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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대인관계

담담하게 너의 길을 가거라

다른 사람의 시선을 
외면할 수 없는 너의 심정을 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람들과 부대끼는 
너를 보면 내 마음이 아프단다
 
사람 관계는 항상 어렵단다
상대방이 있기 때문이란다
 
모든 것이 
너의 잘못일 수 없단다
 
네가 완벽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너를 반대하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단다 
 
때로는 의연하게 
너의 길을 가야 한단다
 
복음이 없는 사람을 마음속으로 무시하고 
우월감을 느끼라는 말이 아니란다 
 
너의 신념과 가치가 모든 사람에게 
존중받을 수 없다는 뜻이란다
 
모든 사람과 
잘 지낼 수는 없단다
 
너를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란다
 
모든 사람의 인정을 받기 보다 
나의 인정을 받거라
 
나의 사랑 안에 굳건히 서서 
다른 이들의 적대감을 견뎌내거라 
 
너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려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두려워 말거라 
 
너는 절대로 
끝장나지 않을 거란다 
 
담담하게 너의 길을 가거라 
내가 너를 책임질 것이다 
 
사랑한다, 나의 자녀야  
 
이들은 마을이 세워진 언덕의 벼랑까지 
예수님을 끌고 가서 밑으로 밀쳐 
떨어뜨리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갈 길을 가셨습니다.
누가복음 4:29-30

사람에게 서운해하지 말거라

너의 마음이 
낮은 곳을 향하기를 원한다 
 
네가 땀 흘려 이룬 결실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거라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발견하거든 
주저하지 말고 돕거라
 
그들의 필요를 돌아보고 
베풀 수 있는 만큼 베풀 거라
 
나는 너를 통해 
나의 사랑을 흘려보내기를 원한단다
 
그들이 너에게 고마워하지 않아도 
서운해하지 말거라
 
정작 네가 도움이 필요할 때
아무도 너를 돌아보지 않는다고 
절망하지 말거라
 
내가 차고 넘치도록 
너에게 부어줄 거란다
 
네가 사람에게 베푼 것이 
아무것도 아닐 만큼 
넘치는 사랑을 부어주고 싶구나
 
나의 사랑은 
기브 앤 테이크가 아니란다
 
사람에게 서운해하지 말거라
너의 섬김은 사람에게 보상받을 수 없단다
 
너의 성품으로 잠깐 사랑하지 말고
나의 사랑으로 오래 사랑하거라
 
네가 대가 없는 사랑을 베풀 때
나는 말할 수 없이 기쁘단다
 
너는 나를 닮은 
소중한 나의 자녀란다 
 
사랑한다, 나의 자녀야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누가복음 6:38

나는 갈등이 싫어요

나는 갈등이 싫어요.
혼자 참아요.
 
거절당할까 두렵고.
버림받을까 두렵고.
상황 달라질 리 없고.
그러니까 참죠.
 
가끔 답답해요.
나를 너무 쉽게 보는 거 아니야.
나를 얼마나 우습게 생각하면
저런 말을 하지.
말 안 하니까 더 그러나.
 
마음 단단히 먹고 내 말 하고 싶죠.
교회에서 배운 게 있잖아요.
순종해라. 참아라.
빛과 소금 되라.
말문이 막혀요.
 
뭐가 옳은 걸까요.
평생 이렇게 살 수는 없잖아요.
이러다 내가 죽겠어요.   
 
참지 마세요.
뭣 하러 참아요.
생각나는 대로 말하세요.
그 사람 상처받는 말든 독한 말 쏟아부으세요.
 
내가 상처받았는데
다른 사람 배려할 일이 뭐예요.
욕하고 싶으면 욕하고
소리 지르고 싶으면 소리 지르세요.
 
그 사람 말고 하나님께.
놀라셨죠?
하나님께 먼저 말하세요.
사람 말고.
 
복싱으로 몸 푸는 사람
샌드백 먼저 쳐요.
프로 선수는 감정으로
주먹 휘두르지 않아요.
상대방의 움직임을 보고
정확히 주먹을 꽂아요.
 
자기 생각 말하기 전에
샌드백 먼저 치세요.
하나님, 이 말 해야 할까요.
잽 잽 잽.
그래, 이번에는 말하자.
라이트 훅.
그래, 이번에는 참자.
블로킹.
 
사람이 내 마음 알아주나요.
어림없어요.
기대한 만큼 실망해요.
하나님이 내 마음 알아주시죠.
솔직히 말하세요.
 
하나님 앞에서
다른 사람 욕하는 게 이상한 가요.
하나님 앞에서
착한 척하는 게 더 이상해요.
 
시편 자세히 읽어보세요.
다른 사람 욕으로 꽉 찼어요.
참 신기하죠.
욕으로 시작한 기도가
찬양하는 기도로 끝나요.
하나님께 말하고 털어버리는 거죠.
원수를 대신 갚아주신다는 데
다른 말 더 필요한가요.
 
하나님께 말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질 거예요.
마음이 편해지면
판단할 수 있을 거예요.
이건 말해야 한다.
이건 말할 필요 없다.
 
절대적인 기준 없어요.
말 많이 하는 사람에게는
참으라고 하실 거고
말 안 하고 참는 사람에게는
참지 말라고 하실 거예요.
 
잘못된 판단이면 어떻게 하냐고요.
괜찮아요. 정확한 판단은 못 내려요.
실수해도 하나님이 돌봐주세요.
우리 하나님 해결사예요.
 
가시 빼고 말하는 사람 당당해요.
감정에 휘둘리지 않거든요.
거절 당해도 타격 없어요.
 
그냥 그랬다는 거죠.
그래서 화났다는 것도 아니고.
의도는 없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는 데
상대방이 뭐라 말하겠어요.
내가 느낀 감정인데
그렇게 느끼지 말라 하겠어요.
 
꾸준히 샌드백을 치세요.
나도 쉬지 않고 샌드백을 쳐요.
못한 말 산더미 같은데
어디 말할 데가 없어서.
한바탕 땀 흘리면 시원해져요.
 
가끔 링 위에 오르잖아요.
내던진 주먹 빗나가도 자책 마세요.
용기 내서 주먹 날린 자신을 축하해주세요.
 
역습 당해 쓰러지면 어떻게 하나고요.
열 셀 때까지 일어나면 되죠.
만약 못 일어나면요?
괜찮아요. 누워서 잠시 쉬세요.
 
패배를 깔끔하게 인정하는 사람,
그 사람이 진정한 승자에요.
더욱 강해져 돌아올 테니.

우리는 용서할 겁니다

용서 못하는 사람을 
다그치는 사람이 있어요. 
 
단호하게
큰소리로 말해요.
 
성경에 쓰여있잖아. 
용서해야 천국 가.
 
나도 알아요.
묻고 싶어요.
 
용서 못한 사람이
불편한 이유가 뭔가요.
 
용서 못한 사람을 
용서 못한 건 아닌가요. 
 
용서 못한 사람도
용서해주세요. 
 
당신이 용서한 만큼은 
나도 용서했어요. 
 
세상 모든 사람을 
완전히 용서한 사람처럼
말하진 말아주세요.
 
용서했다고 한 말
믿어 볼게요.
 
그 힘이 어디서 나왔나요?
용서할 수 있었던 힘.
 
당신인가요. 
주님인가요. 
 
당신 안에서 나왔다고 하면
나 뒤돌아서서 갈 거예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주님 안에서 나왔다고 하면
나 참았던 말할 거예요.
 
자기 능력으로
용서한 것도 아니면서 
무슨 생색인가요. 
 
말이 심했죠. 
용서해주세요. 
 
다른 사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부탁드려요.
진심으로. 
 
당신도 아프고
힘들었잖아요.
 
잊지 말아 주세요. 
고통의 기억을.
 
마음 가다듬고 
내가 하고 싶은 말할게요.   
 
나 오늘 용서한다.
다 용서했다.
 
용서를 선언하지 마세요. 
그건 구호일 뿐이에요.
 
선언하고 싶다면
하나님 앞에서만 선언하세요. 
 
성급하게 사람 앞에서
선언하면 부작용 나요.
 
용서는 성취가 아니라 
방향이에요.
 
그리스도를 향해 걷다 보면
우린 용서할 겁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건
고통스러워요. 
 
주님을 사랑하는 건
행복하죠.
 
원수가 미울수록
주님을 사랑하세요.
 
원수를 묵상하지 말고
주님을 묵상하세요.
 
주님을 사랑하면
원수를 사랑하게 돼요.
 
아직 용서 못했는데
나는 주님을 사랑하는 건가요.
 
내 사랑은 가짜 아닌가요.
이렇게 모자란데.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조급할 필요 없어요.
시간이 필요 해요. 
 
복수의 길을 돌아 나와 
용서의 길로 들어섰다면 
이제 안심하세요. 
 
좁고 험하다고
포기하지 말아주세요. 
 
저 끝에
나와 당신의 주님이
미소 짓고 계시니까요.

오래 참음에 관하여

“미워하는 사람이 있어요. 
참아야지, 받아줘야지
다짐하지만 하루를 못 가요.
 
성경에서 
오래 참으라고 하잖아요. 
나도 오래 참고 싶어요. 
 
하루도 못 참고 
다시 미워하는 
나 자신이 실망스러워요.” 
 
도를 닦듯이 
오래 참으려고 노력한다면  
하루가 아니라 잠시도 못 버텨요. 
 
오래 참으라는 말, 
다른 종교에서도 가르쳐요. 
착하게 살면서 참으라고 말하죠. 
 
복음과 종교
무엇이 다를까요?
맞아요, 은혜에요. 
 
오래 참음은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은혜의 결과에요.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하려고 애쓴다고 
사랑할 수 없어요. 
 
잠시 잠깐 마주치기만 해도 
화가 나는데 어떻게 해요. 
 
그 사람은 내가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도 몰라요. 
 
매일 똑같은 방식으로
기분 나쁘게 말하는데   
어떻게 견디겠어요. 
 
하루하루 은혜받고 
은혜받은 만큼 받아주는 거예요. 
 
성격 같았으면 
소리 지르면서 싸울 일
따뜻하게 말하고
지나가는 거죠.  
 
은혜가 마르면 싸우고
은혜가 넘치면 받아주는 거예요. 
 
무작정 희생하고 
참으라는 말은 아니에요. 
 
은혜받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세요. 
 
은혜받은 사람의 말은 
따뜻해서 잘 들리거든요. 
 
미운 감정으로 
내던진 말에는 
가시가 돋쳐 있어요.
 
따가워서 
받아낼 수 없어요.
냅다 받아치죠. 
 
진심이 담긴 말은 
매끄럽고 푹신해요. 
 
엉겁결에 받아들고 
한참을 품고 있어요. 
 
안 듣는 것 같아도 
두고두고 생각하거든요.  
 
잘 지내다 
또 폭발하면요?
 
괜찮아요. 
과정이에요. 
 
내일 아침 은혜받고 
다시 시작하시면 돼요. 
 
은혜받으면서 
하루하루 살았는데 
지나보면 오래 참은 거예요.
 
넘어지고 쓰려져도 
포기하지 않았잖아요. 
 
지나온 모든 날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해요. 
 
오래 참으려고 애쓰지 말고 
은혜받으려고 애쓰세요. 
 
하나님은 
오래 참은 당신보다 
지금 이 순간의 당신을 
사랑하시니까요. 

도둑을 지키는 여자

희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 앞에 앉았다. 
 
아파트 복도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녀는 손에 쥔 야구방망이를 단단히 잡았다. 혹시라도 누군가 문을 열면, 사정없이 내려칠 작정이었다. 
 
그녀가 열여덟 살 때였다. 
 
“희수야. 너 잠 안 자고 뭐 하는 거야?” 
 
인기척을 느낀 엄마가 현관 앞에 우두커니 앉은 희수에게 물었다. 
 
희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잠을 안 자고 뭐 하냐고 희수야?” 
 
희수는 현관문을 똑바로 응시한 채,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도둑 지키잖아.” 
 
엄마는 당황했다. 
 
“도대체 무슨 소리 하는 거야, 희수야?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빨리 가서 자.” 
 
“엄마는 상관하지 마.”
 
다음 날, 희수는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정신과 의사는 희수에게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말했다. 
 
“요즘 고등학생들이 스트레스가 많아요. 입시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희수의 엄마는 불안했지만, 의사의 말을 신뢰하고 싶었다. 
 
정신과에 다녀온 이후에도, 희수는 한 달에 한 번꼴로 밤에 일어나, 도둑을 지켰다. 
 
그녀의 엄마는 시간이 빨리 흘러, 희수가 이상한 증상에서 벗어나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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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 달에 한 벌꼴인지 아세요? 제가 생리하는 주기마다 도둑을 지킨 거예요. 엄마는 같은 여자면서, 그것도 모른 거죠. 얼마나 무심한 여자인지 아시겠죠? 저한테 관심이 없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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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주섬주섬 내리는 토요일 아침이었다. 
 
“희수야. 그만 좀 자고 일어나. 너는 주말마다 그렇게 늦잠을 자니? 엄마, 지금 오빠랑 백화점에 다녀올 테니까, 일어나면 아침밥 챙겨 먹어.” 
 
희수는 샛눈을 뜨고, 시계를 확인했다. 엄마를 힐끔 보고는, 짜증 난다는 듯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뒤돌아누웠다. 
 
“고등학생이 잠을 저렇게 자.” 
 
현관에서, 오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게 말이다. 어쩌려고 저러는지 모르겠어.” 
 
엄마가 장단을 맞췄다. 
 
“한심하다, 한심해.” 
 
오빠가 남긴 마지막 말에, 희수는 정신이 또렷해졌다. 잠이 오지 않았다. 
 
그녀는 머그컵에 우유를 따라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코코아 분말 가루를 세 숟가락 넣었다. 차 스푼으로 코코아를 저으며, 창가에 섰다. 주섬주섬 비가 내리고 있었다. 
 
머그컵 안의 코코아가 입술에 닿았을 때, 쇠로 된 현관문이 쿵쿵 울렸다.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손에 들고 있던 코코아를 놓쳤다. 머그컵은 바닥에 내동댕이 쳐지고, 코코아는 사방팔방으로 튀었다. 그녀는 얼어붙은 채,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저 택배인데요, 반품 있다고 해서 왔습니다. 안에 계시나요?”
 
그녀는 숨을 죽였다. 
 
인터폰 쪽으로 천천히 걸었다. 카메라에 비친, 남성은 검은색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녀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랫도리에서 뜨거운 느낌이 들었다. 코코아 위에 주저앉아서 그런 게 아니었다. 때아닌 생리가 시작된 것이다. 
 
“뭐야, 이거? 집이 왜 이렇게 난장판이야?” 
 
오빠가 말했다. 
 
“희수야! 이게 뭐야.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엄마가 말했다. 
 
사방으로 튀겨서 굳어버린 코코아 자국은 차갑게 식어버린 핏자국처럼 참혹했다. 마치 살인사건의 현장을 방불케 했다. 
 
“이게 무슨 일이래?” 
 
희수의 엄마는 물걸레로 사방에 새겨진 코코아 자국을 닦아내면서 짜증스럽게 말했다. 
 
침대에 누워 울고 있는 그녀를 그대로 내버려 둔 채였다. 
 
자정이 넘은 시각, 그녀는 불안해서 견딜 수 없었다. 앞 베란다 창고에서, 오빠가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야구방망이를 꺼냈다. 정자세로 현관 앞에 앉아, 밤을 지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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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꿔요. 지금까지 여러 명의 상담자를 만나봤지만, 내가 왜 이런 꿈을 꾸는지 정확히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나는 왜 이런 꿈을 꾸는 걸까요?” 
 
그녀는 꿈에 대해 말했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내 방에 들어와요. 검은 모자에 검은 마스크, 나는 그 남자의 얼굴을 볼 수 없어요. 그 남자는 내 존재를 알지 못해요. 
 
나는 이 모든 것을 내 옷장에서 지켜보고 있어요. 그 남자는 옷장으로 다가와, 옷장 아래 서랍을 열죠. 나는 살짝 열린 옷장 틈으로, 그 남자를 마주 봐요. 
 
그 남자는 서랍을 열고, 내 양말을 훔쳐서 달아나요. 그 남자가 떠나고 나면, 나는 내 양말을 돌려달라며 엉엉 울죠.
 
이 꿈이 무슨 의미일까요?” 
 
그녀와 나 사이에 묘한 긴장이 흘렀다. 그녀는 차분하게 나의 대답을 기다렸다. 궁금해서 던진 질문이 아니었다.  
 
그녀의 의도가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내게 퀴즈를 낸 것이다. 내가 안전하고 믿을만한 사람인지 그녀의 방식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그녀는 상담실에 남을 수도, 상담실을 떠날 수도 있었다. 그녀는 이미 여러 명의 상담자를 만나봤고, 그동안의 상담이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새로운 상담자를 끊임없이 찾아다닌다. 그녀는 왜 다른 내담자들처럼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말해주지 않는가? 알 수 없었다.
 
나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떠올랐다. 
 
첫째, 그녀가 그렇게 질문한 의도를 묻는다. 의도를 묻는 과정에서, 그녀 자신만의 고유한 “의미”를 찾아낸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녀가 무슨 일을 겪었고, 왜 그런 꿈을 꾸는지 듣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내 앞에 꼿꼿하게 서 있는 그녀는 자신이 겪은 일을 순순히 말해줄 의도가 없어 보였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판단하냐고 묻는다면, 나도 모르겠다. 그녀의 눈빛은 내게 답을 맞힐 수 있겠냐고 묻는듯했다. 
 
둘째, 그녀의 질문에 직접적으로 대답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를 건강하게 설정하기 위해, 잠시 동안 교육적인 대화를 나눈다. 
 
상담자는 초능력자나 점쟁이가 아니다. 내담자가 모르는 것을 상담자가 알 수는 없다. 
 
내담자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정리해서, 보다 명확하게 내담자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 상담자의 역할이다. 
 
내담자가 상담자의 능력을 테스트한다거나, 상담자와 힘겨루기를 한다면 상담의 결과가 좋지 않을 것이다. 
 
교육적인 대화를 통해, 내담자가 상담자를 바라보는 관점에 변화를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도 효과가 없을 것 같았다. 
 
만약 내가 그런 태도를 취한다면, 그녀는 예의 바르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자리를 떠날 것이다. 
 
셋째, 솔직하게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때로는 상담자 스스로가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는 것이 상담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간다. 
 
상담자가 솔직하게 자신을 개방했기 때문에, 내담자가 적극적으로 자신을 개방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이다. 
 
단, 기술이 아닌 진심을 담아야 한다. 진심이 없으면, 상담자는 실제로 무능한 사람이 된다. 그러나, 진심을 담으면 무능함도 실력이 될 수 있다. 
 
내가 “모르겠다.”라고 솔직히 말한다면, 그녀가 어떤 결정을 내릴까? 
 
상담은 즉시 종결될 것이었다. 내가 그 말을 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상담실을 나가버릴 것만 같았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그녀가 원하는 방식으로 대화하는 것이다. 그녀가 묻는 말에, 군더더기 없이 대답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틀린다면? 
 
어차피 그녀는 떠날 것이다. 
 
만약 내가 맞춘다면? 
 
몇 세션을 더 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다. 
 
그것이 내게 실제적인 유익이 있을까? 
 
아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상담은 일대일로 비밀리에 진행된다. 그녀가 나를 유능한 상담자로 인정해준다고 해도 다른 내담자들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왜 그녀와의 상담을 지속하고 싶은가? 
 
자존심 때문일까? ‘너도 다른 상담자들과 다를 바 없구나’라는 식으로 나를 평가하는 것이 불편한 것일까? 
 
전혀 아니라고 말할 수 없지만, 단지 그런 이유에서 상담을 지속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나는 왜 그녀와의 상담을 지속하고 싶은 것일까? 
 
이미 중년이 되어버린 그녀는 이제껏 자신을 안전하게 개방한 적이 없었다. 
 
그녀가 퀴즈를 멈추지 않는 이상, 상담실을 전전하는 기약 없는 여정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멈춰야 했다. 그리고, 진실을 말해야 했다. 그곳에 진정한 자유가 있었다. 
 
꼭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그 일을 해주기를 바랐다. 
 
그녀는 유능한 상담자들을 십수 년 간 만나온 터였고, 기적은 없었다. 무능한 내가 그녀를 마주한 이유였다. 유능한 상담자들을 거치고 거쳐, 나에게 흘러든 것이다.  
 
제아무리 유능한 상담자라도, 스스로 상담실을 떠나려는 내담자를 변화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상담자는 상담실 밖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는 무모해지기로 했다. 
 
정면돌파를 선택한 것이다. 
 
“당신은 어릴 때, 성적인 공격을 받았을 거예요. 옷장에 숨을 수 있는 나이였다면, 아주 어린아이였겠죠. 
 
끔찍한 일을 저지른 사람은 아는 사람은 아닐 겁니다. 익명의 사람일 거예요. 
 
당신이 고등학교 때 겪은 일은, 최초의 사건이 아닐 겁니다. 하지만, 당신은 나에게 그것이 최초의 사건인 것처럼 말했어요. 의도적으로 나를 혼란스럽게 한 것이죠. 
 
그러나, 그것은 당신이 나에게 제시한 유일한 단서이자 힌트였을 겁니다. 내가 문제를 맞추기를 바란 것이죠. 
 
고등학교 때, 당신이 인터폰 앞에서 마주한 남자가 쇠사슬을 끊은 거예요. 그 바람에, 지하 감옥에 가둬놓은 괴물이 탈출한 것이죠. 
 
당신의 내면 깊숙이 숨겨진 상처를 그 사건이 끄집어 낸 겁니다.  
 
당신이 어린 시절 끔찍한 일을 겪은 그날에도, 비가 내렸을 가능성이 높아요. 
 
평소에 나는 절대로 내담자가 말하지 않는 내용을 앞서서 추측하지 않습니다. 내담자의 인격을 무시하는 행동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나는 지금 무모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당신이 원했기 때문에, 내 멋대로 당신을 추측해버린 겁니다. 
 
자, 이제 당신 차례입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실 건 가요? 아니면, 평소처럼 예의 바르게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상담실을 떠나버리실 건가요?” 
 
그녀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그녀가 침묵한 몇 초의 시간 동안, 나는 늙어버릴 지경이었다. 
 
그녀는 자세를 고쳐앉고, 차분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다섯 살 때였어요.” 
 

 
“희수야. 엄마 나갔다 올 테니까, 잠깐만 집에 있어.” 
 
“어디 가는데, 엄마?” 
 
“갑자기 비가 오잖아. 오빠가 우산도 없이 학교에 갔어. 오빠 비 맞으면 안 되니까, 엄마가 데리러 가려고. 잠깐만 집에 있어. 우리 희수 씩씩하잖아.” 
 
희수의 오빠는 그녀보다 일곱 살이나 많았다. 열두 살 남자아이에게 비를 맞히지 않으려고, 다섯 살 난 여자아이를 집에 혼자 남겨둔 것이었다. 
 
엄마는 우산을 챙겨들고 나가면서, 실수로 문을 잠그지 않았다. 단독주택이라 길 가던 사람이 담장 너머로 고개를 들면 거실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희수는 거실에 누워 TV를 보고 있었다. 
 
갑자기 거실 문이 열리고, 도둑이 들어왔다. 검은 모자, 검은 마스크를 쓴 강도는 희수를 덮쳤다. 어린 희수는 고통스러웠다. 하반신이 잘려나가는 듯했다. 
 
비에 젖은 남자의 냄새는 역겨웠다. 남자는 희수를 바닥에 내버려 두고, 안방으로 들어가 돈이 될 물건들을 훔쳐서 달아났다. 
 
희수는 가만히 일어나, 옷장으로 걸어갔다. 피에 젖은 속옷을 벗어서 세탁기에 넣고, 새로운 속옷으로 갈아입었다. 
 
“희수야! 이게 무슨 일이야?” 
 
엄마는 안방으로 달려 들어가, 잃어버린 물건들을 살폈다. 장롱 안에 곗돈이 사라진 것을 알고 나서, 엄마는 하얗게 질려버렸다. 
 
희수를 째려보며 말했다. 
 
“넌 그때 뭐하고 있었어?”
 
희수는 소파에 엎드린 채로 말했다. 
 
“여기 이렇게 누워 있었어.”
 
엄마가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이 바보 같은 계집애야. 도둑이 들었으면, 얼른 도망쳐야지. 거기 그러고 있으면 어떻게?” 
 
오빠가 옆에서 거들었다. 
 
“내가 있었으면, 야구 방망이로 콱 그냥 때려 눕혔을 텐데….” 
 
희수는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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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충격에 손발이 떨렸다. 손에 쥐었던 만년필을 놓치고 말았다. 만년필이 그녀의 발 앞으로 굴러떨어졌다. 곧바로 몸을 숙여 만년필을 집어 들 여유가 없었다. 
 
그런 내 심정을 이해라도 한다는 듯이, 그녀는 차분하게 몸을 숙여 만년필을 집어 들었다. 만년필을 건내주면서, 그녀가 말했다. 
 
“처음이에요. 다른 누군가에게 그날의 일을 말해 본 게….”
 
나를 진정시킨 것은 그녀였다. 그녀의 도움으로 나는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녀가 따뜻한 표정으로 나를 기다려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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댐의 수문이 열리듯, 그녀는 자신 안에 담겨 있던 이야기를 방출했다. 
 
“엄마는 오빠밖에 몰랐어요. 내가 정신과를 들락거릴 때, 오빠는 유학 준비를 하고 있었거든요. 
 
단독주택을 팔아서, 복도식 아파트로 이사를 했어요. 그 돈으로 오빠 유학 자금을 만들어준 거예요. 오빠는 지금 잘 먹고 잘 살아요. 
 
엄마가 저한테는 뒷바라지 못해준다고, 독일로 유학 가라고 했어요. 거기는 학비가 없으니까, 아무래도 수월하지 않겠냐고. 
 
가서 일 년쯤 지났나? 오빠가 전화를 했어요. 엄마가 아프니까 귀국하라고.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까, 나보고 돌봐주라는 거죠. 
 
오빠가 그랬어요. ‘나는 결혼해서 신혼인데, 어떻게 아내에게 병수발을 들게 하냐’고요. ‘네가 와서 돌봐야 한다’고.  
 
저도 참 어리석었죠. 엄마가 아프다는 말에, 걱정이 되더라고요. 귀국해서 엄마를 돌봤어요. 그렇게 십 년이 지났죠. 
 
엄마 돌아가실 때까지 내가 병수발을 다했는데, 엄마가 내 앞으로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으셨어요. 오빠 앞으로 전부 돌려놓고 세상 떠나셨죠. 
 
내가 이렇게까지 해도, 소용없는 건가? 엄마한테는 오빠밖에 없는 건가? 많이 슬프더라고요. 
 
장례식장에서 오빠가 그랬어요. ‘고생했다. 이제 네 인생 살아라.’라고. 
 
답답했어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할지 몰랐거든요. 내 인생을 갈아 넣어서, 엄마를 보살핀 것 같았어요. 세상을 떠난 엄마가 부러울 정도였으니까요. 
 
엄마 돌아가시고, 오빠가 아파트를 팔았어요. 오피스텔을 장만해주더라고요. 그래도, 양심은 있구나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오피스텔이 오빠 명의로 되어 있었어요. 
 
지금은 연락도 안 하고 살아요. 오빠를 보고 싶지 않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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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내게 용서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어떻게 하면, 엄마를 용서할 수 있는지 물었다. 세상을 떠난 엄마가 미워질 때는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어떻게 하면, 오빠를 용서할 수 있는지 물었다. 성경을 읽거나, 말씀을 들을 때마다 오빠를 미워하는 마음 때문에 양심이 찔린다고 말했다. 
 
‘용서라니….’ 
 
내 안에 분노가 일어났다.
 
상담이 궤도를 이탈했다. 상담자, 목사와 같은 호칭이 얼굴에 엉겨 붙은 거미줄 같았다. 
 
나 역시 사람이었다. 상담자의 기능을 벗겨내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 그녀 앞에 마주 섰다. 
 
나는 말했다.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은 당신이 아닙니다.” 
 
그녀가 움찔했다. 
 
“네?”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은 당신이 아니라 그들입니다.”  
 
다소곳하게 앉아 있던 그녀는 몸의 균형을 잃었다. 고개를 숙이고 이마를 짚었다. 점차 그녀는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어갔다. 
 
그녀는 이내, 폭포수와 같은 눈물을 쏟아냈다. 감옥에서 풀려난 괴물이 떠내갈 만큼, 강력한 물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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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좋아해 본 적이 없어요. 남자에 대한 호감조차 없었거든요. 젊을 때, 내가 좋다고 따라다닌 남자들이 있었는데, 번거롭게 느껴져서 떼어내는데 힘들었어요.”
 
그녀가 살아온 인생에서 연애와 관련된 기록은 단 한 줄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남자와의 사랑, 이것은 그녀가 살아온 인생과 전혀 관련 없었다. 그곳에는 정말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남자분들이 가까이 다가오면, 저는 부담스러워서 멀리하고 싶거든요. 때로는 일상생활에서 부딪힐 때가 있어요. 그러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얼마 전에, 교회에서 행사가 있었거든요. 같이 봉사하다가, 어느 남자 성도하고 사소한 의견 충돌이 있었어요. 너무 사소해서 그분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채지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복잡한 감정으로 빠져들었어요. 괴로워서 미칠 지경이었죠.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었어요. 곧바로 집으로 와 버렸죠. 수면제를 한 알 먹고, 바로 잠들었어요. 미쳐버릴 것 같았거든요.”
 

 
“여기 의자는 뭐죠?” 
 
A가 말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남성이었다.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그녀가 말했다. 
 
“그럼, 이것 좀 치우죠. 사람들이 지나는 자리에 이런 게 있으면 다칠 수도 있잖아요.” 
 
“제가요?” 
 
“아, 아니에요. 제가 말실수를 했네요. 그냥 제가 치울게요.” 
 
A는 허리를 굽혀 의자를 들어 올렸다. 몇 걸음 걸어서, 구석진 곳에 의자를 가져다 놓았다. 
 
그녀는 의식적으로 A와 멀리 떨어져 있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A는 그녀의 노력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교회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안내한다고, A가 계속 나서는 바람에, 그녀와의 동선이 겹쳤다. 한꺼번에 사람들이 몰려들어오는 탓에, 자리를 안내하는 사람들이 분주했다. 그 과정에서, A와 그녀가 살짝 부딪혔다.
 
A가 전혀 의식하지 못할 정도의 충돌이었다. A는 여전히 자기 자리에서 서서, 밝게 웃으며 다른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웃을 수 없었다.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이 그녀를 짓눌렀다. 
 
그녀는 함께 행사를 준비하는 여자 전도사님께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다는 말을 남기고 급하게 자리를 떠났다. 
 

 
“나는 남자 상담자인데, 그건 괜찮으신 가요?”
 
내가 물었다. 
 
“교회에 계신 목사님들에게는 불안한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아요.” 
 
그녀가 말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글쎄요. 목사님들은 조금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아무래도 일반 사람들하고는 다르신 분들이니까요. 물론, 그렇지 않은 목사님들도 계시기는 한데, 대부분 좋은 분들이니까요.”
 
“그렇군요. 한 가지만 더 묻고 싶어요. 내가 당신의 선택을 받은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목사님도 상처받으셨잖아요. 적어도, 나를 비난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솔직히 제가 이상한 사람이잖아요.  
 
내 인생 밑바닥에 숨겨둔 진실을 누가 감당할 수 있을까. 내가 그 말을 내뱉은 순간, 내 자아가 파괴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느꼈어요. 
 
목사님의 책이나 설교를 듣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용기를 냈죠.  
 
막상 목사님을 만나니까, 또다시 두려운 거예요. 예의 없는 행동이었지만, 다른 상담자들에게 했던 방식으로 목사님을 테스트 한 거죠. 
 
사실 저는, 처음부터 목사님께 제 이야기를 전부 꺼내놓고 싶었어요. 목사님이 내 꿈 이야기를 듣고, 엉뚱한 이야기를 하셨더라도, 제 이야기를 하고 말았을 거예요. 
 
상처받은 사람만이 상처받은 사람의 심정을 알겠죠. 목사님은 이해해주실 것 같았어요. 목사님도 아프셨으니까요.” 
 
탐정놀이는 어리석은 것이었다. 
 
나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점차 희미해졌다. 두 눈에 눈물이 고여, 초점이 흐려졌다. 
 
나는 도무지 한 마디도 내뱉을 수 없었다. 그러면, 내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잠시의 공백을 두고, 나는 감정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상담 과정에 충실했다. 
 
상담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나의 미천한 능력과는 상관없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미 자신을 개방하기로 결단했고, 변화의 의지 또한 누구보다 강했다. 
 
무엇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진실한 마음이 상담을 더욱 효과적으로 이끌었다. 
 
상처는 완치될 수 없지만, 예수님의 사랑과 말씀으로 상처를 돌볼 수 있다는 나의 견해에 그녀는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그녀와의 상담을 종결하는 순간이 생생히 기억난다. 나는 그녀의 삶을 축복했고, 그녀는 밝은 미소를 남겨두고 상담실을 떠났다. 
 
물가에 아이를 내놓는 부모처럼 마음 한편으로 두려웠으나, 그것은 잘못된 감정이었다. 그리스도가 그녀를 지켜주실 것이다. 나는 안심해야 했다. 
 
“예수님은 여기 좁은 상담실 안에 머물지 않으신다. 이곳을 떠나는 그녀와 동행하신다. 상담은 종결되어도, 사랑은 종결되지 않는다. 그리스도는 영원히 그녀와 함께 하신다.” 
 
이것이 나의 고백이었다.  
 
그녀가 떠나고, 나는 창가에 서서 한참을 머물렀다. 마음속으로 간절한 기도가 흘러나왔다. 나의 진심이 예수님께 전해지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녀를 떠나보낸, 저녁이었다. 
 
피곤한 몸으로 집에 들어서자, 다섯 살 난 막내딸이 뛰어나왔다. 
 
“아빠!” 
 
현관 앞에서 마주한, 다섯 살 자리 여자아이. 
 
내 딸과 그녀가 겹쳤다. 
 
그날 그녀는 혼자였다. 그녀가 애처롭게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나를 바라보며, 도와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아이를 끌어 앉았다. 왈칵 눈물이 터졌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친 곳이 없는지 살폈다. 나는 그대로 아이를 끌어안고, 하염없이 토닥여주며 귓가에 속삭였다. 
 
“많이 무서웠지? 걱정하지 마. 이제, 안전해.” 
 
자신을 끌어안고 엉엉 우는 아빠를, 아이는 멍하니 쳐다보았다. 아이도 무언가를 느꼈는지, 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말했다. 
 
“아빠, 울지 마. 나 씩씩해.” 
 
울고 있는 나를 달래느라, 아이는 오랜 시간 내 품에 머물렀다.

술 담배를 끊지 못합니다

술 담배를 끊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숨기고 다는 게 가식적으로 느껴져서 교회 공동체에서 솔직히 말했습니다. 그날 이후, 저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사람이 알게 모르게 많습니다. 상처가 깊습니다. 여전히 끊으려고 노력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있습니다. 
 
술과 담배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을 제시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질문하신 분의 의도를 먼저 생각하고 싶습니다. 상처 부위를 보여줬는데, 핀셋으로 휘젓고 싶지 않습니다.
 
 술과 담배에 대한 성경적 해석은 다양합니다. 다양한 해석에 대해 저마다 일리 있다 생각합니다. 나는 술 담배를 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 관점을 정죄의 도구로 삼아 사람을 괴롭히고 싶지는 않습니다. 
 
술 담배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자기 행실로 당당할 수 없습니다. 나는 술 담배를 전혀 안 하지만, 떳떳하지 않습니다. 매일매일 변하지 않는 나 자신을 보며 절망합니다.   
 
자신이 술과 담배를 끊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동체에서 말할 때, 사람에게 기대하는 마음을 가진 것 같습니다. 용기 내서 솔직하게 말하면, 사람들이 이런 나를 이해해주지 않을까? 그러나, 기대와 달리 사람들의 표정이 차가워졌습니다. 그로 인해, 상처를 받게 되셨고요. 
 
나는 묻고 싶습니다. 자신은 자신을 받아주셨나요? 자신도 받아주지 못한 자신을 다른 누군가에게 받아달라고 하면 반드시 실망합니다. 반복되는 습관 속에서 스스로를 정죄하고 계시니 마음이 무거울 겁니다. 이 상황을 누구에게라도 알리고 도움을 구하고 싶은 마음 이해됩니다. 그러나, 자신도 용납할 수 없는 자신을 다른 누군가가 용납해줄 거라는 기대는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나는 나를 용납하지 못하겠어요.
그러니까, 당신이 나를 용납해주세요.
 
반드시 실패합니다. 더 이상 사람들에게 이해해달라고 부탁하지 마세요. 한계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상처를 가졌습니다. 원하는 답을 들을 수 없어요. 공동체의 반응은 어쩌면 당연한 겁니다.
 
솔직한 고백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니에요. 이 땅의 어떤 교회도 완벽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질문하신 분의 상태나 교회 공동체의 상태나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고백하고 싶거든 이 사실을 알고 고백하세요. 
 
교회 안에 있더라도, 사람들 의지하는 마음으로 고백하면 부작용 납니다. 예수님께 고백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부작용 없습니다. 교회에서 고백하더라도 교회 사람들이 아니라, 교회 안에 계신 예수님께 고백하는 겁니다. 그래야, 실망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차가워져도 예수님은 언제나 따뜻하시니까요. 
 
자신을 먼저 용납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마음 편하게 술 마시고 담배 피우라는 말이 아닙니다. 술, 담배 끊기 어렵습니다. 오래 걸립니다. 자신을 돌보면서 지속해야 합니다. 스스로를 정죄하면, 힘을 낭비하게 됩니다. 온 마음을 다해 예수님께 집중해주세요. 자신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지기를 바랍니다.    
 
“너 또 실패했지. 그럼, 그렇지. 넌 역시 안 돼. 넌 쓰레기야.” 진실이 아닙니다. 자신을 파괴하는 방식으로는 절대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며칠이라도 참고 견딘 자신을 인정해주세요. 그리고, 다시 시작하세요. 쉽게 되는 일 없습니다. 포기하지 말아주세요.

교회 일을 내려놓고 잠시 쉬려 해요

아빠가 오랜 투병생활을 하시다가 돌아가셨어요. 아버지의 죽음이 너무나 슬퍼요. 교회에서 맡았던 일을 내려놓고 잠시 쉬려는데 주변에서 그러지 말래요. 그럴수록 하나님을 더 붙잡으라고 해요. 슬픔의 영에 사로잡히면 일어서기 어렵다고 참고 견디라고요. 
 
슬퍼하세요.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슬프지 않겠어요. 일 년이든, 십 년이든, 평생이든 슬프면 우세요. 아버지가 일생동안 그립다면 감사한 겁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는 감정에 죄책감을 느낀다면 잘못된 겁니다. 
 
당신에게 ‘슬픔의 영’에 사로잡히지 말라고 말한 사람의 의도를 모르겠네요. 이 말은 문맥상 부정적인 뜻이겠지요. 성경에는 그런 말이 없습니다. 나는 그 말을 전해 들을 당시의 상황과 분위기는 모르지만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성경에 없는 말을 하면 위험합니다. 
 
쉬고 싶으면 쉬세요. 교회 일을 감당하는 것 자체가 본질이 아 닙니다.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결정하세요. 교회 봉사할 사람이 항상 부족해도 교회 문은 안 닫습니다. 하나님이 잘 이끌어 가십니다. 잠시 쉬다가 기운이 나면 다시 섬겨주세요.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세요. 그 눈물 마를 때까지 주님이 위로해주실 거예요. 오늘부터는 마음 편히 울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과 돌아가신 아버지 사이에는 예수님이 계세요. 천국에서 그분이 아버지를 돌봐주고 계십니다. 슬플 때마다 예수님 품에 안겨 있는 아버지를 생각하세요. 주님은 친절하게도 이 땅에서 슬퍼하는 당신에게도 찾아오세요. 눈물을 닦아주시며 위로해 주시지요. 
 
예수님이 계시기에 머지않아 슬픔은 소망이 될 것입니다. 슬플 때마다 그분 품에 꼭 안겨주세요. 다시 힘을 얻으면 주님의 일을 잘 감당하실 수 있을 겁니다.

관계가 힘들어 교회를 떠났어요

관계가 힘들어 교회 청년부를 떠났어요. 시간을 두고 생각하다가 다시 마음이 열려 청년부 공동체에 가려 했어요. 떠나온 것이 미안해서 먼저 리더 언니에게 제 상황을 알렸어요. 다시 교회에 나가고 싶다고 말했어요.
 
환영해줄 거라는 저의 바람과는 달리, 리더 언니는 너무 조급한 것 같다며 기다려 달라고 했어요. 공동체 사람들이 너 때문이 힘들어한다고. 알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어요. 그때는 괜찮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화가 났어요. 내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는 전혀 물어보지 않았어요. 공동체에서 저를 밀어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엇 때문에 교회를 떠났는지 알 길이 없어 정확한 답변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교회 사람들과 갈등이 일어나 공동체를 떠난 것 같아요. 교회는 어떤 상황에서든 자매님을 있는 그대로 받아줘야 하지만, 실제로는 교회 사람들이 서로 상처가 많아서 쉽지가 않지요. 리더 언니라는 분은 아마 다른 사람에 대한 걱정이 앞섰던 것 같아요. 리더 언니를 이해해줄 필요가 있어요. 리더 역할은 언제나 쉽지 않으니까요.
 
아쉬운 게 하나 있다면, 리더 언니가 자매님이 오고 말고를 결정할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해요. 그 누구도 하나님의 자녀를 거절할 권리는 없거든요. 자매님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위임하지 마세요.
 
자매님이 리더 언니에게 물을 필요가 없었던 것 같아요. 가고 말고를 결정하는 분은 자매님이지 리더 언니가 아니거든요. 리더 언니가 어떤 말을 해도 만족할만한 답변을 듣지 못했을 거예요. 그전에 교회를 떠나올 만큼 갈등이 깊었을 테니까요.
 
과정을 공유하는 게 핵심이에요. 다녔던 교회를 사랑한다면, 교회에 다시 출석하는데 목적을 두지 마세요. 자매님에게 있었던 일을 있는 그대로 리더 언니와 공유하는 게 먼저예요.
 
무엇으로 상처받았고, 혼자 시간을 보내면서 어떻게 회복되었는지 말해주세요. 같은 말이라도 표현이 중요하니까 최대한 진실되게 대화하세요.
 
리더 언니로부터 또다시 거절을 당한다면, 전도사님이나 목사님께 도움을 요청하세요. 도와주실 거예요. 만약에 또다시 거절을 당한다면, 그때는 다른 교회를 고려해보세요.
 
교회를 쉽게 옮겨도 된다는 말이 아니에요. 교회 사람에게 상처받아서 신앙을 버릴까 걱정돼서 드리는 말이에요. 어떠한 경우에도 예수님을 포기하지 말아주세요.
 
스스로 회복할 시간이 필요해요. 사람들에게 상처받았으니까요. 한 가지만 말씀드릴게요. 예수님은 자매님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세요. 하지만, 교회 사람들은 자매님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지 않아요. 자매님 역시 리더 언니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에요.
 
리더 언니를 묵상하지 마시고, 예수님을 묵상하세요. 리더 언니와 나누었던 대화를 반복하지 마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반복하세요. 이 과정에서 하나님이 새로운 일을 펼쳐 가시기를 기대해봅니다. 부족한 답변 들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누구 말이 옳은 걸까요?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편이에요. 다양한 의견을 듣는 건 좋은데, 가끔은 혼란스러워요. 교회 안에서 목사님, 리더들이 서로 다른 조언을 해주거든요. 누구 말이 옳은 건지 모르겠어요. 
 
아무도 올바르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조언이 전부 틀렸다는 말이 아닙니다. 아무리 옳은 답을 내놔도 자매님이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 틀린 답이 됩니다. 사람들의 조언을 너무 많이 듣지 마세요. 그러다가, 길을 잃습니다. 이리저리 헤매다 인생 낭비할 수 있어요. 
 
사람들의 조언을 듣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의존적이에요. 상담실 안에서도 흔히 있는 일입니다. 나에게 자기 인생을 결정해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 안에는 자신만의 이야기가 숨어 있어요. 자기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이유가 있습니다. 찾아내서 돌봐줘야 해요. 
 
이제부터 조언을 구할 때, 상대방의 표정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자신은 오랜 시간 고민하다가 조언을 구했는데, 상대방은 질문을 받은 순간부터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1초도 생각하지 않고 즉시 말합니다. 상대방이 즉흥적으로 던진 조언에 자기 인생을 맡기는 건 정말 위험합니다. 
 
교회 청년들 중에 목사님이나 리더의 말 한마디로 대학 전공이나 직업을 바꾸고, 심지어 진지하게 교제하는 형제자매와 헤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말씀해 주신다고 해도, 신중하게 생각하세요. 그분들은 자매님의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습니다. 함께 고통을 겪지도 않아요. 말 한마디하고 사라집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들도 자매님이 누군지 잘 몰라요. 목사님, 공동체 리더, 소중한 친구들, 멘토, 가족처럼 가까워도 자매님을 온전히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보다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러니, 절대로 선택권을 넘겨주면 안 됩니다.  
 
제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사람들의 의견을 듣다 보면, 나중에 그들의 생각에 파묻혀 버려요. 그들의 말에 영향력이 생기면, 그 말을 어기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들의 말이 규범이 됩니다. 사람들 눈치 보면서 인생 살면 그때부터는 불행해집니다. 
 
나도 글 쓴다고 할 때, 주변에서 좋은 소리 못 들었습니다. 나를 잘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반대했어요. “글로 먹고사는 사람 없다. 네 글을 누가 읽어주냐. 글은 써 본 적 있냐.” 헤아릴 수 없는 말을 들었어요. 마음이 아팠죠. 하지만, 나는 스스로 선택했고 계속 글을 썼어요. 
 
막상 책 한 권 나오니까, 똑같은 사람들이 예전과 다른 말을 합니다. “나는 결국 네가 해낼 줄 알았다. 정말 잘 했다.” 만약 내가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선택권을 넘겨줬다면 나는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했을 겁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죠.     
  
귀를 닫고 살면서 사람들을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에요. 최대한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의견을 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선택은 자기 자신이 내리라는 말이에요. 처음부터 결심해야 합니다. “의견은 듣지만, 선택은 내가 한다.” 그래야 조언을 해주는 사람도 부담이 없습니다. 사람들의 말은 조언일 뿐이지, 법칙이 아닙니다. 
 
자매님을 가장 잘 아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사람들의 조언은 적당히 들으세요. 나도 목회해봤지만, 목사가 세상만사 다 아는 거 아닙니다. 목사 의지하지 마세요. 리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의지하시고 하나님 말씀을 들으세요. 답답하고 두려운 거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걱정 마세요. 실수해도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거절하기 힘들어요

교회에서 리더로 섬기고 있어요. 고민을 들어줄 일이 많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회의가 들기 시작했어요. ‘나는 바쁜 시간을 쪼개서 어렵게 시간을 냈는데, 이 사람은 과연 그걸 알고 있는 걸까.’ 굳이 내가 필요할까. 그냥 말할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닐까 생각이 들면,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먼저 고맙다는 말을 드리고 싶어요.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습니다. 쉽지 않은 자리 포기하지 않고 잘 견뎌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매님의 질문은 저 역시 오랫동안 고민해온 문제에요. 정답은 없습니다. 하루하루 고민하면서 결정을 내려야 해요. 내 말이 정답은 아니지만, 조심스럽게 몇 자 적어보려고 합니다.
 
일단 자매님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을 아껴 쓰세요. 리더 역시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을 돌봐줄 수 없어요. 자신 안에서 기준을 세우세요. 기준은 복잡하지 않아야 합니다. 일주일 단위로 만날 사람과의 시간과 횟수를 제한하세요. 시간대 역시 고정적이면 좋습니다. 최대한 단순하게 만드세요. 그래야 지속 가능한 사역을 할 수 있습니다.
 
상황에 대한 기준 역시 중요합니다. 모든 사람을 만날 수는 없어요. 인생에서 고민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만나도 만나도 끝이 없을 거예요. 최소한의 기준이 필요해요. 마음이 어렵겠지만, 꼭 그렇게 해야 합니다. 지속 가능한 사역을 위해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해요.   
 
고민을 가진 사람이 도움을 요청하는 방식을 세 가지 비유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니 참고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껌종이에 고민을 뱉어 던져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실은 고민이 나누려고 온 게 아니라 감정을 배출하고 싶은 사람이에요. ‘나 지금 이런데, 내가 이런 일을 당하는 게 말이 돼?’
 
감정 뱉어서 버린 껌종이 펼쳐보지 마세요. 기분 상합니다. 받아서 쓰레기통에 잘 버리세요. 상대방이 착각한 겁니다. 자매님이 쓰레기통인 줄 안 거예요. 직접 버리라고 말하고 돌아보지 마세요.
 
그다음은, 종이 한 장에 고민을 대충 쓴 다음 수 백장 복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마다 나눠줍니다. 누구 하나 걸리라는 식으로 마구 뿌리는 겁니다. 착한 사람이 멈춰 섭니다.
 
당연히 대화가 힘듭니다. 그 사람은 자매님과 대화하는 중에도 종이 뭉치를 손에 쥐고 있습니다. 자매님과의 대화에 온전히 집중하지 않아요. 설문조사하듯, 질문합니다. ‘이 사람은 이렇게 말하네. 다른 사람은 무슨 말을 해줄까’ 궁금해합니다. 자매님이 사라지고 나면, 그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을 찾아다닐 겁니다.
 
마지막으로, 손편지를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종이는 허름해도 정성스럽게 한 글자 한 글자를 써 내려간 편지를 보냅니다. 손편지를 받아보면, 얼룩져 있습니다. 눈물로 써 내려간 편지라 그렇습니다. 여기저기 눈물이 떨어져 잉크가 번진 겁니다. 종이는 귀퉁이가 닳아서 구깃구깃합니다. 다 쓰고 나서 보낼까 말까 손에 쥐고 긴장한 까닭입니다.
 
손편지를 받았다면, 예수님이 되어 주세요. 태평양을 건너가서라도 만나야 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찾아가 돌봐주세요. 그 사람이 흘린 눈물만큼 함께 울어주세요. 오늘이 세상 마지막 날이라고 해도, 그 사람 하나 살리고 떠난다 생각해주세요. 거절하면 안 됩니다.    
 
상처 입은 사람이 소중하듯이, 자매님 역시 소중합니다. 스스로를 지키고 보호할 수 없다면 언젠가는 촛불처럼 닳아 없어질 거예요. 인생은 불꽃놀이가 아닙니다. 잠시 피웠다 꺼지는 불이 되지 마세요. 연료를 아껴 써야 추운 겨울 잘 보낼 수 있습니다. 차디찬 세상을 따뜻하게 녹여주는 난로가 되어주세요.  

내가 바보처럼 보이니?

교회에서는 남을 돕고 섬기는 게 미덕이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상황 어렵고 시간 없는데, 정성을 다해 다른 사람을 도와줬어요. 고맙다는 말 한 번 없이 당연하게 생각해요. 바보 취급당하나 기분이 나쁜데, 얼마나 더 섬겨주어야 할까요?
 
질문에 감정이 실린 것 같아요. 그만큼 서운하다는 뜻이지요. 제가 구체적으로 상황을 알 수는 없지만, 무리한 섬김은 당신에게도 상대방에게도 유익하지 않습니다. 적절한 범위 내에서 멈춰야 할 것 같아요. 우리는 예수님처럼 살아야 하지만, 예수님은 아니거든요.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다른 사람의 비위를 맞출 필요는 없습니다. 
 
잠시 멈춰 서서, 자신에게 질문해보세요. “나는 왜 그 사람을 이렇게까지 섬겨주고 있을까? 왜 적당한 선에서 거절을 못 할까? 왜 무시당하면 기분이 나쁠까?”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을 겁니다. 자신만의 의미부여가 특정한 상황을 특정한 관점으로 보게 만드는 겁니다. 
 
아마 질문하신 분께서는 이번 일이 처음이 아닐 겁니다. 인생에서 반복되고 있을 거예요. 패턴 아닌가 싶어요. 부탁하면 도와주고, 도와주다 지치고., 지치다 떠나고. “두 번 다시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누군가를 필요 이상으로 섬겨줍니다. 지쳐가는 자신과 마주합니다. 
 
상대방을 떠올리면 좌절하지 하지만, 자신을 돌아보면 성장합니다. 상대방을 떠올릴 시간에, 자신을 들여다보세요.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나 왜 이럴까?” 깊이 고민해보세요. “왜”라는 고민을 끊임없이 던지다 보면, 자신 안에 해결되지 않은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을 거예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자신만의 이야기 말입니다. 어쩌면, 자신도 몰랐던.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해 보일 겁니다. 가만히 앉아 이리저리 살펴보세요. 팔을 걷어붙이고 집중하세요. 중요한 순간입니다. 잘 풀어야 벗어납니다. 그 사이에 누가 와서 “나 이것 좀 도와줘”라고 부탁하면, 하던 일 중단하지 마시고 고개만 돌려 말하세요. “잠깐만, 지금 내가 그럴 상황이 아니어서. 나중에 도와줄게. 이거 먼저 풀어야 해.” 걱정은 마세요. 그 사람 큰일 나는 거 아니에요. 실타래 먼저 푸세요. 
 
당신이 도와주지 않아도, 그 사람은 잘 살아요. 하나님이 책임져주시니까 걱정하지 말고, 당분 간은 자신의 문제에 집중하세요. 잘 풀어야 나중에 여유가 생기죠. 그때는 가서 도와주세요. 그 사람이 몰라줘도 기분 나쁘지 않을 만큼만, 적당히.  

다른 사람의 아픔을 공감하고 싶어요

교회에서는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할 기회가 많잖아요. 저는 공감능력이 부족해요. 다른 사람의 힘든 이야기를 들어도 공감이 되지 않아요. 다른 사람의 상처와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이 있나요?  
 
자신이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쉽게 결론 내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정말로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상처와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다른 사람의 상처와 아픔을 공감하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는 것은 당신이 공감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다만, 지금보다 다른 사람의 상황에 대해 더 공감하고 싶다는 말이겠지요. 
 
나는 상대방의 아픔에 대해 쉽게 공감하는 방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감은 언제나 쉽지 않습니다. 공감이라는 말 자체가 “함께 느낀다”라는 뜻입니다. 내가 직접 곁은 일도 아닌데, 마치 같은 일을 겪고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면, 잘못하다 상대방을 동정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의도와 달리, 상대방이 자존심 상합니다. 공감을 쉽게 생각할수록 쉬운 사람 되니까 신중해야 합니다.
 
억지로 장단을 맞추면 실패합니다. 다른 방식으로 상대방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마음을 열었다는 것은 이미 당신을 신뢰했다는 뜻입니다. 당신에게 마음을 열고 아픈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는 뜻이지요. 이미 말하고 싶어서 온 거니까, 상대방이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들어주면 됩니다. 곧바로 떠오르는 말이 있어도 입 밖으로 내뱉지 말고 잘 들어주세요. 억지스럽지 않게, 매우 자연스럽게 말입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신의 감정이 동요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자기감정을 억제하지 말고 솔직하게 함께 느끼면 됩니다. 함께 웃고 싶으면 웃고, 함께 울고 싶으면 우는 겁니다. 나 역시 그렇습니다. 내담자가 울면 나도 함께 웁니다. 내담자가 웃으면 함께 나도 웃습니다. 나는 노련한 상담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따뜻한 상담자가 되고 싶습니다. 
 
공감 잘하는 사람 되기 어렵습니다. 잘 들어주는 사람이 먼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싶은 말 참고 잘 들어주면, 상대방의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자신에게 느껴지는 감정을 솔직히 표현해주세요. 웃든 울든, 대화가 끝나면 상대방이 말할 겁니다. 고맙다고, 정말 고맙다고. 그럼, 성공입니다.

회사의 접대 문화가 싫습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는 술, 담배, 유흥을 즐길 줄 알아야 승진할 수 있다는 문화가 있습니다. 혼자 힘으로 잘못된 문화를 바꾸기가 너무 힘듭니다. 힘들더라도 참으면서 주님을 의지해야 할까요, 아니면 다른 회사로 옮기는 게 맞을까요? 
 
나도 모르겠습니다. 본인 선택입니다. 그 회사에 남는 게 올바른 선택인지, 회사를 옮기는 것이 올바른 선택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주님만이 아시겠지요. 힘들게 질문했는데, 말장난 하는 것처럼 보일까 걱정입니다. 나는 진실을 말하고 싶습니다. 남을지, 떠날지 본인이 선택하세요. 본인 선택이 정답입니다. 
 
내 주장에 대한 근거를 말해보겠습니다. 인생이라는 미로가 있습니다. 시작점에서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걷다보니 두 개의 문이 나왔습니다. 왼쪽이 1번, 오른쪽이 2번입니다. 선뜻 문을 열지 못하고 중간에서 고민합니다. 문 밖에 뭐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문 하나 잘못 열면 10년 고생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며칠 마음고생하다가 1번 문을 선택했습니다. 문을 열고 뛰쳐나갑니다. 힘든 선택 뒤에 마주한 결과는 당황스럽습니다. 기대했던 결과는 없고 또 다른 문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문이 세 개입니다. 1-1, 1-2, 1-3. 또다시 문을 열면 1-1-1, 1-1-2, 1-1-3, 1-1-4, 1-1-5의 문이 있습니다. 문은 계속 많아지고, 선택은 복잡해집니다. 
 
열어도 열어도 문이라면,“어떤 문을 여는 게 좋을까?”는 좋은 질문 아닙니다. 문이 하나라면 모를까. 열어도 열어도 계속 문이라면, 멈춰서 질문해야 합니다. “어떤 태도로 문을 열어야 할까?” 올바른 태도를 가졌다면, 자신의 선택을 믿어야 합니다. 과감하게 여십시오. 문 뒤에 절벽이 있더라도, 절대로 떨어져 죽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계시니까요. 
 
올바른 선택을 내리지 말고, 올바른 태도를 가지세요. 선택이 아니라 태도가 급합니다. 하나님을 믿으세요. 당신이 실수할지라도 괜찮아요. 하나님은 올바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회사에 남아서 견딘다고 승자가 되는 게 아닙니다. 반대로, 회사를 옮겨도 패배자가 되는 게 아닙니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항상 태도를 고민하세요. 내가 아는 주님은 언제나 중심을 보십니다. 진심을 다하면, 밖에서 문이 열릴 겁니다. 차례대로 활짝 열릴 거예요. 사람이 문을 열면 미로지만, 주님이 문을 열면 도로입니다.  머지않아 힘차게 달릴 날 올 거예요. 
 
어깨 펴고 회사 다니세요. 당당하게 일하세요. 옮길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떠나세요. 두려워하지 마세요. 회사가 아니라 하나님이 당신을 책임지십니다. 

회사에서 믿는 사람이 더 괴롭혀요

회사에서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아이러니하게 기독교인이라 시험이 듭니다. 믿지 않는 사람한테는 처음부터 기대감이 없어요. 실망할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믿는 사람이 괴롭히면 너무 화가 납니다. 믿는 사람이 힘들게 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변 사람을 믿는 사람, 안 믿는 사람으로 단순하게 구분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러니, 사람 구분해서 어려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믿든 안 믿든 사람이 힘들게 합니다.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특별히 잘해주거나 별문제 없을 거라고 기대하지 마세요. 기대하면 실망합니다.
 
믿는 사람이라는 정의에는 논리적 오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입니다. 성급한 일반화라는 말은 제한된 정보를 가지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라는 말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모릅니다. 열을 봐야 열을 아는 겁니다. 성급하게 결론 내리면, 잘못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믿는 사람이란 단어를 정의하기 쉽지 않습니다. 무엇을 믿느냐, 얼마나 믿느냐, 어떻게 믿느냐. 따져볼 것이 많습니다. 자신의 종교가 기독교라고 말하는 사람 모두를 믿는 사람으로 인정해줄 수 없습니다. 몸은 교회 안에 있어도, 마음은 교회 밖에 있는 사람 적지 않습니다. 그러니, 교회 다니는 사람 모두를 믿는 사람이라고 정의 내린다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급하게 정의 내리면, 부작용이 있습니다. 세상을 믿는 사람, 안 믿는 사람 나눠서 보게 됩니다. 계속 따지고 들어서 죄송하지만, 이건 흑백 논리의 오류입니다. 의인과 죄인이란 개념은 성경 안에서 선명하게 대조를 이루지만, 실제로는 우리 안에 함께 존재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의인이며, 죄인입니다. 동시에, 죄인이며, 의인입니다. 마음속 치열한 싸움이 있습니다. 그러니, 겉으로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기댈 분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삶의 한순간이라도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 죄인일 뿐입니다. 죄인을 보고 실망하지 마세요. 우리는 처음부터 자격 미달이었습니다. 
 
회사에서 최선을 다해서 맡은 일 잘해주세요. 예수님이 맡기신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정성을 다해 맡은 일 잘하면, 그게 곧 예배입니다. 
 
물론, 쉽지 않지요. 목사라고 세상 물정 모른다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교회라고 상황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교회에는 믿는 사람만 있는데, 목사는 목회가 왜 이리 힘들다 말할까요. 성도는 성도대로 왜 이리 시험에 들까요. 다 사람 때문입니다. 서로 상처 주고 상처받으며 사는 겁니다. 
 
세상 아무리 어두워도 빛을 잃지 마세요. 어두울수록 더욱 밝게 비춰주세요. 세상 한가운데에서 포기하지 않고 빛으로 살아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어떻게 도와줘야 하나요?

아끼는 후배와 대화하던 중에 심각한 말을 전해 들었어요. 자신이 돌보고 있는 소그룹 멤버가 끔찍한 일을 겪었는데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어요. 직접 만나서 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겠냐고 제게 물었는데,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요.   
 
절대로 만나시면 안 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려 죄송합니다. 자매님을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습니다. 아끼는 후배의 부탁이니 거절하기 힘들 겁니다. 그래도, 거절해야 합니다.  
 
직접 만나면 안 되는 이유를 생각나는 대로 말해보겠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비밀 유지입니다. 비밀을 말한 사람 입장에서 비밀 유지가 깨졌다면, 그건 재앙입니다. 모든 신뢰가 무너집니다. 
 
아끼는 후배가 소그룹 리더입니다. 소그룹 멤버가 리더를 신뢰하고 비밀을 말했습니다. 리더는 그 비밀을 자매님에게 말한 겁니다. 리더가 아무리 좋은 의도라고 해도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비밀을 말한 사람은 충격을 받게 됩니다. 평소 리더에 대한 신뢰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지겠지만, 대부분은 배신감에 관계를 끊습니다. 
 
공동체의 흔한 실수입니다. 서로 기도해준다는 명분으로 비밀을 마구 퍼뜨립니다. 비밀은 반드시 지켜줘야 합니다. 절대로 퍼뜨리면 안 됩니다. 한 사람의 진실된 기도가 백 사람의 기도보다 낫습니다.  
 
자매님이 후배를 대신해서 소그룹 멤버를 만난다면, 그 즉시 비밀 유지가 깨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겁니다. 안정적인 만남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지금 자매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아끼는 후배입니다. 후배에게 비밀을 말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 후배에게 집중하세요. 후배에게 필요한 건 공감입니다. 해결책이 아니에요. 후배가 해결하지 못한 것을 대신 해결해준다고 언니 노릇을 하는 게 아닙니다. 좋은 리더는 대신 해결해주지 않습니다. 방향을 제시해주세요. 선택은 당사자에게 맡겨야 합니다. 절대로 설득하지 마세요. 
 
후배가 직접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니,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어떻겠나고 제안해보세요. 두 사람의 전문가가 있습니다. 목회자와 상담자입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벌어진 일이니 목회자에게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목회자에게 비밀을 말해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비밀의 내용을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비밀의 내용을 말하지 않고 상황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소그룹 리더가 소그룹 멤버를 돌봐야 하듯, 목회자는 리더를 돌봐야 할 책임이 맡았습니다. 목회자가 자매님을 대신해 후배를 돌봐줄 겁니다. 
 
후배가 혼자서 외롭게 무거운 짐을 짊어지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후배는 소그룹 멤버에게 상담을 받아보라고 제안할 수 있습니다. 후배는 모든 내용을 알고 있으니까 편안하게 제안할 수 있을 겁니다. 당사자가 거절한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후배 역시 소그룹 멤버 대신 상처의 짐을 짊어질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리 조급해도 기다려야 합니다. 해결보다는 공감이 중요합니다. 
 
후배가 자매님에게 힘든 고민을 말했다는 것은 자매님이 제법 괜찮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감히 평가하는 게 아닙니다. 느껴지는 대로 말한 겁니다. 대신 나선다고 해결되는 일은 없습니다. 이 상황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모든 능력은 주님에게서 나옵니다. 주님이 하시는 일을 지켜봅시다. 책임회피 아닌가 걱정하지 마세요. 사랑하고 계시니까 충분합니다.

크리스천은 착해야 하나요?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마음이 상하는 날이 있어요. 주고받는 말에 마음이 불편해도, “괜찮아요”,라고 애써 말해요. 속마음은 그렇지 않거든요. 나도 모르게 사람들과 거리를 두게 돼요. 사람들을 만나는 게 싫어져요. 크리스천은 꼭 착해야 하나요? 
 
결론부터 말하겠습니다. 착하면 좋지요. 하지만, 항상 착할 수만은 없어요. 무슨 말이야, 싶을 거예요. 사람을 파괴하는 생각 중에, “해야만 한다”라는 당위적 사고가 있어요. 심해지면, 강박으로 발전해요. “나는 착해야만 해.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화를 내면 안돼. 사람들이 날 싫어할 거야.” 왜곡된 생각으로 고통받겠죠. 
 
나는 여기서 복음과 종교의 차이를 말씀드리고 싶어요. 종교에는 당위적 사고가 많아요. “해야만 한다, 해야만 한다”의 반복이죠. 의무감으로 종교 생활을 하게 만들고,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어요. 두려움으로 복종하게 만들죠. 두려워서 의무감으로 신앙생활하고 있다면, 우리는 종교 생활을 하고 있는 거예요. 종교는 교묘하게 사람을 짓눌러요.  
 
복음은 은혜를 말해요. 하나님은 자격 없는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어요. 일방적으로 사랑하셨고, 우리는 그 사랑을 거부할 수조차 없었어요. 폭포수 같은 은혜가 쏟아져 내렸고, 우리는 그 덕분에 하나님의 자녀가 된 거예요. 은혜로 시작된 하나님과의 관계는 은혜로 지속되는 거예요. 그 누구도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을 수 없어요. 그 누구도 버림받을 수 없다는 말이죠. 우리는 그 감격으로 순종하는 거죠. 순종은 사랑받은 사람의 자발적인 반응입니다. 
 
변화된 삶은 사랑의 전제 조건이 아니라, 사랑의 결과입니다. 사랑받은 사람의 반응이 곧 순종인 거예요. 순서가 중요합니다. 순서가 바뀌면, 우리는 파괴됩니다. 종교는 이 순서를 뒤바꿔 놓았죠. 종교는 우리를 교묘하게 속여요. 자격을 갖춰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기대에 못 미치면, 자격을 잃을 것이라고 말해요. 하루아침에 버림받을 수 있는 거예요. 복음은 종교와 완전히 다른 거예요. 복음은 진실이고, 종교는 거짓이죠. 
 
다시 착함에 대해서 말해볼게요. 먼저, 착해야만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해요. “해야만 한다”를 “하면 좋다”로 바꿔주세요. 있는 모습 그대로의 나 자신으로 살면 돼요. 솔직한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면서 사는 게 복음적인 삶이에요. 안 그런 척 포장하는 삶은 종교적 삶이에요. 단순하게 둘로 나눌 수 없겠지만, 일단 그래요.   
 
용기 내어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세요. 그렇다고,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무시하라는 말은 아닌 거 아시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사람들에게 말하면, 상대방도 존중해줄 거예요. 
 
“나 사실, 아까 사람들 웃을 때, 같이 웃었지만 솔직히 기분 안 좋았어. 무시당하는 기분이었거든. 네가 그럴 의도는 없었다는 건 알아. 그래서, 마음에 담아 두지는 않으려고.”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사과를 하겠지요. 문장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상대방이 반박할 틈이 없어요. 비난이 아니라 표현이니까요. 하지만, 세상에는 상식 없는 사람도 있겠죠. 감정을 표현했다는 것 자체로 화를 내겠죠. 그런 사람과 마주하고 있다면, 조용히 마음속으로 작별 인사를 하세요. 남은 시간 동안 상식적으로 대해주세요. 죄책감 느끼면서 억지 사랑은 하지 마세요. 그건 다시 종교로 돌아가는 거예요. 
 
용기가 필요했을 거예요. 솔직하게 고민을 말한 당신을 바라보시며 예수님이 기뻐하세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당당하게 보여주시기를 부탁할게요. 하나님 앞에서는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당당해지시고, 사람 앞에서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당당해지세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착함이 아니라 은혜에서 시작됩니다.

외롭지만 애써 괜찮은 척 해요

청년부 소그룹 리더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건강하고 좋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아요. 솔직히 말하면, 제 이야기를 다른 누군가에게 꺼내지 못합니다. 저 스스로가 사람들에게 마음을 닫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애써 괜찮은 척하지만, 가끔은 너무 외롭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질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외로운 감정은 사라지는 감정이 아닙니다. 누구나 외로움을 느낍니다. 그러니,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외로움은 기회일지 모릅니다. 외로운 감정을 혼자 간직하지 않고 예수님께 가져가고 있으니까요. 외로울 때마다 주님을 찾는다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 역시 그렇습니다. 외로운 감정을 거의 하루 종일 느낍니다. 자주 말씀드리지만, 외로운 감정은 누가 옆에 있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거든요. 내 가정은 행복합니다. 아내와 나,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내게 말할 수 없는 행복을 줍니다. 그래도, 외롭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문제가 아닙니다. 외로운 감정은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감정입니다. 만약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로 충분하다면, 그래서 전혀 외롭지 않다면, 하나님을 찾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부족함을 느낄 수 없으니까요. 그러나, 세상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갈지라도, 근원적인 결핍은 결코 다른 사람을 통해 채워질 수 없습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어도 외로울 수밖에 없는 겁니다. 하나님으로만 채워져야 하는 빈자리가 있습니다. 세상 그 누구도 채워줄 수 없는 빈자리입니다. 
 
지금처럼 주님께 시시콜콜 다 말해주세요. 아무리 사소한 이야기라도 주님께 가져가서 말해주세요. 그러면, 안전합니다. 외로움을 돌보면서, 성장하고 계신 거예요. 가끔 말할 수 없이 외로울 수 있지요. 걱정 마세요. 주님이 안아주십니다. 그 감격과 기쁨으로 당당하게 일어나실 거예요. 감정이 당신을 속일지라도 절대로 속지 마세요. 당신은 절대로 혼자가 아닙니다. 언제나 주님이 함께 계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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