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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결혼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아요

결혼에 한 번 실패했어요.
혼자 아이를 키우는데 힘들어요.
외로워 견딜 수 없어요.
 
참고 살아보고 싶었어요.
남편의 폭력이 시작되었을 때
더 이상 안되겠다 싶었죠.
혼자 아이를 키우며 사는 게
이렇게 힘든 건지 몰랐어요.
 
아이한테는 미안하지만
나는 누군가를 계속 만나야 해요.
좋은 아빠를 찾아줘야죠.
아이와 날 책임질 사람.
 
사랑?
그런 건 바라지도 않아요.
감정보다 중요한 건 현실이에요.
나는 사랑에 실패했잖아요.
외롭지만 않으면 돼요.
 
이제 누구라도 나와 내 아이를
받아줄 수 있다면 좋겠어요.
같이 있으면 지금보다
외롭지는 않겠죠.
 
누군가를 만나면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거라는 말,
진심인가요.
 
조급한 당신이 혹시라도
지금보다 외로워질까 걱정돼요.
 
결혼해서 당신은 외로웠어요.
혼자일 때보다 더 고통받았어요.
결혼이 당신을 외로움에서
구원해줄 수 없다는 뜻이에요.
 
실패했다고 좌절하지 않았으면 해요.
실패가 아니에요.
당신 잘못도 아니에요.
오히려 당신은 폭력에서
아이를 구해 낸 영웅이에요.   
 
샴페인을 터뜨릴 수는 없어요.
전쟁 영웅의 뒷모습이
트라우마로 얼룩져 있듯이
당신의 삶 역시
상처로 고통스러울 거예요.
 
모진 말 같지만
진실을 말하고 싶어요.
불편하시면 언제든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외로움은 사라지는 감정이 아니에요.
이 세상 사는 동안
당신을 따라다닐 거예요.
 
갈등 많은 부부는 서로의 관계가 회복되면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진실이 아니에요.
 
부부가 행복해도 외로울 수 있어요.
나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지는 몰라도
외롭지 않은 게 아니에요.
외로워요.
말할 수 없이 외로울 때가 있어요.
내 아내도 그럴 거예요, 아마.
 
이유는 설명 못해요.
알 수 없어요.
그냥 그런 거예요.
 
부부가 서로만 바라보고
전혀 외롭지 않다면
하나님을 찾을 수 없어요.
서로만 바라보면 답이 없어요.
서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라고
외로운 감정을 주셨나 봐요.
 
마음속 깊은 곳에   
부부 각자의 나침반을 숨겨두신 거죠.
하나님을 더듬더듬 찾아가도록.
 
외로움은 스스로 돌봐야 해요.
아무도 해결해 줄 수 없어요.
돌보는 게 힘드니까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사람 있어요.
영원히 외로울 수 있어요.
다른 대상으로 해소하는 사람 있어요.
반드시 부작용 나요.
 
외로움을 스스로 돌보면서
아닌 사람은 일단 떠나보내세요.
정말로 원하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힘들어도 견디세요.
 
당신은 알게 되었어요.
누구를 만나면 안 되는지.
당신을 때리는 사람을 만나면 안 돼요.
만나자마자 알 수 없어요.
그러니 조급하면 안 돼요.
 
원하는 사람과 새로운 삶을 시작해도
자신 안에 외로움을 계속 돌봐야 해요.
나 대신 내 외로움을 달래줄 배우자는
세상에 없어요.
 
나 그동안 혼자 외로웠다.
이제 당신이 채워줘라.
그래서 우리 결혼했다.   
서로 외로워져요.
 
자신을 잘 돌봐주세요.
자신을 돌보면서 배우자도 돌봐주세요.
적어도 내 옆에서는 외롭지 않도록.
그래야 서로 외롭지 않아요.
 
내가 잠시 떠든 입바른 소리로
당신이 위로받지는 못했을 거예요.
나도 말하는 내내 미안했어요.
그래서 불편하면 내 말을 끊어달라고 부탁했어요.
끝까지 내 말 들어줘서 고마워요.
 
마음속 외로움 때문에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을 만나면서
당신이 비참해지지 않기를 바랐어요.
 
먼저 자신을 돌봐주세요.
정말로 원하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참고 기다려주세요.
 
백마 탄 왕자는 아니어도
자기를 돌볼 수 있는 남자,
아내를 돌볼 수 있는 남자,
그런 남자가 당신 앞에 나타나기를 바랄게요.

당신은 답을 알고 있어요

사귀던 남자에게 상처받고
다시는 남자를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오랜 시간 혼자 지냈죠.
결국 다시 남자를 만났어요.
나는 왜 나 좋다는 사람
거부할 수 없을까요.
누군가를 먼저 좋아한 적이 없어요.
나 좋다는 사람 만났어요.
 
그동안 주님 안에서
성장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전혀 성장하지 못했어요.
똑같아요. 그대로예요.
 
그 사람을 온전히 믿지 못해요.
계속 확인하고 싶어요.
나를 어디까지 받아줄 수 있을까.
이 정도는 받아주겠지.
받아주면 또 시도해요.
이건 못 받아줄 거야.
그런 식으로 여러 사람 떠났어요.
 
상처 주고
상처받고
다시 외로워지고.
이제 지쳤어요.
더 이상 못할 것 같아요.
차라리 혼자가 나아요.
 
잠시만요.
급할 것 없어요.
조금만 천천히 대화해요, 우리.
 
당신 마음 느껴져요.
내 마음이 아파요.
조심스럽게 내 생각 말해도 될까요.
 
나는 왜 당신이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고 느껴질까요.
전혀 성장하지 못했다고
혼자가 차라리 낫다고 말하지만
진실이 아닌 것 같아요.
억지 위로가 될까 두렵지만
솔직히 말하고 싶어요.
 
당신은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어요.
 
자기 문제 스스로 
인식하기 어려워요.
 
문제와 자신이 섞여서 
분리되지 않아요.
 
당신은 문제가 보이나 봐요.
그건 성장이에요.
 
당신은 답도 알고 있어요.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낸 거죠.
당신은 답을 말하고 있어요.
아무도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거예요.
당신 안의 그 지독한 외로움을.
 
그다음은 뭘까요.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거예요.
 
오직 그리스도 한 분으로
마음속 빈자리를 
채우고 싶은 거예요.
 
당신이 맞아요.
백 퍼센트 옳아요.
 
하지만, 답을 안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에요.
쉽지 않아요.
 
답을 몰라서 힘든 게 아니라
과정이 힘들어서 힘든 거예요.   
 
조급할 필요 없어요.
당신에게는 시간이 필요해요.
아주 많이.
다른 사람 보다 많이.
 
당신 잘못 아니지만,
당신이 사랑받으며 
자랐다고 말하기 어려워요.
 
부모에게 절망한 당신은
남자에게 희망을 걸었어요.
자신이 이룰 가정을 꿈꿀 수 있으니까요.
 
마지막 남은 희망마저 내려놓은
당신은 얼마나 불안하고 고통스러울까요.
 
희망이 사라졌다고 절망하지 마세요.
그 희망은 낡은 희망이에요.
새로운 희망이 다가왔어요.
 
새로운 희망을 드릴게요.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유일한 희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지요?
그 고백이 당신을 치유할 거예요.
 
내 마음에 물통이 하나 있어요.
물을 부으면 물이 새요.
구멍이 너무 많아서.
 
나는 구멍 없는 물통을 
받고 싶었는데
내가 받은 물통은 
처음부터 구멍이 많았어요.
 
누구를 탓할 수 있나요.
그건 주어진 거예요.
내가 선택할 수 없었어요.
 
선택할 수 있었다면 
구멍 없는 것을 골랐겠죠.
 
나중에 알았어요.
구멍을 탓하고 있으면
물이 금방 말라 버려요.   
나만 손해죠.
끔찍한 고통이 반복되니까요.
 
나는 구멍을 탓하지 않기로 했어요.
쉬지 않고 물을 부었어요.
부어도 부어도 바닥이 드러날 듯
빠르게 물이 빠져나가지만
포기할 수 없었어요.
더 열심히 했죠.
 
손목 아프고 손에 물집 잡혀서
주전자를 놓쳤어요.
너무 속상해서 고개를 떨구고 있는데
세상에나 비가 내려요.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폭포수 같은 장대비가 쏟아져 내려요.
나 처음으로 하늘에 난 구멍을 봤어요.
그 사이로 엄청난 비가 내렸어요.
 
내 마음에만 구멍 난 거 아니에요.
하늘에도 구멍 났어요.
그 틈으로 주님이 오셨지요.
그 덕분에 난 살았고요.
 
당신 마음에도 구멍이 보여요.
하늘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이
구멍 난 손으로 당신의 손을 잡아주실 때
폭포수 같은 사랑이 쏟아져 내리기를
나는 바랍니다.

엄마를 위한 꽃 한 송이

엄마를사랑하는 딸은
엄마와 하나가 돼요.
 
내가 엄마인지
엄마가 나인지 구분할 수 없죠.
 
엄마가 느끼는 고통을
딸도 고스란히 느껴요.
 
엄마가 아빠를 미워하면
딸도 아빠를 미워하고.
 
엄마가 아빠를 무시하면
딸도 아빠를 무시하고.
 
엄마가 아빠를 의심하면
딸도 아빠를 의심해요.
 
엄마와 하나 된 딸은 결혼해서
아내가 되고 엄마가 돼요.
 
행복한 삶을 꿈꾸던 당신에게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져요.
 
남편은 아빠가 되고
아빠는 남편이 돼요.
 
아빠의 무관심은
남편 집착이 되고
 
아빠의 외도는
남편 감시가 되고
 
아빠의 학대는
남편 무시가 돼요.
 
이 모든 게
엄마와 하나가 되어 벌어진 일이에요.
 
아직도 엄마 등에 업혀 있나요?
이제 내려오세요.
 
우리 엄마 고생했으니 내 차례야.
아니오. 엄마를 업어주지 마세요.
 
그렇게 딱 붙어 있으면
당신은 불행해져요.
 
엄마를 놓아주세요.
당신을 되찾으세요.
 
당신은 엄마가 아니고
엄마도 당신이 아닙니다.
 
우리 엄마 어떡해.
나 없으면 어떡해.
 
당신이 울 때, 나도 따라 울고 싶다면
당신이 믿어줄까요.
 
나도 엄마가 있거든요.
평생 고생만 했던 엄마가 있어요.
 
엄마가 엄마가 되고
내가 내가 되던 그날 밤
나도 펑펑 울었어요.
 
우리 같이 연습해요.
엄마를 위해, 당신을 위해.
 
엄마를 두 손으로 붙잡으면
그분을 붙잡을 손이 없어요.   
 
한 손 먼저 놔줘볼까요, 우리.
빈손으로 그분 손을 붙잡아요.
 
한 손은 엄마,
한 손은 그분.
 
심호흡하고 엄마에게 말해요.
엄마, 나처럼 한 손으로 그분 잡아.
 
엄마도 당신처럼
그분의 딸이랍니다.
 
엄마를 위해
엄마를 놓아주세요.
 
엄마는 엄마가 되고
당신은 당신이 되는 날,
 
당신에게 향긋한
꽃 한 송이 전해질 거예요.
 
치유의 꽃 한 송이를
두 손으로 받아드세요.
 
엄마 한 송이.
당신 한 송이.
 
그렇게 두 사람은
각자가 될 수 있습니다.

결혼은 도피처가 아닙니다

부모에게 상처받은 딸은
집을 벗어나고 싶어 해요.
 
결혼에 대한 확신 없이
결혼으로 도망쳐 버려요.
 
결혼해서 떠나살면
더 이상 상처받을 일 없겠지.
 
아니에요.
진실이 아니에요.
 
시부모, 임신, 육아.
지금보다 힘들 거예요, 아마.
 
결혼으로 도망치면
상처는 깊어져요.
 
앞자리 숫자가 바뀌는 게
두렵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서두르지 마세요.
남은 인생이 달렸으니까.
 
결혼으로 도망치기 전에
자신과 마주하세요.
 
신부화장을 해주듯이
자신을 돌봐주세요.
 
자기 몸에 나쁜 피라도
흐르는 것처럼 괴로워 마세요.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될 수 없을 거라고 자책하지 마세요.
 
당신이 자라온 환경은
당신이 선택한 게 아니에요.
 
그건 주어진 거예요.
당신이 원하지 않았잖아요.
 
내가 분명히 말해줄게요.
당신 잘못 아니에요.
 
그리고, 한 가지 더.
나는 진실을 말해야 해요.
 
결혼 후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당신 책임이에요.
 
부탁드려요.
여유를 가지세요.
 
멀리서 상처라는 부메랑이 날아오네요.
나 없는 사이 누군가 던지고 갔나 봐요.
 
내가 던진 거 아니라고
뒤돌아서서 외면하면 안 돼요.
 
누가 던진 거냐
범인 찾다가 다치는 건 당신이에요.
 
두려워도 마주 서서
정면으로 응시하세요.
 
반드시 두 손으로
안전하게 잡아야 해요.
 
사방팔방 날아오는 부메랑
멋있게 잡아내는 연습해요, 우리.
 
나는 방심하다가
어제 뒤통수 맞았어요.
 
동시에 두세 개 날아올 때는
나도 어쩔 수 없지요.
 
도저히 안되겠다 싶을 때는
무릎 꿇고 엎드리세요.
 
부메랑을 피할 수 있는
괜찮은 방법이에요.
 
나는 맞아서 아파도
당신이 아픈 건 싫어요.
 
그러니, 부메랑을 보세요.
꼭 잡아내시기 바랄게요.

엄마가 내 초콜릿 먹었어?

“지훈아, 원두 로스팅 하는 동안 주문 좀 받아줄래?” 
 
문영린은 이른 아침, 카페 문을 연다. 딸의 남자 친구 김지훈이 문영린의 일손을 거들었다. 김지훈은 한 달 전에 군 복무를 마쳤다. 영어 학원에 다니면서, 오전에 잠깐 문영린을 돕는 것이다. 
 
원두 로스팅을 할 때마다, 문영린은 예민해졌다. 정확한 시간에 맞춰 기계를 켜고 꺼야 했다. 출근길에 잠시 들러 커피를 주문을 하는 손님을 맞이하다 보면, 로스팅 시간을 맞출 수 없었다. 
 
아르바이트생이 그만두는 바람에 문영린은 난처해졌다. 마침 딸의 남자 친구, 김지훈이 그녀를 기꺼이 돕겠다고 나섰다. 
 
로스팅을 마친 문영린은 카페 한 귀퉁이에 앉았다.  
 
“지훈아, 제대하고 쉬고 싶을 텐데 아침 일찍 나와줘서 고마워.” 
 
“아니에요. 제대하고 생활리듬 깨질 뻔했는데, 일찍부터 나와 일하니까 좋죠, 뭐. 
 
김지훈은 멋쩍은 듯 말했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야?” 
 
테이블 위에 팔을 걸치고 편안하게 서 있던 김지훈은, 문영린의 진지한 질문에 자세를 고쳤다.
 
“조금 있다가 복학해야죠.” 
 
“우리 미혜와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물은 거야. 우리 미혜가 그렇게 좋아?” 
 
김지훈의 긴장이 풀어졌다. 
 
“그럼요.” 
 
“뭐가 그렇게 좋은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좋아요.” 김지훈은 민망함을 감추려고 주문 테이블 구석에 놓인 초콜릿 상자를 문영린에게 가져갔다. 
 
“이거 드셔보세요. 제가 제주도 갔을 때 사온 초콜릿인데, 맛있어요.” 
 
초콜릿을 받아들고 입에 넣으며 문영린이 말했다. 
 
“얼렁뚱당 넘어가려고 하네. 아직 질문에 대답도 안 했어.” 
 
김지훈은 문영린은 진지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미혜를 정말 좋아해요. 제가 군대 있을 때도 한결같이 사랑해줬잖아요. 이제 제가 지켜줄 차례에요.”     
 
문영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젊은 시절 남편과 이혼해 미혜를 혼자 키웠다. 그녀에게 미혜가 전부였다. 대학에 들어가고 얼마 되지 않아, 동갑내기 남자 친구가 생겼다는 말에 당황한 영린이었지만, 지훈의 듬직한 모습에 점차 안심이 되었다. 
 
“둘 만 사이좋게 잘 지내. 싸우지 말고. 그럼 됐지 뭐.” 
 
문영린은 테이블에서 일어나, 시계를 보며 말했다. 
 
“지훈아, 이러다 학원 늦겠다. 어서 가.” 
 
혼자 남은 문영린은 창가에 섰다. 언젠가 미혜가 그녀의 곁을 떠날 것이다. 그녀는 아직 미혜를 떠나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다. 김지훈이 믿음직스러운 것과 미혜를 떠나보내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그녀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녀는 긴 한숨을 쉬면서, 에스프레소를 내려마셨다. 진하게 농축된 커피 향기가 그녀의 미간에 잡힌 주름을 잠시 동안 풀어주었다.  
 
늦은 오후, 미혜에게 문자가 왔다. 문영린은 문자의 내용을 언뜻 이해할 수 없었다. 두 번 세 번 다시 읽어봐도, 그녀가 제대로 문장을 읽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엄마, 아침에 내 초콜릿 먹었어? 그거 내가 얼마나 아끼는 건데, 엄마가 먹어?”
 
기가 막혀 눈물이 났다. 딸에게 답장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문영린은 김지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훈아, 지금 잠시 통화되니? 미혜가 나한테 말도 안 되는 문자를 보냈어. 도대체 무슨 일인 거야. 미혜가 나한테 이럴 리 없는데, 너희 둘이 무슨 일 있었어?”
 
김지훈도 당황한 듯 말했다. 
 
“모르겠어요. 미혜가 이상해요. 점심시간에 미혜하고 잠깐 통화하면서 어머니도 초콜릿 좋아하신다고 말했거든요. 맛있게 드시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고 말했는데, 그다음부터 미혜가 다짜고짜 화를 내더라고요. 퇴근하고 보기로 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요.” 
 
미혜가 술에 취해 저녁 늦게 들어왔다. 문영린은 딸의 모습에, 감당할 수 없는 분노가 일어났다. 마음 같아서는 등짝을 후려치고 싶었지만, 감정을 억누르고 말했다. 
 
“늦었어. 빨리 씻고 자. 내일 출근해야지.”  
 
미혜는 몸을 가누기도 힘든 듯,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그거 왜 먹었어? 그게 엄마 거야? 그거 내 거야. 지훈이가 나 주려고 사온 거라고. 엄마 눈에 보이면, 그게 다 엄마 거야?” 
 
문영린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미혜에게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이 미친년아.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엄마가 초콜릿 하나 먹었다고 이 지랄이야?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들도 안 그러겠다. 이 미친년아!” 
 
미혜는 지지 않고 말했다. 
 
“매일 똑같은 소리지. 누가 엄마 보고 희생하랬어? 엄마는 항상 보상받고 싶어 하잖아. 나는 평생 엄마가 시키는 대로 살았어. 엄마가 원하는 대로 살고 있다고. 내 인생이 어디 있어? 어디 있냐고! 앞으로 내 인생에 끼어들지도 말고, 내 물건도 건드리지 마. 나 이제 엄마랑 안 살아! 지긋지긋해.” 
 
문영린은 미혜와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없었다. 침실에 들어가 문을 닫고 누웠다.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소리 없이 울었다. 울어도 울어도 슬픈 감정을 덜어낼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문영린은 식탁 위에 놓인 짧은 메모지를 발견했다. 미혜가 남기고 간 메모였다. 
 
“엄마, 나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아. 혼자 살 거야. 갑자기 결정한 거 아니야.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생각했어. 엄마도 이제 엄마 인생 살아. 나도 내 인생 살 거니까.”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 자리에 쓰려져 하염없이 울었다. 간신히 몸을 추스르고 카페에 나갔다. 며칠 동안 나타나지 않았던, 김지훈이 문영린에게 문자를 보냈다. 
 
“어머니,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는데 미혜가 지금 제가 사는 오피스텔에서 함께 지내고 있어요. 이건 아니라고 계속 설득했는데, 소용없더라고요. 제가 잘 타일러서 돌려보낼 테니까,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제가 꼭 돌려보낼게요. 죄송합니다, 어머니.”
 
바로 그 순간이었다. 문영린의 세상은 종말을 맞이했다. 
 
딸은 반 년이 넘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극심한 우울증으로 고통에 시달렸다. 고소하고 향긋한 커피향마저도 그녀에게 쓰디쓰게 느껴졌다.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으로 하루하루를 버텨갈 뿐이었다.   
 
“초콜릿 하나로 이렇게 될 수 있는 건가요? 이제 초콜릿이라는 말만 들어도 소름이 돋아요.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요. 그날만 생각하면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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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딸이 집을 나간 이유가 무엇일지 오랫동안 진지하게 고민해보셨을 것 같아요.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해 주실 수 있으시겠어요?”  
 
그녀가 말했다. 
 
“초콜릿이죠. 초콜릿이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딸이 문자로 ‘왜 먹었냐고’ 따졌을 때, 그냥 미안하다고 말했으면 아무 문제 없었을지도 몰라요. 제가 지훈이에게 전화를 걸어서 문제가 더 커졌나.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뭔가 마음이 불편했겠죠, 미혜도.”  
 
그녀는 초콜릿이라는 단편적인 사건에 집중하고 있었다. 사건 자체가 없었기를 바라는 마음이나, ‘그 당시 엄마가 다른 반응을 보였다면’이라는 가정은, 그녀를 지독하게 괴롭혔다. 만약 초콜릿을 먹지 않았다면, 그녀의 딸이 집을 나가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엄마가 딸의 초콜릿을 먹었다는 것, 그것이 딸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요?”
 
그녀는 생각에 잠겼다.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다 큰 애가 초콜릿 하나 먹었다고, 그럴 수가 있나요. 저는 평생 동안 미혜를 위해 희생했어요. 미혜가 잘 되기를 바랐죠. 아빠 없는 아이, 기죽이지 말라고 잘 먹이고 잘 입히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요.” 
 
나는 그녀의 말에 부분적으로 동의했다. 그러나, 나는 멈출 수 없었다. 한 걸음 더 들어가고 싶었다. 그녀가 튕겨나가지 않도록 신중해야 했다. 
 
“저 역시도 다 큰 딸이 초콜릿 하나로 집을 나갔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이 있거든요.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빙산은 전체 크기의 10분의 1 밖에 되지 않아요. 나머지 10분의 9는 바다 아래 잠겨 있거든요. 
 
딸이 집을 나간 이유가 표면적으로는 초콜릿처럼 보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근원적인 이유가 있을지 몰라요. 
 
제가 집중하고 싶은 부분은 딸과 엄마의 관계에요.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문제가, 초콜릿이라는 매개체로 촉발된 거죠. 보이지 않는 부분을 설명해주실 수 있으시겠어요?”
 
그제서야, 그녀는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빠른 속도로 말을 이어갔다. 
 
“아, 그렇군요. 그 말을 들으니까, 생각나는 게 있어요. 미혜가 술에 취해 들어온 날, 제게 한 말이 있어요. 그 말이 미혜의 진심일지도 몰라요. 자기가 원하는 인생이 아니라, 엄마가 원하는 인생을 살고 있다고. 딸을 엄격하게 키웠거든요. 대학 들어가기 전까지, 쉴 틈 없이 몰아붙였어요. 그 덕분에 좋은 대학에 갔잖아요. 졸업하자마자 취직도 바로 되고요. 머리는 좋은 아이였어요. 그러니까, 그만큼 투자를 했겠죠.” 
 
나는 또다시 질문했다. 
 
“만약에 제가 딸을 찾아가서, ‘당신의 어머니는 어떤 사람인가요?”라고 묻는다면, 딸이 뭐라고 대답할까요?”
 
물론, 실제로 그녀의 딸을 찾아갈 생각은 없었다. 그녀와 딸의 관계를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글쎄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딸이 어떻게 대답할까요.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천천히 대답할게요.”  
 
그녀는 긴 한숨을 내쉬고 힘겹게 말했다. 
 
“아마도, ‘엄마는 이기적인 사람이에요.’라고 말하지 않을까요? 미혜는 아마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그녀는 고개를 떨구고 울기 시작했다. 
 
눈물을 흘릴 것이라 미리 예상했는지, 그녀는 가방에서 새것처럼 보이는 손수건을 꺼냈다. 어쩌면, 그녀는 오랫동안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손수건을 쓸 일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의 손수건은 그녀의 비장한 의지를 보여주는 단서다. 마음속 깊은 곳에 담아두었던 진실을 꺼내고자 하는 그녀의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다. 
 
“만약 딸이 ‘엄마는 이기적인 사람이에요.’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실 수 있나요?” 
 
“아니요. 딸에게 진지하게 단 한 번 만이라도 제대로 말하고 싶어요. 오해라고. 그거 정말 오해라고. 엄마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요. 사실 딸에게 아직 말해주지 못한 비밀이 있어요. 마음속 깊은 곳에 담아둔 비밀이 있는데,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모르겠어요.”  
 
우리는 잠시 동안 대화를 멈추었다. 그녀는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흐느껴  울었다. 수문이 열리듯, 그녀는 십수년 동안 간직했던 눈물을 방출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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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정말 미안해. 잠깐 실수한 거야. 다시는 안 그럴게. 한 번 만 용서해줘.”
 
문영린의 남편은 거실 한가운데서, 무릎을 꿇고 빌었다. 일주일 전, 바다낚시를 간다며 집을 나간 남편은 다른 여자와 함께 있었다. 문영린의 고등학교 동창이 우연히 두 사람을 목격하고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다. 
 
문영린은 남편의 진심을 느낄 수 없었다. 벌써 세 번째였다. 세 번 무릎을 꿇는 동안, 남편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했던 말을 그대로 반복했다. 그녀는 남편과 이혼했다. 더 이상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혜가 여섯 살 때였다. 아빠가 눈앞에서 사라진 그날부터 미혜는 아빠를 찾았다. 아내에게는 무뚝뚝하고 이기적인 남편이었어도, 딸에게만큼은 다정다감한 아버지였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이라고 여러 번 말했던 남편이었다.  
 
문영린은 남편과 이혼한 이유를 딸에게 말할 수 없었다. 미혜가 어릴 때, 아빠가 외국으로 돈을 벌러 나갔다고 했다. 미혜는 착각했을 것이다. 미혜가 누리는 삶이 아버지가 벌어다 준 돈 때문이라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는 오백 원짜리 동전 하나 보태지 않았다. 
 
미혜가 고등학생 때, 엄마에게 진지하게 아빠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더 이상 궁색한 변명이 통하지 않을 것을 문영린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미혜는 진실을 원한 것이다. 그러나, 문영린은 진실을 말할 수 없었다. 딸에게 아버지가 좋은 기억으로 남기를 바랐다. 
 
미혜는 궁금했을 것이다. 외국으로 돈을 벌러 나간 아빠가 왜 전화 한 통 없는지. 미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그녀의 아버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남편의 가족들은 집안 어른들 보기 부끄럽다며, 조용히 가족장을 치렀다. 모든 장례 절차가 끝나고 나서야, 시누이에게 전화 한 통 받은 것이 전부였다.
 
문영린은 알 수 없었다. 미혜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차라리 진실을 말하는 것이 낫다고 여러 번 생각했지만, 그때마다 그녀는 물러섰다. 미혜의 높은 성적이 곤두박질칠까 두려웠다. 입시가 끝나면 모든 것을 말해줄 생각이었다. 그렇게, 에둘러 말하며 진실의 순간을 외면했다. 
 
미혜가 대학에 입학하고,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와 아빠에 대해 물었을 때도 문영린은 진실을 말하지 못했다. 이제 문영린 스스로도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막연한 두려움이 그녀를 엄습했다. 
 
제대한 남자 친구와 결혼을 생각하고 있다고 미혜가 말했을 때, 문영린은 단 번에 딱 잘라 말했다. 
 
“그딴 생각 하지도 마. 너는 엄마처럼 살면 안 돼. 연애만 해. 결혼 따위는 생각하지도 말고.” 
 
미혜는 처마 아래 매달린 고드름처럼 서서히 얼어붙었다. 바람이라도 불면, 부러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아차, 했던 문영린은 애써 웃으며 말했다. 
 
“아직 결혼하기에는 너무 어리잖아. 지훈이도 제대한 지 얼마 안 됐고.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생각해보자.” 
 
문영린은 자신이 내뱉은 말을 주워 담으려 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그녀가 내뱉은 말은 바람에 날린 민들레 씨앗처럼 홀홀 날아가 미혜의 황량한 가슴에 내려앉아 뿌리를 내렸다. 
 
미혜의 시선에서 문영린은 이기적일 것이다.  미혜는 아버지가 보고 싶다. 그러나, 아버지를 볼 수 없다. 아버지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조차 미혜는 알지 못한다. 문영린은 그만큼 철저하게 비밀을 지켜냈다. 
 
결혼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두 사람 사이에 등장했을 때, 문영린은 서툴렀다. 성급하게 내뱉은 말 하나로, 미혜의 판단이 뒤집혔다. ‘엄마가 날 위해 희생했다’ 가 아니라, ‘내가 엄마를 위해 희생한 것’으로. 명백한 오해였지만, 미혜의 세상에서는 진실처럼 받아들여졌다.  
 
그 사건이 있었던 바로 다음 날, 문영린은 미혜의 문자를 받았다.
 
“엄마, 아침에 내 초콜릿 먹었어? 그거 내가 얼마나 아끼는 건데, 엄마가 먹어? 그거 왜 먹었어? 그게 엄마 거야? 내 거야. 엄마 눈에 보이면, 그게 다 엄마 거야? 다 엄마 거냐고!”
 
차곡차곡 쌓아올려진 폭발물에 불꽃이 튀어버린 것이다. 작은 불꽃이라도 충분했다. 도화선에 불을 붙일 수만 있다면, 온 세상을 날려 버릴 것이다. 모녀 관계조차도. 
 
문영린의 세상에서는 초콜릿이 보인다. 미혜의 세상에서는 한 번도 발을 들인 적 없는, 어두침침한 탄약고가 보인다. 같은 사건이 두 사람에게 서로 다르게 보인다. 문영린이 아는 만큼, 미혜도 알아야 한다. 두 사람의 시선에 겹치는 지점에  공감이라는 해독제가 놓여있다. 
 
아직 늦지 않았다. 문영린에게 기회가 있다.  지금이라도 달려가 도화선을 따라 거세게 타들어가는 불씨를 발로 짓밟아 꺼야 한다. 어두침침한 탄약고에서 울고 있는 딸을 꺼내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문영린 뿐이다. 
 
김지훈의 오피스텔은 미혜의 안식처가 아니다. 도피처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미혜가 안식할 곳은 어디에도 없다. 잠시라도 쉴 곳이 필요했을 것이다. 어쩌면, 미혜는 돌아올 명분이 필요할지 모른다.    
 

 
“미혜하고 영화를 봤어요. 저녁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했고요. 지훈이와 지내는 게 불편한 가봐요. 다음 주에 집에 들어갈 테니, 자기 방 좀 치워놓으라고 하더라고요. 
 
피식 웃으면서 ’엄마가 무슨 청소부니?’라고 말을 하는데, 고마워서 눈물이 났어요. 
 
미혜도 말없이 따라 울더라고요. 그날은 서로 그렇게 울기만 했어요. 딸이 다시 돌아오면, 거실에서 두런두런 못다 한 이야기해야죠. 딸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제자리에서 서서 그녀의 뒷모습에서 바라봤다. 세월의 거센 흔적이 깃든 흰머리조차도 내게는 찬란한 광채로 느껴졌다. 상담실을 나서는 그녀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그녀에게 상담실은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도피처였던 것이다. 안식처는 그녀의 집이다. 딸과 함께 머무는 그녀의 가정인 것이다. 언젠가 딸이 엄마를 떠날 때, 그녀는 행복한 미소로 보내줄 것이다. 그녀의 뒷모습이 그렇게 말했다.

돈 관리는 누가 하는 게 좋을까요?

결혼을 준비하는 청년입니다. 아무리 신앙이 좋아도 돈 때문에 부부가 갈라서는 경우를 자주 봤습니다. 저는 결혼 전에 분명히 결정을 내리고 싶습니다. 남편과 아내 중 재정 관리는 누가 하는 게 좋을까요? 
 
둘 중 아무나 하면 됩니다. 아내가 해도 좋고, 남편이 해도 좋습니다. 정해진 답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왕이면, 은사와 재능에 맞게 하는 게 좋겠지요. 괜히 물었다 싶겠지만, 질문한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답변해보겠습니다. 
 
누가 재정을 관리하든 부부 사이에 갈등이 없어야 합니다. 서로 한마음으로 협력하라는 말입니다. 재정을 맡은 배우자가 다른 배우자를 통제하면 안 됩니다. 통제가 아니라 통해야 합니다. 
 
정답이 없으니, 오답을 말해보겠습니다. 답이 아닌 것만 피하면 정답입니다. 극단적인 상황을 미리 알면 피해 갈 수 있으니 도움이 되실 겁니다. 
 
재정을 맡은 배우자가 주도권을 가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재정을 맡지 않은 배우자가 갑자기 돈이 필요하거나 물건을 사야 할 일이 있을 때, 재정을 맡은 배우자에게 일일이 허락을 받는다면, 부부 관계가 동등하지 않은 겁니다. 옳지 않습니다.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재정을 맡은 배우자가 아랫사람을 대하듯이 단칼에 거절하는 경우를 봅니다. 한정된 돈으로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없으니 우선순위를 정해야겠지요. 재정을 맡은 배우자가 일방적으로 우선순위를 정한다면, 재정을 맡지 않은 배우자는 마음이 어렵습니다. 재정과 관련된 우선순위는 부부의 사고방식, 가치관에 밀접한 영향을 받습니다. 대화하면서 피곤하고 예민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대화해야 합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재정을 맡지 않은 사람이 힘을 가지는 경우입니다. 배우자에게 재정을 맡기고 10원짜리 동전 하나까지 가계부를 쓰라고 합니다. 수시로 확인하면서 돈을 어디다 썼냐고 스트레스를 줍니다. 최악의 상황입니다. 그럴 거면, 차라리 본인이 재정을 맡는 게 낫습니다. 서로 예민하게 싸우다가 바람 잘 날 없습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재정은 남편과 아내 둘 중 누가 맡아도 상관없습니다. 성경의 원리를 따르는 부부는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돕습니다. 재정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그렇습니다. 한 쪽이 다른 한쪽을 밟고 올라서는 경우는 없어야 합니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 대화 많이 하세요. 행복한 가정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을 소개 받는 게 죄가 되나요?

교회에서 만난 남자친구가 있어요. 남자친구는 저와 결혼하고 싶어 해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이런저런 조건을 따져보고 있어요. 이 와중에 더 좋은 조건의 소개가 들어와요. 다른 사람을 소개받으면 죄가 되나요? 
 
궁금해서 던진 질문이 아니라, 불안해서 던진 질문처럼 느껴집니다. 만약 내가 괜찮다고 하면, 마음이 조금 편해질까요? 하지만, 나는 단답식으로 대답하고 싶지 않습니다. 
 
연애는 OX 게임이 아닙니다.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새로운 남자를 소개받으면 유죄 판결을 받고, 지금 남자친구와 결혼하면 무죄를 받는 식으로 생각한다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심하게 왜곡된 거예요. 죄의 여부를 떠나서, 진실된 판단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조건을 따지면서 결혼하면, 행복하기 어렵습니다. 조건을 보기 전에 먼저 존재를 보세요. 그게 성경의 원리와 더 가깝습니다. 조건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지만, 지금은 조건이 너무 앞서고 있어요. 조금만 신중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결혼은 쇼핑이 아닙니다.   
 
내가 보기에 지금의 남자친구를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확신이 없다면,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건 서로에게 유익하지 않습니다. 곁에 두고 관리하는 건 옳지 않아요. 
 
남자친구와 결혼하는 것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건 서로 별개의 문제입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먼저 지금의 남자친구를 정리하는 게 맞습니다. 이렇게 답변하는 게 마음이 편하지 않지만, 결혼하시기 전이니 아무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한참 돌려 말했는데, 죄가 되냐는 질문에 답하겠습니다. 지금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유지한 채로 다른 사람을 소개받는 것이 죄가 된다는 직접적인 성경 구절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마음 편히 다른 누군가를 만나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죄가 되는가를 따져보기 이전에, 동기를 따져보면 좋겠습니다. 선택보다 중요한 건 동기입니다. 동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선택의 기준이 됩니다. 동기의 옳고 그름은 자신만이 알 수 있습니다. 자신 안의 동기가 올바른가 점검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동기가 바르지 않다면, 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잘못된 동기는 결국 자신과 남자친구에게 상처를 남기게 될 테니까요.

성격이 비슷한 사람과 결혼하는 게 좋은가요?

사람마다 다른 말을 해서요. 제대로 한 번 확인해보고 싶었어요. 배우자를 만날 때, 성격 유형이 비슷한 사람이 좋다고 보시나요, 아니면 정반대의 경우가 더 좋다고 보시나요? 
 
성격은 상관없습니다. 부부는 성격이 달라도 행복할 수 있어요. 나 혼자만의 주장이 아닙니다. 학자들의 일치된 견해입니다. 논문이 아니라서 각주는 달지 않겠습니다. 아는 사람 사이에서는 상식이니까요. 
 
부부의 이혼 사유 중 가장 많은 비율이 성격차이입니다. 작년 기준으로 대략 45%의 사람들이 성격차이로 이혼했습니다. 절반에 가까운 수치라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 수치를 보고 “아, 성격이 다르면 이혼하는구나.”결론 내리면 안 됩니다. 
 
성격이 다르지만, 이혼하지 않고 사는 부부, 행복하게 사는 부부가 훨씬 많습니다. 이혼 사유가 애매한 경우 대부분 성격 차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니, 수치가 크게 잡힙니다. 
 
모든 부부는 서로 비슷하고 다릅니다. 비슷해서 싸우고, 달라서 싸웁니다. 멀리서 보면 부부가 성격 때문에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성격 때문에 싸우는 게 아닙니다. 의사소통 때문에 싸웁니다. 서로 소통하는 법을 모르면 오해가 쌓이고, 오해가 쌓이면 신뢰가 깨집니다. 부부 사이에 신뢰가 깨지면, 회복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서로의 신뢰가 깨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아직 결혼 전이면, 성격 유형에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서로의 닮음과 다름이 서로에게 유익이 될 수 있도록 올바른 의사소통 방식을 배우시면 됩니다. 연애하고 계시다면, 지금이 기회입니다. 서로 연습하세요. 오해를 넘어 진심이 전해질 수 있다면, 당신의 결혼은 장밋빛입니다. 

사랑보다는 현실이죠

배우자를 결정할 때 사랑보다 돈이나 배경이 더 중요하게 느껴져요. 사랑은 오래가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들었어요. 어차피 결혼해서 살 거면 넉넉하게 살고 싶어요. ‘이건 아니지’, 하면서도 현실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결혼을 앞두고 고민하고 계시군요. 누군가를 만나고 계시다면, 상대방의 경제적 상황이 불안해서 던진 질문이겠지요. 서로 사랑하지만, 결혼해서 마주할 빠듯한 삶이 걱정되는 건 당연합니다. 누군가를 만나기 전이라도 상황은 다르지 않습니다. 누구를 만나더라도 걱정은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요. 
 
먼저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았으면 해요. “나는 세속적인 사람이다.”라는 식의 사고는 옳지 않아요. 나는 오히려 솔직한 질문을 해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하나만 묻고 싶어요. 어느 정도의 경제적 안정감을 말하고 계신 건가요? 정확한 재산 규모가 아니라 상대적인 안정감을 말하고 계신 것 같아요.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고 싶은 거죠. 
 
그 안에 결핍이 있을지 몰라요. 아마도 가난의 고통을 아는 사람이 아닐까 싶어요. 가난의 고통을 아는 사람은 가난하고 싶지 않아요. 오히려, 가난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가난을 가볍게 생각하지요. 만약 가난의 고통을 아는 사람이라면, 스스로를 비난하면 안 됩니다. 결핍에서 두려운 감정이 시작된 것이니까요.
 
조심스럽지만, 용기 내어 말씀드립니다. 두렵다고 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시험지를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면 안 됩니다. 정직하게 공부해서, 아는 만큼 써야 해요. 시험 점수가 낮아서 실망스럽더라도 어쩔 수 없어요. 공부 잘하는 친구와 짝을 해서 커닝으로 성적을 올린다면, 나중에 철들고 후회합니다. 좋은 대학은 가도 좋은 인생은 못 살아요. 
 
자기 문제는 자기 스스로 풀어야 해요. 결혼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누구를 만나더라도 행복하기 어렵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이라도 다른 것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주변에 사랑이 대수롭지 않은 듯이 말하는 사람이 있어 안타까울 뿐입니다.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결혼이라는 배는 결국 침몰하고 말 거예요. 암초에 걸리면, 초호화 크루즈나 화물선이나 침몰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말은 현실적인 말이 아닙니다. 모든 부부는 서로 사랑해서 고통받아요. 사랑은 사라진 게 아닙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고통받지도 않아요. 부부의 모든 고통은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단지, 사랑을 서로 공유하지 못해서 불행해지는 거예요. 사랑은 오래갑니다. 나는 그렇게 믿어요.  
 
누구를 만나 결혼해도 괜찮아요. 그건 각자의 선택이니까요. 나는 당신이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자신 안의 결핍을 자세히 살펴보면 좋겠어요.

교회를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고 있어요

교회를 싫어하고 핍박하는 남자를 만나고 있어요. 하지만, 성경에는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지 말라는 구절이 있잖아요.  마음이 편치 않아요. 교회를 싫어하는 건 불편하지만 나머지는 괜찮은 사람이에요. 헤어지고 싶지 않아요. 이 사람과 결혼해도 될까요? 
 
좋은 질문이에요. 하지만, 그건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내가 뻔한 말을 하는 이유는 간단해요. 질문자님께서 내게 동의를 구했기 때문이에요. 정확히 말하면, 이 질문은 궁금해서 던진 질문이 아니라 찬반을 묻는 여론 조사에 가까운 질문이에요. 왜 동의를 구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을까요? 그만큼 불안하고 두려운 것이지요.  
 
왜 두려운지 함께 고민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교회마다 분위기가 조금씩 다르겠지만, 전체적으로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에 관대하지 않아요. 하지만,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면 절대 안 된다’라는 구절은 성경에 없지요.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해서 아름다운 믿음의 가정을 이룬 사례도 있고요. 그러니까, 교회 분위기와 상관없이 본인이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한다고 결정하면, 아무도 뭐라 할 수 없어요. 
 
진짜 문제는 자신의 내면 안에 있어요. 교회 분위기에 매몰되어 깊이 고민하지 못하는 거죠. 교회 공동체 모든 사람이 손뼉을 치면서 만장일치로 결혼을 찬성한다면, 그 남자와 마음 편히 결혼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세요.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 걸까요? 
 
나는 잠시 신앙의 주제를 내려놓고 대화하고 싶어요. 신앙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보고 싶기 때문이에요. 잠시만 참고 들어주세요. 
 
종교가 없는 남녀가 연애를 해요. 여자가 좋아하는 작가가 있어요. 그래서, 그 작가의 책을 사서 모아요. 작가의 북콘서트를 가기도 해요. 남자친구가 여자친구의 행동을 보면서 그 작가 욕을 해요. 작가의 사생활을 들먹여요. 대놓고 싫다고 말해요. 내 입장에서 보면, 그 남자는 여자친구를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그건 바보 같은 짓이거든요. 
 
그 남자친구는 말하겠지요. “나는 내 여자를 사랑해. 하지만, 내 여자의 가치관이 마음에 안 들어. 가치관을 통째로 뜯어고칠 필요는 없어. 그 작가만 안 좋아하면 돼. 그거 하나 빼고 우리 잘 맞아. 결혼하고 싶어? 그럼 그 작가 좋아하는 마음 버려. 책도 버리고. 그럼, 아무런 문제 없이 우리 결혼할 수 있어.”  
 
나는 묻고 싶어요. “지금 뭐 하시는 건가요? 그게 사랑이라고요? 사랑의 의미를 아시나요?” 사람마다 사랑의 정의가 다르겠지만, 적어도 이 남자의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는 건 동의할 거예요. 
 
당신이 왜 두려운지 이제 아시겠죠? 신앙이 문제가 아니라 사랑이 문제에요. 당신은 그 남자를 만나서 결혼하면 신앙을 잃을까 걱정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더 근본적인 고민을 하고 있는 거예요. 
 
‘이 남자가 정말로 나를 사랑하는 걸까?’ 
 
당신이 느끼는 두려운 감정은 정당한 거예요. 불안하고 두려울 수밖에 없지요. 그 남자와 당장 헤어지라는 말이 아니에요. 그건 당신 선택이에요. 아무도 대신 선택해줄 수 없어요.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고민해보세요. 그 남자와 결혼한다면, 사랑받으며 살 수 있을지 말이에요. 

결혼할 사람을 만나면 특별한 응답이 있나요?

하나님이 만나게 해주신 배우자는 다른 사람과 달리 뭔가 분명한 응답이 있는 건가요? 저는 이제까지 연애하는 동안 목사님이나 교회 선배들이 말하는 특별한 응답을 받은 적이 없거든요. 
 
어려운 질문입니다. 신중하게 답변하겠습니다. 가끔 주변에서 신비로운 간증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처음 본 순간 하나님께서 확신을 주셨다”,“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었는데,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라는 식의 간증은 흔합니다. 청년의 시기에 결혼은 중요한 문제이니, 신비한 간증에 귀가 쫑긋하는 건 당연합니다.  
 
물론, 나 역시 하나님의 신비한 역사를 믿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시고, 지금도 일하시니까요. 하지만, 한 개인의 간증을 모든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는 것처럼 일반화하면 위험합니다. 배우자를 만날 때, 모든 사람이 신비한 응답을 받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응답받았다”라는 확신 때문에 실수할 수 있습니다. 지나친 확신이 눈을 가려서 상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잘못된 선택합니다. 
 
연애는 과정입니다. 서로 교제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모 아니면 도’라는 식으로 결론 내리고 출발하면 위험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성급하게 결론 내리지 마세요. 절대로 확신하면 안 됩니다. 확신이 의심이 되고, 의심이 이별이 됩니다. 끊임없이 고민하세요. 고민이 멈추면 성장도 멈춥니다. 
 
배우자를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이 분명히 응답해 주실 수 있습니다. 응답을 받았다면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응답을 받았다 해도, 연애나 결혼이 쉬워지는 건 아닙니다. 두 사람이 함께 걸어야 하는 길은 절대로 편해지지 않습니다. 제아무리 확실한 응답을 받았다 해도, 과정에서 서로를 아껴주고 사랑해줘야 합니다. 
 
결과 중심의 연애를 하지 마시고, 과정 중심의 연애를 하세요. 결과는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우리는 다만,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이 사람이 하나님이 보내주신 바로 그 사람이 아닐까”라는 마음으로 진실되게 사랑하고 돌봐주세요. 물건을 사듯 이리저리 평가하지 마시고, 선물을 받은 사람처럼 감사하세요. 머지않아, 하나님이 보내주신 사람과 결혼하게 될 겁니다.

혼전순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혼전순결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부담스러워요. 요즘 사회적 분위기와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요. 순결을 지켜낸다고, 행복한 결혼 생활이 보장되는 건 아니잖아요. 혼전순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당연히 순결해야죠. 결혼은 인간이 만든 제도이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정하신 약속입니다. 인류 최초의 결혼이 에덴동산에서 있었고, 신성하고 거룩했습니다. 성경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결혼 이외의 모든 성관계는 용납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결혼 전 청년이라면 순결이라는 말에 더욱 민감해야 합니다. 그러니, 순결하세요. 
 
“누가 몰라서 질문했니? 나도 알아. 힘들게 질문했더니 가슴에 못을 박고 난리야. 괴롭고 힘들어서 질문한 거잖아. 피도 눈물도 없는 놈. 너 잘났어. 의인 놀이 계속하면서 잘 먹고 잘 살아라.”
 
잠시만요. 내가 조금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조금만 더 들어주세요. 손해 보지는 않을 거예요. 내 진심을 전하고 싶습니다. 
 
오해를 바로잡고 싶어요. 순결에 대해 이분법적으로 생각하지 말아주세요.“혼전순결은 결혼하기 전까지 성관계를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단순하게 정의 내리면 안 됩니다. 결혼 전이나, 결혼 후에나 그리스도인은 순결해야 합니다. 결혼하면 괜찮다는 말은 성경을 오해한 결과입니다. 부부의 성관계를 무조건 거룩하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거룩하게 다루어야 거룩한 겁니다. 거룩하지만 거북하게 다루어질 수 있어요. 충분히.  
 
나는 상담하는 사람이니 알지요. 부부의 성관계 역시 왜곡될 수 있어요. 부부가 서로 사랑하는 마음 없이 욕구 충족의 도구로 성관계를 사용한다면, 아무리 부부의 성관계라도 거룩하다 말할 수 없어요. 법적으로도 부부 사이에 강간죄가 성립해요. 결혼했으니까, 괜찮다는 말은 진실이 아닙니다. 섬세하게 자기를 점검하고, 살펴야 해요. 혼전순결만큼 혼후 순결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같은 관점으로 혼전순결을 말해보겠습니다. 혼전순결이라는 말을 들으면, 긴장하는 쪽은 순결을 잃은 사람이겠지요. 순결한 사람은 그나마 마음이 편하겠지요. 하지만, 수위를 넘은 스킨십이 발목을 잡고 있지요. 조마조마합니다. 아직까지는 괜찮지만, 당당할 수는 없습니다. 조심스럽지만, 더 솔직해지겠습니다. 아마도 남자보다 여자가 긴장할 겁니다. 여성의 피해가 더 큽니다. 여자가 더 취약합니다. 나를 여성 우월주의자로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내 성별은 남자고, 상식 있는 상담자일 뿐입니다. 
 
나는 말합니다. 혼전순결을 잃은 여자, 정죄의 대상이 아니라 보호의 대상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사람이라면, 상처 입은 주님의 딸을 돌보고 사랑해야 합니다. 
 
질문하신 분의 의도가 있을 겁니다. 혼전순결이라는 말을 의식하지 않고 살았다면, 질문하지 않았을 겁니다. 혼전순결에 민감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추측합니다. 혹시라도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면, 나는 상황을 바로잡고 싶습니다.  
 
이미 내 몸은 더럽혀졌다. 
나는 끝났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거짓말입니다. 진실이 아닙니다. 원치 않는 성관계를 했다면, 더더욱 진실이 아닙니다. 죄책감에 사로잡힌 사람은 은혜를 쉽게 간과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어떤 죄 가운데 있더라도 은혜로 용서하십니다.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순결을 잃었다고 좌절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여전히 순결한 주님의 자녀입니다. 
 
누군가 말할 겁니다. 사람들과 타협하지 말라고. 그렇게 타협하면, 말씀을 왜곡하는 거라고. 아니요. 나는 내 말에 책임을 질 겁니다. 순결을 말할 때, 나는 죄책감에 흐느껴 울고 있는 여자 앞에서 말하는 겁니다. 혼전순결이라는 말을 비웃으면서 자신의 몸을 쾌락의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을 나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습니다. 만약 내가 그런 사람을 만난다면, 나도 다시 생각해보겠습니다. 하지만, 당분간은 내 생각 바꿀 마음 없습니다. 
 
주님 앞에 바로 서고 또 바로 서도 넘어지고 또 넘어질 겁니다. 다른 사람에게 몸을 맡기면, 상처는 심해집니다. 따뜻한 품이 그립다고 남자 품에 안기면 안 됩니다. 그럴수록 외로워집니다. 안지 못하게 한다고, 떠나는 남자라면 떠나보내세요. 두려워 마세요. 주님이 안아주십니다. 당신은 영원히 안전합니다.  

이별을 견딜 수 없어요

누군가와 헤어지는 상황을 견딜 수 없어요.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어요. 졸업식이 힘들었어요. 선생님, 친구들과 헤어진다는 슬픔 때문에요. 선생님이 전근가실 때도 울고, 목사님이 바뀔 때도 울고, 함께 일하던 동료가 회사를 그만 둘 때 울어요. 친구들 결혼식도 못 봐요.
 
이제 동생이 결혼을 해요. 동생을 떠나보낸다는 생각에 눈물이 나요. 교회 상담실에서 상담을 받아봤어요. 그런데, 심각한 게 아니라는 듯 끝났어요. 동생 결혼식에서 웃으며 축복해주고 싶어요. 하지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울음을 참을 수 없으니 걱정이에요.
 
저는 3남매 중 첫째에요. 한 살 어린 남동생, 네 살 어린 여동생이 있어요. 남동생이 생기면서 저는 할머니에게 갔어요. 할머니가 엄마인 줄 알고 지냈어요. 여동생이 엄마 뱃속에 있을 때,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저는 다시 엄마 집으로 오게 되었어요. 아이가 셋이다 보니 엄마는 주로 저를 집에 혼자 두고 다녔어요. 막내인 여동생은 늘 데리고 다녔고요.
 
할머니 돌아가신 날이 기억나요. 할머니와 살던 저는 엄마 집에 놀러 왔어요. 할머니는 평소와 다름없이 막걸리를 한 잔 드시고 낮잠을 주무셨어요. 어린 저와 동생은 할머니 양옆에 누워 같이 잠을 잤어요. 잠이 깬 저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걸 제일 먼저 발견했어요. 눈을 뜨고 돌아가셨어요.
 
엄마가 그랬어요.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 제가 할머니가 꽃가마 타고 가는 꿈을 꿨다고. 할머니가 내 꿈을 듣고 말했다고 했어요. “아이고, 내가 꽃가마를 타고 어디를 간다는 거 보니까 세 밤 자면, 죽으려나 보다.” 그날 이후, 엄마가 꿈에 나올까 무서웠어요. 내 꿈 때문에 돌아가실까 봐….
 
자매님, 용기 내어 사연 보내주셔서 감사드려요. 자매님이 보내주신 사연을 읽어보면, 자매님은 누군가와 헤어질 때 슬픈 감정을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어요. 하지만, 내 생각에 자매님은 이별의 슬픔으로 고통받는 게 아니에요. 나는 다른 관점으로 이 상황을 보고 싶어요. 자매님은 혼자 남겨지는 게 두려울지 몰라요. 외로워서 우는 게 아니라 무서워서 우는 것 같아요.
 
부족한 정보로 추측할 뿐이에요. 하지만, 그 나름의 근거가 있어야겠지요. 자매님은 바로 아래 동생이 엄마 뱃속에 있을 때 할머니 댁에 맡겨졌어요. 한 살 어린 남동생이니까 자매님은 돌이 되기도 전에 할머니 댁에 맡겨진 거예요. 그리고, 여동생과 세 살 차이가 나니까 할머니 댁에서 최소 3년 이상 산 거예요.
 
애착 형성에 중요한 생후 3년 전후로 자매님은 두 번의 큰 상실을 경험했어요. 엄마와의 이별이 있었어요. 동생의 존재만으로 자매님은 이미 존재감에 큰 타격을 입었을 거예요. 엄마와 생이별을 했으니 고통은 더 컸을 거예요. 단지 어려서 표현할 수 없었던 거죠.
 
할머니와의 이별이 있었어요. 자매님은 할머니를 엄마처럼 생각했어요. 그런 할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어요. 자매님에게는 할머니의 죽음이 엄마의 죽음과 같았어요. 세상이 하루아침에 멸망한 것처럼 무서웠을 거예요. 할머니가 눈을 뜨고 돌아가셨다는 표현에는 자매님이 느끼는 두려움의 정서가 반영되어 있어요. 어린아이가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자매님은 혼자 있을 때 외롭기보다 무서울 거예요. 성인이 된 지금 외롭다는 말은 할 수 있어도 무섭다는 말을 하기 어려울 거예요. 하지만, 괜찮아요, 자매님. 누군가 떠날 때 무서운 감정을 느끼는 건 자매님에게 정당한 감정이에요. 스스로를 자책하지 마세요.
 
자매님은 마음속 어린아이를 돌봐줘야 해요. 눈을 뜨고 돌아가신 할머니를 보고 겁먹은 네 살짜리 여자아이가 있어요. 성인이 된 자매님이 그 아이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어떻게 위로해 줄 수 있을까요. 그 아이는 너무 놀라 울지도 못해요. 소리쳐 주변에 알리지도 못해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 해요.
 
우리 그 아이를 위로해 줄까요. 겁먹은 그 아이를 들어 올려 안아주세요. 등을 다독여 주세요. 품에 안고 따뜻하게  말해주세요.
 
“괜찮아, 아가. 많이 무서웠지. 이제 괜찮아. 네 잘못 아니야. 할머니는 네가 꾼 꿈 때문에 돌아가신 게 아니야. 괜찮아, 아가…. 정말로 괜찮아….”
 
마음속 그 아이는 여전히 무서워해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아요. 누군가 떠날 때, 무서워서 옷자락이라도 잡고 싶어 해요. 그 아이를 비난하거나 정죄하지 마세요. 무서워서 그러는 거예요. 그 아이는 아무 잘못이 없어요. 다독여 주세요. 그 아이가 안심할 때까지 따뜻하게 안아주세요. 남은 삶 동안 포기하지 않고 돌봐주셔야 해요.
 
사람들은 자매님을 떠나요. 목사님도, 선생님도, 친구들도, 가족들도. 언젠가 모두 떠날 거예요. 필요할 때 옆에 없을 거예요. 하지만, 걱정은 마세요. 예수님은 절대로 자매님을 떠나지 않으실 거예요. 언제나 어디서나 따뜻하게 자매님을 안아주시는 예수님을 믿기에 나는 여기서 글을 마칩니다.

믿지 않는 남자친구를 만나요

내 마음속에 외로움이 가득 있어요. 주님 한 분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제 신앙이 부족하다고 느껴져요. 제 신앙이 부족해서 그런지 교회를 건성으로 다니거나 아예 다니지 않는 남자 친구를 만나요. 솔직히 저는 지금 남자 친구가 좋아요. 신앙이 없어서 문제에요. 헤어지고 싶지 않아요. 계속 만나고 싶어요. 세상적인 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제 신앙이 부족해서 일까요?
 
아빠는 악마 같아요. 술만 먹으면 엄마를 때렸어요. 무책임하고 무기력한 아빠 때문에 가정이 고통받았어요. 엄마는 천사 같아요. 늘 제 편이 되어줬어요. 아빠 때문에 고생했는데, 언제나 밝은 모습을 잃지 않으셨어요. 그런 엄마를 보면 마음이 아파요. 늘 저와 제 동생을 위해 사셨거든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있었던 일이에요. 밤 11시쯤 학원을 마쳤어요. 아빠가 데리러 왔어요. 아빠 차를 타고 집에 가는데, 아빠가 말씀하실 때 너무 피곤해서 하품을 했어요. 아빠가 운전하다가 말고 제 뺨을 때렸어요. 아빠가 말하고 있는데 버르장머리 없이 하품을 한다고. 화나고 무섭고 슬펐어요. 집에 와서 엄마에게 말했어요. 두 분이 제 앞에서 싸웠어요. 아빠는 엄마를 또 때렸어요. 나 때문에 엄마가 맞았잖아요. 마음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어요.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내 답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요. 자매님은 자신의 신앙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믿지 않는 남자 친구를 사귀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계시고요. 나는 자매님이 처한 상황보다 믿지 않는 남자 친구를 만나면서 느끼는 죄책감이란 감정에 더 많은 관심이 있어요.
 
반대로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자매님의 신앙이 깊고, 믿음이 좋은 남자 친구를 만났다고 해보죠. 그러면, 외로움이 사라질까요. 아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아니에요.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아요. 외로움은 없애야 할 감정이 아니라 돌봐야 하는 감정이에요.
 
자매님은 외로움에 취약한 삶을 살아오셨어요. 폭력적인 아버지, 희생하는 어머니, 불안한 두 분의 관계. 자매님의 정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거예요. 고등학교 1학년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버지에게 맞았던 사실을 어머니에게 말했어요. 도움을 주려던 어머니 역시 아버지에게 맞았어요. 어머니는 자매님을 지켜줄 수 없었어요. 아마 그 후로는 자매님이 힘든 일이 있어도 어머니에게 말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조심스럽게 추론하는 거예요. 혼자 참고 견디는 것에 익숙해졌을 거예요.
 
나는 자매님의 신앙이 깊어지기를 바라고, 믿음 좋은 남자 친구를 만나기를 바라요. 하지만, 그전에 나는 자매님이 스스로를 정죄하지 않기를 부탁드려요.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그 누가 손가락질 할 수 있겠어요. 얼마나 외로우면 그러겠어요.   
 
불안정한 관계 속에서 자매님이 얼마나 고통받으며 살아왔는지 하나님도 알고 계세요. 하나님은 믿지 않는 남자 친구를 만났다고 화를 내시는 분이 아니세요. 오히려, 하나님은 마음 아파하세요.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 누구라도 곁에 있어주기를 바라는 자매님을 보시며 안타까워하는 하나님의 얼굴이 나는 보여요. 하나님은 자매님이 사랑받기 원하세요.
 
그렇다고, 아무나 만나라는 말은 아니에요. 가능하다면, 예수님을 의지하고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세요.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믿음 있다고 좋은 남자 아니고, 믿음 없다고 나쁜 남자 아니에요. 복음이 없다면 복음을 전해주세요. 복음이 있다면 복음을 공유하세요. 서로의 진심이 중요해요.   
 
신앙이 성숙하고 성경 지식이 많아져도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아요. 제아무리 믿음이 좋은 남자 친구를 만나도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아요. 그 누구도 자매님 안에 결핍을 채워줄 수 없어요. 외로움은 스스로 돌봐야 하는 감정이에요. 예수님의 사랑과 그분의 말씀으로 외로움을 돌봐주세요. 절대로 포기하지 말아주세요.
 
나같이 부족한 사람에게 질문해주셔서 감사해요. 외로운 당신을 하나님이 따뜻하게 안아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하나님을 원망해요

결혼을 전제로 6년 동안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졌어요. 2년이 지난 지금은 남자친구에 대한 원망은 없어요. 차라리 헤어지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요. 하나님이 너무 원망스러요. 내 20대를 다 바쳐서 주님을 섬겼는데, 이제 남은 게 없어요. 하나님이 싫어서 교회도 가지 않아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원망스럽다고 말하면 편안하게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하면서 논리적으로 따져보겠지요.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내가 더 나은 사람이라서가 아니에요. 자매님이 진심을 알기 때문이에요. 
 
자매님은 그런 말할 자격 있어요. 주님을 위해 20대를 바쳐 봉사했기 때문이 아니에요. 주님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기 때문이 아니에요.  자매님이 주님의 딸이라서 그래요. 
 
딸은 아버지를 원망할 자격이 있잖아요. 말 그대로 딸이니가요. 딸이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으면 누구를 원망할 수 있을까요. 아버지를 사랑하니까 아픈 거예요.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해야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어요. 사랑하지 않으면 미련도 없지요.   
 
하나님이 진심을 담아 사과하면, 그 마음 누그러질까요. 하나님이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한다면, 그 마음이 풀릴까요. 하나님은 자매님의 아픈 마음 위로하고 싶을 거예요. 하나님도 자매님을 사랑하시니까요. 
 
자매님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는 자매님의 삶에서 일어난 작은 기적을 목격했어요. 자매님 안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난 일이지만, 다른 사람은 쉽게 이룰 수 없는 일이에요. 자매님은 과거의 남자친구에서 벗어났어요. 
 
헤어진 이성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은 쉽게 떨쳐내기 힘든 감정이에요. 누군가에게는 아마 평생 동안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는 복잡한 감정이랍니다. 자매님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동안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난 거예요. 원망을 담은 편지라도 주소는 정확히 적어주신 거예요. 
 
원망의 대상이 남자친구가 아니라 하나님이라서 감사해요. 만약 과거의 주소지에 끊임없이 편지를 보냈다면, 자매님의 편지는 길가에 버려졌거나, 다른 사람 손에 갈기갈기 찢겨졌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에게 보낸 편지는 하나님이 소중히 뜯어 읽어보셨어요. 잘 펴서 예쁜 상자에 담아 보관하고 계시고요. 
 
지금 하나님은 답장을 쓰고 계신 거예요. 생각보다 오래 걸리나봐요. 하나님의 시간 계산법은 우리와 조금 달라서 예측하기 어렵지요. 조급해하진 마세요. 머지 않아 하나님의 진심이 가득 담긴 편지가 도착할 거예요. 
 
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 정확한 주소를 적어주세요. 자매님이 하나님께 진심으로 듣고 싶은 말이 뭔가요. 하나님이 어떻게 해주시면 마음이 풀릴까요. 잃어버린 모든 시간이 아깝지 않을 만큼, 하나님께 받고 싶은 선물이 있으신가요. 주저하지 말고 말하세요. 하나님은 이미 알고 계시고 보내주실 준비를 마치셨어요. 
 
다시 교회에 나가려면,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나는 조급하게 지금 당장 교회에 다시 나가라는 말은 못하겠어요. 꽁꽁 얼어버린 자매님의 마음이 따스한 사랑으로 녹아내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내게 물어주신 덕분에 정답은 못 드려도, 진심은 전할 수 있었습니다.

헤어진 남자친구를 다시 만나고 싶어요

3년 동안 만난 남자 친구가 있어요. 9개월 전에 헤어졌지만, 지금도 그 남자 친구가 그립습니다.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연애할 때 많이 싸웠어요. 그때는 몰랐지만, 헤어지고 나서 돌아보니 제 어린 시절 상처가 보였어요. 지극히 정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상처투성이였어요. 불안정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거든요.
 
이별을 극복하기 힘들어서 하나님께 매달렸어요. 바쁜 와중에 교회 가서 예배하고 기도하고 성경 읽으면서 하나님을 의지했어요.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어요. 그전에 먼저 제 가족이 회복되어야 할 것 같아요.
 
남자 친구를 다시 만나고 싶어요. 단순히 그리워서가 아니라 가족과 관련해서 꼭 말하고 싶은 게 있어요. 새로운 관계를 이어가고 싶어요. 더 늦기 전에 하나님이 다시 만날 수 있게 길을 열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자매님,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요. 헤어짐의 원인을 상대방에게 돌리지 않고 자신에게서 찾는 건 어찌 보면 감사한 일인지 몰라요. 자매님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요. 자매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나님께서 전 남자 친구를 다시 만나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나는 잠시 자매님과 마주 앉아 전해드려야 할 말이 있어요.
 
자매님 안에 상처가 치유되는 것과 전 남자 친구를 다시 만나는 것을 서로 나누어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이 둘을 분리하지 않으면 자매님은 더 큰 상처를 입을 수 있어요. 나는 자매님이 더 이상 상처 입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내 진심을 전하고 싶어요.
 
상처 치유와 남자 친구를 다시 만나는 게 미묘하게 섞여서 전제 조건을 만들었어요. “내가 치유되면, 내 가족이 회복되면,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면….” 여기가 전제 조건이에요. 전제 조건이 만족되면, 예상되는 결과가 있어요. 자매님이 원하시는 결과는, “다시 남자 친구를 만날 수 있어. 만날 수만 있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두번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하지 않을 거야.”와 같은 문장들이에요.
 
선명하지 않지만, 희미하게라도 원인과 결과가 성립되는 문장이 만들어지면, 자매님은 더욱 고통받을 거예요. 원인도 원인이 아니고, 결과도 결과가 아니니까요.
 
힘든 말을 할게요.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세요. 오로지 자매님 자신을 위해서 치유의 여정을 시작하세요.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매님 자신을 위해서 말이에요. 다른 누군가의 지분이 1%라도 반영된다면, 치유는 오염돼요. 보상 심리가 작동해요. “내가 이렇게까지 하나님을 의지했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나한테 이러실 수 있을까.” 시간이 흐를수록 절망감은 더 커질 거예요.
 
나는 자매님이 보상받기를 바라지 않아요. 선물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보상을 받는 사람은 언제나 아쉬워요. 노력한 만큼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선물을 받는 사람은 언제나 감사해요. 노력 없이 거저 받았으니까요. 기대가 없으니 감동 역시 크겠죠.
 
남자 친구를 지우세요. 모진 말 해서 미안해요. 나는 자매님이 보상이 아니라 선물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드린 말이에요. 남자 친구를 지우기 힘들어요. 사람이 컴퓨터도 아닌데 어떻게 기억을 지우겠어요. 하나님과 자매님 사이에 그 누구도 끼어들지 못하게 해달라는 부탁이에요. 오직 하나님만 사랑해주세요. 하나님이 해주실 그 무엇을 붙잡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봐 주세요. 진심이 전해지면, 하나님은 선물을 주실 거예요.
 
하나님이 자매님을 치유해주시기를 바라요. 그리고, 자매님을 사랑해줄 누군가를 보내주시기를 원해요. 전 남자 친구가 자매님에게 정말 필요한 사람이라면 다시 보내주실 거라 믿어요. 만약 더 좋은 사람을 준비하셨다면,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때에 보내주실 거예요. 꼭 과거에 그 사람이라고 단정하지는 마세요. 자매님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세요.
 
사람들은 상처를 보면 떠나요.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로 떠나지 않으세요. 이별의 아픔 때문에 상처를 탓하며 조급하게 치유를 말하지 마세요. 치유되지 않은 당신이라도 하나님은 온전히 사랑하시니까요. 당신이 다시 사랑받았으면 좋겠어요. 그날이 오면, 어떤 방식으로든 내게 알려주세요. 나도 함께 기뻐하고 싶어요.

남자친구에게만 화를 내요

저는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지 않아요. 하지만, 남자친구에게는 예외에요. 답답하고 짜증 나면 나도 모르게 화를 내고 막말을 하거든요. 고치고 싶은데 고치기 어려워요. 
 
솔직한 질문 감사드립니다. 먼저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자매님은 지극히 정상입니다. 자신을 비난할 필요 없어요. 쉽지 않겠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로 풀어갈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남자친구는 다릅니다. 자신을 이중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다른 사람에게는 쉽게 화내기 힘듭니다. 다른 사람들은 자매님에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서 그래요. 
 
남자친구는 자기 자신의 일부에요. 자기 자신과의 상호 작용이 남자친구에게 반영됩니다. 진지하게 오랜 시간 만났다면, 남자친구가 가족처럼 느껴집니다. 다른 사람들과 관계의 수준이 다릅니다. 
 
아이들만 부모와 애착되는 게 아니라 연인끼리도 애착됩니다. 연인 사이에서 애착이 깨지면 부모를 잃은 아이처럼 고통스럽지요. 연인과 헤어진 슬픔이 가족을 잃은 슬픔과 별반 다르지 않아요. 
 
사람은 애착이 된 대상에게 안정감을 느끼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남자친구에게 안정감을 느끼는 게 쉽지 않아요. 항상 좋은  감정으로 만날 수도 없고, 좋은 말만 할 수 없습니다. 
 
화를 내면 후회가 밀려오겠지요. 그렇다고, 구호를 외치지 안 됩니다. “화내지 말자. 화내면 나쁜 사람이다. 내가 이것밖에 안 된다. 아, 또 화내고 말았다.” 진실이 아닙니다. 감정을 차단하지 마세요. 자매님은 기계가 아닙니다.  
 
화내지 말자,라는 명령어가 사람에게 입력되면 고장 납니다. 화난 감정을 막을 게 아니라 화난 감정을 적절히 표현하는 방식을 배워야 해요. 감정 자체가 아니라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합니다.  
 
화난다고 대화를 피하면 안 됩니다. 힘들어도 대화는 계속해야 합니다. 화난다고 상대방을 윽박지르거나, 자리를 박차고 나가면 대화가 끊어지겠지요. 
 
같은 일로 다툼이 반복된다면, 남자친구를 아무리 말해도 못 알아듣는 멍청이로 만들지 마시고,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확인해보세요. 그 상황을 바라보는 자매님만의 독특한 관점이 있을 겁니다. 그게 뭔지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면, 갈등을 통해 서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의사소통합니다. 남자친구가 자매님의 말을 이해 못 한다고 낙심하지 마세요. 서로의 말을 해석하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어요. 서로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안정될 겁니다. 
 
연인 관계는 원래 힘든 겁니다. 포기하지 말고 대화해주세요.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잘못하는 게 아닙니다. 갈등은 과정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남자친구와 공유해주세요. 
 
화낸 다음 날은 미안하다는 뜻으로, 평소보다 여유 있게 남자친구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세요. 남자친구도 하고 싶은 말이 있을 테니까요. 서로 주고받는 말 너머에 진심을 바라보세요. 서로의 진심을 알게 되면, 두 사람 행복해질 겁니다.

남자다운 남자가 싫어요

다정다감하고 온유한 사람을 만나고 싶은데, 남자친구가 남자 성격이에요.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요. 남자친구의 표정과 말투에 민감해요. 남자친구는 웃는 인상이 아니에요. 말투도 거칠어요. 사랑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헤어졌어요. 노력하겠다는 말에 다시 만나요. 노력하는 모습은 보이지만, 실망스러운 건 마찬가지예요.
 
그건 자매님 선택이에요. 나에게 물어도 나는 답을 모릅니다. 힘들게 질문하셨는데, 쉽게 대답해서 미안합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나는 진실을 말해야 하니까요. 자매님이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면 됩니다. 아니다 싶으면 헤어지면 됩니다. 서로 노력해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갈 수 있으면 계속 만나면 되는 거고요. 내 말에 감정이 상했다면, 미안합니다. 하지만, 이 이상의 답을 줄 수는 없어요. 
 
나는 상담하는 사람이니 이대로 대화를 끝내면 안 되겠지요. 조심스럽지만, 대화를 이어가겠습니다. 자매님이 원하는 대로 선택하지 못하는 상황을 이해합니다. 자매님은 딜레마에 놓인 겁니다. 남자친구가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한 거죠. 
 
남자친구가 무섭기만 했다면, 이미 헤어졌을 겁니다. 아무리 다시 만나자고 해도, 헤어진 남자를 다시 만나지 않았을 겁니다. 그 남자는 분명 자매님이 원하는 것을 갖고 있을 거예요. 다시 기회를 준 이유일 겁니다. 그 남자의 전부가 싫은 게 아니라 그 남자의 일부가 두려운 것이지요. 일부라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자매님의 상처와 맞닿아 있으니까요. 폭력적인 아버지의 성향과 남자 친구의 성향이 서로 닮은 것이지요. 그렇게 된 이상, 일부는 전체를 덮어버립니다.
 
남자친구와의 관계에 집중하지 말고, 자신에게 집중해보세요. 가만히 멈춰 서서 깊이 생각해보세요. 남자친구가 자매님에게 주는 그 무엇이 다른 남자를 만나도 받을 수 있는 건 가요? 사람이 바뀌어도 지속될 수 있는 건가요? 그렇다면, 그 남자가 꼭 필요한 건 아닙니다. 선택이 쉬워졌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다른 누구로 대체할 수 없는 그 남자만의 특별한 무언가가 있나요? 그 남자가 아니면 절대로 안 되는 그 무언가가. 그렇다면, 그 남자를 놓치면 안 됩니다. 표현 방식이 서투를 뿐, 그 남자의 진심이 자매님에게 전해진 겁니다. 
 
그 누구를 만나도 자매님의 상처는 새로운 관계 안에서 영향을 미칠 겁니다. 그러니, 관계에 집중하지 말고 자신에게 집중하세요. 남자가 바뀌어도 반복되는 패턴이라면, 관계를 통해 상처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꼭 그 남자여야 한다면, 힘들고 어려워도 함께 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그 남자가 아니어도 된다면, 지금은 자신을 추스르고 돌볼 때입니다.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어요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어요.  기도하면서, 이 남자다 확신을 가지게 되었어요. 하지만, 교회 공동체에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여요. 청년부 전도사님은 이 관계를 달가워하지 않으세요. 형제가 저보다 신앙이 미성숙하다고 하셨어요. 신앙의 완전함은 없다고 생각해요 맞춰가며 함께 성장해야죠. 두 사람 만의 확신으로 연애를 시작해도 될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연애를 시작하고 안 하고는 질문자님이 결정하시면 됩니다.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고, 스스로 결정하세요. 절대로 다른 사람 허락받지 마세요. 내 동의도 의미가 없어요. 내 생각에 질문자님은 이미 결정을 내리셨어요. 내 생각을 물었으니, 답변은 해보겠습니다. 
 
조심스럽지만, 청년부 전도사님이 반대하는 이유를 추측해보겠습니다. 좋은 의도로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해 볼게요. 질문자님을 아끼는 마음에서 걱정을 표현하신 것 같아요. 그동안의 사례가 있겠지요. 사랑하는 제자들이 고통받는 것을 목격하셨을 거예요. 그러니, 청년부 전도사님이 신뢰할 수 있는 분이라면, 좋은 의도로 받아들여 주세요.  
 
하지만, 아무리 좋은 의도로 말씀해주셨어도 결정은 스스로 하세요. 전도사님의  말 한마디로 질문자님의 인생을 좌우할 수는 없어요. 결정은 스스로 내리셔야 해요. 절대로 전도사님에게 결정권을 넘기지 마세요. 선택도 질문자님이, 책임도 질문자님이 지세요. 연애의 행복을 나눌 수 없고, 이별의 슬픔을 대신 느껴줄 사람도 없어요. 
 
질문자님이 “확신”이라고 표현한 부분을 조금 더 고민해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하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확신을 주셨나요. 확신 받았던 방식이 말씀에 근거한 것인가요? 아무리 신비로운 방식으로 확신을 받았아도 연애는 힘들어요. 확신을 과신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나친 확신은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어요. 
 
주변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차분하게 고민해보세요. 그 형제는 어떤 사람인가요. 그 형제가 정말 예수님을 사랑하나요. 잘 모르겠나요. 그렇다면, 그 형제가 정말로 질문자님을 사랑하나요. 그건 분명한가요. 
 
연애를 시작해야겠다는 확신보다, 그 형제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확신이 더 중요해요. 처음부터 상대방에 관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지요. 그러니, 확신은 뒤로 미루세요. 천천히 나중에 확신을 가지셔도 됩니다. 이왕 연애를 시작하실 거면, 조금은 불안한 듯이 망설이며 시작하세요. 서서히 알아간다고 생각하는 게 서로에게 유익합니다.  
 
장거리 여행 갈 때, 연료를 가득 채우고 출발하잖아요. 처음에는 든든하지요. 가는 길이 설렙니다. 하지만, 연료는 계속 줄어들어요. 중간에  난감한 일을 겪지 않으려면 중간중간 멈춰서 연료를 채워야겠지요. 연애도 마찬가지예요. 시작보다 중요한 건 과정이에요. 
 
신앙의 완전함은 없다는 말, 서로 맞춰가며 성장해야 한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전도사님, 공동체 사람들 모두가 그 말에 동의할 거예요. 하지만, 서로 맞춰가며 성장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요.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없지만, 자기 자신만큼은 기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힘들어도 관계를 지속할 수 있어요. 공동체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는 건 어려워요. 하지만, 질문자님에게 소중한 몇몇 사람의 이야기는 들어보세요. 소중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들어볼만 하거든요.

혼자 좋아하고 혼자 정리합니다

짝사랑이 전문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저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혼자 좋아하고 혼자 정리합니다. 용기 내어 마음을 표현한 적도 있지만, 결과는 언제나 거절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있다고 애써 위로하지만, 또다시 거절당할까 두렵습니다. 
 
내가 직접 당신을 만난 적은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이성에게 계속 거절당하는 이유는 외모나 매력 때문이 아닐 겁니다. 이성에 대해 서툰 게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릅니다. 호감이 사랑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과 함께 충분한 지식 역시 필요합니다. 
 
남자가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가장 많은 듣는 말이 있습니다.“나는 널 남자로 생각해 본 적 없어. 우린 그냥 친구야.”남자 입장에서는 당황스럽습니다. 하루 종일 연락을 주고받고 데이트도 해서 서로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갑작스러운 거절에 상처받습니다. “나를 가지고 놀았다, 꼬리를 쳤다.”혼잣말을 하면서, 여자를 비난합니다. 
 
여자를 오해하는 겁니다. 상대방의 감정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사람은 드뭅니다. 여자 역시 남자에게 호감을 느꼈을 겁니다. 다만, 서로를 알아갈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던 겁니다. 조심스럽게 서로를 알아가고 있는데, 갑자기 계약서에 도장이라도 찍으라는 듯한 말과 행동을 하니, 뒤로 물러선 겁니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니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공감하는 사람 적지 않을 겁니다. 
 
좋아하는 감정을 표현하고 거절당하면, 그나마 낫습니다. 어찌 되었든 상대방의 감정을 확인했으니까요. 하지만, 좋아하는 감정을 표현 한 번 못해보고 혼자 정리한다면, 너무 안타깝습니다. 이성에 대해 배우고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미국 사람과 친해지려면 일단 영어를 배워야 합니다. 영어를 배워야 인사도 하고, 대화도 하고, 같이 밥도 먹을 수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일상 대화는 한국말로 같지만, 감정의 언어는 서로 다릅니다. 미묘한 감정을 다룰 때는 국어와 영어처럼 극단적으로 서로 다른 언어를 쓰기도 합니다. 배워야 합니다. 저절로 깨우쳐지는 게 아닙니다. 한 번 배운 영어 평생 써먹듯이, 이성의 언어도 한 번 배우면 평생 써먹습니다. 기회를 찾아서 부지런히 배우세요. 연애 고수가 되자는 말이 아닙니다. 좋은 배우자가 되자는 말입니다. 
   
이성에게 거절당하는 두려움 이외에 다른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면, 자신을 깊이 살피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이성에게 거절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마도 삶의 다른 영역에서도 두려움을 느낄 것입니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에는 자신만의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안전한 곳에서 안전한 사람과 함께 숨겨진 이야기를 풀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을 돌보면서 힘든 시간 이겨 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내 몸이 더러워졌어요

남자친구와 관계를 맺었어요. 내 몸이 더러워진 것 같아요. 남자친구는 계속 관계를 요구해요. 이전 남자도 그랬고, 지금 남자도 그래요. 관계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 이해해주는 척하지만 실망한 얼굴이 보여요.
 
마음이 아픕니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살고 계실 거예요. 가벼운 말로 위로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내 진심을 알아줄 것을 알기에 용기 내서 답변하려 합니다. 
 
자매님의 몸은 더러워지지 않았습니다. 소중하고 고귀한 존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어요. 성관계를 거부하고 싶은 마음은 자신 안에 있는 고귀함에서 시작되는 겁니다. 고귀함은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죄책감은 그 자체로 부정적인 감정이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죄책감이 고귀함을 회복할 기회입니다. 죄책감은 현재 상황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식하게 만듭니다. 고귀한 자신을 되찾게 돕고 있어요. 회복을 전제로 한 죄책감은 축복입니다. 통증은 고통스럽지만, 통증을 느껴야 아픈 부위를 찾고 치료할 수 있습니다.   
 
원치 않는 성관계를 지속하고 있다는 건 자매님 안에 돌봐야 할 상처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저 추론해볼 뿐이지만, 거절과 애착에 관한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을지 모릅니다. 이대로 관계를 유지하면 위험합니다. 남자친구가 떠나는 날, 모든 게 무너질 겁니다. 
 
지금 남자친구를 사랑한다면, 그리고 사랑받고 있다고 믿는다면, 솔직하게 말하세요. ‘나는 관계를 맺고 싶지 않다. 관계를 맺고 나면 죄책감으로 고통받는다. 내 몸이 더러워진 것 같다.’남자친구가 그러지 말라고 설득하려 들면, 지금 잘못된 사람을 만나고 계신 겁니다. 관계를 못해 떠날 사람이라면, 떠나보내세요. 
 
자매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남자라면, 사과할 거예요. 용서를 구할 겁니다. 자매님을 지켜주려 애를 쓸 겁니다. 물론, 서로에게 힘든 시간이겠지요.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참고 견디는 법을 배워야 성숙해질 수 있습니다. 남을 사람이라면, 남을 겁니다. 그 남자는 자매님의 진심을 알아주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스스로를 소중하게 생각해주세요. 그래야 남자친구도 자매님을 소중하게 대합니다. ‘사랑하니까 괜찮다.’는 말은 속임수입니다. 사랑하니까 안되는 거예요. 사랑하니까 지켜줘야 하는 겁니다. 
 
아픈 마음 주님이 치유해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내 알량한 몇 마디 말로 자매님이 위로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언제나 그랬듯 주님의 능력을 바라고 기도하겠습니다. 자매님은 소중한 사람입니다. 소중한 자신을 잘 지켜주세요.

이상하게 연애하지 마세요

저는 연애로 시간 낭비를하고 싶지 않아요. 가벼운 만남은 애초부터 생각하지 않고 있어요. 결혼을 전제로 진지한 만남을 갖다가 만나 적절한 시기에 결혼할 생각이에요. 이게 맞다 싶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마음이 불안한데, 이상적인 연애가 무엇인지 말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나는 이상적인 연애는 없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이상한 연애를 하지 않는 게 중요해요. 이상하게 연애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아요. 말장난 같지만, 실제로 그렇습니다.
 
상처가 연애에 반영되면, 두 가지 반응이 일어납니다. 외면하거나 대안을 찾습니다. 무슨 말이야, 싶을 거예요.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보겠습니다.
 
외면한다는 것은 자신 안에 상처를 인정하지 않는 거예요. 고통스러우니까 들여다보지 않는 겁니다. 예를 들어 볼게요. 어떤 여성이 있습니다. 이전에 사귀던 남자친구가 바람을 피웠어요. 의심하던 중에 남자친구 몰래 스마트폰을 뒤졌는데, 역시나 다른 여자와 함께 찍은 사진이 있었어요. 바로 헤어집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에요. 새로운 남자친구를 만나도 불안합니다.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관계를 시작했지만, 의심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남자친구가 전화를 조금만 늦게 받아도 불안해서 못 견딥니다. 간신히 전화를 받으면, 폭언을 쏟아부어요. 결혼해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아요. 상처를 외면하면, 결혼해서도 남편을 의심하기 쉬워요. 평생 불안한 채로 살지도 몰라요.
 
대안을 찾는다는 것은 상처를 직면하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상처를 만회하려 하는 거예요. 희생적인 어머니 품에서 자랐던 딸은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잡으려고 합니다. 다루기 쉬운 남자친구를 만나고 싶을지 몰라요. 하지만, 그런 남자는 실제로 없지요. 남자친구가 소리라도 지르면 삶이 무너집니다. 엄마처럼 살게 될까 두려워집니다. 다른 남자를 만나도 상황은 마찬가지예요. 상처를 직면하지 않으면, 같은 패턴은 반복됩니다.
 
이상적인 연애를 꿈꾸기 전에 먼저, 자신이 이상하게 연애하고 있지는 않은지 고민해보면 좋겠어요. 상처를 외면하거나 대안을 찾고 있다면 이상하게 연애하고 있는 겁니다. 일단, 멈춤 버튼을 누르시고 자신을 들여다보세요. 나 왜 이럴까, 무엇을 원하는 걸까. 깊이 고민해보세요. 제아무리 결혼을 약속한 사이라도 자신 안의 결핍을 남이 채워줄 수는 없어요. 자신은 자신이 돌봐야 합니다.

남자가 무서워 피해요

고등학생 때 선생님께 성추행을 당했어요. 그 이후로 그 나이대의 남성을 만나면 무서워서 피하고 배척해요. 그 분들이 아무 잘못이 없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사랑의 마음으로 감싸지 못해요. 결국, 잘못을 저에게 돌리게 돼요. 어떻게 하면 좋지요. 저도 편하게 살고 싶어요. 
 
자매님은 아무 잘못 없습니다. 자신을 탓하지 말아주세요. 선생님께 성추행을 당하신 일도, 지금 그 나이 때의 남성을 피하는 것도, 모두 자매님 잘못이 아닙니다. 
 
상처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가해자가 되시면 안됩니다. 먼저, 피해자가 되어주셔야 해요. 과거에 머물면서 고통스럽게 살라는 말이 아니에요. 다른 누군가를 탓하며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과거를 덮어두지 말고, 제대로 살펴보고 수용해달라는 부탁입니다.  
 
과거에 겪은 끔찍한 일은 가능하다면, 지금이라도 처벌해야 합니다.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른 사람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죄값을 치러야 합니다. 한 여자의 인생을 파괴한 사람을 그대로 내버려 두면 안 됩니다. 
 
다만, 선택권은 자매님에게 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자매님이 옳습니다. 나는 그 선택을 존중합니다. 자매님이 겪은 일은 오직 자매님만이 결정할 권리가 있어요. 다른 사람은 조언만 해줄 뿐, 이래라저래라 할 권한이 없습니다.   
 
나는 상담하는 사람이니, 자매님의 상처에 집중하겠습니다. 질문하신 내용에 계속 답하겠습니다.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다면, 자매님도 처벌하지 말아주세요. 가해자는 자유롭게 풀어주고, 피해자인 자신을 결박하고 짓누르면 안됩니다. 
 
과거를 수용한다는 말은, 그때 그일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겁니다. 사건에 대한 기억은 시간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기억 자체를 지우려는 시도는 언제나 실패할 거예요. 지우려할수록 고통 받습니다. 
 
기억을 바꿀 수 없다면, 기억하는 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기억이 데려오는 감정에 집중해야 합니다. 기억은 혼자찾아오지 않습니다. 감정을 데리고 옵니다. 자매님의 기억은 왼편에는 공포, 오른편에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데려옵니다. 무서운 감정들의 손을 잡고 싱글벙글 자매님을 찾아옵니다. 자매님을 파괴할 수 있으니까요. 
 
기억이 데려오는 감정을 쳐다보지 마세요. 공포나 죄책감은 쳐다보지 말고, 기억을 마주보고 당당하게 말하세요. “공포나 죄책감 없이 혼자는 못오지? 혼자 오면, 너는 아무 것도 아닌 거 너도 알지? 너 혼자 와봐. 그럼, 넌 아무 것도 못할 걸.”  
 
기억이 자존심이 상해서 날뛰기 시작할 거예요. 그렇지만, 절대로 혼자 오지 않아요. 기억은 알거든요. 혼자 오면 자매님을 파괴할 수 없어요. 공포나 죄책감을 잡은 손을 놔버리면, 기억은 고개도 못들고 자매님 옆을 지나쳐 버릴 거예요. 영화 속 악당이 아니라, 지나가는 행인으로 전락해버린 거죠. 
 
설명하려니 간단하게 말했지만, 실제로는 말처럼 쉽지는 않을 거예요. 내 기억 역시 혼자 오지 않으니까요. 어찌되었건, 나는 여전히 기억이 데려오는 감정에게 말을 걸지 않아요. 기억만 쳐다보고 말합니다. “혼자 오라니까. 자존심도 없어?” 
 
비유적으로 말하다보니, 자매님의 고통스런 문제를 가볍게 말한 것처럼 보일까 걱정됩니다. 내 진심은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나는 자매님이 기억이 데려오는 감정으로 더 이상 고통받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과거는 지난 일이니까 잊고 과거에서 벗어나 남자분들을 편하게 대하라는 말은 하지 않겠어요. 다만, 소심한 부탁을 하겠습니다. 상처의 책임을 자매님에게 떠넘기면서 자책하지 말아주세요.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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