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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결정해

“남편이 얼마 전에 급성 맹장으로 일주일 동안 입원한 적이 있어요. 집에서 필요한 물건을 챙겨서 병원으로 출발하면서 전화를 했어요. 남편이 평소와 다른 목소리로 시어머니가 오고 계시니 조금 있다가 오라고 했어요. 서로 만나면 불편하니까.  제가 괜찮다고 하니까 남편이 짜증을 내기에 저도 오기가 나서 바로 가겠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시어머니 목소리가 들렸어요. 조금 있다가 오라면 이따가 오면 되지 무슨 말이 많냐고. 옆에 계셨던 거예요. 남편은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전부 다 해요. 그의 마음속에는 제가 없어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상담을 받기로 한 거죠. 
 
남편은 상담 받아보자고 하면 너나 받아보라고 할거예요. 그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하겠죠. 상담이 끝나는 대로 결정하라고 말하려고요. 어머니를 선택할 것인지, 나를 선택할 것인지.” 
 
그녀는 네 살 연하 남편과 결혼했다. 결혼 10개월이 지난 지금 이혼을 생각하고 있다. 짧은 결혼 생활 동안에 그녀는 밀려난 기분이었다. 그녀의 고통은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그녀는 일찍 시작한 사회생활 덕분에 남편보다 더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었다. 남편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갓 시작해서 모은 돈이 거의 없었다. 아내가 괜찮다고 여러 번 말했지만 남편은 자존심 때문인지 어머니가 도와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시어머니가 그녀에게 일정 금액을 입금해주기로 약속했다. 남편과 시어머니가 반복적으로 하는 말을 거절할 수 없었다. 시어머니가 약속한 금액에 맞춰 결혼식, 신혼살림을 준비했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시어머니는 태연하게 말했다. 
 
주기로 한 돈의 절반만 줄 테니 절약하면서 살면 좋겠다고. 아내는 짜증이 났다. 진작 말해주셨으면 결혼식을 그에 맞춰 계획했을 것이다. 신혼살림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스란히 갚아야 할 빚이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에게 답답한 마음을 전했다. 
 
“당신은 알고 있었어?” 그녀가 말했다. 
 
“당연히 알고 있었지.” 그가 말했다. 
 
“왜 미리 말 안했어?”
 
“엄마가 내 생각을 묻기에 나는 괜찮으니까 당신한테 직접 물어보라고 했지.” 
 
“나 빼놓고 둘이 말을 맞춘 거네. 내 반응이 중요했어? 둘이 미리 결정한 거잖아!” 
 
“엄마가 오랫동안 모은 돈이야. 대출받아서 금액을 맞추려고 한 건데 대출을 못 받은 거야.” 
 
“그럼, 진작 말씀을 하셨어야지. 다 당신하고 나하고 갚아야 할 빚이야.” 
 
“갚으면 되잖아. 나는 돈 몇 푼 때문에 당신이 엄마 앞에서 인상을 팍팍 쓰고 앉아 있는 게 더 화가 났어.”
 
“내 표정이 중요해?”
 
“당신이 엄마 무시하는데 화 안나? 내가 장모님한테 그런 적 있어?” 
 
“당신 정신 나갔구나. 지금 우리 큰일 났어. 어떻게 갚아. 미치겠어, 진짜….”
 
“난 당신 때문에 미치겠어. 엄마는 최선을 다한 거야. 어떻게 당신이 엄마한테 그럴 수가 있어?” 
 
“그만하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마. 당신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으니까.”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남편에게는 오직 어머니뿐이었다. 그의 마음속에 과연 아내의 자리가 있는지 의문이었다. 이미 밀려나버린 자신을 인식하는 순간, 그녀는 비참해졌다. 
 
그녀는 남편과 시어머니의 독특한 관계를 이해하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난도 퍼즐조각을 맞추는 사람처럼 그녀는 신중해보였다. 
 
남편의 아버지는 가정에 충실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젊은 날부터 고생이 많았다.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밤늦게까지 집에 들어오지 못했다. 
 
어린 시절, 남편은 하교하면 집이 아닌 식당으로 갔다. 식당은 바빴다. 어머니가 아들을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그는 식당 TV를 보다가, 숙제를 하다가, 혼자 놀다가 잠들었다. 밤늦은 시간 식당 일이 끝나면 어머니의 등에 엎혀 집으로 왔다. 
 
그의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이 남달랐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어머니에게 해주고 싶은 것이 많았다.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면서 그가 여유 있게 생각하자고 했지만 아내의 생각은 달랐다. 남편보다 네 살이나 많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일정에 맞춰 두 사람은 결혼했다. 
 
아내는 어린 시절부터 독립적으로 성장했다. 부모님은 따뜻한 가정환경을 만들어주었지만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했다. 하나 있는 동생은 여섯 살이나 어렸다. 부모님이 일이 바빠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아서 그녀가 동생을 돌봐야 했다. 학원에 다니거나 과외 한 번 하지 않고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에 들어가는 날, 그녀는 부모님에게 편지를 썼다. 대학 등록금은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녀는 과외를 하면서 돈을 벌고, 성적 장학금을 받아서 등록금을 마련했다. 정신없이 사느라 미팅 한 번, 연애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20대가 지나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녀에게 남은 것은 서른이 넘은 나이, 그리고 통장 하나가 전부였다. 인생 허무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고민하고 있을 때, 친구 소개로 남편을 만났다. 그녀는 결혼을 앞두고 부모님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알아서 하면 될 일이었다. 
 
두 사람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러니까 만약에 병원에 제가 먼저 도착했고, 어머니가 병원으로 오고 계시다면 상황이 어떻게 달라질 것 같으냐고 물으신 거죠? 반대 상황이네요. 아… 잘 모르겠어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 아마 남편은 제게 집에 가라고 했겠죠. 서로 불편하다고. 이렇게 말하니까 제가 더 비참해지네요. 남편은 항상 어머니가 먼저라고 생각하니까요. 분명히 제게 집에 가라고 했을 거예요.” 
 
병원에서 퇴원한 날, 남편은 아내에게 오지 않고, 시댁으로 갔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그녀가 수십 번 전화한 끝에 시어머니와 통화가 되었다. 아들 몸이 불편해서 이것저것 챙겨줘야 할 것이 많으니 몸이 다 회복되면 집에 보내겠다고. 
 
다음 날, 저녁 늦게 남편이 보낸 문자를 받았다. 평소와 다르게 존댓말을 사용했다. 일주일 내로 갈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왜 존댓말을 사용했을까?’ 
 
그녀는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남편의 속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가 돌아오면 담판을 짓고 싶었다. 더 이상 이런 식으로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없었다. 마음속으로 여러 문장을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정리된 생각을 종이에 적었다. 종이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예스 아니면 노 둘 중 하나, 그의 대답에 따라 그녀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그 종이 위에 문장은 간단했다. 
 
“나를 선택하든지, 엄마를 선택하든지 둘 중 하나야.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살 수는 없어. 지금 당장 결정해.” 
 
 
***
 
그녀 마음이 조급하다. 자신의 관점으로 남편을 바라보고 성급한 결론을 내리고 싶어한다. 남편에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한다면 그는 아내가 원하는 답을 주지 않을 것이다. 질문 자체를 회피하거나 어머니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둘 중 무엇을 선택하든 아내는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다. 이혼하지 않은 채 결혼 생활을 유지하게 된다면 아내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된다. 남은 결혼 생활은 지옥이 된다. 아내보다 어머니를 사랑하는 남편과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조급하게 남편을 밀어붙여 얻는 결과는 결국 두 사람을 파괴한다. 남은 인생이 달린 문제다. 조급할수록 천천히 생각하고 결정해야 한다. 
 
결혼 생활 10개월, 너무 짧다. 서로 알아가는 시간이 부족하다. 연애 시작하고 결혼식을 올리기까지는 서로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결혼 후에는 두 사람에게 집중되었던 관심이 보다 넓게 확대된다. 원가족에 대한 영향력을 서로 알아가는 시간이다. 결혼 전에도 두 사람은 양가 부모님의 영향력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결혼 이후에 체감하는 원가족의 영향력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다. 
 
남편의 어린 시절을 보라. 어머니에 대한 생각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10개월이 아니라 10년이 필요하지 모른다. 남편이 올바른 길을 찾는 동안, 아내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 
 
아내가 이해하기는 힘들겠지만 남편에게 어머니와 아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양쪽에 최선을 다하고 싶은 그를 이해하자. 남편이 아내에게 일방적인 요구를 하는 이유는 절망감 때문일지 모른다. 어머니를 바꿀 수 없다는 절망감, 그래서 어머니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못한 채 아내에게 희망을 거는 것이다. 
 
아내 쪽에서 노력해주면 무언가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말이다. 옳지 못한 생각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방법이 없기에 아내를 몰아세우게 된다. 그녀의 반박이 심해지면 남편은 자리를 잃고 방황한다. 어머니와 아내,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을 관망한다. 관중으로 전락한 채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두 사람을 동시에 떠나버릴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주고 후회 하는 남편을 적지 않게 보아왔다. 모두가 파괴되는 불행한 일은 언제나 남의 이야기일 수 없다. 10개월은 너무 짧다. 더 살아봐야 한다. 남편의 진심을 알고 나서 결정 내려도 늦지 않다. 
 
아내 역시 자신만의 관점으로 시어머니를 바라보는 것을 바꾸기 어렵다. 그녀의 부모님과 시부모님은 다르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것뿐이다. ‘그럴 수도 있구나…’라고 인정하지 않으면 결코 풀리지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시부모님을 바꿀 수 있는 며느리는 하루아침에 북핵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협상의 달인일 것이다. 현실에는 존재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시부모님은 그 자체로 인정해야 한다. 달리 방법이 없다. 그들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 아내는 절망의 벽을 향해 돌진하는 버스에 올라탄 것과 같다. 
 
그녀가 변화시켜야 하는 사람은 시부모님이 아닌 남편이다. 그는 충분히 변화될 수 있다. 그의 정체성이 확실하면 문제가 풀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아내와 시어머니 사이에 갈등이 일어날 때, 남편은 자신이 협상의 달인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도,  아내도 잘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착각이다. 중재하려고 하면 더 꼬인다. 
 
남편은 협상가가 아니라 상담사가 되어야 한다. 아내가 화가 나서 자신의 어머니를 비난하고 일어난 일에 대해 불평하더라도 그녀의 감정이 풀릴 때까지 중립적인 자세로 상담을 잘 해줘야 한다. 
 
솔직히 말해보자. 남편 자신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모님을 아내가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지나친 욕심이다. “나는 못하더라도 당신은 해야 한다”라는 신념은 아내를 절망의 벽으로 향하는 버스에 태운다. 아내는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 대상이 다른 사람일 때, 남편은 비교적 마음에 여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부모일 때는 마음의 여유는 사라진다. 아내는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하는 중이다. 남편이 협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없다. 그냥 ”그렇구나, 그래서 힘들었겠구나”라고 말해주면 된다. 상담을 잘해주라는 뜻이다. 
 
협상은 아내가 시어머니와 알아서 할 일이다. 아내가 손에 쥔 카드가 없으면 협상이 불가능하겠지만 남편이 상담을 잘 해준 아내는 손에 쥔 카드가 있다. “남편 사랑”이라는 카드다. 그것을 가진 아내는 시어머니의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에 휘둘리지 않는 내공을 갖는다. 
 
남편 마음속에 빛이 들어가지 않은 영역이 있다. 숨겨진 방이다. 문 앞에 “어머니”라고 쓰인 팻말이 있다. 창문 없는 그 방에 노출이 필요하다. 일단 힘껏 열어라. 그래도 힘들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라. 남편을 설득해서 가까운 상담센터에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마저 어렵다면 부부가 함께 모이는 건강한 모임에 나가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다른 부부가 어떻게 사는지 공유하고, 그 모임에서 먼저 고생한 인생 선배에게 조언을 듣는 것도 유익하다. 남편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 서투른 사람이다. 익숙해지면 된다. 조금 더 기다려줄 필요가 있다. 

존재를 공격하면 답이 없다

“어머니가 왜 말도 하지 않고 갑자기 우리집에 오신다는 거야? 당신은 알고 있었어?” 
아내가 말했다. 
“어젯밤에 말씀하시더라.” 
남편이 말했다.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어차피 당신이 알면 못 오시게 할 거 아니야?”
“그래도 말을 해줬어야지.”
“말하면? 다음에 오시라고 할 게 뻔한데, 뭐.”
“황당하네. 나도 쌓인 게 있으니까 이러는 거 아닐까?”
“나도 장모님한테 항상 감사한 것만 있는 건 아니야. 착각은 안 했으면 좋겠네.”
“우리 엄마한테 서운한 게 있다고?”
“당신이 우리 엄마를 그렇게 무시하는데 내가 당신 부모님에게 잘하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지.”
“당신은 정말 이기적인 인간이야. 소름끼친다.”
“당신도 나중에 시어머니 될 거 아니야? 그때 후회하지 말고 지금부터 잘해.”
 
V는 두 아들을 둔 결혼 11년 차 아내다. 남편은 집집마다 담장이 없어 남의 집을 자기 집 드나들 듯 하는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자랐다. 공부를 잘해서 시골에서 도시로 유학을 갔다. 부모님은 소 키우고 농사지은 돈으로 아들을 키웠다. 
 
도시로 한 번 나온 아들은 명절 이외에는 부모님을 찾아볼 여유가 없었다. 열심히 살았고 결과도 좋았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출퇴근이 편하고 학군이 좋은 신도시에 자리를 잡았다.
 
신혼 초부터 그녀는 시부모님 때문에 힘들었다. 시어머니는 아들이 시골에 자주 내려오지 못하는 게 서운했는지 며느리에게 자주 전화했다. 시골에 한 번 내려오라고. 며느리 역시 일을 해서 여유가 없었다. 주말에 남편과 보낼 시간도 빠듯했다. 주말이 되면 거실에 누워서 남편과 영화를 보면서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 것이 유일한 기쁨이었다. 
 
시어머니의 잦은 전화가 부담스러워 부부는 시골에 내려갔다. 시어머니가 남편을 반겨주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싸늘했다. 주말 내내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서운한 감정을 내비쳤다.
 
“니 서방이 바쁘니께 너라도 한 번씩 내려와야 하는 거 아니냐? 아니면 날을 정해서 언제 같이 올 것이라고 말을 해주든가. 명절에만 보는 것은 예의가 아니여. 그렇게 사는 게 아니다.”
 
아내는 답답했다. 남편에게 할 말을 왜 자신에게 하는지 황당했다. 남편은 애지중지, 그녀는 찬밥 신세다. 남편은 애써 미안한 표정을 보이며 어쩔 줄 모른다. 눈치는 있다. 주말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당신 엄마가 나 쳐다보는 거 봤어?” 
그녀가 말했다. 남편은 침묵했다.  
“왜 말이 없어? 어떻게 나한테 이러실 수가 있어? 내가 진작 내려가자 했잖아. 그때마다 바쁘다고 한 건 당신이고.” 
“그만해.”
“당신은 양심도 없어?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
“나도 몰라. 당신이 알아서 해!”
“답도 없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뭐해.”
“무슨 답이 없어? 당신이 해결할 의지가 없는 거지!”
“그만하라고!”
 
갈등은 점점 깊어졌다. 아내는 두 번 다시 시골에 내려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남편은 아내를 두고 혼자 시골에 내려갈 수는 없었다. 아내는 시어머니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벨 소리는 남편 전화로 옮겨갔다. 남편은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다음에 내려간다고 했다. 시어머니가 전화하신 날이면 두 사람 사이가 얼어붙었다. 
 
주말 어느 날, 아내는 평소처럼 속옷차림으로 집에서 영화를 보고 있었다. 초인종이 울렸다. 택배기사 같았다. 안에서 밖으로 소리쳤다. 문 앞에 두고 가라고. 그런데 문 밖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택배기사가 아닌 시어머니였다. 
 
남편이 문을 열어주고, 아내는 급하게 들어가 옷을 입고 나왔다. 시어머니 두 손에 시골에서 가져온 음식이 잔뜩 들려있었다. 남편은 어머니가 서운해하실까봐 황당한 내색을 하지 않았다. 주말 내내 어머니가 편히 쉬고 가시도록 최선을 다했다. 아내는 밀려난 기분이었다. 시어머니가 계신 내내 집안일에 정신이 없었다. 
 
전쟁 같은 주말이 지나고 시어머니가 시골로 내려가셨다. 그날 밤, 둘은 크게 다퉜다. 아내는 이런 일이 또 한 번 일어나면 이혼하겠다고 말했다. 남편도 죽을 맛이었다. 어머니 생각을 바꿀 수는 없었다. 평생 그렇게 살아오셨다. 자식이 얼마나 보고 싶으면 찾아 왔겠나 싶었다. 
 
어머니가 아내를 배려해주면 좋겠지만 어머니는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다. 잘 해주라고 아무리 부탁해도 소용없다. 남편은 아내에게 서운하다. 한 번 참으면 되는데 한 번을 참지 않는다. 싫은 티를 낸다. 여자들이 감정에 얼마나 민감한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서 남편은 난감했다.
 
아내는 남편의 태도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더 적극적으로 시어머니와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고. 자신과 시어머니 사이에 앙금을 풀어주고 새로운 관계를 위해 그가 노력해주기 바랐다. 아무리 미워도 시어머니는 남편을 낳아주고 길러주신 분이 아닌가! 잘 지내보고 싶었다. 
 
***
 
왜 두 사람은 서로 상처 주는 말을 할까? 아내는 남편에게 좋은 방법을 찾아보자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를 비난한다. 아내의 의도와 달리 남편은 다른 방식으로 그녀의 말을 받아들인다. 아내가 말한다. 
 
“어머니가 왜 전화 없이 집에 오신 거야?” 
사실을 묻는 것이다. 그러나 남편에게는 다르게 들린다. 
“당신 엄마는 왜 교양 없이 전화도 하지 않고 우리집에 막 찾아오시고 그래?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거야?” 
아내는 남편에게 상처 줄 의도가 없다. 그러나 상처가 된다.  남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아내 말을 오해한 남편은 말한다. 
“엄마가 아들 집에 오시는 게 뭐 어때서?” 
남편의 의도는 분명하다. 
“당신이 이해주면 안 돼?” 
그러나 아내는 남편 말을 듣고 오해한다. 그녀에게는 남편의 말이 전혀 다르게 들린다. 
“엄마가 아들 집에 오시는 게 당연한 거니까, 평생 그렇게 살아. 시어머니 대접 똑바로 하고. 알겠어?” 
남편이 의도한 게 아니다. 아내가 남편 말을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조차 못한다.  
 
핵심은 단순하다. 서로 상처 줄 의도가 없다는 것이다. 의도가 없어도 상처 받는다. 공을 던진 사람이 사람을 다치게 할 의도가 없어도, 사람이 공에 맞으면 다친다. 아프고 상처가 된다. 그럼 어떻게 할까? 공 던지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사람에게 맞지 않도록, 다치지 않도록 던지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공 던지는 방법을 제대로 배워야 한다. 원하는 방향으로 공이 정확히 날아가도록.
 
두 사람이 던지는 공은 잘못된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다. 공의 방향이 서로의 존재를 향하고 있다. 서로의 존재를 향해 날아가는 공은 상대방 인격을 향한다. “너는 그런 사람이야”라고 외치는 순간, 갈등이 일어난다. 상대방 반응이 뻔하다. “아니, 난 그런 사람이 아니야”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공이 날아가는 방향은 서로의 존재가 아닌 서로의 문제 행동에 맞춰져야 한다. “그 행동이 문제야”라고 말한다면, 배우자의 문제 행동에 대해 대화할 수 있다. 그러나 존재를 향하는 대화는 관계를 파괴한다. 억지스럽더라도 단순하게 표현해보면 다음과 같다. 
 
“당신은 그런 사람이야.” 
아내가 말한다. 
“나, 그런 사람 아니야.” 
남편이 말한다. 
“아니, 당신 그런 사람이야!”  
“아니야, 나 그런 사람 아니라고!” 
“아니, 아니라고! 당신은 그런 사람이야. 예를 들어 볼게. 이 상황에서 그랬지? 저 상황에서도 그랬지? 그러니까 당신은 그런 사람이라고!” 
“아니야! 그 상황도 오해고, 저 상황도 오해야. 그러니까 난 그런 사람 아니지?”
“당신은 그런 사람이 맞다고! 인정해! 빨리 인정하라고! 당신은 그런 사람이야!!”
“난 그런 사람 아니야! 당신이 잘못 알고 있어!” 
 
원래 말하고 싶던 주제는 사라졌다.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사라지고 서로 비난하고 있다. 서로 찌르고 찔리는 잔혹한 대화를 하는 것이다. 
 
존재를 공격하면 답이 없다. 배우자의 행동에 집중해야 한다. 배우자의 행동이 불만이라면 행동에 대해서만 말하자. “그런 행동을 하니까 그런 종류의 사람이다”라는 접근은 절대금지다. 
 
존재가 아닌 행동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두 사람이 말하는 방법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 마치 유학을 떠나서 모국어 대신 새로운 외국어를 배우는 것처럼 부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대화법을 배워야 한다. 주어를 변화시켜보자. 많은 부부는 “당신, 너”라는 말로 대화를 시작한다. 시작부터 공격적이다. 
 
“당신은 그런 사람이야. 그러니까 당신은 이렇게 해야만 해!”
 
상대방은 공격에 맞서 방어하는 자세를 취한다. 어떤 말이든 받아친다. 잘못을 인정할 가능성은 제로다. 그러나 주어를 “나”로 바꾸면 다른 상황이 전개된다. 내가 느낀 감정, 내가 원하는 것을 전하게 된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거야. 만일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다면  나는 이런 감정을 느낄 것 같아”라고 말한다. 상대방을 공격하는 말이 아니다. 공격하지 않으니 방어하지 않는다. 다른 의미로 전달된다. 
 
“나는 어머니가 연락도 없이 오면 당황스러워. 그냥 그렇다고. 당신이 내 마음을 이해줬으면 좋겠어. 만일 당신이 날 이해한다면 난 사랑받는다고 느낄 것 같아.” 
 
그뿐이다. 대화 끝이다. 배우자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고 싶다면 먼저 새로운 언어 방식을 익혀야 한다. 배우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그대로 배우자에게 전달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전달하는 방식을 잘 배우고 연습하지 않으면, 대화 중간에 왜곡된 의미가 전해질 것이다. 
 
올바른 전달 방법을 배우고 연습하자. 표현 방식이 달라지면  배우자의 반응도 달라진다. 언어를 새로 배우는 것은 훈련이고 연습이다. 하루아침에 실력이 쌓이는 것이 아니다. 오래 걸린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끊임없이 말하고 연습하자. 
 
모든 부부는 서로 사랑한다.
진심이 전해지지 않아 상처받을 뿐이다.

나한테 떠넘기지 마

“우리 부모님은 당신을 아들처럼 대해주는데, 당신 부모님은 나를 왜 이런 식으로 대하냐고!”
 
I는 결혼 2년 차, 임신 6개월의 여자다. 남편이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에 복학했을 때, 같은 과 선후배로 만났다. 대학에서 같이 공부하고 같은 회사에 입사했다. 하루 일과는 단순했다. 아침에 출근, 저녁에 퇴근, 퇴근 후에 TV 시청과 취침. 주말이면 마치 계약서에 쓰여진 조항을 지켜나가듯이 살림을 나눠서 했다. 요리는 아내, 청소는 남편. 
 
둘 사이에 대화가 사라진 건 결혼하고 처음 맞이하는 어느 명절부터이다. 바쁘게 사는 탓에 시댁에 자주 갈 수 없었다. 명절이 되어 시댁에 찾아갔을 때, 시부모님의 반응이 차가웠다. 시아버지는 며느리를 보고, “오느라 고생 많았다”라는 상투적인 말을 하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시어머니는 인사도 하지 않고 TV만 보고 있었다. 
 
아들은 그런 집안 분위기가 익숙한 듯 차에서 내린 짐을 거실 한 구석에 쌓았다. 아내는 어색한 분위기를 어떻게 견뎌야 할지 몰랐다. 남편은 시어머니 옆에 앉아 말없이 TV를 볼 뿐이었다. 
 
그녀가 말했다. 
 
“시부모님 사이가 안 좋은 건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남편이 결혼하기 전에 말했거든요. 부모님 사이가 좋지 않으니까 시부모님 사랑은 기대하지 말고, 자기만 보고 살면 좋겠다고.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요. 어차피 남편하고 사는 거니까. 시댁에는 일 년에 한두 번 가니까 그것이 제게 고통으로 이어질지 몰랐죠. 
 
남편은 부모님 사이에 끼기 싫어했어요. 그러니까 스트레스는 제가 다 받죠. 두 분이 서로 다른 말을 해요. 요구가 다르다고요. 남편에게 말하면 저한테 알아서 하래요. 한 분 말을 들으면 다른 한 분이 서운해 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남편이 외아들이라 시댁 식구 중에 상의할 사람도 없어요.”
 
그녀는 시부모님이 혼수에 대해 과도한 요구를 했다고 말했다. 
 
“제 부모님은 남편에게 아무 요구도 하지 않았어요. 딸만 잘 사랑해주라고. 시부모님은 혼수를 같이 한다고 말했어요. 집과  살림살이를 제 쪽에서 거의 다 했어요. 그것도 모자랐는지 시부모님 한복, 그 형제들 한복까지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남편에게 말했더니 하고 싶으면 하고, 말고 싶으면 말라고 했어요. 전 어이가 없었죠. 
 
남편에게 ‘당신이 가서 정리해야 한다’라고 말했더니 시어머니에게 엄청 혼만 나고 왔어요. 시어머니가 말하면 그 말을 곧이곧대로 다 듣고 오니, 너무 화가 나더라고요. 제 부모님은 뭐냐고요. 저를 키우면서 고생을 하셨는데, 시부모님에게 무시당하고, 황당한 일을 다 겪었어요. 어느 날은 엄마가 제 앞에서 속상하다고 막 우시더라고요…. 남편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중간에서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려요.”
 
차에서 남편에게 시부모님에 대한 말을 꺼냈다. 남편 얼굴이 어두워졌다. 아내는 그의 표정에 화가 났다. 아내의 목소리가 커졌고, 강도 높은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당신 마마보이야? 왜 아무 말도 못해? 당신도 성인이야!” 
 
순간, 남편이 이성을 잃었다. 자동차 핸들을 이리저리 꺾으며 한 마디만 더 하면 같이 죽어버릴 거라고 말했다. 차가 신호에 걸려 멈췄을 때, 아내는 차문을 열고 내렸다. 바로 뒤에 오는 택시를 잡아탔다. 친정으로 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온 아내는 침대에 엎드려 서럽게 울었다.    
 
남편이 말했다. 
 
“저도 알아요. 장모님, 장인어른이 얼마나 좋은 분들인지…. 제게 과분한 사랑을 주시죠.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아내도 예쁘고 착하게 잘 키워주셨죠. 그것만 해도 저는 그 분들을 평생 잘 모셔야겠죠. 제 부모님을 생각하면…. 
 
아내에게는 미안한 마음보다는 부끄럽고 수치스런 생각이 들어요. 제 부모님이지만 저도 이해가 안 되거든요. 아내에게도 여러 번 말했어요. 그냥 그런가 보다 하라고. 그녀는 제가 아무런 노력을 해보지 않았다고 말하는데, 저도 할 수 있는 노력은  다했어요. 그러다 포기한 거죠. 
 
제 부모님은 바뀔 분들이 아니에요. 같이 대화하면 제가 상처를 받아요. 그래서 아내에게 ‘너희 부모님과 다른 분들이니까 너무 많은 기대를 하지 말라’라고 부탁했어요. 그런데 아내는 자기가 잘하면 된다며 저 대신 해보겠다고 하다가, 뜻대로 안 되니까 저를 원망하는 거예요. 저는 이렇게 될 줄 알았어요. 우리는 우리대로,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사셔야죠. 최대한 부딪히지 말고.”
 
남편 어린 시절, 아버지는 건축현장에서 일했다. 전국으로 일하러 다녔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심심풀이 고스톱을 치면서 도박에 빠져들었다. 가정의 경제가 기울었다. 
 
어머니는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식당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야 했다. 남편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외삼촌 댁, 고모 댁에 맡겨졌다. 
 
남편이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야 부모님이 조그만 아파트를 마련해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러나 두 분은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웠고, 남편은 공부를 핑계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두 분은 각자 사는 데 바빠서 제게는 관심이 없었죠. 두 분이 왜 같이 사는지 모르겠어요. 어린 시절부터 저는 혼자 자랐어요. 남들은 제가 외동아들이라 사랑받고 자란 줄 아는데 전혀 아니거든요. 
 
외삼촌 집에 살 때였어요. 아침 식사를 하려고 하는데, 외숙모가 밥을 차려주면서 ‘먹고 살기 힘든데, 누나 애까지 데려와서 이게 뭐냐?’라고 말하자 삼촌이 밥상을 뒤집어엎고 제 앞에서 외숙모와 싸웠어요. 
 
외숙모는 대놓고 표현을 하지 않았지만, 제게 항상 눈치를 줬죠. ‘아, 나는 어디가나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구나. 날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라고 느꼈지요. 다시 부모님과 살면서  좋았던 것은 눈칫밥 안 먹어도 되는 것뿐이었어요. 어린 시절부터 떨어져 살아서 서로 정이 없었죠.” 
 
남편은 부모님의 사이가 좋지 않은 것보다 아내가 부모님을 싫어하는 게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아내가 부모님 이야기만 꺼내면, 남편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아내는 그런 남편이 답답했다. 그녀는 남편이 부모님과 관계를 개선해야 더 이상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지만 그는 계속 거절했다.
 
 
***
 
남편의 부모는 상처받은 사람들이다. 상처가 치유되지 않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아들에게 집착한다. 어머니에게는 아들에 대한 미안함과 애틋함이 묘하게 얽혀 애증을 만들어냈다. 아들에게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면서도, 무언가 요구하고 싶다. 아들보다 며느리가 편한 게 아니다. 며느리가 아들보다 덜 불편한 것이다. 
 
남편은 부모에게 상처받았다.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채 아내가 던지는 말은 그의 상처를 손가락으로 후비는 것이다. 쓰라리고 아프다. 사람은 조언이 아닌 사랑으로 변화된다. 남편에게 사랑이 필요하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아이를 생각해보라. 홀로 남겨진 채 오랜 시간을 보냈다면 그가 새로운 부모를 만나 새로운 관계에 적응하기 위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남편은 부모와 떨어져 오랜 시간을 보냈다. 부모를 다시 만났어도 그가 온전히 치유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시간도 충분하지 않았다. 
 
남편의 상처가 여전히 붉게 벌어져 쓰라리다. 부모님 이야기만 나와도 먼저 방어하고 긴장한다. 전투태세를 갖춘다. 그런데 아내가 원하는 것은 시부모님과 친정부모님처럼 다정하게 지내는 것이 아니다. 남편이 아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다. 
 
남편은 자기 상처가 아파서 아내의 상처를 바라볼 여유가 없다. 아내의 말을 충분히 들어주면 그녀는 불편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감정적 여유가 생긴다. 
 
아내가 남편을 바라보는 관점이 시부모님을 바라보는 관점을 결정한다. 남편이 아내를 외면하면 아내는 시부모를 원망하고, 남편이 아내에게 공감하면 아내는 시부모에게 감사한다. 아내는 남편과 결혼했다. 시부모에게 입양된 것이 아니다.      
 
아내가 남편보다 앞서 불편한 상황에 대처하지 못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내 부모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힘들고 어렵겠지만, 남편과 나, ‘우리 부모’라는 인식을 가진다면 어떻게 될까? 남편을 대신해 시어머니와 소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시어머니의 상처가 자신을 꾹꾹 찌를 때마다 남편의 마음을 조금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시어머니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어쩌면 그보다 아내일 수 있다. 남편 상처, 시어머니 상처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내이다. 그녀가 깨달은 바를 신중하고 겸손하게 남편과 공유하면 그의 상처도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남편이 말했다. 
 
“나는 장인 장모님께 감사하고 있어. 날 아들처럼 생각해주시잖아. 우리 부모님도 날 사랑하는 것은 알아. 머리로 이해할 수는 있지만 가슴으로 느낄 수가 없어. 장인 장모님이 날 사랑해주시는 걸 마음으로 느낄 수 있어서 감사해. 당신과 결혼하지 않았다면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겠지. 
 
당신이 임신했을 때, 장인어른을 찾아갔어. 걱정이 된다고, 두렵다고 솔직히 말씀 드렸어. 부모님께 사랑받지 못하고 성장해서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아버님이 나를 한참 바라보시고는 ‘자네, 잘 할 수 있을 거야.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니까’라고 하셨어.” 
 
사랑받고 자란 사람이 사랑할 수 있다. 사랑받고 자란 사람이 미워하고 있다면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당신이 사랑받고 자랐다면 겸손하라. 당신이 태어난 환경은 당신이 노력해서 얻은 결과가 아니라 주어진 것이다. 사랑받지 못한 배우자를 사랑해주기 바란다. 그 역시 자신이 원해서 상처 많은 가정에 태어난 게 아니라 주어진 것이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사랑 받았다면 사랑을 전해주기 바란다. 그를 뜯어고치기 위해 당신이 이 세상에 온 게 아니라 치유하기 위해 온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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