 
 
태호는 교회를 좋아했지만, 혜연은 교회가 편하지 않았다. 새로운 사람들을 한꺼번에 만난다는 것이, 혜연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두어 달 교회를 나가다 그만두었다. 
 
태호는 교회에 가자고 고집을 부렸고, 그때마다 혜연은 태호를 타일렀다. 
 
일요일 아침, 혜연은 늦잠을 자고 일어났다. 태호의 방문을 열었을 때, 태호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남편이 부리나케 옷을 챙겨 입고 태호를 찾으러 나섰다. 혹시나 하고 교회를 찾아갔을 때, 신나게 놀고 있는 태호를 발견했다. 남편이 씻지도 않은 얼굴로 교회에 들어가 태호를 끌어안고 나오는 민망한 일이 여러 번이었다. 
 
교회 전단지를 붙잡고 있던 혜연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전단지에 합성된 이름 모를 소년과 태호의 얼굴이 겹쳤다.
 
“엄마….” 
 
그녀는 그대로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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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교회를 나갔는 때는 모든 것이 낯설기만 했어요. 목사님 설교도 하나도 못 알아들었어요. 남편이 혼자 가면 민망하니까, 함께 가준다고 해서 그나마 다행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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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연은 꾸준히 교회에 나갔다. 목사님의 설교가 조금씩 귀에 들어왔다. 아는 사람도 늘어갔다. 혜연은 용기를 냈다. 태호와 같은 또래 아이들을 가르치는 주일학교 교사가 된 것이다. 
 
교회를 나간 첫해, 여름 수련회 준비로 바빴다. 목사님은 마음이 분주할수록, 더욱 기도로 준비해야 한다면서, 교사들을 기도의 자리로 이끌었다. 여름 수련회를 앞두고, 일주일 동안 새벽 예배에 나오라고 독려했다. 
 
세 번째 날이었다. 그녀가 눈을 감고 기도하는데, 어디선가 다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혜연아, 많이 힘들지?” 
 
그녀는 목이 메어 한 마디도 내뱉지 못했다. 고개를 숙이고 흐느껴 울 뿐이었다. 
 
그날 밤, 혜연은 수면제를 복용하지 않고, 편안히 잠들었다. 
 
주일 학교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보면서, 혜연은 생각했다. 
 
“이 아이들이 태호다. 예수님이 나에게 새로운 자녀를 맡겨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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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호를 잃은 슬픔을 예수님이 위로해주셨어요. 마음이 조금 안정되나 싶었을 때, 엄마가 전화를 했죠.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혜연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아버지의 젊은 날, 가정은 쑥대밭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아내와 아이들을 두들겨 팼다. 술과 도박에 빠져, 가정은 가난에 찌들었다. 
 
혜연의 어머니는 가족을 먹여 살려야 했다. 건어물 노점상을 시작해서, 죽도록 일을 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쉬지 않았다. 어머니가 밖에서 벌어준 돈으로 입에 풀칠을 하며 살았다. 
 
혜연은 말이 없는 아이였다. 항상 혼자였다. 그녀는 사춘기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존재감 없는 아이로 자란 것이다. 대학에 가서도, 흔한 미팅 한 번 하지 않았다. 같은 과 선배였던 남편이, 적극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면 결혼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말을 듣고, 혜연의 마음은 복잡했다. 
 
억지로 병원을 찾았던 혜연은, 막상 의식 없이 누워있는 아버지를 바라보자, 생각이 달라졌다. 
 
아버지 옆에 앉아,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혜연은 다짐했다. 
 
‘제가 아빠를 돌봐줄게요.’ 
 
의사는 ‘아버지가 의식은 깨어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혜연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혜연은 남편에게 양해를 구하고, 병원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아버지를 간호했다. 여름에 쓰러진 아버지는, 그 해 첫눈이 내리고 며칠이 지나, 세상을 떠났다. 
 
혜연은 말했다. 
 
“아빠가 의식을 잃고 쓰러지신 몇 달은 제게 치유의 시간이었어요. 그동안 아빠에게하지 못한 말을 마음껏 했거든요. 혼자 웃고 울고 하면서, 정말 하고 싶은 말을 다 했어요. 눈을 감고 있는 아빠가 친밀하게 느껴질 정도였거든요. 나중에는 복음을 전했어요. 천국에서 아빠를 다시 만나고 싶어서요. 아버지가 복음을 듣고, 주님 품에 안기셨기를 바랐거든요.
 
그리고, 아빠에게 부탁했어요. 천국에서 우리 태호를 만나면, 아빠가 잘 돌봐주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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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연은 혼자 남은 어머니를 돌보고 싶었다. 남편도 흔쾌히 동의했다. 까다로운 시부모를 자기 부모처럼 생각해주는 아내에게 고마웠다. 예상과 달리,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힘들어진 사람은 남편이 아니라, 그녀 자신이었다. 
 
그녀는 말했다. 
 
“저는 엄마와 친밀하지 않아요. 같이 있으면, 너무 불편하거든요. 생각해보니까, 엄마와 함께했던 기억이 전혀 없어요. 
 
그렇게 술 주정을 했던 아빠도 나중에는 친밀하게 느껴지던데, 엄마는 왜 이렇게 어색할까요?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지겠지 했는데, 점점 심각해지는 것 같아요.” 
 
혜연의 어머니는 거친 성격이었다. 술주정하는 남편 대신 생계를 책임지고, 살림을 해야 했으니, 억세게 살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혜연은 기억했다. 
 
“엄마는 아빠처럼, 집안 살림을 부수거나 우리를 때리지는 않았지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죠. 이렇게 말하면 웃기지만, 저는 차라리 맞는 게 나았을 거라는 생각을 해요. 일곱 살 때였을까요? 엄마가 소리를 지르니까, 제가 기절을 했어요. 어린애가 무서웠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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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시대가 좋아졌다고 해도, 스마트폰으로 성경을 찾는 게 지금 말이 됩니까? 북한이 쳐들어와서, 전쟁이라도 나면, 스마트폰 들고 싸울 거예요? 총 들고 싸워야 될 것 아니에요! 영적 전쟁은 그보다 더 치열한 싸움이에요. 성경을 손에서 놓으면  안 된다고요! 예배 오실 때, 성경 좀 가지고 다니세요! 말씀을 의지할 생각을 해야지,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도대체 어떻게 합니까?!” 
 
수요 예배였다. 목사는 또다시 소리를 질렀다. 혜연은 성경을 가지고 왔지만, 그 자리에 앉아 독설을 들어야 했다. 심장이 뛰고, 식은땀이 났다.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혜연의 엄마가 억세게 말했다. 
 
“그딴 교회를 뭣 하러 나가는 겨? 목사라는 사람이, 오늘도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피우더구먼. 나는 도대체 너 속을 모르것어. 왜 나까지 데리고 나가서, 이렇게 화병이 나게 하는 겨? 말 좀 해봐, 이것아!” 
 
그녀는 말없이 운전만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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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신앙이 올바른 건지는 모르겠지만, 상담을 받고 있으니까 솔직히 말하고 싶어요.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겠지만, 혹시라도 목사님이 교회 돈을 횡령하거나, 여자 문제로 교회를 쑥대밭을 만들어도 저는 교회를 떠나지 않을 거예요. 
 
그곳에서 예수님을 만났고, 우리 태호처럼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돌보고 있어요. 세상 어느 교회를 가도, 예수님이 계시겠죠. 하지만, 우리 교회에도 예수님이 계세요.  
 
예수님만 바라보고 싶어요. 예수님처럼 어린 아이들을 사랑하면서 신앙생활 하고 싶어요. 목사님이 서툰 방식으로 성도들을 대하시더라도 이해할 수 있어요. 제가 상처가 많아서 그런 거니까요. 
 
엄마도 여자로 보면, 정말 불쌍하다는 생각을 해요. 지금까지 고생만 하셨잖아요. 저한테 투정을 안 부리면 어디 가서 그러시겠어요. 힘들어도, 이해하고 싶어요. 아빠도 전도했으니까, 엄마도 전도해야죠. 
 
제 꿈이 뭔지 아세요? 
 
천국에서 우리 가족이 다 같이 만나는 거예요.”
 
그녀는 손가락을 구부려가며, 셈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태호…. 아빠, 엄마. 남편, 그리고 나…. 천국에서 다 함께 만나는 꿈을 꿔요.”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흐느꼈다. 그리고, 부끄러운 듯 내게 물었다. 
 
“제가 이상하게 믿죠? 상처가 많아서 그런 가봐요.” 
 
나는 눈물을 머금은 채로, 고개를 살며시 저었다. 
 
내 진심이 그녀에게 전해지기 바랐다. 
 
그녀는 상처 입은 치유자다.

당신은 좋은 부모인가요

당신은
좋은 부모인가요?
 
네, 물론이죠.
나는 좋은 부모입니다.
 
두 번 자녀를 키워도
이렇게 못 키워요.
 
우리 애들 부족한 거 없어요.
나는 얼마나 어렵게 컸는데.
 
내가 해줄 말이 별로 없네요.
그럼, 안녕히.
 
당신은요?
당신은 좋은 부모인가요.
 
아니오.
나는 좋은 부모가 아니에요.
 
애들한테 너무 미안해요.
못 해준 게 너무 많아요.
 
나 같은 부모 만나서
우리 애들 고생 많이 했어요.
 
그렇군요.
대화 좀 할까요, 우리.
 
당신은 좋은 부모일지도 몰라요.
한 가지만 조심한다면.
 
그건 뭔가요?
죄책감입니다.
 
죄책감이 자녀를
망칠 수 있어요.
 
자녀 앞에서
당당한 사람 불안해 보여요.
 
자신감 없는 게
오히려 다행이에요.
 
당당한 부모를
만난 적이 있어요.
 
당당한 부모는   
주눅 든 자녀가 있어요.
 
나는 최선 다한다.
넌 이게 뭐냐.
 
왜 노력 안 하냐.
결과가 이게 뭐냐.
 
자녀는 고개만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못해요.
 
그런데, 참 이상하죠.
정반대의 경우도 있어요.
 
주눅 든 부모 옆에는
당당한 자녀가 있어요.
 
내가 이렇게 된 게
다 부모 때문이다.
 
내 인생 망가졌다.
내 멋대로 살 거다.
 
터무니없는 말을 하고
그 말을 믿고 살아요.
 
부모가 죄책감을 느끼는 사이
자녀는 책임감에서 벗어난 거죠.
 
부모가 당당하면
자녀가 주눅 들고
 
부모가 주눅 들면
자녀가 당당하니
 
어떻게 할까요.
답답하죠, 정말.
 
내 이야기 잠시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내 부모님은 나에게
늘 미안하다고 말해요.
 
아니라고 괜찮다고 말해도
소용없어요.
 
많이 우세요.
난 속상하죠.
 
나는 진심이에요.
정말 감사해요.
 
내 부모님은 나에게
예수님을 전해줬어요.
 
모든 것을 받은 거죠.
예수님을 선물 받았으니까.
 
아버지가 시골에서 목회할 때
성도 한 명 없어요.
 
그때는 몰랐죠.
정말로 몰랐죠.
 
내게 복음이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처받은 내가 자녀를
잘 키우고 있을까요.
 
정말 모르겠어요.
확신이 없어요.
 
언젠가 청년이 된 내 아들과
대화하는 장면을 상상해요.
 
아빠, 나 아빠한테
하고 싶은 말 있어.
  
아빠가 나 사랑하고
아빠가 최선을 다했다는 거 알아.
 
하지만, 아빠가 했던 말과 행동이 내게
상처 될 때도 있었어.
 
솔직히 말하면,
나 아빠처럼 살고 싶지 않아.
 
나 이해해줄 수 있지,
아빠?
 
하지만, 나….
예수님처럼 살고 싶어.
 
그래, 아들.
아빠는 괜찮아.
 
아빠처럼 살지 말고
예수님처럼 살아다오.
 
속상해야 하는데.
서운해야 하는데.
 
아빠는 왜 이렇게
눈물이 나고 행복할까.
 
그날을 꿈꾸면서 나는
자녀에게 꾸준히 예수님을 전해요.
 
내 상처가 혹시라도
자녀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무섭고 두려울 때마다
예수님께 말해요.
 
나 대신 내 자녀들
잘 키워주세요.
 
당신과 함께 하고 싶어요.
약속해요, 우리.
 
죄책감이 찾아올 때마다
우리 자녀에게
예수님의 따듯한 사랑 전해주기로.

실패한 상담자

“내 이야기를 들으면 상처받으실 수도 있어요. 사람들이 내게 그랬거든요. 네 이야기를 들으면, 나까지 이상해지는 것 같다고.” 
 
주연은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그녀가 처음 내뱉은 말의 의미를 굳이 묻지 않았다. 
 
주연은 한참을 기다리다, 다시 말했다. 
 
“괜찮으시겠어요? 내 말을 들으면, 목사님도 상처받을 수 있어요.”
 
나는 말했다.  
 
“나는 이미 상처받았어요. 흉터 하나 더 생긴다고 무슨 일 있겠어요. 제 걱정 마시고, 편안하게 이야기하세요.” 
 
주연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에요. 아마 혼자 계실 때 알게 되실 거예요. 가끔 저는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게 보여요. 목사님도 저와 대화를 시작하시면,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영향을 받으실 거예요.” 
 
그 순간 내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얼굴 근육이 마비가 된 듯했다. 표정 관리를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섬뜩했다. 
 
주연은 알 수 없는 미소를 띠어 보이며, 내게 동의를 구했다. 
 
“정말로 괜찮으시겠어요?”
 
나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제 걱정은 마세요. 편하게 이야기하시면 돼요.” 
 
주연은 차분한 말투로 물었다. 
 
“목사님은 귀신을 본 적 있으세요?” 
 
주연은 내가 대답할 기회를 주지 않고 혼잣말로 속삭였다.   
 
“나는 귀신을 본 적 있어요.” 
 

 
새벽 예배를 마치고, 주연은 싱글벙글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을 챙겨 학교에 보내고, 집안을 대충 치우고 교회에 갈 작정이었다. 시계가 9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교회 성경공부 모임에 늦고 싶지 않았다. 
 
주연은 부리나케 화장실에 들어갔다. 샤워기에서 흘러나오는 물로 몸을 적시고, 손바닥에 샴푸를 담았다.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감는데, 주연의 등골이 오싹했다. 
 
누군가 위에서 그녀를 지켜보는 것 같았다. 주연은 비명을 질렀다. 
 
젖은 머리카락에 샴푸 거품이 뒤엉킨 채 화장실 밖으로 뛰쳐나왔다. 거실에서 신문을 보고 있던 남편에게 달려가 매달렸다. 
 
“여보, 화장실에 뭔가 있어. 시커먼 게 나를 보고 있었다고.” 
 
주연의 머리카락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이 남편의 손에 들린 신문을 적셨다. 주연이 말하는 동안에도, 거품 낀 물방울이 남편의 옷과 얼굴에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남편은 짜증스럽게 말했다.
 
“또 시작이네. 당신이 애야? 화장실에 뭐가 있다고 그래. 제발 좀 그만해.” 
 
“여보, 그게 아니고, 정말 뭐가 있다니까. 당신이 한 번 가봐. 응? 제발 부탁이야.” 
 
남편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 문을 열었다. 주연은 거실 귀퉁이에 앉아 손과 발을 벌벌 떨었다. 남편은 의도적으로 화장실 불을 몇 번이나 껐다 켜면서, 주연을 안심시켰다. 
 
“아무것도 없지?” 
 
남편의 물음에, 주연은 고개를 끄떡였다. 
 
남편은 주연에게 다가와 진지하게 말했다. 
 
“여보, 당신 정말 무슨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정신과 치료를 받아보면 어때?” 
 
주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난번에도 가봤잖아. 그냥 약만 주고, 별다른 도움도 못 받잖아. 나 약 먹기 싫어. 약 기운에 하루 종일 누워서 지낸단 말이야.” 
 
“아니, 그럼 뭐 어떻게 하려고 그래. 당신, 애들은 생각 안 해?” 
 
“내가 애들 생각 안 한 게 뭐 있어?” 
 
“당신이 지금 정상이야? 애 둘만 싸질러 낳고, 엄마 구실을 못하잖아.” 
 
“뭐? 당신 지금 말 다 했어?” 
 
“내가 무슨 틀린 말 했어? 당신 올해 들어 집에서 몇 번이나 잤어. 하루가 멀다 하고 교회 가잖아. 왜 멀쩡한 집을 놔두고 교회에서 잠을 자? 애들 뒤치다꺼리는 누가 하라고?”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래? 나도 지금 미칠 것 같아.” 
 
“그러니까, 정신과 치료를 꾸준히 받으라고.”
 
“내가 그랬잖아. 약 먹기 싫다고. 나 기도해서 고칠 거야.”  
 
남편은 어이가 없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만하자. 더 말하면 나 미칠 것 같아.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남편은 차가운 말을 내뱉고, 베란다로 나갔다.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주연은 남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주연은 남편에게 서운하면서도, 미안한 감정을 느꼈다. 주연을 괴롭히는 문제가 담배 연기처럼 허공에서 사라지기를 바랐다. 
 
서러운 감정이 주연을 덮쳤다. 소파에 엎드려 하염없이 울었다. 수건으로 둘둘만 머리카락 끝자락에서 거품이 뒤섞인 물방울이 거실 바닥에 뚝뚝 떨어져 내렸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이었다. 
 
남편은 24시간 하루 근무, 24시간 하루 휴식의 일정을 반복했다. 
 
남편이 집에 없는 날이면, 주연은 혼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문을 이중으로 잠가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주연은 두려움을 이길 수 없었다. 택시를 잡아타고 엄마 집으로 도망쳤다. 
 
주연은 엄마와 같은 방에서 함께 자기를 원했다. 
 
“오늘 외할머니 오셨으니까 불편하더라도 외할머니하고 같이 자. 엄마가 오늘은 혼자 자고 싶어.” 
 
주연은 가만히 고개를 끄떡였다. 
 
밤새도록 잠이 오지 않았다. 주연은 벽에 기대 우두커니 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인기척에 놀라 잠에서 깬 할머니가 말했다. 
 
“으미, 깜짝이야. 너 시방 뭐 하는 거여. 누워야 잠이 오제, 어찌 앉아서 잠을 잔다야. 빨랑 누워, 이것아.” 
 
“신경 쓰지 말고 자, 할머니. 나는 잠이 안 와. 밤마다 이래.” 
 
“별 희한한 일 다 보겠구먼. 잠을 안 자면 사람이 어떻게 산데….” 
 
할머니는 밤새 주연과 대화를 나누었다. 동이 틀 무렵 할머니는 피곤했는지, 코를 골며 잠에 들었다. 
 
주연은 주섬주섬 이불을 정리하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남편이 오기 전에 집에 도착해, 아침 식사를 준비할 작정이었다. 
 
할머니는 엄마에게 주연의 상태를 물었다. 
 
“걔가 언제부터 그러데? 밤새 잠을 못 자면 사람이 어떻게 산데?” 
 
엄마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다 큰 애가 뭐가 무섭다고 그러는지 모르겠어. 혼자 잠을 못 자. 안 그러던 애가 어느 날부터 갑자기 그래.” 
 
할머니는 진지하게 말했다. 
 
“애가 눈빛이 영 이상해. 점을 한 번 보러 가야 쓰것어. 애 눈을 보는데 섬뜩하더라니까.”
 
할머니는 주연을 챙겨, 용하다는 무당을 찾아갔다. 
 
무당은 주연의 눈빛을 살피더니, 뭐에 씌인 것 같다며 크게 굿을 한 판 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연은 내심 걱정이었다. 굿을 하는데, 당장 수백만 원이 필요했다. 주연은 망설였다. 남편에게 굿을 하자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주연은 쓸데없는 짓이라며,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터벅터벅 집으로 향하는 길에, 도로 옆 교회의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다. 
 
십자가를 올려다보는 순간,  햇빛으로 눈이 부셨다. 인상을 찌푸렸지만, 주연의 마음은 이상하게 편했다.
 
‘굿은 무슨 굿이야. 차라리 교회를 나가보자.’ 
 

 
“사모님 죄송한데, 어려운 부탁을 드려도 될까요?” 
 
사모는 멈칫하며 주연의 말을 기다렸다. 
 
“사실 제가 요즘 잠을 잘 못 자요. 혼자 방에 누우면, 천장에서 마주하는 얼굴이 있어요. 눈을 감으면, 천장에서 그 얼굴 뚝 떨어져 나를 덮칠 것 같거든요. 너무 무서워요.” 
 
주연은 슬픈 감정에 사로잡혔다. 눈물이 얼굴을 뒤덮었다. 
 
“마귀가 역사하네요. 기도하면 나아질 거예요. 제가 뭘 도와드리면 되죠?” 
 
사모가 물었다. 
 
“교회에서 잘 수 있게 해주시겠어요? 교회에 오면, 마음 편하게 잠을 잘 수 있거든요. 불편하게 하지는 않을 게요.” 
 
사모는 그게 뭐 어려운 일이겠냐며, 주연의 등을 다독이며 말했다. 
 
“그럼요, 언제든 오셔서 주무세요. 저랑 같이 기도도 하고, 성경도 읽고 하면 되죠. 저도 가끔 교회에서 자고 그래요.”
 
주연은 사모에게 거듭 감사하다 말했다. 사모는 주연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주연은 밤낮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집과 거리, 어느 곳 하나 예외가 없었다. 
 
두려움이 엄습하지 않는 유일한 장소는 교회뿐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아무도 없는 교회에 혼자 가는 건 무섭지 않으세요?” 
 
“아, 무섭지 않아요. 어두운 예배실에 들어서면 잠깐 움찔은 해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편해져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교회에 가면, 예수님이 날 지켜주시는 것 같아요. 건물 위층에 사모님도 계시고요. 그 위에서 사시거든요.” 
 
“두려움을 없애주는 사람이 예수님인가요, 사모님인가요?” 
 
“물론, 예수님이죠. 하지만, 사모님도 필요해요. 솔직히 말하면, 사모님이 성품이 따뜻하신 분은 아니에요. 그래도, 당분간은 사모님이 필요해요.” 
 
어려운 개척교회였다. 사모는 주연의 부탁으로 예배실 옆에 마련된 작은 공간에서 주연과 함께 잤다.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주연이 교회에서 잠을 자도록 허락해 준 것으로만 알았던 것이다. 
 
사모는 밤마다 사택에서 내려와 주연과 함께 지냈다. 사모 입장에서도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사모의 불편한 감정이 주연에게도 전해졌다. 그러나, 주연은 불편한 감정을 감수하고라도 사모 곁에 있고 싶었다.
 
주연은 물에 빠진 심정이었다. 구명조끼를 던져주는 사람의 표정을 살필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관계의 유통기한이 생각보다 짧다는 것을 주연은 분명히 알았다. 사모는 주연이 의존한 세 번째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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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과 사모가 함께 성경을 읽는 자리에, 목사가 들어와 한 마디를 꺼냈다. 
 
“자꾸 대출이자 때문에 은행에서 전화가 오네.”
 
사모는 주연을 바라보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우리 교회 팔리면, 이제 주연 자매는 어떻게 해? 기도 많이 해야겠어. 우리야 어디 가서 또 목회하면 되지만, 주연 자매는 우리 없으면 어떻게 할 거야?” 
 
주연은 당황했다. 뭐라 대꾸할 말이 없었다. 어색한 웃음만 지어 보일 뿐이었다. 
 
교회가 어려울 때마다, 주연이 큰마음을 먹고 헌금을 한 것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감사한 마음에 헌금을 한 것을 두고, 사모가 그런 태도를 보인 것에 주연은 실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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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나빴어요. 무시를 당한 것 같았거든요. 마음 같아서는 ‘나를 뭘로 보고, 그런 말을 하는 거야?’라고 대꾸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죠. 
 
자존심이 상해서, 두 번 다시는 사모님을 의지하지 않고 싶다고 결심했어요.”
 

 
사모가 내뱉은 말이 떠오를 때마다, 주연은 짜증 섞인 혼잣말을 내뱉었다. 
 
“내가 뭐, 지 아니면 안 될 줄 알고?”
 
어둑어둑 땅거미가 내려앉을 무렵, 주연은 마음이 급해졌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를 정도로 불안했다. 
 
밤새도록 혼자 있을 것을 생각하니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마에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괴로웠다. 
 
저녁을 대충 차려놓고 남편을 기다렸다. 학원에서 아이들이 먼저 돌아오고, 남편이 뒤늦게 들어왔다. 
 
남편이 들어오자마자, 주연은 바통을 넘겨주듯 말했다. 
 
“여보, 미안해. 나 오늘 상태가 너무 안 좋아. 애들하고 저녁 먹고 뒷정리 좀 부탁해.” 
 
남편은 한심한 듯 말했다. 
 
“당신 지금 뭐 하는 거야? 그 사모가 뭐라고 그렇게 매달려. 그러다, 또 실망하고 뭐하고 비참해진다며? 제발 작작 좀 해.” 
 
주연은 남편의 말에 대꾸할  여유조차 없었다. 집에서 교회까지 쉬지 않고 뛰었다. 
 
교회에 도착한 주연은 예배실 문을 열었다. 예배실은 조용했다. 어두운 예배실 안에서 주연은 안정을 되찾았다. 
 
불안에 떨면서 감정 소모가 심한 탓인지, 주연은 엎드린 채로 기도하다 잠에 들었다.
 
주연은 팔이 잘려나가는 꿈을 꾸었다.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꿈에서 본 것처럼 팔에 감각이 없었다. 팔을 베고 잔 탓에 피가 통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주위를 살폈다. 예배실 뒤편에 작은 할로겐 조명이 켜진 채였다. 
 
사모가 들어온 것이다. 
 
주연은 교회 뒤편 마련된 작은방을 살폈다. 사모가 피곤했는지 미리 이불을 펴고 잠든 후였다. 
 
주연은 잠시 멈칫했다. 
 
‘우리 없으면, 이제 주연 자매 어떻게 해?’ 
 
며칠 전 사모가 내뱉은 말이 생각났다. 
 
그러나, 차마 집으로 돌아갈 용기는 없었다. 주연은 가만히 들어가 사모 옆자리에 이불을 펴고 누웠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서글픈 감정이 밀려왔다. 주연은 사모 옆에 자리를 폈지만, 사모를 등지고 뒤돌아 누워 하염없이 울었다. 
 

 
“부모님은 내가 어릴 때, 자주 심부름을 시켰어요. 밤에 슈퍼를 가려면 대나무숲을 지나야 했거든요. 가로등 하나 없는 길을 지나가는데 너무 무서웠어요. 
 
항상 누가 쫓아오는 느낌이 들어서, 죽도록 뛰었거든요. 가끔 엄마가 사 오라고 했던 물건을 떨어뜨리고 그냥 집으로 뛰어온 적이 있어요. 
 
그러면, 엄마가 엄청나게 화를 내면서, 다시 가서 가져오라고 그러죠. 저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만큼 무서웠거든요.” 
 

 
나는 주연의 공포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알고 싶었다. 그녀가 살아온 인생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주연은 적극적이었다. 공포심을 물리치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내게 전해졌다. 그녀는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기억들을 순서 없이 말했다. 
 

 
“증조할머니가 무당이었어요. 할머니가 굿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죠. 어머니는 할머니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 같아요. 자녀들을 사랑할 줄 모르는 분이셨어요.” 
 
주연은 그녀의 어머니가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상한 미신 같은 것을 잘 믿는 사람이라고도 했다. 
 
그녀가 20살 남짓 되던 해에, 고기를 먹다가 급하게 체한 적이 있었다. 소화제를 먹어도 소용이 없어, 시름시름 앓았다. 
 
주연의 어머니는 낯선 남자에게 주연을 데려갔다. 
 
낯선 남자 앞에서, 주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어머니가 모든 상황을 설명했다. 
 
남자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옆에 마련된 세면기에 손을 씻었다. 
 
남자는 주연에게 다가와 아무런 설명도 없이 입을 벌렸다. 주연은 당황스러웠다. 남자는 사정없이 솥뚜껑 만한 손을 주연의 입속에 밀어 넣었다. 
 
남자의 억센 손은 목구멍을 타고 가슴 안으로 들어갔다. 주연은 외마디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헛구역질이 나서 웩웩 소리를 지르는 찰나에, 남자는 주연의 목구멍에서 손을 빼냈다. 
 
남자의 손은 주연의 타액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남자가 손을 펴자 그 안에는 작은 고기 조각이 들려 있었다. 
 
남자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다시 세면기로 가서 손을 씻었다. 
 
어머니는 남자에게 돈을 지불하고 돌아서며, 주연에게 말했다. 
 
“속이 뻥 뚫려서 후련하지. 집에 가자.”
 

 
나는 충격에 빠졌다. 태어나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였다. 내 귀가 의심스러웠다. 
 
주연이 말하는 동안, 무심결에 그 장면을 상상했는데, 그 자체로 역겨웠다. 헛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나는 내담자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해버렸다. 
 
“사실인가요?” 
 
주연은 내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 
 
“믿기 힘드실 텐데, 정말이에요. 가끔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은 진짜였어요. 제가 고기를 먹으면 자주 체하거든요. 그 후로도 그 사람을 몇 번 찾아갔어요.” 
 
주연의 말을 억지로 믿었다. 그러나, 내 진심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듯했다. 나는 그날 밤 악몽을 꾸었고, 섬뜩한 남자에게 내 입을 벌려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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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의 근원을 찾으려는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더욱 혼란스러웠다. 사방이 막혀 있는 듯 답답했다. 
 
한 가지 주목할 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느끼는 감정이었다.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나는 주연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들이 무서웠다.  
 
첫 세션에서 주연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사람들이 내게 그랬거든요. 너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까지 이상해지는 것 같다고.”
 
주연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사람들 역시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나는 내 감정을 주연에게 효과적으로 설명해야 했다. 
 
“당신 이야기가 너무 기괴하고 무섭다.”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방식은 옳지 않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첫 발을 내디뎠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니까, 내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생각나요. 
 
할머니가 사랑방에 손주들을 모아놓고, 호롱 불을 하나 켜셨거든요. 호롱 불이 불규칙적으로 흔들리니까, 그림자가 춤을 추는 것 같더라고요. 
 
할머니는 군밤을 까주시면서, 할머니가 어려서 시골에서 겪었던 기괴하고 무서운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할머니가 어린 시절에 살았던 시골 마을에 들어가려면 고개를 하나 넘어야 했데요. 자정에 고개를 넘을 때는, 절대로 혼자가면 안된다고 했어요. 
 
자정이 지나면, 푸른 불빛이 사람을 홀려서 깊은 숲속으로 끌어들인다고 했어요.
 
마을 어른 여럿이 푸른 불빛 때문에 죽어나갔다고 했죠. 
 
긴장이 최고조에 다다랐을 때, 할머니는 “워!”라고 소리를 질렀죠. 손주들 중에 내가 제일 컸는데, 나마저도 울음을 터뜨릴 뻔했어요. 
 
나는 그날 밤, 이불에 오줌을 쌌어요. 잠에서 깼지만, 혼자 화장실에 갈 용기가 없었거든요.”
 
 주연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묻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한 걸음 더 내디뎠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처음부터 두려운 감정을 가진 것 같아요. 처음에는 그 이유를 몰랐지만,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아요. 
 
당신은 직접 말로 표현한 적 없지만, 지속적으로 내게 똑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어요. 
 
‘자, 잘 들어보세요, 지금부터 내가 무서운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우리는 무서움의 근원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고, 당신은 계속 내게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요. 
 
내가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당신과 동일한 두려움을 느낄 수 있어야 당신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건 진실이 아니에요. 당신을 두려움의 소용돌이에서 구해주려면, 나는 소용돌이 밖에 서 있어야 해요. 그래야, 당신에게 손을 내밀어 줄 수 있으니까요.
 
나는 이 지점에서 실패했어요. 이미 나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어요. 당신의 이야기가 섬뜩하고 무서웠거든요. 
 
당신 말대로 나는 당신의 이야기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어요. 
 
내 일상에서 악몽을 몇 차례 꾼 적이 있거든요. 악몽은 내게 드문 일이에요. 당신과의 상담 전후에 있었던 일이에요. 
 
당신이 나를 완벽히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조용히 상담을 받던 당신이 일어서는 거죠. 그리고, 상담실 안에 시커먼 것이 있다고 말하며, 혼비백산해서 상담실 밖으로 도망을 쳐버리면 돼요. 그러면, 나는 완전히 무너질 거예요.
 
내게는 그것이, 호롱불 아래서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던 할머니의 “워!”라는 메시지겠죠.” 
 
주연은 가만히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무언가를 내려놓은 듯 안정적인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누군가 한 사람은 내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주기를 바랐어요. 
 
사람들은 다 똑같아요. 내가 무섭다고 말하면, 다들 무시해요. 다 큰 어른이 무섭다고 말하니, 한심하다고 생각하죠. 
 
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애써 무섭지 않은 척 해요. 두려운 감정을 부정하는 거죠. 소리 없이 내 곁을 떠나요.
 
이해해요. 사람들이 내게 거리를 두면, 내가 느끼는 두려움에서 멀어질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나는 나를 데리고 살아야 해요. 내가 얼마나 무서운지 아는 사람들은 내 곁에 남아 있지 않아요.  
 
내 이야기를 듣고, 솔직히 무섭다고 말해준 사람이, 목사님이 처음이에요.” 
 
그녀는 고개를 떨구고 울기 시작했다. 작은 목소리로 같은 말을 반복했다. 
 
“정말로, 무서웠어요.” 
 
그녀는 울음소리는 점점 커지고 격해졌다. 어린아이처럼 엉엉 소리를 내며 우는 동안, 나는 기다렸다. 간간이 손으로 내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가면서 조용히 창밖을 응시했다. 
 

 
그녀의 감정이 차분해지고, 다시 대화가 가능해진 상황에서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방금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주연의 차분했던 감정이 다시 울컥했다. 눈물이 쏟아져 내릴까 걱정스러운 듯, 손바닥을 가슴에 올려놓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주연은 차분히 말했다. 
 
“제 마음을 공감해주신 것 같아요. 제가 확대해석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주신 것 같아요. 그 순간,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들어왔어요.” 
 
주연의 말을 한참 동안 듣고 나서, 내 생각을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당신과의 상담에서 실패했어요. 나는 당신 안의 두려움의 근원을 찾아내고 싶었어요. 두려움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싶었고요. 
 
두려움의 소용돌이 빠진 당신을 구해주려다, 나까지 소용돌이에 빠져 버린 꼴이죠. 마음이 급했나 봐요. 유능한 상담자라면, 당신을 제대로 도와줄 수 있었을 거예요. 당신에게 미안해요, 정말로.”
 
주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목사님은 실패하지 않았어요. 소용돌이라고 말씀하시니까, 언뜻 떠오른 생각이 있어요. 
 
솔직히 그동안은 극단적인 생각을 했거든요. 나 같은 인생 살아서 뭐해. 죽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줬다는 사실에 문득 호기심이 생겼어요.
 
예수님은 날 어떻게 생각하실까? 
 
그동안 나는 감히 예수님 앞에 설 수 없었거든요. 나를 비난하시는 것 같아서요. 
 
제가 무서운 것을 본다는 것 자체가 믿음이 없어서 그런 거잖아요. 
 
예수님 앞에 떳떳이 설 수가 없었어요. 밤마다 교회에서 회개 기도를 했어요. 이런 나를 용서해달라고. 
 
목사님께 조심스럽게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요. 
 
예수님도 나를 비난하지 않으시겠죠? 얼마나 무섭겠냐고 공감해주시겠죠? 
 
나를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원해서 이런 게 아니거든요.” 
 
주연은 또다시 얼굴을 감싸 쥐고 울기 시작했다. 
 
나도 함께 울었다. 
 
감정의 소용돌이에 함께 빨려 들어가면서, 절박한 심정으로 예수님을 불렀다. 예수님이 물 위로 걸어오셔서 우리 둘을 살려주시기를 바랐다. 
 

 
급류에 영향받지 않는 존재는 오직 예수님뿐이다. 
 
예수님은 그녀를 찾아가셨고, 그녀를 건져주셨다. 나는 그다음으로 건져졌고, 간신히 내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녀가 상담실 안에서 머무는 동안, 나는 내가 할 일을 했다. 
 
예수님과의 왜곡된 관계를 복음적 관계로 전환하기 위한 몇 가지 작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사모를 극단적으로 의존하는 관계를 정리하고, 남편에게 돌아가 온전한 가정을 이루기 위한 방향을 제시했다. 
 
장기적인 정신과 치료 역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하며, 시간과 비용이 허락하는 한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을 했다. 
 
정신과에서 처방해준 약을 먹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약을 먹는 것이 신앙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며, 적절한 범위 안에서 유익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그녀에게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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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떠나보낸 지금에도, 나는 여전히 그녀가 느끼는 두려움의 출처를 모른다. 
 
그녀는 여전히 두려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을까. 아니면, 조금이나마 평안을 누리고 있을까. 아니면, 견딜 수 없는 두려움으로 또 다른 사람을 찾아내서 매달리고 애원하고 있을까. 
 
평온한 일상에서 문득 그녀가 떠오르면, 죄책감을 느낀다. 
 
나 역시 그녀를 밀어낸 것은 아닌가. 
 
어쩌면, 그녀가 말한 대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를 버린 사람들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잔잔한 죄책감은 바람을 타고 거센 파도가 되어 내 가슴을 퍽퍽 치고 쓸어내렸다. 
 
나는 잠시 상담을 멈추고 나 자신을 돌봐야 했다. 
 
조용한 곳에 내 몸을 밀어 넣고,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죄책감을 떨쳐내고 싶었다. 
 
바쁜 일정 중에 시간을 내는 것이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옳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내 안의 죄책감처럼, 그녀 안의 두려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절망하지 않는다. 
 
그녀 안의 두려움은, 내 안의 죄책감처럼 그리스도에게로 달려가는 강렬한 욕망이 될 것이다. 
 
두려움은 절대로 그녀의 인생을 집어삼킬 수 없을 것이다. 두려울수록 그리스도가 더욱 절실할 것이다. 
 
나는 물러났어도, 그리스도는 절대로 물러나지 않으실 것이다. 그녀 안의 그리스도가 그녀와 영원토록 함께하실 것이다.

복음이 당신을 치유합니다

온갖 상담 이론은
과정을 탐구합니다.
 
결론은 저마다 다릅니다.
궁극의 해답은 없습니다.
 
너도 옳고 나도 옳고
자기한테 맞는 거 갖다 쓰면 된다.
 
상담 이론의 홍수 시대입니다.
물이 많아도 마실 물이 없지요.
 
말씀을 다루는 사람은
답을 알고 있습니다.
 
답을 아니까
과정에서 게을러집니다.
 
성경에 이렇게 쓰여 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냐.
 
풀이 과정을 아는 사람에게는
답이 필요합니다.
 
풀이 과정 한바닥 쓰고
답이 400개가 넘으면 곤란하지요.
 
답을 아는 사람에게는
풀이 과정이 필요합니다.
 
문제가 한바닥인데 풀이 과정 한 줄 없이
답은 3번이다.
 
왜 답이 3번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답은 맞았는데 이상하게 자신이 없습니다.
 
나 우울해요.
나 불안해요.
 
약 드세요.
좋게 생각하세요.
시간 지나면 괜찮아요.
 
나 우울해요.
나 불안해요.
 
기도하세요?
말씀보세요?
그러니까 그렇죠.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나는 답답합니다.
 
너는 뭐 특별하냐.
아니요.
 
내가 특별하진 않습니다.
복음이 특별합니다.
 
너무 익숙해서 지루해진 복음을
새로운 언어로 말하고 싶습니다.
 
나는 여전히 실험 중입니다.
바로 나 자신에게.
 
복음은 과연
나를 치유하는가.
 
나는 오랜 시간 다양한 상담 이론을
내 삶에 적용했습니다.
 
다양한 이론을 내 삶에 적용하면서
나는 깨달았습니다.
 
복음이야말로 세상 모든 이론보다
뛰어난 처방전이란 사실을.
 
혼자만 알고 있을 수 없지요.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복음이 당신을 치유합니다.
복음이 궁극의 해답입니다.
 
아, 편협하다.
아, 배타적이다.
 
이 말을 하는 사람은
둘 중 하나겠지요.
 
복음을 알지 못하거나
복음에 관심이 없거나.
 
당신의 비판을
나는 반박할 수 있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심리학자입니다.
 
오직 말씀이지.
무슨 상담 이론이냐.
 
당신의 비판을
나는 반박할 수 있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신학자입니다.
 
상담하는 목사.
내게 어울리는 말이 아닙니다.
 
나는 복음의 사람이고 싶습니다.
내 삶을 마치는 그날까지.
 
당신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복음만이 당신을 치유하기 때문입니다.

툭하면 이혼하자는 남편

“여자들한테 벗어나고 싶어요. 엄마나 아내나 다 똑같아요.  바라는 것이 뭐가 그리 많은지….” 
 
L은 서른여덟, 결혼 9년 차, 일곱 살 아들의 아빠다. 그는 억지로 상담실에 끌려 온 사람 같았다. 침묵하는 그를 대신해서 아내가 상담실에 온 이유를 말했다. 
 
“남편은 이혼하자는 말을 밥 먹듯이 해요. 저는 그럴 때마다 왜 그런 소리를 하냐며, 진짜 이혼을 안 할 거라면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하죠. 그런데 정말 이혼하자고 하는 말이래요. 처음에는 믿지 않았는데 자꾸 듣다보니까 이 남자가 진심으로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는 이혼하자는 말을 들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어떤 문제로 싸우든지 제가 먼저 사과해요. 남편이 이혼하자는 말을 하면, 그럴 수는 없다고 애원하게 되거든요. 이혼은 안 돼요. 애들한테 엄마가 없으면 안 되잖아요.” 
 
남편은 계속 침묵했다. 아내는 멈추지 않았다.  
 
“저는 사실 사랑받고 싶었어요. 결혼하고 나서 계속 똑같은 말을 했죠. ‘나 좀 사랑해줘라. 왜 이렇게 무시하냐? 내가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이다. 그냥 사랑해주면 된다.’ 그런데 남편은 눈 하나 깜짝 안 해요. 다 제 잘못이라고 하죠. 지금도 보세요. 아무 말도 하지 않잖아요.” 
 
긴 침묵을 지키던 남편이 입을 열었다.
 
“노력을 할 시기는 지난 것 같아요. 몇 년 동안 서로 최선을 다했죠. 아내는 전혀 이해를 못하더군요. 부질없는 노력을 한 거죠. 그래서 어느 순간 생각했어요. ‘이 여자는 만족을 모르네. 그만하자.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아이 양육권이 가장 고민이에요. 제가 키울 자신은 없고, 이 여자에게 맡길 수는 없고. 그 문제만 해결되면 이 여자랑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요. 이혼하자는 말은 진심이에요. 다 끝났어요. 더 이상 아내에게 미련이 없어요.” 
 
남편에게 다른 여자는 없었다. 그는 단지 여자들에게 벗어나고 싶다고 말했다. 
 
“제 어머니와 하는 짓이 똑같아요. 제발 그러지 말라고. 나 좀 괴롭히지 말라고 말했거든요. 여자들은 왜 그럴까요?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건가 봐요. 그런데 인생이 어떻게 자기 뜻대로만 되겠어요. 그렇게 안 되는 게 정상이에요. 
 
남편을 사랑해서 결혼한 것인지 노예처럼 부려먹으려고 한 것인지 모르겠어요. ‘장모님에게 언제 전화해라, 전화해서 이런 말을 해라’까지 시켜요. 제가 전화를 걸고 싶어야 걸죠. 그걸 억지로 시키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당신이 하도 전화를 안 하니까 부탁한 거잖아.” 
“내가 알아서 한다고. 하고 싶지 않으니까. 안 하는 거잖아.”
“우리 엄마가 당신한테 뭘 잘못했어? 왜 전화를 안 하는데?” 
“당신이 시키니까 싫어서. 가만 내버려둬 봐. 내가 알아서 한다고.” 
“내가 한 달 넘게 기다려봤잖아. 당신은 내가 말 안하면 안 하는 사람이라고.” 
“마음대로 생각해. 그런다고 뭐가 바뀌겠어. 내가 말하잖아. 이렇게 왜 사냐고. 다 끝났으니까 그만하자.” 
“거 봐. 또 자기가 불리하면 이혼하지. 나는 이혼 안 해.”
“이렇게 살 바에 이혼하는 게 낫지 않냐? 왜 같이 살아? 서로 피곤하게!” 
 
그의 부모님은 결혼한 지 10년 만에 아들을 낳았다. 아들을 키우는 어머니의 정성은 대단했다. 아들이 먹는 음식, 읽는 책 등 모든 것을 챙겼다. 
 
어느 날, 그가 친구에게 빌린 만화책을 보고 있는데 어머니가 확 낚아챘다. 그리고 한 장 한 장 넘겨보면서 내용을 확인했다. 안전하게 검열을 통과한 만화책은 다시 되돌려줬지만 그렇지 못한 책은 주지 않았다. 
 
그 검열은 단지 만화책에만 머물지 않았다. 만화책을 빌려준 친구와 다시는 함께 놀 수 없었다. 어머니는 집에 놀러온 그의 친구들을 유심히 살폈다. 친구의 말투에 욕이나 거친 표현이 섞이면 함께 놀 수 없었다. 
 
그는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태권도 학원, 피아노 학원에 다녔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한 마리 양처럼 순했던 그가 어머니에게 반항하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시절부터다. 그가 학교마치고 집에 들어오기가 무섭게 어머니는 공부를 시켰다. 학원, 과외, 인터넷 강의. 그는 미칠 지경이 되었다. 
 
어머니는 아들의 책상 뒤 침대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그가 집에 있는 시간에는 어김없이 함께 있어야 했다. 그가 피곤해 책상에 엎드려 자면 어머니는 침대에서 일어나 그의 옆구리를 찔렀다. 얼음물을 떠다 주며 마시고 다시 공부하라고 했다. 평소에는 12시, 시험 기간 3주 전부터는 새벽 2시까지 잘 수 없었다. 
 
성적은 상위권으로 유지할 수 있었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공부하기 싫다고 말대꾸를 했다. 어머니는 무시했다. 혼자 공부할 수 있을 때까지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성적을 유지할 수 없으니까 스스로 공부할 때까지는 어쩔 수 없이 강제로 시켜야 한다고 했다. 나중에 스스로 할 수 있게 되면 더 이상 잔소리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어머니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어머니가 강제에 의해서라도 공부하지 않으면 성적을 유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머니에 대한 분노와 자신의 능력에 대한 불안 사이에서 그는 시간의 노예가 되었다. 
 
어머니의 노력 덕분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노력 덕분이었을까. 그는 지방에서 공부해서 수도권 대학에 입학했다. 자취 생활이 시작되었다. 어머니로부터 해방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자유는 일시적이었다. 어머니는 아침마다 전화해서 깨웠다.  일찍 도서관에 가라고 하거나, 아침밥을 꼭 챙겨먹으라고 했다. 주말에는 어김없이 찾아와 청소와 살림을 해놓고 갔다. 어머니가 집에 오는 토요일 저녁은 친구를 만날 수 없었다. 일주일에 밥 한 끼는 같이 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 때문이었다. 
 
“지겨웠어요, 정말. 어머니 그늘 아래 산다는 것이. 왜 저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못하는지. 처음에는 저를 사랑해서 그런 줄 알았어요. 제가 부모가 되어 보니까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병적인 집착이죠. 최악의 환경에서 자란 거예요. 뭐 하나 제 뜻대로 된 게 없거든요. 제가 결혼해서도 이렇게 살 줄 몰랐어요. 벗어날 수 없는 운명처럼 두 여자가 만든 감옥에 갇혀버린 거죠. 
 
제 탓도 있겠죠. 사람은 자기 환경을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어요. 어머니를 싫어하는 사람은 어머니 같은 여자에게 끌려서 결혼하게 된다고.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요. 어머니에게 벗어나자마자 이 여자에게 갇혀버리다니! 제 실수니까 제가 바로 잡아야죠. 정말 이혼하려고요. 더 이상 저 아닌 모습으로 살 수 없어요. 숨 막혀 죽을 것 같으니까.” 
 
 
***
 
 
두 사람이 사막을 건너고 있었다. 엄마와 아들. 엄마는 사막에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가 어린 시절에 아무도 그녀에게 사막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당당히 사막 한 가운데에서 살아남은 엄마는 결심했다. 아들에게는 사막에서 살아남는 법을 꼭 전수해주겠다고.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사막을 지나던 어느 날, 거대한 모래 폭풍이 불어왔다. 엄마는 아들을 품에 안았고, 두 사람은 무사했다. 그날 이후, 아들은 바람이 불면 엄마 품에 안겨 바람을 피했다. 그 품이 안전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의 여행은 길었다. 엄마는 점점 작아졌고, 아들은 점점 커졌다. 모래 폭풍이 불어와도 아들은 더 이상 엄마의 품에 안기지 않았다. 그 품이 너무 작아서 모래 폭풍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서로 표현한 적은 없지만 조용히 받아들인 현실이었다.
 
사막의 한 기점에 다다르자 이정표가 보였다. 서로 헤어져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아들은 홀가분하게 자기 길을 갔다. 그러나 엄마는 그러지 못했다. 아들이 떠난 길을 잠시 바라보다가 아들의 뒤를 따라갔다. 모래 폭풍이 불자 엄마는 눈앞에서 아들을 놓쳐버렸다.  
 
소년은 사막 한 가운데에서 길을 잃었다. 외로웠다. 반대편에서 빨간색 외투를 입은 한 사람이 걸어왔다. 자신보다 몸이 작은 소녀였다. 그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함께 걸었다. 다시 모래 폭풍이 불었다. 그러자 그가 갑자기 소녀의 손을 뿌리치더니 외투로 자기 몸을 가린다. 모래 폭풍 속에서 다른 사람을 보호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것이다. 
 
어릴 때는 엄마 품에 안겨서, 성장한 후에는 자기 외투 속에서 모래 폭풍을 피했다. 소년은 말없는 목소리로 소녀에게 말한 것이다. 
 
‘같이 걷기는 하지만, 너는 너고, 나는 나야.’ 
 
소녀는 함께 걸으려면 서로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년은 각자 알아서 하면 된다고 말했다. 사막은 손잡고 수다를 떨면서 걷을 수 없는 곳이었다. 소년의 말수가 줄었다. 소녀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소년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소녀에게 말했다. 혼자 가라고. 나는 더 이상 걷고 싶지 않다고. 
 
그리고 소년은 가방에서 텐트를 꺼내 치고 그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소녀는 나오라고, 계속 가야한다고 말했지만 소년은 들은 체 하지 않았다. 소녀는 텐트 밖에서 소년을 기다렸다. 텐트 안에서 소년은 생각했다. 
 
‘사막을 벗어날 방법은 없어. 사막을 건너지도 못할 거야. 그럴 바에는 차라리 여기 머무는 것이 낫다.’ 
 
모래 바람 소리는 거셌다. 휘이잉 불어오는 바람 소리에 소녀의 울음소리가 묻혔다. 
 
한 사람을 파괴하는 가장 빠르고 정확한 방법은 ‘책임’이라는 단어를 그의 삶에서 빼앗는 것이다. 책임지지 않는 사람은 파괴된다. 세상에는 자기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사막을 끝까지 걸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책임지지 않는 사람이다. 
 
사막 한 가운데 유토피아를 건설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를 쫓는다. 머지않아 그는 자기 인생을 망쳐버리고 만다. 파멸은 사막 한 가운데 안주하려는 데서 시작된다. 자기 자신의 책임을 외면하는 것이 파멸의 시작이다. 
 
한 사람이 도박, 중독, 외도에 빠지는 이유를 좁게 보면 각각  다르겠지만 넓게 보면 같다.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고통스러워 과정을 생략한 채, 원하는 것을 쉽게 가지려하기 때문이다. 마땅히 고통을 받으며 걸어야 하는 사막의 여정을 생략하고, 사막의 끝에 놓인 오아시스에 가고 싶은 것이다. 
 
사막을 횡단하는 논스톱 자기부상 열차를 타고 오아시스에 도착했다고 생각한다. 열차에서 내려 오아시스에 몸을 던진다. 두 손으로 에메랄드빛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지만 입 속으로 들어온 것은 시원한 물이 아니라 푸석푸석한 모래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가 본 것은 오아시스가 아니라 신기루였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책임지는 두 사람이 필요하다. 남편과 아내이다. 자기 희생 없이 가정이 행복해질 수는 없다. 사막을 걷듯 부부는 서로에게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이 과정을 생략하고 싶은 부부가 의외로 많다. 
 
둘 중 한 사람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책임지려는 사람이 있다면 가정은 절대 깨지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이다. 책임지지 않고, 책임지게 만든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내 부모 때문이야.”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당신 때문이야.” 
 
둘 중 한 문장에라도 동의한 사람은 논스톱 자기 부상 열차에 몸을 싣는 사람이다. 신기루로 직행하는 열차를 탄 것이다. 지금 당장 내리지 않으면 나중에 큰 대가를 지불하게 될 것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일단 내려야 한다. 
 
L는 자신의 어머니와 아내를 동일시하면서 모든 책임을 두 사람에게 전가시켰다. 열차에 올라탄 것이다. 열차에서 내리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내리는 순간,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열차에서 내리면, 아내를 책임져야 한다. 
 
더 이상 ”너 때문이야”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모든 책임의 무게를 고스란히 자신이 짊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무겁고 힘든 삶이다. 그러나 마땅히 가야 하는 길이다. 아무도 대신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 
 
그의 아내 역시 남편이 원하는 것을 손에 쥐어 줄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 없다. 텐트 밖에서 기다리는 것은 답이 아니다. 남편의 노력과 상관없이 자기 행복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남편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결정해주는 것이 아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남편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남편의 사랑으로 자기 존재감을 결정하려는 사람은 늘 불안정하다. 굶주린 사람처럼 허기지다. 남편과 다른 칸 열차에 몸을 실은 것이다. 열차에서 내려서 당당하게 사막을 걸어라. 아무도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라. 
 
가장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 빈자리를 스스로 매우기 시작하라. 남편의 사랑은 덤이다. 모자란 것을 채우는 것이지, 남편의 사랑으로 빈자리 전부를 채울 수는 없다. 
 
다시 사막으로 가자. 기약 없는 여정을 시작하자. 오아시스를 찾아 나서자. 사막을 끝까지 걸은 사람만이 오아시스에서 물을 마실 자격이 있다.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라. 보상은 확실하다. 목이 타는 만큼 오아시스의 물이 달콤할 것이다.

그러다 완전히 낚인다

아는 사람들과
낚시를 같이 간 적 있어요.
 
낚시가 처음이라 그런지 반나절 동안
나만 물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았어요.
 
옆에 큰 물고기를 두 마리나 잡은 형이
나한테 계속 말했어요.
 
잡을 수 있을 거야.
곧 잡힐 거야. 파이팅!
 
한 번은 들을만했지요.
계속 들으니까 기분이 나빠요.
 
난 여기 놀러 온 건데.
물고기 잡으러 온 게 아니라.
 
위로한답시고 등을 두드려 줄 때
짜증이 절정에 다다랐어요.
 
아, 이 형 옆에서 안되겠다.
자리를 옮겼죠.
 
누가 얼굴에 침을 뱉는 거예요.
손으로 만져봤더니, 하얀 새 똥이에요.
 
아무리 얼굴이 커도 그렇지,
이렇게 넓은 바다에서 얼굴에 새 똥이라니.
 
끼륵끼륵 갈매기 새끼들도
나를 조롱하는구나.
 
하루 종일 한 마리도 못 잡고
집으로 돌아왔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요.
나는 낚으러 갔다가 완전히 낚였어요.
 
편안하게 시작한 일
주위 시선이 부담이죠.
 
내가 좋아서 한 건데
다른 사람 좋은 대로 하고 있죠.
 
이리저리해보다가
더러워서 못 해먹겠다고 때려치웁니다.
 
나처럼 낚인 거예요.
절대로 못 낚습니다.
 
나는 말하고 싶어요.
아주 차분하게.
 
못 낚으면 어때요, 뭐.
못 낚으면 못 낚은 거죠.
 
마음 편히 먹고 바다 한 번 보세요.
낚싯대만 보지 마시고.
 
파도 소리, 새소리.
저 멀리 수평선, 마음에 담아보세요.
 
우리 여기 쉬러 온 거예요.
뭐 하나 낚으러 온 게 아니라.
 
누가 그랬죠.
인생은 잠시 잠깐이다.
 
하루가 천 년이고
천 년이 하루다.
 
바다를 누가 만들었는지 안다면
낚이지 않을 수 있어요.
 
낚이지 않고
낙낙(樂樂) 하게 되죠.
 
드리워진 낚싯대에 존재를 걸지 말고
드넓은 바다를 보며 꿈을 꾸세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그분의 영광이 온 세상에 가득하기를.
 

*희희낙락(喜喜樂樂): 매우 기뻐하고 즐거워함

너만 내가 싫은 게 아니야

“남편이 애들한테 욕하는 모습을 보면 참을 수가 없어요.”
 
F에게는 초등학교 5학년 딸, 여섯 살 남자 아이가 있다. 둘째 아이가 산만해서 사람들이 집에 오면 곤란한 일이 생긴다. 손님 어깨에 발을 올리면서 목말을 태워달라고 말하거나 먹는 음식에 손을 넣고 장난을 친다. 그녀에게 스트레스였다. 
 
그녀가 말했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스트레스를 받지만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은 게 더 힘들어요. 자주 싸우거든요. 성격이 안 맞아요. 연애기간도 짧았고, 사랑해서 결혼했다는 확신도 없고….” 
 
그녀는 남편이 다혈질이라고 했다.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고 욕하고 윽박질렀다. 그녀는 참을 수 없었다. 퇴근해서 육아를 돕지 않고, 혼자 씻고 자는 모습이 보기 싫었다. 남편에게 막내를 씻겨 주고 재워달라고 부탁했다. 남편은 마지못해 아이를 씻긴다. 아내는 불안하다. 아이는 눈에 물이 들어갔다며 징징거리고, 남편은 “사내자식이 눈에 물이 들어갔다고 우냐”고 짜증을 낸다. 
 
“당신, 나와! 내가 씻길게. 아이 하나 씻기면서 짜증내고 그래. 애 상처 받아.” 아내가 말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지금 잘 씻기고 있었어.” 남편이 말했다. 
 
“당신 매번 그러잖아. 뭐 부탁하면 짜증내고. 나한테 짜증 못 내니까 애들한테 그러는 거잖아. 내가 어려운 부탁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애 좀 씻겨달라고 하는데, 그게 그렇게 힘들어?” 
 
“누가 힘들대? 나는 당신이 중간에 끼어들어서 애 앞에서 나 무시하는 게 이해가 안가. 당신이 그러니까 애들도 날 무시하잖아.” 
 
“똑바로 하면 되잖아. 애들한테 상처 주지 말고. 아빠라는 사람이 툭하면 애들한테 화내고 짜증내고.”
 
“됐어. 그만해. 당신만 옳지. 난 나쁜 사람이고.” 
 
“자기가 그렇게 느끼나 봐. 난 그런 말 한 적 없어.”
 
두 사람의 연애 기간은 4개월. 짧았다. 
 
“제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어요. 그러다 남편을 만났어요. 이 사람이면 괜찮겠다 싶어서 결혼했죠. 부모님 집에서 탈출하고 싶었거든요. 벗어나고 싶었어요.” 
 
남편은 자상하고 따듯한 남자였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만. 아내는 아이들을 대하는 남편의 태도가 불만이었다. 그는  아이들에게 여유가 없어 보였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그럴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아이들에게 화내는 모습을 보면 견딜 수가 없었다. 
 
“아주 조금만 더 노력하면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는데 사소한 일로 화를 내서 모든 것을 망친다.” 
 
아내가 남편을 바라보는 관점이었다. 
 
아내는 삼남매 중 첫째였다. 아버지와 관계가 좋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이들 앞에서 어머니를 무시했다. 경제적인 능력도 없었다. 어머니가 장사를 해서 생계를 책임졌다. 
 
아버지는 술과 도박에 빠져 가정을 돌보지 않았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많이 맞았다. 첫째라는 이유로. 동생들이 잘못하면 아버지는 그녀를 혼냈다. 사춘기에 접어든 그녀는 아버지의 분노를 견딜 수 없었다. 내성적인 그녀는 아버지에게 반항하지 못했다. 일기를 쓰면서 견뎠다. 글을 쓰면 마음이 편해졌다. 
 
어느 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말했다. 
 
“나도 네가 싫다. 너만 내가 싫은 게 아니야. 나도 네가 싫어.” 
 
그녀는 그 자리에 서 있을 수가 없어서 도망치듯 집을 나왔다. 눈물이 앞을 가려 걸을 수 없었다. 다리가 풀리면서 돌에 걸려 넘어졌다. 무릎이 까져 피가 났지만 통증을 느낄 수 없었다. 마음에 난 상처가 더 아팠다. 
 
아버지가 그녀의 일기장을 봤다. 아버지가 혼내고 때릴 때마다 아버지에 대한 욕을 썼다. 아버지가 정말 싫어서가 아니라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어서 그랬다. 
 
그녀가 말했다. 
 
“저는 아버지가 싫은 게 아니었어요…. 일기장에는 뭐든 쓸 수 있는 거죠? 다들 그렇게 하잖아요. 아버지를 사랑하고, 이해하고 싶었어요. 그날 아버지는 제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어요. 그 충격이 너무 커서 제가 아닌 모습으로 살았어요. 나중에 알았죠. 그게 우울증이었더라고요. 아버지의 말을 잊을 수가  없어요. 어떻게 자기 딸한테 ‘나도 네가 싫다’라고 말할 수 있죠? 그러면 안 되잖아요. 아버지란 사람이….”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그녀는 남편을 만났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남편은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 남자라면….’ 
 
그녀는 결혼을 결심했다. 해방감을 느꼈다. 두 번 다시 아버지를 보고 싶지 않았다. 남편은 그녀의 상처를 보듬어 줬다. 처음으로 자신을 아껴주고 사랑해준 사람이다. 그러나 남편이 아이들에게 화를 내면 그에 대한 고마움이 싹 사라졌다. 남편이 던진 말 때문에 아이들이 상처받을 것이 두려웠다.  
 
남편 역시 깨달아야 했다. 그의 말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해로운지. 그녀는 남편이 잘못을 인정할 때까지 물러서지 않고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자녀들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남편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어요. 아버지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요. 아버지 역할에 대해 보고 느끼고 배울 시간이 없었던 거죠. 그래서 아빠로 살아가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면 안쓰러워요. 그를 도와줘야 하는데 제 마음에 상처가 있어서 그런가 봐요. 남편은 내 아버지가 아닌데 왜 이렇게 남편 말에 민감할까. 그는 아버지보다 훨씬 낫거든요. 가끔 아버지가 없었던 남편이 부러워요. 그런 아버지 밑에서 상처 받고 사느니, 차라리 없는 게 낫지 않았을까….”  
 
***
 
 
상처를 인식하면 상처는 치유된다. 인지는 감정, 행동과 연결되어 있다. 상처를 인지하는 순간, 감정에 변화가 일어난다. 사람은 로봇이 아니기 때문에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도식화해서 단순하게 말할 수는 없다. 사람 안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을 추적하면, 인지․감정․행동으로 변화가 일어난다고 추론해 볼 수 있을 뿐이다. 
 
변화를 위한 첫 단계는 상처를 인지하는 것이다. 상처를 발견하고 깨닫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상처에 다가갈 수 없도록 왜곡된 신념이 겹겹이 싸여 있어 상처를 쉽게 인지할 수 없다. 상처의 실체를 발견하기 위해 왜곡된 신념을 하나씩 풀어헤쳐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한 사람이 길을 걷다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쳐다봐서 기분이 나빠졌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사람마다 다르게 대처할 것이다. 쳐다보는 사람을 무시하고 지나칠 수도 있고, 왜 쳐다보냐며 따져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행동하기 전에 자신이 왜 기분이 좋지 않은지 생각해보는 게 먼저다. 
 
누군가 자신을 쳐다볼 때, 기분이 나빠졌다면 마음 어딘가에 왜곡된 신념이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다. 왜곡된 신념은 감정을 결정한다. 감정을 망치는 것이다. 
 
‘저 사람이 날 계속 쳐다보네. 나를 무시하는 건가?’
 
진실을 보려면 왜곡된 신념을 걷어내야 한다. 왜곡된 신념을 변화시키면 상황을 다르게 볼 수 있다. 다르게 생각해보자. 지나가는 사람은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이다. 혹시 아는 사람 아닌가 하고 빤히 쳐다보았다.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는 정보가 새롭게 들어오면 인지에 변화가 일어난다. 
 
‘아, 날 무시하는 것이 아니구나. 시력이 좋지 않아 쳐다본 거네.’ 
 
감정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저, 그 사람 아니에요. 길 조심히 걸으세요.” 
 
상처가 만든 왜곡된 신념은 감정을 망치고, 망가진 감정은 잘못된 행동을 만든다. 사람은 진실에 의해 상처입지 않는다. 왜곡된 신념으로 상처입고 파괴된다. 감정이 망가진 채, 잘못된 행동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간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가 크다. 아버지의 경제적인 무능력, 폭력과 학대. 그녀는 상처 때문에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남편 역시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버지와 망가진 관계가 남편에게서 재현된다고 생각할 때, 삶이 무너진다고 생각한다. 왜곡된 신념이 그녀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진실을 볼 필요가 있다. 왜곡된 신념이 그녀를 더 이상 파괴하지 못하도록. 
 
아버지가 일기장을 훔쳐본 날, 솥뚜껑 같은 아버지 손으로 뺨을 맞은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 마음은 입술보다 부드럽고 약하다. 살짝 때려도 찢어져서 피가 난다. 그녀의 상처는 치유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그때 그 일을 다시 말하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그녀는 다시 생각해야 한다. 
 
“아빠가 제 책상을 청소해주려고 했나 봐요. 그날 일기장을 숨기지 못했어요. 책상 위에 있었죠. 딸의 노트를 보고 싶었나 봐요. 노트를 펼치는 순간, 그 안에 상상하지 못했던 내용이 담겨 있었던 거죠. 딸이 아버지 욕을 했으니까요. 아버지도 상처받았을 거예요. 
 
노트를 손에 들고 있는 아버지 모습이 떠올라요.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화나서 참지 못했다면 학교에서 돌아온 즉시 저를 때렸겠죠. 그날 맞지는 않았어요. 그때 아버지의 목소리는 마치 삶에서 중요한 것을 잃은 듯 절망적이었어요. 
 
아, 잠깐만요. 그건 아버지가 제게 한 말이 아닐 수도 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건 아버지가 스스로에게 한 말일지 몰라요. ‘나도 내가 싫다. 너만 내가 싫은 게 아니야. 나도 내가 싫어.’ 아니에요. 분명히 제가 싫다는 말이었어요. 아, 혼란스럽네요. 잊었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엄마가 그랬어요. 그날 아버지가 이불에 누워 우셨다고. 그렇게 서럽게 우는 모습을 처음 보셨다고….” 
 
아버지는 딸에게 상처 준 가해자였다. 그러나 그녀는 아버지가 상처의 희생자일 수 있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했다. 아버지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많은 상처를 남겼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에 대해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엄마와 친척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모아서 아버지의 어린 시절을 희미하게 그려보았다.
 
“아버지도 불쌍한 사람이었어요.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아버지 큰형이 할머니를 설득해 집을 담보로 사업을 했나 봐요. 사업이 망했죠. 아버지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는데, 할머니는 쓰러지고, 큰형은 도망가고, 아버지와 누나들이 집 마당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대요. 가족이 다 흩어졌고, 아버지는 고아원 같은 데서 살았다고 했어요. 막노동을 시작했고, 결혼해서 처자식 먹여 살리려고 무리하게 일하다 허리를 다쳤어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인생이 뜻대로 안 되니까, 술에 의지하신 거죠….” 
 
아버지가 상처의 희생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되어버린 것처럼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그녀 역시 누군가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어떤 방식으로든 타인에게 전가된다. 아픈 상처가 건드려질수록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을 공격한다. 사람은 상처받기 싫은 만큼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며 살게 된다. 상처받은 사람이 언제나 희생자가 아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가해자가 된다. 
 
남편의 절제되지 않은 분노는 자녀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 다행히, 하지만 남편은 분노조절 장애, 이중인격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화가 나면 화를 내고, 짜증나면 짜증을 내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분노 자체를 없앨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분노,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표현 방식이 문제다. 아내는 남편과 상호작용을 통해 협력해야 한다. 남편은 분노를 적절히 다스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고, 아내는 그녀의 상처가 부부관계에 반영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남편은 절 사랑하지 않을 거예요. 남편보다 덩치도 크고, 목소리도 크니까 부담스럽지 않을까요? 매일 잔소리만 하니까 정떨어졌을 거예요. 물어본 적은 없지만….” 
 
남편이 말했다.
 
“아내가 잘못 알고 있네요. 아내는 사랑스러워요. 제가 아내가 원하는 만큼 좋은 남편이 되지 못해 미안하죠. 못된 성격 고치는 것도 힘들고. 아버지가 된다는 것도 어렵고.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려면, 아내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아내가 조금만 방법을 바꿔주면 좋겠지만, 하루아침에 바뀌는 건 힘드니까 서로 노력해야죠.” 
 
남편은 아내 어깨에 손을 올렸고, 아내는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덩치 큰 아내의 어깨가 조용히 떨렸다.

과거로 돌아갈까 두려워요

여러 번 삶을 포기한 적이 있어요.
극단적인 선택을 했어요.
다행이죠. 죽지 않고 살았어요.
 
절망뿐인 나에게
누군가 예수님을 전해줬어요.
살아갈 소망을 얻었죠.
 
이제 막 1년 지났어요.
지금이 너무 좋은데 가끔은 두려워요.
예전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하지.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무너지고 싶지 않아서.
쓰러지고 싶지 않아서.
버티고 견디고 참아요.   
 
고마워요, 용기 내줘서.
당신 덕분에 깨달았어요.
내가 요즘 왜 힘들었는지.
이제 알게 되었네요.
 
먼저 사과하고 싶어요.
내가 조급했어요.
조언을 구하는 줄 알았어요.
방법을 알려주면 될 줄 알았죠.
 
그게 아니었어요.
당신에게는 같이 있어줄 사람이 필요했어요.
아주 잠시 동안이라도
괜찮다고 다독여주며 함께 있어줄 사람,
그런 사람이 필요했던 거예요.
 
솔직히 말해줘서 고마워요.
실망해서 조용히 문 닫고 나갔으면
나는 영원히 몰랐을 거예요.
당신이 말해줘서 알았어요.
 
나도 솔직해지고 싶어요.
요즘 마음이 답답했어요.
몸과 마음이 지쳐갔죠.
탈진이라고 하나요.
 
내가 원하지 않았는데
목회할 때처럼 바빠졌어요.
가야 할 곳이 늘어나고
만날 사람이 많아지고
해야 할 일이 쌓여갔죠.
 
나는 바빠지면 불안해요.
뭔가를 놓치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러면 안 되는데
정말 그러면 안 되는데
한 사람을 마주한 게 아니라
일정을 해치우고 있었나 봐요.
 
차분해야 했는데 나는 분주했어요.
요 며칠 예수님 대신
내가 상담했을 거예요, 아마.
가슴에 뭐가 걸린 것처럼 답답했어요.
이유를 몰랐죠.
 
당신 때문에 알게 되었어요.
내가 해결하려고 했구나.
능력 없는 내가 마음이 앞서
해결하려 드니 꼬이기 시작한 거예요.
참 어리석죠.
매번 같은 실수를 하네요.
 
그래도 다행이에요.
예수님이 당신을 보내주셨어요.
당신이 예수님을 다시 모시고 들어올 때까지
예수님은 상담실에 계시지 않으셨어요.
나는 그것도 모르고 그저 열심히 했네요.
바보같이. 정말 바보같이.
고마워요. 큰일 날 뻔했어요.
당신 덕분에 나도 살았어요.
 
과거로 되돌아갈까 두렵다고 했죠.
듣고 보니까 나도 그렇네요.
아등바등 살면 나아질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네요.
 
그래도 포기하지 말아요, 우리.
우리가 찾아가다 지치면
예수님이 찾아와주실 거예요.
너무 걱정은 마세요.
 
당신이 말했죠.
안개 낀 것처럼 인생이 두렵고 답답하다고.
화창한 날 하루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아세요.
안개는 영원하지 않아요.
수명이 짧아요.
해가 뜨면 금방 사라져요.
 
예수님 없이 어두웠던 당신 인생
드디어 찬란한 빛이 비쳤죠.
새벽이 왔어요. 동이 터요.
안개로 자욱하지만
오늘 하루 맑을 거예요.
안개 짙은 날은 유독 맑았으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시겠어요.
괜찮다고 말해주시겠어요.
곧 해가 뜬다고.
파란 하늘 빨갛게 떠오른 태양이
눈부시게 아름다울 거라고.
 
두 번 다시 예전 같지 않을 거예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어요.
절대로 그럴 수 없어요.
당신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에요.
 
마음속 담아두었던 말,
이제 전하고 싶어요.
 
살아줘서 고마워요.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와줘서
정말 정말 고마워요.
당신 덕분에 나도 살았어요.

보이지 않는 계약서

“아내는 매사에 부정적이에요. 긍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확대해석해서 혼자 걱정하죠. 우리 아이가 좀 작아요. 말도 늦고. 아내는 밤마다 인터넷을 뒤져서  키 크는 데 좋은 음식, 유명하다는 한의원을 샅샅이 뒤져요. 주말마다 언어치료를 받으러 다니고요. 제가 보기에는 아직 걱정할 단계는 아니거든요. 조금 더 기다려보면 좋겠는데, 아내는 아이가 무슨 큰 병에 걸린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S는 아내의 부정적인 성향이 불만이다. 그녀의 부정적인 말을 들으면 견딜 수 없이 짜증난다고 했다. 그는 어려운 상황일수록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헤쳐 나갈 수 있다고 믿었다. 또 아내의 부정적인 감정과 말에 전염되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그녀가 걱정할 때마다 습관처럼 말했다. 
 
“여보, 좋게 생각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남편은 아내의 부정적인 성향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했다. 그는 나름의 가설을 제시했다. 아내의 과거와 현재를 적절히 연결해서 추론하고 있었다. 
 
“일단 아내의 부정적인 성향은 어린 시절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 같아요. 장모님이 아내와 똑같거든요. 장인어른이 젊을 때 실수를 많이 하셨나 봐요. 술을 좋아하셨고, 다른 여자를 만나기도 한 것 같아요. 도박에 빠져 빚을 져서 장모님이 갚았다는 말을 들었고요. 
 
장모님, 아내, 그리고 처남이 모이면 장인어른 욕하느라 정신이 없어요. 옆에서 듣고 있노라면 짜증이 나서 못 견디겠어요.  처음에는 ‘저 세 사람이 힘들었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저건 아닌데, 왜 저렇게 생각할까?’ 하게 되었어요. 
 
장인어른의 인생이 측은하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아버님께 가끔 안부 전화를 드리면 장모님이 싫어하세요. 자기한테는 안하면서 아버님에게 한다고. 제가 생각할 때, 장모님은 외롭지 않아요. 아내와 처남이 있으니까요. 
 
살면서 자꾸 ‘장모님이 아버님을 대하듯이 아내가 나를 대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무시당하는 기분이 자주 들거든요. 아내가 오해도 많이 하고, 자기 멋대로 결론 내리고 비난하는 습관이 있어요. 아내가 부모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받은 건 확실합니다. 뭔가 변화가 필요한데, 제 능력으로 힘드네요.” 
 
남편은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대해 담담히 털어놓았다. 
 
“제 아버지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좋은 아버지가 아닐지 몰라요. 젊은 시절부터 병을 얻어서 가정을 온전히 책임지지 못했으니까요. 주로 경제적인 활동은 어머니가 하셨어요. 어머니는 아버지 머리맡에 쪽지를 써놓고 가셨죠. 저는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어머니가 써놓은 쪽지를 보고 아버지를 돌봐드렸어요. 냄비에 죽을 데워서 갖다드리라거나 식사 후에 잊지 말고 약을 챙겨 주라는 거였죠. 
 
어릴 때는 아버지 옆에 누워 대화를 많이 했는데 중학교, 고등학교 가면서 그러지 못했어요. 어머니도 제 뒷바라지를 하느라 많이 힘드셨죠. 저는 공부할 시기에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효도라고 생각하면서 하루하루 지냈습니다. 제가 입대하고 얼마 안 되서 연락이 왔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휴가를 나와서 장례를 치르고 부대로 복귀하는 길에 참 많이 울었어요. 더 잘해드릴 수 있었는데…. 가슴에 사무치더라고요.” 
 
그는 살아오면서 부모님에게 어떤 부탁이나 요구를 하지 않았다. 사춘기 방황도 그에게는 사치였다.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하지 않고 꿋꿋이 버텼다. 가족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누구 하나 힘들어서 더 이상 못하겠다고 하면 가정이 무너져 버릴 것 같았다. 
 
다행히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말할 자격 있는 사람은 어머니뿐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어머니가 그 말을 하면 모든 것이 끝나버릴 것 같았다. 그는 두려운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힘들어 보이는 날이면 불안해서 물었다. 
 
“엄마, 힘들지 않아?” 
 
어머니의 답변은 교과서처럼 정확하게 그의 귓가에 전해졌다. 
 
“아니, 엄마는 전혀 힘들지 않아. 우리 아들이 이렇게 엄마를 걱정해주는데 뭐가 힘들겠어. 조금만 쉬고 일어날게. 걱정하지 마.”  
 
어머니는 바다를 좋아했다. 그래서 TV에 바다가 나올 때마다 그가 입버릇처럼 말했다. 
 
“엄마, 나는 우리나라 바다 색이 마음에 안 들어. 내가 나중에 에메랄드 빛 바다를 보여줄게. 조금만 기다려.” 
 
어머니는 말없이 웃을 뿐이었다. 젊은 날에 쉬지 않고 고생을 한 탓일까. 그가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혼자 시골에 살던 어머니가 감기 몸살에 걸린 줄 알고, 패혈증을 방치한 것이다. 하루아침에 벌어진 일이었다. 
 
차갑게 식어버린 어머니를 보는 순간, 그는 누군가 예리한 칼날로 자신의 심장을 도려내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두 다리에 힘을 잃고 쓰려졌다. 
 
인생에서 가장 큰 슬픔을 두 번이나 반복해서 겪은 그는 결심했다. 두 번 다시 울지 않겠노라고.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두 번 다시 쓰러지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모두가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말해도 그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상황을 다르게 보기 위해 노력했다. 
 
기회는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찾아온다고 생각했다. 힘들면 힘들수록, 이를 악물고 버티고 또 버텼다. 보상은 확실했다. 입사 동기 중 가장 많은 연봉을 받았고, 가장 빠르게 승진했다.  
 
“대학 동아리에서 선배가 미술치료를 배운다고 제 모습을 그려보라는 거예요. 종이에 대충 그렸죠. 선배가 그림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제가 입고 있는 옷에 아무 장식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단추나 벨트, 무늬, 색상도 없다고. 어린 시절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자란 것 같다고. 
 
그런데 얼굴만은 활짝 웃고 있데요. 선배가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이렇게 웃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냐고. 아직도 그 장면이 기억나요. 친하지도 않은 선배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죠. 눈물 콧물 주체하지 못하고 엉엉 울었거든요. 그때까지 숨겨 왔던 마음 속 비밀을 들켜 버린 것 같았어요.그 말 한마디에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어요. 지금도 힘들 때마다 ‘힘들어도 웃어. 이렇게 웃기까지 힘들었잖아.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마. 어렵게 되찾은 웃음이니까’라고 자신을 위로합니다.” 
 
그런 그의 긍정적인 태도가 효력 없는 사람은 아내뿐이었다. 아내와 관계를 생각하면, 그는 억지웃음을 지어야 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할 뿐 아니라, 왜곡되게 보는 아내. 아무리 설득하고 대화해도 바뀌지 않는 그녀의 부정적인 관점 때문에 절망했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그를 조용히 파괴하고 있었다. 
 
***
 
남편은 아내의 부정적인 성향을 고민하면서 정작 자신이 아내를 부정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한다. 긍정적인 성향은 그의 성품이 아니라, 그의 노력에 산물이다. 그의 긍정적인 태도가 특별한 몇몇 문제에 한정되는 것이 그 증거다. 
 
아내가 현재 겪는 어려움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역설이다. 아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면서, 그녀에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강요한다. 아내의 관점에서 남편이 이중적으로 보이거나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의 긍정적인 성향은 아내에게 매력적이지 않다. 그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신을 지금까지 이끌어주었던 긍정적 태도가 부부관계를 어렵게 만드는 걸림돌이 된 것이다. 
 
남편의 일관된 태도, 긍정적인 생각을 하라는 호소는 아내의 감정을 차단한다. 세상에 나쁜 감정은 없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감정은 있는 그대로 존중받아야 한다. 감정은 가치중립적이다. 행복한 관계를 유지하기 하기 위해서 부정적인 감정 역시 적절히 표현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부부관계 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되는 원리이다. 배우자가 화를 낸다고 그 감정을 무시하거나 외면해서는 안 된다. 화를 낸다는 것은 그 감정이 표현되고 있다는 뜻이다. 분노를 느끼는 것은 자연스럽다. 
 
모든 감정은 수용되어야 하지만 감정을 표현하는 모든 방식이 정당한 것은 아니다. 표현 방식이 문제가 될 수 있다. 분노를 느낀다고 폭력적 행동이 정당화 될 수 없다. 감정을 적절히 표현하는 훈련은 일생을 거쳐 성숙되어야 한다. 왕도는 없다. 
 
아내가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배우자가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 안에 분명한 신호가 있다. 둘 중 한 명이라도 그 필요를 먼저 인식할 수 있다면 부부 행복은 보장된 것이다. 
 
아내 역시 건강한 방식으로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아내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남편을 주변인으로 전락시켰다.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남편에게 투영된 것이다. 아내에게 남편은 외부인이다. 아내가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 편안하게 그와 대화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힘들고 어렵더라도 대화해야 한다. 피하거나 물러서면 안 된다. 남편은 아버지가 아니다. 
 
남편보다 아이와 더 밀착된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문제다. 부부는 서로 협력해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 부부가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은 각자가 아니라,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대화하기 힘들다고, 남편을 포기해버린 아내는 절대로 아이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없다. 아이에게 상처 주게 된다. 
 
남편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야 한다. 서로 다른 기질, 관점, 성장 과정 등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피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남편이 아내에게 긍정적인 태도를 강요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내가 충분히 아이를 걱정할 상황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현실을 외면하면서까지 아내에게 긍정적인 태도를 강요하고 있다. 이유가 있다. 
 
남편은 어릴 적에 보이지 않는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어머니는 고통스런 상황에도 한 번도 아들 앞에서 “힘들다, 어렵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물려준 유일한 유산이자 최고의 선물이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의도와 달리 보이지 않는 계약서 뒷면에 무언의 명령이 적혀 있었다. 
 
“나도 불평하지 않을 테니까 너도 불평하지 마.” 
 
남편이 그 흔한 반찬 투정 한 번 하지 못하고 성장했다는 것은 그가 어린 시절에 “아이”답지 못했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계약서에 쓰인 조항에 따라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했다. 부모가 아무리 자녀를 잘 키워도, 그늘이 드리운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어린 시절에 내면에 찾아온 결여는 일생 동안 무언가를 추구하게 만든다. 
 
불가능한 현실을 긍정적인 태도로 극복했던 경험이 그에게 삶의 의미를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확실한 앞날을 걱정하는 자신을 발견하면 실패감이나 죄책감을 느낀다. 부정적인 생각이 그에게 죄책감을 심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부정적인 생각은 가치중립적인 것이다. 나쁜 것이 아니다. 걱정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 감정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다. 
 
남편이 살아남으려면 보이지 않는 계약서를 찢어버려야 한다. 힘들면 힘들다고, 걱정되면 걱정된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말하는 남자가 진정한 남자이다. 아내는 어머니가 아니다. 자신의 약함을 아내와 공유하는 사람은 그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더 이상 자신의 약함을 숨기고 살 필요가 없다. 
 
그 공허한 마음을 누가 달래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이 젊은 날, 당신에게 아름드리 꽃바구니처럼 다가온 아내뿐이다. 남편이여, 아내의 품에 안겨라. 진정한 남자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우리 헤어질 시간이에요

내 이야기 들어줄 사람 없어요.
내 말을 중간에 끊어요.
자기 생각만 말해요.
 
네 잘못도 있겠지.
그 사람이 오죽하면 그래.
나라도 그랬겠다.
아픈 말이 화살처럼 날아와
상처에 꽂혔어요.
 
더 이상 말하지 말자
다짐해보지만 못하겠어요.
가슴이 터질 듯 답답해요.
 
내가 사람 많이 의지해요.
처음에 잘해주던 사람도
하나 둘 날 떠나요.
내가 부담스러운가 봐요.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한다고.
 
오늘은 안심하세요.
내가  들어줄 수 있어요.
내가 좋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잘 듣는 기술을 가진 사람이라서 그래요.
 
내가 들어보니
사람들이 모르는 게 있네요.
당신이 누군지 몰라요.
당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당신이 들려준 말을 정리해 볼게요.
어릴 때 부모님이 서로 때리고
물건을 집어던지며 싸웠다고 하셨죠.
 
부모님이 싸우면 당신은 무서워서
침대 밑에 웅크리고 숨었어요.
머리를 땅에 박고 벌벌 떨면서 울었어요.
 
엄마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침대 아래 숨어 있는 당신과
두 눈이 마주한 순간
당신은 집 밖으로 뛰쳐나갔어요.
 
길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경찰에 신고해달라고 했지요.
아무도 신고해주지 않았고요.
그때 나이 7살이라 했나요.
 
나는 지금 당신이 7살로 보여요.
키는 자랐어도 정서는 자라지 않은 거죠.
 
내 팔을 붙잡고 말하고 있어요.
경찰에 신고해달라고.
어떤 방식으로든 도와달라고.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뿌리칠 뻔했어요.
당신이 누군지 몰랐다면,
당신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면,
나도 그럴 뻔했어요.
 
사람들은 당신의 얼굴을 보겠죠.
그리고 거리를 두겠죠.
다 큰 어른이 제구실을 못한다고.
비아냥거릴지도 몰라요.
길가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은
당신을 도와줄 수 없어요.
 
하나만 물어볼게요.
경찰을 찾은 이유가 뭔가요.
경찰이면 도와줄 수 있다고 믿으신 거죠?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안전한 사람이 필요했던 거예요.
그때나 지금이나.
 
당신 말 끝까지 들어줄 사람 세상에 없어요.
사람들은 이미 귀를 닫은 것 같아요.
 
내가 지금 잘 들어준다고 해서
나를 의지하지 마세요.
상담이 끝나면 들어줄 수 없어요.
상담은 영원하지 않으니까요.
 
나는 당신을 그리스도에게로
연결시킬 거예요.
 
두려워 울부짖으며
길가로 뛰쳐나온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품으로
곧바로 달려가 안길 수 있도록
내 모든 노력을 집중할 거예요.
 
얼마나 무서웠니.
얼마나 외로웠니.
이제 괜찮아.
 
나는 보고 싶어요.
당신이 그리스도의 품에 안겨
편안하게 웃는 모습을.
 
당신이 그 품에 안기면
내 역할은 끝나요.
우리 헤어질 시간이 다가와요.
 
떠나보낸 슬픔보다
바라보는 기쁨이 크기에
나는 오늘도 우두커니 당신을 기다립니다.

당신이 살아나기를

“갑자기 남편이 죽었어요. 작년 어느 날, 사고로 떠나버렸죠. 남편을 따라 죽고 싶었지만 아이들만 두고 갈 수는 없잖아요. 힘들어도 참고 또 참았어요. 나중에 천국에서 남편을 만나면 수고했다고 말해주지 않을까 싶어서요.” 
 
T는 마흔일곱, 두 아들의 엄마다. 남편은 포크레인 기사였다. 신도시 예정지구에 대규모 공사가 진행되면, 그의 얼굴을 몇 달 동안 볼 수 없었다. 아내는 남편이 보내오는 돈으로 살림을 하고 아이를 키웠다. 날씨가 춥거나 더운 날이면 남편이 걱정스러웠다. 
 
가족을 위해 고생하는 남편에게 어떻게든 힘이 되고 싶어 아이들 사진을 열심히 찍어서 보내줬다. 남편이 집에 오는 날이면 그가 좋아하는 삼계탕을 끓어주며 힘내라고 말했다. 남편은 그저 말없이 웃을 뿐이었다. 아내는 남편이 표현을 못해도 가족을 끔찍하게 사랑한다고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과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서 전회가 왔다. 남편이 교통 사로고 숨졌다고. 다급하게 병원으로 가서 싸늘하게 식은 남편을 보는 순간, 그녀는 기절했다. 
 
남편은 고속도로 갓길에 차를 세웠다가 변을 당했다. 차에서 내려 담배를 한 대 태우고 다시 차에 타려는 순간, 자동차 타이어에서 뭔가를 발견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아 플래시를 가져와 바닥에 엎드려 타이어를 살펴보고 다시 몸을 일으키는 순간, 쾅 소리가 났다. 도로 위를 달리던 1톤 트럭 사이드 미러에 머리를 부딪쳤다. 병원으로 옮겼지만 이미 그는 숨을 거둔 뒤였다. 
 
남편 죽음에 대해 말하던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손가락 사이로 그녀의 울음소리가 새어나왔다. 하루아침에 남편을 잃은 슬픔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의 가녀린 어깨가 흔들렸다. 그녀는 울어야 했다. 남편을 떠나보내고 그녀는 두 아이들을 위해서 꿋꿋이 살아야 했다. 강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감정을 억누르며 살았다. 
 
갑작스럽게 떠난 남편을 뒤로 하고, 그녀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그녀는 누워 일어나지 못했다. 그렇게 두 달이 흘렀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 유품을 정리하다가 남편의 트럭에서 낯선 휴대폰을 발견했다. 
 
그 안에는 낯선 여자와 찍은 사진이 담겨 있었다. 주고받은 문자에는 성적인 농담, 진한 애정 표현이 가득했다. 마음속에서 흙탕물이 일었다. 남편을 그리워하던 감정이 증오심으로 바뀌었다.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제가 남편을 잘못 본 걸까요? 남편에 대한 모든 신뢰가 무너졌어요.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이제 더 물어볼 수도 없어요. 가슴 속에 묻고 살아야겠죠. 남편이 미워요.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요?”
 
그녀는 삶을 포기하려고 수면제를 사 모았다. 유서를 지니고 다녔지만 실행할 수 없었다. 아이들 때문이었다. 두 아이는 엄마가 아니면 아무도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 고아원에서 자랐다. 
 
시댁은 남편이 죽고 나서 돈 문제로 갈라섰다. 트럭을 매입할 때 돈이 모자라 남편 형의 명의로 대출을 받았다. 남편이 죽자 아주버니는 트럭을 자신의 회사에 귀속시키고 돈 한 푼 가져다주지 않고 인연을 끊었다. 아이들에게는 엄마뿐이었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유일한 이유였다. 
 
***
 
그녀를 위로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떤 영화나 소설보다도 비극적이다. 하루아침에 남편을 잃은 그녀에게 남겨진 것은 유산이 아니라 남편의 불륜 증거뿐이었다. 그 고통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마치 길을 걷다 강도 만난 사람 같다. 어두운 밤길을 걷던 그녀는 강도가 휘두른 칼에 배를 찔린다. 길에 쓰러진 그녀는 살아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두 아이가 생각나서 더듬더듬 주머니에 손을 넣고 휴대폰을 꺼내 구급차를 부른다. 사이렌 소리를 들은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구급차 안에서 그녀는 생각한다. 
 
‘살아야 한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살아야 한다. 살아서 아이들 곁으로 가야 한다.’   
 
상담실을 찾은 사람은 용기 있는 사람이다. 그녀는 자기 손으로 상담실에 전화를 걸었다. 피를 흘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 신고를 한 것이다.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위해 꼭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이다. 수술대 위에 누워 상처 부위를 치료받기 원했다. 찢고 꿰매는 수술의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기 원했다.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길 위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간다. 자신을 기다리는 소중한 가족을 남기고 눈을 감는다. 그녀는 생존자다. 극적으로 살아남은 생존자다. 
 
수술대 위에 누운 그녀에게 필요한 처방은 ‘격려’다. 격려는 절망을 넘어 용기로 나아가게 한다. 진부한 말이지만 진실을 말하고 싶다. 그녀는 자신을 절망을 확대하는 동시에 잠재력을 축소하고 있다. 승리의 소식은 묵인하고, 패배의 소식을 수용한다. 이미 일어난 일을 바꿀 수는 없다. 남편을 살릴 수 없다.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고 물을 수 없다. 과거에 일어난 일이다. 
 
그녀를 짓누르는 절망의 실체는 미래에 관한 것이다. 미래에 대한 절망에는 근거가 없다. 미래에 대한 절망은 그녀의 추측으로 구성되어 있을 뿐이다. 그 절망의 근거는 무엇인가? 그녀는 자신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없다고 한다. 자신이 죽어 없어지면 아이들이 살아남을 수 없다. 그래서 그녀는 생존한다. 
 
하지만 살아남을 가능성이 없다고 말하는 건 진실이 아니다. 그녀는 이미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감정이 그녀를 속인다. 살아남은 그녀에게 죽으라고 말한다. 
 
희망의 근거는 무엇인가? 그녀가 살아남은 경험이다. 이 경험이 그녀를 끝까지 지켜줄 것이다. 그녀의 본능 속에 생존의 DNA가 숨어있다. 절망이 축소되면 잠재력이 고개를 든다. 그녀는 책임지는 사람이다. 회피하거나 외면하거나 변명하지 않는다. 아이들에 대한 책임을 고스란히 그녀의 두 어깨에 짊어지고 있다. 
 
그 무게는 상당하지만, 그녀는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기운을 차릴 동안 누군가 그녀를 포기하지 않도록 격려해준다면 그녀는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고통스런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더 깊은 의미를 발견하며 미래로 나아갈 것이다. 
 
그녀는 한 달 전부터 집 앞 공방에 나가 퀼트를 배우기 시작했다. 교회에서 가족처럼 지내던 한 언니의 부탁을 더 이상 거절 할 수 없었다. 손으로 작은 천 조각을 이어 붙이는 게 무슨  도움이 될까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에 대한 슬픔, 원망이 머릿속에서 잠시나마 사라진 경험을 했고,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일주일 동안 매달려 작은 작품 하나를 완성하자 성취감이 밀려왔다. 일상의 변화가 찾아왔다. 아이들 간식을 준비하고, 숙제를 도와주는 자신을 발견했다. 
 
집 앞에 작은 공방을 열고 싶다는 꿈도 생겼다. 아이들 등교 시간에 공방을 열고, 하교 시간에 맞춰 공방을 닫으면 된다. 아이들 곁을 지키면서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었다. 차분히 준비하고 기다리면서 그녀는 다음 인생을 준비했다. 
 
“지금은 제 몸 하나 추스르기 힘들지만 언젠가는 다른 사람은 돕고 싶어요. 이번 일로 많은 것을 깨달았거든요. 예전처럼 살고 싶지 않아요.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니까. 제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을 고민하면서 살아야죠. 모든 고난에는 뜻이 있어요. 단지 아직 그걸 발견하지 못한 것뿐이죠.” 
 
죽음과 생명의 경계에는 사건이라는 울타리가 있다. 그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은 우리의 선택이다. 사건은 사건일 뿐이다. 그 사건에 대한 관점이 우리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나는 바란다. 당신이 살아나기를. 소소한 행복에 대해 잠시 떠올리며 미소 짓는 것만으로 당신은 살아날 수 있다. 어서 일상으로 돌아오라. 그것이 당신이 그토록 바라는 행복일 테니.

가슴이 답답해 숨을 쉴 수 없어요

차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가슴이 답답했어요.
숨을 쉴 수가 없어 중간에 내렸어요.
 
10년 동안 해왔던 일이
적성에 안 맞아서 다른 일을 배웠어요.
용기 내서 새출발했어요.
 
막상 현실이 되니
내가 원했던 삶이 아니었어요.
잘못 했다 싶은데 늦은 거죠.   
 
되돌릴 수도 없고 답답해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내가 원했던 삶이 뭐였나 싶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와, 반가워요.
우리 친구네요.
 
요즘 나도 비슷한 고민해요.
나도 작년에 회사를 옮겼거든요.
목회했던 교회에서 김유비닷컴으로.
미안해요, 웃길 의도는 없었어요.
 
나도 요즘 가슴이 답답해요.
누가 구둣발로 가슴을 짓밟는 것 같아요.
작년부터 그랬거든요.
 
새로운 일 시작한다고
교회 떠나 밖으로 나왔을 때
두세 달 그랬어요.
없어졌나 싶었는데 다시 시작되네요.
 
상담하는 사람마저 그러면
어떻게 하냐고 묻고 싶겠죠.
내가 자주 말했잖아요.
내가 잘나서 상담하는 게 아니라고.
 
상담실 안에 나는 내가 아니에요.
상담실 밖에 내가 진짜 나예요.   
하루 종일 무슨 생각할까요, 나는.
 
하루 종일 걱정이에요.
걱정에 걱정이 꼬리를 물죠.
한 번 시작되면 숨 막혀 죽어요.
가슴이 터질 것 같아요.
 
수도꼭지를 잠그듯이
생각을 잠가야 해요.
잠그지 않으면
걱정으로 홍수 나서 떠내려가요.
 
어떻게 생각을 잠그냐고요?
생각의 방향을 바꾸는 거죠.
나 자신과의 대화를 시도해요.
 
너 자꾸 협박하는데
나 뭐 하나만 물어보자.
근거는 있냐? 없지?
근거도 없는데 말한 거지.
나 참, 기가 막혀.
네가 말을 너무 잘해서 속았잖아.
이 사기꾼 놈아.
 
조금 부족하죠?
그래도 사기꾼에게 벗어날 수 있어요.
고개를 돌릴 여유는 생겨요.
바로 옆 주님이 안 보였거든요.
 
사기꾼에게 들은 말을
그대로 주님께 전해보세요.
뭐라고 말씀하시나.
다른 말씀해주세요.
 
너 혼자 아니야.
내가 같이 있잖아.
내가 너 책임질 거야.
내가 너 지켜줄 거야.
 
무한 반복.
듣고 또 듣고
듣고 또 들어요.
가슴 통증 사라질 때까지.
 
완전 해결 안 돼죠.
또다시 가슴 통증.
예수님 말씀 반복.
다른 방법 없어요.
 
가슴이 답답하다고 했지요?
고통을 겪는 인생에는 당신과 나.
아무런 차이가 없어요.
 
단지 나는 나를 돌볼 뿐이에요.
더 이상 나를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아요.
내가 나를 돌보지 않으면
아무도 날 돌봐주지 않잖아요.
 
당신도 그럴 거예요.
당신을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결국 날 보러 왔잖아요.
미안하지만, 나는 당신을 못 돌봐요.
 
주님은 당신 안에 계세요.
당신 안에 계시는 주님과 대화하는 게
자신을 돌보는 거예요.
사기꾼과 대화하지 마시고
주님과 대화해주세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질문하셨죠?
그건 나도 몰라요.
막막한 인생 과연 달라질까요.
어떻게라고 질문하지 말고
왜라고 질문해주세요.
조금 나아질 거예요.
 
인생 막막할수록
예수님 목숨보다 소중했던 당신을
정성스럽게 돌봐주세요.
 
내가 혼자가 아니듯이
당신도 혼자가 아니랍니다.

나를 간절히 찾는 자

<잠언 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우리 주변에는 인생의 위기를 겪으면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넘쳐 납니다. 그들의 간증은 우리를 기쁘게 하고, 기대하게 합니다. 
 
“아, 나도 간절히 하나님을 찾으면 만날 수 있겠구나.” 
 
하지만,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나서, 하나님을 못 만나면 자책감에 빠집니다. 
 
“왜 나는 하나님을 못 만나지? 나는 정말 간절한데…. 그래도, 모자라나? 얼마나 간절해야 하나님을 만나는 거야?” 
 
 말씀을 오해하신 겁니다. 간절함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마음가짐, 즉 태도입니다. 간절함이 조건일 수 없습니다. 
 
남다른 간절함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당신을 만나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아직 하나님을 만나지 못해 속상한 것이 아니라, 이미 만났던 하나님을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간절히 찾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찾으십니다. 하나님의 간절함은 우리의 간절함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자녀를 찾는 절박함으로, 우리를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찾으셨고, 그의 품 안에 우리를 안고 계십니다. 
 
잠언 8장의 말씀은, 지혜와 지혜를 찾는 사람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두 존재의 관계는 사랑이 바탕입니다. 친밀합니다. 단절감과 소외감이 없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는 관계로 나아갑니다. 
 
우리에게 관심 없는 하나님에게 구걸하듯 매달리는 찾음이 아니라, 이미 우리를 사랑하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와 함께 하시지만, 우리가 더욱 간절한 마음가짐으로, 하나님을 찾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결핍의 정서는, 하나님을 오해하도록 부추기고, 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로 나아가게 합니다. 정서에 속으시면 안 됩니다. 복음으로 정서를 돌보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멀게 느껴지는 것도 서러운데, 정성이 부족해서 하나님을 못 만났다고 말씀하시면, 나는 슬픕니다. 
 
하나님이 멀게 느껴지는 것은 감정입니다. 당신에게 진실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은 정성으로 못 만납니다. 은혜로 만납니다. 정성이 모자라도, 괜찮습니다. 은혜의 하나님을 부르십시오.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조용히 사라지는 거야

“잊힐까 두려워. 
두려워 미칠 것 같아.” 
 
네가 주인공이구나.
그러면, 못 견뎌. 
 
태어나서 지금까지 
영원한 주인공을 본 적 있어?
 
없잖아. 
너라고 예외일 수 없어. 
 
주인공이 되고 싶으면
그렇게 해. 
 
위태로운 사치를 
잠시 잠깐 즐길 테니까.
 
진실은 간단해. 
사람들은 널 잊을 거야.
몸부림쳐도 소용없어. 
 
하지만, 기억해.
하나님은 널 잊지 않아. 
처음부터 지금까지 영원토록. 
 
이쯤에서 인정할까?  
주인공은 하나님이야. 
 
네가 든 조명으로 
예수님을 비춰드려. 
 
팔은 아파도 
마음은 편할 거야. 
 
배터리가 닳아서 
조명이 꺼지면
미련 없이 사라져. 
 
다음 사람이 
생생한 조명으로 
예수님을 비출 거야. 
 
조용히 사라지는 거야.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인정하면, 편해져. 
공황도 사라지고 
불안도 사라지거든.
 
그리고, 
가끔 편안하게 잠들어.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요한복음 3:30>

나는 잊혀도 괜찮아

혼자 있으면 
마음속에서 소리가 들려요. 
 
넌 쓰레기야. 
가서 죽어. 
 
정신분열이 오는 걸까요. 
이러다 미치는 건 아닌지. 
 
너무 걱정은 마세요.  
나도 그렇거든요.  
 
나도 끔찍한 소리를 듣고 살아요. 
우울해서 견딜 수가 없죠. 
 
하나만 말해볼까요.
아주 못된 말이에요. 
 
야, 너 요즘 조금씩 알려지니까 좋지. 
시작한 지 얼마 안되서 그래. 
 
이 삼 년 지나봐. 
너 잊혀. 
 
사람들이 지루하다 그래. 
너 그때 어떻게 할래. 
 
그러니까 내가 그냥 교회에 
가만히 있으라 했잖아. 
 
지어낸 이야기 아니에요.
어제도 들었어요. 
 
그 소리 듣고 나면 우울해져요.  
견딜 수 없을 만큼. 
 
공원을 이리저리 헤매면서 
발바닥 아플 때까지 걸어요. 
 
소용없어요. 
사라지지 않아요. 
고통스러운 생각이. 
 
보세요. 
나는 경지에 오른 사람이 아니에요. 
당신처럼 고통받아요.  
 
내 상처도 끔찍한데 
무슨 자격으로 상처에 대해 말할까요. 
 
그러게요. 
나는 과정을 공유하고 싶었어요. 
 
내가 나를 어떻게 돌보고 있는지 
함께 나누고 싶었어요. 
 
끔찍한 소리를 들으면 
나는 따뜻하게 말해요. 
 
그래. 나 잊혀. 
그게 뭐 어때서 그래. 
 
나는 잊혀도 괜찮아. 
내가 바라는 건 딱 하나야. 
 
사람들이 예수님을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상처 입은 한 사람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싶어. 
 
나 그래서 이 길 택한 거야.
후회 없어. 
 
조명이 켜졌어. 
춤을 춰. 
 
조명이 꺼졌어. 
사라져. 
 
그게 다야. 
그 이상은 없어. 
 
나는 잊혀도 괜찮아. 
나는 그분이 잊히는 게 두려워. 
 
그분을 전할 거야. 
일생 동안. 
 
잠시 동안 마음이 편안해져요. 
다음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안타깝게도 
다음 목소리는 1초 뒤에 
다시 들려요. 
 
돌봄은 잠깐이고 
고통은 계속이에요.  
 
그래도 나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끝까지 나를 돌볼 거예요.   
 
수준 높은 삶은 바라지도 않아요. 
망가진 나를 돌볼 뿐이에요. 
 
당신에게 말하고 싶어요.
자신을 돌볼 시간이에요. 
 
그 목소리 사라지지 않아요. 
계속 따라다닐 거예요. 
 
고개 돌리지 말아주세요.  
마주 보고 전해주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그 따뜻한 사랑을. 

내가 반드시 이루어 줄 것이다

나의 자녀야, 
쫓기듯 살아가지 말거라
 
네가 원하는 것을 
이미 가졌다고 상상해 보렴
 
이미 가진 사람처럼 믿고 
당당하게 행동하거라
 
내게 사랑받으려 애쓰지 말고
나의 사랑을 믿고 받아들이렴
 
너는 나의 사랑스러운 자녀이고 
따뜻한 미소로 너를 바라본단다
 
내게 인정받으려 애쓰지 말고 
이미 인정받았다고 믿고 받아들이렴
 
네가 자격 없는 사람이라 말할 때
너는 이미 자격을 갖춘 거란다
 
원하는 것을 가지지 못해 
쫓기듯 살아가는 너를 보면
나는 속상하단다
 
네가 추구하는 것을 가지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는 게 아니란다
 
나는 네 안에 있고 
너는 나로 인해 모든 것을 가졌단다  
 
모든 것을 가진 사람처럼 
믿고 말하고 행동하거라
 
너에게는 단지 
시간이 필요할 뿐이란다
 
쫓기고 불안한 삶을 살면서 
오늘 하루를 희생하지 말거라
 
나를 믿고 의지하거라 
내가 너의 소원을 이루어 줄 것이다 
 
사랑한다, 나의 자녀야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고린도후서 6:10

나 같은 실수는 하지 마세요

이 사람은 이 말하고 
저 사람은 저 말하고 
갈피를 못 잡겠어요. 
 
무엇이 옳은 선택일까요.  
분명하게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렇군요. 
누구에게 물었나요. 
 
중요한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이요. 
 
뭐라던가요. 
도움 되던가요.  
 
헷갈려요. 
사람마다 
서로 다른 말을 해요. 
 
상처 줘요. 
사랑하는 사람한테 
더 상처받았어요. 
  
당연히 그렇죠. 
비꼬는 말 좀 할게요. 
미안해요. 
 
사람들은 말해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너를 위해 해주는 말이야. 
아니요. 
당신이 답답해서 그렇겠죠.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아니요. 
당신 생각해서 하는 말이죠.  
 
큰 기대 마세요. 
당신은 오래 고민했는데
그 사람은 그 즉시 생각하고 
말하잖아요. 
 
원하는 답을 얻을까요.
그렇지 않아요. 
 
그 사람은 당신보다 
당신을 몰라요.  
 
그럼, 자신을 믿으라는 말인가요?
아니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어요. 
하나님을 믿으세요.  
 
나는 내 선택이 아직도 
올바른 건지 모르겠어요. 
 
나는 믿음으로 이 길을 간다.
아니에요. 아닌 것 같아요. 
 
사람 의지하지 말고 
교회 의지하지 말고 
의연하게 너의 길을 가라. 
그럼, 하나님이 책임지신다. 
 
만약 내가 이 말을 한다면 
나는 망가질 대로 망가진 거죠.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이런 말 하면 안 돼요. 
 
나는 실수했을지도 몰라요. 
어리석은 선택을 한 거죠. 
 
좋은 길 있었어요.
적어도 먹고사는 걱정은 
덜 할 수 있었죠. 
 
그걸 박차고 나오다니 
뭐 그리 대단한 일을 하겠다고. 
 
나 같은 실수는 하지 마세요.
장밋빛 인생 없어요. 
 
아, 빨리 말해주지. 
나 이미 선택했는데. 
 
그래요? 괜찮아요. 
너무 걱정은 마세요. 
 
인생에 답은 없어요. 
하나님께 답이 있어요. 
 
인생에는 수많은 문이 있죠. 
선택의 문. 
 
종류도 다르고 
크기도 다르고 
색깔도 다르죠. 
 
문 하나 잘 열면 
성공할 것 같고 
 
문 하나 잘못 열면 
실패할 것 같죠. 
 
그 문 열어보세요. 
또 문이 있어요. 
 
또 그 문 열어보세요. 
또다시 문이 있어요.
 
열어도 열어도 
끝없이 문이 있다면 
멈춰 서서 생각해봐요, 우리. 
 
어떤 문을 여느냐 
중요하지 않아요. 
 
어떤 마음으로 문을 여느냐.
중요해요. 
 
중간중간 잘못된 문을 열었어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문을 열까 말까 고민하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요. 
 
과감하게 손잡이를 비틀어 열죠. 
결국 목적지에 도착할 테니까. 
 
가끔 예상하지 못한 일도 있죠. 
문 넘어 문이 있을 줄 알았지 
절벽인지는 나도 몰랐거든요. 
 
떨어져 죽는 줄 알고 
울고불고 했는데 
그물도 있고 사다리도 있고
죽지는 않더라고요.   
 
죽으란 법 없어요. 
하나님의 은혜가 있죠. 
 
나는 분명히 실수했어요. 
돌이킬 수 없어요, 이제는. 
 
기분 어떠냐고요?
좋아요. 나쁠 거 없죠. 
 
내가 실수했다고 
내가 실수는 아니잖아요.
 
내 존재가 실수가 아닌데
절망할 필요는 없죠.  
 
내가 실수했을지라도 
내 존재 가치는 변하지 않아요. 
 
편안하게 문을 여세요.
잘못된 문이든 낭떠러지든 
우린 결국 목적지에 도착할 테니까.

첫 발을 내딛거라

나의 자녀야, 
지친 너를 위로하고 싶구나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사람은 
쉽게 탈진한단다
 
이미 난 길을 걷는 것보다 
없는 길을 만들며 걷는 것이 
몇 배나 힘이 들기 때문이란다
 
네가 지친 것은 네가 약해서가 아니라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기 때문이란다
 
힘이 들면 잠시 쉬거라
쉬었다 가도 늦지 않는단다
 
경쟁하지 말고 편히 걷거라
이 길에는 너와 나 둘 뿐이란다 
 
사람들의 평가에 무뎌지거라
남보다 뒤처질 두려움에서 벗어나거라
 
아무도 밟지 않은 곳에 
첫 발을 내딛거라 
 
너의 발자국을 보며 
다음 사람이 따르게 하거라
 
먼저 걷는 길은 외로운 길이란다
 
포기하지 말거라
 
나는 광야에 길을 내는 
살아있는 너의 하나님이란다
 
사랑한다, 나의 자녀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이사야 4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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