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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부부대화

돈 관리는 누가 하는 게 좋을까요?

결혼을 준비하는 청년입니다. 아무리 신앙이 좋아도 돈 때문에 부부가 갈라서는 경우를 자주 봤습니다. 저는 결혼 전에 분명히 결정을 내리고 싶습니다. 남편과 아내 중 재정 관리는 누가 하는 게 좋을까요? 
 
둘 중 아무나 하면 됩니다. 아내가 해도 좋고, 남편이 해도 좋습니다. 정해진 답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왕이면, 은사와 재능에 맞게 하는 게 좋겠지요. 괜히 물었다 싶겠지만, 질문한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답변해보겠습니다. 
 
누가 재정을 관리하든 부부 사이에 갈등이 없어야 합니다. 서로 한마음으로 협력하라는 말입니다. 재정을 맡은 배우자가 다른 배우자를 통제하면 안 됩니다. 통제가 아니라 통해야 합니다. 
 
정답이 없으니, 오답을 말해보겠습니다. 답이 아닌 것만 피하면 정답입니다. 극단적인 상황을 미리 알면 피해 갈 수 있으니 도움이 되실 겁니다. 
 
재정을 맡은 배우자가 주도권을 가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재정을 맡지 않은 배우자가 갑자기 돈이 필요하거나 물건을 사야 할 일이 있을 때, 재정을 맡은 배우자에게 일일이 허락을 받는다면, 부부 관계가 동등하지 않은 겁니다. 옳지 않습니다.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재정을 맡은 배우자가 아랫사람을 대하듯이 단칼에 거절하는 경우를 봅니다. 한정된 돈으로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없으니 우선순위를 정해야겠지요. 재정을 맡은 배우자가 일방적으로 우선순위를 정한다면, 재정을 맡지 않은 배우자는 마음이 어렵습니다. 재정과 관련된 우선순위는 부부의 사고방식, 가치관에 밀접한 영향을 받습니다. 대화하면서 피곤하고 예민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대화해야 합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재정을 맡지 않은 사람이 힘을 가지는 경우입니다. 배우자에게 재정을 맡기고 10원짜리 동전 하나까지 가계부를 쓰라고 합니다. 수시로 확인하면서 돈을 어디다 썼냐고 스트레스를 줍니다. 최악의 상황입니다. 그럴 거면, 차라리 본인이 재정을 맡는 게 낫습니다. 서로 예민하게 싸우다가 바람 잘 날 없습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재정은 남편과 아내 둘 중 누가 맡아도 상관없습니다. 성경의 원리를 따르는 부부는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돕습니다. 재정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그렇습니다. 한 쪽이 다른 한쪽을 밟고 올라서는 경우는 없어야 합니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 대화 많이 하세요. 행복한 가정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차별 없이 키울 거예요

“제발 아내가 정신을 차렸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을 망치고 있거든요.” 
 
N은 마흔둘, 열 살 아들, 일곱 살 딸의 아빠다. 그는 아내가  과도할 정도로 아이들 교육에 집착하는 것을 걱정한다. 임신한  순간부터 아내는 태교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몸에 좋다는 음식을 먹고, 아이의 두뇌 발달에 도움을 주는 음악을 듣고, 정서에 도움이 된다는 책을 읽었다. 
 
처음에는 남편도 아내의 적극적인 노력이 싫지 않았다. 웹서핑을 하다가 유익한 정보를 발견하면 그녀에게 문자를 보내주기도 했다. 둘 사이의 갈등은 첫 아이가 태어난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남편이 생각할 때, 아내는 너무 이른 나이부터 아들에게 글자와 숫자를 가르쳤다. 아이가 하기 싫다고 우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간식으로 아이를 달래면서 공부를 시켰다. 아내의 양육 방식에 대해 남편이 대화를 시도하면, 그녀는 도와주지도 않으면서 잔소리를 한다고 입을 막아버렸다. 
 
남편은 아이들과 마음껏 놀 수도 없었다. 학원 숙제, 엄마가 내준 숙제를 하느라 아이들이 바빴다. 남편이 애들 얼굴이라고 보고 싶어서 아이들 방문을 열면, 아내가 거실에서 말했다. 애들 방해하지 말고 방에서 나오라고. 
 
“저는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어요. 첫째는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고, 둘째는 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에요. 도대체 아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과연 나중에 애들이 엄마에게 고맙다고 할까요? 아닐 걸요. 지금 애들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밖에서 뛰어놀아야 한다고요. 우리 애들이 공장에서 찍어낸 물건과 뭐가 달라요? 전 아내의 방식에 동의할 수 없어요.” 
 
아내도 가만있지 않았다. 
 
“여보, 당신은 참 마음 편하게 산다. 아파트의 다른 엄마들 이야기를 좀 들어보라고. 우리 애들만 놀이터에서 키우면 나중에 어떻게 되는지 알아? 바보 되는 거야. 우리 어린 시절하고 완전히 다르다고. 애들이 스스로 할 때까지 기다려주다가 애들 기죽으면 어떻게 할 건데? 학교 수업을 못 따라간다니까. 다른 애들은 선행을 다 해서 따라갈 수가 없다고. 
 
그러면 학교에서 전화 온대. 학원 보내라고. 누군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알아? 안 도와줘도 되니까 내게 무슨 문제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 마. 나도 힘들어.” 
 
남편이 다시 말했다. 
 
“그래도 이건 아동학대라고.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여보, 제발 그만해.” 
 
아내는 ‘아동학대’라는 말을 듣고 눈이 뒤집혔다. 남편에게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들었다. 처음 보는 아내 모습이었다. 남편은 절망했다. 다시 예전처럼 지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부터 남편은 아내가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에 불만을 느껴도 표현하지 않았다. 
 
아내가 아이들을 혼내는 소리가 방문 너머에서 들리면 밖으로 나갔다. 매번 아내와 다툴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파트 주변을 한 바퀴를 돌며 끊었던 담배를 다시 입에 물어 보지만 공허한 마음을 달랠 수 없었다. 
 
“남편이 아동학대라는 표현을 쓰다니요. 말도 안 되죠. 그는 아이들에게 무관심한 거라고요. 제가 하루 동안 아이들과 어떻게 지내는지 남편이 알아야 해요. 아이들 준비시켜서 학교에 보내고, 집안일을 하고, 간식을 준비하고, 공부시키고, 저녁 준비를 하고, 애들을 씻기고 재워요. 
 
남편은 집에 와도 도와줄 생각은 안하죠. 이건 아닌 것 같다? 그런 말은 누가 못하나요. 남편은 아이들만 걱정하지 제 걱정은 전혀 안 해요. 저도 지쳤어요.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남편은 버스가 하루에 일곱 번 밖에 들어오지 않는 시골에서 자랐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누나 셋. 셋째 누나와 여섯 살 터울이 지는 막내로 태어나 사랑받고 자랐다. 
 
다른 집 아이들은 어린 시절 농사일을 도와주러 밭에 나갔지만 남편 부모님은 절대로 일을 시키지 않았다. 누나 셋이 일을 거들었다. 남편은 책을 좋아했고, 공부도 제법 잘했다. 시골에서 초등학교 졸업하고 읍내에 있는 중학교에 입학했다. 
 
오고가는 시간이 아까워 영어 단어를 외웠다. 중학교 졸업하고 수도권에 있는 명문고에 진학했다. 성적은 최상위권이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들어갔다. 
 
“공부는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에요. 자기가 하고 싶을 때 하는 거죠. 만약 부모님이 강제로 공부를 시켰다면 저는 절대 공부하지 않았을 거예요. 필요하면 하는 거죠. 아이들이 어릴 때는 밖으로 나가 뛰어놀아야 정상이에요. 언제 놀아보겠어요? 아마 우리 애들은 공부를 못할 거예요. 벌써 질려버렸을 테니까. 더 늦기 전에 이 상황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내는 경찰 공무원 가정에서 자랐다. 아버지, 어머니, 세 살 위 오빠.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순종적인 어머니 밑에서 성장했다. 아내는 차별 받았다고 생각한다. 오빠만 다닌 피아노 학원, 속셈 학원, 태권도 학원. 그녀는 생생하게 기억했다. 그녀가 배우고 싶은 것이 있어도 부모님은 경제적인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허락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혼자 독하게 노력했다. 중학교에 올라간 다음부터는 오빠보다 학교 성적이 좋았다. 관심 받고 싶어 노력한 결과였다. 그러나 부모님은 그녀가 만족할만한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그러다 절망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그녀가 대학 합격 통보를 받은 날, 부모님이 말했다. 대학 등록금은 스스로 마련해서 다니라고. 오빠도 그렇게 했다고. 오빠 역시 그랬다니 부모님의 말에 따랐다. 오빠가 제대하고 단 둘이 식사하는 자리에서 그녀는 짧은 투정을 부렸다. 등록금을 벌면서 학교에 다니기가 너무 힘들다고, 오빠는 힘들지 않았냐고 물었다. 오빠는 대답이 없었다. 그녀는 직감했다. 오빠와 자신의 상황이 다르다는 것을. 
 
그날 저녁, 술에 잔뜩 취해 집에 들어가 부모님에게 처음으로 대들었다. 부모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늘 오빠, 오빠, 오빠였어요. 저는 무슨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패배한 거죠. 독한 마음을 먹고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았어요. 내 아들, 딸은 차별 없이 키울 거예요. 차별하지 않고 공평하게 최선을 다해 교육하려고요. 
 
아이들을 패배자로 키우고 싶지 않아요. 잘 키워서 보란 듯이 세상에 내놓을 거예요. 대학 졸업할 때까지 배우고 싶고,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최선을 다해 지원할 거예요. 그 다음은 자기들이 알아서 하겠죠. 아이들이 독립할 때까지는 어쩔 수 없어요.” 
 
***
 
자녀 교육에 대한 관심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부모 내면에 상처가 도사리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투수가 손으로 꽉 쥐고 던진 공은 포수의 글러브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원하는 방향으로 정확히 던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무줄에 묶어 빙빙 돌리다 끊어진 공은 원치 않는 방향으로 날아간다. 누군가에 몸에 맞아 상처를 낸다. 
 
아내가 던지는 공은 손으로 꽉 쥐고 던진 공이 아니라 고무줄에 묶어 빙빙 돌리는 공이다. 아내의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아이들 마음에 또 다른 상처를 준다. 상처 입은 그녀는 자기답지 못한 방식으로 자녀를 키운다. 
 
그녀 마음에 자리 잡은 감정은 두려움이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지켜내지 못하면 다른 사람과 경쟁에서 지고 말 것이라는 두려움이 그녀를 억누르고 있다. 아이들이 세상이 뒤처지면 안  된다는 엄마의 왜곡된 신념은 두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엄마가 느끼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자녀에게는 엄마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어진다. 그녀의 왜곡된 신념을 건강한 신념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남편이다. 그러나 그는 아내를 도와주지 못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역시 두렵기 때문이다. 부부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 자체가 두렵다. 그것이 아내와 대화를 단절시키고, 아이들이 처한 상황을 외면하게 만든다. 남편에게는 회피 행동이 보인다. 
 
자녀 교육에 대한 갈등이 일어나면 그는 밖으로 나간다. 아내가 아이들에게 언어폭력을 휘두르면 괴로운 마음을 억누르고  상황을 회피한다. 아내에게 아동학대라는 말을 사용했지만, 남편 또한 아이들을 외면하거나 방치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극단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부모 중 한 사람에게 아동학대 당한 성인은 누가 자신을 때렸는지 분명하게 기억한다. 그러나 그가 매질을 당할 때, 자신을 때리지 않았던 부모는 무엇을 하고 있었냐는 질문에 분명하게 대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기억하지 못한다.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은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는 아버지에게 맞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지만 어머니가 당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자신이 맞을 때마다 어머니가 집에 없었을 리 없다. 단 한 번도 같은 공간 안에 있었던 적이 없었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죄 없는 아이는 왜 아버지의 매질을 당해야 했을까? 그를 보호해 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폭력적인 남편과 사는 아내는 두려움으로 인해 남편에게 맞서지 못한다. 고통스러운 상황을 목격하면 침묵하거나 집을 나가 버린다. 아이를 보호해줄 유일한 사람이 도망치는 것이다.  
 
남편이 빨간 망토를 몸에 두르고, 언어폭력에서 아이들을 구해내는 슈퍼 영웅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상황을 피하지 말고 아내와 대화해야 한다. 담배 하나 물고 아파트 주변을 서성거리는 동안, 둘 사이에 해결해야 할 문제는 그만큼 복잡해진다. 더 이상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도망치지 마라. 두려움을 극복하고 아내와 대화하자. 
 
또한 남편은 자녀 교육에 대한 모든 책임을 아내에게 떠맡기고 있다. 아이들 교육에 대한 스트레스는 결코 가볍지 않다. 아이들은 뜻대로 자라주지 않는다. 남편이 뒤로 물러나면 아내의 짐은 무거워진다. 
 
남편이 퇴근 후에 잠시 돌보는 아이들과 아내가 종일 돌보는 아이들은 완전히 다르다. 종일 돌보는 아이들이 훨씬 감당하기 힘들다. 육아는 ‘아내의 과업’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부부의 공동 과업이라고 생각하자. 
 
그러면 남편은 아내에게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아내의 신념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아내 상처를 치유할 사람은 남편이다. 따뜻한 사랑으로 그녀의 상처를 보듬어줄 수 있다.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여 아내와 함께 하라. 
 
이 순간에도 차별 받으며 받으며 성장하는 아이가 있다. 차별 받으며 성장했던 부모가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 역시 자녀에게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예민한 첫 아이를 마음속으로 밀어내지는 않았는가? 자신과 성향이 너무 다른 아이를 밀어내지는 않았는가? 유독 손이 많이 가는 아이에게 모든 관심을 쏟아 부은 나머지 다른 자녀를 돌아볼 여유가 없는 것은 아닌가? 
 
상처 입은 우리가 어느덧 부모가 되었다. 우리 안에 상처를 보듬어가는 힘으로 자녀 마음속의 상처를 치유하는 부모로 성장하자. 그것이 나와 당신과 책임이자 의무이다.  

마음이 잠시 흔들렸을 뿐

“목사 아내가 될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죠. 어느 날, 남편이   목사가 되겠다고 하는 바람에….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그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어요. 목사가 된다고 하는데 이혼할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사모로 살아가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더군요. 어항 속에 사는 느낌이랄까…. 제 표정, 말투, 입는 옷, 아이들. 어느 것 하나 예외 없이 구설수에 올랐어요. 남편은 자기가 원해서 하는 일이지만, 저는 그렇지 않거든요. 사모가 상담을 받는다는 소문이 퍼지면 어떻게 될지…. 아마 목사 자격 없다, 사모 자격 없다고 뒤에서 욕하겠죠. 결국 우리 부부를 쫓아낼 방법을 찾을 거예요. 
 
요즘 이상한 꿈을 자주 꿔요. 자다가 눈을 뜨면 천장이 내려앉는 거예요. 천천히 내려앉는 천장을 보면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요. 깜짝 놀라 일어나면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 있어요. 요즘은 꿈꾸는 횟수가 늘어났어요. 예전에는 한 달에 한두 번 꾸던 꿈이었는데, 이제는 일주일에 한두 번으로 늘었어요.” 
 
P는 금융회사에 다니던 남편과 결혼했다. 그녀의 나이, 스물일곱이었다. 교회에서 만나 4년 동안 연애를 했다. 두 사람은 해외 단기선교로 신혼여행을 대신할 만큼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남편은 회사에서 업무 능력을 인정받으며 승승장구했다. 자녀들 역시 잘 자라주었다. 
 
결혼하고 11년이 지난 어느 날, 남편은 아내를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으로 불러냈다. 분위기를 한껏 잡고서 폭탄선언을 했다. 신학교에 입학해서 목사의 길을 걷겠다고. 아내는 충격을 받았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충분한 시간을 갖고 생각해보자고 했다. 
 
그날부터 아내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하나님께서 남편에게 사명을 주셨는데, 자신이 가로막고 있는 것 같았다. 쉽게 그의 뜻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는, 그동안 자신이 만났던 목사 아내들의 고통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 고통을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기도의 자리를 피했다. 기도하다가 덜컥 하나님이 순종하라고 하시면 도망칠 길이 없기에. 
 
“거실에서 빨래를 개고 있는데, 갑자기 마음에 외침 같은 것이 있었어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죠. 더 이상 질질 끌 수 없다고 생각해서 남편의 결정에 따르기로 했어요. 남편에게 원하는 대로 하자고 말했을 때, 그가 저를 끌어안고 고맙다며 눈물을 흘렸어요. 저도 남편이 참 고마웠어요. 독단적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제 결정을 기다려줬거든요. 두려운 마음은 있었지만 그를 믿었어요. 지금처럼 배려해주고 존중해준다면 어려운 길을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남편이 신학교에 입학하고, 목사의 삶을 준비하는 동안에 그녀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남편이 목사가 된 이후에 S시에 위치한 교회에서 연락이 왔다. 담임목사로 와달라고. 남편은 그녀와 상의한 후에 부임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목회가 시작되면서 아내는 생각하지 못한 문제로 시달리게 되었다. 처음 불거진 문제는 그녀의 옷차림이었다. 교인들이 사모가 너무 화려하게 입는다고 수군거렸다. 그녀는 옷차림으로 남편의 목회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화려한 옷은 장롱 구석에 처박아놓고 편안한 옷을 꺼내 입었다. 
 
한 달의 시간이 흐르자 반대의 소문이 들렸다. 옷차림이 너무 촌스럽다는 말이었다. 아내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모든 사람의 비위를 맞출 수 없었다. 그녀에게 절망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옷차림으로 시작된 말은 점점 삶의 모든 것으로 확대되기 시작했어요. 다른 건 다 참아도 자녀들에 대한 말이 사람들 사이에 돌아다니는 건 참을 수 없었어요. 남편이 자녀 교육에 대해서 설교한 날이었죠.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데, 우연히 식당에서 몇 사람이 하는 말을 들었어요. 
 
‘목사님은 자기 자녀도 제대로 못 키우시는 것 같은데, 우리한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건가?’ 
 
저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마음 같아서는 머리채를 휘어잡고 제대로 싸우고 싶더라고요. 아마 남편이 알면 스트레스 받아서 종일 누워 있을 거예요.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몸이 아파서 누워요. 사람들 때문이죠. 아무리 노력해도 사람들이 변화되지 않는다고 괴로워해요. 그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전 힘들다는 말을 못해요. 저까지 힘들다고 하면 아마 남편이 못 견딜 거예요.”
 
집안일, 자녀 양육은 고스란히 아내가 떠맡았다. 남편은 평일, 주말 구분 없이 새벽부터 늦은 시간까지 바빴다. 아내는 점점 외로움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삶이 통째로 흔들리는 사건이 벌어졌다. 아이들이 중학교에 입학하자, 그녀의 삶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가까운 대학의 평생교육원에 입학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 삶에 활력을 가져다주었다. 여러 사람을 편하게 사귀던 중에 한 남자가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대화를 하면서 서로 호감을 느꼈다. 
 
‘이러면 안 되지’ 하면서 이상하게 빠져들었다. 깊은 대화를 하고, 함께 식사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녀는 남편에게도 말하지 못한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 남자는 경청해주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점점 깊어졌다. 
 
“서로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죠. 그 역시 아내와 사이가 좋지 않았거든요. 출장이 많은 일을 하고 있어서 아내와 함께할 시간이 부족했나 봐요. 제게 외롭다는 말을 자주 했죠. 안아보고 싶다고, 딱 한 번만 허락해달라고. 그의 품에 딱 한 번 안겨봤어요. 성적인 관계를 맺거나 한 건 아니에요.  
 
선을 넘을까 두려웠어요. 그래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그에게  이제 그만하자고, 더 늦게 전에 정리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죠.  그제야 그도 정신을 차린 것 같아요. 제 말에 동의해주었어요. 그 이후로 서로 연락을 하지 않고 있어요. 
 
그런데 그가 떠나자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그를 다시 만나고 싶다는 게 아니에요. 그가 떠난 자리가 너무 크다는 거죠. 제 선택에 후회는 안 해요. 만일 그 관계를 정리하지 못하고 선을 넘었다면 더 후회를 했겠죠.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거든요. 정리하면 죄책감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더 심해졌어요. 
 
가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진 않을까 스스로 걱정이 되요. 제가 인생을 살면서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게 된 거죠. 항상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제게 벌어졌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통을 받고 있어요.” 
 
남자를 떠나보낸 이유는 간단했다. 죄책감 때문이었다. 그에게 마음을 빼앗기면서 그녀는 하나님께 죄책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나님과 그녀 사이에 알 수 없는 벽이 있는 것 같았다. 그에게 이별을 통보한 후에 그녀가 되찾고 싶었던 것은 하나님과 막힘없는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떠난 후에도 하나님과 관계는 예전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무거운 돌이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더 고통스러웠다. 그녀의 고통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남편이 아는 순간, 그의 세계는 무너질 것이다. 그는 교과서처럼 정해진 대로, 주어진 대로, 불평 한 마디 없이 지금까지 살아온 사람이었다. 교회 사람들이 술 한 모금 입에 대는 것마저도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이기에 아내가 다른 사람에게 잠시나마 마음을 줬다는 것을 용납할 리 없었다. 영원히 비밀로 간직하고자 했지만 그 무게를 견딜 수 없었다. 
 
“마음속에서 싸움이 있음을 느껴요. ‘내가 정말 잘못했지. 다른 사람에게 감정을 주지 말아야 했어. 도대체 왜 그랬을까?’  하면서도 정반대의 생각도 들어요. ‘내가 그와 뭘 했는데? 그냥 밥 먹고 차 마신 게 다잖아. 선을 넘은 적도 없고. 마음이 잠시 흔들렸을 뿐 그 이상은 아니잖아. 결국 옳은 선택을 했으니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전혀 없어’ 라고 스스로 다짐하지만 마음이 복잡해요. 
 
하나님은 저를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회개했으니까 용서받은 걸까요? 아니면 정말로 반성하지 않으니까 용서받지 못한 걸까요? 너무 혼란스러워요.” 
 
***
 
그녀는 취약하다. 외로움에 노출되기 쉽다. 고립된 섬에서 외롭게 생활하다가 그 섬에 낯선 남자가 갑자기 찾아왔고, 그에게 매력을 느꼈다. 그녀는 사람들과 함께 머물고 있었지만 의도적으로 가까이 가지 않았다. 가까이 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그녀에게 따뜻하지 않았다. 반복되는 비판 속에서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그녀에게 비판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호적인 사람들은 그녀의 눈에 보이지 않고, 비판적인 사람들만 보였다. 결국 공동체 모두가 그녀를 비난하고 있다고 결론짓는다. 사실이 아님에도 그녀에게는 사실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녀는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수많은 목사 아내들이 지독한 외로움으로 고통 받는다. 사람들의 높은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채, 스스로 결론내리고 절망하면서 마음의 병을 얻는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을 통해 치유하려고 하면 부작용이 생긴다. 위험한 관계로 빠져든다. 
 
남편 역시 목회가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간다. 아내를 세심하게 돌볼 상황이 아니다. 남편이 아내를 돌봐주지 않아서 그녀가 다른 사람에게 잠시나마 마음을 줬다고 하는 것은 무리일까. 사모 역시 목사와 다를 바가 없으니 어떤 위기 속에서도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것인가? 
 
아내가 취약해진 결정적인 이유는 남편과 관계가 건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선순위에서 밀린 아내는 비참해진다. 회사 일이 바빠서 아내를 뒷전으로 미룬 사람을 좋게 평가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아내보다 앞선다고 말하는 사람은 어떤가? 단순하지 않다. 
 
이 과정에서 남편들은 실수한다. 하나님이 아닌 교회 일에 파묻혀서 아내를 뒷전으로 미루는 것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교회 업무를 구분해야 한다. 회사 일로 밀려난 아내나 교회 일로 밀려난 아내나 그 심정은 똑같이 비참하다. 교회 일로 밀린 아내에게 더 고귀한 하나님의 사랑이 임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아내보다 앞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내가 가장 우선되는 성도라는 것을 잊은 것이다. 아내는 그 누구보다 목사의 사랑과 돌봄이 필요한 최우선 순위의 성도이다. 
 
아내는 고립된 섬에서 스스로 탈출해야 한다. 계속 무인도에 스스로를 가둔다면 지나가는 배 위에서 의미 없는 손짓으로 인사하는 사람마저 반갑게 느껴진다. 취약한 상태가 계속된다. 남편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다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한 가지는 그와 공유해야 한다. 
 
“나는 지금 외롭다. 당신이 필요하다.” 
 
외로움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남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건강한 공동체를 찾아서 소속감을 느끼기를 바란다. 목사 아내는 목사 아내의 고통을 안다.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맞는 사모들을 모아서 정기적인 모임을 갖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마저 힘들다면 일대일로 연락을 해서 정기적으로 마음속에 있는 답답함을 털어놓는 것도 좋다. 무인도를 디즈니랜드로 만드는 것은 어렵지만 낭만적인 여행지로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쉽다. 방법은 간단하다. 사람을 기다리지 말고, 사람을 초대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남편이 목사의 사명을 받을 때, 아내 역시 사명을 받은 것이라고 쉽게 결론 내린다. 같은 사명을 받았으므로 목사가 짊어진 사역의 무게를 아내에게 고스란히 짊어지게 한다. 그러나 그녀는 사모가 되기 위해 남편과 결혼하지 않았다. 한 남자를 사랑한 것뿐이다.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을 했고, 따뜻한 가정을 이루기 원했다. 
 
남편이 목사가 된다고 했을 때, 그녀는 동의했다.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어서가 아니다. 그녀가 기꺼이 목사 아내로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가끔 목사 남편보다 더 열정적인 목사 아내들을 만나지만 그녀는 그들과 다르다. 
 
한 남자를 사랑했다는 이유 하나로 견딜 수 없는 인생의 무게를 견뎌야 했다. 그녀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떨까? 화가 나실까, 답답하실까? 하나님은 그녀를 바라보시며 마음 아파하실 것이다. 고통 받는 그녀를 위로하기 원하실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사모로서 자격이 없다고 말하고, 잠시 흔들렸던 그녀를 비난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부탁이다. 그런 말 하지 마라. 그녀를 목사 아내가 아닌 외로움으로 고통 받는 한 여자로 바라보라. 누가 그녀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있는가!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온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비난이 아닌 사랑이다. 

침묵이 만든 세상

“아내는 자기 생각을 표현하지 않을 때가 많아요. 말해서 뭐하냐, 말해도 못 알아듣는데…, 이런 마음인지는 몰라도 같이 사는 게 얼마나 답답한지 모릅니다. 앉아서 이야기를 해보자고 해도 결국 저 혼자 말하고 있어요. 아내는 그저 웃기만 해요. 그러다 기분이 거슬리면 표정이 싹 변합니다. ‘당신 생각 좀 들어보자’라고 하면 말하고 싶지 않다고, 말해서 뭐하냐고 하죠. 
 
저는 정말 답답합니다. 퀴즈쇼에 출현해 문제를 맞추는 사람 같아요. 상자 밖에 나와 있는 꼬리만 보고 그 동물을 맞추는 거죠. 맞추기 쉬운 문제도 있지만, 맞추기 어려운 문제도 있어요. 아직도 풀지 못한 문제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죠. 아내가 원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뭔지 모르는 거죠.” 
 
남편은 결혼 생활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아내는 독립심이 강한 여자다. 남편이 없어도 못하는 일이 없다. 그가 전날 야근을 하고 잠든 주말 오전, 아내는 남편을 깨우지 않고 다섯 살, 세 살인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에 다녀왔다. 잠에서 깬 남편이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왜 깨우지 않았냐고 물으면 아내는 피곤해보여서 그랬다고 말했다. 남편은 그런 아내가 고마웠다. 
 
그러나 말 없는 아내에게 서운할 때가 많았다. 퇴근 길, 예상보다 늦게 오면 그녀의 표정이 밝지 않다. 미안하다고 말해도 소용없다. 그녀는 남편이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식사를 준비한다. 예정보다 늦으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남편은 아내가 왜 기분이 나쁜지 알 수가 없다. 그녀의 불편한 표정을 보는 것이 괴롭다. 
 
아내는 설명한 적이 없다. 그저 온도계를 보고 방의 온도를 알 수 있듯이 남편은 아내의 표정으로 그녀의 상태를 파악한다. 퀴즈쇼는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왜 이렇게 말하기 싫을까요? 아마 남편이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겠죠.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요. 제 성장 과정이 독특했거든요. 어릴 때부터 가진 습관이랄까. 원래 말이 별로 없었어요. 말을 많이 하면 실수하잖아요. 실수는 또 다른 실수를 낳고. 남편이 뭘 요구하는지 알아요. 그런데 자꾸 표현하기 시작하면 그가 더 괴로워질 거예요. 
 
제가 이것저것 요구하기 시작하면 더 희생해야 할 거고요. 남편은 알아서 잘하고 있어요. 결혼 생활도 전반적으로 만족스럽고요. 제가 무리한 것을 요구했다가 갈등이 일어나면 남편이 괴롭겠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참아요. 때로는 ‘귀찮아도 말할까?’ 하다가 ‘말 한다고 이 사람이 다 이해할까?’ 싶어서 마음을 접죠. 제가 살아온 방식대로 살게 되는 것 같아요. 사람은 한 순간에 바뀌지 않잖아요.” 
 
그녀는 어린 시절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아빠가 다른 여자를 만나 가정을 버렸다. 그녀의 나이 일곱 살, 동생은 세 살이었다. 엄마가 고생하며 아이 둘을 키웠다. 함께 할 시간이 당연히 부족했다. 가만히 내버려둬도 엄마는 충분히 힘들어 보였다. 
 
가장 친한 친구가 영어 과외를 받는다고 했다. 과외 선생님이 친구들을 그룹으로 묶어달라고 부탁했다고 하면서 그녀에게 함께 공부하자고 말했다. 그녀는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민했다. 과외 받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엄마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 그녀는 용기를 내어 엄마에게 말했다. 과외 받고 싶다고. 아침밥을 먹던 엄마의 표정이 굳었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한숨을 쉬면서 남은 밥을 싱크대에 버렸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엄마는 표정과 몸짓으로 ‘과외 보낼 형편이 안 된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후회했다. 말하지 않았다면, 엄마가 고통 받지 않았을 것이다. 괜한 말을 꺼내 엄마를 괴롭게 했다. 그 이후부터 그녀는 뭐든 혼자 생각하고 결정을 내렸다. 
 
“참, 웃긴 게 제가 말을 하지 않고 잘 들어주니까 제게 고민상담하는 친구가 많았어요. 저도 제 고민 때문에 힘들었는데, 친구들이 와서 고민을 털어놓더라고요. 친구들이 ‘넌 마음이 따뜻한 사람 같아. 네게 말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져’라고 했어요. 
 
저는 그게 좋은 줄 만 알았죠. 사회생활을 할 때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어요. 다른 직장 동료들이 회사, 상사를 원망하고 불평할 때, 저는 불평 한 마디 안 했어요. 저도 화나고 답답하고 억울한 일을 많이 겪었지만 표현하지 않은 것뿐이에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윗분들이 좋게 보시더라고요. 
 
의도한 상황은 아니었는데, 인정받기 시작했어요. 제 실력을 보여줄 기회도 남들보다 많아졌고요. 모든 생각을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잖아요. 때론 말하지 않는 것이 더 유익해요. 남편이 답답하다고 하니까 고민은 고민이지만요….”  
 
남편은 사소한 것 하나도 가족과 함께 모여 대화하면서 공유하는 가정에서 성장했다. 남편 가족 모임에 가면 별 사소한 이야기를 하면서 가족이 웃고 떠들고 좋아했다. 아내가 살아온 세상에서 남편은 수다스런 사람이었다. 
 
남편은 가족과 대화하는 것이 행복한 삶의 전제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대화하지 않으면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없고, 사소한 일에도 오해가 생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편은 아내에게 더 많은 대화를 요구했고, 아내는 그럴수록 위축되었다. 입을 닫고 침묵하는 것으로 그에게 항의했다. 아내가 출제하는 문제는 갈수록 어려워졌고, 그는 문제를 풀고 싶은 의욕을 잃었다. 
 
서로의 차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가라는 상식적인 명제를 되뇌어 보지만 끊임없이 갈등이 일어났다. 
 
***
 
남편에게는 아내의 과거가 중요하지 않았다. 힘든 어린 시절을 자꾸 떠올리게 하는 것은 그녀에게 마음 아픈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살아온 삶이 궁금했지만 묻지 않은 이유다. 그의 배려였다. 
 
아내는 어린 시절을 남편과 공유할 기회가 없었다. 원래 말이 없는 성향 탓에 묻지도 않은 것을 혼자 떠든다는 것은 그녀에게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내가 살아온 삶을 처음 공유했을 때, 남편은 충격을 받았다. 가장 힘든 시절을 이야기 할 때, 그는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그는 장인어른이 암에 걸려 일찍 돌아가신 것으로 알고 있었다. 결혼 전, 장모님이 그렇게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아내가 살아온 삶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던 남편은 아내의 말이 끝나자 그녀의 손을 잡아 주었다. 
 
남편은 자신을 원망했다. 아내를 배려한다면서 그녀가 살아온 삶에 대해 묻지 않은 것을. 오늘의 아내를 이해하기 위해서 어제의 아내가 중요했다는 것을 인식한 순간, 남편은 허공에 깊은 한숨을 쉬었다. 허공을 응시하는 남편 눈에서 쉬지 않고 눈물이 솟아났다. 
 
어린 시절, 아내가 선택한 전략은 옳았다. 혼자 깊이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는 삶은 그녀를 지켜주었다.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강한 정신력으로 무장하지 않았다면 그녀의 삶은 오늘과 같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현실을 비난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길 수 있었다. 아버지를 원망하거나, 가난을 탓하거나, 자신을 세밀하게 돌봐주지 않은 엄마를 비난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고통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자신을 온전히 책임진 것이다. 그녀는 박수를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제 변화가 필요하다.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전략이 필요한 것처럼 과거를 빛나게 해주었던 전략을 버리고, 오늘 그녀를 빛나게 해줄 전략을 찾아야 한다. 침묵은 과거의 것이다. 대화가 현재의 것이다. 과거에 유익했던 전략을 버리고 오늘의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마음을 열고 남편과 대화해야 한다. 직접 무대 앞으로 나아가 퀴즈쇼의 막을 내려야 한다. 모든 생각을 말할 필요는 없다. 열 번 참고, 한 번은 말해라. 아무리 말하고 싶지 않아도 말해야 한다. 부부의 미래가 달렸다. 
 
한 순간에 변화하기를 어렵지만 일단 시작해야 한다.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부부가 대화한다면 아내는 남편의 지지와 격려를 한 몸에 받을 수 있다.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것은 남편이 대화에 능한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아내가 말할 때, 그는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다.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의 눈물은 남자다운 것이다. 아내의 고통스런 기억을 들으면서 함께 흘린 눈물은 보석이다. 결혼식에 아내 손가락에 끼워준 다이아몬드 반지보다 값지다. 
 
남편은 아내의 어제와 오늘, 내일까지도 사랑한다. 과거, 현재, 미래를 연결할 줄 아는 사람이 시대를 선도하듯 아내의 과거, 현재, 미래를 연결할 때,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이끌어 줄 수 있다. 
 
말없이 서로를 배려해주던 부부, 이제, 수다를 좀 떨라. 대화를 많이 할수록 사랑은 깊어진다. 알면 알수록 사랑스러운 것이 아내다. 알면 알수록 듬직한 것이 남편이다. 그렇다. 대화를 통해 사랑은 더욱 단단해진다.   

나한테 떠넘기지 마

“우리 부모님은 당신을 아들처럼 대해주는데, 당신 부모님은 나를 왜 이런 식으로 대하냐고!”
 
I는 결혼 2년 차, 임신 6개월의 여자다. 남편이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에 복학했을 때, 같은 과 선후배로 만났다. 대학에서 같이 공부하고 같은 회사에 입사했다. 하루 일과는 단순했다. 아침에 출근, 저녁에 퇴근, 퇴근 후에 TV 시청과 취침. 주말이면 마치 계약서에 쓰여진 조항을 지켜나가듯이 살림을 나눠서 했다. 요리는 아내, 청소는 남편. 
 
둘 사이에 대화가 사라진 건 결혼하고 처음 맞이하는 어느 명절부터이다. 바쁘게 사는 탓에 시댁에 자주 갈 수 없었다. 명절이 되어 시댁에 찾아갔을 때, 시부모님의 반응이 차가웠다. 시아버지는 며느리를 보고, “오느라 고생 많았다”라는 상투적인 말을 하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시어머니는 인사도 하지 않고 TV만 보고 있었다. 
 
아들은 그런 집안 분위기가 익숙한 듯 차에서 내린 짐을 거실 한 구석에 쌓았다. 아내는 어색한 분위기를 어떻게 견뎌야 할지 몰랐다. 남편은 시어머니 옆에 앉아 말없이 TV를 볼 뿐이었다. 
 
그녀가 말했다. 
 
“시부모님 사이가 안 좋은 건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남편이 결혼하기 전에 말했거든요. 부모님 사이가 좋지 않으니까 시부모님 사랑은 기대하지 말고, 자기만 보고 살면 좋겠다고.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요. 어차피 남편하고 사는 거니까. 시댁에는 일 년에 한두 번 가니까 그것이 제게 고통으로 이어질지 몰랐죠. 
 
남편은 부모님 사이에 끼기 싫어했어요. 그러니까 스트레스는 제가 다 받죠. 두 분이 서로 다른 말을 해요. 요구가 다르다고요. 남편에게 말하면 저한테 알아서 하래요. 한 분 말을 들으면 다른 한 분이 서운해 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남편이 외아들이라 시댁 식구 중에 상의할 사람도 없어요.”
 
그녀는 시부모님이 혼수에 대해 과도한 요구를 했다고 말했다. 
 
“제 부모님은 남편에게 아무 요구도 하지 않았어요. 딸만 잘 사랑해주라고. 시부모님은 혼수를 같이 한다고 말했어요. 집과  살림살이를 제 쪽에서 거의 다 했어요. 그것도 모자랐는지 시부모님 한복, 그 형제들 한복까지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남편에게 말했더니 하고 싶으면 하고, 말고 싶으면 말라고 했어요. 전 어이가 없었죠. 
 
남편에게 ‘당신이 가서 정리해야 한다’라고 말했더니 시어머니에게 엄청 혼만 나고 왔어요. 시어머니가 말하면 그 말을 곧이곧대로 다 듣고 오니, 너무 화가 나더라고요. 제 부모님은 뭐냐고요. 저를 키우면서 고생을 하셨는데, 시부모님에게 무시당하고, 황당한 일을 다 겪었어요. 어느 날은 엄마가 제 앞에서 속상하다고 막 우시더라고요…. 남편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중간에서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려요.”
 
차에서 남편에게 시부모님에 대한 말을 꺼냈다. 남편 얼굴이 어두워졌다. 아내는 그의 표정에 화가 났다. 아내의 목소리가 커졌고, 강도 높은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당신 마마보이야? 왜 아무 말도 못해? 당신도 성인이야!” 
 
순간, 남편이 이성을 잃었다. 자동차 핸들을 이리저리 꺾으며 한 마디만 더 하면 같이 죽어버릴 거라고 말했다. 차가 신호에 걸려 멈췄을 때, 아내는 차문을 열고 내렸다. 바로 뒤에 오는 택시를 잡아탔다. 친정으로 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온 아내는 침대에 엎드려 서럽게 울었다.    
 
남편이 말했다. 
 
“저도 알아요. 장모님, 장인어른이 얼마나 좋은 분들인지…. 제게 과분한 사랑을 주시죠.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아내도 예쁘고 착하게 잘 키워주셨죠. 그것만 해도 저는 그 분들을 평생 잘 모셔야겠죠. 제 부모님을 생각하면…. 
 
아내에게는 미안한 마음보다는 부끄럽고 수치스런 생각이 들어요. 제 부모님이지만 저도 이해가 안 되거든요. 아내에게도 여러 번 말했어요. 그냥 그런가 보다 하라고. 그녀는 제가 아무런 노력을 해보지 않았다고 말하는데, 저도 할 수 있는 노력은  다했어요. 그러다 포기한 거죠. 
 
제 부모님은 바뀔 분들이 아니에요. 같이 대화하면 제가 상처를 받아요. 그래서 아내에게 ‘너희 부모님과 다른 분들이니까 너무 많은 기대를 하지 말라’라고 부탁했어요. 그런데 아내는 자기가 잘하면 된다며 저 대신 해보겠다고 하다가, 뜻대로 안 되니까 저를 원망하는 거예요. 저는 이렇게 될 줄 알았어요. 우리는 우리대로,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사셔야죠. 최대한 부딪히지 말고.”
 
남편 어린 시절, 아버지는 건축현장에서 일했다. 전국으로 일하러 다녔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심심풀이 고스톱을 치면서 도박에 빠져들었다. 가정의 경제가 기울었다. 
 
어머니는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식당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야 했다. 남편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외삼촌 댁, 고모 댁에 맡겨졌다. 
 
남편이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야 부모님이 조그만 아파트를 마련해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러나 두 분은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웠고, 남편은 공부를 핑계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두 분은 각자 사는 데 바빠서 제게는 관심이 없었죠. 두 분이 왜 같이 사는지 모르겠어요. 어린 시절부터 저는 혼자 자랐어요. 남들은 제가 외동아들이라 사랑받고 자란 줄 아는데 전혀 아니거든요. 
 
외삼촌 집에 살 때였어요. 아침 식사를 하려고 하는데, 외숙모가 밥을 차려주면서 ‘먹고 살기 힘든데, 누나 애까지 데려와서 이게 뭐냐?’라고 말하자 삼촌이 밥상을 뒤집어엎고 제 앞에서 외숙모와 싸웠어요. 
 
외숙모는 대놓고 표현을 하지 않았지만, 제게 항상 눈치를 줬죠. ‘아, 나는 어디가나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구나. 날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라고 느꼈지요. 다시 부모님과 살면서  좋았던 것은 눈칫밥 안 먹어도 되는 것뿐이었어요. 어린 시절부터 떨어져 살아서 서로 정이 없었죠.” 
 
남편은 부모님의 사이가 좋지 않은 것보다 아내가 부모님을 싫어하는 게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아내가 부모님 이야기만 꺼내면, 남편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아내는 그런 남편이 답답했다. 그녀는 남편이 부모님과 관계를 개선해야 더 이상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지만 그는 계속 거절했다.
 
 
***
 
남편의 부모는 상처받은 사람들이다. 상처가 치유되지 않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아들에게 집착한다. 어머니에게는 아들에 대한 미안함과 애틋함이 묘하게 얽혀 애증을 만들어냈다. 아들에게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면서도, 무언가 요구하고 싶다. 아들보다 며느리가 편한 게 아니다. 며느리가 아들보다 덜 불편한 것이다. 
 
남편은 부모에게 상처받았다.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채 아내가 던지는 말은 그의 상처를 손가락으로 후비는 것이다. 쓰라리고 아프다. 사람은 조언이 아닌 사랑으로 변화된다. 남편에게 사랑이 필요하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아이를 생각해보라. 홀로 남겨진 채 오랜 시간을 보냈다면 그가 새로운 부모를 만나 새로운 관계에 적응하기 위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남편은 부모와 떨어져 오랜 시간을 보냈다. 부모를 다시 만났어도 그가 온전히 치유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시간도 충분하지 않았다. 
 
남편의 상처가 여전히 붉게 벌어져 쓰라리다. 부모님 이야기만 나와도 먼저 방어하고 긴장한다. 전투태세를 갖춘다. 그런데 아내가 원하는 것은 시부모님과 친정부모님처럼 다정하게 지내는 것이 아니다. 남편이 아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다. 
 
남편은 자기 상처가 아파서 아내의 상처를 바라볼 여유가 없다. 아내의 말을 충분히 들어주면 그녀는 불편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감정적 여유가 생긴다. 
 
아내가 남편을 바라보는 관점이 시부모님을 바라보는 관점을 결정한다. 남편이 아내를 외면하면 아내는 시부모를 원망하고, 남편이 아내에게 공감하면 아내는 시부모에게 감사한다. 아내는 남편과 결혼했다. 시부모에게 입양된 것이 아니다.      
 
아내가 남편보다 앞서 불편한 상황에 대처하지 못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내 부모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힘들고 어렵겠지만, 남편과 나, ‘우리 부모’라는 인식을 가진다면 어떻게 될까? 남편을 대신해 시어머니와 소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시어머니의 상처가 자신을 꾹꾹 찌를 때마다 남편의 마음을 조금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시어머니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어쩌면 그보다 아내일 수 있다. 남편 상처, 시어머니 상처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내이다. 그녀가 깨달은 바를 신중하고 겸손하게 남편과 공유하면 그의 상처도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남편이 말했다. 
 
“나는 장인 장모님께 감사하고 있어. 날 아들처럼 생각해주시잖아. 우리 부모님도 날 사랑하는 것은 알아. 머리로 이해할 수는 있지만 가슴으로 느낄 수가 없어. 장인 장모님이 날 사랑해주시는 걸 마음으로 느낄 수 있어서 감사해. 당신과 결혼하지 않았다면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겠지. 
 
당신이 임신했을 때, 장인어른을 찾아갔어. 걱정이 된다고, 두렵다고 솔직히 말씀 드렸어. 부모님께 사랑받지 못하고 성장해서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아버님이 나를 한참 바라보시고는 ‘자네, 잘 할 수 있을 거야.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니까’라고 하셨어.” 
 
사랑받고 자란 사람이 사랑할 수 있다. 사랑받고 자란 사람이 미워하고 있다면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당신이 사랑받고 자랐다면 겸손하라. 당신이 태어난 환경은 당신이 노력해서 얻은 결과가 아니라 주어진 것이다. 사랑받지 못한 배우자를 사랑해주기 바란다. 그 역시 자신이 원해서 상처 많은 가정에 태어난 게 아니라 주어진 것이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사랑 받았다면 사랑을 전해주기 바란다. 그를 뜯어고치기 위해 당신이 이 세상에 온 게 아니라 치유하기 위해 온 것은 아닐까? 

결론부터 말하지 마

“아내가 우울증으로 힘들어합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왔어요. 행복한 가정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내가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아요. 침대에 누워 일어날 생각을 안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A는 마흔두 살, 결혼 9년 차 두 아이의 아빠이다. 아내와 교회 청년부에서 만났다. 그는 청년부 회장이었고, 아내는 청년부 임원이었다. 직업도 비슷했다. 그는 초등학교 신임 교사였고, 아내는 이름 있는 입시 학원 영어 강사였다. 아내가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 그가 말했다. 
 
“나, 학교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아보고 싶어.” 
 
그는 공교육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삶이 불안정하더라도 올바른 길을 가고 싶다고 했다. 그것이 하나님 뜻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가 선택한 일은 기독교 대안학교 교사였다. 공교육 교사보다 월급은 적었지만 의미 있는 일이었다.  
 
학교는 집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었다. 일 년이 지났을 때,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학교 이전 소식이었다. 학교 측은 아이들에게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학교를 지방으로 이전한다고 했다. 학교 설립 취지에 공감하는 재력가 한 사람이 땅을 기부해서 시작된 일이었다. 
 
그는 학교를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아내에게 시골에 내려가 살자고 부탁해 봤자 싫어할 것이 뻔했다. 집은 그녀의 친정과 어릴 때부터 다닌 교회와 가까웠다. 거주지를 옮기면 아내는  가족, 친구와 멀어진다. 그는 고민 끝에 주말 부부를 제안했다. 학교에서 선생님을 위한 숙소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아내가 둘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부터 주말 부부로 살기 시작했다. 
 
그는 주말마다 집에 내려와 아내와 가족에게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아내는 그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았다. 주말마다 반복되는 그녀의 짜증과 불평에 지쳐갔다. 그는 아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남편을 의지하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했다. 아내가 불평할 때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내의 짜증은 날로 심해졌고, 마침내 그녀는 입을 닫아버렸다. 
 
아내가 입을 닫은 날을 기억한다. 목사님이 심방을 오셨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아내의 부정적인 생각을 바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심방을 요청했다. 아내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아내는 무슨 짓이냐며 소리를 질렀다.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내의 믿음이 사라져 버린 게 분명했다. 목사님은 감사하는 삶에 대해 설교했다. 남편이 미리 목사님께 상황을 알렸기 때문이다. 목사님이 가신 후에 아내는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기 시작했다. 
 
“저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해결해보고 싶었어요. 교직을 유지했어야 했나, 이사를 갔어야 했나, 둘째를 늦게 가져야 했나….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르겠어요. 아내는 더 이상 제 말을 듣지 않아요. 같이 상담을 받자고 했지만 아내는 그럴 생각이 없었어요.” 
 
***
 
 
남편의 실수다. 과정 없는 ‘결론 제시’는 아내에게 상처가 된다. 남편은 가정을 위해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가를 고민했을 것이다.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의 머릿속은 복잡하다. 그것을 정리하지 않은 채 아내에게 전달하면 결론 없는 대화가 될 것이 뻔하다. 복잡한 생각이 단순하게 정리될 때까지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아내와 아이들과 자신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차례차례 생각한다. 복잡한 생각이 정리되고 윤곽이 잡히면 아내에게 통보한다. 
 
“나, 학교 그만두기로 했어.” 
또 말한다. 
“우리, 주말 부부하자.” 
아내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단번에 거절한다. 그녀는 남편이  이기적이고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남편은 당황해서 설득하기  시작한다. 이건 이래서 그렇고, 저건 그래서 그렇다. 이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느냐고 장황한 설명을 하다 그는 지친다. 아내는 실망한다. 그녀의 표정이 돌처럼 굳는다. 
 
남편이 묻는다. 
“그럼, 당신 생각은 뭔데?” 
아내가 대답한다. 
“몰라. 그런데, 그건 아니야.” 
 
남편은 대화가 안 되는 여자라고 생각한다. 두 번 다시 상의하지 않고 혼자 결정을 내리겠다고 결심한다. 이것이 반복된다. 남편은 생각 없는 여자와 살고, 아내는 이기적인 남자와 산다. 
 
상황을 바꾸려면 ‘결론 제시’가 아니라 ‘과정 공유’가 필요하다. 남편이 가족을 위해 무언가를 결정해야 한다면 복잡한 상황 그대로 아내와 공유해야 한다. 그가 혼자 내린 결정으로 아내를 설득해서는 안 된다. 
 
플랜 A, B, C, D, E … Z까지 말할 각오를 하자.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 실제로는 C, D에서 멈출 테니까. 과정을 있는 그대로 공유하다 보면 아내가 “걱정 그만하고, 당신이 알아서 해”라고 말할 것이다. 믿고 맡긴다는 뜻이다. 
 
고민하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말할 때, 아내는 남편이 가정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자신보다 아내와 아이를 배려한다고 느끼면 그녀는 남편을 위해 희생하고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 역시 가족을 위해 삶의 한 부분을 포기하며 산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또 과정을 공유하면 진심이 전해진다. ‘이 사람에게는 가족이 가장 중요하구나’라는 신뢰를 얻은 남편은 존경받는다. 그래서 “걱정 그만하고, 당신이 알아서 해”라는 말에 담긴 속뜻은 이렇다. 
 
“당신이 우리를 얼마나 걱정하는지 알아. 우리를 위해 가장 좋은 선택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도 알고. 그러니 이제 걱정 그만해. 당신이 결정하면 따를게.”
 
하지만 남편이 아내에게 과정을 공유하는 것은 어렵다. 아버지 세대가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이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가부장적인 문화가 아직도 자리 잡고 있다. 아내에게 시시콜콜하게 일상을 말하는 남편은 수다쟁이로 취급 받는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 없다. 나는 아직까지 아내와 대화를 많이 해서 아내에게 무시당하는 남편을 만나본 적이 없다. 오히려 그 반대 경우를 많이 보았다. 
 
번거롭더라도 최선을 다해 과정 자체를 아내와 공유하기 바란다. 아내를 위해 희생할 것은 희생하고, 포기할 것은 포기하려는 의지를 갖는다면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루며 살 수 있다.  
 
정말로 그렇다. 

상자 안으로 들어와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죠? 저는 이해가 안 돼요. 문자도 남고, 부재중이라고 뜨잖아요. 몇 시간 동안 전화를 안 받으면 당연히 걱정되지 않겠어요?” 
 
남편이 말했다. 
 
“미용실 갔다고 말했잖아. 여자는 남자와 달라. 몇 시간 걸린다고. 아는 언니하고 밥 먹고 머리하느라 확인을 못했어. 문자보고 바로 전화했잖아.” 
 
아내가 남편 말을 잘랐다. 
 
두 사람은 대화를 이어갔다. 
 
“말이 안 되잖아. 밥 먹으면서 문자 확인 못해? 미용실 가기 전에도 마찬가지야. 확인할 시간 있었잖아. 미용실에서 요즘 다 휴대폰 가지고 이것저것 하던데, 당신은 휴대폰을 맡겼다고 했잖아.”
 
“휴대폰만 따로 맡긴 게 아니라, 가방에 넣고 통째로 맡겼다고. 오랜 만에 만난 언니랑 대화해야 하니까.”
 
“참 나, 내가 보통 점심 먹고 전화하잖아.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여보, 내가 어린애가 아니잖아. 전화를 안 받으면 그냥 사정이 있다고 생각하면 안 돼? 미용실에서 나와 바로 전화했잖아.” 
 
“세 시간이나 지난 다음이지.”
 
“됐어. 그만해.”
 
“당신이 걱정 되어서 그런 건 알지?”
 
“내가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는 건 이해했어?” 
 
“아니, 솔직히 이해는 안 가.”
 
“이해가 안 된다고? 내가 계속 설명했는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앞으로 개선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지.”
 
“내가 한 말을 못 믿겠다는 거잖아.”
 
“아니, 믿는데 이해가 안 간다고.”
 
“나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누가 거짓말한데? 그건 논점을 벗어난 거야. 당신이 전화를 안 받은 이유에 대해서만 말해. 주제에서 벗어나지 말고.”
 
“나는 당신이 날 이해 못하는 게 이해가 안 돼. 사실대로 말했잖아. 다음부터는 전화 받겠다고 했고.”
 
“그래. 다음부터는 전화를 받아. 그럼 대화 끝난 거지?”
 
“당신 정말 답답하다. 나 숨 막혀 죽을 것 같아.”
 
J는 결혼 8년차 두 아들의 엄마이다. 남편의 가정적인 모습에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때로 그가 자신을 구속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힘들다고 말했다. 남편은 회사와 집 밖에 모른다. 다른 취미 활동도 하지 않는다. 활동적이고 사교적인 사람이지만 두 아이를 키우며 아내가 힘들어하자 아내에게 우선순위를 두었다. 
 
“남편이 도와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반쪽짜리 고마움이죠. 제가 뭘 해달라고 하면 싫어하는 게 눈에 보여요. 자기 방식이 있다고, 잔소리 하지 않아도 알아서 하니 명령하지 말라고요. 제가 무슨 명령을 하겠어요? 남편이 무시하니까 더 이상 부탁하고 싶지 않아요. 도와준다고 뭘 해놔도 제가 다시 해야 돼요. 부탁한대로 해주면 좋겠는데 자기 방식으로 하니까 저도 피곤하고 힘들죠.” 
 
남편은 계획대로 일이 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의 규칙에는 점심에 아내에게 전화하고 안부 묻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정해진 시간에 전화를 하기 위해 나름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회의 중이거나 출장을 가서 동료들과 차를 마시다가도 잠깐 나와 전화를 한다. 집에서 혼자 고생하고 있는 아내를 위해 다짐한 행동 수칙을 지킨다. 
 
아내가 전화를 받으면 기분이 좋다. 가족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하고 싶다. 그런데 전화를 받지 않으면 기분이 묘하다. 아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걱정이 되면서도 약간은 무시당한다는 생각이 든다. 몇 번 전화해도 받지 않으면 기분이 나빠진다.  
 
남편이 말했다. 
 
“아내가 좀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저는 아내를 통제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제 마음을 표현하는 거예요. 주변 사람들은 아내를 속이면서 자기 시간을 가져요. 저는 그런 사람들이 싫어요. 무엇을 위해 일하나요? 가족을 위해서죠. 제 신념입니다. 
 
가족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제게는 최고의 보상이죠. 아내는 모를 거예요.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만족을 줄 수는 없거든요. 그때 마음이 좀 힘듭니다. 제가 어린애처럼 느껴져서 자책감이 들어요. 그러다 다 잊고 새로운 마음으로 아내를 돕죠. 아내는 잔소리하고 투정하고, 계속 원하는 것을 말하지만 묵묵히 합니다. 완벽한 건 없잖아요.” 
 
아내가 말했다. 
 
“이 사람이 뭘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자기 방식 대로 하고 혼자 보람을 느끼죠. 남편이 상처받을까봐 직접 말한 적은 없지만요. 
 
자기가 하는 일, 한 말에 대해 원하는 방식으로 반응해주지 않으면 얼마나 괴로운지 몰라요. 남편은 자기가 얼마나 가정적인 사람인지에 대해 인정해달라고 하지만 저는 동의할 수 없어요. 제가 고맙다고 느껴야 고마운 거죠. 답답하니까 답답하다고 말하는 거예요.”
 
남편은 대학에서 행정업무를 보고 있다. 각 부서의 업무가 충돌할 경우, 중재하는 역할을 한다. 그는 업무 스트레스가 크다고 말한다. 서로 의견이 좁혀지지 않으면 개인적으로 찾아가 충분한 대화를 하고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회사는 경직되어 있어서 윗사람에 말에 그대로 따라야 했다. 업무지시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대화 역시 상사가 명령하듯 말했다. 
 
“회사라서 어쩔 수 없죠. 명령하듯 말해도 다 따라야 해요. 아내가 명령하듯 말하는 게 싫어요. 도와줘야지 생각하다가도  명령하듯 짧게 말하면 얼마나 기분이 나쁜지. ‘내가 집에서도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나?’ 싶어요. 다정하게 말해주면 좋잖아요. 아내가 말만 예쁘게 하면 무엇이든 도와줄 수 있어요. 제가 여러 번 말했는데 아내는 못 알아듣더라고요.” 
 
아내는 남편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말했다. 뉴스 기사를 보고  의견을 말하면 그는 조용히 비웃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은 자기 생각이 분명했고, 그것을 관철시켰다. 아내 생각은 늘 모자라고 부족한 듯이 말했다. 
 
그래서 그녀는 받은 대로  되돌려 주고 싶었다. 아내가 남편보다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영역은 육아와 살림이었다. 그녀가 남편을 가르칠 수 있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무시당한 감정을 그대로 돌려줬다. 
 
***
 
아이들은 종이 상자 안에 들어가기 좋아한다. 이유는 모른다. 상자 안이 아늑해서 일까 아니면 혼자만의 영역이라 생각해서 그런가? 혼자 들어가 놀 수 있는 상자는 아이들에게 놀이 공원만큼 즐겁다. 
 
상자 안에 들어가 좌우로 몸을 흔들면 상자는 배가 된다. 부모가 상자를 끌어주면 기차가 되고, 아이가 상자 안에서 잠들면 침대가 된다. 상자가 익숙해진 아이는 상자를 자기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상자만 보면 본능적으로 들어가 앉는다. 
 
때론 상자 때문에 싸운다. 좁은 상자 안에 다른 친구가 들어오려고 하면 나가라고 떠민다. 충분한 공간이 있어도 못 들어오게 한다. 다른 친구는 들어가려고 발버둥을 친다.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상자가 찢어진다. 혼자 놀기에는 충분한 공간이지만 둘이 들어가기에는 좁다. 찢어진 상자를 보면서 서로 비난하면서 울고 난리다. 
 
부모는 찢어진 상자를 버린다. 다시 고치고 붙여서 둘이 같이 들어가라고 말하지 않는다. 더 이상 물건을 담는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찢어진 상자는 버리는 것이 맞다. 
 
부부가 서로 만나 결혼하기 전에는 각자의 상자에서 살았다. 혼자 들어가기 적당한 상자이다. 둘이 들어가기는 좁다. 두 사람은 결혼하고 나서 상자를 합친다. 나란히 붙여놓고 노는데 재미가 없다. 
 
남자 꼬마가 말한다. 내 상자에 들어오라고. 여자 꼬마가 말한다. 싫다고. 두 사람은 힘겨루기를 한다. 결국, 가위바위보를 한다. 여자 꼬마가 졌다. 남자 꼬마의 상자로 옮겨간다. 남자 꼬마는 다리를 모으고 공간을 만들어준다. 여자 꼬마는 조심성 없이 막 들어와 자기 상자인 것처럼 행동한다. 불편하다고 다리를 펴다가 상자 모서리 부분이 찢어진다. 
 
남자 꼬마가 말한다. 
 
“조심해!” 
 
자기가 오라고 해놓고 막상 오니까 푸대접이다. 여자 꼬마는 자기 상자로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남자 꼬마는 그냥 있으라 말한다. 둘이 서로 밀치고 싸우다가 상자가 찢어진다. 남자 꼬마는 화가 나서 여자 꼬마의 상자를 발로 찬다. 상자가 찢어진 채로 너덜거린다. 둘은 서로를 비난한다.
 
종이 상자는 생각, 기준을 의미한다. 결혼 전,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지고 살았다. 결혼하면 그것을 합쳐야 한다.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희생할 수 없다. 정확히 절반씩 합치는 것도 불가능하다. 
 
방법은 하나다. 종이 상자를 찢어버리고 새로운 상자를 만드는 것이다. 종이 상자는 힘이 없고 약해서 두 사람이 들어갈 수 없다. 둘이 들어갈 넉넉한 상자를 만들어야 한다. 집착은 하지 말자. 익숙해지면 버려야 한다. 곧 세 사람, 네 사람이 쓰는 상자로 갈아타야 한다. 상자 안에 들어갈 가족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부부가 서로 만나 유연한 사고를 하지 못하면 위기를 만난다. 연애, 결혼, 출산. 단어 몇 개로 표현할 수 있지만 각 단어 사이에 띄어쓰기가 만든 공간 안에는 혼란과 불안이 자리 잡고 있다. 서로 다른 기준을 조정하기 위해 가위바위보를 하면 안 된다. 종이 상자는 미련 없이 쓰레기통에 버리고, 상자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 잠깐 쓰고 버릴 상자를 만들다가 우리는 인생의 끝을 만나게 된다. 
 
남편은 혼자 쓰던 상자를 버리고 아내가 원하는 상자에 새롭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내가 쓰던 상자를 유심히 살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상자 속 아내가 혼자 가지고 놀던 인형과 장난감, 즐겨 먹던 사탕 봉지와 과자 부스러기를 살펴보자. 아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모르면 물어보자. 아내가 원하는 것을 새로운 상자에 채워 넣어라. 그녀가 좋아한다.  
 
아내는 남편의 상자를 발로 걷어차지 말자. 정성이 깃든 상자이다. 버리라고 하면 아까워서 버릴 수가 없다. 버리는 걸 쉽게 생각하지 말자. 지금 당장 버리라고 재촉하면 남편은 그 상자 안에 머문다. 미련이 남는다. 너덜너덜해진 종이 상자 안에서 혼자 산다. 
 
가족과 단절된다. 남편을 모질게 대하지 말고, 따뜻하게 대하라. 새로운 상자로 남편을 초대하자. 그가 새 것과 낡은 것 사이에 걸쳐 있는가? 새로운 상자로 완전히 넘어 올 수 있도록 그를 격려하라.

당신의 눈빛이 무서워서 그랬어

“내가 힘들다고 말하면 날 위로해줘야지. 왜 당신이 더 힘들어 해? 당신을 괴롭히고 있는 느낌이야.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아.”
 
U는 남편 회사 때문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이사 와서 고립된 삶을 살고 있었다. 유일하게 바라보고 의지할 사람은 남편뿐인데 답답하고 힘든 일을 말하면 그는 외면했다. 
 
“여보, 내가 미안해.” 
 
남편이 말했다. 아내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남편은 작은 목소리로 아내를 다독이며 말했다. 아내는 남편 손을 뿌리쳤다. 가벼운 이야기는 주고받았지만, 조금이라도 진지해지면 남편은 대화를 거부했다. 그녀가 서운하다고 하면, 그는 힘없는 목소리로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전부였다. 아내는 점점 힘이 빠졌다.  
 
“제 목소리가 조금이라도 커지면 남편이 위축되는 것 같아요. 미안하다는 말로 상황을 빨리 마무리하려고 하죠. 얼마 전에 너무 화가 나서 남편에게 소리쳤어요. ‘여보! 제발 그렇게 미안하다고 말하지 마. 비난을 하려는 게 아니라 당신과 대화하고 싶은 거라고. 당신, 정말로 내가 무서운 거야? 말해줘!’라고요.”
 
남편은 무서운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무능했다. 술 취해 들어와 집안 살림을 수시로 때려 부수며 행패를 부렸다. 어머니는 삼형제를 키우면서 온갖 고생을 다했다. 그에게 아버지는 증오의 대상이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그는 거친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다. 친구들 사이에서 제법 주먹을 쓴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의 몸집이 커지면서 따르는 친구들도 늘어났다. 어느덧 아버지보다 덩치가 커졌다. 아버지보다 힘이 셌지만 덤비지 못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여전히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렸다. 
 
아버지는 화가 나면 밥상머리에서 따귀를 때리거나 물건을 집어던졌다. 아버지에게 대들 생각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심장이 빨리 뛰고 손에서 땀이 났다. 아버지가 눈을 부릅뜨면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제대를 하고 나서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대들었다. 친구들과 정신없이 놀다가 밤늦게 집에 들어간 날이었다. 어머니의 눈이 파랗게 멍들어 있었고, 입술은 터져 피가 흥건했다. 순간 그는 이성을 잃고 아버지의 멱살을 잡았다. 아버지는 움찔 놀라더니 곧 그의 멱살을 잡고 따귀를 때리기 시작했다. 넘어진 그에게 발길질을 허서 온갖 욕을 퍼부었다. 
 
“이 후레자식이 아버지 멱살을 잡아? 어떻게 하려고? 어디 해봐! 넌 벼룩도 네 손으로 못 죽여. 이 겁쟁이 자식!”
 
그는 어머니 옆에 주저앉아 울었다. 입술이 터져 피가 흘렀다.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면서 주먹으로 벽을 쳤다. 문짝 하나를 손으로 다 때려 부수고 집을 뛰쳐나왔다. 처음으로 아버지의 겁먹은 눈동자를 보았다. 
 
그날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눈을 피했다. 점점 그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는 괴로웠다. 차라리 자신이 따귀를 맞는 것이 나았다. 아버지를 비참하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을 느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집을 나와 따로 살았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미안함이 복잡하게 얽혀 정리되지 않은 채 살아가던 어느 날, 그는 아내를 만났다. 
 
1년 동안 연애를 한 후에 결혼했다. 처음으로 부부싸움을 한 날, 아내는 대화가 잘 되지 않자 남편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날 그는 아내에게 두려움을 느꼈다. 자존심 때문에 표현하지 못했지만 아내가 소리를 지르면 머리가 텅 비어버렸다. 심장이 빨리 뛰고 손에서 땀이 났다. 
 
그의 큼지막한 손과 다부진 어깨도 그 두려운 감정을 몰아내지 못했다. 화난 아내가 아버지처럼 보였다. 아내 눈빛이 그를 짓눌렀다. 그래서 아침에 아내가 깨기 전에 조용히 집을 나섰다. 그녀의 눈을 보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싸우고 싶지 않아요. 아내 눈빛이 무서워서.” 
 
***
 
트라우마trauma, 남편 가슴 깊이 새겨진 상처이다.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코끼리 말뚝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서커스단에서 코끼리를 길들일 때, 사용하는 방법이다. 
 
새끼 코끼리 목에 줄을 건다. 말뚝에 그 줄을 묶는다. 새끼 코끼리는 목에 감긴 줄에서 벗어나려고 애쓴다. 소용없다. 지친 코끼리는 포기한다. 땅에 주저 않아 순응한다. 코끼리 몸집이 커지고 힘이 세진다. 나무를 들이받으면 나무가 쓰러지고, 코로 나무를 들어 올리면 뿌리째 뽑힌다. 아무리 힘이 세도 코끼리는 말뚝을 뽑아 올릴 생각을 못한다. 어릴 때의 기억 때문이다. 땅에 박힌 말뚝은 코끼리 내면에 영향을 미친다.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었어.’ 
 
남편에게 일어난 일이다. 어린 시절 학대 경험은 성인이 된 후에도 영향을 미친다.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의도적인 노력을 해야 벗어날 수 있다. 말뚝을 뽑아 올리려면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 
 
학대로 인한 트라우마는 개인의 내면 안에서 영상처럼 반복된다. 극장 의자에 꽁꽁 묶인 채,  끔찍한 영화의 한 장면을 반복해서 보는 것처럼. 고개를 돌려도 소리가 들리고, 눈을 감아도 그 장면이 떠오른다. 트라우마 징후이다. 남편은 아내와 다툴 때마다 아버지로 인한 상처가 떠오른다. 
 
아버지와 아내, 두 사람은 서로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남편은 아내보다 힘에 세고, 목소리도 크다. 상관없다. 그의 두려움은 아내를 통해 반복되고 있다. 반복을 멈추려면, 반론을 제기해야 한다. 
 
‘무서운’ 감정은 ‘무능한’ 감정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대처할 힘이 없을 때, 사람은 무섭다. 눈앞에 꼬마가 장난감 칼을 들고 휘두르면 무섭지 않다. 마음만 먹으면 꼬마를 제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수부대 요원이 칼을 들고 찌를 자세를 취하면, 무섭다. 무서워서 두 다리가 떨린다.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무능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대상에 무서움을 느낀다. 어떤 사람은 카드빚이 무섭다. 과거에 카드빚을 갚지 못해 고생했다면, 신용카드를 쓰는 게 무서울 것이다. 어떤 사람은 새로운 이성을 만나 사귀는 게 무섭다. 과거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다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무서울 것이다. 
 
무서움을 이겨내려면 무서움의 대상을 정면으로 바라봐야 한다. 나와 그 대상을 비교한다. 누가 더 힘이 센가 객관적으로 따져 본다. 전력을 비교해 보는 것이다. 유치한 짓이 아니다. 코끼리를 묶은 말뚝을 뽑아내고 싶다면, 말뚝을 잡고 흔들어봐야 한다. 얼마나 단단하게 박혀있는지 확인해 본다. 잡아서 흔들어보면 안다. 뽑아 올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어린 시절 남편은 아버지의 학대를 벗어날 능력이 없었다. 지금은 아니다. 더 이상의 학대는 없다. 그가 벗어나지 못한 건 두려움이라는 감정이다. 학대는 사라졌지만 두려움을 남겼다. 벗어날 방법이 있다. 
 
가까이 가서 잡고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흔들어 보는 것이다. 코끼리 말뚝을 잡고 흔들듯이 두려운 감정을 잡고 흔든다. 앞뒤 좌우로 흔들다보면 흙이 밀리면서 공간이 만들어진다. 원심력을 이용해서 말뚝을 뱅뱅 돌리면 공간이 넓어진다. 손힘이 뿌리까지 닿으면 말뚝은 뽑힌다. 
 
남편은 혼자가 아니다. 아내가 도울 수 있다. 아내는 말뚝이 아니다. 남편을 속박하는 사람이 아니라 돕는 사람이다. 말뚝을 뽑으려 하는 손에 힘을 보탤 수 있다.   
 
모든 사람은 결핍이 있다. 결핍을 채우고자 하는 욕구를 느낀다. 누군가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건, 자신 안에 결핍을 보상해줄 사람일지 모른다는 희망 때문일 것이다. 남편에게 아내는 결핍을 채워줄 사람이다. 부부 사이 갈등은 주로 배우자가 가진 결핍에서 비롯된다. 
 
그 결핍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지만 실재한다. 그것을 채워달라고 배우자에게 호소하고 강요하면서 서로에게 고통을 준다. 부부가 절망에 빠지는 이유다. 그러나 이것은 곧 기회다. 배우자가 고통을 호소하는 문제 속에 배우자가 바라는 욕구가 숨어있다. 
 
배우자가 지속적으로 고통을 호소한다면 귀를 기울여 진심을 알아봐야 한다. 부모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배우자가 채워줄 수 있다. 아내가 두려움에 떠는 남편을 이끌어 줄 수 있다는 뜻이다.  
 
아내여, 남편은 나쁜 사람이 아니다. 결핍이 있는 사람이다. 겁먹은 소년이 당신 품에 안겼다. 사내로 키워라. 참고 견뎌라. 그가 진정한 남자가 되면 넓은 가슴으로 당신을 안아줄 것이다. 당신을 사랑하고 보호해줄 것이다. 포기하지 마라. 그날이 멀지 않았다.
 
소년이 치유되면 남자가 된다.

지금 당장 결정해

“남편이 얼마 전에 급성 맹장으로 일주일 동안 입원한 적이 있어요. 집에서 필요한 물건을 챙겨서 병원으로 출발하면서 전화를 했어요. 남편이 평소와 다른 목소리로 시어머니가 오고 계시니 조금 있다가 오라고 했어요. 서로 만나면 불편하니까.  제가 괜찮다고 하니까 남편이 짜증을 내기에 저도 오기가 나서 바로 가겠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시어머니 목소리가 들렸어요. 조금 있다가 오라면 이따가 오면 되지 무슨 말이 많냐고. 옆에 계셨던 거예요. 남편은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전부 다 해요. 그의 마음속에는 제가 없어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상담을 받기로 한 거죠. 
 
남편은 상담 받아보자고 하면 너나 받아보라고 할거예요. 그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하겠죠. 상담이 끝나는 대로 결정하라고 말하려고요. 어머니를 선택할 것인지, 나를 선택할 것인지.” 
 
그녀는 네 살 연하 남편과 결혼했다. 결혼 10개월이 지난 지금 이혼을 생각하고 있다. 짧은 결혼 생활 동안에 그녀는 밀려난 기분이었다. 그녀의 고통은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그녀는 일찍 시작한 사회생활 덕분에 남편보다 더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었다. 남편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갓 시작해서 모은 돈이 거의 없었다. 아내가 괜찮다고 여러 번 말했지만 남편은 자존심 때문인지 어머니가 도와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시어머니가 그녀에게 일정 금액을 입금해주기로 약속했다. 남편과 시어머니가 반복적으로 하는 말을 거절할 수 없었다. 시어머니가 약속한 금액에 맞춰 결혼식, 신혼살림을 준비했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시어머니는 태연하게 말했다. 
 
주기로 한 돈의 절반만 줄 테니 절약하면서 살면 좋겠다고. 아내는 짜증이 났다. 진작 말해주셨으면 결혼식을 그에 맞춰 계획했을 것이다. 신혼살림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스란히 갚아야 할 빚이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에게 답답한 마음을 전했다. 
 
“당신은 알고 있었어?” 그녀가 말했다. 
 
“당연히 알고 있었지.” 그가 말했다. 
 
“왜 미리 말 안했어?”
 
“엄마가 내 생각을 묻기에 나는 괜찮으니까 당신한테 직접 물어보라고 했지.” 
 
“나 빼놓고 둘이 말을 맞춘 거네. 내 반응이 중요했어? 둘이 미리 결정한 거잖아!” 
 
“엄마가 오랫동안 모은 돈이야. 대출받아서 금액을 맞추려고 한 건데 대출을 못 받은 거야.” 
 
“그럼, 진작 말씀을 하셨어야지. 다 당신하고 나하고 갚아야 할 빚이야.” 
 
“갚으면 되잖아. 나는 돈 몇 푼 때문에 당신이 엄마 앞에서 인상을 팍팍 쓰고 앉아 있는 게 더 화가 났어.”
 
“내 표정이 중요해?”
 
“당신이 엄마 무시하는데 화 안나? 내가 장모님한테 그런 적 있어?” 
 
“당신 정신 나갔구나. 지금 우리 큰일 났어. 어떻게 갚아. 미치겠어, 진짜….”
 
“난 당신 때문에 미치겠어. 엄마는 최선을 다한 거야. 어떻게 당신이 엄마한테 그럴 수가 있어?” 
 
“그만하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마. 당신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으니까.”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남편에게는 오직 어머니뿐이었다. 그의 마음속에 과연 아내의 자리가 있는지 의문이었다. 이미 밀려나버린 자신을 인식하는 순간, 그녀는 비참해졌다. 
 
그녀는 남편과 시어머니의 독특한 관계를 이해하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난도 퍼즐조각을 맞추는 사람처럼 그녀는 신중해보였다. 
 
남편의 아버지는 가정에 충실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젊은 날부터 고생이 많았다.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밤늦게까지 집에 들어오지 못했다. 
 
어린 시절, 남편은 하교하면 집이 아닌 식당으로 갔다. 식당은 바빴다. 어머니가 아들을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그는 식당 TV를 보다가, 숙제를 하다가, 혼자 놀다가 잠들었다. 밤늦은 시간 식당 일이 끝나면 어머니의 등에 엎혀 집으로 왔다. 
 
그의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이 남달랐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어머니에게 해주고 싶은 것이 많았다.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면서 그가 여유 있게 생각하자고 했지만 아내의 생각은 달랐다. 남편보다 네 살이나 많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일정에 맞춰 두 사람은 결혼했다. 
 
아내는 어린 시절부터 독립적으로 성장했다. 부모님은 따뜻한 가정환경을 만들어주었지만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했다. 하나 있는 동생은 여섯 살이나 어렸다. 부모님이 일이 바빠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아서 그녀가 동생을 돌봐야 했다. 학원에 다니거나 과외 한 번 하지 않고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에 들어가는 날, 그녀는 부모님에게 편지를 썼다. 대학 등록금은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녀는 과외를 하면서 돈을 벌고, 성적 장학금을 받아서 등록금을 마련했다. 정신없이 사느라 미팅 한 번, 연애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20대가 지나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녀에게 남은 것은 서른이 넘은 나이, 그리고 통장 하나가 전부였다. 인생 허무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고민하고 있을 때, 친구 소개로 남편을 만났다. 그녀는 결혼을 앞두고 부모님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알아서 하면 될 일이었다. 
 
두 사람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러니까 만약에 병원에 제가 먼저 도착했고, 어머니가 병원으로 오고 계시다면 상황이 어떻게 달라질 것 같으냐고 물으신 거죠? 반대 상황이네요. 아… 잘 모르겠어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 아마 남편은 제게 집에 가라고 했겠죠. 서로 불편하다고. 이렇게 말하니까 제가 더 비참해지네요. 남편은 항상 어머니가 먼저라고 생각하니까요. 분명히 제게 집에 가라고 했을 거예요.” 
 
병원에서 퇴원한 날, 남편은 아내에게 오지 않고, 시댁으로 갔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그녀가 수십 번 전화한 끝에 시어머니와 통화가 되었다. 아들 몸이 불편해서 이것저것 챙겨줘야 할 것이 많으니 몸이 다 회복되면 집에 보내겠다고. 
 
다음 날, 저녁 늦게 남편이 보낸 문자를 받았다. 평소와 다르게 존댓말을 사용했다. 일주일 내로 갈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왜 존댓말을 사용했을까?’ 
 
그녀는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남편의 속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가 돌아오면 담판을 짓고 싶었다. 더 이상 이런 식으로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없었다. 마음속으로 여러 문장을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정리된 생각을 종이에 적었다. 종이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예스 아니면 노 둘 중 하나, 그의 대답에 따라 그녀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그 종이 위에 문장은 간단했다. 
 
“나를 선택하든지, 엄마를 선택하든지 둘 중 하나야.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살 수는 없어. 지금 당장 결정해.” 
 
 
***
 
그녀 마음이 조급하다. 자신의 관점으로 남편을 바라보고 성급한 결론을 내리고 싶어한다. 남편에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한다면 그는 아내가 원하는 답을 주지 않을 것이다. 질문 자체를 회피하거나 어머니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둘 중 무엇을 선택하든 아내는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다. 이혼하지 않은 채 결혼 생활을 유지하게 된다면 아내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된다. 남은 결혼 생활은 지옥이 된다. 아내보다 어머니를 사랑하는 남편과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조급하게 남편을 밀어붙여 얻는 결과는 결국 두 사람을 파괴한다. 남은 인생이 달린 문제다. 조급할수록 천천히 생각하고 결정해야 한다. 
 
결혼 생활 10개월, 너무 짧다. 서로 알아가는 시간이 부족하다. 연애 시작하고 결혼식을 올리기까지는 서로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결혼 후에는 두 사람에게 집중되었던 관심이 보다 넓게 확대된다. 원가족에 대한 영향력을 서로 알아가는 시간이다. 결혼 전에도 두 사람은 양가 부모님의 영향력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결혼 이후에 체감하는 원가족의 영향력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다. 
 
남편의 어린 시절을 보라. 어머니에 대한 생각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10개월이 아니라 10년이 필요하지 모른다. 남편이 올바른 길을 찾는 동안, 아내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 
 
아내가 이해하기는 힘들겠지만 남편에게 어머니와 아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양쪽에 최선을 다하고 싶은 그를 이해하자. 남편이 아내에게 일방적인 요구를 하는 이유는 절망감 때문일지 모른다. 어머니를 바꿀 수 없다는 절망감, 그래서 어머니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못한 채 아내에게 희망을 거는 것이다. 
 
아내 쪽에서 노력해주면 무언가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말이다. 옳지 못한 생각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방법이 없기에 아내를 몰아세우게 된다. 그녀의 반박이 심해지면 남편은 자리를 잃고 방황한다. 어머니와 아내,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을 관망한다. 관중으로 전락한 채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두 사람을 동시에 떠나버릴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주고 후회 하는 남편을 적지 않게 보아왔다. 모두가 파괴되는 불행한 일은 언제나 남의 이야기일 수 없다. 10개월은 너무 짧다. 더 살아봐야 한다. 남편의 진심을 알고 나서 결정 내려도 늦지 않다. 
 
아내 역시 자신만의 관점으로 시어머니를 바라보는 것을 바꾸기 어렵다. 그녀의 부모님과 시부모님은 다르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것뿐이다. ‘그럴 수도 있구나…’라고 인정하지 않으면 결코 풀리지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시부모님을 바꿀 수 있는 며느리는 하루아침에 북핵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협상의 달인일 것이다. 현실에는 존재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시부모님은 그 자체로 인정해야 한다. 달리 방법이 없다. 그들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 아내는 절망의 벽을 향해 돌진하는 버스에 올라탄 것과 같다. 
 
그녀가 변화시켜야 하는 사람은 시부모님이 아닌 남편이다. 그는 충분히 변화될 수 있다. 그의 정체성이 확실하면 문제가 풀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아내와 시어머니 사이에 갈등이 일어날 때, 남편은 자신이 협상의 달인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도,  아내도 잘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착각이다. 중재하려고 하면 더 꼬인다. 
 
남편은 협상가가 아니라 상담사가 되어야 한다. 아내가 화가 나서 자신의 어머니를 비난하고 일어난 일에 대해 불평하더라도 그녀의 감정이 풀릴 때까지 중립적인 자세로 상담을 잘 해줘야 한다. 
 
솔직히 말해보자. 남편 자신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모님을 아내가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지나친 욕심이다. “나는 못하더라도 당신은 해야 한다”라는 신념은 아내를 절망의 벽으로 향하는 버스에 태운다. 아내는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 대상이 다른 사람일 때, 남편은 비교적 마음에 여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부모일 때는 마음의 여유는 사라진다. 아내는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하는 중이다. 남편이 협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없다. 그냥 ”그렇구나, 그래서 힘들었겠구나”라고 말해주면 된다. 상담을 잘해주라는 뜻이다. 
 
협상은 아내가 시어머니와 알아서 할 일이다. 아내가 손에 쥔 카드가 없으면 협상이 불가능하겠지만 남편이 상담을 잘 해준 아내는 손에 쥔 카드가 있다. “남편 사랑”이라는 카드다. 그것을 가진 아내는 시어머니의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에 휘둘리지 않는 내공을 갖는다. 
 
남편 마음속에 빛이 들어가지 않은 영역이 있다. 숨겨진 방이다. 문 앞에 “어머니”라고 쓰인 팻말이 있다. 창문 없는 그 방에 노출이 필요하다. 일단 힘껏 열어라. 그래도 힘들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라. 남편을 설득해서 가까운 상담센터에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마저 어렵다면 부부가 함께 모이는 건강한 모임에 나가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다른 부부가 어떻게 사는지 공유하고, 그 모임에서 먼저 고생한 인생 선배에게 조언을 듣는 것도 유익하다. 남편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 서투른 사람이다. 익숙해지면 된다. 조금 더 기다려줄 필요가 있다. 

존재를 공격하면 답이 없다

“어머니가 왜 말도 하지 않고 갑자기 우리집에 오신다는 거야? 당신은 알고 있었어?” 
아내가 말했다. 
“어젯밤에 말씀하시더라.” 
남편이 말했다.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어차피 당신이 알면 못 오시게 할 거 아니야?”
“그래도 말을 해줬어야지.”
“말하면? 다음에 오시라고 할 게 뻔한데, 뭐.”
“황당하네. 나도 쌓인 게 있으니까 이러는 거 아닐까?”
“나도 장모님한테 항상 감사한 것만 있는 건 아니야. 착각은 안 했으면 좋겠네.”
“우리 엄마한테 서운한 게 있다고?”
“당신이 우리 엄마를 그렇게 무시하는데 내가 당신 부모님에게 잘하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지.”
“당신은 정말 이기적인 인간이야. 소름끼친다.”
“당신도 나중에 시어머니 될 거 아니야? 그때 후회하지 말고 지금부터 잘해.”
 
V는 두 아들을 둔 결혼 11년 차 아내다. 남편은 집집마다 담장이 없어 남의 집을 자기 집 드나들 듯 하는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자랐다. 공부를 잘해서 시골에서 도시로 유학을 갔다. 부모님은 소 키우고 농사지은 돈으로 아들을 키웠다. 
 
도시로 한 번 나온 아들은 명절 이외에는 부모님을 찾아볼 여유가 없었다. 열심히 살았고 결과도 좋았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출퇴근이 편하고 학군이 좋은 신도시에 자리를 잡았다.
 
신혼 초부터 그녀는 시부모님 때문에 힘들었다. 시어머니는 아들이 시골에 자주 내려오지 못하는 게 서운했는지 며느리에게 자주 전화했다. 시골에 한 번 내려오라고. 며느리 역시 일을 해서 여유가 없었다. 주말에 남편과 보낼 시간도 빠듯했다. 주말이 되면 거실에 누워서 남편과 영화를 보면서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 것이 유일한 기쁨이었다. 
 
시어머니의 잦은 전화가 부담스러워 부부는 시골에 내려갔다. 시어머니가 남편을 반겨주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싸늘했다. 주말 내내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서운한 감정을 내비쳤다.
 
“니 서방이 바쁘니께 너라도 한 번씩 내려와야 하는 거 아니냐? 아니면 날을 정해서 언제 같이 올 것이라고 말을 해주든가. 명절에만 보는 것은 예의가 아니여. 그렇게 사는 게 아니다.”
 
아내는 답답했다. 남편에게 할 말을 왜 자신에게 하는지 황당했다. 남편은 애지중지, 그녀는 찬밥 신세다. 남편은 애써 미안한 표정을 보이며 어쩔 줄 모른다. 눈치는 있다. 주말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당신 엄마가 나 쳐다보는 거 봤어?” 
그녀가 말했다. 남편은 침묵했다.  
“왜 말이 없어? 어떻게 나한테 이러실 수가 있어? 내가 진작 내려가자 했잖아. 그때마다 바쁘다고 한 건 당신이고.” 
“그만해.”
“당신은 양심도 없어?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
“나도 몰라. 당신이 알아서 해!”
“답도 없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뭐해.”
“무슨 답이 없어? 당신이 해결할 의지가 없는 거지!”
“그만하라고!”
 
갈등은 점점 깊어졌다. 아내는 두 번 다시 시골에 내려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남편은 아내를 두고 혼자 시골에 내려갈 수는 없었다. 아내는 시어머니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벨 소리는 남편 전화로 옮겨갔다. 남편은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다음에 내려간다고 했다. 시어머니가 전화하신 날이면 두 사람 사이가 얼어붙었다. 
 
주말 어느 날, 아내는 평소처럼 속옷차림으로 집에서 영화를 보고 있었다. 초인종이 울렸다. 택배기사 같았다. 안에서 밖으로 소리쳤다. 문 앞에 두고 가라고. 그런데 문 밖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택배기사가 아닌 시어머니였다. 
 
남편이 문을 열어주고, 아내는 급하게 들어가 옷을 입고 나왔다. 시어머니 두 손에 시골에서 가져온 음식이 잔뜩 들려있었다. 남편은 어머니가 서운해하실까봐 황당한 내색을 하지 않았다. 주말 내내 어머니가 편히 쉬고 가시도록 최선을 다했다. 아내는 밀려난 기분이었다. 시어머니가 계신 내내 집안일에 정신이 없었다. 
 
전쟁 같은 주말이 지나고 시어머니가 시골로 내려가셨다. 그날 밤, 둘은 크게 다퉜다. 아내는 이런 일이 또 한 번 일어나면 이혼하겠다고 말했다. 남편도 죽을 맛이었다. 어머니 생각을 바꿀 수는 없었다. 평생 그렇게 살아오셨다. 자식이 얼마나 보고 싶으면 찾아 왔겠나 싶었다. 
 
어머니가 아내를 배려해주면 좋겠지만 어머니는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다. 잘 해주라고 아무리 부탁해도 소용없다. 남편은 아내에게 서운하다. 한 번 참으면 되는데 한 번을 참지 않는다. 싫은 티를 낸다. 여자들이 감정에 얼마나 민감한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서 남편은 난감했다.
 
아내는 남편의 태도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더 적극적으로 시어머니와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고. 자신과 시어머니 사이에 앙금을 풀어주고 새로운 관계를 위해 그가 노력해주기 바랐다. 아무리 미워도 시어머니는 남편을 낳아주고 길러주신 분이 아닌가! 잘 지내보고 싶었다. 
 
***
 
왜 두 사람은 서로 상처 주는 말을 할까? 아내는 남편에게 좋은 방법을 찾아보자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를 비난한다. 아내의 의도와 달리 남편은 다른 방식으로 그녀의 말을 받아들인다. 아내가 말한다. 
 
“어머니가 왜 전화 없이 집에 오신 거야?” 
사실을 묻는 것이다. 그러나 남편에게는 다르게 들린다. 
“당신 엄마는 왜 교양 없이 전화도 하지 않고 우리집에 막 찾아오시고 그래?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거야?” 
아내는 남편에게 상처 줄 의도가 없다. 그러나 상처가 된다.  남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아내 말을 오해한 남편은 말한다. 
“엄마가 아들 집에 오시는 게 뭐 어때서?” 
남편의 의도는 분명하다. 
“당신이 이해주면 안 돼?” 
그러나 아내는 남편 말을 듣고 오해한다. 그녀에게는 남편의 말이 전혀 다르게 들린다. 
“엄마가 아들 집에 오시는 게 당연한 거니까, 평생 그렇게 살아. 시어머니 대접 똑바로 하고. 알겠어?” 
남편이 의도한 게 아니다. 아내가 남편 말을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조차 못한다.  
 
핵심은 단순하다. 서로 상처 줄 의도가 없다는 것이다. 의도가 없어도 상처 받는다. 공을 던진 사람이 사람을 다치게 할 의도가 없어도, 사람이 공에 맞으면 다친다. 아프고 상처가 된다. 그럼 어떻게 할까? 공 던지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사람에게 맞지 않도록, 다치지 않도록 던지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공 던지는 방법을 제대로 배워야 한다. 원하는 방향으로 공이 정확히 날아가도록.
 
두 사람이 던지는 공은 잘못된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다. 공의 방향이 서로의 존재를 향하고 있다. 서로의 존재를 향해 날아가는 공은 상대방 인격을 향한다. “너는 그런 사람이야”라고 외치는 순간, 갈등이 일어난다. 상대방 반응이 뻔하다. “아니, 난 그런 사람이 아니야”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공이 날아가는 방향은 서로의 존재가 아닌 서로의 문제 행동에 맞춰져야 한다. “그 행동이 문제야”라고 말한다면, 배우자의 문제 행동에 대해 대화할 수 있다. 그러나 존재를 향하는 대화는 관계를 파괴한다. 억지스럽더라도 단순하게 표현해보면 다음과 같다. 
 
“당신은 그런 사람이야.” 
아내가 말한다. 
“나, 그런 사람 아니야.” 
남편이 말한다. 
“아니, 당신 그런 사람이야!”  
“아니야, 나 그런 사람 아니라고!” 
“아니, 아니라고! 당신은 그런 사람이야. 예를 들어 볼게. 이 상황에서 그랬지? 저 상황에서도 그랬지? 그러니까 당신은 그런 사람이라고!” 
“아니야! 그 상황도 오해고, 저 상황도 오해야. 그러니까 난 그런 사람 아니지?”
“당신은 그런 사람이 맞다고! 인정해! 빨리 인정하라고! 당신은 그런 사람이야!!”
“난 그런 사람 아니야! 당신이 잘못 알고 있어!” 
 
원래 말하고 싶던 주제는 사라졌다.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사라지고 서로 비난하고 있다. 서로 찌르고 찔리는 잔혹한 대화를 하는 것이다. 
 
존재를 공격하면 답이 없다. 배우자의 행동에 집중해야 한다. 배우자의 행동이 불만이라면 행동에 대해서만 말하자. “그런 행동을 하니까 그런 종류의 사람이다”라는 접근은 절대금지다. 
 
존재가 아닌 행동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두 사람이 말하는 방법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 마치 유학을 떠나서 모국어 대신 새로운 외국어를 배우는 것처럼 부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대화법을 배워야 한다. 주어를 변화시켜보자. 많은 부부는 “당신, 너”라는 말로 대화를 시작한다. 시작부터 공격적이다. 
 
“당신은 그런 사람이야. 그러니까 당신은 이렇게 해야만 해!”
 
상대방은 공격에 맞서 방어하는 자세를 취한다. 어떤 말이든 받아친다. 잘못을 인정할 가능성은 제로다. 그러나 주어를 “나”로 바꾸면 다른 상황이 전개된다. 내가 느낀 감정, 내가 원하는 것을 전하게 된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거야. 만일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다면  나는 이런 감정을 느낄 것 같아”라고 말한다. 상대방을 공격하는 말이 아니다. 공격하지 않으니 방어하지 않는다. 다른 의미로 전달된다. 
 
“나는 어머니가 연락도 없이 오면 당황스러워. 그냥 그렇다고. 당신이 내 마음을 이해줬으면 좋겠어. 만일 당신이 날 이해한다면 난 사랑받는다고 느낄 것 같아.” 
 
그뿐이다. 대화 끝이다. 배우자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고 싶다면 먼저 새로운 언어 방식을 익혀야 한다. 배우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그대로 배우자에게 전달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전달하는 방식을 잘 배우고 연습하지 않으면, 대화 중간에 왜곡된 의미가 전해질 것이다. 
 
올바른 전달 방법을 배우고 연습하자. 표현 방식이 달라지면  배우자의 반응도 달라진다. 언어를 새로 배우는 것은 훈련이고 연습이다. 하루아침에 실력이 쌓이는 것이 아니다. 오래 걸린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끊임없이 말하고 연습하자. 
 
모든 부부는 서로 사랑한다.
진심이 전해지지 않아 상처받을 뿐이다.

남편을 통제할 수 없다

<창세기 3:16> 

하나님께서 여자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아기를 가지는 고통을 크게 하고, 너는 고통 중에 아기를 낳게 될 것이다. 너는 네 남편을 지배하려 할 것이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다.”
 
부부 상담은 첫 세션부터 긴장돼요. 부부가 웬만한 문제로는 상담받으러 안 오거든요. 힘들게 첫걸음을 떼면, 그다음부터는 각본 없는 드라마가 펼쳐져요. 드라마가 어디서 어떻게 시작될지도 모르고, 등장인물이 무슨 말을 할지조차 몰라요. 
 
각본 없는 드라마라도 반복되는 패턴이 있겠죠? 감독, 배우, 줄거리는 달라져도, 장르가 가지는 기본적인 플롯이 있어요. 기승전결이죠. 반복되는 패턴 중에 하나를 다루어볼게요. 
 
“추격자와 도피자” 패턴이 있어요. 부부 중 한 사람은 항상 잡으러 다니고, 나머지 한 사람은 도망을 다녀요. 누가 잡으러 다니고, 누가 도망 다닐까요? 아내가 잡으러 다니고, 남편이 도망 다녀요. 예외도 있겠지만, 주로 그래요. 
 
아내는 남편과 정서적으로 멀어지는 것에 두려움을 느껴요. 남편이 다른 일로 바쁘거나, 시댁의 편을 든다거나, 무뚝뚝하면 큰일 나요. 남편이 무심결에 그랬어도, 아내에게는 긴급상황이죠. 남편에게는 선택의 문제지만, 아내에는 존재의 문제거든요.       
 
아내는 남편과 통(通)하고 싶은 거예요. 연결되고 싶은 거죠. 하지만, 남편은 오해하거든요. 남편은 통제받는다고 느껴요. “아내 부탁 들어줘도 끝이 없다. 어느 선까지만 하고 말자.” 아내는 쫓고, 남편은 쫓기는 비극이 시작되는 거죠.  
 
오늘은 아내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할게요. 
 
남편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 하나님도 아실 거예요. 하지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에 변화가 필요해요. 지금 그 방식으로는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실 거예요.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방아쇠가 당겨지거든요.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상태가 될 거예요. 당신만 그런 게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인류 최초의 아내, 하와도 그랬거든요. 어쩌면, 타락 이후에 반복되는 부부 문제일 수 있어요. 모든 아내들이 그렇다는 말이죠. 
 
  “너는 네 남편을 지배하려 할 것이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결핍을 가진 아내는 자기 방식대로 남편을 지배하고 싶어 해요. 결핍을 가진 남편은 자기 방식으로 가정을 다스리려고 하죠. 여기서 충돌이 일어나요.   
 
아내가 은혜받은 사람이라면, 조심스럽게 부탁드리고 싶어요. 남편을 놓아주세요. 남편을 지배하려고 하면 할수록, 남편은 도망쳐 버릴 거예요.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에요. 아내의 기준과 방식으로 짓누르지 말고, 숨을 쉬면서 자유롭게 돌아다닐 공간을 만들어주라는 부탁이에요. 
 
“내 남편하고 살아보세요. 온갖 나쁜 짓을 다 저지르는 사람이라고요. 술을 먹고 나를 때리고, 경제적인 능력은 쥐뿔도 없고, 심지어 다른 여자를 만나고 돌아다녀요.” 
 
나는 그런 남편에 대해 말하는 게 아니에요. 그런 남편이라면, 나쁜 사람이에요. 내가 마음에 두고, 아내에게 놓아주라고 부탁하는 남편은 그런 남편이 아니에요. 내가 마음에 그린 남편은, 서투른 남편이에요. 
 
내가 말하는 서투른 남편은, “자기 나름대로 한다고 하는데, 아내에게 인정도 못 받고 대우도 못 받는 남편이에요.” 아내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서, 몸값이 한없이 낮아진 남편이죠.
 
하와의 결핍은 어쩌면 아담이 채워줄 수 없는 결핍이었어요. 하나님과의 단절로 일어난, 근원적인 결핍이에요. 서투른 남편이 성숙해지는 동안, 아내는 예수님께 사랑받으셔야 해요. 
 
남편과 통하고, 남편에게 사랑받아도 빈자리는 여전해요. 남편이 손에 쥔 퍼즐 조각은 아내의 빈자리에 맞지 않거든요. 예수님으로 빈자리를 채우셔야 해요. 그러다 보면, 서투른 남편도 있는 모습 그대로 이해해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거예요.  
 
더 이상 남편을 추격하지 마시고, 예수님을 따라가세요. 남편을 추격하면 남편이 도망가지만, 아내가 예수님을 따라가면 남편은 아내의 뒤를 따를 거예요. 말처럼 쉽지 않지요. 불안한 마음에, 뒤를 힐끔힐끔 보면서 남편이 잘 따라오나 확인하고 싶을 거예요. 
 
하지만, 걱정 마세요. 남편이 금방 따라와서 아내의 손을 꼭 잡아줄 거예요. 그런 날, 꼭 올 거예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우리 대화 좀 할까?

주말 아침이었다. 지애는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남편을 깨웠다. 남편은 주말에 무슨 아침 식사냐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지애는 기분이 나빴다. 한 주 내내 남편의 퇴근이 늦어, 한 번도 식탁에서 마주 앉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애는 거실에 앉아, TV를 켰다. 상한 감정을 잠시나마 달래볼 생각이었다. 한 시간 쯤 지나, 남편이 안방 문을 열고 나왔다. 냉장고를 열고, 야채주스를 꺼내 마시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주말 아침 식사는 차리지 마. 당신도 일하느라 고생하는데, 주말에는 늦잠도 자고 해야지.” 
 
지애는 말이 없었다. 남편이 그녀의 감정을 확인하듯 물었다. 
 
“당신 화 났어?” 
 
지애는 TV를 끄고, 말없이 긴 한 숨을 내쉬었다.
 
“우리 대화 좀 할까?” 
 
남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마지 못해 소파에 앉았다. 
 
지애가 물었다. 
 
“당신은 나한테 뭐 하고 싶은 말 없어?” 
 
남편이 말했다. 
 
“무슨 말?” 
 
“당신도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거 아니야?” 
 
“없어, 빨리 본론이나 말해.” 
 
지애는 대화를 통해 갈등을 해결하고 싶었다. 남편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시작부터 마음을 닫은 듯 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편은 반박했고, 변명으로 일관했다. 그녀는 남편을 이해할 수 없었다. 차라리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게 나은 듯 했다.  
 

 
아내는 남편의 방어적인 태도가 불만일 것이다. 자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말을 끊고 반박하는 남편이 답답하게 느껴질 것이다. 
 
왜 남편은 대화를 시작하기 전부터, 방어적인 태도를 취할까? 
 
부부는 말 너머로, 서로의 신호를 주고받는다. 대화를 시작하기 이전에, 신호를 먼저 보내고 감지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아내의 불편한 감정을 남편은 미리 감지했다. 긴장이 높아진 상태에서, 아내는 불쑥 남편에게 대화를 요청한다. 
 
“우리 대화 좀 할까?” 
 
아내가 하고 싶은 말은, 문장 그 자체이다. 남편과 정말로 대화를 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남편이 받아들이는 의미는 아내의 의도와 크게 다르다. 
 
“우리 대화 좀 할까?”라는 아내의 말이, 남편에게 어떻게 들릴까? 아내가 황당하겠지만, 남편은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다. 조금 과장해서 말해보겠다. 
 
“야, 너 이리 좀 와서 앉아봐. 지금 나한테 뭐 잘 못했어? 뭘 잘못했는지도 몰라? 자존심 상하지만, 이제부터 말해줄 테니까, 똑똑히 잘 들어.”
 
남편은 아내와 대화하기 위해 소파에 앉는 것이 아니다. 남편은 마치 교무실에 끌려가는 학생과 같은 심정으로 대화에 임하는 것이다. 
 
교무실에 끌려간 아이는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선생님이 잘못 판단하고, 오해한 것이라 생각한다. 대화의 시작부터 자기방어다. 아내에게 혼날 정도로 잘못한 것이 없다는 것이 남편의 결론이다. 
 
아내는 남편의 태도에 감정이 상한다. 처음 의도와 달리 목소리가 커지고, 표현도 거칠어진다. 남편도 질세라, 논리적으로 사사건건 반박한다.  
 
아내 입장에서는 황당하다. 
 
“그럼 어떻게 대화를 시작하나요? 대화를 하고 싶어서, 대화를 하고 싶다고 말하는 건데….” 
 
문장 표현 자체를 바로잡을 필요는 없다. 문장 너머의 신호가 문제다. 주파수를 잘 맞춰야 오해가 없다. 대화를 하고 싶다면, 대화하고 싶다는 신호를 보내라. 신호는 정직하다. 진심 그대로 전해질 수밖에 없다. 속임수가 통하지 않는다. 
 
아내가 남편과 대화하고 싶다면, 대화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어라. 잘못을 지적하고 바로잡아야겠다는 마음을 가졌다면, 그 자체로 공격 신호가 전해진다. 아내가 공격 신호를 보내면, 말로 대화하자고 말해도, 남편은 이미 전투태세를 갖춘다.  
 
그렇다면, 남편의 잘못은 없는가? 아니다. 남편 역시 자기 방식으로 아내에 대한 마음을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주말 아침 식사는 차리지 마. 당신도 일하느라 고생하는데, 주말에는 늦잠도 자고 해야지.” 
 
남편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아내를 위한 배려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남편은 전혀 의도한 바 없지만, 아내 입장에서는 오해한다. 아내의 정성을 깡그리 무시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부탁한다. 아내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느낀다면, 돌려 말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말하라. 굳이 돌려 말해, 오해를 살 필요가 없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거든,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품고, 가서 아내를 안아줘라. 그보다 강력한 신호는 없다. 
 
아내도 피곤한데, 왜 아침 식사를 차렸겠는가. 남편과의 한 끼 식사가 아내에게 왜 소중한가. 남편의 수고를 인정하고, 수고한 남편에게 사랑받고 싶어서다. 
 
남편이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충 전해도 저절로 전해질 것이라고 생각 마라. 어떻게 오해 없이 진심을 전할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하라. 
 
회사에서도 그러지 않는가. 제품을 잘 만들고 끝이 아니다. 잘 만들었으면, 잘 팔아야 한다. 팔리지 않는 명품은 명품이 아니다. 고객이 손으로 제품을 만져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다. 진심을 전하라. 그래야, 아내가 웃는다. 
 
부부가 서로 대화하기 어렵거든, 신호를 점검하자. 대화보다 신호다. 신호의 발생지는 진심이다. 올바른 신호는 올바른 진심에서 나온다. 진심을 담아, 말하라. 그러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남편이 목사님을 욕합니다

남편은 모태신앙입니다. 어릴 때 시아버지가 큰 병으로 죽다 사셨어요. 그 과정에서 남편이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교회와 목사님에 대한 반감이 심합니다. 제 앞에서 목사님 욕을 합니다. 교회 흉을 보고요. 감당하기 힘들 만큼 괴롭습니다. 남편이 점점 싫어집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남편을 싫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누구나 교회와 목사를 욕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도 정치를 잘못하면 욕을 먹는데, 목사라고 예외가 있으란 법은 없지요. 목사라도 잘못하면 당연히 욕먹어야지요. 욕먹고 고치면 좋은데, 고치기 힘듭니다. 그러니까 욕하는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내가 목사니까 편하게 말하는 겁니다. 
 
혹시 목사가 잘못한 게 없는데 남편이 목사를 욕하면 그대로 두세요. 잘못 없는데 욕먹는 목사는 하나님께 인정받습니다. 목사에게 좋은 일입니다.  
 
문제의 본질은 남편이 교회와 목사를 비판하는 것 자체가 아닙니다. 남편의 비판이 아내에게 수용되지 않는 상황 속에 진짜 문제가 있습니다.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부부의 문제로 잠시 다뤄보겠습니다. 신앙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신앙에 가려 문제의 본질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회사를 다닌다고 해보겠습니다. 남편이 아내의 회사와 사장을 욕하면 아내의 기분이 어떨지 궁금합니다. 교회와 목사를 욕하는 것만큼 기분이 나쁘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남편을 싫어하는 겁니다. 남편의 신앙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태도와 가치관, 말투 같은 게 싫을 수 있습니다. 상호작용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앙보다 급한 건 서로의 관계입니다. 서로를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서로의 생각에 공감하지 못하는 겁니다.
 
회사와 사장을 욕하는 것보다 교회와 목사를 욕하는 것이 훨씬 더 기분 나쁘다면, 남편을 조금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남편이 예수님을 욕하는 건 아니니까요. 혹시 예수님을 욕하더라도, 그런 남편을 받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내가 예수님 사랑해서 방어하느라 기분 나쁜 건데, 괜찮습니다. 예수님은 이해하십니다. 조금만 참고 기다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남편이 교회와 목사를 비난하는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남편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을지 모릅니다. 아내가 아는 것만큼 간단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남편이 교회 욕하는 소리 듣기 싫을 겁니다.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부탁드려봅니다. 마음 단단히 먹고 남편이 왜 그렇게 교회를 싫어하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만 참고 들어주세요. 다 듣고 나서 말해주세요. 
 
“그랬구나. 많이 힘들었겠다. 그런 상처가 있는데, 나 교회 다니는 거 허락해줘서 고마워. 나도 고마운 마음 담아서 당신 위해서 기도할게.” 
 
구체적인 상황은 몰라도, 내가 부탁한 말이 효력 있을 거예요. 적어도 남편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셨으니까요. 하루아침에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을 거예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해요. 남편의 비판이 계속되면 마음이 어렵겠지만, 포기하지 말고 힘껏 들어주세요. 
 
아내가 고생이 많습니다. 혼자 신앙생활하는 것도 서럽고 힘든데 무리한 부탁해서 죄송합니다. 예수님이 그 마음 아십니다. 아내의 기도, 예수님이 들어주실 겁니다. 예수님의 따뜻한 사랑으로 남편의 마음이 녹아져서 두 분이 행복하게 신앙생활하시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남편의 옛날 사진을 발견했어요

오래전에 오랫동안 만났던 남자 친구에게 받은 상처가 있어요. 저와 사귀는 도중에 옛 여자 친구를 만났고, 그 사실을 숨겼어요. 그로 인해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을 만나 오면서 늘 마음 한구석에 불신이 있었어요. 상대방이 좋아해 주는 것에 익숙했어요. 몇 번의 이별을 겪고, 남편을 만났어요.
 
남편은 저를 사랑해줬어요. 만난 지 2주 만에 남편은 저 모르게 예식장을 예약했어요. 나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주는 남편에게 마음이 열렸어요. 서로 돕는 배필이라 여기면서 별다른 다툼 없이 잘 지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제가 우연히 남편이 옛 여자 친구와 찍은 사진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저를 만나기 전에 찍은 사진이라고 했고, 본인도 기억 못 할 정도라고 했어요. 그런 흔적을 보인 것에 대해 미안해했고, 더 큰 사랑으로 보듬어 줬어요.
 
하지만, 저는 그날 이후, 아무 때나 그 장면이 떠올라요. 괴로워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예전의 상처와 겹쳐져서 남편을 의심하게 돼요. 남편도 제가 만나왔던 사람들처럼 날 속일까 봐요.
 
나한테 이렇게 잘하는 것을 보면, 예전에 다른 누군가에게도 이렇게 잘했겠지. 질투가 나면서 남편에게 퉁명스럽게 행동할 때가 있어요.
 
제 결혼생활은 겉보기에 아무 흠이 없어요. 이럴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해요. 제가 옛 기억으로 힘들어하고 그로 인해 불신의 틈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아 죄책감을 느껴요. 자꾸 나쁜 생각을 하게 되니까요. 제 안에 치유되지 않은 상처로 인해 남편을 아프게 하고 있지는 않은가 불안해요.
 
생각의 끈을 잘라내고 과거로부터 해방되고 싶어요.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자매님이 느끼는 의심과 불안은 정당한 감정이에요. 자책하거나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현재 결혼 생활이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나는 자매님이 지금보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상처는 시간이 흘러도 저절로 치유되는 게 아니에요. 고통스럽더라도 마주해야 해요. 자매님도 이미 알고 있듯이, 과거에 받은 상처는 치유되지 않은 채 자매님 내면 깊숙한 곳에 머물러 있어요. 그 상처를 직면하고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상처는 아물지 않은 채 방치된 거예요.
 
상처를 외면하면, 사람은 대안을 찾아요. 상처를 만회할 방법을 찾거든요. 다른 누군가를 만나 확인하고 싶었던 거예요. 세상 어딘가에는 진실된 사랑이 있지는 않을까. 하지만, 진실된 사랑은 없었어요. 그들은 같은 방식으로 자매님에게 고통을 주었어요.
 
우연히 남편의 사진을 보게 되었을 때, 자매님이 상처를 가두고 굳게 잠가 놨던 방문이 열린 거예요. 아수라장이 된 채로 열려서 감당할 수 없었던 거죠. 불안하고 의심스러운 마음, 연이어 반복되는 감정의 기복, 극단적인 생각. 모두 자연스러워요. 방금 전까지 남편만은 예외였는데, 남편도 그들과 같은 사람이 된 거죠.
 
자매님은 딜레마에 놓였어요.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남편을 그들 모두와 같은 사람으로 취급할 수 없으니까요. 남편은 다정하고 좋은 사람이에요. 자매님께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이 지점에서 자매님의 죄책감이 시작돼요. 조심스럽게 자매님의 감정을 추론해 볼게요.
 
“이렇게 좋은 사람과 행복한 결혼 생활을 시작했는데, 내가 의심해서 모든 것을 망쳐 버리지는 않을까. 나만 참으면 우리는 아무 문제가 없어. 이 남자는 좋은 남자야. 내 상처 때문에 오해하는 거야. 그럼, 안돼. 다 지난 일이잖아. 의심하는 네가 나빠. 나는 왜 이럴까.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과거에 매여 고통받고 있어. 내 문제야. 나만 참으면 돼.”
 
자매님, 그럼 안돼요. 절대로 참으면 안 돼요. 표현하셔야 해요. 표현해야 자매님이 살아요.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자매님도 남편도 더욱 고통받아요. 억누르는 능력을 키우지 말고, 표현하는 능력을 키워주세요. 억누르다가 새어 나오는 감정은 관계를 파괴해요. 뚜껑을 열어놓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 해요.
 
말처럼 쉽지 않을 거예요. 두 분은 서로 사랑하지만,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울 수 있어요. 결혼한 지 3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서로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기에는 조금 불안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남편은 자매님을 만난 지 2주 만에 예식장을 예약했어요. 자매님과 상의하지 않았어요. 매우 드문 일이에요. 자매님이 그 당시 느꼈던 감정을 남편에게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었을 지 묻고 싶어요. 그만큼 솔직히 표현하기 힘들겠지만, 포기하지 말아주세요.
 
남편과 치유되는 과정을 공유해주기를 부탁드려요. 있는 그대로의 감정, 진행되고 있는 감정을 표현해주세요. 표현하려는 의지와 함께 표현하는 방식도 중요해요. 쉽지는 않지만, 자매님이 노력해주시리라 믿어요.
 
주어와 동사를 바꿔주세요. 주어는 “나”로, 동사는 “그렇다고.”로 표현해주세요. “나 그렇다고.”라고 표현하면 성공입니다.  표현 방식을 의식하지 않고 느껴지는 대로 말하면, 주어가 “너”로, 동사는 “그랬잖아.”로 말하게 돼요. “너 그랬잖아.”라고 말하면 관계가 망가져요.
 
예를 들어 볼게요.
 
“당신이 의심스러워. 그 여자한테도 다정했었지? 이런 오해받고 싶지 않았다면, 사진을 잘 처리했어야지. 내가 사진을 보게 만들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잖아. 그래서, 내가 고통받잖아.”
 
여기서의 주어는 “당신, 너”이고, 동사는 “그랬잖아.”에요. 이런 식으로 표현하면, 배우자는 반박할 말이 필요해요. 비난으로 들리기 때문이죠. “당신이 그랬잖아.”라고 말한 거니까, “아니, 나는 안 그랬어.”로 답하고 싶을 거예요. 서로 고통받을 수밖에 없어요.
 
주어를 “나”로, 동사를 “그렇다고.”로 바꿔볼게요.       
 
“나는 지금 당신을 오해하고 있어. 당신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마음과 치유되지 않은 내 상처 사이에서 나는 고통받고 있어. 그러고 싶지 않은데, 하루 종일 생각나. 의심과 불안으로 고통받고 있는 나를 이해해줄 수 있어주면 좋겠어. 내 감정 숨기지 않고 당신에게 말하고 싶어. 나 당신이 필요해. 나 일어설 수 있을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줘, 여보.”
 
여기서의 주어는 “나”이고, 동사는 “그렇다고.”에요. 배우자는 반박하지 않아요. 오히려, 책임감을 느껴요. 돕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될 거예요. “나 그렇다고.”라고 말했으니, 배우자는 “너 그렇구나. 나 몰랐어. 내가 도와줄게.”라고 생각해요. 힘든 시간이지만, 서로 격려할 수 있어요.
 
말처럼 쉬운 건 아니지만, 나는 자매님이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해주기를 바라요.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자매님은 고통받아요. 남편에게 하기 어렵다면, 먼저 예수님께 솔직하게 말하세요. “나 그래요, 예수님. 나 상처 입어서 괴로워요. 의심하고 불안한 나를 보며 자책해요.” 예수님은 자매님에게 말씀하실 거예요. “내 딸 그렇구나. 많이 힘들구나. 내가 도와줄게.”
 
오늘은 말이 길어졌어요. 두서 없이 길게 말해서 미안해요. 하지만, 내 진심은 전해졌기를 바라요. 나는 자매님이 상처에서 벗어나서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하나님과 남편에게 온전히 사랑받기 충분한 자매님, 오늘 하루 행복하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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