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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분노

나는 갈등이 싫어요

나는 갈등이 싫어요.
혼자 참아요.
 
거절당할까 두렵고.
버림받을까 두렵고.
상황 달라질 리 없고.
그러니까 참죠.
 
가끔 답답해요.
나를 너무 쉽게 보는 거 아니야.
나를 얼마나 우습게 생각하면
저런 말을 하지.
말 안 하니까 더 그러나.
 
마음 단단히 먹고 내 말 하고 싶죠.
교회에서 배운 게 있잖아요.
순종해라. 참아라.
빛과 소금 되라.
말문이 막혀요.
 
뭐가 옳은 걸까요.
평생 이렇게 살 수는 없잖아요.
이러다 내가 죽겠어요.   
 
참지 마세요.
뭣 하러 참아요.
생각나는 대로 말하세요.
그 사람 상처받는 말든 독한 말 쏟아부으세요.
 
내가 상처받았는데
다른 사람 배려할 일이 뭐예요.
욕하고 싶으면 욕하고
소리 지르고 싶으면 소리 지르세요.
 
그 사람 말고 하나님께.
놀라셨죠?
하나님께 먼저 말하세요.
사람 말고.
 
복싱으로 몸 푸는 사람
샌드백 먼저 쳐요.
프로 선수는 감정으로
주먹 휘두르지 않아요.
상대방의 움직임을 보고
정확히 주먹을 꽂아요.
 
자기 생각 말하기 전에
샌드백 먼저 치세요.
하나님, 이 말 해야 할까요.
잽 잽 잽.
그래, 이번에는 말하자.
라이트 훅.
그래, 이번에는 참자.
블로킹.
 
사람이 내 마음 알아주나요.
어림없어요.
기대한 만큼 실망해요.
하나님이 내 마음 알아주시죠.
솔직히 말하세요.
 
하나님 앞에서
다른 사람 욕하는 게 이상한 가요.
하나님 앞에서
착한 척하는 게 더 이상해요.
 
시편 자세히 읽어보세요.
다른 사람 욕으로 꽉 찼어요.
참 신기하죠.
욕으로 시작한 기도가
찬양하는 기도로 끝나요.
하나님께 말하고 털어버리는 거죠.
원수를 대신 갚아주신다는 데
다른 말 더 필요한가요.
 
하나님께 말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질 거예요.
마음이 편해지면
판단할 수 있을 거예요.
이건 말해야 한다.
이건 말할 필요 없다.
 
절대적인 기준 없어요.
말 많이 하는 사람에게는
참으라고 하실 거고
말 안 하고 참는 사람에게는
참지 말라고 하실 거예요.
 
잘못된 판단이면 어떻게 하냐고요.
괜찮아요. 정확한 판단은 못 내려요.
실수해도 하나님이 돌봐주세요.
우리 하나님 해결사예요.
 
가시 빼고 말하는 사람 당당해요.
감정에 휘둘리지 않거든요.
거절 당해도 타격 없어요.
 
그냥 그랬다는 거죠.
그래서 화났다는 것도 아니고.
의도는 없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는 데
상대방이 뭐라 말하겠어요.
내가 느낀 감정인데
그렇게 느끼지 말라 하겠어요.
 
꾸준히 샌드백을 치세요.
나도 쉬지 않고 샌드백을 쳐요.
못한 말 산더미 같은데
어디 말할 데가 없어서.
한바탕 땀 흘리면 시원해져요.
 
가끔 링 위에 오르잖아요.
내던진 주먹 빗나가도 자책 마세요.
용기 내서 주먹 날린 자신을 축하해주세요.
 
역습 당해 쓰러지면 어떻게 하나고요.
열 셀 때까지 일어나면 되죠.
만약 못 일어나면요?
괜찮아요. 누워서 잠시 쉬세요.
 
패배를 깔끔하게 인정하는 사람,
그 사람이 진정한 승자에요.
더욱 강해져 돌아올 테니.

하나님이 해결해주셔야죠

하나님이
해결해주셔야죠.
 
그렇군요.
나도 그러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당신 얼굴이
왜 이리 슬퍼 보일까요.
 
못다 한 이야기가 있군요.
하나님께 서운한가요.
 
네. 그래요.
이제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아무리 기도해도
상황이 좋아지지 않으니까요.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해요.
나는 더 이상 못하겠어요.
 
당신이 내게 한 말,
언뜻 보면 믿음 같지만
자세히 살피면 절망입니다.
 
내 환경이 달라지겠어?
저 사람이 달라지겠어?
 
바뀌지 않을 거야.
바뀌지 않을 거야.
절대로 절대로.
 
당신의 문제가 풀리기 전에
당신의 마음이 풀리기를
나는 바랍니다.
 
믿음과 절망은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마음이 엉키면
절망입니다.
 
마음이 풀리면
믿음입니다.
 
눈물이 강을 이루고
탄식이 산을 이룰지라도
마음이 엉키면
낙원이 아닙니다.
 
강 없고 산 없어도
얼어붙은 땅이 풀리고
작은 겨자씨 하나 피어나면
그곳은 낙원입니다.
 
나는 기도합니다.
나는 소망합니다.
 
당신 마음이 풀어지기를.   
당신 마음이 낙원 되기를.

내가 바보처럼 보이니?

교회에서는 남을 돕고 섬기는 게 미덕이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상황 어렵고 시간 없는데, 정성을 다해 다른 사람을 도와줬어요. 고맙다는 말 한 번 없이 당연하게 생각해요. 바보 취급당하나 기분이 나쁜데, 얼마나 더 섬겨주어야 할까요?
 
질문에 감정이 실린 것 같아요. 그만큼 서운하다는 뜻이지요. 제가 구체적으로 상황을 알 수는 없지만, 무리한 섬김은 당신에게도 상대방에게도 유익하지 않습니다. 적절한 범위 내에서 멈춰야 할 것 같아요. 우리는 예수님처럼 살아야 하지만, 예수님은 아니거든요.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다른 사람의 비위를 맞출 필요는 없습니다. 
 
잠시 멈춰 서서, 자신에게 질문해보세요. “나는 왜 그 사람을 이렇게까지 섬겨주고 있을까? 왜 적당한 선에서 거절을 못 할까? 왜 무시당하면 기분이 나쁠까?”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을 겁니다. 자신만의 의미부여가 특정한 상황을 특정한 관점으로 보게 만드는 겁니다. 
 
아마 질문하신 분께서는 이번 일이 처음이 아닐 겁니다. 인생에서 반복되고 있을 거예요. 패턴 아닌가 싶어요. 부탁하면 도와주고, 도와주다 지치고., 지치다 떠나고. “두 번 다시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누군가를 필요 이상으로 섬겨줍니다. 지쳐가는 자신과 마주합니다. 
 
상대방을 떠올리면 좌절하지 하지만, 자신을 돌아보면 성장합니다. 상대방을 떠올릴 시간에, 자신을 들여다보세요.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나 왜 이럴까?” 깊이 고민해보세요. “왜”라는 고민을 끊임없이 던지다 보면, 자신 안에 해결되지 않은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을 거예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자신만의 이야기 말입니다. 어쩌면, 자신도 몰랐던.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해 보일 겁니다. 가만히 앉아 이리저리 살펴보세요. 팔을 걷어붙이고 집중하세요. 중요한 순간입니다. 잘 풀어야 벗어납니다. 그 사이에 누가 와서 “나 이것 좀 도와줘”라고 부탁하면, 하던 일 중단하지 마시고 고개만 돌려 말하세요. “잠깐만, 지금 내가 그럴 상황이 아니어서. 나중에 도와줄게. 이거 먼저 풀어야 해.” 걱정은 마세요. 그 사람 큰일 나는 거 아니에요. 실타래 먼저 푸세요. 
 
당신이 도와주지 않아도, 그 사람은 잘 살아요. 하나님이 책임져주시니까 걱정하지 말고, 당분 간은 자신의 문제에 집중하세요. 잘 풀어야 나중에 여유가 생기죠. 그때는 가서 도와주세요. 그 사람이 몰라줘도 기분 나쁘지 않을 만큼만, 적당히.  

믿지 않는 남자친구를 만나요

내 마음속에 외로움이 가득 있어요. 주님 한 분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제 신앙이 부족하다고 느껴져요. 제 신앙이 부족해서 그런지 교회를 건성으로 다니거나 아예 다니지 않는 남자 친구를 만나요. 솔직히 저는 지금 남자 친구가 좋아요. 신앙이 없어서 문제에요. 헤어지고 싶지 않아요. 계속 만나고 싶어요. 세상적인 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제 신앙이 부족해서 일까요?
 
아빠는 악마 같아요. 술만 먹으면 엄마를 때렸어요. 무책임하고 무기력한 아빠 때문에 가정이 고통받았어요. 엄마는 천사 같아요. 늘 제 편이 되어줬어요. 아빠 때문에 고생했는데, 언제나 밝은 모습을 잃지 않으셨어요. 그런 엄마를 보면 마음이 아파요. 늘 저와 제 동생을 위해 사셨거든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있었던 일이에요. 밤 11시쯤 학원을 마쳤어요. 아빠가 데리러 왔어요. 아빠 차를 타고 집에 가는데, 아빠가 말씀하실 때 너무 피곤해서 하품을 했어요. 아빠가 운전하다가 말고 제 뺨을 때렸어요. 아빠가 말하고 있는데 버르장머리 없이 하품을 한다고. 화나고 무섭고 슬펐어요. 집에 와서 엄마에게 말했어요. 두 분이 제 앞에서 싸웠어요. 아빠는 엄마를 또 때렸어요. 나 때문에 엄마가 맞았잖아요. 마음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어요.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내 답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요. 자매님은 자신의 신앙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믿지 않는 남자 친구를 사귀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계시고요. 나는 자매님이 처한 상황보다 믿지 않는 남자 친구를 만나면서 느끼는 죄책감이란 감정에 더 많은 관심이 있어요.
 
반대로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자매님의 신앙이 깊고, 믿음이 좋은 남자 친구를 만났다고 해보죠. 그러면, 외로움이 사라질까요. 아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아니에요.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아요. 외로움은 없애야 할 감정이 아니라 돌봐야 하는 감정이에요.
 
자매님은 외로움에 취약한 삶을 살아오셨어요. 폭력적인 아버지, 희생하는 어머니, 불안한 두 분의 관계. 자매님의 정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거예요. 고등학교 1학년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버지에게 맞았던 사실을 어머니에게 말했어요. 도움을 주려던 어머니 역시 아버지에게 맞았어요. 어머니는 자매님을 지켜줄 수 없었어요. 아마 그 후로는 자매님이 힘든 일이 있어도 어머니에게 말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조심스럽게 추론하는 거예요. 혼자 참고 견디는 것에 익숙해졌을 거예요.
 
나는 자매님의 신앙이 깊어지기를 바라고, 믿음 좋은 남자 친구를 만나기를 바라요. 하지만, 그전에 나는 자매님이 스스로를 정죄하지 않기를 부탁드려요.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그 누가 손가락질 할 수 있겠어요. 얼마나 외로우면 그러겠어요.   
 
불안정한 관계 속에서 자매님이 얼마나 고통받으며 살아왔는지 하나님도 알고 계세요. 하나님은 믿지 않는 남자 친구를 만났다고 화를 내시는 분이 아니세요. 오히려, 하나님은 마음 아파하세요.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 누구라도 곁에 있어주기를 바라는 자매님을 보시며 안타까워하는 하나님의 얼굴이 나는 보여요. 하나님은 자매님이 사랑받기 원하세요.
 
그렇다고, 아무나 만나라는 말은 아니에요. 가능하다면, 예수님을 의지하고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세요.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믿음 있다고 좋은 남자 아니고, 믿음 없다고 나쁜 남자 아니에요. 복음이 없다면 복음을 전해주세요. 복음이 있다면 복음을 공유하세요. 서로의 진심이 중요해요.   
 
신앙이 성숙하고 성경 지식이 많아져도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아요. 제아무리 믿음이 좋은 남자 친구를 만나도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아요. 그 누구도 자매님 안에 결핍을 채워줄 수 없어요. 외로움은 스스로 돌봐야 하는 감정이에요. 예수님의 사랑과 그분의 말씀으로 외로움을 돌봐주세요. 절대로 포기하지 말아주세요.
 
나같이 부족한 사람에게 질문해주셔서 감사해요. 외로운 당신을 하나님이 따뜻하게 안아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하나님을 원망해요

결혼을 전제로 6년 동안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졌어요. 2년이 지난 지금은 남자친구에 대한 원망은 없어요. 차라리 헤어지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요. 하나님이 너무 원망스러요. 내 20대를 다 바쳐서 주님을 섬겼는데, 이제 남은 게 없어요. 하나님이 싫어서 교회도 가지 않아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원망스럽다고 말하면 편안하게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하면서 논리적으로 따져보겠지요.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내가 더 나은 사람이라서가 아니에요. 자매님이 진심을 알기 때문이에요. 
 
자매님은 그런 말할 자격 있어요. 주님을 위해 20대를 바쳐 봉사했기 때문이 아니에요. 주님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기 때문이 아니에요.  자매님이 주님의 딸이라서 그래요. 
 
딸은 아버지를 원망할 자격이 있잖아요. 말 그대로 딸이니가요. 딸이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으면 누구를 원망할 수 있을까요. 아버지를 사랑하니까 아픈 거예요.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해야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어요. 사랑하지 않으면 미련도 없지요.   
 
하나님이 진심을 담아 사과하면, 그 마음 누그러질까요. 하나님이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한다면, 그 마음이 풀릴까요. 하나님은 자매님의 아픈 마음 위로하고 싶을 거예요. 하나님도 자매님을 사랑하시니까요. 
 
자매님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는 자매님의 삶에서 일어난 작은 기적을 목격했어요. 자매님 안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난 일이지만, 다른 사람은 쉽게 이룰 수 없는 일이에요. 자매님은 과거의 남자친구에서 벗어났어요. 
 
헤어진 이성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은 쉽게 떨쳐내기 힘든 감정이에요. 누군가에게는 아마 평생 동안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는 복잡한 감정이랍니다. 자매님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동안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난 거예요. 원망을 담은 편지라도 주소는 정확히 적어주신 거예요. 
 
원망의 대상이 남자친구가 아니라 하나님이라서 감사해요. 만약 과거의 주소지에 끊임없이 편지를 보냈다면, 자매님의 편지는 길가에 버려졌거나, 다른 사람 손에 갈기갈기 찢겨졌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에게 보낸 편지는 하나님이 소중히 뜯어 읽어보셨어요. 잘 펴서 예쁜 상자에 담아 보관하고 계시고요. 
 
지금 하나님은 답장을 쓰고 계신 거예요. 생각보다 오래 걸리나봐요. 하나님의 시간 계산법은 우리와 조금 달라서 예측하기 어렵지요. 조급해하진 마세요. 머지 않아 하나님의 진심이 가득 담긴 편지가 도착할 거예요. 
 
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 정확한 주소를 적어주세요. 자매님이 하나님께 진심으로 듣고 싶은 말이 뭔가요. 하나님이 어떻게 해주시면 마음이 풀릴까요. 잃어버린 모든 시간이 아깝지 않을 만큼, 하나님께 받고 싶은 선물이 있으신가요. 주저하지 말고 말하세요. 하나님은 이미 알고 계시고 보내주실 준비를 마치셨어요. 
 
다시 교회에 나가려면,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나는 조급하게 지금 당장 교회에 다시 나가라는 말은 못하겠어요. 꽁꽁 얼어버린 자매님의 마음이 따스한 사랑으로 녹아내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내게 물어주신 덕분에 정답은 못 드려도, 진심은 전할 수 있었습니다.

남자친구에게만 화를 내요

저는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지 않아요. 하지만, 남자친구에게는 예외에요. 답답하고 짜증 나면 나도 모르게 화를 내고 막말을 하거든요. 고치고 싶은데 고치기 어려워요. 
 
솔직한 질문 감사드립니다. 먼저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자매님은 지극히 정상입니다. 자신을 비난할 필요 없어요. 쉽지 않겠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로 풀어갈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남자친구는 다릅니다. 자신을 이중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다른 사람에게는 쉽게 화내기 힘듭니다. 다른 사람들은 자매님에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서 그래요. 
 
남자친구는 자기 자신의 일부에요. 자기 자신과의 상호 작용이 남자친구에게 반영됩니다. 진지하게 오랜 시간 만났다면, 남자친구가 가족처럼 느껴집니다. 다른 사람들과 관계의 수준이 다릅니다. 
 
아이들만 부모와 애착되는 게 아니라 연인끼리도 애착됩니다. 연인 사이에서 애착이 깨지면 부모를 잃은 아이처럼 고통스럽지요. 연인과 헤어진 슬픔이 가족을 잃은 슬픔과 별반 다르지 않아요. 
 
사람은 애착이 된 대상에게 안정감을 느끼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남자친구에게 안정감을 느끼는 게 쉽지 않아요. 항상 좋은  감정으로 만날 수도 없고, 좋은 말만 할 수 없습니다. 
 
화를 내면 후회가 밀려오겠지요. 그렇다고, 구호를 외치지 안 됩니다. “화내지 말자. 화내면 나쁜 사람이다. 내가 이것밖에 안 된다. 아, 또 화내고 말았다.” 진실이 아닙니다. 감정을 차단하지 마세요. 자매님은 기계가 아닙니다.  
 
화내지 말자,라는 명령어가 사람에게 입력되면 고장 납니다. 화난 감정을 막을 게 아니라 화난 감정을 적절히 표현하는 방식을 배워야 해요. 감정 자체가 아니라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합니다.  
 
화난다고 대화를 피하면 안 됩니다. 힘들어도 대화는 계속해야 합니다. 화난다고 상대방을 윽박지르거나, 자리를 박차고 나가면 대화가 끊어지겠지요. 
 
같은 일로 다툼이 반복된다면, 남자친구를 아무리 말해도 못 알아듣는 멍청이로 만들지 마시고,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확인해보세요. 그 상황을 바라보는 자매님만의 독특한 관점이 있을 겁니다. 그게 뭔지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면, 갈등을 통해 서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의사소통합니다. 남자친구가 자매님의 말을 이해 못 한다고 낙심하지 마세요. 서로의 말을 해석하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어요. 서로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안정될 겁니다. 
 
연인 관계는 원래 힘든 겁니다. 포기하지 말고 대화해주세요.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잘못하는 게 아닙니다. 갈등은 과정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남자친구와 공유해주세요. 
 
화낸 다음 날은 미안하다는 뜻으로, 평소보다 여유 있게 남자친구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세요. 남자친구도 하고 싶은 말이 있을 테니까요. 서로 주고받는 말 너머에 진심을 바라보세요. 서로의 진심을 알게 되면, 두 사람 행복해질 겁니다.

아빠에게 소리를 질렀어요

아빠가 큰 수술을 세 번이나 받았어요. 병원에서는 더 이상 술을 마시지면 위험하다고 했어요. 엄마가 속상해서 전화를 했어요. 아빠가 어제 저녁 술을 마셨다고. 처음으로 아빠에게 소리를 질렀어요. 이제 그만하고 싶어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요. 
 
먼저 자매님을 위로하고 싶습니다. 삶의 무게가 느껴집니다. 아빠에게 소리를 질렀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겁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빠도 아마 아실 거예요. 딸이 아빠를 사랑하니까 걱정돼서 그런 거라고. 
 
엄마가 딸에게 전화를 했다는 사실은 여러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 엄마가 딸에게 도움을 요청한 한 것 같아요. 단지 아버지가 술을 마셨다는 사실을 정보로서 알려준 것과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말하는 건 차원이 다릅니다.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곧바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소리를 질렀다는 사실은 자매님이 어머니를 도와줬다는 의미가 있어요. 엄마가 아무리 말해도 소용 없으니까 딸이 나선 겁니다. 해결사 역할을 하신 거예요.  
 
아빠에게 소리를 지르고 나서, 자매님이 느끼는 감정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아빠가 술을 마셔서 실망스러워요.”. “아빠가 술을 마셔서 정말 화가 나요.”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자매님은 “이제 더 이상 못하겠어요. 버틸 수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자매님이 현재 상황의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는 뜻입니다. 
 
건강을 챙겨야 할 때에, 술을 마신 아버지가 계십니다. 딸에게 도움을 요청한 어머니가 계십니다. 자매님은 부모님을 돌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매님을 돌봐줄 사람이 없어 보여요. 외롭고 힘든 마음이 내게 전해집니다. 
 
아버지가 병원 안에서 세 번의 수술을 받으시는 동안, 자매님은 병원 밖에서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셨을까요. 아버지는 아버지 대로, 자매님은 자매님 대로 힘든 시간을 보내신 거예요. 자매님은 어떻게든 아버지를 살려보고 싶으신 거예요. 그 안에는 진심 어린 사랑이 있습니다. 
 
조심스럽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자매님도 자신도 살려주세요. 두 발로 걸어다닌다고 해서 멀쩡한 게 아니에요. 두 발에 모래 주머니, 어깨에 쌀 가마니 짊어지고 걸어다니면 온몸이 상해요. 무거운 짐을 내려 놓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살 수 있어요. 
 
자녀가 부모님를 책임지는 건 당연하지만, 지금 자매님에게는 다른 말을 하고 싶어요. 부모를 책임지지 마세요. 부모님을 예수님께 떠넘기세요. 모든 책임을 예수님께 떠넘기세요. 말처럼 되지 않을 거예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이를 악물고 해내야 합니다. 그래야, 조금이나마 자신을 되찾을 수 있어요. 
 
급류에 휩쓸린 사람을 구하려면, 물살 밖에 있어야 합니다. 앞뒤 생각 안하고 구해준다고 들어가면, 같이 물살에 휩싸입니다. 급한 마음에 소리라도 질러보지만, 소용 없습니다.  그러다 죽는다고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질러도 급류에서 휩쓸린 사람은 혼자 나올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 살려달라고 외치세요. “우리 아빠 엄마 살려달라”고 목이 쉬도록 소리지르세요. 예수님이 “내 아들, 내 딸 내가 구하겠다”고 말씀 한 마디만 해주시면, 자매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어요. 딸의 자리로 돌아가세요. 자매님의 부모님,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자식된 도리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에요. 최선을 다해 부모님을 돌봐주세요. 하지만, 지금과 같은 방식은 아닙니다. 자매님을 먼저 돌봐주세요. 주님께 넘치는 사랑을 받으세요. 기도 시간 만이라도 모든 책임을 주님께 떠넘기세요. 그래야, 부모님을 오랫동안 돌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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