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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일・공동체

너의 목소리가 듣고 싶단다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너 아닌 모습으로 살아가지 말거라
 
너 자신만의 목소리를 가지기를 
나는 바란단다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 
듣기 좋은 말들을 쏟아내지 말거라
 
애써 지어낸 말들은 
허공에 흩어져
의미 없이 사라진단다
 
너 자신이 되기 위해서는 
외로워야 한단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네가 누구인지 살펴보렴
 
진정한 너를 알고 싶거든 
고요한 곳에서 나를 만나거라
 
사람들의 인정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너를 세상에 보낸 것이 아니란다
 
사람의 인정을 포기하면 
새로운 길이 펼쳐진단다
 
나의 사랑 안에서 
나의 인정을 받거라
온전한 너 자신이 되어 
나를 전하는 삶을 살 거라
 
너의 재능과 직업이 무엇이든 
나를 드러내기를 바란다
 
너의 고유한 목소리를 찾거라
나는 너의 목소리가 듣고 싶단다
 
당장의 성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묵묵히 최선을 다하거라
 
진심이 담긴 너의 목소리에 
지나던 사람들이 하나 둘 멈춰 설 거란다
 
너의 목소리를 통해 
그들은 나를 알게 될 것이고 
나의 사랑으로 치유될 거란다
 
숫자로 판단하지 말거라
규모를 추구하지 말거라 
 
나의 사랑으로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거라
 
네가 소중히 여기는 한 사람이
내게는 온 세상이란다
 
사랑한다, 나의 자녀야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누가복음 3:4

담담하게 너의 길을 가거라

다른 사람의 시선을 
외면할 수 없는 너의 심정을 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람들과 부대끼는 
너를 보면 내 마음이 아프단다
 
사람 관계는 항상 어렵단다
상대방이 있기 때문이란다
 
모든 것이 
너의 잘못일 수 없단다
 
네가 완벽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너를 반대하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단다 
 
때로는 의연하게 
너의 길을 가야 한단다
 
복음이 없는 사람을 마음속으로 무시하고 
우월감을 느끼라는 말이 아니란다 
 
너의 신념과 가치가 모든 사람에게 
존중받을 수 없다는 뜻이란다
 
모든 사람과 
잘 지낼 수는 없단다
 
너를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란다
 
모든 사람의 인정을 받기 보다 
나의 인정을 받거라
 
나의 사랑 안에 굳건히 서서 
다른 이들의 적대감을 견뎌내거라 
 
너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려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두려워 말거라 
 
너는 절대로 
끝장나지 않을 거란다 
 
담담하게 너의 길을 가거라 
내가 너를 책임질 것이다 
 
사랑한다, 나의 자녀야  
 
이들은 마을이 세워진 언덕의 벼랑까지 
예수님을 끌고 가서 밑으로 밀쳐 
떨어뜨리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갈 길을 가셨습니다.
누가복음 4:29-30

사람에게 서운해하지 말거라

너의 마음이 
낮은 곳을 향하기를 원한다 
 
네가 땀 흘려 이룬 결실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거라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발견하거든 
주저하지 말고 돕거라
 
그들의 필요를 돌아보고 
베풀 수 있는 만큼 베풀 거라
 
나는 너를 통해 
나의 사랑을 흘려보내기를 원한단다
 
그들이 너에게 고마워하지 않아도 
서운해하지 말거라
 
정작 네가 도움이 필요할 때
아무도 너를 돌아보지 않는다고 
절망하지 말거라
 
내가 차고 넘치도록 
너에게 부어줄 거란다
 
네가 사람에게 베푼 것이 
아무것도 아닐 만큼 
넘치는 사랑을 부어주고 싶구나
 
나의 사랑은 
기브 앤 테이크가 아니란다
 
사람에게 서운해하지 말거라
너의 섬김은 사람에게 보상받을 수 없단다
 
너의 성품으로 잠깐 사랑하지 말고
나의 사랑으로 오래 사랑하거라
 
네가 대가 없는 사랑을 베풀 때
나는 말할 수 없이 기쁘단다
 
너는 나를 닮은 
소중한 나의 자녀란다 
 
사랑한다, 나의 자녀야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누가복음 6:38

너라서 버틴 거야

“용서가 힘들어. 
슬퍼서 눈물 나.” 
 
울고 싶으면 울어. 
넌 그럴 자격 있어. 
 
약한 거 아니야. 
너라서 버틴 거야. 
 
지금까지 잘 했어. 
여기까지 잘 왔어. 
 
이제, 
하나님 차례야. 
 
천 배, 만 배로 
하나님이 갚아주실 거야. 
 
요셉이 큰 소리로 우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창세기 45:2> 

나는 갈등이 싫어요

나는 갈등이 싫어요.
혼자 참아요.
 
거절당할까 두렵고.
버림받을까 두렵고.
상황 달라질 리 없고.
그러니까 참죠.
 
가끔 답답해요.
나를 너무 쉽게 보는 거 아니야.
나를 얼마나 우습게 생각하면
저런 말을 하지.
말 안 하니까 더 그러나.
 
마음 단단히 먹고 내 말 하고 싶죠.
교회에서 배운 게 있잖아요.
순종해라. 참아라.
빛과 소금 되라.
말문이 막혀요.
 
뭐가 옳은 걸까요.
평생 이렇게 살 수는 없잖아요.
이러다 내가 죽겠어요.   
 
참지 마세요.
뭣 하러 참아요.
생각나는 대로 말하세요.
그 사람 상처받는 말든 독한 말 쏟아부으세요.
 
내가 상처받았는데
다른 사람 배려할 일이 뭐예요.
욕하고 싶으면 욕하고
소리 지르고 싶으면 소리 지르세요.
 
그 사람 말고 하나님께.
놀라셨죠?
하나님께 먼저 말하세요.
사람 말고.
 
복싱으로 몸 푸는 사람
샌드백 먼저 쳐요.
프로 선수는 감정으로
주먹 휘두르지 않아요.
상대방의 움직임을 보고
정확히 주먹을 꽂아요.
 
자기 생각 말하기 전에
샌드백 먼저 치세요.
하나님, 이 말 해야 할까요.
잽 잽 잽.
그래, 이번에는 말하자.
라이트 훅.
그래, 이번에는 참자.
블로킹.
 
사람이 내 마음 알아주나요.
어림없어요.
기대한 만큼 실망해요.
하나님이 내 마음 알아주시죠.
솔직히 말하세요.
 
하나님 앞에서
다른 사람 욕하는 게 이상한 가요.
하나님 앞에서
착한 척하는 게 더 이상해요.
 
시편 자세히 읽어보세요.
다른 사람 욕으로 꽉 찼어요.
참 신기하죠.
욕으로 시작한 기도가
찬양하는 기도로 끝나요.
하나님께 말하고 털어버리는 거죠.
원수를 대신 갚아주신다는 데
다른 말 더 필요한가요.
 
하나님께 말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질 거예요.
마음이 편해지면
판단할 수 있을 거예요.
이건 말해야 한다.
이건 말할 필요 없다.
 
절대적인 기준 없어요.
말 많이 하는 사람에게는
참으라고 하실 거고
말 안 하고 참는 사람에게는
참지 말라고 하실 거예요.
 
잘못된 판단이면 어떻게 하냐고요.
괜찮아요. 정확한 판단은 못 내려요.
실수해도 하나님이 돌봐주세요.
우리 하나님 해결사예요.
 
가시 빼고 말하는 사람 당당해요.
감정에 휘둘리지 않거든요.
거절 당해도 타격 없어요.
 
그냥 그랬다는 거죠.
그래서 화났다는 것도 아니고.
의도는 없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는 데
상대방이 뭐라 말하겠어요.
내가 느낀 감정인데
그렇게 느끼지 말라 하겠어요.
 
꾸준히 샌드백을 치세요.
나도 쉬지 않고 샌드백을 쳐요.
못한 말 산더미 같은데
어디 말할 데가 없어서.
한바탕 땀 흘리면 시원해져요.
 
가끔 링 위에 오르잖아요.
내던진 주먹 빗나가도 자책 마세요.
용기 내서 주먹 날린 자신을 축하해주세요.
 
역습 당해 쓰러지면 어떻게 하나고요.
열 셀 때까지 일어나면 되죠.
만약 못 일어나면요?
괜찮아요. 누워서 잠시 쉬세요.
 
패배를 깔끔하게 인정하는 사람,
그 사람이 진정한 승자에요.
더욱 강해져 돌아올 테니.

우리는 용서할 겁니다

용서 못하는 사람을 
다그치는 사람이 있어요. 
 
단호하게
큰소리로 말해요.
 
성경에 쓰여있잖아. 
용서해야 천국 가.
 
나도 알아요.
묻고 싶어요.
 
용서 못한 사람이
불편한 이유가 뭔가요.
 
용서 못한 사람을 
용서 못한 건 아닌가요. 
 
용서 못한 사람도
용서해주세요. 
 
당신이 용서한 만큼은 
나도 용서했어요. 
 
세상 모든 사람을 
완전히 용서한 사람처럼
말하진 말아주세요.
 
용서했다고 한 말
믿어 볼게요.
 
그 힘이 어디서 나왔나요?
용서할 수 있었던 힘.
 
당신인가요. 
주님인가요. 
 
당신 안에서 나왔다고 하면
나 뒤돌아서서 갈 거예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주님 안에서 나왔다고 하면
나 참았던 말할 거예요.
 
자기 능력으로
용서한 것도 아니면서 
무슨 생색인가요. 
 
말이 심했죠. 
용서해주세요. 
 
다른 사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부탁드려요.
진심으로. 
 
당신도 아프고
힘들었잖아요.
 
잊지 말아 주세요. 
고통의 기억을.
 
마음 가다듬고 
내가 하고 싶은 말할게요.   
 
나 오늘 용서한다.
다 용서했다.
 
용서를 선언하지 마세요. 
그건 구호일 뿐이에요.
 
선언하고 싶다면
하나님 앞에서만 선언하세요. 
 
성급하게 사람 앞에서
선언하면 부작용 나요.
 
용서는 성취가 아니라 
방향이에요.
 
그리스도를 향해 걷다 보면
우린 용서할 겁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건
고통스러워요. 
 
주님을 사랑하는 건
행복하죠.
 
원수가 미울수록
주님을 사랑하세요.
 
원수를 묵상하지 말고
주님을 묵상하세요.
 
주님을 사랑하면
원수를 사랑하게 돼요.
 
아직 용서 못했는데
나는 주님을 사랑하는 건가요.
 
내 사랑은 가짜 아닌가요.
이렇게 모자란데.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조급할 필요 없어요.
시간이 필요 해요. 
 
복수의 길을 돌아 나와 
용서의 길로 들어섰다면 
이제 안심하세요. 
 
좁고 험하다고
포기하지 말아주세요. 
 
저 끝에
나와 당신의 주님이
미소 짓고 계시니까요.

더 이상 희생하지 마세요

가족을 위해
희생하지 말고
자신을 돌보세요.
 
안돼요.
그럴 수 없어요.
 
나 하나 희생하더라도
가족이 살 수 있다면
나는 괜찮아요.
 
예수님도
말씀하셨잖아요.
 
내가 밀알처럼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오열하는 그녀의 눈물을
누가 닦아줄 수 있을까요.
 
나는 먼저
그녀의 아픈 마음을
위로하고 싶어요.
 
눈물이 마르고
마음이 진정되면
말해주고 싶어요.
그 말씀의 의미를.
 
밀알의 비유는
우리에 대한 명령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에 대한 예고였어요.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많은 생명이 살아날 것이란 의미에요.
 
당연히, 우리도 예수님처럼 살아야죠.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이 아니랍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셨지만,
내가 가는 길을
너희가 결코 따라올 수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내가 주는 잔을 마시라고 하셨지만
내가 마시는 잔을
결코 마실 수 없다고 하셨어요.
 
예수님을 따르기는 하지만,
예수님이 될 수는 없는거죠.
 
밀, 길, 잔.
모두 예수님의 죽음을
예고하는 말이에요.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죽어야 하지만,
우리가 죽어도 예수님의 죽음과는 다르죠.
 
나는 당신에게
말하고 싶어요.
 
가족을 위해 희생할 사람은
당신이 아니에요.
 
가족을 위해 희생할 사람은
더 이상 필요 없어요.
 
예수님이 이미 희생하셨어요.
단번에 완전히 희생하셨죠.
 
당신이 아무리 희생해도
예수님 자리를 대신 할 수 없어요.
 
예수님이 되지 마시고
예수님과 하나가 되세요.
 
어떻게 예수님과 하나
될 수 있나요.
 
예수님은 땅에 떨어진
한 알의 밀이에요.   
썩어져 죽으셨어요.
 
그리고,
예수님은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진
생명의 떡이에요.
다시 살아나셨어요.   
 
밀은 땅에 떨어져 썩어서
많은 열매를 맺고
생명의 떡이 되었죠.
 
예수님이 말씀하셨어요.
나는 생명의 떡이다.
이 떡을 먹으라.
영원히 살 것이다.
 
생명의 떡을 먹으면
예수님과 하나 되어
영원히 살아요.
 
이제는 더 이상 죽지 마세요.
죽을 필요 없어요.
 
살아나세요.
더욱 살아나세요.
 
죽고 싶을 때마다
생명의 떡을 먹으세요.
그래야 살아요.
 
당신이 죽으려 할 때마다
예수님이 되려고 하는 거예요.
 
생명을 떡을 먹을 때마다
예수님과 하나 되는 거예요.
 
예수님이 되지 마시고,
예수님과 하나가 되세요.
 
예수님과 하나 된 당신은
올바른 방식으로
가족과 마주할 거예요.
 
가족을 위해 희생하지 말고
가족을 사랑하세요.
 
희생 대신
사랑을 선택할 때
당신도 살고
가족도 살 수 있답니다.

술 담배를 끊지 못합니다

술 담배를 끊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숨기고 다는 게 가식적으로 느껴져서 교회 공동체에서 솔직히 말했습니다. 그날 이후, 저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사람이 알게 모르게 많습니다. 상처가 깊습니다. 여전히 끊으려고 노력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있습니다. 
 
술과 담배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을 제시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질문하신 분의 의도를 먼저 생각하고 싶습니다. 상처 부위를 보여줬는데, 핀셋으로 휘젓고 싶지 않습니다.
 
 술과 담배에 대한 성경적 해석은 다양합니다. 다양한 해석에 대해 저마다 일리 있다 생각합니다. 나는 술 담배를 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 관점을 정죄의 도구로 삼아 사람을 괴롭히고 싶지는 않습니다. 
 
술 담배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자기 행실로 당당할 수 없습니다. 나는 술 담배를 전혀 안 하지만, 떳떳하지 않습니다. 매일매일 변하지 않는 나 자신을 보며 절망합니다.   
 
자신이 술과 담배를 끊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동체에서 말할 때, 사람에게 기대하는 마음을 가진 것 같습니다. 용기 내서 솔직하게 말하면, 사람들이 이런 나를 이해해주지 않을까? 그러나, 기대와 달리 사람들의 표정이 차가워졌습니다. 그로 인해, 상처를 받게 되셨고요. 
 
나는 묻고 싶습니다. 자신은 자신을 받아주셨나요? 자신도 받아주지 못한 자신을 다른 누군가에게 받아달라고 하면 반드시 실망합니다. 반복되는 습관 속에서 스스로를 정죄하고 계시니 마음이 무거울 겁니다. 이 상황을 누구에게라도 알리고 도움을 구하고 싶은 마음 이해됩니다. 그러나, 자신도 용납할 수 없는 자신을 다른 누군가가 용납해줄 거라는 기대는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나는 나를 용납하지 못하겠어요.
그러니까, 당신이 나를 용납해주세요.
 
반드시 실패합니다. 더 이상 사람들에게 이해해달라고 부탁하지 마세요. 한계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상처를 가졌습니다. 원하는 답을 들을 수 없어요. 공동체의 반응은 어쩌면 당연한 겁니다.
 
솔직한 고백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니에요. 이 땅의 어떤 교회도 완벽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질문하신 분의 상태나 교회 공동체의 상태나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고백하고 싶거든 이 사실을 알고 고백하세요. 
 
교회 안에 있더라도, 사람들 의지하는 마음으로 고백하면 부작용 납니다. 예수님께 고백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부작용 없습니다. 교회에서 고백하더라도 교회 사람들이 아니라, 교회 안에 계신 예수님께 고백하는 겁니다. 그래야, 실망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차가워져도 예수님은 언제나 따뜻하시니까요. 
 
자신을 먼저 용납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마음 편하게 술 마시고 담배 피우라는 말이 아닙니다. 술, 담배 끊기 어렵습니다. 오래 걸립니다. 자신을 돌보면서 지속해야 합니다. 스스로를 정죄하면, 힘을 낭비하게 됩니다. 온 마음을 다해 예수님께 집중해주세요. 자신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지기를 바랍니다.    
 
“너 또 실패했지. 그럼, 그렇지. 넌 역시 안 돼. 넌 쓰레기야.” 진실이 아닙니다. 자신을 파괴하는 방식으로는 절대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며칠이라도 참고 견딘 자신을 인정해주세요. 그리고, 다시 시작하세요. 쉽게 되는 일 없습니다. 포기하지 말아주세요.

교회 일을 내려놓고 잠시 쉬려 해요

아빠가 오랜 투병생활을 하시다가 돌아가셨어요. 아버지의 죽음이 너무나 슬퍼요. 교회에서 맡았던 일을 내려놓고 잠시 쉬려는데 주변에서 그러지 말래요. 그럴수록 하나님을 더 붙잡으라고 해요. 슬픔의 영에 사로잡히면 일어서기 어렵다고 참고 견디라고요. 
 
슬퍼하세요.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슬프지 않겠어요. 일 년이든, 십 년이든, 평생이든 슬프면 우세요. 아버지가 일생동안 그립다면 감사한 겁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는 감정에 죄책감을 느낀다면 잘못된 겁니다. 
 
당신에게 ‘슬픔의 영’에 사로잡히지 말라고 말한 사람의 의도를 모르겠네요. 이 말은 문맥상 부정적인 뜻이겠지요. 성경에는 그런 말이 없습니다. 나는 그 말을 전해 들을 당시의 상황과 분위기는 모르지만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성경에 없는 말을 하면 위험합니다. 
 
쉬고 싶으면 쉬세요. 교회 일을 감당하는 것 자체가 본질이 아 닙니다.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결정하세요. 교회 봉사할 사람이 항상 부족해도 교회 문은 안 닫습니다. 하나님이 잘 이끌어 가십니다. 잠시 쉬다가 기운이 나면 다시 섬겨주세요.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세요. 그 눈물 마를 때까지 주님이 위로해주실 거예요. 오늘부터는 마음 편히 울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과 돌아가신 아버지 사이에는 예수님이 계세요. 천국에서 그분이 아버지를 돌봐주고 계십니다. 슬플 때마다 예수님 품에 안겨 있는 아버지를 생각하세요. 주님은 친절하게도 이 땅에서 슬퍼하는 당신에게도 찾아오세요. 눈물을 닦아주시며 위로해 주시지요. 
 
예수님이 계시기에 머지않아 슬픔은 소망이 될 것입니다. 슬플 때마다 그분 품에 꼭 안겨주세요. 다시 힘을 얻으면 주님의 일을 잘 감당하실 수 있을 겁니다.

관계가 힘들어 교회를 떠났어요

관계가 힘들어 교회 청년부를 떠났어요. 시간을 두고 생각하다가 다시 마음이 열려 청년부 공동체에 가려 했어요. 떠나온 것이 미안해서 먼저 리더 언니에게 제 상황을 알렸어요. 다시 교회에 나가고 싶다고 말했어요.
 
환영해줄 거라는 저의 바람과는 달리, 리더 언니는 너무 조급한 것 같다며 기다려 달라고 했어요. 공동체 사람들이 너 때문이 힘들어한다고. 알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어요. 그때는 괜찮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화가 났어요. 내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는 전혀 물어보지 않았어요. 공동체에서 저를 밀어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엇 때문에 교회를 떠났는지 알 길이 없어 정확한 답변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교회 사람들과 갈등이 일어나 공동체를 떠난 것 같아요. 교회는 어떤 상황에서든 자매님을 있는 그대로 받아줘야 하지만, 실제로는 교회 사람들이 서로 상처가 많아서 쉽지가 않지요. 리더 언니라는 분은 아마 다른 사람에 대한 걱정이 앞섰던 것 같아요. 리더 언니를 이해해줄 필요가 있어요. 리더 역할은 언제나 쉽지 않으니까요.
 
아쉬운 게 하나 있다면, 리더 언니가 자매님이 오고 말고를 결정할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해요. 그 누구도 하나님의 자녀를 거절할 권리는 없거든요. 자매님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위임하지 마세요.
 
자매님이 리더 언니에게 물을 필요가 없었던 것 같아요. 가고 말고를 결정하는 분은 자매님이지 리더 언니가 아니거든요. 리더 언니가 어떤 말을 해도 만족할만한 답변을 듣지 못했을 거예요. 그전에 교회를 떠나올 만큼 갈등이 깊었을 테니까요.
 
과정을 공유하는 게 핵심이에요. 다녔던 교회를 사랑한다면, 교회에 다시 출석하는데 목적을 두지 마세요. 자매님에게 있었던 일을 있는 그대로 리더 언니와 공유하는 게 먼저예요.
 
무엇으로 상처받았고, 혼자 시간을 보내면서 어떻게 회복되었는지 말해주세요. 같은 말이라도 표현이 중요하니까 최대한 진실되게 대화하세요.
 
리더 언니로부터 또다시 거절을 당한다면, 전도사님이나 목사님께 도움을 요청하세요. 도와주실 거예요. 만약에 또다시 거절을 당한다면, 그때는 다른 교회를 고려해보세요.
 
교회를 쉽게 옮겨도 된다는 말이 아니에요. 교회 사람에게 상처받아서 신앙을 버릴까 걱정돼서 드리는 말이에요. 어떠한 경우에도 예수님을 포기하지 말아주세요.
 
스스로 회복할 시간이 필요해요. 사람들에게 상처받았으니까요. 한 가지만 말씀드릴게요. 예수님은 자매님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세요. 하지만, 교회 사람들은 자매님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지 않아요. 자매님 역시 리더 언니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에요.
 
리더 언니를 묵상하지 마시고, 예수님을 묵상하세요. 리더 언니와 나누었던 대화를 반복하지 마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반복하세요. 이 과정에서 하나님이 새로운 일을 펼쳐 가시기를 기대해봅니다. 부족한 답변 들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누구 말이 옳은 걸까요?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편이에요. 다양한 의견을 듣는 건 좋은데, 가끔은 혼란스러워요. 교회 안에서 목사님, 리더들이 서로 다른 조언을 해주거든요. 누구 말이 옳은 건지 모르겠어요. 
 
아무도 올바르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조언이 전부 틀렸다는 말이 아닙니다. 아무리 옳은 답을 내놔도 자매님이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 틀린 답이 됩니다. 사람들의 조언을 너무 많이 듣지 마세요. 그러다가, 길을 잃습니다. 이리저리 헤매다 인생 낭비할 수 있어요. 
 
사람들의 조언을 듣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의존적이에요. 상담실 안에서도 흔히 있는 일입니다. 나에게 자기 인생을 결정해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 안에는 자신만의 이야기가 숨어 있어요. 자기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이유가 있습니다. 찾아내서 돌봐줘야 해요. 
 
이제부터 조언을 구할 때, 상대방의 표정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자신은 오랜 시간 고민하다가 조언을 구했는데, 상대방은 질문을 받은 순간부터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1초도 생각하지 않고 즉시 말합니다. 상대방이 즉흥적으로 던진 조언에 자기 인생을 맡기는 건 정말 위험합니다. 
 
교회 청년들 중에 목사님이나 리더의 말 한마디로 대학 전공이나 직업을 바꾸고, 심지어 진지하게 교제하는 형제자매와 헤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말씀해 주신다고 해도, 신중하게 생각하세요. 그분들은 자매님의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습니다. 함께 고통을 겪지도 않아요. 말 한마디하고 사라집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들도 자매님이 누군지 잘 몰라요. 목사님, 공동체 리더, 소중한 친구들, 멘토, 가족처럼 가까워도 자매님을 온전히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보다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러니, 절대로 선택권을 넘겨주면 안 됩니다.  
 
제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사람들의 의견을 듣다 보면, 나중에 그들의 생각에 파묻혀 버려요. 그들의 말에 영향력이 생기면, 그 말을 어기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들의 말이 규범이 됩니다. 사람들 눈치 보면서 인생 살면 그때부터는 불행해집니다. 
 
나도 글 쓴다고 할 때, 주변에서 좋은 소리 못 들었습니다. 나를 잘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반대했어요. “글로 먹고사는 사람 없다. 네 글을 누가 읽어주냐. 글은 써 본 적 있냐.” 헤아릴 수 없는 말을 들었어요. 마음이 아팠죠. 하지만, 나는 스스로 선택했고 계속 글을 썼어요. 
 
막상 책 한 권 나오니까, 똑같은 사람들이 예전과 다른 말을 합니다. “나는 결국 네가 해낼 줄 알았다. 정말 잘 했다.” 만약 내가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선택권을 넘겨줬다면 나는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했을 겁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죠.     
  
귀를 닫고 살면서 사람들을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에요. 최대한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의견을 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선택은 자기 자신이 내리라는 말이에요. 처음부터 결심해야 합니다. “의견은 듣지만, 선택은 내가 한다.” 그래야 조언을 해주는 사람도 부담이 없습니다. 사람들의 말은 조언일 뿐이지, 법칙이 아닙니다. 
 
자매님을 가장 잘 아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사람들의 조언은 적당히 들으세요. 나도 목회해봤지만, 목사가 세상만사 다 아는 거 아닙니다. 목사 의지하지 마세요. 리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의지하시고 하나님 말씀을 들으세요. 답답하고 두려운 거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걱정 마세요. 실수해도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거절하기 힘들어요

교회에서 리더로 섬기고 있어요. 고민을 들어줄 일이 많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회의가 들기 시작했어요. ‘나는 바쁜 시간을 쪼개서 어렵게 시간을 냈는데, 이 사람은 과연 그걸 알고 있는 걸까.’ 굳이 내가 필요할까. 그냥 말할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닐까 생각이 들면,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먼저 고맙다는 말을 드리고 싶어요.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습니다. 쉽지 않은 자리 포기하지 않고 잘 견뎌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매님의 질문은 저 역시 오랫동안 고민해온 문제에요. 정답은 없습니다. 하루하루 고민하면서 결정을 내려야 해요. 내 말이 정답은 아니지만, 조심스럽게 몇 자 적어보려고 합니다.
 
일단 자매님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을 아껴 쓰세요. 리더 역시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을 돌봐줄 수 없어요. 자신 안에서 기준을 세우세요. 기준은 복잡하지 않아야 합니다. 일주일 단위로 만날 사람과의 시간과 횟수를 제한하세요. 시간대 역시 고정적이면 좋습니다. 최대한 단순하게 만드세요. 그래야 지속 가능한 사역을 할 수 있습니다.
 
상황에 대한 기준 역시 중요합니다. 모든 사람을 만날 수는 없어요. 인생에서 고민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만나도 만나도 끝이 없을 거예요. 최소한의 기준이 필요해요. 마음이 어렵겠지만, 꼭 그렇게 해야 합니다. 지속 가능한 사역을 위해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해요.   
 
고민을 가진 사람이 도움을 요청하는 방식을 세 가지 비유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니 참고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껌종이에 고민을 뱉어 던져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실은 고민이 나누려고 온 게 아니라 감정을 배출하고 싶은 사람이에요. ‘나 지금 이런데, 내가 이런 일을 당하는 게 말이 돼?’
 
감정 뱉어서 버린 껌종이 펼쳐보지 마세요. 기분 상합니다. 받아서 쓰레기통에 잘 버리세요. 상대방이 착각한 겁니다. 자매님이 쓰레기통인 줄 안 거예요. 직접 버리라고 말하고 돌아보지 마세요.
 
그다음은, 종이 한 장에 고민을 대충 쓴 다음 수 백장 복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마다 나눠줍니다. 누구 하나 걸리라는 식으로 마구 뿌리는 겁니다. 착한 사람이 멈춰 섭니다.
 
당연히 대화가 힘듭니다. 그 사람은 자매님과 대화하는 중에도 종이 뭉치를 손에 쥐고 있습니다. 자매님과의 대화에 온전히 집중하지 않아요. 설문조사하듯, 질문합니다. ‘이 사람은 이렇게 말하네. 다른 사람은 무슨 말을 해줄까’ 궁금해합니다. 자매님이 사라지고 나면, 그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을 찾아다닐 겁니다.
 
마지막으로, 손편지를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종이는 허름해도 정성스럽게 한 글자 한 글자를 써 내려간 편지를 보냅니다. 손편지를 받아보면, 얼룩져 있습니다. 눈물로 써 내려간 편지라 그렇습니다. 여기저기 눈물이 떨어져 잉크가 번진 겁니다. 종이는 귀퉁이가 닳아서 구깃구깃합니다. 다 쓰고 나서 보낼까 말까 손에 쥐고 긴장한 까닭입니다.
 
손편지를 받았다면, 예수님이 되어 주세요. 태평양을 건너가서라도 만나야 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찾아가 돌봐주세요. 그 사람이 흘린 눈물만큼 함께 울어주세요. 오늘이 세상 마지막 날이라고 해도, 그 사람 하나 살리고 떠난다 생각해주세요. 거절하면 안 됩니다.    
 
상처 입은 사람이 소중하듯이, 자매님 역시 소중합니다. 스스로를 지키고 보호할 수 없다면 언젠가는 촛불처럼 닳아 없어질 거예요. 인생은 불꽃놀이가 아닙니다. 잠시 피웠다 꺼지는 불이 되지 마세요. 연료를 아껴 써야 추운 겨울 잘 보낼 수 있습니다. 차디찬 세상을 따뜻하게 녹여주는 난로가 되어주세요.  

내가 바보처럼 보이니?

교회에서는 남을 돕고 섬기는 게 미덕이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상황 어렵고 시간 없는데, 정성을 다해 다른 사람을 도와줬어요. 고맙다는 말 한 번 없이 당연하게 생각해요. 바보 취급당하나 기분이 나쁜데, 얼마나 더 섬겨주어야 할까요?
 
질문에 감정이 실린 것 같아요. 그만큼 서운하다는 뜻이지요. 제가 구체적으로 상황을 알 수는 없지만, 무리한 섬김은 당신에게도 상대방에게도 유익하지 않습니다. 적절한 범위 내에서 멈춰야 할 것 같아요. 우리는 예수님처럼 살아야 하지만, 예수님은 아니거든요.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다른 사람의 비위를 맞출 필요는 없습니다. 
 
잠시 멈춰 서서, 자신에게 질문해보세요. “나는 왜 그 사람을 이렇게까지 섬겨주고 있을까? 왜 적당한 선에서 거절을 못 할까? 왜 무시당하면 기분이 나쁠까?”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을 겁니다. 자신만의 의미부여가 특정한 상황을 특정한 관점으로 보게 만드는 겁니다. 
 
아마 질문하신 분께서는 이번 일이 처음이 아닐 겁니다. 인생에서 반복되고 있을 거예요. 패턴 아닌가 싶어요. 부탁하면 도와주고, 도와주다 지치고., 지치다 떠나고. “두 번 다시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누군가를 필요 이상으로 섬겨줍니다. 지쳐가는 자신과 마주합니다. 
 
상대방을 떠올리면 좌절하지 하지만, 자신을 돌아보면 성장합니다. 상대방을 떠올릴 시간에, 자신을 들여다보세요.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나 왜 이럴까?” 깊이 고민해보세요. “왜”라는 고민을 끊임없이 던지다 보면, 자신 안에 해결되지 않은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을 거예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자신만의 이야기 말입니다. 어쩌면, 자신도 몰랐던.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해 보일 겁니다. 가만히 앉아 이리저리 살펴보세요. 팔을 걷어붙이고 집중하세요. 중요한 순간입니다. 잘 풀어야 벗어납니다. 그 사이에 누가 와서 “나 이것 좀 도와줘”라고 부탁하면, 하던 일 중단하지 마시고 고개만 돌려 말하세요. “잠깐만, 지금 내가 그럴 상황이 아니어서. 나중에 도와줄게. 이거 먼저 풀어야 해.” 걱정은 마세요. 그 사람 큰일 나는 거 아니에요. 실타래 먼저 푸세요. 
 
당신이 도와주지 않아도, 그 사람은 잘 살아요. 하나님이 책임져주시니까 걱정하지 말고, 당분 간은 자신의 문제에 집중하세요. 잘 풀어야 나중에 여유가 생기죠. 그때는 가서 도와주세요. 그 사람이 몰라줘도 기분 나쁘지 않을 만큼만, 적당히.  

다른 사람의 아픔을 공감하고 싶어요

교회에서는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할 기회가 많잖아요. 저는 공감능력이 부족해요. 다른 사람의 힘든 이야기를 들어도 공감이 되지 않아요. 다른 사람의 상처와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이 있나요?  
 
자신이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쉽게 결론 내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정말로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상처와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다른 사람의 상처와 아픔을 공감하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는 것은 당신이 공감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다만, 지금보다 다른 사람의 상황에 대해 더 공감하고 싶다는 말이겠지요. 
 
나는 상대방의 아픔에 대해 쉽게 공감하는 방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감은 언제나 쉽지 않습니다. 공감이라는 말 자체가 “함께 느낀다”라는 뜻입니다. 내가 직접 곁은 일도 아닌데, 마치 같은 일을 겪고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면, 잘못하다 상대방을 동정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의도와 달리, 상대방이 자존심 상합니다. 공감을 쉽게 생각할수록 쉬운 사람 되니까 신중해야 합니다.
 
억지로 장단을 맞추면 실패합니다. 다른 방식으로 상대방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마음을 열었다는 것은 이미 당신을 신뢰했다는 뜻입니다. 당신에게 마음을 열고 아픈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는 뜻이지요. 이미 말하고 싶어서 온 거니까, 상대방이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들어주면 됩니다. 곧바로 떠오르는 말이 있어도 입 밖으로 내뱉지 말고 잘 들어주세요. 억지스럽지 않게, 매우 자연스럽게 말입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신의 감정이 동요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자기감정을 억제하지 말고 솔직하게 함께 느끼면 됩니다. 함께 웃고 싶으면 웃고, 함께 울고 싶으면 우는 겁니다. 나 역시 그렇습니다. 내담자가 울면 나도 함께 웁니다. 내담자가 웃으면 함께 나도 웃습니다. 나는 노련한 상담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따뜻한 상담자가 되고 싶습니다. 
 
공감 잘하는 사람 되기 어렵습니다. 잘 들어주는 사람이 먼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싶은 말 참고 잘 들어주면, 상대방의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자신에게 느껴지는 감정을 솔직히 표현해주세요. 웃든 울든, 대화가 끝나면 상대방이 말할 겁니다. 고맙다고, 정말 고맙다고. 그럼, 성공입니다.

회사의 접대 문화가 싫습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는 술, 담배, 유흥을 즐길 줄 알아야 승진할 수 있다는 문화가 있습니다. 혼자 힘으로 잘못된 문화를 바꾸기가 너무 힘듭니다. 힘들더라도 참으면서 주님을 의지해야 할까요, 아니면 다른 회사로 옮기는 게 맞을까요? 
 
나도 모르겠습니다. 본인 선택입니다. 그 회사에 남는 게 올바른 선택인지, 회사를 옮기는 것이 올바른 선택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주님만이 아시겠지요. 힘들게 질문했는데, 말장난 하는 것처럼 보일까 걱정입니다. 나는 진실을 말하고 싶습니다. 남을지, 떠날지 본인이 선택하세요. 본인 선택이 정답입니다. 
 
내 주장에 대한 근거를 말해보겠습니다. 인생이라는 미로가 있습니다. 시작점에서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걷다보니 두 개의 문이 나왔습니다. 왼쪽이 1번, 오른쪽이 2번입니다. 선뜻 문을 열지 못하고 중간에서 고민합니다. 문 밖에 뭐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문 하나 잘못 열면 10년 고생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며칠 마음고생하다가 1번 문을 선택했습니다. 문을 열고 뛰쳐나갑니다. 힘든 선택 뒤에 마주한 결과는 당황스럽습니다. 기대했던 결과는 없고 또 다른 문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문이 세 개입니다. 1-1, 1-2, 1-3. 또다시 문을 열면 1-1-1, 1-1-2, 1-1-3, 1-1-4, 1-1-5의 문이 있습니다. 문은 계속 많아지고, 선택은 복잡해집니다. 
 
열어도 열어도 문이라면,“어떤 문을 여는 게 좋을까?”는 좋은 질문 아닙니다. 문이 하나라면 모를까. 열어도 열어도 계속 문이라면, 멈춰서 질문해야 합니다. “어떤 태도로 문을 열어야 할까?” 올바른 태도를 가졌다면, 자신의 선택을 믿어야 합니다. 과감하게 여십시오. 문 뒤에 절벽이 있더라도, 절대로 떨어져 죽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계시니까요. 
 
올바른 선택을 내리지 말고, 올바른 태도를 가지세요. 선택이 아니라 태도가 급합니다. 하나님을 믿으세요. 당신이 실수할지라도 괜찮아요. 하나님은 올바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회사에 남아서 견딘다고 승자가 되는 게 아닙니다. 반대로, 회사를 옮겨도 패배자가 되는 게 아닙니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항상 태도를 고민하세요. 내가 아는 주님은 언제나 중심을 보십니다. 진심을 다하면, 밖에서 문이 열릴 겁니다. 차례대로 활짝 열릴 거예요. 사람이 문을 열면 미로지만, 주님이 문을 열면 도로입니다.  머지않아 힘차게 달릴 날 올 거예요. 
 
어깨 펴고 회사 다니세요. 당당하게 일하세요. 옮길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떠나세요. 두려워하지 마세요. 회사가 아니라 하나님이 당신을 책임지십니다. 

회사에서 믿는 사람이 더 괴롭혀요

회사에서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아이러니하게 기독교인이라 시험이 듭니다. 믿지 않는 사람한테는 처음부터 기대감이 없어요. 실망할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믿는 사람이 괴롭히면 너무 화가 납니다. 믿는 사람이 힘들게 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변 사람을 믿는 사람, 안 믿는 사람으로 단순하게 구분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러니, 사람 구분해서 어려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믿든 안 믿든 사람이 힘들게 합니다.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특별히 잘해주거나 별문제 없을 거라고 기대하지 마세요. 기대하면 실망합니다.
 
믿는 사람이라는 정의에는 논리적 오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입니다. 성급한 일반화라는 말은 제한된 정보를 가지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라는 말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모릅니다. 열을 봐야 열을 아는 겁니다. 성급하게 결론 내리면, 잘못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믿는 사람이란 단어를 정의하기 쉽지 않습니다. 무엇을 믿느냐, 얼마나 믿느냐, 어떻게 믿느냐. 따져볼 것이 많습니다. 자신의 종교가 기독교라고 말하는 사람 모두를 믿는 사람으로 인정해줄 수 없습니다. 몸은 교회 안에 있어도, 마음은 교회 밖에 있는 사람 적지 않습니다. 그러니, 교회 다니는 사람 모두를 믿는 사람이라고 정의 내린다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급하게 정의 내리면, 부작용이 있습니다. 세상을 믿는 사람, 안 믿는 사람 나눠서 보게 됩니다. 계속 따지고 들어서 죄송하지만, 이건 흑백 논리의 오류입니다. 의인과 죄인이란 개념은 성경 안에서 선명하게 대조를 이루지만, 실제로는 우리 안에 함께 존재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의인이며, 죄인입니다. 동시에, 죄인이며, 의인입니다. 마음속 치열한 싸움이 있습니다. 그러니, 겉으로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기댈 분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삶의 한순간이라도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 죄인일 뿐입니다. 죄인을 보고 실망하지 마세요. 우리는 처음부터 자격 미달이었습니다. 
 
회사에서 최선을 다해서 맡은 일 잘해주세요. 예수님이 맡기신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정성을 다해 맡은 일 잘하면, 그게 곧 예배입니다. 
 
물론, 쉽지 않지요. 목사라고 세상 물정 모른다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교회라고 상황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교회에는 믿는 사람만 있는데, 목사는 목회가 왜 이리 힘들다 말할까요. 성도는 성도대로 왜 이리 시험에 들까요. 다 사람 때문입니다. 서로 상처 주고 상처받으며 사는 겁니다. 
 
세상 아무리 어두워도 빛을 잃지 마세요. 어두울수록 더욱 밝게 비춰주세요. 세상 한가운데에서 포기하지 않고 빛으로 살아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어떻게 도와줘야 하나요?

아끼는 후배와 대화하던 중에 심각한 말을 전해 들었어요. 자신이 돌보고 있는 소그룹 멤버가 끔찍한 일을 겪었는데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어요. 직접 만나서 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겠냐고 제게 물었는데,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요.   
 
절대로 만나시면 안 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려 죄송합니다. 자매님을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습니다. 아끼는 후배의 부탁이니 거절하기 힘들 겁니다. 그래도, 거절해야 합니다.  
 
직접 만나면 안 되는 이유를 생각나는 대로 말해보겠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비밀 유지입니다. 비밀을 말한 사람 입장에서 비밀 유지가 깨졌다면, 그건 재앙입니다. 모든 신뢰가 무너집니다. 
 
아끼는 후배가 소그룹 리더입니다. 소그룹 멤버가 리더를 신뢰하고 비밀을 말했습니다. 리더는 그 비밀을 자매님에게 말한 겁니다. 리더가 아무리 좋은 의도라고 해도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비밀을 말한 사람은 충격을 받게 됩니다. 평소 리더에 대한 신뢰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지겠지만, 대부분은 배신감에 관계를 끊습니다. 
 
공동체의 흔한 실수입니다. 서로 기도해준다는 명분으로 비밀을 마구 퍼뜨립니다. 비밀은 반드시 지켜줘야 합니다. 절대로 퍼뜨리면 안 됩니다. 한 사람의 진실된 기도가 백 사람의 기도보다 낫습니다.  
 
자매님이 후배를 대신해서 소그룹 멤버를 만난다면, 그 즉시 비밀 유지가 깨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겁니다. 안정적인 만남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지금 자매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아끼는 후배입니다. 후배에게 비밀을 말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 후배에게 집중하세요. 후배에게 필요한 건 공감입니다. 해결책이 아니에요. 후배가 해결하지 못한 것을 대신 해결해준다고 언니 노릇을 하는 게 아닙니다. 좋은 리더는 대신 해결해주지 않습니다. 방향을 제시해주세요. 선택은 당사자에게 맡겨야 합니다. 절대로 설득하지 마세요. 
 
후배가 직접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니,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어떻겠나고 제안해보세요. 두 사람의 전문가가 있습니다. 목회자와 상담자입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벌어진 일이니 목회자에게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목회자에게 비밀을 말해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비밀의 내용을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비밀의 내용을 말하지 않고 상황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소그룹 리더가 소그룹 멤버를 돌봐야 하듯, 목회자는 리더를 돌봐야 할 책임이 맡았습니다. 목회자가 자매님을 대신해 후배를 돌봐줄 겁니다. 
 
후배가 혼자서 외롭게 무거운 짐을 짊어지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후배는 소그룹 멤버에게 상담을 받아보라고 제안할 수 있습니다. 후배는 모든 내용을 알고 있으니까 편안하게 제안할 수 있을 겁니다. 당사자가 거절한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후배 역시 소그룹 멤버 대신 상처의 짐을 짊어질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리 조급해도 기다려야 합니다. 해결보다는 공감이 중요합니다. 
 
후배가 자매님에게 힘든 고민을 말했다는 것은 자매님이 제법 괜찮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감히 평가하는 게 아닙니다. 느껴지는 대로 말한 겁니다. 대신 나선다고 해결되는 일은 없습니다. 이 상황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모든 능력은 주님에게서 나옵니다. 주님이 하시는 일을 지켜봅시다. 책임회피 아닌가 걱정하지 마세요. 사랑하고 계시니까 충분합니다.

크리스천은 착해야 하나요?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마음이 상하는 날이 있어요. 주고받는 말에 마음이 불편해도, “괜찮아요”,라고 애써 말해요. 속마음은 그렇지 않거든요. 나도 모르게 사람들과 거리를 두게 돼요. 사람들을 만나는 게 싫어져요. 크리스천은 꼭 착해야 하나요? 
 
결론부터 말하겠습니다. 착하면 좋지요. 하지만, 항상 착할 수만은 없어요. 무슨 말이야, 싶을 거예요. 사람을 파괴하는 생각 중에, “해야만 한다”라는 당위적 사고가 있어요. 심해지면, 강박으로 발전해요. “나는 착해야만 해.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화를 내면 안돼. 사람들이 날 싫어할 거야.” 왜곡된 생각으로 고통받겠죠. 
 
나는 여기서 복음과 종교의 차이를 말씀드리고 싶어요. 종교에는 당위적 사고가 많아요. “해야만 한다, 해야만 한다”의 반복이죠. 의무감으로 종교 생활을 하게 만들고,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어요. 두려움으로 복종하게 만들죠. 두려워서 의무감으로 신앙생활하고 있다면, 우리는 종교 생활을 하고 있는 거예요. 종교는 교묘하게 사람을 짓눌러요.  
 
복음은 은혜를 말해요. 하나님은 자격 없는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어요. 일방적으로 사랑하셨고, 우리는 그 사랑을 거부할 수조차 없었어요. 폭포수 같은 은혜가 쏟아져 내렸고, 우리는 그 덕분에 하나님의 자녀가 된 거예요. 은혜로 시작된 하나님과의 관계는 은혜로 지속되는 거예요. 그 누구도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을 수 없어요. 그 누구도 버림받을 수 없다는 말이죠. 우리는 그 감격으로 순종하는 거죠. 순종은 사랑받은 사람의 자발적인 반응입니다. 
 
변화된 삶은 사랑의 전제 조건이 아니라, 사랑의 결과입니다. 사랑받은 사람의 반응이 곧 순종인 거예요. 순서가 중요합니다. 순서가 바뀌면, 우리는 파괴됩니다. 종교는 이 순서를 뒤바꿔 놓았죠. 종교는 우리를 교묘하게 속여요. 자격을 갖춰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기대에 못 미치면, 자격을 잃을 것이라고 말해요. 하루아침에 버림받을 수 있는 거예요. 복음은 종교와 완전히 다른 거예요. 복음은 진실이고, 종교는 거짓이죠. 
 
다시 착함에 대해서 말해볼게요. 먼저, 착해야만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해요. “해야만 한다”를 “하면 좋다”로 바꿔주세요. 있는 모습 그대로의 나 자신으로 살면 돼요. 솔직한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면서 사는 게 복음적인 삶이에요. 안 그런 척 포장하는 삶은 종교적 삶이에요. 단순하게 둘로 나눌 수 없겠지만, 일단 그래요.   
 
용기 내어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세요. 그렇다고,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무시하라는 말은 아닌 거 아시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사람들에게 말하면, 상대방도 존중해줄 거예요. 
 
“나 사실, 아까 사람들 웃을 때, 같이 웃었지만 솔직히 기분 안 좋았어. 무시당하는 기분이었거든. 네가 그럴 의도는 없었다는 건 알아. 그래서, 마음에 담아 두지는 않으려고.”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사과를 하겠지요. 문장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상대방이 반박할 틈이 없어요. 비난이 아니라 표현이니까요. 하지만, 세상에는 상식 없는 사람도 있겠죠. 감정을 표현했다는 것 자체로 화를 내겠죠. 그런 사람과 마주하고 있다면, 조용히 마음속으로 작별 인사를 하세요. 남은 시간 동안 상식적으로 대해주세요. 죄책감 느끼면서 억지 사랑은 하지 마세요. 그건 다시 종교로 돌아가는 거예요. 
 
용기가 필요했을 거예요. 솔직하게 고민을 말한 당신을 바라보시며 예수님이 기뻐하세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당당하게 보여주시기를 부탁할게요. 하나님 앞에서는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당당해지시고, 사람 앞에서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당당해지세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착함이 아니라 은혜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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