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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누가복음

믿음을 크기로 비교하지 마세요

<누가복음 8:25>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그들이 두려워하고 놀랍게 여겨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가 하더라
 
믿음을 크기로 비교하지 마세요. 믿음은 크고 작음으로 표현할 수 없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믿음의 크기에 놀라신 게 아니에요.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믿었기 때문에 놀라신 거죠. 
 
믿음은 크기와 상관없어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믿음의 크기는 겨자씨 만큼이에요. 예수님은 겨자씨만큼만 믿어도, 산을 뿌리째 뽑아서 옮길 수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보다 더 큰 믿음을 가지려 애쓰는 것은, 어쩌면 낭비일지도 몰라요. 
 
믿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해요. 믿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겨자씨만큼이라도 믿으라는 것이죠. 절망 속에서 믿음을 사용한다면, 예수님은 기뻐하세요.
 
폭풍을 잠잠케 하신 예수님이 물으셨어요.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예수님은, “왜 못 믿어?”가 아니라, “왜 믿음을 사용하지 않았니?”라는 물으셨어요. 예수님은 제자들의 마음속에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다고 보신 거예요. 하지만, 제자들은 위기 상황에서, 믿음을 사용하지 않았어요. 
 
당황하면 그럴 수 있어요. 누군가 갑자기 동전을 달라고 하면, 다급하게 주머니를 뒤지겠죠. 아무리 찾아도 동전이 나오지 않아서 없다고 말했는데 집에 가서 보니까, 속주머니 깊은 곳에서 동전이 나와요. 없었던 게 아니라 있었는데, 못 찾아서 못 준 거죠. 
 
폭풍을 만난 제자들은 다급해서 믿음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어요. 예수님께서 배에 함께 타고 계신 것조차 잊어버렸으니까요. 사력을 다해 폭풍과 싸우다 승산이 없자, 누군가 허공에다 한 마디를 외쳤을 거예요. “가서, 예수님을 깨워!”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바람과 성난 파도를 말씀 한 마디로 잠잠하게 하실 수 있으셨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을 잊어버렸어요. 예수님과 함께라면, 당연히 죽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조차 못 했던 거죠. 
 
겨자씨보다 믿음이 작다면, 믿음을 키우세요. 겨자씨보다 믿음이 작다면, 어쩌면 믿지 못하시는 거니까요. 하지만, 겨자씨만큼이라도 믿는다면, 더 이상 크기를 탓하지 마세요. 크기는 상관없어요. 
 
겨자씨만큼 작은 믿음이라도, 주저하지 말고 사용하세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더욱 믿음을 사용하세요. 잠시 흔들릴 뿐, 당신은 절대로 끝장나지 않을 거예요. 
 
작고 작은 믿음이라도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랄 때, 예수님은 기뻐하세요.  

예수님께 솔직하게 나아가세요

<누가복음 8:24>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성숙한 믿음을 가지면, 감정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언제나 차분한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요? 글쎄요, 나는 잘 모르겠어요. 
 
가끔 그렇게 보이는 사람이 있기는 한 것 같은데, 속 마음은 알 수가 없으니까요. 애써 태연한 척하는 것이지, 마음속 감정은 다를 거예요. 로봇이 아닌 이상 차분하기 힘들어요. 
 
갑작스럽게 위기를 만나는 사람은, 감정에 휘둘려요. 어쩔 수 없어요. 사람이라 그런 거예요. 자책하지 말고, 내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감정에 휘둘렸다면, 예수님께 솔직하게 나아가세요. 
 
예수님이 용납 못할 감정은 없어요. 감정에 휘둘려 어찌할 바를 몰라도, 예수님은 꾸짖지 않으세요. 
 
애써 위로하는 말이 아니에요. 예수님은 제자들이 아니라, 바람과 성난 파도를 꾸짖으셨어요. 제자들의 다급한 감정을 꾸짖으신 게 아니라, 제자들을 놀래킨 바람과 파도를 꾸짖으신 거예요. 
 
예수님을 오해하시면 안 돼요. 예수님은 사랑하는 자녀를 꾸짖지 않으세요. 굳이 말하자면, 안타까워하시는 거예요. 함께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아직도 철부지라 속상해서 그러셨죠. 
 
자녀가 무서워서 아버지를 찾는데, 아버지가 혼을 내다니요. 우리는 예수님은 그런 분 아니세요. 자녀는 잘못한 거 없어요. 무서워서 그런 거잖아요. 예수님은 이해하세요. 두렵고 무서운 감정 그대로 예수님께 나아가세요. 
 
차분할 필요도 없고, 성숙할 필요도 없어요. 직분이고 체면이고 따질 필요 없어요. 솔직한 게 좋아요.
 
다른 사람은 뭐라든, 나는 철부지로 살 거예요. 나도 힘든 날 있어요. 주위를 둘러보면, 덩그러니 혼자에요. 내 감정을 받아줄 사람이 항상 내 옆에서 기다리고 있나요?
 
 목사가 고민을 들어줄 때나 목사죠. 자기가 먼저 힘들다고 말하면, 누가 좋아하겠어요. 눈치 보여서 아무 말이나 쉽게 못해요. 
 
예수님 앞에서만큼은 솔직해지고 싶어요. 예수님 만큼은 속이고 싶지 않아요. 내 수준이 고작 이런데, 어쩌겠어요. 내 감정, 내 생각 있는 그대로 말씀드릴 거예요. 예수님은 내 마음을 아시고, 편견 없이 받아주시니까요. 
 
참된 성숙은 예수님과 가까워지는 거예요. 감정에 휘둘릴 때, 예수님을 찾는 거죠. 위기 상황에서, 가장 먼저 예수님이 떠오른다면, 그게 바로 믿음이에요. 작고 초라한 믿음이라도, 예수님이 기뻐하세요. 
 
그러니, 자책하지 마세요. 있는 모습 그대로 예수님께 나아가세요. 당신의 감정뿐만 아니라, 현실의 문제도 해결해 주실 거예요. 
 
예수님은 솔직한 당신을 좋아하세요. 다른 곳에 가서 감정을 풀지 말고, 예수님께 쏟아놓으세요. 예수님은 있는 모습 그대로의 당신을 기다리세요. 
 

예수님이 내 기도를 듣고 계실까?

<누가복음 8:22-23>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매 이에 떠나 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
 
예수님께서 내 기도를 듣고 계실까? 확신이 없을 때가 있어요. 그럴 수 있죠. 예수님이 듣고 있다고 직접 목소리로 대답해 주시지 않으시니까요.
 
나도 기도하다 답답할 때가 있어요. 기도를 하는 건지, 혼자 푸념을 하는 건지 딱 부러지게 구분을 못할 때도 있죠.
 
나는 기도가 막힐 때, 성경을 읽어요. 특히, 복음서를요. 예수님의 목소리가 안 들리니까, 이미 하신 말씀이라도 들어보고 싶어서요. 
 
말씀을 읽다 보면, ‘그렇지, 답답한 건 내 감정이지. 예수님이 분명히 듣고 계시지.” 혼자 위로받거든요. 감정이 너무 나를 힘들게 하니까, 말씀으로 감정을 돌보는 거예요. 
 
예수님은 절대로 나를 혼자 내버려 두지 않으세요. 나의 슬픔, 고통, 두려움, 외로움, 모르시지 않아요.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을 때, 우리를 사랑하시고 돌보시느라 몸을 혹사하셨어요. 한 사람이라도 더 치유하시고, 구원하시느라 일분일초가 아까우셨어요. 
 
낮에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이셨고, 밤에는 한 사람 한 사람 찾아다니며 돌보셨어요. 이른 새벽에는 조용히 산에 올라 기도하셨고요. 정말로 쉴 틈이 없으셨죠. 
 
예수님이 제자들과 배에 오르시자마자, 잠에 드신 게 당연하죠. 얼마나 피곤하셨을까요? 
 
예수님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호수를 건너 거라사의 광인을 만나러 가셨어요. 가족에게 버림받은 것으로 모자라, 온 세상 사람에게 버림받은 한 사람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그분이 우리 예수님이세요. 
 
예수님은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쉬지도 못할 만큼 한 사람을 사랑하셨어요. 하지만,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으셨어요. 동시에 모든 사람을 만나실 수 없었어요.
 
이제,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요. 예수님은 더 이상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으세요.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 예수님은 모든 일을 제쳐놓고 우리를 찾아와 만나주세요. 
 
예수님의 사랑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더 많은 것을 해주실 수 있어요. 온 세상의 버림을 받은 상처 입은 한 사람을 치유하시고자, 폭풍을 뚫고 호수를 건너신 예수님이 우리를 외면하실리 없으시죠. 
 
말씀 속에 거하시는 예수님을 만나면, 나는 항상 설득 당해요. 혼자라는 감정을 거슬러 예수님께 나아가요.  
 
‘예수님, 저는 지금 혼자인 것 같아요. 예수님이 느껴지지 않아요. 하지만, 예수님, 지금 제 목소리 듣고 계시죠? 저 너무 힘들어요. 잠깐이라도 좋으니까, 제 힘든 마음 한 번만 위로해 주세요.”
 
외로운 감정이 밀려오면, 성경을 펼쳐서 말씀 안에 계신 예수님을 만나보세요.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은 사랑으로 당신을 사랑하세요. 기억하세요. 속이는 건 감정이고, 진실은 사랑이에요.

결핍은 약점이 아니에요

<누가복음 4:3-4>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왜 시험에 자주 걸려 넘어질까요? 약해서 그렇겠죠.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사탄이 우리의 약점을 정확히 알아요. 
 
귀신같이 안다는 말이 사탄에게 어색한 말은 아닐 거예요. 사탄이 우리 안의 결핍을 작정하고 파고들면 견뎌내기 힘들어요. 
 
사탄은 예수님에게도 같은 전략을 썼어요.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지만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어요. 배고픔을 이겨내기 힘드셨을 거예요. 
 
사탄은 그 틈을 파고 들었어요.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사용해서, 돌을 떡으로 만들라고 했거든요. 
 
사탄이 사용한 가정법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거든”이라는 말은, 의심이 아니라 확신이었어요. “너 그거 할 수 있잖아. 떡으로 만들어서 먹어!”라고 말한 거죠. 
 
예수님은 능력이 모자라서, 사탄의 유혹을 거절하신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으로 순종하기 위해서, 배고픔의 고통을 참으신 거예요.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지만, 능력을 남용하지 않으셨어요. 예수님은 철저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 능력을 사용하셨거든요. 
 
자신의 배고픔을 철저히 견뎌내신 예수님께서, 그분의 자녀들의 배고픈 모습은 견딜 수 없으셨어요. 오병이어의 기적은 그렇게 일어난 거예요. 
 
사탄이 사람의 결핍을 간파하고, 기습적으로 공격하면 아무도 못 견뎌요. 우리는 예수님이 아니잖아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살자는 말은 아니에요. 자주 넘어지는 것이 당신 만의 잘못은 아니라는 거죠.  
 
약해서 예수님이 필요하잖아요. 혼자 설 수 없어서, 예수님께 매달리는 거잖아요. 우리는 강할 수 없어요. 
 
예수님이 말씀하셨어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다.” 
 
신명기 8장 3절 말씀이에요. 구약성경을 읽어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계속 실패해요. 굶주림을 못 이겨요. 시험이 올 때마다 넘어져요.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버리셨나요? 아니에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어요. 자주 넘어지거든, 기억하세요. 하나님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세요. 
 
모든 사람이 실패했지만, 예수님은 유혹을  이기셨어요. 예수님은 배고프셨지만, 우리를 위해 기꺼이 떡이 되어 주셨어요. 우리 안의 결핍은, 예수님으로만 채워져요. 
 
결핍은 약점이 아니에요. 결핍은 기회에요. 예수님으로 배부르면, 안전할 거예요. 
 
생명의 떡을 먹은 사람들, 예수님과 하나 되었어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예수님은 다시 오실 거예요.

마음이 무너지는 날

<누가복음 3: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마음이 막 무너지는 날, 있잖아요.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잘나 보이고, 나 빼고 모든 사람이 걱정 없이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날, 다른 사람과 비교할 의지조차 사라질 만큼 나 자신이 비참하게 느껴지는 그런 날 있잖아요. 
 
막 울고 싶은데, 어디 가서 울어야 할지 몰라 성경을 펼쳐 읽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평소에 많이 읽은 말씀인데, 왜 갑자기 눈물이 나지? 
 
‘내가 네 마음을 안다, 그 마음을 내가 모르겠니….’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 같았어요. 
 
예수님의 시작은 고요했어요.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죠. 예수님이 누추한 옷을 입고 요단 강에 나타나셨을 때, 사람들 눈에는, 자기들처럼 죄를 용서받으려고,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온 사람처럼 보였을 거예요. 
 
그럴만해요. 당시의 모든 종교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 있었어요. 갈릴리 요단 강은, 유능하고 탁월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아니었죠. 예루살렘에서 낙오한 사람들이나 모여드는 변두리에, 감히 메시아라니…. 상상할 수도 없었겠죠.   
 
예수님은 아무런 설명도 변명도 없이, 사람들 틈바구니에 섞여 요한 앞에 서셨어요. 예수님은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셨고, 그 누구의 동의도 필요 없으셨지만, 이제 허락하라는 말로 세례를 받으셨어요. 
 
예수님이 기도하셨을 때, 하늘이 열리며 성령님이 비둘기처럼 내려오셨고, 하나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어요.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기뻐한단다.”
 
여기서, 많이 울었어요. 하나님의 목소리가 나한테도 들리는 것 같아서요. 내가 위로를 받고 마음이 따뜻해지니까, 이제야 당신이 보여요. 당신을 위로하고 싶어요. 
 
‘내가 이렇게 비참해진 건 내 선택의 결과일지도 몰라. 내가 어리석었어. 올바른 결정을 내렸다면, 이렇게까지 비참해지지 않았을 거야.’ 
 
그보다 비참한 생각은 없을 거예요. 당신이 나처럼 슬프다면, 우리 잠시 대화해요. 
 
어쩌면, 우리 실수한 게 아니에요. 과거로 돌아가 똑같은 상황에 놓이더라도, 똑같은 결정을 내릴지도 몰라요. 두 번 어리석을 수 있다면, 그것은 실수가 아니라 신념이에요. 
 
혹시, 예수님을 사랑해서 내린 결정 아닐까요? 책임을 회피하고, 변명하고, 합리화하자는 말이 아니에요. 진실을 알고 싶어요.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토록 어리석은 결정이 가능했을까요?
 
당신은 예루살렘에서 밀려난 게 아니라, 예루살렘을 추구하지 않은 거예요. 당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예수님을 닮아서, 예수님처럼 올바른 결정을 내린 거예요.
 
당신의 실수가 아니에요. 올바른 선택이에요. 자책하지 마세요. 비록 예루살렘과는 멀어졌을지 몰라도, 예수님이 당신과 함께 하세요. 
 
좁고 험한 그 길 끝에서, 예수님이 두 팔로 안아주시고, 사랑으로 속삭여 주실 거예요. ‘잘했다. 수고했다. 내가 너무 기쁘구나’ 예수님의 진심이에요. 조금만 힘을 내주세요. 얼마 남지 않았아요.

두려움은 잠잠하라

From 베드로 
 
“호수 건너편으로 가자.” 
 
예수님이 말씀하셨을 때, 우리는 배에 몸을 실었습니다. 화창한 날씨에 무료함을 느꼈지요. 예수님은 피곤하셨는지, 배 밑으로 들어가 잠시 눈을 붙이셨습니다. 나와 다른 제자들도 여기저기 쪼그려 앉아 꾸벅꾸벅 졸았지요. 
 
평온함도 잠시, 안드레가 나를 흔들어 깨우며 말했습니다. 
 
“형, 큰일 났어!”
 
잠에선 깬 나는, 눈앞의 광경에 깜짝 놀랐습니다. 시커먼 하늘에서 비가 쏟아져내리고, 비바람이 거세게 불었습니다. 파도는 배를 집어삼킬 듯이 미쳐 날뛰었습니다. 배에 물이 가득 차서, 침몰하기 직전이었습니다. 
  
우리는 곧 죽을 운명이었습니다. 
 
나는 다급하게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배밑으로 내려가, 예수님께 소리를 지르듯 말했습니다. 
 
“주여! 우리가 죽습니다!” 
 
뒤돌아 누워 계시던 예수님이 몸을 돌려 일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없이 계단을 오르시고, 배 위에 섰습니다.  비바람이 예수님의 따귀를 때리듯, 거칠게 달려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미쳐 날뛰는 시커먼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잠잠하라.” 
 
예수님의 목소리는 짧고 묵직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자, 바다가 잠잠해졌습니다. 시커먼 먹구름이 물러가고, 비바람이 그쳤습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밝은 햇살이 물결 위에서 보석처럼 빛났습니다.  
 
예수님이 침묵을 깨고, 물으셨습니다.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솔직히, 나는 두려웠습니다. 
 
만약 내가 바다에 대해 몰랐다면, 덮어놓고 대충 생각했겠지요. ‘설마 우리가 죽겠어? 이러다 말겠지.’ 하지만, 나는 그렇게 순진할 수 없었습니다. 어부였으니까요. 
 
나는 갈릴리 바다를 내 손바닥처럼 잘 알았습니다. 바람의 강도와 파도의 높이를 파악한 나는, 본능적으로 깨달았습니다. 
 
‘우리 모두 끝장이다.’  
 
내 두려움은 현실적이었습니다. 차라리 내가 바다에 대해 몰랐기를 바랄 정도였습니다. 
 
변명처럼 들렸을지도 모르지만, 내 솔직한 심정입니다. 비바람이 몰아칠 때, 내 눈앞에서 끔찍한 장면들이 생생하게 펼쳐졌습니다. 현실을 아는 만큼, 나는 두려웠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예수님께서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우리의 믿음 없음을 탓하신 게 아닙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부족한 믿음을 소중하게 여겨주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우리의 부족한 믿음을 비난하실리 없지요. 
 
예수님의 말씀을 조금 더 분명하게 표현해 보겠습니다. 
 
“왜 너희 믿음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냐?” 
 
예수님은 우리의 상황을 안타깝게 여기신 겁니다. 두렵고 다급한 상황에서, 믿음을 사용하기 원하셨습니다. 부족한 믿음이라도, 사용하라는 것이지요. 
 
위기의 상황에서, 두려움에 끌려다니지 말고, 현실에 매몰되지 말고, 작고 초라한 믿음이라도 발휘하라는 예수님의 부탁이셨습니다.  
 
우리가 배에 오르기 전, 예수님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바위 위에 뿌려진 씨앗은 뿌리를 내리지 못해, 곧 말라죽게 된다.” 작은 믿음이라도, 예수님께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말씀이었지요.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이 험하고 무섭지요. 현실의 두려움을 무시하기에는, 당신은 너무나 현실적입니다. 이미 너무나 많은 아픔을 겪었겠지요. 아는 만큼, 무서울 겁니다. 
 
당신의 그 두려운 마음, 예수님이 아십니다. 보잘것없는 믿음으로, 다급하게 예수님을 부르는 것이 당신과 나의 형편입니다. “내 인생 끝장났다고….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말하는 것이 전부겠지요. 
 
당신에게 부탁합니다. 믿음 없다고, 자책하지 마세요. 위기의 순간에, 당신의 그 작은 믿음을 사용하세요. 작고 초라한 믿음이라도 괜찮아요. 힘껏 발휘하세요. 
 
당신이 다급한 목소리로 “주님!”이라고 부를 때, 예수님은 일어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잠잠하라.” 
 
당신이 예수님을 부를 때, 두려움은 놀라움으로 바뀝니다. 
 
당신을 잡아먹을 듯 미쳐 날뛰는 지독한 현실은 잠잠해질 것입니다. 당신을 집어삼킬 듯, 끊임없이 솟구쳐 오르는 지독한 감정도 잠잠해질 것입니다.  
 
예수님의 차분한 목소리로, 오늘 하루도 당신이 침착하기를 바랍니다. 당신은 잠시 흔들릴 뿐, 절대로 끝장나지 않습니다.

왜 나를 거절하세요?

From 거라사의 광인 
 
당신도 나를 알지요? 성경에서 내가 꽤나 유명한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당신이 알듯이, 나는 부끄러운 과거를 가진 사람입니다. 
 
나는 수많은 귀신들에게 시달리며, 나 자신을 학대했습니다. 온몸을 찢으며, 귀신이 떠나가기를 바랐지만, 귀신들은 나를 조롱하고 지배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치유됐습니다. 귀신이 완전히 떠나가고, 내 정신과 감정이 멀쩡해진 것이지요. 안타깝게도,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내가 기억하는 것이라고는, 내 앞에 서 계신 예수님뿐이었지요.  
 
정신을 차린 나는, 혼자 남겨지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언제라도 귀신들이 다시 찾아와 나를 지배할 수도 있으니까요. 나는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사정하듯 말했습니다. 
 
“예수님, 저도 예수님을 따라가고 싶습니다. 혼자 남겨지는 것이 무섭습니다.” 
 
나는 내심 기대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를 수 있게 해주신다면, 나는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다니면서, 저 열두 사람처럼, 내 인생 전부를 바쳐 예수님을 도와드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거절하셨습니다. 저를 집으로 돌려보내셨습니다. 나를 미워하고, 거절하고, 조롱했던 마을 사람들에게로 돌아가라고 한 것이죠. 예수님은 하루도 머물지 않고, 곧바로 내 곁을 떠나버리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웠지만, 순종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집으로 돌아가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을 말했습니다. 
 
온 도시의 사람들이 나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나를 비웃고 조롱할 여유조차 없었지요. 어제까지만 해도, 나는 광야를 헤매던 미친 사람이었으니까요. 
 
혼자 있을 때, 나는 가끔 생각에 잠겼습니다. 
 
‘예수님은 왜 나를 거절하셨을까? 왜 나를 혼자 남겨두셨을까? 나는 아직도 무서운데….’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떠올랐습니다. 
 
‘내 과거가 문제가 된 게 아닐까?’
 
나는 더 이상 귀신들린 사람이 아니지만, 얼굴과 몸의 흉터를 지울 수 없었습니다. 내 얼굴을 쳐다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겁니다. 여기저기 찢어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으니까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나를 비교하게 되더군요. 
 
‘그들에게는 뭔가 특별한 게 있을 거야.’ 
 
마음속에 자리 잡은 의문을 해소할 길이 없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이었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내 자리를 묵묵히 지켰습니다. 
 
그렇게 2-3년이 흘렀을 때, 예루살렘에서 슬픈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고요. 나는 땅바닥에 쓰러져 엉엉 울었습니다. 
 
나는 당장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온갖 수소문 끝에, 예수님의 제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곧 다시 오실 거라며 기뻐했습니다. 
 
나는 제자들과 함께 머물면서, 마음속 깊은 고민을 꺼내놓았습니다. 
 
‘예수님은 왜 나를 거절하셨을까? 나의 과거 때문에? 내가 준비되지 않아서?’ 
 
내가 깊은 한숨을 내쉴 때, 베드로라는 제자가 말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딱 3년을 함께 했습니다. 상대적으로 3년이 길게 느껴지실 수도 있지만, 제 입장에서는 눈 깜짝할 사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잠시 잠깐 우리 곁에 계시다가, 홀연히 떠나버리셨습니다. 
 
예수님이 당신을 떠나보내실 때, 당신에게 남기셨던 그 말씀을 우리에게도 똑같이 남기셨습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는 권능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그리고 땅 끝까지 가서 내 증인이 될 것이다.” 사도행전 1:8
 
우리에게 당신보다 거창한 말씀을 하신 게 아닙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집으로 돌려보내셨습니다.  당신이 살았던 도시로 보냄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난 곳 방언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태어난 곳으로, 우리가 필요한 곳으로 사방팔방 흩어지게 하셨습니다.  
 
당신과 우리는 같은 사명을 받았습니다. 온 도시와 마을로 흩어져,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거절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보다 당신을 먼저 파송하신 것이지요. 시기의 차이일 뿐, 조건의 차이는 아닙니다.   
 
참, 당신은 모르시지요? 당신을 만나러 가다가  우리가 모두 바다에 빠져 죽을 뻔했습니다. 우리 목숨을 담보로 어디를 가시나 했더니, 당신을 찾아가시더군요. 
 
당시에는 예수님의 깊은 뜻을 몰라, 화가 났습니다. 나도 모르게 속으로 말했지요. 
 
‘고작 이런 미친 사람 하나를 구하려고, 우리 모두의 목숨을 걸고, 여기까지 왔단 말이야?’
 
미안합니다. 너무 솔직했나요? 예수님은 당신 한 사람을 만나시려고, 그 먼 길을 가신 겁니다. 
 
예수님이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아시겠지요? 당신의 얼굴의 난 흉터, 당신의 모든 과거, 예수님은 문제 삼지 않으십니다. 
 
자격을 갖춰서 부름을 받은 사람은 여기 아무도 없습니다. 당신과 나, 우리 모두는 자격 미달입니다.” 
 
다른 제자들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나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세상 모두가 짐승처럼 여기던 나였습니다. 내가 뭐라고 예수님이 그 멀리서 목숨을 걸고, 나를 찾아와 주신 걸까요?
 
나는 예수님을 오해했습니다. 내 과거, 내 흉터. 예수님께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자격 없는 나를, 예수님은 조건 없이 사랑해 주셨습니다. 
 
당신이 예수님을 그리워하는 것을 압니다. 당신이 깊은 절망 속에서 울고 있을 때, 예수님이 찾아와주셨지요? 당신도 나처럼 혼자 남겨지기 싫었지요? 
 
당신 마음, 나도 조금은 압니다. 혼자 남겨진 당신은, 예수님에게 거절당한 사람처럼, 외로우실 겁니다.  
 
하지만, 당신은 나처럼 예수님을 오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멀어진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것은 감정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떠난 적이 없으십니다. 
 
나를 위해 비바람이 몰아치는 바다를 건너셨듯이, 예수님은 당신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오르셨습니다. 예수님이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증거입니다. 
 
혼자라고 외롭다고 울지 마세요. 예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과 함께하십니다. 

예수님께 데려다줄게요

From 목격자 (중풍병자의 친구)
 
나의 소중한 친구 세르오는 앞날이 창창한 20대에, 뇌혈관이 터져 온몸이 굳어버렸습니다. 밭에 쓰려져 숨만 쉬고 있던 세르오를, 마을 사람들이 발견해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요. 
 
세르오는 절망에 빠졌습니다. 내가 세르오를 찾아갈 때마다, 차라리 자기를 죽여달라고 울부짖었지요. 나는 그를 사랑했지만, 그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마을에 오신다는 말을 듣고, 나는 기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병을 고치고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그분에게, 내 친구 세르오를 데려다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당장에 세르오에게 달려갔지요. 
 
“세르오! 우리 마을에 예수님이 오신대! 이제 너도 걸을 수 있어. 내가 너를, 예수님에게로 데려다줄게.” 
 
세르오는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눈물을 쏟아냈지요. 나는 세르오를 부둥껴 안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부디, 내 친구 세르오를 고쳐주시라고요. 
 
나는 다른 친구 셋을 불러, 세르오를 들것에 실었습니다. 예수님이 계신 장소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고개를 떨구고 말았습니다. 네 사람이 들것을 들고 발을 맞춰 걸으려니, 다른 사람들처럼 빨리 걸을 수가 없더군요. 
 
우리는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구름 떼처럼 많은 사람들이 겹겹이 쌓여있었습니다. 군중 밖으로 떠밀려, 예수님의 얼굴조차 볼 수 없었지요. 
 
세르오가 말했습니다. 
 
“괜찮네, 친구들. 자네들이 나를 위해 여기까지 와준 것만으로 고맙다네.” 
 
나는 세르오의 손을 꼭 잡고 말했습니다.
 
“세르오, 절대로 포기하지 말게. 나는 자네를 꼭 살려야겠네. 자네를 예수님에게로 데려다주겠어.” 
 
 나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세르오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 밖에는 없었습니다. 나와 친구들은 지붕 위로 올라가서 지붕을 뜯었습니다. 
 
지붕 위에 구멍이 생기자, 예수님 발 앞에 흙이 우수수 떨어졌습니다. 집 안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얼마나 걱정이 되던지요. 
 
내가 먼저 고개를 내밀어 안쪽의 상황을 살폈습니다. 그때, 예수님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예수님은 따뜻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시며, 말없이 고개를 끄떡이셨습니다. 
 
나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우리는 수평을 맞추어 조심히 세르오를 내려보냈습니다. 지붕에서 세르오를 내리는 동안, 예수님은 단 한순간도 시선을 거두지 않으셨습니다. 
 
세르오가 바닥에 내려진 순간, 예수님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네 죄가 용서되었다. 침상을 들고 일어나렴. 이제 너는 걸을 수 있단다.” 
 
세르오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일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순간이었습니다! 세르오의 굳은 몸이 풀리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나는 깜짝 놀라, 하마터면 지붕에서 떨어질 뻔했습니다. 나와 친구들은 너무나 감격해서, 서로를 끌어안고 엉엉 울었습니다. 예수님은 세르오를 안아주시며, 등을 두드려 주셨습니다. 
 
세르오의 어깨너머로 예수님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올려다보시며, 인자하게 웃으셨습니다. 이제 세르오는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내게 말하더군요. 세르오가 나은 건, 모두 내 덕분이라고요. 나는 고개를 저으며, 어색하게 웃을 뿐입니다. 내가 한 것이라고는 세르오를 예수님에게 데려다준 것뿐이에요. 만약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세르오는 여전히 절망 속에 있었겠지요.  
 
훗날, 예수님이 우리의 믿음을 언급하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와 친구들의 믿음 때문에, 세르오를 고쳐주셨다고요. 자칫 잘못하면, 나와 친구들의 믿음으로 세르오가 나았다고 오해하실 것 같아요. 
 
예수님은 네 사람의 믿음이 아니라, 다섯 사람의 믿음을 보신 겁니다. 세르오 역시 간절히 치유되기 원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의 믿음을 보신 거예요. 예수님은 우리의 작은 믿음을 기뻐하시며, 세르오를 고쳐주셨습니다. 
 
사람들은 계속 말을 만들지요. 부정적인 소식은 빨리도 퍼집니다. 들것을 함께 들어준 친구가 어느 날, 내게 속상한 말을 전하더군요. 
 
“이봐, 자네도 들었나? 마을에서 이상한 말을 퍼뜨리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네. 예수님이 세르오에게 “네 죄가 용서되었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나? 그 말을 오해한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이야. 세르오가 중풍병에 걸린 게, 세르오의 죄 때문이라고…. 이런 터무니없는 말이 어디 있나? 세르오가 그 말을 듣게 되면, 얼마나 상처를 받겠나.”
 
나는 친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오해해서 실수한 것이라도, 제아무리 상처를 줄 의도가 없다고 하더라도, 세르오가 들으면 마음이 아플 것이 분명했습니다. 
 
예수님은 세르오의 죄를 지적하신 게 아닙니다. 죄 때문에 세르오가 병든 게 절대로 아닙니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아픈 것도 전부 네 잘못이다”라고 말하다니요.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끔찍한 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오해한 결과입니다. 예수님은 세르오의 질병을 치유하신 것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치유해 주신 겁니다. 참된 자유를 선포하신 것이지요. 예수님은 치유와 용서의 예수님이십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돌보며, 함께 기도하는 당신을 위로하고 싶습니다. 나와 당신은 무능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상처 입은 한 사람을 예수님에게 데려다주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나는 못한다고, 나는 아무 도움도 줄 수 없다고, 절망하지 마세요. 
 
우리는 못해도, 예수님은 하십니다. 예수님이 반드시 치유하십니다. 당신과 나는 치유자가 아니라, 목격자입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상처 입은 한 사람을 예수님에게로 데려다주세요. 
 
내 이름은 남기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머문 자리, 우리의 이름 대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이 남겨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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