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px 김유비닷컴

Tag: 거절감

교회를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고 있어요

교회를 싫어하고 핍박하는 남자를 만나고 있어요. 하지만, 성경에는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지 말라는 구절이 있잖아요.  마음이 편치 않아요. 교회를 싫어하는 건 불편하지만 나머지는 괜찮은 사람이에요. 헤어지고 싶지 않아요. 이 사람과 결혼해도 될까요? 
 
좋은 질문이에요. 하지만, 그건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내가 뻔한 말을 하는 이유는 간단해요. 질문자님께서 내게 동의를 구했기 때문이에요. 정확히 말하면, 이 질문은 궁금해서 던진 질문이 아니라 찬반을 묻는 여론 조사에 가까운 질문이에요. 왜 동의를 구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을까요? 그만큼 불안하고 두려운 것이지요.  
 
왜 두려운지 함께 고민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교회마다 분위기가 조금씩 다르겠지만, 전체적으로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에 관대하지 않아요. 하지만,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면 절대 안 된다’라는 구절은 성경에 없지요.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해서 아름다운 믿음의 가정을 이룬 사례도 있고요. 그러니까, 교회 분위기와 상관없이 본인이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한다고 결정하면, 아무도 뭐라 할 수 없어요. 
 
진짜 문제는 자신의 내면 안에 있어요. 교회 분위기에 매몰되어 깊이 고민하지 못하는 거죠. 교회 공동체 모든 사람이 손뼉을 치면서 만장일치로 결혼을 찬성한다면, 그 남자와 마음 편히 결혼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세요.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 걸까요? 
 
나는 잠시 신앙의 주제를 내려놓고 대화하고 싶어요. 신앙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보고 싶기 때문이에요. 잠시만 참고 들어주세요. 
 
종교가 없는 남녀가 연애를 해요. 여자가 좋아하는 작가가 있어요. 그래서, 그 작가의 책을 사서 모아요. 작가의 북콘서트를 가기도 해요. 남자친구가 여자친구의 행동을 보면서 그 작가 욕을 해요. 작가의 사생활을 들먹여요. 대놓고 싫다고 말해요. 내 입장에서 보면, 그 남자는 여자친구를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그건 바보 같은 짓이거든요. 
 
그 남자친구는 말하겠지요. “나는 내 여자를 사랑해. 하지만, 내 여자의 가치관이 마음에 안 들어. 가치관을 통째로 뜯어고칠 필요는 없어. 그 작가만 안 좋아하면 돼. 그거 하나 빼고 우리 잘 맞아. 결혼하고 싶어? 그럼 그 작가 좋아하는 마음 버려. 책도 버리고. 그럼, 아무런 문제 없이 우리 결혼할 수 있어.”  
 
나는 묻고 싶어요. “지금 뭐 하시는 건가요? 그게 사랑이라고요? 사랑의 의미를 아시나요?” 사람마다 사랑의 정의가 다르겠지만, 적어도 이 남자의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는 건 동의할 거예요. 
 
당신이 왜 두려운지 이제 아시겠죠? 신앙이 문제가 아니라 사랑이 문제에요. 당신은 그 남자를 만나서 결혼하면 신앙을 잃을까 걱정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더 근본적인 고민을 하고 있는 거예요. 
 
‘이 남자가 정말로 나를 사랑하는 걸까?’ 
 
당신이 느끼는 두려운 감정은 정당한 거예요. 불안하고 두려울 수밖에 없지요. 그 남자와 당장 헤어지라는 말이 아니에요. 그건 당신 선택이에요. 아무도 대신 선택해줄 수 없어요.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고민해보세요. 그 남자와 결혼한다면, 사랑받으며 살 수 있을지 말이에요. 

거절하기 힘들어요

교회에서 리더로 섬기고 있어요. 고민을 들어줄 일이 많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회의가 들기 시작했어요. ‘나는 바쁜 시간을 쪼개서 어렵게 시간을 냈는데, 이 사람은 과연 그걸 알고 있는 걸까.’ 굳이 내가 필요할까. 그냥 말할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닐까 생각이 들면,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먼저 고맙다는 말을 드리고 싶어요.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습니다. 쉽지 않은 자리 포기하지 않고 잘 견뎌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매님의 질문은 저 역시 오랫동안 고민해온 문제에요. 정답은 없습니다. 하루하루 고민하면서 결정을 내려야 해요. 내 말이 정답은 아니지만, 조심스럽게 몇 자 적어보려고 합니다.
 
일단 자매님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을 아껴 쓰세요. 리더 역시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을 돌봐줄 수 없어요. 자신 안에서 기준을 세우세요. 기준은 복잡하지 않아야 합니다. 일주일 단위로 만날 사람과의 시간과 횟수를 제한하세요. 시간대 역시 고정적이면 좋습니다. 최대한 단순하게 만드세요. 그래야 지속 가능한 사역을 할 수 있습니다.
 
상황에 대한 기준 역시 중요합니다. 모든 사람을 만날 수는 없어요. 인생에서 고민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만나도 만나도 끝이 없을 거예요. 최소한의 기준이 필요해요. 마음이 어렵겠지만, 꼭 그렇게 해야 합니다. 지속 가능한 사역을 위해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해요.   
 
고민을 가진 사람이 도움을 요청하는 방식을 세 가지 비유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니 참고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껌종이에 고민을 뱉어 던져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실은 고민이 나누려고 온 게 아니라 감정을 배출하고 싶은 사람이에요. ‘나 지금 이런데, 내가 이런 일을 당하는 게 말이 돼?’
 
감정 뱉어서 버린 껌종이 펼쳐보지 마세요. 기분 상합니다. 받아서 쓰레기통에 잘 버리세요. 상대방이 착각한 겁니다. 자매님이 쓰레기통인 줄 안 거예요. 직접 버리라고 말하고 돌아보지 마세요.
 
그다음은, 종이 한 장에 고민을 대충 쓴 다음 수 백장 복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마다 나눠줍니다. 누구 하나 걸리라는 식으로 마구 뿌리는 겁니다. 착한 사람이 멈춰 섭니다.
 
당연히 대화가 힘듭니다. 그 사람은 자매님과 대화하는 중에도 종이 뭉치를 손에 쥐고 있습니다. 자매님과의 대화에 온전히 집중하지 않아요. 설문조사하듯, 질문합니다. ‘이 사람은 이렇게 말하네. 다른 사람은 무슨 말을 해줄까’ 궁금해합니다. 자매님이 사라지고 나면, 그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을 찾아다닐 겁니다.
 
마지막으로, 손편지를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종이는 허름해도 정성스럽게 한 글자 한 글자를 써 내려간 편지를 보냅니다. 손편지를 받아보면, 얼룩져 있습니다. 눈물로 써 내려간 편지라 그렇습니다. 여기저기 눈물이 떨어져 잉크가 번진 겁니다. 종이는 귀퉁이가 닳아서 구깃구깃합니다. 다 쓰고 나서 보낼까 말까 손에 쥐고 긴장한 까닭입니다.
 
손편지를 받았다면, 예수님이 되어 주세요. 태평양을 건너가서라도 만나야 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찾아가 돌봐주세요. 그 사람이 흘린 눈물만큼 함께 울어주세요. 오늘이 세상 마지막 날이라고 해도, 그 사람 하나 살리고 떠난다 생각해주세요. 거절하면 안 됩니다.    
 
상처 입은 사람이 소중하듯이, 자매님 역시 소중합니다. 스스로를 지키고 보호할 수 없다면 언젠가는 촛불처럼 닳아 없어질 거예요. 인생은 불꽃놀이가 아닙니다. 잠시 피웠다 꺼지는 불이 되지 마세요. 연료를 아껴 써야 추운 겨울 잘 보낼 수 있습니다. 차디찬 세상을 따뜻하게 녹여주는 난로가 되어주세요.  

교회 일을 내려놓고 잠시 쉬려 해요

아빠가 오랜 투병생활을 하시다가 돌아가셨어요. 아버지의 죽음이 너무나 슬퍼요. 교회에서 맡았던 일을 내려놓고 잠시 쉬려는데 주변에서 그러지 말래요. 그럴수록 하나님을 더 붙잡으라고 해요. 슬픔의 영에 사로잡히면 일어서기 어렵다고 참고 견디라고요. 
 
슬퍼하세요.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슬프지 않겠어요. 일 년이든, 십 년이든, 평생이든 슬프면 우세요. 아버지가 일생동안 그립다면 감사한 겁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는 감정에 죄책감을 느낀다면 잘못된 겁니다. 
 
당신에게 ‘슬픔의 영’에 사로잡히지 말라고 말한 사람의 의도를 모르겠네요. 이 말은 문맥상 부정적인 뜻이겠지요. 성경에는 그런 말이 없습니다. 나는 그 말을 전해 들을 당시의 상황과 분위기는 모르지만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성경에 없는 말을 하면 위험합니다. 
 
쉬고 싶으면 쉬세요. 교회 일을 감당하는 것 자체가 본질이 아 닙니다.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결정하세요. 교회 봉사할 사람이 항상 부족해도 교회 문은 안 닫습니다. 하나님이 잘 이끌어 가십니다. 잠시 쉬다가 기운이 나면 다시 섬겨주세요.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세요. 그 눈물 마를 때까지 주님이 위로해주실 거예요. 오늘부터는 마음 편히 울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과 돌아가신 아버지 사이에는 예수님이 계세요. 천국에서 그분이 아버지를 돌봐주고 계십니다. 슬플 때마다 예수님 품에 안겨 있는 아버지를 생각하세요. 주님은 친절하게도 이 땅에서 슬퍼하는 당신에게도 찾아오세요. 눈물을 닦아주시며 위로해 주시지요. 
 
예수님이 계시기에 머지않아 슬픔은 소망이 될 것입니다. 슬플 때마다 그분 품에 꼭 안겨주세요. 다시 힘을 얻으면 주님의 일을 잘 감당하실 수 있을 겁니다.

엄마가 전화할게

민수는 자정이 넘어 집에 들어왔다. 수능이 10개월 앞으로 다가온 시점이었다. 학원에서, 독서실로 갔다가 집으로 오는 것이 하루 일정이었다. 
 
민수가 집에 도착했을 때, 집은 난장판이었다. 아빠와 엄마가 부부 싸움을 한 것이다. 민수는 깊은 한숨을 내뱉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민수는 바로 잠에 들 수가 없었다. 학원에서 내준 과제가 적지 않았다. 졸린 눈을 비벼가며, 책상 앞에 앉았다. 
 
밖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지만, 익숙한 소리였다. 책에 집중하려고, 이어폰으로 귀를 막았다. 
 
그때였다. 이어폰 너머로 와장창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민수는 깜짝 놀라 밖으로 뛰어나갔다. 거실에서 부모님을 마주한 민수는 짜증이 극에 달했다. 
 
장식장이 쓰려지면서, 거실 바닥에 유리 파편을 쏟아냈다. 엄마와 아빠는 거칠게 몸싸움을 했다. 엄마는 아빠의 손목을 잡고, 사력을 다해 버텼다. 아빠는 엄마의 손목을 뿌리치려고 안간힘을 썼다. 
 
아빠가 엄마의 손을 떨쳐내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엄마의 뺨을 내리쳤다. 
 
찰싹.
 
아빠의 솥뚜껑 같은 손에 엄마는 힘없이 쓰려졌다. 민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아빠에게 눈을 부릅뜨고, 소리를 질렀다. 
 
“제발 그만 좀 하라고!” 
 
민수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아빠가 깜짝 놀랐다. 아빠는 민수에게 가까이 다가와서 말했다. 
 
“뭐라고? 다시 한 번 말해 봐.” 
 
“그만 좀 하라고!” 
 
민수가 아빠에게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아빠가 민수의 멱살을 잡았다. 
 
“이 자식이, 어디서 아빠한테 그딴 식으로 말해?” 
 
민수는 바닥에 쓰려져 울고 있는 엄마와 눈이 마추쳤다. 
 
민수는 이성을 잃었다. 
 
아빠의 손을 뿌리치고, 아빠의 멱살을 잡았다. 
 
“이제 그만하라고 했지! 당신이 아빠야? 왜 술만 처먹으면,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민수의 아빠도 이성을 잃었다. 민수를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했다. 민수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아빠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죽자 살자 덤벼들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고 유리 파편 위로 넘어졌다. 민수가 아빠 위로 올라앉아서, 아빠를 사정없이 팼다. 
 
아빠는 민수를 떨쳐내고 일어서려고 온몸을 비틀었다. 유리 파편이 등에 비벼졌다. 
 
민수의 엄마는 오열하면서, 민수를 뜯어말렸다. 엄마의 울음소리를 들은 민수는 그제서야 이성을 되찾았다. 
 
미끄럼을 타듯이 아빠 몸에서 떨어져 나간, 민수는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질렀다. 
 
민수의 아빠는 터진 입술에서 새어 나온 피를 빨아당겼다가, 침으로 뱉어냈다. 몸을 일으켜, 벽에 기대고는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아빠의 등 뒤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엄마가 흐느껴 울면서, 아빠의 등에 박힌 유리 파편을 빼내고, 수건으로 흐르는 피를 막았다. 
 
민수는 견딜 수 없었다. 아빠를 때린 자기 손을 잘라버리고 싶었다. 주먹을 쥐고 거실 벽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시멘트로 차갑게 굳어진 벽은 민수의 손을 부러뜨렸다.  
 
퍽.
 
민수의 손가락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엄마의 귓가를 울렸다. 엄마는 민수를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민수도 엄마의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엄마를 끌어안은 민수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빠는 비틀비틀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갔다. 
 
#  
 
“며칠 지나고, 아빠가 이야기 좀 하자고 했어요. 아빠가 맨 정신에 이야기하기 힘들다고, 술 한 잔 하자고 하시더라고요. 술은 원래 아빠한테 배우는 거라고 하셨어요.” 
 
#
 
민수의 아빠는 말없이 소주 한 잔을 따라 민수에게 건넸다. 민수는 잔을 받아들고 머뭇거렸다. 
 
아빠가 말했다. 
 
“마셔. 아빠가 주는 술은 일단 받는 거야.” 
 
민수는 소주를 입속에 털어 넣었다. 학교 사물함에 있는 가그린 맛이었다. 가그린을 삼켜버린 듯 찝찝한 기분이었다.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데, 아빠가 한 잔을 더 따르며 말했다. 
 
“민수야. 아빠가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아빠는 반쯤은 울먹거리는 목소리였다. 
 
소주 병을 입에 물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꺼억하고 트림을 내뱉으면서, 민수에게 말했다. 
 
“있잖아. 아빠하고 엄마 사이에는 네가 모르는 일이 있어.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야. 어른들의 문제니까, 네가 끼어들면 안 돼.” 
 
민수는 하고 싶은 말을 참았다. 민수가 들이킨 알코올이 민수의 목구멍을 틀어막았다. 뜨거운 숨만 콧구멍 밖으로 새어 나올 뿐이었다. 
 
아빠의 연설은 세 시간이나 지속되었다. 아빠의 말이 장황하게 무한 반복되었지만, 민수는 아빠의 말을 경청했다. 
 
아빠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다혈질의 아빠는 풀이 죽어지냈다. 민수가 아빠에게 달려든 후로, 아빠는 집에서 존재감 없이 지냈다. 무기력한 아빠의 모습을 볼 때마다, 민수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아빠의 처량한 모습이 날개가 부러진 독수리 같았다.    
 
#
 
“아빠와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한 달이 넘도록 민수는 아빠와 말을 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서로 말다툼을 하다가도, 민수가 들어오면 서로 말을 멈췄다. 아빠는 방으로 들어가고, 엄마는 밤늦게 들어온 민수를 챙겼다. 
 
“늦게 피곤하지?” 
 
엄마가 물었다. 
 
“엄마, 나 어떻게 하지?” 
 
민수가 엄마에게 되물었다. 
 
“뭘 어떻게 해?” 
 
“답답해서 미쳐버릴 것 같아.” 
 
엄마는 할 말을 잃었다. 말없이 민수를 바라볼 뿐이었다. 
 
“어떻게 평생을 그렇게 살아? 나 때문에 참고 사는 거면, 그럴 필요 없어. 나는 괜찮으니까, 엄마도 그냥 엄마 인생 살아.” 
 
엄마는 민수의 침대에 힘없이 걸 터 앉았다.  
 
“일단, 수능부터 끝내. 그다음에 이야기하자.”   
 
민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눈물이 터지기 직전이었다. 
 
“알겠어, 엄마. 이제 나가.” 
 
엄마가 방문을 닫고 나가자, 민수는 책상에 엎드려 울었다. 지우개를 삼킨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PC방으로 와.” 민수의 친구 K가 말했다. 
 
“알겠어, 기다려.” 민수는 터벅터벅 걸어, 학원 근처 PC방으로 들어갔다. 
 
PC방을 한 바퀴 돌아봐도 K와 친구들이 없었다. 민수는 K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야?” 
 
민수가 물었다. 
 
“아, 우리 밖으로 나왔어. 분식점으로 와.” 
 
K가 말했다. 
 
민수는 슬슬 짜증이 밀려왔다. 때마침 지나가던 택시를 잡아타고, 분식점 앞에 내렸다. 분식점에서도 친구들은 보이지 않았다. 
 
민수는 다시 K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야?” 
 
“우리 다시 PC방으로 왔어. 빨리 이쪽으로 와. 우리 지금 세 명이라, 한 명 더 필요해. 최대한 빨리 와라.” 
 
민수는 화가 치밀었다. 
 
PC방에서 마주한 친구들은 게임에 빠져있느라 민수가 온 것도 몰랐다. 민수가 K의 옆자리에 앉았다. 
 
K가 말했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조금만 기다려. 이 판 끝나면, 2 대 2로 붙자.” 
 
민수는 K의 옆에 앉아, 인터넷 브라우저를 켜면서 짧게 말했다. 
 
“알겠어.” 
 

 
“화나지 않았을까? 보통 고등학생이면, 욕하고 소리 지르고 난리 한 번 났을 텐데….” 
 
내가 민수에게 물었다. 
 
“화는 났지만, 표현할 수 없었어요.” 
 
민수가 말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어?” 
 
“두려웠던 것 같아요.” 
 
“무엇이?” 
 
“친구들이 나를 따돌릴까 봐요. 예전에도 그런 적이 있어요.” 
 
“그 친구들이?”
 
“아니요. 중학생 때 친구들이요. 제가 화를 한 번 냈는데, 친구들이 나를 멀리했어요. 중학교 2학년 때 있었던 일인데, 졸업할 때까지 혼자 다니고, 혼자 밥 먹었어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어볼 수 있을까?” 
 
#
 
“빌려 간 만화책 언제 갖다 줄 거야?” 
 
민수가 L에게 물었다. 
 
“아, 깜빡했다. 내일 갖다 줄게.” L이 대답했다.  
 
“자꾸 왜 그래?” 
 
“뭘? 내일 준다고 했잖아.”
 
“그 소리 벌써 세 번째야.”
 
“뭐래? 갖다 준다고 이 새끼야.” 
 
L은 민수의 멱살을 잡았다. 
 
민수와 L은 서로가 휘두른 주먹에 얼굴이 상했다. 민수가 L을 힘으로 눌러 넘어뜨렸다. L의 위에 올라타, 주먹으로 L의 얼굴을 때리기 직전이었다. 
 
그 순간, 눈앞이 번쩍했다.
 
L의 절친, C가 주먹으로 민수의 관자놀이를 가격한 것이다. 민수는 의식을 잃고 쓰려졌다. L과 그의 친구들이 민수를 사정없이 짓밟았다. 
 
만화책을 돌려달라는 말 한마디, 그 대가는 혹독했다. 친구들은 민수를 괴롭혔다. 같이 어울려주는 친구 하나 없이 중학교를 쓸쓸히 졸업했다. 
 

 
“그래서, 말을 못 했어요.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긴장돼요. 내가 뭔가 작은 실수라도 하면, 친구들이 나를 어떻게 하지 않을까 두렵기도 하고….” 
 
나는 민수에게 중학교 시절 그 친구들의 이름을 묻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 달려가, 그 녀석들을 박살 내주고 싶었다. 
 
나는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고, 민수에게 물었다. 
 
“솔직하게 한 번 말해주지 않을래? 다시 PC방에 찾아갔을 때,  미안한 내색 하나 없던, K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뭐였을까?” 
 
민수는 생각에 잠겼다. 
 
“글쎄,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요? 막상, 말을 하려니까 생각이 잘 안 나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떡였다. 
 
민수가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다, 두 손을 겹쳐서 깍지를 끼더니 생각이 났다는 듯 말했다.
 
“어차피 다시 PC방으로 올 거면, 분식집으로 왜 부른 거야? 무슨 똥개 훈련시키는 것도 아니고.” 
 
“지금 감정이 어때?” 
 
“말하고 나니까 그냥 시원한데….”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줄래?” 
 
“솔직히 저는 제가 친구들에게 말을 잘 못하고, 제 표현을 못 하는 게, 집 안에서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해요. 저는 외동이고, 부모님과도 대화를 별로 안 하니까요. 제 감정, 제 생각을 표현할 줄 모르는 것 같아요. 혼자만 계속 답답하고….” 
 

 
민수가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어느 날, 도둑이 든 것처럼 집 안이 어수선했다. 
 
당황한 민수는 큰 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집에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다급하게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당황해서 닫지 못한 현관문 앞에 아빠가 나타났다.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였다. 비닐봉지에 소주와 맥주, 오징어와 땅콩 같은 것들이 담겨있었다. 
 
“엄마는요?” 
 
아빠는 대답하지 않았다. 소주 병을 손에 쥔 채, 벌컥벌컥 들이켜고, 손등으로 입술을 닦았다. 여전히, 현관 앞에 기댄 채였다. 
 
“엄마는 어디 갔냐고요?” 
 
아빠가 소주 병을 현관 대리석 바닥에 내리꽂으며 소리를 질렀다. 소주 병이 깨지면서 유리 파편이 사방에 흩어졌다.  
 
“몰라, 이 새끼야. 내가 어떻게 알아?” 
 
민수의 예상이 맞았다. 엄마는 급하게 짐을 챙겨 집을 나간 것이다. 
 
민수가 수능을 마칠 때까지 곁에 있어주고 싶었던 엄마의 바람은 물거품이 되었다. 
 
민수는 아빠를 밀치고, 밖으로 걸어나갔다. 계단을 뛰어내려가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의 전화기는 꺼져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민수는 계단을 헛디뎌 우당탕 넘어지고 말았다. 민수에게는 일어날 기운이 남아있지 않았다. 엎드린 채로 엉엉 울었다. 
 
엄마와 함께 살고 싶었던 것이 민수의 바람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엄마와 따로 나와 살고 싶었다. 민수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민수는 그날 밤, 엄마를 잃고 자신을 잃었다. 
 

 
“민수야, 엄마야.” 
 
일주일이 지나고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 어디야?” 
 
“지금 독서실 앞이니까, 얼른 내려와.” 
 
민수는 번개처럼 계단을 뛰어내려와 엄마 앞에 섰다. 
 
“엄마!”
 
민수는 어린아이처럼 엄마를 끌어안았다. 엄마도 민수를 끌어앉고 소리 없이 울었다. 엄마를 끌어안은 채로 민수가 물었다. 
 
“엄마, 어떻게 된 거야? 왜 갑자기 집을 나갔어?” 
 
엄마는 민수에게서 몸을 떼어내고 조용한 곳에 앉아 대화를 나누자고 말했다. 두 사람은 독서실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았다.
 
엄마가 민수에게 그날 밤의 일을 말했다.  
 

 
민수의 아빠는 여느 때처럼,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왔다. 민수의 엄마는 빨래를 개고 있었다. 민수의 아빠는 다짜고짜 엄마에게 시비를 걸었다. 
 
짜증이 난 엄마는 아빠의 말을 무시했다. 엄마가 아빠를 무시하자, 아빠는 이성을 잃었다. 엄마가 개놓은 빨래를 발로 차서 헝클어뜨렸다. 
 
엄마는 아빠를 쳐다보지도 않고, 빨래를 주섬주섬 집어 들었다. 다시 자리에 앉아, 침착하게 빨래를 갰다. 
 
아빠는 엄마를 사정없이 때렸고, 엄마는 아빠에게 달려들었다. 감정이 격해진 아빠는, 주방에서 칼을 꺼냈다. 
 
엄마에게 칼을 휘두르며, 같이 죽자고 말했다. 엄마는 어디 한 번 죽여보라며, 목에 핏대를 세우고 아빠를 자극했다. 
 
아빠가 칼로 엄마를 내리쳤다. 엄마가 팔로 얼굴을 가렸다. 칼은 엄마의 팔 등에 부딪히고 멈췄다.
 
그 순간 아빠는 하얗게 질렸다.
 
아빠는 엄마를 위협할 생각이었다. 실제로 칼이 엄마의 몸에 닿을 줄을 몰랐던 것이다. 
 
칼날 부위가 아닌 칼등이 엄마의 팔에 내려앉았지만, 이미 늦었다. 엄마 눈에 아빠는 짐승이었다. 
 
엄마는 아빠를 밀쳐내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아빠가 뭐 하는 짓이냐고 힘으로 뜯어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이번에 칼을 집어 든 사람은 엄마였다. 칼을 휘두르며, 아빠에게 소리쳤다. 
 
“나 한 번만 더 건드리면, 그때는 죽여버릴 거야.” 
 
아빠는 물러섰다. 
 
엄마가 작별 인사도 없이 민수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엄마의 말이 끝나고, 민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집으로 뛰어가 아빠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중요한 사람은 엄마였다. 
 
민수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그럼 이제 집에 안 오는 거야?” 
 
“응, 그럴 것 같아.” 
 
“그럼, 지금은 어디서 지내?”
 
“나중에 알려줄게. 지금은 말 못 해.” 
 
“그럼, 어떻게 먹고살아? 돈은?” 
 
“그것도 천천히 생각해보려고….” 
 
민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뿐이었다. 
 
잠시의 침묵을 깨고, 엄마가 말했다. 
 
“민수야. 넌 엄마 이해하지? 엄마가 왜 이럴 수밖에 없는지….” 
 
엄마가 울먹거렸다. 
 
민수는 엄마의 손을 잡고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전에도 말했잖아. 나는 괜찮다고. 엄마는 엄마 인생 살아. 나도 조금만 시간 지나면 독립할 거야. 그때는 내가 다시 엄마 찾으러 갈게. 우리 같이 살자. 조금만 참아, 엄마.”
 
민수의 말이 끝나자 엄마는 흐느껴 울었다. 그리고, 조금은 단호한 말투로 민수에게 말했다. 
 
“민수야. 엄마는 걱정하지 마. 너도 네 인생 살아야 해. 엄마는 씩씩하게 잘 살 거야. 너 가고 싶은 대학에 가고, 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야 해. 엄마 때문에 희생하지 말고, 알겠지?” 
 
민수는 불안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민수에게 말했다. 
 
“민수야, 너무 늦었다. 우리 이제 일어나자. 아빠한테는 엄마 만났다는 말 하지 마, 알겠지?” 
 
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 언제 다시 만나?” 
 
“엄마가 다시 전화할게.” 
 

 
민수는 독서실에 올라가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아빠에게 달려가 따질 작정이었다. 모든 것이 아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민수 역시 맨 정신으로 대화할 수 없었다. 냉장고를 열어, 아빠가 사다 놓은 술을 사정없이 마셨다.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졌다. 머리가 어지러워서 똑바로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퇴근한 아빠가 집에 들어와서, 술에 취한 민수와 마주했다. 
 
아빠는 기가 막혔다. 
 
“너 지금 뭐 하는 짓이냐?”
 
“아빠 때문이야.” 
 
“뭐? 이게 미쳤나?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아빠 때문에 엄마가 나갔어.”
 
그 순간 뭔가 번쩍했다. 아빠가 민수의 뺨을 때린 것이다. 
 
“정신 차려, 이 새끼야. 어디서 아빠한테 술 주정이야!”
 
“아빠한테 배웠지. 내가 어디서 배워?” 
 
민수는 바닥에 넘어진 채로, 소금에 담근 미꾸라지처럼 온몸을 비틀었다. 머리를 쥐어뜯고, 발버둥을 치면서, 오열했다. 
 
아빠는 바닥에 누워 미쳐 날뛰는 민수에게 차가운 물 한 바가지를 쏟아부었다. 
 
“정신 차리고, 여기 앉아 봐.” 
 
민수는 어안이 벙벙했다. 몸을 일으켜 앉았는데, 머리카락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래서, 엄마 지금 어디서 지낸다고 말해주디?” 
 
민수는 고개를 저었다. 
 
“아빠가 예전에 말했지. 어른들 문제니까 끼어들지 말라고.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고 말한 거 기억나지?” 
 
민수가 고개를 끄떡였다. 
 
“3년 전부터, 엄마가 이상했어. 처음에는 내가 오해하나 싶었어. 엄마가 아니라고 잡아떼니까, 뭐 방법이 있어야지.” 
 
민수의 정신이 또렷해졌다. 아빠의 말을 토씨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듯, 상체를 바로 세웠다. 
 
“그러다, 큰맘 먹고 흥신소에 부탁을 했더니, 아니나 달라? 딱 걸렸지. 진명이 삼촌, 너도 알지? 그 새끼랑 네 엄마랑….”
 
민수는 고개를 가로 저였다. 그럴 리 없다고 말하려던 참이었다. 
 
“엄마가 왜 어디있는지 말 못하는 지 알아? 그 자식이랑 같이 살림 차린 거야. 네 눈에는 엄마가 천사로 보이지? 엄마가 뭐 집에 붙어있은 줄 알아? 나 회사 가고, 너 학교 가면 엄마도 집에 없었어. 아빠가 맨 정신으로 살 수 있었겠냐? 아빠 인생은 3년 전에 끝났어.” 
 
아빠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인생의 쓴맛을 담배 연기로 누그러뜨렸다. 
 
“내가 너한테 별말을 다한다. 너는 신경 쓰지 말고 너 할 일이나 잘해. 정신 똑바로 차리고, 대학이나 가라고. 
 
아빠가 뼈빠지게 번 돈 너한테 다 쓰는 거야. 꼭 성공해서, 보란 듯이 잘 살아. 아빠처럼 살지 말고, 알겠어?” 
 
민수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바닥에 떨어지는 것이 물방울인지 눈물방울인지, 민수조차 알 수 없었다. 
 

 
정식 상담에서 민수를 만난 것이 아니었다. 
 
청소년 수련회 강사로 초대를 받아 저녁 집회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을 때, 담당 전도사님이 조심스럽게 민수의 이야기를 꺼냈다. 
 
수련회 일정 중에, 잠시 시간을 내어 민수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느냐는 부탁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물놀이를 할 시간에, 민수와 조용히 앉아 두 시간 정도의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나, 두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민수의 이야기가 끝나고 남은 시간은 고작 10분이었다. 
 
산더미 같은 질문을 뒤로하고, 나는 억지로 대화를 마무리해야 했다. 
 
나는 아빠의 관계, 엄마와의 관계, 그리고 친구들과의 관계를 언급했다. 
 
교과서에서 나올 법한 진부한 말들이었다. 듣는 사람이 마음만 답답해지는 그런 말들이었다. 
 
고맙게도, 민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떡이며 경청했다. 
 
다음 집회 일정 때문에, 우리는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했지만, 못내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나는 민수의 등을 두드려주면서, 힘내라고 말했다. 
 
민수는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고, 출입구를 향했다. 나는 그 자리에 선 채로, 민수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민수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돌아서서 내게 말했다. 
 
“그런데, 목사님…. 저도 치유될 수 있을까요?” 
 
나는 블랙홀에 몸이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민수는 어쩌면 나 자신이었다.
 
내가 민수를 향해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갈라진 자아가 하나로 합쳐지는 것을 느꼈다. 
 
그대로 민수를 내보낼 수 없었다. 나는 민수에게 다가가 민수를 끌어안았다. 
 
민수는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그리고,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나도 목사님처럼, 치유돼서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좋은 아빠가 되고 싶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어요. 부모님처럼 살고 싶지 않아요. 제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나는 민수의 손을 꼭 붙잡고, 고개를 끄떡였다. 
 
내가 위로랍시고 한마디를 내뱉는다면, 민수의 어깨에 내려앉은 희망이 깃털처럼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민수가 나가고, 나는 의자에 힘없이 걸 터 앉았다. 
 
나는 인정해야 했다. 민수는 내게 모든 것을 말했지만, 나는 민수에게 진실을 말하지 못했다. 
 
정작 나 자신은 치유되지도 않았고, 좋은 아빠도 아니었으며, 행복한 가정을 이루지도 못했다. 
 
아버지와 단둘이 마주 앉으면 어색함이 흐르고, 어머니를 향한 연민으로 잠을 뒤척인다. 
 
아내에게는 여전히 서투른 남편이고, 자녀들에게는 욱하고 사과하는 일을 반복하는 일관성 없는 아빠다. 
 
오히려, 나는 민수에게 묻고 싶었다. 
 
‘민수야. 목사님도 치유될 수 있을까? 내가 자격 있는 사람일까? 언젠가 네가 아빠가 되어 나타난다면, 나도 그때 진실을 말할게.’  
 
무능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예수님을 찾았다. 집회 장소 어딘가에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앉아 있는 민수를 찾아가셔서, 따뜻하게 안아주시기를 바랐다.  
 
또다시 아이러니였다. 
 
정작 나는 방문을 열고 나갈 용기가 없었다. 작은 방 안에 조용히 머무르고 싶었다. 잠시라도, 감정을 추스르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없었다. 
 
문밖에서, 누군가 노크를 했다. 담당 전도사님의 목소리가 문 너머로 들려왔다. 
 
“목사님, 이제 나가실 시간입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나는 자격을 갖추지 못한 채로, 사람들 앞에 섰다. 
 
내 시선이 군중을 향했다. 아이들은 와글와글 시끄러웠다. 밝은 조명에 눈이 부셨다. 
 
나에게는 오직 한 사람, 상처 입은 한 사람만이 중요했다. 내 관심은 민수를 향했다. 
 
저 멀리 맨 뒷자리에, 민수가 보였다. 민수의 옆자리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다. 민수는 말없이 조용했다.  
 
그날 밤, 설교는 기도였다.

왜 나를 거절하세요?

From 거라사의 광인 
 
당신도 나를 알지요? 성경에서 내가 꽤나 유명한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당신이 알듯이, 나는 부끄러운 과거를 가진 사람입니다. 
 
나는 수많은 귀신들에게 시달리며, 나 자신을 학대했습니다. 온몸을 찢으며, 귀신이 떠나가기를 바랐지만, 귀신들은 나를 조롱하고 지배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치유됐습니다. 귀신이 완전히 떠나가고, 내 정신과 감정이 멀쩡해진 것이지요. 안타깝게도,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내가 기억하는 것이라고는, 내 앞에 서 계신 예수님뿐이었지요.  
 
정신을 차린 나는, 혼자 남겨지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언제라도 귀신들이 다시 찾아와 나를 지배할 수도 있으니까요. 나는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사정하듯 말했습니다. 
 
“예수님, 저도 예수님을 따라가고 싶습니다. 혼자 남겨지는 것이 무섭습니다.” 
 
나는 내심 기대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를 수 있게 해주신다면, 나는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다니면서, 저 열두 사람처럼, 내 인생 전부를 바쳐 예수님을 도와드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거절하셨습니다. 저를 집으로 돌려보내셨습니다. 나를 미워하고, 거절하고, 조롱했던 마을 사람들에게로 돌아가라고 한 것이죠. 예수님은 하루도 머물지 않고, 곧바로 내 곁을 떠나버리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웠지만, 순종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집으로 돌아가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을 말했습니다. 
 
온 도시의 사람들이 나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나를 비웃고 조롱할 여유조차 없었지요. 어제까지만 해도, 나는 광야를 헤매던 미친 사람이었으니까요. 
 
혼자 있을 때, 나는 가끔 생각에 잠겼습니다. 
 
‘예수님은 왜 나를 거절하셨을까? 왜 나를 혼자 남겨두셨을까? 나는 아직도 무서운데….’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떠올랐습니다. 
 
‘내 과거가 문제가 된 게 아닐까?’
 
나는 더 이상 귀신들린 사람이 아니지만, 얼굴과 몸의 흉터를 지울 수 없었습니다. 내 얼굴을 쳐다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겁니다. 여기저기 찢어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으니까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나를 비교하게 되더군요. 
 
‘그들에게는 뭔가 특별한 게 있을 거야.’ 
 
마음속에 자리 잡은 의문을 해소할 길이 없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이었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내 자리를 묵묵히 지켰습니다. 
 
그렇게 2-3년이 흘렀을 때, 예루살렘에서 슬픈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고요. 나는 땅바닥에 쓰러져 엉엉 울었습니다. 
 
나는 당장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온갖 수소문 끝에, 예수님의 제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곧 다시 오실 거라며 기뻐했습니다. 
 
나는 제자들과 함께 머물면서, 마음속 깊은 고민을 꺼내놓았습니다. 
 
‘예수님은 왜 나를 거절하셨을까? 나의 과거 때문에? 내가 준비되지 않아서?’ 
 
내가 깊은 한숨을 내쉴 때, 베드로라는 제자가 말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딱 3년을 함께 했습니다. 상대적으로 3년이 길게 느껴지실 수도 있지만, 제 입장에서는 눈 깜짝할 사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잠시 잠깐 우리 곁에 계시다가, 홀연히 떠나버리셨습니다. 
 
예수님이 당신을 떠나보내실 때, 당신에게 남기셨던 그 말씀을 우리에게도 똑같이 남기셨습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는 권능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그리고 땅 끝까지 가서 내 증인이 될 것이다.” 사도행전 1:8
 
우리에게 당신보다 거창한 말씀을 하신 게 아닙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집으로 돌려보내셨습니다.  당신이 살았던 도시로 보냄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난 곳 방언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태어난 곳으로, 우리가 필요한 곳으로 사방팔방 흩어지게 하셨습니다.  
 
당신과 우리는 같은 사명을 받았습니다. 온 도시와 마을로 흩어져,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거절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보다 당신을 먼저 파송하신 것이지요. 시기의 차이일 뿐, 조건의 차이는 아닙니다.   
 
참, 당신은 모르시지요? 당신을 만나러 가다가  우리가 모두 바다에 빠져 죽을 뻔했습니다. 우리 목숨을 담보로 어디를 가시나 했더니, 당신을 찾아가시더군요. 
 
당시에는 예수님의 깊은 뜻을 몰라, 화가 났습니다. 나도 모르게 속으로 말했지요. 
 
‘고작 이런 미친 사람 하나를 구하려고, 우리 모두의 목숨을 걸고, 여기까지 왔단 말이야?’
 
미안합니다. 너무 솔직했나요? 예수님은 당신 한 사람을 만나시려고, 그 먼 길을 가신 겁니다. 
 
예수님이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아시겠지요? 당신의 얼굴의 난 흉터, 당신의 모든 과거, 예수님은 문제 삼지 않으십니다. 
 
자격을 갖춰서 부름을 받은 사람은 여기 아무도 없습니다. 당신과 나, 우리 모두는 자격 미달입니다.” 
 
다른 제자들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나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세상 모두가 짐승처럼 여기던 나였습니다. 내가 뭐라고 예수님이 그 멀리서 목숨을 걸고, 나를 찾아와 주신 걸까요?
 
나는 예수님을 오해했습니다. 내 과거, 내 흉터. 예수님께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자격 없는 나를, 예수님은 조건 없이 사랑해 주셨습니다. 
 
당신이 예수님을 그리워하는 것을 압니다. 당신이 깊은 절망 속에서 울고 있을 때, 예수님이 찾아와주셨지요? 당신도 나처럼 혼자 남겨지기 싫었지요? 
 
당신 마음, 나도 조금은 압니다. 혼자 남겨진 당신은, 예수님에게 거절당한 사람처럼, 외로우실 겁니다.  
 
하지만, 당신은 나처럼 예수님을 오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멀어진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것은 감정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떠난 적이 없으십니다. 
 
나를 위해 비바람이 몰아치는 바다를 건너셨듯이, 예수님은 당신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오르셨습니다. 예수님이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증거입니다. 
 
혼자라고 외롭다고 울지 마세요. 예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과 함께하십니다.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