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에세이

딸에게 장애가 있어요

막내 딸에게 장애가 있어요.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삶이 망가지기 시작했어요. 제가 생각한 결혼 생활은 이게 아니었는데, 모든 게 엉망이 된 것 같아요. 어릴 적 아빠가 일찍 돌아가셨어요. 엄마가 고생했어요. 엄마의 스트레스를 제가 다 받으며 자랐어요. 엄마로부터 탈출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결혼을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숨쉬기 조차 힘드네요.
 
딸에게 사랑을 듬뿍 주고 싶은데, 쉽지 않아요. 우울증이 온 것 같아요. 다른 사람 도움 없이 장애가 있는 딸을 키우면서 재활, 육아, 살림은 혼자 다 하고 있어요. 딸에게 스트레스를 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상처가 되물림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됩니다. 정말 행복하게 살고 싶었어요. 아이를 꽃처럼 예쁘게 키우고 싶었는데, 아이들을 사랑으로 보듬어 줄 수 없어서 항상 죄를 짓는 것 같아요.
 
자매님, 지금 정말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세요. 자매님이 겪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거예요. 몸이 불편한 아이를 키우며 힘든 시간을 보내던 내담자를 만난 적이 있어요. 아이에게 미안하다며 흐느껴 우는 모습에 나도 따라 울었어요. 자신 때문에 아이가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자책했어요. 그런 아이를 부담스러워하는 자신을 보며 하나님 앞에서 죄책감을 느끼며 고통 받았죠. 그분이 느꼈던 고통의 무게는 상상을 초월했어요. 자매님이 보내주신 사연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그분과의 기억 때문이에요.
 
가장 먼저 자매님께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요. 자매님은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죄책감을 느끼시면 안돼요. 무작정 덮어 놓고 위로하는 게 아니에요. 내 나름의 근거가 있어요. 내게 질문하신 이유는 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일 거예요.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이 있다고 믿는 거죠. 아이들에게 더 나은 삶을 선물하고 싶은 거예요. 아이들의 행복이 곧 자신의 행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보다 좋은 엄마가 세상에 있나요? 나는 자매님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어요.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몸이 불편한 아이를 키우는 어려움이 몇 마디 위로하는 말로 쉬워지지 않기 때문이에요. 자매님이 몸이 아픈 자녀를 돌보며 살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잘 돌보며 살아야 해요. 그래야, 오래 동안 지치지 않을 수 있어요. 자매님의 상처를 돌보면서 아이를 돌보자고 말하고 싶어요.
 
자매님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 암투병을 했어요. 일찍 돌아가셨고, 자매님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어요. 어머니는 자녀들을 혼자 키우며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막내인 자매님이 희생양이었죠. 어머니의 스트레스를 받아주는 사람이었어요. 어머니를 이해하는 마음과 원망하는 마음이 뒤섞어 혼란스런 시간을 보냈고, 결혼이 탈출구였어요.
 
자매님이 자녀들에게 불편한 감정느껴서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짜증을 낼 때, 어머니와 자신이 겹치는 것 같아요. 아이에게 짜증 내고 화를 내는 상황은 어쩔 수 없는 거예요. 아픈 아이에게 짜증내고 화내도 괜찮다는 말이 아니라, 그만큼 육아가 힘들다는 말이에요.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 자매님의 욕구 깊숙한 곳에는 엄마처럼 아이들을 키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어요.
 
자매님이 몸과 마음이 치져서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고 있을 때, 그 장면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이 어떤 표정인가요? 인상을 찌푸리시며 화난 표정으로 자매님을 바라보신다면, 하나님을 오해하고 계신 거예요. 내가 생각하기에 하나님은 슬픈 표정으로 자매님을 바라보고 계실 것 같아요. “내 딸 너무 힘들어 보인다. 많이 힘들지? 너에게 힘이 되고 싶구나.”라고 말씀하시지 않을까요.
 
지금 이 순간은 상담자로서가 아니라 목사로서 말하고 싶어요. 자매님은 자매님의 엄마처럼 아이들을 키우지 않을 거예요. 예수님처럼 키울 거예요. 자매님이 부족하니까 엎드려 기도하면서 울잖아요.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어요. 하나님은 그 기도 받으실 거예요. 자매님이 최선을 다해도 부족한 거 있어요. 우리 부모가 어떻게 자녀들 앞에서 떳떳하겠어요. 하나님이 우리 자녀 길러 주실 거예요. 우리의 상처를 돌봐주시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아이들 덮어주실 거예요.
 
자매님 역시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기억해주세요. 하나님 앞에서 만큼은 무너져도 괜찮아요. 상처로 고통받는 우리를 돌보며 이끌어주시듯, 자매님의 딸 아이는 하나님이 돌보고 사랑해주실 거예요. 예수님의 사랑과 말씀으로 자신을 먼저 돌봐주세요. 자신을 돌볼 수 있어야 자녀를 돌볼 수 있으니까요.

하나님보다 자녀를 사랑해요

자녀가 우상이 되면 안 된다는 설교를 자주 듣습니다. 말 자체에는 동의가 되는데, 구체적으로 실천하려면 답답해집니다. 자녀가 우상이 되지 않으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자녀를 양육해야 할까요? 
 
뻔한 답변부터 하겠습니다. 자녀가 우상이 되면 안 된다는 말뜻은 단순합니다. 자녀가 하나님보다 앞서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같은 말을 들어도, 듣는 사람에 따라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당당한 사람이 있습니다. “당연한 말이지. 어떻게 자녀가 하나님보다 앞설 수 있겠어. 하나님이 우선이야.”하나님이 최우선이라고 믿으니까, 그다음부터는 별 고민 없이 마음 편하게 삽니다. 자녀에게 올인하더라도, 위기의식이 없습니다. 자녀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면 되니까요. 바른 적용 아닙니다. 자기 합리화입니다. 
 
자책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자녀를 하나님보다 사랑했구나. 잘못 살았어. 회개하자.”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회개하고 난 다음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반복되는 죄책감을 느낍니다. 자녀 앞에서는 부모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자책합니다. 하나님과 자녀 사이에 끼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괴롭습니다. 바른 적용 아닙니다. 자기 비하입니다. 
 
조심스럽게 내 생각을 말해보겠습니다. 질문 자체에 해답이 있습니다. 당신은 자녀가 우상이 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어디까지가 하나님의 뜻인지 정말로 알고 싶은 겁니다. 문제를 붙잡고 고민하는 그 과정 자체가 해답입니다. 고민이 멈추지 않는 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내가 정답이라고 말하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정답과 해답은 뉘앙스가 다릅니다. 정답은 이미 정해진 답입니다. 해답은 풀이 과정에서 도출된 결과입니다. 자녀 양육에 정답은 없습니다. 해답이 있을 뿐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자녀를 제대로 키우고 있느냐, 중간에 채점할 정답지가 없습니다. 자녀를 다 키워보고 나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평가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그러니, 정답이 아니라 해답입니다. 
 
계속 고민하면서 자녀를 키우면 좋겠습니다. 자만하지 말고, 확신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계속 고민하면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계속 고민하면서, 자녀 앞에 서야 합니다. 엎드리고 서기를 반복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목사라고 자녀 잘 키우는 거 아닙니다. 오히려, 빈틈이 많습니다. 아이들 어릴 때, 목회 바쁘다고 함께 있어주지 못한 게 미안합니다. 보상해주고 싶은 게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자녀 욕심이 앞서면, 공감 없는 명분 앞세워 교회와 세상 앞에서 부끄러운 선택을 하게 됩니다. 목사라고 예외 없습니다. 나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부탁입니다. 계속 고민하세요. 고민이 끝나면 성장도 멈춥니다. 고민하는 당신은 안전합니다. 고민 없는 당신은 불안합니다. 다행입니다. 아직은 고민하고 계시니까요. 고민하는 한, 당신의 최우선 순위는 하나님입니다. 우상 숭배 그리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은 참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마음이 잠시 흔들렸을 뿐

“목사 아내가 될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죠. 어느 날, 남편이   목사가 되겠다고 하는 바람에….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그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어요. 목사가 된다고 하는데 이혼할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사모로 살아가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더군요. 어항 속에 사는 느낌이랄까…. 제 표정, 말투, 입는 옷, 아이들. 어느 것 하나 예외 없이 구설수에 올랐어요. 남편은 자기가 원해서 하는 일이지만, 저는 그렇지 않거든요. 사모가 상담을 받는다는 소문이 퍼지면 어떻게 될지…. 아마 목사 자격 없다, 사모 자격 없다고 뒤에서 욕하겠죠. 결국 우리 부부를 쫓아낼 방법을 찾을 거예요. 
 
요즘 이상한 꿈을 자주 꿔요. 자다가 눈을 뜨면 천장이 내려앉는 거예요. 천천히 내려앉는 천장을 보면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요. 깜짝 놀라 일어나면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 있어요. 요즘은 꿈꾸는 횟수가 늘어났어요. 예전에는 한 달에 한두 번 꾸던 꿈이었는데, 이제는 일주일에 한두 번으로 늘었어요.” 
 
P는 금융회사에 다니던 남편과 결혼했다. 그녀의 나이, 스물일곱이었다. 교회에서 만나 4년 동안 연애를 했다. 두 사람은 해외 단기선교로 신혼여행을 대신할 만큼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남편은 회사에서 업무 능력을 인정받으며 승승장구했다. 자녀들 역시 잘 자라주었다. 
 
결혼하고 11년이 지난 어느 날, 남편은 아내를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으로 불러냈다. 분위기를 한껏 잡고서 폭탄선언을 했다. 신학교에 입학해서 목사의 길을 걷겠다고. 아내는 충격을 받았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충분한 시간을 갖고 생각해보자고 했다. 
 
그날부터 아내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하나님께서 남편에게 사명을 주셨는데, 자신이 가로막고 있는 것 같았다. 쉽게 그의 뜻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는, 그동안 자신이 만났던 목사 아내들의 고통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 고통을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기도의 자리를 피했다. 기도하다가 덜컥 하나님이 순종하라고 하시면 도망칠 길이 없기에. 
 
“거실에서 빨래를 개고 있는데, 갑자기 마음에 외침 같은 것이 있었어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죠. 더 이상 질질 끌 수 없다고 생각해서 남편의 결정에 따르기로 했어요. 남편에게 원하는 대로 하자고 말했을 때, 그가 저를 끌어안고 고맙다며 눈물을 흘렸어요. 저도 남편이 참 고마웠어요. 독단적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제 결정을 기다려줬거든요. 두려운 마음은 있었지만 그를 믿었어요. 지금처럼 배려해주고 존중해준다면 어려운 길을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남편이 신학교에 입학하고, 목사의 삶을 준비하는 동안에 그녀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남편이 목사가 된 이후에 S시에 위치한 교회에서 연락이 왔다. 담임목사로 와달라고. 남편은 그녀와 상의한 후에 부임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목회가 시작되면서 아내는 생각하지 못한 문제로 시달리게 되었다. 처음 불거진 문제는 그녀의 옷차림이었다. 교인들이 사모가 너무 화려하게 입는다고 수군거렸다. 그녀는 옷차림으로 남편의 목회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화려한 옷은 장롱 구석에 처박아놓고 편안한 옷을 꺼내 입었다. 
 
한 달의 시간이 흐르자 반대의 소문이 들렸다. 옷차림이 너무 촌스럽다는 말이었다. 아내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모든 사람의 비위를 맞출 수 없었다. 그녀에게 절망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옷차림으로 시작된 말은 점점 삶의 모든 것으로 확대되기 시작했어요. 다른 건 다 참아도 자녀들에 대한 말이 사람들 사이에 돌아다니는 건 참을 수 없었어요. 남편이 자녀 교육에 대해서 설교한 날이었죠.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데, 우연히 식당에서 몇 사람이 하는 말을 들었어요. 
 
‘목사님은 자기 자녀도 제대로 못 키우시는 것 같은데, 우리한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건가?’ 
 
저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마음 같아서는 머리채를 휘어잡고 제대로 싸우고 싶더라고요. 아마 남편이 알면 스트레스 받아서 종일 누워 있을 거예요.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몸이 아파서 누워요. 사람들 때문이죠. 아무리 노력해도 사람들이 변화되지 않는다고 괴로워해요. 그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전 힘들다는 말을 못해요. 저까지 힘들다고 하면 아마 남편이 못 견딜 거예요.”
 
집안일, 자녀 양육은 고스란히 아내가 떠맡았다. 남편은 평일, 주말 구분 없이 새벽부터 늦은 시간까지 바빴다. 아내는 점점 외로움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삶이 통째로 흔들리는 사건이 벌어졌다. 아이들이 중학교에 입학하자, 그녀의 삶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가까운 대학의 평생교육원에 입학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 삶에 활력을 가져다주었다. 여러 사람을 편하게 사귀던 중에 한 남자가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대화를 하면서 서로 호감을 느꼈다. 
 
‘이러면 안 되지’ 하면서 이상하게 빠져들었다. 깊은 대화를 하고, 함께 식사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녀는 남편에게도 말하지 못한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 남자는 경청해주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점점 깊어졌다. 
 
“서로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죠. 그 역시 아내와 사이가 좋지 않았거든요. 출장이 많은 일을 하고 있어서 아내와 함께할 시간이 부족했나 봐요. 제게 외롭다는 말을 자주 했죠. 안아보고 싶다고, 딱 한 번만 허락해달라고. 그의 품에 딱 한 번 안겨봤어요. 성적인 관계를 맺거나 한 건 아니에요.  
 
선을 넘을까 두려웠어요. 그래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그에게  이제 그만하자고, 더 늦게 전에 정리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죠.  그제야 그도 정신을 차린 것 같아요. 제 말에 동의해주었어요. 그 이후로 서로 연락을 하지 않고 있어요. 
 
그런데 그가 떠나자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그를 다시 만나고 싶다는 게 아니에요. 그가 떠난 자리가 너무 크다는 거죠. 제 선택에 후회는 안 해요. 만일 그 관계를 정리하지 못하고 선을 넘었다면 더 후회를 했겠죠.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거든요. 정리하면 죄책감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더 심해졌어요. 
 
가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진 않을까 스스로 걱정이 되요. 제가 인생을 살면서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게 된 거죠. 항상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제게 벌어졌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통을 받고 있어요.” 
 
남자를 떠나보낸 이유는 간단했다. 죄책감 때문이었다. 그에게 마음을 빼앗기면서 그녀는 하나님께 죄책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나님과 그녀 사이에 알 수 없는 벽이 있는 것 같았다. 그에게 이별을 통보한 후에 그녀가 되찾고 싶었던 것은 하나님과 막힘없는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떠난 후에도 하나님과 관계는 예전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무거운 돌이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더 고통스러웠다. 그녀의 고통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남편이 아는 순간, 그의 세계는 무너질 것이다. 그는 교과서처럼 정해진 대로, 주어진 대로, 불평 한 마디 없이 지금까지 살아온 사람이었다. 교회 사람들이 술 한 모금 입에 대는 것마저도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이기에 아내가 다른 사람에게 잠시나마 마음을 줬다는 것을 용납할 리 없었다. 영원히 비밀로 간직하고자 했지만 그 무게를 견딜 수 없었다. 
 
“마음속에서 싸움이 있음을 느껴요. ‘내가 정말 잘못했지. 다른 사람에게 감정을 주지 말아야 했어. 도대체 왜 그랬을까?’  하면서도 정반대의 생각도 들어요. ‘내가 그와 뭘 했는데? 그냥 밥 먹고 차 마신 게 다잖아. 선을 넘은 적도 없고. 마음이 잠시 흔들렸을 뿐 그 이상은 아니잖아. 결국 옳은 선택을 했으니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전혀 없어’ 라고 스스로 다짐하지만 마음이 복잡해요. 
 
하나님은 저를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회개했으니까 용서받은 걸까요? 아니면 정말로 반성하지 않으니까 용서받지 못한 걸까요? 너무 혼란스러워요.” 
 
***
 
그녀는 취약하다. 외로움에 노출되기 쉽다. 고립된 섬에서 외롭게 생활하다가 그 섬에 낯선 남자가 갑자기 찾아왔고, 그에게 매력을 느꼈다. 그녀는 사람들과 함께 머물고 있었지만 의도적으로 가까이 가지 않았다. 가까이 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그녀에게 따뜻하지 않았다. 반복되는 비판 속에서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그녀에게 비판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호적인 사람들은 그녀의 눈에 보이지 않고, 비판적인 사람들만 보였다. 결국 공동체 모두가 그녀를 비난하고 있다고 결론짓는다. 사실이 아님에도 그녀에게는 사실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녀는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수많은 목사 아내들이 지독한 외로움으로 고통 받는다. 사람들의 높은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채, 스스로 결론내리고 절망하면서 마음의 병을 얻는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을 통해 치유하려고 하면 부작용이 생긴다. 위험한 관계로 빠져든다. 
 
남편 역시 목회가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간다. 아내를 세심하게 돌볼 상황이 아니다. 남편이 아내를 돌봐주지 않아서 그녀가 다른 사람에게 잠시나마 마음을 줬다고 하는 것은 무리일까. 사모 역시 목사와 다를 바가 없으니 어떤 위기 속에서도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것인가? 
 
아내가 취약해진 결정적인 이유는 남편과 관계가 건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선순위에서 밀린 아내는 비참해진다. 회사 일이 바빠서 아내를 뒷전으로 미룬 사람을 좋게 평가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아내보다 앞선다고 말하는 사람은 어떤가? 단순하지 않다. 
 
이 과정에서 남편들은 실수한다. 하나님이 아닌 교회 일에 파묻혀서 아내를 뒷전으로 미루는 것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교회 업무를 구분해야 한다. 회사 일로 밀려난 아내나 교회 일로 밀려난 아내나 그 심정은 똑같이 비참하다. 교회 일로 밀린 아내에게 더 고귀한 하나님의 사랑이 임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아내보다 앞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내가 가장 우선되는 성도라는 것을 잊은 것이다. 아내는 그 누구보다 목사의 사랑과 돌봄이 필요한 최우선 순위의 성도이다. 
 
아내는 고립된 섬에서 스스로 탈출해야 한다. 계속 무인도에 스스로를 가둔다면 지나가는 배 위에서 의미 없는 손짓으로 인사하는 사람마저 반갑게 느껴진다. 취약한 상태가 계속된다. 남편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다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한 가지는 그와 공유해야 한다. 
 
“나는 지금 외롭다. 당신이 필요하다.” 
 
외로움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남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건강한 공동체를 찾아서 소속감을 느끼기를 바란다. 목사 아내는 목사 아내의 고통을 안다.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맞는 사모들을 모아서 정기적인 모임을 갖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마저 힘들다면 일대일로 연락을 해서 정기적으로 마음속에 있는 답답함을 털어놓는 것도 좋다. 무인도를 디즈니랜드로 만드는 것은 어렵지만 낭만적인 여행지로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쉽다. 방법은 간단하다. 사람을 기다리지 말고, 사람을 초대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남편이 목사의 사명을 받을 때, 아내 역시 사명을 받은 것이라고 쉽게 결론 내린다. 같은 사명을 받았으므로 목사가 짊어진 사역의 무게를 아내에게 고스란히 짊어지게 한다. 그러나 그녀는 사모가 되기 위해 남편과 결혼하지 않았다. 한 남자를 사랑한 것뿐이다.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을 했고, 따뜻한 가정을 이루기 원했다. 
 
남편이 목사가 된다고 했을 때, 그녀는 동의했다.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어서가 아니다. 그녀가 기꺼이 목사 아내로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가끔 목사 남편보다 더 열정적인 목사 아내들을 만나지만 그녀는 그들과 다르다. 
 
한 남자를 사랑했다는 이유 하나로 견딜 수 없는 인생의 무게를 견뎌야 했다. 그녀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떨까? 화가 나실까, 답답하실까? 하나님은 그녀를 바라보시며 마음 아파하실 것이다. 고통 받는 그녀를 위로하기 원하실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사모로서 자격이 없다고 말하고, 잠시 흔들렸던 그녀를 비난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부탁이다. 그런 말 하지 마라. 그녀를 목사 아내가 아닌 외로움으로 고통 받는 한 여자로 바라보라. 누가 그녀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있는가!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온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비난이 아닌 사랑이다. 

당신 어디 있나요

어디 있나요.
살아 있나요.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아요.
 
글자 속에 있군요.
동화처럼.
 
나도 남들처럼
만나고 싶어요.
 
배운 대로 했어요.
소용없어요.
 
하늘에 있을까
안구에 하얀 먼지
내려앉아도
 
땅에 있을까
눈물이 망막을
잡아당겨도
 
없어요, 당신은.
절대로, 없겠죠.
 
나타나세요.
어디 있나요.
 
그를 찾고 있군요.
나도 그랬죠.
 
저기 계시나.
여기 계시나.
 
말똥말똥
눈으로 못봐요.
 
두근두근
마음으로 보여요.
 
어디 계시나.
찾지 마세요.
 
그가 계시니
여기 계세요.
 
기록된 말씀,
그분이 계시[啓示].
 
보고 싶은 만큼 볼 수 없어요.
보여주신 만큼 보여요.
 
먼지 후후 불어내고
가죽 표지 들춰보세요.
 
그는 온 세상에 계시지만
그의 말씀은 그 안에 있어요.
 
말씀으로 그를 봅니다.
말씀으로 나를 봅니다.
 
나를 보면 그가 보이고
그를 보면 내가 보여요.
 
말씀을 펼치세요.
말씀을 읽으세요.
 
바람이 불면
마음이 떠집니다.
 
언젠가
보게 될 겁니다.
 
그가 여기
우리와 함께 계심을.

생각보다 오래 걸릴 거야

목사님,
사실 제가  떳떳하지 못해요.
안 좋은 습관이 있거든요.
끊어야 하는데 아직 못 끊었어요.
 
죄책감이 심해요.
순종하면 달라질까 싶어
몇 번 시도해봤는데
계속 실패하네요.
 
예배 시간에 앉아 있기 힘들었어요.
다른 사람 모두가 편하게 듣는 말을
편하게 들을 수 없었거든요.
낙오자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교회를 떠났어요.
이대로는 안된다.
고치고 다시 오자.
마음 먹었죠.
 
혼자 고민하다
용기를 내서 말했어요.
친구가 말하더군요.
 
그렇게 자꾸 미루면 안 돼.
마음 단단히 먹고 끊어.
계속 그렇게 변명하지 마.
하나님이 참는 것도 한두 번이야.
 
마음이 아팠어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집에 와서 알게 되었어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나도 알아.
몰라서 그러는 거 아니야.
그래서 어떻게 하라고.
나도 끊고 싶다고 했잖아.
쉽게 안된다고 말한 거야.
이 바보야.
 
어려운 주제를 가져오셨네요.
쉽게 대답하기 어려워요.
솔직히 이야기해주신 덕분에
당신의 진심은 알았어요.
 
교회를 떠났다는 게
걱정되고 불안하기는 해요.
다시 돌아가기로 한 거니까
조급하게 굴지는 않을게요.
 
대신 부탁이 있어요.
예수님은 떠나지 말아주세요.
예수님과 함께 있어주세요.
 
부모님께 인정받고 싶어서
집 나가 성공하겠다는
계획은 실패할 거예요, 아마.
자식 걱정에 처마 밑에 앉아
먼 산 바라보는 부모님 모습은
보이지 않을 테니까.
 
사람 생각하지 마세요.
교회 생각하지 마세요.
오직 예수님만 생각하세요.
그분만이 당신의 진심을 알아요.
당신의 진심을 전하세요.
 
진심을 전하셨나요?
그래요. 잘 하셨어요.
이제 용기를 내세요.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가세요.
 
발이 떨어지지 않을 거예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한 걸음 떼세요.
조금만 가까이 가요, 우리.
 
가까이 가면 볼 수 있어요,
당신을 바라보시며
따뜻하게 웃으시는 예수님 얼굴.
그가 당신을 안아주며 말씀하세요.
 
얘야, 조급할 필요 없단다.
나는 기다릴 수 있단다.
생각보다 오래 걸릴 거야.
자책하지 말아주렴.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이 틈에 숟가락 하나 얹어도 될까요.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아, 그렇군요.
오늘 다시 태어난 걸로 하죠.
 
지난 30년 동안 상처받고 살았으니까
오늘부터 당신에게 30년 시간 주세요.
상처받으며 살아온 시간만큼
상처 아무는데 시간 걸려요.
 
나도 마음속에 달력 있어요.
조급하지 않을 거예요.
비난하지 않고 자책하지 않고
나를 돌봐줄 거예요.
 
떨리는 손으로
달력을 한 장 한 장 찢어 넘기며
나는 기도합니다.
 
달력 뒤에 벽을 만나 절망하기 전에
예수님이 먼저 오시기를.
 
지친 이 삶을 뒤로하고
주님 품에 안겨 안식하기를.

혼자 좋아하고 혼자 정리합니다

짝사랑이 전문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저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혼자 좋아하고 혼자 정리합니다. 용기 내어 마음을 표현한 적도 있지만, 결과는 언제나 거절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있다고 애써 위로하지만, 또다시 거절당할까 두렵습니다. 
 
내가 직접 당신을 만난 적은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이성에게 계속 거절당하는 이유는 외모나 매력 때문이 아닐 겁니다. 이성에 대해 서툰 게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릅니다. 호감이 사랑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과 함께 충분한 지식 역시 필요합니다. 
 
남자가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가장 많은 듣는 말이 있습니다.“나는 널 남자로 생각해 본 적 없어. 우린 그냥 친구야.”남자 입장에서는 당황스럽습니다. 하루 종일 연락을 주고받고 데이트도 해서 서로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갑작스러운 거절에 상처받습니다. “나를 가지고 놀았다, 꼬리를 쳤다.”혼잣말을 하면서, 여자를 비난합니다. 
 
여자를 오해하는 겁니다. 상대방의 감정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사람은 드뭅니다. 여자 역시 남자에게 호감을 느꼈을 겁니다. 다만, 서로를 알아갈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던 겁니다. 조심스럽게 서로를 알아가고 있는데, 갑자기 계약서에 도장이라도 찍으라는 듯한 말과 행동을 하니, 뒤로 물러선 겁니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니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공감하는 사람 적지 않을 겁니다. 
 
좋아하는 감정을 표현하고 거절당하면, 그나마 낫습니다. 어찌 되었든 상대방의 감정을 확인했으니까요. 하지만, 좋아하는 감정을 표현 한 번 못해보고 혼자 정리한다면, 너무 안타깝습니다. 이성에 대해 배우고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미국 사람과 친해지려면 일단 영어를 배워야 합니다. 영어를 배워야 인사도 하고, 대화도 하고, 같이 밥도 먹을 수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일상 대화는 한국말로 같지만, 감정의 언어는 서로 다릅니다. 미묘한 감정을 다룰 때는 국어와 영어처럼 극단적으로 서로 다른 언어를 쓰기도 합니다. 배워야 합니다. 저절로 깨우쳐지는 게 아닙니다. 한 번 배운 영어 평생 써먹듯이, 이성의 언어도 한 번 배우면 평생 써먹습니다. 기회를 찾아서 부지런히 배우세요. 연애 고수가 되자는 말이 아닙니다. 좋은 배우자가 되자는 말입니다. 
   
이성에게 거절당하는 두려움 이외에 다른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면, 자신을 깊이 살피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이성에게 거절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마도 삶의 다른 영역에서도 두려움을 느낄 것입니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에는 자신만의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안전한 곳에서 안전한 사람과 함께 숨겨진 이야기를 풀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을 돌보면서 힘든 시간 이겨 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당신은 그 소년을 알고 있다

“지금까지 열심히 살았는데,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네요. 돈, 가정, 친구, 다 잃었어요….”  
 
E는 서른아홉 살 여자다. 6년의 결혼 생활을 끝내고 혼자된 지 3년 지났다. 남편은 교회 목사님 소개로 만났다. 목사님은 남편이 진지하고 성실한 남자라고 하셨다. 첫눈에 호감이 느껴지는 남자는 아니었지만, 목사님이 인정한 사람이니 한두 번 만나보자고 생각했다. 따뜻한 성품이 좋았다. 8개월 만나고, 결혼했다. 
 
신혼집은 다세대 주택에서 시작했다. 4층 건물 맨 꼭대기 주인세대에 시어머니가 살고, 그녀와 남편은 2층에서 살았다. 결혼 일주일 만에 남편과 다퉜다. 그가 급여를 아내에게 갖다 주지 않았다. 생활비는 여자가 관리해야 한다며 남편을 설득했다. 그러자 그는 “그런 게 어디 있냐? 돈 버는 사람이 관리하자”라고 말했다. 아내는 자존심이 상했지만 물러섰다. 
 
두 달 뒤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편은 결혼 전에 대출을 받아 주식에 돈을 투자했다가 2억 정도 빚을 지고 있었다. 그래서 급여가 모두 대출금 상환으로 쓰였다. 기약 없는 기간 동안 수입 없이 살아야 했다. 
 
시어머니는 “알고 있었고, 부부가 함께 짊어져야 할 짐이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분노했다. 남편과 시어머니가 자신을 속였다고 생각했다. 
 
이혼을 생각했지만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임신 4개월이었다. 남편은 집안일을 도와줄 생각이 없었다. 저녁마다 침대에 누워 휴대폰만 만지작거렸다. 그녀는 속이 터졌다. 남편에게 화를 내고 잔소리를 했다. 그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아내 얼굴에 베개를 던지며 싸늘하게 말했다. 
 
“입 닥쳐.” 
 
이후로 던지는 물건이 달라졌다. 베개에서 시계로, 시계에서 컵으로. 컵이 깨지던 날,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아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남편은 울고 있는 그녀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아내는 휴대폰 게임을 그만하라고 말했다. 남편은 무시했다. 남편이 게임으로 100만 원 넘는 돈을 썼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그녀는 그동안 쌓였던 불만을 터트렸다. 
 
남편이 소리 지르며 욕을 했다. 아내는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밤새도록 말다툼을 했다. 신경이 예민해졌다. 배가 아팠다. 두려움에 싸인 아내는 의식을 잃었다. 아기는 유산되었다. 시어머니는 주변 사람들에게 며느리가 몸을 돌보지 않고 무리해서  유산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를 불러 말했다. 
 
“내가 그 놈을 혼내줄 테니까, 이번 한 번만 눈 감고 넘어가자.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야.” 
 
그러고 5만원 권 한 뭉치를 그녀의 손에 쥐어줬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돈을 한 장씩 찢기 시작했다. 눈물이 흘렀다. 돈을 갈기갈기 다 찢을 때까지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돈도 눈물도 말없이 땅에 떨어졌다. 
 
그녀는 이혼했다. 
 
어린 시절, 그녀는 아버지에게 맞고 자랐다. 술 취한 아버지는 매일 엄마를 때렸다. 참다못한 엄마는 집을 나갔다. 혼자 남겨진 그녀는 아버지의 주정과 매질을 당해야 했다. 
 
몇 달 뒤, 엄마가 집에 돌아왔다. 아빠가 없는 틈에 짐을 가지러 온 것이었다.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애원했다. 엄마에게 매달리다시피 하여 같이 문을 나서는데 처음 보는 아저씨가 서 있었다. 엄마는 그녀에게 미안하다는 한 마디를 남기고 그 아저씨와 가버렸다. 
 
4년이 지났다. 견디다 못해 엄마를 찾아갔다. 그리고 예전에 만났던 아저씨를 “아빠”라고 부르며 살았다. 너무나 그리웠던 엄마였다. 하지만 헤어져 산 시간이 길어서 인지 아니면 상처가 많아서 인지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엄마는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뭘 물어봐도 짧게 대답했다. 그녀에게 소리 없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너 때문에 난처해졌어. 불편해졌다고.” 
 
아저씨 표정도 달라졌다. 그 집에 오래 살 수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나왔다. 
 
“제 안에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이 있어요. 외로움에 미쳐버릴 것 같았어요. 매일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세요? 남편에게 전화해서 ‘욕하지 않고, 돈 관리 내가 하고, 게임 안 하고, 빚 갚기로 약속하면 우리 다시 시작할 수 있어’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언젠가 전화를 걸지도 몰라요. 남편은 바뀌지 않을 거예요. 제가 너무 외로워서 그래요. 주변에 아무도 없으니까.” 
 
외로움이 찾아오면, 그녀는 잠을 잔다. 그러면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밤과 낮이 바뀐 채 3년이 지났다. 깨어있는 시간은 TV를 본다. 외로움을 느끼고 싶지 않아 선택한 방법이다. 자신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과 전쟁을 치르고 있다. 조용하지만 치열하다. 그녀는 승리한 적이 없다. 
 
외로움은 갑자기 찾아와서 그녀를 휘젓는다. TV보다가 눈물이 흐르고, 잠에서 깨면 슬픔이 밀려온다. 휴대폰에 전남편의 번호를 누르고, 통화 버튼을 바라본다. 번호를 다시 지우고 입력하는 일을 반복한다. 휴대폰을 소파에 던지고, 수면제를 먹고 잠든다.    
 
***
 
외로움은 견디기 힘든 감정이다. 외로움이 속삭이는 말은 무섭다. 
 
‘넌 혼자야. 아무도 없어.’ 
 
거짓말이지만 진실처럼 들린다. 거짓을 거부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지만 외로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노력이 무의미하다고 느껴지는 순간, 거짓이 진실이 된다. 전기고문 의자에 꽁꽁 묶인 채 저항하지 않고 고통을 받아들인다. 외로움은 사람을 서서히 파괴한다.    
 
사람은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외로움과 싸워 이긴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누구나 외롭다. 외로움은 그림자처럼 항상 따라다닌다. 그것과 싸우면 질 것이 뻔하다. 의미 없는 싸움이다. 외로움이 삶을 파괴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다른 방법을 택해야 한다. 
 
외로움과 싸우지 않고 
외로움을 돌보는 것이다. 
 
외로움을 돌보려면 그것에 대해 알아야 한다. 외로움을 “꼬마”라고 부르겠다. 언제 꼬마가 활동하는지 알아야 한다. 특정한 상황이나 분위기나 시기에 꼬마가 활동한다면 어디서 나타는지 따라가 본다. 쥐구멍에 갇힌 쥐를 찾는 것처럼 자세히 살핀다. 
 
그다음에 꼬마가 활동하기 시작하면 자신에게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확인한다. 꼬마가 나타나면 자신이 하는 행동을 관찰한다. 반응은 다양하다. 자는 사람, 먹는 사람, 우는 사람, 화내는 사람. 패턴을 발견할 때까지 유심히 관찰한다. 
 
외로움에 이름을 붙인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으로부터 감정을 분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기감정을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착각하는 것이다. 감정은 감정일 뿐이지 자신이 아니다. 감정과 자신을 분리하지 않으면 감정을 변화시킬 수 없다. 
 
외로움이 느껴지면 절망하지 말고, 차분하게 말한다. 
 
“또 시작이군.” 
 
만약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난다. 감정이 분리된 사람은 감정을 돌볼 수 있다. 
 
상상해 보자. 당신은 상담자다. 꼬마는 상담실에 찾아온 내담자다. 꼬마는 통제불능이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 사랑받지 못했다. 관심 받고 싶어 과도한 행동을 한다. 작은 말 한 마디에 상처받고, 우울해진다. 다들 기분 좋아서 웃고 있는데, 뭐 하나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물건을 집어던지고 난리다. 설득하고 달래도 소용없다. 
 
꼬마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미안하지만 변화되지 않는다. 꼬마는 피터팬처럼 영원히 나이 먹지 않는다. 철들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그 꼬마를 돌보는 게 의미가 있을까? 물론이다. 꼬마를 대하는 자기 자신이 변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는 꼬마에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대하는 자신에게 일어난다. 
 
감정을 바꿀 수 없지만
감정에 대한 반응을 바꿀 수 있다. 
 
나는 내 안에 있는 꼬마를 “소년”이라고 부른다. 소년은 다섯 살 정도 된다. 발가벗겨졌다. 온몸이 멍 자국이다. 파랗고 빨갛다. 파란 자국은 생긴 지 오랜 된 것이고, 빨간 자국은 방금 생긴 것이다. 머리는 지저분하고, 얼굴은 눈물자국, 땟자국으로 얼룩졌다. 
 
소년은 불안해 보인다. 시선을 어디다 둘지 몰라 눈알을 이리저리 굴린다. 어깨는 움츠러들어 있고, 두 손은 덜덜 떨린다. 아무리 설득하고 달래고 돌봐주고 씻겨줘도 항상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있다. 소년은 내가 원치 않을 때 갑자기 나타나 말을 건다. 
 
‘못 하겠어…. 두려워…. 안 하면 안 돼? 그만하자. 뭘 위해서 그래. 도대체 원하는 게 뭐야? 사람들이 알아줄 거라고 생각해? 의미 없는 일이야. 소용없는 일이라고. 현실은 달라. 너는 실패할 거야. 망할 거라고. 멈춰. 이대로 있어. 하지 마. 그만해!’
 
나는 소년과 오랫동안 함께 지냈다. 익숙할 법도 한데, 쉽지가 않다. 그가 입을 열면 움찔한다. 때로는 깊은 절망에 빠진다. 마음을 가다듬고 말한다. 
 
‘알아. 네가 얼마나 두려운지…. 나 만나서 고생이 많구나. 그래도 우리 가야 해. 무서워도 같이 가자. 내가 도와줄게. 힘들어도 조금만 참자.’
 
나는 그 소년을 따뜻하게 안아준다. 
 
나는 당신 마음 속 소년이 누군지 모른다. 
그러나 당신은 그 소년을 알고 있다. 
 
그녀의 마음 속에 소녀가 있다. 길가에 버려진 소녀. 지나가는 사람은 많지만 아무도 그녀에게 관심 갖지 않는다. 때리는 아빠가 무서워 집을 도망쳐 나온 소녀. 엄마를 찾아갔지만 커다란 대문은 잠겨있다. 소녀는 발걸음을 돌려 길을 걷는다. 길에서 날리는 먼지가 머리에 뽀얗게 앉는다. 
 
두 눈에 눈곱이 구슬처럼 박혀있고, 눈물과 콧물자국이 얼굴에 굽이굽이 골목을 냈다. 비가 와서 옷이 젖고, 해가 떠서 다시 마르고. 옷은 종이처럼 너덜거린다. 신발은 닳아서 뒤꿈치가 땅에 닿는다. 소녀는 갈 곳이 없다. 
 
걷다 지친 소녀는 길가에 앉는다. 지나가는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한 사람이 다가왔다. 손가락은 두툼하고 굳은살이 박였다. 소매 밖으로 팔을 타고 오르는 용의 꼬리가 보인다. 짧은 머리카락은 송곳처럼 삐쭉 서있다. 껌을 씹으면서 소녀에게 말한다. 
 
“나랑 가자. 좋은 데 알려줄게.” 
 
소녀는 무섭다. 가면 안 된다. 그러나 소녀는 남자를 따라간다. 길가에 버려진 것보다 나으니까. 누군가 뒤에서 소리친다.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남자에게서 소녀를 빼앗는다. 남자는 놀란다. 눈치를 보다가 멀리 도망쳐 버린다. 그녀가 소녀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내가 널 돌봐줄 거야. 넌 버려진 아이가 아니야. 그렇게 아무나 따라다녀서는 안 돼. 사랑을 구걸해서는 안 된다고. 이제 외롭지 않을 거야. 같이 있을 거니까.” 
 
소녀를 찾아 나선 사람은 바로 그녀, 
그녀 자신이었다. 
 
외로움은 그녀 자신이 아니다. 외로움은 그녀 감정이다. 그녀는 소녀를 돌보기 시작했다. 그녀가 한 눈 판 사이에 소녀가 사라질지 모른다. 누군가 내민 손을 잡고 어디론가 가버릴 것이다. 소녀는 아무나 따라간다. 소녀를 해칠지 모르는 위험한 사람이라도. 소녀와 함께 하는 삶이 익숙해지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소녀는 변하지 않으니까. 
 
상처와 싸우는 사람은 고통 받지만,    
상처를 돌보는 사람은 치유된다.

아이를 지운 건 미안해

“제가 오죽하면 그랬을까요? 남편은 육아와 집안일에 전혀 관심이 없어요. 저 혼자 감당 못하겠다고 여러 번 말했어요. 저도 일해요. 남편보다 돈을 못 버는 것도 아니에요. 첫째를 키우는 일도 벅찬데 남편은 둘째를 낳으라고만 하니 도무지 신뢰를  할 수 없었거든요. 낳지 말자고 남편을 설득하려고 해도, 대화 자체를 거부했어요. 제 마음은 어떻겠어요? 수술실에 누워 남편을 원망했다고요.” 
 
두 달 전, 아내는 남편 동의 없이 아이를 지웠다. 남편은 둘째를 원했지만 아내는 반대했다.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첫 아이가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아내는 홀로 육아를 했다고 생각했다. 똑같이 야근을 해도 아이를 챙기는 일은 그녀 몫이었다. 일과 육아를 동시에 감당하기가 벅찼다. 
 
친청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3년 전부터 함께 살면서 아이를 돌봐주고 있다. 아내는 혹시 임신이라도 될까 싶어 침실에서 신중했다. 극도로 예민해진 상태에서 남편에게 조심하라고 말했다. 
 
남편이 아이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대화는 산으로 갔다. 남편은 아이에 대해, 아내는 역할 분담에 대해 말했다. 보이지 않는 벽이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감기에 걸린 것처럼 몸이 아팠다. 음식을 먹으면 속이 편하지 않았다. 아내는 몰래 임신테스트를 했다. 빨간색 두 줄이 유난히 선명해 보였다. 산부인과에 찾아가 최종확인을 받았다. 일주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남편에게 솔직히 말하기로 했다. 아이를 지우자고. 
 
그러나 남편을 믿을 수 없었다.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그는  육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지만 거짓말이었다. 친정 엄마와 함께 들어와 살면서 그는 더 편해졌다. 뒤로 물러나서 그나마 도와줬던 소소한 일마저 친정 엄마에게 떠넘겼다. 
 
한 번 쓰라린 고통을 맛본 아내는 남편의 달콤한 말을 믿지 않았다. 남편이 꼭 약속을 지킬 테니, 아이를 낳자고 말해도 아내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에게 전화로 최종 통보를 하고 아이를 지웠다. 
 
그날부터 남편은 밖으로 돌기 시작했다. 퇴근 시간이 평소보다 늦어졌고, 술에 취해 들어오는 날이 늘었다. 아내는 미안한 마음, 원망스런 마음이 뒤섞여 그에게 뭐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시간을 주고 싶었다. 그도 마음이 아플 테니까. 
 
그러나 상황을 알지 못하는 친정 엄마는 남편에게 쉬지 않고 잔소리를 퍼부었다. 딸이 일과 육아로 힘들다고 해서 발 벗고 나섰건만 사위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것도 모자라 하루가 멀다 하고 술에 취해 들어오니 속 터지는 일이었다. 
 
그녀가 엄마네게 적당히 하라고 부탁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솔직히 말할 수도 없었다. 비난의 화살이 자신에게 돌아올 테니까. 노인들은 아이를 지우면 천벌이라도 받는 줄 아니까. 
 
남편에게 수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어느 날부터 집에서 샤워를 하지 않았다. 쉬는 날에도 저녁 식사를 하기 전에는 샤워를 하는 깔끔한 남자였다. 왜 씻지 않느냐고 물으면 “피곤해서…”라고 짧게 대답했다. 
 
불안한 아내는 남편의 뒤를 밟았다. 그는 붉은 조명 아래 여성들이 반나체로 서 있는 골목을 서성거렸다. 아내의 두 다리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아이를 죽인 대가로 벌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남편에게 아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말없이 서로 같은 공간을 거닐 뿐이었다. 소리 없이 걸었지만 아팠다. 깨진 유리 조각 위를 맨발로 걷는 것처럼. 
 
“어떻게 아내가 제 동의 없이 아이를 지울 수 있나요? 이건 말이 안 돼요. 너무 상처가 커서 말로 표현을 못하겠어요.”
 
그는 엄마 역할이 힘들다고 아이를 죽일 생각을 하는 아내에게 정이 떨어졌다. 육아를 충분히 돕지 못했고, 살림을 아내에게만 떠넘겼다. 그러나 그의 부족함이 아내가 저지르고자 하는 일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내를 말렸다. 울면서 제발 그러지 말라고 부탁까지 했다. 그녀는 흔들리지 않았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짧고 냉담했다. 
 
“나 병원이야.” 
 
더 이상 회사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조퇴하고 회사 옆 산책로를 따라 한강까지 갔다. 걷고 또 걸었다. 걷다 치쳐 인도에 걸터앉았다.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그대로 집에 들어갈 자신이 없어 술을 마셨다. 곤드레만드레 비틀거리며 술집을 나왔다. 
 
붉은 불빛 가득한 거리가 나타났다. 붉은 불빛은 낯설었지만, 자극적이지 않았다. 그는 환상을 보았다. 상점 안에 있어야 할 마네킹들이 유리창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에게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걸기도 했다. 그는 다시 한 번 도망쳐야 했다. 그에게 달려드는 마네킹으로부터. 
 
정신을 차려보니 경찰서였다. 술에 취해서 길에서 잠이 들은 것 같았다. 아침에 집에 들어서자 현관문을 닫기도 전에 장모님이 달려들어 그의 등짝을 후려쳤다. 
 
“자네 지금 제 정신이야? 어디 가서 뭐하다 지금 들어왔어? 당장 말해!” 
 
신발을 벗는 동안 생각했다. 
 
‘뭐라고 말할까?’ 
 
아내가 그의 얼굴은 보지도 않은 채, 아들의 옷을 입혀주면서 말했다.  
 
“엄마, 지금 뭐하는 거야, 내버려둬요!” 
 
남편은 생각했다.
 
‘아내에게 고마워해야할까? 아니면, 내 집 같지 않은 이곳에서 뒤돌아 나가야 할까?’ 
 
남편은 집이 더 이상 편하지 않다. 계속 장모님과 아내를 볼 생각을 하니 끔직했다. 그들의 눈빛이 싫었다. 방문이 열렸다. 아들이 아빠 품으로 달려왔다. 아들이 억지로 손을 잡아끄는 바람에 거실로 나왔다. 그는 소파에 앉아 TV를 켜놓고 눈물 없이, 소리 없이 울었다.    
 
***
 
 
깨어진 부부는 힘겨루기를 한다. 힘의 균형이 동등하지 않다. 둘 중 한 사람이 주도권을 쥔다. 다른 한 쪽은 더 많이 양보하고, 희생한다. 주도권을 쥔 사람은 모른다. 주도권을 잃은 사람이 겪는 고통에 대해. 승자가 결정되지 않는 경우, 힘겨루기는 치열하다. 승자가 결정되기까지 힘겨루기는 계속된다. 서로 주도권을 쥐려 한다. 
 
두 사람은 전쟁 중이다. 양보 없이 서로가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상대를 제압하려한다. 남편은 아내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집안일을 도우라고 말한다. 해결은 간단하다. 아내는 아이를 낳고, 남편은 집안일을 도와주면 된다. 그러나 둘은 힘겨루기에 정신이 팔려 간단한 해결책을 버렸다. 그 대가는 혹독하다.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한 소중한 생명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아내의 단정적인 사고와 빠른 결론과 결정은 남편 자격, 아버지 자격을 박탈시켰다. 가정 안에 남편을 위한 자리는 없어 보인다. 아내는 주관적인 결론을 먼저 내리고, 그에 맞춰 선별적으로 정보를 선택한다. 이것이 파괴적인 패턴으로 이어진다. 결론이 내려지면 새로운 정보는 힘을 잃는다. 결론과 맞지 않는 정보는 쓰레기통으로 직행이다. 
 
아내는 남편에 대해 결론을 내렸다. “육아와 살림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고. 잘못된 정의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남편은 “내가 원하는 만큼 도와주지 않는 사람”이다. 원하는 것에 대해 서로 대화해야 하는데, 아내는 친정 엄마를 데려왔다. 남편에게 더 이상 기회가 없다는 뜻이다. 결론이 빠르니 결정도 빠르다.  
 
또한 아내가 남편의 뒤를 발고 내린 결론도 성급했다. 그는 “가지 말아야 할 곳에 간 사람,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남편은 그 거리를 걸은 것은 맞지만 그 장소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는 술에 취해 전날 있었던 일에 대해 기억하지 못한다. 비난받을 수 있다. 그러나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 비난받을 수는 없다. 그는 성매매를 하지 않았다.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부부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배우자가 원하는 대로 해줬으면 하는 바람은 의무와 강요로 변질된다. 의무를 앞세워 강요하면 배우자는 멀리 도망간다. 
 
“내 남편/아내는 ~한 사람이어야 한다. 내 남편/아내는 ~해야만 한다.”
 
배우자를 숨 막히게 한다. 직접 문장으로 말하지 않아도 상대는 안다. 원하는 바를 완전히 만족시킬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그래도 이 정도는 해야지…’라고 생각한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남편은 문제에 직면하지 않고 회피했다. 출산은 두 사람 사이에 매우 중요한 문제인데도 남편은 소극적이었다. 대화를 끝까지 하지 않고, 중간에 물러났다.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대로 아이를 낳는다면 그에 대한 책임이 따른다. 그에 대한 논의를 충분히 했어야 했다. 아이를 낳느냐 마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출산 이후다. 아이 존재에 대한 말싸움을 하다가 남편은 아내에게 신뢰를 잃었다.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그러나 물러서지 말아야 한다. 자신 안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 배우자에게 솔직하게 말하면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다. 그러나 숨기거나 왜곡시켜 표출하면 관계가 어려워진다. 
 
남편은 숨기는 방식에 익숙하다. 술에 취해 잊으려고 했다. 그의 회피가 더 많은 오해와 갈등을 일으켰다. 회피하면 문제는 커진다.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계속된다. 멈추고 직면해야 한다. 솔직한 내면을 표현해야 한다. 배우자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그 다음 문제이다. 
 
배우자가 공감한다면 이해받는 것이다. 거절하면 서로의 차이를 발견하고 인정하면 된다. 불편해도 멈추지 않고 자신을 표현해야 건강한 관계로 나아갈 수 있다. 그것은 아무도 대신 해줄 수 없다. 
 
장모님의 존재는 남편에게 혜택이자 손실이다. 육아와 살림에 대한 책임에 대해서는 혜택이비만 그의 존재감에 대해서는 손실이다.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자녀, 모두 각자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 
 
장모님의 존재로 인해 빼앗긴 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육아와 살림에 대한 막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 남편은 편안함과 불편함의 미묘한 경계에서 혼란스럽다. 주어진 환경에 몸을 맡기고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가정을 온전히 책임질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고통이 따르지만 마땅히 짊어져야 하는 짐이다. 기꺼이 자신이 짊어져야 할 짐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긴 시간들에 대해 후회하는 것이 맞다. 책임지는 사람만이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다.

말씀을 읽어도 은혜가 없네요

말씀을 읽어도 은혜가 없다는
사람을 만납니다.
 
내가 제대로 이해했다면
이런 말이겠지요.
 
예전에는 말씀을 읽을 때
마음이 뜨겁고 감동이 되었는데
요즘에는 뭐가 잘못되었는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가 없어요.
 
은혜가 없으면 조급해집니다.
만회할 방법을 찾습니다.
 
뭔가 잘못되었다.
그러니, 은혜가 없지.
 
불안 요소를 하나둘 제거합니다.
거리끼는 게 없나 계속 살핍니다.
 
그러다 지치면 본색이 드러납니다.
슬슬 화가 나고, 분노가 치밉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안되네.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지?
 
나는 묵상과 글쓰기가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남이 쓴 글을 읽기만 할 때는
전혀 몰랐던 게 있어요.
 
글을 잘 쓰려면
특별한 영감이나
재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특별한 영감이 떠올라야
특별한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틀린 말이에요.
 
가끔 글을 쓰는 사람은
영감을 기다릴 수 있겠지요.
 
유유자적 편하게 지내다가
영감이 떠오르면 글을 쓰는 거죠.
 
미안하지만
그건 영화의 한 장면일 뿐
실제 벌어지는 일은 아니에요.
 
영감을 기다리는 사람은
오랫동안 글을 쓸 수 없어요.
 
매일 글을 쓰는 사람은
저마다 자신만의 루틴이 있습니다.
 
절제된 삶을 살면서
공장처럼 일정 분량의 글을
매일 찍어냅니다.
 
영감 따위는 믿지도 않고
기다리지도 않아요.
 
그런데, 어떻게 매일 글을 쓰나요?
특별한 비결이라도….
 
없어요. 그런 거.
그냥 쓰는 겁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냥 써 내려가는 거예요.
 
반복하다 보면 가끔
놀라운 일을 겪어요.
 
내 수준을 넘는
특별한 생각이 떠오릅니다.
 
아마 사람들이 이런 걸
영감이라 부르나 봅니다.
 
아쉽게도 영감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냥 왔다가
그냥 사라져요.
 
붙잡아두고 싶지만,
어쩔 수 없어요.
 
인정할 건 빨리
인정하는 게 나아요.
 
아! 내가 글쓰기와 묵상이
닮았다고 했지요.
 
나는 매일 글을 쓰기 전에
항상 성경을 읽습니다.
 
특별한 은혜가 없어도
매일 꾸준히 읽습니다.
 
마음이 메마르지 않았나.
그런 고민은 아예 하지 않습니다.
 
하루 세 끼 밥 먹듯이
그냥 앉아서 말씀을 섭취해요.
 
야금야금
잘 씹어 먹습니다.
 
매일 말씀을 읽다 보면
가끔 폭포수 같은 은혜가 느껴져요.
 
매일이 아니라
아주 가끔.
 
성경을 펼칠 때마다
은혜가 있기를 바라죠.
 
하지만, 그건 내 바람일 뿐
현실이 아니에요.
 
내가 통제할 수 없잖아요.
은혜를 만들어 낼 수도 없고.
 
쥐어짜도
발버둥 쳐도
소용없어요.
 
그건 선물이거든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
 
선물을 보내야
선물을 받지요.
 
아까 했던 질문
다시 해볼까요?
 
어떻게 성경을 매일 읽나요?
비결이라도….
 
없어요. 그런 거.
그냥 읽는 겁니다.
 
은혜가 있든 없든
매일 성경을 펼쳐야
평생 동안 읽을 수 있습니다.
 
매일 내리는 비는 장마.
가끔 내리는 비는 단비.
 
둘 중 하나 선택하라면
나는 단비가 좋습니다.
 
매일 비가 내리면
비의 소중함을 모를 테니까요.
 
자책은 이제 그만.
그냥 성경을 펼치세요.

결론은 무조건 예수님인가요?

목사님이나 기독교 상담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말로 시작하더라도 결국 “예수님을 바라보라”라고 말하는데, 솔직히 너무 쉽고 뻔한 대답 아닌가요? 아무도 반박할 수 없잖아요. 결론은 무조건 예수님인가요?
 
좋은 질문입니다. 나도 오랫동안 고민해온 문제거든요. 저 역시 말끝마다 “예수님, 예수님” 하는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곱지 못했어요. 예수님이 틀렸다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이 왜 정답인지 알고 싶었어요.
 
상처로 고통받는 사람에게 “기도했어? 성경은 읽어? 그런데, 왜그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솔직히 이런 태도로 대화하는 이들에게 예수님이 남용되고 있다는 생각도 했어요. 문제의 실체에 다가가지 못하고, 대충 덮어버리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풀이 과정 없이 정답만 있는 답지를 보면 마음이 후련한가요? 그렇지 않아요. “뭘 그렇게 고민해? 이 문제 답은 3번이야. 빨리 채점해”라고 말한다고 가정해보세요. 답을 맞혀도 답답합니다. 맞고 틀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왜 그 문제의 답이 3번인지 알아야겠지요.
 
친절한 선생님은 정답만 설명해주지 않아요. 1번, 2번이 왜 답 이 될 수 없는지 설명하지요. 그래야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서 오답을 피해갈 수 있습니다. 나도 그런 방식으로 말해볼게요.
 
요즘 유행하는 ‘마음 챙김’과 ‘인지행동치료’라는 상담 방법론이 있어요. 아마 당분간 상당한 인기를 누릴 겁니다. 마음 챙김은 불교의 명상에서 시작됐습니다. 구글의 명상 전문가 차드 멩 탄이 《너의 내면을 검색하라》에서 ‘할머니의 마음’이라는 기법을 소개하지요.
 
스스로를 자애로운 할머니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할머니의 눈으로 보면 각자는 모든 면에서 완벽하며, 할머니는 누군가 못된 짓을 해도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고요.
 
이 이론을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사람마다 할머니에 대한 정서가 다르다고 말하고 싶어요. 할머니는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거든요. 내가 떠올린 할머니가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준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내담자 중에 할머니에게 학대를 받은 사람도 있고, 반감이나 두려움을 가진 사람이 있었어요. 눈을 감고 따뜻한 할머니를 떠 올리자고 하면 감정이 저마다 다를 거예요. 그러니 기법에 대한 효과도 다르겠지요.
 
인지행동치료의 기법을 한 가지 소개할게요. 인지오류에 빠져서 자신을 합리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내담자에게 ‘소중한 친구’가 찾아와 자신과 똑같은 고민을 털어 놓는다면 뭐라고 말할까요? 소중한 친구니까 비난하거나 정죄하지 않고 이해해주고 공감해줄 거예요.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소중한 친구에게는 공감해주면서, 자신은 왜 비난하시나요?” 라고 되물으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돕습니다.
 
그러나 사람마다 소중한 친구의 개념이 상대적이지 않을까요? 지금 당장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생각하는 우정의 크기만큼 큰돈을 꿔달라고 말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거절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서겠지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친구는 상상 속에나 있어요. 실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내담자 중에는 소중한 친구가 한 명도 없거나 친구에게 배신을 당한 사람도 있었어요. 친구는 친구일 뿐입니다. 우정은 언제든 깨질 수 있고, 아무리 소중한 친구라도 절대적이지 않아요.
 
내게 ‘따뜻한 할머니’와 ‘소중한 친구’, 그리고 ‘예수님’ 중에 누구를 택할 거냐고 묻는다면, ‘예수님’을 택할 거예요.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내가 믿는 답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돕고 싶어요.
 
다른 상담 이론을 무시할 의도는 없지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자애로운 할머니를 바라보자고 하면 웃음이 터질 것 같아요. 또 소중한 친구를 바라보자고 해도 썩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아요.
 
하지만 내게 “예수님을 바라보자”라는 말은 설득력이 있어요. 할머니나 친구를 바라보자는 말보다 훨씬 듣기 좋아요. 예수 님의 사랑은 절대적이에요. 세상이 무너져도 그분은 나를 사랑하십니다. 할머니와 친구에게 감히 비교할 대상이 아니지요. 그래서 나는 제안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건 어때요?”
 
만약 당신이 성경에서 말하는 예수님을 믿게 된다면 당신 안에 기적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당신을 있는 그대 로 사랑하는 그분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
 
사람마다 예수님을 다르게 말하겠지만, 성경은 한결같이 동일한 그분을 말해요. 그 사랑은 변치 않고 영원합니다.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용기 내어 고백합니다. 결론은 ‘예수님’입니다.

사랑보다는 현실이죠

배우자를 결정할 때 사랑보다 돈이나 배경이 더 중요하게 느껴져요. 사랑은 오래가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들었어요. 어차피 결혼해서 살 거면 넉넉하게 살고 싶어요. ‘이건 아니지’, 하면서도 현실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결혼을 앞두고 고민하고 계시군요. 누군가를 만나고 계시다면, 상대방의 경제적 상황이 불안해서 던진 질문이겠지요. 서로 사랑하지만, 결혼해서 마주할 빠듯한 삶이 걱정되는 건 당연합니다. 누군가를 만나기 전이라도 상황은 다르지 않습니다. 누구를 만나더라도 걱정은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요. 
 
먼저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았으면 해요. “나는 세속적인 사람이다.”라는 식의 사고는 옳지 않아요. 나는 오히려 솔직한 질문을 해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하나만 묻고 싶어요. 어느 정도의 경제적 안정감을 말하고 계신 건가요? 정확한 재산 규모가 아니라 상대적인 안정감을 말하고 계신 것 같아요.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고 싶은 거죠. 
 
그 안에 결핍이 있을지 몰라요. 아마도 가난의 고통을 아는 사람이 아닐까 싶어요. 가난의 고통을 아는 사람은 가난하고 싶지 않아요. 오히려, 가난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가난을 가볍게 생각하지요. 만약 가난의 고통을 아는 사람이라면, 스스로를 비난하면 안 됩니다. 결핍에서 두려운 감정이 시작된 것이니까요.
 
조심스럽지만, 용기 내어 말씀드립니다. 두렵다고 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시험지를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면 안 됩니다. 정직하게 공부해서, 아는 만큼 써야 해요. 시험 점수가 낮아서 실망스럽더라도 어쩔 수 없어요. 공부 잘하는 친구와 짝을 해서 커닝으로 성적을 올린다면, 나중에 철들고 후회합니다. 좋은 대학은 가도 좋은 인생은 못 살아요. 
 
자기 문제는 자기 스스로 풀어야 해요. 결혼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누구를 만나더라도 행복하기 어렵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이라도 다른 것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주변에 사랑이 대수롭지 않은 듯이 말하는 사람이 있어 안타까울 뿐입니다.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결혼이라는 배는 결국 침몰하고 말 거예요. 암초에 걸리면, 초호화 크루즈나 화물선이나 침몰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말은 현실적인 말이 아닙니다. 모든 부부는 서로 사랑해서 고통받아요. 사랑은 사라진 게 아닙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고통받지도 않아요. 부부의 모든 고통은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단지, 사랑을 서로 공유하지 못해서 불행해지는 거예요. 사랑은 오래갑니다. 나는 그렇게 믿어요.  
 
누구를 만나 결혼해도 괜찮아요. 그건 각자의 선택이니까요. 나는 당신이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자신 안의 결핍을 자세히 살펴보면 좋겠어요.

상처는 숨을 곳을 찾는다

“목사님, 그런 식으로 하시면, 당회가 무슨 필요가 있습니다. 절차를 밟아서 일을 진행하세요. 주변 사람들 의견도 경청하시고요. 참다 참다 말씀드리는 겁니다.” 
 
최도훈 장로가 얼굴이 시뻘게 지도록 목소리를 높였다. 옆에 앉은 동갑내기 장로가 최도훈 장로의 팔을 붙잡고 진정하라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김호열 목사는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를 어쩌나 하는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장로님, 죄송합니다. 제가 장로님을 불편하게 한 것 같습니다.  진정하시고, 차분하게 대화를 해보는 게 어떨까요?”
 
최도훈 장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기세등등하게 말했다. 
 
“그딴 식으로 목회하지 마세요.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최도훈 장로의 협박스러운 말투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참다못했는지, 나이 많은 장로가 최도훈 장로에게 말했다. 
 
“이봐, 최 장로. 너무 나갔어. 그렇게 감정이 앞서면 옳은 말도 틀린 말로 들리는 거야. 일단, 자리에 앉게. 대화로 해결해야지, 이 사람아.” 
 
그리고, 나이 많은 장로는 목사님을 바라보며 말했다. 
 
“목사님, 아무래도 회의를 일찍 마쳐야 할 것 같습니다. 너무 심려 마시고, 다음 주에 만나 뵈시죠.” 
 
김호열 목사는 고개를 끄떡일 뿐이었다. 달리 다른 방도가 없었다. 
 
다른 장로들 역시 나이 많은 장로의 지혜로운 처사에 안심하는 표정이었다. 
 
최도훈 장로만 예외였다. 나이 많은 장로에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장로님, 그런 식으로 좋은 게 좋다고 하니까, 목사님이 당회를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하는 겁니다. 나는 용납 못해요. 끝장을 볼 겁니다.” 
 
최도훈 장로는 화가 풀리지 않는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문이 부서져라 힘껏 닫았다. 쾅 하는 소리를 끝으로, 당회실은 적막해졌다. 다들 심각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킬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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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표정이 왜 그래? 오늘 교회에서 무슨 일 있었어?”
 
얼굴이 시커멓게 변해서 들어온 최도훈 장로에게 그의 아내가 물었다. 그는 아무 말도 없이 소파에 앉아 TV를 켰다. 
 
아내는 하던 일을 멈추고, 남편에게 다가왔다. 
 
“여보, 무슨 말 좀 해봐. 왜 그래 도대체?” 
 
남편이 말없이 TV만 응시하자, 아내는 뭔가를 눈치챘다는 듯 말했다. 
 
“오늘 당회하고 왔구나. 또 목사님한테 험한 말 했지? 이제 그만해, 여보. 당신 그거 완전히 오해라니까. 다른 사람들은 괜찮다는데, 왜 당신만 그렇게 핏대를 세우고 반대를 해?”
 
아내의 말은 그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었다. 그는 손에 쥐고 있던 리모컨을 바닥에 내던지며 소리쳤다.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는 거야? 그 쓰레기 같은 목사가 위선을 떨면서 앉아 있는 거 안 보여? 목사가 되기 전에, 사람이 돼야지. 기본적인 인성도 안 된 사람이 무슨 목사야? 두고 봐. 내가 그 자식을 가만히 두나. 끝까지 물고 늘어질 거야, 알겠어? ” 
 
그의 아내는 발을 동동 구르며, 울기 시작했다. 
 
“여보! 당신 완전히 오해라니까. 계속 왜 그래. 당신 그날 말하는 거지? 목사님 우리 집에 심방 오신 날? 그거 아니라고 내가 몇 번을 말해. 당신 정말 오해하는 거라고!” 
 
그는 아내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어떻게 그딴 짓을 당하고도, 그놈을 감싸고돌아? 내 편을 안 들고, 어떻게 그놈 편을 드냐고!” 
 
그의 아내는 포기한 듯,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흐느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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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도훈은 젊은 시절, 의류 유통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세상 무서운 게 없었다. 아내가 아무리 교회에 가자고 해도, 들은 체도 안 했다. 
 
그러다, IMF를 만났다. 돈과 사람,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었다. 살던 집에 빨간 색 딱지가 덕지덕지 붙었다. 옷 가지 몇 개를 챙겨 나온 게 전부였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장모님이 당분간 시골에 내려와 지내라고  설득했다. 괜찮다고 여러 번 말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모텔, 여관방을 전전하다가 시골로 내려갔다. 
 
장모님이 살던 시골집은 최도훈의 가족이 함께 살기에는 비좁았다. 마당 한 귀퉁이에 컨테이너 박스를 가져다 놓고, 온 가족이 그 안에서 생활을 했다. 가까이 지내던, 이웃이 딱한 사정을 듣고, 컨테이너를 잠시나마 빌려준 것이다.  
 
시골에 내려온 그날부터, 그의 아내는 새벽마다 교회에 가기 시작했다. 밤새 한숨도 잘 수 없었던 최도훈은 아내의 인기척을 느꼈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말없이 아내를 따라나섰다. 어두운 밤길을 혼자 걷게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시골 교회 새벽 예배의 풍경은 가관이었다. 피곤에 쩔은 목사가 대충 설교를 하는데, 앉아서 듣는 사람이라고는 머리가 새하얀 노인  세 사람뿐이었다. 그중 한 사람은  장모님이었다. 어이가 없었는지, 최도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 
 
목사의 설교가 끝나고 교회 안이 어두워지자 아내가 소리 없이 울었다. 그의 마음이 뭉클했다. 아내가 기도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내는 남편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돈을 실컷 벌어다 줄 때는, 아내가 마음 편히 사니까 교회 나가서 교양이나 떠는 줄 알았다. 사업이 망한 후에도 한결같이 신앙생활을 지속하는 아내에게 숙연한 감정을 느꼈다.
 
사업할 때는, 사업으로 바쁘다고 아내를 돌봐주지 못했다. 사업을 하지 않는 지금은, 그야말로 돈이 없어서 아내를 돌봐주지 못한다. 아내에게 미안할 뿐이었다. 
 
아내가 진심을 다해, 기도하는 소리를 듣게 되자, 그의 눈이 촉촉해졌다. 어딘가, 신이 존재한다면, 바지 가랑이라도 붙잡고 매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그의 마음이 열렸다. 처음에는 새벽어둠 속에 자신을 숨기고 민망한 듯 교회에 나갔지만, 이내 조금씩 용기가 났다. 밝은 낮에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교회에 나간 것이다. 
 
모든 것이 어색했지만, 마음을 활짝 열고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몸과 마음이 새롭게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의 인생을 새롭게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최도훈은 농사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지만, 유통에 밝았다. 인터넷이 활성화되던 시기를 기회로 잡고, 직접 재배한 농작물을 고객에게 직접 유통했다. 수익은 고스란히 사업의 규모를 키우는데 투자했다. 땅을 사고, 재배량을 늘리는 일에 집중했다. 
 
그러다, 뉴스에서 신도시 계획을 듣게 되었다. 소파에 앉아 뉴스를 보고 있던 그는, 아내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가 사 모은 땅은  기하급수적으로 가격이 올랐고, 땅을 매각해서 큰돈을 벌었다. 
 
상가 건물 몇 채를 사들였다. 임대료 수익으로 먹고 살 수 있게 되자, 제법 시간이 많아졌다. 자연스럽게 교회 이곳저곳에서 봉사할 일이 늘어났다. 그는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었다.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싶었다. 
 
사람들도 그의 진심을 알았는지, 그는 어느덧 장로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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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사업이 번창하듯, 교회 역시 성장했다. 신도시가 조성되고 사람들이 몰려들자, 교회는 두 번에 걸쳐 넓고 좋은 곳으로 이사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김호열 목사는 예배시간에 중대한 발표를 하겠다는 말로 입을 열었다. 기도 중에, 교회 건축을 하라는 응답을 받았다고 했다. 성도들은 비좁고 불편한 상가 건물이 불편했던 터라, 담임 목사의 기도 응답에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최도훈 장로는 심기가 불편했다. 다른 장로들의 얼굴을 힐끔 쳐다봤다. 표정을 제대로 읽어낼 수 없었다. 표정이 모두 제각각이었다. 
 
김호열 목사는 예배를 마치고, 당회를 열었다. 당회에서 겸손한 태도로 장로들에게 사과의 말을 먼저 덧붙였다. 장로님들과 먼저 상의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이었다. 
 
그러고 나서, 나름의 논리로 장로들을 설득했다. 높아지는 임대료와 몰려드는 사람들을 계산했을 때, 땅값이 더 오르기 전에 서둘러 교회를 짓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논리였다. 
 
가만히 목사의 말을 경청하던 장로들 사이에 냉랭한 기운이 돌았다. 이치에 맞는 말이었지만, 손뼉을 치면서까지 동의할 내용은 아니었던 것이다. 
 
최도훈 장로는 참았던 말을 하고 말았다. 
 
“목사님, 땅값이 오르기 전에 교회를 서둘러 지어야 한다는 말이 성경 어디에 나옵니까?” 
 
예상치 못한 질문에, 김호열 목사는 당황했다. 그리고, 어색하게 웃으며 답변했다. 
 
“장로님, 성경에 그런 말은 안 나옵니다. 지혜로운 선택을 내리자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지 않았습니까? 성경을 잘 풀고 해석해서 지혜로운 선택을 내려야지요.” 
 
최도훈 장로는 물러서지 않았다. 목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곧바로 되물었다. 
 
“성경 어느 구절을 해석하면, 그런 지혜가 나옵니까?”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김호열 목사는 한 걸음 물러섰다. 
 
“아이고, 장로님. 제가 장로님 심기를 불편하게 했나 봅니다. 제가 죄송합니다.” 
 
최도훈 장로는 다른 장로들을 둘러보며,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장로님들, 어떻게 이런 말을 듣고 가만히 계십니까? 땅값 오르기 전에 땅을 사서 교회를 짓자는 게 말이 됩니까? 이게 땅 투기하는 사람이 하는 말이지, 목사님이 하실 말씀이냐고요?” 
 
김호열 목사의 이마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수습해야 했다. 이대로 당회를 마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차분한 어조로 애써 태연하게 말했다. 
 
“제 말에 오해가 있으신 것 같아요. 제가 조금 더 설명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교회 건축, 안 해도 됩니다. 불편해도 그냥 참고 지내면 되는 거예요. 
 
하지만, 다음 세대는 어떻게 합니까. 아이들이 예배드리는 곳을 한 번 둘러보세요. 아주 난리예요. 교회마다 아이들이 없어서 고민인데, 우리는 아이들이 너무 많이 와서 걱정입니다. 
 
기도할 때마다 아이들이 생각납니다. 아이들이 마음 편하게 예배드리는 장면을 생각할 때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요. 
 
그래서, 어려운 말씀드린 겁니다. 교회 건축 안 해도 되니까, 제발 노여움 푸세요.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김호열 목사의 말을 듣고, 다른 장로들은 공감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장면을 본 최도훈 장로는 미칠 지경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목사의 멱살이라도 움켜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야, 이 가식적인 놈아. 말만 그럴듯하지. 나는 네놈의 실체를 다 알고 있어. 이 쓰레기 같은 놈아.” 
 
마음속으로 그렇게 말했지만, 최도훈 장로는 그런 말을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오랜 시간, 가슴에 담아둔 말이었다. 세상 그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이었다. 
 
아무리 세월이 흘렀어도, 그는 잊지 못했다. 김호열 목사가 자신의 눈앞에서 저지른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집사님, 저와 같이 심방을 가셔야 할 것 같아요.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으신가요?” 
 
같은 마을 김 씨가 교회에 등록했다. 서울에서 반듯하게 살다가,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 시골에 내려온 것이다. 김 씨가 시골에 내려온다는 소식을 온 마을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 김 씨는 도시로 유학을 떠났다. 혼자 공부해서 어렵다는 사관학교에 들어갔다. 별을 달고 예편해서 군수물품을 제조하는 중소기업의 임원이라고 했다.   
 
김 씨는 2층짜리 전원주택이 완공된 다음에 심방을 받고 싶다고 했다. 목사님을 누추한 곳에 모실 수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김호열 목사는 남자 성도가 귀한 마당에, 외지에서 내려와 시골에서 잘 정착한 최도훈이 김 씨에게 좋은 말벗이 되어줄 것이라 했다.  
 
김호열 목사가 최도훈에게 김 씨의 집에 함께 심방을 가자고 제안한 이유였다. 
최도훈은 목사의 말을 따를 생각이 없었다. 며칠 전, 길에서 김 씨를 만나지 않았다면, 절대로 목사와 마주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이, 자네. 목사님 심방 오실 때, 같이 올 거지? 내가 귀한 음식 차릴 거니까, 자네도 꼭 와. 절대 후회 안 할 거라고.” 
 
최도훈은 마지못해 알겠다고 말했다. 심방 당일, 김호열 목사와 심방 전도사, 그리고 최도훈 장로와 그의 아내가 김 씨의 집을 방문했다. 
 
간단히 예배를 드리고, 음식을 대접받았다. 김 씨의 말은 허세가 아니었다. 잔치라도 벌어진 듯, 온갖 음식이 나왔다. 김 씨는 목사님에게 말했다. 
 
“목사님, 이것 좀 드셔보세요. 이게 뭐냐면요. 과메기라는 거예요. 제 친구가 포항에 사는데, 이게 딱 한 철에만 나오는 거라, 그 동네 사람에게도 귀한 음식이라고 하네요. 철마다 친구가 보내주는데, 저는 이거 먹는 게 한 해의 낙이랍니다.” 
 
김호열 목사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그래요?”라고 물었다. 들뜬 얼굴로 과메기를 미역에 싸더니, 초장에 찍어 입에 넣었다. 그리고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다른 사람들이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특히, 김 씨가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그러나, 최도훈은 웃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김 씨는 집안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호열 목사는 “그럼, 그럴까요?”라는 말과 함께 심방 전도사에게 눈빛을 보냈다. 심방 전도사는 전화기를 들고, 거실 구석으로 가더니, 다음 심방을 뒤로 미루는 듯 보였다. 서로 이야기가 잘 되었는지, 밝은 표정으로 김호열 목사에게 “편안히 보셔도 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김 씨의 안내로 집안 구석구석을 들여다봤다. 그러다, 2층 서재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김 씨가 만년필을 수집하는지, 유리로 된 장식장에 다양한 만년필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서글서글 대충대충 보이던, 김 씨의 이미지가 한순간에 바뀌던 순간이었다. 
 
함께 서 있던 모든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만년필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때, 김 씨가 입을 열었다. 
 
“목사님, 관심 가는 물건 있으시면, 하나 골라보세요. 다 제 자식 같은 놈들이지만, 목사님께 하나 드리려고 생각해서 오늘 오시라고 했습니다. 걱정 마시고, 하나 골라보세요.”
 
김호열 목사는 거듭 사양했지만, 김 씨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만년필 하나를 집어 들었다. 김 씨는 그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봤다. 
 
김호열 목사가 차에 올라타서, 김 씨의 집을 떠나려고 하자, 김 씨는 농담처럼 목사에게 말했다. 
 
“목사님, 역시 보는 눈이 있으세요. 지금 타고 가시는 자동차보다 비싼 녀석을 주머니에 넣고 가시는 거예요. 오래오래 간직해주세요.” 
 
김호열 목사는 어쩔 줄 몰라 하며, 감사하는 말을 두세 번 내뱉었다. 김호열 목사가 돌아간 뒤, 최도훈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세 시간이 넘도록 김 씨에 집에 머문 것이다. 최도훈은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실룩거리며 말했다. 
 
“쓰레기 같은 놈.” 
 
#  
 
최도훈이 아내를 따라, 교회를 나간지 얼마 되지 않아, 목사님이 심방을 오신다고 했다. 최도훈은 컨테이너 박스에서 누추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아내는 남편을 여러 번 설득했다. 
 
“여보, 목사님이 무슨 성도들이 얼마나 잘 먹고 사나 보시는 줄 알아? 그런 거 아니야. 편안하게 생각해.” 
 
최도훈은 마지못해 심방을 받기로 했다. 
 
막상 심방을 받게 되자, 목사님이 방문하기 며칠 전부터 이상하게 마음이 설레었다. 
 
최도훈의 마음이 힘들 때마다, 어떻게 알았는지 그에 딱 맞는 설교 말씀을 해주시는 목사님에게 고마웠다. 교회에서 데면데면 할 때는 민망해서 표현을 못 했지만, 심방을 받을 때는 제대로 감사하다는 말을 할 작정이었다.  
 
없는 돈에, 나름대로 저녁 상을 차리고 목사님을 기다렸다. 시간에 맞춰, 김호열 목사가 나타났다. 
 
컨테이너 박스에 들어선 김호열 목사는 안을 들여다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컨테이너 박스도 잘 꾸미니까 그럴 듯하군요.” 
 
무슨 의도였는지는 모르지만, 단 번에 최도훈의 기분이 상했다. 그의 아내는 속도 없는지, 다정한 말투로 목사에게 말했다. 
 
“옆집에서 쓰던 거 잠시 빌려주셨어요. 이렇게라도 살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죠. 하나님 은혜에요, 목사님” 
 
김호열 목사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두 분 고생하시는 거 하나님이 아십니다. 그렇게 좋은 마음 가지고 계신데, 하나님께서 좋은 집으로 인도해주실 거예요.” 
 
아내는 손뼉을 치며, 아멘이라고 말했다. 최도훈은 이게 뭔가 싶었다.  
 
김호열 목사는 성경을 펴고, 말씀을 한 줄 읽었다. 그리고는, 잠시 동안 설교했다. 그리고는, 시계를 들여다보더니, “아이고, 죄송합니다. 다음 심방이 있어, 이만 일어나 봐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아내가 최도훈의 옆구리를 꾹 찔렀다. 아내 눈치를 살피던, 최도훈은 어색하게 웃으며 김호열 목사에게 말했다. 
 
“목사님, 저녁 식사라도 하고 가시죠? 차린 건 별로 없지만, 목사님 오신다고 식사를 준비했어요. 금방  차릴테니까, 5분만 드시고 가세요.”
 
김호열 목사는 정중히 말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오늘 무리하게 일정을 잡았나 봐요. 시간이 조금씩 뒤로 밀려서, 이렇게 됐습니다. 이해 부탁드리겠습니다, 형제님.”
 
아쉬운 마음에 최도훈은 “설교 참 감사합니다. 많이 위로받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김호열 목사는, “제가 감사하지요.”라는 말과 함께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김호열 목사가 최도훈의 집에 도착해 차를 타고 떠나기까지 십오 분이 걸렸다. 교회의 모든 것이 낯설었던 최도훈은 아내에게 물었다. 
 
“여보, 목사님이 시간이 철저하신 분인가 봐. 15분 단위로 사람을 만나네. 나는 사업할 때, 저런 식으로 안 했는데. 사람들이 좋아할까? 나는 기분이 별로야.” 
 
아내는 남편을 꾸짖듯이 말했다. 
 
“당신이 몰라서 그래. 목사님들이 얼마나 바쁘신데. 휴일도 없이 저렇게 일하시는 거야. 당신이 옆에서 많이 도와드려.” 
 
최도훈은 끝내 시계를 들여다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원래 저런 거야, 아니면 나를 무시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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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도훈은 손목시계를 만지작거리며, 나에게 말했다.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시간이 흐르니까, 말도 안 되는 일을 당한 거예요. 앞뒤를 맞춰보니까, 완전히 무시를 당한 거죠. 
 
그 목사는 내 사업이 성공할지 몰랐을 거예요.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관심도 없었겠죠. 
 
그날 컨테이너 박스에서 가난하게 사는 나를 보면서,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겠죠. 별 볼 일 없는 내가 장로까지 되었으니 얼마나 당황스러울까요.
 
표현은 못 해도 아마 속으로 미칠 지경이겠죠. 장로가 항존직이라고 그랬나요? 한 번 직분을 받으면, 죽을 때까지 유효하다면서요? 어디 보세요. 내가 끝까지 괴롭혀 줄 거니까.”  
 
그는 화가 나서, 주먹을 움켜쥐며 말했다. 그 손으로 테이블이라도 내리칠 것만 같았다. 
 
그가 꽉 움켜쥔 손에 무엇을 숨겼는지 궁금했다. 그는 스스로 손을 펴지 못했다. 움켜쥐는 것으로 근육이 적응했을 것이다. 상처는 언제나 숨을 곳을 찾는다. 그의 상처는 분노 뒤에 숨었다.  
 

 
“난 고아였어요. 부모님의 얼굴을 알지 못해요. 부모도 없는 게, 싸가지도 없었는지, 12살에 고아원에서 쫓겨났어요. 
 
밤낮으로 나를 괴롭히는 친구가 있었어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그 친구 손등을 망치로 내려쳤거든요. 고아원 원장한테 뺨 한 대 얻어맞고, 그날로 쫓겨났죠. 그 녀석이 원장님 아들이었거든요.  
 
고아원에서 쫓겨나서, 개처럼 살았어요. 구걸도 해보고, 도둑질도 해봤는데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요. 동대문에서 트럭에 옷을 실어주는 일을 했는데, 거기 사장님이 날 좋게 본 거죠. 
 
일을 가르쳐 주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정도 먹고살게 됐고, 아내도 만나고 그랬죠. 
 
사장하고 잘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사장이 날 보는 눈빛이 이상해요. 알고 보니까, 거래처 사람들이 이간질을 하고 있더라고요. 아니, 자기 밑에서 뼈빠지게 일하는 내 말을 안 믿고, 계산기나 두드리는 그런 사람들을 믿는 게 말이 되나요. 기분 더러워서 당장 그만뒀어요. 
 
보란 듯이 성공해서,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마음먹었죠. 더 좋은 조건으로 그 사장의 거래처를 내가 다 빼앗아 왔어요. 거래처 사장들은 내가 잘 데리고 있다가, 물량을 확 끊어버려서 망하게 했고요. 다른 곳에서도 내 눈치 보느라 그쪽에 납품 안 했어요. 나한테 잘못 보이면, 끝장난다는 소문이 업계에 돌았죠. 
 
내가 왜 이런 성격인가 생각을 해봤어요. 연관성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기억이 났으니까 일단 이야기를 해볼게요. 
 
그 고아원 원장 있죠? 아이들 열 명 정도 데리고 있었는데, 완전히 위선 덩어리였어요. 거기 오는 후원자들 중에 잘 사는 사람, 못 사는 사람 있는데, 유독 잘 사는 사람한테 그렇게 잘했어요. 
 
어려운 살림에 쌀 20Kg짜리 하나 어깨에 짊어지고 온 사람이 있었는데, 그 앞에서는 감사하다 뭐다 갖은 말을 다하더니, 그 사람 가니까 표정이 싹 변해요. 
 
“요즘 세상에 누가 쌀을 줘. 돈으로 가져와야지. 이거 몇 푼이나 한다고 생색을 그리 내. 내가 자존심이 상해서, 이 짓도 못해 먹겠다, 진짜.” 
 
돈 많은 집에서 후원하러 오잖아요. 그러면, 신발도 안 신고 마당으로 뛰어나가서 인사를 해요. 그거 보고 있으면, 구토가 나오죠. 나는 그 여자 사람으로 안 봤어요. 
 
그 아들자식은 고아원 애들 후원 들어온 걸로, 아주 호강을 했어요. 어린 제 눈에는 없는 게 없는 걸로 보였으니까요. 그 자식이 심심풀이로 애들 때리고, 괴롭히고 그래도, 아무도 말 못 했죠. 
 
그놈하고 싸움 붙는 놈은, 가차 없이 쫓겨나거든요. 갈 곳 없는 어린애들이 어쩌겠어요. 그냥 참는 거죠. 
 
자고 있는데, 그 자식이 내 발가락에 불침을 놨어요. 발가락 사이에 휴지를 끼워서 불을 붙이면, 화상을 입죠. 여름이었는데, 물집이 잡히고 터지고 곪아서 걷기도 힘들더라고요. 그만두라고 해도, 계속 그 짓을 해요. 발가락이 성할 날이 없었어요. 
 
자다가 느낌이 이상해서 깼는데, 또 그 짓을 하고 있어요.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 되었죠. 당장 죽여버릴 생각으로 망치를 가져왔어요. 차마, 죽일 수는 없어서 손등을 내려친 거죠. 
 
지 자식이 아프다고 울고불고 하니까 원장이 깜짝 놀라 잠에서 깼죠. 지 자식을 끌어안고, 내 뺨을 때리더라고요. 그 새벽에 날 쫓아낸 거죠. 홧김에 불이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다른 애들 때문에 참았죠. 그 아이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어요. 아직도 가끔 그날이 생각나요. 그 쓰레기 같은 원장 얼굴도 떠오르고요.” 
 
그의 말을 듣고, 잠시 동안 내 생각을 전해주었다. 그는 긴 한숨을 쉬더니, 한참을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말했다. 
 
“흥미롭네요. 원장에게 쓰던 쓰레기라는 말을 목사에게 같이 쓰고 있네요. 생각지도 못했거든요.” 
 
그는 여유를 되찾았는지, 미소 띤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에효. 목사도 사람인데, 그럴 수도 있죠. 나도 뭐 사람인데요. 예수님 앞에서 도토리 키재기죠. 사람한테 뭐 기대할 게 있겠어요. 다 부질없는 짓이죠. 이제 교회에서 목사하고 싸움박질하는 것도 지쳤어요. 때가 되면 떠나야죠. 
 
소박한 꿈이 하나 있거든요. 시골 마을에 조용하고 따뜻한 고아원 하나 짓는 거예요. 사실, 아내와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나처럼 부모 없는 아이들, 갈 곳 없는 아이들, 상처받지 않도록 잘 키워내고 싶어요. 
 
그렇게 하려면, 제 상처부터 먼저 치유해야겠지요?”
 
최도훈은 그의 꿈을 말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의 머리카락에 하얀 새치가 드문드문 보였지만, 내 눈에는 그가 12살 꼬마로 보였다. 그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살며시 잡아주었다. 그는 아주 잠시 동안 나를 끌어안고, 아이처럼 울었다.

내 옆에는 아무도 없어요

나는 혼자야.   
그래서 외로워.  
 
당신이 혼자라는 말. 
그래서 외롭다는 말. 
반은 맞고 반은 틀려요. 
 
사람은 절대로 혼자일 수 없어요. 
생각과 함께 지내니까요. 
 
혼자 있다고 해서 
무조건 외로운 게 아니에요. 
 
혼자 있는 그 자체보다 
혼자 있을 때 찾아오는 
생각이 더 중요해요. 
 
내 옆에는 아무도 없어. 
나는 평생 그랬어.
벗어날 수 없어.  
 
한 번 찾아온 생각은 
떠날 생각을 하지 않고 
마음을 짓밟거든요. 
 
수도꼭지를 잠그듯 
생각을 틀어막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참 어렵죠. 
말처럼 쉽지 않아요. 
 
나라고 별 수 있나요. 
나도 답답할 때 많아요. 
 
나를 괴롭게 하는 생각이 
모래알처럼 많지만 
하나만 말해볼게요. 
 
읽어주는 사람 없을 때는 
글이 잘 써졌어요. 
 
읽는 사람 늘어나니까 안 써져요.
미칠 노릇이죠. 
 
글이 막히면 
파도처럼 생각이 밀려와요.  
 
네 글을 누가 읽어. 
아무도 안 읽어. 
유치하고 편협해. 
 
생각이 안 사라져요. 
글 쓸 때마다 찾아와서 괴롭혀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방법 없어요. 
그냥 끌려다녔죠. 
 
정말 잘 쓰고 싶은데 
뜻대로 안되니까 괴로웠어요.  
 
고생고생하다가 
좋은 방법 하나 찾았죠. 
 
내가 나한테 
단호하게 말했어요. 
 
야, 그냥 써. 
잘 쓰지 말고 그냥 쓰라고. 
 
그래서 그날부터 
그냥 써요. 
 
매일 새벽 4시 기상. 
200자 원고지 20장, 
글자로 4천 자.
 
아무 생각 없이 
모니터 화면을 글자로 
채워 넣어요.
 
가끔 이 방법이 
안 통하는 날이 있어요. 
울죠. 많이 울어요. 
 
이래도 안되는구나. 
정말 안되는구나. 
 
막 울고 있으면 
주님이 옆에 오신 것처럼
마음이 따뜻해져요. 
 
한 사람. 
오직 한 사람. 
상처 입은 한 사람에게 
나를 전해주렴. 
 
아, 그랬구나. 
내가 욕심부렸구나. 
잘못 생각했구나.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글을 써요.  
오직 한 사람을 위해.  
 
아가페 사랑. 
긍휼의 마음. 
진정성. 
 
내가 글쓰기 전에 
입버릇처럼 
반복하는 말이에요. 
 
당신에게 전해주고 싶어요. 
그분의 따뜻한 사랑을. 
 
당신이 외로운 것처럼 
나도 외로워요. 
 
내가 외롭지 않으면 
당신이 한심해 보일지 몰라요. 
다행히 나도 외로워요. 
 
내 글이 당신에게 닿고 
당신이 그분께 닿으면  
우린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에요. 
 
나와 당신 사이
새로 놓인 다리로 
그분이 건너가시기를 바라요. 
 
투닥투닥 망치를 두드려 
다리를 짓는 마음으로
타닥타닥 글을 써요. 
 
그분이 당신에게 
건너가실 수 있을 만큼 
튼튼한 다리를 
만들고 싶어서. 
 
당신이 혼자라서 
외로운 게 아니에요. 
 
주님이 계시지 않아 
외로운 거예요.
 
당신이 혼자라고 느낄 때 
주님을 전해주고 싶어요.  
 
나는 더 이상 나쁜 생각이 
당신을 짓밟도록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내 몸 상해도 돼요. 
망치질을 쉬지 않을 거예요. 
 
다리가 튼튼한가요. 
그래요. 
그분을 전해드릴게요. 
 
주님이 건너가세요. 
당신을 안아주세요. 
 
이제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요.

내가 항상 이렇지 뭐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면
무심코 말해 버립니다.
 
내가 항상 이렇지 뭐.
언제나 그랬어.
 
실수를 일반화해버리면
인생에 꼬리표가 붙습니다.
 
실패한 인생.
 
그렇게 성급하게 결론 내리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요.
 
질문 하나 해보겠습니다.
 
증거 있나요?
당신이 실패했다는 증거 말입니다.
 
아마 당신은 당황해서
같은 말을 반복할 겁니다.
 
실패했으니까 실패한 거지,
무슨 증거가 필요해?
 
아니에요.
조금 더 생각해보세요.
 
당신이 실패했다고 말하기에는
구체적인 증거가 모자랍니다.
 
감정이 앞서고 있어요.
 
감정에 근거해서
실패했다고 말하는 겁니다.
 
감정은 증거가 아니죠.
 
증거를 가져오세요.
명확하고 구체적인 증거 말입니다.
 
증거가 충분하면
내가 결론 내려드릴게요.
 
당신은 실패했다고.
 
아쉽게도 나는 증거가 충분한 사람을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어요.
 
한 사람이 기억납니다.
그녀는 말했어요.
 
나는 나쁜 엄마입니다.
내 딸이 나처럼 살면 안 돼요.
 
아, 그렇군요.
당신이 나쁜 엄마라는 거죠?
증거 있나요?
 
네?
 
증거 있냐고요?
 
증거라니요?
 
증거가 있어야죠.
결론을 내린 근거 말입니다.
 
없어요.
 
그래요?
 
하지만, 난 알아요.
내가 나쁜 엄마라는 걸.
 
나는 모르겠는데요.
증거를 제시해주세요.
 
침묵.
 
성급하게 결론 내리면
당신은 파괴됩니다.
 
판단을 미루세요.
성급할 필요 전혀 없습니다.
 
정 불안하면 증거를 모아
그분에게 가져가세요.
 
그분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없이 당신을 안아줍니다.
 
토닥토닥.
 
수신호와 함께
따뜻한 바람이 붑니다.
 
당신이 가져온 증거 뭉치는
바람에 날려 사라집니다.
 
바람에 몸을 실은 당신은
깃털처럼 가볍게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성급해서 좋을 것은 딱 하나,
그분을 찾는 일입니다.

남자에게 사랑받고 싶어요

아직 제대로 된 연애를 한 번도 못해봤어요.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 사랑 받고 싶어요. 외로움을 못이겨 음란물을 보게 되었고, 제 몸에 자극을 주게 되었어요. 그럴 때마다 죄책감이 들어요. 벗어날 수 있을까요. 정작 호감이 가는 남자를 만나면, 멀리 도망쳐버려요. 
 
나는 자매님이 스스로를 정죄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마음 편히 지금처럼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죄책감 없이 지금의 습관을 유지하라는 말이 아니에요. 잘못되었다 생각하시고, 벗어나고 싶다니까 드리는 말입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추측을 해봅니다. 자매님이 보내주신 사연을 읽어보면, 그 안에 결핍이 있는 것 같아요. 살아오면서 누군가에게 안정적이고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했을 겁니다. 가족마저도 사랑해주지 못한 것 같아요. 추측일 뿐입니다. 
 
나름의 근거가 있어야 겠지요. 질문 안에 근거가 있습니다. 자매님은 아직 연애를 못해보셨다고 했어요.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정작 호감가는 남자를 만나면 멀리 도망가버립니다. 이성과의 관계가 불편한 거예요. 서툰 겁니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들여다 봐야 합니다. 그래야, 돌볼 수 있어요. 
 
자신을 다르게 바라보면 좋겠어요. 자신을 음란물을 보면서 죄를 짓는 나쁜 사람으로 만들지 마세요. 반복해서 죄를 짓는 어리석은 사람으로 만들지 마세요. 그러면, 벗어날 수 없습니다. 
 
행위 그 자체만 가지고 평가하지 마시고, 왜 그런 행위를 하는가를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그 중심에는 외로움이 있습니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다룰 수 있어야 외로워서 반복하는 행위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배고픈 꼬마 아이가 있습니다. 집에서 밥을 주지 않아요.  엄마 아빠는 하루 종일 일하느라 바쁩니다. 아이가 밥을 먹었는지, 밥을 굶었는지도 모릅니다. 아이는 혼자 밥을 지어먹기에는 너무 어립니다. 밥을 안주면 굶어야 해요.  
 
배고픈 아이는 터벅터벅 문방구 앞에 갑니다. 친구들이 빨갛고 파란 불량식품을 나눠줍니다. 입에 넣고는 충격을 받습니다. 자극적인 맛이에요. 머리가 띵합니다. 자극적인 맛에 정신이 팔려 불량식품을 허겁지겁 주워 먹습니다. 
 
아이가 거울을 보다가 깜짝 놀랍니다. 불량식품으로 입술이 새파랗게 물들었습니다. 물로 닦아도 지워지지 않습니다. 엄마에게 혼나지 않을까 무섭습니다. 그대로 주저 앉아 웁니다. 후회합니다. 다시는 불량식품을 먹지 않을 거라고 다짐합니다. 울면서 집에 갑니다. 
 
집은 평소처럼 조용합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밥솥도 비었습니다. 아이는 혼자 누워 있다, 일어섭니다. 새파란 불량식품이 생각납니다. 자극적인 맛이 그립습니다. 그러면 안된다 하면서도, 발걸음을 멈출 수 없습니다. 문방구를 향해 뚜벅뚜벅 걷습니다. 
 
배고픈 아이에게 필요한 건 회초리가 아니라 따뜻한 밥 한 그릇입니다. 입술 파란 아이를 찾았다면, 그 아이를 때리지 마세요. 불량식품을 왜 먹냐고 다그치지 마세요. 사랑으로 안아주시고, 데려다가 잘 먹이세요. 따뜻한 밥 잘 챙겨 먹은 아이는 불량식품을 먹지 않아요. 
 
이제부터 자신을 돌보세요. 그때는 어려서 아무 것도 몰랐지만, 지금은 자매님 자신을 스스로 돌볼 수 있어요. 말처럼 쉽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우리 주님이 필요한 거죠. 
 
주님 앞에 나아가서 외롭다고 우세요. 외로운 자신을 안아달라고 기도하세요. 더 이상 불량식품에 매달리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세요. 주님이 매일 매일 따뜻한 밥을 지어 주실 겁니다. 시간 오래 걸리니까 조급해하지 마시고, 매일 매일 잘 챙겨드세요.

내가 바보처럼 보이니?

교회에서는 남을 돕고 섬기는 게 미덕이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상황 어렵고 시간 없는데, 정성을 다해 다른 사람을 도와줬어요. 고맙다는 말 한 번 없이 당연하게 생각해요. 바보 취급당하나 기분이 나쁜데, 얼마나 더 섬겨주어야 할까요?
 
질문에 감정이 실린 것 같아요. 그만큼 서운하다는 뜻이지요. 제가 구체적으로 상황을 알 수는 없지만, 무리한 섬김은 당신에게도 상대방에게도 유익하지 않습니다. 적절한 범위 내에서 멈춰야 할 것 같아요. 우리는 예수님처럼 살아야 하지만, 예수님은 아니거든요.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다른 사람의 비위를 맞출 필요는 없습니다. 
 
잠시 멈춰 서서, 자신에게 질문해보세요. “나는 왜 그 사람을 이렇게까지 섬겨주고 있을까? 왜 적당한 선에서 거절을 못 할까? 왜 무시당하면 기분이 나쁠까?”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을 겁니다. 자신만의 의미부여가 특정한 상황을 특정한 관점으로 보게 만드는 겁니다. 
 
아마 질문하신 분께서는 이번 일이 처음이 아닐 겁니다. 인생에서 반복되고 있을 거예요. 패턴 아닌가 싶어요. 부탁하면 도와주고, 도와주다 지치고., 지치다 떠나고. “두 번 다시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누군가를 필요 이상으로 섬겨줍니다. 지쳐가는 자신과 마주합니다. 
 
상대방을 떠올리면 좌절하지 하지만, 자신을 돌아보면 성장합니다. 상대방을 떠올릴 시간에, 자신을 들여다보세요.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나 왜 이럴까?” 깊이 고민해보세요. “왜”라는 고민을 끊임없이 던지다 보면, 자신 안에 해결되지 않은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을 거예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자신만의 이야기 말입니다. 어쩌면, 자신도 몰랐던.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해 보일 겁니다. 가만히 앉아 이리저리 살펴보세요. 팔을 걷어붙이고 집중하세요. 중요한 순간입니다. 잘 풀어야 벗어납니다. 그 사이에 누가 와서 “나 이것 좀 도와줘”라고 부탁하면, 하던 일 중단하지 마시고 고개만 돌려 말하세요. “잠깐만, 지금 내가 그럴 상황이 아니어서. 나중에 도와줄게. 이거 먼저 풀어야 해.” 걱정은 마세요. 그 사람 큰일 나는 거 아니에요. 실타래 먼저 푸세요. 
 
당신이 도와주지 않아도, 그 사람은 잘 살아요. 하나님이 책임져주시니까 걱정하지 말고, 당분 간은 자신의 문제에 집중하세요. 잘 풀어야 나중에 여유가 생기죠. 그때는 가서 도와주세요. 그 사람이 몰라줘도 기분 나쁘지 않을 만큼만, 적당히.  

툭하면 이혼하자는 남편

“여자들한테 벗어나고 싶어요. 엄마나 아내나 다 똑같아요.  바라는 것이 뭐가 그리 많은지….” 
 
L은 서른여덟, 결혼 9년 차, 일곱 살 아들의 아빠다. 그는 억지로 상담실에 끌려 온 사람 같았다. 침묵하는 그를 대신해서 아내가 상담실에 온 이유를 말했다. 
 
“남편은 이혼하자는 말을 밥 먹듯이 해요. 저는 그럴 때마다 왜 그런 소리를 하냐며, 진짜 이혼을 안 할 거라면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하죠. 그런데 정말 이혼하자고 하는 말이래요. 처음에는 믿지 않았는데 자꾸 듣다보니까 이 남자가 진심으로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는 이혼하자는 말을 들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어떤 문제로 싸우든지 제가 먼저 사과해요. 남편이 이혼하자는 말을 하면, 그럴 수는 없다고 애원하게 되거든요. 이혼은 안 돼요. 애들한테 엄마가 없으면 안 되잖아요.” 
 
남편은 계속 침묵했다. 아내는 멈추지 않았다.  
 
“저는 사실 사랑받고 싶었어요. 결혼하고 나서 계속 똑같은 말을 했죠. ‘나 좀 사랑해줘라. 왜 이렇게 무시하냐? 내가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이다. 그냥 사랑해주면 된다.’ 그런데 남편은 눈 하나 깜짝 안 해요. 다 제 잘못이라고 하죠. 지금도 보세요. 아무 말도 하지 않잖아요.” 
 
긴 침묵을 지키던 남편이 입을 열었다.
 
“노력을 할 시기는 지난 것 같아요. 몇 년 동안 서로 최선을 다했죠. 아내는 전혀 이해를 못하더군요. 부질없는 노력을 한 거죠. 그래서 어느 순간 생각했어요. ‘이 여자는 만족을 모르네. 그만하자.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아이 양육권이 가장 고민이에요. 제가 키울 자신은 없고, 이 여자에게 맡길 수는 없고. 그 문제만 해결되면 이 여자랑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요. 이혼하자는 말은 진심이에요. 다 끝났어요. 더 이상 아내에게 미련이 없어요.” 
 
남편에게 다른 여자는 없었다. 그는 단지 여자들에게 벗어나고 싶다고 말했다. 
 
“제 어머니와 하는 짓이 똑같아요. 제발 그러지 말라고. 나 좀 괴롭히지 말라고 말했거든요. 여자들은 왜 그럴까요?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건가 봐요. 그런데 인생이 어떻게 자기 뜻대로만 되겠어요. 그렇게 안 되는 게 정상이에요. 
 
남편을 사랑해서 결혼한 것인지 노예처럼 부려먹으려고 한 것인지 모르겠어요. ‘장모님에게 언제 전화해라, 전화해서 이런 말을 해라’까지 시켜요. 제가 전화를 걸고 싶어야 걸죠. 그걸 억지로 시키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당신이 하도 전화를 안 하니까 부탁한 거잖아.” 
“내가 알아서 한다고. 하고 싶지 않으니까. 안 하는 거잖아.”
“우리 엄마가 당신한테 뭘 잘못했어? 왜 전화를 안 하는데?” 
“당신이 시키니까 싫어서. 가만 내버려둬 봐. 내가 알아서 한다고.” 
“내가 한 달 넘게 기다려봤잖아. 당신은 내가 말 안하면 안 하는 사람이라고.” 
“마음대로 생각해. 그런다고 뭐가 바뀌겠어. 내가 말하잖아. 이렇게 왜 사냐고. 다 끝났으니까 그만하자.” 
“거 봐. 또 자기가 불리하면 이혼하지. 나는 이혼 안 해.”
“이렇게 살 바에 이혼하는 게 낫지 않냐? 왜 같이 살아? 서로 피곤하게!” 
 
그의 부모님은 결혼한 지 10년 만에 아들을 낳았다. 아들을 키우는 어머니의 정성은 대단했다. 아들이 먹는 음식, 읽는 책 등 모든 것을 챙겼다. 
 
어느 날, 그가 친구에게 빌린 만화책을 보고 있는데 어머니가 확 낚아챘다. 그리고 한 장 한 장 넘겨보면서 내용을 확인했다. 안전하게 검열을 통과한 만화책은 다시 되돌려줬지만 그렇지 못한 책은 주지 않았다. 
 
그 검열은 단지 만화책에만 머물지 않았다. 만화책을 빌려준 친구와 다시는 함께 놀 수 없었다. 어머니는 집에 놀러온 그의 친구들을 유심히 살폈다. 친구의 말투에 욕이나 거친 표현이 섞이면 함께 놀 수 없었다. 
 
그는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태권도 학원, 피아노 학원에 다녔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한 마리 양처럼 순했던 그가 어머니에게 반항하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시절부터다. 그가 학교마치고 집에 들어오기가 무섭게 어머니는 공부를 시켰다. 학원, 과외, 인터넷 강의. 그는 미칠 지경이 되었다. 
 
어머니는 아들의 책상 뒤 침대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그가 집에 있는 시간에는 어김없이 함께 있어야 했다. 그가 피곤해 책상에 엎드려 자면 어머니는 침대에서 일어나 그의 옆구리를 찔렀다. 얼음물을 떠다 주며 마시고 다시 공부하라고 했다. 평소에는 12시, 시험 기간 3주 전부터는 새벽 2시까지 잘 수 없었다. 
 
성적은 상위권으로 유지할 수 있었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공부하기 싫다고 말대꾸를 했다. 어머니는 무시했다. 혼자 공부할 수 있을 때까지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성적을 유지할 수 없으니까 스스로 공부할 때까지는 어쩔 수 없이 강제로 시켜야 한다고 했다. 나중에 스스로 할 수 있게 되면 더 이상 잔소리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어머니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어머니가 강제에 의해서라도 공부하지 않으면 성적을 유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머니에 대한 분노와 자신의 능력에 대한 불안 사이에서 그는 시간의 노예가 되었다. 
 
어머니의 노력 덕분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노력 덕분이었을까. 그는 지방에서 공부해서 수도권 대학에 입학했다. 자취 생활이 시작되었다. 어머니로부터 해방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자유는 일시적이었다. 어머니는 아침마다 전화해서 깨웠다.  일찍 도서관에 가라고 하거나, 아침밥을 꼭 챙겨먹으라고 했다. 주말에는 어김없이 찾아와 청소와 살림을 해놓고 갔다. 어머니가 집에 오는 토요일 저녁은 친구를 만날 수 없었다. 일주일에 밥 한 끼는 같이 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 때문이었다. 
 
“지겨웠어요, 정말. 어머니 그늘 아래 산다는 것이. 왜 저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못하는지. 처음에는 저를 사랑해서 그런 줄 알았어요. 제가 부모가 되어 보니까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병적인 집착이죠. 최악의 환경에서 자란 거예요. 뭐 하나 제 뜻대로 된 게 없거든요. 제가 결혼해서도 이렇게 살 줄 몰랐어요. 벗어날 수 없는 운명처럼 두 여자가 만든 감옥에 갇혀버린 거죠. 
 
제 탓도 있겠죠. 사람은 자기 환경을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어요. 어머니를 싫어하는 사람은 어머니 같은 여자에게 끌려서 결혼하게 된다고.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요. 어머니에게 벗어나자마자 이 여자에게 갇혀버리다니! 제 실수니까 제가 바로 잡아야죠. 정말 이혼하려고요. 더 이상 저 아닌 모습으로 살 수 없어요. 숨 막혀 죽을 것 같으니까.” 
 
 
***
 
 
두 사람이 사막을 건너고 있었다. 엄마와 아들. 엄마는 사막에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가 어린 시절에 아무도 그녀에게 사막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당당히 사막 한 가운데에서 살아남은 엄마는 결심했다. 아들에게는 사막에서 살아남는 법을 꼭 전수해주겠다고.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사막을 지나던 어느 날, 거대한 모래 폭풍이 불어왔다. 엄마는 아들을 품에 안았고, 두 사람은 무사했다. 그날 이후, 아들은 바람이 불면 엄마 품에 안겨 바람을 피했다. 그 품이 안전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의 여행은 길었다. 엄마는 점점 작아졌고, 아들은 점점 커졌다. 모래 폭풍이 불어와도 아들은 더 이상 엄마의 품에 안기지 않았다. 그 품이 너무 작아서 모래 폭풍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서로 표현한 적은 없지만 조용히 받아들인 현실이었다.
 
사막의 한 기점에 다다르자 이정표가 보였다. 서로 헤어져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아들은 홀가분하게 자기 길을 갔다. 그러나 엄마는 그러지 못했다. 아들이 떠난 길을 잠시 바라보다가 아들의 뒤를 따라갔다. 모래 폭풍이 불자 엄마는 눈앞에서 아들을 놓쳐버렸다.  
 
소년은 사막 한 가운데에서 길을 잃었다. 외로웠다. 반대편에서 빨간색 외투를 입은 한 사람이 걸어왔다. 자신보다 몸이 작은 소녀였다. 그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함께 걸었다. 다시 모래 폭풍이 불었다. 그러자 그가 갑자기 소녀의 손을 뿌리치더니 외투로 자기 몸을 가린다. 모래 폭풍 속에서 다른 사람을 보호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것이다. 
 
어릴 때는 엄마 품에 안겨서, 성장한 후에는 자기 외투 속에서 모래 폭풍을 피했다. 소년은 말없는 목소리로 소녀에게 말한 것이다. 
 
‘같이 걷기는 하지만, 너는 너고, 나는 나야.’ 
 
소녀는 함께 걸으려면 서로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년은 각자 알아서 하면 된다고 말했다. 사막은 손잡고 수다를 떨면서 걷을 수 없는 곳이었다. 소년의 말수가 줄었다. 소녀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소년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소녀에게 말했다. 혼자 가라고. 나는 더 이상 걷고 싶지 않다고. 
 
그리고 소년은 가방에서 텐트를 꺼내 치고 그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소녀는 나오라고, 계속 가야한다고 말했지만 소년은 들은 체 하지 않았다. 소녀는 텐트 밖에서 소년을 기다렸다. 텐트 안에서 소년은 생각했다. 
 
‘사막을 벗어날 방법은 없어. 사막을 건너지도 못할 거야. 그럴 바에는 차라리 여기 머무는 것이 낫다.’ 
 
모래 바람 소리는 거셌다. 휘이잉 불어오는 바람 소리에 소녀의 울음소리가 묻혔다. 
 
한 사람을 파괴하는 가장 빠르고 정확한 방법은 ‘책임’이라는 단어를 그의 삶에서 빼앗는 것이다. 책임지지 않는 사람은 파괴된다. 세상에는 자기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사막을 끝까지 걸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책임지지 않는 사람이다. 
 
사막 한 가운데 유토피아를 건설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를 쫓는다. 머지않아 그는 자기 인생을 망쳐버리고 만다. 파멸은 사막 한 가운데 안주하려는 데서 시작된다. 자기 자신의 책임을 외면하는 것이 파멸의 시작이다. 
 
한 사람이 도박, 중독, 외도에 빠지는 이유를 좁게 보면 각각  다르겠지만 넓게 보면 같다.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고통스러워 과정을 생략한 채, 원하는 것을 쉽게 가지려하기 때문이다. 마땅히 고통을 받으며 걸어야 하는 사막의 여정을 생략하고, 사막의 끝에 놓인 오아시스에 가고 싶은 것이다. 
 
사막을 횡단하는 논스톱 자기부상 열차를 타고 오아시스에 도착했다고 생각한다. 열차에서 내려 오아시스에 몸을 던진다. 두 손으로 에메랄드빛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지만 입 속으로 들어온 것은 시원한 물이 아니라 푸석푸석한 모래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가 본 것은 오아시스가 아니라 신기루였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책임지는 두 사람이 필요하다. 남편과 아내이다. 자기 희생 없이 가정이 행복해질 수는 없다. 사막을 걷듯 부부는 서로에게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이 과정을 생략하고 싶은 부부가 의외로 많다. 
 
둘 중 한 사람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책임지려는 사람이 있다면 가정은 절대 깨지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이다. 책임지지 않고, 책임지게 만든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내 부모 때문이야.”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당신 때문이야.” 
 
둘 중 한 문장에라도 동의한 사람은 논스톱 자기 부상 열차에 몸을 싣는 사람이다. 신기루로 직행하는 열차를 탄 것이다. 지금 당장 내리지 않으면 나중에 큰 대가를 지불하게 될 것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일단 내려야 한다. 
 
L는 자신의 어머니와 아내를 동일시하면서 모든 책임을 두 사람에게 전가시켰다. 열차에 올라탄 것이다. 열차에서 내리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내리는 순간,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열차에서 내리면, 아내를 책임져야 한다. 
 
더 이상 ”너 때문이야”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모든 책임의 무게를 고스란히 자신이 짊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무겁고 힘든 삶이다. 그러나 마땅히 가야 하는 길이다. 아무도 대신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 
 
그의 아내 역시 남편이 원하는 것을 손에 쥐어 줄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 없다. 텐트 밖에서 기다리는 것은 답이 아니다. 남편의 노력과 상관없이 자기 행복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남편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결정해주는 것이 아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남편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남편의 사랑으로 자기 존재감을 결정하려는 사람은 늘 불안정하다. 굶주린 사람처럼 허기지다. 남편과 다른 칸 열차에 몸을 실은 것이다. 열차에서 내려서 당당하게 사막을 걸어라. 아무도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라. 
 
가장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 빈자리를 스스로 매우기 시작하라. 남편의 사랑은 덤이다. 모자란 것을 채우는 것이지, 남편의 사랑으로 빈자리 전부를 채울 수는 없다. 
 
다시 사막으로 가자. 기약 없는 여정을 시작하자. 오아시스를 찾아 나서자. 사막을 끝까지 걸은 사람만이 오아시스에서 물을 마실 자격이 있다.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라. 보상은 확실하다. 목이 타는 만큼 오아시스의 물이 달콤할 것이다.

하나님이 해결해주셔야죠

하나님이
해결해주셔야죠.
 
그렇군요.
나도 그러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당신 얼굴이
왜 이리 슬퍼 보일까요.
 
못다 한 이야기가 있군요.
하나님께 서운한가요.
 
네. 그래요.
이제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아무리 기도해도
상황이 좋아지지 않으니까요.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해요.
나는 더 이상 못하겠어요.
 
당신이 내게 한 말,
언뜻 보면 믿음 같지만
자세히 살피면 절망입니다.
 
내 환경이 달라지겠어?
저 사람이 달라지겠어?
 
바뀌지 않을 거야.
바뀌지 않을 거야.
절대로 절대로.
 
당신의 문제가 풀리기 전에
당신의 마음이 풀리기를
나는 바랍니다.
 
믿음과 절망은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마음이 엉키면
절망입니다.
 
마음이 풀리면
믿음입니다.
 
눈물이 강을 이루고
탄식이 산을 이룰지라도
마음이 엉키면
낙원이 아닙니다.
 
강 없고 산 없어도
얼어붙은 땅이 풀리고
작은 겨자씨 하나 피어나면
그곳은 낙원입니다.
 
나는 기도합니다.
나는 소망합니다.
 
당신 마음이 풀어지기를.   
당신 마음이 낙원 되기를.

가슴이 답답해 숨을 쉴 수 없어요

차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가슴이 답답했어요.
숨을 쉴 수가 없어 중간에 내렸어요.
 
10년 동안 해왔던 일이
적성에 안 맞아서 다른 일을 배웠어요.
용기 내서 새출발했어요.
 
막상 현실이 되니
내가 원했던 삶이 아니었어요.
잘못 했다 싶은데 늦은 거죠.   
 
되돌릴 수도 없고 답답해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내가 원했던 삶이 뭐였나 싶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와, 반가워요.
우리 친구네요.
 
요즘 나도 비슷한 고민해요.
나도 작년에 회사를 옮겼거든요.
목회했던 교회에서 김유비닷컴으로.
미안해요, 웃길 의도는 없었어요.
 
나도 요즘 가슴이 답답해요.
누가 구둣발로 가슴을 짓밟는 것 같아요.
작년부터 그랬거든요.
 
새로운 일 시작한다고
교회 떠나 밖으로 나왔을 때
두세 달 그랬어요.
없어졌나 싶었는데 다시 시작되네요.
 
상담하는 사람마저 그러면
어떻게 하냐고 묻고 싶겠죠.
내가 자주 말했잖아요.
내가 잘나서 상담하는 게 아니라고.
 
상담실 안에 나는 내가 아니에요.
상담실 밖에 내가 진짜 나예요.   
하루 종일 무슨 생각할까요, 나는.
 
하루 종일 걱정이에요.
걱정에 걱정이 꼬리를 물죠.
한 번 시작되면 숨 막혀 죽어요.
가슴이 터질 것 같아요.
 
수도꼭지를 잠그듯이
생각을 잠가야 해요.
잠그지 않으면
걱정으로 홍수 나서 떠내려가요.
 
어떻게 생각을 잠그냐고요?
생각의 방향을 바꾸는 거죠.
나 자신과의 대화를 시도해요.
 
너 자꾸 협박하는데
나 뭐 하나만 물어보자.
근거는 있냐? 없지?
근거도 없는데 말한 거지.
나 참, 기가 막혀.
네가 말을 너무 잘해서 속았잖아.
이 사기꾼 놈아.
 
조금 부족하죠?
그래도 사기꾼에게 벗어날 수 있어요.
고개를 돌릴 여유는 생겨요.
바로 옆 주님이 안 보였거든요.
 
사기꾼에게 들은 말을
그대로 주님께 전해보세요.
뭐라고 말씀하시나.
다른 말씀해주세요.
 
너 혼자 아니야.
내가 같이 있잖아.
내가 너 책임질 거야.
내가 너 지켜줄 거야.
 
무한 반복.
듣고 또 듣고
듣고 또 들어요.
가슴 통증 사라질 때까지.
 
완전 해결 안 돼죠.
또다시 가슴 통증.
예수님 말씀 반복.
다른 방법 없어요.
 
가슴이 답답하다고 했지요?
고통을 겪는 인생에는 당신과 나.
아무런 차이가 없어요.
 
단지 나는 나를 돌볼 뿐이에요.
더 이상 나를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아요.
내가 나를 돌보지 않으면
아무도 날 돌봐주지 않잖아요.
 
당신도 그럴 거예요.
당신을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결국 날 보러 왔잖아요.
미안하지만, 나는 당신을 못 돌봐요.
 
주님은 당신 안에 계세요.
당신 안에 계시는 주님과 대화하는 게
자신을 돌보는 거예요.
사기꾼과 대화하지 마시고
주님과 대화해주세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질문하셨죠?
그건 나도 몰라요.
막막한 인생 과연 달라질까요.
어떻게라고 질문하지 말고
왜라고 질문해주세요.
조금 나아질 거예요.
 
인생 막막할수록
예수님 목숨보다 소중했던 당신을
정성스럽게 돌봐주세요.
 
내가 혼자가 아니듯이
당신도 혼자가 아니랍니다.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어요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어요.  기도하면서, 이 남자다 확신을 가지게 되었어요. 하지만, 교회 공동체에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여요. 청년부 전도사님은 이 관계를 달가워하지 않으세요. 형제가 저보다 신앙이 미성숙하다고 하셨어요. 신앙의 완전함은 없다고 생각해요 맞춰가며 함께 성장해야죠. 두 사람 만의 확신으로 연애를 시작해도 될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연애를 시작하고 안 하고는 질문자님이 결정하시면 됩니다.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고, 스스로 결정하세요. 절대로 다른 사람 허락받지 마세요. 내 동의도 의미가 없어요. 내 생각에 질문자님은 이미 결정을 내리셨어요. 내 생각을 물었으니, 답변은 해보겠습니다. 
 
조심스럽지만, 청년부 전도사님이 반대하는 이유를 추측해보겠습니다. 좋은 의도로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해 볼게요. 질문자님을 아끼는 마음에서 걱정을 표현하신 것 같아요. 그동안의 사례가 있겠지요. 사랑하는 제자들이 고통받는 것을 목격하셨을 거예요. 그러니, 청년부 전도사님이 신뢰할 수 있는 분이라면, 좋은 의도로 받아들여 주세요.  
 
하지만, 아무리 좋은 의도로 말씀해주셨어도 결정은 스스로 하세요. 전도사님의  말 한마디로 질문자님의 인생을 좌우할 수는 없어요. 결정은 스스로 내리셔야 해요. 절대로 전도사님에게 결정권을 넘기지 마세요. 선택도 질문자님이, 책임도 질문자님이 지세요. 연애의 행복을 나눌 수 없고, 이별의 슬픔을 대신 느껴줄 사람도 없어요. 
 
질문자님이 “확신”이라고 표현한 부분을 조금 더 고민해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하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확신을 주셨나요. 확신 받았던 방식이 말씀에 근거한 것인가요? 아무리 신비로운 방식으로 확신을 받았아도 연애는 힘들어요. 확신을 과신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나친 확신은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어요. 
 
주변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차분하게 고민해보세요. 그 형제는 어떤 사람인가요. 그 형제가 정말 예수님을 사랑하나요. 잘 모르겠나요. 그렇다면, 그 형제가 정말로 질문자님을 사랑하나요. 그건 분명한가요. 
 
연애를 시작해야겠다는 확신보다, 그 형제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확신이 더 중요해요. 처음부터 상대방에 관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지요. 그러니, 확신은 뒤로 미루세요. 천천히 나중에 확신을 가지셔도 됩니다. 이왕 연애를 시작하실 거면, 조금은 불안한 듯이 망설이며 시작하세요. 서서히 알아간다고 생각하는 게 서로에게 유익합니다.  
 
장거리 여행 갈 때, 연료를 가득 채우고 출발하잖아요. 처음에는 든든하지요. 가는 길이 설렙니다. 하지만, 연료는 계속 줄어들어요. 중간에  난감한 일을 겪지 않으려면 중간중간 멈춰서 연료를 채워야겠지요. 연애도 마찬가지예요. 시작보다 중요한 건 과정이에요. 
 
신앙의 완전함은 없다는 말, 서로 맞춰가며 성장해야 한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전도사님, 공동체 사람들 모두가 그 말에 동의할 거예요. 하지만, 서로 맞춰가며 성장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요.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없지만, 자기 자신만큼은 기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힘들어도 관계를 지속할 수 있어요. 공동체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는 건 어려워요. 하지만, 질문자님에게 소중한 몇몇 사람의 이야기는 들어보세요. 소중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들어볼만 하거든요.

당신의 눈빛이 무서워서 그랬어

“내가 힘들다고 말하면 날 위로해줘야지. 왜 당신이 더 힘들어 해? 당신을 괴롭히고 있는 느낌이야.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아.”
 
U는 남편 회사 때문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이사 와서 고립된 삶을 살고 있었다. 유일하게 바라보고 의지할 사람은 남편뿐인데 답답하고 힘든 일을 말하면 그는 외면했다. 
 
“여보, 내가 미안해.” 
 
남편이 말했다. 아내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남편은 작은 목소리로 아내를 다독이며 말했다. 아내는 남편 손을 뿌리쳤다. 가벼운 이야기는 주고받았지만, 조금이라도 진지해지면 남편은 대화를 거부했다. 그녀가 서운하다고 하면, 그는 힘없는 목소리로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전부였다. 아내는 점점 힘이 빠졌다.  
 
“제 목소리가 조금이라도 커지면 남편이 위축되는 것 같아요. 미안하다는 말로 상황을 빨리 마무리하려고 하죠. 얼마 전에 너무 화가 나서 남편에게 소리쳤어요. ‘여보! 제발 그렇게 미안하다고 말하지 마. 비난을 하려는 게 아니라 당신과 대화하고 싶은 거라고. 당신, 정말로 내가 무서운 거야? 말해줘!’라고요.”
 
남편은 무서운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무능했다. 술 취해 들어와 집안 살림을 수시로 때려 부수며 행패를 부렸다. 어머니는 삼형제를 키우면서 온갖 고생을 다했다. 그에게 아버지는 증오의 대상이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그는 거친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다. 친구들 사이에서 제법 주먹을 쓴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의 몸집이 커지면서 따르는 친구들도 늘어났다. 어느덧 아버지보다 덩치가 커졌다. 아버지보다 힘이 셌지만 덤비지 못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여전히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렸다. 
 
아버지는 화가 나면 밥상머리에서 따귀를 때리거나 물건을 집어던졌다. 아버지에게 대들 생각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심장이 빨리 뛰고 손에서 땀이 났다. 아버지가 눈을 부릅뜨면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제대를 하고 나서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대들었다. 친구들과 정신없이 놀다가 밤늦게 집에 들어간 날이었다. 어머니의 눈이 파랗게 멍들어 있었고, 입술은 터져 피가 흥건했다. 순간 그는 이성을 잃고 아버지의 멱살을 잡았다. 아버지는 움찔 놀라더니 곧 그의 멱살을 잡고 따귀를 때리기 시작했다. 넘어진 그에게 발길질을 허서 온갖 욕을 퍼부었다. 
 
“이 후레자식이 아버지 멱살을 잡아? 어떻게 하려고? 어디 해봐! 넌 벼룩도 네 손으로 못 죽여. 이 겁쟁이 자식!”
 
그는 어머니 옆에 주저앉아 울었다. 입술이 터져 피가 흘렀다.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면서 주먹으로 벽을 쳤다. 문짝 하나를 손으로 다 때려 부수고 집을 뛰쳐나왔다. 처음으로 아버지의 겁먹은 눈동자를 보았다. 
 
그날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눈을 피했다. 점점 그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는 괴로웠다. 차라리 자신이 따귀를 맞는 것이 나았다. 아버지를 비참하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을 느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집을 나와 따로 살았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미안함이 복잡하게 얽혀 정리되지 않은 채 살아가던 어느 날, 그는 아내를 만났다. 
 
1년 동안 연애를 한 후에 결혼했다. 처음으로 부부싸움을 한 날, 아내는 대화가 잘 되지 않자 남편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날 그는 아내에게 두려움을 느꼈다. 자존심 때문에 표현하지 못했지만 아내가 소리를 지르면 머리가 텅 비어버렸다. 심장이 빨리 뛰고 손에서 땀이 났다. 
 
그의 큼지막한 손과 다부진 어깨도 그 두려운 감정을 몰아내지 못했다. 화난 아내가 아버지처럼 보였다. 아내 눈빛이 그를 짓눌렀다. 그래서 아침에 아내가 깨기 전에 조용히 집을 나섰다. 그녀의 눈을 보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싸우고 싶지 않아요. 아내 눈빛이 무서워서.” 
 
***
 
트라우마trauma, 남편 가슴 깊이 새겨진 상처이다.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코끼리 말뚝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서커스단에서 코끼리를 길들일 때, 사용하는 방법이다. 
 
새끼 코끼리 목에 줄을 건다. 말뚝에 그 줄을 묶는다. 새끼 코끼리는 목에 감긴 줄에서 벗어나려고 애쓴다. 소용없다. 지친 코끼리는 포기한다. 땅에 주저 않아 순응한다. 코끼리 몸집이 커지고 힘이 세진다. 나무를 들이받으면 나무가 쓰러지고, 코로 나무를 들어 올리면 뿌리째 뽑힌다. 아무리 힘이 세도 코끼리는 말뚝을 뽑아 올릴 생각을 못한다. 어릴 때의 기억 때문이다. 땅에 박힌 말뚝은 코끼리 내면에 영향을 미친다.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었어.’ 
 
남편에게 일어난 일이다. 어린 시절 학대 경험은 성인이 된 후에도 영향을 미친다.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의도적인 노력을 해야 벗어날 수 있다. 말뚝을 뽑아 올리려면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 
 
학대로 인한 트라우마는 개인의 내면 안에서 영상처럼 반복된다. 극장 의자에 꽁꽁 묶인 채,  끔찍한 영화의 한 장면을 반복해서 보는 것처럼. 고개를 돌려도 소리가 들리고, 눈을 감아도 그 장면이 떠오른다. 트라우마 징후이다. 남편은 아내와 다툴 때마다 아버지로 인한 상처가 떠오른다. 
 
아버지와 아내, 두 사람은 서로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남편은 아내보다 힘에 세고, 목소리도 크다. 상관없다. 그의 두려움은 아내를 통해 반복되고 있다. 반복을 멈추려면, 반론을 제기해야 한다. 
 
‘무서운’ 감정은 ‘무능한’ 감정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대처할 힘이 없을 때, 사람은 무섭다. 눈앞에 꼬마가 장난감 칼을 들고 휘두르면 무섭지 않다. 마음만 먹으면 꼬마를 제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수부대 요원이 칼을 들고 찌를 자세를 취하면, 무섭다. 무서워서 두 다리가 떨린다.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무능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대상에 무서움을 느낀다. 어떤 사람은 카드빚이 무섭다. 과거에 카드빚을 갚지 못해 고생했다면, 신용카드를 쓰는 게 무서울 것이다. 어떤 사람은 새로운 이성을 만나 사귀는 게 무섭다. 과거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다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무서울 것이다. 
 
무서움을 이겨내려면 무서움의 대상을 정면으로 바라봐야 한다. 나와 그 대상을 비교한다. 누가 더 힘이 센가 객관적으로 따져 본다. 전력을 비교해 보는 것이다. 유치한 짓이 아니다. 코끼리를 묶은 말뚝을 뽑아내고 싶다면, 말뚝을 잡고 흔들어봐야 한다. 얼마나 단단하게 박혀있는지 확인해 본다. 잡아서 흔들어보면 안다. 뽑아 올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어린 시절 남편은 아버지의 학대를 벗어날 능력이 없었다. 지금은 아니다. 더 이상의 학대는 없다. 그가 벗어나지 못한 건 두려움이라는 감정이다. 학대는 사라졌지만 두려움을 남겼다. 벗어날 방법이 있다. 
 
가까이 가서 잡고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흔들어 보는 것이다. 코끼리 말뚝을 잡고 흔들듯이 두려운 감정을 잡고 흔든다. 앞뒤 좌우로 흔들다보면 흙이 밀리면서 공간이 만들어진다. 원심력을 이용해서 말뚝을 뱅뱅 돌리면 공간이 넓어진다. 손힘이 뿌리까지 닿으면 말뚝은 뽑힌다. 
 
남편은 혼자가 아니다. 아내가 도울 수 있다. 아내는 말뚝이 아니다. 남편을 속박하는 사람이 아니라 돕는 사람이다. 말뚝을 뽑으려 하는 손에 힘을 보탤 수 있다.   
 
모든 사람은 결핍이 있다. 결핍을 채우고자 하는 욕구를 느낀다. 누군가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건, 자신 안에 결핍을 보상해줄 사람일지 모른다는 희망 때문일 것이다. 남편에게 아내는 결핍을 채워줄 사람이다. 부부 사이 갈등은 주로 배우자가 가진 결핍에서 비롯된다. 
 
그 결핍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지만 실재한다. 그것을 채워달라고 배우자에게 호소하고 강요하면서 서로에게 고통을 준다. 부부가 절망에 빠지는 이유다. 그러나 이것은 곧 기회다. 배우자가 고통을 호소하는 문제 속에 배우자가 바라는 욕구가 숨어있다. 
 
배우자가 지속적으로 고통을 호소한다면 귀를 기울여 진심을 알아봐야 한다. 부모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배우자가 채워줄 수 있다. 아내가 두려움에 떠는 남편을 이끌어 줄 수 있다는 뜻이다.  
 
아내여, 남편은 나쁜 사람이 아니다. 결핍이 있는 사람이다. 겁먹은 소년이 당신 품에 안겼다. 사내로 키워라. 참고 견뎌라. 그가 진정한 남자가 되면 넓은 가슴으로 당신을 안아줄 것이다. 당신을 사랑하고 보호해줄 것이다. 포기하지 마라. 그날이 멀지 않았다.
 
소년이 치유되면 남자가 된다.

모든 자녀는 서로 다르다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났는데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요? 큰 아이는 걱정 없이 키웠는데, 작은 애는 문제가 많아요.” 
 
D는 엄마로서 작은 아들을 키우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작은 아들이 담배를 피우다 들킨 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아들 몸에서 담배 냄새가 나서 물으니 아이는 태연하게 PC방에서 냄새가 밴 것 같다고 말했다. 의심스러운 말투였다. 
 
그다음부터 아들의 행동에 민감해졌다. 교복을 세탁기에 넣으면서 주머니를 뒤졌다. 오래된 담배 한 개비가 부서진 채 나왔다. 그녀가 남편에게 말했다. 
 
“당신 아들하고 이야기 좀 해봐. 나는 도저히 방법을 모르겠어.” 
 
남편은 아들 키우면서 그 정도 일로 머리가 아프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해결해보겠다고 말했다. 아빠는 아들과 한바탕 대화를 끝냈다. 아들의 몸에서 더 이상 담배 냄새가 나지 않았다. 
 
며칠 뒤, 조용한 거실에서 정적을 깨는 벨소리가 들렸다. 
 
“어머니 맞으시죠? 아드님이 지금 친구들하고 경찰서에 있으니까 지금 와주셔야 합니다.” 
 
학원에 간 줄 알았던 아들이 친구들과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나오다 골목에서 자전거 한 대를 발견했다. 한 친구가 적어도 5백만 원은 될 것 같다고, 삼촌이 자전거 마니아라 잘 안다고 말했다. 
 
그 자전거를 훔쳐서 중고 매물로 내놓고 팔리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자전거를 보고 전화한 사람은 구매자가 아니라 경찰이었다. 고가의 자전거에는 고유번호가 있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몰랐던 것이다. 
 
아들은 너그러운 자전거 주인을 만난 덕분에 각서를 쓰고 풀려났다. 아들이 집으로 들어오자 아빠는 아이를 때리기 시작했다. 아들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갈대처럼 흔들리더니 바닥에 쓰러졌다. 아빠는 쓰러진 아들을 밟기 시작했다. 아들의 몸이 둥그렇게 말렸다. 아빠가 때리다 지쳤는지,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너 같은 새끼, 키워서 뭐 해. 필요 없으니 나가!” 
 
그 후로, 5개월 동안 아들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경찰의 도움을 받아 아들을 다시 만난 곳은 허름한 주유소였다. 부모를 발견한 아들은 반대편으로 뛰었다. 아빠는 뛰어가 아들을 잡았다. 어쩌면 아들이 잡혀 준 것일지 모르겠다. 아들을 설득해 집으로 데려왔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시작되었다. 부부 사이가 급격히 나빠진 것이다. 
 
“당신, 성질 좀 참아. 애가 또 집을 나가면 어쩌려고. 다시 나가면 찾지도 못해. 애 좀 그냥 내버려 둬!”
 
아내가 말했다. 
 
“그게 내 잘못이었구나. 당신 집에서 뭐 했어? 애를 똑바로 안 키우고 뭐 했냐고!” 
 
남편이 말했다. 
 
누가 옳은지 판단해달라는 듯, 두 사람은 자기 입장을 말했다.  
 
“작은 애가 힘든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요즘은 남편이 더 힘들게 해요. 애한테 화가 나면 제게 풀려고 하니까요. 아이가 다시 돌아왔을 때도 아이한테 사과하라고 몇 번을 부탁했는데 남편은 아이와 마주 앉지도 않았어요.” 
 
“아내가 제 탓을 할 때마다 견딜 수가 없어요. 그날 있었던 일이 제 책임인가요? 애를 때린 건 잘못이죠. 그건 저도 알아요. 그런데 엄마라는 사람이 애가 학원에 안 간 것도 모르고, 어떤 친구와 어울리는지도 모르고. 만약 미리 알았다면 이런 일이 생기기 않았겠죠. 아내 탓이라는 말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아내도 제 탓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이에게 사과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요? 아내가 계속 감싸니까 그놈이 정신을 못 차린 거죠. 계속 밖으로만 나도니….”
 
두 사람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깊은 숨소리만 들렸다. 변론을 끝낸 변호사가 판사의 판결을 기다리는 것처럼. 그들은 침묵으로 ‘이제 누가 옳은지 판결해주세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
 
부부가 위기를 만나면 서로 비난하고 책임을 떠넘긴다. 사람의 본능이다. 서로 기대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기대하는 만큼 실망한다.
 
부부가 싸워야 할 대상은 마주 앉은 배우자가 아니다. 부부가 힘을 합쳐 싸워야 할 대상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위기를 만나 서로 비난하는 상태에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공동의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기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협력해야 한다. 서로 비난하고 책임을 떠넘기면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두 아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존재감 전쟁이다. 큰 아들은 전쟁에서 유리하다. 이미 부모가 존재 가치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부모의 말과 행동, 태도에서 큰 아들에 대한 인정이 자연스럽게 전해졌을 것이다. 작은 아들도 그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 한다. 의도적으로 부모를 괴롭히려고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작은 아들도 처음 몇 년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알리기 위해 형과 경쟁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는 반복되는 실패를 통해 깨닫는다. 형과 똑같은 방식으로 경쟁하면 형을 앞지를 수 없다는 것을.  
 
방법을 바꾸어 형과 대립하는 방식을 택한다. 형과 정반대의 성향을 갖게 된다. 형이 덥다고 창문을 열면 동생은 창문을 닫는다. 형이 운동을 좋아하면, 동생은 운동을 싫어한다. 형이 내성적이면 동생은 외향적이고, 형이 무디면 동생이 예민하다. 형이 순종적이면 동생은 반항적이다. 
 
형과 대립함으로써 자신이 살아있다고 느낀다. 형과 반대의 성향을 가짐으로써 부모의 관심을 받을 수 있음을 무의식적으로 깨닫는다. 형을 그대로 따라 하면 형에게 묻혀버리니까. 
 
형과 다른 성향을 갖는 것이 문제는 아니다. 적절하지 않은 방식으로 부모 관심을 받으려 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부모를 장악하는 전쟁은 오래 전에 끝났다. 
 
형이 장악해 버린 세상에 짓눌려 살던 동생은 살려고 발버둥을 친다. 동생은 도무지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고 도화선에 불을 붙이고 자폭한다. 반전을 노리는 것이다. 기회를 엿보면서 부모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어떤 아이는 아프다. 의학적으로 문제가 없는데 자주 아픈 아이가 있다. 아프면 부모가 자신을 지극 정성으로 돌본다. 부모를 독차지할 수 있다. 어떤 아이는 사고를 친다. 부모가 욕을 하든 더 잘해주든 자신에게 관심을 가진다. 어찌 되었든 무관심보다 낫다. 부모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면 패배한 자녀는 승리의 쾌감을 맛본다. 자녀는 통하는 방법을 반복하고, 반복은 패턴이 된다. 
 
왜곡된 패턴을 깨고 새로운 패턴으로 가고 싶다면, 성향이 서로 다른 자녀를 차별 없이 사랑해야 한다. 작은 아들이 목표를 세우고 철저히 계획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게 아니다.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는 것뿐이다. 
 
그의 마음 한구석에 부모에 대한 갈망이 있다. 모자란 그 무언가를 다른 것으로 채우고자 할 때, 문제가 일어난다. 자녀 마음속 텅 빈 공간을 부모 사랑으로 채우자. 테러를 막는 근본적인 대책이다. 
 
아빠가 아들을 발로 밟았을 때, 자존감도 함께 짓밟은 것이다. 그것은 시간이 흐른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아내는 남편을 도울 수 있다. 아빠가 후회하고 있고,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아들에게 ‘감정’적으로 전해 줄 수 있다. 
 
남편이 아들과 대화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돕는다. 아내 도움 없이 남편이 아들에게 다가서면 마음 열기가 힘들다. 아빠가 한 걸음 다가오면 한 걸음 물러선다. 아빠 마음을 엄마가 전달해주고, 아들 마음이 어느 정도 준비가 되면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아빠는 정확한 말로 표현해야 한다. 
 
“아빠가 미안해. 아빠가 잘못했어.” 
 
아들이 반응하지 않는다고 실망할 필요 없다. 보이지 않지만 아들의 마음속 빙산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 얼음이 녹는 동안, 계속 따뜻해야 한다. 추워지면 빙산은 다시 언다. 아빠 마음이 잘 전해지면 아들은 잘못을 뉘우칠 것이다. ‘부모에 대한 분노’가 사라지면 아이는 조용히 자기를 직면하게 된다. 더 이상 자기 변명을 할 수 없다. 
 
부부가 서로 싸울 것이 아니라 서로의 힘을 합쳐 문제와 맞서 싸워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빠 엄마는 날 사랑하지 않아. 나보다 형을 더 사랑해’라는 자녀의 왜곡된 인식을 바꾸려면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부부가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자녀의 패턴에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 남자와 여자의 특성을 반영해 자녀를 양육하기 바란다. 
 
엄마는 자녀의 정서적 측면에 아빠보다 많은 영향을 끼친다. 아빠는 자녀의 가치관 형성에 엄마보다 많은 영향을 준다. 칼로 두부를 자르듯이 딱 나눠지는 것은 아니지만 엄마 아빠의 서로 다른 강점을 인정해야 한다. 
 
엄마는 상처받은 아들에게 부모 사랑을 감정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눈빛, 태도, 말투, 스킨십 등에서 따뜻함이 느껴지면 자녀는 엄마에게 사랑받는다고 느낀다. 
 
아빠는 엄마와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아빠는 자녀와 함께하는 활동을 통해 사랑을 표현할 수 있다. 함께 외출해서 점심을 먹거나, 자전거를 같이 타거나, 단둘이 여행을 떠나는 등 활동 위주로 시간을 보낸다. 아빠가 아이와 활동하면서 소중한 시간을 함께 보내면 자녀에게 건강한 가치관을 심어줄 수 있다.
 
‘아빠는 내게 관심이 많구나. 아빠는 가족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구나.’ 
자녀 역시 가정이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자녀에게 부모 둘 다 필요하다. 가족이 소중한 이유이다. 동생이 형과 경쟁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면 자기답게 살고 싶은 용기가 생긴다.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찾고 즐긴다. 자기다운 모습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세상은 더 이상 무시무시한 곳이 아니라 용기를 내어 살아볼 만한 세상이 된다. 차별 없는 사랑이 유일한 방법이다. 

복음이 당신을 치유합니다

온갖 상담 이론은
과정을 탐구합니다.
 
결론은 저마다 다릅니다.
궁극의 해답은 없습니다.
 
너도 옳고 나도 옳고
자기한테 맞는 거 갖다 쓰면 된다.
 
상담 이론의 홍수 시대입니다.
물이 많아도 마실 물이 없지요.
 
말씀을 다루는 사람은
답을 알고 있습니다.
 
답을 아니까
과정에서 게을러집니다.
 
성경에 이렇게 쓰여 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냐.
 
풀이 과정을 아는 사람에게는
답이 필요합니다.
 
풀이 과정 한바닥 쓰고
답이 400개가 넘으면 곤란하지요.
 
답을 아는 사람에게는
풀이 과정이 필요합니다.
 
문제가 한바닥인데 풀이 과정 한 줄 없이
답은 3번이다.
 
왜 답이 3번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답은 맞았는데 이상하게 자신이 없습니다.
 
나 우울해요.
나 불안해요.
 
약 드세요.
좋게 생각하세요.
시간 지나면 괜찮아요.
 
나 우울해요.
나 불안해요.
 
기도하세요?
말씀보세요?
그러니까 그렇죠.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나는 답답합니다.
 
너는 뭐 특별하냐.
아니요.
 
내가 특별하진 않습니다.
복음이 특별합니다.
 
너무 익숙해서 지루해진 복음을
새로운 언어로 말하고 싶습니다.
 
나는 여전히 실험 중입니다.
바로 나 자신에게.
 
복음은 과연
나를 치유하는가.
 
나는 오랜 시간 다양한 상담 이론을
내 삶에 적용했습니다.
 
다양한 이론을 내 삶에 적용하면서
나는 깨달았습니다.
 
복음이야말로 세상 모든 이론보다
뛰어난 처방전이란 사실을.
 
혼자만 알고 있을 수 없지요.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복음이 당신을 치유합니다.
복음이 궁극의 해답입니다.
 
아, 편협하다.
아, 배타적이다.
 
이 말을 하는 사람은
둘 중 하나겠지요.
 
복음을 알지 못하거나
복음에 관심이 없거나.
 
당신의 비판을
나는 반박할 수 있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심리학자입니다.
 
오직 말씀이지.
무슨 상담 이론이냐.
 
당신의 비판을
나는 반박할 수 있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신학자입니다.
 
상담하는 목사.
내게 어울리는 말이 아닙니다.
 
나는 복음의 사람이고 싶습니다.
내 삶을 마치는 그날까지.
 
당신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복음만이 당신을 치유하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정말 중요한가요?

개인적인 질문에 일일이 답변해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한 사람의 문제는 그저 한 개인의 문제일 수 있는데요. 다수를 위해 보편적인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을까요?
 
나는 모든 사람을 위한 보편적인 질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거창해 보이는 질문이라도 결국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하니까요.
 
오래전부터 그 한 사람을 위해 존재하고 싶었습니다. 다수를 위한 삶을 의도적으로 피했어요. ‘상처 입은 한 사람’을 위해 글 쓰고 말하는 것이 내 사명이 아닐까 고민하며 삽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에는 지극히 보편적인 이야기가 담겨요. 우리가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는 이유입니다. 등장인물이 개인적으로 겪는 이야기에 사람들이 공감하지요. 지어낸 이야기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야기에 빠져들어 울고 웃습니다.
 
내게 한 사람의 존재는 우주이며 온 세상이에요. 한 사람을 위해 글 쓰고 말하는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아요. 책을 쓰고, 설교하는 것도 대중을 위한 것은 아닐 겁니다.
 
“한 번 사는 인생인데, 꿈이 작다 못해 초라한 것 아니냐?”라는 억센 질문을 받을지 모르겠네요. 남 생각이야 어떻든 당분간 고집을 꺾지 않을 겁니다.
 
굳이 효율을 따지자면 한 사람을 위해 글 쓰고 말하는 것이 다수를 위해 하는 것보다 효율적이라고 생각해요. 목회 사역을 처음 시작하고 가장 난처한 것이 설교였습니다. ‘누구를 위해 어떻게 설교를 준비해야 하지?’ 고민했지만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버스 정거장에 붙어 있는 광고 포스터를 우연히 보았어요. 매력적인 여성이 정면을 보고 찍은 화장품 광고였어요. 사진 속 그녀는 정면을 바라보고 있어서 버스 정거장 어디에서도 그 시선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의 시선이 렌즈를 빗나갔다면, 나 역시 피할 수 있었을 거예요.
 
그때 책상에 앉아 머리에 쥐가 나도록 고민해도 풀리지 않던 의문이 풀렸어요. 이전까지 나는 연령과 직업, 취향 같은 것으로 청중을 분류했어요. 숫자처럼 모두 더하고 나누어 평균을 내는 방식으로요. 치명적인 실수였지요. 나는 청중을 짐작했을 뿐 정확히 몰랐습니다.
 
어리석게도 그 자리에 없는 다른 누군가를 위해 설교한 겁니다. 이후부터는 과감히 설교 준비부터 설교하는 순간까지 단 한 사람을 위해 준비하고 전했습니다.
 
한 사람을 위한 설교는 아무도 배제하지 않아요. 누군가가 ‘아, 저건 내 이야기다. 어떻게 내 마음을 저렇게 잘 알지?’라고 생각한다면 아마 그 자리에 있는 다수의 사람 역시 같은 마음 이지 않을까요?
 
글을 쓰기 시작할 때도 독자가 누구인지 몰랐어요. 처음 설교 할 때와 같은 실수를 반복했지요. 독자를 더하고 나누면서 짐작했어요. 평균치의 독자를 예상하고 글을 썼어요.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쓰느라 적지 않은 시간을 낭비했습니다.
 
하나님은 일련의 과정을 통해, 한 사람을 바라보고 글을 쓸 수 있도록 이끌어주셨어요. 그러자 사람들이 공감해주기 시작했지요. 참 알 수 없는 일이죠. 한 사람을 위해 쓴 글이 다수에게 읽히다니요.
 
그래서 나는 한 사람의 지극히 개인적인 질문에 성실히 답합니다. 진심을 담아 답변하고, 그가 도움을 받았다면 만족합니다. 아마도 다수를 위해 글을 쓰고 말하는 날은 내 인생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나는 오직 한 사람을 위해 존재하고 싶습니다.

성격이 비슷한 사람과 결혼하는 게 좋은가요?

사람마다 다른 말을 해서요. 제대로 한 번 확인해보고 싶었어요. 배우자를 만날 때, 성격 유형이 비슷한 사람이 좋다고 보시나요, 아니면 정반대의 경우가 더 좋다고 보시나요? 
 
성격은 상관없습니다. 부부는 성격이 달라도 행복할 수 있어요. 나 혼자만의 주장이 아닙니다. 학자들의 일치된 견해입니다. 논문이 아니라서 각주는 달지 않겠습니다. 아는 사람 사이에서는 상식이니까요. 
 
부부의 이혼 사유 중 가장 많은 비율이 성격차이입니다. 작년 기준으로 대략 45%의 사람들이 성격차이로 이혼했습니다. 절반에 가까운 수치라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 수치를 보고 “아, 성격이 다르면 이혼하는구나.”결론 내리면 안 됩니다. 
 
성격이 다르지만, 이혼하지 않고 사는 부부, 행복하게 사는 부부가 훨씬 많습니다. 이혼 사유가 애매한 경우 대부분 성격 차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니, 수치가 크게 잡힙니다. 
 
모든 부부는 서로 비슷하고 다릅니다. 비슷해서 싸우고, 달라서 싸웁니다. 멀리서 보면 부부가 성격 때문에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성격 때문에 싸우는 게 아닙니다. 의사소통 때문에 싸웁니다. 서로 소통하는 법을 모르면 오해가 쌓이고, 오해가 쌓이면 신뢰가 깨집니다. 부부 사이에 신뢰가 깨지면, 회복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서로의 신뢰가 깨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아직 결혼 전이면, 성격 유형에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서로의 닮음과 다름이 서로에게 유익이 될 수 있도록 올바른 의사소통 방식을 배우시면 됩니다. 연애하고 계시다면, 지금이 기회입니다. 서로 연습하세요. 오해를 넘어 진심이 전해질 수 있다면, 당신의 결혼은 장밋빛입니다. 

엄마가 내 초콜릿 먹었어?

“지훈아, 원두 로스팅 하는 동안 주문 좀 받아줄래?” 
 
문영린은 이른 아침, 카페 문을 연다. 딸의 남자 친구 김지훈이 문영린의 일손을 거들었다. 김지훈은 한 달 전에 군 복무를 마쳤다. 영어 학원에 다니면서, 오전에 잠깐 문영린을 돕는 것이다. 
 
원두 로스팅을 할 때마다, 문영린은 예민해졌다. 정확한 시간에 맞춰 기계를 켜고 꺼야 했다. 출근길에 잠시 들러 커피를 주문을 하는 손님을 맞이하다 보면, 로스팅 시간을 맞출 수 없었다. 
 
아르바이트생이 그만두는 바람에 문영린은 난처해졌다. 마침 딸의 남자 친구, 김지훈이 그녀를 기꺼이 돕겠다고 나섰다. 
 
로스팅을 마친 문영린은 카페 한 귀퉁이에 앉았다.  
 
“지훈아, 제대하고 쉬고 싶을 텐데 아침 일찍 나와줘서 고마워.” 
 
“아니에요. 제대하고 생활리듬 깨질 뻔했는데, 일찍부터 나와 일하니까 좋죠, 뭐. 
 
김지훈은 멋쩍은 듯 말했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야?” 
 
테이블 위에 팔을 걸치고 편안하게 서 있던 김지훈은, 문영린의 진지한 질문에 자세를 고쳤다.
 
“조금 있다가 복학해야죠.” 
 
“우리 미혜와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물은 거야. 우리 미혜가 그렇게 좋아?” 
 
김지훈의 긴장이 풀어졌다. 
 
“그럼요.” 
 
“뭐가 그렇게 좋은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좋아요.” 김지훈은 민망함을 감추려고 주문 테이블 구석에 놓인 초콜릿 상자를 문영린에게 가져갔다. 
 
“이거 드셔보세요. 제가 제주도 갔을 때 사온 초콜릿인데, 맛있어요.” 
 
초콜릿을 받아들고 입에 넣으며 문영린이 말했다. 
 
“얼렁뚱당 넘어가려고 하네. 아직 질문에 대답도 안 했어.” 
 
김지훈은 문영린은 진지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미혜를 정말 좋아해요. 제가 군대 있을 때도 한결같이 사랑해줬잖아요. 이제 제가 지켜줄 차례에요.”     
 
문영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젊은 시절 남편과 이혼해 미혜를 혼자 키웠다. 그녀에게 미혜가 전부였다. 대학에 들어가고 얼마 되지 않아, 동갑내기 남자 친구가 생겼다는 말에 당황한 영린이었지만, 지훈의 듬직한 모습에 점차 안심이 되었다. 
 
“둘 만 사이좋게 잘 지내. 싸우지 말고. 그럼 됐지 뭐.” 
 
문영린은 테이블에서 일어나, 시계를 보며 말했다. 
 
“지훈아, 이러다 학원 늦겠다. 어서 가.” 
 
혼자 남은 문영린은 창가에 섰다. 언젠가 미혜가 그녀의 곁을 떠날 것이다. 그녀는 아직 미혜를 떠나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다. 김지훈이 믿음직스러운 것과 미혜를 떠나보내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그녀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녀는 긴 한숨을 쉬면서, 에스프레소를 내려마셨다. 진하게 농축된 커피 향기가 그녀의 미간에 잡힌 주름을 잠시 동안 풀어주었다.  
 
늦은 오후, 미혜에게 문자가 왔다. 문영린은 문자의 내용을 언뜻 이해할 수 없었다. 두 번 세 번 다시 읽어봐도, 그녀가 제대로 문장을 읽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엄마, 아침에 내 초콜릿 먹었어? 그거 내가 얼마나 아끼는 건데, 엄마가 먹어?”
 
기가 막혀 눈물이 났다. 딸에게 답장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문영린은 김지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훈아, 지금 잠시 통화되니? 미혜가 나한테 말도 안 되는 문자를 보냈어. 도대체 무슨 일인 거야. 미혜가 나한테 이럴 리 없는데, 너희 둘이 무슨 일 있었어?”
 
김지훈도 당황한 듯 말했다. 
 
“모르겠어요. 미혜가 이상해요. 점심시간에 미혜하고 잠깐 통화하면서 어머니도 초콜릿 좋아하신다고 말했거든요. 맛있게 드시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고 말했는데, 그다음부터 미혜가 다짜고짜 화를 내더라고요. 퇴근하고 보기로 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요.” 
 
미혜가 술에 취해 저녁 늦게 들어왔다. 문영린은 딸의 모습에, 감당할 수 없는 분노가 일어났다. 마음 같아서는 등짝을 후려치고 싶었지만, 감정을 억누르고 말했다. 
 
“늦었어. 빨리 씻고 자. 내일 출근해야지.”  
 
미혜는 몸을 가누기도 힘든 듯,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그거 왜 먹었어? 그게 엄마 거야? 그거 내 거야. 지훈이가 나 주려고 사온 거라고. 엄마 눈에 보이면, 그게 다 엄마 거야?” 
 
문영린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미혜에게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이 미친년아.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엄마가 초콜릿 하나 먹었다고 이 지랄이야?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들도 안 그러겠다. 이 미친년아!” 
 
미혜는 지지 않고 말했다. 
 
“매일 똑같은 소리지. 누가 엄마 보고 희생하랬어? 엄마는 항상 보상받고 싶어 하잖아. 나는 평생 엄마가 시키는 대로 살았어. 엄마가 원하는 대로 살고 있다고. 내 인생이 어디 있어? 어디 있냐고! 앞으로 내 인생에 끼어들지도 말고, 내 물건도 건드리지 마. 나 이제 엄마랑 안 살아! 지긋지긋해.” 
 
문영린은 미혜와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없었다. 침실에 들어가 문을 닫고 누웠다.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소리 없이 울었다. 울어도 울어도 슬픈 감정을 덜어낼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문영린은 식탁 위에 놓인 짧은 메모지를 발견했다. 미혜가 남기고 간 메모였다. 
 
“엄마, 나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아. 혼자 살 거야. 갑자기 결정한 거 아니야.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생각했어. 엄마도 이제 엄마 인생 살아. 나도 내 인생 살 거니까.”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 자리에 쓰려져 하염없이 울었다. 간신히 몸을 추스르고 카페에 나갔다. 며칠 동안 나타나지 않았던, 김지훈이 문영린에게 문자를 보냈다. 
 
“어머니,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는데 미혜가 지금 제가 사는 오피스텔에서 함께 지내고 있어요. 이건 아니라고 계속 설득했는데, 소용없더라고요. 제가 잘 타일러서 돌려보낼 테니까,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제가 꼭 돌려보낼게요. 죄송합니다, 어머니.”
 
바로 그 순간이었다. 문영린의 세상은 종말을 맞이했다. 
 
딸은 반 년이 넘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극심한 우울증으로 고통에 시달렸다. 고소하고 향긋한 커피향마저도 그녀에게 쓰디쓰게 느껴졌다.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으로 하루하루를 버텨갈 뿐이었다.   
 
“초콜릿 하나로 이렇게 될 수 있는 건가요? 이제 초콜릿이라는 말만 들어도 소름이 돋아요.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요. 그날만 생각하면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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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딸이 집을 나간 이유가 무엇일지 오랫동안 진지하게 고민해보셨을 것 같아요.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해 주실 수 있으시겠어요?”  
 
그녀가 말했다. 
 
“초콜릿이죠. 초콜릿이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딸이 문자로 ‘왜 먹었냐고’ 따졌을 때, 그냥 미안하다고 말했으면 아무 문제 없었을지도 몰라요. 제가 지훈이에게 전화를 걸어서 문제가 더 커졌나.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뭔가 마음이 불편했겠죠, 미혜도.”  
 
그녀는 초콜릿이라는 단편적인 사건에 집중하고 있었다. 사건 자체가 없었기를 바라는 마음이나, ‘그 당시 엄마가 다른 반응을 보였다면’이라는 가정은, 그녀를 지독하게 괴롭혔다. 만약 초콜릿을 먹지 않았다면, 그녀의 딸이 집을 나가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엄마가 딸의 초콜릿을 먹었다는 것, 그것이 딸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요?”
 
그녀는 생각에 잠겼다.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다 큰 애가 초콜릿 하나 먹었다고, 그럴 수가 있나요. 저는 평생 동안 미혜를 위해 희생했어요. 미혜가 잘 되기를 바랐죠. 아빠 없는 아이, 기죽이지 말라고 잘 먹이고 잘 입히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요.” 
 
나는 그녀의 말에 부분적으로 동의했다. 그러나, 나는 멈출 수 없었다. 한 걸음 더 들어가고 싶었다. 그녀가 튕겨나가지 않도록 신중해야 했다. 
 
“저 역시도 다 큰 딸이 초콜릿 하나로 집을 나갔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이 있거든요.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빙산은 전체 크기의 10분의 1 밖에 되지 않아요. 나머지 10분의 9는 바다 아래 잠겨 있거든요. 
 
딸이 집을 나간 이유가 표면적으로는 초콜릿처럼 보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근원적인 이유가 있을지 몰라요. 
 
제가 집중하고 싶은 부분은 딸과 엄마의 관계에요.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문제가, 초콜릿이라는 매개체로 촉발된 거죠. 보이지 않는 부분을 설명해주실 수 있으시겠어요?”
 
그제서야, 그녀는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빠른 속도로 말을 이어갔다. 
 
“아, 그렇군요. 그 말을 들으니까, 생각나는 게 있어요. 미혜가 술에 취해 들어온 날, 제게 한 말이 있어요. 그 말이 미혜의 진심일지도 몰라요. 자기가 원하는 인생이 아니라, 엄마가 원하는 인생을 살고 있다고. 딸을 엄격하게 키웠거든요. 대학 들어가기 전까지, 쉴 틈 없이 몰아붙였어요. 그 덕분에 좋은 대학에 갔잖아요. 졸업하자마자 취직도 바로 되고요. 머리는 좋은 아이였어요. 그러니까, 그만큼 투자를 했겠죠.” 
 
나는 또다시 질문했다. 
 
“만약에 제가 딸을 찾아가서, ‘당신의 어머니는 어떤 사람인가요?”라고 묻는다면, 딸이 뭐라고 대답할까요?”
 
물론, 실제로 그녀의 딸을 찾아갈 생각은 없었다. 그녀와 딸의 관계를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글쎄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딸이 어떻게 대답할까요.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천천히 대답할게요.”  
 
그녀는 긴 한숨을 내쉬고 힘겹게 말했다. 
 
“아마도, ‘엄마는 이기적인 사람이에요.’라고 말하지 않을까요? 미혜는 아마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그녀는 고개를 떨구고 울기 시작했다. 
 
눈물을 흘릴 것이라 미리 예상했는지, 그녀는 가방에서 새것처럼 보이는 손수건을 꺼냈다. 어쩌면, 그녀는 오랫동안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손수건을 쓸 일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의 손수건은 그녀의 비장한 의지를 보여주는 단서다. 마음속 깊은 곳에 담아두었던 진실을 꺼내고자 하는 그녀의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다. 
 
“만약 딸이 ‘엄마는 이기적인 사람이에요.’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실 수 있나요?” 
 
“아니요. 딸에게 진지하게 단 한 번 만이라도 제대로 말하고 싶어요. 오해라고. 그거 정말 오해라고. 엄마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요. 사실 딸에게 아직 말해주지 못한 비밀이 있어요. 마음속 깊은 곳에 담아둔 비밀이 있는데,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모르겠어요.”  
 
우리는 잠시 동안 대화를 멈추었다. 그녀는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흐느껴  울었다. 수문이 열리듯, 그녀는 십수년 동안 간직했던 눈물을 방출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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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정말 미안해. 잠깐 실수한 거야. 다시는 안 그럴게. 한 번 만 용서해줘.”
 
문영린의 남편은 거실 한가운데서, 무릎을 꿇고 빌었다. 일주일 전, 바다낚시를 간다며 집을 나간 남편은 다른 여자와 함께 있었다. 문영린의 고등학교 동창이 우연히 두 사람을 목격하고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다. 
 
문영린은 남편의 진심을 느낄 수 없었다. 벌써 세 번째였다. 세 번 무릎을 꿇는 동안, 남편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했던 말을 그대로 반복했다. 그녀는 남편과 이혼했다. 더 이상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혜가 여섯 살 때였다. 아빠가 눈앞에서 사라진 그날부터 미혜는 아빠를 찾았다. 아내에게는 무뚝뚝하고 이기적인 남편이었어도, 딸에게만큼은 다정다감한 아버지였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이라고 여러 번 말했던 남편이었다.  
 
문영린은 남편과 이혼한 이유를 딸에게 말할 수 없었다. 미혜가 어릴 때, 아빠가 외국으로 돈을 벌러 나갔다고 했다. 미혜는 착각했을 것이다. 미혜가 누리는 삶이 아버지가 벌어다 준 돈 때문이라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는 오백 원짜리 동전 하나 보태지 않았다. 
 
미혜가 고등학생 때, 엄마에게 진지하게 아빠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더 이상 궁색한 변명이 통하지 않을 것을 문영린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미혜는 진실을 원한 것이다. 그러나, 문영린은 진실을 말할 수 없었다. 딸에게 아버지가 좋은 기억으로 남기를 바랐다. 
 
미혜는 궁금했을 것이다. 외국으로 돈을 벌러 나간 아빠가 왜 전화 한 통 없는지. 미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그녀의 아버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남편의 가족들은 집안 어른들 보기 부끄럽다며, 조용히 가족장을 치렀다. 모든 장례 절차가 끝나고 나서야, 시누이에게 전화 한 통 받은 것이 전부였다.
 
문영린은 알 수 없었다. 미혜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차라리 진실을 말하는 것이 낫다고 여러 번 생각했지만, 그때마다 그녀는 물러섰다. 미혜의 높은 성적이 곤두박질칠까 두려웠다. 입시가 끝나면 모든 것을 말해줄 생각이었다. 그렇게, 에둘러 말하며 진실의 순간을 외면했다. 
 
미혜가 대학에 입학하고,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와 아빠에 대해 물었을 때도 문영린은 진실을 말하지 못했다. 이제 문영린 스스로도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막연한 두려움이 그녀를 엄습했다. 
 
제대한 남자 친구와 결혼을 생각하고 있다고 미혜가 말했을 때, 문영린은 단 번에 딱 잘라 말했다. 
 
“그딴 생각 하지도 마. 너는 엄마처럼 살면 안 돼. 연애만 해. 결혼 따위는 생각하지도 말고.” 
 
미혜는 처마 아래 매달린 고드름처럼 서서히 얼어붙었다. 바람이라도 불면, 부러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아차, 했던 문영린은 애써 웃으며 말했다. 
 
“아직 결혼하기에는 너무 어리잖아. 지훈이도 제대한 지 얼마 안 됐고.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생각해보자.” 
 
문영린은 자신이 내뱉은 말을 주워 담으려 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그녀가 내뱉은 말은 바람에 날린 민들레 씨앗처럼 홀홀 날아가 미혜의 황량한 가슴에 내려앉아 뿌리를 내렸다. 
 
미혜의 시선에서 문영린은 이기적일 것이다.  미혜는 아버지가 보고 싶다. 그러나, 아버지를 볼 수 없다. 아버지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조차 미혜는 알지 못한다. 문영린은 그만큼 철저하게 비밀을 지켜냈다. 
 
결혼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두 사람 사이에 등장했을 때, 문영린은 서툴렀다. 성급하게 내뱉은 말 하나로, 미혜의 판단이 뒤집혔다. ‘엄마가 날 위해 희생했다’ 가 아니라, ‘내가 엄마를 위해 희생한 것’으로. 명백한 오해였지만, 미혜의 세상에서는 진실처럼 받아들여졌다.  
 
그 사건이 있었던 바로 다음 날, 문영린은 미혜의 문자를 받았다.
 
“엄마, 아침에 내 초콜릿 먹었어? 그거 내가 얼마나 아끼는 건데, 엄마가 먹어? 그거 왜 먹었어? 그게 엄마 거야? 내 거야. 엄마 눈에 보이면, 그게 다 엄마 거야? 다 엄마 거냐고!”
 
차곡차곡 쌓아올려진 폭발물에 불꽃이 튀어버린 것이다. 작은 불꽃이라도 충분했다. 도화선에 불을 붙일 수만 있다면, 온 세상을 날려 버릴 것이다. 모녀 관계조차도. 
 
문영린의 세상에서는 초콜릿이 보인다. 미혜의 세상에서는 한 번도 발을 들인 적 없는, 어두침침한 탄약고가 보인다. 같은 사건이 두 사람에게 서로 다르게 보인다. 문영린이 아는 만큼, 미혜도 알아야 한다. 두 사람의 시선에 겹치는 지점에  공감이라는 해독제가 놓여있다. 
 
아직 늦지 않았다. 문영린에게 기회가 있다.  지금이라도 달려가 도화선을 따라 거세게 타들어가는 불씨를 발로 짓밟아 꺼야 한다. 어두침침한 탄약고에서 울고 있는 딸을 꺼내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문영린 뿐이다. 
 
김지훈의 오피스텔은 미혜의 안식처가 아니다. 도피처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미혜가 안식할 곳은 어디에도 없다. 잠시라도 쉴 곳이 필요했을 것이다. 어쩌면, 미혜는 돌아올 명분이 필요할지 모른다.    
 

 
“미혜하고 영화를 봤어요. 저녁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했고요. 지훈이와 지내는 게 불편한 가봐요. 다음 주에 집에 들어갈 테니, 자기 방 좀 치워놓으라고 하더라고요. 
 
피식 웃으면서 ’엄마가 무슨 청소부니?’라고 말을 하는데, 고마워서 눈물이 났어요. 
 
미혜도 말없이 따라 울더라고요. 그날은 서로 그렇게 울기만 했어요. 딸이 다시 돌아오면, 거실에서 두런두런 못다 한 이야기해야죠. 딸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제자리에서 서서 그녀의 뒷모습에서 바라봤다. 세월의 거센 흔적이 깃든 흰머리조차도 내게는 찬란한 광채로 느껴졌다. 상담실을 나서는 그녀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그녀에게 상담실은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도피처였던 것이다. 안식처는 그녀의 집이다. 딸과 함께 머무는 그녀의 가정인 것이다. 언젠가 딸이 엄마를 떠날 때, 그녀는 행복한 미소로 보내줄 것이다. 그녀의 뒷모습이 그렇게 말했다.

고개를 돌리지 말아요

나는 무서워요. 
현실을 마주할 수 없어요. 
 
하나님이 없었다면
나는 살 수 없었을 거예요. 
 
무너지는 순간마다 
버틸 힘을 주셨죠. 
그래서 살았어요. 
 
그렇군요. 
지금은 왜 힘든가요. 
 
하나님이 멀게 느껴져요. 
기도해도 대답하지 않으세요. 
 
난 알고 있어요. 
계속 버텨야 해요.  
 
이 시간이 지나면, 
하나님이 날 만나주실 거예요.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어요. 
당신에게는 패턴이 있어요. 
 
현실을 마주하기 두려워
고개를 돌려버려요. 
 
고개를 돌린 쪽에 
하나님이 계신 건 다행이에요. 
하나님을 찾아줘서 고마워요. 
 
하지만, 당신의 하나님은 
언제나 멀리 계세요. 
평소에는 보이지 않아요. 
 
당신이 고통받는 문제 속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아요. 
 
고개를 돌린 쪽에 계세요. 
아주 멀리. 
 
당신에게 부탁할게요. 
고개를 돌리지 말아요.
 
고통스러워도 
끝까지 현실을 바라보세요.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아요. 
당신이 고통받는 문제 속에 계세요. 
 
고개를 돌려버리면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없어요. 
 
눈물만 닦아주시는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죠. 
 
고통을 해결하시는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죠. 
 
하나님이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신다는 말이 아니에요.  
 
문제 속으로 걸어가는 
당신의 손을 꼭 붙잡아주신다는 말이에요. 
 
고개를 돌리지 않고 만날 수 있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당신에게 필요해요. 
 
더 이상 닫힌 문 앞에서 울지 마세요.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 하나님을 찾지 마세요. 
당신은 고아가 아니에요.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 옆에 계세요. 
아주 가까이. 
당신의 숨소리마저 듣고 계시죠. 
 
멀리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당신 가까이에서 안아주시는 
하나님을 선물하고 싶어요. 
 
내 마음 전해졌나요.
자, 그럼 앞을 보세요.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 
 
씩씩하게 걸으세요. 
하나 둘. 하나 둘. 
당신이 두려워하는 현실을 향해. 

못난 척할 필요 없어요

요즘 하도 잘난 척하는 사람이 많아서
눈에 잘 띄지 않는 사람이 있어요.
 
못난 척하는 사람이죠.
 
열 개 중 아홉을 잘 하고
하나를 못하면 괴롭습니다.
 
나는 왜 그랬을까.
나는 왜 그 말을 했을까.
 
속으로 생각하다 입 밖으로
생각이 흘러나와요.
 
배우자가 들어주다 지칩니다.
친구들이 들어주다 지칩니다.
 
사람이 떠나가는 게 보입니다.
알약을 새로운 친구 삼습니다.
 
소리 소문 없이, 죽은 듯이
조용히 혼자 삽니다.
 
밤마다 침대에 누워
안방 천장에서 상영되는
실수 비디오를 무한 반복하면서.
 
남의 일 말하듯 하지만,
나부터도 하나 실수하면 괴롭습니다.
 
우승을 다투는 자리에서
귀한 손님이 가져온 꽃다발을
손으로 밀어낸 적이 있어요.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해서 그랬어요.
 
부끄러웠어요.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거든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머릿속 비디오 플레이를 했어요.
 
실수한 거,
반복해서 보고 또 보고.
 
두 번 다시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
괜찮다고 말하지만, 거짓말이에요.
 
실수는 당연히 반복되니까요.
 
절대로 멈출 수 없어요.
실수하는 건.
 
잘난 척할 필요 없지만,
못난 척할 필요 없어요.
 
내 질문에 답변해보세요.
 
당신은 살면서 가족에게 자랑하고 싶은
무언가를 이룬 적이 있나요?
 
당연히 있죠.
 
그렇군요.
 
그럼, 괜찮습니다.
이제 집에 가셔도 됩니다.
 
당신은요?
 
나는 없어요. 전혀.
 
아, 그렇군요.
우리 친구합시다.
 
나도 그렇거든요.
 
알약 친구보다
내가 낫잖아요.
 
아, 그리고.
친구 하나 더 소개하고 싶어요.
 
내가 매일 만나는
따뜻하고 인자한 친구가 있어요.
 
날 있는 그대로 다 받아주는
그런 친구 말입니다.
 
그 친구가 도와줄 거예요.

하나님의 위로와 자기 위로를 구분할 수 있나요?

기도하면서 힘들면 주님을 찾잖아요. 가끔은 따뜻한 위로를 받는 것 같아요. 어느 날 갑자기 혼란스러웠어요. 내가 너무 힘드니까 스스로를 위로하는 거 아니야?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는 자기 위로와 어떻게 다른 가요.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와 자기 위로를 구분할 수 있나요? 
 
두 가지를 극단적으로 나누는 건 위험한 생각 같아요. 신앙생활에 있어서 정서는 중요해요. 우리는 로봇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고귀한 존재니까요. 자기 위로라도 필요한 사람에게 잘못하고 있다고 손가락질하는 상황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으로 위로받기를 바라고요.  
 
우리는 주님과 인격적으로 교제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해요. 적극적으로 말씀을 읽고, 기도할 시간을 우선적으로 확보해야 하죠. 주님이 기도에 응답해주실 수 있겠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요. 기적처럼 응답을 바라지만, 세상 고요할 수 있어요.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가 없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속수무책으로 기다릴 필요는 없어요. 주님이 응답하시는 방법을 제한할 필요는 없잖아요. 주님은 다양한 방식으로 일하시니까요. 
 
그동안 자신에게 은혜가 되었던 성경 구절을 묵상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어요. 신비한 방식으로 말씀해주시지 않아도 걱정할 필요 없어요. 성경을 직접 읽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나 자신에게 들려주면 되니까요. 읽고 생각하세요. 그 말씀을 통해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해 위로를 받으세요. 
 
이 과정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와 자기 위로가 헷갈릴 수 있겠네요. 거짓말 탐지기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실제로는 구분하기 어렵겠죠. 그래도 질문하셨으니 내 나름의 생각을 말해볼게요. 
 
하나님의 위로와 자기 위로를 구분하는 가장 결정적인 지표는 ‘무엇에 근거한 메시지인가’라고 생각해요. 자기 생각에 근거한 메시지는 한계가 있어요. 하지만, 자기 위로의 메시지라도 복음적 가치에서 근거하고 있다면, 그건 엄청난 힘을 발휘하겠죠. ‘메시지의 근거가 무엇인가’를 깊이 고민해보세요. 
 
 예를 들어볼게요. ‘너는 소중해. 너는 특별해.” 메시지의 근거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도 이 메시지 들으면 위로받을 거예요. 같은 말이라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이 메시지를 사용할 때는 의미가 다르죠. 자기 암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린다면 그건 성공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 볼게요. ‘너는 절대로 끝장나지 않을 거야.’ 자기 암시로 사용한다면, 주문에 불과하겠죠.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로 사용한다면, 이건 믿음의 고백이 될 수 있어요. 그 문장 뒤에 보이지 않는 문장이 하나 더 있으니까요. ‘너는 절대로 끝장나지 않을 거야. 하나님이 지켜주실 거니까.’메시지의 근거가 하나님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안전할 수 있어요. 
 
하나님의 위로와 자기 위로를 구분한다는 건 어쩌면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한 번쯤 고민해보는 건 좋은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질문해주신 덕분에 답변하면서 나 자신도 생각을 정리해 볼 수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봉사하고 상처받아요

보상을 바라지 않고 봉사하는 방법이 없을까요? 바쁜 시간 쪼개가면서 최대한 봉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고맙다는 말을 해주기를 바라지는 않아요. 최소한 상처를 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힘들게 봉사하고 돌아오는 건 상처뿐입니다. 
 
보상이라는 단어를 어떤 의미로 쓰셨는지 묻고 싶습니다. 보상은 “받는다”라는 뜻이 아닙니다. “갚는다”라는 뜻입니다. 남을 위해 애쓴 것에 대한 대가를 인정받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미리 받은 혜택을 돌려주는 것입니다. 플러스알파가 아니라 플러스제로입니다. 성경적인 의미를 말하는 게 아니라 사전적 의미를 말하는 겁니다. 내 말이 의심스럽거든 국어사전을 찾아보세요. 
 
봉사라는 단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남을 돕기 위해 애를 쓴다는 뜻입니다. 받은 것이 없는 사람이 대가 없이 순수하게 봉사하면 아름다워 보입니다. 그러나, 받은 것이 많은 사람이 받은 것의 일부를 다시 돌려주는 건 상식입니다. 봉사했다고 생색내면, 본인의 순수한 의도마저 사라져 버립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남는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아마 발끈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교회에서 받은 게 없다. 교회에서는 자기들 필요할 때만 실컷 부려먹다가 힘들어서 잠깐 쉰다고 하면 믿음 없는 사람이라고 정죄한다. 그동안 참았다. 더 이상은 못하겠다”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 마음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우리 서로 같은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성도니까 목사에게 분풀이라도 할 수 있지만, 나는 목사니까 어디다 하소연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말했습니다. 화가 잔뜩 난 채로 말입니다. 
 
교회 사람, 교회 구조를 먼저 생각하면 당연히 화납니다. 봉사할 맛 안 납니다. 관점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봉사하는 대상이 잘못되면, 실망하고 지칩니다. 봉사하는 대상을 바꾸세요. 봉사의 대상은 사람이 아닙니다. 올바른 대상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위해 봉사하면, 상처받을 일 없습니다. 
 
예수님을 생각하면, 받은 은혜가 먼저 떠올라야 합니다. 감격으로 봉사해야 상처 안 받습니다. 예수님께 받은 게 없으면 봉사하면 안 됩니다. 봉사 먼저 하고 나중에 보상받으려고 하면 사람 망가집니다. 예수님 없이 봉사하는 삶,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러니, 잘 분별하세요.  
 
지금 하고 있는 봉사 안 해도 하나님 나라에 지장 없습니다. 은혜 먼저 받으세요. 차고 넘치도록 받으세요. 은혜받은 만큼만 봉사하세요. 그래도, 충분합니다. 은혜가 비어버리면, 다 끝입니다. 은혜 없이 죽도록 봉사해도 자기만족입니다. 당신의 삶에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가 넘쳐흐르기를 바랍니다.

너만 내가 싫은 게 아니야

“남편이 애들한테 욕하는 모습을 보면 참을 수가 없어요.”
 
F에게는 초등학교 5학년 딸, 여섯 살 남자 아이가 있다. 둘째 아이가 산만해서 사람들이 집에 오면 곤란한 일이 생긴다. 손님 어깨에 발을 올리면서 목말을 태워달라고 말하거나 먹는 음식에 손을 넣고 장난을 친다. 그녀에게 스트레스였다. 
 
그녀가 말했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스트레스를 받지만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은 게 더 힘들어요. 자주 싸우거든요. 성격이 안 맞아요. 연애기간도 짧았고, 사랑해서 결혼했다는 확신도 없고….” 
 
그녀는 남편이 다혈질이라고 했다.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고 욕하고 윽박질렀다. 그녀는 참을 수 없었다. 퇴근해서 육아를 돕지 않고, 혼자 씻고 자는 모습이 보기 싫었다. 남편에게 막내를 씻겨 주고 재워달라고 부탁했다. 남편은 마지못해 아이를 씻긴다. 아내는 불안하다. 아이는 눈에 물이 들어갔다며 징징거리고, 남편은 “사내자식이 눈에 물이 들어갔다고 우냐”고 짜증을 낸다. 
 
“당신, 나와! 내가 씻길게. 아이 하나 씻기면서 짜증내고 그래. 애 상처 받아.” 아내가 말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지금 잘 씻기고 있었어.” 남편이 말했다. 
 
“당신 매번 그러잖아. 뭐 부탁하면 짜증내고. 나한테 짜증 못 내니까 애들한테 그러는 거잖아. 내가 어려운 부탁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애 좀 씻겨달라고 하는데, 그게 그렇게 힘들어?” 
 
“누가 힘들대? 나는 당신이 중간에 끼어들어서 애 앞에서 나 무시하는 게 이해가 안가. 당신이 그러니까 애들도 날 무시하잖아.” 
 
“똑바로 하면 되잖아. 애들한테 상처 주지 말고. 아빠라는 사람이 툭하면 애들한테 화내고 짜증내고.”
 
“됐어. 그만해. 당신만 옳지. 난 나쁜 사람이고.” 
 
“자기가 그렇게 느끼나 봐. 난 그런 말 한 적 없어.”
 
두 사람의 연애 기간은 4개월. 짧았다. 
 
“제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어요. 그러다 남편을 만났어요. 이 사람이면 괜찮겠다 싶어서 결혼했죠. 부모님 집에서 탈출하고 싶었거든요. 벗어나고 싶었어요.” 
 
남편은 자상하고 따듯한 남자였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만. 아내는 아이들을 대하는 남편의 태도가 불만이었다. 그는  아이들에게 여유가 없어 보였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그럴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아이들에게 화내는 모습을 보면 견딜 수가 없었다. 
 
“아주 조금만 더 노력하면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는데 사소한 일로 화를 내서 모든 것을 망친다.” 
 
아내가 남편을 바라보는 관점이었다. 
 
아내는 삼남매 중 첫째였다. 아버지와 관계가 좋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이들 앞에서 어머니를 무시했다. 경제적인 능력도 없었다. 어머니가 장사를 해서 생계를 책임졌다. 
 
아버지는 술과 도박에 빠져 가정을 돌보지 않았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많이 맞았다. 첫째라는 이유로. 동생들이 잘못하면 아버지는 그녀를 혼냈다. 사춘기에 접어든 그녀는 아버지의 분노를 견딜 수 없었다. 내성적인 그녀는 아버지에게 반항하지 못했다. 일기를 쓰면서 견뎠다. 글을 쓰면 마음이 편해졌다. 
 
어느 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말했다. 
 
“나도 네가 싫다. 너만 내가 싫은 게 아니야. 나도 네가 싫어.” 
 
그녀는 그 자리에 서 있을 수가 없어서 도망치듯 집을 나왔다. 눈물이 앞을 가려 걸을 수 없었다. 다리가 풀리면서 돌에 걸려 넘어졌다. 무릎이 까져 피가 났지만 통증을 느낄 수 없었다. 마음에 난 상처가 더 아팠다. 
 
아버지가 그녀의 일기장을 봤다. 아버지가 혼내고 때릴 때마다 아버지에 대한 욕을 썼다. 아버지가 정말 싫어서가 아니라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어서 그랬다. 
 
그녀가 말했다. 
 
“저는 아버지가 싫은 게 아니었어요…. 일기장에는 뭐든 쓸 수 있는 거죠? 다들 그렇게 하잖아요. 아버지를 사랑하고, 이해하고 싶었어요. 그날 아버지는 제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어요. 그 충격이 너무 커서 제가 아닌 모습으로 살았어요. 나중에 알았죠. 그게 우울증이었더라고요. 아버지의 말을 잊을 수가  없어요. 어떻게 자기 딸한테 ‘나도 네가 싫다’라고 말할 수 있죠? 그러면 안 되잖아요. 아버지란 사람이….”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그녀는 남편을 만났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남편은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 남자라면….’ 
 
그녀는 결혼을 결심했다. 해방감을 느꼈다. 두 번 다시 아버지를 보고 싶지 않았다. 남편은 그녀의 상처를 보듬어 줬다. 처음으로 자신을 아껴주고 사랑해준 사람이다. 그러나 남편이 아이들에게 화를 내면 그에 대한 고마움이 싹 사라졌다. 남편이 던진 말 때문에 아이들이 상처받을 것이 두려웠다.  
 
남편 역시 깨달아야 했다. 그의 말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해로운지. 그녀는 남편이 잘못을 인정할 때까지 물러서지 않고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자녀들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남편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어요. 아버지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요. 아버지 역할에 대해 보고 느끼고 배울 시간이 없었던 거죠. 그래서 아빠로 살아가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면 안쓰러워요. 그를 도와줘야 하는데 제 마음에 상처가 있어서 그런가 봐요. 남편은 내 아버지가 아닌데 왜 이렇게 남편 말에 민감할까. 그는 아버지보다 훨씬 낫거든요. 가끔 아버지가 없었던 남편이 부러워요. 그런 아버지 밑에서 상처 받고 사느니, 차라리 없는 게 낫지 않았을까….”  
 
***
 
 
상처를 인식하면 상처는 치유된다. 인지는 감정, 행동과 연결되어 있다. 상처를 인지하는 순간, 감정에 변화가 일어난다. 사람은 로봇이 아니기 때문에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도식화해서 단순하게 말할 수는 없다. 사람 안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을 추적하면, 인지․감정․행동으로 변화가 일어난다고 추론해 볼 수 있을 뿐이다. 
 
변화를 위한 첫 단계는 상처를 인지하는 것이다. 상처를 발견하고 깨닫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상처에 다가갈 수 없도록 왜곡된 신념이 겹겹이 싸여 있어 상처를 쉽게 인지할 수 없다. 상처의 실체를 발견하기 위해 왜곡된 신념을 하나씩 풀어헤쳐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한 사람이 길을 걷다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쳐다봐서 기분이 나빠졌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사람마다 다르게 대처할 것이다. 쳐다보는 사람을 무시하고 지나칠 수도 있고, 왜 쳐다보냐며 따져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행동하기 전에 자신이 왜 기분이 좋지 않은지 생각해보는 게 먼저다. 
 
누군가 자신을 쳐다볼 때, 기분이 나빠졌다면 마음 어딘가에 왜곡된 신념이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다. 왜곡된 신념은 감정을 결정한다. 감정을 망치는 것이다. 
 
‘저 사람이 날 계속 쳐다보네. 나를 무시하는 건가?’
 
진실을 보려면 왜곡된 신념을 걷어내야 한다. 왜곡된 신념을 변화시키면 상황을 다르게 볼 수 있다. 다르게 생각해보자. 지나가는 사람은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이다. 혹시 아는 사람 아닌가 하고 빤히 쳐다보았다.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는 정보가 새롭게 들어오면 인지에 변화가 일어난다. 
 
‘아, 날 무시하는 것이 아니구나. 시력이 좋지 않아 쳐다본 거네.’ 
 
감정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저, 그 사람 아니에요. 길 조심히 걸으세요.” 
 
상처가 만든 왜곡된 신념은 감정을 망치고, 망가진 감정은 잘못된 행동을 만든다. 사람은 진실에 의해 상처입지 않는다. 왜곡된 신념으로 상처입고 파괴된다. 감정이 망가진 채, 잘못된 행동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간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가 크다. 아버지의 경제적인 무능력, 폭력과 학대. 그녀는 상처 때문에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남편 역시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버지와 망가진 관계가 남편에게서 재현된다고 생각할 때, 삶이 무너진다고 생각한다. 왜곡된 신념이 그녀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진실을 볼 필요가 있다. 왜곡된 신념이 그녀를 더 이상 파괴하지 못하도록. 
 
아버지가 일기장을 훔쳐본 날, 솥뚜껑 같은 아버지 손으로 뺨을 맞은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 마음은 입술보다 부드럽고 약하다. 살짝 때려도 찢어져서 피가 난다. 그녀의 상처는 치유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그때 그 일을 다시 말하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그녀는 다시 생각해야 한다. 
 
“아빠가 제 책상을 청소해주려고 했나 봐요. 그날 일기장을 숨기지 못했어요. 책상 위에 있었죠. 딸의 노트를 보고 싶었나 봐요. 노트를 펼치는 순간, 그 안에 상상하지 못했던 내용이 담겨 있었던 거죠. 딸이 아버지 욕을 했으니까요. 아버지도 상처받았을 거예요. 
 
노트를 손에 들고 있는 아버지 모습이 떠올라요.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화나서 참지 못했다면 학교에서 돌아온 즉시 저를 때렸겠죠. 그날 맞지는 않았어요. 그때 아버지의 목소리는 마치 삶에서 중요한 것을 잃은 듯 절망적이었어요. 
 
아, 잠깐만요. 그건 아버지가 제게 한 말이 아닐 수도 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건 아버지가 스스로에게 한 말일지 몰라요. ‘나도 내가 싫다. 너만 내가 싫은 게 아니야. 나도 내가 싫어.’ 아니에요. 분명히 제가 싫다는 말이었어요. 아, 혼란스럽네요. 잊었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엄마가 그랬어요. 그날 아버지가 이불에 누워 우셨다고. 그렇게 서럽게 우는 모습을 처음 보셨다고….” 
 
아버지는 딸에게 상처 준 가해자였다. 그러나 그녀는 아버지가 상처의 희생자일 수 있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했다. 아버지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많은 상처를 남겼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에 대해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엄마와 친척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모아서 아버지의 어린 시절을 희미하게 그려보았다.
 
“아버지도 불쌍한 사람이었어요.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아버지 큰형이 할머니를 설득해 집을 담보로 사업을 했나 봐요. 사업이 망했죠. 아버지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는데, 할머니는 쓰러지고, 큰형은 도망가고, 아버지와 누나들이 집 마당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대요. 가족이 다 흩어졌고, 아버지는 고아원 같은 데서 살았다고 했어요. 막노동을 시작했고, 결혼해서 처자식 먹여 살리려고 무리하게 일하다 허리를 다쳤어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인생이 뜻대로 안 되니까, 술에 의지하신 거죠….” 
 
아버지가 상처의 희생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되어버린 것처럼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그녀 역시 누군가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어떤 방식으로든 타인에게 전가된다. 아픈 상처가 건드려질수록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을 공격한다. 사람은 상처받기 싫은 만큼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며 살게 된다. 상처받은 사람이 언제나 희생자가 아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가해자가 된다. 
 
남편의 절제되지 않은 분노는 자녀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 다행히, 하지만 남편은 분노조절 장애, 이중인격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화가 나면 화를 내고, 짜증나면 짜증을 내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분노 자체를 없앨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분노,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표현 방식이 문제다. 아내는 남편과 상호작용을 통해 협력해야 한다. 남편은 분노를 적절히 다스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고, 아내는 그녀의 상처가 부부관계에 반영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남편은 절 사랑하지 않을 거예요. 남편보다 덩치도 크고, 목소리도 크니까 부담스럽지 않을까요? 매일 잔소리만 하니까 정떨어졌을 거예요. 물어본 적은 없지만….” 
 
남편이 말했다.
 
“아내가 잘못 알고 있네요. 아내는 사랑스러워요. 제가 아내가 원하는 만큼 좋은 남편이 되지 못해 미안하죠. 못된 성격 고치는 것도 힘들고. 아버지가 된다는 것도 어렵고.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려면, 아내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아내가 조금만 방법을 바꿔주면 좋겠지만, 하루아침에 바뀌는 건 힘드니까 서로 노력해야죠.” 
 
남편은 아내 어깨에 손을 올렸고, 아내는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덩치 큰 아내의 어깨가 조용히 떨렸다.

너 주님 사랑하는 거 맞아?

나 예수 믿는데
내 인생 왜 이렇죠?
 
불행하고
우울하고
힘들어요.
 
예수님 사랑하세요?
네?
 
예수님 사랑하시냐고요?
네….
 
내가 볼 때는 아닌데.
그 정도로는 안돼요.
 
그럼 어떻게 하죠?
알려주세요.
 
더 사랑해야죠.
예수님 사랑하시는 거
정말 맞죠?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사실 잘 모르겠어요.
 
거봐요.
그렇게 확신이 없는데
어떻게 행복하겠어요.
 
목숨 다해 주님만
사랑하세요.
 
주님만 사랑하면
다 해결되는데
주님을 사랑하지 않으니까
괴로운 거예요.
 
옆에서 지켜보려니
나는 마음이 괴롭습니다.
 
나는 당신과
생각이 다릅니다.
 
주님 사랑하자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확신이 부족하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어요.
 
아니, 그럼
예수님 사랑 안 합니까.
확신 없이 천국 갑니까.
 
나는 당신처럼
강한 확신은 없지만,
당신이 부럽지 않아요.
 
내가 불안한 건
맞습니다.
 
솔직히 나는
내가 너무 불안합니다.
 
나는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일까요.
 
모르겠어요.
확신이 서지 않아요.
 
주님을 사랑한다면
내가 이래서는 안되죠.
 
나는 알고 있어요.
내가 얼마나 형편없는지.
 
내가 실수해서 고통받는지
나를 사랑해서 고통을 주시는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정확한 판별법이 있으면
내게 알려주세요.
 
나도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그런 확신도 없이
무슨 목사라고.
 
맞아요.
당신 말이 맞아요.
 
하지만, 나도 당신만큼
주님을 사랑해요.
 
당신만큼 확신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당신이 확신하는 동안
나는 계속 불안할 거예요, 아마.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어요.
확신했던 사람들.
 
베드로는 확신했어요.
다른 사람 몰라도
나는 주님 부인하지 않겠다고.
 
도마는 확신했어요.
내가 손가락으로 예수님 옆구리를
후벼보기 전까지는 믿지 않겠다고.
 
바울은 확신했어요.
내가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되게 하는
그리스도인을 모조리 잡아 처넣겠다고.
 
확신도 그리 안전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어떠세요.
 
내가 확신 없어도
행복한 이유 알려드릴까요.
 
나는 내가 얼마나
주님 사랑하는지
별로 고민 안 해요.
 
생각할수록 좌절되니까요.
내가 주님을 얼마나 사랑해야
나도 안심되고 주님도 만족할까요.
 
어려워요.
다르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주님이 날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루 종일 생각해요.
 
생각할수록 행복하거든요.
너무 너무 행복해요.
 
내가 주님을 사랑하면
얼마나 사랑하겠어요.
 
주님이 날 사랑하시는 거에 비하면
공중에 떠다니는 먼지 같죠.
 
당신하고 나하고 누가 더 주님 사랑하는지
따져 봤자 도토리 키재기에요.
 
당신이 이겼다고 해줄게요.
그래도, 난 손해 볼게 없어요.
 
당신과 나.
주님은 차별 없이 사랑해주시니까요.
 
내가 얼마나 주님 사랑하는가에
집중하지 말고
 
주님이 날 얼마나 사랑하시는가에
집중하세요.
 
내가 불안해도 행복한 이유
이제 아시겠죠.
 
계속 고민하세요.
나 주님 사랑하나.
나 믿음 있나.
 
그게 사랑이고
그게 믿음이니까요.

예수님이 멀게 느껴져요

예수님만 바라보라고 하잖아요.
나는 그 말이 뭔지 몰라요.
예수님이 친밀하지 않아요.
멀게만 느껴지고.
 
사람들하고 기도하면서 같이 울잖아요.
같이 울어도 똑같이 우는 게 아니에요.
내 눈물은 성분이 달라요.
감사해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에요.
서러워서 흘리는 눈물이에요.
 
왜 나를 만들었나.
왜 나만 차별하나.
서럽고 외로워서 눈물만 흘러요.
어떻게 해야 주님을 만날 수 있나요.
방법을 알고 싶어요.
 
상투적인 말부터 해야겠네요.
지루하더라도 참고 들어주시겠어요?
듣다 보면 남는 건 있을 거예요.
 
데이트해보셨지요.
상대방을 알아가는 과정이 있어요.
그 사람이 누군지 알아야 해요.
그 사람이 했던 말과 행동.
그 사람의 태도와 감정.
알면 알수록 좋아요.
 
친구들을 만나보는 것도 좋겠죠.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에 대해
뭐라 말하나 들어봐야죠.
 
주변 사람들이 하나같이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운다면
좋은 사람이란 뜻이죠.
 
결혼을 전제로 만난다면
더욱 신중해야겠죠.
섣불리 결론 내리면 안 돼요.
따질 건 전부 따져봐야죠.
 
예수님도 마찬가지예요.
신랑을 고르는 것과 비슷해요.
많이 알면 알수록 좋아요.
따질 건 전부 따져보세요.
 
예수님이 하신 말,
예수님에 대한 말,
모두 성경에 있어요.
신중하게 읽고 생각하세요.
 
예수님에 대해 알았다고 해서
바로 믿어지는 건 아니에요.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려면
성령님의 도움이 필요해요.
 
마른 장작에 불을 붙여야죠.
그래야 활활 타오르니까요.
성령님이 불을 붙어주시면
고백할 수 있어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나는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까요.
설명하기 힘들어요.
어느 날, 예수님이 찾아와 주셨어요.
 
나도 혼자라고 생각했어요.
아무도 날 지켜주지 않았으니까요.
저러다 애 죽겠다 싶으니까
급하게 찾아 오셨나 봐요.
조금만 늦게 오셨어도 나는 세상에 없겠죠.
간신히 살았어요, 정말로.
 
바로 질문하겠죠.
왜 나에게는 안 오시나요?
나도 믿고 싶은데.
사람 차별하는 것도 아니고.
 
혼자라고 느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예수님은 차별하지 않으세요.
예수님은 당신 곁에 오셨어요.
당신도 혼자가 아니에요.
 
당신이 내 앞에서
혼자라고 말하면서 우는데
이상하게 나는 불안하지 않아요.
이제야 알 것 같아요.
당신의 진심을.
 
당신은 그리워하고 있어요.
예수님과 친밀했던 그 시절을.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것처럼 말해서
정말 그런 줄 알았어요.
내가 잘못 알아들었어요.
주님의 따뜻한 품이 그리운 거예요.   
 
처음부터 당신의 마음을 알았다면
길게 말하지 않았을 거예요.
내가 무뎠어요.
 
이제 알았으니 부탁할게요.
조급할 필요 없어요.
기다려주세요.
주님이 다시 만나주실 거예요.
 
옛사랑을 그리워하는 당신이 아니라
오늘 주신 사랑으로 설레는 당신이 되기를
나는 바랍니다.

남자다운 남자가 싫어요

다정다감하고 온유한 사람을 만나고 싶은데, 남자친구가 남자 성격이에요.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요. 남자친구의 표정과 말투에 민감해요. 남자친구는 웃는 인상이 아니에요. 말투도 거칠어요. 사랑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헤어졌어요. 노력하겠다는 말에 다시 만나요. 노력하는 모습은 보이지만, 실망스러운 건 마찬가지예요.
 
그건 자매님 선택이에요. 나에게 물어도 나는 답을 모릅니다. 힘들게 질문하셨는데, 쉽게 대답해서 미안합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나는 진실을 말해야 하니까요. 자매님이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면 됩니다. 아니다 싶으면 헤어지면 됩니다. 서로 노력해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갈 수 있으면 계속 만나면 되는 거고요. 내 말에 감정이 상했다면, 미안합니다. 하지만, 이 이상의 답을 줄 수는 없어요. 
 
나는 상담하는 사람이니 이대로 대화를 끝내면 안 되겠지요. 조심스럽지만, 대화를 이어가겠습니다. 자매님이 원하는 대로 선택하지 못하는 상황을 이해합니다. 자매님은 딜레마에 놓인 겁니다. 남자친구가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한 거죠. 
 
남자친구가 무섭기만 했다면, 이미 헤어졌을 겁니다. 아무리 다시 만나자고 해도, 헤어진 남자를 다시 만나지 않았을 겁니다. 그 남자는 분명 자매님이 원하는 것을 갖고 있을 거예요. 다시 기회를 준 이유일 겁니다. 그 남자의 전부가 싫은 게 아니라 그 남자의 일부가 두려운 것이지요. 일부라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자매님의 상처와 맞닿아 있으니까요. 폭력적인 아버지의 성향과 남자 친구의 성향이 서로 닮은 것이지요. 그렇게 된 이상, 일부는 전체를 덮어버립니다.
 
남자친구와의 관계에 집중하지 말고, 자신에게 집중해보세요. 가만히 멈춰 서서 깊이 생각해보세요. 남자친구가 자매님에게 주는 그 무엇이 다른 남자를 만나도 받을 수 있는 건 가요? 사람이 바뀌어도 지속될 수 있는 건가요? 그렇다면, 그 남자가 꼭 필요한 건 아닙니다. 선택이 쉬워졌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다른 누구로 대체할 수 없는 그 남자만의 특별한 무언가가 있나요? 그 남자가 아니면 절대로 안 되는 그 무언가가. 그렇다면, 그 남자를 놓치면 안 됩니다. 표현 방식이 서투를 뿐, 그 남자의 진심이 자매님에게 전해진 겁니다. 
 
그 누구를 만나도 자매님의 상처는 새로운 관계 안에서 영향을 미칠 겁니다. 그러니, 관계에 집중하지 말고 자신에게 집중하세요. 남자가 바뀌어도 반복되는 패턴이라면, 관계를 통해 상처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꼭 그 남자여야 한다면, 힘들고 어려워도 함께 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그 남자가 아니어도 된다면, 지금은 자신을 추스르고 돌볼 때입니다.

나 무섭단 말이야

“저는 방에 숨었고, 남편이 발로 문을 차면서 열라고 했어요. 순간, 저는 기절했고, 이후는 기억나지 않아요.”  
 
G는 결혼 5년 차, 서른여덟 살의 여성이다. 결혼 1년 후부터 남편의 폭력적인 행동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수건, 휴지 같이 깨지지 않는 물건을 던졌다. 물건은 점점 무거운 것으로 바뀌었다. 수저, 탁상시계, 가습기, 선풍기. 
 
처음에는 남편이 소리를 지르면 그녀도 같이 목소리를 높여 싸웠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남편이 무섭다. 남편 목 혈관이 두꺼워지고 눈이 충혈 되면, 그녀는 두려워서 안방으로 뛰어가 숨었다. 문을 잠그고 남편의 화가 가라앉을 때까지. 남편은 발로 문을 차면서 당장 나오라고 소리치고, 그녀는 문에 등을 기댄 채 울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문이 열릴까 두려워 몸으로 문을 막았다. 덜컹거리는 문이 그녀의 등짝을 후려치는 채찍처럼 느껴졌다. 
 
한번은 남편이 선풍기를 바닥에 내던졌다. 아내는 숲 속에서 뱀을 본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 방으로 달려가 숨었다. 문을 닫고 잠그는 순간, 숨을 잘 쉴 수가 없었다.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쓰려져도 침대에 쓰려야져야 한다고 생각한 그녀는 힘을 다해 침대로 걸어갔다. 침대 모서리 이불을 손으로 쥔 채 방바닥에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창가로 쓰며든 햇살이 그녀를 깨웠다. 전날 밤 일이 기억나지 않았다. 차가운 바닥에서 몸을 일으킨 그녀는 침대에 걸터앉아 울기 시작했다. 그녀가 흘린 눈물이 조용히 침대 위로 떨어졌다. 
 
“제가 꿈꾸던 결혼 생활은 이런 게 아니었어요. 남편은 결혼 전에 저를 아기처럼 조건 없이 사랑해줬어요.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만났던 남자들은 정말 이기적이었어요. 그런데 남편은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죠. 
 
남편이 왜 이렇게 변한 걸까요? 제가 속은 걸까요 아니면 제가 그를 그렇게 만든 걸까요? 혼란스러워요. 남편은 화날 때만 무섭고 평소에는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에요. 갑자기 화내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끌어안고 사는 느낌이랄까…. 저는 불안해서 약을 먹기 시작했어요.” 
 
남편이 말했다. 
 
“내가 문을 발로 찼다고? 제발 그렇게 말하지 마. 손으로 문고리를 잡고 열려고 한 거야. 대화하다가 갑자기 방으로 들어가면 나보고 어쩌라고. 대화를 해야 문제가 풀릴 거 아니야. 당신이 내 말을 들어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말하잖아.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말해도 당신은 들을 생각을 안 하잖아. 그럴 때마다 내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아. 
 
물건을 던진 건 내 잘못이야. 그러고 나면 얼마나 마음이 힘든 줄 알아. 당신은 내가 매일 물건을 던지는 것처럼 말하는데, 단 두 번뿐이야. 당신의 말은 엄청나게 과장된 거라고. 제발 진실을 말해. 당신 혼자만의 세상에서 벗어나란 말이야!” 
 
아내는 조용히 눈물을 흘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을 보이지 않는 방에 가두었다. 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겼고, 아내는 그 안에 들어가 숨는 것이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은 매서운 눈으로 아내를 바라보았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하면 폭발해버릴 듯한 눈빛으로. 
 
아내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사실… 나, 기억이 잘 안나. 당신이 너무 무섭단 말이야. 당신이 소리 지르면 정신이 나가버려.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소리 지르지 마. 제발 부탁이야….” 
 
남편은 목이 메는 듯, 어렵게 말을 꺼냈다. 
 
“사실, 어젯밤에 결혼식 앨범을 꺼내봤어요. 사진을 보면서 생각했죠. ‘우리 행복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고 싶어요. 아내에게 더 이상 상처주고 싶지 않아요.” 
 
아내가 여덟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투병 생활은 길었다. 어머니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했다. 아홉 살, 어느  여름날이었다. 그녀는 친구들과 정신없이 놀다가 해질녘에 집에 들어왔다. 엄마는 딸의 머리채를 잡고 화장실로 끌고 가서 회초리로 온몸을 때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울면서 살려달라고  말했다. 평소 엄마의 눈빛이 아니었다. 빨갛게 충혈 된 눈은 무언가에 씌인 것 같았다. 어머니는 실성한 듯 그녀를 심하게 때렸다. 그녀는 죽음의 두려움을 느끼고, 화장실에서 뛰쳐나와 방으로 도망쳤다. 
 
문을 잠그고 엄마 눈이 원래대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 방에 갇힌 그녀는 귀를 막았다. 방문 너머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 아빠를 닮아 그 모양이지. 너도 죽어. 다 필요 없어. 다 같이 죽어!” 
 
그녀는 아버지가 그리웠다. 
 
“아버지는 제게 한 번도 화낸 적이 없었어요.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좋았을 텐데…. 아버지가 너무 그리웠어요. 너무 보고 싶고, 생각나고…. 엄마도 힘들었을 거예요. 지금은 이해할 수 있어요. 마음에 상처는 남았지만, 그때 엄마도 아마 어쩔 수 없었을 거예요.” 
 
남편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연예인이 되고 싶었다. 연극영화과에 지원하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반대했다. 아버지에게 맞설 수 없었다. 아버지의 생각은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으니까. 아버지 뜻을 거스르면 뺨을 맞거나 매질을 당했다. 아버지와 직접 대화할 수 없어서 늘 엄마가 중간 역할을 했다. 
 
“아버지 생각은 이래. 그러니까 네가 이해하렴.” 
 
어머니는 아버지가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어머니가 상황을 설명해줘도 속 시원하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들은 동의할 수 없었다. 
 
방학 중에도 그는 아버지의 기상 시간에 맞춰 일어나 밥을 먹었다. 해도 뜨기 전, 이른 새벽 시간에 식사를 했다. 그리고 단정히 옷을 입고 도서관에 갈 준비를 하는 척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출근하시면 다시 옷을 갈아입고 모자란 잠을 잤다. 
 
그는 늘 아버지 눈치를 봤다. “영화배우는 안 된다”라는 아버지의 말 한 마디에 진로를 정하지 못하고 오랜 시간 방황했다. 
 
두 사람은 지인의 소개로 만났다. 
 
남편이 말했다. 
 
“아내는 있는 그대로 저를 인정해줬어요. 기를 살려줬다고 해야 하나… 사실 저는 부족한 게 많거든요.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성격이 좋은 것도 아니고요. 아내는 얼굴도 마음도 예뻐서 한눈에 반했죠. 사실 지금도 그래요. 가끔 아내를 보면서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나? 이렇게 사랑스런 여자에게’라고 생각해요.” 
 
아내가 말했다. 
 
“남편이 사랑해주는 게 느껴졌어요. 그의 눈빛이 따뜻했어요. 저를 아기처럼 쓰다듬으며 사랑한다고 말해줬거든요. 남편이 손을 잡아주면서 결혼하자고 했을 때 저는 감격해서 울었어요. 그를 만나기 전까지 제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결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두 사람의 존재는 서로에게 축복이었다. 향기 가득했던 신혼집은 사랑이라는 꽃이 시들면서 악취가 났다. 남편의 거친 입에서 풍기는 침냄새와 아내가 문고리를 잡고 버티며 흘린 땀냄새로 얼룩졌다. 
 
***
 
물에 빠져 죽을 뻔 했던 사람은 물이 두렵다. 물을 볼 때마다 두렵다. 다른 사람 눈에는 에메랄드빛으로 보이는 물이 그에게는 시커멓게 보인다. 물에 대한 기억이 물 색깔을 결정한다. 눈에 보이는 물 색깔을 바꾸려면 물속에 들어가야 한다. 
 
발부터 시작해서 허리, 목까지 천천히 담그자. 방심하지 말자. 물속에서 손발을 사용해서 앞으로 나아가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아내는 아버지가 그립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아버지를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어머니의 불안한 감정 상태, 학대와 상처 주는 말이 그녀를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아버지에게 도피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남편을 처음 만나 가진 느낌, “아기처럼 예뻐해줬다”라는 말은 연인 사이에서 쓰는 말보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 쓰는 말에 가깝다. 아버지 모습이 투영된 남편에게 끌린 것이다. 
 
그러나 남편은 아버지가 아니다. 그녀가 남편을 통해 보았던 아버지는 사막에 신기루 같은 것이다. 멀리서 아버지처럼 보였지만 가까이 가보니 모래 언덕이다. 착시현상이다. 아버지가 없다는 상실로 쓰러진 그녀에게 사정없이 모래바람이 불었다. 코와 눈에 모래가 가득 끼어 앞을 볼 수도, 숨을 쉴 수 없다. 
 
어머니가 남긴 상처는 그녀를 파괴했다. 남편 눈빛이 엄마 눈빛과 연결된다. 어린 시절, 그녀는 어머니에게 대항할 수 없었다. 대항하지 않아 모진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았다. 남편에게는 달랐다. 사력을 다해 그에게 대항했다. 두 번 다시 고통  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입에서 독설이 나갔다. 남편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살기 위한 투쟁이었다. 그녀의 정서는 아홉 살 어느 여름 날, 엄마의 집 화장실 안에 갇혀있었다. 방으로 도망가 문을 잠근 사람은 현재의 그녀가 아니다. 아홉 살 소녀다.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녀가 느끼는 두려움은 같다. 그녀를 기절시킨 사람은 누구인가? 엄마인가, 남편인가?
 
남편이 말했다. 
 
“이제 조금 알 것 같아요. 사람이 자기 목소리를 녹음하면 그 소리가 낯설게 들리잖아요. 제가 말을 할 때, 목소리가 이렇게 컸나요? 전혀 몰랐어요. 아내는 체구도 작은데 제 목소리가 커지면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저는 먼저 화를 낸 사람이 아내라고 생각했어요. ‘이 여자는 작은 것 하나도 그냥 못 넘어가나?’ 생각했죠. 그녀가 사나운 고양이처럼 날뛰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흥분해서 몰아세우는데 정말 답답했거든요. 제가 아니라고 말해도 귀를 막고 듣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 이 사람은 대화하고 싶은 게 아니구나. 그냥 날 이기고 싶은 거구나.’ 혼자 결론을 내렸어요. 그 다음부터는 아내가 무슨 말을 하면 입을 막으려고 했어요. 화를 참지 못하고 실수할 것이 뻔하니까요. 차라리 말을 하지 않는 게 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이제 깨닫게 되었네요. 아내가 무서워서 그런 거예요. 아내를 지켜줘야 할 사람이 아내를 두렵게 만든 거죠.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만약 제가 아내의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아내의 손을 잡고 말했을 거예요. ‘이제 무서워하지 마. 이제부터는 내가 곁에 있어 줄 거야’라고요.”
 
아내는 남편 옆에서 흐느끼기 시작했다. 남편은 아내 손을 조용히 잡아주었다. 두 사람이 맞잡은 손에서 다시 향기가 났다. 더 이상 남편의 침냄새, 아내의 땀냄새가 나지 않았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혈액처럼 따뜻한 사랑이 아내의 손을 타고 흘렀다. 아내의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모래시계를 두 번 뒤집은 것처럼 긴 시간이 흐른 후에 그녀가 말했다.  
 
“제가 만일 남편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남편을 대신해서 아버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요? 그거야 간단하죠. ‘아버님, 왜 제 남편의 기를 죽이세요. 남편이 아니라잖아요. 왜 그의 말을 끝까지 안 들으세요? 끝까지 들으시고 하고 싶은 말을 하세요. 제 남편은 그런 사람 아니거든요. 제발 아버님 방식대로 생각하지 말고, 남편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세요, 제발!’이라고요.”  
 
그녀는 남편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이 맞잡은 손을 타고 따뜻한 기운이 흘렀다. 조용히 손을 잡은 채, 울기 시작했다. 한 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은 남편이 엎드려 우는 순간, 아내는 두 손으로 남편 등을 감쌌다. 그녀가 남편을 안은 것인지, 그에게 안긴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남편 등에 기댄 그녀는 편안해보였다. 
 
남편이 뭐라고 말했다. 등 근육이 울리면서 남편의 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닿았다. 그녀가 문 넘어 듣던 무서운 목소리와 달랐다. 남편 등에서 울린 소리가 아내의 마음을 울렸다. 
 
“여보, 미안해. 정말 미안해.”  

엄마, 미안해

“모든 것이 제 잘못처럼 느껴져요. 사람들이 직접 말하지 않지만 느낄 수 있어요.” 
 
B가 세 번째 직장을 그만둔 직후였다. 마케팅 회사를 다녔던 그녀는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에 선배와 참여했다. 발표를 맡은  선배의 자료 파일 화면을 넘겨주기로 했다. 그런데 프레젠테이션이 중간 정도 진행되었을 쯤, 동영상 파일이 열리지 않았다. 
 
B는 식은땀을 흘렸다. 선배는 당황하면서도 노련하게 상황에 대처했다. 그가 시간을 끌 동안 동영상이 다시 플레이 되었다. 청중은 실수를 알아채지 못했다. 프레젠테이션이 끝나고 선배는 그녀에게 수고했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3일 후, 선배로부터 다른 업체가 선정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선배가 말했다. 
 
“실망하지 마. 경쟁이 원래 치열해. 이번 주에도 프레젠테이션 두 개 더 있으니까 준비 잘하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회사를 그만뒀다. 세 번째 회사를 그만둔 그녀가 다시 취업하는 건 쉽지 않았다. 면접을 볼 때마다 똑같은 질문을 받았다. 
 
“우리 회사가 네 번째네요. 지난 번 회사는 7개월 동안 다니셨네요. 나머지 두 회사는 1년 정도고,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적성에 맞지 않아 회사를 옮겼다고 말했지만 면접관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3개월이 지났다. 그녀는 취업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프리랜서로 살아갈 준비를 했다. 
 
“어릴 때 만화 작가가 되고 싶었거든요. 웹툰을 그리고 있어요. 지금은 시작 단계니까 열심히 노력해야죠.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려고요. 모아둔 돈이 있으니까 잠깐은 버틸 수 있어요.” 
 
그녀는 자신이 실수했다는 느낌이 싫었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짓눌리는 것처럼 답답했다. 밀폐된 공간에 머물 수 없어 사무실 밖으로 뛰쳐나가야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런 날이면 밤잠을 이룰 수가 없다. 머릿속에서 그날 그 장면이 반복적으로 생각났다. 
 
‘그 사람은 왜 내게 그런 말을 한 걸까? 무슨 뜻일까? 나는 왜 그렇게 대답을 했을까?’
 
머릿속 생각을 멈추기 위해 TV를 보고, 샤워를 해도 소용없었다. 잠시 사라졌던 생각은 금방 다시 찾아왔다. 해 뜨는 게 두려웠다. 암막 커튼으로 햇살을 가리고 알람 소리를 의지해 일어났다. 수면부족으로 몸이 무거워졌다. 사무실 밖으로 뛰쳐나가는 횟수가 늘어났다. 한 달에 한 번에서 일주일에 한 번으로, 일주일에 한 번에서 매일 한 번으로. 
 
12년 전 어느 날, 그녀는 엄마에게 짜증을 냈다. 고등학교 입학하고 야간자율학습에 적응하지 못했다. 집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여러 번 말했다. 
 
“시간이 조금 필요하지 않겠니? 이번 여름 방학 때까지만 잘 버텨봐. 그래도 힘들면, 엄마가 선생님께 말해줄게.” 
 
다음 날,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저녁 먹고 책상 앞에 앉은 그녀는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선생님께 배가 아프다고 핑계를 대고, 엄마에게 전화했다. 가방을 챙겨 교실 밖으로 나가 엄마를 기다렸다. 30분이 지나도 엄마가 오지 않았다. 다시 30분이 흘렀다. 벨소리가 들렸다.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왜 안 와? 빨리 와.” 
 
전화기 너머로 아빠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엄마가 운전했던 차는 음주운전 차량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그날 전화하지 않았다면…. 그날 그냥 교실에 있었다면…. 엄마는 죽지 않았을 거예요.” 
 
그녀는 고개를 떨구고 울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끊었던 술을 다시 입에 대면서 간경화가 진행되고, 아버지가 성급하게 재혼해서 새엄마와 관계가 엉망이 된 것. 모두 자기 탓이라고 말했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가 되면 혀가 꼬부라져 하는 말이 있다. 
 
“네 잘못이 아니야…. 네가 그런 말 할 때마다 아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아. 그날 내가 갔어야 했어. 엄마가 아니라 아빠가 운전을 했어야 했다고…. 아빠 잘못이야….” 
 
그녀는 마음속으로 대답했다. 
 
‘아니에요. 아빠, 제 잘못이에요.’ 
 
그녀 아버지, 친척, 친구, 모두가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도 소용없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비난 받을 사람이 있다면 그날 술을 먹고 운전한 그 자식이야. 그 자식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그녀의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애써 위로하려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녀는 더 깊은 어둠 속으로 자신을 숨겼다. 
 
***
 
사람이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하면, 그 사건 이전을 기억하지 못할 수 있다. 충격과 함께 기억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12년 전, 사고가 일어난 이후 그녀는 엄마를 기억하지 못했다. 기억의 창고 후미진 곳에 엄마에 대한 기억을 가두고 문을 걸어 잠갔다. 
 
엄마를 기억하면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의도적으로 기억하지 않는 편을 택했다. 엄마가 그리워지면, 그녀는 사건이 일어난 그날 밤 고통스런 순간으로 되돌아간다. 내면에 구간반복 기능이 켜진다. 고통스러운 장면을 무한 반복한다. 누군가 구간반복 기능을 꺼준다면, 엄마에 대한 소중한 기억을 되살릴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 기능을 끌 수 있는 사람은 그녀 자신뿐이다. 아무도 대신해줄 수 없다. 엄마에 대한 기억을 되찾으려면, 걸어 잠근 문을 열어야 한다. 고통스런 기억을 꺼내는 것이다. 그곳에 자유가 있다.  
 
“제가 다섯 살쯤인 것 같아요. 엄마가 동화책을 읽어주는 장면이 생각나요. 엄마 무릎에 앉으면 엄마는 두 팔을 둥그런 원으로 만들어 그 안에 저를 담았죠. 두 손으로 책을 들고 있었고요. 엄마가 만든 둥그런 원이 좋았어요. 아늑하고….” 
 
다섯 살 꼬마로 되돌아간 그녀는 엄마 품에 안겨 말했다. 
 
“엄마, 미안해.” 
 
“뭐가?” 엄마가 말했다. 
 
“내가 그날 전화만 하지 않았어도…. 나 때문에 많이 아팠지?” 
 
“아니야, 엄마가 미안해. 같이 있어주지 못해서…. 우리 딸 엄마 없이 잘 할 수 있지?”
 
“응….”
 
현실의 그녀는 오열했다. 
 
사건을 바꿀 수는 없지만,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꿀 수 있다. 그날의 기억을 지울 수 없지만, 그날의 사건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날 그 사건은 그녀 잘못이 아니다. 아버지 잘못 또한 아니다.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고, 아무도 대비할 수 없었다. 그 일이 일어났고, 그 일은 막을 수 없었다. 이것이 진실이다. 
 
진실을 받아드리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다른 사람의 설득으로 외부에서 주입될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 내면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일이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두려움과 마주할 용기이다. 현실에서 그녀는 두려운 상황과 마주할 것이다. 사랑, 일,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그녀의 구간반복 기능이 켜진다. 
 
“모든 것이 다 내 잘못이야.” 
 
그때마다, 그녀는 리모컨 버튼을 누르듯, 자기 비난의 목소리를 꺼야 한다.  
 
“전부 내 잘못은 아니지. 어쩔 수 없는 일도 있잖아.”   
 
사람마다 자기 비난의 목소리가 들린다. 다른 사람에게는 관대하고 자신에게는 무자비한 목소리. 우리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산다. 목소리를 만드는 것도 자신이고, 고통받는 것도 자신이다. 반대로, 목소리를 거부하는 것도 자신이다. 왜 그 목소리가 들리는지 아무도 모른다. 선택만이 남았다. 듣느냐, 마느냐.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아

하나님 사랑이
느껴지지 않아요.
 
하나님은
날 사랑하지 않아요.
 
사랑받은 적 있나요.
누구에게라도.
 
아무도 없었군요.
내 마음이 아파요.
 
내 부모도 날 사랑하지 않았어요.
이제 하나님도 날 거부해요.
 
하나님이라고 부르면
그나마 괜찮은데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면
마음이 불편해요.
 
아버지라고 하는 순간
복잡한 감정이 밀려와요.
 
무서운 아버지.
무관심 아버지.
 
그 아버지가
이 아버지가 아닌데.
 
이상하다.
참 이상하다.
 
외롭고
쓸쓸해져요.
 
그렇군요.
그럴 수 있어요.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을 수 있죠.
 
사랑받은 적 없어서
사랑받는 게 뭔지 모른다고 하셨죠?
 
자녀를
사랑하시나요.
 
조건 없이
사랑하신다고요.
 
자녀 대신
죽을 수도 있다고요.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했다면서
자녀를 사랑하는 이유가 뭔가요.
 
어디에서
시작된 사랑일까요.
 
당신 안에 사랑이 없잖아요.
사랑받지 못했다면서요.
 
자녀 대신 죽을 수 있다는 말,
진심이란 걸 알아요.
 
혹시,
정말 혹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랑
받은 적 있나요.
 
누군가 당신을 위해
대신 죽기라도 한 것처럼
 
당당해서
물었어요.
 
이제 아시겠나요.
당신은 사랑받고 있어요.
 
부모 사랑으로
하나님 사랑을 느낄 수 없다면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추적하세요.
 
상처투성이 당신도
자녀를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으면서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쉽게 결론 내릴 수 있나요.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사랑을 느껴보세요.
 
내 이야기
잠시 해도 될까요.
 
내 딸이 이마에 깊은 상처를 입어
피를 콸콸 쏟은 적이 있어요.
 
이 삼십 바늘 꿰매서
치료했어요.
 
딸을 지켜주지 못했단 생각에
나는 괴로웠어요.
 
밤이면 밤마다 딸이 잠들면
그 옆에서 울고 또 울었죠.
 
속상해 죽겠는데
하나님이 한 마디 툭 던졌어요.
 
네 딸 살이 찢기니 괴롭겠구나.
나도 내 아들 살이 찢길 때 괴로웠다.
 
온 세상이 멈춘 것처럼
고요했어요.
 
내가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내 딸이 다치지 않았다면.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토록 깊이 느낄 수 있었을까요.
 
부모인 우리는 자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어요.
 
나 외로워요.
당신은 어디 있나요.
 
당신이 하나님을 찾을 때마다
그가 말씀하시기를 바랍니다.
 
네가 네 자녀를 사랑하듯
나도 너를 사랑한다.
 
하나님,
하나님 아버지.
 
당신이 하나님을
어떻게 부르든지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이
당신에게 전해지기를 기도합니다.

용서 못 하는 나 자신이 싫어요

상처 준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는 건 머리로는 알겠어요. 하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아요. 용서 못 하는 제 자신이 싫어요.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는 것 같거든요. 오랫동안 이 문제를 피해 도망 다녔지만 벗어나지 못했어요. 정말 용서하고 싶지 않은데, 용서해야만 하나요.  
 
용서 못 하는 자신을 용서해주세요. 용서는 과정이지, 성취가 아닙니다. 용서하겠다는 마음을 가진 그 순간부터 용서가 시작된 겁니다. 조급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용서하는 삶이 시작되었으니, 용서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정죄하시면 안 됩니다. 끔찍한 일을 당한 건 당신입니다. 당신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입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자신을 비난한다면, 나는 슬픕니다. 세상에 그런 일은 없습니다. 억울한 일이에요. 그러니, 자신을 비난하지 말아주세요.
 
아직 용서하지 못했다는 생각은 감정에서 비롯되었을 겁니다. 마음으로는 용서하고 싶은데 그 사람, 그 상황을 생각하면 분노가 일어나겠지요. 분노라는 감정과 용서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용서는 지난 일이고, 감정은 지금 일이죠. 감정이 남아 있다고 해서, 용서 못 한 게 아닙니다. 감정과 용서를 구분할 수 있어야,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용서는 끝나도 감정은 느껴집니다. 없애려 하지 마세요. 사라지지 않습니다. 숨기면 강해지는 게 감정이고, 표현하면 사라지는 게 감정입니다. 격한 감정을 사람에게 표현하면, 부작용 있으니 예수님께 표현하세요. 차분히 누그러질 때까지 마음껏 표현하세요. 예수님은 하품 한 번 안 하고 끝까지 들어주십니다. 
 
용서하고 싶은데 감정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면, 이미 용서하신 겁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감정을 돌보세요. 분하고 화나도 참지 말고 표현하세요. 그 과정에서 감정마저 편안할 날 올 겁니다. 감정을 느끼는 동안, 자책하지 마시고 기다려주세요. 용서의 삶을 시작한 당신을 바라보시며, 예수님이 기뻐하십니다.

다른 사람을 소개 받는 게 죄가 되나요?

교회에서 만난 남자친구가 있어요. 남자친구는 저와 결혼하고 싶어 해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이런저런 조건을 따져보고 있어요. 이 와중에 더 좋은 조건의 소개가 들어와요. 다른 사람을 소개받으면 죄가 되나요? 
 
궁금해서 던진 질문이 아니라, 불안해서 던진 질문처럼 느껴집니다. 만약 내가 괜찮다고 하면, 마음이 조금 편해질까요? 하지만, 나는 단답식으로 대답하고 싶지 않습니다. 
 
연애는 OX 게임이 아닙니다.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새로운 남자를 소개받으면 유죄 판결을 받고, 지금 남자친구와 결혼하면 무죄를 받는 식으로 생각한다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심하게 왜곡된 거예요. 죄의 여부를 떠나서, 진실된 판단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조건을 따지면서 결혼하면, 행복하기 어렵습니다. 조건을 보기 전에 먼저 존재를 보세요. 그게 성경의 원리와 더 가깝습니다. 조건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지만, 지금은 조건이 너무 앞서고 있어요. 조금만 신중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결혼은 쇼핑이 아닙니다.   
 
내가 보기에 지금의 남자친구를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확신이 없다면,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건 서로에게 유익하지 않습니다. 곁에 두고 관리하는 건 옳지 않아요. 
 
남자친구와 결혼하는 것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건 서로 별개의 문제입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먼저 지금의 남자친구를 정리하는 게 맞습니다. 이렇게 답변하는 게 마음이 편하지 않지만, 결혼하시기 전이니 아무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한참 돌려 말했는데, 죄가 되냐는 질문에 답하겠습니다. 지금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유지한 채로 다른 사람을 소개받는 것이 죄가 된다는 직접적인 성경 구절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마음 편히 다른 누군가를 만나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죄가 되는가를 따져보기 이전에, 동기를 따져보면 좋겠습니다. 선택보다 중요한 건 동기입니다. 동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선택의 기준이 됩니다. 동기의 옳고 그름은 자신만이 알 수 있습니다. 자신 안의 동기가 올바른가 점검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동기가 바르지 않다면, 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잘못된 동기는 결국 자신과 남자친구에게 상처를 남기게 될 테니까요.

엄마가 전화할게

민수는 자정이 넘어 집에 들어왔다. 수능이 10개월 앞으로 다가온 시점이었다. 학원에서, 독서실로 갔다가 집으로 오는 것이 하루 일정이었다. 
 
민수가 집에 도착했을 때, 집은 난장판이었다. 아빠와 엄마가 부부 싸움을 한 것이다. 민수는 깊은 한숨을 내뱉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민수는 바로 잠에 들 수가 없었다. 학원에서 내준 과제가 적지 않았다. 졸린 눈을 비벼가며, 책상 앞에 앉았다. 
 
밖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지만, 익숙한 소리였다. 책에 집중하려고, 이어폰으로 귀를 막았다. 
 
그때였다. 이어폰 너머로 와장창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민수는 깜짝 놀라 밖으로 뛰어나갔다. 거실에서 부모님을 마주한 민수는 짜증이 극에 달했다. 
 
장식장이 쓰려지면서, 거실 바닥에 유리 파편을 쏟아냈다. 엄마와 아빠는 거칠게 몸싸움을 했다. 엄마는 아빠의 손목을 잡고, 사력을 다해 버텼다. 아빠는 엄마의 손목을 뿌리치려고 안간힘을 썼다. 
 
아빠가 엄마의 손을 떨쳐내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엄마의 뺨을 내리쳤다. 
 
찰싹.
 
아빠의 솥뚜껑 같은 손에 엄마는 힘없이 쓰려졌다. 민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아빠에게 눈을 부릅뜨고, 소리를 질렀다. 
 
“제발 그만 좀 하라고!” 
 
민수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아빠가 깜짝 놀랐다. 아빠는 민수에게 가까이 다가와서 말했다. 
 
“뭐라고? 다시 한 번 말해 봐.” 
 
“그만 좀 하라고!” 
 
민수가 아빠에게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아빠가 민수의 멱살을 잡았다. 
 
“이 자식이, 어디서 아빠한테 그딴 식으로 말해?” 
 
민수는 바닥에 쓰려져 울고 있는 엄마와 눈이 마추쳤다. 
 
민수는 이성을 잃었다. 
 
아빠의 손을 뿌리치고, 아빠의 멱살을 잡았다. 
 
“이제 그만하라고 했지! 당신이 아빠야? 왜 술만 처먹으면,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민수의 아빠도 이성을 잃었다. 민수를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했다. 민수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아빠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죽자 살자 덤벼들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고 유리 파편 위로 넘어졌다. 민수가 아빠 위로 올라앉아서, 아빠를 사정없이 팼다. 
 
아빠는 민수를 떨쳐내고 일어서려고 온몸을 비틀었다. 유리 파편이 등에 비벼졌다. 
 
민수의 엄마는 오열하면서, 민수를 뜯어말렸다. 엄마의 울음소리를 들은 민수는 그제서야 이성을 되찾았다. 
 
미끄럼을 타듯이 아빠 몸에서 떨어져 나간, 민수는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질렀다. 
 
민수의 아빠는 터진 입술에서 새어 나온 피를 빨아당겼다가, 침으로 뱉어냈다. 몸을 일으켜, 벽에 기대고는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아빠의 등 뒤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엄마가 흐느껴 울면서, 아빠의 등에 박힌 유리 파편을 빼내고, 수건으로 흐르는 피를 막았다. 
 
민수는 견딜 수 없었다. 아빠를 때린 자기 손을 잘라버리고 싶었다. 주먹을 쥐고 거실 벽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시멘트로 차갑게 굳어진 벽은 민수의 손을 부러뜨렸다.  
 
퍽.
 
민수의 손가락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엄마의 귓가를 울렸다. 엄마는 민수를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민수도 엄마의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엄마를 끌어안은 민수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빠는 비틀비틀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갔다. 
 
#  
 
“며칠 지나고, 아빠가 이야기 좀 하자고 했어요. 아빠가 맨 정신에 이야기하기 힘들다고, 술 한 잔 하자고 하시더라고요. 술은 원래 아빠한테 배우는 거라고 하셨어요.” 
 
#
 
민수의 아빠는 말없이 소주 한 잔을 따라 민수에게 건넸다. 민수는 잔을 받아들고 머뭇거렸다. 
 
아빠가 말했다. 
 
“마셔. 아빠가 주는 술은 일단 받는 거야.” 
 
민수는 소주를 입속에 털어 넣었다. 학교 사물함에 있는 가그린 맛이었다. 가그린을 삼켜버린 듯 찝찝한 기분이었다.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데, 아빠가 한 잔을 더 따르며 말했다. 
 
“민수야. 아빠가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아빠는 반쯤은 울먹거리는 목소리였다. 
 
소주 병을 입에 물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꺼억하고 트림을 내뱉으면서, 민수에게 말했다. 
 
“있잖아. 아빠하고 엄마 사이에는 네가 모르는 일이 있어.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야. 어른들의 문제니까, 네가 끼어들면 안 돼.” 
 
민수는 하고 싶은 말을 참았다. 민수가 들이킨 알코올이 민수의 목구멍을 틀어막았다. 뜨거운 숨만 콧구멍 밖으로 새어 나올 뿐이었다. 
 
아빠의 연설은 세 시간이나 지속되었다. 아빠의 말이 장황하게 무한 반복되었지만, 민수는 아빠의 말을 경청했다. 
 
아빠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다혈질의 아빠는 풀이 죽어지냈다. 민수가 아빠에게 달려든 후로, 아빠는 집에서 존재감 없이 지냈다. 무기력한 아빠의 모습을 볼 때마다, 민수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아빠의 처량한 모습이 날개가 부러진 독수리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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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한 달이 넘도록 민수는 아빠와 말을 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서로 말다툼을 하다가도, 민수가 들어오면 서로 말을 멈췄다. 아빠는 방으로 들어가고, 엄마는 밤늦게 들어온 민수를 챙겼다. 
 
“늦게 피곤하지?” 
 
엄마가 물었다. 
 
“엄마, 나 어떻게 하지?” 
 
민수가 엄마에게 되물었다. 
 
“뭘 어떻게 해?” 
 
“답답해서 미쳐버릴 것 같아.” 
 
엄마는 할 말을 잃었다. 말없이 민수를 바라볼 뿐이었다. 
 
“어떻게 평생을 그렇게 살아? 나 때문에 참고 사는 거면, 그럴 필요 없어. 나는 괜찮으니까, 엄마도 그냥 엄마 인생 살아.” 
 
엄마는 민수의 침대에 힘없이 걸 터 앉았다.  
 
“일단, 수능부터 끝내. 그다음에 이야기하자.”   
 
민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눈물이 터지기 직전이었다. 
 
“알겠어, 엄마. 이제 나가.” 
 
엄마가 방문을 닫고 나가자, 민수는 책상에 엎드려 울었다. 지우개를 삼킨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PC방으로 와.” 민수의 친구 K가 말했다. 
 
“알겠어, 기다려.” 민수는 터벅터벅 걸어, 학원 근처 PC방으로 들어갔다. 
 
PC방을 한 바퀴 돌아봐도 K와 친구들이 없었다. 민수는 K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야?” 
 
민수가 물었다. 
 
“아, 우리 밖으로 나왔어. 분식점으로 와.” 
 
K가 말했다. 
 
민수는 슬슬 짜증이 밀려왔다. 때마침 지나가던 택시를 잡아타고, 분식점 앞에 내렸다. 분식점에서도 친구들은 보이지 않았다. 
 
민수는 다시 K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야?” 
 
“우리 다시 PC방으로 왔어. 빨리 이쪽으로 와. 우리 지금 세 명이라, 한 명 더 필요해. 최대한 빨리 와라.” 
 
민수는 화가 치밀었다. 
 
PC방에서 마주한 친구들은 게임에 빠져있느라 민수가 온 것도 몰랐다. 민수가 K의 옆자리에 앉았다. 
 
K가 말했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조금만 기다려. 이 판 끝나면, 2 대 2로 붙자.” 
 
민수는 K의 옆에 앉아, 인터넷 브라우저를 켜면서 짧게 말했다. 
 
“알겠어.” 
 

 
“화나지 않았을까? 보통 고등학생이면, 욕하고 소리 지르고 난리 한 번 났을 텐데….” 
 
내가 민수에게 물었다. 
 
“화는 났지만, 표현할 수 없었어요.” 
 
민수가 말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어?” 
 
“두려웠던 것 같아요.” 
 
“무엇이?” 
 
“친구들이 나를 따돌릴까 봐요. 예전에도 그런 적이 있어요.” 
 
“그 친구들이?”
 
“아니요. 중학생 때 친구들이요. 제가 화를 한 번 냈는데, 친구들이 나를 멀리했어요. 중학교 2학년 때 있었던 일인데, 졸업할 때까지 혼자 다니고, 혼자 밥 먹었어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어볼 수 있을까?” 
 
#
 
“빌려 간 만화책 언제 갖다 줄 거야?” 
 
민수가 L에게 물었다. 
 
“아, 깜빡했다. 내일 갖다 줄게.” L이 대답했다.  
 
“자꾸 왜 그래?” 
 
“뭘? 내일 준다고 했잖아.”
 
“그 소리 벌써 세 번째야.”
 
“뭐래? 갖다 준다고 이 새끼야.” 
 
L은 민수의 멱살을 잡았다. 
 
민수와 L은 서로가 휘두른 주먹에 얼굴이 상했다. 민수가 L을 힘으로 눌러 넘어뜨렸다. L의 위에 올라타, 주먹으로 L의 얼굴을 때리기 직전이었다. 
 
그 순간, 눈앞이 번쩍했다.
 
L의 절친, C가 주먹으로 민수의 관자놀이를 가격한 것이다. 민수는 의식을 잃고 쓰려졌다. L과 그의 친구들이 민수를 사정없이 짓밟았다. 
 
만화책을 돌려달라는 말 한마디, 그 대가는 혹독했다. 친구들은 민수를 괴롭혔다. 같이 어울려주는 친구 하나 없이 중학교를 쓸쓸히 졸업했다. 
 

 
“그래서, 말을 못 했어요.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긴장돼요. 내가 뭔가 작은 실수라도 하면, 친구들이 나를 어떻게 하지 않을까 두렵기도 하고….” 
 
나는 민수에게 중학교 시절 그 친구들의 이름을 묻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 달려가, 그 녀석들을 박살 내주고 싶었다. 
 
나는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고, 민수에게 물었다. 
 
“솔직하게 한 번 말해주지 않을래? 다시 PC방에 찾아갔을 때,  미안한 내색 하나 없던, K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뭐였을까?” 
 
민수는 생각에 잠겼다. 
 
“글쎄,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요? 막상, 말을 하려니까 생각이 잘 안 나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떡였다. 
 
민수가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다, 두 손을 겹쳐서 깍지를 끼더니 생각이 났다는 듯 말했다.
 
“어차피 다시 PC방으로 올 거면, 분식집으로 왜 부른 거야? 무슨 똥개 훈련시키는 것도 아니고.” 
 
“지금 감정이 어때?” 
 
“말하고 나니까 그냥 시원한데….”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줄래?” 
 
“솔직히 저는 제가 친구들에게 말을 잘 못하고, 제 표현을 못 하는 게, 집 안에서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해요. 저는 외동이고, 부모님과도 대화를 별로 안 하니까요. 제 감정, 제 생각을 표현할 줄 모르는 것 같아요. 혼자만 계속 답답하고….” 
 

 
민수가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어느 날, 도둑이 든 것처럼 집 안이 어수선했다. 
 
당황한 민수는 큰 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집에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다급하게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당황해서 닫지 못한 현관문 앞에 아빠가 나타났다.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였다. 비닐봉지에 소주와 맥주, 오징어와 땅콩 같은 것들이 담겨있었다. 
 
“엄마는요?” 
 
아빠는 대답하지 않았다. 소주 병을 손에 쥔 채, 벌컥벌컥 들이켜고, 손등으로 입술을 닦았다. 여전히, 현관 앞에 기댄 채였다. 
 
“엄마는 어디 갔냐고요?” 
 
아빠가 소주 병을 현관 대리석 바닥에 내리꽂으며 소리를 질렀다. 소주 병이 깨지면서 유리 파편이 사방에 흩어졌다.  
 
“몰라, 이 새끼야. 내가 어떻게 알아?” 
 
민수의 예상이 맞았다. 엄마는 급하게 짐을 챙겨 집을 나간 것이다. 
 
민수가 수능을 마칠 때까지 곁에 있어주고 싶었던 엄마의 바람은 물거품이 되었다. 
 
민수는 아빠를 밀치고, 밖으로 걸어나갔다. 계단을 뛰어내려가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의 전화기는 꺼져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민수는 계단을 헛디뎌 우당탕 넘어지고 말았다. 민수에게는 일어날 기운이 남아있지 않았다. 엎드린 채로 엉엉 울었다. 
 
엄마와 함께 살고 싶었던 것이 민수의 바람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엄마와 따로 나와 살고 싶었다. 민수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민수는 그날 밤, 엄마를 잃고 자신을 잃었다. 
 

 
“민수야, 엄마야.” 
 
일주일이 지나고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 어디야?” 
 
“지금 독서실 앞이니까, 얼른 내려와.” 
 
민수는 번개처럼 계단을 뛰어내려와 엄마 앞에 섰다. 
 
“엄마!”
 
민수는 어린아이처럼 엄마를 끌어안았다. 엄마도 민수를 끌어앉고 소리 없이 울었다. 엄마를 끌어안은 채로 민수가 물었다. 
 
“엄마, 어떻게 된 거야? 왜 갑자기 집을 나갔어?” 
 
엄마는 민수에게서 몸을 떼어내고 조용한 곳에 앉아 대화를 나누자고 말했다. 두 사람은 독서실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았다.
 
엄마가 민수에게 그날 밤의 일을 말했다.  
 

 
민수의 아빠는 여느 때처럼,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왔다. 민수의 엄마는 빨래를 개고 있었다. 민수의 아빠는 다짜고짜 엄마에게 시비를 걸었다. 
 
짜증이 난 엄마는 아빠의 말을 무시했다. 엄마가 아빠를 무시하자, 아빠는 이성을 잃었다. 엄마가 개놓은 빨래를 발로 차서 헝클어뜨렸다. 
 
엄마는 아빠를 쳐다보지도 않고, 빨래를 주섬주섬 집어 들었다. 다시 자리에 앉아, 침착하게 빨래를 갰다. 
 
아빠는 엄마를 사정없이 때렸고, 엄마는 아빠에게 달려들었다. 감정이 격해진 아빠는, 주방에서 칼을 꺼냈다. 
 
엄마에게 칼을 휘두르며, 같이 죽자고 말했다. 엄마는 어디 한 번 죽여보라며, 목에 핏대를 세우고 아빠를 자극했다. 
 
아빠가 칼로 엄마를 내리쳤다. 엄마가 팔로 얼굴을 가렸다. 칼은 엄마의 팔 등에 부딪히고 멈췄다.
 
그 순간 아빠는 하얗게 질렸다.
 
아빠는 엄마를 위협할 생각이었다. 실제로 칼이 엄마의 몸에 닿을 줄을 몰랐던 것이다. 
 
칼날 부위가 아닌 칼등이 엄마의 팔에 내려앉았지만, 이미 늦었다. 엄마 눈에 아빠는 짐승이었다. 
 
엄마는 아빠를 밀쳐내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아빠가 뭐 하는 짓이냐고 힘으로 뜯어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이번에 칼을 집어 든 사람은 엄마였다. 칼을 휘두르며, 아빠에게 소리쳤다. 
 
“나 한 번만 더 건드리면, 그때는 죽여버릴 거야.” 
 
아빠는 물러섰다. 
 
엄마가 작별 인사도 없이 민수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엄마의 말이 끝나고, 민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집으로 뛰어가 아빠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중요한 사람은 엄마였다. 
 
민수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그럼 이제 집에 안 오는 거야?” 
 
“응, 그럴 것 같아.” 
 
“그럼, 지금은 어디서 지내?”
 
“나중에 알려줄게. 지금은 말 못 해.” 
 
“그럼, 어떻게 먹고살아? 돈은?” 
 
“그것도 천천히 생각해보려고….” 
 
민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뿐이었다. 
 
잠시의 침묵을 깨고, 엄마가 말했다. 
 
“민수야. 넌 엄마 이해하지? 엄마가 왜 이럴 수밖에 없는지….” 
 
엄마가 울먹거렸다. 
 
민수는 엄마의 손을 잡고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전에도 말했잖아. 나는 괜찮다고. 엄마는 엄마 인생 살아. 나도 조금만 시간 지나면 독립할 거야. 그때는 내가 다시 엄마 찾으러 갈게. 우리 같이 살자. 조금만 참아, 엄마.”
 
민수의 말이 끝나자 엄마는 흐느껴 울었다. 그리고, 조금은 단호한 말투로 민수에게 말했다. 
 
“민수야. 엄마는 걱정하지 마. 너도 네 인생 살아야 해. 엄마는 씩씩하게 잘 살 거야. 너 가고 싶은 대학에 가고, 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야 해. 엄마 때문에 희생하지 말고, 알겠지?” 
 
민수는 불안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민수에게 말했다. 
 
“민수야, 너무 늦었다. 우리 이제 일어나자. 아빠한테는 엄마 만났다는 말 하지 마, 알겠지?” 
 
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 언제 다시 만나?” 
 
“엄마가 다시 전화할게.” 
 

 
민수는 독서실에 올라가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아빠에게 달려가 따질 작정이었다. 모든 것이 아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민수 역시 맨 정신으로 대화할 수 없었다. 냉장고를 열어, 아빠가 사다 놓은 술을 사정없이 마셨다.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졌다. 머리가 어지러워서 똑바로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퇴근한 아빠가 집에 들어와서, 술에 취한 민수와 마주했다. 
 
아빠는 기가 막혔다. 
 
“너 지금 뭐 하는 짓이냐?”
 
“아빠 때문이야.” 
 
“뭐? 이게 미쳤나?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아빠 때문에 엄마가 나갔어.”
 
그 순간 뭔가 번쩍했다. 아빠가 민수의 뺨을 때린 것이다. 
 
“정신 차려, 이 새끼야. 어디서 아빠한테 술 주정이야!”
 
“아빠한테 배웠지. 내가 어디서 배워?” 
 
민수는 바닥에 넘어진 채로, 소금에 담근 미꾸라지처럼 온몸을 비틀었다. 머리를 쥐어뜯고, 발버둥을 치면서, 오열했다. 
 
아빠는 바닥에 누워 미쳐 날뛰는 민수에게 차가운 물 한 바가지를 쏟아부었다. 
 
“정신 차리고, 여기 앉아 봐.” 
 
민수는 어안이 벙벙했다. 몸을 일으켜 앉았는데, 머리카락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래서, 엄마 지금 어디서 지낸다고 말해주디?” 
 
민수는 고개를 저었다. 
 
“아빠가 예전에 말했지. 어른들 문제니까 끼어들지 말라고.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고 말한 거 기억나지?” 
 
민수가 고개를 끄떡였다. 
 
“3년 전부터, 엄마가 이상했어. 처음에는 내가 오해하나 싶었어. 엄마가 아니라고 잡아떼니까, 뭐 방법이 있어야지.” 
 
민수의 정신이 또렷해졌다. 아빠의 말을 토씨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듯, 상체를 바로 세웠다. 
 
“그러다, 큰맘 먹고 흥신소에 부탁을 했더니, 아니나 달라? 딱 걸렸지. 진명이 삼촌, 너도 알지? 그 새끼랑 네 엄마랑….”
 
민수는 고개를 가로 저였다. 그럴 리 없다고 말하려던 참이었다. 
 
“엄마가 왜 어디있는지 말 못하는 지 알아? 그 자식이랑 같이 살림 차린 거야. 네 눈에는 엄마가 천사로 보이지? 엄마가 뭐 집에 붙어있은 줄 알아? 나 회사 가고, 너 학교 가면 엄마도 집에 없었어. 아빠가 맨 정신으로 살 수 있었겠냐? 아빠 인생은 3년 전에 끝났어.” 
 
아빠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인생의 쓴맛을 담배 연기로 누그러뜨렸다. 
 
“내가 너한테 별말을 다한다. 너는 신경 쓰지 말고 너 할 일이나 잘해. 정신 똑바로 차리고, 대학이나 가라고. 
 
아빠가 뼈빠지게 번 돈 너한테 다 쓰는 거야. 꼭 성공해서, 보란 듯이 잘 살아. 아빠처럼 살지 말고, 알겠어?” 
 
민수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바닥에 떨어지는 것이 물방울인지 눈물방울인지, 민수조차 알 수 없었다. 
 

 
정식 상담에서 민수를 만난 것이 아니었다. 
 
청소년 수련회 강사로 초대를 받아 저녁 집회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을 때, 담당 전도사님이 조심스럽게 민수의 이야기를 꺼냈다. 
 
수련회 일정 중에, 잠시 시간을 내어 민수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느냐는 부탁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물놀이를 할 시간에, 민수와 조용히 앉아 두 시간 정도의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나, 두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민수의 이야기가 끝나고 남은 시간은 고작 10분이었다. 
 
산더미 같은 질문을 뒤로하고, 나는 억지로 대화를 마무리해야 했다. 
 
나는 아빠의 관계, 엄마와의 관계, 그리고 친구들과의 관계를 언급했다. 
 
교과서에서 나올 법한 진부한 말들이었다. 듣는 사람이 마음만 답답해지는 그런 말들이었다. 
 
고맙게도, 민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떡이며 경청했다. 
 
다음 집회 일정 때문에, 우리는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했지만, 못내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나는 민수의 등을 두드려주면서, 힘내라고 말했다. 
 
민수는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고, 출입구를 향했다. 나는 그 자리에 선 채로, 민수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민수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돌아서서 내게 말했다. 
 
“그런데, 목사님…. 저도 치유될 수 있을까요?” 
 
나는 블랙홀에 몸이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민수는 어쩌면 나 자신이었다.
 
내가 민수를 향해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갈라진 자아가 하나로 합쳐지는 것을 느꼈다. 
 
그대로 민수를 내보낼 수 없었다. 나는 민수에게 다가가 민수를 끌어안았다. 
 
민수는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그리고,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나도 목사님처럼, 치유돼서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좋은 아빠가 되고 싶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어요. 부모님처럼 살고 싶지 않아요. 제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나는 민수의 손을 꼭 붙잡고, 고개를 끄떡였다. 
 
내가 위로랍시고 한마디를 내뱉는다면, 민수의 어깨에 내려앉은 희망이 깃털처럼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민수가 나가고, 나는 의자에 힘없이 걸 터 앉았다. 
 
나는 인정해야 했다. 민수는 내게 모든 것을 말했지만, 나는 민수에게 진실을 말하지 못했다. 
 
정작 나 자신은 치유되지도 않았고, 좋은 아빠도 아니었으며, 행복한 가정을 이루지도 못했다. 
 
아버지와 단둘이 마주 앉으면 어색함이 흐르고, 어머니를 향한 연민으로 잠을 뒤척인다. 
 
아내에게는 여전히 서투른 남편이고, 자녀들에게는 욱하고 사과하는 일을 반복하는 일관성 없는 아빠다. 
 
오히려, 나는 민수에게 묻고 싶었다. 
 
‘민수야. 목사님도 치유될 수 있을까? 내가 자격 있는 사람일까? 언젠가 네가 아빠가 되어 나타난다면, 나도 그때 진실을 말할게.’  
 
무능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예수님을 찾았다. 집회 장소 어딘가에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앉아 있는 민수를 찾아가셔서, 따뜻하게 안아주시기를 바랐다.  
 
또다시 아이러니였다. 
 
정작 나는 방문을 열고 나갈 용기가 없었다. 작은 방 안에 조용히 머무르고 싶었다. 잠시라도, 감정을 추스르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없었다. 
 
문밖에서, 누군가 노크를 했다. 담당 전도사님의 목소리가 문 너머로 들려왔다. 
 
“목사님, 이제 나가실 시간입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나는 자격을 갖추지 못한 채로, 사람들 앞에 섰다. 
 
내 시선이 군중을 향했다. 아이들은 와글와글 시끄러웠다. 밝은 조명에 눈이 부셨다. 
 
나에게는 오직 한 사람, 상처 입은 한 사람만이 중요했다. 내 관심은 민수를 향했다. 
 
저 멀리 맨 뒷자리에, 민수가 보였다. 민수의 옆자리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다. 민수는 말없이 조용했다.  
 
그날 밤, 설교는 기도였다.

오래 참음에 관하여

“미워하는 사람이 있어요. 
참아야지, 받아줘야지
다짐하지만 하루를 못 가요.
 
성경에서 
오래 참으라고 하잖아요. 
나도 오래 참고 싶어요. 
 
하루도 못 참고 
다시 미워하는 
나 자신이 실망스러워요.” 
 
도를 닦듯이 
오래 참으려고 노력한다면  
하루가 아니라 잠시도 못 버텨요. 
 
오래 참으라는 말, 
다른 종교에서도 가르쳐요. 
착하게 살면서 참으라고 말하죠. 
 
복음과 종교
무엇이 다를까요?
맞아요, 은혜에요. 
 
오래 참음은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은혜의 결과에요.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하려고 애쓴다고 
사랑할 수 없어요. 
 
잠시 잠깐 마주치기만 해도 
화가 나는데 어떻게 해요. 
 
그 사람은 내가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도 몰라요. 
 
매일 똑같은 방식으로
기분 나쁘게 말하는데   
어떻게 견디겠어요. 
 
하루하루 은혜받고 
은혜받은 만큼 받아주는 거예요. 
 
성격 같았으면 
소리 지르면서 싸울 일
따뜻하게 말하고
지나가는 거죠.  
 
은혜가 마르면 싸우고
은혜가 넘치면 받아주는 거예요. 
 
무작정 희생하고 
참으라는 말은 아니에요. 
 
은혜받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세요. 
 
은혜받은 사람의 말은 
따뜻해서 잘 들리거든요. 
 
미운 감정으로 
내던진 말에는 
가시가 돋쳐 있어요.
 
따가워서 
받아낼 수 없어요.
냅다 받아치죠. 
 
진심이 담긴 말은 
매끄럽고 푹신해요. 
 
엉겁결에 받아들고 
한참을 품고 있어요. 
 
안 듣는 것 같아도 
두고두고 생각하거든요.  
 
잘 지내다 
또 폭발하면요?
 
괜찮아요. 
과정이에요. 
 
내일 아침 은혜받고 
다시 시작하시면 돼요. 
 
은혜받으면서 
하루하루 살았는데 
지나보면 오래 참은 거예요.
 
넘어지고 쓰려져도 
포기하지 않았잖아요. 
 
지나온 모든 날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해요. 
 
오래 참으려고 애쓰지 말고 
은혜받으려고 애쓰세요. 
 
하나님은 
오래 참은 당신보다 
지금 이 순간의 당신을 
사랑하시니까요. 

실수는 실패가 아니에요

어릴 때 운동회가 싫었어요.
난 달리기가 느리거든요.
 
출발선에 서면 다리가 떨렸어요.
꼴찌는 면해보자, 생각했죠.
 
땅!
 
화약 소리와 함께,
친구들 뒷모습이 보여요.   
 
결승점에 도착하면
손등에 도장이 찍혀요.
 
내가 원하던 숫자는 아니었죠.
 
손등에 보랏빛 숫자가 싫어도
지우면 안 돼요.
 
선생님께 혼나요.
 
번호가 있어야 끝나고
노트를 주거든요.
 
난 못 받은 적도 많았지만
번호는 끝까지 지우지 못했죠.
 
어느 날, 삼겹살을 먹는데
고기가 파래요.
 
엄마한테 물었죠.
이게 뭐야.
 
그거 도장이야.
고기 급수 나눈 도장.
 
나는 사람들이 돼지를 때려서
생긴 멍인 줄 알았는데.
 
도장 자국이었어요.
 
내 식탁에 올라온 걸 보면,
적어도 1이라고 찍히지 않았을까 싶었죠.
 
돼지도 달렸나.
달리기 1등 해서 내 식탁에 올라왔나.
 
어린 마음에
쌈 싸먹으면서 피식 웃었죠.
 
나는 이제 달리기 싫어서
달리지 않아요.
 
옆 사람이 아무리 빨리 달려도
나는 걸어요.
 
비웃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요.
등 떠미는 사람도 있고요.
 
나는 뿌리치고 그냥 걸어요.
 
저 앞 편에서 도장 찍어주고
줄 세우는 게 보이네요.
 
아, 내가 길을 잘못 들었구나.
다른 방향으로 걸어요.
 
온 땅이 길인데요, 뭐.
 
참 이상하죠.
사람들이 어떻게 알고 따라왔는지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네요.
 
하얀 분으로
자꾸 레일을 만들어요.
 
끝자락에 하얀 끈을 치고
빨리 뛰라고 손짓하죠.
 
계속 피해 다니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네요.
 
자꾸 길을 정해주고
벗어나지 말고 빨리 뛰라 하니
나는 귀찮을 수 밖에요.
 
달리기하는 사람은
생각할 시간이 없어요.
 
중간에 실수라도 하면
스스로 말하죠.
 
나는 실패했어.
나는 바보야, 정말.
 
힘겹게 도착한 결승점에서
도장을 꽝 찍어줘요.
 
실패자.
바보.
 
그런 도장을 받으러 뛰어갈
필요 있나요.
 
실수는 그냥 실수예요.
실패가 아니고.
 
도장이 싫다면
다른 길로 가세요.
 
가고 싶은 길로.
당신 만의 길로.
 
계속 거기 남아 있으면,
둘 중 하나에요.
 
스스로 낙인찍거나.
남에게 낙인찍히거나.

크리스천은 착해야 하나요?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마음이 상하는 날이 있어요. 주고받는 말에 마음이 불편해도, “괜찮아요”,라고 애써 말해요. 속마음은 그렇지 않거든요. 나도 모르게 사람들과 거리를 두게 돼요. 사람들을 만나는 게 싫어져요. 크리스천은 꼭 착해야 하나요? 
 
결론부터 말하겠습니다. 착하면 좋지요. 하지만, 항상 착할 수만은 없어요. 무슨 말이야, 싶을 거예요. 사람을 파괴하는 생각 중에, “해야만 한다”라는 당위적 사고가 있어요. 심해지면, 강박으로 발전해요. “나는 착해야만 해.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화를 내면 안돼. 사람들이 날 싫어할 거야.” 왜곡된 생각으로 고통받겠죠. 
 
나는 여기서 복음과 종교의 차이를 말씀드리고 싶어요. 종교에는 당위적 사고가 많아요. “해야만 한다, 해야만 한다”의 반복이죠. 의무감으로 종교 생활을 하게 만들고,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어요. 두려움으로 복종하게 만들죠. 두려워서 의무감으로 신앙생활하고 있다면, 우리는 종교 생활을 하고 있는 거예요. 종교는 교묘하게 사람을 짓눌러요.  
 
복음은 은혜를 말해요. 하나님은 자격 없는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어요. 일방적으로 사랑하셨고, 우리는 그 사랑을 거부할 수조차 없었어요. 폭포수 같은 은혜가 쏟아져 내렸고, 우리는 그 덕분에 하나님의 자녀가 된 거예요. 은혜로 시작된 하나님과의 관계는 은혜로 지속되는 거예요. 그 누구도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을 수 없어요. 그 누구도 버림받을 수 없다는 말이죠. 우리는 그 감격으로 순종하는 거죠. 순종은 사랑받은 사람의 자발적인 반응입니다. 
 
변화된 삶은 사랑의 전제 조건이 아니라, 사랑의 결과입니다. 사랑받은 사람의 반응이 곧 순종인 거예요. 순서가 중요합니다. 순서가 바뀌면, 우리는 파괴됩니다. 종교는 이 순서를 뒤바꿔 놓았죠. 종교는 우리를 교묘하게 속여요. 자격을 갖춰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기대에 못 미치면, 자격을 잃을 것이라고 말해요. 하루아침에 버림받을 수 있는 거예요. 복음은 종교와 완전히 다른 거예요. 복음은 진실이고, 종교는 거짓이죠. 
 
다시 착함에 대해서 말해볼게요. 먼저, 착해야만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해요. “해야만 한다”를 “하면 좋다”로 바꿔주세요. 있는 모습 그대로의 나 자신으로 살면 돼요. 솔직한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면서 사는 게 복음적인 삶이에요. 안 그런 척 포장하는 삶은 종교적 삶이에요. 단순하게 둘로 나눌 수 없겠지만, 일단 그래요.   
 
용기 내어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세요. 그렇다고,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무시하라는 말은 아닌 거 아시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사람들에게 말하면, 상대방도 존중해줄 거예요. 
 
“나 사실, 아까 사람들 웃을 때, 같이 웃었지만 솔직히 기분 안 좋았어. 무시당하는 기분이었거든. 네가 그럴 의도는 없었다는 건 알아. 그래서, 마음에 담아 두지는 않으려고.”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사과를 하겠지요. 문장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상대방이 반박할 틈이 없어요. 비난이 아니라 표현이니까요. 하지만, 세상에는 상식 없는 사람도 있겠죠. 감정을 표현했다는 것 자체로 화를 내겠죠. 그런 사람과 마주하고 있다면, 조용히 마음속으로 작별 인사를 하세요. 남은 시간 동안 상식적으로 대해주세요. 죄책감 느끼면서 억지 사랑은 하지 마세요. 그건 다시 종교로 돌아가는 거예요. 
 
용기가 필요했을 거예요. 솔직하게 고민을 말한 당신을 바라보시며 예수님이 기뻐하세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당당하게 보여주시기를 부탁할게요. 하나님 앞에서는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당당해지시고, 사람 앞에서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당당해지세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착함이 아니라 은혜에서 시작됩니다.

거절하기 힘들어요

교회에서 리더로 섬기고 있어요. 고민을 들어줄 일이 많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회의가 들기 시작했어요. ‘나는 바쁜 시간을 쪼개서 어렵게 시간을 냈는데, 이 사람은 과연 그걸 알고 있는 걸까.’ 굳이 내가 필요할까. 그냥 말할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닐까 생각이 들면,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먼저 고맙다는 말을 드리고 싶어요.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습니다. 쉽지 않은 자리 포기하지 않고 잘 견뎌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매님의 질문은 저 역시 오랫동안 고민해온 문제에요. 정답은 없습니다. 하루하루 고민하면서 결정을 내려야 해요. 내 말이 정답은 아니지만, 조심스럽게 몇 자 적어보려고 합니다.
 
일단 자매님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을 아껴 쓰세요. 리더 역시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을 돌봐줄 수 없어요. 자신 안에서 기준을 세우세요. 기준은 복잡하지 않아야 합니다. 일주일 단위로 만날 사람과의 시간과 횟수를 제한하세요. 시간대 역시 고정적이면 좋습니다. 최대한 단순하게 만드세요. 그래야 지속 가능한 사역을 할 수 있습니다.
 
상황에 대한 기준 역시 중요합니다. 모든 사람을 만날 수는 없어요. 인생에서 고민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만나도 만나도 끝이 없을 거예요. 최소한의 기준이 필요해요. 마음이 어렵겠지만, 꼭 그렇게 해야 합니다. 지속 가능한 사역을 위해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해요.   
 
고민을 가진 사람이 도움을 요청하는 방식을 세 가지 비유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니 참고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껌종이에 고민을 뱉어 던져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실은 고민이 나누려고 온 게 아니라 감정을 배출하고 싶은 사람이에요. ‘나 지금 이런데, 내가 이런 일을 당하는 게 말이 돼?’
 
감정 뱉어서 버린 껌종이 펼쳐보지 마세요. 기분 상합니다. 받아서 쓰레기통에 잘 버리세요. 상대방이 착각한 겁니다. 자매님이 쓰레기통인 줄 안 거예요. 직접 버리라고 말하고 돌아보지 마세요.
 
그다음은, 종이 한 장에 고민을 대충 쓴 다음 수 백장 복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마다 나눠줍니다. 누구 하나 걸리라는 식으로 마구 뿌리는 겁니다. 착한 사람이 멈춰 섭니다.
 
당연히 대화가 힘듭니다. 그 사람은 자매님과 대화하는 중에도 종이 뭉치를 손에 쥐고 있습니다. 자매님과의 대화에 온전히 집중하지 않아요. 설문조사하듯, 질문합니다. ‘이 사람은 이렇게 말하네. 다른 사람은 무슨 말을 해줄까’ 궁금해합니다. 자매님이 사라지고 나면, 그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을 찾아다닐 겁니다.
 
마지막으로, 손편지를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종이는 허름해도 정성스럽게 한 글자 한 글자를 써 내려간 편지를 보냅니다. 손편지를 받아보면, 얼룩져 있습니다. 눈물로 써 내려간 편지라 그렇습니다. 여기저기 눈물이 떨어져 잉크가 번진 겁니다. 종이는 귀퉁이가 닳아서 구깃구깃합니다. 다 쓰고 나서 보낼까 말까 손에 쥐고 긴장한 까닭입니다.
 
손편지를 받았다면, 예수님이 되어 주세요. 태평양을 건너가서라도 만나야 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찾아가 돌봐주세요. 그 사람이 흘린 눈물만큼 함께 울어주세요. 오늘이 세상 마지막 날이라고 해도, 그 사람 하나 살리고 떠난다 생각해주세요. 거절하면 안 됩니다.    
 
상처 입은 사람이 소중하듯이, 자매님 역시 소중합니다. 스스로를 지키고 보호할 수 없다면 언젠가는 촛불처럼 닳아 없어질 거예요. 인생은 불꽃놀이가 아닙니다. 잠시 피웠다 꺼지는 불이 되지 마세요. 연료를 아껴 써야 추운 겨울 잘 보낼 수 있습니다. 차디찬 세상을 따뜻하게 녹여주는 난로가 되어주세요.  

나는 지극히 정상이야

“정상적인 삶을 원했어요. 제 인생이 이 정도로 망가질 줄은 몰랐죠.” 
 
O는 마흔한 살, 결혼 12년 차, 두 딸의 아빠다. 그는 우울증, 분노 조절 장애가 있는 아내와 사는 것이 힘들다고 말했다. 결혼 초부터 아내의 정신적인 문제가 심각해보였다. 
 
부부 싸움을 했던 어느 날, 아내는 안방으로 들어가 울부짖으며 옷장 안에 있는 옷들을 꺼내 가위로 자르고 손으로 찢기 시작했다. 그가 그만하라고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그녀는 무서운 눈으로 그를 노려보더니 가위로 위협했다. 
 
그날 이후, 부부 싸움 할 때마다 이상한 행동을 했다. 신발을 모조리 꺼내 현관문으로 던진다든지, 다리미로 문을 부순다든지. 아내에게 정신질환이 생긴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남편은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 힘들고 답답한 마음이 들 때마다 새벽에 교회에 가서 기도했다. 12년 동안, 아내를 위해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침묵하셨다. 더 이상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목 놓아 우는 순간,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셨다.
 
‘상처 많은 딸을 네게 맡겼으니 절대로 버리지 마라.’
 
그는 더욱 힘을 냈다.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목사님을 비롯한 교회 사람들에게 아내의 상황을 알렸다. 아내에게 상담을 받자고 설득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거절했다. 
 
아내의 반발은 갈수록 심해졌다. 남편은 다른 사람들에게 아내 문제를 말하고 동의 없이 상담을 신청했다. 아내는 분노했다.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 그녀를 볼 때마다 남편은 속이 터졌다. 견딜 수가 없어서 혼자 상담실을 찾아왔다. 
 
“제가 바라는 것은 기본적인 것들이에요. 아이가 아프면 엄마가 밥에 물이라도 말아 먹이고, 그 다음 약을 먹여야죠. 아내는 애가 아파도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어요. 제가 뭐라도 좀 먹어야 하지 않겠냐고 하면 아내가 기다렸다는 듯 말합니다. ‘당신이 해. 당신은 손이 없어 발이 없어?’ 제가 ‘그건 당신이 좀 해줘야지’라고 해도 아내는 눈 하나 깜짝 안 해요. 답답하니까 제가 편의점에 가서 삼각김밥을 사와서 먹여요. 이게 정상입니까?”
 
그는 반복적으로 아내의 문제 행동에 대해 말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저는 아내가 화장실에서 뭘 하고 있는지 몰랐어요. 그런데 갑자기 딸이 배가 아프다는 거예요. 너무 급하다고 해서 아내에게 화장실 문을 열어달라고 했죠. 아내는 안 된다고 해요. 너무 화가 나서 아내에게 당장 문을 열라고 했는데도 안 열어줘요. 
 
아이가 울려고 하기에 손잡이를 힘으로 비틀어 열었죠. 아내가 당황하더라고요. 제가 아내에게 막 뭐라고 했어요. 그것  하나 때문에 아내가 일주일 내내 말을 안 하더라고요. 저는 그런 아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어요.” 
 
남편이 계속 말했다.
 
“명절에 제 어머니, 여동생, 아내와 어디 다녀올 일이 있었어요. 운전하는데 길이 막혀 제가 짜증이 난 상태였어요. 그런데 아내와 여동생이 별 것도 아닌 일로 예민하게 대화를 하는 거예요. 서로 싸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아내에게 그만하라고 했더니 저를 째려보더라고요. 여동생보다 아내가 나이가 더 많아요. 언니가 참는 게 당연하죠. 아내가 뭐하는 짓이냐고 따지기에 그만하라고 했어요. 아내는 멈추지 않았죠. 시어머니 앞에서 못하는 말이 없더라고요. 
 
저를 막 비난하는 거예요. 참을 수가 없어서 갓길에 차를 대고 아내에게 소리를 질렀어요. ‘제발, 그만하라고!’ 아내는 혼자 막 울더니 차에서 내렸어요. 그러고는 반대편 도로 쪽으로 건너가더니 골목으로 쏙 들어가 버리는 거예요. 미칠 노릇이었죠.” 
 
교회 모임에서 그가 마음을 열고 고민을 나누면, 교회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했다. 
 
“고생이 많다. 아내를 위해 기도하자. 언젠가는 변화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기도에 응답해주실 것이다.”
 
사람들이 위로해줬지만, 그는 위로받지 못했다. 도저히 버틸 수 없어 포기하고 싶은 생각 찾아올 때, 하나님이 그에게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상처 많은 딸을 네게 맡겼으니 절대로 버리지 마라.’ 
 
그는 생각했다. 힘들다고 아내와 이혼하면 하나님 말씀을 어기는 것이다. 아내만 변화된다면 그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그는 더욱 간절히 기도했다. 
 
그는 반복해서 말했다. 아내가 상처 많은 사람이라 계속 문제가 일어난다고. 어린 시절, 그녀는 엄마에게 신체적 학대와 언어폭력을 당했다.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 않았는지 아내는 엄마 얼굴을 보지 않는다. 남편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아내와 장모님의 관계는 나아지지 않았다. 
 
남편은 아내가 장모님을 용서하지 않으면 좋은 엄마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더 이상 시간 끌지 말고 엄마를 용서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내가 아이들에게 던지는 거친 말들이 거슬렸기 때문이다. 
 
“그만해! 너네 미친 거 아니야? 누구 닮아서 저러는 거야.” 
 
아내 입에 습관처럼 달라붙은 말이다. 거친 말을 들을 때마다 피가 거꾸로 솟는다. 그녀는 자신이 상처 입은 사람이라는 것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남편 역시 역기능 가정에서 성장했다. 그의 아버지는 술에 취하면 가정 살림을 부수거나 어머니를 때렸다. 폭력적인 아버지 모습을 보면서 청소년기에 방황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했고, 그는 어머니를 따라 집을 나왔다. 
 
남편은 자신 안에 상처가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 상처를 신앙의 힘으로 극복했다고 말했다. 군대 생활을 포함한 다른 어떤 대인관계에서도 화를 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상처 많은 가정에서 자랐지만, 그 상처를 극복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확신이 있는 듯 했다.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일주일 전에 부부 싸움을 하고 아내가 집을 나갔어요. 인도네시아로 가버렸어요. 거기에 아는 선교사님이 계시거든요. 지금 아이들이 방학 기간도 아닌데 혼자 가버리니까 어처구니가 없죠. 
 
제가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어머니, 장모님이 교대로 아이들을 봐주고 계세요. 깊이 고민하고 있어요. 결혼생활을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아내 얼굴을 다시 보게 되면 미쳐버릴 것 같아요. 저는 아무리 힘들어도 버텼는데 아내는 힘들다고 아이들을 버려두고 다른 나라로 떠나버렸어요. 엄마가 아닌 거죠. 
 
아내에게 연락이 오기는 했어요. 한 달 뒤에 다시 돌아올 거라고.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다고 말하네요. 미쳐버릴 사람은 아내가 아니라 접니다. 이제 정말 그만하고 싶어요.”
 
아내가 집 나가기 전날 밤, 남편은 이성을 잃었다. 아내가 침대에 누워 휴대폰으로 게임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 짜증이 났다. 남편은 아내에게 말했다. 
 
“내일 새벽 출근해야 하니까, 아이들 재워주고 와.”
 
아내는 아직 잘 시간이 아니라고 말했다. 세탁기 타이머가 10분 정도 남았으니까 조금 있다 재운다고 했다. 그는 아내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아 벽에 던져버렸다. 아내도 지지 않았다. 남편의 노트북을 바닥에 던져버렸다. 노트북이 산산조각이 났다. 남편은 이성을 잃고 베란다에서 락스를 꺼내왔다. 그것을 방바닥에 뿌리면서 말했다. 
 
“우리 같이 죽자. 더 이상 살아서 뭐해. 이렇게 살 수는 없잖아.” 
 
락스의 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의 아내는 하얗게 질렸다. 다음날, 남편이 출근한 틈에 아내는 남편 곁을 떠나버렸다. 
 
***
 
그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논리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끊임없이 주장한다. 
 
“나는 항상 옳다.” 
 
아마  교회 사람들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이 그의 아내를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남편 입장에서 그의 아내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아내의 이상 행동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그의 아내를 만날 기회가 없었기에 추측할 뿐이다. 남편의 유창한 말은 아내를 끔찍한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아내의 이상 행동은, 사람의 감정이 극단적으로 억눌렸을 때 나타는 행동이다. 손으로 옷을 찢거나, 다른 물건으로 문을 부수는 행동은 억눌린 감정을 표출하기 위한 생존수단이다. 
 
안전핀이 빠진 수류탄을 혼자 끌어안고 있다가 내면이 여러 번 산산조각 난 아내는 수류탄을 밖으로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야 그녀도 사니까. 아내의 폭력적인 행동을 정당화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녀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살핀 것이다. 
 
남편과 대화하면 아내는 벼랑 끝에 몰린다. 남편은 싸울 때마다 아내의 감정을 무시하고 오직 이치에 맞는 말, 논리적인 대화만을 원한다. 말 잘하는 남편과 말싸움을 하면 아내는 불리하다. 승자는 언제나 남편이다. 
 
그에게 조용히 묻고 싶다. 그렇게 말을 잘할 필요가 있을까? 또박또박 유창한 말을 하면서 아내를 짓밟고 나면 무엇이 남는가?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물러서고 싶지 않은 마음은 안다. 아내를 짓밟을 의도가 없다는 것도 안다. 그렇다면 당신의 의도는 무엇인가? 진지하게 생각해보라.  
 
남편은 반복해서 말했다. 
 
“나는 정상적인 가정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비정상적인 가정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보이지 않는 문장이 하나 숨어 있다. 
 
“나는 지극히 정상입니다.”
 
이 문장을 앞의 두 문장 사이에 끼워 넣으면 그의 신념을 분명이 알 수 있다. 
 
“나는 정상적인 가정을 원했습니다. 나는 지극히 정상입니다. 그러나 비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결혼생활을 파괴하고 있던 왜곡된 신념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 신념의 실체는 다음과 같다. 
 
“나는 정상적인 가정을 원했습니다. 나는 지극히 정상입니다. 그러나 비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내가 정상이 아니거든요.”
 
남편은 무의식 중에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있다. 
 
“내 아내는 정상이 아니에요. 당신도 그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고통 받고 있는지 아셔야 해요. 내가 비정상적인 여자와 결혼을 해서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하기 위해 얼마나 헌신적으로 노력하는지. 저는 신앙의 힘과 강한 의지력으로 이혼하지 않고 버텨왔습니다. 당신도 이것을 인정해줘야 합니다. 하나님도 인정하셨거든요. 상처 많은 아내를 위해 내가 얼마나 희생하고 있는지.” 
 
남편은 정상이고, 아내는 비정상이라는 말은 전혀 근거가 없다. 여기 등장하는 남편뿐만 아니라 많은 부부가 자신이 아닌 배우자에게 문제가 있다고 근거 없는 결론을 내린다. 
 
“나는 문제가 없어. 당신이 문제야.”  
“제가 왜 상담을 받아요? 저는 문제가 없어요.” 
“왜 저한테 뭐라고 하세요? 저는 잘못이 없는데.” 
“아무리 노력하면 뭐합니까? 저 사람은 노력하지 않는데.” 
 
부부 상담은 개인 상담보다 효과가 낮은 경향이 있다. ‘비난할 대상’이 눈앞에 있기 때문이다. 
 
결혼 전 남녀는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의지를 가진다. 부모에게 받은 상처, 다른 사람에게 받은 상처, 어찌되었건 피해자는 자신이다. 그것을 극복하지 않으면 피해를 입는다는 것을 안다. 상처를 인정하고 그것을 돌보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부부 상담은 다르다. 비난할 대상이 바로 눈앞에 있기 때문에 문제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음을 인정하기 어렵다. 
 
“잘못한 사람은 바로 접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제게 있습니다. 저만 변화되면 우리 가정은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다 제 잘못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나는 아직 한 번도 만난 본 적이 없다. 
 
남편이 아내보다 월등히 성숙한 사람이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남편 말이 사실이라면, 아내가 아무리 상처 많은 사람이라도 결혼생활 12년 동안 치유되고 성장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아내의 상처가 악화된 것처럼 보인다. 없던 상처도 생긴 것 같다. 그러므로 남편의 말은 사실이 아니다. 
 
남편은 아내보다 월등히 성숙한 사람이 아니다. 남편과 아내, 두 사람에게 책임이 있다. 그 증거가 현재 둘의 상황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남편의 폭력적인 성향이 아내를 두렵게 했고, 아내는 남편과 아이들을 내버려두고 다른 나라로 떠나버렸다.  
 
하늘에서 내린 비는 낮은 곳에 고인다. 높은 곳에는 절대로 물이 고이지 않는 법이다. 참회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있는 말이다. 참회하는 사람만이 성장할 수 있다. 참회를 모르는 사람에게 은혜가 임할 자리는 없다. 
 
은혜가 사라진 기독교는 종교가 되어버린다. 내용은 사라지고 형식만 남은 껍데기가 되는 것이다. “자기 의로움을 주장하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입증하라”라는 교리는 기독교에 없다. 
 
‘상처 많은 딸을 네게 맡겼으니 절대로 버리지 마라.’ 
 
남편이 마음에 간직한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닐 것이다. 자기 의로움에서 비롯된 말이다. 자기 위선이 하나님 말씀으로 위장하는 순간, 행복은 더욱 멀어진다. 
 
“차라리 속이 시원하네요.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거든요. 주위 사람들은 제가 옳다고 말했죠. 이제 알 것 같아요. 왜 그렇게 아내가 힘들어했는지. 맞아요. 제 잘못도 있어요. 100퍼센트는 아니지만. 어떻게 그 사람에게만 잘못이 있다고 말하겠어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그의 말이 진심이기를 바랄 뿐이다. 그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 적나라하게 지적해달라고 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그의 진심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수술대에 누워있는 환자가 의사에게 “다른 부위에도 암이 퍼졌다면 모조리 제거해주세요”라고 말할 때, 알겠다고 말하는 의사는 없을 것이다. 
 
수술 부위를 열었을 때, 암이 사방팔방 퍼져있으면 일단 덮는 것이 맞다. 여기저기 헤집다가 봉합도 못한 채 환자가 깨어난다면, 그것은 재앙이다. 보인다고 다 떼어낼 수는 없지 않은가. 한 번에 하나씩이다. 환자가 여러 번 수술대 위에 눕더라도 천천히 가야 한다. 
 
시간이 없다면 악성 종양부터 떼어내자. 악성 종양은 ‘자기 우월감’이다. 빨리 떼어내지 않으면 ‘결혼’이라는 환자는 죽는다.        

더 이상 희생하지 마세요

가족을 위해
희생하지 말고
자신을 돌보세요.
 
안돼요.
그럴 수 없어요.
 
나 하나 희생하더라도
가족이 살 수 있다면
나는 괜찮아요.
 
예수님도
말씀하셨잖아요.
 
내가 밀알처럼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오열하는 그녀의 눈물을
누가 닦아줄 수 있을까요.
 
나는 먼저
그녀의 아픈 마음을
위로하고 싶어요.
 
눈물이 마르고
마음이 진정되면
말해주고 싶어요.
그 말씀의 의미를.
 
밀알의 비유는
우리에 대한 명령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에 대한 예고였어요.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많은 생명이 살아날 것이란 의미에요.
 
당연히, 우리도 예수님처럼 살아야죠.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이 아니랍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셨지만,
내가 가는 길을
너희가 결코 따라올 수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내가 주는 잔을 마시라고 하셨지만
내가 마시는 잔을
결코 마실 수 없다고 하셨어요.
 
예수님을 따르기는 하지만,
예수님이 될 수는 없는거죠.
 
밀, 길, 잔.
모두 예수님의 죽음을
예고하는 말이에요.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죽어야 하지만,
우리가 죽어도 예수님의 죽음과는 다르죠.
 
나는 당신에게
말하고 싶어요.
 
가족을 위해 희생할 사람은
당신이 아니에요.
 
가족을 위해 희생할 사람은
더 이상 필요 없어요.
 
예수님이 이미 희생하셨어요.
단번에 완전히 희생하셨죠.
 
당신이 아무리 희생해도
예수님 자리를 대신 할 수 없어요.
 
예수님이 되지 마시고
예수님과 하나가 되세요.
 
어떻게 예수님과 하나
될 수 있나요.
 
예수님은 땅에 떨어진
한 알의 밀이에요.   
썩어져 죽으셨어요.
 
그리고,
예수님은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진
생명의 떡이에요.
다시 살아나셨어요.   
 
밀은 땅에 떨어져 썩어서
많은 열매를 맺고
생명의 떡이 되었죠.
 
예수님이 말씀하셨어요.
나는 생명의 떡이다.
이 떡을 먹으라.
영원히 살 것이다.
 
생명의 떡을 먹으면
예수님과 하나 되어
영원히 살아요.
 
이제는 더 이상 죽지 마세요.
죽을 필요 없어요.
 
살아나세요.
더욱 살아나세요.
 
죽고 싶을 때마다
생명의 떡을 먹으세요.
그래야 살아요.
 
당신이 죽으려 할 때마다
예수님이 되려고 하는 거예요.
 
생명을 떡을 먹을 때마다
예수님과 하나 되는 거예요.
 
예수님이 되지 마시고,
예수님과 하나가 되세요.
 
예수님과 하나 된 당신은
올바른 방식으로
가족과 마주할 거예요.
 
가족을 위해 희생하지 말고
가족을 사랑하세요.
 
희생 대신
사랑을 선택할 때
당신도 살고
가족도 살 수 있답니다.

나는 갈등이 싫어요

나는 갈등이 싫어요.
혼자 참아요.
 
거절당할까 두렵고.
버림받을까 두렵고.
상황 달라질 리 없고.
그러니까 참죠.
 
가끔 답답해요.
나를 너무 쉽게 보는 거 아니야.
나를 얼마나 우습게 생각하면
저런 말을 하지.
말 안 하니까 더 그러나.
 
마음 단단히 먹고 내 말 하고 싶죠.
교회에서 배운 게 있잖아요.
순종해라. 참아라.
빛과 소금 되라.
말문이 막혀요.
 
뭐가 옳은 걸까요.
평생 이렇게 살 수는 없잖아요.
이러다 내가 죽겠어요.   
 
참지 마세요.
뭣 하러 참아요.
생각나는 대로 말하세요.
그 사람 상처받는 말든 독한 말 쏟아부으세요.
 
내가 상처받았는데
다른 사람 배려할 일이 뭐예요.
욕하고 싶으면 욕하고
소리 지르고 싶으면 소리 지르세요.
 
그 사람 말고 하나님께.
놀라셨죠?
하나님께 먼저 말하세요.
사람 말고.
 
복싱으로 몸 푸는 사람
샌드백 먼저 쳐요.
프로 선수는 감정으로
주먹 휘두르지 않아요.
상대방의 움직임을 보고
정확히 주먹을 꽂아요.
 
자기 생각 말하기 전에
샌드백 먼저 치세요.
하나님, 이 말 해야 할까요.
잽 잽 잽.
그래, 이번에는 말하자.
라이트 훅.
그래, 이번에는 참자.
블로킹.
 
사람이 내 마음 알아주나요.
어림없어요.
기대한 만큼 실망해요.
하나님이 내 마음 알아주시죠.
솔직히 말하세요.
 
하나님 앞에서
다른 사람 욕하는 게 이상한 가요.
하나님 앞에서
착한 척하는 게 더 이상해요.
 
시편 자세히 읽어보세요.
다른 사람 욕으로 꽉 찼어요.
참 신기하죠.
욕으로 시작한 기도가
찬양하는 기도로 끝나요.
하나님께 말하고 털어버리는 거죠.
원수를 대신 갚아주신다는 데
다른 말 더 필요한가요.
 
하나님께 말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질 거예요.
마음이 편해지면
판단할 수 있을 거예요.
이건 말해야 한다.
이건 말할 필요 없다.
 
절대적인 기준 없어요.
말 많이 하는 사람에게는
참으라고 하실 거고
말 안 하고 참는 사람에게는
참지 말라고 하실 거예요.
 
잘못된 판단이면 어떻게 하냐고요.
괜찮아요. 정확한 판단은 못 내려요.
실수해도 하나님이 돌봐주세요.
우리 하나님 해결사예요.
 
가시 빼고 말하는 사람 당당해요.
감정에 휘둘리지 않거든요.
거절 당해도 타격 없어요.
 
그냥 그랬다는 거죠.
그래서 화났다는 것도 아니고.
의도는 없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는 데
상대방이 뭐라 말하겠어요.
내가 느낀 감정인데
그렇게 느끼지 말라 하겠어요.
 
꾸준히 샌드백을 치세요.
나도 쉬지 않고 샌드백을 쳐요.
못한 말 산더미 같은데
어디 말할 데가 없어서.
한바탕 땀 흘리면 시원해져요.
 
가끔 링 위에 오르잖아요.
내던진 주먹 빗나가도 자책 마세요.
용기 내서 주먹 날린 자신을 축하해주세요.
 
역습 당해 쓰러지면 어떻게 하나고요.
열 셀 때까지 일어나면 되죠.
만약 못 일어나면요?
괜찮아요. 누워서 잠시 쉬세요.
 
패배를 깔끔하게 인정하는 사람,
그 사람이 진정한 승자에요.
더욱 강해져 돌아올 테니.

남자친구에게만 화를 내요

저는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지 않아요. 하지만, 남자친구에게는 예외에요. 답답하고 짜증 나면 나도 모르게 화를 내고 막말을 하거든요. 고치고 싶은데 고치기 어려워요. 
 
솔직한 질문 감사드립니다. 먼저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자매님은 지극히 정상입니다. 자신을 비난할 필요 없어요. 쉽지 않겠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로 풀어갈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남자친구는 다릅니다. 자신을 이중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다른 사람에게는 쉽게 화내기 힘듭니다. 다른 사람들은 자매님에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서 그래요. 
 
남자친구는 자기 자신의 일부에요. 자기 자신과의 상호 작용이 남자친구에게 반영됩니다. 진지하게 오랜 시간 만났다면, 남자친구가 가족처럼 느껴집니다. 다른 사람들과 관계의 수준이 다릅니다. 
 
아이들만 부모와 애착되는 게 아니라 연인끼리도 애착됩니다. 연인 사이에서 애착이 깨지면 부모를 잃은 아이처럼 고통스럽지요. 연인과 헤어진 슬픔이 가족을 잃은 슬픔과 별반 다르지 않아요. 
 
사람은 애착이 된 대상에게 안정감을 느끼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남자친구에게 안정감을 느끼는 게 쉽지 않아요. 항상 좋은  감정으로 만날 수도 없고, 좋은 말만 할 수 없습니다. 
 
화를 내면 후회가 밀려오겠지요. 그렇다고, 구호를 외치지 안 됩니다. “화내지 말자. 화내면 나쁜 사람이다. 내가 이것밖에 안 된다. 아, 또 화내고 말았다.” 진실이 아닙니다. 감정을 차단하지 마세요. 자매님은 기계가 아닙니다.  
 
화내지 말자,라는 명령어가 사람에게 입력되면 고장 납니다. 화난 감정을 막을 게 아니라 화난 감정을 적절히 표현하는 방식을 배워야 해요. 감정 자체가 아니라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합니다.  
 
화난다고 대화를 피하면 안 됩니다. 힘들어도 대화는 계속해야 합니다. 화난다고 상대방을 윽박지르거나, 자리를 박차고 나가면 대화가 끊어지겠지요. 
 
같은 일로 다툼이 반복된다면, 남자친구를 아무리 말해도 못 알아듣는 멍청이로 만들지 마시고,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확인해보세요. 그 상황을 바라보는 자매님만의 독특한 관점이 있을 겁니다. 그게 뭔지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면, 갈등을 통해 서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의사소통합니다. 남자친구가 자매님의 말을 이해 못 한다고 낙심하지 마세요. 서로의 말을 해석하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어요. 서로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안정될 겁니다. 
 
연인 관계는 원래 힘든 겁니다. 포기하지 말고 대화해주세요.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잘못하는 게 아닙니다. 갈등은 과정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남자친구와 공유해주세요. 
 
화낸 다음 날은 미안하다는 뜻으로, 평소보다 여유 있게 남자친구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세요. 남자친구도 하고 싶은 말이 있을 테니까요. 서로 주고받는 말 너머에 진심을 바라보세요. 서로의 진심을 알게 되면, 두 사람 행복해질 겁니다.

존재를 공격하면 답이 없다

“어머니가 왜 말도 하지 않고 갑자기 우리집에 오신다는 거야? 당신은 알고 있었어?” 
아내가 말했다. 
“어젯밤에 말씀하시더라.” 
남편이 말했다.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어차피 당신이 알면 못 오시게 할 거 아니야?”
“그래도 말을 해줬어야지.”
“말하면? 다음에 오시라고 할 게 뻔한데, 뭐.”
“황당하네. 나도 쌓인 게 있으니까 이러는 거 아닐까?”
“나도 장모님한테 항상 감사한 것만 있는 건 아니야. 착각은 안 했으면 좋겠네.”
“우리 엄마한테 서운한 게 있다고?”
“당신이 우리 엄마를 그렇게 무시하는데 내가 당신 부모님에게 잘하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지.”
“당신은 정말 이기적인 인간이야. 소름끼친다.”
“당신도 나중에 시어머니 될 거 아니야? 그때 후회하지 말고 지금부터 잘해.”
 
V는 두 아들을 둔 결혼 11년 차 아내다. 남편은 집집마다 담장이 없어 남의 집을 자기 집 드나들 듯 하는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자랐다. 공부를 잘해서 시골에서 도시로 유학을 갔다. 부모님은 소 키우고 농사지은 돈으로 아들을 키웠다. 
 
도시로 한 번 나온 아들은 명절 이외에는 부모님을 찾아볼 여유가 없었다. 열심히 살았고 결과도 좋았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출퇴근이 편하고 학군이 좋은 신도시에 자리를 잡았다.
 
신혼 초부터 그녀는 시부모님 때문에 힘들었다. 시어머니는 아들이 시골에 자주 내려오지 못하는 게 서운했는지 며느리에게 자주 전화했다. 시골에 한 번 내려오라고. 며느리 역시 일을 해서 여유가 없었다. 주말에 남편과 보낼 시간도 빠듯했다. 주말이 되면 거실에 누워서 남편과 영화를 보면서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 것이 유일한 기쁨이었다. 
 
시어머니의 잦은 전화가 부담스러워 부부는 시골에 내려갔다. 시어머니가 남편을 반겨주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싸늘했다. 주말 내내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서운한 감정을 내비쳤다.
 
“니 서방이 바쁘니께 너라도 한 번씩 내려와야 하는 거 아니냐? 아니면 날을 정해서 언제 같이 올 것이라고 말을 해주든가. 명절에만 보는 것은 예의가 아니여. 그렇게 사는 게 아니다.”
 
아내는 답답했다. 남편에게 할 말을 왜 자신에게 하는지 황당했다. 남편은 애지중지, 그녀는 찬밥 신세다. 남편은 애써 미안한 표정을 보이며 어쩔 줄 모른다. 눈치는 있다. 주말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당신 엄마가 나 쳐다보는 거 봤어?” 
그녀가 말했다. 남편은 침묵했다.  
“왜 말이 없어? 어떻게 나한테 이러실 수가 있어? 내가 진작 내려가자 했잖아. 그때마다 바쁘다고 한 건 당신이고.” 
“그만해.”
“당신은 양심도 없어?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
“나도 몰라. 당신이 알아서 해!”
“답도 없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뭐해.”
“무슨 답이 없어? 당신이 해결할 의지가 없는 거지!”
“그만하라고!”
 
갈등은 점점 깊어졌다. 아내는 두 번 다시 시골에 내려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남편은 아내를 두고 혼자 시골에 내려갈 수는 없었다. 아내는 시어머니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벨 소리는 남편 전화로 옮겨갔다. 남편은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다음에 내려간다고 했다. 시어머니가 전화하신 날이면 두 사람 사이가 얼어붙었다. 
 
주말 어느 날, 아내는 평소처럼 속옷차림으로 집에서 영화를 보고 있었다. 초인종이 울렸다. 택배기사 같았다. 안에서 밖으로 소리쳤다. 문 앞에 두고 가라고. 그런데 문 밖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택배기사가 아닌 시어머니였다. 
 
남편이 문을 열어주고, 아내는 급하게 들어가 옷을 입고 나왔다. 시어머니 두 손에 시골에서 가져온 음식이 잔뜩 들려있었다. 남편은 어머니가 서운해하실까봐 황당한 내색을 하지 않았다. 주말 내내 어머니가 편히 쉬고 가시도록 최선을 다했다. 아내는 밀려난 기분이었다. 시어머니가 계신 내내 집안일에 정신이 없었다. 
 
전쟁 같은 주말이 지나고 시어머니가 시골로 내려가셨다. 그날 밤, 둘은 크게 다퉜다. 아내는 이런 일이 또 한 번 일어나면 이혼하겠다고 말했다. 남편도 죽을 맛이었다. 어머니 생각을 바꿀 수는 없었다. 평생 그렇게 살아오셨다. 자식이 얼마나 보고 싶으면 찾아 왔겠나 싶었다. 
 
어머니가 아내를 배려해주면 좋겠지만 어머니는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다. 잘 해주라고 아무리 부탁해도 소용없다. 남편은 아내에게 서운하다. 한 번 참으면 되는데 한 번을 참지 않는다. 싫은 티를 낸다. 여자들이 감정에 얼마나 민감한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서 남편은 난감했다.
 
아내는 남편의 태도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더 적극적으로 시어머니와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고. 자신과 시어머니 사이에 앙금을 풀어주고 새로운 관계를 위해 그가 노력해주기 바랐다. 아무리 미워도 시어머니는 남편을 낳아주고 길러주신 분이 아닌가! 잘 지내보고 싶었다. 
 
***
 
왜 두 사람은 서로 상처 주는 말을 할까? 아내는 남편에게 좋은 방법을 찾아보자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를 비난한다. 아내의 의도와 달리 남편은 다른 방식으로 그녀의 말을 받아들인다. 아내가 말한다. 
 
“어머니가 왜 전화 없이 집에 오신 거야?” 
사실을 묻는 것이다. 그러나 남편에게는 다르게 들린다. 
“당신 엄마는 왜 교양 없이 전화도 하지 않고 우리집에 막 찾아오시고 그래?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거야?” 
아내는 남편에게 상처 줄 의도가 없다. 그러나 상처가 된다.  남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아내 말을 오해한 남편은 말한다. 
“엄마가 아들 집에 오시는 게 뭐 어때서?” 
남편의 의도는 분명하다. 
“당신이 이해주면 안 돼?” 
그러나 아내는 남편 말을 듣고 오해한다. 그녀에게는 남편의 말이 전혀 다르게 들린다. 
“엄마가 아들 집에 오시는 게 당연한 거니까, 평생 그렇게 살아. 시어머니 대접 똑바로 하고. 알겠어?” 
남편이 의도한 게 아니다. 아내가 남편 말을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조차 못한다.  
 
핵심은 단순하다. 서로 상처 줄 의도가 없다는 것이다. 의도가 없어도 상처 받는다. 공을 던진 사람이 사람을 다치게 할 의도가 없어도, 사람이 공에 맞으면 다친다. 아프고 상처가 된다. 그럼 어떻게 할까? 공 던지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사람에게 맞지 않도록, 다치지 않도록 던지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공 던지는 방법을 제대로 배워야 한다. 원하는 방향으로 공이 정확히 날아가도록.
 
두 사람이 던지는 공은 잘못된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다. 공의 방향이 서로의 존재를 향하고 있다. 서로의 존재를 향해 날아가는 공은 상대방 인격을 향한다. “너는 그런 사람이야”라고 외치는 순간, 갈등이 일어난다. 상대방 반응이 뻔하다. “아니, 난 그런 사람이 아니야”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공이 날아가는 방향은 서로의 존재가 아닌 서로의 문제 행동에 맞춰져야 한다. “그 행동이 문제야”라고 말한다면, 배우자의 문제 행동에 대해 대화할 수 있다. 그러나 존재를 향하는 대화는 관계를 파괴한다. 억지스럽더라도 단순하게 표현해보면 다음과 같다. 
 
“당신은 그런 사람이야.” 
아내가 말한다. 
“나, 그런 사람 아니야.” 
남편이 말한다. 
“아니, 당신 그런 사람이야!”  
“아니야, 나 그런 사람 아니라고!” 
“아니, 아니라고! 당신은 그런 사람이야. 예를 들어 볼게. 이 상황에서 그랬지? 저 상황에서도 그랬지? 그러니까 당신은 그런 사람이라고!” 
“아니야! 그 상황도 오해고, 저 상황도 오해야. 그러니까 난 그런 사람 아니지?”
“당신은 그런 사람이 맞다고! 인정해! 빨리 인정하라고! 당신은 그런 사람이야!!”
“난 그런 사람 아니야! 당신이 잘못 알고 있어!” 
 
원래 말하고 싶던 주제는 사라졌다.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사라지고 서로 비난하고 있다. 서로 찌르고 찔리는 잔혹한 대화를 하는 것이다. 
 
존재를 공격하면 답이 없다. 배우자의 행동에 집중해야 한다. 배우자의 행동이 불만이라면 행동에 대해서만 말하자. “그런 행동을 하니까 그런 종류의 사람이다”라는 접근은 절대금지다. 
 
존재가 아닌 행동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두 사람이 말하는 방법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 마치 유학을 떠나서 모국어 대신 새로운 외국어를 배우는 것처럼 부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대화법을 배워야 한다. 주어를 변화시켜보자. 많은 부부는 “당신, 너”라는 말로 대화를 시작한다. 시작부터 공격적이다. 
 
“당신은 그런 사람이야. 그러니까 당신은 이렇게 해야만 해!”
 
상대방은 공격에 맞서 방어하는 자세를 취한다. 어떤 말이든 받아친다. 잘못을 인정할 가능성은 제로다. 그러나 주어를 “나”로 바꾸면 다른 상황이 전개된다. 내가 느낀 감정, 내가 원하는 것을 전하게 된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거야. 만일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다면  나는 이런 감정을 느낄 것 같아”라고 말한다. 상대방을 공격하는 말이 아니다. 공격하지 않으니 방어하지 않는다. 다른 의미로 전달된다. 
 
“나는 어머니가 연락도 없이 오면 당황스러워. 그냥 그렇다고. 당신이 내 마음을 이해줬으면 좋겠어. 만일 당신이 날 이해한다면 난 사랑받는다고 느낄 것 같아.” 
 
그뿐이다. 대화 끝이다. 배우자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고 싶다면 먼저 새로운 언어 방식을 익혀야 한다. 배우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그대로 배우자에게 전달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전달하는 방식을 잘 배우고 연습하지 않으면, 대화 중간에 왜곡된 의미가 전해질 것이다. 
 
올바른 전달 방법을 배우고 연습하자. 표현 방식이 달라지면  배우자의 반응도 달라진다. 언어를 새로 배우는 것은 훈련이고 연습이다. 하루아침에 실력이 쌓이는 것이 아니다. 오래 걸린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끊임없이 말하고 연습하자. 
 
모든 부부는 서로 사랑한다.
진심이 전해지지 않아 상처받을 뿐이다.

위로 받아야 할 사람은 당신이야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요. 차라리 제가 없는 게 낫겠죠.”
 
C는 사십 대 중반의 가장이다. IT 기업 영업 부서에서 일한다. 아내 권유로 상담 받기 시작했다. 그는 13년 동안 우울증으로 고통 받았다. 오랜 불면증에 시달린 그는 창백해 보였다. 핏기 없는 입술은 “만사가 귀찮으니 나를 좀 내버려 둬”라고 말했다. 아내는 남편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두려웠다. 남편에게 상담 받자고 애원했다. 
 
“남편은 밝고 명랑한 사람이었어요. 대학 졸업하고 남부럽지 않은 회사에 들어갔고, 우린 결혼했죠. 회사 생활도 재미있게 했어요. 밝은 모습으로 퇴근했던 남편이 기억나요. 어느 날부터, 남편이 잠을 설치기 시작했어요. 옆에서 조금만 움직여도 짜증을 내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10년 넘는 시간 동안 우울한 기분으로 사는 것 같아요. 
 
일주일 두세 번은 자기 방에 들어가 방문을 닫고 나오지 않아요. 딸이 아빠 뭐 하냐고 문을 열면 불같이 화를 내요. 좋을 때는 일주일에 하루 정도? 그날은 가족이 같이 저녁을 먹고 대화하고 그래요.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고 싶어서 남편을 관찰했죠. 방법을 찾고 싶었어요. 모르겠더라고요. 남편이 자기 세계로 들어가면 우린 감옥에 갇힌 것 같아요. 걷는 것도 조심하고, TV소리도 줄이고.
 
이 사람이 얼마 전부터 죽고 싶다는 말을 반복해요. 제가 울면서 그러지 말라고 아무리 부탁해도, 멈추지 않아요. 자기가 죽어도 슬퍼할 사람이 없을 것 같다고. 나와 아이들은 어떻게 하냐고 하니까, 유서에 써 놨다고 해요. 경제적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거라고 하면서. 돈이 문제가 아니잖아요. 이 사람이 없으면, 저와 아이들은….” 
 
그녀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 
 
남편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작은 건어물 가게를 운영했고, 어머니는 몸이 아파 집에 누워있는 날이 많았다. 아버지 수입은 대부분 어머니 병원비로 들어갔다. 형, 누나가 있었지만,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많았다. 그는 언제나 몸이 아파 누워있는 엄마 옆을 지켰다. 
 
초등학교 5학년 어느 여름날이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온 그가 엄마를 살폈다. 엄마 몸이 뜨거웠다.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불안했고 무서웠다. 아버지에게 전화했다. 응급차가 도착했다. 주황색 옷을 입은 남자 두 명이 집으로 들어왔다. 엄마를 들고나갔다. 엄마를 본 마지막 장면이었다. 
 
아버지는 가게 문을 닫고 집에 틀어박혀 있었다. 매일 술에 취해 있었다. 작은 꼬투리 하나 잡히면 그는 아버지에게 사정없이 맞았다. 집에 있고 싶지 않았다. 학교 마치면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놀았다. 집 문 앞에서 아버지가 곯아떨어지기 기다렸다. 아버지가 잠들면 집에 들어갔다. 
 
공부에 흥미가 없었다. 성적은 중하위권에 머물렀다. 새 학기 시작되면서 새로운 담임선생님을 만났다. 엄마와 비슷한 이미지의 선생님에게 호감을 느꼈다. 선생님이 잊을 수 없는 말을 했다. 
 
“선생님이 보니까, 너는 눈이 초롱초롱해. 이해력도 좋은 것 같고, 집중력도 좋은 것 같고. 조금만 노력하면 정말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선생님이 도와줄 테니까 열심히 해보자.” 
 
그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공부했다. 성적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랐다. 다음 학기 전교 1등을 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다니는 동안 최상위 성적을 유지했다. 학교에서 거는 기대가 컸다. 법학과에 진학하기를 원했다. 적성에 맞다고 생각했다. 원서 쓰기 전에 아버지에게 허락을 받아야 했다. 
 
아버지는 노발대발 화냈다. 집이 가난한데 졸업하고 빨리 취직해 돈 벌 생각을 해야지, 언제 사법고시 보고 변호사 되고 돈 버냐고. 옆에 있던 형과 누나도 아버지를 거들었다. 법학과는 돈 많고 배경 좋은 애들이 가는 데지, 너 같은 애들이 가는 데가 아니라고. 그는 집을 뛰쳐나갔다. 달리고 또 달렸다. 학교 운동장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울었다.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졸업할 때쯤 여기저기 원서를 냈다. 오라는 곳이 많았다. 가장 좋은 회사를 선택했다. 입사 1년 차, 아버지가 쓰러졌다. 당뇨가 심각했다. 아버지는 인슐린 대신 술병을 달고 살았다. 병원에서 가망 없으니 집에서 1년 정도 쉬라고 말했다. 형, 누나를 만났다. 아버지를 누가 모실 것인지 이야기가 오갔다. 형이 말했다. 
 
“형, 누나는 지금 가정이 있고 먹고 살기 빠듯하다. 좋은 회사 다니는 네가 결혼하기 전까지 모셔라. 1년 뒤에 아버지 하늘나라 가시고 나면 그때 결혼해도 늦지 않는다.” 
 
그는 말이 많은 성격이 아니다.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는다. 내성적인 사람이다. 침묵했다. 
 
회사 근처 원룸에 아버지를 모셨다. 회사에서 일하다가 점심시간, 저녁 시간, 틈나는 대로 아버지를 확인했다. 외부 출장 가는 날은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는 여자친구, 지금의 아내에게 아버지를 부탁했다. 회사의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면서 아버지를 돌봐야 했다. 아버지 건강은 날로 악화되었다. 
 
아버지를 집에서 돌볼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그는 적금을 깨서 요양병원에 모셨다. 요양 병원에 모시기 하루 전, 그는 술에 잔뜩 취해 집에 들어갔다. 의식 없이 누워있는 아버지 옆에 누웠다.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무엇 때문에 슬픈지 알 수 없었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일까,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일까?  
 
아버지 돌아가시고 석 달 뒤, 아내와 결혼했다. 힘든 시기를 말없이 견뎌준 아내가 고마웠다. 예쁜 딸 하나를 낳았다. 
 
딸이 태어나고 얼마 후, 갑자기 귀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병원에서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치료를 받아도 개선되지 않았다. 상황은 점점 심각해졌다. 윙윙 소리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다. 뜬 눈으로 밤을 새는 날이 계속되었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어도 그 소리가 들렸다. 신경이 예민해졌다. 별일 아닌 일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오늘은 참자 다짐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했다. 사람을 만나는 영업부서에서 대인관계는 특별히 중요했다. 업무에 지장이 생기면서 주눅이 들었다. 가족에게도 예민해졌다. 혼자 방 안에 들어가 문을 잠그는 날이 많아졌다.
 
“가족만큼은 보호하고 싶었어요. 예민해지면 감정을 다스릴 수 없거든요. 아내와 딸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고 나면 죽고 싶은 마음이 생겨요. 사랑하는 가족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아서 제 자신을 방안에 가두고 격리하는 겁니다. 방 안에서 생각하죠. 
 
문을 열고 나가서 딸을 안아주고 싶고, 딸의 볼에 입 맞추고 싶고, 딸의 이야기를 듣고 싶죠.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친구들과 뭐 하고 놀았는지…. 하지만, 그럴 수 없어요. 문을 열고 나가서 성공한 적이 없어요. 제가 나가면 아내와 딸은 하던 일을 멈추고 긴장해요. 딸은 TV를 끄고, 아내는 하던 일을 멈추고 다가와 뭐 필요한 게 있냐고 묻죠. 궁색하게 물 한 잔 마시고 다시 제 방으로 들어옵니다.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어요. 생각을 차단하고 싶어서. 제가 중국어를 배울 필요는 없거든요. 가만히 있으면 미칠 것 같아서…. 그래서 그냥 책을 펴고 보는 겁니다. 물끄러미 책을 보다가 생각해요.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 내가 없어도 아내와 딸은 잘 살아갈 수 있을 거다. 내가 있는 게 두 사람에게 더 큰 고통이다. 남편, 아빠로서 차라리 없는 것이 낫다. 뭐, 이런 생각을 하면… 걷잡을 수 없는 충동이 생깁니다.”
  
***
 
멈추지 않고 달리는 차는 금방 망가진다. 멀리 왔다 싶으면 잠시 멈춰야 한다. 사람도 똑같다. 쉬지 않고 달리는 사람은 금방 망가진다. 다리 아프고, 팔 아프고, 숨차면 잠깐 멈춰 그늘에서 쉬어야 한다. 
 
목표까지 달릴 수 있느냐, 몇 등으로 들어가느냐 생각하면 그늘에서 쉴 수 없다. 목표까지 가는 동안 한 번도 쉬지 못하고 달리면 목표에 도착하기 전에 쓰러진다. 한 번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기 힘들다. 쉬는 것은 낭비가 아니라, 원하는 목표를 이루는 전략이다. 
 
C가 실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는 그저 낙심한 것뿐이다.  
 
우울증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정당하지 못하다. 사람들은 그들이 낙오자, 패배자, 나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우울증, 공황 장애, 불안 장애로 고통 받는 사람들 대부분 유능한 사람들이다. 왜 그런 사람들이 우울증, 불안 장애로 고통 받는가? 나도 처음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은 어린 시절 시절 겪은 사건과 그에 대한 해석으로 자신의 신념을 구성한다. 한 번 구성된 신념이 해체되거나 변형되는 것은 쉽지 않다. 신념은 하나가 아니고 복합적이며 서로 맞물려 한 사람의 체계를 형성한다. 체계가 추구하는 방향을 우리는 ‘목적’이라고 부르자. 
 
사람은 자신만의 목적을 추구한다. 그 목적이 다른 것으로 대체되기 어렵다. 혹시라도, 그 목적이 대체되는 사건이 일어나면 인생에서 급진적인 변화가 일어났다는 뜻이다.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면,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 부정적인 변화가 일어나면, 정반대의 일이 벌어진다. 삶이 고통스러워진다.  
 
우울증과 불안 장애의 근본 원인은 목적 상실이다. 목적을 잃거나, 이루거나. 눈앞에서 목적이 사라져 버린다. 목적이 사라지면, 자신을 지탱하던 체계가 무너진다. 왜곡된 신념이 자신을 파괴하기 시작한다.  
 
‘나는 실패 했어. 나는 패배자야.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질 수 없어.’ 
 
목적을 상실한 사람은 왜곡된 신념이 진실이라고 믿게 된다. 거짓이 진실이 되는 순간, 사람들은 우울과 불안으로 고통 받는다.
 
목적이 멀어진 사람은 무기력 해진다. 반복되는 실패로 낙심한다. 혼자 결론 내린다. 
 
‘나는 할 수 없어. 나는 능력이 부족해. 재능이 부족해. 이 길이 아니야.’ 
 
거대한 성벽을 쌓고 그 안에 들어가 은둔한다. 그를 꺼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다리는 성벽 밖이 아니라, 성벽 안에 놓여 있다. 성벽 안에서만 타고 오를 수 있다.    
 
목적을 이룬 사람 역시 고통 받을 수 있다. 목적이 사라지면 체계가 무너진다. 혼란 속에서 두려움을 느낀다. 막대한 빚을 지고 수 년 동안 그 빚을 갚은 사람, 오랜 무명 시절을 거쳐 유명해진 가수, 배우, 작가. 
 
‘아 이제 편안하다.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느끼는 순간 뒤에서 누군가 목을 조른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목적을 이룬 이후에 펼쳐질 삶을 준비하지 못한 것이다. 
 
그는 쉬지 않고 달려오면서 
목적이 사라지는 상황을 예상할 수 없었다. 
 
그는 쉬지 않고 달렸다. 어머니를 떠난 보낸 상실의 아픔을 이겨내느라, 형과 누나 대신 아버지 돌보느라, 가난한 어린 시절을 극복하고 삶의 안정을 추구하느라, 불행한 성장과정을 뒤로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느라, 쉴 틈 없이 살았다. 그의 성취는 엄마 이미지를 가진 선생님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관심 받지 못하던 학생에서 주목받는 학생이 되었다. 성취가 그의 원동력이었다. 
 
그의 열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누군가 그의 열정을 촛불 끄듯 훅 불어 꺼렸다. 아버지, 형, 누나는 법학과에 진학하고 싶었던 그에게 가난이라는 족쇄를 채웠다. 그는 삶의 주체가 될 수 없었다. 
 
“저는 다른 사람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이에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조용히 생각하는 걸 좋아하죠. 제가 하는 일은 사람에게 시달리는 일이에요. 벗어나고 싶었어요. 후회해도 소용없지만, 옛날 일이 자꾸 떠올라요.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왜 내가 법학과에 원서를 넣지 않았을까? 왜 아버지, 형, 누나 말을 듣고 꿈을 포기했을까? 형과 누나, 꼴보기 싫어서 만나지 않고 있어요. 아버지 돌아가신 이후로 연락하지 않고 지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그는 해방감을 느꼈다. 해방감은 그에게 죄책감을 주었다. 아버지가 죽기를 바란 것은 아닌가, 아버지가 죽어서 마음이 편해진 것은 아닌가. 죄책감은 그를 갉아먹었다. 그는 결혼했고, 아내와 행복했고, 사랑하는 딸을 낳았다. 회사에서 승진했고, 연봉은 두 배로 올랐다. 아버지 죽음 이후에 그는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절을 보냈다. 죄책감은 날로 심해졌다. 그의 귓가에 누군가 속삭였다.   
 
‘너는 아버지가 죽기를 바란 거야.’ 
 
그는 행복하고 싶었다. 어린 시절 상처가 그에게 행복한 가정을 동경하게 만들었다. 대가를 지불하고 목적에 도달했다고 느낀 순간, 그가 꿈꾸던 행복한 가정은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상상했던 가정의 모습을 갖추었지만 후회와 죄책감으로 망가진 자신을 직면했다. 아내와 딸에게 행복을 주기는커녕 두려운 존재가 되어갈수록 그는 고통스러웠다. 그가 사라진다면 가족이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그리던 행복한 가정은 비현실적인 것이었다.  
 
그에게는 새로운 목적이 필요하다. 그 목적은 실현 가능하지만, 도달할 수 없어야 한다. 인생에서 도달할 수 없는 거대한 산맥 같은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 그가 살 길이다. 동시에 실현 가능해야 한다. 
 
한 걸음씩 그 목적에 도달하는 성취감이 있어야 한다. 한 걸음씩 걸어서 앞으로 가되 그의 인생을 다 바쳐 노력해도 도달할 수 없는, 거대한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은 그 과정에서 행복할 수 있다. 행복은 산 너머에 있지 않다. 산을 오르는 과정에 있다. 같이 걷는 사람들, 가족, 친구, 동료들. 그들과 함께 숲에서 들리는 새소리, 벌레소리, 계곡물소리를 들으며 그저 걷는 것이다. 
 
그는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 어두운 터널을 지난 것처럼 그는 닫혀 있던 방문을 열고 두려운 현실을 마주했다. 그의 노력과 성취는 놀라웠다. 얼굴에는 생기가 돌았고, 건조했던 그의 입술은 촉촉해 보였다.
 
“그날 밤도 가슴이 짓눌려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옆에서 아내가 울어요. 아내에게 손을 뻗어서 아내 손을 꼭 잡았어요. ‘괜찮아. 조금 있으면 괜찮아져. 조금만 기다려.’ 아내는 입을 막고 울더군요. 아내가 말했어요. ‘여보, 그만해. 그 말을 할 사람은 나야. 내가 위로해주고 싶다고. 위로 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당신이야.’ 처음이었습니다. 그렇게 목 놓아 울어본 적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아내 품에 안겨서….”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계속 고통받아요, 우리는

내가 더 잘 믿으면
이런 일 없을 텐데.
 
이런 일?
어떤 일을 말씀하시는거죠.
 
더 이상 이런 문제로
고통받지 않을 텐데.
 
아, 그 뜻이군요.
아니에요.
 
그건 진실이 아니에요.
진실을 말할게요.
 
계속 고통받아요,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계속.
 
엥, 아닌데.
다른 사람은 잘 믿고 잘 되던데.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세요.
고통받고 있어요.
 
남의 인생 대충 둘러보고
쉽게 평가하지 마세요.
 
모두, 전부
고통받으며 살아요.
 
그럼, 뭐 하러 하나님을 믿나요.
어차피 고통받으며 산다면.
 
좋은 질문이에요.
답해볼게요.
 
복음의 본질은
문제 해결이 아니에요.
 
복음의 본질은
관계 회복이에요.
 
왜곡된 관계가
온전한 관계가 되는 겁니다.
 
예수님은 왜곡된 관계를
회복시켜주셨어요.
 
하나님과 우리 사이
끊어진 관계를 이어주신 거죠.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누릴 수 있어요.
 
이제 눈치채셨나요?
진짜 문제는 따로 있어요.
 
주변에서 뭐라 하든
성경에서 뭐라 하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는 거죠.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끊임없이 물어요.
 
왜 나만?
왜 나만 이런 거지?
 
아니에요.
우리 모두 그래요.
 
나라고 다르겠어요.
나도 매일 고통받아요.
 
문제 해결에 집착하면
우리는 빠르게 고갈돼요.
 
문제 해결에 전전긍긍하며
믿음을 낭비하지 마세요.
 
미안하지만,
고통은 사라지지 않아요.
 
고통을 피하려고 하면
더 고통스러워져요.
 
하나님은 예수님을
고통 속에서 꺼내주지 않았어요.
 
도와주시지 않고
고통의 잔을 마시게 했죠.
 
예수님이 고통의 잔을 피하셨다면
우린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은 하나님만의
방식이 있어요.
 
고통 한가운데서
의미를 찾아내세요.
 
의미를 찾는 사람은
성장할 수 있어요.
 
의미를 발견하면
고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에요.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지요.
 
말도 안 된다.
어떻게 고통 속에서 기뻐하냐.
 
결국에 뻔한 소리 하네.
뭔가 다를 줄 알았다.
 
맞아요.
고통 속에서 기뻐하기 어려워요.
 
하지만, 아시나요?
 
항상 기뻐한다는 건
물리적인 시간이 아니에요.
 
24시간 하루 종일 기뻐하면
그 사람은 병원에 가야 해요.
 
말도 안 되는 기준을 세워놓고
스스로를 정죄하지 마세요.
 
아침에 잠깐 주님을 찾고
하루 종일 분주할 수 있지요.
 
절망할 필요 없어요.
하나님은 쉬는 시간이 없으시니까.
 
당신이 하나님을 찾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은 당신을 찾아내실 거예요.
 
하나님 한 분 만으로
영원토록 기뻐하는 것.
 
당신과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이자 목적입니다.

남자가 무서워 피해요

고등학생 때 선생님께 성추행을 당했어요. 그 이후로 그 나이대의 남성을 만나면 무서워서 피하고 배척해요. 그 분들이 아무 잘못이 없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사랑의 마음으로 감싸지 못해요. 결국, 잘못을 저에게 돌리게 돼요. 어떻게 하면 좋지요. 저도 편하게 살고 싶어요. 
 
자매님은 아무 잘못 없습니다. 자신을 탓하지 말아주세요. 선생님께 성추행을 당하신 일도, 지금 그 나이 때의 남성을 피하는 것도, 모두 자매님 잘못이 아닙니다. 
 
상처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가해자가 되시면 안됩니다. 먼저, 피해자가 되어주셔야 해요. 과거에 머물면서 고통스럽게 살라는 말이 아니에요. 다른 누군가를 탓하며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과거를 덮어두지 말고, 제대로 살펴보고 수용해달라는 부탁입니다.  
 
과거에 겪은 끔찍한 일은 가능하다면, 지금이라도 처벌해야 합니다.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른 사람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죄값을 치러야 합니다. 한 여자의 인생을 파괴한 사람을 그대로 내버려 두면 안 됩니다. 
 
다만, 선택권은 자매님에게 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자매님이 옳습니다. 나는 그 선택을 존중합니다. 자매님이 겪은 일은 오직 자매님만이 결정할 권리가 있어요. 다른 사람은 조언만 해줄 뿐, 이래라저래라 할 권한이 없습니다.   
 
나는 상담하는 사람이니, 자매님의 상처에 집중하겠습니다. 질문하신 내용에 계속 답하겠습니다.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다면, 자매님도 처벌하지 말아주세요. 가해자는 자유롭게 풀어주고, 피해자인 자신을 결박하고 짓누르면 안됩니다. 
 
과거를 수용한다는 말은, 그때 그일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겁니다. 사건에 대한 기억은 시간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기억 자체를 지우려는 시도는 언제나 실패할 거예요. 지우려할수록 고통 받습니다. 
 
기억을 바꿀 수 없다면, 기억하는 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기억이 데려오는 감정에 집중해야 합니다. 기억은 혼자찾아오지 않습니다. 감정을 데리고 옵니다. 자매님의 기억은 왼편에는 공포, 오른편에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데려옵니다. 무서운 감정들의 손을 잡고 싱글벙글 자매님을 찾아옵니다. 자매님을 파괴할 수 있으니까요. 
 
기억이 데려오는 감정을 쳐다보지 마세요. 공포나 죄책감은 쳐다보지 말고, 기억을 마주보고 당당하게 말하세요. “공포나 죄책감 없이 혼자는 못오지? 혼자 오면, 너는 아무 것도 아닌 거 너도 알지? 너 혼자 와봐. 그럼, 넌 아무 것도 못할 걸.”  
 
기억이 자존심이 상해서 날뛰기 시작할 거예요. 그렇지만, 절대로 혼자 오지 않아요. 기억은 알거든요. 혼자 오면 자매님을 파괴할 수 없어요. 공포나 죄책감을 잡은 손을 놔버리면, 기억은 고개도 못들고 자매님 옆을 지나쳐 버릴 거예요. 영화 속 악당이 아니라, 지나가는 행인으로 전락해버린 거죠. 
 
설명하려니 간단하게 말했지만, 실제로는 말처럼 쉽지는 않을 거예요. 내 기억 역시 혼자 오지 않으니까요. 어찌되었건, 나는 여전히 기억이 데려오는 감정에게 말을 걸지 않아요. 기억만 쳐다보고 말합니다. “혼자 오라니까. 자존심도 없어?” 
 
비유적으로 말하다보니, 자매님의 고통스런 문제를 가볍게 말한 것처럼 보일까 걱정됩니다. 내 진심은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나는 자매님이 기억이 데려오는 감정으로 더 이상 고통받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과거는 지난 일이니까 잊고 과거에서 벗어나 남자분들을 편하게 대하라는 말은 하지 않겠어요. 다만, 소심한 부탁을 하겠습니다. 상처의 책임을 자매님에게 떠넘기면서 자책하지 말아주세요.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남편이 목사님을 욕합니다

남편은 모태신앙입니다. 어릴 때 시아버지가 큰 병으로 죽다 사셨어요. 그 과정에서 남편이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교회와 목사님에 대한 반감이 심합니다. 제 앞에서 목사님 욕을 합니다. 교회 흉을 보고요. 감당하기 힘들 만큼 괴롭습니다. 남편이 점점 싫어집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남편을 싫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누구나 교회와 목사를 욕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도 정치를 잘못하면 욕을 먹는데, 목사라고 예외가 있으란 법은 없지요. 목사라도 잘못하면 당연히 욕먹어야지요. 욕먹고 고치면 좋은데, 고치기 힘듭니다. 그러니까 욕하는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내가 목사니까 편하게 말하는 겁니다. 
 
혹시 목사가 잘못한 게 없는데 남편이 목사를 욕하면 그대로 두세요. 잘못 없는데 욕먹는 목사는 하나님께 인정받습니다. 목사에게 좋은 일입니다.  
 
문제의 본질은 남편이 교회와 목사를 비판하는 것 자체가 아닙니다. 남편의 비판이 아내에게 수용되지 않는 상황 속에 진짜 문제가 있습니다.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부부의 문제로 잠시 다뤄보겠습니다. 신앙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신앙에 가려 문제의 본질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회사를 다닌다고 해보겠습니다. 남편이 아내의 회사와 사장을 욕하면 아내의 기분이 어떨지 궁금합니다. 교회와 목사를 욕하는 것만큼 기분이 나쁘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남편을 싫어하는 겁니다. 남편의 신앙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태도와 가치관, 말투 같은 게 싫을 수 있습니다. 상호작용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앙보다 급한 건 서로의 관계입니다. 서로를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서로의 생각에 공감하지 못하는 겁니다.
 
회사와 사장을 욕하는 것보다 교회와 목사를 욕하는 것이 훨씬 더 기분 나쁘다면, 남편을 조금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남편이 예수님을 욕하는 건 아니니까요. 혹시 예수님을 욕하더라도, 그런 남편을 받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내가 예수님 사랑해서 방어하느라 기분 나쁜 건데, 괜찮습니다. 예수님은 이해하십니다. 조금만 참고 기다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남편이 교회와 목사를 비난하는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남편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을지 모릅니다. 아내가 아는 것만큼 간단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남편이 교회 욕하는 소리 듣기 싫을 겁니다.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부탁드려봅니다. 마음 단단히 먹고 남편이 왜 그렇게 교회를 싫어하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만 참고 들어주세요. 다 듣고 나서 말해주세요. 
 
“그랬구나. 많이 힘들었겠다. 그런 상처가 있는데, 나 교회 다니는 거 허락해줘서 고마워. 나도 고마운 마음 담아서 당신 위해서 기도할게.” 
 
구체적인 상황은 몰라도, 내가 부탁한 말이 효력 있을 거예요. 적어도 남편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셨으니까요. 하루아침에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을 거예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해요. 남편의 비판이 계속되면 마음이 어렵겠지만, 포기하지 말고 힘껏 들어주세요. 
 
아내가 고생이 많습니다. 혼자 신앙생활하는 것도 서럽고 힘든데 무리한 부탁해서 죄송합니다. 예수님이 그 마음 아십니다. 아내의 기도, 예수님이 들어주실 겁니다. 예수님의 따뜻한 사랑으로 남편의 마음이 녹아져서 두 분이 행복하게 신앙생활하시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별처럼 슬픈 밤

“참 바보 같지요. 앞날이 뻔히 보이는데, 두려워서 말도 못 하고 남자친구 뒷바라지를 했으니까요.
 
그 사람은 다른 여자를 만나 결혼했어요.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보고 알았어요. 가끔 생각날 때 확인해 봤어요. 터무니없지만, 아직 기회가 있다는, 뭐 그런 생각하면서요.
 
다른 여자와 찍은 사진을 처음 봤을 때, 잠을 잘 수 없었어요. 프로필 사진이 웨딩 사진으로 바뀐 날은 죽고 싶었고요. 지금도 밤마다 생각해요. 이대로 영원히 잠들면 좋겠다. 살아서 뭐 하겠어요. 살고 싶지 않아요.”
 
그녀는 말했다. 남자친구가 떠나간 그날 밤, 모든 것을 잃었다고.
 
#
 
“괜찮은 남자라니까, 한 번 만나 봐.”   
 
“난 어린 사람 싫어, 언니.”
 
“일단 한 번 만나 봐. 생각도 깊고 듬직한 애야.”
 
교회 언니 소개로 그를 처음 만났다. 남자에게 흥미가 없던 터라, 일부러 남자를 만나지 않았다. 친한 사람들이 남자를 소개할 때마다 난처했다. 예의상 한 번 만나준다는 생각으로 마지못해 나갔다.
 
듬직한 체격, 다부진 어깨, 각진 얼굴. 그의 첫인상은 듬직하다 못해 부담스러웠다. 적당히 시간만 때우고 일어나자, 생각했다.
 
대화를 하는데 묘한 매력을 느꼈다. 외모와는 달리 부드러운 말투였다. 얼굴을 손을 가리고 웃는 소심함이랄까.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을 받았다. 한 번쯤은 더 만나도 될 것 같은 그런 남자였다.
 
두 달이 지난 후, 고백을 받았다. 어쩌면 처음이었다. 누군가 그녀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설레였던 감정 말이다. 두 사람은 기념으로 반지를 맞췄다.
 
그녀의 나이 서른하나, 남자친구는 스물일곱, 네 살 연하의 남자였다. 남자친구는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해서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그녀는 회사생활 5년 차에 접어들고 있었다. 취업을 앞두고 심란해 보였던 그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나 대학원에 가야 할까 봐. 하고 싶은 공부가 있어.”
 
공부를 하고 싶다는 그의 말에 그녀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녀의 나이 서른하나였다. 공부를 마치고 나면, 서른셋이 된다.
 
사귄 지 187일이다. 선뜻 ‘결혼은?’이라고 물을 수 없었다. 우리 둘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차마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머그잔을 손으로 감싸 쥐며 창밖을 바라봤다.
 
“걱정하지 마. 공부 마치면 우리 바로 결혼하자. 나 진심이야. 조금만 더 기다려줘.”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애써 태연한 척했다. 말없이 고개를 끄떡였다.
 
공부하는 동안 남자친구는 그녀에게 최선을 다했다. 학생의 장점이랄까. 퇴근 시간에 맞춰 그녀를 기다렸다. 카페 유리창 너머로 그를 바라볼 때마다 그녀는 행복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그는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두 사람은 결혼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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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견례를 앞두고 그는 초초하게 말했다.
 
“사실은 우리 부모님이 조금 까다로우셔. 특히, 어머니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어머니가 결혼을 반대하셔. 하지만, 걱정 마. 계속 설득하고 있어. 반대하셔도 할 수 없잖아. 내 결심은 달라지지 않아. 너도 오래 기다렸고.”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 조각 케이크가 심장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기분이었다. 숨이 막혀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그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사실 우리 엄마는….”
 
평소에 그는 어머니에 대해 말을 아꼈다. 어머니 이야기만 나오면, 시선을 피하고 말을 돌렸던 그였다. 그가 처음으로 어머니에 대해 말을 꺼냈다.
 
그의 아버지는 술만 먹으면 어머니에게 소리를 질렀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았다.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었다. 경제적인 이유였다.
 
“내가 아버지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뭔지 아니? 너 때문이야. 너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지긋지긋한 삶도 이제 끝이다.”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어머니가 말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너 결혼할 때까지는 참아야 되지 않겠니? 빨리 장가가라. 그래야, 지긋지긋한 삶에서 벗어나야 할 거 아니야.”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의 어머니는 말했다.
 
“어디서 그걸 여자라고 데리고 왔어. 내가 고작 그런 년하고 결혼시키려고 이날 이때까지 참은 줄 알아!”
 
그는 답답했는지, 커피를 물처럼 들이켰다.
 
“말하고 나니 속은 시원하네.”
 
그녀의 반응이 없자, 그가 조급한 듯 말했다.
 
“나한테 시간을 조금만 줘. 급할 거 없잖아. 올해까지 설득해보고, 그때 안되면 그냥 우리끼리 결혼해버리자.”
 
한 달이 지난 후, 그의 어머니가 전화를 했다. 교양 있는 말로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본론을 말했다.
 
“우리 애가 우유부단해서 결정을 못 내리는 애야. 그러니까, 네가 결정을 내리는 게 맞지 않니? 이제, 우리 아들 그만 만나라. 너 나이도 있는데, 하루라도 빨리 좋은 남자 만나야지.”
 
참을 수 없었다. 남자친구를 원망했다. 독설을 퍼부었다. 남자친구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그는 말없이 그녀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다음 날도 그의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벨은 주말도 없이 부지런히 울렸다.
 
그녀가 전화를 받으면 릴레이 경주를 하듯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의 어머니에게 걸려오는 전화는 쉬지 않고 울렸지만, 남자친구의 전화기는 고요했다. 그의 전화기는 꺼져있었다. 바통터치 되지 않는 릴레이가 계속됐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한 그는 회의 핑계를 댔다. 회의 중에는 모든 직원이 전화기를 꺼둔다고 변명했다. 퇴근 후에 야근, 회식 때문에 전화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그녀의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수 십 번을 전화했을 때가 그가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이성을 잃었다. 길 한복판에서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야! 너 미쳤어. 어디서 지금 이따위로 사람을 대하고 난리야. 나도 아쉬울 거 없어, 알아? 너 같은 놈 나도 싫어!”
 
그는 침묵했다. 할 말 다 했냐고 물었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주말 내내 침대에 누워 일어나지 않았다. 혹시라도 남자친구에게 문자라도 오지 않을까, 머리맡에 전화기를 뒀다. 진동이 울리면 손을 뻗어 전화기를 확인했다. 스팸문자뿐이었다.
 
‘설마, 그럴 리 없어. 나한테 이럴 수는 없어.’
 
출근은 했지만, 일을 할 수 없었다. 몸이 아프다고 핑계를 대로 집에 돌아와 누웠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전화기가 부르르 떨렸다. 그가 보낸 문자였다.
 
“오늘 퇴근 후에 잠깐 보자. 하고 싶은 말이 있어.”
 
그를 만났을 때, 그는 혼자 선언하듯 말했다.
 
“우리 여기까지야. 이제 그만하자. 너도 나도 할 만큼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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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어릴 때 아버지는 집을 나갔다.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건 초등학교 오학년 여름 날이었다.
 
물건이 깨지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화장대 거울에 금이 갔다. 깨진 거울에 엄마가 비쳤다. 거울에 비친 엄마 얼굴이 여러 개였다. 하나, 둘, 셋.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이대로 나가면 어떻게!”
 
“내가 말했잖아. 잠깐 피하는 거라고.”
 
아빠가 짐을 싸느라 정신이 없다.
 
“당신만 살면 되는 거야? 우린 어떻게 해?”
 
엄마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그게 아니라고 몇 번 말해. 일단 도망가야 해. 같이 살 집 구하면 내가 바로 연락할게. 일주일도 안 걸려. 나 감옥 가면, 우리 가족은 누가 먹여 살려. 나 절대로 감옥 안 갈 거야. 억울해서 미치겠다고.”
 
“여보, 다시 생각해 봐. 그래도 이건 아니야. 우리도 데려가. 제발, 여보.”
 
“애까지 데리고 어떻게 도망을 치라고. 비켜!”
 
아버지가 문을 박차고 나갔다. 엄마가 뛰어나가 아버지에게 매달렸다. 아버지는 뒤돌아보지 않고 걸었다. 엄마는 몇 미터 끌려다가 멈췄다. 무릎이 까진 채 엎드려 세상이 떠나가듯 울었다.
 
그녀는 창가에 서서 바닥에 쓰러져 우는 엄마를 바라봤다.   ‘내가 없었다면, 아빠는 엄마를 데려갔을까.’
 
엄마의 대본에서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으로 되어 있다. 엄마의 대본을 고치고 싶지 않았다. 대본대로 행동하는 게 편했다.
 
그녀는 적절한 시기마다 대본에 쓰인 대로 말했다. ‘엄마, 아빠는 언제 와?” 엄마 역시 대본에 충실했다. “곧 오실 거야.”
 
‘엄마는 정말 몰랐을까. 아니면, 그렇게 믿고 싶었을까.’
 
어린 그녀도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발걸음은 일주일짜리 발걸음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구두가 시멘트 바닥에 부딪혀 따닥따닥 내는 소리는, 모스 부호처럼 선명했다.
 
“다. 시. 는. 돌. 아. 오. 지. 않. 을. 거. 야.”   
 
#
 
아빠가 나간 후, 엄마는 시체처럼 누워 일어나지 않았다. 뱃속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요동해도 엄마를 깨울 수 없었다. 배가 고프다고 엄마를 깨우면, 밥 대신 욕을 얻어먹었다.
 
방은 어두웠다. 엄마는 울다 자다를 반복했다. 이틀에 한 번 엄마가 일어나 돈 만 원을 던져줬다. 돈을 집어 들고, 집 앞 가게에 가서 담배 한 갑과 라면을 사 왔다.
 
이모에게 전화를 받은 엄마가 갑자기 달라졌다. 밤마다 화장을 짙게 하고 밖으로 나갔다. 알록달록 이상한 옷들이 늘어갔다. 엄마가 먹고살려고 술집에 나가 일을 시작한 것이다.
 
밤마다 혼자 자는 게 무서웠지만, 엄마에게 내색하지 않았다. 동이 틀 때쯤 집에 들어오는 엄마는 딸보다 변기를 먼저 찾았다. 남편 대신 변기를 끌어안고 구토와 울음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
아침에 잠깐 마주하는 엄마는 칼처럼 예민했다. 작은 것 하나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말투, 눈빛에서 세상을 향한 분노가 새어 나왔다.
 
“비누 어디 갔어?”
 
엄마가 물었다.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그녀가 말했다. 
 
“네가 모르면 누가 알아. 우리 집에 둘 밖에 없는데.”
 
“나 정말 몰라.”
 
“이게 어디서 거짓말이야.”
 
엄마가 그녀의 뺨을 후려쳤다. 그날은 비누가 없어졌다. 전날은 벽 시계가 멈췄다. 택배가 늦은 날도, 가스비가 청구된 날도 그녀는 뺨을 맞았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녀는 엄마의 쓰레기통이었다. 엄마는 구깃구깃한 감정을 딸에게 던져버렸다.
 
“어디서 거짓말을 하고 난리야. 어린 게 제 아빠를 빼다 박아가지고. 생긴 것도 모자라서 거짓말하는 것도 닮았어. 한 번 만 더 거짓말하면 그때는 가만히 안 둬, 알겠어!”
 
엄마는 저녁 10시가 되면 어김없이 집을 나갔다. 짙은 향수 냄새를 단칸방에 채워 넣고 밖에서 문을 잠갔다.
 
그녀는 저녁 대신 향수를 먹었다. 엄마가 없는 저녁마다 창문을 열었다. 바닥에 누우면 한 뺨 창밖으로 밤 하늘이 보였다. 외로웠다. 울다 잠든 날이 별처럼 많았다.
 
#
 
엄마가 없는 날, 아빠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뇌의 저편에서 아빠라는 단어가 번쩍했다. 의식에서 지워졌던 기억이 7년 만에 되살아났다. 차분하게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여보세요?”
 
그녀가 말했다.
 
“잘 지내지? 아빠야.”
 
“….”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엄마, 지금 옆에 있니? 있으면 바꿔줄래.”
 
“….”
 
엄마는 집에 없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볼래. 아빠가 몇 년 만에 전화했잖아. 그동안 힘들었지. 아빠가 미안하다. 지금 최선을 다해 방법을 찾고 있으니까 아빠가 곧 데리러 갈게.”
 
“….”
 
이제 그럴 필요 없다.
 
“너 지금 우니?”
 
“….”
 
울지 않는다.
 
“그래, 그럼 알았다. 아빠가 또 연락할게.”
 
뚜 –
 
변한 건 없었다. 그녀에게는 아빠의 자리는 없었다.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다. 엄마는 엄마의 인생을 되찾았다.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고 말하면 엄마의 인생은 다시 멈춘다. 엄마를 위한 배려였다.
 
“엄마, 전화번호 바꿔줘.”
 
“왜?”
 
“옛날에 빚 갚으라 했던 사람들이 낮에 전화했어. 이러다 우리 집까지 알아내면 어떻게 해. 나 무서워.”
 
엄마는 화장을 하다 멈칫했다. 파우더를 든 손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를 바라보며,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알겠어. 엄마가 내일 전화번호 바꿀게.”
 
#
 
고등학교에 진학한 그녀는 밤늦게까지 학교에서 공부를 했다. 밤늦게 집에 들어온 그녀가, 현관에서 남자 신발을 목격했다. 빨간색 뾰족구두와 밤색 구두가 뒤엉켜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엄마는 태연한 듯 행동했다. 이른 새벽, 밤색 구두의 사내는 사라지고 없었다. 엄마는 그녀가 눈치채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엄마의 대본대로 행동했다.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엄마의 인생을 살고, 그녀는 그녀의 인생을 살았다.
 
그 남자가 집에 오는 날이 늘어갔다. 엄마가 집에 있을 때나 없을 때나, 그녀의 집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
 
“집에 라면 있냐?”
 
“없어요.”
 
“그럼 가서 사 올래? 여기 돈.”
 
“아저씨가 직접 사다 드세요.”
 
“버릇없다, 진짜.”
 
“엄마도 없는데 왜 우리 집에 계세요. 불편해요, 저.”
 
“라면 한 그릇만 끓여먹고 나갈 거야. 제발 그런 눈빛 좀 하지 마라.”
 
그 말이 전해진 것 같았다. 엄마는 그날 이후 그녀를 보면,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주말 저녁, 엄마는 그녀를 불러 앉혔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입으로 가져가 한 모금 깊이 빨았다. 그녀의 얼굴에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말했다.
 
“엄마는 그 아저씨 좋아해. 너만 괜찮으면 같이 살자.”
 
그녀는 대답 대신 기침을 했다.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얼굴이 빨개지도록 기침을 했다. 연기에 질식한 것인지, 엄마가 내뿜은 말에 질식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의 반응은 중요하지 않았다. 엄마는 미리 외워둔 자기 대사를 계속했다.
 
“사실 이 집 그 사람 거야. 우리 판자촌 벗어나게 해주고, 너 학교 다니게 해준 사람이야. 그 교복도 그 사람이 해 준 거고. 같이 살기는 힘들겠지만, 적응 잘 해봐. 어차피 학교에서 밤늦게 오니까 잠깐만 참으면 되잖아.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하면 독립해. 엄마는 능력 없어.”
 
“….”
 
처음으로 엄마에게 욕을 했다. 입에 담을 수 없는 쌍욕을 무한 반복했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폭탄은 속에서 터졌다. 충격에 입술이 씰룩였지만, 엄마는 몰랐다. 이를 악물고 간신히 버텼다.
 
#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독립했다. 대학에 가서 고시원에서 살았다. 바로 취업해서 독하게 살았다. 월급을 아끼고 아껴 썼다. 오피스텔 보증금을 마련하고 고시원을 탈출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빠듯한 삶을 벗어날 수 없었다. 월급의 절반을 엄마에게 보내도 엄마는 모자라고 난리였다. 소소한 일이라도 하면서 용돈이라도 벌어보라고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무리하게 몸을 쓰면 병원비로 나가는 돈이 더 많다고 말했다. 쉬면서 조용히 사는 게 돈을 아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엄마였다.
 
#
 
“딸, 엄마가….”
 
엄마가 돈을 보내달라고 하기 전에 항상 하는 말이다.
 
“지난번에 ‘미니’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왔는데, 치료가 길어질 것 같다고 해서….”
 
“엄마, 지금 개새끼한테 들어갈 돈 없어. 나도 간신히 살고 있는데 무슨 개한테 돈을 써. 안락사 시켜.”
 
“너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니. 그러면 못 써.”
 
“내가 여유가 없어서 그래. 아무리 힘들어도 매달 보내주는 용돈 안에서 살아야 해. 매번 이런 식으로 하면, 나는 어떻게 하라고.”
 
“그래서, 말하잖아. 이번 한 번 만이라고.”
 
“그 말이 벌써 몇 번째야, 엄마.”
 
“무슨 몇 번째니? 오늘 처음 말한 건데.”
 
“처음 아니야. 개 갖다 버려. 끊을게, 엄마.”
 
엄마에게 전화가 온 날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옥상에 올라가 잠시 머리를 식혔다. 미니라는 개는 늙어간다. 앞이 보이지 않아 똥오줌을 못 가리고, 기운이 없어 산책도 못한다.
 
엄마는 미니와 자신을 구분하지 못했다. 엄마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듯, 하루 종일 거실에 앉아 안쓰럽게 개를 쳐다보고 쓰다듬었다.
 
결국, 엄마에게 돈을 보냈다. 그녀는 엄마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다. 감정과 상관없었다. 반사 신경처럼 그녀의 몸이 먼저 반응했다.
 
아빠가 떠난 날, 엄마의 영혼도 떠났다. 술집에 나가 웃음을 팔아 번 돈으로 그녀를 키운 엄마였다. 그런 엄마라도 살아있어 감사했다.
 
#
 
잠이 오지 않았다. 남자친구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우리 여기까지야. 이제 그만하자. 너도 나도 할 만큼 했어.”
 
그녀는 혼잣말을 반복했다.
 
‘아니, 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밤마다 고통이 찾아왔다. 울다 지쳐 잠드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새벽에 잠에서 깨면 식은 땀으로 온몸이 젖어 있었다. 백 일이 지나도, 일 년이 지나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
       
매일 저녁 퇴근길, 그녀는 편의점에 들렀다. 노란색 바나나 우유를 샀다. 다 마신 병을 버리지 않았다. 집에 가져와 책상에 내려놓았다. 똑같이 생긴 플라스틱병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가지런히 놓였다. 촘촘하게 일자로 놓인 플라스틱병이 책상을 가득 매웠다.
 
플라스틱병이 갈수록 늘어갔다. 책상을 가득 메운 플라스틱병은 방바닥으로 이어졌고, 발을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집을 채웠다.
 
#
“아이고, 미친년아. 너 실성한 거 아니냐.”
 
엄마가 찾아왔다. 주말 내내 전화를 받지 않으니까, 걱정돼서 찾아온 것이다. 엄마의 잔소리에 그녀가 돌아누웠다. 엄마는 쉬지 않고 말했다.
 
“아니, 무슨 바나나랑 원수 맺었냐. 먹으면 치워야지. 왜 쓰레기를 방에 쌓아두고 있어? 이게 도대체 뭔 일이야.”
 
“엄마, 그만 나가.”
 
엄마는 듣지 못했다. 쓰레기봉투에 병을 담느라 정신이 없다.
 
“엄마, 나가라고.” 그녀가 다시 말했다.
 
엄마는 여전히 듣지 못했다. 그녀의 인내심이 바닥났다.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엄마, 내 말 안 들려? 나가라고!”
 
깜짝 놀란 엄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플라스틱 통이 여기저기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그녀는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엄마, 나가라는 말 안 들려. 나가서 두 번 다시는 오지 마. 내 앞에 나타나지도 말고, 나한테 연락하지도 마. 꼴도 보기 싫으니까.”
 
찰싹.
 
그녀의 얼굴이 후끈거렸다. 엄마가 노려보며 말했다.
 
“별 미친년을 다 보겠네. 알겠어, 이년아. 다시는 안 오면 되잖아.”
 
#   
 
“웃기죠? 엄마는 그날 이후로 정말 연락을 안 해요. 내가 딸 노릇 한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결국 이렇게 됐네요. 남자친구에게 버림받고, 엄마에게 버림받고….
 
나같이 비참한 사람이 세상에 또 있을까요. 모든 걸 잃은 것 같아요. 밤마다 생각해요. 이대로 잠들어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그녀가 비참해졌다는 말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녀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듯 했다. 어쩌면 그녀는 오래전에 버려졌다. 아빠의 말로 버려졌고, 엄마의 말로 버려졌고, 남자친구의 말로 버려졌다.
 
“애까지 데리고 어떻게 도망을 치라고. 비켜!”
“고등학교 졸업하면 독립해. 엄마는 능력 없어.”
“우리 여기까지야. 이제 그만하자.”
 
그들의 말은 차갑고 무서웠다. 자신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한 채, 한 사람의 내면을 짓밟아 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길 수는 없다.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른다. 저마다 자신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고, 스스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면서, 이미 스스로를 용서했을 것이다.
 
그녀의 이해와 용서는 그들에게 전혀 필요하지 않다. 그들은 각자 혼자서 자신만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문득문득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아쉬움이 남겠지만, 저마다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면서 각자의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의 인생은 그들의 것이 아니다. 그녀의 인생은 그녀의 것이다.
      
그녀의 말대로 그녀는 비참하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은 오지 않았다. 최악의 상황은 그녀가 그녀 스스로를 버리는 것이다. 그녀는 아직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 타버린 잿더미 속에 작은 희망의 불씨가 남았다.
 
그녀는 어렴풋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스스로를 돌봤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버릴 때마다, 그녀는 스스로를 다시 주웠다. 버려진 자신을 줍고 닦아서 간직했다.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죽고 싶지만, 살고 싶다. 살고 싶은 본능이 그녀를 내 앞으로 데려온 것이다. 그녀는 알고 있다. 언젠가 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 다시 일어설 것이다.
 
그녀가 고통받는 이유는 버림받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녀가 고통받는 이유는 그녀가 미지의 세계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고통을 해결하지 못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언제 어떻게 고통이 해결될 것인지 알지 못해 두려운 것이다.
 
고통은 영원히 미지의 세계다.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고통을 피할 수 없다면, 고통을 다루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고통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사람이 고통을 견딜 수 있다. 현재의 고통은 현재의 고통으로 끝나지 않는다. 현재의 고통은 한 사람이 일생 동안 추구할 궁극의 의미와 맞닿아 있다.
 
버림받은 기억으로 고통받는 사람은 버림받지 않기 위해 값비싼 비용을 치른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사랑하고 희생한다. 자기 인생은 어찌되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버림받을지언정,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고통이 찾아오면 깨닫는다. 자신 안의 결핍을 발견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아 자신을 희생시켜 관계를 유지하는 자신을 직면한다.
 
같은 패턴으로 고통이 반복되면, 결국 고통 속에서 의미를 찾는다. 절망과 좌절의 터널을 지나면서, 자신을 지키고 보호할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고통은 반복된다. 고통의 터널은 하나가 아니다. 쉬지 않고 계속 나타난다. 터널을 지날 때, 라이트는 자동으로 켜지지 않는다. 수동이다. 때에 맞춰 라이트를 켜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도로 위에 터널이 없기를 바라면 안 된다. 어두운 터널을 만나면, 침착하게 라이트를 켜라. 그러면, 당신은 안전하다.
 
#
 
“사실, 남자친구를 다시 만나고 싶지는 않아요. 자기가 힘들다고 여자를 버린 사람이잖아요. 결혼했어도 행복하지 않았을 거예요. 시어머니를 제가 어떻게 감당했겠어요. 게다가 그 사람은 마마보이처럼 행동했는데요.
 
정확히 말하면, 그 남자가 그리운 게 아니에요. 사랑받았던 감정이 그리운 거죠. 남자친구의 뒷바라지를 해서라도 사랑받고 싶었던 제 자신이 후회스러운 거죠. 사랑받으려고 너무나 비싼 값을 치렀어요.
 
언젠가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도 있겠죠. 나이도 있으니, 평생 혼자 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서두르지 않으려고 해요. 누군가를 만나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잖아요. 지금 당장은 괜찮아진 것 같아도,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지도 모르고요. 지금은 그냥 제 자신을 조금 더 알고 싶어요.”
 
그녀가 라이트를 켰다. 터널 세 개를 지나는 동안 라이트를 켜는 방법을 깨달은 것이다. 다음 터널에서는 그녀가 때에 맞춰 라이트를 켤 수 있을 것이다.
 
라이트를 켜고 끄는 일은 번거롭다. 라이트를 제때 못 켰다고 우는 날 있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언젠가 하늘의 찬란한 빛이 그녀의 앞길을 비춰줄 것이다. 눈부신 그날이 속히 오기를 바랄 뿐이다.

그 마음 표현하기 힘들 거예요

혼자가 익숙했어요. 
점점 말이 없어졌죠. 
 
말할 사람이 없으니까 
힘들고 답답해도 혼자 삭였어요. 
 
사람이 다 그렇잖아요. 
처음에는 이해가 안되서 화나지만
생각해보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잖아요. 
 
처음에는 부모님을 이해 못했어요. 
많이 원망했어요. 
 
제가 엄마가 되어보니까 
부모님 마음 알겠더라고요.
 
아, 내가 몰랐구나.
부모님이 날 사랑한 거구나.  
 
이해하고 사랑하기로 했어요. 
지금은 잘 지내요. 
 
내가 힘든 건 남편이에요. 
대화가 안되요. 
 
사실 오래전에 포기했어요. 
내 마음 표현하고 싶지도 않고 
남편 생각 듣고 싶지도 않아요. 
 
그렇군요. 
속상하네요. 
 
당신 이야기를 들으면서 
혼자 생각해봤어요. 
 
어린 시절 부모님으로 인해 
받은 상처가 깊었을 텐데 
어떻게 용서할 수 있었을까. 
 
하나님을 만나서 그래요. 
그래서 용서할 수 있었어요. 
  
놀라워요. 
사람으로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이 해내셨군요. 
 
하지만, 조심스럽게 
내 생각을 말하고 싶어요. 
 
힘든 시간을 혼자 보내면서 
혼자 삭이는 법을 배우신 것 같아요. 
 
혼자 울고 혼자 위로하고 
혼자 정리하고 혼자 일어서요. 
 
슬프게도 당신은
혼자가 익숙해졌어요.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할 때는 괜찮아요. 
당신은 정말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어요. 
 
언제나 밝아요. 
혼자 일어설 수 있으니까요. 
 
부모님이 혜택을 보셨죠.  
부모님을 사랑하게 되었어요.
 
부모님의 노력이 아닌
당신의 노력으로.  
 
당신에게 상처 준 사람들 역시 
혜택을 받았을 거예요. 
 
이미 용서했을 거예요.
이해하고 받아들였을 거예요. 
 
그들이 노력이 아닌 
당신의 노력으로. 
 
하지만, 배우자는 달라요. 
그 방법이 남편에게는 통하지 않아요.  
 
배우자와의 관계는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상처받을 수 있어요. 
 
남편이 오해할 수 있거든요. 
당신이 원래 그런 성격이라고.
 
아닌데. 
힘든데.
노력하는 건데.  
 
당신의 그 피나는 노력 덕분에 
남편이 모를 수 있어요. 
 
내가 아내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었는지. 
 
내가 아내에게 
얼마나 필요한 사람인지.  
 
당신은 힘들면 
조용히 입을 닫아요. 
 
생각의 방으로 들어가 
하나님과 해결해요. 
 
하나님께 말하고 
하나님께 위로받아요. 
 
하나님이 정리해주니 
남편이 해줄 게 없어요.   
 
남편이 무시하며 말해도 
성실하게 대답해주고 
 
남편과 다투고 난 다음날도 
평소처럼 아침을 차려주고   
 
밥 먹듯 야근을 해도 
답답한 마음 표현하지 않아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아무리 커도 
당신은 외로울 수 있어요.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에요.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지으셨어요. 
 
사람은 혼자 못 살아요. 
하나님도 아세요. 
 
그 좋은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혼자 있는 게 
좋아 보이지 않으셨어요. 
 
아담이 잠든 사이 
돕는 배필을 보내주셨잖아요. 
 
배우자는 나의 일부에요. 
나는 배우자의 일부이고. 
 
내가 나와 대화하는 방식이 
내가 배우자와 대화하는 방식이에요. 
 
당신 안에 슬픔이 쌓이고 있어요. 
히말라야 산맥처럼. 
 
그 마음 표현하기 힘들 거예요. 
하나님, 자기 자신, 배우자에게. 
 
나는 당신의 남편을 만난 적 없어요. 
어떤 사람인지 몰라요. 
 
나쁜 사람일 수도 있어요. 
못된 사람일 수도 있죠. 
 
나는 그 사람을 만날 수 없기에 
당신에게 희망을 걸어봅니다.
 
그 사람 나쁜 사람이 아니라 
서툰 사람일 수 있어요.
 
그 사람 못된 사람이 아니라 
무딘 사람일 수 있어요. 
 
그 사람 당신이 얼마나 힘든지 
모를 수 있어요. 
 
당신이 표현하기 힘든 만큼 
배우자도 알아듣기 힘들 거예요. 
 
바로 지금 그곳에 하나님이 필요해요.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기를 바라요.
 
당신이 용기 내어 입을 열 때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나오기를 바라요.
 
정죄와 비난이 아니라 
당신의 필요와 원함을 말하기 바라요.  
 
하나님은 눈앞에서 남편을 
순식 간에 바꿔주시지 않아요. 
 
나와 내 남편. 
그 고통스러운 관계 속에서 
하나님은 나를 변화시켜 가시죠. 
 
손해는 아니에요. 
조금만 견뎌주세요. 
 
나의 변화는 
대화 방식의 변화가 되고 
 
대화 방식의 변화는
배우자의 변화가 될 거예요. 
 
내 편협한 말 
들어주셔서 고마워요. 
 
당신을 위해 기도할게요.
당신이 다시 웃는 그날까지. 

감정 필터 사용법

나는 유명한 사람이 아니니까
댓글이 별로 안 달립니다.
 
댓글 하나가 소중해서
꼼꼼히 살피는 편이에요.
 
대 여섯 개 달리면
일일이 답장해줍니다.
 
언젠가 한 번은
기분 나쁜 댓글이 달렸습니다.
 
댓글이 몇 개 안되니까
나쁜 댓글 하나가 전체 댓글 20%로 느껴집니다.
 
사람 참 이상합니다.
 
좋은 댓글 80% 놔두고
나쁜 댓글에 속상합니다.
 
사람마다 마음속 필터가 있습니다.
좋고 나쁨을 걸러내지요.
 
부르기 편하게 감정 필터라고
이름 붙여볼까요?
 
감정 필터가 정상적으로 기능할 때는
좋은 말은 담고, 나쁜 말은 걸러냅니다.
 
가끔 고장이 납니다. 
나쁜 말이 필터 틈에 끼어서
밖으로 나가지 않아요.
 
정체 현상이 일어납니다.
나쁜 말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덩어리가 됩니다.
 
시커먼 말이 필터에 가득 끼어버려요.
 
필터를 갈아야 하는데
그냥 살아가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나쁜 말을
걸러내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귀찮더라도 뭔가 조치를 해야 합니다.
 
주의할 점이 있어요.
 
필터를 씻어내려 마세요.
괜히 손만 더러워집니다.
 
큰맘 먹고 필터를 교체하세요.
구멍 큰 것으로 바꾸세요.
 
넉넉한 크기의 필터가 좋습니다.
너무 촘촘하면 이것저것 다 걸립니다.
 
작은 말은 그냥 흘려보낼 정도로
넉넉한 크기면 좋습니다.
 
나쁜 말 하나 붙잡고
하루 종일 반복해서 마음에 되새기면
속 쓰리고 잠 안 옵니다.
 
항상 살펴주세요.
필터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자, 구멍 크기 확인하셨나요?
넉넉해야 합니다.
 
어, 방향도 바뀌면 안 됩니다.
좋은 말을 담아야 합니다.
나쁜 말이 아니라.
 
지금까지 감정 필터 사용법
설명드렸습니다.

어떻게 도와줘야 하나요?

아끼는 후배와 대화하던 중에 심각한 말을 전해 들었어요. 자신이 돌보고 있는 소그룹 멤버가 끔찍한 일을 겪었는데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어요. 직접 만나서 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겠냐고 제게 물었는데,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요.   
 
절대로 만나시면 안 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려 죄송합니다. 자매님을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습니다. 아끼는 후배의 부탁이니 거절하기 힘들 겁니다. 그래도, 거절해야 합니다.  
 
직접 만나면 안 되는 이유를 생각나는 대로 말해보겠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비밀 유지입니다. 비밀을 말한 사람 입장에서 비밀 유지가 깨졌다면, 그건 재앙입니다. 모든 신뢰가 무너집니다. 
 
아끼는 후배가 소그룹 리더입니다. 소그룹 멤버가 리더를 신뢰하고 비밀을 말했습니다. 리더는 그 비밀을 자매님에게 말한 겁니다. 리더가 아무리 좋은 의도라고 해도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비밀을 말한 사람은 충격을 받게 됩니다. 평소 리더에 대한 신뢰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지겠지만, 대부분은 배신감에 관계를 끊습니다. 
 
공동체의 흔한 실수입니다. 서로 기도해준다는 명분으로 비밀을 마구 퍼뜨립니다. 비밀은 반드시 지켜줘야 합니다. 절대로 퍼뜨리면 안 됩니다. 한 사람의 진실된 기도가 백 사람의 기도보다 낫습니다.  
 
자매님이 후배를 대신해서 소그룹 멤버를 만난다면, 그 즉시 비밀 유지가 깨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겁니다. 안정적인 만남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지금 자매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아끼는 후배입니다. 후배에게 비밀을 말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 후배에게 집중하세요. 후배에게 필요한 건 공감입니다. 해결책이 아니에요. 후배가 해결하지 못한 것을 대신 해결해준다고 언니 노릇을 하는 게 아닙니다. 좋은 리더는 대신 해결해주지 않습니다. 방향을 제시해주세요. 선택은 당사자에게 맡겨야 합니다. 절대로 설득하지 마세요. 
 
후배가 직접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니,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어떻겠나고 제안해보세요. 두 사람의 전문가가 있습니다. 목회자와 상담자입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벌어진 일이니 목회자에게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목회자에게 비밀을 말해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비밀의 내용을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비밀의 내용을 말하지 않고 상황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소그룹 리더가 소그룹 멤버를 돌봐야 하듯, 목회자는 리더를 돌봐야 할 책임이 맡았습니다. 목회자가 자매님을 대신해 후배를 돌봐줄 겁니다. 
 
후배가 혼자서 외롭게 무거운 짐을 짊어지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후배는 소그룹 멤버에게 상담을 받아보라고 제안할 수 있습니다. 후배는 모든 내용을 알고 있으니까 편안하게 제안할 수 있을 겁니다. 당사자가 거절한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후배 역시 소그룹 멤버 대신 상처의 짐을 짊어질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리 조급해도 기다려야 합니다. 해결보다는 공감이 중요합니다. 
 
후배가 자매님에게 힘든 고민을 말했다는 것은 자매님이 제법 괜찮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감히 평가하는 게 아닙니다. 느껴지는 대로 말한 겁니다. 대신 나선다고 해결되는 일은 없습니다. 이 상황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모든 능력은 주님에게서 나옵니다. 주님이 하시는 일을 지켜봅시다. 책임회피 아닌가 걱정하지 마세요. 사랑하고 계시니까 충분합니다.

아빠가 돌아가셨어요

아빠가 오랜 투병생활을 하시다가, 지난달에 돌아가셨어요. 아버지의 죽음이 너무나 슬퍼요. 교회 공동체에서 맡았던 일을 내려놓고 잠시 쉬려했는데, 주변에서 그러지 말래요. 그럴수록 하나님을 더 붙잡으라고. 슬픔의 영에 사로잡히면 일어서기 어렵다고 참고 견디래요. 
 
슬퍼하세요.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슬프지 않겠어요. 일 년이든, 십 년이든, 평생이든 슬프면 우세요. 아버지가 일생 동안 그립다면, 그건 감사한 겁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는 감정에 죄책감을 느낀다면, 그건 잘못된 겁니다. 
 
나는 자매님에게 “슬픔의 영”에 사로잡히지 말라고 말한 사람의 의도를 모르겠습니다. 성경 어디서 나온 말인가요. “슬픔의 영”이란 표현은 처음 들어봅니다. “슬픔의 영”이란 말은 문맥상 부정적인 뜻이겠지요. 나는 목사입니다. 성경을 진지하게 연구하는 사람이에요. 이 순간만큼은 권위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성경에 그런 말 없습니다.      
 
그 말을 전해 들을 당시의 상황과 분위기 나는 모릅니다. 섣불리 그분에 대해서 평가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하고 싶습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성경에 없는 말을 하면 위험합니다. 성경을 왜곡하면 안 됩니다.  
 
쉬고 싶으면 쉬세요. 교회 일을 감당하는 것 자체가 본질이 아닙니다. 자매님이 원하시는 대로 결정하세요. 교회 봉사할 사람 항상 부족해도, 교회 문 안 닫습니다. 하나님이 잘 이끌어가십니다. 자매님 하나 쉰다고 교회 멈추는 거 아니에요. 잠시 쉬다가 기운 나면 다시 섬겨주세요. 
 
아버지 잃은 슬픔은 잘 간직하세요. 울고 싶으면 울고, 슬프면 슬프세요. 나는 몇 년 전, 3월에 장인어른을 잃었는데, 지금도 슬퍼요. 보고 싶고 생각나고 그래요. 매년 3월이 되면, 울적하고 괴롭습니다. 보고 싶고 그리우면 장인어른 묻혀 계신 추모 공원에 아내 몰래 다녀오고 그럽니다. 내 아내의 아버지를 잃은 슬픔도 이리 큽니다. 자매님의 슬픔은 말로 할 수 없지요.
 
누군가 아직도 거기에 머물러 있냐고 비웃어도 상관없어요. 내 믿음을 똥값으로 취급해도 상관없습니다. 나는 자매님의 믿음이 고귀하다고 생각합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세요. 그 눈물 마를 때까지 주님이 위로해주실 거예요. 오늘부터는 마음 편히 우셨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수치스러워

“남편에게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요. 그를 믿었거든요.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 착각이었죠. 결혼 생활이 파탄 나고 있어요.” 
 
결혼 3년 차, 아이는 없었다. 부부 침실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남편과 성관계를 원하지 않았다. 연애를 포함해서 지금까지 한 번도 남편이 원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맺어본 기억이 없다. 그녀에게 성관계는 고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이를 갖고 싶어서 배란일에 맞춰 의무적으로 한 번씩 관계를 맺었다. 서로 사랑해서가 아니라 부모가 되기 위해 치르는 행사가 되어버렸다. 남편은 아내를 안고 싶어 했다. 하지만 아내는 계속 거절했다. 남편의 집착은 심해졌다. 
 
그럴수록 아내는 남편을 밀어냈다. 해야 할 일이 있다는 핑계로 남편이 잠들면 옆에 누웠다. 그가 안으려고 하면 피곤하다며 돌아누웠다. 
 
결혼하고 세 달이 넘도록 성관계를 하지 못한 남편이 화를 냈다. 아내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고 생각한 그가 집요하게 이유를 물었다. 어떤 말을 해도 괜찮다는 말로 아내를 안심을 시키며 끊임없이 캐물었다. 아내는 남편의 추궁을 견디다 못해  숨겨둔 비밀을 말했다. 남편에게 버림받지 않을까 두려워 꽁꽁 감춰두었던 이야기를.
 
대학에 입학하여 남자친구를 만났다. 기독교 가정에서 보수적으로 자란 그녀는 혼전순결을 지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남자친구를 사귀어도 결혼 전에는 성관계를 맺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혼자만의 결심으로 순결을 지켜낼 수 없었다. 그녀와 남자친구는 선을 넘었다. 죄책감이 밀려왔다. 
 
결국 그와 헤어지게 되었다. 죄책감이 직접적인 이유는 아니었지만 그것이 두 사람 사이에 균열을 가져왔고, 그녀가 남자친구를 밀어내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 남자친구와 헤어진 다음에 발생했다. 그가 스토커처럼 그녀를 괴롭혔다. 그녀가 혼자 자취하는 집으로 계속 찾아왔다. 
 
어느 날, 그가 술에 취해 현관문 앞에 엎드려 있었다. 그녀가 집에 보내려고 일으켜 세우는 순간, 그의 애원이 시작되었다. 아무 짓도 하지 않을 테니까 잠깐만 대화를 하자고.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그를 집으로 들였다. 집에 들어선 남자친구는 이성을 잃었다. 강제로 그녀와 성관계를 맺었다. 그녀는 울면서 경찰서로 향했다. 그는 처벌받았다. 
 
그녀는 더 이상 학교에 다닐 수 없어 다닐 수 없어 휴학을 하고 배낭여행을 떠났다. 모든 상처를 먼 곳에 가서 털어내고 싶었다. 배낭여행에서 돌아온 그녀는 아픈 과거를 뒤로 하고 새로운 삶을 살고 싶었다. 
 
서른두 살에 남편을 만났다. 그는 그녀보다 두 살 어렸지만 책임감이 강하고 듬직했다. 1년 남짓 연애를 하고 결혼했다. 연애 시절, 남편이 그녀를 안고 싶어 할 때마다 그녀는 마음 속 거부감을 숨기고 말했다. 혼전순결을 지키고 싶다고. 
 
그 말을 하며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이미 더럽혀진 몸’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지워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녀의 비밀을 들은 남편은 충격에 빠졌다. 
 
“수치스러워. 당신이 얼마나 처신을 잘못했으면 그런 일을 당했겠어! 당신에 대한 모든 신뢰가 무너졌어.” 
 
예상과 다른 남편의 반응에 아내 역시 충격에 빠졌다. 아프고 힘든 상처를 솔직히 털어놓고 나서, 그녀는 일시적인 해방감을 느꼈다. 죄책감이 잠시 사라진 기분이었다. 그러나 남편이 그녀에게 내뱉은 말이 더 큰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날 밤, 남편에 대한 모든 신뢰가 무너져 내렸다.
 
남편은 그녀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 대해 집요하게 물었다. 그때 무슨 옷을 입고 있었는지, 왜 그 남자를 집으로 들어오게 했는지, 그에게 은근히 안기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왜 미리 경찰서에 신고하지 않았는지. 그녀가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없었다. 남편은 구간반복 기능이 켜진 녹음기처럼 반복했다. 
 
그녀는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불면증도 찾아왔다. 일주일에 이틀은 수면제를 복용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하루도 편하게 잠들 수 없었다. 진실을 말해버린 이후, 마치 지옥에 떨어진 것 같은 고통이 시작되었다. 
 
남편에게 다시 신뢰를 얻기 위한 노력이 그녀를 더욱 고통스럽게 했다. 남편은 집안일에 사사건건 참견했다. 살림을 제대로 못한다고 구박을 하고, 돈을 허튼 데 쓴다며 견딜 수 없는 잔소리를 하기 시작되었다. 가장 힘든 것은 그녀의 부모에 대한 비난이었다. 친정 부모님에 대한 거침없는 욕설은 기본이었다. 
 
그녀는 모든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고, 그가 이해해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잘못한 사람은 자기 자신이고, 과거는 바꿀 없으므로. 남편에게 그 기억을 지우라고 강요할 수는 없었다.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니까. 
 
“남편에게 말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차라리 남편을 만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전 혼자 살았어야 했나 봐요. 괜히 결혼해서 한 남자의 인생까지 망쳐버린 기분이에요.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남편을 놔줘야죠.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지만 생각할 게 많네요. 사람이 미쳐버리는 이유를 알 것 같아요.” 
 
***
 
남편에게 신뢰를 얻으려 노력할수록 그녀는 더욱 비참해질 것이다. 노력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다. 그녀가 성폭행 당한 것은 바꿀 수 없다. 일어난 일을 일어나지 않았던 일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바꿀 수 있는 것은 그 사건이 아니라 그에 대한 관점뿐이다. 그 사건에 대한 관점이 왜곡되어 있다. 두 사람 모두 그 관점을 변화시키지 않는 한, 계속 고통 받게 될 것이다. 
 
남편은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하지만 그는 피해자가 아니다. 아내가 겪은 고통을 올바른 관점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그는 또 다른 가해자가 된다. 이미 그는 성폭력을 당한 아내에게 언어폭력을 가하고 있다. 
 
바로 잡지 않으면 더욱 심각한 문제로 발전할 것이다. 강박증이나 의처증으로 발전한다면 남편은 자신의 삶뿐 아니라 가정도 파괴할 수 있다. 그의 왜곡된 관점은 왜곡된 감정을 느끼게 한다. 수치심이다. 그는 아내에게 “수치스럽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아내가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이 그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한다. 그것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가 느낀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자신의 아내는 그런 일을 겪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어떻게 다른 사람도 아닌 내 아내가 그런 수치스런 일을 겪을 수 있는가!’ 
 
이 감정은 남편의 지나친 자기애의 부작용이다. 세상에 나쁜 감정은 없지만 남편이 느끼는 수치심은 정당하지 못하다. 왜곡된 인식이 왜곡된 감정을 만들었다. 
 
남편이 아내를 바라보는 관점을 문장으로 표현해보자. 
 
“내 아내가 성폭행을 당했다니, 수치스러워. 분명 아내가 사건에 빌미를 제공했을 거야. 틈을 주지 않았다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겠지. 술 취한 남자친구를 집 앞에서 발견했을 때, 왜 신고하지 않고 집으로 데리고 들어간 거야? 그 상황을 견딜 수 있는 남자가 어디에 있어? 그도 피해자 아니야? 전과자가 되었으니. 나도 망가져 버렸어. 도저히 이 여자와 살 수 없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남편을 망가뜨리는 사람은 아내가 아니라 그 자신이다. 남편이 바라보는 관점이 자신을 파괴한다. 아내는 가해자나 공범자가 아니다. 피해자다. 남편의 여동생이 성폭행을 당했다고 해도 똑같은 생각과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아닐 것이다. 
 
모든 분노는 가해자에게 집중될 것이다. 여동생은 피해자일 뿐이다. 누군가 남편에게 “처신을 못했네. 그 시간에 남자를 왜 만나? 그것도 짧은 치마를 입고. 그러니 그런 일을 당하지”라고 말한다면 그는 참지 못하고 주먹을 날릴 것이다. 그런데 남편은 그 끔찍한 말을 아내에게 끊임없이 하고 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아내 역시 그 사건의 트라우마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다. 침실에서 일어난 일이 그 증거다. 그녀가 사랑스러워 안아 주려는 남편의 손길을 거부했다. 남편과 결혼할 때, 아내는 “과거에 겪은 사건은 과거일 뿐이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잊고 싶은 과거이기 때문에 잊으려 노력했을 것이다. 
 
어느 정도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한 남자를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되었고, 결혼까지 결심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트라우마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았다. 트라우마는 지독히 끈질긴 녀석이다. 직면하지 않으면 일생 동안 따라다니면서 한 사람을 파괴한다. 
 
성폭행을 당한 후, 그녀는 별도로 치료를 받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그녀에게 치료가 필요하다. 트라우마는 오랜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치유되지 않는다. 
 
아내는 바꿀 수 없는 것에 집중하지 말고,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남편에게 신뢰를 얻기 위한 모든 노력을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 의미 없는 노력이다.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스스로가 비참해질 것이다. 목표를 바꾸자. 다시 신뢰를 얻으려 노력하지 말고, 남편을 상담실에 데리고 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 남편 스스로 바꿀 수 없는 생각이 있다. 그의 왜곡된 생각은 왜곡된 감정을 불러일으켜 아내에게 더 큰 상처를 주었다. 
 
기계처럼 순서대로 되는 일이 아니지만 그 중심에 검증되지 않고 객관적이지 않은 자기만의 생각이 있다. 그 왜곡된 생각을 노출시키지 않으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한 사람이 배우자를 바라보는 관점은 지독히 폐쇄적이며 개인적이다. 죽을 때까지 노출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남편을 빛으로 인도해라. 두려움을 떨쳐내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라. 
 
남편이여, 당신의 아내는 희생자다. 그녀가 원해서 벌어진 일이 절대 아니다. 당신 안에 재생되고 있는 구간 반복 녹음기를 꺼라. 버튼을 눌러도 멈추지 않는다면 밖으로 던져버려라. 그래도 소리가 들린다면 전문가를 찾아가라. 그에게 당신이 피해자라고, 수치스럽다고 말해도 좋다. 그러나 아내에게는 안 된다. 그녀는 당신이 싫어서가 아니라 상처 때문에 당신에게 안기지 못한 것이다. 불쌍한 여자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면 좋겠다.

결핍의 또 다른 얼굴, 우상

예수님보다 사랑하는 대상이 있다면
그건 우상입니다.
 
맞습니다.
우상은 모든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이
우상을 대하는 방식에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대상이
눈앞에 있으면
바로 고개를 돌려버립니다.
 
자세히 살피지 않습니다.
무시하고 거리를 두려고 합니다.
 
죄책감 때문일 겁니다.   
우상이란 말을 듣기만 해도
죄책감이 밀려오니까요.
 
나는 우상에게 더 가까이 가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적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적을 제대로 알아야 이길 수 있습니다.
 
질문해보세요.
왜 그 우상을 섬기게 되었을까.
나는 왜 예수님보다 다른 것을 사랑하는가.
 
그 안에는 결핍이 있습니다.
결핍을 다른 것으로 채우려 했던 것이죠.
 
자신 안의 결핍을 직면하기 전에
고개를 돌리면 안 됩니다.
 
우상을 자세히 살펴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 우상에게 굴복하지 않습니다.
 
결핍을 정확히 모르면
똑같은 우상이
계속 다른 색 옷을 갈아입고
평생 당신을 쫓아옵니다.
 
위장술에 속아서
우상을 못 알아보면
평생 괴롭힘당합니다.
 
계속 같은 녀석에게
고통받기 싫다면
그 녀석 얼굴을
제대로 기억해야 합니다.
 
나는 생존해야 한다는
강박이 심합니다.
 
내 안에 자리 잡은
결핍입니다.
 
“아무도 날 지켜주지 않아.”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진다.”
 
나는 성취를 숭배했습니다.
자극적이고 매력적이었습니다.
 
사명으로 포장되니
속도가 붙고 성능이 좋아졌습니다.
 
믿음으로 도전하는 삶을 산다고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도전하고 이루고
도전하고 이루었습니다.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면
나는 전율을 느꼈습니다.
 
군침이 돌았습니다.
이루어내서 보여주고 싶었으니까요.
 
나는 중독되었고
망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내가 숭배하던 실체와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소름 끼쳤고
무서웠습니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더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드디어 그 녀석 얼굴을
보게 되었습니다.
 
검을 꺼내 그 녀석 심장에
박아주고 싶었습니다.
 
그 녀석을 숭배하는 동안
나는 너무나 고통스러웠으니까요.
 
그 녀석을 제거하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난 이제 압니다.
그 녀석 얼굴을.
 
제아무리 변장을 하고 찾아와도
나는 그 녀석을 분명히 알아볼 수 있습니다.
 
당신도 자세히 살펴야 합니다.
당신 안의 결핍을.
 
교묘히 찾아와 더러운 손으로
당신 안의 결핍을 어루만지는 우상을
물리쳐야 합니다.
 
오직 주님만이
당신의 결핍을 채울 수 있습니다.
 
자신 안의 결핍을 직면하고
그 결핍을 주님으로 채우는 것.
 
이것이 우상을 대하는
더 나은 방법입니다.

너라서 버틴 거야

“용서가 힘들어. 
슬퍼서 눈물 나.” 
 
울고 싶으면 울어. 
넌 그럴 자격 있어. 
 
약한 거 아니야. 
너라서 버틴 거야. 
 
지금까지 잘 했어. 
여기까지 잘 왔어. 
 
이제, 
하나님 차례야. 
 
천 배, 만 배로 
하나님이 갚아주실 거야. 
 
요셉이 큰 소리로 우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창세기 45:2> 

나를 어떻게 돌보나요?

자기를 돌보자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에요. 하지만 나 자신을 어떻게 돌볼지 모르겠습니다. 자기를 돌보자는 말이 무슨 뜻인가요?
 
먼저 ‘자기 사랑’과 ‘자기 돌봄’이 다름을 말하고 싶어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쓰는지 모르지만 나는 두 단어를 다른 의미로 씁니다. ‘자기 사랑’이란 말 자체를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삶은 때로는 이기적으로 변질될 수 있거든요. 세상은 이미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넘쳐납니다. 또 많은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자는 구호를 외칩니다. 나까지 소리치지 않아도 이미 귀가 아프도록 같은 말을 듣고 있지요.
 
솔직히 ‘자기 사랑’이란 말 자체가 성경적인가 의심스럽습니다. 단정적으로 표현해서 오해를 살까 걱정이 되지만, 기독교는 ‘자기 사랑’이 아니라 ‘자기 부인’을 말합니다. 자신을 부인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를 사랑하지 말고, 나를 사랑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이 역설적으로 자신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자기를 사랑할 수 없는 이유는, 자신이 누구인지 스스로 잘 알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라도 예수님 앞에 서면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형편없어도 그분 앞에 서면 고귀한 존재로 변화되지요. 그래서 예수님을 사랑하는 만큼 확신 있게 자신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말씀으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삶이 자기를 돌보는 삶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며 그분의 말씀으로 자신을 이끌어주는 삶이지요.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에 관한 말씀, 그분이 하신 말씀입니다. 구약성경은 예수님에 관한 말씀이고, 신약성경은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말 그대로 성경 전체입니다. 성경으로 우리 각자를 이끌어가는 삶이 곧 자기 돌봄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께 사랑받아야 합니다. 나는 상담을 하면서 ‘예수님을 진지하게 따르기는 하지만, 그분께 사랑받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상처 입은 사람은 예수님이 따뜻하지 않습니다. 그분께 거절당할까, 버림받을까 두려워하면서 따르지요. 예수님이 그런 분이 아니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정서적으로 그분을 누리지 못합니다.
 
이것은 말씀 자체의 결함이 아닙니다. 말씀은 그 자체로 완전합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 안의 해결되지 않은 상처와 상처로 고통받는 기억이 말씀과 예수님의 사랑을 왜곡시킵니다.
 
나 역시 상처 입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며 누구보다도 열심히 성경을 연구했지만, 그분을 단단히 오해하며 살았습니다. 상처의 렌즈로 말씀을 읽었고, 예수님과 비틀어진 관계로 오랜 시간 고통받았지요.
 
이제, 나는 당신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말씀으로 자신 안의 상처를 돌보는 삶을 시작하자고. 그분의 사랑과 말씀으로 자신 안의 상처를 따뜻하게 돌봐야 치유될 수 있습니다.

헤어진 남자친구를 다시 만나고 싶어요

3년 동안 만난 남자 친구가 있어요. 9개월 전에 헤어졌지만, 지금도 그 남자 친구가 그립습니다.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연애할 때 많이 싸웠어요. 그때는 몰랐지만, 헤어지고 나서 돌아보니 제 어린 시절 상처가 보였어요. 지극히 정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상처투성이였어요. 불안정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거든요.
 
이별을 극복하기 힘들어서 하나님께 매달렸어요. 바쁜 와중에 교회 가서 예배하고 기도하고 성경 읽으면서 하나님을 의지했어요.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어요. 그전에 먼저 제 가족이 회복되어야 할 것 같아요.
 
남자 친구를 다시 만나고 싶어요. 단순히 그리워서가 아니라 가족과 관련해서 꼭 말하고 싶은 게 있어요. 새로운 관계를 이어가고 싶어요. 더 늦기 전에 하나님이 다시 만날 수 있게 길을 열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자매님,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요. 헤어짐의 원인을 상대방에게 돌리지 않고 자신에게서 찾는 건 어찌 보면 감사한 일인지 몰라요. 자매님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요. 자매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나님께서 전 남자 친구를 다시 만나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나는 잠시 자매님과 마주 앉아 전해드려야 할 말이 있어요.
 
자매님 안에 상처가 치유되는 것과 전 남자 친구를 다시 만나는 것을 서로 나누어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이 둘을 분리하지 않으면 자매님은 더 큰 상처를 입을 수 있어요. 나는 자매님이 더 이상 상처 입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내 진심을 전하고 싶어요.
 
상처 치유와 남자 친구를 다시 만나는 게 미묘하게 섞여서 전제 조건을 만들었어요. “내가 치유되면, 내 가족이 회복되면,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면….” 여기가 전제 조건이에요. 전제 조건이 만족되면, 예상되는 결과가 있어요. 자매님이 원하시는 결과는, “다시 남자 친구를 만날 수 있어. 만날 수만 있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두번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하지 않을 거야.”와 같은 문장들이에요.
 
선명하지 않지만, 희미하게라도 원인과 결과가 성립되는 문장이 만들어지면, 자매님은 더욱 고통받을 거예요. 원인도 원인이 아니고, 결과도 결과가 아니니까요.
 
힘든 말을 할게요.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세요. 오로지 자매님 자신을 위해서 치유의 여정을 시작하세요.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매님 자신을 위해서 말이에요. 다른 누군가의 지분이 1%라도 반영된다면, 치유는 오염돼요. 보상 심리가 작동해요. “내가 이렇게까지 하나님을 의지했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나한테 이러실 수 있을까.” 시간이 흐를수록 절망감은 더 커질 거예요.
 
나는 자매님이 보상받기를 바라지 않아요. 선물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보상을 받는 사람은 언제나 아쉬워요. 노력한 만큼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선물을 받는 사람은 언제나 감사해요. 노력 없이 거저 받았으니까요. 기대가 없으니 감동 역시 크겠죠.
 
남자 친구를 지우세요. 모진 말 해서 미안해요. 나는 자매님이 보상이 아니라 선물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드린 말이에요. 남자 친구를 지우기 힘들어요. 사람이 컴퓨터도 아닌데 어떻게 기억을 지우겠어요. 하나님과 자매님 사이에 그 누구도 끼어들지 못하게 해달라는 부탁이에요. 오직 하나님만 사랑해주세요. 하나님이 해주실 그 무엇을 붙잡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봐 주세요. 진심이 전해지면, 하나님은 선물을 주실 거예요.
 
하나님이 자매님을 치유해주시기를 바라요. 그리고, 자매님을 사랑해줄 누군가를 보내주시기를 원해요. 전 남자 친구가 자매님에게 정말 필요한 사람이라면 다시 보내주실 거라 믿어요. 만약 더 좋은 사람을 준비하셨다면,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때에 보내주실 거예요. 꼭 과거에 그 사람이라고 단정하지는 마세요. 자매님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세요.
 
사람들은 상처를 보면 떠나요.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로 떠나지 않으세요. 이별의 아픔 때문에 상처를 탓하며 조급하게 치유를 말하지 마세요. 치유되지 않은 당신이라도 하나님은 온전히 사랑하시니까요. 당신이 다시 사랑받았으면 좋겠어요. 그날이 오면, 어떤 방식으로든 내게 알려주세요. 나도 함께 기뻐하고 싶어요.

우리 대화 좀 할까?

주말 아침이었다. 지애는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남편을 깨웠다. 남편은 주말에 무슨 아침 식사냐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지애는 기분이 나빴다. 한 주 내내 남편의 퇴근이 늦어, 한 번도 식탁에서 마주 앉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애는 거실에 앉아, TV를 켰다. 상한 감정을 잠시나마 달래볼 생각이었다. 한 시간 쯤 지나, 남편이 안방 문을 열고 나왔다. 냉장고를 열고, 야채주스를 꺼내 마시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주말 아침 식사는 차리지 마. 당신도 일하느라 고생하는데, 주말에는 늦잠도 자고 해야지.” 
 
지애는 말이 없었다. 남편이 그녀의 감정을 확인하듯 물었다. 
 
“당신 화 났어?” 
 
지애는 TV를 끄고, 말없이 긴 한 숨을 내쉬었다.
 
“우리 대화 좀 할까?” 
 
남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마지 못해 소파에 앉았다. 
 
지애가 물었다. 
 
“당신은 나한테 뭐 하고 싶은 말 없어?” 
 
남편이 말했다. 
 
“무슨 말?” 
 
“당신도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거 아니야?” 
 
“없어, 빨리 본론이나 말해.” 
 
지애는 대화를 통해 갈등을 해결하고 싶었다. 남편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시작부터 마음을 닫은 듯 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편은 반박했고, 변명으로 일관했다. 그녀는 남편을 이해할 수 없었다. 차라리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게 나은 듯 했다.  
 

 
아내는 남편의 방어적인 태도가 불만일 것이다. 자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말을 끊고 반박하는 남편이 답답하게 느껴질 것이다. 
 
왜 남편은 대화를 시작하기 전부터, 방어적인 태도를 취할까? 
 
부부는 말 너머로, 서로의 신호를 주고받는다. 대화를 시작하기 이전에, 신호를 먼저 보내고 감지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아내의 불편한 감정을 남편은 미리 감지했다. 긴장이 높아진 상태에서, 아내는 불쑥 남편에게 대화를 요청한다. 
 
“우리 대화 좀 할까?” 
 
아내가 하고 싶은 말은, 문장 그 자체이다. 남편과 정말로 대화를 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남편이 받아들이는 의미는 아내의 의도와 크게 다르다. 
 
“우리 대화 좀 할까?”라는 아내의 말이, 남편에게 어떻게 들릴까? 아내가 황당하겠지만, 남편은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다. 조금 과장해서 말해보겠다. 
 
“야, 너 이리 좀 와서 앉아봐. 지금 나한테 뭐 잘 못했어? 뭘 잘못했는지도 몰라? 자존심 상하지만, 이제부터 말해줄 테니까, 똑똑히 잘 들어.”
 
남편은 아내와 대화하기 위해 소파에 앉는 것이 아니다. 남편은 마치 교무실에 끌려가는 학생과 같은 심정으로 대화에 임하는 것이다. 
 
교무실에 끌려간 아이는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선생님이 잘못 판단하고, 오해한 것이라 생각한다. 대화의 시작부터 자기방어다. 아내에게 혼날 정도로 잘못한 것이 없다는 것이 남편의 결론이다. 
 
아내는 남편의 태도에 감정이 상한다. 처음 의도와 달리 목소리가 커지고, 표현도 거칠어진다. 남편도 질세라, 논리적으로 사사건건 반박한다.  
 
아내 입장에서는 황당하다. 
 
“그럼 어떻게 대화를 시작하나요? 대화를 하고 싶어서, 대화를 하고 싶다고 말하는 건데….” 
 
문장 표현 자체를 바로잡을 필요는 없다. 문장 너머의 신호가 문제다. 주파수를 잘 맞춰야 오해가 없다. 대화를 하고 싶다면, 대화하고 싶다는 신호를 보내라. 신호는 정직하다. 진심 그대로 전해질 수밖에 없다. 속임수가 통하지 않는다. 
 
아내가 남편과 대화하고 싶다면, 대화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어라. 잘못을 지적하고 바로잡아야겠다는 마음을 가졌다면, 그 자체로 공격 신호가 전해진다. 아내가 공격 신호를 보내면, 말로 대화하자고 말해도, 남편은 이미 전투태세를 갖춘다.  
 
그렇다면, 남편의 잘못은 없는가? 아니다. 남편 역시 자기 방식으로 아내에 대한 마음을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주말 아침 식사는 차리지 마. 당신도 일하느라 고생하는데, 주말에는 늦잠도 자고 해야지.” 
 
남편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아내를 위한 배려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남편은 전혀 의도한 바 없지만, 아내 입장에서는 오해한다. 아내의 정성을 깡그리 무시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부탁한다. 아내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느낀다면, 돌려 말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말하라. 굳이 돌려 말해, 오해를 살 필요가 없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거든,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품고, 가서 아내를 안아줘라. 그보다 강력한 신호는 없다. 
 
아내도 피곤한데, 왜 아침 식사를 차렸겠는가. 남편과의 한 끼 식사가 아내에게 왜 소중한가. 남편의 수고를 인정하고, 수고한 남편에게 사랑받고 싶어서다. 
 
남편이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충 전해도 저절로 전해질 것이라고 생각 마라. 어떻게 오해 없이 진심을 전할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하라. 
 
회사에서도 그러지 않는가. 제품을 잘 만들고 끝이 아니다. 잘 만들었으면, 잘 팔아야 한다. 팔리지 않는 명품은 명품이 아니다. 고객이 손으로 제품을 만져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다. 진심을 전하라. 그래야, 아내가 웃는다. 
 
부부가 서로 대화하기 어렵거든, 신호를 점검하자. 대화보다 신호다. 신호의 발생지는 진심이다. 올바른 신호는 올바른 진심에서 나온다. 진심을 담아, 말하라. 그러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

“엄마 자격이 없다고 해야 할까요. 아이들을 보면 미안한 마음뿐이에요. 남편에게도 마찬가지죠.”  
 
K, 그녀는 서른세 살, 두 아이의 엄마이다. 남편은 그녀보다 열 살 이상 나이가 많다. 그는 젊은 시절 유통 업체에서 일하다, 독립해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은 성장했다. 바쁜 시간 속에서도 남편은 가정에 최선을 다했다. 주말은 가족과 함께 보내기 위해 애를 썼다. 남편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사랑받는다고 느꼈다. 
 
어느 날, 갑자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그녀는 햇살 좋은 아침에 혼자 마트에 갔다. 물건을 사서 집에 돌아오는 길, 자동차에 주유경고등이 들어왔다. 그녀는 주유소에 방문했다. 자동차 기름 냄새를 맡자마자 불현듯 잊혀진 기억이 떠올랐다. 그녀에게 분명한 목소리가 들렸다. 
 
“너는 자격 없는 여자야.” 
 
이 문장이 떠오른 그날부터 우울증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남편과 아이들의 눈을 보면 죄책감이 느껴졌다. 주유소 기름에서 기름 냄새를 맡았을 때, 죄책감이 찾아왔다고 했다. 왜 그랬을까? 주유소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사실 남편에게 말 못할 비밀이 있어요. 언젠가는 말하고 싶지만, 남편은 저를 용서하지 못할 거예요. 젊은 날에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했거든요.” 
 
그녀는 상고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했다. 처음 일하던 곳은 직원이 10명이 되지 않는 작은 회사였다. 서류 업무로 시작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다. 매일 똑같은 업무가 지루했다. 그녀는 회사를 그만두고 의류 회사 점원으로 취직했다. 매장에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어울리는 옷을 추천하고 구매로 이어지는 일이 적성에 맞았다. 2년 지나고, 부모님 도움으로 자기 매장을 차렸다.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틀에 박힌 일이 정말 싫었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좋아요. 이런 제가 좋았어요. 그 일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말이죠.” 
 
어느 날, 매장에 남자 손님이 찾아왔다. 티셔츠 한 장을 구매하고 갔다. 그날부터 매주 정해진 요일이 되면 그가 나타났다. 월요일 오후 7시. 그 남자가 매일 매장을 방문했던 날이다. 짧은 대화가 시작되었다. 사업을 하느라 그동안 제대로 연애 한 번 해보지 못해서 일까. 그 남자의 따뜻한 눈빛과 조금 썰렁한 유머가 좋았다. 
 
그 남자가 데이트 신청을 했다. 그녀는 응했다. 두 사람은 연애를 시작했다. 추운 겨울이 두 번 지났다. 그녀는 남자 친구에게 결혼할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그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결혼은 나중에 생각하자고 했다. 그렇게, 또 한 번의 겨울이 지났다.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매장에 손님이 많아서 받지 못했다. 전화가 다시 왔다. 받지 못했다. 두 세 차례 전화가 걸려왔지만, 그녀는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 손님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전화기를 들여다보았다. 전화기에는 짧은 문자가 와 있었다. 
 
“000의 아내입니다. 시간 되실 때 전화 부탁 드립니다.” 
 
그녀는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의 남자 친구, 그의 아내에게 문자가 온 것이다. 그녀는 탈의실에 들어가 울기 시작했다. 이성을 잃은 그녀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몰랐다.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100번이 넘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그녀는 남자 친구의 회사도, 집에도 가본 적이 없었다. 그녀가 알고 있는 것은 그의 전화번호뿐이었다. 일주일 동안 전화기를 붙잡고 살았지만, 남자 친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그의 아내와 통화할 수도 없었다. K는 그녀의 남자 친구에게, 그의 아내는 K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통화에 성공한 사람은 없었다.
 
한 달이 지난 후, 그의 아내로부터 다시 문자가 왔다.
 
“그 사람, 세상을 떠났어요.” 
 
K는 반쯤 미친 사람이 되었다. 그녀의 모든 삶이 무너져 내렸다.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했다. 그녀는 그날 이후 6개월 동안 방에 틀어박혀 밖에 나오지 않았다. 매장 매출이 급감했다. 그녀의 부모님은 매장 문을 닫았다. 그녀를 살리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녀의 부모님은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 전국에 유명한 목사님을 찾아다니며 상담 받고 기도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높은 곳에 올라가 떨어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녀가 뛰어내리지 못하는 유일한 이유는 부모님이었다. 부모님을 슬프게 만들 수 없었다. 아파트 옥상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다 내려온 것이 여러 번 이었다. 부모님의 기도 덕분이었을까. 그녀는 조금씩 안정감을 찾았다. 
 
일 년이 지난 후, 그녀는 부모님 일을 돕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주유소를 경영하고 있었다. 딸이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전에 바람이나 쐬라고 주유소 경리 일을 맡겼다. 매장을 경영해본 그녀는 주유소 경리 일이 어렵지 않았다. 20대 젊은 아르바이트 직원들과 같이 일하는 것이 즐거웠다.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같이 밥을 먹고, 함께 어울리면서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큰 트럭 한 대가 주유소 안으로 들어왔다. 트럭을 운전하던 남자는 기름을 가득 채워달라고 말한 후에 차에서 내렸다. 화장실에 다녀온 그는 유리창 너머로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K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날부터 그 남자는 주유소에 매일 기름을 넣으러 왔다. 한 달이 지난 후, 그가 말을 걸었다. 
 
“시간 되세요?” 
“아니요.”
“밥이나 한 번 먹죠?” 
“아빠한테 혼나요.”
“다 큰 어른이 아빠 눈치는.”
“나가세요.”
“알겠어요. 내일 또 봅시다.”
 
어색한 첫 인사를 나눈 그 남자는 현재 그녀의 남편이 되었다.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그에게 말해야 했어요. 자격 없는 여자라고. 그럴 수 없었어요. 용기가 나지 않았거든요. 평생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 남자에게 더 이상 만날 수 없다. 나는 당신이 아는 그런 여자가 아니다 말하기로 결심한 날, 남편의 프러포즈를 받았어요. 끝내 말하지 못했죠. 가슴 속 깊은 곳에 진실을 묻어 둔 채 살았어요.”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녀는 행복했다. 두 아이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변함없이 아내를 사랑했다. 성실하게 일했고, 가정을 돌보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겉으로 보기에 부족함 없어 보이는 그녀에게 우울증이 찾아온 원인을 남편은 알 수 없었다. 
 
“제게는 모든 것이 과분해요. 남편도, 아이들도. 저는 자격 없는 사람이니까요. 솔직한 생각을 말해 드릴까요? 언젠가는 제가 이렇게 행복하게 사는 것을 그 여자가 알게 될 거예요. 그리고 제 남편에게 전화 하겠죠. 그리고 모든 진실을 까발릴거예요. 남편이 모든 진실을 알게 되면, 저는 버려질 거예요. 두 번 다시, 아이들 얼굴을 볼 수 없겠죠. 저의 행복은 유통기한이 정해져 있는 냉장고 음식 같은 거예요. 차갑게 식어버린, 그러나 아직은 상하지 않은. 그럴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되요.” 
 
***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일어날지 모르는 사건이 그녀의 삶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녀가 가진 두려움은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일이다. 행복한 일상을 누리다가 어느 날, 전화를 받는다. 이전 남자 친구의 아내다. 남편에게 연락이 간다. 남편이 모든 것을 알아버린다. 그녀를 버린다. 아이들을 두고 집을 떠난다. 홀로 남겨진다. 비참한 삶을 산다. 
 
누구도 원망할 수 없다.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정해진 기한만큼, 모든 것이 밝혀지기 전까지만, 그녀는 현재의 삶을 유지할 수 있다. 그녀만의 세상이 흘러가는 방식이다. 
 
과거의 고통으로 인해 비틀어진 관점은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쉽게 제자리로 돌아가지 않는다. 깨진 유리 조각을 다시 붙여서 원래의 모습으로 만드는 것만큼 어렵다. 그녀에게 “당신이 두려워하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아요”라고 말한다면 그녀에게 위로가 될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녀에게는 이미 일어난 일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그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설득할 방법은 없다. 그녀는 이미 일어난 일처럼 생각하고 느낀다. 
 
이 상황을 정면 돌파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이 있다. 가장 두려워하는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가정하고 대화를 하는 것이다. 가장 두려워하는 일,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을 때, 벌어지는 최악의 상황에 그려본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가장 두려워하는 사건을 외면한다. 두려움의 중심에 서지 않는다. 
 
태풍 변두리가 바람이 가장 세다. 용기를 내어 바람을 뚫고 태풍의 중심에 가 본 사람은 안다. 태풍의 중심은 고요하다. 그 일이 벌어지면 인생이 파멸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그 사건을 머릿속에 떠올리기만 할 뿐, 그 사건을 전개하지 않는다. 멀리서만 지켜보고 두려워 떠는 것이다. 
 
그 사건을  끝까지 전개해야 한다. 상상력을 발휘해 그 사건을 머릿속에서 전개해야 한다. 사건을 끝까지 전개시키고 나면, 자신이 맞이할 가장 두려운 상황이 의외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의 삶을 파괴할지 모르는 최악의 상황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으로 들어온다. 
 
고통의 대가를 지불하고 태풍의 중심으로 들어간 사람은 삶이 고요해진다. 최악의 상황을 대처할 수 있는 강인한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녀는 태풍의 위력을 느낀다. 멀리서 태풍이 불어오고 있다. 시커먼 비구름이 몰려와서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태풍이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앞집이 무너진 것처럼 내 집이 무너질지 모른다. 그녀는 두려워서 눈을 감는다. 눈을 감으면 태풍이 위력은 더욱 거세진다. 엎드려 운다. 다 끝났다고. 모든 것이 파괴될 것이라고 말한다. 
 
우르르 쾅쾅! 번개 소리를 들은 그녀는 갑자기 정신을 차린다.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갑자기 차를 몰고 태풍으로 달려든다. 강한 바람에 차가 흔들리지만, 그녀는 속도를 올린다. 흔들리던 차는 다시 고요해진다. 시커먼 비구름 역시 사라져 버렸다. 고요함만이 남는다. 그녀는 깨닫는다. 태풍은 강했지만, 자신의 집을 파괴해 버릴만큼은 아니었다고. 태풍을 미리 경험해보고 나서 깨닫게 된 사실이다.
 
남편이 모든 것을 알게 되면, 어떻게 반응할까. 그녀를 버릴까. 아니면,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평소처럼 살아갈 것인가. 아무도 모른다. 태풍의 바람은 거셀 것이다. 남편이 흔들리다 쓰러질지, 아니면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설지. 남편의 반응은 예상할 수 없다. 
 
견뎌주면 아내와 살고, 견디지 못하면 아내를 버리게 될 것이다. 남편의 반응이 태풍이라고 전제한다면,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남편 반응은 태풍이 아니다. 태풍의 실체는 그녀 마음 속 두려움이다. 
 
그녀는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다. 그녀는 이전 남자친구가 유부남인 것을 알지 못했다. 유일한 잘못은 그녀의 남자 친구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것이다. 그녀는 신이 아니다. 그녀의 잘못이 아니란 뜻이다. 그녀가 죄책감을 느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는 무죄이다. 그녀는 비난받아야 할 사람이 아니라,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다. 
 
그녀가 남편에게 모든 사실을 미리 말해야 할 책임은 없다. 끝까지 숨겨야만 한다는 말도 아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인생을 살면서 때로는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일이 있다. 가장 두려운 일을 마음속으로 미리 경험한 사람은, 다가올 일에 대해 편안하다. 
 
그 일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것이다. 그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세상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마음의 준비를 오랫동안 한 사람이라면, 그 일이 일어난 다음부터, 자신의 진정한 가치가 빛을 발하기 발한다.

결혼은 도피처가 아닙니다

부모에게 상처받은 딸은
집을 벗어나고 싶어 해요.
 
결혼에 대한 확신 없이
결혼으로 도망쳐 버려요.
 
결혼해서 떠나살면
더 이상 상처받을 일 없겠지.
 
아니에요.
진실이 아니에요.
 
시부모, 임신, 육아.
지금보다 힘들 거예요, 아마.
 
결혼으로 도망치면
상처는 깊어져요.
 
앞자리 숫자가 바뀌는 게
두렵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서두르지 마세요.
남은 인생이 달렸으니까.
 
결혼으로 도망치기 전에
자신과 마주하세요.
 
신부화장을 해주듯이
자신을 돌봐주세요.
 
자기 몸에 나쁜 피라도
흐르는 것처럼 괴로워 마세요.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될 수 없을 거라고 자책하지 마세요.
 
당신이 자라온 환경은
당신이 선택한 게 아니에요.
 
그건 주어진 거예요.
당신이 원하지 않았잖아요.
 
내가 분명히 말해줄게요.
당신 잘못 아니에요.
 
그리고, 한 가지 더.
나는 진실을 말해야 해요.
 
결혼 후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당신 책임이에요.
 
부탁드려요.
여유를 가지세요.
 
멀리서 상처라는 부메랑이 날아오네요.
나 없는 사이 누군가 던지고 갔나 봐요.
 
내가 던진 거 아니라고
뒤돌아서서 외면하면 안 돼요.
 
누가 던진 거냐
범인 찾다가 다치는 건 당신이에요.
 
두려워도 마주 서서
정면으로 응시하세요.
 
반드시 두 손으로
안전하게 잡아야 해요.
 
사방팔방 날아오는 부메랑
멋있게 잡아내는 연습해요, 우리.
 
나는 방심하다가
어제 뒤통수 맞았어요.
 
동시에 두세 개 날아올 때는
나도 어쩔 수 없지요.
 
도저히 안되겠다 싶을 때는
무릎 꿇고 엎드리세요.
 
부메랑을 피할 수 있는
괜찮은 방법이에요.
 
나는 맞아서 아파도
당신이 아픈 건 싫어요.
 
그러니, 부메랑을 보세요.
꼭 잡아내시기 바랄게요.

남자가 그리워요

이혼해서 아이들을 혼자 키우며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권유로 연애를 했고, 재혼 이야기까지 오고 갔습니다. 결국, 상대방 부모님의 반대로 관계를 정리했어요.
 
하지만, 저는 힘든 일을 겪고 나서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두 달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서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어요. 남자가 그리워졌어요. 누군가 곁에서 날 안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점점 심해졌어요.
 
다른 싱글맘들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상 친구들은 참지 말고 다른 사람을 만나라고 해요. 하지만, 저는 단지 성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가벼운 만남을 이어가는 게 성경적이지 않다고 생각해요.
 
이런 나 자신이 낯설어 운동도 열심히 하고 바쁘게 지내고 있지만, 혼자 있을 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럴 때마다 죄책감이 들어요.
 
사실, 저는 어린 시절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어요. 가족에게 말하지 못했어요. 아빠는 술주정, 외도로 엄마에게 고통을 주었어요. 오빠는 같이 어렸고 힘이 없다고 느껴지니까 도와줄 거란 기대 조차 없었죠. 전 남편은 결혼하고 얼마 후부터 외도를 하더니 결국 날 떠나서 그 여자랑 살아요.
 
민감한 주제라 답변을 피하고 싶었어요. 용기 내어 답변하는 이유는 자매님이 살아온 삶을 자세히 적어주셨기 때문이에요. 자매님은 지금 남자가 그리운 게 아니에요. 자매님을 보호해줄 사람이 필요한 거예요. 주장을 했으니 근거를 말해야겠죠. 제가 드리는 말은 추론에 불과해요. 제 이야기에 얽매이지 마시고, 하나의 견해로 받아들여주세요. 받아들일 만큼만 받아들이면 좋을 것 같아요.
 
자매님은 초등학교 때, 집에 놀러 온 사람에게 성폭행을 당했어요. 아빠는 술에 취해 잠든 상황이었고, 오빠는 자고 있었어요. 결국 아무도 도와줄 수 없었어요. 그 사실을 지금도 숨기고 있고요. 자매님은 엄청난 일을 당했지만, 가족에게 말하지 않았어요. 왜 그랬을까요? 자매님을 보호해 줄 수 없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에요.
 
아빠는 가정 폭력, 외도로 엄마에게 상처를 줬어요. 어린 자매님은 아빠가 칼을 들고 엄마를 죽이려고 했던 장면을 목격했어요. 아빠가 어린 자매님을 보호해줄 수 없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초등학교 때, 오빠와의 일도 마찬가지예요. 자매님을 괴롭혔던 덩치 큰 아이가 나타났어요. 자매님은 오빠에게 일렀어요. 오빠는 어린 자매님을 보호해준다며 대신 싸워줬어요. 하지만, 졌어요. 두 사람은 민망한 채 말없이 집으로 돌아왔어요. 오빠 역시 자매님을 보호해줄 사람이 아니었어요.
 
전 남편은 잦은 외도 자매님에게 고통을 주었고, 결국 집을 나가 바람난 여자와 살림을 차렸어요. 자매님을 보호해주기는 커녕 상처를 주고 말았죠. 가슴 아픈 한 여자의 인생을 나는 보았어요. 그래서 외면할 수 없었고, 민감한 주제이지만 답변을 하게 되었어요.
 
자매님의 이야기가 진실이라면, 자매님은 지금 사랑받고 싶은 거예요. 보호받고 싶은 거죠. 성적인 만족을 원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 따뜻하게 안아줬으면 하는 거예요.
 
그 지점에 자매님의 결핍이 있어요. 남자를 원한다는 생각은 죄책감으로 이어지지만,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감정은 자연스러운 감정이에요. 그러니까 자신을 정죄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자매님을 온전히 사랑하세요. 지금까지 상처받으며 살아온 자매님을 보시며 하나님은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요.
 
자매님은 보호해줄 사람 없이 최선을 다해 두 아이를 키우고 있어요. 누군가 찾아와 따뜻하게 안아주기를 바라는 건 자연스럽고 당연한 감정이에요. 다른 대안을 찾지 않는다는 점에서 올바른 방향을 잡았다고 생각해요. 과정은 힘들 거예요. 오래 걸려요.
 
자매님에게 부탁드리고 싶어요. 외로운 자신을 정죄하지 마시고, 돌봐주셨으면 해요. 외로운 건 자연스러운 거예요. 자매님은 누구보다 외로울 수 있어요. 외로울 때마다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리고 안아달라고 말씀하세요. 자매님 안의 결핍을 예수님의 사랑과 말씀으로 채워달라 기도하세요. 예수님이 자매님을 끝까지 돌보시고 책임져 주실 거라고 믿어요. 자매님의 하나님은 정죄하는 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자매님을 지키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이 되어주셔야 해요.
 
다시 누군가를 만나기 원한다면, 솔직히 하나님께 기도해 보세요. 자매님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받아 마땅한 소중한 존재니까요.

아내가 과거의 잘못을 들춰냅니다

아내가 지난 일에 대해 자주 이야기합니다. 과거에 상처 준 시간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아내가 알아주지 않아 괴롭습니다. 그동안의 모든 노력이 아무 의미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솔직한 질문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이 아무 의미 없다는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동안 최선을 다해 노력하신 것, 아내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아내가 고마운 마음을 남편에게 안심하고 표현하지 못한 겁니다. 포기하기에는 이릅니다. 조금만 참고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아내의 상황을 먼저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 상처는 시간이 흐른다고 쉽게 잊혀지지 않습니다. 아내가 지난 일에 대해 말할 때, 남편을 비난하는 게 아닙니다. 과거의 잘못을 들춰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남편에게 솔직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겁니다. 과거에는 남편에게 아무리 표현해도 이해 못 한다 생각했기 때문에 아내가 말하지 않고 혼자 참은 겁니다. 아내가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다는 건 남편이 그동안 노력한 결과입니다. 그러니, 힘들어도 잘 들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상처는 순간입니다. 치유는 과정입니다. 진심으로 용서받기 원하신다면, 아내가 남편에게 지난 일을 말할 때마다, 치유되는 시간이라고 믿고 아내에게 반복해서 용서를 구하세요. 용서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래 걸립니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풀릴 일이라면, 아내가 긴 시간 상처로 고통받지 않았겠지요. 아내가 지난 일 웃으며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자존심 내려놓고 진심으로 사과해주세요. 
 
아내 역시 용서하려니 고통스러울 겁니다. 아내가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조심스럽게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남편이 포기하지 않도록 자신의 내면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말해주세요. 남편이 노력하는 모습이 고마울 겁니다. 고마운 건 고맙다고 말해주세요. 하지만,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해주세요. 
 
그리고, 예수님께 나아가세요. 남편이 천 번을 미안하다고 말해도 용서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남편이 아내 옆에서 일생 동안 죄책감으로 고통받으며 살아간다고 해도 그 마음 풀리지 않을지 모릅니다. 예수님께 아픈 마음 가져가세요. 예수님이 위로해주셔야 그 마음 풀립니다. 지난 일이니 다 잊으라는 말 아닙니다. 잊지 마세요. 하지만, 상처만 기억하지 마시고 예수님도 기억해주세요. 그래야, 삽니다.

내 목소리 기억나?

“내 목소리 기억나?” 
 
문득 전화가 걸려왔다. 모르는 번호였고, 낯선 목소리였다. 
 
“잘 모르겠어요. 누구시죠?” 
 
애써 친절하게 말했다. 혹시라도, 실수할까 걱정스러웠다. 아는 사람의 전화번호를 저장하지 않고 있다가 서운하게 한 일이 종종 있었다. 
 
“나 기억 못 하나 보네. 나 민혁이야. 정민혁.” 
 
그의 이름을 들었을 때, 내 시간은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 비디오테이프를 거꾸로 감듯이, 온 세상이 삐리릭 거리며 빠르게 뒷걸음질 쳤다. 그의 목소리가 나를 십 년 전 어느 날로 잡아당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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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사람이 죽는 걸 직접 본 적 있어? 난 본 적 있거든. 정말 무섭더라. 
 
내 눈앞에서, 아빠가 농약을 먹고 자살을 했어. 며칠 전부터 이상하더라고. 갑자기 나한테 통장이랑 도장을 주면서 비밀번호를 알려줬어. 뭔가를 결심한 눈빛이었고.
 
일요일 아침이었는데, 마당에서 우당탕 소리가 났어. 깜짝 놀라 뛰어나갔지. 문을 열고 보니까, 아빠가 입에 거품을 물고 비틀거리고 있더라고. 
 
아빠와 눈이 마주쳤는데, 아빠의 눈빛을 아직도 못 잊겠어. 아빠가 바닥에 쓰러졌는데, 눈을 감지 않았어. 차갑게 천천히 식어갔지. 그때 나는 얼어붙어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어. 눈물조차 나지 않더라고. 
 
한참 동안 멍하게 서 있다가, 아빠에게 천천히 다가갔어. 내 손으로 아빠의 얼굴을 쓸어내렸어. 아빠의 눈을 감겨주려고. 시뻘겋게 충혈된 아빠의 눈이 무섭기도 했고, 마지막까지 날 바라보던 아빠의 눈이 슬프기도 했고. 아빠의 눈을 감겨주는데, 눈물이 울컥 나더라고.” 
 
통장의 돈은 백만 원 남짓이었다. 중학생 용돈으로는 큰돈이었을지 몰라도, 소년 가장의 생활비로는 물 한 방울처럼 적은 돈이었다. 석 달 만에 통장의 모든 돈이 사라졌다. 
 
시골 마을, 인심은 좋았다. 민혁이가 불쌍하다며, 마을 어른들이 먹을 것을 가져다줬다. 그러나, 그 또한 잠시뿐이었다. 마을 어른들은 민혁이를 오롯이 돌볼 수 없었다. 마을 이장님은 기관을 알아봐 주었다. 
 
마땅한 기관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 옆 마을에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살고 있다는 소식이 이장님 귀에 전해졌다. 이장님은 한 마디 예고도 없이, 옆 마을 어른과 민혁이를 찾아왔다. 민혁이는 대충 짐을 싸서, 그 아저씨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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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혁아, 이번에 조사 나오면, 보일러가 고장 나서 네 집에서 살 수 없다고 말해. 그러면, 보상금 나오거든.”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민혁이는 아저씨가 시키는 대로 했다. 그날 밤, 아저씨 가족은 차를 몰고 시내로 나가 자기들끼리 외식을 했다. 
 
민혁이는 창고처럼 간단히 꾸며진 공간에 우두커니 혼자 남겨졌다. 차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민혁이는 밖으로 나가 인사를 했다. 
 
차 문이 열리자, 숯불에 구워진 고기 냄새가 민혁의 콧구멍을 찔렀다. 차에서 흘러나온 진한 고기 냄새는 매정했다. 민혁의 몸에 밴 라면 냄새를 한 꺼번에 몰아냈다. 
 
자기 이름으로 들어오는 지원금을 아저씨가 가로채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민혁이는 그 집을 나왔다. 석 달 만이었다.
 
갈 곳이 없어진 민혁이는 여기저기 전전했다. 그러다, 시내의 작은 교회 목사님을 만났다. 아주 잠시 동안이라도 머물 곳을 찾은 것이다. 
 
학교에서 만나는 민혁이는 항상 밝았다. 책을 좋아했고, 글을 잘 썼다. 창의적인 방법으로 친구들을 웃겼다. “훈민정음 2”라는 민혁이의 노트가 교실 안을 돌아다녔다. 민혁이는 한글을 조합해서 새로운 글자를 만들었다. 친구들은 그 문자를 발음하기 위해서 애를 썼다. 아무도 “훈민정음 2”에 기록된 문자를 제대로 발음할 수 없었다. 민혁이는 새로운 문자의 창시자였다.  
 
나는 그런 민혁이가 신기해 보였다. 운동장 귀퉁이에 앉아 과자를 까먹으면서 “나중에 뭐가 되고 싶냐?”라고 넌지시 물었다.   
 
민혁이는 돈을 많이 벌어서, 한국에서 제일 큰 서점을 열고 싶다고 했다. 4층으로 지어서, 층마다 다르게 꾸미고, 마치 다른 나라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싶다고 했다. 시골 마을을 벗어나 본 적 없는 민혁이는 세계를 동경하는 듯했다. 나는 꿈마저도 창의적인 민혁이가 부러웠다.  
 
그 후 추운 겨울이 찾아왔고, 우리는 중학교를 졸업했다. 민혁이는 일을 하면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산업체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그날 이후, 민혁이와의 소식은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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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 그럼 목사 되는 거야?”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민혁이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나를 현재의 시간으로 돌려놓았다.
 
“어쩌다 그렇게 됐네.” 나는 피식 웃었다. 
 
민혁이의 기억이 그 당시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면, 기가 막힐 노릇이었을 것이다. 민혁이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내가 겪은 일을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사용하는 종교의 언어는 어쩌면 그에게 “훈민정음 2”처럼 낯설게 들렸을지 모른다. 
 
민혁이는 결국 통화하게 된 목적을 말했다. 
 
“야, 사실 내가 조금 이상한 것 같아.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다른 것 같거든. 오래전부터 네가 생각나더라. 너를 만나면 왠지 대답을 해줄 것 같아서. 우리 시간 내서 잠시 볼 수 있을까?”
 
물론이었다. 나 역시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민혁이를 보고 싶었다. 민혁이는 자신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고, 나는 바로 그다음 날, 민혁이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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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혁이가 있던 곳은 도봉산역 근처 구석진 판자촌이었다. 주유소에서 밤낮으로 일하고, 집에 들어가 잠시 눈을 붙이는 삶을 반복하고 있었다. 
 
집이라고 해봐야,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신발을 벗으면 곧바로 방이었는데, 한 사람이 누우면 머리끝과 발끝이 벽에 닿을 지경이었다. 한 사람이 누워서 양쪽으로 팔을 벌릴 수 없을 만큼 폭이 좁았다. 
 
좁은 방에 들어앉아, 대화를 시작했다. 민혁이가 담배를 꺼내 깊이 한 모금을 들이마셨다. 가슴속에 간직한 비밀을 연기로 건져올리듯, 그는 긴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토끼 가면이 잊혀지지 않아. 그날 밤 끔찍한 일이 있었거든. 그 사건 이후로, 뭔가 잘못된 것 같아.”
 

 
“아빠가 내 앞에서 농약을 먹고 눈앞에서 죽은 이후로 내가 지낼 곳이 없었어. 사기꾼 같은 놈한테 이용당하다, 시내에 어떤 교회 목사님을 만났지. 
 
목사님이 친절하시더라고. 교회 구석진 곳에 작은 공간이 있었는데, 나보고 거기서 먹고 자고 하라고 했어. 내가 갈 데가 어디 있었겠어. 이래저래 고맙더라고.   
 
일주일이 지났나. 밤에 자고 있는데,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리더라고. 교회에 기도하러 왔나 보다 생각했지. 뒤돌아 누워 자려고 하는데, 방문이 열리는 거야.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났어. 
 
덩치 큰 남자가 토끼 가면을 쓰고 있었어. 그 남자가 날 덮치고 강간했어. 지금이라면, 볼펜이라도 들어서 그 사람 목이라도 찔렀을 텐데, 그때는 너무 무섭기만 했어. 뒤돌아 울면서, 끔찍한 시간이 끝나기만 바랐지. 
 
다음 날 아침, 바로 그곳을 나왔어. 그대로 있다가는 똑같은 일을 당할 것 같아서.
 
그런데, 문제가 뭔지 알아? 밤마다 토끼 가면이 떠오른다는 거야. 밤이 되면, 생각나. 불을 끄고 잘 수가 없어. 저기 저 문이 갑자기 열릴 것 같거든. 밤이 되면,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발자국 소리도 무서워.”
 
내 눈에서 주르륵 눈물이 떨어졌다. 눈물을 숨기려 눈을 비볐다. 민혁이는 방 안에 가득 찬 담배 연기 때문인 줄 알고, 벌떡 일어나 문을 열었다. 작은 창문조차 달려 있지 않는 방이었다. 손으로 휘휘 저어 연기를 내보내면서, 민혁이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나한테 가장 큰 문제는, 내가 남자인지 아닌지 모르겠다는 거야. 지금까지 세 번 정도 여자를 사귀어 봤거든. 당연히, 같이 자 본 적도 있지. 생각보다 별로였어.” 
 
민혁이는 양쪽 팔소매를 어깨까지 걷어올렸다. 그리고, 뒤돌아서서 상의를 벗어서 등짝을 드러냈다.      
 
팔부터 시작된 문신은 어깨를 타고 등판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날카롭게 발톱을 드러낸 용이, 화가 난 듯 코에서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여자에게 감정을 못 느끼니까, 엄청나게 불안한 거야. 야, 이거 뭐가 잘못됐다. 그래서, 몸에 그림을 좀 그렸어. 나 남자다, 뭐 이런 거? 조금은 나아질 줄 알았거든. 그게 아니더라고. 문신을 이렇게나 크게 그렸는데도 불안해.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어. 도로 한가운데를 미친놈처럼 달렸지. 한참을 뛰다가, 지쳐서 바닥에 주저앉았어. 손끝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거야. 문신한 자리에서 땀처럼 피가 나더라고. 맨살을 바늘로 찔러대니 그런 거지.”
 
민혁이의 말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지하철 막차가 올 시간이 돼서야, 나는 시계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하철역까지 날 바래다주면서, 민혁이가 말했다. 
 
“어릴 때부터 있잖아. 너를 만나면, 마음이 참 편했어. 오늘도 그래. 해결된 건 없지만, 오늘 하루는 마음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민혁이를 돌아보며 말했다. 다음 주 이 시간에 다시 올 테니까, 그때는 잠시 동안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민혁이는 기뻐하는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좋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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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혁이에게 가는 길은 짧지 않았다. 나는 상록수역에서 지하철을 탔고, 도봉산역에서 내렸다. 거의 두 시간 거리였다. 민혁이를 보러 가는 날에는, 하루를 온전히 비워야 했다. 
 
나 역시 계속되는 아르바이트와 대학생활로 몸과 마음이 피곤한 상태였다. 시간과 돈이 빠듯했지만, 민혁이를 만나지 않을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민혁이를 만나면, 먼저 짜장면을 사줬다. 그리고, 예수님을 전했다. 그에게는 “훈민정음 2”라고 여겨질 만큼 낯설고 불편한 것이었지만, 나는 우정이라는 강력한 신뢰의 다리 위로 끊임없이 복음을 실어 날랐다. 
 
어느 날, 심각해진 민혁이가 담배를 입에 물고, 성경을 뒤적거렸다. 그의 손이 빨라지면서, 담뱃재가 성경에 떨어졌다. 그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손으로 대충 털어내면서 말했다. 
 
“여기 나오는 이야기를 어떻게 믿냐? 너는 이게 믿어지냐?” 
 
나는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말했다. 
 
“믿으니까, 믿어보라고 말하지 않겠어?”  
 
민혁이가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 믿는 거 맞아?”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랐다. 나는 엄마 몰래 사탕을 훔쳐 먹은 아이처럼,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댔다. 
 
당시, 나는 신학교 2학년이었다. 나는 신앙의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열여섯 살에 회심하고, 성경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단순하게 믿었던 나는, 신학교에서 배운 지식으로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내가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은 아닐까 고민하면서, 다른 종교를 기웃거리기도 했다.  
 
내 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았다. 부끄러운 감정을 숨기려고 애써 태연한 척 말했다. 
 
“내가? 아니야. 내가 못 믿는 걸 어떻게 너한테 말해.” 
 
민혁이는 담배를 한 모금 깊이 빨아들였다. 담배 연기를 내 얼굴에 내뱉으며 말했다. 
 
“가면 벗어, 자식아.” 
 
그 순간, 나는 민혁이의 멱살을 잡고 싶었다. 그를 덮쳤던 토끼 가면과 나를 동일시 하다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멱살을 잡고 앞뒤로 흔들면서, “어디서 감히, 그딴 놈과 나를 비교해? 내가 그딴 놈이랑 같냐?”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조용히 앉아 있었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민혁이는 방문을 열어젖히고 말했다. 
 
“오늘은 그냥 가라. 다음부터는 다른 이야기하자. 성경 이야기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나는 그날 밤, 무기력하게 민혁이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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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가 지나고, 나는 민혁이를 다시 찾아갔다. 지난번 일을 사과하고 싶었다. 확신 있게 믿게 되면, 다시 찾아올 테니, 당분간 잘 지내라고 말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민혁이는 주유소에 없었다. 같이 일하는 직원에게 “민혁이 어디있냐”라고 물었다. 직원은 밀려드는 자동차를 혼자 감당하며, 짜증스럽게 말했다. 
 
“몰라요. 며칠째 말도 없이 안 나와요. 일 좀 제대로 하라고 말해주세요. 힘들어 죽겠어요.”
 
불길했다. 민혁이의 집으로 냅다 뛰었다. 도착하자마자, 그의 집 문을 거세게 열었다.
 
문을 열고, 내가 마주한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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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혁이는 나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애원하듯 내게 말했다.  
 
“여기 전기장판 코드 좀 빨리 뽑아줘.” 
 
나는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민혁이가 시키는 대로, 전기장판 코드를 뽑았다. 코드를 꽂는 곳은, 민혁이 발치에 놓여있었다. 
 
민혁이의 등이 전기장판의 전선 자국을 따라 하얗게 타들어간 상태였다. 등 전체는 열에 타서 시커멓고, 전선이 직접 닿은 곳은 오징어처럼 하얗게 익어버린 것이다.
 
민혁이가 말했다. 
 
“며칠 전에 허리가 너무 아픈 거야.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어. 병원에 갔더니, 허리가 심각하게 망가졌데. 절대로 일을 하면 안 된다고 말하더라. 불구로 살 수 있다고 하는 말에 충격을 받았어.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데, 어떻게 쉬겠어. 나가서 일했지. 그다음 날,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픈 거야. 아예 일어나지도 못하겠어. 이틀 동안 꼬박 누워서 아무것도 못 했어. 몸을 일으킬 수도 없었으니까.
 
뜨거운 열로 지지면 조금 나아질까 싶어서 전기장판을 최대로 하고 잠에 들었어. 뭔가 이상해서 눈을 떴는데, 연기가 나는 거야. 내 등이 타고 있는지 누가 알았겠어. 
 
오늘 아침부터 옆으로 몸을 돌리고 누워 있었어. 합선이 된 건지, 전원이 안 꺼지더라고. 너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날 찾아올 사람은 아무도 없거든. 주유소에서 같이 일하는 직원들도 내가 어디 사는 지 몰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민혁이를 데리고 병원에 갈 수도 없었고, 며칠 동안 먹고살라고 돈을 쥐여줄 수도 없다. 무능했다. 한숨을 내쉬며,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민혁이는 내 손을 잡아주며, “미안하기는 뭘 미안해. 네가 와줘서 난 고맙기만 한데.”라고 말했다. 
 
나는 민혁이의 손을 꼭 잡으며 물었다. “내가 기도를 한 번 해도 될까? 내가 너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
 
잠시 동안, 묘한 긴장이 흘렀다. 민혁이는 생각 끝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라고 했다. 
 
나는 민혁이를 돌려 눕혔다. 민혁이의 허리에 살며시 손을 얹고 기도를 시작했다.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민혁이는 반드시 나아야 했다. 낫지 않으면 굶어죽을지도 몰랐다. 내가 의심하는 하나님이라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도와주셔야 했다. 하나님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했다. 나는 절박한 심정으로 떼를 쓰며 기도했다. 
 
온몸이 땀에 젖었다. 사력을 다해 기도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도 몰랐다. 기도 마지막에 비장한 각오로 선언하듯, 말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한다. 일어나, 걸어라.” 
 
민혁이는 고개를 돌려, 날 쳐다보며 물었다. 
 
“이제 일어나면 되는 거야?” 
 
나는 긴장한 채로, 말했다. 
 
“천천히 일어나 봐. 다칠 수도 있으니까.” 
 
민혁이는 고개를 떨구고, 민망한 듯 말했다. 
 
“나 못 일어나겠어. 허리가 너무 아파.” 
 
나는 화를 내듯 말했다. 
 
“그럴 리 없어. 도무지 말이 안 된다고.” 
 
민혁이는 당황했다. 
 
나는 민혁이 허리에 손을 얹고 다시 기도했다. 목이 쉴 정도로 큰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더 이상 기도를 할 수 있는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민혁이가 돌아보며, 물었다. 
 
“언제 끝나? 이제 그만하자. 허리를 누르니까, 더 아파.” 
 
나도 지칠 대로 지쳐버린 상태였다. 푸념하듯 말했다. 
 
“그래, 그만하자.”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민혁이를 외면하는 하나님을 더 이상 믿고 싶지 않았다. 
 
나는 차비를 제외한 모든 돈을 민혁이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 
 
“굶지 말고, 짜장면이라도 시켜 먹어. 내일모레 또 올게. 그때는 먹을 것 좀 사 올게. 일단, 견뎌. 알겠지?” 
 
나는 민혁이의 집을 나섰다. 밤길이 어두웠다. 새들이 구슬프게 우는소리, 의미 없이 울려 퍼지는 고양이의 울음 소리마저도, 나를 비웃는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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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일찍, 나는 민혁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만큼 걱정스러웠다. 민혁이는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주변이 자동차 소리로 시끄러웠다.
 
민혁이가 말했다. 
 
“나 지금 바쁘니까, 이따 통화하자. 지금 일하고 있어,.” 
 
내가 한 마디 던질 겨를 없었다. 민혁이는 전화를 끊었다. 나는 전화기를 귀에 댄 채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너 지금 아프잖아. 허리가 아파서 일어나지도 못했잖아.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나는 민혁이의 전화를 기다릴 수 없었다. 곧바로 지하철에 몸을 싣고, 민혁이에게로 갔다. 가는 내내 궁금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주유소에 도착해서, 민혁이를 찾았다. 민혁이는 여느 때처럼, 바쁘게 일을 하고 있었다. 민혁이는 잠시 한가한 틈을 타서,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잘 들어봐. 정말 신기한 일이 있었어. 어제 너 가고 나서 꿈을 꿨어. 토끼 가면을 쓴 그 자식이 또 꿈에 나오더라고. 예전에는 있잖아, 너무 무서운데, 도망을 못 가고 밤마다 그 짓을 당했었거든. 
 
이번에는, 꿈속에서 내가 도망을 치더라고. 그놈을 밀치고, 반대편으로 힘껏 뛰었어. 그 자식이 엄청난 속도로 뒤따라 오더라. 나도 미친 듯이 뛰었지. 
 
이러다 잡히겠다 하는데, 눈앞에 하얀색 빛이 나타났어. ‘어, 이거 뭐지?’하는데, 눈이 부실 정도로 새하얀 옷을 입은 사람이 두 팔로 날 안아주시는 거야. 짧은 순간이었지만, 정말 따뜻했거든. 
 
깜짝 놀라 잠에서 깼어. 잠에서 깨서 보니까, 내가 상체를 일으키고 있더라고. 벌떡 일어나 앉아 있는 거야. 
 
꿈에서 놀라 깼는데, 꿈을 깨고 나서 더 놀랐어. 허리가 안 아픈 거야. 일어나서 움직여보는데, 정말 하나도 안 아프더라고. 
 
그 하얀 옷을 입은 분이, 네가 말한 하나님인가, 예수님인가 하는 그분이 아닐까?”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뭐라 말할 틈도 없이, 민혁이는 잠시 기다려 달라는 말과 함께 다시 일을 하러 갔다. 
 
나는 우두커니 서서 민혁이를 기다렸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바쁘게 일을 하는 민혁이를 바라보면서, 복잡한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 후로, 오랫동안 민혁이는 나에게 복음을 말할 기회를 줬다. 민혁이에게 복음을 전하는 동안, 나 자신도 의심을 지나, 확신의 길로 돌아설 수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나를 배려하신 것이 분명했다. 
 
민혁이와 함께 겪은 사건은 내 인생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날이 없었다면, 오늘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민혁이에게 전화가 오지 않았다면, 민혁이를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민혁이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신학교를 그만두고 다른 길을 갔을지도 모른다. 
 
민혁이를 위해 기도해줄 때, 민혁이가 그 자리에서 즉시 나았다면, 나는 치유에 대해 오해했을 것이다. 
 
마치 내 능력이라도 되는 듯, 교만해졌을 것이다. 하나님은 내가 기도하는 동안, 아무런 일도 없게 하셨다. 시간적 간격을 두시고, 내가 없을 때, 민혁이를 고쳐주셨다. 
 
내가 없는 동안, 그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나는 분명히 안다. 궁극의 치유는 치유를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치유를 실행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만약 민혁이의 허리만 나았다면, 나는 반쪽짜리 치유를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민혁이의 정서와 육체를 동시에 치유해주셨다. 토끼 가면으로부터 도망쳐, 하나님의 품에 안기게 하셨기 때문이다. 
 
꿈속에서 나타난 일회적인 사건일지 모르지만, 민혁이의 삶의 구조를 바꿀 만큼 위력적인 경험이었다. 
 
기억 속에서 토끼 가면이 나타날 때마다, 민혁이는 그로부터 도망칠 것이다. 꼼짝도 못 한 채로, 끔찍한 일을 반복적으로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서 벗어나 따뜻한 하나님의 품에 안기고자 할 것이다. 
 
복음적인 치유는 전인격적이다. 육체와 정서를 아우른다. 심리치료가 따라올 수 없는 지점이다. 하나님께서 상처 입은 한 사람의 인생에 개입하실 때 일어나는 일을, 나는 생생하게 목격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도, 내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이유다. 나는 보았고, 들었다. 치유는 나의 믿음에 관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관한 것이다. 나의 연약한 믿음, 무지와 무능이 치유의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면, 불가능은 없다.  
 
하나님이 치유의 근원이시다.

조금만 쉬고 싶어요

교회는 언제나 바빠요. 
봉사하는 사람이 부족해요. 
 
주보에 사람 구하는 광고가 
매주 빠지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헌신된 사람은 
목사만큼 바빠져요. 
 
주일에 봉사하다가   
목사보다 늦게 집에 가는 
사람도 있어요.   
 
이게 맞나. 
그만할까. 
 
이래저래 생각하다 
받은 은혜가 떠올라요. 
 
감사한 게 더 많으니까 
계속하기로 결심하죠. 
 
잠깐만요.
너무 힘들면 잠깐 쉬어도 돼요. 
 
엥, 정말요?
막상 쉬면 조금 불편해지는데. 
 
알아요.
그래도 힘들면 쉬어야죠.  
 
당장 그만두라는 말이 아니에요. 
억지로 버티지 말라는 말이에요. 
 
교회 일 거절해도 
하나님을 거절하는 건 아니거든요. 
 
교회 일 잘해도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도 아니고요. 
 
사람들이 부탁한 봉사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은  
비슷해 보여도 서로 다른 거예요.   
 
교회 일 하나만 하는 사람 드물어요. 
일단 시작하면 사람들 눈에 띄어서 
여기저기 불려 다녀요. 
 
탈진하는 순간이 와요. 
의지로 버티는 순간이 오죠. 
 
“조금만 쉬고 싶어요.” 
 
그 말 한 마디 못해서 참고 참다가 
조용히 교회를 떠난 사람 많이 봤어요. 
 
하나님께서 얼마나 
마음 아프실까요. 
 
남 이야기만 할 수 있나요. 
나도 고민 많았어요. 
 
내가 목사라서 직업으로  
교회 일을 열심히 하는 건지. 
 
주님을 사랑해서 순종으로 
교회 일을 열심히 하는 건지. 
 
신학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교회 일이 내 직업이 되었으니까요. 
 
내가 아무리 교회 일을 열심히 해도 
사람들은 생각했을 거예요.  
목사니까 그렇지.
 
당연한 거죠. 
내 직업이잖아요. 
 
반대로,
교회 일을 대충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목사가 왜 저래. 
그러지 않았을까요. 
 
분명히 알고 싶다고 
목회를 그만둘 수는 없잖아요. 
그대로 살았죠. 
 
직업인지 봉사인지 
구분되지 않은 채로 
그냥 열심히 했어요. 
 
어쩌다 보니 남들과 
다른 길을 가게 되었어요. 
 
더 이상 교회 일을 안 하니까 
안 보이던 게 보이더라고요. 
 
교회 건물
교회 행정 
교회 사람 
다 교회죠. 
 
평범한 건물이 교회라고 
불리는 이유는 아시죠?  
 
당신이 교회이기 때문이에요. 
자, 그럼 나는 묻고 싶어요.
 
당신을 위한 봉사는 
열심히 하고 있나요. 
 
당신이 예배에 집중하도록 
자신을 잘 돕고 섬기나요.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들려주듯
자신에게 복음을 들려주고 있나요. 
 
그렇다면 다행이에요. 
나는 그러지 못했어요. 
너무 바빠서. 
 
자신을 돌보면서 
교회를 돌봐주세요. 
 
교회를 돌보면서 
자신을 돌봐주세요. 
 
그래야 당신도 살고 
교회도 삽니다. 
 
걱정 마세요.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아, 그리고 하나 더. 
 
마음에 부담이 돼서 
교회 일을 전혀 하지 않는 분에게는 
조심스럽게 부탁드리고 싶어요.  
 
부담되지 않는 
작은 일 하나만 맡아주세요.  
 
고객이 아닌 성도가 될 때 
돌봄을 배울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돌보는 법을 배우면 
자신을 더 잘 돌볼 수 있답니다. 
 
걱정 마세요.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인생은 과정입니다

인생을 성공과 실패로 평가하는 사람은
반드시 실패합니다.
 
성공과 실패는
개념이 모호한 말입니다.   
 
성공도, 실패도
각자 정의 내리기 나름입니다.
 
흑백 논리라는
인지 왜곡이 있습니다.
 
매사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생각하는
사고방식입니다.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
사랑과 증오.
믿음과 의심.
 
상반되는 두 단어는
두부 자르듯 나눌 수 있게 아닙니다.
 
사람들은 조급합니다.
 
OX 게임을 하듯이,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이 아닙니다.
 
인생을 성공과 실패로 단정하고
실패했다 결론 내리지 마세요.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흑백 논리를 극복하는
방법을 찾아내세요.
 
합리적으로 말해볼까요.
중간 지점이 있습니다.
 
성공인지 실패인지 구분되지 않는
인생의 순간이 있어요.
 
당신에게 아마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일지 모르겠습니다.
 
성공이든 실패든
결정은 우리 자신이 내리는 겁니다.
 
성공과 실패, 그 자체보다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는 기준이 더 중요해요.
 
그 기준은 가치관입니다.
 
나는 어떤 가치관을 가진 사람인가.
스스로에게 물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대한 대답이
나의 오늘 하루를 결정합니다.
 
인생은 과정입니다.
성공과 실패는 없습니다.
 
오르락내리락 반복하면서
궁극의 방향을 향해 걷고 있는 것이죠.
 
멀미가 나더라도
침착하게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여정의 쉽고 어려움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걷는 것이 중요하지요.
 
우리의 목표는
높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걷는 것입니다.
 
거대하고 궁극적인
하나의 의미를 향해서 말입니다.
 
나에게 그것은
그의 나라와 그의 영광입니다.
 
당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세요.
흑백논리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성공과 실패는
가치관으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더 나은 가치관을 선택하세요.
당신의 행복을 위해서 말입니다.

회사에서 믿는 사람이 더 괴롭혀요

회사에서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아이러니하게 기독교인이라 시험이 듭니다. 믿지 않는 사람한테는 처음부터 기대감이 없어요. 실망할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믿는 사람이 괴롭히면 너무 화가 납니다. 믿는 사람이 힘들게 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변 사람을 믿는 사람, 안 믿는 사람으로 단순하게 구분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러니, 사람 구분해서 어려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믿든 안 믿든 사람이 힘들게 합니다.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특별히 잘해주거나 별문제 없을 거라고 기대하지 마세요. 기대하면 실망합니다.
 
믿는 사람이라는 정의에는 논리적 오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입니다. 성급한 일반화라는 말은 제한된 정보를 가지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라는 말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모릅니다. 열을 봐야 열을 아는 겁니다. 성급하게 결론 내리면, 잘못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믿는 사람이란 단어를 정의하기 쉽지 않습니다. 무엇을 믿느냐, 얼마나 믿느냐, 어떻게 믿느냐. 따져볼 것이 많습니다. 자신의 종교가 기독교라고 말하는 사람 모두를 믿는 사람으로 인정해줄 수 없습니다. 몸은 교회 안에 있어도, 마음은 교회 밖에 있는 사람 적지 않습니다. 그러니, 교회 다니는 사람 모두를 믿는 사람이라고 정의 내린다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급하게 정의 내리면, 부작용이 있습니다. 세상을 믿는 사람, 안 믿는 사람 나눠서 보게 됩니다. 계속 따지고 들어서 죄송하지만, 이건 흑백 논리의 오류입니다. 의인과 죄인이란 개념은 성경 안에서 선명하게 대조를 이루지만, 실제로는 우리 안에 함께 존재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의인이며, 죄인입니다. 동시에, 죄인이며, 의인입니다. 마음속 치열한 싸움이 있습니다. 그러니, 겉으로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기댈 분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삶의 한순간이라도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 죄인일 뿐입니다. 죄인을 보고 실망하지 마세요. 우리는 처음부터 자격 미달이었습니다. 
 
회사에서 최선을 다해서 맡은 일 잘해주세요. 예수님이 맡기신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정성을 다해 맡은 일 잘하면, 그게 곧 예배입니다. 
 
물론, 쉽지 않지요. 목사라고 세상 물정 모른다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교회라고 상황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교회에는 믿는 사람만 있는데, 목사는 목회가 왜 이리 힘들다 말할까요. 성도는 성도대로 왜 이리 시험에 들까요. 다 사람 때문입니다. 서로 상처 주고 상처받으며 사는 겁니다. 
 
세상 아무리 어두워도 빛을 잃지 마세요. 어두울수록 더욱 밝게 비춰주세요. 세상 한가운데에서 포기하지 않고 빛으로 살아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누구 말이 옳은 걸까요?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편이에요. 다양한 의견을 듣는 건 좋은데, 가끔은 혼란스러워요. 교회 안에서 목사님, 리더들이 서로 다른 조언을 해주거든요. 누구 말이 옳은 건지 모르겠어요. 
 
아무도 올바르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조언이 전부 틀렸다는 말이 아닙니다. 아무리 옳은 답을 내놔도 자매님이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 틀린 답이 됩니다. 사람들의 조언을 너무 많이 듣지 마세요. 그러다가, 길을 잃습니다. 이리저리 헤매다 인생 낭비할 수 있어요. 
 
사람들의 조언을 듣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의존적이에요. 상담실 안에서도 흔히 있는 일입니다. 나에게 자기 인생을 결정해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 안에는 자신만의 이야기가 숨어 있어요. 자기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이유가 있습니다. 찾아내서 돌봐줘야 해요. 
 
이제부터 조언을 구할 때, 상대방의 표정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자신은 오랜 시간 고민하다가 조언을 구했는데, 상대방은 질문을 받은 순간부터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1초도 생각하지 않고 즉시 말합니다. 상대방이 즉흥적으로 던진 조언에 자기 인생을 맡기는 건 정말 위험합니다. 
 
교회 청년들 중에 목사님이나 리더의 말 한마디로 대학 전공이나 직업을 바꾸고, 심지어 진지하게 교제하는 형제자매와 헤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말씀해 주신다고 해도, 신중하게 생각하세요. 그분들은 자매님의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습니다. 함께 고통을 겪지도 않아요. 말 한마디하고 사라집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들도 자매님이 누군지 잘 몰라요. 목사님, 공동체 리더, 소중한 친구들, 멘토, 가족처럼 가까워도 자매님을 온전히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보다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러니, 절대로 선택권을 넘겨주면 안 됩니다.  
 
제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사람들의 의견을 듣다 보면, 나중에 그들의 생각에 파묻혀 버려요. 그들의 말에 영향력이 생기면, 그 말을 어기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들의 말이 규범이 됩니다. 사람들 눈치 보면서 인생 살면 그때부터는 불행해집니다. 
 
나도 글 쓴다고 할 때, 주변에서 좋은 소리 못 들었습니다. 나를 잘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반대했어요. “글로 먹고사는 사람 없다. 네 글을 누가 읽어주냐. 글은 써 본 적 있냐.” 헤아릴 수 없는 말을 들었어요. 마음이 아팠죠. 하지만, 나는 스스로 선택했고 계속 글을 썼어요. 
 
막상 책 한 권 나오니까, 똑같은 사람들이 예전과 다른 말을 합니다. “나는 결국 네가 해낼 줄 알았다. 정말 잘 했다.” 만약 내가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선택권을 넘겨줬다면 나는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했을 겁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죠.     
  
귀를 닫고 살면서 사람들을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에요. 최대한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의견을 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선택은 자기 자신이 내리라는 말이에요. 처음부터 결심해야 합니다. “의견은 듣지만, 선택은 내가 한다.” 그래야 조언을 해주는 사람도 부담이 없습니다. 사람들의 말은 조언일 뿐이지, 법칙이 아닙니다. 
 
자매님을 가장 잘 아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사람들의 조언은 적당히 들으세요. 나도 목회해봤지만, 목사가 세상만사 다 아는 거 아닙니다. 목사 의지하지 마세요. 리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의지하시고 하나님 말씀을 들으세요. 답답하고 두려운 거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걱정 마세요. 실수해도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침묵이 만든 세상

“아내는 자기 생각을 표현하지 않을 때가 많아요. 말해서 뭐하냐, 말해도 못 알아듣는데…, 이런 마음인지는 몰라도 같이 사는 게 얼마나 답답한지 모릅니다. 앉아서 이야기를 해보자고 해도 결국 저 혼자 말하고 있어요. 아내는 그저 웃기만 해요. 그러다 기분이 거슬리면 표정이 싹 변합니다. ‘당신 생각 좀 들어보자’라고 하면 말하고 싶지 않다고, 말해서 뭐하냐고 하죠. 
 
저는 정말 답답합니다. 퀴즈쇼에 출현해 문제를 맞추는 사람 같아요. 상자 밖에 나와 있는 꼬리만 보고 그 동물을 맞추는 거죠. 맞추기 쉬운 문제도 있지만, 맞추기 어려운 문제도 있어요. 아직도 풀지 못한 문제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죠. 아내가 원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뭔지 모르는 거죠.” 
 
남편은 결혼 생활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아내는 독립심이 강한 여자다. 남편이 없어도 못하는 일이 없다. 그가 전날 야근을 하고 잠든 주말 오전, 아내는 남편을 깨우지 않고 다섯 살, 세 살인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에 다녀왔다. 잠에서 깬 남편이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왜 깨우지 않았냐고 물으면 아내는 피곤해보여서 그랬다고 말했다. 남편은 그런 아내가 고마웠다. 
 
그러나 말 없는 아내에게 서운할 때가 많았다. 퇴근 길, 예상보다 늦게 오면 그녀의 표정이 밝지 않다. 미안하다고 말해도 소용없다. 그녀는 남편이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식사를 준비한다. 예정보다 늦으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남편은 아내가 왜 기분이 나쁜지 알 수가 없다. 그녀의 불편한 표정을 보는 것이 괴롭다. 
 
아내는 설명한 적이 없다. 그저 온도계를 보고 방의 온도를 알 수 있듯이 남편은 아내의 표정으로 그녀의 상태를 파악한다. 퀴즈쇼는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왜 이렇게 말하기 싫을까요? 아마 남편이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겠죠.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요. 제 성장 과정이 독특했거든요. 어릴 때부터 가진 습관이랄까. 원래 말이 별로 없었어요. 말을 많이 하면 실수하잖아요. 실수는 또 다른 실수를 낳고. 남편이 뭘 요구하는지 알아요. 그런데 자꾸 표현하기 시작하면 그가 더 괴로워질 거예요. 
 
제가 이것저것 요구하기 시작하면 더 희생해야 할 거고요. 남편은 알아서 잘하고 있어요. 결혼 생활도 전반적으로 만족스럽고요. 제가 무리한 것을 요구했다가 갈등이 일어나면 남편이 괴롭겠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참아요. 때로는 ‘귀찮아도 말할까?’ 하다가 ‘말 한다고 이 사람이 다 이해할까?’ 싶어서 마음을 접죠. 제가 살아온 방식대로 살게 되는 것 같아요. 사람은 한 순간에 바뀌지 않잖아요.” 
 
그녀는 어린 시절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아빠가 다른 여자를 만나 가정을 버렸다. 그녀의 나이 일곱 살, 동생은 세 살이었다. 엄마가 고생하며 아이 둘을 키웠다. 함께 할 시간이 당연히 부족했다. 가만히 내버려둬도 엄마는 충분히 힘들어 보였다. 
 
가장 친한 친구가 영어 과외를 받는다고 했다. 과외 선생님이 친구들을 그룹으로 묶어달라고 부탁했다고 하면서 그녀에게 함께 공부하자고 말했다. 그녀는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민했다. 과외 받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엄마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 그녀는 용기를 내어 엄마에게 말했다. 과외 받고 싶다고. 아침밥을 먹던 엄마의 표정이 굳었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한숨을 쉬면서 남은 밥을 싱크대에 버렸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엄마는 표정과 몸짓으로 ‘과외 보낼 형편이 안 된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후회했다. 말하지 않았다면, 엄마가 고통 받지 않았을 것이다. 괜한 말을 꺼내 엄마를 괴롭게 했다. 그 이후부터 그녀는 뭐든 혼자 생각하고 결정을 내렸다. 
 
“참, 웃긴 게 제가 말을 하지 않고 잘 들어주니까 제게 고민상담하는 친구가 많았어요. 저도 제 고민 때문에 힘들었는데, 친구들이 와서 고민을 털어놓더라고요. 친구들이 ‘넌 마음이 따뜻한 사람 같아. 네게 말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져’라고 했어요. 
 
저는 그게 좋은 줄 만 알았죠. 사회생활을 할 때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어요. 다른 직장 동료들이 회사, 상사를 원망하고 불평할 때, 저는 불평 한 마디 안 했어요. 저도 화나고 답답하고 억울한 일을 많이 겪었지만 표현하지 않은 것뿐이에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윗분들이 좋게 보시더라고요. 
 
의도한 상황은 아니었는데, 인정받기 시작했어요. 제 실력을 보여줄 기회도 남들보다 많아졌고요. 모든 생각을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잖아요. 때론 말하지 않는 것이 더 유익해요. 남편이 답답하다고 하니까 고민은 고민이지만요….”  
 
남편은 사소한 것 하나도 가족과 함께 모여 대화하면서 공유하는 가정에서 성장했다. 남편 가족 모임에 가면 별 사소한 이야기를 하면서 가족이 웃고 떠들고 좋아했다. 아내가 살아온 세상에서 남편은 수다스런 사람이었다. 
 
남편은 가족과 대화하는 것이 행복한 삶의 전제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대화하지 않으면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없고, 사소한 일에도 오해가 생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편은 아내에게 더 많은 대화를 요구했고, 아내는 그럴수록 위축되었다. 입을 닫고 침묵하는 것으로 그에게 항의했다. 아내가 출제하는 문제는 갈수록 어려워졌고, 그는 문제를 풀고 싶은 의욕을 잃었다. 
 
서로의 차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가라는 상식적인 명제를 되뇌어 보지만 끊임없이 갈등이 일어났다. 
 
***
 
남편에게는 아내의 과거가 중요하지 않았다. 힘든 어린 시절을 자꾸 떠올리게 하는 것은 그녀에게 마음 아픈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살아온 삶이 궁금했지만 묻지 않은 이유다. 그의 배려였다. 
 
아내는 어린 시절을 남편과 공유할 기회가 없었다. 원래 말이 없는 성향 탓에 묻지도 않은 것을 혼자 떠든다는 것은 그녀에게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내가 살아온 삶을 처음 공유했을 때, 남편은 충격을 받았다. 가장 힘든 시절을 이야기 할 때, 그는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그는 장인어른이 암에 걸려 일찍 돌아가신 것으로 알고 있었다. 결혼 전, 장모님이 그렇게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아내가 살아온 삶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던 남편은 아내의 말이 끝나자 그녀의 손을 잡아 주었다. 
 
남편은 자신을 원망했다. 아내를 배려한다면서 그녀가 살아온 삶에 대해 묻지 않은 것을. 오늘의 아내를 이해하기 위해서 어제의 아내가 중요했다는 것을 인식한 순간, 남편은 허공에 깊은 한숨을 쉬었다. 허공을 응시하는 남편 눈에서 쉬지 않고 눈물이 솟아났다. 
 
어린 시절, 아내가 선택한 전략은 옳았다. 혼자 깊이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는 삶은 그녀를 지켜주었다.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강한 정신력으로 무장하지 않았다면 그녀의 삶은 오늘과 같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현실을 비난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길 수 있었다. 아버지를 원망하거나, 가난을 탓하거나, 자신을 세밀하게 돌봐주지 않은 엄마를 비난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고통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자신을 온전히 책임진 것이다. 그녀는 박수를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제 변화가 필요하다.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전략이 필요한 것처럼 과거를 빛나게 해주었던 전략을 버리고, 오늘 그녀를 빛나게 해줄 전략을 찾아야 한다. 침묵은 과거의 것이다. 대화가 현재의 것이다. 과거에 유익했던 전략을 버리고 오늘의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마음을 열고 남편과 대화해야 한다. 직접 무대 앞으로 나아가 퀴즈쇼의 막을 내려야 한다. 모든 생각을 말할 필요는 없다. 열 번 참고, 한 번은 말해라. 아무리 말하고 싶지 않아도 말해야 한다. 부부의 미래가 달렸다. 
 
한 순간에 변화하기를 어렵지만 일단 시작해야 한다.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부부가 대화한다면 아내는 남편의 지지와 격려를 한 몸에 받을 수 있다.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것은 남편이 대화에 능한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아내가 말할 때, 그는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다.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의 눈물은 남자다운 것이다. 아내의 고통스런 기억을 들으면서 함께 흘린 눈물은 보석이다. 결혼식에 아내 손가락에 끼워준 다이아몬드 반지보다 값지다. 
 
남편은 아내의 어제와 오늘, 내일까지도 사랑한다. 과거, 현재, 미래를 연결할 줄 아는 사람이 시대를 선도하듯 아내의 과거, 현재, 미래를 연결할 때,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이끌어 줄 수 있다. 
 
말없이 서로를 배려해주던 부부, 이제, 수다를 좀 떨라. 대화를 많이 할수록 사랑은 깊어진다. 알면 알수록 사랑스러운 것이 아내다. 알면 알수록 듬직한 것이 남편이다. 그렇다. 대화를 통해 사랑은 더욱 단단해진다.   

기억은 지독하다

사람마다 끔찍한
기억이 있어요.
 
기억이 떠오르면
우울해져요.
 
벗어나고 싶으니까
잊으려 해요.
 
잊으려 마세요.
잊을 수 없어요.
 
잊으려 할수록
생생해져요.
 
증명해볼까요.
따라 해보세요.
 
지금 이 순간부터 절대로
토끼 생각하지 마세요.
 
하얀색 털이 뽀송뽀송한
토끼를 떠올리지 마세요.
 
토끼 등에 빨간색으로
숫자 5라고 쓰여 있어요.
 
보면 안 돼요.
절대로 떠올리지 마세요.
 
아….
당신은 결국 보고 말았네요.
 
이제 아시겠죠.
기억은 지독한 녀석이에요.
 
잊으려 할수록
더 생생해지죠.
 
새로운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잊지 않고
기억하는 거예요.
 
끔찍한 기억을 계속
떠올리는 말인가요?
 
아니요.
그런 말이 아니에요.
 
기억하는 방식을
바꿔보자는 말이에요.
 
기독교는
기억하는 종교에요.
 
사람은 자꾸 잊어버리고
하나님은 자꾸 기억나게 하세요.
 
성경 전체에서
계속되는 이야기죠.
 
사람이 은혜를
잊으면
 
하나님은 은혜를
기억나게 하세요.
 
사람이 사랑을
잊으면
 
하나님은 사랑을
기억나게 하세요.
 
언제나 하나님은
잊혀진 기억을 되살려주시죠.
 
기억이 끔찍한 이유는
그곳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이에요.
 
잊지 말고
기억하세요.
 
그곳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지금 무슨 말하는 거예요!
난 완전히 혼자였다고요!
 
하나님은커녕
상처 입은 나만 보여요.
 
맞아요.
쉽지 않아요.
 
부탁드려요.
포기하지 마세요.
 
하나님을
끝까지 찾아내세요.
 
하나님은 그곳에 계세요.
당신은 혼자일리 없어요.
 
어둠 속에서 울고 있는
꼬마가 있어요.
 
울긋불긋 온몸에
멍 자국 난 아이.
 
죽은 시체처럼
담요에 덮여 있었죠.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어요.
 
잊혀지지 않아요.
어제처럼 생생하죠.
 
난 고통받을까요.
아니요.
 
난 혼자가
아니었어요.
 
끔찍한 기억에 찾아와 주신
하나님 덕분에
 
이제 나는 마음 편히
그 사건을 기억할 수 있죠.
 
그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살아나거든요.
 
삶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
나는 그 꼬마와 눈이 마주쳐요.
 
너도 살았으니
나도 살 거다.
 
당신이 내 글을 읽는
이유를 알아요.
 
내 기억 때문이고
당신의 기억 때문이죠.
 
내가 혼자가 아니듯이
당신도 혼자가 아니에요.
 
사건을 기억하면
당신은 불행해져요.
 
하나님을
기억하세요.
 
나는 당신이 행복하기를
바라니까요.

과거를 그리워할 필요 없어

“열정이 식었어.
뜨거웠던 시절이 그리워.”  
 
봄바람은 봄에만 불어. 
겨울에는 불지 않아. 
 
성령의 바람은 
하나님이 몰고 와. 
 
선풍기를 켜듯, 
간단한 게 아니야. 
 
민들레 씨앗은 
바람을 탄데. 
 
그러다, 
땅에 내려앉아
뿌리를 내린데. 
 
뿌리를 내린 씨앗은 
바람만으로는 못 자라.
 
땅속으로 파고들어 
양분을 당기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은혜를 구걸하지 마.
 
씨앗이 뿌리를 내리듯 
성경에 파묻혀. 
 
한 장 한 장 
성경을 넘기면 
바람이 불 거야. 
 
어디서 어떻게 불어오는지 모르는 
성령의 바람. 
 
종이 한 장이 일으키는 바람이 
너의 가슴을 뛰게 할 거야. 
 
과거를 그리워할 필요 없어. 
오늘 부는 바람으로  
훨훨 날아올라 뜨거워질 테니.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요한복음 3:8>

왜곡을 다루는 방법

크리스천이라면 당연히 예수님의 사랑과 말씀으로 상처를 치유하고 싶을 거예요.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아서 문제지요.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세요.
 
예수님의 사랑과 말씀으로 상처를 치유하자는 말을 들으면 막연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나 역시 그랬으니까요. 예수님을 사랑하지만, 내 상처를 어떻게 돌볼지 몰라 힘들었어요.
 
예수님을 사랑해도 아프니까 내 믿음이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분을 사랑하면 상처로 고통받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예수님을 오해한 거예요.
 
뒤늦게 내가 고통받을 때, 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았어요. 특정한 상황에서, 특정한 감정으로 고통받을 때, 그에 앞서 특정한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 생각이 파괴적이면 인생이 파괴됩니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시작되지요.
 
예를 들어볼게요. 사람들은 설교 잘하는 목사를 좋아합니다. 나 역시 설교를 잘하고 싶어요. 그래서인지 목회할 때나 지금이나 설교가 항상 부담입니다. 많은 사람 앞에서 설교하거나, 청중의 수준이 높으면 더 큰 부담을 느끼지요.
 
나는 왜 설교를 잘하고 싶을까요? 나는 답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내가 앞서기 때문이에요. 설교 잘해서 인정받고 싶은 겁니다. 뻔한 답이지만 나는 자주 잊어요.
 
설교라는 행위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설교를 대하는 특정한 생각이 문제입니다. 특정한 상황에서 특정한 생각이 찾아오는데, 그 생각에 복음이 없으면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복음 없는 생각을 발견하면, 그 생각을 구체화해서 문장으로 표현합니다. 정확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예수님의 사랑과 말씀으로 돌볼 수 있습니다.
 
설교를 망치면 사람들이 날 무시할 거야.”
“더듬거리거나 실수하면 내가 준비가 안 된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
“설교로 감동을 주지 않으면 사람들이 더 듣지 않을 거야.”
 
모두 거짓말이지만, 내게는 진실처럼 다가옵니다. 이때 나를 돌보지 않으면 나는 빠른 속도로 파괴됩니다. 빨리 멈춤 버튼 을 누르고, 복음이 없는 지점을 찾아야 해요. 그리고 명확하게 복음을 전합니다. 마치 적의 심장부에 폭격을 하듯이.
 
그리고 거짓에 대응하는 진실을 찾아냅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말씀으로 복음적인 문장을 찾아내서 파괴적인 문장과 일대일 대응을 시키지요. 이것은 쉽지 않아요. 복음적인 문장이 떠오 르지 않으면 예수님과 가상의 대화를 시도합니다.
 
“예수님, 설교가 부담스러워요. 제가 더듬거나 실수하면 사람들이 저를 무시하고 속으로 비웃을 거예요. 저는 꼭 사람들을 감동시켜야 해요. 그래야 제 이야기를 들어줄 거니까요. 사람들이 더 이상 날 찾지 않으면 어쩌죠.”
 
예수님이 어떻게 말씀해주실까요? 어떤 말씀을 해주시는지에 따라 내가 그분을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가 드러납니다. 먼저 내가 오랫동안 오해한 예수님을 말해볼게요.
 
“두려워 마라. 내가 너를 세웠다. 담대하게 선포하라. 내가 너를 도울 것이다. 너는 작은 그릇이 아니라 큰 그릇이다. 내가 너를 수많은 사람 앞에 세우고, 내 영광을 드러내겠다. 이제 시작이다. 더 큰 꿈을 꿔라.”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 성경에 비슷한 말씀이 여러 군데 있지요. 문제는 말씀 자체가 아니라 내 욕망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말씀에 교묘하게 섞어서 포장을 제법 잘한 겁니다. 나 자신도 모를 만큼 그럴싸하게 잘 섞어서 나도, 다른 사람도 속인 겁니다.
 
지금 나는 과거와 다른 예수님을 만납니다. 따뜻하게 나를 돌봐주시고, 한없이 사랑해주시고, 온전히 이해해주시는 그분이 말씀하십니다.
 
“그래, 정말 두려울 거야. 하지만 포기하지는 말렴. 지금처럼 용기를 내서 나를 전해주겠니? 나는 사람들이 너를 기억하지 않고 나를 기억하길 바란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에 대해 말해주겠니? 사람들이 널 잊을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단다. 사람 들이 더 이상 널 찾지 않아도, 내가 너를 기억하고 책임질 거니까. 지금부터는 오히려 잊히기 위해 애를 쓰렴.”
 
예수님은 먼저 내 감정을 사랑으로 받아주십니다. 그리고 진실을 말해주십니다. 진실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분의 사랑과 말씀으로 나를 돌본다는 말은, 내 감정을 수용해주시며 진실을 말씀해주신다는 뜻입니다.
 
내게는 말할 수 없이 큰 위로입니다. 나는 상처를 외면하거나 고통을 만회할 대안을 찾지 않습니다. 그저 예수님의 품에 안길 뿐이에요. 그 순간만큼은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나는 매주 여러 번 설교합니다. 부담은 여전하지만 내가 나를 돌보지 않으면 사람들의 인정을 구걸하다가 스스로 포기해버리고 말겠죠.
 
예수님의 사랑과 말씀으로 나를 돌보면서 지속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기억해주시는 한, 그분을 전할 것입니다. 내 설교가 형편없어도 상관없습니다. 그저 예수님을 전하고 싶습니다.
 
고통이 시작될 때, 자신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그리고 그 안에서 복음 없는 생각을 찾아내어 명확한 문장으로 표현해보세요. 그리고 예수님과 솔직한 대화를 시작하세요. 그분이 따뜻한 진실을 말씀해주실 거예요.
 
포기하지 마세요. 평생 반복입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분의 사랑과 말씀으로 나를 계속 돌봐주세요.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하나님을 원망해요

결혼을 전제로 6년 동안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졌어요. 2년이 지난 지금은 남자친구에 대한 원망은 없어요. 차라리 헤어지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요. 하나님이 너무 원망스러요. 내 20대를 다 바쳐서 주님을 섬겼는데, 이제 남은 게 없어요. 하나님이 싫어서 교회도 가지 않아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원망스럽다고 말하면 편안하게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하면서 논리적으로 따져보겠지요.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내가 더 나은 사람이라서가 아니에요. 자매님이 진심을 알기 때문이에요. 
 
자매님은 그런 말할 자격 있어요. 주님을 위해 20대를 바쳐 봉사했기 때문이 아니에요. 주님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기 때문이 아니에요.  자매님이 주님의 딸이라서 그래요. 
 
딸은 아버지를 원망할 자격이 있잖아요. 말 그대로 딸이니가요. 딸이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으면 누구를 원망할 수 있을까요. 아버지를 사랑하니까 아픈 거예요.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해야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어요. 사랑하지 않으면 미련도 없지요.   
 
하나님이 진심을 담아 사과하면, 그 마음 누그러질까요. 하나님이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한다면, 그 마음이 풀릴까요. 하나님은 자매님의 아픈 마음 위로하고 싶을 거예요. 하나님도 자매님을 사랑하시니까요. 
 
자매님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는 자매님의 삶에서 일어난 작은 기적을 목격했어요. 자매님 안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난 일이지만, 다른 사람은 쉽게 이룰 수 없는 일이에요. 자매님은 과거의 남자친구에서 벗어났어요. 
 
헤어진 이성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은 쉽게 떨쳐내기 힘든 감정이에요. 누군가에게는 아마 평생 동안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는 복잡한 감정이랍니다. 자매님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동안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난 거예요. 원망을 담은 편지라도 주소는 정확히 적어주신 거예요. 
 
원망의 대상이 남자친구가 아니라 하나님이라서 감사해요. 만약 과거의 주소지에 끊임없이 편지를 보냈다면, 자매님의 편지는 길가에 버려졌거나, 다른 사람 손에 갈기갈기 찢겨졌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에게 보낸 편지는 하나님이 소중히 뜯어 읽어보셨어요. 잘 펴서 예쁜 상자에 담아 보관하고 계시고요. 
 
지금 하나님은 답장을 쓰고 계신 거예요. 생각보다 오래 걸리나봐요. 하나님의 시간 계산법은 우리와 조금 달라서 예측하기 어렵지요. 조급해하진 마세요. 머지 않아 하나님의 진심이 가득 담긴 편지가 도착할 거예요. 
 
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 정확한 주소를 적어주세요. 자매님이 하나님께 진심으로 듣고 싶은 말이 뭔가요. 하나님이 어떻게 해주시면 마음이 풀릴까요. 잃어버린 모든 시간이 아깝지 않을 만큼, 하나님께 받고 싶은 선물이 있으신가요. 주저하지 말고 말하세요. 하나님은 이미 알고 계시고 보내주실 준비를 마치셨어요. 
 
다시 교회에 나가려면,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나는 조급하게 지금 당장 교회에 다시 나가라는 말은 못하겠어요. 꽁꽁 얼어버린 자매님의 마음이 따스한 사랑으로 녹아내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내게 물어주신 덕분에 정답은 못 드려도, 진심은 전할 수 있었습니다.

상처의 속성은 반복이다

지연의 오전은 한가롭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고, 집 안에 머문다. 커피를 내리고, 소파에 앉은 지연은 평온해 보인다. 잠시 후, 그녀는 쓰러지듯 소파에 누워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석 달 전, 그녀는 끔찍한 일을 겪었다. 
 
빨랫감을 정리하다가 남편의 주머니에서 유흥업소의 명함을 발견했다. 아내는 충격을 받았다. 빨랫감을 집어던지고,  소파에 앉은 남편에게 소리를 질렀다. 
 
“당신 이게 뭐야?” 
 
남편은 당황했다. 
 
“뭐가?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그래?” 
 
“왜 이런 게 당신 주머니에 있어?” 
 
지연은 유흥업소의 명함을 남편에게 집어던졌다. 남편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아, 그거 어제 술에 취해서 받은 거야. 친구랑 포장마차에서 술 마시고 대리기사 기다리는 동안, 길에서 나눠주는 거 받은 거네. 술에 취해서 기억을 못 했어, 내가….” 
 
“그게 지금 말이 되는 소리야?” 
 
“말이 안 되면 뭐 어떻게 해. 그게 사실인데. 당신 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여?” 
 
지연은 남편의 말을 반박할 수 없었다. 남편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남편은 술을 즐겨마시는 사람이 아니었다. 남편의 친구 A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는 말에 모처럼 만난 자리였다. 
 
“정말 믿어도 되는 거지? 당신 나한테 숨기는 거 없지?” 
 
“아, 그런 거 없다니까.” 
 
지연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사흘 뒤, 지연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남편 친구 A의 아내였다. 지연이 전화를 받아들었을 때, A의 아내가 흐느껴 우는 소리부터 들려왔다. 
 
“언니, 알고 있었어요?” 
 
“무슨 일 있어? 왜 그래?” 지연이 되물었다. 
 
“우리 오빠하고 언니 남편하고, 성매매 업소 갔다 왔어요.” 
 
지연은 귀를 의심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오빠가 PC로 카카오톡 메신저를 하다가, 로그아웃을 안 하고 나갔어요. 거기서 두 사람 대화를 읽었는데, 서로 그 짓을 하러 다닌 거예요.” 
 
지연은 소파에 쓰러지듯 앉았다. 
 
“사실이야?” 
 
“사실이라니까요. 우리 오빠는 인정했어요. 내가 어제 미친 여자처럼 살림 부수고 난리 쳤다니까요. 언니 이제 우리 어떻게 해요? 저 이 남자랑 못 살아요.” A의 아내는 다시 흐느껴 울었다. 
 
지연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떨리는 입술을 이빨로 꽉 깨물고, 뭉개진 발음으로 말했다. 
 
“일단, 전화 끊어.” 
 
남편은 회사에서 조퇴를 하고 한 걸음에 집으로 달려왔다. 무릎을 꿇고 빌었다. 지연은 남편의 옷가지를 집어던지며, 당장 집을 나가라고 울부짖으며 소리를 질렀다.
 
남편의 얼굴조차 보고 싶지 않았다. 새벽에 출근하고 저녁 늦게 퇴근하라고 말했다. 각방을 쓰면서 얼굴조차 마주치지 않으려는 의도였다. 남편은 아내가 시키는 대로 했다. 
 
한 달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지연의 몸과 마음이 망가졌다. 지연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같은 일로 이혼한 선배 언니의 조언이 냉수처럼 지연을 일깨웠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혼은 아니야. 나는 너무 후회스러워. 부부 상담이라도 받아봐.”
 
지연은 남편에게 통보하듯 말했다. 
 
“부부 상담이라도 받자. 이대로 당신도 나도 못 살아.” 
 
남편은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아내가 하자는 대로 했다. 
 
상담 안에서, 두 사람은 일상 대화에서 불가능했던, 진심을 공유했다. 남편은 아내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다. 아내는 오열하듯 고통스러운 감정을 쏟아내었고, 남편은 그 감정을 오랜 시간 받아냈다. 
 
아내는 남편을 용서하고 새로운 기회를 주었다. 남편 역시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노라고 약속했다. 표면적으로, 두 사람은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아내는 반복되는 기억으로 고통받았다. 
 
남편이 식탁 앞에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거짓말을 했던 모습이 떠오르면, 남편을 향한 분노가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분노를 느낄 때마다 쥐잡듯 남편을 잡고 싶었지만, 그럴수록 두 사람의 관계는 악화될 것이 뻔했다. 두 사람의 회복을 위해 혼자 간직해야 할 것으로 여겼다. 
 
남편을 향한 분노는 점차 스스로를 비난하는 목소리로 변질되어갔다. 
 
‘왜 몰랐을까? 얼마나 어리석으면 몰랐을까? 남편 친구의 아내가 알려주지 않았다면, 평생 모르고 살았지 않았을까? 얼마나 멍청하면 그랬을까?’ 
 
지연은 하루에도 몇 번씩 소리 없이 무너졌다.  
 

 
상처의 사건은 일시적이지만, 상처의 기억은 무한 반복이다. 상처의 무시무시한 속성이다. 
 
피해자의 의견을 묻지 않고, 제멋대로 기억을 재생한다. 피해자를 의자에 묶어놓고, 바로 눈앞에서 끔찍한 장면을 무한 반복, 자동 재생하는 것이다.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는 것만으로 상처의 공격을 버텨낼 수 없다. 현명한 전략이 필요하다. 상처의 속성을 알고 올바르게 대처하는 것이다. 
 
첫째, 의자에 묶이면 안 된다. 몸을 움직여라. 아등바등 움직여서, 꽉 묶인 밧줄에 공간을 만들어라. 손목 하나라도 뺄 수 있다면, 밧줄을 풀고 의자에서 탈출할 수 있다. 
 
둘째, 눈을 감지 말아라. 눈을 뜨고 놓친 장면을 세세히 살펴라. 눈으로 바라보는 모든 장면은 상처가 각색하고 편집한 장면이다. 편집되고, 왜곡된 장면을 찾아내라. 상처가 일부러 도려낸 장면이 있다. 찾아내서 원래의 자리에 끼워 넣어라. 
 
지연의 잘못은 없다. 이것이 나의 결론이다. 그러나, 지연은 상처의 왜곡된 기억으로 스스로를 자책하며 끔찍한 시간을 보낸다. 남편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순간의 결단보다 중요한 것은, 용서로 다시 시작된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다. 
 
남편을 용서한 지연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다. 용서의 결단이 고통스럽게 반복되는 기억을 지워주지 않는다. 반복되는 기억으로 고통받는 과정을 남편과 공유해야 할 용기가 필요하다. 
 
고통을 표현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고통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고통에 대한 솔직한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다. 
 
“나 오늘도 문득 그 기억이 찾아왔어. 기억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 생각나. 내가 기억으로 힘들 때마다, 내 곁에 있어줄 수 있어? 내가 힘들어서 울면, 따뜻하게 안아줘.” 
 
남편을 향한 비난을 제거하고, 진심을 담아라.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고,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남편은 기꺼이 아내를 돌볼 것이다. 
 
용서받은 남편에게 부탁한다. 상처의 속성은 반복이다. 일 년이든 십 년이든, 아내가 반복되는 상처에서 벗어날 때까지, 남편은 지치지 않고 아내를 돌봐야 한다. 
 
남편이여, 자존심 때문에 과거를 부정하지 말아라. 아내가 용서했다면, 과거는 남편의 실수에 관한 것이 아니라, 아내의 상처에 관한 것이다. 용서는 순간이지만, 기억은 평생 간다.    
 
남편의 자존심 때문에, 아내가 툭하면 과거를 꺼내서, 남편의 발목을 잡으려는 것으로 오해한다. 남편의 약점을 언급해서 주도권을 잡으려는 것이 아니다. 아내가 서툴러서 그렇다.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는 것이다. 
 
진심은 간단하다. 
 
“과거의 기억으로 아프다.”는 것이다. 
 
오해하지 말아라. 
 
“너 때문에 아프다.”라는 말이 결코 아니다. 
 
아내가 과거를 언급하며 괴로운 감정으로 되돌아간다면, 아내를 위한 치유자가 되라. 오해를 넘으려면,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아내를 과거에 얽매여 사는 나약한 여자로 취급하지 말고,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불쌍한 여자로 보라.  
 
아내가 남편의 가치를 안다. 그래서, 절망했고, 그래서, 포기할 수 없었다. 상처의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면서도, 남편을 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남편, 당신은 그렇게 소중한 사람이다. 
 
잘못이 후회된다면, 그만큼 아내에게 정성을 쏟아라. 당신의 가치는 변하지 않았고, 고통의 시간을 지나면서,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그날이 오기까지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동굴에 갇힌 남편

“이상한 습관이 생겼습니다. 회사 일이 뜻대로 안 되면 집에 와서 가족들과 말을 하지 않아요. 방에 혼자 들어가 저만의 시간을 보냅니다. 아내든, 아이들이든 그 시간을 방해하면 화를 참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안 되는데, 가족들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던진 적이 있어요. 
 
요즘 회사가 힘들어서 혼자 감당하기 힘들어요. 가족에게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워낙 예민해진 상태니까, 감정을 다스리기 어렵습니다. 당분간만 가족이 이해해주기를 바라고 있어요. 제 이런 모습이 오래가지는 않을 거니까 조금만 배려해주면 좋겠어요.”
 
그는 사십 대 초반, 결혼 10년 차, 열두 살, 여덟 살 두 아들의 아버지이다. 결혼하고 두 아들이 태어나자 지금보다 더 많은 수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 초기 힘들고 어려운 일도 있었지만, 잘 이겨냈다. 
 
사업 시작 후 5년 정도 지나자 업계에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매출이 두 배 세 배 늘면서, 더 많은 직원을 채용하고, 사업 규모를 키웠다. 사업 규모가 커지자 고민도 그만큼 깊어졌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었지만, 현재 상황은 자신이 원하는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과연 사업을 지속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 의문이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앞으로 밀고 가야 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일에 대한 만족이 사라지자 우울한 기분으로 하루하루 살았다. 어두운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그는 이해받기 원했다. 가족은 받아줄 거라고 생각했다. 희망사항이었다. 아내는 남편 곁에서 점점 지쳐갔다. 처음에는 남편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했지만, 그마저 그만뒀다. 이제 남편이 집에 들어와 안방 문을 닫으면, 아내와 아이들은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었다. 남편, 아빠가 없어도 전혀 지장 받지 않는 가정이 되어갔다. 남편은 불안했다. 
 
아내가 말했다. 
 
“남편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남편이 얼마나 힘들까, 생각하면 마음 아프죠. 그렇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는 없다고 생각해요. 더 이상 남편 비위를 맞추는데 지쳤어요. 아이들이 없었다면, 남편을 더 배려해줄 수 있었겠죠. 그렇지만, 아이들이 있잖아요. 아빠 눈치만 보면서 살얼음 위를 걷게 할 수는 없어요. 
 
자기 감정은 자기가 책임져야 하잖아요. 우린 둘 다 성인이에요. 힘들고 어려운 일을 각자 극복할 수 있어야죠. 남편 감정을 대신 책임져 줄 수는 없어요. 우리가 부부인 것은 맞지만, 각자의 몫이 있는 거죠. 남편이 스스로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지 않는 한 아무도 남편의 비위를 맞춰줄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문 닫고 들어가 있는 남편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면 할수록, 제 자존감이 낮아졌어요. 비참하다는 생각까지 했죠. 제가 노력하면 남편이 기분이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뒤늦게 깨달았죠. 소용없는 짓이라는 것을. 남편도 알거예요. 남편은 혼자가 아니에요. 책에서 보니까 남자는 자신 만의 동굴이 있다면서요. 동굴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요.”
 
남편이 힘들어하는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녀 역시 마음이 괴로웠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 말을 걸어보기도 하고, 아이들을 시켜서 아빠에게 말을 걸어보기도 했다. 남편은 반응하지 않았다. 귀찮다는 듯 방문을 잠궈버렸다. 노크해도 반응이 없었다. 아내는 그런 남편에게 더욱 지쳐갔다. 
 
남편이 퇴근한 후에 대화를 시도했다. 남편은 지금 말할 기분이 아니니까 나중에 말하자고 퉁명스럽게 한 마디 내뱉고는 방으로 들어가 씻고 침대에 누워 움직이지 않았다. 남편이 차갑게 말할 때마다 그녀는 상처를 입었다. 마음 한 편으로 남편을 이해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남편이 싫어졌다. 
 
남편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에서 성장했다.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무리하게 사업을 시작했다. 친척, 친구, 주변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서 사업을 시작했지만, 일 년 만에 망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구박하기 시작했다. 사람 취급 하지 않았다. 인격적으로 무시했다. 
 
돈을 빌려준 사람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집으로 찾아와 행패를 부렸다. 어머니가 그 사람들을 상대했다. 조금만 시간을 주면 갚겠다고 설득했다. 소용없었다. 어머니를 밀쳐서 어머니가 다치기도 했다. 사람들이 집으로 찾아오면 아버지는 뒷문으로 도망쳤다. 
 
술에 잔뜩 취해 길에 쓰러진 아버지를 누군가 발견해 연락하면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를 찾아서 업고 온 날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항상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간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빚을 청산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그 빚을 고스란히 떠안고 조금씩 갚아나갔다. 
 
어머니의 팽팽했던 피부가 주글주글 주름질 때쯤, 모든 빚을 갚았다. 아버지가 남긴 빚이 어머니의 젊음을 빼앗았다. 단 한 번이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 그 한 번의 아버지 사업 실패가 그의 어린 시절을 어둠으로 몰아넣었다. 그가 사업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반대했다. 아버지 망하는 거 보고 정신을 못 차렸다고. 피는 못 속인다고. 
 
아내 역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지 못했다. 아버지는 예민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다. 감정 기복이 심했다. 어머니는 아버지 성격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일생 동안 그랬다. 아버지는 항상 갑이었고, 어머니는 을이었다. 
 
아버지 독재는 그녀가 결혼해 독립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노예였다. 그녀가 어머니를 바라보는 관점이었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 들어온 날은 아버지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 것이라고, 아버지가 주말에 낮잠을 자고 있으면, 아버지가 피곤해서 그런 것이라고 아버지를 감쌌다. 어머니는 아버지 위주로 생각하고 말했다. 
 
그녀는 어머니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이 아버지를 응석받이로 만들었다고 인식했다.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모든 상황이 흘러간 것이 결국 아버지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졌다. 그녀는 아버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생활비만 가져다주고 아버지, 남편으로써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아버지의 태도가 싫었다. 아버지와 어긋난 관계는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조금 시간이 필요해.”
그가 말했다. 
 
“당신이 알아서 할 일이지.” 
그녀가 말했다. 
 
“우리 부부 아닌가? 남처럼 말하네.” 
“부부니까 이렇게 말하지.”
“사업 힘들어지니까, 남편이 남편같이 안보이지?” 
“아니, 나는 그런 말 한 번도 한 적 없는데.”
“말 안한다고 내가 모를 것 같아?”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말한 것 같은데.” 
“말만 아니라고 하지. 사업 어려워진 다음부터 당신이 날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어.”
“아니라고 했잖아.” 
“갑자기 차갑게 대하는데 그걸 못 느낄 사람은 없지.” 
“내가 잘해줘도 소용없잖아.”
“아니, 사업 때문에 힘들다고 말한 그 순간부터, 당신이 날 무시하기 시작했다고.” 
“또, 또, 또 시작이야! 아니라고! 억지로 끼워 맞추지 말라고.”
 
“사업이 힘들어졌다고 말한 그 순간부터 절 대하는 태도가 싹 달라졌죠. ‘아, 이 여자는 내가 사업 실패하면 날 버리겠구나’ 생각하고 있어요. 솔직히 제가 무슨 생각하고 있는지 아세요. 아이들 크면 이혼하려고 해요. 이 사람은 제가 필요한 게 아니라, 제가 벌어다주는 돈이 필요한 거예요.”
 
그가 말했다.  
 
“매번 이런 식이에요. 아니라고 말해도, 자기 세계에 빠져서 똑같은 말만 되풀이한다니까요. 차라리 방문을 닫고 있는 게 서로에게 편한 것 같아요. 이상한 사람이요, 정말.” 
 
그녀가 말했다.    
 
***
 
그 누구도 어린 시절 상처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과거 지향적인 사람이 되라는 말처럼 들릴지 모르겠다. 그런 말 아니다. 과거를 소중히 다루어줬으면 하는 부탁이다. 과거나 현재나 자신은 항상 자기 자신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라는 존재와 함께 살아간다. 
 
“내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혼자일 때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보고 싶은 대로 보면 되니까. 그 또한 개성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결혼해서 배우자와 함께 살아가게 되면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눈앞에 배우자를 어떻게 바라보는가?”로 부부의 관계가 정의되기 때문이다. 
 
배우자를 바라보는 관점은 주로 부모에게서 학습된다. 어린 시절 부모가 서로를 바라보는 관점이 배우자를 바라보는 관점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과거일 뿐이다. 내 부모는 나와 상관이 없다”라고 단정 짓는다면 인생을 쉽게 생각하는 것이다. 과거를 외면하는 사람에게 성장은 없다. 
 
남편은 불안감을 숨기지 못한다. 사업이 망하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가족에게 버림받는 것이다. 사업에는 언제나 리스크가 따른다. 롤러코스터를 타듯 사업은 오르락내리락 한다. 남편 사업이 잠시 자금난으로 어려워진 것은 맞지만, 결과적으로 사업은 성장하고 있다. 
 
사업이 성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울했다. 그가 느끼는 우울한 감정은 사업 그 자체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내면 깊숙한 곳에 시작되는 것이다. 사업이 그의 내면에 만족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해야 한다. 그가 사업을 시작한 이유는 가족 때문이었다. 행복하고 풍족한 삶을 선물하고 싶었다. 
 
순조로운 인생에 먹구름이 드리운 것은 사업이 잠시 흔들리기 시작할 그 시점이었다. 사업이 어려워진 순간부터 아내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고 생각했다. 아내를 바라보는 관점이 왜곡되어 있다. 아내가 아니라고 여러 번 말했지만 그는 아내의 말을 듣지 못한다. 
 
어린 시절 상처가 그의 눈과 귀를 가려버렸다. 아버지의 무리한 사업, 부도, 가난, 재기 실패, 어머니의 남편 구박, 어머니의 희생. 생생하게 떠오르는 아픈 기억이 그를 괴롭힌다. 그의 내면 어딘가에 곪아터진 상처가 썩어들어가고 있다. 도려내지 않으면, 가정이 깨질 것이다. 
 
남편이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이유는 아내의 배타적인 태도에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내가 배타적인 태도를 취했는가, 취하지 않았는가?” 형사처럼 조사해서 진실을 파헤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황과 상관없이 남편에게는 왜곡된 진실이 확인된 진실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왜곡된 인식을 바로 잡고 진실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과정은 고무보트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다. 어머니에게 구박받았던 아버지와 현재의 자신을 분리하는 것. 변화의 첫 시작이다. 
 
방에 갇힌 사람은 남편 자신이 아니라, 남편 안에 드리운 아버지 그림자이다. 그는 혼란스럽다. 그림자 주인이 자신인지, 아버지인지 구분할 수 없다. 아내의 말 한 마디, 작은 표정 하나가 아버지 그림자와 자신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그림자의 주인은 실제로 자신이 아니다. 그림자를 지워내는 방법은 단 하나, 정수리 위에서 찬란하게 비추는 빛이다. 비스듬히 비친 빛은 그림자를 만든다. 관점을 왜곡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정수리에서 위에서 직각으로 비추는 빛은 그림자를 남기지 않는다. 정면에서 올바른 관점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가 추구하는 목적이 그를 병들게 할지 모른다. 결핍으로 시작된 이상적인 목표, 행복에 대한 막연한 생각이 그를 실패하게 만든다. 남편이 말하는 행복은 지나치게 추상적이다. 아버지, 남편 이미지에 대한 부재는 그에게 허구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게 된다. 완벽한 남편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지나치게 높은 기준을 가진 사람은, 배우자가 던진 사소한 말 한 마디에 자존감이 무너질 수 있다. 상식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업은 어려워질 수 있다. 남편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내 역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행복할 수 없고, 언제나 불행할 수 없는 것이다. 남편이 행복하면, 아내도 행복해진다. 남편이 불행하면 아내도 불행해진다. 어쩌면 사업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아내 역시 아버지에 대한 상처 때문에 남편을 건강하게 바라보지 못한다. 남편에게 거절감을 느끼는 강도가 세다. 남편이 힘들고 어려움을 느낄 때, 지지해주고 격려해줄 수 있는 여유가 아내에게 없다. 아내가 말한 대로, 남편이 우울감을 느끼는 것은 아내 책임이 아니다. 그 감정을 처리해야 할 사람은 남편 자신뿐이다. 감정을 대신 책임지려고 하면 오히려 부작용이 심해진다. 
 
그러나 아내가 가정 안에서 격려와 지지의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은 중요하다. 그에 대한 책임은 아내에게 있다. 남편이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는 순간에도 인정받는다는 느낌이 있어야 한다. 아내가 남편을 인정해주기보다는 방치하고 있지 않은가 묻게 된다. 아내는 남편의 부정적인 감정이 괴롭기 때문에 그 감정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내가 어떻게 하면, 남편의 감정을 바꿔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고 문제에 접근한다면  금방 상처받을 것이다. 기다려주는데 익숙해져야 한다. 기다리는 과정에서 아내의 진정한 실력이 발휘되는 것이다. 편안하게 기다려주는 연습을 해야 한다. 
 
아내여, 어디서 들었다고 하지 않았나. 남자가 동굴에 스스로를 가둔다고.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혼자 있고 싶어 동굴로 들어가지만, 바깥 상황이 궁금한 것이 남자이다. 자신이 사라져 버린 동굴 밖 상황이 궁금한 것이다. 자기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그래서 남자는 동굴 안에서 밖을 보고 앉는다. 여자는 이 사실을 모른다. 
 
남자는 동굴 안에서 오래 못 산다. 며칠 내로, 밖으로 나온다. 자신이 지켜보고 있었던 동굴 밖 상황으로 돌아온다. 자신이 필요 없다 생각되면, 그는 목적을 상실한 채로 현실에 순응하며 산다. 자신이 사라져도 전혀 지장이 없는 세계로 돌아오는 남자에게 어떤 희망이 남아있을까? 그러나 자신이 필요했다고 생각되면 당당하게 산다. 그것이 착각이라도 상관없다. 의욕적으로 산다. 동굴 밖 상황에 대한 남자의 관심은 참으로 미묘한 것이다. 
 
남편이 혼자만의 생각에서 벗어나기를 기대한다. 아내가 지치지 않기를 바란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다. 두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세상에 도깨비 방망이 따위는 없으니까.

엄마를 위한 꽃 한 송이

엄마를사랑하는 딸은
엄마와 하나가 돼요.
 
내가 엄마인지
엄마가 나인지 구분할 수 없죠.
 
엄마가 느끼는 고통을
딸도 고스란히 느껴요.
 
엄마가 아빠를 미워하면
딸도 아빠를 미워하고.
 
엄마가 아빠를 무시하면
딸도 아빠를 무시하고.
 
엄마가 아빠를 의심하면
딸도 아빠를 의심해요.
 
엄마와 하나 된 딸은 결혼해서
아내가 되고 엄마가 돼요.
 
행복한 삶을 꿈꾸던 당신에게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져요.
 
남편은 아빠가 되고
아빠는 남편이 돼요.
 
아빠의 무관심은
남편 집착이 되고
 
아빠의 외도는
남편 감시가 되고
 
아빠의 학대는
남편 무시가 돼요.
 
이 모든 게
엄마와 하나가 되어 벌어진 일이에요.
 
아직도 엄마 등에 업혀 있나요?
이제 내려오세요.
 
우리 엄마 고생했으니 내 차례야.
아니오. 엄마를 업어주지 마세요.
 
그렇게 딱 붙어 있으면
당신은 불행해져요.
 
엄마를 놓아주세요.
당신을 되찾으세요.
 
당신은 엄마가 아니고
엄마도 당신이 아닙니다.
 
우리 엄마 어떡해.
나 없으면 어떡해.
 
당신이 울 때, 나도 따라 울고 싶다면
당신이 믿어줄까요.
 
나도 엄마가 있거든요.
평생 고생만 했던 엄마가 있어요.
 
엄마가 엄마가 되고
내가 내가 되던 그날 밤
나도 펑펑 울었어요.
 
우리 같이 연습해요.
엄마를 위해, 당신을 위해.
 
엄마를 두 손으로 붙잡으면
그분을 붙잡을 손이 없어요.   
 
한 손 먼저 놔줘볼까요, 우리.
빈손으로 그분 손을 붙잡아요.
 
한 손은 엄마,
한 손은 그분.
 
심호흡하고 엄마에게 말해요.
엄마, 나처럼 한 손으로 그분 잡아.
 
엄마도 당신처럼
그분의 딸이랍니다.
 
엄마를 위해
엄마를 놓아주세요.
 
엄마는 엄마가 되고
당신은 당신이 되는 날,
 
당신에게 향긋한
꽃 한 송이 전해질 거예요.
 
치유의 꽃 한 송이를
두 손으로 받아드세요.
 
엄마 한 송이.
당신 한 송이.
 
그렇게 두 사람은
각자가 될 수 있습니다.

내 상처가 뭔지 알아요

나는 내 안의 상처가 뭔지 알아요. 오랫동안 고통받았거든요. 하지만, 마주하고 싶지 않아요. 두려워서 엄두가 안 나요. 회피하고 있어요.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죄송하지만, 상처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말이 살짝 의심스럽습니다. 회피하고 있는 모습 역시 상처의 일부가 아닌지 고민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내 문제는 이거다. 나는 지금 회피하고 있다.”라는 말에는 내가 문제를 알고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면, 회피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문제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두려운 마음이 커질 거예요. 실체를 보지 못하면 심리적으로 훨씬 두렵지요. 검은 그림자가 두려워 도망치면, 실체를 볼 수 없습니다. 직접 가서 확인해봐야 곰인형인지, 실제 곰인지 알 수 있어요. 
 
빙산의 일각이란 말이 있어요. 수면 위에 드러난 빙산은 전체 빙산의 10%입니다. 눈에 보이는 빙산이 아무리 선명해 보여도, 빙산의 뿌리는 수면 아래 깊이 가라앉아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빙산의 일부를 보며, “저게 빙산 전체다”,라고 말한다면 오산이에요. 수면에 드러난 빙산을 피했다고 안심하다, 빙산 뿌리에 걸려 배가 가라앉습니다. 피한 건 피한 게 아닙니다. 
 
상처를 안다고 생각하지 말고, 모른다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몰라서 두려운 겁니다. 지금부터라도 관점을 바꿔서 “나는 아직 나를 잘 모른다. 몰라서 두려운 거다.”라고 생각하면, 자신을 돌보기도 수월하고, 주님께 그런 자신을 데려다주기도 훨씬 편합니다. 나도 모르는 나 자신을 주님께 돌봐달라고 하세요. 주님은 따뜻하게 돌봐주십니다. 

아내가 기도를 안 해요

장모님이 건강이 안 좋으세요. 아내를 도와주고 있기는 한데, 가끔은 제 마음도 힘들어요. 아내가 힘든 건 이해하는데, 아내가 기도를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이럴 때일수록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더 의지하면 좋겠어요.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아내가 힘들 때, 곁에 있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질문에 조심스럽게 답하겠습니다. 
 
아내는 기도하고 있을 거예요. 다만, 남편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뿐이죠. 상황이 힘든 만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있지 않을까요. 어머니가 아픈 상황은 딸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다 줍니다. 실제로 기도하지 못하고 있다면, 아마 기도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지금 아내에게 필요한 건 조언이나 해결책이 아닙니다. 아내에게 필요한 건 위로입니다. 많은 말을 하지 말고, 많은 말을 들어주세요. 아내가 하고 싶은 말 있을 거예요. 끊지 말고 끝까지 들어주세요. 쉽지 않을 거예요. 남편 역시 하고 싶은 말이 있잖아요.
 
아내가 남편에게 푸념한다 생각하지 마시고, 예수님께 기도한다 생각해주세요. 남편 마음 안에 예수님이 계시지요. 아내가 고통을 말할 때, 남편 안에 계신 예수님께 간절히 기도한다 생각해주세요. 아내가 말하는 내용 하나하나 마음에 담으세요. 절박한 아내의 기도입니다. 기도가 끝나면, 아내가 말할 거예요.   
 
“여보, 고마워. 내 상황 이해해줘서. 나 힘내서 다시 일어설게.” 
 
남편은 해결책을 제시하고 싶지만, 아내는 위로받고 싶은 거예요. 힘든 시간 동안 아내 곁에 있어주시면, 아내는 힘을 낼 수 있을 거예요. 상황은 쉽게 바뀌지 않아요. 아내 마음이 든든해야 해요. 
 
절대로 손해 보는 일 아니에요. 인생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어요. 항상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지만, 누구도 보장할 수 없죠. 남편에게도 힘든 시기가 올 거예요. 남편이 무너졌을 때, 함께 있어줄 사람은 아내뿐입니다. 아내가 무너졌을 때, 남편이 곁에 있어 줬던 것처럼, 아내 역시 남편 곁에 있어줄 거예요. 
 
아내를 사랑해서 질문해주신 남편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실패한 상담자

“내 이야기를 들으면 상처받으실 수도 있어요. 사람들이 내게 그랬거든요. 네 이야기를 들으면, 나까지 이상해지는 것 같다고.” 
 
주연은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그녀가 처음 내뱉은 말의 의미를 굳이 묻지 않았다. 
 
주연은 한참을 기다리다, 다시 말했다. 
 
“괜찮으시겠어요? 내 말을 들으면, 목사님도 상처받을 수 있어요.”
 
나는 말했다.  
 
“나는 이미 상처받았어요. 흉터 하나 더 생긴다고 무슨 일 있겠어요. 제 걱정 마시고, 편안하게 이야기하세요.” 
 
주연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에요. 아마 혼자 계실 때 알게 되실 거예요. 가끔 저는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게 보여요. 목사님도 저와 대화를 시작하시면,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영향을 받으실 거예요.” 
 
그 순간 내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얼굴 근육이 마비가 된 듯했다. 표정 관리를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섬뜩했다. 
 
주연은 알 수 없는 미소를 띠어 보이며, 내게 동의를 구했다. 
 
“정말로 괜찮으시겠어요?”
 
나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제 걱정은 마세요. 편하게 이야기하시면 돼요.” 
 
주연은 차분한 말투로 물었다. 
 
“목사님은 귀신을 본 적 있으세요?” 
 
주연은 내가 대답할 기회를 주지 않고 혼잣말로 속삭였다.   
 
“나는 귀신을 본 적 있어요.” 
 

 
새벽 예배를 마치고, 주연은 싱글벙글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을 챙겨 학교에 보내고, 집안을 대충 치우고 교회에 갈 작정이었다. 시계가 9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교회 성경공부 모임에 늦고 싶지 않았다. 
 
주연은 부리나케 화장실에 들어갔다. 샤워기에서 흘러나오는 물로 몸을 적시고, 손바닥에 샴푸를 담았다.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감는데, 주연의 등골이 오싹했다. 
 
누군가 위에서 그녀를 지켜보는 것 같았다. 주연은 비명을 질렀다. 
 
젖은 머리카락에 샴푸 거품이 뒤엉킨 채 화장실 밖으로 뛰쳐나왔다. 거실에서 신문을 보고 있던 남편에게 달려가 매달렸다. 
 
“여보, 화장실에 뭔가 있어. 시커먼 게 나를 보고 있었다고.” 
 
주연의 머리카락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이 남편의 손에 들린 신문을 적셨다. 주연이 말하는 동안에도, 거품 낀 물방울이 남편의 옷과 얼굴에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남편은 짜증스럽게 말했다.
 
“또 시작이네. 당신이 애야? 화장실에 뭐가 있다고 그래. 제발 좀 그만해.” 
 
“여보, 그게 아니고, 정말 뭐가 있다니까. 당신이 한 번 가봐. 응? 제발 부탁이야.” 
 
남편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 문을 열었다. 주연은 거실 귀퉁이에 앉아 손과 발을 벌벌 떨었다. 남편은 의도적으로 화장실 불을 몇 번이나 껐다 켜면서, 주연을 안심시켰다. 
 
“아무것도 없지?” 
 
남편의 물음에, 주연은 고개를 끄떡였다. 
 
남편은 주연에게 다가와 진지하게 말했다. 
 
“여보, 당신 정말 무슨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정신과 치료를 받아보면 어때?” 
 
주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난번에도 가봤잖아. 그냥 약만 주고, 별다른 도움도 못 받잖아. 나 약 먹기 싫어. 약 기운에 하루 종일 누워서 지낸단 말이야.” 
 
“아니, 그럼 뭐 어떻게 하려고 그래. 당신, 애들은 생각 안 해?” 
 
“내가 애들 생각 안 한 게 뭐 있어?” 
 
“당신이 지금 정상이야? 애 둘만 싸질러 낳고, 엄마 구실을 못하잖아.” 
 
“뭐? 당신 지금 말 다 했어?” 
 
“내가 무슨 틀린 말 했어? 당신 올해 들어 집에서 몇 번이나 잤어. 하루가 멀다 하고 교회 가잖아. 왜 멀쩡한 집을 놔두고 교회에서 잠을 자? 애들 뒤치다꺼리는 누가 하라고?”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래? 나도 지금 미칠 것 같아.” 
 
“그러니까, 정신과 치료를 꾸준히 받으라고.”
 
“내가 그랬잖아. 약 먹기 싫다고. 나 기도해서 고칠 거야.”  
 
남편은 어이가 없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만하자. 더 말하면 나 미칠 것 같아.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남편은 차가운 말을 내뱉고, 베란다로 나갔다.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주연은 남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주연은 남편에게 서운하면서도, 미안한 감정을 느꼈다. 주연을 괴롭히는 문제가 담배 연기처럼 허공에서 사라지기를 바랐다. 
 
서러운 감정이 주연을 덮쳤다. 소파에 엎드려 하염없이 울었다. 수건으로 둘둘만 머리카락 끝자락에서 거품이 뒤섞인 물방울이 거실 바닥에 뚝뚝 떨어져 내렸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이었다. 
 
남편은 24시간 하루 근무, 24시간 하루 휴식의 일정을 반복했다. 
 
남편이 집에 없는 날이면, 주연은 혼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문을 이중으로 잠가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주연은 두려움을 이길 수 없었다. 택시를 잡아타고 엄마 집으로 도망쳤다. 
 
주연은 엄마와 같은 방에서 함께 자기를 원했다. 
 
“오늘 외할머니 오셨으니까 불편하더라도 외할머니하고 같이 자. 엄마가 오늘은 혼자 자고 싶어.” 
 
주연은 가만히 고개를 끄떡였다. 
 
밤새도록 잠이 오지 않았다. 주연은 벽에 기대 우두커니 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인기척에 놀라 잠에서 깬 할머니가 말했다. 
 
“으미, 깜짝이야. 너 시방 뭐 하는 거여. 누워야 잠이 오제, 어찌 앉아서 잠을 잔다야. 빨랑 누워, 이것아.” 
 
“신경 쓰지 말고 자, 할머니. 나는 잠이 안 와. 밤마다 이래.” 
 
“별 희한한 일 다 보겠구먼. 잠을 안 자면 사람이 어떻게 산데….” 
 
할머니는 밤새 주연과 대화를 나누었다. 동이 틀 무렵 할머니는 피곤했는지, 코를 골며 잠에 들었다. 
 
주연은 주섬주섬 이불을 정리하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남편이 오기 전에 집에 도착해, 아침 식사를 준비할 작정이었다. 
 
할머니는 엄마에게 주연의 상태를 물었다. 
 
“걔가 언제부터 그러데? 밤새 잠을 못 자면 사람이 어떻게 산데?” 
 
엄마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다 큰 애가 뭐가 무섭다고 그러는지 모르겠어. 혼자 잠을 못 자. 안 그러던 애가 어느 날부터 갑자기 그래.” 
 
할머니는 진지하게 말했다. 
 
“애가 눈빛이 영 이상해. 점을 한 번 보러 가야 쓰것어. 애 눈을 보는데 섬뜩하더라니까.”
 
할머니는 주연을 챙겨, 용하다는 무당을 찾아갔다. 
 
무당은 주연의 눈빛을 살피더니, 뭐에 씌인 것 같다며 크게 굿을 한 판 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연은 내심 걱정이었다. 굿을 하는데, 당장 수백만 원이 필요했다. 주연은 망설였다. 남편에게 굿을 하자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주연은 쓸데없는 짓이라며,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터벅터벅 집으로 향하는 길에, 도로 옆 교회의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다. 
 
십자가를 올려다보는 순간,  햇빛으로 눈이 부셨다. 인상을 찌푸렸지만, 주연의 마음은 이상하게 편했다.
 
‘굿은 무슨 굿이야. 차라리 교회를 나가보자.’ 
 

 
“사모님 죄송한데, 어려운 부탁을 드려도 될까요?” 
 
사모는 멈칫하며 주연의 말을 기다렸다. 
 
“사실 제가 요즘 잠을 잘 못 자요. 혼자 방에 누우면, 천장에서 마주하는 얼굴이 있어요. 눈을 감으면, 천장에서 그 얼굴 뚝 떨어져 나를 덮칠 것 같거든요. 너무 무서워요.” 
 
주연은 슬픈 감정에 사로잡혔다. 눈물이 얼굴을 뒤덮었다. 
 
“마귀가 역사하네요. 기도하면 나아질 거예요. 제가 뭘 도와드리면 되죠?” 
 
사모가 물었다. 
 
“교회에서 잘 수 있게 해주시겠어요? 교회에 오면, 마음 편하게 잠을 잘 수 있거든요. 불편하게 하지는 않을 게요.” 
 
사모는 그게 뭐 어려운 일이겠냐며, 주연의 등을 다독이며 말했다. 
 
“그럼요, 언제든 오셔서 주무세요. 저랑 같이 기도도 하고, 성경도 읽고 하면 되죠. 저도 가끔 교회에서 자고 그래요.”
 
주연은 사모에게 거듭 감사하다 말했다. 사모는 주연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주연은 밤낮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집과 거리, 어느 곳 하나 예외가 없었다. 
 
두려움이 엄습하지 않는 유일한 장소는 교회뿐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아무도 없는 교회에 혼자 가는 건 무섭지 않으세요?” 
 
“아, 무섭지 않아요. 어두운 예배실에 들어서면 잠깐 움찔은 해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편해져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교회에 가면, 예수님이 날 지켜주시는 것 같아요. 건물 위층에 사모님도 계시고요. 그 위에서 사시거든요.” 
 
“두려움을 없애주는 사람이 예수님인가요, 사모님인가요?” 
 
“물론, 예수님이죠. 하지만, 사모님도 필요해요. 솔직히 말하면, 사모님이 성품이 따뜻하신 분은 아니에요. 그래도, 당분간은 사모님이 필요해요.” 
 
어려운 개척교회였다. 사모는 주연의 부탁으로 예배실 옆에 마련된 작은 공간에서 주연과 함께 잤다.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주연이 교회에서 잠을 자도록 허락해 준 것으로만 알았던 것이다. 
 
사모는 밤마다 사택에서 내려와 주연과 함께 지냈다. 사모 입장에서도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사모의 불편한 감정이 주연에게도 전해졌다. 그러나, 주연은 불편한 감정을 감수하고라도 사모 곁에 있고 싶었다.
 
주연은 물에 빠진 심정이었다. 구명조끼를 던져주는 사람의 표정을 살필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관계의 유통기한이 생각보다 짧다는 것을 주연은 분명히 알았다. 사모는 주연이 의존한 세 번째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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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과 사모가 함께 성경을 읽는 자리에, 목사가 들어와 한 마디를 꺼냈다. 
 
“자꾸 대출이자 때문에 은행에서 전화가 오네.”
 
사모는 주연을 바라보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우리 교회 팔리면, 이제 주연 자매는 어떻게 해? 기도 많이 해야겠어. 우리야 어디 가서 또 목회하면 되지만, 주연 자매는 우리 없으면 어떻게 할 거야?” 
 
주연은 당황했다. 뭐라 대꾸할 말이 없었다. 어색한 웃음만 지어 보일 뿐이었다. 
 
교회가 어려울 때마다, 주연이 큰마음을 먹고 헌금을 한 것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감사한 마음에 헌금을 한 것을 두고, 사모가 그런 태도를 보인 것에 주연은 실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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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나빴어요. 무시를 당한 것 같았거든요. 마음 같아서는 ‘나를 뭘로 보고, 그런 말을 하는 거야?’라고 대꾸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죠. 
 
자존심이 상해서, 두 번 다시는 사모님을 의지하지 않고 싶다고 결심했어요.”
 

 
사모가 내뱉은 말이 떠오를 때마다, 주연은 짜증 섞인 혼잣말을 내뱉었다. 
 
“내가 뭐, 지 아니면 안 될 줄 알고?”
 
어둑어둑 땅거미가 내려앉을 무렵, 주연은 마음이 급해졌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를 정도로 불안했다. 
 
밤새도록 혼자 있을 것을 생각하니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마에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괴로웠다. 
 
저녁을 대충 차려놓고 남편을 기다렸다. 학원에서 아이들이 먼저 돌아오고, 남편이 뒤늦게 들어왔다. 
 
남편이 들어오자마자, 주연은 바통을 넘겨주듯 말했다. 
 
“여보, 미안해. 나 오늘 상태가 너무 안 좋아. 애들하고 저녁 먹고 뒷정리 좀 부탁해.” 
 
남편은 한심한 듯 말했다. 
 
“당신 지금 뭐 하는 거야? 그 사모가 뭐라고 그렇게 매달려. 그러다, 또 실망하고 뭐하고 비참해진다며? 제발 작작 좀 해.” 
 
주연은 남편의 말에 대꾸할  여유조차 없었다. 집에서 교회까지 쉬지 않고 뛰었다. 
 
교회에 도착한 주연은 예배실 문을 열었다. 예배실은 조용했다. 어두운 예배실 안에서 주연은 안정을 되찾았다. 
 
불안에 떨면서 감정 소모가 심한 탓인지, 주연은 엎드린 채로 기도하다 잠에 들었다.
 
주연은 팔이 잘려나가는 꿈을 꾸었다.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꿈에서 본 것처럼 팔에 감각이 없었다. 팔을 베고 잔 탓에 피가 통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주위를 살폈다. 예배실 뒤편에 작은 할로겐 조명이 켜진 채였다. 
 
사모가 들어온 것이다. 
 
주연은 교회 뒤편 마련된 작은방을 살폈다. 사모가 피곤했는지 미리 이불을 펴고 잠든 후였다. 
 
주연은 잠시 멈칫했다. 
 
‘우리 없으면, 이제 주연 자매 어떻게 해?’ 
 
며칠 전 사모가 내뱉은 말이 생각났다. 
 
그러나, 차마 집으로 돌아갈 용기는 없었다. 주연은 가만히 들어가 사모 옆자리에 이불을 펴고 누웠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서글픈 감정이 밀려왔다. 주연은 사모 옆에 자리를 폈지만, 사모를 등지고 뒤돌아 누워 하염없이 울었다. 
 

 
“부모님은 내가 어릴 때, 자주 심부름을 시켰어요. 밤에 슈퍼를 가려면 대나무숲을 지나야 했거든요. 가로등 하나 없는 길을 지나가는데 너무 무서웠어요. 
 
항상 누가 쫓아오는 느낌이 들어서, 죽도록 뛰었거든요. 가끔 엄마가 사 오라고 했던 물건을 떨어뜨리고 그냥 집으로 뛰어온 적이 있어요. 
 
그러면, 엄마가 엄청나게 화를 내면서, 다시 가서 가져오라고 그러죠. 저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만큼 무서웠거든요.” 
 

 
나는 주연의 공포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알고 싶었다. 그녀가 살아온 인생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주연은 적극적이었다. 공포심을 물리치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내게 전해졌다. 그녀는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기억들을 순서 없이 말했다. 
 

 
“증조할머니가 무당이었어요. 할머니가 굿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죠. 어머니는 할머니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 같아요. 자녀들을 사랑할 줄 모르는 분이셨어요.” 
 
주연은 그녀의 어머니가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상한 미신 같은 것을 잘 믿는 사람이라고도 했다. 
 
그녀가 20살 남짓 되던 해에, 고기를 먹다가 급하게 체한 적이 있었다. 소화제를 먹어도 소용이 없어, 시름시름 앓았다. 
 
주연의 어머니는 낯선 남자에게 주연을 데려갔다. 
 
낯선 남자 앞에서, 주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어머니가 모든 상황을 설명했다. 
 
남자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옆에 마련된 세면기에 손을 씻었다. 
 
남자는 주연에게 다가와 아무런 설명도 없이 입을 벌렸다. 주연은 당황스러웠다. 남자는 사정없이 솥뚜껑 만한 손을 주연의 입속에 밀어 넣었다. 
 
남자의 억센 손은 목구멍을 타고 가슴 안으로 들어갔다. 주연은 외마디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헛구역질이 나서 웩웩 소리를 지르는 찰나에, 남자는 주연의 목구멍에서 손을 빼냈다. 
 
남자의 손은 주연의 타액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남자가 손을 펴자 그 안에는 작은 고기 조각이 들려 있었다. 
 
남자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다시 세면기로 가서 손을 씻었다. 
 
어머니는 남자에게 돈을 지불하고 돌아서며, 주연에게 말했다. 
 
“속이 뻥 뚫려서 후련하지. 집에 가자.”
 

 
나는 충격에 빠졌다. 태어나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였다. 내 귀가 의심스러웠다. 
 
주연이 말하는 동안, 무심결에 그 장면을 상상했는데, 그 자체로 역겨웠다. 헛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나는 내담자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해버렸다. 
 
“사실인가요?” 
 
주연은 내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 
 
“믿기 힘드실 텐데, 정말이에요. 가끔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은 진짜였어요. 제가 고기를 먹으면 자주 체하거든요. 그 후로도 그 사람을 몇 번 찾아갔어요.” 
 
주연의 말을 억지로 믿었다. 그러나, 내 진심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듯했다. 나는 그날 밤 악몽을 꾸었고, 섬뜩한 남자에게 내 입을 벌려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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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의 근원을 찾으려는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더욱 혼란스러웠다. 사방이 막혀 있는 듯 답답했다. 
 
한 가지 주목할 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느끼는 감정이었다.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나는 주연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들이 무서웠다.  
 
첫 세션에서 주연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사람들이 내게 그랬거든요. 너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까지 이상해지는 것 같다고.”
 
주연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사람들 역시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나는 내 감정을 주연에게 효과적으로 설명해야 했다. 
 
“당신 이야기가 너무 기괴하고 무섭다.”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방식은 옳지 않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첫 발을 내디뎠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니까, 내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생각나요. 
 
할머니가 사랑방에 손주들을 모아놓고, 호롱 불을 하나 켜셨거든요. 호롱 불이 불규칙적으로 흔들리니까, 그림자가 춤을 추는 것 같더라고요. 
 
할머니는 군밤을 까주시면서, 할머니가 어려서 시골에서 겪었던 기괴하고 무서운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할머니가 어린 시절에 살았던 시골 마을에 들어가려면 고개를 하나 넘어야 했데요. 자정에 고개를 넘을 때는, 절대로 혼자가면 안된다고 했어요. 
 
자정이 지나면, 푸른 불빛이 사람을 홀려서 깊은 숲속으로 끌어들인다고 했어요.
 
마을 어른 여럿이 푸른 불빛 때문에 죽어나갔다고 했죠. 
 
긴장이 최고조에 다다랐을 때, 할머니는 “워!”라고 소리를 질렀죠. 손주들 중에 내가 제일 컸는데, 나마저도 울음을 터뜨릴 뻔했어요. 
 
나는 그날 밤, 이불에 오줌을 쌌어요. 잠에서 깼지만, 혼자 화장실에 갈 용기가 없었거든요.”
 
 주연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묻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한 걸음 더 내디뎠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처음부터 두려운 감정을 가진 것 같아요. 처음에는 그 이유를 몰랐지만,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아요. 
 
당신은 직접 말로 표현한 적 없지만, 지속적으로 내게 똑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어요. 
 
‘자, 잘 들어보세요, 지금부터 내가 무서운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우리는 무서움의 근원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고, 당신은 계속 내게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요. 
 
내가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당신과 동일한 두려움을 느낄 수 있어야 당신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건 진실이 아니에요. 당신을 두려움의 소용돌이에서 구해주려면, 나는 소용돌이 밖에 서 있어야 해요. 그래야, 당신에게 손을 내밀어 줄 수 있으니까요.
 
나는 이 지점에서 실패했어요. 이미 나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어요. 당신의 이야기가 섬뜩하고 무서웠거든요. 
 
당신 말대로 나는 당신의 이야기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어요. 
 
내 일상에서 악몽을 몇 차례 꾼 적이 있거든요. 악몽은 내게 드문 일이에요. 당신과의 상담 전후에 있었던 일이에요. 
 
당신이 나를 완벽히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조용히 상담을 받던 당신이 일어서는 거죠. 그리고, 상담실 안에 시커먼 것이 있다고 말하며, 혼비백산해서 상담실 밖으로 도망을 쳐버리면 돼요. 그러면, 나는 완전히 무너질 거예요.
 
내게는 그것이, 호롱불 아래서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던 할머니의 “워!”라는 메시지겠죠.” 
 
주연은 가만히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무언가를 내려놓은 듯 안정적인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누군가 한 사람은 내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주기를 바랐어요. 
 
사람들은 다 똑같아요. 내가 무섭다고 말하면, 다들 무시해요. 다 큰 어른이 무섭다고 말하니, 한심하다고 생각하죠. 
 
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애써 무섭지 않은 척 해요. 두려운 감정을 부정하는 거죠. 소리 없이 내 곁을 떠나요.
 
이해해요. 사람들이 내게 거리를 두면, 내가 느끼는 두려움에서 멀어질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나는 나를 데리고 살아야 해요. 내가 얼마나 무서운지 아는 사람들은 내 곁에 남아 있지 않아요.  
 
내 이야기를 듣고, 솔직히 무섭다고 말해준 사람이, 목사님이 처음이에요.” 
 
그녀는 고개를 떨구고 울기 시작했다. 작은 목소리로 같은 말을 반복했다. 
 
“정말로, 무서웠어요.” 
 
그녀는 울음소리는 점점 커지고 격해졌다. 어린아이처럼 엉엉 소리를 내며 우는 동안, 나는 기다렸다. 간간이 손으로 내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가면서 조용히 창밖을 응시했다. 
 

 
그녀의 감정이 차분해지고, 다시 대화가 가능해진 상황에서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방금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주연의 차분했던 감정이 다시 울컥했다. 눈물이 쏟아져 내릴까 걱정스러운 듯, 손바닥을 가슴에 올려놓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주연은 차분히 말했다. 
 
“제 마음을 공감해주신 것 같아요. 제가 확대해석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주신 것 같아요. 그 순간,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들어왔어요.” 
 
주연의 말을 한참 동안 듣고 나서, 내 생각을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당신과의 상담에서 실패했어요. 나는 당신 안의 두려움의 근원을 찾아내고 싶었어요. 두려움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싶었고요. 
 
두려움의 소용돌이 빠진 당신을 구해주려다, 나까지 소용돌이에 빠져 버린 꼴이죠. 마음이 급했나 봐요. 유능한 상담자라면, 당신을 제대로 도와줄 수 있었을 거예요. 당신에게 미안해요, 정말로.”
 
주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목사님은 실패하지 않았어요. 소용돌이라고 말씀하시니까, 언뜻 떠오른 생각이 있어요. 
 
솔직히 그동안은 극단적인 생각을 했거든요. 나 같은 인생 살아서 뭐해. 죽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줬다는 사실에 문득 호기심이 생겼어요.
 
예수님은 날 어떻게 생각하실까? 
 
그동안 나는 감히 예수님 앞에 설 수 없었거든요. 나를 비난하시는 것 같아서요. 
 
제가 무서운 것을 본다는 것 자체가 믿음이 없어서 그런 거잖아요. 
 
예수님 앞에 떳떳이 설 수가 없었어요. 밤마다 교회에서 회개 기도를 했어요. 이런 나를 용서해달라고. 
 
목사님께 조심스럽게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요. 
 
예수님도 나를 비난하지 않으시겠죠? 얼마나 무섭겠냐고 공감해주시겠죠? 
 
나를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원해서 이런 게 아니거든요.” 
 
주연은 또다시 얼굴을 감싸 쥐고 울기 시작했다. 
 
나도 함께 울었다. 
 
감정의 소용돌이에 함께 빨려 들어가면서, 절박한 심정으로 예수님을 불렀다. 예수님이 물 위로 걸어오셔서 우리 둘을 살려주시기를 바랐다. 
 

 
급류에 영향받지 않는 존재는 오직 예수님뿐이다. 
 
예수님은 그녀를 찾아가셨고, 그녀를 건져주셨다. 나는 그다음으로 건져졌고, 간신히 내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녀가 상담실 안에서 머무는 동안, 나는 내가 할 일을 했다. 
 
예수님과의 왜곡된 관계를 복음적 관계로 전환하기 위한 몇 가지 작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사모를 극단적으로 의존하는 관계를 정리하고, 남편에게 돌아가 온전한 가정을 이루기 위한 방향을 제시했다. 
 
장기적인 정신과 치료 역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하며, 시간과 비용이 허락하는 한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을 했다. 
 
정신과에서 처방해준 약을 먹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약을 먹는 것이 신앙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며, 적절한 범위 안에서 유익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그녀에게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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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떠나보낸 지금에도, 나는 여전히 그녀가 느끼는 두려움의 출처를 모른다. 
 
그녀는 여전히 두려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을까. 아니면, 조금이나마 평안을 누리고 있을까. 아니면, 견딜 수 없는 두려움으로 또 다른 사람을 찾아내서 매달리고 애원하고 있을까. 
 
평온한 일상에서 문득 그녀가 떠오르면, 죄책감을 느낀다. 
 
나 역시 그녀를 밀어낸 것은 아닌가. 
 
어쩌면, 그녀가 말한 대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를 버린 사람들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잔잔한 죄책감은 바람을 타고 거센 파도가 되어 내 가슴을 퍽퍽 치고 쓸어내렸다. 
 
나는 잠시 상담을 멈추고 나 자신을 돌봐야 했다. 
 
조용한 곳에 내 몸을 밀어 넣고,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죄책감을 떨쳐내고 싶었다. 
 
바쁜 일정 중에 시간을 내는 것이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옳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내 안의 죄책감처럼, 그녀 안의 두려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절망하지 않는다. 
 
그녀 안의 두려움은, 내 안의 죄책감처럼 그리스도에게로 달려가는 강렬한 욕망이 될 것이다. 
 
두려움은 절대로 그녀의 인생을 집어삼킬 수 없을 것이다. 두려울수록 그리스도가 더욱 절실할 것이다. 
 
나는 물러났어도, 그리스도는 절대로 물러나지 않으실 것이다. 그녀 안의 그리스도가 그녀와 영원토록 함께하실 것이다.

나는 잊혀도 괜찮아

혼자 있으면 
마음속에서 소리가 들려요. 
 
넌 쓰레기야. 
가서 죽어. 
 
정신분열이 오는 걸까요. 
이러다 미치는 건 아닌지. 
 
너무 걱정은 마세요.  
나도 그렇거든요.  
 
나도 끔찍한 소리를 듣고 살아요. 
우울해서 견딜 수가 없죠. 
 
하나만 말해볼까요.
아주 못된 말이에요. 
 
야, 너 요즘 조금씩 알려지니까 좋지. 
시작한 지 얼마 안되서 그래. 
 
이 삼 년 지나봐. 
너 잊혀. 
 
사람들이 지루하다 그래. 
너 그때 어떻게 할래. 
 
그러니까 내가 그냥 교회에 
가만히 있으라 했잖아. 
 
지어낸 이야기 아니에요.
어제도 들었어요. 
 
그 소리 듣고 나면 우울해져요.  
견딜 수 없을 만큼. 
 
공원을 이리저리 헤매면서 
발바닥 아플 때까지 걸어요. 
 
소용없어요. 
사라지지 않아요. 
고통스러운 생각이. 
 
보세요. 
나는 경지에 오른 사람이 아니에요. 
당신처럼 고통받아요.  
 
내 상처도 끔찍한데 
무슨 자격으로 상처에 대해 말할까요. 
 
그러게요. 
나는 과정을 공유하고 싶었어요. 
 
내가 나를 어떻게 돌보고 있는지 
함께 나누고 싶었어요. 
 
끔찍한 소리를 들으면 
나는 따뜻하게 말해요. 
 
그래. 나 잊혀. 
그게 뭐 어때서 그래. 
 
나는 잊혀도 괜찮아. 
내가 바라는 건 딱 하나야. 
 
사람들이 예수님을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상처 입은 한 사람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싶어. 
 
나 그래서 이 길 택한 거야.
후회 없어. 
 
조명이 켜졌어. 
춤을 춰. 
 
조명이 꺼졌어. 
사라져. 
 
그게 다야. 
그 이상은 없어. 
 
나는 잊혀도 괜찮아. 
나는 그분이 잊히는 게 두려워. 
 
그분을 전할 거야. 
일생 동안. 
 
잠시 동안 마음이 편안해져요. 
다음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안타깝게도 
다음 목소리는 1초 뒤에 
다시 들려요. 
 
돌봄은 잠깐이고 
고통은 계속이에요.  
 
그래도 나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끝까지 나를 돌볼 거예요.   
 
수준 높은 삶은 바라지도 않아요. 
망가진 나를 돌볼 뿐이에요. 
 
당신에게 말하고 싶어요.
자신을 돌볼 시간이에요. 
 
그 목소리 사라지지 않아요. 
계속 따라다닐 거예요. 
 
고개 돌리지 말아주세요.  
마주 보고 전해주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그 따뜻한 사랑을. 

과거로 돌아갈까 두려워요

여러 번 삶을 포기한 적이 있어요.
극단적인 선택을 했어요.
다행이죠. 죽지 않고 살았어요.
 
절망뿐인 나에게
누군가 예수님을 전해줬어요.
살아갈 소망을 얻었죠.
 
이제 막 1년 지났어요.
지금이 너무 좋은데 가끔은 두려워요.
예전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하지.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무너지고 싶지 않아서.
쓰러지고 싶지 않아서.
버티고 견디고 참아요.   
 
고마워요, 용기 내줘서.
당신 덕분에 깨달았어요.
내가 요즘 왜 힘들었는지.
이제 알게 되었네요.
 
먼저 사과하고 싶어요.
내가 조급했어요.
조언을 구하는 줄 알았어요.
방법을 알려주면 될 줄 알았죠.
 
그게 아니었어요.
당신에게는 같이 있어줄 사람이 필요했어요.
아주 잠시 동안이라도
괜찮다고 다독여주며 함께 있어줄 사람,
그런 사람이 필요했던 거예요.
 
솔직히 말해줘서 고마워요.
실망해서 조용히 문 닫고 나갔으면
나는 영원히 몰랐을 거예요.
당신이 말해줘서 알았어요.
 
나도 솔직해지고 싶어요.
요즘 마음이 답답했어요.
몸과 마음이 지쳐갔죠.
탈진이라고 하나요.
 
내가 원하지 않았는데
목회할 때처럼 바빠졌어요.
가야 할 곳이 늘어나고
만날 사람이 많아지고
해야 할 일이 쌓여갔죠.
 
나는 바빠지면 불안해요.
뭔가를 놓치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러면 안 되는데
정말 그러면 안 되는데
한 사람을 마주한 게 아니라
일정을 해치우고 있었나 봐요.
 
차분해야 했는데 나는 분주했어요.
요 며칠 예수님 대신
내가 상담했을 거예요, 아마.
가슴에 뭐가 걸린 것처럼 답답했어요.
이유를 몰랐죠.
 
당신 때문에 알게 되었어요.
내가 해결하려고 했구나.
능력 없는 내가 마음이 앞서
해결하려 드니 꼬이기 시작한 거예요.
참 어리석죠.
매번 같은 실수를 하네요.
 
그래도 다행이에요.
예수님이 당신을 보내주셨어요.
당신이 예수님을 다시 모시고 들어올 때까지
예수님은 상담실에 계시지 않으셨어요.
나는 그것도 모르고 그저 열심히 했네요.
바보같이. 정말 바보같이.
고마워요. 큰일 날 뻔했어요.
당신 덕분에 나도 살았어요.
 
과거로 되돌아갈까 두렵다고 했죠.
듣고 보니까 나도 그렇네요.
아등바등 살면 나아질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네요.
 
그래도 포기하지 말아요, 우리.
우리가 찾아가다 지치면
예수님이 찾아와주실 거예요.
너무 걱정은 마세요.
 
당신이 말했죠.
안개 낀 것처럼 인생이 두렵고 답답하다고.
화창한 날 하루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아세요.
안개는 영원하지 않아요.
수명이 짧아요.
해가 뜨면 금방 사라져요.
 
예수님 없이 어두웠던 당신 인생
드디어 찬란한 빛이 비쳤죠.
새벽이 왔어요. 동이 터요.
안개로 자욱하지만
오늘 하루 맑을 거예요.
안개 짙은 날은 유독 맑았으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시겠어요.
괜찮다고 말해주시겠어요.
곧 해가 뜬다고.
파란 하늘 빨갛게 떠오른 태양이
눈부시게 아름다울 거라고.
 
두 번 다시 예전 같지 않을 거예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어요.
절대로 그럴 수 없어요.
당신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에요.
 
마음속 담아두었던 말,
이제 전하고 싶어요.
 
살아줘서 고마워요.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와줘서
정말 정말 고마워요.
당신 덕분에 나도 살았어요.

회사의 접대 문화가 싫습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는 술, 담배, 유흥을 즐길 줄 알아야 승진할 수 있다는 문화가 있습니다. 혼자 힘으로 잘못된 문화를 바꾸기가 너무 힘듭니다. 힘들더라도 참으면서 주님을 의지해야 할까요, 아니면 다른 회사로 옮기는 게 맞을까요? 
 
나도 모르겠습니다. 본인 선택입니다. 그 회사에 남는 게 올바른 선택인지, 회사를 옮기는 것이 올바른 선택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주님만이 아시겠지요. 힘들게 질문했는데, 말장난 하는 것처럼 보일까 걱정입니다. 나는 진실을 말하고 싶습니다. 남을지, 떠날지 본인이 선택하세요. 본인 선택이 정답입니다. 
 
내 주장에 대한 근거를 말해보겠습니다. 인생이라는 미로가 있습니다. 시작점에서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걷다보니 두 개의 문이 나왔습니다. 왼쪽이 1번, 오른쪽이 2번입니다. 선뜻 문을 열지 못하고 중간에서 고민합니다. 문 밖에 뭐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문 하나 잘못 열면 10년 고생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며칠 마음고생하다가 1번 문을 선택했습니다. 문을 열고 뛰쳐나갑니다. 힘든 선택 뒤에 마주한 결과는 당황스럽습니다. 기대했던 결과는 없고 또 다른 문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문이 세 개입니다. 1-1, 1-2, 1-3. 또다시 문을 열면 1-1-1, 1-1-2, 1-1-3, 1-1-4, 1-1-5의 문이 있습니다. 문은 계속 많아지고, 선택은 복잡해집니다. 
 
열어도 열어도 문이라면,“어떤 문을 여는 게 좋을까?”는 좋은 질문 아닙니다. 문이 하나라면 모를까. 열어도 열어도 계속 문이라면, 멈춰서 질문해야 합니다. “어떤 태도로 문을 열어야 할까?” 올바른 태도를 가졌다면, 자신의 선택을 믿어야 합니다. 과감하게 여십시오. 문 뒤에 절벽이 있더라도, 절대로 떨어져 죽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계시니까요. 
 
올바른 선택을 내리지 말고, 올바른 태도를 가지세요. 선택이 아니라 태도가 급합니다. 하나님을 믿으세요. 당신이 실수할지라도 괜찮아요. 하나님은 올바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회사에 남아서 견딘다고 승자가 되는 게 아닙니다. 반대로, 회사를 옮겨도 패배자가 되는 게 아닙니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항상 태도를 고민하세요. 내가 아는 주님은 언제나 중심을 보십니다. 진심을 다하면, 밖에서 문이 열릴 겁니다. 차례대로 활짝 열릴 거예요. 사람이 문을 열면 미로지만, 주님이 문을 열면 도로입니다.  머지않아 힘차게 달릴 날 올 거예요. 
 
어깨 펴고 회사 다니세요. 당당하게 일하세요. 옮길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떠나세요. 두려워하지 마세요. 회사가 아니라 하나님이 당신을 책임지십니다. 

관계가 힘들어 교회를 떠났어요

관계가 힘들어 교회 청년부를 떠났어요. 시간을 두고 생각하다가 다시 마음이 열려 청년부 공동체에 가려 했어요. 떠나온 것이 미안해서 먼저 리더 언니에게 제 상황을 알렸어요. 다시 교회에 나가고 싶다고 말했어요.
 
환영해줄 거라는 저의 바람과는 달리, 리더 언니는 너무 조급한 것 같다며 기다려 달라고 했어요. 공동체 사람들이 너 때문이 힘들어한다고. 알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어요. 그때는 괜찮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화가 났어요. 내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는 전혀 물어보지 않았어요. 공동체에서 저를 밀어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엇 때문에 교회를 떠났는지 알 길이 없어 정확한 답변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교회 사람들과 갈등이 일어나 공동체를 떠난 것 같아요. 교회는 어떤 상황에서든 자매님을 있는 그대로 받아줘야 하지만, 실제로는 교회 사람들이 서로 상처가 많아서 쉽지가 않지요. 리더 언니라는 분은 아마 다른 사람에 대한 걱정이 앞섰던 것 같아요. 리더 언니를 이해해줄 필요가 있어요. 리더 역할은 언제나 쉽지 않으니까요.
 
아쉬운 게 하나 있다면, 리더 언니가 자매님이 오고 말고를 결정할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해요. 그 누구도 하나님의 자녀를 거절할 권리는 없거든요. 자매님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위임하지 마세요.
 
자매님이 리더 언니에게 물을 필요가 없었던 것 같아요. 가고 말고를 결정하는 분은 자매님이지 리더 언니가 아니거든요. 리더 언니가 어떤 말을 해도 만족할만한 답변을 듣지 못했을 거예요. 그전에 교회를 떠나올 만큼 갈등이 깊었을 테니까요.
 
과정을 공유하는 게 핵심이에요. 다녔던 교회를 사랑한다면, 교회에 다시 출석하는데 목적을 두지 마세요. 자매님에게 있었던 일을 있는 그대로 리더 언니와 공유하는 게 먼저예요.
 
무엇으로 상처받았고, 혼자 시간을 보내면서 어떻게 회복되었는지 말해주세요. 같은 말이라도 표현이 중요하니까 최대한 진실되게 대화하세요.
 
리더 언니로부터 또다시 거절을 당한다면, 전도사님이나 목사님께 도움을 요청하세요. 도와주실 거예요. 만약에 또다시 거절을 당한다면, 그때는 다른 교회를 고려해보세요.
 
교회를 쉽게 옮겨도 된다는 말이 아니에요. 교회 사람에게 상처받아서 신앙을 버릴까 걱정돼서 드리는 말이에요. 어떠한 경우에도 예수님을 포기하지 말아주세요.
 
스스로 회복할 시간이 필요해요. 사람들에게 상처받았으니까요. 한 가지만 말씀드릴게요. 예수님은 자매님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세요. 하지만, 교회 사람들은 자매님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지 않아요. 자매님 역시 리더 언니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에요.
 
리더 언니를 묵상하지 마시고, 예수님을 묵상하세요. 리더 언니와 나누었던 대화를 반복하지 마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반복하세요. 이 과정에서 하나님이 새로운 일을 펼쳐 가시기를 기대해봅니다. 부족한 답변 들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Z는 결혼 13년 차 마흔 둘, 두 딸의 엄마이다. 그녀가 결혼할 때 걱정했던 것은 남편의 종교였다. 아내는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지만 그는 특정 종교와 상관없는 가정에서 자랐다. 그녀의 부모는 남편에게 단 하나의 조건을 제시했다. 일요일은 무조건 교회에 가라는 것. 남편은 그 약속을 지켰다. 
 
그러나 남편이 그저 교회만 나가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몸만 교회에 가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에게 예배, 설교, 교회 사람들과 관계는 안중에 없다. 설교 시간에 휴대폰으로 뉴스를 검색하거나 예배 후 식사할 맛집 찾기에 바쁘다. 
 
아내는 그의 행동이 민망해서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그러면  움찔 놀라며 민망한 듯이 아내를 쳐다본다. 곧 팔짱을 끼고 설교를 듣는가 싶더니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아내는 설교에 집중할 수가 없다. 예배가 빨리 끝나기를 바랄 뿐이다. 
 
그녀는 화가 났지만 표현하지 않았다. 교회에 오기 싫어하는 남편에게 핑계거리를 주고 싶지 않았다. 주말이면 그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나, 이번 주에 교회 안 가.” 
 
아내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며 남편을 윽박질렀다. 그러면서도 남편의 비위를 맞추느라 애쓴다. 서로 불편한 시간을 보내다 토요일 저녁이 되면 아내는 그가 교회에 갈 것인지 묻고 싶지만 자존심 때문에 참는다. 
 
일요일 아침이 되자 남편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내는 두 딸을 챙겨 교회 갈 준비를 마쳤지만 그는 여전히 누워있다. 아내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묻는다. 
 
“당신, 진짜 교회 안 갈 거야?” 
 
남편은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를 기다리다 예배에 늦을 것 같은 아내는 두 아이를 챙겨 현관을 문을 나선다. 
 
예배를 마치고 집에 들어오니 남편이 씻지도 않은 채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다. 한 마디 하고 싶지만 꾹 참는다. 아이들 앞에서 신앙 문제로 싸우고 싶지 않다. 말없이 점심을 차리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남편이 전화를 받는다. 친정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자네, 오늘 교회에 갔다 왔나?” 
 
남편은 넉살 좋게 몸이 좋지 않아 못 갔는데, 다음 주는 꼭 가겠다고 말한다. 그는 전화를 끊고 다시 소파에 앉아 TV를 본다. 아내는 점심 준비를 마치고 아이들을 부른다. 남편은 리모컨을 든 채 식탁에 앉는다. 아내와 두 아이가 손을 모으고 식사 기도를 할 때, 그는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린다. 
 
아내는 신앙 문제로 감정싸움 하는 것에 지쳤다. 주말이 되면 최대한 남편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남편이 친정엄마의 전화 때문이라도 교회에 나간다는 것이다.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요즘 설교를 들으면 마음이 편해지네.” 
 
아내는 놀랐지만, 태연하게 말했다. 
“다행이네.” 
‘이제 조금씩 달라지는구나….’
 
아내에게 기대가 생겼다.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길, 누군가 이중 주차를 한 것을 발견했다. 주자창이 작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내는 침착하게 차창으로 보이는 전화번호로 연락을 했다. 상대방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한 시간이 지나자 남편 얼굴이 일그러졌다. 주차장을 나서면서 욕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있으니까 그만하라고 아내가 말하자 그가 고함쳤다.
 
“교회 다니면 뭐 해! 양심도 없는 사람들이. 이러니까 기독교가 욕을 먹는 거 아니야. 차를 이상하게 세워 놨으면 전화라도 받아야 할 것 아니야!”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른 것은 바라지 않아요. 남편이 제게 무관심해도, 아이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남편이 예수님을 믿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많은 것이 달라지겠죠. 주변 사람들이 ‘내 남편도 처음에는 그랬다.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기도해라.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라고 해요. 저는 그날만 기다려요. 처음보다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니까요. 
 
두 아이만큼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애들로 기르고 싶어요. 저 혼자서 할 수 없잖아요. 아이들이 자라니 더 조급해지네요. 하나님께서 언제 그를 변화시켜 주실까요? 과연 그날이 오기나 할까요?” 
 
아내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내는 남편이 자신에게 무관심할수록 교회 일에 매진했다. 교회 안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올빼미 형 인간이었던 아내는 자신의 오랜 습관을 깨고, 새벽예배에 나가기 시작했다. 남편은 새벽에 아이들이 깨서 덩달아 잠을 설치니까 새벽예배만큼은 나가지 말라고 부탁했다. 
 
아내가 말했다. 
 
“당신이 나 안 돌봐주잖아. 이렇게라도 안 하면 나 못 살아.” 
 
남편은 포기한 듯 말한다. 
 
“알겠어. 알아서 해.” 
 
아내는 생각했다. 남편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 지금의 자신을 이해해줄 것이라고. 
 
 
***
 
 
아내의 마음속에는 ‘만약…’이라는 가정법이 있다. ‘만약 내 남편이 예수님을 믿으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될 것이다’라는 가정법은 실제로 남편을 기독교 신앙에서 멀어지게 한다. 아내가 겪는 문제가 신앙적인 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부부 사이 현실적인 문제다. 
 
남편이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삶을 통째로 뜯어고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삶을 한꺼번에 바꿔야 하는 것이 편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내의 요구가 거셀수록 남편의 거부는 심해질 것이다. 
 
‘만약…’이라는 가정법은 “노력하지 않고 원하는 목표를 얻을 수 있다”라는 가설을 세운다. 현실적인 변화를 위한 노력을 뒤로 미루게 한다. 그래서 그 가정법만을 받아들이면 비현실적인 미래를 그리게 된다. 
 
세상에는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난 남편들이 많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부부 문제로 고통 받는 사람들 역시 셀 수 없이 많다. 예수님은 도깨비 방망이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분이 아니다. 변화를 위한 노력은 고스란히 우리 몫이다. 변화는 점진적, 지속적, 장기적으로 일어나야 한다. ‘만약…’이라는 가정법은 시작과 결론만 남긴 채 노력하는 과정은 생략한다. 
 
그녀의 경우, 남편을 위해 기독교 신앙을 심어주려는 노력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그 방법을 바꿀 필요가 있다. 아내는 부부 사이에 기대하는 변화를 남편의 회심 이후로 미루고 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믿을 때까지 남편은 아내로부터 관계 개선을 위한 요청을 받지 않게 된다. 아내는 남편의 무관심, 남편이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의 부족, 가족 안에서의 남편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 ‘바로 지금’ 대화해야 한다.
 
‘남편이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인 이후에…’라는 가정법은 버리는 것이 좋다. 저절로 되는 것은 없다. 그가 신앙을 받아들인 이후에도 부부가 지속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안들이다. 기다리는 것은 답이 아니다. 지금 당장 용기를 내어 마주해야 하는 현실이다.  
 
아내는 혼자가 아니다. 하나님은 그녀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알고 계신다. 남편에게 예수님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은 그에 대한 사랑 없이는 불가능하다. 누군가에게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 진심으로 노력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남편이 예수님을 믿든 믿지 않든 당신은 이미 하나님께 최고의 기쁨을 선물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통해 말할 수 없이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그분은 머지않아 그녀의 남편을 찾아가실 것이다. 아내의 예상을 뛰어넘어 일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는 것, 이것이 그녀가 간직해야 할 희망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시고,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남편의 변화가 생각보다 더딜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마음속에 남편을 위한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아내를 교회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남편은 하나님과 대립하게 된다. 기독교 신앙은 남편의 존재 가치를 더욱 고귀하게 만든다. 그가 주는 위로와 사랑이 하나님이 주시는 것보다 부족하다는 걸 안다 
 
그러나 아내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한 만큼 남편의 사랑도 필요하다. 그녀의 마음속에 남편을 위한 자리가 있어야 한다. 그가 들어와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그가 아니면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자리가 필요하다. 
 
그의 가치관을 자녀와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를 바란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고 해서 남편의 가치관을 깎아내리지 말라. 가정 안에서 아버지를 존중하는 문화는 어머니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아버지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해서 자녀들이 심판받아야 할 죄인으로 그를 바라보는 것을 막아야 한다. 
 
단지 시간이 필요한 것뿐이다. 남편이 자녀들에게 기독교 신앙과 전혀 상관없는 말을 할지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그의 가치관을 존중해주기를 바란다. 
 
아내가 헛된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남편이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그날, 눈물을 글썽이며 그녀를 끌어안을 것이다. 그날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포기하지 말라. 하나님은 아내에게 남편을 선물로 주셨다.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사랑받도록 만나게 하셨다. 
 
하나님은 남편을 사랑하신다. 예수님을 그토록 사랑하는 아내를 그에게 보내주신 것이 증거이다. 남편이 스쳐 지나가는 사람의 한두 마디 말로 변화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셨기에 아내를 남편에게 보내주신 것이다. 
 
같이 살며, 사랑하며, 부대끼며 
변하기를 바라시면서…. 

당신은 좋은 부모인가요

당신은
좋은 부모인가요?
 
네, 물론이죠.
나는 좋은 부모입니다.
 
두 번 자녀를 키워도
이렇게 못 키워요.
 
우리 애들 부족한 거 없어요.
나는 얼마나 어렵게 컸는데.
 
내가 해줄 말이 별로 없네요.
그럼, 안녕히.
 
당신은요?
당신은 좋은 부모인가요.
 
아니오.
나는 좋은 부모가 아니에요.
 
애들한테 너무 미안해요.
못 해준 게 너무 많아요.
 
나 같은 부모 만나서
우리 애들 고생 많이 했어요.
 
그렇군요.
대화 좀 할까요, 우리.
 
당신은 좋은 부모일지도 몰라요.
한 가지만 조심한다면.
 
그건 뭔가요?
죄책감입니다.
 
죄책감이 자녀를
망칠 수 있어요.
 
자녀 앞에서
당당한 사람 불안해 보여요.
 
자신감 없는 게
오히려 다행이에요.
 
당당한 부모를
만난 적이 있어요.
 
당당한 부모는   
주눅 든 자녀가 있어요.
 
나는 최선 다한다.
넌 이게 뭐냐.
 
왜 노력 안 하냐.
결과가 이게 뭐냐.
 
자녀는 고개만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못해요.
 
그런데, 참 이상하죠.
정반대의 경우도 있어요.
 
주눅 든 부모 옆에는
당당한 자녀가 있어요.
 
내가 이렇게 된 게
다 부모 때문이다.
 
내 인생 망가졌다.
내 멋대로 살 거다.
 
터무니없는 말을 하고
그 말을 믿고 살아요.
 
부모가 죄책감을 느끼는 사이
자녀는 책임감에서 벗어난 거죠.
 
부모가 당당하면
자녀가 주눅 들고
 
부모가 주눅 들면
자녀가 당당하니
 
어떻게 할까요.
답답하죠, 정말.
 
내 이야기 잠시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내 부모님은 나에게
늘 미안하다고 말해요.
 
아니라고 괜찮다고 말해도
소용없어요.
 
많이 우세요.
난 속상하죠.
 
나는 진심이에요.
정말 감사해요.
 
내 부모님은 나에게
예수님을 전해줬어요.
 
모든 것을 받은 거죠.
예수님을 선물 받았으니까.
 
아버지가 시골에서 목회할 때
성도 한 명 없어요.
 
그때는 몰랐죠.
정말로 몰랐죠.
 
내게 복음이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처받은 내가 자녀를
잘 키우고 있을까요.
 
정말 모르겠어요.
확신이 없어요.
 
언젠가 청년이 된 내 아들과
대화하는 장면을 상상해요.
 
아빠, 나 아빠한테
하고 싶은 말 있어.
  
아빠가 나 사랑하고
아빠가 최선을 다했다는 거 알아.
 
하지만, 아빠가 했던 말과 행동이 내게
상처 될 때도 있었어.
 
솔직히 말하면,
나 아빠처럼 살고 싶지 않아.
 
나 이해해줄 수 있지,
아빠?
 
하지만, 나….
예수님처럼 살고 싶어.
 
그래, 아들.
아빠는 괜찮아.
 
아빠처럼 살지 말고
예수님처럼 살아다오.
 
속상해야 하는데.
서운해야 하는데.
 
아빠는 왜 이렇게
눈물이 나고 행복할까.
 
그날을 꿈꾸면서 나는
자녀에게 꾸준히 예수님을 전해요.
 
내 상처가 혹시라도
자녀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무섭고 두려울 때마다
예수님께 말해요.
 
나 대신 내 자녀들
잘 키워주세요.
 
당신과 함께 하고 싶어요.
약속해요, 우리.
 
죄책감이 찾아올 때마다
우리 자녀에게
예수님의 따듯한 사랑 전해주기로.

조용히 사라지는 거야

“잊힐까 두려워. 
두려워 미칠 것 같아.” 
 
네가 주인공이구나.
그러면, 못 견뎌. 
 
태어나서 지금까지 
영원한 주인공을 본 적 있어?
 
없잖아. 
너라고 예외일 수 없어. 
 
주인공이 되고 싶으면
그렇게 해. 
 
위태로운 사치를 
잠시 잠깐 즐길 테니까.
 
진실은 간단해. 
사람들은 널 잊을 거야.
몸부림쳐도 소용없어. 
 
하지만, 기억해.
하나님은 널 잊지 않아. 
처음부터 지금까지 영원토록. 
 
이쯤에서 인정할까?  
주인공은 하나님이야. 
 
네가 든 조명으로 
예수님을 비춰드려. 
 
팔은 아파도 
마음은 편할 거야. 
 
배터리가 닳아서 
조명이 꺼지면
미련 없이 사라져. 
 
다음 사람이 
생생한 조명으로 
예수님을 비출 거야. 
 
조용히 사라지는 거야.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인정하면, 편해져. 
공황도 사라지고 
불안도 사라지거든.
 
그리고, 
가끔 편안하게 잠들어.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요한복음 3:30>

예수님이 따뜻하지 않아요

제가 만나는 예수님은 그렇게 따뜻하지 않아요. 과거에 상담을 받았는데, 관계가 어려운 건 원가족과 관련이 있다고 상담사가 말했어요. 부모님께 사랑받지 못해서 그런 걸까요? 예수님이 정말 멀게 느껴져요.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과거를 수용해주세요. ‘내가 그래서 그랬구나. 나는 어쩔 수 없어. 처음부터 잘못된 거야’라고 생각하 면 과거에 발목이 잡힌 거예요.
 
과거를 수용한 사람은 다른 관점으로 과거를 바라볼 수 있어 요. “내게 그런 결핍이 있었구나. 이제부터 나를 돌볼 거야. 절대 방치하거나 외면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할 수 있어요.
 
과거에 얽매인 삶과 수용하는 삶을 구분하는 절대적 기준이 있냐고요? 솔직히 말하면 없어요. 내 관점에서 그렇다는 말입니다. 과거의 상처를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는가는 스스로 선택해야지 누구도 강요할 순 없어요. 대신 결정해줄 수도 없고요.
 
나는 내 상처의 의미를 혼자 결정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마음은 없어요. 내가 돌볼 수 있는 방식으로 과거를 바라봅니다. 파괴적인 결론을 내리면 절대 나 자신을 돌볼 수 없을 테니까요.
 
잠시 생각해보세요. 누가 부모에게 원하는 만큼의 사랑을 다 받을 수 있을까요? 세상에 완벽한 사랑은 없습니다. 부모 자녀 사이에도 예외가 없지요. 부모가 자녀를 위해 모든 희생을 감내한다 해도, 자녀는 다른 방식으로 부모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어요.
 
나도 세 아이의 아빠지만, 자녀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지 늘 걱정합니다. 예수님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시지만 자녀들은 그렇지 않을 거니까요.
 
자,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볼게요.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해서 예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없다’라고 결론을 내리면 자신을 돌 볼 수 없어요. 과거를 되돌릴 수 없으니 답답할 뿐이지요. 다른 방식으로 표현해보면 어떨까요?
 
‘나는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했어. 하지만 예수님은 부모님과 달라. 나를 온전히 사랑해주실 수 있어. 지금까지 사랑받지 못 한 채로 살아왔지만 이제는 걱정할 필요 없어. 그분이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실 거야.’
 
같은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자신을 방치하고 외면한 채 살아가느냐, 아니면 예수님의 사랑으로 자신을 돌보느냐”가 중요해요. 나는 자신을 돌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방치하거나 외면하지 마세요.
 
누군가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런 식으로 말하면 상처받은 사람을 탓하는 거예요. 어디 말처럼 그렇게 선택이 쉬운가요?”
 
맞아요. 그마저 힘들다면 선택하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예수님이 일방적으로 찾아오셔서 조건 없이 안아주실 겁니다. 그러면 복잡한 과정 없이 사랑받고 끝납니다. 예수님 품에 안긴 사람은 단순해집니다.
 
상처받은 과거가 새로운 의미로 받아들여지지요. 고통스러운 순간마저도 그분이 주신 선물처럼 느껴집니다. 고통의 시간을 잘 지나온 덕분에 그분을 더욱 사랑하게 된 거지요.
 
과거에 얽매이지 마세요. 어제의 당신, 오늘의 당신, 내일의 당신도 예수님의 사랑스러운 자녀입니다. 그분은 당신이 살아온 모든 시간을 사랑하세요. 한없이 따스한 눈빛으로 당신을 바라보시는 그분을 만나보세요.

믿지 않는 남자친구를 만나요

내 마음속에 외로움이 가득 있어요. 주님 한 분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제 신앙이 부족하다고 느껴져요. 제 신앙이 부족해서 그런지 교회를 건성으로 다니거나 아예 다니지 않는 남자 친구를 만나요. 솔직히 저는 지금 남자 친구가 좋아요. 신앙이 없어서 문제에요. 헤어지고 싶지 않아요. 계속 만나고 싶어요. 세상적인 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제 신앙이 부족해서 일까요?
 
아빠는 악마 같아요. 술만 먹으면 엄마를 때렸어요. 무책임하고 무기력한 아빠 때문에 가정이 고통받았어요. 엄마는 천사 같아요. 늘 제 편이 되어줬어요. 아빠 때문에 고생했는데, 언제나 밝은 모습을 잃지 않으셨어요. 그런 엄마를 보면 마음이 아파요. 늘 저와 제 동생을 위해 사셨거든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있었던 일이에요. 밤 11시쯤 학원을 마쳤어요. 아빠가 데리러 왔어요. 아빠 차를 타고 집에 가는데, 아빠가 말씀하실 때 너무 피곤해서 하품을 했어요. 아빠가 운전하다가 말고 제 뺨을 때렸어요. 아빠가 말하고 있는데 버르장머리 없이 하품을 한다고. 화나고 무섭고 슬펐어요. 집에 와서 엄마에게 말했어요. 두 분이 제 앞에서 싸웠어요. 아빠는 엄마를 또 때렸어요. 나 때문에 엄마가 맞았잖아요. 마음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어요.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내 답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요. 자매님은 자신의 신앙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믿지 않는 남자 친구를 사귀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계시고요. 나는 자매님이 처한 상황보다 믿지 않는 남자 친구를 만나면서 느끼는 죄책감이란 감정에 더 많은 관심이 있어요.
 
반대로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자매님의 신앙이 깊고, 믿음이 좋은 남자 친구를 만났다고 해보죠. 그러면, 외로움이 사라질까요. 아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아니에요.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아요. 외로움은 없애야 할 감정이 아니라 돌봐야 하는 감정이에요.
 
자매님은 외로움에 취약한 삶을 살아오셨어요. 폭력적인 아버지, 희생하는 어머니, 불안한 두 분의 관계. 자매님의 정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거예요. 고등학교 1학년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버지에게 맞았던 사실을 어머니에게 말했어요. 도움을 주려던 어머니 역시 아버지에게 맞았어요. 어머니는 자매님을 지켜줄 수 없었어요. 아마 그 후로는 자매님이 힘든 일이 있어도 어머니에게 말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조심스럽게 추론하는 거예요. 혼자 참고 견디는 것에 익숙해졌을 거예요.
 
나는 자매님의 신앙이 깊어지기를 바라고, 믿음 좋은 남자 친구를 만나기를 바라요. 하지만, 그전에 나는 자매님이 스스로를 정죄하지 않기를 부탁드려요.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그 누가 손가락질 할 수 있겠어요. 얼마나 외로우면 그러겠어요.   
 
불안정한 관계 속에서 자매님이 얼마나 고통받으며 살아왔는지 하나님도 알고 계세요. 하나님은 믿지 않는 남자 친구를 만났다고 화를 내시는 분이 아니세요. 오히려, 하나님은 마음 아파하세요.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 누구라도 곁에 있어주기를 바라는 자매님을 보시며 안타까워하는 하나님의 얼굴이 나는 보여요. 하나님은 자매님이 사랑받기 원하세요.
 
그렇다고, 아무나 만나라는 말은 아니에요. 가능하다면, 예수님을 의지하고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세요.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믿음 있다고 좋은 남자 아니고, 믿음 없다고 나쁜 남자 아니에요. 복음이 없다면 복음을 전해주세요. 복음이 있다면 복음을 공유하세요. 서로의 진심이 중요해요.   
 
신앙이 성숙하고 성경 지식이 많아져도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아요. 제아무리 믿음이 좋은 남자 친구를 만나도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아요. 그 누구도 자매님 안에 결핍을 채워줄 수 없어요. 외로움은 스스로 돌봐야 하는 감정이에요. 예수님의 사랑과 그분의 말씀으로 외로움을 돌봐주세요. 절대로 포기하지 말아주세요.
 
나같이 부족한 사람에게 질문해주셔서 감사해요. 외로운 당신을 하나님이 따뜻하게 안아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분명히 보았다

“야, 너 서울에서 전학 왔다며?” 
 
“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나는 대답했다. 
 
명식이 형은 마을의 전설이었다. 서울에서 이사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명식이 형의 클럽에 가입을 했다. 
 
명식이 형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명식이 형이 데리고 다니는 또래 역시 전부 초등학생이었다.
 
그렇다면, 명식이 형은 중학생이었을까? 고등학생이었을까? 아니다. 
 
어른이었다. 
 
흐릿한 기억을 추적해보건데, 적어도 이십 대 중후반이었을 것이다. 다 큰 어른이 동네 꼬마들 사이에서 골목대장을 하고 있으니, 중고등학교 형들도, 클럽에 소속된 아이들을 섣불리 건드릴 수가 없었다. 
 
한 번은 우리 동네 규칙을 아무것도 모르는 다른 동네 중학생이, 명식이 형이 돌봐주는 애 하나를 잘못 건드렸다 봉변을 당했다. 
 
명식이 형은 중학생에게 맞았다는 아이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다른 동네까지 직접 찾아갔다. 클럽 아이를 때리고 도망간, 중학생을 기어코 찾아내서 사정없이 패줬다. 부모가 달려 나와 욕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뜯어말려도 소용 없었다. 
 
말리는 부모를 밀쳐내고, 그 집 아들을 두들겨 팰 정도니 명식이 형이 나타났다고 하면, 동네 어른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명식이 형은 동네 꼬마들을 모아놓고 틈만 나면, 강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
 
“남자는 강해야 돼, 알아? 약하잖아? 그거 등신이야, 등신. 남자가 힘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야.” 
 
한심한 듯이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주먹을 쥐는 방법을 제대로 가르쳐 준다며,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자, 먼저 손바닥을 쭉 펴봐. 그리고, 손가락 네 개를 반으로 접어. 그다음, 손바닥 안의 살을 움켜쥔다고 생각하고, 주먹을 꽉 쥐는 거야. 그럼, 엄지손가락이 자연스럽게 딸려오거든. 주먹 안에 살이 조금 잡혀야 힘이 꽉 들어가는 거야. 그다음에는 이걸로, 그냥.”
 
명식이 형은 이론만으로는 안되겠다는 듯이 아이들을 비슷한 체형으로 둘씩 짝을 지었다.  
 
“야, 이제부터 내 말 잘 들어. 오늘부터 서바이벌이야. 이긴 놈만 살아남는다. 지는 놈은 이제부터 우리 클럽 아니야. 바로 탈락이다. 내가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죽도록 싸워. 알겠지?” 
 
서로 눈치를 보고 서성거리니까, 명식이 형이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미치겠네. 야, 공과 사를 구분 못해? 지금은 친구가 아니라, 적이라고. 미친 듯이 싸워라. 싸우는 척만 하면, 나한테 죽는다.” 
 
아이들의 반응은 대략 둘로 나뉘었다. 
 
“너 죽었어”,라고 기세등등하게 상대를 바라보는 아이들. 그리고, 잔뜩 주눅이 들어 겁을 먹고,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만 같은 아이들.
 
승부는 금세 갈렸다. 
 
명식이 형은 패배자들을 한 줄로 세웠다. 그리고, 말했다. 
 
“여기 이놈들은 패배자야. 우리 동네에 같이 살아도, 더 이상 우리 클럽은 아닌 거지. 야, 한 줄로 나와서 이 새끼들 신발에 침 뱉어.” 
 
나는 한 살 많은 형의 신발에 침을 뱉어야 했다. 뱉고 싶지 않았다. 그 형은 이미 울고 있었다. 그렇게, 비참한 표정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엉거주춤 망설였다. 
 
명식이 형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뭔가 번쩍했고, 나는 잠깐 의식을 잃었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 코밑으로 진한 쑥 냄새가 났다. 쑥을 빻아 둥그렇게 말아서 콧구멍에 쑤셔 박은 것이다. 그러면, 피가 멈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나는 어린 마음에 서러워서 눈물을 흘렸다. 명식이 형은 그것마저 못마땅했는지, 내 볼을 두 손가락으로 세게 움켜쥐고 사정없이 흔들면서 말했다. 
 
“야, 울어? 남자 새끼가 우냐고? 죽고 싶지 않으면, 그만 울어라.” 
 
살아남은 아이들은 다음 날부터 싸움 기술을 배웠다. 애들끼리 마주 서서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학교 마치고 집에 오면 학원 가듯 명식이 형의 클럽으로 가야 했다. 그것이 하루 일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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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을 가르치는 시간을 제외하면, 명식이 형은 친구처럼 다정했다. 
 
“우리 삼촌이 비디오 가게 하거든. 언제든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나한테 말해. 내가 구해다 줄게.”
 
명식이 형의 집에 놀러 가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수 십 개의 비디오테이프였다. 책상 위에 책 대신 비디오테이프가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제목은 다양했지만, 장르는 단순했다. 무술 영화 아니면 액션 영화였다. 
 
명식이 형의 집에서 영화를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영화를 보다가 배가 고프면, 명식이 형이 끓여준 라면을 먹었다. 그리고 또 영화를 봤다. 
 
화면이 유난히 밝게 빛나는 것 같으면, 바깥이 어두워졌다는 뜻이었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삼삼오오 집으로 흩어졌다. 
 
나는 영화를 좋아했다. 영화를 계속 보기 위해서라도 명식이 형의 클럽에 계속 남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에 낯선 남자가 찾아왔다.  
 
“여기 혹시 왕명식 씨 댁이 어딘가요?” 
 
마을 입구에서부터 보이는 십자가를 보고, 교회다 싶었는지, 낯선 남자는 우리 집을 찾아와 길을 물었다.
 
아버지는 손가락을 이리저리 사용해 명식이 형의 집을 알려줬다. 명식이 형은 집에 없었다. 나 역시 명식이 형을 따라다니느라 낯선 남자가 우리 집에 찾아와 아버지에게 길을 물었는지 알지 못했다. 
 
낯선 남자는 명식이 형의 집 앞에서 명식이 형을 한참 동안 기다렸다. 
 
동네 꼬마들을 거느리고 자기 집으로 들어가려던 명식이 형은, 멀리서 자기 집 앞에 서 있는 낯선 남자를 발견했다. 당황한 티도 내지 않고, 곧바로 뒤돌아서서, 꼬마들에게 말했다. 
 
“야, 오늘은 뱀 잡으러 가자. 지금 산딸기 철이니까, 산딸기도 먹고 하면 되겠네. 뒤로 돌아!” 
 
저녁쯤해서, 아버지가 내게 말했다. 
 
“오늘 읍내 비디오 가게 사장님이 우리 집에 와서, 명식이 집을 묻더라고. 명식이가 빌리고 안 갖다 준 비디오테이프가 수 십 개라네. 아무리 전화를 해도 안 받아서, 집까지 찾아온 거야. 연체료가 수 십만 원인데, 그놈이 그 돈을 어디서 구한다냐.” 
 
나는 명식이 형에게 들은 말이 있어서, 아버지의 말이 끝나자마자 명식이 형의 편을 들었다. 
 
“아니야, 아빠. 명식이 형이 그랬어. 삼촌이 비디오 가게를 한다고. 거기서 가지고 온 거야.” 
 
아버지는 으흠하고 팔짱을 끼시더니, 타이르듯 내게 말했다. 
 
“요즘 너, 명식이네 너무 자주 가는 것 같아. 거기서 무슨 일이 있어? 동네 애들도 그 집에서 살다시피 하던데. 아빠가 걱정 안 해도 되는 거지?” 
 
나는 아버지에게 거짓말을 해서라도, 명식이 형의 집에 놀러 가고 싶었다.  
 
“아니야. 명식이 형이 숙제도 도와주고 그래. 모르는 문제도 알려주고. 그러니까, 애들이 좋아서 가는 거지. 나도 그렇고.” 
 
아버지는 잠시 동안 생각에 잠기셨다가, “알겠다”라고 짧게 말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명식이 형이 한글을 모른다는 사실을 온 마을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글을 모르는 명식이 형이, 동네 아이들의 숙제를 가르쳐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 
 
내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순간적으로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에 아버지는 놀라셨을 것이고, 그 이유가 궁금하셨을 것이다. 
 
아버지는 나 몰래 명식이 형을 찾아가셨고, 명식이 형을 차에 태우고 직접 운전을 해서 비디오테이프를 가게에 돌려주었다. 사장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밀린 연체료를 최대한 줄여서 명식이 형 대신 연체료를 해결해주었다. 
 
아버지는 그 모든 사실을 당시에 내게 말해주지 않았다. 명식이 형이 마을을 떠나고 나서야, 어머니를 통해 전해 들은 것이다. 
 
나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명식이 형을 따랐고, 명식이 형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이들을 거느렸다. 
 
적어도, 그 일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야, 우리 오늘 한댁 개울에 물고기 잡으러 가자. 형이 모래무지 잡아서, 기름에 바로 튀겨줄게. 라면도 사가서 같이 끓여먹자.” 
 
나를 비롯한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개울을 따라 걷는데, 그 발걸음이 얼마나 신나던지, 태평양 너머의 디즈니랜드를 가는듯했다. 
 
“물속을 걸어 다닐 때, 조심해야 돼. 포클레인이 모래 퍼간다고 깊이 파놓은 곳이 있어. 발 잘 못 디뎌서 빠지면 큰일 난다. 내 눈앞에서만 놀아.”
 
아이들은 흥분한 상태였다. 앞뒤 안 가리고 물에 뛰어들어 정신없이 물장구를 쳤다. 
 
명식이 형이 물속에서 그물을 들고, 앞으로 걸어나가면, 아이들은 명식이 형의 뒤를 졸졸 따랐다. 물고기가 놀라 도망치지 않도록 살살 걸으니, 그 장면이 마치 비밀작전 같았다. 
 
물고기가 꽤 많이 잡혔다. 명식이 형이 실력을 발휘했다. 버너 두 개를 준비해서, 한쪽에는 기름을 올리고, 다른 한쪽에는 물을 올렸다. 약속대로 물고기를 튀기고, 라면을 끓여줄 생각이었다. 
 
물고기를 산 채로 튀기는 것을 처음 봤다. 명식이 형은 손가락 길이만한 크기의 모래무지를 들어 올리더니, 순식 간에 내장을 발라냈다. 머리 부분을 잡고, 몸통을 걸쭉한 튀김 반죽에 담갔다 빼서, 바로 달궈진 기름 냄비에 넣었다. 젓가락으로 머리 부분을 잡고 있어서, 튀김옷을 입은 몸통 부분만 아삭하게 튀겨졌다. 
 
어찌나 고소하고 맛있던지, 둥지에서 어미 새를 기다리는 새끼 새 마냥, 아이들이 입을 벌리고 줄을 서서 명식이 형이 모래무지를 입안에 떨궈주기만 기다렸다. 
 
옆 냄비에서 물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했다. 명식이 형은 파를 쏭쏭 썰어 넣고 라면을 맛있게 끓였다. 아이들은 각자 나무젓가락을 들고, 라면에 달려들었다. 
 
환상적인 경험을 바로 눈앞에 두고 있을 때, 저 멀리서 다다다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다. 길가를 지나가는 엔진 소리가 아니라, 이곳을 향해 긴박하게 다가오는 거친 소리였다. 
 
두 명의 남자 어른이었다. 둘 다 민소매티를 입었는데, 두 사람의 어깨에 비슷한 모양의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뒤에 타고 있던 남자가 오토바이에서 내렸다. 
 
“어이, 명식이. 너 여기서 뭐 하냐? 동네 꼬마들 데려다가 또 대장 놀이하냐?” 
 
나와 함께 있던 모든 아이들은 기대감에 설레었다. 드디어 명식이 형의 싸움 실력을 직접 보게 된 것이다. 시원하게 한 방 날려주기를 내심 기대했다. 
 
그러나, 상황이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명식이 형은 잔뜩 얼어붙은 채, 말까지 더듬었다. 
 
“아.. 니야. 그게… 아니라….”
 
남자는 껄렁껄렁 걸어와서 물고기를 담아놓은 플라스틱 바구니를 발로 차서 뒤집어엎었다. 
 
모래 위에 엎어진 바구니는 구토를 하듯, 물과 물고기를 쏟아냈다. 모래사장은 기다렸다는 듯, 순식 간에 물을 빨아들였다. 마른 모래로 범벅이 된 물고기들은 금방이라도 호흡이 끊어질 것처럼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남자는 물고기를 찌익 밟고, 명식이 형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협박하듯 말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여기서 이러고 노니까 좋냐? 너 어제 왜 술 먹다 그냥 갔어? 내가 분명히 말했지? 술값 내고 가라고.”
 
명식이 형은 천천히 뒷걸음질 치면서 말했다. 
 
“그게 아니라, 매번 내가 돈을 내니까…. 나도 돈이 없어서…. 다음부터는 안 그럴게. 애들이 보고 있으니까 그만하자. 부탁이야.” 
 
남자는 우리 쪽을 바라보고, 알 수 없는 미소를 띠더니, 명식이 형의 뺨을 후려쳤다. 
 
“그만하기는 뭘 그만해. 콱 그냥 죽여버릴까 보다. 야, 오토바이에서 가위 꺼내. 이 새끼 이거, 정신을 차리게 해줘야 돼.”  
 
오토바이에 걸 터 앉아, 그 장면을 지켜보던 남자가 오토바이에서 가위를 꺼내 가져왔다. 그리고, 우리 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어른 말 잘 들어야 돼. 말 안 들으면 이렇게 된다, 알겠지?” 
 
우리는 얼어붙은 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누구라도 먼저 울음을 터뜨리면, 모두가 함께 울어버릴 것만 같았다. 
 
두 남자는 명식이 형을 힘으로 짓눌렀다. 주먹으로 얼굴을 사정없이 내려치고, 꿇어 앉혔다. 
 
가위를 가져온 남자가 명식이 형의 뒤에서 팔로 목을 조였다. 가위를 받아든 남자는 명식이 형을 마주 보고 가위로 머리카락을 뜯어내듯 닥치는 대로 잘라냈다. 
 
명식이 형의 얼굴이 떨어져 내리는 머리카락으로 뒤덮였다. 그 순간 나는, 명식이 형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분명히 보았다. 
 
그는 울고 있었다. 잘린 머리카락 사이로 명식이 형이 애처롭게 울고 있는 모습을, 나는 분명히 보았다. 
 
“이 새끼 이거 꼴좋다. 다음부터 정신 똑바로 차려라. 다음에는 죽여버린다, 진짜.” 
 
남자는 바닥에 가래침을 뱉고, 짜증 난다는 듯이 손등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털어냈다. 다시 오토바이에 올라타서 시동을 걸었다. 
 
명식이 형은 무릎을 꿇고 엎어져서, 머리를 가리고 웅크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오토바이 엔진 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희미해져서 귀에 들리지 않게 되었다. 오토바이가 사라지고 나서도, 명식이 형은 웅크린 채 그대로였다. 
 
누구 하나 명식이 형에게 말을 걸 수 없었다. 버너 위에 라면은 냄비에 꺼멓게 달라붙어서, 코끝을 찌르는 쓴 냄새를 풍겼다. 
 
나는 잔뜩 긴장한 채로, 명식이 형에게 물었다.
 
“형, 괜찮아?”  
 
명식이 형은 움직이지 않았다. 웅크린 채로 목소리만 들렸다. 
 
“다… 꺼져. 지금부터 셋 셀 동안 안 꺼지면, 전부 죽여버린다. 하나. 둘….” 
 
모래사장에 폭탄이 떨어진 것 같았다. 아이들 모두 소스라치게 놀랐고, 소리를 지르며 사방팔방 흩어졌다. 
 
나는 울음이 터졌다. 셋을 세고 나면, 명식이 형이 정말로 우리를 죽여버릴 것 같았다. 나는 두려움에 압도되었다. 
 
아이들 모두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엉엉 울면서 각자 살아보자고 죽을 힘을 다해 뛰어서 도망쳤다. 
 
그렇게, 명식이 형의 클럽은 하루아침에 공중분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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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로, 명식이 형을 마을에서 본 사람은 없었다. 명식이 형이 사라진 마을은 적막했다.  
 
상처는 깊었다. 아이들 모두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식사 자리에서 부모님이 명식이 형의 이야기를 꺼냈다. 
 
아버지가 열무김치를 집어 들면서, 어머니에게 말했다. 
 
“명식이가 사라졌다고 마을 사람들이 난리야. 이 녀석, 도대체 어디로 간 건지, 도통 소식을 모르겠네.” 
 
명식이가 마을을 떠난 것이 어른들 사이에서도 뉴스거리였다. 명식이 형은 마을에 남은 몇 안 되는 젊은 일꾼이었다. 
 
명식이 형은 하루 일당을 받으면, 두세 명의 장정이 해야 할 일을 혼자서 너끈히 해냈다. 농사일이 바빠질 무렵에, 명식이 형이 한 마디 말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은 어른들에게 이만저만 아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말했다. 
 
“그러게. 명식이 걔 정말 불쌍한 앤데. 명식이 어릴 때, 아빠는 사고로 죽고, 엄마는 신 내려서 무당 한다고 명식이 버리고 떠났잖아. 동네 사람들이 명식이를 자식처럼 키웠는데, 갑자기 사라지니까 자식을 잃은 것 같지.” 
 
갑자기 눈물이 났다. 밥을 먹다가 내가 우니까, 부모님이 놀랐다. 당황한 아버지가 아버지가 물 한 모금을 들이켰다. 가만히 나를 쳐다보고, 차분하게 말했다. 
 
“너도 명식이가 떠나서 허전하겠다.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 마. 그 녀석 다시 올 거니까.” 
 
나는 팔 등으로 눈물을 닦아내면서, 말했다. 
 
“그 형 안 와. 절대로 안 올 거야. 동네 애들도 다 알아. 그래서, 못 온다고.” 
 
부모님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서로를 쳐다보았다. 
 
나는 밥이 가슴에 얹혀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밖으로 나가서, 골목길을 내달렸다. 명식이 형의 집 앞에 섰다. 
 
마당에서 주먹만 한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 명식이 형의 집 대문에 돌멩이를 세차게 내던졌다. 
 
빈 집이었다. 
 
아무도 들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문이 부서져라 흔들었다. 손과 발로 사정없이 문을 때렸다. 분하고 슬퍼서 땅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보이지 않는 계약서

“아내는 매사에 부정적이에요. 긍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확대해석해서 혼자 걱정하죠. 우리 아이가 좀 작아요. 말도 늦고. 아내는 밤마다 인터넷을 뒤져서  키 크는 데 좋은 음식, 유명하다는 한의원을 샅샅이 뒤져요. 주말마다 언어치료를 받으러 다니고요. 제가 보기에는 아직 걱정할 단계는 아니거든요. 조금 더 기다려보면 좋겠는데, 아내는 아이가 무슨 큰 병에 걸린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S는 아내의 부정적인 성향이 불만이다. 그녀의 부정적인 말을 들으면 견딜 수 없이 짜증난다고 했다. 그는 어려운 상황일수록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헤쳐 나갈 수 있다고 믿었다. 또 아내의 부정적인 감정과 말에 전염되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그녀가 걱정할 때마다 습관처럼 말했다. 
 
“여보, 좋게 생각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남편은 아내의 부정적인 성향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했다. 그는 나름의 가설을 제시했다. 아내의 과거와 현재를 적절히 연결해서 추론하고 있었다. 
 
“일단 아내의 부정적인 성향은 어린 시절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 같아요. 장모님이 아내와 똑같거든요. 장인어른이 젊을 때 실수를 많이 하셨나 봐요. 술을 좋아하셨고, 다른 여자를 만나기도 한 것 같아요. 도박에 빠져 빚을 져서 장모님이 갚았다는 말을 들었고요. 
 
장모님, 아내, 그리고 처남이 모이면 장인어른 욕하느라 정신이 없어요. 옆에서 듣고 있노라면 짜증이 나서 못 견디겠어요.  처음에는 ‘저 세 사람이 힘들었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저건 아닌데, 왜 저렇게 생각할까?’ 하게 되었어요. 
 
장인어른의 인생이 측은하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아버님께 가끔 안부 전화를 드리면 장모님이 싫어하세요. 자기한테는 안하면서 아버님에게 한다고. 제가 생각할 때, 장모님은 외롭지 않아요. 아내와 처남이 있으니까요. 
 
살면서 자꾸 ‘장모님이 아버님을 대하듯이 아내가 나를 대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무시당하는 기분이 자주 들거든요. 아내가 오해도 많이 하고, 자기 멋대로 결론 내리고 비난하는 습관이 있어요. 아내가 부모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받은 건 확실합니다. 뭔가 변화가 필요한데, 제 능력으로 힘드네요.” 
 
남편은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대해 담담히 털어놓았다. 
 
“제 아버지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좋은 아버지가 아닐지 몰라요. 젊은 시절부터 병을 얻어서 가정을 온전히 책임지지 못했으니까요. 주로 경제적인 활동은 어머니가 하셨어요. 어머니는 아버지 머리맡에 쪽지를 써놓고 가셨죠. 저는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어머니가 써놓은 쪽지를 보고 아버지를 돌봐드렸어요. 냄비에 죽을 데워서 갖다드리라거나 식사 후에 잊지 말고 약을 챙겨 주라는 거였죠. 
 
어릴 때는 아버지 옆에 누워 대화를 많이 했는데 중학교, 고등학교 가면서 그러지 못했어요. 어머니도 제 뒷바라지를 하느라 많이 힘드셨죠. 저는 공부할 시기에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효도라고 생각하면서 하루하루 지냈습니다. 제가 입대하고 얼마 안 되서 연락이 왔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휴가를 나와서 장례를 치르고 부대로 복귀하는 길에 참 많이 울었어요. 더 잘해드릴 수 있었는데…. 가슴에 사무치더라고요.” 
 
그는 살아오면서 부모님에게 어떤 부탁이나 요구를 하지 않았다. 사춘기 방황도 그에게는 사치였다.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하지 않고 꿋꿋이 버텼다. 가족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누구 하나 힘들어서 더 이상 못하겠다고 하면 가정이 무너져 버릴 것 같았다. 
 
다행히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말할 자격 있는 사람은 어머니뿐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어머니가 그 말을 하면 모든 것이 끝나버릴 것 같았다. 그는 두려운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힘들어 보이는 날이면 불안해서 물었다. 
 
“엄마, 힘들지 않아?” 
 
어머니의 답변은 교과서처럼 정확하게 그의 귓가에 전해졌다. 
 
“아니, 엄마는 전혀 힘들지 않아. 우리 아들이 이렇게 엄마를 걱정해주는데 뭐가 힘들겠어. 조금만 쉬고 일어날게. 걱정하지 마.”  
 
어머니는 바다를 좋아했다. 그래서 TV에 바다가 나올 때마다 그가 입버릇처럼 말했다. 
 
“엄마, 나는 우리나라 바다 색이 마음에 안 들어. 내가 나중에 에메랄드 빛 바다를 보여줄게. 조금만 기다려.” 
 
어머니는 말없이 웃을 뿐이었다. 젊은 날에 쉬지 않고 고생을 한 탓일까. 그가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혼자 시골에 살던 어머니가 감기 몸살에 걸린 줄 알고, 패혈증을 방치한 것이다. 하루아침에 벌어진 일이었다. 
 
차갑게 식어버린 어머니를 보는 순간, 그는 누군가 예리한 칼날로 자신의 심장을 도려내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두 다리에 힘을 잃고 쓰려졌다. 
 
인생에서 가장 큰 슬픔을 두 번이나 반복해서 겪은 그는 결심했다. 두 번 다시 울지 않겠노라고.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두 번 다시 쓰러지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모두가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말해도 그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상황을 다르게 보기 위해 노력했다. 
 
기회는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찾아온다고 생각했다. 힘들면 힘들수록, 이를 악물고 버티고 또 버텼다. 보상은 확실했다. 입사 동기 중 가장 많은 연봉을 받았고, 가장 빠르게 승진했다.  
 
“대학 동아리에서 선배가 미술치료를 배운다고 제 모습을 그려보라는 거예요. 종이에 대충 그렸죠. 선배가 그림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제가 입고 있는 옷에 아무 장식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단추나 벨트, 무늬, 색상도 없다고. 어린 시절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자란 것 같다고. 
 
그런데 얼굴만은 활짝 웃고 있데요. 선배가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이렇게 웃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냐고. 아직도 그 장면이 기억나요. 친하지도 않은 선배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죠. 눈물 콧물 주체하지 못하고 엉엉 울었거든요. 그때까지 숨겨 왔던 마음 속 비밀을 들켜 버린 것 같았어요.그 말 한마디에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어요. 지금도 힘들 때마다 ‘힘들어도 웃어. 이렇게 웃기까지 힘들었잖아.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마. 어렵게 되찾은 웃음이니까’라고 자신을 위로합니다.” 
 
그런 그의 긍정적인 태도가 효력 없는 사람은 아내뿐이었다. 아내와 관계를 생각하면, 그는 억지웃음을 지어야 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할 뿐 아니라, 왜곡되게 보는 아내. 아무리 설득하고 대화해도 바뀌지 않는 그녀의 부정적인 관점 때문에 절망했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그를 조용히 파괴하고 있었다. 
 
***
 
남편은 아내의 부정적인 성향을 고민하면서 정작 자신이 아내를 부정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한다. 긍정적인 성향은 그의 성품이 아니라, 그의 노력에 산물이다. 그의 긍정적인 태도가 특별한 몇몇 문제에 한정되는 것이 그 증거다. 
 
아내가 현재 겪는 어려움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역설이다. 아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면서, 그녀에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강요한다. 아내의 관점에서 남편이 이중적으로 보이거나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의 긍정적인 성향은 아내에게 매력적이지 않다. 그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신을 지금까지 이끌어주었던 긍정적 태도가 부부관계를 어렵게 만드는 걸림돌이 된 것이다. 
 
남편의 일관된 태도, 긍정적인 생각을 하라는 호소는 아내의 감정을 차단한다. 세상에 나쁜 감정은 없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감정은 있는 그대로 존중받아야 한다. 감정은 가치중립적이다. 행복한 관계를 유지하기 하기 위해서 부정적인 감정 역시 적절히 표현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부부관계 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되는 원리이다. 배우자가 화를 낸다고 그 감정을 무시하거나 외면해서는 안 된다. 화를 낸다는 것은 그 감정이 표현되고 있다는 뜻이다. 분노를 느끼는 것은 자연스럽다. 
 
모든 감정은 수용되어야 하지만 감정을 표현하는 모든 방식이 정당한 것은 아니다. 표현 방식이 문제가 될 수 있다. 분노를 느낀다고 폭력적 행동이 정당화 될 수 없다. 감정을 적절히 표현하는 훈련은 일생을 거쳐 성숙되어야 한다. 왕도는 없다. 
 
아내가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배우자가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 안에 분명한 신호가 있다. 둘 중 한 명이라도 그 필요를 먼저 인식할 수 있다면 부부 행복은 보장된 것이다. 
 
아내 역시 건강한 방식으로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아내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남편을 주변인으로 전락시켰다.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남편에게 투영된 것이다. 아내에게 남편은 외부인이다. 아내가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 편안하게 그와 대화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힘들고 어렵더라도 대화해야 한다. 피하거나 물러서면 안 된다. 남편은 아버지가 아니다. 
 
남편보다 아이와 더 밀착된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문제다. 부부는 서로 협력해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 부부가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은 각자가 아니라,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대화하기 힘들다고, 남편을 포기해버린 아내는 절대로 아이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없다. 아이에게 상처 주게 된다. 
 
남편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야 한다. 서로 다른 기질, 관점, 성장 과정 등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피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남편이 아내에게 긍정적인 태도를 강요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내가 충분히 아이를 걱정할 상황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현실을 외면하면서까지 아내에게 긍정적인 태도를 강요하고 있다. 이유가 있다. 
 
남편은 어릴 적에 보이지 않는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어머니는 고통스런 상황에도 한 번도 아들 앞에서 “힘들다, 어렵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물려준 유일한 유산이자 최고의 선물이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의도와 달리 보이지 않는 계약서 뒷면에 무언의 명령이 적혀 있었다. 
 
“나도 불평하지 않을 테니까 너도 불평하지 마.” 
 
남편이 그 흔한 반찬 투정 한 번 하지 못하고 성장했다는 것은 그가 어린 시절에 “아이”답지 못했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계약서에 쓰인 조항에 따라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했다. 부모가 아무리 자녀를 잘 키워도, 그늘이 드리운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어린 시절에 내면에 찾아온 결여는 일생 동안 무언가를 추구하게 만든다. 
 
불가능한 현실을 긍정적인 태도로 극복했던 경험이 그에게 삶의 의미를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확실한 앞날을 걱정하는 자신을 발견하면 실패감이나 죄책감을 느낀다. 부정적인 생각이 그에게 죄책감을 심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부정적인 생각은 가치중립적인 것이다. 나쁜 것이 아니다. 걱정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 감정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다. 
 
남편이 살아남으려면 보이지 않는 계약서를 찢어버려야 한다. 힘들면 힘들다고, 걱정되면 걱정된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말하는 남자가 진정한 남자이다. 아내는 어머니가 아니다. 자신의 약함을 아내와 공유하는 사람은 그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더 이상 자신의 약함을 숨기고 살 필요가 없다. 
 
그 공허한 마음을 누가 달래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이 젊은 날, 당신에게 아름드리 꽃바구니처럼 다가온 아내뿐이다. 남편이여, 아내의 품에 안겨라. 진정한 남자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거대한 성, 거짓의 방

사람마다 마음속
거대한 성을 짓는다.
 
그 안에 수많은 방을
미로처럼 가졌다.
 
제각각 다른 모양이지만,
오직 두 종류의 방이다.
 
문이 활짝 열려
빛으로 채워진 방.
 
문이 굳게 닫혀
어둠에 짓눌린 방.
 
닫힌 방, 문 앞에는
참혹한 거짓말이 쓰여있다.
 
모든 게 너 때문이야.
네가 모든 걸 망쳤어.
쓰레기, 위선자, 루저.
 
닫힌 방은 어둠 속에서
거짓의 지배를 받는다.
 
방법은 단 하나.
닫힌 방을 여는 것이다.
 
빛이 어둠을 몰아낸다.
진실이 거짓을 몰아낸다.
 
문을 연 채로 밖으로 나온다.
또 다른 방을 찾는다.
 
거짓말로 굳게 닫혀
어둠의 지배를 받는 또 다른 방.
 
닫혀 있는 수많은 방을
찾고 또 찾아 열어젖힌다.
 
어둠에서 빛으로.
거짓에서 진실로.
 
내 성에서 닫힌 방 하나 찾았다.
팻말에 쓰인 거짓이 선명하다.
 
그런다고 누가 알아줘.
네 상처나 치유해.
 
소스라치게 놀란다.
팻말을 집어 든다.
 
바닥에 내리쳐 부순다.
손잡이를 비틀어 문을 연다.
 
어둡다.
두렵다.
 
창을 연다.
빛을 부른다.
 
찬란한 빛이
벽에 드리운다.
 
어두울 때 보이지 않던
벽에 쓰인 글귀 하나.
 
너를 통해 상처 입은 한 사람을
치유하기 원한다.
 
이것이 진실이다.
 
당신과 나.
진실 앞에 서야 한다.
 
기억하라.
단순하다.
 
닫힌 방을 찾는다.
거짓 팻말을 부순다.
문을 연다.
빛을 비춘다.
진실을 발견한다.
 
그날이 오기까지
쉬지 않기를 바란다.

외롭지만 애써 괜찮은 척 해요

청년부 소그룹 리더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건강하고 좋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아요. 솔직히 말하면, 제 이야기를 다른 누군가에게 꺼내지 못합니다. 저 스스로가 사람들에게 마음을 닫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애써 괜찮은 척하지만, 가끔은 너무 외롭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질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외로운 감정은 사라지는 감정이 아닙니다. 누구나 외로움을 느낍니다. 그러니,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외로움은 기회일지 모릅니다. 외로운 감정을 혼자 간직하지 않고 예수님께 가져가고 있으니까요. 외로울 때마다 주님을 찾는다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 역시 그렇습니다. 외로운 감정을 거의 하루 종일 느낍니다. 자주 말씀드리지만, 외로운 감정은 누가 옆에 있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거든요. 내 가정은 행복합니다. 아내와 나,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내게 말할 수 없는 행복을 줍니다. 그래도, 외롭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문제가 아닙니다. 외로운 감정은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감정입니다. 만약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로 충분하다면, 그래서 전혀 외롭지 않다면, 하나님을 찾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부족함을 느낄 수 없으니까요. 그러나, 세상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갈지라도, 근원적인 결핍은 결코 다른 사람을 통해 채워질 수 없습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어도 외로울 수밖에 없는 겁니다. 하나님으로만 채워져야 하는 빈자리가 있습니다. 세상 그 누구도 채워줄 수 없는 빈자리입니다. 
 
지금처럼 주님께 시시콜콜 다 말해주세요. 아무리 사소한 이야기라도 주님께 가져가서 말해주세요. 그러면, 안전합니다. 외로움을 돌보면서, 성장하고 계신 거예요. 가끔 말할 수 없이 외로울 수 있지요. 걱정 마세요. 주님이 안아주십니다. 그 감격과 기쁨으로 당당하게 일어나실 거예요. 감정이 당신을 속일지라도 절대로 속지 마세요. 당신은 절대로 혼자가 아닙니다. 언제나 주님이 함께 계시니까요. 

남편의 옛날 사진을 발견했어요

오래전에 오랫동안 만났던 남자 친구에게 받은 상처가 있어요. 저와 사귀는 도중에 옛 여자 친구를 만났고, 그 사실을 숨겼어요. 그로 인해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을 만나 오면서 늘 마음 한구석에 불신이 있었어요. 상대방이 좋아해 주는 것에 익숙했어요. 몇 번의 이별을 겪고, 남편을 만났어요.
 
남편은 저를 사랑해줬어요. 만난 지 2주 만에 남편은 저 모르게 예식장을 예약했어요. 나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주는 남편에게 마음이 열렸어요. 서로 돕는 배필이라 여기면서 별다른 다툼 없이 잘 지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제가 우연히 남편이 옛 여자 친구와 찍은 사진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저를 만나기 전에 찍은 사진이라고 했고, 본인도 기억 못 할 정도라고 했어요. 그런 흔적을 보인 것에 대해 미안해했고, 더 큰 사랑으로 보듬어 줬어요.
 
하지만, 저는 그날 이후, 아무 때나 그 장면이 떠올라요. 괴로워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예전의 상처와 겹쳐져서 남편을 의심하게 돼요. 남편도 제가 만나왔던 사람들처럼 날 속일까 봐요.
 
나한테 이렇게 잘하는 것을 보면, 예전에 다른 누군가에게도 이렇게 잘했겠지. 질투가 나면서 남편에게 퉁명스럽게 행동할 때가 있어요.
 
제 결혼생활은 겉보기에 아무 흠이 없어요. 이럴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해요. 제가 옛 기억으로 힘들어하고 그로 인해 불신의 틈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아 죄책감을 느껴요. 자꾸 나쁜 생각을 하게 되니까요. 제 안에 치유되지 않은 상처로 인해 남편을 아프게 하고 있지는 않은가 불안해요.
 
생각의 끈을 잘라내고 과거로부터 해방되고 싶어요.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자매님이 느끼는 의심과 불안은 정당한 감정이에요. 자책하거나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현재 결혼 생활이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나는 자매님이 지금보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상처는 시간이 흘러도 저절로 치유되는 게 아니에요. 고통스럽더라도 마주해야 해요. 자매님도 이미 알고 있듯이, 과거에 받은 상처는 치유되지 않은 채 자매님 내면 깊숙한 곳에 머물러 있어요. 그 상처를 직면하고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상처는 아물지 않은 채 방치된 거예요.
 
상처를 외면하면, 사람은 대안을 찾아요. 상처를 만회할 방법을 찾거든요. 다른 누군가를 만나 확인하고 싶었던 거예요. 세상 어딘가에는 진실된 사랑이 있지는 않을까. 하지만, 진실된 사랑은 없었어요. 그들은 같은 방식으로 자매님에게 고통을 주었어요.
 
우연히 남편의 사진을 보게 되었을 때, 자매님이 상처를 가두고 굳게 잠가 놨던 방문이 열린 거예요. 아수라장이 된 채로 열려서 감당할 수 없었던 거죠. 불안하고 의심스러운 마음, 연이어 반복되는 감정의 기복, 극단적인 생각. 모두 자연스러워요. 방금 전까지 남편만은 예외였는데, 남편도 그들과 같은 사람이 된 거죠.
 
자매님은 딜레마에 놓였어요.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남편을 그들 모두와 같은 사람으로 취급할 수 없으니까요. 남편은 다정하고 좋은 사람이에요. 자매님께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이 지점에서 자매님의 죄책감이 시작돼요. 조심스럽게 자매님의 감정을 추론해 볼게요.
 
“이렇게 좋은 사람과 행복한 결혼 생활을 시작했는데, 내가 의심해서 모든 것을 망쳐 버리지는 않을까. 나만 참으면 우리는 아무 문제가 없어. 이 남자는 좋은 남자야. 내 상처 때문에 오해하는 거야. 그럼, 안돼. 다 지난 일이잖아. 의심하는 네가 나빠. 나는 왜 이럴까.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과거에 매여 고통받고 있어. 내 문제야. 나만 참으면 돼.”
 
자매님, 그럼 안돼요. 절대로 참으면 안 돼요. 표현하셔야 해요. 표현해야 자매님이 살아요.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자매님도 남편도 더욱 고통받아요. 억누르는 능력을 키우지 말고, 표현하는 능력을 키워주세요. 억누르다가 새어 나오는 감정은 관계를 파괴해요. 뚜껑을 열어놓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 해요.
 
말처럼 쉽지 않을 거예요. 두 분은 서로 사랑하지만,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울 수 있어요. 결혼한 지 3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서로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기에는 조금 불안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남편은 자매님을 만난 지 2주 만에 예식장을 예약했어요. 자매님과 상의하지 않았어요. 매우 드문 일이에요. 자매님이 그 당시 느꼈던 감정을 남편에게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었을 지 묻고 싶어요. 그만큼 솔직히 표현하기 힘들겠지만, 포기하지 말아주세요.
 
남편과 치유되는 과정을 공유해주기를 부탁드려요. 있는 그대로의 감정, 진행되고 있는 감정을 표현해주세요. 표현하려는 의지와 함께 표현하는 방식도 중요해요. 쉽지는 않지만, 자매님이 노력해주시리라 믿어요.
 
주어와 동사를 바꿔주세요. 주어는 “나”로, 동사는 “그렇다고.”로 표현해주세요. “나 그렇다고.”라고 표현하면 성공입니다.  표현 방식을 의식하지 않고 느껴지는 대로 말하면, 주어가 “너”로, 동사는 “그랬잖아.”로 말하게 돼요. “너 그랬잖아.”라고 말하면 관계가 망가져요.
 
예를 들어 볼게요.
 
“당신이 의심스러워. 그 여자한테도 다정했었지? 이런 오해받고 싶지 않았다면, 사진을 잘 처리했어야지. 내가 사진을 보게 만들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잖아. 그래서, 내가 고통받잖아.”
 
여기서의 주어는 “당신, 너”이고, 동사는 “그랬잖아.”에요. 이런 식으로 표현하면, 배우자는 반박할 말이 필요해요. 비난으로 들리기 때문이죠. “당신이 그랬잖아.”라고 말한 거니까, “아니, 나는 안 그랬어.”로 답하고 싶을 거예요. 서로 고통받을 수밖에 없어요.
 
주어를 “나”로, 동사를 “그렇다고.”로 바꿔볼게요.       
 
“나는 지금 당신을 오해하고 있어. 당신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마음과 치유되지 않은 내 상처 사이에서 나는 고통받고 있어. 그러고 싶지 않은데, 하루 종일 생각나. 의심과 불안으로 고통받고 있는 나를 이해해줄 수 있어주면 좋겠어. 내 감정 숨기지 않고 당신에게 말하고 싶어. 나 당신이 필요해. 나 일어설 수 있을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줘, 여보.”
 
여기서의 주어는 “나”이고, 동사는 “그렇다고.”에요. 배우자는 반박하지 않아요. 오히려, 책임감을 느껴요. 돕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될 거예요. “나 그렇다고.”라고 말했으니, 배우자는 “너 그렇구나. 나 몰랐어. 내가 도와줄게.”라고 생각해요. 힘든 시간이지만, 서로 격려할 수 있어요.
 
말처럼 쉬운 건 아니지만, 나는 자매님이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해주기를 바라요.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자매님은 고통받아요. 남편에게 하기 어렵다면, 먼저 예수님께 솔직하게 말하세요. “나 그래요, 예수님. 나 상처 입어서 괴로워요. 의심하고 불안한 나를 보며 자책해요.” 예수님은 자매님에게 말씀하실 거예요. “내 딸 그렇구나. 많이 힘들구나. 내가 도와줄게.”
 
오늘은 말이 길어졌어요. 두서 없이 길게 말해서 미안해요. 하지만, 내 진심은 전해졌기를 바라요. 나는 자매님이 상처에서 벗어나서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하나님과 남편에게 온전히 사랑받기 충분한 자매님, 오늘 하루 행복하길 바랄게요.

천사의 노래

“아까 은아가 뭐라고 한 거야?” 
 
미주가 남편에게 물었다. 
 
“뭘 뭐래? 검정고시 일주일 남아서 긴장되니까, 은아가 기도해달라고 했어.” 
 
미주의 표정이 좋지 않자, 주혁이 미주에게 되물었다. 
 
“왜? 기분 나빴어?”
 
“기분 나쁠 게 뭐가 있어. 목사가 기도해주는 거 당연하지.” 
 
“근데, 분위기가 왜 이래? 말하고 표정 하고 다르잖아.” 
 
“내가 부탁 하나 할까?”
 
“뭔데?” 
 
“기도는 보이는 데서 해도 되는 거잖아. 굳이 그 좁은 방에 기어들어갈 필요는 없어.”
 
“기어 들어가?”
 
“둘이 문 닫고 방에 들어가는 게 불편하다는 말이야.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아니, 은아가 따로 할 말이 있다고 하는데, 어떡해?” 
 
“몰라, 나는 기분 나빠. 은아가 당신을 쳐다보는 눈빛도 그렇고, 당신 눈빛도 마찬가지고.” 
 
“살다 살다 참 별말을 다 듣네. 당신 이러는 거 유치하지 않아? 그냥 고등부 학생이야.” 
 
“나도 알아. 그러니까, 신경 쓰이게 하지 말라고.” 
 
“당신이 신경 쓰지 마.” 
 
“나 지금 말장난하는 거 아니야. 걔가 하고 다니는 것 좀 봐. 나보다 성숙해.” 
 
“그만하자. 나 이러다 폭발하겠어. 사람을 뭘로 보고.” 
 
“내 말은 듣기 싫고, 은아 말은 귀에 쏙쏙 들어오나 봐?” 
 
“아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말 같은 소리를 해야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잖아.” 
 
주혁은 숟가락으로 식탁을 내리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쿵 하고 문을 닫는 소리가 미주의 고막을 후려쳤다. 
 
미주는 식탁에서 일어나, 식탁에 놓인 그릇을 싱크대에 옮겨 담았다. 손도 대지 않은 음식이 고스란히 버려졌다. 
 
#
 
“처음에는 ‘내가 너무 민감한가?’ 그 정도로만 생각했어요. 하지만, 날이 갈수록 은아에 대한 집착이 심해졌어요. ‘내 판단이 옳았구나’ 확신을 가진 건 한참 뒤였어요.”
 
미주는 차분하게 말했다.  
 

 
“나 오늘 늦게 들어가.” 전화기 너머로 주혁의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왜 무슨 일 있어?” 미주가 물었다. 
 
“오늘 수련회 답사야. 주말이라 고속도로 많이 막힐 거야.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
 
“알겠어. 조심해서 다녀와.” 
 
주혁의 목소리가 미묘하게 떨렸다. 미주는 불안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미주는 주혁의 서재실로 성큼성큼 들어가, 지난주 고등부 주보를 살폈다. 수련회 일정과 장소가 적혀 있었다. 
 
미주는 소파에 걸 터 앉아 손톱을 자근자근 깨물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아니야.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는 게 차라리 나아.’ 서로 다른 생각들이 미주를 덮쳤다. 미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직접 가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두어 시간 만에 수련회 장소에 도착했다. 경비실에 들러, 주혁의 자동차 종류와 색상을 설명했다. 경비는 그런 차가 온 적이 없다고 말했다. 
 
자신이 먼저 도착했다는 사실에 미주는 안심했다. 
 
구석진 곳에 차를 세우고, 의자 시트를 눕혔다. 멀리서 남편이 오는 것을 살펴볼 작정이었다. 
 
그렇게 밤이 되었다. 
 
미주의 눈이 빨갛게 충혈되었다. 주차장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미주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스마트폰을 꺼내,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잘 도착했어?” 
 
곧바로 주혁에게 답장이 왔다. 
 
“지금 다시 올라가는 길이야. 길이 너무 막혀서 새벽쯤에 도착할 것 같아.” 
 
주혁의 문자를 받고, 미주는 황급히 차에서 내려 경비실을 향해 뛰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경비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검은색 카니발 차량 들어온 적 있나요?” 
 
경비는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아니, 아직도 여기 계신 거예요?” 
 
“네, 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서요. 검은색 카니발 차량 들어온 적 없다는 거죠?” 
 
“없었다니까요. 오늘 차가 딱 세 대만 들어왔는데, 여기 공사하는 차량이에요.”
 
“알겠어요.”
 
미주는 다시 주혁에게 문자를 보냈다. 
 
“장난해?”
 
주혁이 답장을 했다. 
 
“뭐가?”
 
미주는 다시 차에 몸을 실었다. 시동을 걸고, 무서운 속도로 내달렸다. 
 
미주에게 답장이 없자, 주혁은 전화를 걸었다. 
 
“당신 왜 그래?”
 
“지금 어디야?” 
 
“말했잖아. 수련회 답사 다녀오는 길이라고. 길도 막혀서 짜증 나는데, 왜 자꾸 그래?” 
 
미주는 참을 수 없었다. 
 
“길이 막히기는 뭘 막혀? 지금 시속 160이야. 너 지금 어디서 뭐하고 있어?” 
 
주혁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뭐야? 나 지금 미행한 거야?”
 
“내가 묻는 말에나 대답이나 해. 너 지금 은아랑 같이 있지?” 
 
“또 그 소리야?” 
 
“묻는 말에만 대답해!”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진짜 미쳤나 봐. 전화 끊어!”
 
주혁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미주는 갓길에 차를 세웠다. 운전대를 잡은 두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목사님, 저 은아인데요.” 
 
주혁의 전화기 너머로 은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은아야. 웬일이야?” 
 
“목사님 혹시 이번 주 주말에 시간 되세요?” 
 
“이번 주 주말? 글쎄…. 무슨 일 있어?” 
 
“다름이 아니라요. 요즘 공부가 안돼서 너무 답답해요. 바람도 쐴 겸, 제가 가고 싶은 대학에 한 번 가보려고요.” 
 
“그거 좋은 생각이네.”
 
“그런데, 목사님.”
 
“응.” 
 
“혹시 시간 되시면 같이 가주실 수 있으세요?” 
 
주혁은 당황했다. 
 
“그건 생각을 조금 해봐야 할 것 같은데…. 주말에 목사님이 바빠서 시간을 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 
 
“아, 그래요…. 그러면, 목사님 시간 되시는 날 같이 가요. 그래 주실 수 있죠?” 
 
주혁은 거절할 수 없었다. 
 
“그러자, 그럼.” 
 
반대편에서 은아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통화를 끊고 주혁은 생각에 잠겼다. 
 
옳지 않은 결정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주혁은 은아를 외면할 수 없었다. 
 

 
“은아는 결핍이 있는 아이에요. 저도 처음에는 은아가 불쌍해서 잘 챙겼거든요. 이렇게 결론이 날지는 꿈에도 몰랐어요.
 
은아는 선교사님 자녀에요. 어릴 때부터 마음고생을 했겠죠. 현지에서 적응을 못했어요. 은아 부모님이 고민이 많았겠죠. 결국, 한국에 있는 친구 목사님 가정에 은아를 맡겼어요. 
 
그 친구 목사님이 저희가 모시는 담임 목사님이세요. 제 남편은 그 교회 부목사인 거죠. 남편이 고등부를 맡은 시점에 은아가 온 거예요. 
 
남편이 은아를 데려다가 저녁 한 번 먹이자고 말하길래 그러자고 했죠. 저녁을 먹으면서 은아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는데,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남편과 제가 은아를 끌어안고 엉엉 울었어요. 
 
그때부터 남편이 은아에게 연민을 느낀 것 같아요. 은아와 자주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잘 챙겼죠. 은아를 만나고 온 날이면, 저녁 늦게까지 은아 이야기를 했어요.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닌데, 시간이 갈수록 기분이 이상해지는 거예요. 마음 같아서는 “왜 하루 종일 은아 이야기야? 내 이야기는 안 들어줘?”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한 마디 쏘아붙이고 싶은데, ‘유치하게 내가 왜 그러지?’ 생각하고 말았죠. 자존심 상하잖아요. 그냥, ‘저러다 말겠지. 언제까지 저러겠어.’ 그 정도로만 생각했어요.” 
 
남편이 은아 이야기를 할 때마다, 가슴에 뭐가 걸린 것처럼 답답했거든요. 그때는 이유를 몰랐지만, 지금은 알아요. 남편도 결핍이 있는 사람이거든요. 남편이 은아에게 빠져버릴까 두려웠던 거죠.  
 
은아의 결핍과 남편의 결핍이 교묘하게 만나서, 이런 상황까지 온 것 같아요.”
 
“남편과 제가 어떻게 처음 만났는지 말씀드리고 싶어요. 은아와 저는 겹치는 게 많아요. 아마 남편은 스스로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저에게서 느꼈던 감정을 은아에게도 느끼는 것 같아요. 남편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요.” 
 

미주의 직업은 간호사였다. 3교대로 돌아가는 고된 일은 미주의 삶을 갉아먹었다. 미주는 버텨야 했다. 미주의 월급은 미주의 독립이었다. 
 
스스로 돈을 벌면서, 지긋지긋한 집을 떠났다. 미주는 아버지가 싫었다. 폭력적인 아버지는 미주가 성인이 되어서까지 손찌검을 했다. 
 
아버지의 맨손이 얼굴에 닿을 때, 미주는 소름이 돋았다. “차라리 매로 때리라”고 울부짖어도 소용없었다. 술에 취한 아버지는 자기감정에 충실할 뿐이었다. 
 
아버지의 폭력에 견디다 못한 미주는 맨발로 집을 뛰쳐나왔다. 갈 곳이 없었다. 미주는 주머니에 담겨 있던 자동차 열쇠를 발견했다. 엄마의 부탁으로 저녁에 장을 보고 와서 미처 빼놓지 못한 열쇠였다. 
 
 미주는 가만히 운전석에 앉았다. 서러운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미주는 울다 지쳐 잠에 들었다.
 
퍽, 퍽, 퍽. 
 
미주를 깨운 것은 야구방망이었다. 아버지는 술기운에 야구방망이를 들고, 미주를 찾아다닌 것이다. 차 안에서 자고 있던 미주를 발견한 아버지는, 야구방망이로 사정없이 유리창을 내리쳤다. 
 
자동차의 경보음이 울리고, 경비가 와서 말려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욕을 하면서, 미주를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다. 자동차 유리창이 사정없이 갈라졌다. 유리창에 새겨진 촘촘한 거미줄이 미주를 덮쳤다. 손가락 하나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미주는 엄마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집을 떠났다. 
 

“제가 일하는 병원하고 집하고 두 시간 넘는 거리였거든요. 병원 가까운 쪽에 원룸을 얻었어요. 당연히 교회도 옮겨야 했어요. 집 근처 교회를 가면, 아버지를 우연히라도 마주칠까 봐 두려웠거든요. 
 
남편을 만난 것도 그때쯤이에요. 새로 다니기 시작한 교회에서 남편을 처음 만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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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혁의 전화기에 은아의 이름이 새겨졌다. 주혁은 전화를 받아들고,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응, 그래. 은아야.” 
 
“목사님, 바쁘실 때 전화드렸죠? 
 
“아니 괜찮아. 말해.”
 
“혹시, 이번 주말에는 시간 되세요?”
 
같은 질문만 세 번째였다. 
 
“이번 주말은….”
 
“바쁘신 거죠?” 
 
은아는 풀이 죽었다.
 
“아니야…. 차라리 이번 주에 가자. 다음 주부터는 더 바빠질 것 같아.” 
 
“정말이에요, 목사님?” 
 
“그럼. 그런데, 은아야. 목사님이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
 
“뭔데요?”
 
“아무래도 은아하고 목사님만 단둘이 가면, 사람들한테 오해를 받을 것 같아. 혹시, 둘이 같이 가는 거 비밀로 해줄 수 있어?”
 
“그럼요, 목사님. 그렇게 할게요. 저도 비밀로 하고 싶었어요.” 
 
“그래, 고마워. 그럼 주말에 보자.”
 
“아, 잠깐요, 목사님. 제가 드릴 말씀이 있어요.”
 
“응, 말해.” 
 
“저, 있잖아요. 목사님이 좋아요.” 
 
“고마워. 나도 그래.” 
 
“그게 아니라요, 목사님. 저 진심으로 목사님을 좋아한다고요.”
 
“….” 
 

“남편이 은아에게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알 것 같아요. 우리도 비슷하게 시작했거든요. 
 
교회를 옮기고 처음 간 수련회에서 간증을 한 적이 있어요. 하나님이 제게 은혜를 주셨거든요. 그동안 제게 있었던 일들을 솔직하게 말했어요. 
 
간증이 끝나고, 남편이 제게 다가왔어요. 많이 힘들었겠다면서 위로해주는데, 남편의 태도나 눈빛이 너무 좋더라고요. 
 
그다음부터 남편이 계속 연락을 했어요.  거절을 하다가, 결국 처음 만나 식사를 했죠. 그 자리에서 제가 그랬거든요. ‘지금 누구를 만날 상황이 아니다.’ 
 
남편은 괜찮데요. 자기는 충분히 기다릴 수 있다고. 솔직히 남편이 그렇게 말할 때, 좋았어요. 저도 사랑받고 싶었나 봐요. 
 
제가 거리를 두고 지냈는데도, 남편은 저를 기다리면서, 헌신적으로 사랑하고 아껴줬어요. 결국, 제 마음도 열렸죠. 
 
남편은 섬세하고 따뜻한 사람이에요. 은아를 만나기 전까지는, 나만 사랑해줬어요. 귤 하나를 먹어도, 제 입에 먼저 넣어줄 정도로 다정했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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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혁은 자정이 넘어서 집에 들어왔다. 
 
미주는 미쳐 날뛰고 싶었지만, 주혁의 말을 끝까지 들어볼 작정이었다. 
 
“지금 어디 있다 오는 건데? 수련회 답사 갔다 온다며? 은아랑 같이 있었지?”
 
“나중에 이야기하자. 지금은 상황이 복잡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주혁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당신 정말 미쳤어? 고등부 제자하고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아니기는 뭐가 아니야! 그럼, 뭔데?”
 
“지금 말하기 싫다고 했잖아.” 
 
“너 목사 아니야. 목회하지 마. 너 그럴 자격 없어. 당장 교회에 알리고, 너 같은 놈 두 번 다시 목회 못하게 할 거야.” 
 
“그래, 잘 됐다. 제발 그렇게 해줘! 누가 목회하고 싶다고 했어? 지금까지 억지로 한 거야. 사람들 눈치 보는 것도 이제 지긋지긋해! 다른 일하면서, 나답게 살 거야. 알겠어?”
 
미주는 충격을 받았다. 주혁이 그러지 말라고 사정할 줄 알았던 것이다. 남편의 당당함에 미주는 무너졌다. 남편의 마음을 돌이키기에, 너무 늦어버린 것이다. 
 
“너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완전 돌았어. 경찰에 신고할 거야.” 
 
“은아 고3이야. 내년에 대학 가. 이제 몇 달 안 남았어. 나 이혼하고 싶어.” 
 
미주는 바닥에 주저앉아 울었다. 그녀의 결혼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릴지 몰랐던 것이다. 
 

“은아가 성인이 되면, 정식으로 마음을 고백하겠다고 했어요. 
 
은아가 받아주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바보 같은 말도 했고요. 자기 마음을 받아줄 때까지 기다린데요. 언제든 곁에서 지켜줄 거라고….” 
 
미주는 남편이 은아에게 보낸 편지들을 보여주었다.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하는 동안, 은아와 주고받은 연애편지였다. 
 
편지에는 도발적인 내용이 담겨있었다. 
 
“차 안에서 너를 안고 있는 동안, 절제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들었어. 너의 호흡, 너의 살결이 나를 미치게 만들었거든. 하지만, 참을 거야. 은아가 성인이 될 때까지, 소중하게 지켜줄 거야. 우리 조금만 견디자.” 
 
주혁은 유치하다 못해, 파렴치했다. 피가 거꾸로 쏟는 듯했다. 미주가 편지를 찢어버리지 않는 것이 놀라울 뿐이었다.
 
나는 복잡한 심정으로 미주를 바라보았다. 미주는 내 눈빛에 대한 응답으로 차분하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미치겠죠, 목사님? 저도 그랬어요. 왜 자꾸 그런 생각이 드는지는 모르겠는데, 한 편으로는 이 인간이 불쌍하더라고요.”
 
예상치 못한 미주의 답변에 내 작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미주는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저도 이 인간이 미웠어요. 지금도 밉고요. 그런데, 문득 궁금하더라고요. 도대체 이 인간이 왜 이럴까? 그러다, 알게 되었죠. 시어머니가 남편을 이렇게 키웠어요.
 
남편은 목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었어요. 시어머니의 강요로 목사가 된 거죠. 황당하게 들리시겠지만, 사실이에요. 
 
남편은 시어머니에게 반항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살았어요. 착한 아들이었죠. 남편이 어머니 말에 순종한 덕분에, 전도사 때부터 어머니가 꼬박꼬박 생활비를 지원해줬어요. 
 
좋은 목사님 밑에서 잘 배우라고 지금  사역하는 교회를 소개해 준 거고요. 몇 년 후에는 교회도 개척시켜주신다고 자주 말씀하셨어요. 크게 건물은 못 지어줘도, 상가 하나는 얻어줄 수 있다고 명절마다 말씀하셨거든요.  
 
그럴 때마다 남편은 기가 죽었어요. 옆에서 지켜보는 저도 속이 상했죠. 그 사람도 그 사람 나름의 상처가 있을 거예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동의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제 잘못은 아니겠지만, 제 안에서도 이유를 찾아봤어요. 남편이 왜 그랬을까? 계속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요. 남편이 힘들어하는 동안, 제가 남편 곁에 없었거든요. 
 
엄마가 많이 아팠어요. 엄마가 암 투병을 하는 동안 제가 엄마를 돌봤거든요. ‘엄마를 혼자 두고 나와서 엄마가 그런 몹쓸 병에 걸린 건 아닌가’, 하루에도 몇 번씩 무서웠어요. 엄마가 이대로 세상을 떠날까 봐서요. 
 
다행히 엄마는 회복되셨어요.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엄마 곁에 있었네요. 남편이랑 여행이라도 한 번 다녀올 생각이었어요. 남편에게도 미안했고, 저도 많이 지쳐있었고….” 
 
미주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조용히 우는 동안, 나는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햇살이 눈을 찌르는 바람에, 자꾸 눈물이 났다. 
 
“그런데, 목사님. 제가 엄마가 아플 때, 엄마 옆에서 기도를 했거든요. 엄마 대신 제가 아파도 되니까, 엄마를 낫게 해달라고요. 그런 기도가 응답되나 봐요.
 
남편이 속 썩일 때, 몸이 조금 이상하더라고요.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는데, 종양이 발견된 거예요. 곧바로 수술을 받았어요. 
 
혼자 수술을 받고, 나오는데 서러워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날 결심했어요. 남편도 보내주고, 엄마도 내려놓고, 이제 나를 위해 살고 싶다고….”
 

 
병원에서 돌아온 미주는, 차분한 목소리로 주혁에게 말했다. 
 
“이혼해 줄게.” 
 
“정말?”
 
주혁은 미주의 말을 반겼다. 
 
“응. 며칠 만 기다려 줘. 나도 내가 살 집은 구해야 하니까.”
 
“그럼, 물론이지.” 
 
“최대한 빨리 나갈 거니까, 걱정은 하지 말고.”
 
“알겠어. 그동안 고마웠어, 미주야. 나 만나서 고생 많았고. 앞으로 잘 살아. 나도 잘 살게.” 
 
“우리 앞으로 이혼 관련해서 꼭 필요한 말만 하고, 서로 말 걸지 말자.” 
 
“그러고 싶어?”
 
“응. 나 더 이상 당신하고 말하고 싶지 않아.” 
 
“알겠어, 그럼. 꼭 필요한 말은 문자로 할게.” 
 
“그렇게 해.” 
 
주혁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서재로 들어갔다. 은아와 통화하는 주혁의 목소리가 거실을 넘어, 미주가 있는 안방까지 크게 들렸다. 
 
“응, 허락받았어. 이혼해준대. 응, 그래. 진짜라니까. 그래, 확실해. 이따 저녁에 만나. 응…. 나도.” 
 
미주는 화장대 위에 놓인 액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미주와 주혁이 신혼 때 찍은 사진이었다. 
 
미주는 아무런 감정도 없이, 액자에서 사진을 분리했다. 사진은 구겨져서 쓰레기통에 버려졌고, 액자는 상자에 가지런히 담겼다. 미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옷가지들을 꺼냈다.
 
여행을 가듯, 홀가분한 마음이었다.    
 

 
“목사님, 제가 한 달 정도 상담을 쉬어야 할 것 같아요. 선교지에 잠시 다녀오고 싶거든요. 
 
제가 청년 때, 단기선교를 갔다가 은혜받은 곳이 있어요. 그곳에 계신 선교사님께서 저를 많이 아껴주셨거든요.
 
꼭 다시 가보고 싶었는데, 살다 보니까 기회가 없었어요. 이제 홀가분해졌으니까, 한 번 다녀오려고요. 도착하면 바로 연락드릴게요.” 
 
그녀가 선교를 떠난 한 달 동안, 그녀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나는 그야말로 무능력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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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라는 시간은 의외로 짧았다. 그녀는 밝은 얼굴로 내 앞에 나타났다. 
 
“선교지에서 뜻하지 않은 은혜를 받았어요. 그곳에서 아이들을 다시 만났을 때, 저는 깨달았어요. 내가 무너지는 동안, 예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사명을 놓치고 있었구나. 
 
아이들이 다른 언어로 해맑게 찬양을 하는데, 천사의 노랫소리를 듣는 것 같았어요. 내 안의 모든 상처를 어루만져 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이랄까.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흐르더라고요. 
 
잠깐의 위기도 있었어요. 선교지에 있는 동안, 남편이 이혼소송과 관련해서 메신저로 말을 걸었는데, 나쁜 감정이 몰려오더라고요. 메신저 프로필이 커플링 사진으로 바뀌어 있었거든요. 둘이 손을 잡고 커플링이 크게 보이게 사진을 찍었더라고요.
 
당분간은 힘들겠죠. 계속 화나고 혼자 울고. 마음 같아서는 두 사람이 끔찍한 벌이라도 받았으면 좋겠지만, 주님이 원하시는 마음은 아니겠죠.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어요. 
 
하나님께서 내게 건강을 주시고, 새로운 은혜를 부어주시면, 다시 선교지로 나가고 싶어요. 선교지에서 제가 확실히 깨달은 게 있거든요. 
 
“예수님은 정말로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미주는 목이 메이는지, 잠시 감정을 추슬렀다. 다음에 일어날 일을 예상이라고 했다는 듯이,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남편도, 부모도, 그 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않지만, 예수님은 정말로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미주는 오열했다. 
 
나는 손수건이 없었다. 눈물이 흐르면, 흐르는 데로 내버려 두었다. 다행이었다. 미주는 손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려서 나를 볼 수 없었다. 
 
나는 미주를 바라보았다. 눈물로 굴절된 시선은 착시현상을 일으켰다. 소파에 기대어 앉은 미주가 마치 예수님 품에 안겨 있는 듯했다. 
 
나는 안심했다. 상담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걱정하지 않았다.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을 마저 쏟아냈다. 
 

 
상담을 종결하고 내 일상을 살던 어느 날, 미주는 내게 메신저로 안부를 전했다. 그것은 마치 손으로 정성스럽게 써 내려간 편지 같았다.  
 
“목사님, 저는 요즘 풍랑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있어요. 말 안 해도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두려움과 평안함 사이를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 갔다 해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저는 지금 잠시 외국에 나와 있어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거든요. 다시 한국에 돌아가면, 그동안 못 해본 것들을 해보고 싶어요. 
 
혼자 조용히 시간을 보내면서, 계속 기도하고 있어요. 선교지에 가서 아이들을 돌보며 살고 싶은데, 그 꿈을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실지 모르겠어요. 생각나실 때, 함께 기도해주세요.” 
 
그녀가 보낸 글의 분량만큼 나도 답장을 보냈다. 답장의 세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응원이나 격려였을 것이다.  
 
다만, 여러 번 썼다 지웠던 문장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마음속에 담아두고 끝내 보내지 못한 문장이었다. 
 
“당신은 나를 치유했고, 내게 복음을 전했어요. 당신은 더 이상 내담자가 아니에요. 당신은 치유자이며, 동역자입니다.”
 
과도한 기대로 미주가 부담을 느낄까 두려웠다. 힘든데 씩씩한 척할까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내 가슴에 묻어둔 말은 진실이었다. 
 
미주는 치유자이며, 전도자이다. 
 
그녀는 몰라도, 주님은 아신다.

나 같은 실수는 하지 마세요

이 사람은 이 말하고 
저 사람은 저 말하고 
갈피를 못 잡겠어요. 
 
무엇이 옳은 선택일까요.  
분명하게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렇군요. 
누구에게 물었나요. 
 
중요한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이요. 
 
뭐라던가요. 
도움 되던가요.  
 
헷갈려요. 
사람마다 
서로 다른 말을 해요. 
 
상처 줘요. 
사랑하는 사람한테 
더 상처받았어요. 
  
당연히 그렇죠. 
비꼬는 말 좀 할게요. 
미안해요. 
 
사람들은 말해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너를 위해 해주는 말이야. 
아니요. 
당신이 답답해서 그렇겠죠.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아니요. 
당신 생각해서 하는 말이죠.  
 
큰 기대 마세요. 
당신은 오래 고민했는데
그 사람은 그 즉시 생각하고 
말하잖아요. 
 
원하는 답을 얻을까요.
그렇지 않아요. 
 
그 사람은 당신보다 
당신을 몰라요.  
 
그럼, 자신을 믿으라는 말인가요?
아니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어요. 
하나님을 믿으세요.  
 
나는 내 선택이 아직도 
올바른 건지 모르겠어요. 
 
나는 믿음으로 이 길을 간다.
아니에요. 아닌 것 같아요. 
 
사람 의지하지 말고 
교회 의지하지 말고 
의연하게 너의 길을 가라. 
그럼, 하나님이 책임지신다. 
 
만약 내가 이 말을 한다면 
나는 망가질 대로 망가진 거죠.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이런 말 하면 안 돼요. 
 
나는 실수했을지도 몰라요. 
어리석은 선택을 한 거죠. 
 
좋은 길 있었어요.
적어도 먹고사는 걱정은 
덜 할 수 있었죠. 
 
그걸 박차고 나오다니 
뭐 그리 대단한 일을 하겠다고. 
 
나 같은 실수는 하지 마세요.
장밋빛 인생 없어요. 
 
아, 빨리 말해주지. 
나 이미 선택했는데. 
 
그래요? 괜찮아요. 
너무 걱정은 마세요. 
 
인생에 답은 없어요. 
하나님께 답이 있어요. 
 
인생에는 수많은 문이 있죠. 
선택의 문. 
 
종류도 다르고 
크기도 다르고 
색깔도 다르죠. 
 
문 하나 잘 열면 
성공할 것 같고 
 
문 하나 잘못 열면 
실패할 것 같죠. 
 
그 문 열어보세요. 
또 문이 있어요. 
 
또 그 문 열어보세요. 
또다시 문이 있어요.
 
열어도 열어도 
끝없이 문이 있다면 
멈춰 서서 생각해봐요, 우리. 
 
어떤 문을 여느냐 
중요하지 않아요. 
 
어떤 마음으로 문을 여느냐.
중요해요. 
 
중간중간 잘못된 문을 열었어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문을 열까 말까 고민하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요. 
 
과감하게 손잡이를 비틀어 열죠. 
결국 목적지에 도착할 테니까. 
 
가끔 예상하지 못한 일도 있죠. 
문 넘어 문이 있을 줄 알았지 
절벽인지는 나도 몰랐거든요. 
 
떨어져 죽는 줄 알고 
울고불고 했는데 
그물도 있고 사다리도 있고
죽지는 않더라고요.   
 
죽으란 법 없어요. 
하나님의 은혜가 있죠. 
 
나는 분명히 실수했어요. 
돌이킬 수 없어요, 이제는. 
 
기분 어떠냐고요?
좋아요. 나쁠 거 없죠. 
 
내가 실수했다고 
내가 실수는 아니잖아요.
 
내 존재가 실수가 아닌데
절망할 필요는 없죠.  
 
내가 실수했을지라도 
내 존재 가치는 변하지 않아요. 
 
편안하게 문을 여세요.
잘못된 문이든 낭떠러지든 
우린 결국 목적지에 도착할 테니까.

당신은 답을 알고 있어요

사귀던 남자에게 상처받고
다시는 남자를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오랜 시간 혼자 지냈죠.
결국 다시 남자를 만났어요.
나는 왜 나 좋다는 사람
거부할 수 없을까요.
누군가를 먼저 좋아한 적이 없어요.
나 좋다는 사람 만났어요.
 
그동안 주님 안에서
성장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전혀 성장하지 못했어요.
똑같아요. 그대로예요.
 
그 사람을 온전히 믿지 못해요.
계속 확인하고 싶어요.
나를 어디까지 받아줄 수 있을까.
이 정도는 받아주겠지.
받아주면 또 시도해요.
이건 못 받아줄 거야.
그런 식으로 여러 사람 떠났어요.
 
상처 주고
상처받고
다시 외로워지고.
이제 지쳤어요.
더 이상 못할 것 같아요.
차라리 혼자가 나아요.
 
잠시만요.
급할 것 없어요.
조금만 천천히 대화해요, 우리.
 
당신 마음 느껴져요.
내 마음이 아파요.
조심스럽게 내 생각 말해도 될까요.
 
나는 왜 당신이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고 느껴질까요.
전혀 성장하지 못했다고
혼자가 차라리 낫다고 말하지만
진실이 아닌 것 같아요.
억지 위로가 될까 두렵지만
솔직히 말하고 싶어요.
 
당신은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어요.
 
자기 문제 스스로 
인식하기 어려워요.
 
문제와 자신이 섞여서 
분리되지 않아요.
 
당신은 문제가 보이나 봐요.
그건 성장이에요.
 
당신은 답도 알고 있어요.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낸 거죠.
당신은 답을 말하고 있어요.
아무도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거예요.
당신 안의 그 지독한 외로움을.
 
그다음은 뭘까요.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거예요.
 
오직 그리스도 한 분으로
마음속 빈자리를 
채우고 싶은 거예요.
 
당신이 맞아요.
백 퍼센트 옳아요.
 
하지만, 답을 안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에요.
쉽지 않아요.
 
답을 몰라서 힘든 게 아니라
과정이 힘들어서 힘든 거예요.   
 
조급할 필요 없어요.
당신에게는 시간이 필요해요.
아주 많이.
다른 사람 보다 많이.
 
당신 잘못 아니지만,
당신이 사랑받으며 
자랐다고 말하기 어려워요.
 
부모에게 절망한 당신은
남자에게 희망을 걸었어요.
자신이 이룰 가정을 꿈꿀 수 있으니까요.
 
마지막 남은 희망마저 내려놓은
당신은 얼마나 불안하고 고통스러울까요.
 
희망이 사라졌다고 절망하지 마세요.
그 희망은 낡은 희망이에요.
새로운 희망이 다가왔어요.
 
새로운 희망을 드릴게요.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유일한 희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지요?
그 고백이 당신을 치유할 거예요.
 
내 마음에 물통이 하나 있어요.
물을 부으면 물이 새요.
구멍이 너무 많아서.
 
나는 구멍 없는 물통을 
받고 싶었는데
내가 받은 물통은 
처음부터 구멍이 많았어요.
 
누구를 탓할 수 있나요.
그건 주어진 거예요.
내가 선택할 수 없었어요.
 
선택할 수 있었다면 
구멍 없는 것을 골랐겠죠.
 
나중에 알았어요.
구멍을 탓하고 있으면
물이 금방 말라 버려요.   
나만 손해죠.
끔찍한 고통이 반복되니까요.
 
나는 구멍을 탓하지 않기로 했어요.
쉬지 않고 물을 부었어요.
부어도 부어도 바닥이 드러날 듯
빠르게 물이 빠져나가지만
포기할 수 없었어요.
더 열심히 했죠.
 
손목 아프고 손에 물집 잡혀서
주전자를 놓쳤어요.
너무 속상해서 고개를 떨구고 있는데
세상에나 비가 내려요.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폭포수 같은 장대비가 쏟아져 내려요.
나 처음으로 하늘에 난 구멍을 봤어요.
그 사이로 엄청난 비가 내렸어요.
 
내 마음에만 구멍 난 거 아니에요.
하늘에도 구멍 났어요.
그 틈으로 주님이 오셨지요.
그 덕분에 난 살았고요.
 
당신 마음에도 구멍이 보여요.
하늘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이
구멍 난 손으로 당신의 손을 잡아주실 때
폭포수 같은 사랑이 쏟아져 내리기를
나는 바랍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공감하고 싶어요

교회에서는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할 기회가 많잖아요. 저는 공감능력이 부족해요. 다른 사람의 힘든 이야기를 들어도 공감이 되지 않아요. 다른 사람의 상처와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이 있나요?  
 
자신이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쉽게 결론 내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정말로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상처와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다른 사람의 상처와 아픔을 공감하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는 것은 당신이 공감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다만, 지금보다 다른 사람의 상황에 대해 더 공감하고 싶다는 말이겠지요. 
 
나는 상대방의 아픔에 대해 쉽게 공감하는 방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감은 언제나 쉽지 않습니다. 공감이라는 말 자체가 “함께 느낀다”라는 뜻입니다. 내가 직접 곁은 일도 아닌데, 마치 같은 일을 겪고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면, 잘못하다 상대방을 동정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의도와 달리, 상대방이 자존심 상합니다. 공감을 쉽게 생각할수록 쉬운 사람 되니까 신중해야 합니다.
 
억지로 장단을 맞추면 실패합니다. 다른 방식으로 상대방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마음을 열었다는 것은 이미 당신을 신뢰했다는 뜻입니다. 당신에게 마음을 열고 아픈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는 뜻이지요. 이미 말하고 싶어서 온 거니까, 상대방이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들어주면 됩니다. 곧바로 떠오르는 말이 있어도 입 밖으로 내뱉지 말고 잘 들어주세요. 억지스럽지 않게, 매우 자연스럽게 말입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신의 감정이 동요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자기감정을 억제하지 말고 솔직하게 함께 느끼면 됩니다. 함께 웃고 싶으면 웃고, 함께 울고 싶으면 우는 겁니다. 나 역시 그렇습니다. 내담자가 울면 나도 함께 웁니다. 내담자가 웃으면 함께 나도 웃습니다. 나는 노련한 상담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따뜻한 상담자가 되고 싶습니다. 
 
공감 잘하는 사람 되기 어렵습니다. 잘 들어주는 사람이 먼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싶은 말 참고 잘 들어주면, 상대방의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자신에게 느껴지는 감정을 솔직히 표현해주세요. 웃든 울든, 대화가 끝나면 상대방이 말할 겁니다. 고맙다고, 정말 고맙다고. 그럼, 성공입니다.

교회 일을 내려놓고 잠시 쉬려 해요

아빠가 오랜 투병생활을 하시다가 돌아가셨어요. 아버지의 죽음이 너무나 슬퍼요. 교회에서 맡았던 일을 내려놓고 잠시 쉬려는데 주변에서 그러지 말래요. 그럴수록 하나님을 더 붙잡으라고 해요. 슬픔의 영에 사로잡히면 일어서기 어렵다고 참고 견디라고요. 
 
슬퍼하세요.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슬프지 않겠어요. 일 년이든, 십 년이든, 평생이든 슬프면 우세요. 아버지가 일생동안 그립다면 감사한 겁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는 감정에 죄책감을 느낀다면 잘못된 겁니다. 
 
당신에게 ‘슬픔의 영’에 사로잡히지 말라고 말한 사람의 의도를 모르겠네요. 이 말은 문맥상 부정적인 뜻이겠지요. 성경에는 그런 말이 없습니다. 나는 그 말을 전해 들을 당시의 상황과 분위기는 모르지만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성경에 없는 말을 하면 위험합니다. 
 
쉬고 싶으면 쉬세요. 교회 일을 감당하는 것 자체가 본질이 아 닙니다.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결정하세요. 교회 봉사할 사람이 항상 부족해도 교회 문은 안 닫습니다. 하나님이 잘 이끌어 가십니다. 잠시 쉬다가 기운이 나면 다시 섬겨주세요.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세요. 그 눈물 마를 때까지 주님이 위로해주실 거예요. 오늘부터는 마음 편히 울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과 돌아가신 아버지 사이에는 예수님이 계세요. 천국에서 그분이 아버지를 돌봐주고 계십니다. 슬플 때마다 예수님 품에 안겨 있는 아버지를 생각하세요. 주님은 친절하게도 이 땅에서 슬퍼하는 당신에게도 찾아오세요. 눈물을 닦아주시며 위로해 주시지요. 
 
예수님이 계시기에 머지않아 슬픔은 소망이 될 것입니다. 슬플 때마다 그분 품에 꼭 안겨주세요. 다시 힘을 얻으면 주님의 일을 잘 감당하실 수 있을 겁니다.

용서 못해도 괜찮아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잃어버렸던 제 자신을 되찾을 거예요.”
 
H는 5살 아들을 둔 엄마이다. 그녀는 결혼 생활 7년을 뒤로 하고 이혼했다. 결혼하고 3년 후부터 남편은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렸고, 결국 이혼했다. 
 
아들 어린이집 재롱잔치가 있던 날, 남편의 외도를 처음 알았다. 그는 일이 많아 토요일에 출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내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한 달 전 부터 미리 알려준 일정이었다. 그날 남편이 오지 않으면 아들이 서운할 게 뻔했다. 아내는 일단 왔다가 얼굴이라도 보이고 가라고 부탁했다. 남편은 짧게 알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지 않았다. 
 
저녁 늦게 퇴근해서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말로 넘어가려고 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불안감을 이겨낼 수 없었다. 남편이 잠든 사이에 그의 휴대폰을 확인했다. 비밀번호가 걸려있었다. 그날 밤, 아내는 한숨도 못 잤다. 긴 한숨이 베개를 타고 침대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전화가 걸려오면 남편은 밖으로 나갔다. 안에서 받으라고 말해도 소용없었다. 남편이 화장실에 갔을 때 전화가 걸려왔다. 거래처 이름이 떴다. 퇴근, 주말 구분 없이 자주 걸려 오는 전화라 의심스러웠다. 아내는 긴장한 채로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지금 나올 수 있어?” 
 
아내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어서 서둘러 종료버튼을 눌렀다. 화장실에서 나온 남편이 말했다. 
 
“뭐야? 당신, 내 전화 받았어?” 
 
아내는 일어나 남편의 뺨을 후려쳤다. 그리고 자신이 뺨을 맞은 듯, 그녀는 그의 발 앞에 맥없이 쓰러졌다. 남편은 아내에게 용서를 구했다. 실수라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가 아무리 용서를 구해도 아내는 용서하지 않았다.
 
남편은 죽은 듯이 아내 옆을 지켰다. 아내의 눈치를 보면서 평소에 하지 않는 집안일과 육아를 도왔다. 먼저 안부를 묻지 않았던 친정 엄마에게도 주말마다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남편의 위선이 싫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목사님이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설교를 했다. 양심에 가책이 들었다. 용서하지 못하는 자신을 반성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날 저녁, 감정은 따라주지 않았지만 의지를 발휘해서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나 당신을 용서하려고. 다시는 내게 상처주지 말아줘. 다 잊을게.” 
 
“아니야, 여보, 내가 미안해. 다시는 안 그럴게.”
 
아내가 예상한 답변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아니. 나 이제 너랑 안 살려고. 더 이상 못살겠어. 내가 왜 다른 사람을 만났는지 생각해봤어? 나만 잘못한 것 같아? 우리  사이가 안 좋잖아. 대화도 안 되고. 전부 내 잘못이라고 하면 난 억울한데? 나 집 나가려고 원룸 알아봤어. 주말에 와서 애랑 놀아줄게. 평일에는 거기서 살 거야. 나 없다고 생각해. 이혼은 안 하지만 너랑은 살고 싶지 않으니까.” 
 
아내가 말했다. 
 
“그 말을 하지 말 걸 그랬어요. 제가 용서하면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올 줄 알았거든요. 사실 저는 남편을 용서한 것도 아니었어요. 용서에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들었어요. 의지를 가지고 용서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실 거라고. 저는 그렇게 믿었어요. 하지만 그의 반응은 제 예상과 전혀 달랐죠. 
 
그가 밖에 나가 혼자 산다고 했을 때, 그러라고 동의한 건 솔직한 제 심정이었죠. 저도 남편하고 살고 싶지 않았거든요. 밖에 나가서 제멋대로 하고 살라고. 나도 너 필요 없다고. 너무 괘씸했어요. 차라리 안 보니까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평일에는 아이와 단 둘이, 주말에는 남편과 같이 시간을 보냈다. 주말에 남편을 만나도 말 한 마디하지 않았다. 부부 관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주말에 아이와 있는 남편을 보면 그 여자와 완전히 끝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사실 남편 모르게 젊은 여자를 만나서 말했다. 그녀는 울면서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다시는 남편을 만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허무하게 대화가 끝났다. 그녀의 마음은 조용히 무너졌다. 
 
주말에 아이와 아파트 단지 앞에 자전거를 타러 나간 남편이 전화기를 두고 나갔다. 문자 알림이 울렸다. 일부러 본 것이 아니었다. 메신저 알림에 한두 줄 문장과 함께 그녀의 프로필 사진이 떴다. 그걸로 끝이었다. 남편의 전화기를 건드리지 않았다. 문자 내용 역시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알게 되었다. 남편은 그 젊은 여자와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을. 남편이 아이와 집에 들어오자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주말에도 오지 마.” 
 
남편은 무릎을 꿇고 빌었다. 
 
‘이건 뭘까? 남편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누구를 위해 이러는 것일까? 나를 위해 아니면 그 젊은 여자를 위해?’ 
 
머리가 아팠다.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바라보았다. 천장에는 이혼 서류가 보였고, 눈동자로 서류 위에 사인했다. 편안했다. 두 번 다시 남편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사인을 하자, 장면이 바뀐다. 천장에 갑자기 남편의 웃는 모습이 그려졌다. 젊은 여자 얼굴도 보였다. 둘이 비웃듯이 자신을 내려 본다. 소름 끼쳤다. 
 
‘이대로 이혼해 줄 수는 없지.’ 
 
아내는 결심했다. 남편에게 복수하고 난 다음에 이혼한다고.  남편에게 짧은 문자를 보냈다. 당장 원룸을 정리하고 집에 들어오지 않으면 남편이 다니는 회사와 젊은 여자가 다니는 대학에 진실을 알리겠다고. 그녀는 단 하루의 시간을 줬다. 
남편은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처음 외도를 들켰던 때처럼 집안일과 육아를 도왔다. 아내는 그런 남편이 정상인으로 보이지 않았다. 
 
‘네 인생도 비참하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사냐!’ 
 
아내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6개월 동안 남편에게 고통을 줬다. 조용한 복수극이 끝나고, 그녀는 이혼했다. 남편이 없는 지금, 그녀는 10년 동안 잃어버렸던 자신을 되찾았다고 말했다. 
 
“복수극은 끝났어요. 충분하지는 않지만 아쉬움은 없어요. 이제 그 둘이 어떻게 살든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죠. 다 잊었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슬프게 들렸다. 
 
“그러니까… 만약, 친구가 이런 일을 겪었고 제가 그 친구를 위로해준다고 하면 무슨 말을 해주고 싶냐고요? 참 어려운 질문인데요. 음… 저라면….”
 
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다 지난 일이라고 쿨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풀어가던 그녀가 갑자기 오열했다. 좋은 회사에 다니며 많은 연봉을 받는 그녀는 이혼하고 나서 당당하게 살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런데 질문에 답하면서 그녀의 비밀창고가 열렸다. 댐의 수문이 열린 것처럼 쏟아져 내리는 눈물에 주변 모든 것이 떠내려가는 것 같았다. 
 
처음 남편을 만났을 때, 호감을 느끼지 못했다. 무시하고 거절해도 한결같이 자기를 좋아해주는 모습에 끌렸다. 그와 같이 있으면 왠지 모를 우월감이 느껴졌다. 그가 자신을 더 좋아하니까. 남편에게 조금씩 빠져들었다. 
 
결혼하고 많은 것이 변했다. 육아와 일로 정신이 없었다. 쏜살같이 시간이 흘렀다. 부부가 아닌 파트너처럼 느껴졌다. 그는 그의 기능을 하고, 자신은 자신의 기능을 하는 형식적인 관계가 되었다. 서로 대화할 시간이 부족했다. 
 
“저는 가정이 깨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어요. 부모님도 사이가 좋지 않았거든요. 어머니가 아버지를 찾아오라고 해서 동생과 어떤 집에 갔던 기억이 나요. 모르는 아줌마가 문을 열어줬고, 아빠가 현관에 나와 용돈을 주면서 나중에 집에 갈 거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말했어요. 
 
저는 그 돈으로 동생이랑 문방구에 들러서 이것저것 사먹었죠. 어려서 상황 판단을 못했어요. 어머니는 이혼하지 않았죠. 아버지와 싸우면서 우리에게 물었어요. 누구와 살 거냐고. 저는 울면서 대답을 못했어요. 엄마를 대답하라고 고함을 쳤고, 저는 더 크게 울었죠. 아버지는 그 모습을 보고 집을 나갔어요. 
 
몇 년이 지나자 아버지가 짐을 싸서 다시 들어왔죠. 그 이후로 며칠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은 적은 있었지만 집을 나가진 않았어요. 둘은 부모 자리만 지키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서로 무언가를 요구하지도 않고, 해주려고 하지도 않았죠. 
 
여름휴가도 자식들 때문에 마지못해 가는 것 같았으니까. 결혼은 유지했지만 부부 관계는 깨진 채로 산 거죠. 어릴 때는 원망을 많이 했는데 다 크고 나니까 고맙더라고요. 어쨌든 가정은 유지했으니까요. 저도 어머니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원하지는 않았지만 어머니처럼 사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이혼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아이 때문에.”
 
그녀는 스스로 반복해서 말했다. 
 
“엄마처럼 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엄마보다 강하다. 남편 없이 아이를 더 잘 키울 수 있다.” 
 
애써 노력했지만, 그녀는 견디지 못하고 부러졌다. 차고 넘치는 슬픔과 분노를 억누르자 댐이 무너지면서 감정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아까 하신 질문에 답할게요. 친구가 저와 같은 일을 겪었다면 이렇게 말할 거예요. ‘지금까지 참 수고 많았어. 잘 견뎌줘서 고마워. 힘들지만 이제 널 되찾았으면 좋겠어. 한 사람의 아내와 엄마로서 이름 없는 존재가 아니라 온전한 네 자신이 되어서 너를 돌봐주기를 바라. 그리고 말이야, 네가 원수를 사랑하면 하나님이 널 사랑하시는 게 아니래. 그러니 용서 못해도 괜찮아. 하나님은 여전히 널 사랑하시니까. 네게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 내가 항상 곁에 있어줄게. 힘내!’” 
 
***
 
그녀는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었다. 비밀창고에 물이 빠지고 나서 남은 것은 조그만 상자였다. 그 상자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그녀는 상자 안을 혼자 들여다보고, 안에 든 것에 대해 말했다. 그것은 ‘조건 없는 사랑’이라고. 인간이 만들어낼 수 없는 초월적인 사랑이 그녀에게 필요했나보다. 
 
사랑이 의무가 되면 메마른다. 사랑을 강요하면 짓눌린다. 사랑은 자유다. 처음으로 그녀의 미소를 보았다. 억지웃음이 아니라 입술 끝자락이 내면에 닿아있는 미소였다. 

내 믿음이 형편없어요

내 믿음이 형편없어요.
나 어떻게 하죠?
 
하나님 앞에 부끄러워
나아갈 수가 없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믿음이 제자리에 있으니
괴로워요.
 
믿지 못해 괴롭고
믿고 싶어 괴롭다면
그건 믿음이에요.
 
당신의 믿음을
싸구려 취급하지 말아주세요.
 
사람들은 믿음에
레벨이 있는 것처럼 말해요.
 
진실이 아니에요.
믿음에는 레벨이 없어요.
 
믿음이 있냐, 없냐.
둘 중 하나에요.
 
문제에 집중하면
불안해져요.
 
감기가 낫느냐
암이 낫느냐.
 
1억을 갚느냐.
10억을 갚느냐.
 
암보다는
감기를 고치기 쉽고
 
10억보다는
1억을 갚기 쉬우니까.
 
암이나 10억을 놓고
기도하는 사람에게
 
더 큰 믿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다시 말하지만,
진실이 아닙니다.
 
믿음의 대상이
분명하기 바랍니다.
 
문제에 집중하면 불안해서
더 믿으려고 발버둥 쳐요.
 
문제 너머에 계시는
하나님을 믿어봐요, 우리.
 
감기와 암.
10억과 1억.
 
하나님은 차이를
느끼지 못하세요.
 
예수님이 이방 여인에게 말씀하셨죠.
네 믿음이 크도다.
 
예수님은 믿음의 크기에
놀라신 게 아니에요.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믿으니까
예수님이 감격하신 거예요.
 
얼마나 잘 믿느냐.
그만 고민하세요.
 
무엇을 믿느냐.
고민하세요.
 
문제 해결을 믿으시나요.
하나님을 믿으시나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감사할 수 있으려면
 
문제 너머에 계시는
하나님을 믿는 방법뿐입니다.

한 번 떠났던 사람은, 두 번 떠날 수 있어요

“내 상처 때문에 
그 사람을 힘들게 했어요. 
 
더 나은 사람이 되어서, 
그 사람을 다시 만나보고 싶어요.” 
 
당신 안의 외로움이 
당신을 비난하고 있어요. 
 
당신의 일방적인 잘못으로 
헤어진 것처럼 말하거든요. 
 
한 사람만의 잘못으로 
헤어질 수 없어요. 
 
당신의 상처로 
그 사람이 힘들었던 만큼, 
당신도 그 사람 때문에 힘들었어요. 
 
이별의 모든 책임이 
당신에게 있는 것처럼 말하지 마세요. 
관계를 깨뜨린 건 그 사람이에요.
 
당신은 그 사람이 그리운 거예요. 
다시 만나고 싶고, 
다시 사랑받고 싶은 심정이 전해져요. 
 
그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감정을 
억제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 사람을 찾아가느냐 마느냐는 
오롯이 당신의 선택이에요. 
당신의 선택을 존중해요. 
 
다만, 당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을 되찾고 싶어, 
당신이 아닌 모습이 될까 
걱정스러워요.
 
있는 모습 그대로의 
당신을 사랑해 주세요. 
 
그리고, 
있는 모습 그대로의 당신을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세요. 
 
한 번 떠났던 사람은, 
두 번 떠날 수 있어요. 
 
또다시 당신을 버릴 기회를 
주지 마세요. 
 
이 세상 그 누구도 
당신을 두 번 버릴 수 없어요.  
 
마약을 끊을 때 
금단현상이 일어나듯이,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면 
정서적 금단현상이 일어나요. 
 
당신이 식은땀을 흘리며 
괴로움에 눈물 흘릴 때, 
예수님이 당신의 손을 
잡아 주실 거예요. 
 
한순간도 
당신 곁을 떠나지 않고 
당신을 보살펴 주세요. 
 
잠시 괴로운 시간이 지나면, 
당신 안의 그리움의 독기가 
빠져나갈 거예요. 
 
이별의 고통을 이겨낸 당신은, 
생존자예요.   
 
다른 사람이 원하는 당신이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의 당신이 되어주세요. 
당신은 이미 충분해요.   

자고 일어나면 또 우울해요

아무리 은혜를 많이 받아도 자고 일어나면 다음 날 똑같이 힘들어요. 전날 받은 은혜는 온데간데없고, 우울한 감정에 짓눌려 ‘이게 다 무슨 소용이 있나’ 싶어요.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어요.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요. 나 역시 그렇거든요. 매일 같은 문제로 괴로워요. 고통이 나를 기도의 자리로 이끌지만 기도가 끝나면 다시 반복됩니다.
 
잠시 내 이야기를 해볼게요. 블로그에 쓴 글들로 과분하게 출간 제안을 받았어요. 그런데 출판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첫 책의 원고를 쓰기 시작했는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요. 글이 갑자기 써지지 않았어요. 모니터에 깜빡거리는 커서가 공포스러울 정도였지요.
 
엎드려서 기도했어요. 그러자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다시 글이 써지더군요. 내 생각이 조금 달라졌거든요.
 
‘잘 쓰려고 하지 말자. 그냥 쓰자. 지금 보이는 모니터를 활자로 채우는 게 목표다.’
 
우여곡절 끝에 첫 책의 원고를 마무리하고 출판사에 넘겼어요. 다 끝난 줄 알았더니 더 큰 고통이 찾아왔어요. ‘책이 얼마나 팔릴까’ 하는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가슴이 짓눌려 일상을 살기 힘들더군요.
 
또 엎드려 기도했지요. 하나님이 은혜주셔서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 있었어요. 내 이야기는 해피엔딩이 아니에요. 뫼비우스의 띠처럼 고통과 은혜의 반복이지요.
 
두 번째 책이 나올 때도 같은 일을 겪었어요. 고통이 심해졌으면 심해졌지, 익숙하거나 덜하지 않았어요. 그다음 책을 쓸 때도 똑같은 일이 반복될 거예요. 나는 알았습니다.
 
‘어차피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구나.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할 때, 하나님이 하늘에서 만나 를 내려주셨지요. 유통기한이 하루였어요. 오늘 받은 만나는 내일 못 먹어요. 매일 새로운 만나를 받아야 하루를 살 수 있었지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갓 지은 밥이 좋아요. 윤기가 흐르고 찰져서 먹음직스러운. 나는 매일 새롭게 내려주시는 은혜가 좋습니다. 하나님이 갓 지은 은혜를 내려주시면 살 수 있거든요.하나님이 지어주신 밥을 먹고 힘을 얻어 나 자신에게 복음을 전해요. 복음이 없는 생각에 복음을 전합니다.
 
글을 쓸 때나 원고를 마무리했을 때, 복음 없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아요.
 
‘네 글을 누가 읽어주겠니? 사람들이 더 이상 네 글을 읽지 않으면 너는 끝장이야.’
 
하지만 끔찍한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 생각 속에는 복음이 없기 때문이지요. 복음 없는 생각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나는 선교사를 파송합니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내 생각의 뿌리 끝까지 복음을 전해요.
 
아직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내 가치관과 신념의 땅덩어리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복음으로 무장한 선교사가 복음 없는 생각에 십자가를 꽂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선명하게 새긴 십자가를 꽂고 승리의 노래를 부르지요.
 
문제는 그다음 날입니다. 내가 파송한 선교사는 복음 없는 생각에 순교를 당합니다. 선교사가 꽂은 십자가는 부러진 채, 길 가에 버려집니다. 복음 없는 생각은 참 잔인하고 지독합니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또다시 선교사를 파송하여 같은 지점에 십자가를 꽂습니다. 다음 날 부러져도 또 보냅니다. 복음 없는 생각이 복음으로 변화되는 그날까지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매일 새롭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 없는 생각에 복음을 전하세요. 은혜의 유통기한은 하루입니다. 내일은 또 다른 은혜를 받아야 해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입니다.
 
눈을 뜨자마자 선교지의 상황부터 챙겨요. 부러진 십자가를 발견하면 다시 복음으로 무장한 선교사를 보내요.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듯 생각의 뿌리에 복음을 전해요.
 
아무리 힘들어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예수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나 자신과 온 세상을 향해 복음을 외칠 거예요. 복음 없는 생각이 복음으로 변화되고, 복음 없는 세상이 복음으로 변화되는 그날까지 전할 겁니다.

이별을 견딜 수 없어요

누군가와 헤어지는 상황을 견딜 수 없어요.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어요. 졸업식이 힘들었어요. 선생님, 친구들과 헤어진다는 슬픔 때문에요. 선생님이 전근가실 때도 울고, 목사님이 바뀔 때도 울고, 함께 일하던 동료가 회사를 그만 둘 때 울어요. 친구들 결혼식도 못 봐요.
 
이제 동생이 결혼을 해요. 동생을 떠나보낸다는 생각에 눈물이 나요. 교회 상담실에서 상담을 받아봤어요. 그런데, 심각한 게 아니라는 듯 끝났어요. 동생 결혼식에서 웃으며 축복해주고 싶어요. 하지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울음을 참을 수 없으니 걱정이에요.
 
저는 3남매 중 첫째에요. 한 살 어린 남동생, 네 살 어린 여동생이 있어요. 남동생이 생기면서 저는 할머니에게 갔어요. 할머니가 엄마인 줄 알고 지냈어요. 여동생이 엄마 뱃속에 있을 때,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저는 다시 엄마 집으로 오게 되었어요. 아이가 셋이다 보니 엄마는 주로 저를 집에 혼자 두고 다녔어요. 막내인 여동생은 늘 데리고 다녔고요.
 
할머니 돌아가신 날이 기억나요. 할머니와 살던 저는 엄마 집에 놀러 왔어요. 할머니는 평소와 다름없이 막걸리를 한 잔 드시고 낮잠을 주무셨어요. 어린 저와 동생은 할머니 양옆에 누워 같이 잠을 잤어요. 잠이 깬 저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걸 제일 먼저 발견했어요. 눈을 뜨고 돌아가셨어요.
 
엄마가 그랬어요.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 제가 할머니가 꽃가마 타고 가는 꿈을 꿨다고. 할머니가 내 꿈을 듣고 말했다고 했어요. “아이고, 내가 꽃가마를 타고 어디를 간다는 거 보니까 세 밤 자면, 죽으려나 보다.” 그날 이후, 엄마가 꿈에 나올까 무서웠어요. 내 꿈 때문에 돌아가실까 봐….
 
자매님, 용기 내어 사연 보내주셔서 감사드려요. 자매님이 보내주신 사연을 읽어보면, 자매님은 누군가와 헤어질 때 슬픈 감정을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어요. 하지만, 내 생각에 자매님은 이별의 슬픔으로 고통받는 게 아니에요. 나는 다른 관점으로 이 상황을 보고 싶어요. 자매님은 혼자 남겨지는 게 두려울지 몰라요. 외로워서 우는 게 아니라 무서워서 우는 것 같아요.
 
부족한 정보로 추측할 뿐이에요. 하지만, 그 나름의 근거가 있어야겠지요. 자매님은 바로 아래 동생이 엄마 뱃속에 있을 때 할머니 댁에 맡겨졌어요. 한 살 어린 남동생이니까 자매님은 돌이 되기도 전에 할머니 댁에 맡겨진 거예요. 그리고, 여동생과 세 살 차이가 나니까 할머니 댁에서 최소 3년 이상 산 거예요.
 
애착 형성에 중요한 생후 3년 전후로 자매님은 두 번의 큰 상실을 경험했어요. 엄마와의 이별이 있었어요. 동생의 존재만으로 자매님은 이미 존재감에 큰 타격을 입었을 거예요. 엄마와 생이별을 했으니 고통은 더 컸을 거예요. 단지 어려서 표현할 수 없었던 거죠.
 
할머니와의 이별이 있었어요. 자매님은 할머니를 엄마처럼 생각했어요. 그런 할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어요. 자매님에게는 할머니의 죽음이 엄마의 죽음과 같았어요. 세상이 하루아침에 멸망한 것처럼 무서웠을 거예요. 할머니가 눈을 뜨고 돌아가셨다는 표현에는 자매님이 느끼는 두려움의 정서가 반영되어 있어요. 어린아이가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자매님은 혼자 있을 때 외롭기보다 무서울 거예요. 성인이 된 지금 외롭다는 말은 할 수 있어도 무섭다는 말을 하기 어려울 거예요. 하지만, 괜찮아요, 자매님. 누군가 떠날 때 무서운 감정을 느끼는 건 자매님에게 정당한 감정이에요. 스스로를 자책하지 마세요.
 
자매님은 마음속 어린아이를 돌봐줘야 해요. 눈을 뜨고 돌아가신 할머니를 보고 겁먹은 네 살짜리 여자아이가 있어요. 성인이 된 자매님이 그 아이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어떻게 위로해 줄 수 있을까요. 그 아이는 너무 놀라 울지도 못해요. 소리쳐 주변에 알리지도 못해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 해요.
 
우리 그 아이를 위로해 줄까요. 겁먹은 그 아이를 들어 올려 안아주세요. 등을 다독여 주세요. 품에 안고 따뜻하게  말해주세요.
 
“괜찮아, 아가. 많이 무서웠지. 이제 괜찮아. 네 잘못 아니야. 할머니는 네가 꾼 꿈 때문에 돌아가신 게 아니야. 괜찮아, 아가…. 정말로 괜찮아….”
 
마음속 그 아이는 여전히 무서워해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아요. 누군가 떠날 때, 무서워서 옷자락이라도 잡고 싶어 해요. 그 아이를 비난하거나 정죄하지 마세요. 무서워서 그러는 거예요. 그 아이는 아무 잘못이 없어요. 다독여 주세요. 그 아이가 안심할 때까지 따뜻하게 안아주세요. 남은 삶 동안 포기하지 않고 돌봐주셔야 해요.
 
사람들은 자매님을 떠나요. 목사님도, 선생님도, 친구들도, 가족들도. 언젠가 모두 떠날 거예요. 필요할 때 옆에 없을 거예요. 하지만, 걱정은 마세요. 예수님은 절대로 자매님을 떠나지 않으실 거예요. 언제나 어디서나 따뜻하게 자매님을 안아주시는 예수님을 믿기에 나는 여기서 글을 마칩니다.

차가운 목도리

연수는 멈칫했다. 
 
신중하게 내 표정을 살폈다. 나의 반응이 궁금한 것 같았다. 물 밖에서 물속의 깊이를 알 수 없듯, 연수는 내 속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나는 온화한 표정으로 기다렸다. 
 
잠시 침묵하던 그녀가 말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였어요. 학원 기사 아저씨가 있었거든요. 그 아저씨에게 순결을 잃었어요.” 
 
내가 멈칫하는 순간, 연수는 마치 내가 질문이라도 했다는 듯이 말했다. 
 
“왜 신고하지 않았냐고요? 그때 당시에는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아주 잠시 동안이지만, 사랑받고 있다고 느꼈거든요.” 
 
학원 운행노선 끝자락에 연수의 집이 있었다. 학원차는 마지막으로 그녀의 집 앞에 머물렀다. 학원차가 집 앞에 도착했을 때, 집 안의 모든 불은 이미 꺼진 후였다. 그녀가 오기 전에 모두가 잠든 것이다. 
 
연수는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기사 아저씨와 대화를 나눴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아무도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은 덕분에, 아저씨는 그녀의 대화 상대가 될 수 있었다. 대화는 점점 깊어졌다. 연수는 학원 아저씨와 단둘이 집에 가는 시간이 기다려졌다. 
 
아저씨는 연수의 생일을 기억했다. 텅 빈 차 안에서 그녀에게 생일 선물을 건넸다. 목도리였다. 아저씨는 연수에게 목도리를 둘러주고, 볼에 가벼운 입맞춤을 했다. 그리고, 연수를 끌어안았다.
 
한 시간이나 늦게 학원차가 집 앞에 도착했다. 아무도 깨어있지 않았다. 집에 도착한 연수를 맞이한 것은, 환하게 빛나는 생일 케이크이 아니었다. 적막한 어둠뿐이었다. 생일 저녁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연수의 순결을 목도리와 맞바꿨다는 사실을 가족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연수는 엄마에게 학원을 옮겨달라고 말했다. 엄마는 딸이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지금 학원을 옮겨달라고?” 
 
연수는 엄마의 말 한마디에 감정이 상했다. “됐으니까, 알아서 하겠다”라고 말했다. 
 
연수는 더 이상 학원에 가지 않았다. 학교에서 가까운 독서실에 다녔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그녀는 목도리를 두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목도리로 목을 감싸자 온기가 느껴졌다. 
 
  연수는 목도리를 버리지 않았다. 
 
나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10년이 지났지만, 연수는 그때의 사건과 감정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밤 제가 엄청난 실수를 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되돌릴 수 없어 슬펐고요. 집에 와서 침대에 누워 많이 울었어요. 내가 이런 일을 당했다는 사실에 슬펐고, 그런 일을 당했는데 싫지만은 않았다는 것이 슬펐어요. 저는 많이 외로웠거든요.” 
 
기사 아저씨를 다시 만나는 것이 두려웠다. 학원을 끊은 이유였다. 그러나, 사랑받은 기억은 소중했다. 아저씨의 따뜻한 표정, 친절한 말투가 그리웠다. 
 
목도리를 두를 때마다, 그녀는 마음이 따뜻해졌다. 연수는 끔찍한 기억을 뒤로하고, 좋은 기억만을 간직했던 것이다. 
 
그녀는 10년이나 지나버린 일을 들춰내기 위해, 나를 찾아온 것일까? 
 
아니었다. 
 
연수는 엄연히 현실의 문제로 고통받았다. 
 
연수의 남자가 떠났다. 어떻게든 다시 만나고 싶은 것이 그녀의 바람이다. 
 
3개월이 지났다. 연락이 닿지 않았다. 전화는 물론이고 문자 역시 무시당했다. 그럴수록 그녀는 고통받았다.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다고 말하는 그녀의 표정과 말투에서 그녀의 상실감이 전해졌다. 그녀의 교제 기간은 6개월에 불과했다. 
 
4살 연상의 남자, 제준을 크리스천 데이팅 앱으로 만났다. 눈에 띄는 외모였다. 크리스천으로 진지하게 살아가려는 그에게 끌렸다. 지금까지 만나왔던 남자들과는 ‘뭔가 다르겠지’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그녀가 만나온 남자들 중에 크리스천은 없었다.  
 
그동안 연수는 자신을 좋아해 주는 남자들과 사귀었다. “좋아한다, 사귀자”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설레었다. “내가 좋아하는 남자보다, 나를 사랑해주는 남자와 사귀자.” 그녀의 기본적인 생각이었다. 
 
제준은 신중한 남자였다. 사귀자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우리 한 번 사귀어보면 어떨까요?” 
 
연수가 먼저 물었다.
 
그녀가 먼저 남자에게 사귀자고 말한 것이 처음이었다.  
 
그가 대답했다.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제가 헤어진 지 얼마 안 되었어요. 연수 씨를 정말로 좋아하는 건지, 외로움을 달래려고 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연수 씨를 좋아한다는 확신이 들면, 제가 먼저 말할게요.”
 
그것으로 충분했다. 연수에게 제준은 사려 깊은 남자였다. 그날 이후 연수는 새벽예배를 다니면서, 제준과의 만남을 위해 기도했다. 그를 좋아하는 감정만큼 그녀의 기도 역시 간절했다. 
 
크리스마스 이브, 제준은 연수와 함께 했다. 그가 사귀자고 말했을 때, 연수는 눈물을 흘렸다. 외로움으로 고통받았던 아픔을 한꺼번에 보상받는 듯했다. 
 
두 사람은 그날 밤 함께 했다. 연수는 죄책감을 느꼈지만, 곧 결혼할 사이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연수에게 제준은 완벽한 남자였다. 하루하루가 행복할 뿐이었다. 자신 안의 상처를 온전히 이해줄 사람이라고 믿었기에, 언젠가는 진실을 말해도 괜찮을 것이라 믿었다. 
 
“나 사실 오빠에게 말 못 할 비밀이 있어. 오빠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속이고 결혼하고 싶지는 않아.” 
 
연수는 목도리에 대해 말했다. 
 
제준의 반응은 태연했다. 그는 “괜찮다”라고 말했다. 
 
연수는 홀가분했다. 제준은 몇 마디 말로, 연수를 위로했다. 평소처럼, 둘은 함께 식사하고 커피를 마셨다. 단 하나의 절차만이 생략되었다. 그날 밤, 제준은 연수를 안아주지 않았다. 
 
그날 이후 일주일 동안, 연락이 되지 않던 제준이 연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시간 되면, 잠깐 만나서 이야기 좀 하자.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연수는 제준의 무뚝뚝한 목소리에 당황했다. 손이 떨리고 가슴이 답답해 더 이상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말하고 일찍 회사를 나왔다. 
 
그녀가 찾은 곳은 병원이 아니라, 그를 만나기로 한 카페 근처 공원이었다. 숨을 쉴 수 없었을 정도로, 가슴이 답답했던 그녀는 하염없이 산책로를 걸었다. 
 
“나 도착했어. 어디야?” 
 
카페에 먼저 도착한 제준이 전화를 걸 때까지, 연수은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공원을 누볐다. 땀으로 화장이 망가져 버렸다. 공원 화장실에서 얼굴을 대충 고치고, 제준의 앞에 앉았다. 
 
그녀가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제준이 말했다. 
 
“나 오래 생각해봤는데, 우리 그만 만나는 게 좋을 것 같아. 내가 일방적으로 관계를 끊으면, 네가 오해할까 싶어 만나서 직접 설명하고 싶었어. 
 
목도리 사건,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그것 때문에 헤어지는 건 아니야. 오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너를 만나는 동안, 계속 생각해봤는데 내가 아직 이별에 대한 상처가 있는 것 같아. 너를 정말로 사랑한 건지, 아니면 내가 외로워서 너를 만난 건지 판단이 안 서거든. 
 
사랑해서 사귄 거라고 믿었는데, 점점 이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어. 더 늦기 전에, 솔직히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정말 미안해.” 
 
연수는 침묵했다. 
 
연수의 침묵이 불안했는지, 제준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없어?”  
 
“연락은 계속해도 되는 거지?” 
 
“그건 너 편할 대로 해. 그게 전부야?” 
 
제준은 당황한 듯 말했다. 
 
“응, 그게 전부야.” 
 
그러나, 제준은 연수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아마 제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궁금하실 거예요. 저는 솔직히 이별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어요. 연락이라도 받아주면, 언젠가 기회가 다시 있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연수는 제준의 말을 그대로 믿는 것 같았다. 
 
연수에게 제준은 이상적인 남자로 왜곡되어 있다. 그러나, 상식적인 관점에서 제준은 이상적인 남자가 아니라 이상한 남자다.  
 
제준이라는 남자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자기 외로움을 달래려 연수을 선택했고, 그녀가 자기 기준에 맞지 않자 자기 외로움을 핑계로 그녀를 버린 것이다. 
 
처음부터 그에게는 연수을 진지하게 만나려는 의도가 없었을지 모른다. 제준은 본능적으로 연수가 취약하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사귀자고 말한 첫날 그는 연수를 안았다. 사귀는 것과 자는 것, 어쩌면 그에게 같은 의미였을지도 모른다. 
 
목도리 사건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말도 거짓처럼 보였다. 연수가 비밀을 털어놓은 그날 밤, 그는 연수를 안아주지 않았다. 심경에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연수의 비밀을 알게 된 순간, 그가 마음을 닫지 않았을까? 
 
그의 말과 행동에서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제준이 무슨 자격으로 그녀의 상처를 이해하고 말고를 결정할 것인가? 
 
그는 진실을 말하지 않고 떠났다. 연수는 상처의 늪에 빠져버렸다. 취약한 그녀가 더욱 취약해진 것이다. 
 
나는 제준에게 한 마디 말도 건넬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그녀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과거로 돌아가자. 그녀는 누구인가. 그녀는 어떤 인생을 살았는가. 무엇이 그녀를 취약하게 만든 것인가. 목도리 이전의 사건들을 알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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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미친년은 왜 여기 서 있어. 걸리 적 거리게.” 
 
할머니는 분을 못 참고, 어린 연수의 뺨을 후려쳤다. 
 
“왜 애한테 화풀이를 하세요!” 
 
그녀의 엄마가 할머니에게 달려들었다. 두 사람은 격한 몸싸움을 했다. 
 
연수의 나이 여섯 살, 잊을 수 없는 기억이라고 말했다. 
 
그녀의 가족은 친할머니 댁에서 더부살이를 했다.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져서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자기 가족을 어머니에게 맡겨놓고 밤늦도록 일에 매달렸다. 고부 갈등 따위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아버지가 밤늦도록 일에 매달리는 사이, 집안은 아수라장이었다. 할머니는 아들에 대한 분풀이를 며느리에게 쏟아부었다. 엄마는 질세라 할머니에게 덤벼들었다. 엄마의 잘못이라면, 무능한 남자와 결혼한 것뿐이었다. 
 
그녀의 엄마와 할머니가 격하게 다투는 날이면, 살림살이가 허공을 날아다녔다. 어린 그녀는 방구석에 움츠러들어,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울었다. 한바탕 소동이 나면, 어린 그녀는 엄마에게 다가가 엄마 무릎에 앉았다. 
 
딸을 안아줄 여유가 없었던 엄마는 연수을 땅에 내려놓고, 뒤돌아 앉았다. 
 
엄마가 뒤돌아 앉은 날이면, 그녀는 할머니 감정이라도 풀어보려는 듯, 할머니를 주변을 서성거렸다. 할머니는 그녀를 차가운 눈으로 쏘아보았다. 
 
그런 날의 반복이었다. 
 
감정이 사그라들지 않았던 할머니는 며느리가 보라는 듯이 어린 손녀의 뺨을 후려친 것이다. 
 
어린 그녀는 균형을 잃었다. 옆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