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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부모・자녀

강박증에 시달려요

강박증이 있어요.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저도 모르게 아무 연관 없는 행동을 하면서 불안을 달래요. 예를 들면, ‘내가 지금 이 컵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기면 잘 될거야.’ , ‘내가 지금 설거지를 하면 그 일이 잘 될거야.’ 아무 상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생각과 행동을 멈출 수가 없어요.   
 
솔직하게 말해주셔서 감사해요.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자신이 강박증이라고 결론을 내린 근거가 무엇인가요. 병원에 가셔서 진단을 받으신 건가요, 아니면 상담 센터에서 전문상담사가 말해준 건 가요. 만일 그런 경우라면, 지금처럼 지속적인 치료를 받기를 권장합니다.   
 
하지만, 자매님이 스스로 강박증이라고 진단을 내렸다면 함게 나누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크고 작은 강박 증세가 있습니다. 나도 예외가 아니지요. 자동차를 삐뚤게 주차하면 마음이 편하지 않아요. 다시 시동을 켜고 선을 맞추어 주차합니다. 이유는 모릅니다. 그냥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러니까 괜찮다. 그런 말이 아닙니다. 나는 자매님의 문제를 가볍게 대하고 싶지는 않아요. 다만, 다른 관점을 가져보면 어떨까 제안하는 겁니다. 만약 자매님이 스스로를 강박증 환자로 받아들이면, 그 순간부터 자신을 고치려 들겁니다. 기계가 아닌데 뜯어 고치려고 하는 겁니다. 
 
강박적인 생각을 하면 자책합니다. 물건이 아니니까 버리지도 못하고, 고치자니 고칠 수도 없고, 그냥 데리고 삽니다. 괴로운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강박적인 생각 그 자체보다 중요한 건 강박을 대하는 관점입니다. 자신이 강박증 환자라고 정의내리지 마세요. 
 
나는 진단과 치료를 위한 목적으로 진단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문가들끼리 내담자의 정보를 공유할 때 편합니다. 하지만, 상담실 안에서 진단명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우울증, 불안 장애 등의 말을 쓰기 시작하면 환자가 스스로를 정의내립니다. “나는 강박증이다.” 이렇게 하면, 라벨링이라는 인지 오류에 빠질 위험이 있어요. “나는 원래 그렇다.”라고 정의내리면, 치료 기간이 더 오래 걸립니다. 
 
내담자가 상담실에 들어오기 전에, 자가 진단을 내린 경우도 많아요. 오히려, 진단을 내려보면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 자신을 특정 진단명으로 정의내리면, 그다음부터는 그안에 머물 수 있습니다. 우울증, 불안 장애라는 진단명 안으로 쏙 들어가버리면, 밖으로 빼오기가 더 힘듭니다.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나는 강박증이 있다. 나는 우울증이 있다.” 스스로를 고치려고 듭니다. 다르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는 결핍이 있다. 내 안에 결핍이 자꾸 강박적인 사고를 하게 만든다.” 같은 말이라도 자신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집니다. 자신을 고치려 들지 않아요. 자신의 결핍을 채우려 합니다.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안정적인 환경을 만들 수 있어요. 
 
강박적인 사고를 할 때마다, “너 또 그랬네.”가 아니라 “나 또 왜 이러지.”라고 생각이 달라지만, 일단 성공입니다. “무엇 때문에 이러지, 뭐가 불안하지, 뭐가 무섭지.” 질문에 질문이 꼬리를 문다면, 그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결국, 두려움의 실체를 마주하게 될 테니까요. 
 
그림자만 봐도 놀라는 상황에서는 실체에 다가갈 수 없습니다. 실체가 두려워서 그림자 조차 쳐다보고 싶지 않은 겁니다. 그림자에 미리 놀랄 필요 없습니다. 실체를 확인하고 놀라도 늦지 않아요. 그림자의 주인이 곰인형인지, 실제로 굶주린 야생 곰인지 일단 가까이가서 확인해봐야 합니다. 나는 곰돌이 인형에 여러 번 놀랐습니다. 아직까지 실제 야생 곰을 본 적은 없습니다.    
 
자신을 강박증 환자로 정의내리지 말아주세요. 강박이 아니라 결핍이 있는 겁니다. 고치려 하지 마시고, 돌봐주세요. 시간 오래 걸립니다. 포기하지 말아주세요.

당신의 오늘이 있기까지

From 어린 사무엘 
 
누구나 부모님께 서운한 일이 있겠지요. 나도 마찬가지였어요. 내가 젖을 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나를 하나님께 바쳤어요. 하지만, 나는 어머니의 순종을 이해하기 어린 나이였지요. 
 
나는 항상 어머니의 품이 그리웠어요. 어머니가 한 번씩 예배하러 올라오시면, 나를 마주 앉혀 놓고,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어요. 어머니와 함께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낸 적이 없어요. 말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지요. 
 
어머니가 왔다가 떠나간 그날 밤은, 외롭고 슬퍼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어두운 성막 안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혼자 많이 울었어요. ‘어머니는 왜 나한테 한 번도 묻지도 않고, 나를 이런 곳에 버려두었을까?’ 
 
어머니는 항상 말했어요. 내가 하나님의 응답으로 태어난 아이라고. 하나님과의 약속이니, 어쩔 수 없다고.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속상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어요. 엘리 제사장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어요. 
 
“사무엘아!”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엘리 제사장에게로 달려갔어요.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부르셨습니까?” 
 
하지만, 엘리 제사장은 저를 부르지 않았다고 말했어요. 
 
“나는 너를 부르지 않았다. 돌아가 자라.”
 
다시 침대에 누워 눈을 붙이려 하는데, 또다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어요. 
 
“사무엘아!”
 
세 번이나 같은 일이 반복되었어요. 세 번째 엘리 제사장에게 찾아갔을 때, 엘리 제사장은 침대에서 비대한 몸을 일으키며, 내게 말했지요. 
 
“잠자리로 돌아가거라. 다시 너를 부르는 소리가 나면 ‘여호와여, 말씀하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제가 듣겠습니다’라고 말하여라.”
 
엘리 제사장의 말을 듣는 순간, 온몸에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움찔했어요. ‘내가 지금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어머니에게 말씀하신 그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셨다고?’ 
 
나는 침대에 누워있을 뿐,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어요. 이리저리 뒤척이며, 빨리 아침이 되기를 바랐지요. 하지만, 또다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어요. 
 
“사무엘아, 사무엘아”
 
나는 엘리 제사장이 시키는 대로, 침대에서 내려와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대답했어요. 
 
“여호와여, 말씀하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제가 듣겠습니다.”
 
하나님은 내게 엘리 제사장과 그 가문에 대해, 자세한 말씀을 전해주셨어요. 
 
“내가 이스라엘에 어떤 일을 하려고 한다. 그 일을 듣는 사람은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그 날에 내가 엘리와 그의 집안에게 말했던 일을 다 이룰 것이다. 하나도 빠짐없이 이룰 것이다.
 
엘리는 자기 아들들이 나쁘다는 것을 알았다. 또 자기의 아들들이 나를 배반한 것도 알았다. 그러나 엘리는 그들을 말리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엘리의 가족을 영원토록 벌주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엘리의 가족에게 이렇게 맹세했다. ‘엘리 가족의 죄는 제물이나 예물로도 절대로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나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어요. 아침이 되자마자, 나는 언제 그랬냐는듯이 평소처럼 여호와의 집 문을 열었어요. 엘리 제사장이 어젯밤 일을 까마득히 잊어버렸기를 바라면서요. 
 
내 바람과는 달리, 엘리 제사장은 내가 문을 열기가 무섭게 나를 찾으셨어요. 나를 불러 세우고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물었지요. 
 
나는 두려웠지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했어요. 누가 가르쳐준 적은 없지만, 웬지 그래야 할 것 같았어요. 하나님의 말씀은 말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이니까요. 
 
엘리 제사장은 내 말을 끝까지 듣더니,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어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차분하게 말했지요. 
 
“그분은 여호와시다. 여호와께서는 스스로 생각하셔서 옳은 대로 하실 것이다.”
 
엘리 제사장이 측은해 보였어요. 제발 그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지만, 내가 그에게 전한 모든 메시지는 현실이 되었어요. 엘리 제사장과 그의 두 아들은 심판을 받았어요. 
 
그렇게 하나님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어요. 그날 이후로, 하나님은 수시로 나를 찾아와 말씀해 주셨어요. 나는 하나님께 들은 말씀, 있는 그대로를 사람들에게 전했어요.  
 
그 모든 말씀은 모두 현실이 되어 이루어졌어요.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의 사람들이 나를 예언자라고 불렀어요. 나는 그저 하나님께 들은 말씀을 전했을 뿐인데, 사람들은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했지요. 
 
어머니를 만나주신 하나님께서 나를 찾아오셨을 때, 그제서야 어머니의 깊은 사랑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동안 어머니를 적지 않게 오해했거든요. 
 
‘아무리 하나님이 좋지만, 어떻게 자식한테 이렇게까지 하시나?’ 
 
어머니가 자녀인 나를 버리고, 하나님을 선택한 것 같아서, 속으로 원망했지요. 하지만, 이제는 분명히 알아요. 어머님이 하나님께 순종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찾아와 만나주신 것이지요. 
 
어머니의 기도와 헌신이 없었다면, 오늘의 나도 없었을 거예요. 하나님께서 나를 찾아와 만나주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예요. 어머니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되어주셨어요. 
 
세월이 흐르고 장성하면, 어머니의 신앙이 맹목적으로 보일 거예요. ‘뭘 저렇게까지 하시나?’ 어머니의 신앙에 동의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거 아세요? 
 
어머니는 자신을 위한 기도를 할 줄 몰라요. 당신 자신을 위한 기도를 잊은 지 오래거든요. 어머니는 자녀를 위해 기도해요. 자녀의 이름을 부르고, 목이 메어 한 마디도 못하다가, 잘못한 기억이 떠오르면, 엉엉 울어요. 
 
당신이 주님을 만났다면, 어머니에게 감사하세요. 당신의 오늘이 있기까지, 어머니가 눈물로 기도했어요. 당신이 이룬 모든 것, 하나님이 어머니의 기도에 응답하신 거예요.  
 
어머니를 만나시면, 말없이 따뜻하게 안아주세요. 그러면, 내가 당신에게 편지를 쓴 보람이 있을 거예요. 내 편지를 끝까지 읽어준 당신에게 고마워요. 

아빠에게 소리를 질렀어요

아빠가 큰 수술을 세 번이나 받았어요. 병원에서는 더 이상 술을 마시지면 위험하다고 했어요. 엄마가 속상해서 전화를 했어요. 아빠가 어제 저녁 술을 마셨다고. 처음으로 아빠에게 소리를 질렀어요. 이제 그만하고 싶어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요. 
 
먼저 자매님을 위로하고 싶습니다. 삶의 무게가 느껴집니다. 아빠에게 소리를 질렀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겁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빠도 아마 아실 거예요. 딸이 아빠를 사랑하니까 걱정돼서 그런 거라고. 
 
엄마가 딸에게 전화를 했다는 사실은 여러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 엄마가 딸에게 도움을 요청한 한 것 같아요. 단지 아버지가 술을 마셨다는 사실을 정보로서 알려준 것과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말하는 건 차원이 다릅니다.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곧바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소리를 질렀다는 사실은 자매님이 어머니를 도와줬다는 의미가 있어요. 엄마가 아무리 말해도 소용 없으니까 딸이 나선 겁니다. 해결사 역할을 하신 거예요.  
 
아빠에게 소리를 지르고 나서, 자매님이 느끼는 감정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아빠가 술을 마셔서 실망스러워요.”. “아빠가 술을 마셔서 정말 화가 나요.”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자매님은 “이제 더 이상 못하겠어요. 버틸 수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자매님이 현재 상황의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는 뜻입니다. 
 
건강을 챙겨야 할 때에, 술을 마신 아버지가 계십니다. 딸에게 도움을 요청한 어머니가 계십니다. 자매님은 부모님을 돌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매님을 돌봐줄 사람이 없어 보여요. 외롭고 힘든 마음이 내게 전해집니다. 
 
아버지가 병원 안에서 세 번의 수술을 받으시는 동안, 자매님은 병원 밖에서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셨을까요. 아버지는 아버지 대로, 자매님은 자매님 대로 힘든 시간을 보내신 거예요. 자매님은 어떻게든 아버지를 살려보고 싶으신 거예요. 그 안에는 진심 어린 사랑이 있습니다. 
 
조심스럽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자매님도 자신도 살려주세요. 두 발로 걸어다닌다고 해서 멀쩡한 게 아니에요. 두 발에 모래 주머니, 어깨에 쌀 가마니 짊어지고 걸어다니면 온몸이 상해요. 무거운 짐을 내려 놓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살 수 있어요. 
 
자녀가 부모님를 책임지는 건 당연하지만, 지금 자매님에게는 다른 말을 하고 싶어요. 부모를 책임지지 마세요. 부모님을 예수님께 떠넘기세요. 모든 책임을 예수님께 떠넘기세요. 말처럼 되지 않을 거예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이를 악물고 해내야 합니다. 그래야, 조금이나마 자신을 되찾을 수 있어요. 
 
급류에 휩쓸린 사람을 구하려면, 물살 밖에 있어야 합니다. 앞뒤 생각 안하고 구해준다고 들어가면, 같이 물살에 휩싸입니다. 급한 마음에 소리라도 질러보지만, 소용 없습니다.  그러다 죽는다고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질러도 급류에서 휩쓸린 사람은 혼자 나올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 살려달라고 외치세요. “우리 아빠 엄마 살려달라”고 목이 쉬도록 소리지르세요. 예수님이 “내 아들, 내 딸 내가 구하겠다”고 말씀 한 마디만 해주시면, 자매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어요. 딸의 자리로 돌아가세요. 자매님의 부모님,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자식된 도리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에요. 최선을 다해 부모님을 돌봐주세요. 하지만, 지금과 같은 방식은 아닙니다. 자매님을 먼저 돌봐주세요. 주님께 넘치는 사랑을 받으세요. 기도 시간 만이라도 모든 책임을 주님께 떠넘기세요. 그래야, 부모님을 오랫동안 돌볼 수 있습니다.

당신은 좋은 부모인가요

당신은
좋은 부모인가요?
 
네, 물론이죠.
나는 좋은 부모입니다.
 
두 번 자녀를 키워도
이렇게 못 키워요.
 
우리 애들 부족한 거 없어요.
나는 얼마나 어렵게 컸는데.
 
내가 해줄 말이 별로 없네요.
그럼, 안녕히.
 
당신은요?
당신은 좋은 부모인가요.
 
아니오.
나는 좋은 부모가 아니에요.
 
애들한테 너무 미안해요.
못 해준 게 너무 많아요.
 
나 같은 부모 만나서
우리 애들 고생 많이 했어요.
 
그렇군요.
대화 좀 할까요, 우리.
 
당신은 좋은 부모일지도 몰라요.
한 가지만 조심한다면.
 
그건 뭔가요?
죄책감입니다.
 
죄책감이 자녀를
망칠 수 있어요.
 
자녀 앞에서
당당한 사람 불안해 보여요.
 
자신감 없는 게
오히려 다행이에요.
 
당당한 부모를
만난 적이 있어요.
 
당당한 부모는   
주눅 든 자녀가 있어요.
 
나는 최선 다한다.
넌 이게 뭐냐.
 
왜 노력 안 하냐.
결과가 이게 뭐냐.
 
자녀는 고개만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못해요.
 
그런데, 참 이상하죠.
정반대의 경우도 있어요.
 
주눅 든 부모 옆에는
당당한 자녀가 있어요.
 
내가 이렇게 된 게
다 부모 때문이다.
 
내 인생 망가졌다.
내 멋대로 살 거다.
 
터무니없는 말을 하고
그 말을 믿고 살아요.
 
부모가 죄책감을 느끼는 사이
자녀는 책임감에서 벗어난 거죠.
 
부모가 당당하면
자녀가 주눅 들고
 
부모가 주눅 들면
자녀가 당당하니
 
어떻게 할까요.
답답하죠, 정말.
 
내 이야기 잠시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내 부모님은 나에게
늘 미안하다고 말해요.
 
아니라고 괜찮다고 말해도
소용없어요.
 
많이 우세요.
난 속상하죠.
 
나는 진심이에요.
정말 감사해요.
 
내 부모님은 나에게
예수님을 전해줬어요.
 
모든 것을 받은 거죠.
예수님을 선물 받았으니까.
 
아버지가 시골에서 목회할 때
성도 한 명 없어요.
 
그때는 몰랐죠.
정말로 몰랐죠.
 
내게 복음이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처받은 내가 자녀를
잘 키우고 있을까요.
 
정말 모르겠어요.
확신이 없어요.
 
언젠가 청년이 된 내 아들과
대화하는 장면을 상상해요.
 
아빠, 나 아빠한테
하고 싶은 말 있어.
  
아빠가 나 사랑하고
아빠가 최선을 다했다는 거 알아.
 
하지만, 아빠가 했던 말과 행동이 내게
상처 될 때도 있었어.
 
솔직히 말하면,
나 아빠처럼 살고 싶지 않아.
 
나 이해해줄 수 있지,
아빠?
 
하지만, 나….
예수님처럼 살고 싶어.
 
그래, 아들.
아빠는 괜찮아.
 
아빠처럼 살지 말고
예수님처럼 살아다오.
 
속상해야 하는데.
서운해야 하는데.
 
아빠는 왜 이렇게
눈물이 나고 행복할까.
 
그날을 꿈꾸면서 나는
자녀에게 꾸준히 예수님을 전해요.
 
내 상처가 혹시라도
자녀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무섭고 두려울 때마다
예수님께 말해요.
 
나 대신 내 자녀들
잘 키워주세요.
 
당신과 함께 하고 싶어요.
약속해요, 우리.
 
죄책감이 찾아올 때마다
우리 자녀에게
예수님의 따듯한 사랑 전해주기로.

딸에게 장애가 있어요

막내 딸에게 장애가 있어요.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삶이 망가지기 시작했어요. 제가 생각한 결혼 생활은 이게 아니었는데, 모든 게 엉망이 된 것 같아요. 어릴 적 아빠가 일찍 돌아가셨어요. 엄마가 고생했어요. 엄마의 스트레스를 제가 다 받으며 자랐어요. 엄마로부터 탈출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결혼을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숨쉬기 조차 힘드네요.
 
딸에게 사랑을 듬뿍 주고 싶은데, 쉽지 않아요. 우울증이 온 것 같아요. 다른 사람 도움 없이 장애가 있는 딸을 키우면서 재활, 육아, 살림은 혼자 다 하고 있어요. 딸에게 스트레스를 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상처가 되물림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됩니다. 정말 행복하게 살고 싶었어요. 아이를 꽃처럼 예쁘게 키우고 싶었는데, 아이들을 사랑으로 보듬어 줄 수 없어서 항상 죄를 짓는 것 같아요.
 
자매님, 지금 정말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세요. 자매님이 겪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거예요. 몸이 불편한 아이를 키우며 힘든 시간을 보내던 내담자를 만난 적이 있어요. 아이에게 미안하다며 흐느껴 우는 모습에 나도 따라 울었어요. 자신 때문에 아이가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자책했어요. 그런 아이를 부담스러워하는 자신을 보며 하나님 앞에서 죄책감을 느끼며 고통 받았죠. 그분이 느꼈던 고통의 무게는 상상을 초월했어요. 자매님이 보내주신 사연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그분과의 기억 때문이에요.
 
가장 먼저 자매님께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요. 자매님은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죄책감을 느끼시면 안돼요. 무작정 덮어 놓고 위로하는 게 아니에요. 내 나름의 근거가 있어요. 내게 질문하신 이유는 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일 거예요.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이 있다고 믿는 거죠. 아이들에게 더 나은 삶을 선물하고 싶은 거예요. 아이들의 행복이 곧 자신의 행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보다 좋은 엄마가 세상에 있나요? 나는 자매님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어요.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몸이 불편한 아이를 키우는 어려움이 몇 마디 위로하는 말로 쉬워지지 않기 때문이에요. 자매님이 몸이 아픈 자녀를 돌보며 살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잘 돌보며 살아야 해요. 그래야, 오래 동안 지치지 않을 수 있어요. 자매님의 상처를 돌보면서 아이를 돌보자고 말하고 싶어요.
 
자매님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 암투병을 했어요. 일찍 돌아가셨고, 자매님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어요. 어머니는 자녀들을 혼자 키우며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막내인 자매님이 희생양이었죠. 어머니의 스트레스를 받아주는 사람이었어요. 어머니를 이해하는 마음과 원망하는 마음이 뒤섞어 혼란스런 시간을 보냈고, 결혼이 탈출구였어요.
 
자매님이 자녀들에게 불편한 감정느껴서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짜증을 낼 때, 어머니와 자신이 겹치는 것 같아요. 아이에게 짜증 내고 화를 내는 상황은 어쩔 수 없는 거예요. 아픈 아이에게 짜증내고 화내도 괜찮다는 말이 아니라, 그만큼 육아가 힘들다는 말이에요.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 자매님의 욕구 깊숙한 곳에는 엄마처럼 아이들을 키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어요.
 
자매님이 몸과 마음이 치져서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고 있을 때, 그 장면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이 어떤 표정인가요? 인상을 찌푸리시며 화난 표정으로 자매님을 바라보신다면, 하나님을 오해하고 계신 거예요. 내가 생각하기에 하나님은 슬픈 표정으로 자매님을 바라보고 계실 것 같아요. “내 딸 너무 힘들어 보인다. 많이 힘들지? 너에게 힘이 되고 싶구나.”라고 말씀하시지 않을까요.
 
지금 이 순간은 상담자로서가 아니라 목사로서 말하고 싶어요. 자매님은 자매님의 엄마처럼 아이들을 키우지 않을 거예요. 예수님처럼 키울 거예요. 자매님이 부족하니까 엎드려 기도하면서 울잖아요.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어요. 하나님은 그 기도 받으실 거예요. 자매님이 최선을 다해도 부족한 거 있어요. 우리 부모가 어떻게 자녀들 앞에서 떳떳하겠어요. 하나님이 우리 자녀 길러 주실 거예요. 우리의 상처를 돌봐주시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아이들 덮어주실 거예요.
 
자매님 역시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기억해주세요. 하나님 앞에서 만큼은 무너져도 괜찮아요. 상처로 고통받는 우리를 돌보며 이끌어주시듯, 자매님의 딸 아이는 하나님이 돌보고 사랑해주실 거예요. 예수님의 사랑과 말씀으로 자신을 먼저 돌봐주세요. 자신을 돌볼 수 있어야 자녀를 돌볼 수 있으니까요.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아

하나님 사랑이
느껴지지 않아요.
 
하나님은
날 사랑하지 않아요.
 
사랑받은 적 있나요.
누구에게라도.
 
아무도 없었군요.
내 마음이 아파요.
 
내 부모도 날 사랑하지 않았어요.
이제 하나님도 날 거부해요.
 
하나님이라고 부르면
그나마 괜찮은데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면
마음이 불편해요.
 
아버지라고 하는 순간
복잡한 감정이 밀려와요.
 
무서운 아버지.
무관심 아버지.
 
그 아버지가
이 아버지가 아닌데.
 
이상하다.
참 이상하다.
 
외롭고
쓸쓸해져요.
 
그렇군요.
그럴 수 있어요.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을 수 있죠.
 
사랑받은 적 없어서
사랑받는 게 뭔지 모른다고 하셨죠?
 
자녀를
사랑하시나요.
 
조건 없이
사랑하신다고요.
 
자녀 대신
죽을 수도 있다고요.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했다면서
자녀를 사랑하는 이유가 뭔가요.
 
어디에서
시작된 사랑일까요.
 
당신 안에 사랑이 없잖아요.
사랑받지 못했다면서요.
 
자녀 대신 죽을 수 있다는 말,
진심이란 걸 알아요.
 
혹시,
정말 혹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랑
받은 적 있나요.
 
누군가 당신을 위해
대신 죽기라도 한 것처럼
 
당당해서
물었어요.
 
이제 아시겠나요.
당신은 사랑받고 있어요.
 
부모 사랑으로
하나님 사랑을 느낄 수 없다면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추적하세요.
 
상처투성이 당신도
자녀를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으면서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쉽게 결론 내릴 수 있나요.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사랑을 느껴보세요.
 
내 이야기
잠시 해도 될까요.
 
내 딸이 이마에 깊은 상처를 입어
피를 콸콸 쏟은 적이 있어요.
 
이 삼십 바늘 꿰매서
치료했어요.
 
딸을 지켜주지 못했단 생각에
나는 괴로웠어요.
 
밤이면 밤마다 딸이 잠들면
그 옆에서 울고 또 울었죠.
 
속상해 죽겠는데
하나님이 한 마디 툭 던졌어요.
 
네 딸 살이 찢기니 괴롭겠구나.
나도 내 아들 살이 찢길 때 괴로웠다.
 
온 세상이 멈춘 것처럼
고요했어요.
 
내가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내 딸이 다치지 않았다면.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토록 깊이 느낄 수 있었을까요.
 
부모인 우리는 자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어요.
 
나 외로워요.
당신은 어디 있나요.
 
당신이 하나님을 찾을 때마다
그가 말씀하시기를 바랍니다.
 
네가 네 자녀를 사랑하듯
나도 너를 사랑한다.
 
하나님,
하나님 아버지.
 
당신이 하나님을
어떻게 부르든지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이
당신에게 전해지기를 기도합니다.

딸이 결혼하고 신앙을 버렸습니다

딸이 믿지 않는 남편과 결혼했습니다. 주말마다 교회를 출석하지 않고 놀러 다니더니, 이제 신앙을 버렸습니다. 걱정이 돼서, 한 마디 했더니 자기는 그동안 엄마 신앙으로 교회 다닌 거라고 하네요. 마음이 아픕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먼저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당신의 아픈 마음, 하나님이 아십니다. 하나님께 아픈 마음 솔직히 표현해주세요. 딸이 하나님과 멀어질 때, 엄마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지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겁니다. 그저 위로만 할 수 없으니, 조심스럽게 내 생각을 말해보겠습니다. 
 
우리 함께 믿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딸은 당신의 딸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딸이니,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하나님이 절대로 외면하지 않으실 겁니다. 두렵고 걱정되지만, 우리 함께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조급하거나 자책하지 않습니다. 
 
조급하면 안 됩니다. 딸의 곁에서 조급하게 행동하고 말하면 딸은 입을 닫을 것입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신앙과 관련된 어떤 말도 듣지 않게 될 것입니다. 자책해서도 안됩니다. 엄마가 딸 앞에서 자책하면, 딸은 엄마에게 미안해서 드문드문 교회에 나갈 것입니다. 마지못해 나가는 것이니 지속하기 어렵습니다. 둘 중 어느 것도 바람직한 결론이 아닙니다.
 
딸의 친구가 되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자식이지만, 친구라고 생각해주세요. 아무리 친해도 친구 전도하기 어렵지요. 가까운 관계라고 생각했다가 교회 가자고 불쑥 말해버리면 어색해집니다. 딸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딸이라고 마음 편하게 교회 가라고 불쑥 말해버리면, 기분 나빠합니다. 처음에는 잔소리하지 말라고 짜증 섞인 반응이라도 해주지만, 잔소리에 익숙해지면 무시하듯 듣고 맙니다. 그러니, 좋은 친구가 되어주셔야 합니다. 딸이 언제 어디서든 믿고 찾을 수 있는 친구가 되어주세요. 
 
딸이 얼마나 힘든 시간 보내고 있을까요. 신혼에, 육아에, 시부모에 복잡할 겁니다. 엄마 한 사람 만이라도 딸의 온전한 친구가 되어준다면, 딸이 든든할 겁니다. 딸의 마음이 열릴 때까지, 아낌없이 사랑해주시고 돌봐주세요. 잃어버린 영혼 주께 돌아오기 어렵습니다. 딸이라고 예외가 아닙니다.    
 
엄마와 딸의 관계는 독특합니다. 엄마이기 전에, 딸이셨으니 누구보다 잘 아시겠지요. 애증의 관계라고 하면 설명이 될까요. 엄마와 딸 사이 사랑하는 마음, 서운한 마음이 엎치락뒤치락 합니다. 교회 다니라는 몇 마디 잔소리로 딸과의 소중한 시간을 희생하지 마세요. 딸과 함께 있는 소중한 시간에 예수님의 따뜻한 사랑 전해주세요. 
 
딸을 사랑하는 만큼 답답할 겁니다. “딸이 어렸을 때 신앙교육을 잘 시켰어야 했나, 믿지 않는 남편과 결혼한다고 했을 때 죽기 살기로 말렸어야 했나.”온갖 파괴적인 생각이 몰려올 겁니다. 모두 진실이 아닙니다. 진실을 알고 싶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세요. 딸이 딸을 위해 기도하는데, 외면하실 수 없습니다. 당신이 기도할 때,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좋겠습니다. “딸아, 걱정 마라. 너의 딸이 나의 딸이다.”

엄마를 지켜줄 거예요

엄마를 위해 살아가는
청년이 있었어요.
 
그의 엄마는 약하고
슬프고 외로운 사람이었어요.
 
아빠가 술을 먹고 들어와
집안 살림을 때려 부수는 날이면,
 
엄마는 뒤돌아 누워
하염없이 울었지요.
 
그는 생각했어요.
엄마를 지켜주겠노라고.
 
엄마는 아들에게
걱정을 털어놓았어요.
 
아들은 말없이
엄마의 걱정을 들어줬어요.
 
듬직한 아들이다.
아들이 있어 살아간다.
 
엄마는 그런 아들이 고마웠어요.
아들 덕분에 포기하지 않았죠.
 
하지만, 아들은
조용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어요.
 
대가를 치러야 했어요.
언제나 외로웠어요.
 
채워지지 않았어요.
뻥 뚫린 가슴을 메울 수 없었죠.
 
용기 내어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무례하다면 용서해주세요.
 
이야기 잘 들어주는 자녀는
부모에게 축복이 아니에요.
 
그 아이는 언젠가 홀로
혹독한 대가를 지불해야 해요.
 
부모 대신 무거운 짐을 지고
숨조차 수 없는 자녀들을 나는 만납니다.
 
상처투성이 자녀가
부모를 원망하지 않아요.
 
얼굴을 가리고
엎드려 엉엉 울어요.
 
아빠가 불쌍하다며.
엄마가 불쌍하다며.
 
이제 당신 차례가 왔어요.
 
기운 내 일어나
자녀의 눈물을 닦아주세요.
 
당신의 그 무거운 짐은
주님께서 들어주실 테니.

하나님보다 자녀를 사랑해요

자녀가 우상이 되면 안 된다는 설교를 자주 듣습니다. 말 자체에는 동의가 되는데, 구체적으로 실천하려면 답답해집니다. 자녀가 우상이 되지 않으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자녀를 양육해야 할까요? 
 
뻔한 답변부터 하겠습니다. 자녀가 우상이 되면 안 된다는 말뜻은 단순합니다. 자녀가 하나님보다 앞서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같은 말을 들어도, 듣는 사람에 따라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당당한 사람이 있습니다. “당연한 말이지. 어떻게 자녀가 하나님보다 앞설 수 있겠어. 하나님이 우선이야.”하나님이 최우선이라고 믿으니까, 그다음부터는 별 고민 없이 마음 편하게 삽니다. 자녀에게 올인하더라도, 위기의식이 없습니다. 자녀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면 되니까요. 바른 적용 아닙니다. 자기 합리화입니다. 
 
자책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자녀를 하나님보다 사랑했구나. 잘못 살았어. 회개하자.”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회개하고 난 다음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반복되는 죄책감을 느낍니다. 자녀 앞에서는 부모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자책합니다. 하나님과 자녀 사이에 끼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괴롭습니다. 바른 적용 아닙니다. 자기 비하입니다. 
 
조심스럽게 내 생각을 말해보겠습니다. 질문 자체에 해답이 있습니다. 당신은 자녀가 우상이 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어디까지가 하나님의 뜻인지 정말로 알고 싶은 겁니다. 문제를 붙잡고 고민하는 그 과정 자체가 해답입니다. 고민이 멈추지 않는 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내가 정답이라고 말하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정답과 해답은 뉘앙스가 다릅니다. 정답은 이미 정해진 답입니다. 해답은 풀이 과정에서 도출된 결과입니다. 자녀 양육에 정답은 없습니다. 해답이 있을 뿐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자녀를 제대로 키우고 있느냐, 중간에 채점할 정답지가 없습니다. 자녀를 다 키워보고 나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평가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그러니, 정답이 아니라 해답입니다. 
 
계속 고민하면서 자녀를 키우면 좋겠습니다. 자만하지 말고, 확신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계속 고민하면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계속 고민하면서, 자녀 앞에 서야 합니다. 엎드리고 서기를 반복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목사라고 자녀 잘 키우는 거 아닙니다. 오히려, 빈틈이 많습니다. 아이들 어릴 때, 목회 바쁘다고 함께 있어주지 못한 게 미안합니다. 보상해주고 싶은 게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자녀 욕심이 앞서면, 공감 없는 명분 앞세워 교회와 세상 앞에서 부끄러운 선택을 하게 됩니다. 목사라고 예외 없습니다. 나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부탁입니다. 계속 고민하세요. 고민이 끝나면 성장도 멈춥니다. 고민하는 당신은 안전합니다. 고민 없는 당신은 불안합니다. 다행입니다. 아직은 고민하고 계시니까요. 고민하는 한, 당신의 최우선 순위는 하나님입니다. 우상 숭배 그리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은 참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좋은 부모가 될 수 없어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아요.
용서했지만 친밀해지기 힘들어요.
그냥 그런가 보다 해요.
어쩔 수 없으니까요.
 
나도 엄마가 되었어요.
아이가 어릴 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말이 통하지 않아요.
아이가 날 원망하면 어떻게 하죠.
엄마가 내 인생 망쳤다고.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어요.
나처럼 키우고 싶지 않아서
최선을 다했는데
결국 이렇게 돼버렸어요.
 
나 때문이에요.
내가 상처 없이 자랐다면
내가 사랑받고 자랐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거예요.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당신은 좋은 엄마예요,
라는 말은 안 할게요.
그런 말 많이 들었을 거예요, 아마.
가벼운 위로는 안 하고 싶어요.
 
그 대신 질문할게요.
당신은 당신 엄마보다 좋은 엄마인가요.
네,라고 말씀하셨어요.
나도 동의해요.
당신은 노력했어요.
 
내가 당신의 말을 잘 이해했다면
당신은 희망을 품고 날 찾아온 거예요.
그 마음을 잘 표현하면 이런 뜻이에요.
나는 지금보다 더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
 
지금까지 아이를 잘 키우다가
특정한 상황에 놓여
잠시 절망하신 것 같아요.
지금이 힘든 거예요.
지금까지 잘 견뎌주셨어요.
 
앞으로 어떻게 할까 알려드리고 싶은데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어요.
 
좋은 부모가 되는 방법
나는 몰라요.
내가 좋은 부모가 아니라서요.
어쩌면 당신보다 내가 더 심각한 상황일지 몰라요.
아이들을 끌어앉고 절벽으로 뛰어내렸으니까요.
아빠로서 죄책감이 심해요.
 
가끔 상상을 해요.
누군가 다가와서 말해요.
너는 상처가 많아서 좋은 아빠가 될 수 없어.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가 있어.
내가 화내며 대꾸하겠죠.
 
상처받으며 산 건도 억울한데
상처 때문에 좋은 아빠가 될 수 없다니요.
어릴 때 맞은 매보다 그 말이 더 아파요.
차라리 나를 벌거벗겨 놓고
온몸이 파래질 때까지 때리세요.
그게 덜 아플 것 같아요.
나한테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에이, 말이 그렇다는 거죠?
누가 그런 나쁜 말을 하겠어요.
다들 상식이 있는데.
 
남 일이라고 쉽게 생각하시네요.
내가 나한테 자주 그런 말해요.
애써 부인해보지만 사실이에요.
내 상처 때문에 좋은 아빠 되기 힘들어요.
내가 살면서 느껴요.
 
아무도 모를 거예요.
내가 얼마나 못난 아빠인지.
애들만 생각하면 눈물이 흘러요.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하겠어요.
내 몸에서 나쁜 피를 전부 뽑아내고
새로운 피로 바꿔서라도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어요.
 
나중에 깨달았어요.
그럴 필요 없다는 사실을.
이제 내 몸에는 새로운 피가 흐르거든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그 보혈의 능력으로
나는 새로운 혈액형을 받았죠.
 
내 아이들은 나의 피를 물려받지 않아요.
내 아이들의 몸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흘러요.
그 피로 심장이 뛰고
그 피로 키가 자라고
그 피로 강해질 거예요.
 
예수님을 사랑하는 엄마,
기도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당신 덕분에
아이들은 당신처럼 자라지 않을 거예요.
예수님처럼 자랄 거예요.
 
예수님 닮은 당신을 통해
당신의 아이가 예수님 닮기를
나는 간절히 바랍니다.

아빠가 돌아가셨어요

아빠가 오랜 투병생활을 하시다가, 지난달에 돌아가셨어요. 아버지의 죽음이 너무나 슬퍼요. 교회 공동체에서 맡았던 일을 내려놓고 잠시 쉬려했는데, 주변에서 그러지 말래요. 그럴수록 하나님을 더 붙잡으라고. 슬픔의 영에 사로잡히면 일어서기 어렵다고 참고 견디래요. 
 
슬퍼하세요.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슬프지 않겠어요. 일 년이든, 십 년이든, 평생이든 슬프면 우세요. 아버지가 일생 동안 그립다면, 그건 감사한 겁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는 감정에 죄책감을 느낀다면, 그건 잘못된 겁니다. 
 
나는 자매님에게 “슬픔의 영”에 사로잡히지 말라고 말한 사람의 의도를 모르겠습니다. 성경 어디서 나온 말인가요. “슬픔의 영”이란 표현은 처음 들어봅니다. “슬픔의 영”이란 말은 문맥상 부정적인 뜻이겠지요. 나는 목사입니다. 성경을 진지하게 연구하는 사람이에요. 이 순간만큼은 권위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성경에 그런 말 없습니다.      
 
그 말을 전해 들을 당시의 상황과 분위기 나는 모릅니다. 섣불리 그분에 대해서 평가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하고 싶습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성경에 없는 말을 하면 위험합니다. 성경을 왜곡하면 안 됩니다.  
 
쉬고 싶으면 쉬세요. 교회 일을 감당하는 것 자체가 본질이 아닙니다. 자매님이 원하시는 대로 결정하세요. 교회 봉사할 사람 항상 부족해도, 교회 문 안 닫습니다. 하나님이 잘 이끌어가십니다. 자매님 하나 쉰다고 교회 멈추는 거 아니에요. 잠시 쉬다가 기운 나면 다시 섬겨주세요. 
 
아버지 잃은 슬픔은 잘 간직하세요. 울고 싶으면 울고, 슬프면 슬프세요. 나는 몇 년 전, 3월에 장인어른을 잃었는데, 지금도 슬퍼요. 보고 싶고 생각나고 그래요. 매년 3월이 되면, 울적하고 괴롭습니다. 보고 싶고 그리우면 장인어른 묻혀 계신 추모 공원에 아내 몰래 다녀오고 그럽니다. 내 아내의 아버지를 잃은 슬픔도 이리 큽니다. 자매님의 슬픔은 말로 할 수 없지요.
 
누군가 아직도 거기에 머물러 있냐고 비웃어도 상관없어요. 내 믿음을 똥값으로 취급해도 상관없습니다. 나는 자매님의 믿음이 고귀하다고 생각합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세요. 그 눈물 마를 때까지 주님이 위로해주실 거예요. 오늘부터는 마음 편히 우셨으면 좋겠습니다. 
 

엄마가 내 초콜릿 먹었어?

“지훈아, 원두 로스팅 하는 동안 주문 좀 받아줄래?” 
 
문영린은 이른 아침, 카페 문을 연다. 딸의 남자 친구 김지훈이 문영린의 일손을 거들었다. 김지훈은 한 달 전에 군 복무를 마쳤다. 영어 학원에 다니면서, 오전에 잠깐 문영린을 돕는 것이다. 
 
원두 로스팅을 할 때마다, 문영린은 예민해졌다. 정확한 시간에 맞춰 기계를 켜고 꺼야 했다. 출근길에 잠시 들러 커피를 주문을 하는 손님을 맞이하다 보면, 로스팅 시간을 맞출 수 없었다. 
 
아르바이트생이 그만두는 바람에 문영린은 난처해졌다. 마침 딸의 남자 친구, 김지훈이 그녀를 기꺼이 돕겠다고 나섰다. 
 
로스팅을 마친 문영린은 카페 한 귀퉁이에 앉았다.  
 
“지훈아, 제대하고 쉬고 싶을 텐데 아침 일찍 나와줘서 고마워.” 
 
“아니에요. 제대하고 생활리듬 깨질 뻔했는데, 일찍부터 나와 일하니까 좋죠, 뭐. 
 
김지훈은 멋쩍은 듯 말했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야?” 
 
테이블 위에 팔을 걸치고 편안하게 서 있던 김지훈은, 문영린의 진지한 질문에 자세를 고쳤다.
 
“조금 있다가 복학해야죠.” 
 
“우리 미혜와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물은 거야. 우리 미혜가 그렇게 좋아?” 
 
김지훈의 긴장이 풀어졌다. 
 
“그럼요.” 
 
“뭐가 그렇게 좋은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좋아요.” 김지훈은 민망함을 감추려고 주문 테이블 구석에 놓인 초콜릿 상자를 문영린에게 가져갔다. 
 
“이거 드셔보세요. 제가 제주도 갔을 때 사온 초콜릿인데, 맛있어요.” 
 
초콜릿을 받아들고 입에 넣으며 문영린이 말했다. 
 
“얼렁뚱당 넘어가려고 하네. 아직 질문에 대답도 안 했어.” 
 
김지훈은 문영린은 진지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미혜를 정말 좋아해요. 제가 군대 있을 때도 한결같이 사랑해줬잖아요. 이제 제가 지켜줄 차례에요.”     
 
문영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젊은 시절 남편과 이혼해 미혜를 혼자 키웠다. 그녀에게 미혜가 전부였다. 대학에 들어가고 얼마 되지 않아, 동갑내기 남자 친구가 생겼다는 말에 당황한 영린이었지만, 지훈의 듬직한 모습에 점차 안심이 되었다. 
 
“둘 만 사이좋게 잘 지내. 싸우지 말고. 그럼 됐지 뭐.” 
 
문영린은 테이블에서 일어나, 시계를 보며 말했다. 
 
“지훈아, 이러다 학원 늦겠다. 어서 가.” 
 
혼자 남은 문영린은 창가에 섰다. 언젠가 미혜가 그녀의 곁을 떠날 것이다. 그녀는 아직 미혜를 떠나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다. 김지훈이 믿음직스러운 것과 미혜를 떠나보내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그녀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녀는 긴 한숨을 쉬면서, 에스프레소를 내려마셨다. 진하게 농축된 커피 향기가 그녀의 미간에 잡힌 주름을 잠시 동안 풀어주었다.  
 
늦은 오후, 미혜에게 문자가 왔다. 문영린은 문자의 내용을 언뜻 이해할 수 없었다. 두 번 세 번 다시 읽어봐도, 그녀가 제대로 문장을 읽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엄마, 아침에 내 초콜릿 먹었어? 그거 내가 얼마나 아끼는 건데, 엄마가 먹어?”
 
기가 막혀 눈물이 났다. 딸에게 답장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문영린은 김지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훈아, 지금 잠시 통화되니? 미혜가 나한테 말도 안 되는 문자를 보냈어. 도대체 무슨 일인 거야. 미혜가 나한테 이럴 리 없는데, 너희 둘이 무슨 일 있었어?”
 
김지훈도 당황한 듯 말했다. 
 
“모르겠어요. 미혜가 이상해요. 점심시간에 미혜하고 잠깐 통화하면서 어머니도 초콜릿 좋아하신다고 말했거든요. 맛있게 드시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고 말했는데, 그다음부터 미혜가 다짜고짜 화를 내더라고요. 퇴근하고 보기로 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요.” 
 
미혜가 술에 취해 저녁 늦게 들어왔다. 문영린은 딸의 모습에, 감당할 수 없는 분노가 일어났다. 마음 같아서는 등짝을 후려치고 싶었지만, 감정을 억누르고 말했다. 
 
“늦었어. 빨리 씻고 자. 내일 출근해야지.”  
 
미혜는 몸을 가누기도 힘든 듯,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그거 왜 먹었어? 그게 엄마 거야? 그거 내 거야. 지훈이가 나 주려고 사온 거라고. 엄마 눈에 보이면, 그게 다 엄마 거야?” 
 
문영린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미혜에게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이 미친년아.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엄마가 초콜릿 하나 먹었다고 이 지랄이야?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들도 안 그러겠다. 이 미친년아!” 
 
미혜는 지지 않고 말했다. 
 
“매일 똑같은 소리지. 누가 엄마 보고 희생하랬어? 엄마는 항상 보상받고 싶어 하잖아. 나는 평생 엄마가 시키는 대로 살았어. 엄마가 원하는 대로 살고 있다고. 내 인생이 어디 있어? 어디 있냐고! 앞으로 내 인생에 끼어들지도 말고, 내 물건도 건드리지 마. 나 이제 엄마랑 안 살아! 지긋지긋해.” 
 
문영린은 미혜와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없었다. 침실에 들어가 문을 닫고 누웠다.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소리 없이 울었다. 울어도 울어도 슬픈 감정을 덜어낼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문영린은 식탁 위에 놓인 짧은 메모지를 발견했다. 미혜가 남기고 간 메모였다. 
 
“엄마, 나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아. 혼자 살 거야. 갑자기 결정한 거 아니야.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생각했어. 엄마도 이제 엄마 인생 살아. 나도 내 인생 살 거니까.”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 자리에 쓰려져 하염없이 울었다. 간신히 몸을 추스르고 카페에 나갔다. 며칠 동안 나타나지 않았던, 김지훈이 문영린에게 문자를 보냈다. 
 
“어머니,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는데 미혜가 지금 제가 사는 오피스텔에서 함께 지내고 있어요. 이건 아니라고 계속 설득했는데, 소용없더라고요. 제가 잘 타일러서 돌려보낼 테니까,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제가 꼭 돌려보낼게요. 죄송합니다, 어머니.”
 
바로 그 순간이었다. 문영린의 세상은 종말을 맞이했다. 
 
딸은 반 년이 넘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극심한 우울증으로 고통에 시달렸다. 고소하고 향긋한 커피향마저도 그녀에게 쓰디쓰게 느껴졌다.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으로 하루하루를 버텨갈 뿐이었다.   
 
“초콜릿 하나로 이렇게 될 수 있는 건가요? 이제 초콜릿이라는 말만 들어도 소름이 돋아요.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요. 그날만 생각하면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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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딸이 집을 나간 이유가 무엇일지 오랫동안 진지하게 고민해보셨을 것 같아요.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해 주실 수 있으시겠어요?”  
 
그녀가 말했다. 
 
“초콜릿이죠. 초콜릿이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딸이 문자로 ‘왜 먹었냐고’ 따졌을 때, 그냥 미안하다고 말했으면 아무 문제 없었을지도 몰라요. 제가 지훈이에게 전화를 걸어서 문제가 더 커졌나.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뭔가 마음이 불편했겠죠, 미혜도.”  
 
그녀는 초콜릿이라는 단편적인 사건에 집중하고 있었다. 사건 자체가 없었기를 바라는 마음이나, ‘그 당시 엄마가 다른 반응을 보였다면’이라는 가정은, 그녀를 지독하게 괴롭혔다. 만약 초콜릿을 먹지 않았다면, 그녀의 딸이 집을 나가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엄마가 딸의 초콜릿을 먹었다는 것, 그것이 딸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요?”
 
그녀는 생각에 잠겼다.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다 큰 애가 초콜릿 하나 먹었다고, 그럴 수가 있나요. 저는 평생 동안 미혜를 위해 희생했어요. 미혜가 잘 되기를 바랐죠. 아빠 없는 아이, 기죽이지 말라고 잘 먹이고 잘 입히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요.” 
 
나는 그녀의 말에 부분적으로 동의했다. 그러나, 나는 멈출 수 없었다. 한 걸음 더 들어가고 싶었다. 그녀가 튕겨나가지 않도록 신중해야 했다. 
 
“저 역시도 다 큰 딸이 초콜릿 하나로 집을 나갔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이 있거든요.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빙산은 전체 크기의 10분의 1 밖에 되지 않아요. 나머지 10분의 9는 바다 아래 잠겨 있거든요. 
 
딸이 집을 나간 이유가 표면적으로는 초콜릿처럼 보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근원적인 이유가 있을지 몰라요. 
 
제가 집중하고 싶은 부분은 딸과 엄마의 관계에요.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문제가, 초콜릿이라는 매개체로 촉발된 거죠. 보이지 않는 부분을 설명해주실 수 있으시겠어요?”
 
그제서야, 그녀는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빠른 속도로 말을 이어갔다. 
 
“아, 그렇군요. 그 말을 들으니까, 생각나는 게 있어요. 미혜가 술에 취해 들어온 날, 제게 한 말이 있어요. 그 말이 미혜의 진심일지도 몰라요. 자기가 원하는 인생이 아니라, 엄마가 원하는 인생을 살고 있다고. 딸을 엄격하게 키웠거든요. 대학 들어가기 전까지, 쉴 틈 없이 몰아붙였어요. 그 덕분에 좋은 대학에 갔잖아요. 졸업하자마자 취직도 바로 되고요. 머리는 좋은 아이였어요. 그러니까, 그만큼 투자를 했겠죠.” 
 
나는 또다시 질문했다. 
 
“만약에 제가 딸을 찾아가서, ‘당신의 어머니는 어떤 사람인가요?”라고 묻는다면, 딸이 뭐라고 대답할까요?”
 
물론, 실제로 그녀의 딸을 찾아갈 생각은 없었다. 그녀와 딸의 관계를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글쎄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딸이 어떻게 대답할까요.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천천히 대답할게요.”  
 
그녀는 긴 한숨을 내쉬고 힘겹게 말했다. 
 
“아마도, ‘엄마는 이기적인 사람이에요.’라고 말하지 않을까요? 미혜는 아마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그녀는 고개를 떨구고 울기 시작했다. 
 
눈물을 흘릴 것이라 미리 예상했는지, 그녀는 가방에서 새것처럼 보이는 손수건을 꺼냈다. 어쩌면, 그녀는 오랫동안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손수건을 쓸 일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의 손수건은 그녀의 비장한 의지를 보여주는 단서다. 마음속 깊은 곳에 담아두었던 진실을 꺼내고자 하는 그녀의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다. 
 
“만약 딸이 ‘엄마는 이기적인 사람이에요.’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실 수 있나요?” 
 
“아니요. 딸에게 진지하게 단 한 번 만이라도 제대로 말하고 싶어요. 오해라고. 그거 정말 오해라고. 엄마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요. 사실 딸에게 아직 말해주지 못한 비밀이 있어요. 마음속 깊은 곳에 담아둔 비밀이 있는데,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모르겠어요.”  
 
우리는 잠시 동안 대화를 멈추었다. 그녀는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흐느껴  울었다. 수문이 열리듯, 그녀는 십수년 동안 간직했던 눈물을 방출하는 듯했다.   
 
#
 
“여보, 정말 미안해. 잠깐 실수한 거야. 다시는 안 그럴게. 한 번 만 용서해줘.”
 
문영린의 남편은 거실 한가운데서, 무릎을 꿇고 빌었다. 일주일 전, 바다낚시를 간다며 집을 나간 남편은 다른 여자와 함께 있었다. 문영린의 고등학교 동창이 우연히 두 사람을 목격하고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다. 
 
문영린은 남편의 진심을 느낄 수 없었다. 벌써 세 번째였다. 세 번 무릎을 꿇는 동안, 남편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했던 말을 그대로 반복했다. 그녀는 남편과 이혼했다. 더 이상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혜가 여섯 살 때였다. 아빠가 눈앞에서 사라진 그날부터 미혜는 아빠를 찾았다. 아내에게는 무뚝뚝하고 이기적인 남편이었어도, 딸에게만큼은 다정다감한 아버지였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이라고 여러 번 말했던 남편이었다.  
 
문영린은 남편과 이혼한 이유를 딸에게 말할 수 없었다. 미혜가 어릴 때, 아빠가 외국으로 돈을 벌러 나갔다고 했다. 미혜는 착각했을 것이다. 미혜가 누리는 삶이 아버지가 벌어다 준 돈 때문이라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는 오백 원짜리 동전 하나 보태지 않았다. 
 
미혜가 고등학생 때, 엄마에게 진지하게 아빠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더 이상 궁색한 변명이 통하지 않을 것을 문영린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미혜는 진실을 원한 것이다. 그러나, 문영린은 진실을 말할 수 없었다. 딸에게 아버지가 좋은 기억으로 남기를 바랐다. 
 
미혜는 궁금했을 것이다. 외국으로 돈을 벌러 나간 아빠가 왜 전화 한 통 없는지. 미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그녀의 아버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남편의 가족들은 집안 어른들 보기 부끄럽다며, 조용히 가족장을 치렀다. 모든 장례 절차가 끝나고 나서야, 시누이에게 전화 한 통 받은 것이 전부였다.
 
문영린은 알 수 없었다. 미혜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차라리 진실을 말하는 것이 낫다고 여러 번 생각했지만, 그때마다 그녀는 물러섰다. 미혜의 높은 성적이 곤두박질칠까 두려웠다. 입시가 끝나면 모든 것을 말해줄 생각이었다. 그렇게, 에둘러 말하며 진실의 순간을 외면했다. 
 
미혜가 대학에 입학하고,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와 아빠에 대해 물었을 때도 문영린은 진실을 말하지 못했다. 이제 문영린 스스로도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막연한 두려움이 그녀를 엄습했다. 
 
제대한 남자 친구와 결혼을 생각하고 있다고 미혜가 말했을 때, 문영린은 단 번에 딱 잘라 말했다. 
 
“그딴 생각 하지도 마. 너는 엄마처럼 살면 안 돼. 연애만 해. 결혼 따위는 생각하지도 말고.” 
 
미혜는 처마 아래 매달린 고드름처럼 서서히 얼어붙었다. 바람이라도 불면, 부러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아차, 했던 문영린은 애써 웃으며 말했다. 
 
“아직 결혼하기에는 너무 어리잖아. 지훈이도 제대한 지 얼마 안 됐고.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생각해보자.” 
 
문영린은 자신이 내뱉은 말을 주워 담으려 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그녀가 내뱉은 말은 바람에 날린 민들레 씨앗처럼 홀홀 날아가 미혜의 황량한 가슴에 내려앉아 뿌리를 내렸다. 
 
미혜의 시선에서 문영린은 이기적일 것이다.  미혜는 아버지가 보고 싶다. 그러나, 아버지를 볼 수 없다. 아버지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조차 미혜는 알지 못한다. 문영린은 그만큼 철저하게 비밀을 지켜냈다. 
 
결혼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두 사람 사이에 등장했을 때, 문영린은 서툴렀다. 성급하게 내뱉은 말 하나로, 미혜의 판단이 뒤집혔다. ‘엄마가 날 위해 희생했다’ 가 아니라, ‘내가 엄마를 위해 희생한 것’으로. 명백한 오해였지만, 미혜의 세상에서는 진실처럼 받아들여졌다.  
 
그 사건이 있었던 바로 다음 날, 문영린은 미혜의 문자를 받았다.
 
“엄마, 아침에 내 초콜릿 먹었어? 그거 내가 얼마나 아끼는 건데, 엄마가 먹어? 그거 왜 먹었어? 그게 엄마 거야? 내 거야. 엄마 눈에 보이면, 그게 다 엄마 거야? 다 엄마 거냐고!”
 
차곡차곡 쌓아올려진 폭발물에 불꽃이 튀어버린 것이다. 작은 불꽃이라도 충분했다. 도화선에 불을 붙일 수만 있다면, 온 세상을 날려 버릴 것이다. 모녀 관계조차도. 
 
문영린의 세상에서는 초콜릿이 보인다. 미혜의 세상에서는 한 번도 발을 들인 적 없는, 어두침침한 탄약고가 보인다. 같은 사건이 두 사람에게 서로 다르게 보인다. 문영린이 아는 만큼, 미혜도 알아야 한다. 두 사람의 시선에 겹치는 지점에  공감이라는 해독제가 놓여있다. 
 
아직 늦지 않았다. 문영린에게 기회가 있다.  지금이라도 달려가 도화선을 따라 거세게 타들어가는 불씨를 발로 짓밟아 꺼야 한다. 어두침침한 탄약고에서 울고 있는 딸을 꺼내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문영린 뿐이다. 
 
김지훈의 오피스텔은 미혜의 안식처가 아니다. 도피처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미혜가 안식할 곳은 어디에도 없다. 잠시라도 쉴 곳이 필요했을 것이다. 어쩌면, 미혜는 돌아올 명분이 필요할지 모른다.    
 

 
“미혜하고 영화를 봤어요. 저녁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했고요. 지훈이와 지내는 게 불편한 가봐요. 다음 주에 집에 들어갈 테니, 자기 방 좀 치워놓으라고 하더라고요. 
 
피식 웃으면서 ’엄마가 무슨 청소부니?’라고 말을 하는데, 고마워서 눈물이 났어요. 
 
미혜도 말없이 따라 울더라고요. 그날은 서로 그렇게 울기만 했어요. 딸이 다시 돌아오면, 거실에서 두런두런 못다 한 이야기해야죠. 딸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제자리에서 서서 그녀의 뒷모습에서 바라봤다. 세월의 거센 흔적이 깃든 흰머리조차도 내게는 찬란한 광채로 느껴졌다. 상담실을 나서는 그녀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그녀에게 상담실은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도피처였던 것이다. 안식처는 그녀의 집이다. 딸과 함께 머무는 그녀의 가정인 것이다. 언젠가 딸이 엄마를 떠날 때, 그녀는 행복한 미소로 보내줄 것이다. 그녀의 뒷모습이 그렇게 말했다.

엄마가 전화할게

민수는 자정이 넘어 집에 들어왔다. 수능이 10개월 앞으로 다가온 시점이었다. 학원에서, 독서실로 갔다가 집으로 오는 것이 하루 일정이었다. 
 
민수가 집에 도착했을 때, 집은 난장판이었다. 아빠와 엄마가 부부 싸움을 한 것이다. 민수는 깊은 한숨을 내뱉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민수는 바로 잠에 들 수가 없었다. 학원에서 내준 과제가 적지 않았다. 졸린 눈을 비벼가며, 책상 앞에 앉았다. 
 
밖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지만, 익숙한 소리였다. 책에 집중하려고, 이어폰으로 귀를 막았다. 
 
그때였다. 이어폰 너머로 와장창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민수는 깜짝 놀라 밖으로 뛰어나갔다. 거실에서 부모님을 마주한 민수는 짜증이 극에 달했다. 
 
장식장이 쓰려지면서, 거실 바닥에 유리 파편을 쏟아냈다. 엄마와 아빠는 거칠게 몸싸움을 했다. 엄마는 아빠의 손목을 잡고, 사력을 다해 버텼다. 아빠는 엄마의 손목을 뿌리치려고 안간힘을 썼다. 
 
아빠가 엄마의 손을 떨쳐내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엄마의 뺨을 내리쳤다. 
 
찰싹.
 
아빠의 솥뚜껑 같은 손에 엄마는 힘없이 쓰려졌다. 민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아빠에게 눈을 부릅뜨고, 소리를 질렀다. 
 
“제발 그만 좀 하라고!” 
 
민수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아빠가 깜짝 놀랐다. 아빠는 민수에게 가까이 다가와서 말했다. 
 
“뭐라고? 다시 한 번 말해 봐.” 
 
“그만 좀 하라고!” 
 
민수가 아빠에게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아빠가 민수의 멱살을 잡았다. 
 
“이 자식이, 어디서 아빠한테 그딴 식으로 말해?” 
 
민수는 바닥에 쓰려져 울고 있는 엄마와 눈이 마추쳤다. 
 
민수는 이성을 잃었다. 
 
아빠의 손을 뿌리치고, 아빠의 멱살을 잡았다. 
 
“이제 그만하라고 했지! 당신이 아빠야? 왜 술만 처먹으면,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민수의 아빠도 이성을 잃었다. 민수를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했다. 민수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아빠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죽자 살자 덤벼들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고 유리 파편 위로 넘어졌다. 민수가 아빠 위로 올라앉아서, 아빠를 사정없이 팼다. 
 
아빠는 민수를 떨쳐내고 일어서려고 온몸을 비틀었다. 유리 파편이 등에 비벼졌다. 
 
민수의 엄마는 오열하면서, 민수를 뜯어말렸다. 엄마의 울음소리를 들은 민수는 그제서야 이성을 되찾았다. 
 
미끄럼을 타듯이 아빠 몸에서 떨어져 나간, 민수는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질렀다. 
 
민수의 아빠는 터진 입술에서 새어 나온 피를 빨아당겼다가, 침으로 뱉어냈다. 몸을 일으켜, 벽에 기대고는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아빠의 등 뒤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엄마가 흐느껴 울면서, 아빠의 등에 박힌 유리 파편을 빼내고, 수건으로 흐르는 피를 막았다. 
 
민수는 견딜 수 없었다. 아빠를 때린 자기 손을 잘라버리고 싶었다. 주먹을 쥐고 거실 벽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시멘트로 차갑게 굳어진 벽은 민수의 손을 부러뜨렸다.  
 
퍽.
 
민수의 손가락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엄마의 귓가를 울렸다. 엄마는 민수를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민수도 엄마의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엄마를 끌어안은 민수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빠는 비틀비틀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갔다. 
 
#  
 
“며칠 지나고, 아빠가 이야기 좀 하자고 했어요. 아빠가 맨 정신에 이야기하기 힘들다고, 술 한 잔 하자고 하시더라고요. 술은 원래 아빠한테 배우는 거라고 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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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의 아빠는 말없이 소주 한 잔을 따라 민수에게 건넸다. 민수는 잔을 받아들고 머뭇거렸다. 
 
아빠가 말했다. 
 
“마셔. 아빠가 주는 술은 일단 받는 거야.” 
 
민수는 소주를 입속에 털어 넣었다. 학교 사물함에 있는 가그린 맛이었다. 가그린을 삼켜버린 듯 찝찝한 기분이었다.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데, 아빠가 한 잔을 더 따르며 말했다. 
 
“민수야. 아빠가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아빠는 반쯤은 울먹거리는 목소리였다. 
 
소주 병을 입에 물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꺼억하고 트림을 내뱉으면서, 민수에게 말했다. 
 
“있잖아. 아빠하고 엄마 사이에는 네가 모르는 일이 있어.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야. 어른들의 문제니까, 네가 끼어들면 안 돼.” 
 
민수는 하고 싶은 말을 참았다. 민수가 들이킨 알코올이 민수의 목구멍을 틀어막았다. 뜨거운 숨만 콧구멍 밖으로 새어 나올 뿐이었다. 
 
아빠의 연설은 세 시간이나 지속되었다. 아빠의 말이 장황하게 무한 반복되었지만, 민수는 아빠의 말을 경청했다. 
 
아빠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다혈질의 아빠는 풀이 죽어지냈다. 민수가 아빠에게 달려든 후로, 아빠는 집에서 존재감 없이 지냈다. 무기력한 아빠의 모습을 볼 때마다, 민수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아빠의 처량한 모습이 날개가 부러진 독수리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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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한 달이 넘도록 민수는 아빠와 말을 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서로 말다툼을 하다가도, 민수가 들어오면 서로 말을 멈췄다. 아빠는 방으로 들어가고, 엄마는 밤늦게 들어온 민수를 챙겼다. 
 
“늦게 피곤하지?” 
 
엄마가 물었다. 
 
“엄마, 나 어떻게 하지?” 
 
민수가 엄마에게 되물었다. 
 
“뭘 어떻게 해?” 
 
“답답해서 미쳐버릴 것 같아.” 
 
엄마는 할 말을 잃었다. 말없이 민수를 바라볼 뿐이었다. 
 
“어떻게 평생을 그렇게 살아? 나 때문에 참고 사는 거면, 그럴 필요 없어. 나는 괜찮으니까, 엄마도 그냥 엄마 인생 살아.” 
 
엄마는 민수의 침대에 힘없이 걸 터 앉았다.  
 
“일단, 수능부터 끝내. 그다음에 이야기하자.”   
 
민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눈물이 터지기 직전이었다. 
 
“알겠어, 엄마. 이제 나가.” 
 
엄마가 방문을 닫고 나가자, 민수는 책상에 엎드려 울었다. 지우개를 삼킨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PC방으로 와.” 민수의 친구 K가 말했다. 
 
“알겠어, 기다려.” 민수는 터벅터벅 걸어, 학원 근처 PC방으로 들어갔다. 
 
PC방을 한 바퀴 돌아봐도 K와 친구들이 없었다. 민수는 K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야?” 
 
민수가 물었다. 
 
“아, 우리 밖으로 나왔어. 분식점으로 와.” 
 
K가 말했다. 
 
민수는 슬슬 짜증이 밀려왔다. 때마침 지나가던 택시를 잡아타고, 분식점 앞에 내렸다. 분식점에서도 친구들은 보이지 않았다. 
 
민수는 다시 K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야?” 
 
“우리 다시 PC방으로 왔어. 빨리 이쪽으로 와. 우리 지금 세 명이라, 한 명 더 필요해. 최대한 빨리 와라.” 
 
민수는 화가 치밀었다. 
 
PC방에서 마주한 친구들은 게임에 빠져있느라 민수가 온 것도 몰랐다. 민수가 K의 옆자리에 앉았다. 
 
K가 말했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조금만 기다려. 이 판 끝나면, 2 대 2로 붙자.” 
 
민수는 K의 옆에 앉아, 인터넷 브라우저를 켜면서 짧게 말했다. 
 
“알겠어.” 
 

 
“화나지 않았을까? 보통 고등학생이면, 욕하고 소리 지르고 난리 한 번 났을 텐데….” 
 
내가 민수에게 물었다. 
 
“화는 났지만, 표현할 수 없었어요.” 
 
민수가 말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어?” 
 
“두려웠던 것 같아요.” 
 
“무엇이?” 
 
“친구들이 나를 따돌릴까 봐요. 예전에도 그런 적이 있어요.” 
 
“그 친구들이?”
 
“아니요. 중학생 때 친구들이요. 제가 화를 한 번 냈는데, 친구들이 나를 멀리했어요. 중학교 2학년 때 있었던 일인데, 졸업할 때까지 혼자 다니고, 혼자 밥 먹었어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어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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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려 간 만화책 언제 갖다 줄 거야?” 
 
민수가 L에게 물었다. 
 
“아, 깜빡했다. 내일 갖다 줄게.” L이 대답했다.  
 
“자꾸 왜 그래?” 
 
“뭘? 내일 준다고 했잖아.”
 
“그 소리 벌써 세 번째야.”
 
“뭐래? 갖다 준다고 이 새끼야.” 
 
L은 민수의 멱살을 잡았다. 
 
민수와 L은 서로가 휘두른 주먹에 얼굴이 상했다. 민수가 L을 힘으로 눌러 넘어뜨렸다. L의 위에 올라타, 주먹으로 L의 얼굴을 때리기 직전이었다. 
 
그 순간, 눈앞이 번쩍했다.
 
L의 절친, C가 주먹으로 민수의 관자놀이를 가격한 것이다. 민수는 의식을 잃고 쓰려졌다. L과 그의 친구들이 민수를 사정없이 짓밟았다. 
 
만화책을 돌려달라는 말 한마디, 그 대가는 혹독했다. 친구들은 민수를 괴롭혔다. 같이 어울려주는 친구 하나 없이 중학교를 쓸쓸히 졸업했다. 
 

 
“그래서, 말을 못 했어요.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긴장돼요. 내가 뭔가 작은 실수라도 하면, 친구들이 나를 어떻게 하지 않을까 두렵기도 하고….” 
 
나는 민수에게 중학교 시절 그 친구들의 이름을 묻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 달려가, 그 녀석들을 박살 내주고 싶었다. 
 
나는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고, 민수에게 물었다. 
 
“솔직하게 한 번 말해주지 않을래? 다시 PC방에 찾아갔을 때,  미안한 내색 하나 없던, K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뭐였을까?” 
 
민수는 생각에 잠겼다. 
 
“글쎄,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요? 막상, 말을 하려니까 생각이 잘 안 나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떡였다. 
 
민수가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다, 두 손을 겹쳐서 깍지를 끼더니 생각이 났다는 듯 말했다.
 
“어차피 다시 PC방으로 올 거면, 분식집으로 왜 부른 거야? 무슨 똥개 훈련시키는 것도 아니고.” 
 
“지금 감정이 어때?” 
 
“말하고 나니까 그냥 시원한데….”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줄래?” 
 
“솔직히 저는 제가 친구들에게 말을 잘 못하고, 제 표현을 못 하는 게, 집 안에서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해요. 저는 외동이고, 부모님과도 대화를 별로 안 하니까요. 제 감정, 제 생각을 표현할 줄 모르는 것 같아요. 혼자만 계속 답답하고….” 
 

 
민수가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어느 날, 도둑이 든 것처럼 집 안이 어수선했다. 
 
당황한 민수는 큰 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집에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다급하게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당황해서 닫지 못한 현관문 앞에 아빠가 나타났다.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였다. 비닐봉지에 소주와 맥주, 오징어와 땅콩 같은 것들이 담겨있었다. 
 
“엄마는요?” 
 
아빠는 대답하지 않았다. 소주 병을 손에 쥔 채, 벌컥벌컥 들이켜고, 손등으로 입술을 닦았다. 여전히, 현관 앞에 기댄 채였다. 
 
“엄마는 어디 갔냐고요?” 
 
아빠가 소주 병을 현관 대리석 바닥에 내리꽂으며 소리를 질렀다. 소주 병이 깨지면서 유리 파편이 사방에 흩어졌다.  
 
“몰라, 이 새끼야. 내가 어떻게 알아?” 
 
민수의 예상이 맞았다. 엄마는 급하게 짐을 챙겨 집을 나간 것이다. 
 
민수가 수능을 마칠 때까지 곁에 있어주고 싶었던 엄마의 바람은 물거품이 되었다. 
 
민수는 아빠를 밀치고, 밖으로 걸어나갔다. 계단을 뛰어내려가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의 전화기는 꺼져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민수는 계단을 헛디뎌 우당탕 넘어지고 말았다. 민수에게는 일어날 기운이 남아있지 않았다. 엎드린 채로 엉엉 울었다. 
 
엄마와 함께 살고 싶었던 것이 민수의 바람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엄마와 따로 나와 살고 싶었다. 민수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민수는 그날 밤, 엄마를 잃고 자신을 잃었다. 
 

 
“민수야, 엄마야.” 
 
일주일이 지나고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 어디야?” 
 
“지금 독서실 앞이니까, 얼른 내려와.” 
 
민수는 번개처럼 계단을 뛰어내려와 엄마 앞에 섰다. 
 
“엄마!”
 
민수는 어린아이처럼 엄마를 끌어안았다. 엄마도 민수를 끌어앉고 소리 없이 울었다. 엄마를 끌어안은 채로 민수가 물었다. 
 
“엄마, 어떻게 된 거야? 왜 갑자기 집을 나갔어?” 
 
엄마는 민수에게서 몸을 떼어내고 조용한 곳에 앉아 대화를 나누자고 말했다. 두 사람은 독서실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았다.
 
엄마가 민수에게 그날 밤의 일을 말했다.  
 

 
민수의 아빠는 여느 때처럼,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왔다. 민수의 엄마는 빨래를 개고 있었다. 민수의 아빠는 다짜고짜 엄마에게 시비를 걸었다. 
 
짜증이 난 엄마는 아빠의 말을 무시했다. 엄마가 아빠를 무시하자, 아빠는 이성을 잃었다. 엄마가 개놓은 빨래를 발로 차서 헝클어뜨렸다. 
 
엄마는 아빠를 쳐다보지도 않고, 빨래를 주섬주섬 집어 들었다. 다시 자리에 앉아, 침착하게 빨래를 갰다. 
 
아빠는 엄마를 사정없이 때렸고, 엄마는 아빠에게 달려들었다. 감정이 격해진 아빠는, 주방에서 칼을 꺼냈다. 
 
엄마에게 칼을 휘두르며, 같이 죽자고 말했다. 엄마는 어디 한 번 죽여보라며, 목에 핏대를 세우고 아빠를 자극했다. 
 
아빠가 칼로 엄마를 내리쳤다. 엄마가 팔로 얼굴을 가렸다. 칼은 엄마의 팔 등에 부딪히고 멈췄다.
 
그 순간 아빠는 하얗게 질렸다.
 
아빠는 엄마를 위협할 생각이었다. 실제로 칼이 엄마의 몸에 닿을 줄을 몰랐던 것이다. 
 
칼날 부위가 아닌 칼등이 엄마의 팔에 내려앉았지만, 이미 늦었다. 엄마 눈에 아빠는 짐승이었다. 
 
엄마는 아빠를 밀쳐내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아빠가 뭐 하는 짓이냐고 힘으로 뜯어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이번에 칼을 집어 든 사람은 엄마였다. 칼을 휘두르며, 아빠에게 소리쳤다. 
 
“나 한 번만 더 건드리면, 그때는 죽여버릴 거야.” 
 
아빠는 물러섰다. 
 
엄마가 작별 인사도 없이 민수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엄마의 말이 끝나고, 민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집으로 뛰어가 아빠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중요한 사람은 엄마였다. 
 
민수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그럼 이제 집에 안 오는 거야?” 
 
“응, 그럴 것 같아.” 
 
“그럼, 지금은 어디서 지내?”
 
“나중에 알려줄게. 지금은 말 못 해.” 
 
“그럼, 어떻게 먹고살아? 돈은?” 
 
“그것도 천천히 생각해보려고….” 
 
민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뿐이었다. 
 
잠시의 침묵을 깨고, 엄마가 말했다. 
 
“민수야. 넌 엄마 이해하지? 엄마가 왜 이럴 수밖에 없는지….” 
 
엄마가 울먹거렸다. 
 
민수는 엄마의 손을 잡고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전에도 말했잖아. 나는 괜찮다고. 엄마는 엄마 인생 살아. 나도 조금만 시간 지나면 독립할 거야. 그때는 내가 다시 엄마 찾으러 갈게. 우리 같이 살자. 조금만 참아, 엄마.”
 
민수의 말이 끝나자 엄마는 흐느껴 울었다. 그리고, 조금은 단호한 말투로 민수에게 말했다. 
 
“민수야. 엄마는 걱정하지 마. 너도 네 인생 살아야 해. 엄마는 씩씩하게 잘 살 거야. 너 가고 싶은 대학에 가고, 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야 해. 엄마 때문에 희생하지 말고, 알겠지?” 
 
민수는 불안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민수에게 말했다. 
 
“민수야, 너무 늦었다. 우리 이제 일어나자. 아빠한테는 엄마 만났다는 말 하지 마, 알겠지?” 
 
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 언제 다시 만나?” 
 
“엄마가 다시 전화할게.” 
 

 
민수는 독서실에 올라가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아빠에게 달려가 따질 작정이었다. 모든 것이 아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민수 역시 맨 정신으로 대화할 수 없었다. 냉장고를 열어, 아빠가 사다 놓은 술을 사정없이 마셨다.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졌다. 머리가 어지러워서 똑바로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퇴근한 아빠가 집에 들어와서, 술에 취한 민수와 마주했다. 
 
아빠는 기가 막혔다. 
 
“너 지금 뭐 하는 짓이냐?”
 
“아빠 때문이야.” 
 
“뭐? 이게 미쳤나?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아빠 때문에 엄마가 나갔어.”
 
그 순간 뭔가 번쩍했다. 아빠가 민수의 뺨을 때린 것이다. 
 
“정신 차려, 이 새끼야. 어디서 아빠한테 술 주정이야!”
 
“아빠한테 배웠지. 내가 어디서 배워?” 
 
민수는 바닥에 넘어진 채로, 소금에 담근 미꾸라지처럼 온몸을 비틀었다. 머리를 쥐어뜯고, 발버둥을 치면서, 오열했다. 
 
아빠는 바닥에 누워 미쳐 날뛰는 민수에게 차가운 물 한 바가지를 쏟아부었다. 
 
“정신 차리고, 여기 앉아 봐.” 
 
민수는 어안이 벙벙했다. 몸을 일으켜 앉았는데, 머리카락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래서, 엄마 지금 어디서 지낸다고 말해주디?” 
 
민수는 고개를 저었다. 
 
“아빠가 예전에 말했지. 어른들 문제니까 끼어들지 말라고.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고 말한 거 기억나지?” 
 
민수가 고개를 끄떡였다. 
 
“3년 전부터, 엄마가 이상했어. 처음에는 내가 오해하나 싶었어. 엄마가 아니라고 잡아떼니까, 뭐 방법이 있어야지.” 
 
민수의 정신이 또렷해졌다. 아빠의 말을 토씨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듯, 상체를 바로 세웠다. 
 
“그러다, 큰맘 먹고 흥신소에 부탁을 했더니, 아니나 달라? 딱 걸렸지. 진명이 삼촌, 너도 알지? 그 새끼랑 네 엄마랑….”
 
민수는 고개를 가로 저였다. 그럴 리 없다고 말하려던 참이었다. 
 
“엄마가 왜 어디있는지 말 못하는 지 알아? 그 자식이랑 같이 살림 차린 거야. 네 눈에는 엄마가 천사로 보이지? 엄마가 뭐 집에 붙어있은 줄 알아? 나 회사 가고, 너 학교 가면 엄마도 집에 없었어. 아빠가 맨 정신으로 살 수 있었겠냐? 아빠 인생은 3년 전에 끝났어.” 
 
아빠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인생의 쓴맛을 담배 연기로 누그러뜨렸다. 
 
“내가 너한테 별말을 다한다. 너는 신경 쓰지 말고 너 할 일이나 잘해. 정신 똑바로 차리고, 대학이나 가라고. 
 
아빠가 뼈빠지게 번 돈 너한테 다 쓰는 거야. 꼭 성공해서, 보란 듯이 잘 살아. 아빠처럼 살지 말고, 알겠어?” 
 
민수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바닥에 떨어지는 것이 물방울인지 눈물방울인지, 민수조차 알 수 없었다. 
 

 
정식 상담에서 민수를 만난 것이 아니었다. 
 
청소년 수련회 강사로 초대를 받아 저녁 집회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을 때, 담당 전도사님이 조심스럽게 민수의 이야기를 꺼냈다. 
 
수련회 일정 중에, 잠시 시간을 내어 민수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느냐는 부탁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물놀이를 할 시간에, 민수와 조용히 앉아 두 시간 정도의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나, 두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민수의 이야기가 끝나고 남은 시간은 고작 10분이었다. 
 
산더미 같은 질문을 뒤로하고, 나는 억지로 대화를 마무리해야 했다. 
 
나는 아빠의 관계, 엄마와의 관계, 그리고 친구들과의 관계를 언급했다. 
 
교과서에서 나올 법한 진부한 말들이었다. 듣는 사람이 마음만 답답해지는 그런 말들이었다. 
 
고맙게도, 민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떡이며 경청했다. 
 
다음 집회 일정 때문에, 우리는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했지만, 못내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나는 민수의 등을 두드려주면서, 힘내라고 말했다. 
 
민수는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고, 출입구를 향했다. 나는 그 자리에 선 채로, 민수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민수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돌아서서 내게 말했다. 
 
“그런데, 목사님…. 저도 치유될 수 있을까요?” 
 
나는 블랙홀에 몸이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민수는 어쩌면 나 자신이었다.
 
내가 민수를 향해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갈라진 자아가 하나로 합쳐지는 것을 느꼈다. 
 
그대로 민수를 내보낼 수 없었다. 나는 민수에게 다가가 민수를 끌어안았다. 
 
민수는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그리고,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나도 목사님처럼, 치유돼서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좋은 아빠가 되고 싶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어요. 부모님처럼 살고 싶지 않아요. 제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나는 민수의 손을 꼭 붙잡고, 고개를 끄떡였다. 
 
내가 위로랍시고 한마디를 내뱉는다면, 민수의 어깨에 내려앉은 희망이 깃털처럼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민수가 나가고, 나는 의자에 힘없이 걸 터 앉았다. 
 
나는 인정해야 했다. 민수는 내게 모든 것을 말했지만, 나는 민수에게 진실을 말하지 못했다. 
 
정작 나 자신은 치유되지도 않았고, 좋은 아빠도 아니었으며, 행복한 가정을 이루지도 못했다. 
 
아버지와 단둘이 마주 앉으면 어색함이 흐르고, 어머니를 향한 연민으로 잠을 뒤척인다. 
 
아내에게는 여전히 서투른 남편이고, 자녀들에게는 욱하고 사과하는 일을 반복하는 일관성 없는 아빠다. 
 
오히려, 나는 민수에게 묻고 싶었다. 
 
‘민수야. 목사님도 치유될 수 있을까? 내가 자격 있는 사람일까? 언젠가 네가 아빠가 되어 나타난다면, 나도 그때 진실을 말할게.’  
 
무능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예수님을 찾았다. 집회 장소 어딘가에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앉아 있는 민수를 찾아가셔서, 따뜻하게 안아주시기를 바랐다.  
 
또다시 아이러니였다. 
 
정작 나는 방문을 열고 나갈 용기가 없었다. 작은 방 안에 조용히 머무르고 싶었다. 잠시라도, 감정을 추스르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없었다. 
 
문밖에서, 누군가 노크를 했다. 담당 전도사님의 목소리가 문 너머로 들려왔다. 
 
“목사님, 이제 나가실 시간입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나는 자격을 갖추지 못한 채로, 사람들 앞에 섰다. 
 
내 시선이 군중을 향했다. 아이들은 와글와글 시끄러웠다. 밝은 조명에 눈이 부셨다. 
 
나에게는 오직 한 사람, 상처 입은 한 사람만이 중요했다. 내 관심은 민수를 향했다. 
 
저 멀리 맨 뒷자리에, 민수가 보였다. 민수의 옆자리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다. 민수는 말없이 조용했다.  
 
그날 밤, 설교는 기도였다.

마음을 쏟아놓는 기도

From 한나(사무엘의 어머니)
 
내 남편 엘가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어요. 매년 세 번씩 의무적으로 지키는 절기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가 따로 시간을 내서 하나님께 예배했으니까요. 게다가, 남편은 자상한 사람이었어요. 
 
남편이 믿음 좋고, 자상하고, 부자였으니까 남부럽지 않게 살았을 거라고 생각하면, 저는 억울해요. 저는 남들이 모르는 슬픔을 마음속 깊이 간직한 채로 살았어요. 
 
내 인생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어요. 겉만 번드레 한 인생이었어요. 마음은 텅 빈 채로, 쓸쓸하게 살았어요.  
 
남편의 사랑의 의심하지는 않았어요. 남편의 진심도 알았고요. 하지만, 남편이  내 모든 고통을 해결해 줄 수는 없잖아요. 
 
나는 아이를 못 낳았어요. 남편이 따로 얻은 브닌나라는 여자는, 남편이 내게 눈빛을 주는 것조차 견딜 수 없어했어요. 아이를 못 낳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나를 못살게 굴었죠. 
 
나는 당당할 수 없었어요. 내가 살았던 시대에, 아이가 없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만큼 괴로운 일이었어요. 사람들의 동정하는 눈빛, 쯧쯧 혀를 차는 소리…. 나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어요.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 나 혼자 이방인 같더라고요. 도저히 함께 할 수 없었어요. 내가 식탁에서 일어나자, 남편은 걱정스러운 듯 말하더군요. 
 
“여보, 왜 그래요? 왜 이렇게 슬퍼하세요? 자식이 없으면 어때요. 내가 당신을  사랑하잖아요. 나 하나로 만족 못 해요? 더 이상 슬퍼하지 마세요.” 
 
남편이 걱정해 주는 건 고맙지만, ‘저렇게 눈치가 없나’ 속상하더라고요. 눈물을 참을 수 없었어요. 간신히 눈물을 참고 자리를 벗어났어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세상이 떠나가라 엉엉 울었죠. 참았던 설움이 터져 나왔어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께 따지듯 물었어요. 
 
“하나님, 내 마음을 이렇게 모르세요? 남편이 저를 사랑해도, 저는 행복하지 않아요. 가슴이 뻥 뚫려버린 것처럼 외로워요. 하나님은 내 모든 필요를 아신다면서요? 도대체 저한테 왜 이러세요.” 
 
엎드린 채로 한참을 기도했어요. 그때, 엘리 제사장이 나에게 다가와,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죠. 
 
“이보시오. 술을 먹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시겠소? 언제까지 취한 채로 살아갈 것이요. 하루라도 빨리 술을 끊으시오.” 
 
저는 당황했어요. 남편도, 하나님도 내 마음을 몰라주는데, 제사장마저도 내 마음을 모르니,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거잖아요. 
 
나는 울먹이며 말했어요. 
 
“아니에요, 제사장님. 저는 술을 마시지 않았어요. 너무나 큰 고통을 겪고 있어서, 하나님 앞에 마음을 쏟아놓으며 기도했어요.” 
 
엘리 제사장은 내 얼굴을 유심히 살피더니, 그제야 실수를 깨달았어요. 어찌할 바를 몰라 우물쭈물하다가 민망한 표정으로, 내게 축복의 말을 전해주었죠. 
 
“그러셨군요. 이제 평안하세요. 하나님께서 당신이 원하시는 것을 허락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을까요? 엘리 제사장이 그렇게 말했을 때, 내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어요. 하나님께 직접 응답을 받은 건 아니지만, 사람을 통해서라도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께 그저 감사했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어요. 얼굴을 씻고, 밝은 얼굴로 가족에게로 돌아가 함께 식사를 했어요. 
 
솔직히 말하면, 그동안 가족이라고 해도 나는 가족과 섞이지 못했어요. 언제나 이방인 같은 심정이었거든요.
 
남편 엘가나, 브닌나,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 나는 그 사이에 덩그러니 혼자 존재했죠. 그들이 하하 호호 웃을 때마다, 그 웃음소리에 짓눌리는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거든요. 
 
하나님께 마음을 쏟아놓고, 엘리 제사장의 위로를 듣고, 다시 내 삶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다시 한번 희망으로 살아갈 용기를 얻었어요. 
 
그로부터 1년 후, 하나님은 정말로 내게 아들을 주셨어요. 하나님은 내 모든 슬픔을 아시고, 내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이세요. 
 
훗날 나는 깨달았아요. 하나님 앞에 마음을 쏟아놓고 그저 울었을 뿐인데, 하나님은 그것을 참된 믿음으로 인정해 주신다는 사실을요. “마음을 쏟아놓다”는 말과 “믿는다”는 말이 같은 뜻이더라고요. 
 
아무도 당신 마음 모를 거예요. 남편도 가족도, 친구도, 목사님도 당신이 왜 우는지 몰라요. 하지만, 슬퍼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아세요. 
 
당신이 울부짖으며 하나님을 찾을 때, 하나님은 듣고 계세요. 하나님이 침묵하셔도, 하나님께 마음을 쏟아놓으세요. 당신의 기도는 땅에 떨어지지 않아요. 하나님이 당신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당신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실 거예요. 
 
당신을 위해 기도할게요. 오늘 하루도 포기하지 마세요. 

아버지의 피눈물

From 엘리 제사장
 
내 자녀들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두 아들은 한 날 한 시에 함께 죽을 것입니다. 자녀가 죽을 날을 받아놓고, 하루하루 죽지 못해 살아가는 부모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예언은 이루어질 것이고, 우리 가문도 끝입니다. 
 
자녀를 의도적으로 망치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었습니다. 기다려주고 참아주면, 언젠가 깨달을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괜찮아, 괜찮아. 잘 되겠지, 잘 크겠지. 언제까지 그러겠어….’ 그러다, 여기까지 왔습니다. 
 
나는 제사장입니다. 성전에서 평생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틈 없이, 주님을 위해 일했습니다. 내 자녀를 돌볼 시간은 없었지만,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하면, 내 자녀는 하나님이 책임지신다고 믿었습니다. 
 
착각이었습니다. 내 자녀가 맞나 싶을 정도로, 막무가내였습니다. 자녀들의 죄는 갈수록 심각해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무시하고, 자기들의 이득을 챙기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제물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 전에, 자기들이 먼저 가서 가장 좋은 부위를 취하고, 성전에서 일하는 남자들을 협박해서 제물을 빼앗고, 성전에서 일하는 여자들과 몸을 뒤섞는 자식이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두려워, 두 아들을 불러다 놓고 말했습니다. 
 
“얘들아, 다른 사람에게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도와 주실 수 있지만, 하나님께 죄를 지으면 누가 구해 줄 수 있겠느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죄에서 돌아서서 회개하라고 말한 것이지요. 하지만, 자녀들은 눈을 부릅뜨고 대들었습니다. 
 
“아버지가 그런 말 자격이 있으세요? 저희가 빼돌린 음식을 맛있게 잡수실 때는 언제고, 사람들이 뒤에서 수군거리고, 아버지의 평판이 나빠지니까, 이제 와서 발을 빼시는 거예요? 이러시면 안되죠! 아버지와 우리는 한배를 탔어요. 이게 다 아버지를 위한 거라고요!” 
 
부끄러웠습니다. 나는 자식과 공범이었습니다. 나는 자녀들이 하나님도 잘 믿고, 세상에서도 남부럽지 않게 살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자녀들은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고, 자기들의 탐욕에 눈이 팔려, 하나님과 사람을 속여서 부와 명예를 축척한 것입니다. 
 
나는 자녀들이 갖다 주는 더러운 음식을 따박따박 받아먹으면서, 호강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알았는데, 나만 몰랐습니다. 모두 내 잘못입니다. 나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지만, 내 자녀에게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안 가르친 것은 아닙니다. 나를 비롯한 유대인 부모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가르칩니다. 명색이 제사장인데, 대충 했겠습니까? 나도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자녀들의 삶 깊숙한 곳에, 하나님을 심지 못했습니다. 내 자녀들은 하나님을 피상적으로 알았습니다. 
 
자녀들은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종교적 관습에 익숙해진 것이었습니다. 그저 내가 시키는 대로 성전을 왔다 갔다하며, 눈속임을 한 것이지요. 하나님을 믿은 척을 한 것이지, 실제로 믿은 게 아니었습니다.  
 
자녀들에게 진심을 담아 죄에서 돌이키라고 말해도, 자녀들은 내 자존심, 내 체면 때문에 자기들을 무시하는 것으로 단정해버렸습니다. 그저 부모의 잔소리로 취급한 것이지요. 
 
아버지의 심정도 모르는 자녀가, 어떻게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을 알겠습니까?   
 
어릴 때부터 마주 앉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했습니다. 피상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삶의 중심이 되시는 하나님을 전해야 했습니다. 
 
나는 몰랐습니다. 피멍이 들도록 가슴을 쳐도 소용없는 일입니다. 당신에게 아직 기회가 있다면, 나처럼 어리석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자녀를 위해, 시간을 따로 떼어 내십시오. 아무리 바빠도 자녀와 일대일로 마주 앉아, 대화를 하십시오. 자녀가 무엇을 고민하는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정답 보다 중요한 것은 과정입니다. 자녀는 자기 대신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부모가 아니라, 공감하고 믿고 기다려주는 부모가 필요합니다. 자녀의 마음속 빈자리에, 복음을 전하십시오.
 
자녀의 인생이 막힐 때, 자녀는 부모가 만난 하나님을 듣고 싶어 합니다. 차분하고 따뜻한 목소리로 당신이 만난 하나님을 전하십시오. 자녀의 마음속 빈자리에 복음이 전해질 것입니다. 
 
내 나이 98세입니다. 피눈물을 흘리며, 후회합니다. 당신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부디, 나처럼 못난 아비가 되지 마세요.

엄마 품을 떠난 아이

From 한나
 
하나님은 내게 자녀를 주셨어요. 나는 그의 이름을 사무엘이라 지었지요. 사무엘이 방긋방긋 웃을 때마다, 천사들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했어요. 하나님은 내 모든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주셨어요. 아기를 키우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냈지요. 
 
어느 날, 남편 엘가나가 조심스럽게 말하더군요. 
 
“부인, 사무엘을 성전에 바치지 말고, 우리가 데리고 키워봅시다. 사무엘을 굳이 성전에 바치지 않아도, 거룩한 나실인으로 키울 수 있소. 내가 매년 수차례 성전에 올라가니, 그때마다 사무엘을 데리고 다닙니다. 자비로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사정을 이해하실 거요. 당신과 사무엘이 생이별을 하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을 것 같소.”
 
남편의 말에, 마음이 잠시 흔들렸어요. ‘정말 그럴까? 하나님도 이해해 주시지 않을까?’ 하지만, 하나님은 나를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셨어요. 아이를 품에 안고 기도할 때마다, 평안한 마음을 주셨어요. 
 
‘하나님께 눈물로 호소하여 얻은 아기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마땅하다.’ 
 
남편이 절기마다 성전에 올라갈 때, 함께 따라나서지 않았어요. 사무엘과 함께 있는 하루하루가 소중했으니까요. 사무엘과 하루라도 더 같이 있고 싶었거든요. 
 
나는 남편에게 말했어요.  
 
“이 아이가 젖을 떼면, 이 아이를 데리고 여호와를 뵈러 가겠어요. 그리고 이 아이를 영원히 그곳에 있게 하겠어요.”
 
남편은 나를 온전히 이해해 줬어요.  
 
“당신이 편한 대로 하시오. 아기가 젖을 뗄 때까지 나를 따라나서지 말고, 사무엘과 함께 집에 머무시오. 여호와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랄 뿐이오.” 
 
3년이 지나고, 사무엘이 젖을 뗐어요. 나는 사무엘을 품에 안고, 남편을 따라나섰지요. 남편과 함께 실로의 성전을 향하는 동안, 나는 잠시도 사무엘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사무엘이 방긋 웃는 순간,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졌어요. 사무엘을 끌어안고 엉엉 울어버렸죠. 남편 엘가나가 말없이 내 등을 토닥였어요. 남편도 고개를 돌리고, 조용히 눈물을 닦았어요. 
 
우리는 금방 성전에 도착했어요. 분명 먼 길이었는데, 그 길이 그리도 짧게 느껴진 것이지요. 
 
성전에 들어가, 엘리 제사장을 만났어요. 엘리 제사장은 단 번에 나를 알아보더군요. 나는 엘리 제사장에게 무릎을 꿇고 말했어요. 
 
“제사장님, 저는 제사장님 가까이에 서서 여호와께 기도드렸던 그 여자입니다. 저는 아이를 가지기 위해 기도드렸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제 기도를 들어 주시고 이 아이를 저에게 주셨습니다. 이제 이 아이를 여호와께 다시 돌려 드립니다. 이 아이는 평생토록 여호와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은 감격한 얼굴로 사무엘을 받아들었어요.  
 
그날부터 나는, 성전에 올라가 제사를 드릴 때마다, 손으로 직접 만든 겉옷을 가지고 올라갔어요. 사무엘은 무럭무럭 자랐어요. 한 번 올라갈 때마다, 팔이 짧아진 겉옷을 입고 있는 사무엘과 마주했으니까요. 새 옷을 갈아입히면서, 생각했지요. 
 
 ‘사랑스러운 우리 아들, 하나님의 성전에서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구나.’  
 
울컥 눈물이 쏟아나더군요. 엘리 제사장은 그런 내 모습이 측은했는지, 우리 부부에게 다가와 축복해 주었어요. 
 
“당신이 기도하여 얻은 아이를, 여호와께 다시 바쳤소. 사무엘을 대신해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다른 자녀를 주시기를 바라오.” 
 
엘리 제사장의 말은 현실이 되었어요. 하나님은 우리 부부에게, 아들 셋 딸 둘, 다섯 아이를 선물로 주셨어요. 
 
사무엘은 자라면서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겼어요. 하나님은 사무엘의 민족의 지도자로 세워주셨어요. 내 아들을 통해, 하나님은 다윗에게 기름 부으셨고, 위대한 왕국을 이루셨지요. 
 
내 인생에 이런 일이 있다니요. 감히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에요. 나는 아이 없는 서러움에 복받쳐 엎드려 울었을 뿐이고, 하나님이 주신 아이를 다시 하나님께 온전히 내어드린 것뿐이에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에요. 
 
자녀는 언젠가 엄마 품을 떠나요. 나는 다른 사람보다 조금 일찍 자녀를 떠나보낸 거예요.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아요. 내 품을 떠난 아이가, 하나님 품 안에서 자랐다는 사실을요. 
 
당신은 나처럼 독특한 경우가 아닐 거예요. 하지만, 다 큰 아이를 품에 안고 키우지 마세요. 아이가 젖을 떼고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면, 아이가 하나님의 품에 안겨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자녀를 키우면서 반복했던 수많은 실수와 후회 속에서 엎드려 눈물 흘리겠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위로하기 원하세요. 자녀가 엄마 품에서 벗어나, 자기 길을 간다고 말할 때, 축복해 주세요.  
 
당신의 기도는 반드시 응답될 거예요.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를 귀하게 사용해 주실 거예요. 당신의 자녀는 당신의 자녀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자녀이니까요. 하나님이 반드시 끝까지 책임져 주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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