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부모・자녀

엄마가 내 초콜릿 먹었어?

“지훈아, 원두 로스팅 하는 동안 주문 좀 받아줄래?” 
 
문영린은 이른 아침, 카페 문을 연다. 딸의 남자 친구 김지훈이 문영린의 일손을 거들었다. 김지훈은 한 달 전에 군 복무를 마쳤다. 영어 학원에 다니면서, 오전에 잠깐 문영린을 돕는 것이다. 
 
원두 로스팅을 할 때마다, 문영린은 예민해졌다. 정확한 시간에 맞춰 기계를 켜고 꺼야 했다. 출근길에 잠시 들러 커피를 주문을 하는 손님을 맞이하다 보면, 로스팅 시간을 맞출 수 없었다. 
 
아르바이트생이 그만두는 바람에 문영린은 난처해졌다. 마침 딸의 남자 친구, 김지훈이 그녀를 기꺼이 돕겠다고 나섰다. 
 
로스팅을 마친 문영린은 카페 한 귀퉁이에 앉았다.  
 
“지훈아, 제대하고 쉬고 싶을 텐데 아침 일찍 나와줘서 고마워.” 
 
“아니에요. 제대하고 생활리듬 깨질 뻔했는데, 일찍부터 나와 일하니까 좋죠, 뭐. 
 
김지훈은 멋쩍은 듯 말했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야?” 
 
테이블 위에 팔을 걸치고 편안하게 서 있던 김지훈은, 문영린의 진지한 질문에 자세를 고쳤다.
 
“조금 있다가 복학해야죠.” 
 
“우리 미혜와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물은 거야. 우리 미혜가 그렇게 좋아?” 
 
김지훈의 긴장이 풀어졌다. 
 
“그럼요.” 
 
“뭐가 그렇게 좋은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좋아요.” 김지훈은 민망함을 감추려고 주문 테이블 구석에 놓인 초콜릿 상자를 문영린에게 가져갔다. 
 
“이거 드셔보세요. 제가 제주도 갔을 때 사온 초콜릿인데, 맛있어요.” 
 
초콜릿을 받아들고 입에 넣으며 문영린이 말했다. 
 
“얼렁뚱당 넘어가려고 하네. 아직 질문에 대답도 안 했어.” 
 
김지훈은 문영린은 진지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미혜를 정말 좋아해요. 제가 군대 있을 때도 한결같이 사랑해줬잖아요. 이제 제가 지켜줄 차례에요.”     
 
문영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젊은 시절 남편과 이혼해 미혜를 혼자 키웠다. 그녀에게 미혜가 전부였다. 대학에 들어가고 얼마 되지 않아, 동갑내기 남자 친구가 생겼다는 말에 당황한 영린이었지만, 지훈의 듬직한 모습에 점차 안심이 되었다. 
 
“둘 만 사이좋게 잘 지내. 싸우지 말고. 그럼 됐지 뭐.” 
 
문영린은 테이블에서 일어나, 시계를 보며 말했다. 
 
“지훈아, 이러다 학원 늦겠다. 어서 가.” 
 
혼자 남은 문영린은 창가에 섰다. 언젠가 미혜가 그녀의 곁을 떠날 것이다. 그녀는 아직 미혜를 떠나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다. 김지훈이 믿음직스러운 것과 미혜를 떠나보내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그녀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녀는 긴 한숨을 쉬면서, 에스프레소를 내려마셨다. 진하게 농축된 커피 향기가 그녀의 미간에 잡힌 주름을 잠시 동안 풀어주었다.  
 
늦은 오후, 미혜에게 문자가 왔다. 문영린은 문자의 내용을 언뜻 이해할 수 없었다. 두 번 세 번 다시 읽어봐도, 그녀가 제대로 문장을 읽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엄마, 아침에 내 초콜릿 먹었어? 그거 내가 얼마나 아끼는 건데, 엄마가 먹어?”
 
기가 막혀 눈물이 났다. 딸에게 답장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문영린은 김지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훈아, 지금 잠시 통화되니? 미혜가 나한테 말도 안 되는 문자를 보냈어. 도대체 무슨 일인 거야. 미혜가 나한테 이럴 리 없는데, 너희 둘이 무슨 일 있었어?”
 
김지훈도 당황한 듯 말했다. 
 
“모르겠어요. 미혜가 이상해요. 점심시간에 미혜하고 잠깐 통화하면서 어머니도 초콜릿 좋아하신다고 말했거든요. 맛있게 드시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고 말했는데, 그다음부터 미혜가 다짜고짜 화를 내더라고요. 퇴근하고 보기로 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요.” 
 
미혜가 술에 취해 저녁 늦게 들어왔다. 문영린은 딸의 모습에, 감당할 수 없는 분노가 일어났다. 마음 같아서는 등짝을 후려치고 싶었지만, 감정을 억누르고 말했다. 
 
“늦었어. 빨리 씻고 자. 내일 출근해야지.”  
 
미혜는 몸을 가누기도 힘든 듯,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그거 왜 먹었어? 그게 엄마 거야? 그거 내 거야. 지훈이가 나 주려고 사온 거라고. 엄마 눈에 보이면, 그게 다 엄마 거야?” 
 
문영린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미혜에게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이 미친년아.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엄마가 초콜릿 하나 먹었다고 이 지랄이야?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들도 안 그러겠다. 이 미친년아!” 
 
미혜는 지지 않고 말했다. 
 
“매일 똑같은 소리지. 누가 엄마 보고 희생하랬어? 엄마는 항상 보상받고 싶어 하잖아. 나는 평생 엄마가 시키는 대로 살았어. 엄마가 원하는 대로 살고 있다고. 내 인생이 어디 있어? 어디 있냐고! 앞으로 내 인생에 끼어들지도 말고, 내 물건도 건드리지 마. 나 이제 엄마랑 안 살아! 지긋지긋해.” 
 
문영린은 미혜와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없었다. 침실에 들어가 문을 닫고 누웠다.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소리 없이 울었다. 울어도 울어도 슬픈 감정을 덜어낼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문영린은 식탁 위에 놓인 짧은 메모지를 발견했다. 미혜가 남기고 간 메모였다. 
 
“엄마, 나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아. 혼자 살 거야. 갑자기 결정한 거 아니야.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생각했어. 엄마도 이제 엄마 인생 살아. 나도 내 인생 살 거니까.”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 자리에 쓰려져 하염없이 울었다. 간신히 몸을 추스르고 카페에 나갔다. 며칠 동안 나타나지 않았던, 김지훈이 문영린에게 문자를 보냈다. 
 
“어머니,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는데 미혜가 지금 제가 사는 오피스텔에서 함께 지내고 있어요. 이건 아니라고 계속 설득했는데, 소용없더라고요. 제가 잘 타일러서 돌려보낼 테니까,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제가 꼭 돌려보낼게요. 죄송합니다, 어머니.”
 
바로 그 순간이었다. 문영린의 세상은 종말을 맞이했다. 
 
딸은 반 년이 넘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극심한 우울증으로 고통에 시달렸다. 고소하고 향긋한 커피향마저도 그녀에게 쓰디쓰게 느껴졌다.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으로 하루하루를 버텨갈 뿐이었다.   
 
“초콜릿 하나로 이렇게 될 수 있는 건가요? 이제 초콜릿이라는 말만 들어도 소름이 돋아요.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요. 그날만 생각하면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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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딸이 집을 나간 이유가 무엇일지 오랫동안 진지하게 고민해보셨을 것 같아요.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해 주실 수 있으시겠어요?”  
 
그녀가 말했다. 
 
“초콜릿이죠. 초콜릿이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딸이 문자로 ‘왜 먹었냐고’ 따졌을 때, 그냥 미안하다고 말했으면 아무 문제 없었을지도 몰라요. 제가 지훈이에게 전화를 걸어서 문제가 더 커졌나.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뭔가 마음이 불편했겠죠, 미혜도.”  
 
그녀는 초콜릿이라는 단편적인 사건에 집중하고 있었다. 사건 자체가 없었기를 바라는 마음이나, ‘그 당시 엄마가 다른 반응을 보였다면’이라는 가정은, 그녀를 지독하게 괴롭혔다. 만약 초콜릿을 먹지 않았다면, 그녀의 딸이 집을 나가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엄마가 딸의 초콜릿을 먹었다는 것, 그것이 딸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요?”
 
그녀는 생각에 잠겼다.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다 큰 애가 초콜릿 하나 먹었다고, 그럴 수가 있나요. 저는 평생 동안 미혜를 위해 희생했어요. 미혜가 잘 되기를 바랐죠. 아빠 없는 아이, 기죽이지 말라고 잘 먹이고 잘 입히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요.” 
 
나는 그녀의 말에 부분적으로 동의했다. 그러나, 나는 멈출 수 없었다. 한 걸음 더 들어가고 싶었다. 그녀가 튕겨나가지 않도록 신중해야 했다. 
 
“저 역시도 다 큰 딸이 초콜릿 하나로 집을 나갔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이 있거든요.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빙산은 전체 크기의 10분의 1 밖에 되지 않아요. 나머지 10분의 9는 바다 아래 잠겨 있거든요. 
 
딸이 집을 나간 이유가 표면적으로는 초콜릿처럼 보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근원적인 이유가 있을지 몰라요. 
 
제가 집중하고 싶은 부분은 딸과 엄마의 관계에요.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문제가, 초콜릿이라는 매개체로 촉발된 거죠. 보이지 않는 부분을 설명해주실 수 있으시겠어요?”
 
그제서야, 그녀는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빠른 속도로 말을 이어갔다. 
 
“아, 그렇군요. 그 말을 들으니까, 생각나는 게 있어요. 미혜가 술에 취해 들어온 날, 제게 한 말이 있어요. 그 말이 미혜의 진심일지도 몰라요. 자기가 원하는 인생이 아니라, 엄마가 원하는 인생을 살고 있다고. 딸을 엄격하게 키웠거든요. 대학 들어가기 전까지, 쉴 틈 없이 몰아붙였어요. 그 덕분에 좋은 대학에 갔잖아요. 졸업하자마자 취직도 바로 되고요. 머리는 좋은 아이였어요. 그러니까, 그만큼 투자를 했겠죠.” 
 
나는 또다시 질문했다. 
 
“만약에 제가 딸을 찾아가서, ‘당신의 어머니는 어떤 사람인가요?”라고 묻는다면, 딸이 뭐라고 대답할까요?”
 
물론, 실제로 그녀의 딸을 찾아갈 생각은 없었다. 그녀와 딸의 관계를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글쎄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딸이 어떻게 대답할까요.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천천히 대답할게요.”  
 
그녀는 긴 한숨을 내쉬고 힘겹게 말했다. 
 
“아마도, ‘엄마는 이기적인 사람이에요.’라고 말하지 않을까요? 미혜는 아마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그녀는 고개를 떨구고 울기 시작했다. 
 
눈물을 흘릴 것이라 미리 예상했는지, 그녀는 가방에서 새것처럼 보이는 손수건을 꺼냈다. 어쩌면, 그녀는 오랫동안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손수건을 쓸 일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의 손수건은 그녀의 비장한 의지를 보여주는 단서다. 마음속 깊은 곳에 담아두었던 진실을 꺼내고자 하는 그녀의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다. 
 
“만약 딸이 ‘엄마는 이기적인 사람이에요.’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실 수 있나요?” 
 
“아니요. 딸에게 진지하게 단 한 번 만이라도 제대로 말하고 싶어요. 오해라고. 그거 정말 오해라고. 엄마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요. 사실 딸에게 아직 말해주지 못한 비밀이 있어요. 마음속 깊은 곳에 담아둔 비밀이 있는데,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모르겠어요.”  
 
우리는 잠시 동안 대화를 멈추었다. 그녀는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흐느껴  울었다. 수문이 열리듯, 그녀는 십수년 동안 간직했던 눈물을 방출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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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정말 미안해. 잠깐 실수한 거야. 다시는 안 그럴게. 한 번 만 용서해줘.”
 
문영린의 남편은 거실 한가운데서, 무릎을 꿇고 빌었다. 일주일 전, 바다낚시를 간다며 집을 나간 남편은 다른 여자와 함께 있었다. 문영린의 고등학교 동창이 우연히 두 사람을 목격하고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다. 
 
문영린은 남편의 진심을 느낄 수 없었다. 벌써 세 번째였다. 세 번 무릎을 꿇는 동안, 남편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했던 말을 그대로 반복했다. 그녀는 남편과 이혼했다. 더 이상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혜가 여섯 살 때였다. 아빠가 눈앞에서 사라진 그날부터 미혜는 아빠를 찾았다. 아내에게는 무뚝뚝하고 이기적인 남편이었어도, 딸에게만큼은 다정다감한 아버지였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이라고 여러 번 말했던 남편이었다.  
 
문영린은 남편과 이혼한 이유를 딸에게 말할 수 없었다. 미혜가 어릴 때, 아빠가 외국으로 돈을 벌러 나갔다고 했다. 미혜는 착각했을 것이다. 미혜가 누리는 삶이 아버지가 벌어다 준 돈 때문이라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는 오백 원짜리 동전 하나 보태지 않았다. 
 
미혜가 고등학생 때, 엄마에게 진지하게 아빠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더 이상 궁색한 변명이 통하지 않을 것을 문영린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미혜는 진실을 원한 것이다. 그러나, 문영린은 진실을 말할 수 없었다. 딸에게 아버지가 좋은 기억으로 남기를 바랐다. 
 
미혜는 궁금했을 것이다. 외국으로 돈을 벌러 나간 아빠가 왜 전화 한 통 없는지. 미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그녀의 아버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남편의 가족들은 집안 어른들 보기 부끄럽다며, 조용히 가족장을 치렀다. 모든 장례 절차가 끝나고 나서야, 시누이에게 전화 한 통 받은 것이 전부였다.
 
문영린은 알 수 없었다. 미혜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차라리 진실을 말하는 것이 낫다고 여러 번 생각했지만, 그때마다 그녀는 물러섰다. 미혜의 높은 성적이 곤두박질칠까 두려웠다. 입시가 끝나면 모든 것을 말해줄 생각이었다. 그렇게, 에둘러 말하며 진실의 순간을 외면했다. 
 
미혜가 대학에 입학하고,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와 아빠에 대해 물었을 때도 문영린은 진실을 말하지 못했다. 이제 문영린 스스로도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막연한 두려움이 그녀를 엄습했다. 
 
제대한 남자 친구와 결혼을 생각하고 있다고 미혜가 말했을 때, 문영린은 단 번에 딱 잘라 말했다. 
 
“그딴 생각 하지도 마. 너는 엄마처럼 살면 안 돼. 연애만 해. 결혼 따위는 생각하지도 말고.” 
 
미혜는 처마 아래 매달린 고드름처럼 서서히 얼어붙었다. 바람이라도 불면, 부러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아차, 했던 문영린은 애써 웃으며 말했다. 
 
“아직 결혼하기에는 너무 어리잖아. 지훈이도 제대한 지 얼마 안 됐고.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생각해보자.” 
 
문영린은 자신이 내뱉은 말을 주워 담으려 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그녀가 내뱉은 말은 바람에 날린 민들레 씨앗처럼 홀홀 날아가 미혜의 황량한 가슴에 내려앉아 뿌리를 내렸다. 
 
미혜의 시선에서 문영린은 이기적일 것이다.  미혜는 아버지가 보고 싶다. 그러나, 아버지를 볼 수 없다. 아버지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조차 미혜는 알지 못한다. 문영린은 그만큼 철저하게 비밀을 지켜냈다. 
 
결혼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두 사람 사이에 등장했을 때, 문영린은 서툴렀다. 성급하게 내뱉은 말 하나로, 미혜의 판단이 뒤집혔다. ‘엄마가 날 위해 희생했다’ 가 아니라, ‘내가 엄마를 위해 희생한 것’으로. 명백한 오해였지만, 미혜의 세상에서는 진실처럼 받아들여졌다.  
 
그 사건이 있었던 바로 다음 날, 문영린은 미혜의 문자를 받았다.
 
“엄마, 아침에 내 초콜릿 먹었어? 그거 내가 얼마나 아끼는 건데, 엄마가 먹어? 그거 왜 먹었어? 그게 엄마 거야? 내 거야. 엄마 눈에 보이면, 그게 다 엄마 거야? 다 엄마 거냐고!”
 
차곡차곡 쌓아올려진 폭발물에 불꽃이 튀어버린 것이다. 작은 불꽃이라도 충분했다. 도화선에 불을 붙일 수만 있다면, 온 세상을 날려 버릴 것이다. 모녀 관계조차도. 
 
문영린의 세상에서는 초콜릿이 보인다. 미혜의 세상에서는 한 번도 발을 들인 적 없는, 어두침침한 탄약고가 보인다. 같은 사건이 두 사람에게 서로 다르게 보인다. 문영린이 아는 만큼, 미혜도 알아야 한다. 두 사람의 시선에 겹치는 지점에  공감이라는 해독제가 놓여있다. 
 
아직 늦지 않았다. 문영린에게 기회가 있다.  지금이라도 달려가 도화선을 따라 거세게 타들어가는 불씨를 발로 짓밟아 꺼야 한다. 어두침침한 탄약고에서 울고 있는 딸을 꺼내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문영린 뿐이다. 
 
김지훈의 오피스텔은 미혜의 안식처가 아니다. 도피처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미혜가 안식할 곳은 어디에도 없다. 잠시라도 쉴 곳이 필요했을 것이다. 어쩌면, 미혜는 돌아올 명분이 필요할지 모른다.    
 

 
“미혜하고 영화를 봤어요. 저녁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했고요. 지훈이와 지내는 게 불편한 가봐요. 다음 주에 집에 들어갈 테니, 자기 방 좀 치워놓으라고 하더라고요. 
 
피식 웃으면서 ’엄마가 무슨 청소부니?’라고 말을 하는데, 고마워서 눈물이 났어요. 
 
미혜도 말없이 따라 울더라고요. 그날은 서로 그렇게 울기만 했어요. 딸이 다시 돌아오면, 거실에서 두런두런 못다 한 이야기해야죠. 딸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제자리에서 서서 그녀의 뒷모습에서 바라봤다. 세월의 거센 흔적이 깃든 흰머리조차도 내게는 찬란한 광채로 느껴졌다. 상담실을 나서는 그녀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그녀에게 상담실은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도피처였던 것이다. 안식처는 그녀의 집이다. 딸과 함께 머무는 그녀의 가정인 것이다. 언젠가 딸이 엄마를 떠날 때, 그녀는 행복한 미소로 보내줄 것이다. 그녀의 뒷모습이 그렇게 말했다.

엄마가 전화할게

민수는 자정이 넘어 집에 들어왔다. 수능이 10개월 앞으로 다가온 시점이었다. 학원에서, 독서실로 갔다가 집으로 오는 것이 하루 일정이었다. 
 
민수가 집에 도착했을 때, 집은 난장판이었다. 아빠와 엄마가 부부 싸움을 한 것이다. 민수는 깊은 한숨을 내뱉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민수는 바로 잠에 들 수가 없었다. 학원에서 내준 과제가 적지 않았다. 졸린 눈을 비벼가며, 책상 앞에 앉았다. 
 
밖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지만, 익숙한 소리였다. 책에 집중하려고, 이어폰으로 귀를 막았다. 
 
그때였다. 이어폰 너머로 와장창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민수는 깜짝 놀라 밖으로 뛰어나갔다. 거실에서 부모님을 마주한 민수는 짜증이 극에 달했다. 
 
장식장이 쓰려지면서, 거실 바닥에 유리 파편을 쏟아냈다. 엄마와 아빠는 거칠게 몸싸움을 했다. 엄마는 아빠의 손목을 잡고, 사력을 다해 버텼다. 아빠는 엄마의 손목을 뿌리치려고 안간힘을 썼다. 
 
아빠가 엄마의 손을 떨쳐내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엄마의 뺨을 내리쳤다. 
 
찰싹.
 
아빠의 솥뚜껑 같은 손에 엄마는 힘없이 쓰려졌다. 민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아빠에게 눈을 부릅뜨고, 소리를 질렀다. 
 
“제발 그만 좀 하라고!” 
 
민수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아빠가 깜짝 놀랐다. 아빠는 민수에게 가까이 다가와서 말했다. 
 
“뭐라고? 다시 한 번 말해 봐.” 
 
“그만 좀 하라고!” 
 
민수가 아빠에게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아빠가 민수의 멱살을 잡았다. 
 
“이 자식이, 어디서 아빠한테 그딴 식으로 말해?” 
 
민수는 바닥에 쓰려져 울고 있는 엄마와 눈이 마추쳤다. 
 
민수는 이성을 잃었다. 
 
아빠의 손을 뿌리치고, 아빠의 멱살을 잡았다. 
 
“이제 그만하라고 했지! 당신이 아빠야? 왜 술만 처먹으면,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민수의 아빠도 이성을 잃었다. 민수를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했다. 민수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아빠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죽자 살자 덤벼들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고 유리 파편 위로 넘어졌다. 민수가 아빠 위로 올라앉아서, 아빠를 사정없이 팼다. 
 
아빠는 민수를 떨쳐내고 일어서려고 온몸을 비틀었다. 유리 파편이 등에 비벼졌다. 
 
민수의 엄마는 오열하면서, 민수를 뜯어말렸다. 엄마의 울음소리를 들은 민수는 그제서야 이성을 되찾았다. 
 
미끄럼을 타듯이 아빠 몸에서 떨어져 나간, 민수는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질렀다. 
 
민수의 아빠는 터진 입술에서 새어 나온 피를 빨아당겼다가, 침으로 뱉어냈다. 몸을 일으켜, 벽에 기대고는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아빠의 등 뒤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엄마가 흐느껴 울면서, 아빠의 등에 박힌 유리 파편을 빼내고, 수건으로 흐르는 피를 막았다. 
 
민수는 견딜 수 없었다. 아빠를 때린 자기 손을 잘라버리고 싶었다. 주먹을 쥐고 거실 벽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시멘트로 차갑게 굳어진 벽은 민수의 손을 부러뜨렸다.  
 
퍽.
 
민수의 손가락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엄마의 귓가를 울렸다. 엄마는 민수를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민수도 엄마의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엄마를 끌어안은 민수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빠는 비틀비틀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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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지나고, 아빠가 이야기 좀 하자고 했어요. 아빠가 맨 정신에 이야기하기 힘들다고, 술 한 잔 하자고 하시더라고요. 술은 원래 아빠한테 배우는 거라고 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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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의 아빠는 말없이 소주 한 잔을 따라 민수에게 건넸다. 민수는 잔을 받아들고 머뭇거렸다. 
 
아빠가 말했다. 
 
“마셔. 아빠가 주는 술은 일단 받는 거야.” 
 
민수는 소주를 입속에 털어 넣었다. 학교 사물함에 있는 가그린 맛이었다. 가그린을 삼켜버린 듯 찝찝한 기분이었다.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데, 아빠가 한 잔을 더 따르며 말했다. 
 
“민수야. 아빠가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아빠는 반쯤은 울먹거리는 목소리였다. 
 
소주 병을 입에 물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꺼억하고 트림을 내뱉으면서, 민수에게 말했다. 
 
“있잖아. 아빠하고 엄마 사이에는 네가 모르는 일이 있어.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야. 어른들의 문제니까, 네가 끼어들면 안 돼.” 
 
민수는 하고 싶은 말을 참았다. 민수가 들이킨 알코올이 민수의 목구멍을 틀어막았다. 뜨거운 숨만 콧구멍 밖으로 새어 나올 뿐이었다. 
 
아빠의 연설은 세 시간이나 지속되었다. 아빠의 말이 장황하게 무한 반복되었지만, 민수는 아빠의 말을 경청했다. 
 
아빠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다혈질의 아빠는 풀이 죽어지냈다. 민수가 아빠에게 달려든 후로, 아빠는 집에서 존재감 없이 지냈다. 무기력한 아빠의 모습을 볼 때마다, 민수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아빠의 처량한 모습이 날개가 부러진 독수리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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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한 달이 넘도록 민수는 아빠와 말을 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서로 말다툼을 하다가도, 민수가 들어오면 서로 말을 멈췄다. 아빠는 방으로 들어가고, 엄마는 밤늦게 들어온 민수를 챙겼다. 
 
“늦게 피곤하지?” 
 
엄마가 물었다. 
 
“엄마, 나 어떻게 하지?” 
 
민수가 엄마에게 되물었다. 
 
“뭘 어떻게 해?” 
 
“답답해서 미쳐버릴 것 같아.” 
 
엄마는 할 말을 잃었다. 말없이 민수를 바라볼 뿐이었다. 
 
“어떻게 평생을 그렇게 살아? 나 때문에 참고 사는 거면, 그럴 필요 없어. 나는 괜찮으니까, 엄마도 그냥 엄마 인생 살아.” 
 
엄마는 민수의 침대에 힘없이 걸 터 앉았다.  
 
“일단, 수능부터 끝내. 그다음에 이야기하자.”   
 
민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눈물이 터지기 직전이었다. 
 
“알겠어, 엄마. 이제 나가.” 
 
엄마가 방문을 닫고 나가자, 민수는 책상에 엎드려 울었다. 지우개를 삼킨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PC방으로 와.” 민수의 친구 K가 말했다. 
 
“알겠어, 기다려.” 민수는 터벅터벅 걸어, 학원 근처 PC방으로 들어갔다. 
 
PC방을 한 바퀴 돌아봐도 K와 친구들이 없었다. 민수는 K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야?” 
 
민수가 물었다. 
 
“아, 우리 밖으로 나왔어. 분식점으로 와.” 
 
K가 말했다. 
 
민수는 슬슬 짜증이 밀려왔다. 때마침 지나가던 택시를 잡아타고, 분식점 앞에 내렸다. 분식점에서도 친구들은 보이지 않았다. 
 
민수는 다시 K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야?” 
 
“우리 다시 PC방으로 왔어. 빨리 이쪽으로 와. 우리 지금 세 명이라, 한 명 더 필요해. 최대한 빨리 와라.” 
 
민수는 화가 치밀었다. 
 
PC방에서 마주한 친구들은 게임에 빠져있느라 민수가 온 것도 몰랐다. 민수가 K의 옆자리에 앉았다. 
 
K가 말했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조금만 기다려. 이 판 끝나면, 2 대 2로 붙자.” 
 
민수는 K의 옆에 앉아, 인터넷 브라우저를 켜면서 짧게 말했다. 
 
“알겠어.” 
 

 
“화나지 않았을까? 보통 고등학생이면, 욕하고 소리 지르고 난리 한 번 났을 텐데….” 
 
내가 민수에게 물었다. 
 
“화는 났지만, 표현할 수 없었어요.” 
 
민수가 말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어?” 
 
“두려웠던 것 같아요.” 
 
“무엇이?” 
 
“친구들이 나를 따돌릴까 봐요. 예전에도 그런 적이 있어요.” 
 
“그 친구들이?”
 
“아니요. 중학생 때 친구들이요. 제가 화를 한 번 냈는데, 친구들이 나를 멀리했어요. 중학교 2학년 때 있었던 일인데, 졸업할 때까지 혼자 다니고, 혼자 밥 먹었어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어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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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려 간 만화책 언제 갖다 줄 거야?” 
 
민수가 L에게 물었다. 
 
“아, 깜빡했다. 내일 갖다 줄게.” L이 대답했다.  
 
“자꾸 왜 그래?” 
 
“뭘? 내일 준다고 했잖아.”
 
“그 소리 벌써 세 번째야.”
 
“뭐래? 갖다 준다고 이 새끼야.” 
 
L은 민수의 멱살을 잡았다. 
 
민수와 L은 서로가 휘두른 주먹에 얼굴이 상했다. 민수가 L을 힘으로 눌러 넘어뜨렸다. L의 위에 올라타, 주먹으로 L의 얼굴을 때리기 직전이었다. 
 
그 순간, 눈앞이 번쩍했다.
 
L의 절친, C가 주먹으로 민수의 관자놀이를 가격한 것이다. 민수는 의식을 잃고 쓰려졌다. L과 그의 친구들이 민수를 사정없이 짓밟았다. 
 
만화책을 돌려달라는 말 한마디, 그 대가는 혹독했다. 친구들은 민수를 괴롭혔다. 같이 어울려주는 친구 하나 없이 중학교를 쓸쓸히 졸업했다. 
 

 
“그래서, 말을 못 했어요.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긴장돼요. 내가 뭔가 작은 실수라도 하면, 친구들이 나를 어떻게 하지 않을까 두렵기도 하고….” 
 
나는 민수에게 중학교 시절 그 친구들의 이름을 묻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 달려가, 그 녀석들을 박살 내주고 싶었다. 
 
나는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고, 민수에게 물었다. 
 
“솔직하게 한 번 말해주지 않을래? 다시 PC방에 찾아갔을 때,  미안한 내색 하나 없던, K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뭐였을까?” 
 
민수는 생각에 잠겼다. 
 
“글쎄,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요? 막상, 말을 하려니까 생각이 잘 안 나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떡였다. 
 
민수가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다, 두 손을 겹쳐서 깍지를 끼더니 생각이 났다는 듯 말했다.
 
“어차피 다시 PC방으로 올 거면, 분식집으로 왜 부른 거야? 무슨 똥개 훈련시키는 것도 아니고.” 
 
“지금 감정이 어때?” 
 
“말하고 나니까 그냥 시원한데….”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줄래?” 
 
“솔직히 저는 제가 친구들에게 말을 잘 못하고, 제 표현을 못 하는 게, 집 안에서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해요. 저는 외동이고, 부모님과도 대화를 별로 안 하니까요. 제 감정, 제 생각을 표현할 줄 모르는 것 같아요. 혼자만 계속 답답하고….” 
 

 
민수가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어느 날, 도둑이 든 것처럼 집 안이 어수선했다. 
 
당황한 민수는 큰 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집에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다급하게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당황해서 닫지 못한 현관문 앞에 아빠가 나타났다.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였다. 비닐봉지에 소주와 맥주, 오징어와 땅콩 같은 것들이 담겨있었다. 
 
“엄마는요?” 
 
아빠는 대답하지 않았다. 소주 병을 손에 쥔 채, 벌컥벌컥 들이켜고, 손등으로 입술을 닦았다. 여전히, 현관 앞에 기댄 채였다. 
 
“엄마는 어디 갔냐고요?” 
 
아빠가 소주 병을 현관 대리석 바닥에 내리꽂으며 소리를 질렀다. 소주 병이 깨지면서 유리 파편이 사방에 흩어졌다.  
 
“몰라, 이 새끼야. 내가 어떻게 알아?” 
 
민수의 예상이 맞았다. 엄마는 급하게 짐을 챙겨 집을 나간 것이다. 
 
민수가 수능을 마칠 때까지 곁에 있어주고 싶었던 엄마의 바람은 물거품이 되었다. 
 
민수는 아빠를 밀치고, 밖으로 걸어나갔다. 계단을 뛰어내려가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의 전화기는 꺼져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민수는 계단을 헛디뎌 우당탕 넘어지고 말았다. 민수에게는 일어날 기운이 남아있지 않았다. 엎드린 채로 엉엉 울었다. 
 
엄마와 함께 살고 싶었던 것이 민수의 바람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엄마와 따로 나와 살고 싶었다. 민수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민수는 그날 밤, 엄마를 잃고 자신을 잃었다. 
 

 
“민수야, 엄마야.” 
 
일주일이 지나고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 어디야?” 
 
“지금 독서실 앞이니까, 얼른 내려와.” 
 
민수는 번개처럼 계단을 뛰어내려와 엄마 앞에 섰다. 
 
“엄마!”
 
민수는 어린아이처럼 엄마를 끌어안았다. 엄마도 민수를 끌어앉고 소리 없이 울었다. 엄마를 끌어안은 채로 민수가 물었다. 
 
“엄마, 어떻게 된 거야? 왜 갑자기 집을 나갔어?” 
 
엄마는 민수에게서 몸을 떼어내고 조용한 곳에 앉아 대화를 나누자고 말했다. 두 사람은 독서실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았다.
 
엄마가 민수에게 그날 밤의 일을 말했다.  
 

 
민수의 아빠는 여느 때처럼,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왔다. 민수의 엄마는 빨래를 개고 있었다. 민수의 아빠는 다짜고짜 엄마에게 시비를 걸었다. 
 
짜증이 난 엄마는 아빠의 말을 무시했다. 엄마가 아빠를 무시하자, 아빠는 이성을 잃었다. 엄마가 개놓은 빨래를 발로 차서 헝클어뜨렸다. 
 
엄마는 아빠를 쳐다보지도 않고, 빨래를 주섬주섬 집어 들었다. 다시 자리에 앉아, 침착하게 빨래를 갰다. 
 
아빠는 엄마를 사정없이 때렸고, 엄마는 아빠에게 달려들었다. 감정이 격해진 아빠는, 주방에서 칼을 꺼냈다. 
 
엄마에게 칼을 휘두르며, 같이 죽자고 말했다. 엄마는 어디 한 번 죽여보라며, 목에 핏대를 세우고 아빠를 자극했다. 
 
아빠가 칼로 엄마를 내리쳤다. 엄마가 팔로 얼굴을 가렸다. 칼은 엄마의 팔 등에 부딪히고 멈췄다.
 
그 순간 아빠는 하얗게 질렸다.
 
아빠는 엄마를 위협할 생각이었다. 실제로 칼이 엄마의 몸에 닿을 줄을 몰랐던 것이다. 
 
칼날 부위가 아닌 칼등이 엄마의 팔에 내려앉았지만, 이미 늦었다. 엄마 눈에 아빠는 짐승이었다. 
 
엄마는 아빠를 밀쳐내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아빠가 뭐 하는 짓이냐고 힘으로 뜯어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이번에 칼을 집어 든 사람은 엄마였다. 칼을 휘두르며, 아빠에게 소리쳤다. 
 
“나 한 번만 더 건드리면, 그때는 죽여버릴 거야.” 
 
아빠는 물러섰다. 
 
엄마가 작별 인사도 없이 민수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엄마의 말이 끝나고, 민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집으로 뛰어가 아빠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중요한 사람은 엄마였다. 
 
민수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그럼 이제 집에 안 오는 거야?” 
 
“응, 그럴 것 같아.” 
 
“그럼, 지금은 어디서 지내?”
 
“나중에 알려줄게. 지금은 말 못 해.” 
 
“그럼, 어떻게 먹고살아? 돈은?” 
 
“그것도 천천히 생각해보려고….” 
 
민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뿐이었다. 
 
잠시의 침묵을 깨고, 엄마가 말했다. 
 
“민수야. 넌 엄마 이해하지? 엄마가 왜 이럴 수밖에 없는지….” 
 
엄마가 울먹거렸다. 
 
민수는 엄마의 손을 잡고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전에도 말했잖아. 나는 괜찮다고. 엄마는 엄마 인생 살아. 나도 조금만 시간 지나면 독립할 거야. 그때는 내가 다시 엄마 찾으러 갈게. 우리 같이 살자. 조금만 참아, 엄마.”
 
민수의 말이 끝나자 엄마는 흐느껴 울었다. 그리고, 조금은 단호한 말투로 민수에게 말했다. 
 
“민수야. 엄마는 걱정하지 마. 너도 네 인생 살아야 해. 엄마는 씩씩하게 잘 살 거야. 너 가고 싶은 대학에 가고, 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야 해. 엄마 때문에 희생하지 말고, 알겠지?” 
 
민수는 불안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민수에게 말했다. 
 
“민수야, 너무 늦었다. 우리 이제 일어나자. 아빠한테는 엄마 만났다는 말 하지 마, 알겠지?” 
 
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 언제 다시 만나?” 
 
“엄마가 다시 전화할게.” 
 

 
민수는 독서실에 올라가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아빠에게 달려가 따질 작정이었다. 모든 것이 아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민수 역시 맨 정신으로 대화할 수 없었다. 냉장고를 열어, 아빠가 사다 놓은 술을 사정없이 마셨다.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졌다. 머리가 어지러워서 똑바로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퇴근한 아빠가 집에 들어와서, 술에 취한 민수와 마주했다. 
 
아빠는 기가 막혔다. 
 
“너 지금 뭐 하는 짓이냐?”
 
“아빠 때문이야.” 
 
“뭐? 이게 미쳤나?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아빠 때문에 엄마가 나갔어.”
 
그 순간 뭔가 번쩍했다. 아빠가 민수의 뺨을 때린 것이다. 
 
“정신 차려, 이 새끼야. 어디서 아빠한테 술 주정이야!”
 
“아빠한테 배웠지. 내가 어디서 배워?” 
 
민수는 바닥에 넘어진 채로, 소금에 담근 미꾸라지처럼 온몸을 비틀었다. 머리를 쥐어뜯고, 발버둥을 치면서, 오열했다. 
 
아빠는 바닥에 누워 미쳐 날뛰는 민수에게 차가운 물 한 바가지를 쏟아부었다. 
 
“정신 차리고, 여기 앉아 봐.” 
 
민수는 어안이 벙벙했다. 몸을 일으켜 앉았는데, 머리카락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래서, 엄마 지금 어디서 지낸다고 말해주디?” 
 
민수는 고개를 저었다. 
 
“아빠가 예전에 말했지. 어른들 문제니까 끼어들지 말라고.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고 말한 거 기억나지?” 
 
민수가 고개를 끄떡였다. 
 
“3년 전부터, 엄마가 이상했어. 처음에는 내가 오해하나 싶었어. 엄마가 아니라고 잡아떼니까, 뭐 방법이 있어야지.” 
 
민수의 정신이 또렷해졌다. 아빠의 말을 토씨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듯, 상체를 바로 세웠다. 
 
“그러다, 큰맘 먹고 흥신소에 부탁을 했더니, 아니나 달라? 딱 걸렸지. 진명이 삼촌, 너도 알지? 그 새끼랑 네 엄마랑….”
 
민수는 고개를 가로 저였다. 그럴 리 없다고 말하려던 참이었다. 
 
“엄마가 왜 어디있는지 말 못하는 지 알아? 그 자식이랑 같이 살림 차린 거야. 네 눈에는 엄마가 천사로 보이지? 엄마가 뭐 집에 붙어있은 줄 알아? 나 회사 가고, 너 학교 가면 엄마도 집에 없었어. 아빠가 맨 정신으로 살 수 있었겠냐? 아빠 인생은 3년 전에 끝났어.” 
 
아빠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인생의 쓴맛을 담배 연기로 누그러뜨렸다. 
 
“내가 너한테 별말을 다한다. 너는 신경 쓰지 말고 너 할 일이나 잘해. 정신 똑바로 차리고, 대학이나 가라고. 
 
아빠가 뼈빠지게 번 돈 너한테 다 쓰는 거야. 꼭 성공해서, 보란 듯이 잘 살아. 아빠처럼 살지 말고, 알겠어?” 
 
민수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바닥에 떨어지는 것이 물방울인지 눈물방울인지, 민수조차 알 수 없었다. 
 

 
정식 상담에서 민수를 만난 것이 아니었다. 
 
청소년 수련회 강사로 초대를 받아 저녁 집회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을 때, 담당 전도사님이 조심스럽게 민수의 이야기를 꺼냈다. 
 
수련회 일정 중에, 잠시 시간을 내어 민수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느냐는 부탁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물놀이를 할 시간에, 민수와 조용히 앉아 두 시간 정도의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나, 두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민수의 이야기가 끝나고 남은 시간은 고작 10분이었다. 
 
산더미 같은 질문을 뒤로하고, 나는 억지로 대화를 마무리해야 했다. 
 
나는 아빠의 관계, 엄마와의 관계, 그리고 친구들과의 관계를 언급했다. 
 
교과서에서 나올 법한 진부한 말들이었다. 듣는 사람이 마음만 답답해지는 그런 말들이었다. 
 
고맙게도, 민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떡이며 경청했다. 
 
다음 집회 일정 때문에, 우리는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했지만, 못내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나는 민수의 등을 두드려주면서, 힘내라고 말했다. 
 
민수는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고, 출입구를 향했다. 나는 그 자리에 선 채로, 민수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민수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돌아서서 내게 말했다. 
 
“그런데, 목사님…. 저도 치유될 수 있을까요?” 
 
나는 블랙홀에 몸이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민수는 어쩌면 나 자신이었다.
 
내가 민수를 향해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갈라진 자아가 하나로 합쳐지는 것을 느꼈다. 
 
그대로 민수를 내보낼 수 없었다. 나는 민수에게 다가가 민수를 끌어안았다. 
 
민수는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그리고,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나도 목사님처럼, 치유돼서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좋은 아빠가 되고 싶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어요. 부모님처럼 살고 싶지 않아요. 제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나는 민수의 손을 꼭 붙잡고, 고개를 끄떡였다. 
 
내가 위로랍시고 한마디를 내뱉는다면, 민수의 어깨에 내려앉은 희망이 깃털처럼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민수가 나가고, 나는 의자에 힘없이 걸 터 앉았다. 
 
나는 인정해야 했다. 민수는 내게 모든 것을 말했지만, 나는 민수에게 진실을 말하지 못했다. 
 
정작 나 자신은 치유되지도 않았고, 좋은 아빠도 아니었으며, 행복한 가정을 이루지도 못했다. 
 
아버지와 단둘이 마주 앉으면 어색함이 흐르고, 어머니를 향한 연민으로 잠을 뒤척인다. 
 
아내에게는 여전히 서투른 남편이고, 자녀들에게는 욱하고 사과하는 일을 반복하는 일관성 없는 아빠다. 
 
오히려, 나는 민수에게 묻고 싶었다. 
 
‘민수야. 목사님도 치유될 수 있을까? 내가 자격 있는 사람일까? 언젠가 네가 아빠가 되어 나타난다면, 나도 그때 진실을 말할게.’  
 
무능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예수님을 찾았다. 집회 장소 어딘가에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앉아 있는 민수를 찾아가셔서, 따뜻하게 안아주시기를 바랐다.  
 
또다시 아이러니였다. 
 
정작 나는 방문을 열고 나갈 용기가 없었다. 작은 방 안에 조용히 머무르고 싶었다. 잠시라도, 감정을 추스르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없었다. 
 
문밖에서, 누군가 노크를 했다. 담당 전도사님의 목소리가 문 너머로 들려왔다. 
 
“목사님, 이제 나가실 시간입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나는 자격을 갖추지 못한 채로, 사람들 앞에 섰다. 
 
내 시선이 군중을 향했다. 아이들은 와글와글 시끄러웠다. 밝은 조명에 눈이 부셨다. 
 
나에게는 오직 한 사람, 상처 입은 한 사람만이 중요했다. 내 관심은 민수를 향했다. 
 
저 멀리 맨 뒷자리에, 민수가 보였다. 민수의 옆자리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다. 민수는 말없이 조용했다.  
 
그날 밤, 설교는 기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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