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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구원

나는 언제 치유될까요?

주변에서는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아요. 언제까지 상처받은 채로 살 거냐고 다그치는 사람도 있어요. 과거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나는 자꾸 왜 이러는 걸까요?
 
누군가 내게 “언제까지 상처받은 채로 살 거냐?”라고 질문한다면 고민하지 않고 답할 거예요. “예수님 오실 때까지”라고요. 상처는 완치되지 않아요. 그분이 오실 때까지, 우리 안의 상처 를 돌보며 살 뿐이에요.
 
상처로 고통받는 사람은 상처가 치유되기를 바랍니다. 너무 힘드니까요. 치유를 과정으로 바라보지 않고, 성취로 바라보면 더 큰 고통이 찾아와요. 치유되지 않는 책임을 자신이 떠안게 되니까요. 오해하지 마세요. 치유는 과정이지 성취가 아닙니다.
 
내 관점에서 치유는 구원과 닮았어요. 사람들은 ‘치유’라는 말을 오해해요. 우리가 복음 안에서 사용하는 치유라는 단어는 국어사전과는 다른 뜻이에요.
 
같은 말이라도 사용하는 사람이나 문맥에 따라 달라집니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떠올려보세요. 연인 사이, 부모 자녀 사이에 쓰는 뜻이 달라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사랑도 마찬가지예요. 똑같은 단어를 쓰지만, 일반적인 사랑과는 다릅니다.
 
사전에서 치유는 ‘치료하여 병을 낫게 함’이라는 뜻입니다. ‘다 낫는 것, 완치’를 의미하지요. 이것을 성경 안으로 가져오면 충돌이 일어나요. 성경적인 치유의 관점에서 완치는 없거든요.
 
예수님이 상처 입은 사람을 치유해주실 때, 치유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어요. 치유는 구원 드라마의 예고편 같은 역할을 했지요. 보이지 않는 구원을 눈앞에 보여주기 위한 예수님의 사역이었습니다. “병자가 고통에서 벗어나듯이, 귀신 들린 사람이 억압에서 벗어나듯이, 구원받은 사람도 이와 같을 것이다”라는 뜻이었어요.
 
치유와 구원이 닮았다고 말했으니, 구원에 대해 조금 더 살펴 볼게요. 구원은 심오하고 복잡하지만, 이해하기 쉽게 세 가지 관점에서 설명해볼게요. 하지만 구원이 세 토막이나 삼 단계라는 뜻은 아닙니다.
 
햇빛은 수천 개의 가시광선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우리는 모든 색을 말할 수 없지요. 유치원 아이들은 보통 햇빛을 노란색으로 칠해요. 중고등학생이 되면 햇빛을 프리즘에 통과시키고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 일곱 가지 색깔이라고 말해요. 어른이 되면 햇빛 그 자체로 느끼죠.
 
같은 맥락에서 구원도 이해하기 쉽게 세 가지로 설명하지만, 실제로는 하나입니다.
 
일단, 예수님을 믿은 사람은 즉시 구원받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가 그랬지요. 그가 누구든,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았든, 하나님은 차별하지 않으세요. 그리스도를 믿으면 즉시 구원받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구원받은 강도는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어요. 만약 그에게 덤으로 인생이 주어졌다면 마땅히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살아야 했을 겁니다. 즉시 구원을 받은 사람은 점차적으로 예수님을 닮아갑니다.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따르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노력해서 구원을 완성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어요. 예수님을 닮으려 노력한다고 예수님이 될 수는 없지요.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는 스스로 구원을 완성할 수 없어요.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게 훨씬 빨라요. 그날 예수님이 약속 하신 대로 우리는 영화롭게 됩니다. 그분이 다시 오시는 날, 구 원이 완성됩니다.
 
구원을 시작하신 분도, 이루시는 분도, 완성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분의 사역이에요. 사람의 노력이나 공로가 끼어들 틈이 없어요. 
 
교리 강의 시간도 아닌데 왜 길게 설명했을까요. 구원과 치유 가 닮았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을 믿은 즉시 우리는 치유됩니다. 그러나 치유는 즉시 완성되지 않아요. 이미 치유된 우리는 아직 치유되지 않은 거예요. 예수님의 사랑과 말씀으로 우리 안에 있는 어둠을 몰아내고 빛으로 나아가야 해요.
 
예수님을 믿은 후에도 우리 안에서는 육신의 법과 하나님의 법이 치열하게 싸웁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끊임없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 포기하지 말아요. 예수님이 오시는 날, 우리의 모든 수고도 끝납니다.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치료의 광선으로 외양간의 송아지가 기뻐 뛰는 것처럼 홀연히 치유될 것입니다.
 
“너 언제까지 상처받은 채로 살아갈 거냐?”라는 말은 내게 “너 언제 완전해질래?”와 같은 의미로 들립니다. 누군가 이렇게 묻 는다면 “아무도 완전할 수 없어요. 누가 자신의 의로움을 자랑 할 수 있을까요?”라고 대답할 거예요. 이제 위축되지 말아요. 누군가 또다시 같은 질문을 던지면 당당하게 대답해요.
 
“나는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상처받은 채로 살련다!”
 
성경을 펼쳐놓고 치유되는 삶을 시작해요. 예수님의 사랑과 말씀으로 자신 안의 상처를 잘 돌봐요.

속마음을 말하면 눈물이 나요

저는 지금까지 제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말한 적이 없어요.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교회에서는 속마음을 말할 자리가 많은 것 같아요. 공동체에서 속마음을 말할 때 계속 눈물이 나요. 부끄러워서 울고 싶지 않은데, 멈출 수가 없어요.  
 
괜찮아요. 우세요. 안심하고 울어도 돼요.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모든 사람이 겪는 일이에요. 마음이 복잡할 거예요.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겠죠. 나는 내 경험에 비추어서 잠시 그 감정을 표현해보려고 합니다. 
 
장례식에 가면 눈물이 납니다. 누군가를 잃었다는 슬픔때문이죠. 예수님을 처음 믿는다는 건 이전에 내가 죽었다는 뜻이에요. 지금까지 붙잡고 살았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으려니 무섭기까지 하겠지요. 눈물이 나는 건 당연합니다. 
 
예수님을 믿게 된 순간부터 자매님은 다시 태어납니다. 새로운 생일을 맞이한 겁니다. 깜짝파티를 상상해보세요. 생일 날, 축해해주는 사람 하나 없어 실망한 채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엽니다. 어두운 방 안에 불을 켰을 때, 소중한 사람들이 한가득 모여 폭죽을 터트리며 환호성을 지릅니다. 감동받겠지요. 감동이 크면 눈물이 납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은 결혼식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신부로 일생을 사는 겁니다. 결혼식은 기쁘지요. 부모와 헤어지는 슬픔도 있습니다. 복잡한 감정입니다. 결혼식에서 신부가 흘리는 눈물은 보석입니다. 성분이 H2O가 아닙니다. 
 
장례식, 깜짝파티, 결혼식을 동시에 겪었으니 얼마나 정신이 없을까요. 누군가 말을 걸면, 두서 없이 말하게 될 거예요. 그동안 자신을 꼭꼭 숨겨 온 사람이라면, 표현하기 더욱 힘들겠지요. 말보다 마음이 앞설 겁니다. 울음이 먼저 터지는 건 당연합니다.
 
처음이라 부끄럽겠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공동체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 비슷한 일을 겪었습니다. 사람들이 이해해줄 거예요. 울고 싶은 만큼 우세요. 어쩌면 누군가는 자매님이 흘리는 눈물을 보면서, 첫 사랑을 떠올릴 겁니다.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첫 사랑 말입니다. 
 
자매님은 공동체의 선물입니다. 갓 태어난 자매님을 공동체가 사랑으로 안아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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