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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가 힘들어 교회를 떠났어요

관계가 힘들어 교회 청년부를 떠났어요. 시간을 두고 생각하다가 다시 마음이 열려 청년부 공동체에 가려 했어요. 떠나온 것이 미안해서 먼저 리더 언니에게 제 상황을 알렸어요. 다시 교회에 나가고 싶다고 말했어요.
 
환영해줄 거라는 저의 바람과는 달리, 리더 언니는 너무 조급한 것 같다며 기다려 달라고 했어요. 공동체 사람들이 너 때문이 힘들어한다고. 알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어요. 그때는 괜찮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화가 났어요. 내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는 전혀 물어보지 않았어요. 공동체에서 저를 밀어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엇 때문에 교회를 떠났는지 알 길이 없어 정확한 답변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교회 사람들과 갈등이 일어나 공동체를 떠난 것 같아요. 교회는 어떤 상황에서든 자매님을 있는 그대로 받아줘야 하지만, 실제로는 교회 사람들이 서로 상처가 많아서 쉽지가 않지요. 리더 언니라는 분은 아마 다른 사람에 대한 걱정이 앞섰던 것 같아요. 리더 언니를 이해해줄 필요가 있어요. 리더 역할은 언제나 쉽지 않으니까요.
 
아쉬운 게 하나 있다면, 리더 언니가 자매님이 오고 말고를 결정할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해요. 그 누구도 하나님의 자녀를 거절할 권리는 없거든요. 자매님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위임하지 마세요.
 
자매님이 리더 언니에게 물을 필요가 없었던 것 같아요. 가고 말고를 결정하는 분은 자매님이지 리더 언니가 아니거든요. 리더 언니가 어떤 말을 해도 만족할만한 답변을 듣지 못했을 거예요. 그전에 교회를 떠나올 만큼 갈등이 깊었을 테니까요.
 
과정을 공유하는 게 핵심이에요. 다녔던 교회를 사랑한다면, 교회에 다시 출석하는데 목적을 두지 마세요. 자매님에게 있었던 일을 있는 그대로 리더 언니와 공유하는 게 먼저예요.
 
무엇으로 상처받았고, 혼자 시간을 보내면서 어떻게 회복되었는지 말해주세요. 같은 말이라도 표현이 중요하니까 최대한 진실되게 대화하세요.
 
리더 언니로부터 또다시 거절을 당한다면, 전도사님이나 목사님께 도움을 요청하세요. 도와주실 거예요. 만약에 또다시 거절을 당한다면, 그때는 다른 교회를 고려해보세요.
 
교회를 쉽게 옮겨도 된다는 말이 아니에요. 교회 사람에게 상처받아서 신앙을 버릴까 걱정돼서 드리는 말이에요. 어떠한 경우에도 예수님을 포기하지 말아주세요.
 
스스로 회복할 시간이 필요해요. 사람들에게 상처받았으니까요. 한 가지만 말씀드릴게요. 예수님은 자매님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세요. 하지만, 교회 사람들은 자매님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지 않아요. 자매님 역시 리더 언니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에요.
 
리더 언니를 묵상하지 마시고, 예수님을 묵상하세요. 리더 언니와 나누었던 대화를 반복하지 마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반복하세요. 이 과정에서 하나님이 새로운 일을 펼쳐 가시기를 기대해봅니다. 부족한 답변 들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교회 일을 내려놓고 잠시 쉬려 해요

아빠가 오랜 투병생활을 하시다가 돌아가셨어요. 아버지의 죽음이 너무나 슬퍼요. 교회에서 맡았던 일을 내려놓고 잠시 쉬려는데 주변에서 그러지 말래요. 그럴수록 하나님을 더 붙잡으라고 해요. 슬픔의 영에 사로잡히면 일어서기 어렵다고 참고 견디라고요. 
 
슬퍼하세요.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슬프지 않겠어요. 일 년이든, 십 년이든, 평생이든 슬프면 우세요. 아버지가 일생동안 그립다면 감사한 겁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는 감정에 죄책감을 느낀다면 잘못된 겁니다. 
 
당신에게 ‘슬픔의 영’에 사로잡히지 말라고 말한 사람의 의도를 모르겠네요. 이 말은 문맥상 부정적인 뜻이겠지요. 성경에는 그런 말이 없습니다. 나는 그 말을 전해 들을 당시의 상황과 분위기는 모르지만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성경에 없는 말을 하면 위험합니다. 
 
쉬고 싶으면 쉬세요. 교회 일을 감당하는 것 자체가 본질이 아 닙니다.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결정하세요. 교회 봉사할 사람이 항상 부족해도 교회 문은 안 닫습니다. 하나님이 잘 이끌어 가십니다. 잠시 쉬다가 기운이 나면 다시 섬겨주세요.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세요. 그 눈물 마를 때까지 주님이 위로해주실 거예요. 오늘부터는 마음 편히 울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과 돌아가신 아버지 사이에는 예수님이 계세요. 천국에서 그분이 아버지를 돌봐주고 계십니다. 슬플 때마다 예수님 품에 안겨 있는 아버지를 생각하세요. 주님은 친절하게도 이 땅에서 슬퍼하는 당신에게도 찾아오세요. 눈물을 닦아주시며 위로해 주시지요. 
 
예수님이 계시기에 머지않아 슬픔은 소망이 될 것입니다. 슬플 때마다 그분 품에 꼭 안겨주세요. 다시 힘을 얻으면 주님의 일을 잘 감당하실 수 있을 겁니다.

우리 목사님이 변했어요

우리 목사님 변했어요.  
처음에는 안 그러시더니  
지금은 얼마나 권위적인지 몰라요.  
 
은혜는커녕 상처를 줘요.  
교회를 옮길까 고민 중이에요.  
 
교회 옮기는 게 어렵잖아요.  
그래서 더 힘들어요.  
 
옮겨도 또 실망하거든요.  
벌써 세 번째에요.  
 
미안해요.  
그 말에서 나도 자유롭지 못해요.  
 
대신 사과하는 게 아니에요.  
말할 수 없이 미안해서 그래요.  
 
지금 둘이 말하는 중이니까  
조심스럽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요. 
 
목사에게 너무 기대하지 마세요.  
좋은 거 아니에요.   
 
기대감은 어떤 방식으로든  
목사를 파괴해요.  
 
사람들이 기대하면 
반응은 둘 중 하나에요. 
 
기대감에 도취되거나  
기대감에 부응하거나.  
 
도취한 사람은 들떠요.   
도취되면 못 빠져나와요. 
 
부응하는 사람은 비참해져요.  
기준에 도달하려고 애쓰거든요. 
 
나도 시간 많이 낭비했어요. 
들뜨다 비참하다 비참하다 들뜨다가.  
 
목사라고 다르지 않아요.  
잘 기능하게 도와주세요.  
 
기대하면 실망해요.
우리 다 같은 사람이에요.   
 
말로 관심 표현하고 싶을 때마다 참아주세요.  
말로 표현하면 부작용 있어요.  
 
나는 개척 운동하는 교회에서 사역했어요.  
개척에 동참하고 싶은 성도들이 있지요.  
 
함께 사역하다 보면 아주 가끔  
성도들이 말할 때가 있어요. 
 
목사님 개척하면 따라갈 거예요. 
듣기는 좋지요. 
 
그다음 뭐가 남나요.  
아무것도 없어요. 부담만 남아요.  
 
그 마음은 알겠어요. 고마워요.  
하지만,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누가 누구를 따라가요.  
우리가 따라야 하는 존재는  
단 한 분,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없어요.  
 
성도가 목사 따르면 실망해요.  
성도가 주님 따르면 성장해요.  
 
나도 목사니까  
조심스럽게 말할게요.  
 
목사의 제자가 돼서는 안되요.  
주님의 제자가 되어주세요.  
 
좋은 목자를 만나서  
좋은 양이 될 수 있거든  
좋은 목자를 찾아 떠나세요.  
 
목자 여럿 만나도  
좋은 양이 될 수 없거든  
참 목자를 만나세요.  
 
참 목자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분입니다. 

술 담배를 끊지 못합니다

술 담배를 끊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숨기고 다는 게 가식적으로 느껴져서 교회 공동체에서 솔직히 말했습니다. 그날 이후, 저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사람이 알게 모르게 많습니다. 상처가 깊습니다. 여전히 끊으려고 노력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있습니다. 
 
술과 담배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을 제시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질문하신 분의 의도를 먼저 생각하고 싶습니다. 상처 부위를 보여줬는데, 핀셋으로 휘젓고 싶지 않습니다.
 
 술과 담배에 대한 성경적 해석은 다양합니다. 다양한 해석에 대해 저마다 일리 있다 생각합니다. 나는 술 담배를 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 관점을 정죄의 도구로 삼아 사람을 괴롭히고 싶지는 않습니다. 
 
술 담배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자기 행실로 당당할 수 없습니다. 나는 술 담배를 전혀 안 하지만, 떳떳하지 않습니다. 매일매일 변하지 않는 나 자신을 보며 절망합니다.   
 
자신이 술과 담배를 끊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동체에서 말할 때, 사람에게 기대하는 마음을 가진 것 같습니다. 용기 내서 솔직하게 말하면, 사람들이 이런 나를 이해해주지 않을까? 그러나, 기대와 달리 사람들의 표정이 차가워졌습니다. 그로 인해, 상처를 받게 되셨고요. 
 
나는 묻고 싶습니다. 자신은 자신을 받아주셨나요? 자신도 받아주지 못한 자신을 다른 누군가에게 받아달라고 하면 반드시 실망합니다. 반복되는 습관 속에서 스스로를 정죄하고 계시니 마음이 무거울 겁니다. 이 상황을 누구에게라도 알리고 도움을 구하고 싶은 마음 이해됩니다. 그러나, 자신도 용납할 수 없는 자신을 다른 누군가가 용납해줄 거라는 기대는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나는 나를 용납하지 못하겠어요.
그러니까, 당신이 나를 용납해주세요.
 
반드시 실패합니다. 더 이상 사람들에게 이해해달라고 부탁하지 마세요. 한계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상처를 가졌습니다. 원하는 답을 들을 수 없어요. 공동체의 반응은 어쩌면 당연한 겁니다.
 
솔직한 고백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니에요. 이 땅의 어떤 교회도 완벽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질문하신 분의 상태나 교회 공동체의 상태나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고백하고 싶거든 이 사실을 알고 고백하세요. 
 
교회 안에 있더라도, 사람들 의지하는 마음으로 고백하면 부작용 납니다. 예수님께 고백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부작용 없습니다. 교회에서 고백하더라도 교회 사람들이 아니라, 교회 안에 계신 예수님께 고백하는 겁니다. 그래야, 실망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차가워져도 예수님은 언제나 따뜻하시니까요. 
 
자신을 먼저 용납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마음 편하게 술 마시고 담배 피우라는 말이 아닙니다. 술, 담배 끊기 어렵습니다. 오래 걸립니다. 자신을 돌보면서 지속해야 합니다. 스스로를 정죄하면, 힘을 낭비하게 됩니다. 온 마음을 다해 예수님께 집중해주세요. 자신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지기를 바랍니다.    
 
“너 또 실패했지. 그럼, 그렇지. 넌 역시 안 돼. 넌 쓰레기야.” 진실이 아닙니다. 자신을 파괴하는 방식으로는 절대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며칠이라도 참고 견딘 자신을 인정해주세요. 그리고, 다시 시작하세요. 쉽게 되는 일 없습니다. 포기하지 말아주세요.

외롭지만 애써 괜찮은 척 해요

청년부 소그룹 리더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건강하고 좋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아요. 솔직히 말하면, 제 이야기를 다른 누군가에게 꺼내지 못합니다. 저 스스로가 사람들에게 마음을 닫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애써 괜찮은 척하지만, 가끔은 너무 외롭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질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외로운 감정은 사라지는 감정이 아닙니다. 누구나 외로움을 느낍니다. 그러니,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외로움은 기회일지 모릅니다. 외로운 감정을 혼자 간직하지 않고 예수님께 가져가고 있으니까요. 외로울 때마다 주님을 찾는다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 역시 그렇습니다. 외로운 감정을 거의 하루 종일 느낍니다. 자주 말씀드리지만, 외로운 감정은 누가 옆에 있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거든요. 내 가정은 행복합니다. 아내와 나,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내게 말할 수 없는 행복을 줍니다. 그래도, 외롭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문제가 아닙니다. 외로운 감정은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감정입니다. 만약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로 충분하다면, 그래서 전혀 외롭지 않다면, 하나님을 찾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부족함을 느낄 수 없으니까요. 그러나, 세상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갈지라도, 근원적인 결핍은 결코 다른 사람을 통해 채워질 수 없습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어도 외로울 수밖에 없는 겁니다. 하나님으로만 채워져야 하는 빈자리가 있습니다. 세상 그 누구도 채워줄 수 없는 빈자리입니다. 
 
지금처럼 주님께 시시콜콜 다 말해주세요. 아무리 사소한 이야기라도 주님께 가져가서 말해주세요. 그러면, 안전합니다. 외로움을 돌보면서, 성장하고 계신 거예요. 가끔 말할 수 없이 외로울 수 있지요. 걱정 마세요. 주님이 안아주십니다. 그 감격과 기쁨으로 당당하게 일어나실 거예요. 감정이 당신을 속일지라도 절대로 속지 마세요. 당신은 절대로 혼자가 아닙니다. 언제나 주님이 함께 계시니까요. 

속마음을 말하면 눈물이 나요

저는 지금까지 제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말한 적이 없어요.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교회에서는 속마음을 말할 자리가 많은 것 같아요. 공동체에서 속마음을 말할 때 계속 눈물이 나요. 부끄러워서 울고 싶지 않은데, 멈출 수가 없어요.  
 
괜찮아요. 우세요. 안심하고 울어도 돼요.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모든 사람이 겪는 일이에요. 마음이 복잡할 거예요.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겠죠. 나는 내 경험에 비추어서 잠시 그 감정을 표현해보려고 합니다. 
 
장례식에 가면 눈물이 납니다. 누군가를 잃었다는 슬픔때문이죠. 예수님을 처음 믿는다는 건 이전에 내가 죽었다는 뜻이에요. 지금까지 붙잡고 살았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으려니 무섭기까지 하겠지요. 눈물이 나는 건 당연합니다. 
 
예수님을 믿게 된 순간부터 자매님은 다시 태어납니다. 새로운 생일을 맞이한 겁니다. 깜짝파티를 상상해보세요. 생일 날, 축해해주는 사람 하나 없어 실망한 채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엽니다. 어두운 방 안에 불을 켰을 때, 소중한 사람들이 한가득 모여 폭죽을 터트리며 환호성을 지릅니다. 감동받겠지요. 감동이 크면 눈물이 납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은 결혼식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신부로 일생을 사는 겁니다. 결혼식은 기쁘지요. 부모와 헤어지는 슬픔도 있습니다. 복잡한 감정입니다. 결혼식에서 신부가 흘리는 눈물은 보석입니다. 성분이 H2O가 아닙니다. 
 
장례식, 깜짝파티, 결혼식을 동시에 겪었으니 얼마나 정신이 없을까요. 누군가 말을 걸면, 두서 없이 말하게 될 거예요. 그동안 자신을 꼭꼭 숨겨 온 사람이라면, 표현하기 더욱 힘들겠지요. 말보다 마음이 앞설 겁니다. 울음이 먼저 터지는 건 당연합니다.
 
처음이라 부끄럽겠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공동체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 비슷한 일을 겪었습니다. 사람들이 이해해줄 거예요. 울고 싶은 만큼 우세요. 어쩌면 누군가는 자매님이 흘리는 눈물을 보면서, 첫 사랑을 떠올릴 겁니다.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첫 사랑 말입니다. 
 
자매님은 공동체의 선물입니다. 갓 태어난 자매님을 공동체가 사랑으로 안아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어떻게 도와줘야 하나요?

아끼는 후배와 대화하던 중에 심각한 말을 전해 들었어요. 자신이 돌보고 있는 소그룹 멤버가 끔찍한 일을 겪었는데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어요. 직접 만나서 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겠냐고 제게 물었는데,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요.   
 
절대로 만나시면 안 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려 죄송합니다. 자매님을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습니다. 아끼는 후배의 부탁이니 거절하기 힘들 겁니다. 그래도, 거절해야 합니다.  
 
직접 만나면 안 되는 이유를 생각나는 대로 말해보겠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비밀 유지입니다. 비밀을 말한 사람 입장에서 비밀 유지가 깨졌다면, 그건 재앙입니다. 모든 신뢰가 무너집니다. 
 
아끼는 후배가 소그룹 리더입니다. 소그룹 멤버가 리더를 신뢰하고 비밀을 말했습니다. 리더는 그 비밀을 자매님에게 말한 겁니다. 리더가 아무리 좋은 의도라고 해도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비밀을 말한 사람은 충격을 받게 됩니다. 평소 리더에 대한 신뢰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지겠지만, 대부분은 배신감에 관계를 끊습니다. 
 
공동체의 흔한 실수입니다. 서로 기도해준다는 명분으로 비밀을 마구 퍼뜨립니다. 비밀은 반드시 지켜줘야 합니다. 절대로 퍼뜨리면 안 됩니다. 한 사람의 진실된 기도가 백 사람의 기도보다 낫습니다.  
 
자매님이 후배를 대신해서 소그룹 멤버를 만난다면, 그 즉시 비밀 유지가 깨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겁니다. 안정적인 만남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지금 자매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아끼는 후배입니다. 후배에게 비밀을 말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 후배에게 집중하세요. 후배에게 필요한 건 공감입니다. 해결책이 아니에요. 후배가 해결하지 못한 것을 대신 해결해준다고 언니 노릇을 하는 게 아닙니다. 좋은 리더는 대신 해결해주지 않습니다. 방향을 제시해주세요. 선택은 당사자에게 맡겨야 합니다. 절대로 설득하지 마세요. 
 
후배가 직접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니,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어떻겠나고 제안해보세요. 두 사람의 전문가가 있습니다. 목회자와 상담자입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벌어진 일이니 목회자에게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목회자에게 비밀을 말해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비밀의 내용을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비밀의 내용을 말하지 않고 상황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소그룹 리더가 소그룹 멤버를 돌봐야 하듯, 목회자는 리더를 돌봐야 할 책임이 맡았습니다. 목회자가 자매님을 대신해 후배를 돌봐줄 겁니다. 
 
후배가 혼자서 외롭게 무거운 짐을 짊어지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후배는 소그룹 멤버에게 상담을 받아보라고 제안할 수 있습니다. 후배는 모든 내용을 알고 있으니까 편안하게 제안할 수 있을 겁니다. 당사자가 거절한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후배 역시 소그룹 멤버 대신 상처의 짐을 짊어질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리 조급해도 기다려야 합니다. 해결보다는 공감이 중요합니다. 
 
후배가 자매님에게 힘든 고민을 말했다는 것은 자매님이 제법 괜찮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감히 평가하는 게 아닙니다. 느껴지는 대로 말한 겁니다. 대신 나선다고 해결되는 일은 없습니다. 이 상황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모든 능력은 주님에게서 나옵니다. 주님이 하시는 일을 지켜봅시다. 책임회피 아닌가 걱정하지 마세요. 사랑하고 계시니까 충분합니다.

조금만 쉬고 싶어요

교회는 언제나 바빠요. 
봉사하는 사람이 부족해요. 
 
주보에 사람 구하는 광고가 
매주 빠지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헌신된 사람은 
목사만큼 바빠져요. 
 
주일에 봉사하다가   
목사보다 늦게 집에 가는 
사람도 있어요.   
 
이게 맞나. 
그만할까. 
 
이래저래 생각하다 
받은 은혜가 떠올라요. 
 
감사한 게 더 많으니까 
계속하기로 결심하죠. 
 
잠깐만요.
너무 힘들면 잠깐 쉬어도 돼요. 
 
엥, 정말요?
막상 쉬면 조금 불편해지는데. 
 
알아요.
그래도 힘들면 쉬어야죠.  
 
당장 그만두라는 말이 아니에요. 
억지로 버티지 말라는 말이에요. 
 
교회 일 거절해도 
하나님을 거절하는 건 아니거든요. 
 
교회 일 잘해도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도 아니고요. 
 
사람들이 부탁한 봉사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은  
비슷해 보여도 서로 다른 거예요.   
 
교회 일 하나만 하는 사람 드물어요. 
일단 시작하면 사람들 눈에 띄어서 
여기저기 불려 다녀요. 
 
탈진하는 순간이 와요. 
의지로 버티는 순간이 오죠. 
 
“조금만 쉬고 싶어요.” 
 
그 말 한 마디 못해서 참고 참다가 
조용히 교회를 떠난 사람 많이 봤어요. 
 
하나님께서 얼마나 
마음 아프실까요. 
 
남 이야기만 할 수 있나요. 
나도 고민 많았어요. 
 
내가 목사라서 직업으로  
교회 일을 열심히 하는 건지. 
 
주님을 사랑해서 순종으로 
교회 일을 열심히 하는 건지. 
 
신학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교회 일이 내 직업이 되었으니까요. 
 
내가 아무리 교회 일을 열심히 해도 
사람들은 생각했을 거예요.  
목사니까 그렇지.
 
당연한 거죠. 
내 직업이잖아요. 
 
반대로,
교회 일을 대충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목사가 왜 저래. 
그러지 않았을까요. 
 
분명히 알고 싶다고 
목회를 그만둘 수는 없잖아요. 
그대로 살았죠. 
 
직업인지 봉사인지 
구분되지 않은 채로 
그냥 열심히 했어요. 
 
어쩌다 보니 남들과 
다른 길을 가게 되었어요. 
 
더 이상 교회 일을 안 하니까 
안 보이던 게 보이더라고요. 
 
교회 건물
교회 행정 
교회 사람 
다 교회죠. 
 
평범한 건물이 교회라고 
불리는 이유는 아시죠?  
 
당신이 교회이기 때문이에요. 
자, 그럼 나는 묻고 싶어요.
 
당신을 위한 봉사는 
열심히 하고 있나요. 
 
당신이 예배에 집중하도록 
자신을 잘 돕고 섬기나요.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들려주듯
자신에게 복음을 들려주고 있나요. 
 
그렇다면 다행이에요. 
나는 그러지 못했어요. 
너무 바빠서. 
 
자신을 돌보면서 
교회를 돌봐주세요. 
 
교회를 돌보면서 
자신을 돌봐주세요. 
 
그래야 당신도 살고 
교회도 삽니다. 
 
걱정 마세요.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아, 그리고 하나 더. 
 
마음에 부담이 돼서 
교회 일을 전혀 하지 않는 분에게는 
조심스럽게 부탁드리고 싶어요.  
 
부담되지 않는 
작은 일 하나만 맡아주세요.  
 
고객이 아닌 성도가 될 때 
돌봄을 배울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돌보는 법을 배우면 
자신을 더 잘 돌볼 수 있답니다. 
 
걱정 마세요.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공감하고 싶어요

교회에서는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할 기회가 많잖아요. 저는 공감능력이 부족해요. 다른 사람의 힘든 이야기를 들어도 공감이 되지 않아요. 다른 사람의 상처와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이 있나요?  
 
자신이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쉽게 결론 내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정말로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상처와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다른 사람의 상처와 아픔을 공감하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는 것은 당신이 공감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다만, 지금보다 다른 사람의 상황에 대해 더 공감하고 싶다는 말이겠지요. 
 
나는 상대방의 아픔에 대해 쉽게 공감하는 방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감은 언제나 쉽지 않습니다. 공감이라는 말 자체가 “함께 느낀다”라는 뜻입니다. 내가 직접 곁은 일도 아닌데, 마치 같은 일을 겪고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면, 잘못하다 상대방을 동정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의도와 달리, 상대방이 자존심 상합니다. 공감을 쉽게 생각할수록 쉬운 사람 되니까 신중해야 합니다.
 
억지로 장단을 맞추면 실패합니다. 다른 방식으로 상대방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마음을 열었다는 것은 이미 당신을 신뢰했다는 뜻입니다. 당신에게 마음을 열고 아픈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는 뜻이지요. 이미 말하고 싶어서 온 거니까, 상대방이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들어주면 됩니다. 곧바로 떠오르는 말이 있어도 입 밖으로 내뱉지 말고 잘 들어주세요. 억지스럽지 않게, 매우 자연스럽게 말입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신의 감정이 동요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자기감정을 억제하지 말고 솔직하게 함께 느끼면 됩니다. 함께 웃고 싶으면 웃고, 함께 울고 싶으면 우는 겁니다. 나 역시 그렇습니다. 내담자가 울면 나도 함께 웁니다. 내담자가 웃으면 함께 나도 웃습니다. 나는 노련한 상담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따뜻한 상담자가 되고 싶습니다. 
 
공감 잘하는 사람 되기 어렵습니다. 잘 들어주는 사람이 먼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싶은 말 참고 잘 들어주면, 상대방의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자신에게 느껴지는 감정을 솔직히 표현해주세요. 웃든 울든, 대화가 끝나면 상대방이 말할 겁니다. 고맙다고, 정말 고맙다고. 그럼, 성공입니다.

설교를 들어도 아무 의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주일 예배 시간에 설교를 들어도 아무 의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닙니다. 예배 시간에 뜨겁게 은혜받은 기억도 있습니다. 요즘은 정말 억지로 교회를 나가고 있습니다. 제게 어떤 문제가 있는 걸까요? 
 
아무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말이 의심스럽습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주일 아침 피곤한 몸을 이끌고 교회를 나가시는 걸까요. 나는 조심스럽게 추측합니다. 아마 주일에 예배를 가지 않는 것보다 교회 가서 자리라도 지키며 앉아 있는 게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이상 되지 않아서 괴로운 것이지, 아무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말은 솔직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교회에 나가 자리는 지키고 앉아 있는데, 원하는 만큼 감동할 수 없는 것이 깊은 고민이겠지요.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해보면 좋겠습니다. 만일 지금이 최악의 상황이고,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더 이상 교회에 나갈 이유가 없다고 결론 내려보겠습니다. 그럼, 이제 정반대의 상황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최악의 상황이 있다면, 최선의 상황도 있겠지요? 최선의 상황은 무엇인가요? 설교를 들을 때, 가장 이상적인 상황이 무엇인지 떠올릴 수 있으신가요? 아마 떠올리기 힘들 겁니다. 그런 상황은 없으니까요. 
 
결핍이 크면 원하는 욕구를 과장하는 경향이 사람마다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상태를 과장하려는 욕구는 자칫 위선으로 전락합니다. 안 그런데 그런 척하는 상황이 오면, 오히려 나쁜 상태가 됩니다. 느껴지면 느껴지는 대로, 안 느껴지면 안 느껴지는 대로 자리를 지키세요.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은혜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이야 가슴이 답답하겠지만, 남은 인생 계속 답답하지는 않을 겁니다. 가슴이 뻥 뚫릴 만큼 은혜받는 날도 있을 거예요. 그럴 일 없다고 결론 내리지는 마세요. 만약 당신의 일생에서 단 한 번도 은혜받은 적이 없다고 하면, 주일마다 억지로 그 자리를 지킬 이유도 없을 겁니다. 지난날 받은 은혜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되신 것이지요. 
 
모태신앙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겸손한 척 마세요. 부모님 손잡고 억지로 교회 나오시는 거 아니잖아요. 다 커서 제 발로 교회 나오시는데, 자신의 신앙을 하찮게 볼 필요 있나요. 부모의 신앙은 부모의 신앙이고, 당신의 신앙은 당신의 신앙이지요. 싸구려로 만들지 마세요. 고귀한 믿음입니다. 나는 당신에게 정말로 고맙습니다. 남모르게 주님을 만나신 겁니다. 그러니, 예배의 자리를 지키고 계시죠. 
 
내가 목사라고 예배드릴 때마다 의미를 발견하고, 감동하고 그러지 못합니다. 어떤 때는 졸기도 하고, 졸다 깨서 설교 내용을 비판하기도 합니다. 목회할 때는 예배에 집중하기도 힘들었습니다. 내가 예배에 가장 집중하는 날은 내가 설교하는 날이었습니다. 말도 못 하게 부끄럽지요. 
 
모자라고 부족한 거 다 똑같습니다. 내가 능력되서 여기서 이러는 게 아닙니다. 부끄럽지만 참고 자리를 지키는 것이지요. 내 말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된다면, 힘들어도 참고 자리를 지켜주세요. 은혜가 임할 겁니다. 당신이 그렇게 그리워하는데, 하나님이 안 주실리가 없지요. 나도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교회를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고 있어요

교회를 싫어하고 핍박하는 남자를 만나고 있어요. 하지만, 성경에는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지 말라는 구절이 있잖아요.  마음이 편치 않아요. 교회를 싫어하는 건 불편하지만 나머지는 괜찮은 사람이에요. 헤어지고 싶지 않아요. 이 사람과 결혼해도 될까요? 
 
좋은 질문이에요. 하지만, 그건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내가 뻔한 말을 하는 이유는 간단해요. 질문자님께서 내게 동의를 구했기 때문이에요. 정확히 말하면, 이 질문은 궁금해서 던진 질문이 아니라 찬반을 묻는 여론 조사에 가까운 질문이에요. 왜 동의를 구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을까요? 그만큼 불안하고 두려운 것이지요.  
 
왜 두려운지 함께 고민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교회마다 분위기가 조금씩 다르겠지만, 전체적으로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에 관대하지 않아요. 하지만,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면 절대 안 된다’라는 구절은 성경에 없지요.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해서 아름다운 믿음의 가정을 이룬 사례도 있고요. 그러니까, 교회 분위기와 상관없이 본인이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한다고 결정하면, 아무도 뭐라 할 수 없어요. 
 
진짜 문제는 자신의 내면 안에 있어요. 교회 분위기에 매몰되어 깊이 고민하지 못하는 거죠. 교회 공동체 모든 사람이 손뼉을 치면서 만장일치로 결혼을 찬성한다면, 그 남자와 마음 편히 결혼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세요.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 걸까요? 
 
나는 잠시 신앙의 주제를 내려놓고 대화하고 싶어요. 신앙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보고 싶기 때문이에요. 잠시만 참고 들어주세요. 
 
종교가 없는 남녀가 연애를 해요. 여자가 좋아하는 작가가 있어요. 그래서, 그 작가의 책을 사서 모아요. 작가의 북콘서트를 가기도 해요. 남자친구가 여자친구의 행동을 보면서 그 작가 욕을 해요. 작가의 사생활을 들먹여요. 대놓고 싫다고 말해요. 내 입장에서 보면, 그 남자는 여자친구를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그건 바보 같은 짓이거든요. 
 
그 남자친구는 말하겠지요. “나는 내 여자를 사랑해. 하지만, 내 여자의 가치관이 마음에 안 들어. 가치관을 통째로 뜯어고칠 필요는 없어. 그 작가만 안 좋아하면 돼. 그거 하나 빼고 우리 잘 맞아. 결혼하고 싶어? 그럼 그 작가 좋아하는 마음 버려. 책도 버리고. 그럼, 아무런 문제 없이 우리 결혼할 수 있어.”  
 
나는 묻고 싶어요. “지금 뭐 하시는 건가요? 그게 사랑이라고요? 사랑의 의미를 아시나요?” 사람마다 사랑의 정의가 다르겠지만, 적어도 이 남자의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는 건 동의할 거예요. 
 
당신이 왜 두려운지 이제 아시겠죠? 신앙이 문제가 아니라 사랑이 문제에요. 당신은 그 남자를 만나서 결혼하면 신앙을 잃을까 걱정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더 근본적인 고민을 하고 있는 거예요. 
 
‘이 남자가 정말로 나를 사랑하는 걸까?’ 
 
당신이 느끼는 두려운 감정은 정당한 거예요. 불안하고 두려울 수밖에 없지요. 그 남자와 당장 헤어지라는 말이 아니에요. 그건 당신 선택이에요. 아무도 대신 선택해줄 수 없어요.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고민해보세요. 그 남자와 결혼한다면, 사랑받으며 살 수 있을지 말이에요. 

내가 바보처럼 보이니?

교회에서는 남을 돕고 섬기는 게 미덕이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상황 어렵고 시간 없는데, 정성을 다해 다른 사람을 도와줬어요. 고맙다는 말 한 번 없이 당연하게 생각해요. 바보 취급당하나 기분이 나쁜데, 얼마나 더 섬겨주어야 할까요?
 
질문에 감정이 실린 것 같아요. 그만큼 서운하다는 뜻이지요. 제가 구체적으로 상황을 알 수는 없지만, 무리한 섬김은 당신에게도 상대방에게도 유익하지 않습니다. 적절한 범위 내에서 멈춰야 할 것 같아요. 우리는 예수님처럼 살아야 하지만, 예수님은 아니거든요.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다른 사람의 비위를 맞출 필요는 없습니다. 
 
잠시 멈춰 서서, 자신에게 질문해보세요. “나는 왜 그 사람을 이렇게까지 섬겨주고 있을까? 왜 적당한 선에서 거절을 못 할까? 왜 무시당하면 기분이 나쁠까?”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을 겁니다. 자신만의 의미부여가 특정한 상황을 특정한 관점으로 보게 만드는 겁니다. 
 
아마 질문하신 분께서는 이번 일이 처음이 아닐 겁니다. 인생에서 반복되고 있을 거예요. 패턴 아닌가 싶어요. 부탁하면 도와주고, 도와주다 지치고., 지치다 떠나고. “두 번 다시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누군가를 필요 이상으로 섬겨줍니다. 지쳐가는 자신과 마주합니다. 
 
상대방을 떠올리면 좌절하지 하지만, 자신을 돌아보면 성장합니다. 상대방을 떠올릴 시간에, 자신을 들여다보세요.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나 왜 이럴까?” 깊이 고민해보세요. “왜”라는 고민을 끊임없이 던지다 보면, 자신 안에 해결되지 않은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을 거예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자신만의 이야기 말입니다. 어쩌면, 자신도 몰랐던.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해 보일 겁니다. 가만히 앉아 이리저리 살펴보세요. 팔을 걷어붙이고 집중하세요. 중요한 순간입니다. 잘 풀어야 벗어납니다. 그 사이에 누가 와서 “나 이것 좀 도와줘”라고 부탁하면, 하던 일 중단하지 마시고 고개만 돌려 말하세요. “잠깐만, 지금 내가 그럴 상황이 아니어서. 나중에 도와줄게. 이거 먼저 풀어야 해.” 걱정은 마세요. 그 사람 큰일 나는 거 아니에요. 실타래 먼저 푸세요. 
 
당신이 도와주지 않아도, 그 사람은 잘 살아요. 하나님이 책임져주시니까 걱정하지 말고, 당분 간은 자신의 문제에 집중하세요. 잘 풀어야 나중에 여유가 생기죠. 그때는 가서 도와주세요. 그 사람이 몰라줘도 기분 나쁘지 않을 만큼만, 적당히.  

교회에서 봉사하고 상처받아요

보상을 바라지 않고 봉사하는 방법이 없을까요? 바쁜 시간 쪼개가면서 최대한 봉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고맙다는 말을 해주기를 바라지는 않아요. 최소한 상처를 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힘들게 봉사하고 돌아오는 건 상처뿐입니다. 
 
보상이라는 단어를 어떤 의미로 쓰셨는지 묻고 싶습니다. 보상은 “받는다”라는 뜻이 아닙니다. “갚는다”라는 뜻입니다. 남을 위해 애쓴 것에 대한 대가를 인정받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미리 받은 혜택을 돌려주는 것입니다. 플러스알파가 아니라 플러스제로입니다. 성경적인 의미를 말하는 게 아니라 사전적 의미를 말하는 겁니다. 내 말이 의심스럽거든 국어사전을 찾아보세요. 
 
봉사라는 단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남을 돕기 위해 애를 쓴다는 뜻입니다. 받은 것이 없는 사람이 대가 없이 순수하게 봉사하면 아름다워 보입니다. 그러나, 받은 것이 많은 사람이 받은 것의 일부를 다시 돌려주는 건 상식입니다. 봉사했다고 생색내면, 본인의 순수한 의도마저 사라져 버립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남는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아마 발끈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교회에서 받은 게 없다. 교회에서는 자기들 필요할 때만 실컷 부려먹다가 힘들어서 잠깐 쉰다고 하면 믿음 없는 사람이라고 정죄한다. 그동안 참았다. 더 이상은 못하겠다”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 마음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우리 서로 같은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성도니까 목사에게 분풀이라도 할 수 있지만, 나는 목사니까 어디다 하소연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말했습니다. 화가 잔뜩 난 채로 말입니다. 
 
교회 사람, 교회 구조를 먼저 생각하면 당연히 화납니다. 봉사할 맛 안 납니다. 관점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봉사하는 대상이 잘못되면, 실망하고 지칩니다. 봉사하는 대상을 바꾸세요. 봉사의 대상은 사람이 아닙니다. 올바른 대상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위해 봉사하면, 상처받을 일 없습니다. 
 
예수님을 생각하면, 받은 은혜가 먼저 떠올라야 합니다. 감격으로 봉사해야 상처 안 받습니다. 예수님께 받은 게 없으면 봉사하면 안 됩니다. 봉사 먼저 하고 나중에 보상받으려고 하면 사람 망가집니다. 예수님 없이 봉사하는 삶,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러니, 잘 분별하세요.  
 
지금 하고 있는 봉사 안 해도 하나님 나라에 지장 없습니다. 은혜 먼저 받으세요. 차고 넘치도록 받으세요. 은혜받은 만큼만 봉사하세요. 그래도, 충분합니다. 은혜가 비어버리면, 다 끝입니다. 은혜 없이 죽도록 봉사해도 자기만족입니다. 당신의 삶에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가 넘쳐흐르기를 바랍니다.

누구 말이 옳은 걸까요?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편이에요. 다양한 의견을 듣는 건 좋은데, 가끔은 혼란스러워요. 교회 안에서 목사님, 리더들이 서로 다른 조언을 해주거든요. 누구 말이 옳은 건지 모르겠어요. 
 
아무도 올바르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조언이 전부 틀렸다는 말이 아닙니다. 아무리 옳은 답을 내놔도 자매님이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 틀린 답이 됩니다. 사람들의 조언을 너무 많이 듣지 마세요. 그러다가, 길을 잃습니다. 이리저리 헤매다 인생 낭비할 수 있어요. 
 
사람들의 조언을 듣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의존적이에요. 상담실 안에서도 흔히 있는 일입니다. 나에게 자기 인생을 결정해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 안에는 자신만의 이야기가 숨어 있어요. 자기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이유가 있습니다. 찾아내서 돌봐줘야 해요. 
 
이제부터 조언을 구할 때, 상대방의 표정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자신은 오랜 시간 고민하다가 조언을 구했는데, 상대방은 질문을 받은 순간부터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1초도 생각하지 않고 즉시 말합니다. 상대방이 즉흥적으로 던진 조언에 자기 인생을 맡기는 건 정말 위험합니다. 
 
교회 청년들 중에 목사님이나 리더의 말 한마디로 대학 전공이나 직업을 바꾸고, 심지어 진지하게 교제하는 형제자매와 헤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말씀해 주신다고 해도, 신중하게 생각하세요. 그분들은 자매님의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습니다. 함께 고통을 겪지도 않아요. 말 한마디하고 사라집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들도 자매님이 누군지 잘 몰라요. 목사님, 공동체 리더, 소중한 친구들, 멘토, 가족처럼 가까워도 자매님을 온전히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보다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러니, 절대로 선택권을 넘겨주면 안 됩니다.  
 
제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사람들의 의견을 듣다 보면, 나중에 그들의 생각에 파묻혀 버려요. 그들의 말에 영향력이 생기면, 그 말을 어기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들의 말이 규범이 됩니다. 사람들 눈치 보면서 인생 살면 그때부터는 불행해집니다. 
 
나도 글 쓴다고 할 때, 주변에서 좋은 소리 못 들었습니다. 나를 잘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반대했어요. “글로 먹고사는 사람 없다. 네 글을 누가 읽어주냐. 글은 써 본 적 있냐.” 헤아릴 수 없는 말을 들었어요. 마음이 아팠죠. 하지만, 나는 스스로 선택했고 계속 글을 썼어요. 
 
막상 책 한 권 나오니까, 똑같은 사람들이 예전과 다른 말을 합니다. “나는 결국 네가 해낼 줄 알았다. 정말 잘 했다.” 만약 내가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선택권을 넘겨줬다면 나는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했을 겁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죠.     
  
귀를 닫고 살면서 사람들을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에요. 최대한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의견을 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선택은 자기 자신이 내리라는 말이에요. 처음부터 결심해야 합니다. “의견은 듣지만, 선택은 내가 한다.” 그래야 조언을 해주는 사람도 부담이 없습니다. 사람들의 말은 조언일 뿐이지, 법칙이 아닙니다. 
 
자매님을 가장 잘 아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사람들의 조언은 적당히 들으세요. 나도 목회해봤지만, 목사가 세상만사 다 아는 거 아닙니다. 목사 의지하지 마세요. 리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의지하시고 하나님 말씀을 들으세요. 답답하고 두려운 거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걱정 마세요. 실수해도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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