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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나를 돌보는 시간

한 번 떠났던 사람은, 두 번 떠날 수 있어요

“내 상처 때문에 
그 사람을 힘들게 했어요. 
 
더 나은 사람이 되어서, 
그 사람을 다시 만나보고 싶어요.” 
 
당신 안의 외로움이 
당신을 비난하고 있어요. 
 
당신의 일방적인 잘못으로 
헤어진 것처럼 말하거든요. 
 
한 사람만의 잘못으로 
헤어질 수 없어요. 
 
당신의 상처로 
그 사람이 힘들었던 만큼, 
당신도 그 사람 때문에 힘들었어요. 
 
이별의 모든 책임이 
당신에게 있는 것처럼 말하지 마세요. 
관계를 깨뜨린 건 그 사람이에요.
 
당신은 그 사람이 그리운 거예요. 
다시 만나고 싶고, 
다시 사랑받고 싶은 심정이 전해져요. 
 
그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감정을 
억제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 사람을 찾아가느냐 마느냐는 
오롯이 당신의 선택이에요. 
당신의 선택을 존중해요. 
 
다만, 당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을 되찾고 싶어, 
당신이 아닌 모습이 될까 
걱정스러워요.
 
있는 모습 그대로의 
당신을 사랑해 주세요. 
 
그리고, 
있는 모습 그대로의 당신을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세요. 
 
한 번 떠났던 사람은, 
두 번 떠날 수 있어요. 
 
또다시 당신을 버릴 기회를 
주지 마세요. 
 
이 세상 그 누구도 
당신을 두 번 버릴 수 없어요.  
 
마약을 끊을 때 
금단현상이 일어나듯이,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면 
정서적 금단현상이 일어나요. 
 
당신이 식은땀을 흘리며 
괴로움에 눈물 흘릴 때, 
예수님이 당신의 손을 
잡아 주실 거예요. 
 
한순간도 
당신 곁을 떠나지 않고 
당신을 보살펴 주세요. 
 
잠시 괴로운 시간이 지나면, 
당신 안의 그리움의 독기가 
빠져나갈 거예요. 
 
이별의 고통을 이겨낸 당신은, 
생존자예요.   
 
다른 사람이 원하는 당신이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의 당신이 되어주세요. 
당신은 이미 충분해요.   

조용히 사라지는 거야

“잊힐까 두려워. 
두려워 미칠 것 같아.” 
 
네가 주인공이구나.
그러면, 못 견뎌. 
 
태어나서 지금까지 
영원한 주인공을 본 적 있어?
 
없잖아. 
너라고 예외일 수 없어. 
 
주인공이 되고 싶으면
그렇게 해. 
 
위태로운 사치를 
잠시 잠깐 즐길 테니까.
 
진실은 간단해. 
사람들은 널 잊을 거야.
몸부림쳐도 소용없어. 
 
하지만, 기억해.
하나님은 널 잊지 않아. 
처음부터 지금까지 영원토록. 
 
이쯤에서 인정할까?  
주인공은 하나님이야. 
 
네가 든 조명으로 
예수님을 비춰드려. 
 
팔은 아파도 
마음은 편할 거야. 
 
배터리가 닳아서 
조명이 꺼지면
미련 없이 사라져. 
 
다음 사람이 
생생한 조명으로 
예수님을 비출 거야. 
 
조용히 사라지는 거야.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인정하면, 편해져. 
공황도 사라지고 
불안도 사라지거든.
 
그리고, 
가끔 편안하게 잠들어.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요한복음 3:30>

과거를 그리워할 필요 없어

“열정이 식었어.
뜨거웠던 시절이 그리워.”  
 
봄바람은 봄에만 불어. 
겨울에는 불지 않아. 
 
성령의 바람은 
하나님이 몰고 와. 
 
선풍기를 켜듯, 
간단한 게 아니야. 
 
민들레 씨앗은 
바람을 탄데. 
 
그러다, 
땅에 내려앉아
뿌리를 내린데. 
 
뿌리를 내린 씨앗은 
바람만으로는 못 자라.
 
땅속으로 파고들어 
양분을 당기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은혜를 구걸하지 마.
 
씨앗이 뿌리를 내리듯 
성경에 파묻혀. 
 
한 장 한 장 
성경을 넘기면 
바람이 불 거야. 
 
어디서 어떻게 불어오는지 모르는 
성령의 바람. 
 
종이 한 장이 일으키는 바람이 
너의 가슴을 뛰게 할 거야. 
 
과거를 그리워할 필요 없어. 
오늘 부는 바람으로  
훨훨 날아올라 뜨거워질 테니.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요한복음 3:8>

너라서 버틴 거야

“용서가 힘들어. 
슬퍼서 눈물 나.” 
 
울고 싶으면 울어. 
넌 그럴 자격 있어. 
 
약한 거 아니야. 
너라서 버틴 거야. 
 
지금까지 잘 했어. 
여기까지 잘 왔어. 
 
이제, 
하나님 차례야. 
 
천 배, 만 배로 
하나님이 갚아주실 거야. 
 
요셉이 큰 소리로 우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창세기 45:2> 

나는 갈등이 싫어요

나는 갈등이 싫어요.
혼자 참아요.
 
거절당할까 두렵고.
버림받을까 두렵고.
상황 달라질 리 없고.
그러니까 참죠.
 
가끔 답답해요.
나를 너무 쉽게 보는 거 아니야.
나를 얼마나 우습게 생각하면
저런 말을 하지.
말 안 하니까 더 그러나.
 
마음 단단히 먹고 내 말 하고 싶죠.
교회에서 배운 게 있잖아요.
순종해라. 참아라.
빛과 소금 되라.
말문이 막혀요.
 
뭐가 옳은 걸까요.
평생 이렇게 살 수는 없잖아요.
이러다 내가 죽겠어요.   
 
참지 마세요.
뭣 하러 참아요.
생각나는 대로 말하세요.
그 사람 상처받는 말든 독한 말 쏟아부으세요.
 
내가 상처받았는데
다른 사람 배려할 일이 뭐예요.
욕하고 싶으면 욕하고
소리 지르고 싶으면 소리 지르세요.
 
그 사람 말고 하나님께.
놀라셨죠?
하나님께 먼저 말하세요.
사람 말고.
 
복싱으로 몸 푸는 사람
샌드백 먼저 쳐요.
프로 선수는 감정으로
주먹 휘두르지 않아요.
상대방의 움직임을 보고
정확히 주먹을 꽂아요.
 
자기 생각 말하기 전에
샌드백 먼저 치세요.
하나님, 이 말 해야 할까요.
잽 잽 잽.
그래, 이번에는 말하자.
라이트 훅.
그래, 이번에는 참자.
블로킹.
 
사람이 내 마음 알아주나요.
어림없어요.
기대한 만큼 실망해요.
하나님이 내 마음 알아주시죠.
솔직히 말하세요.
 
하나님 앞에서
다른 사람 욕하는 게 이상한 가요.
하나님 앞에서
착한 척하는 게 더 이상해요.
 
시편 자세히 읽어보세요.
다른 사람 욕으로 꽉 찼어요.
참 신기하죠.
욕으로 시작한 기도가
찬양하는 기도로 끝나요.
하나님께 말하고 털어버리는 거죠.
원수를 대신 갚아주신다는 데
다른 말 더 필요한가요.
 
하나님께 말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질 거예요.
마음이 편해지면
판단할 수 있을 거예요.
이건 말해야 한다.
이건 말할 필요 없다.
 
절대적인 기준 없어요.
말 많이 하는 사람에게는
참으라고 하실 거고
말 안 하고 참는 사람에게는
참지 말라고 하실 거예요.
 
잘못된 판단이면 어떻게 하냐고요.
괜찮아요. 정확한 판단은 못 내려요.
실수해도 하나님이 돌봐주세요.
우리 하나님 해결사예요.
 
가시 빼고 말하는 사람 당당해요.
감정에 휘둘리지 않거든요.
거절 당해도 타격 없어요.
 
그냥 그랬다는 거죠.
그래서 화났다는 것도 아니고.
의도는 없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는 데
상대방이 뭐라 말하겠어요.
내가 느낀 감정인데
그렇게 느끼지 말라 하겠어요.
 
꾸준히 샌드백을 치세요.
나도 쉬지 않고 샌드백을 쳐요.
못한 말 산더미 같은데
어디 말할 데가 없어서.
한바탕 땀 흘리면 시원해져요.
 
가끔 링 위에 오르잖아요.
내던진 주먹 빗나가도 자책 마세요.
용기 내서 주먹 날린 자신을 축하해주세요.
 
역습 당해 쓰러지면 어떻게 하나고요.
열 셀 때까지 일어나면 되죠.
만약 못 일어나면요?
괜찮아요. 누워서 잠시 쉬세요.
 
패배를 깔끔하게 인정하는 사람,
그 사람이 진정한 승자에요.
더욱 강해져 돌아올 테니.

예수님이 멀게 느껴져요

예수님만 바라보라고 하잖아요.
나는 그 말이 뭔지 몰라요.
예수님이 친밀하지 않아요.
멀게만 느껴지고.
 
사람들하고 기도하면서 같이 울잖아요.
같이 울어도 똑같이 우는 게 아니에요.
내 눈물은 성분이 달라요.
감사해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에요.
서러워서 흘리는 눈물이에요.
 
왜 나를 만들었나.
왜 나만 차별하나.
서럽고 외로워서 눈물만 흘러요.
어떻게 해야 주님을 만날 수 있나요.
방법을 알고 싶어요.
 
상투적인 말부터 해야겠네요.
지루하더라도 참고 들어주시겠어요?
듣다 보면 남는 건 있을 거예요.
 
데이트해보셨지요.
상대방을 알아가는 과정이 있어요.
그 사람이 누군지 알아야 해요.
그 사람이 했던 말과 행동.
그 사람의 태도와 감정.
알면 알수록 좋아요.
 
친구들을 만나보는 것도 좋겠죠.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에 대해
뭐라 말하나 들어봐야죠.
 
주변 사람들이 하나같이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운다면
좋은 사람이란 뜻이죠.
 
결혼을 전제로 만난다면
더욱 신중해야겠죠.
섣불리 결론 내리면 안 돼요.
따질 건 전부 따져봐야죠.
 
예수님도 마찬가지예요.
신랑을 고르는 것과 비슷해요.
많이 알면 알수록 좋아요.
따질 건 전부 따져보세요.
 
예수님이 하신 말,
예수님에 대한 말,
모두 성경에 있어요.
신중하게 읽고 생각하세요.
 
예수님에 대해 알았다고 해서
바로 믿어지는 건 아니에요.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려면
성령님의 도움이 필요해요.
 
마른 장작에 불을 붙여야죠.
그래야 활활 타오르니까요.
성령님이 불을 붙어주시면
고백할 수 있어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나는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까요.
설명하기 힘들어요.
어느 날, 예수님이 찾아와 주셨어요.
 
나도 혼자라고 생각했어요.
아무도 날 지켜주지 않았으니까요.
저러다 애 죽겠다 싶으니까
급하게 찾아 오셨나 봐요.
조금만 늦게 오셨어도 나는 세상에 없겠죠.
간신히 살았어요, 정말로.
 
바로 질문하겠죠.
왜 나에게는 안 오시나요?
나도 믿고 싶은데.
사람 차별하는 것도 아니고.
 
혼자라고 느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예수님은 차별하지 않으세요.
예수님은 당신 곁에 오셨어요.
당신도 혼자가 아니에요.
 
당신이 내 앞에서
혼자라고 말하면서 우는데
이상하게 나는 불안하지 않아요.
이제야 알 것 같아요.
당신의 진심을.
 
당신은 그리워하고 있어요.
예수님과 친밀했던 그 시절을.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것처럼 말해서
정말 그런 줄 알았어요.
내가 잘못 알아들었어요.
주님의 따뜻한 품이 그리운 거예요.   
 
처음부터 당신의 마음을 알았다면
길게 말하지 않았을 거예요.
내가 무뎠어요.
 
이제 알았으니 부탁할게요.
조급할 필요 없어요.
기다려주세요.
주님이 다시 만나주실 거예요.
 
옛사랑을 그리워하는 당신이 아니라
오늘 주신 사랑으로 설레는 당신이 되기를
나는 바랍니다.

가슴이 답답해 숨을 쉴 수 없어요

차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가슴이 답답했어요.
숨을 쉴 수가 없어 중간에 내렸어요.
 
10년 동안 해왔던 일이
적성에 안 맞아서 다른 일을 배웠어요.
용기 내서 새출발했어요.
 
막상 현실이 되니
내가 원했던 삶이 아니었어요.
잘못 했다 싶은데 늦은 거죠.   
 
되돌릴 수도 없고 답답해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내가 원했던 삶이 뭐였나 싶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와, 반가워요.
우리 친구네요.
 
요즘 나도 비슷한 고민해요.
나도 작년에 회사를 옮겼거든요.
목회했던 교회에서 김유비닷컴으로.
미안해요, 웃길 의도는 없었어요.
 
나도 요즘 가슴이 답답해요.
누가 구둣발로 가슴을 짓밟는 것 같아요.
작년부터 그랬거든요.
 
새로운 일 시작한다고
교회 떠나 밖으로 나왔을 때
두세 달 그랬어요.
없어졌나 싶었는데 다시 시작되네요.
 
상담하는 사람마저 그러면
어떻게 하냐고 묻고 싶겠죠.
내가 자주 말했잖아요.
내가 잘나서 상담하는 게 아니라고.
 
상담실 안에 나는 내가 아니에요.
상담실 밖에 내가 진짜 나예요.   
하루 종일 무슨 생각할까요, 나는.
 
하루 종일 걱정이에요.
걱정에 걱정이 꼬리를 물죠.
한 번 시작되면 숨 막혀 죽어요.
가슴이 터질 것 같아요.
 
수도꼭지를 잠그듯이
생각을 잠가야 해요.
잠그지 않으면
걱정으로 홍수 나서 떠내려가요.
 
어떻게 생각을 잠그냐고요?
생각의 방향을 바꾸는 거죠.
나 자신과의 대화를 시도해요.
 
너 자꾸 협박하는데
나 뭐 하나만 물어보자.
근거는 있냐? 없지?
근거도 없는데 말한 거지.
나 참, 기가 막혀.
네가 말을 너무 잘해서 속았잖아.
이 사기꾼 놈아.
 
조금 부족하죠?
그래도 사기꾼에게 벗어날 수 있어요.
고개를 돌릴 여유는 생겨요.
바로 옆 주님이 안 보였거든요.
 
사기꾼에게 들은 말을
그대로 주님께 전해보세요.
뭐라고 말씀하시나.
다른 말씀해주세요.
 
너 혼자 아니야.
내가 같이 있잖아.
내가 너 책임질 거야.
내가 너 지켜줄 거야.
 
무한 반복.
듣고 또 듣고
듣고 또 들어요.
가슴 통증 사라질 때까지.
 
완전 해결 안 돼죠.
또다시 가슴 통증.
예수님 말씀 반복.
다른 방법 없어요.
 
가슴이 답답하다고 했지요?
고통을 겪는 인생에는 당신과 나.
아무런 차이가 없어요.
 
단지 나는 나를 돌볼 뿐이에요.
더 이상 나를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아요.
내가 나를 돌보지 않으면
아무도 날 돌봐주지 않잖아요.
 
당신도 그럴 거예요.
당신을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결국 날 보러 왔잖아요.
미안하지만, 나는 당신을 못 돌봐요.
 
주님은 당신 안에 계세요.
당신 안에 계시는 주님과 대화하는 게
자신을 돌보는 거예요.
사기꾼과 대화하지 마시고
주님과 대화해주세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질문하셨죠?
그건 나도 몰라요.
막막한 인생 과연 달라질까요.
어떻게라고 질문하지 말고
왜라고 질문해주세요.
조금 나아질 거예요.
 
인생 막막할수록
예수님 목숨보다 소중했던 당신을
정성스럽게 돌봐주세요.
 
내가 혼자가 아니듯이
당신도 혼자가 아니랍니다.

생각보다 오래 걸릴 거야

목사님,
사실 제가  떳떳하지 못해요.
안 좋은 습관이 있거든요.
끊어야 하는데 아직 못 끊었어요.
 
죄책감이 심해요.
순종하면 달라질까 싶어
몇 번 시도해봤는데
계속 실패하네요.
 
예배 시간에 앉아 있기 힘들었어요.
다른 사람 모두가 편하게 듣는 말을
편하게 들을 수 없었거든요.
낙오자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교회를 떠났어요.
이대로는 안된다.
고치고 다시 오자.
마음 먹었죠.
 
혼자 고민하다
용기를 내서 말했어요.
친구가 말하더군요.
 
그렇게 자꾸 미루면 안 돼.
마음 단단히 먹고 끊어.
계속 그렇게 변명하지 마.
하나님이 참는 것도 한두 번이야.
 
마음이 아팠어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집에 와서 알게 되었어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나도 알아.
몰라서 그러는 거 아니야.
그래서 어떻게 하라고.
나도 끊고 싶다고 했잖아.
쉽게 안된다고 말한 거야.
이 바보야.
 
어려운 주제를 가져오셨네요.
쉽게 대답하기 어려워요.
솔직히 이야기해주신 덕분에
당신의 진심은 알았어요.
 
교회를 떠났다는 게
걱정되고 불안하기는 해요.
다시 돌아가기로 한 거니까
조급하게 굴지는 않을게요.
 
대신 부탁이 있어요.
예수님은 떠나지 말아주세요.
예수님과 함께 있어주세요.
 
부모님께 인정받고 싶어서
집 나가 성공하겠다는
계획은 실패할 거예요, 아마.
자식 걱정에 처마 밑에 앉아
먼 산 바라보는 부모님 모습은
보이지 않을 테니까.
 
사람 생각하지 마세요.
교회 생각하지 마세요.
오직 예수님만 생각하세요.
그분만이 당신의 진심을 알아요.
당신의 진심을 전하세요.
 
진심을 전하셨나요?
그래요. 잘 하셨어요.
이제 용기를 내세요.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가세요.
 
발이 떨어지지 않을 거예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한 걸음 떼세요.
조금만 가까이 가요, 우리.
 
가까이 가면 볼 수 있어요,
당신을 바라보시며
따뜻하게 웃으시는 예수님 얼굴.
그가 당신을 안아주며 말씀하세요.
 
얘야, 조급할 필요 없단다.
나는 기다릴 수 있단다.
생각보다 오래 걸릴 거야.
자책하지 말아주렴.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이 틈에 숟가락 하나 얹어도 될까요.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아, 그렇군요.
오늘 다시 태어난 걸로 하죠.
 
지난 30년 동안 상처받고 살았으니까
오늘부터 당신에게 30년 시간 주세요.
상처받으며 살아온 시간만큼
상처 아무는데 시간 걸려요.
 
나도 마음속에 달력 있어요.
조급하지 않을 거예요.
비난하지 않고 자책하지 않고
나를 돌봐줄 거예요.
 
떨리는 손으로
달력을 한 장 한 장 찢어 넘기며
나는 기도합니다.
 
달력 뒤에 벽을 만나 절망하기 전에
예수님이 먼저 오시기를.
 
지친 이 삶을 뒤로하고
주님 품에 안겨 안식하기를.

우리 헤어질 시간이에요

내 이야기 들어줄 사람 없어요.
내 말을 중간에 끊어요.
자기 생각만 말해요.
 
네 잘못도 있겠지.
그 사람이 오죽하면 그래.
나라도 그랬겠다.
아픈 말이 화살처럼 날아와
상처에 꽂혔어요.
 
더 이상 말하지 말자
다짐해보지만 못하겠어요.
가슴이 터질 듯 답답해요.
 
내가 사람 많이 의지해요.
처음에 잘해주던 사람도
하나 둘 날 떠나요.
내가 부담스러운가 봐요.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한다고.
 
오늘은 안심하세요.
내가  들어줄 수 있어요.
내가 좋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잘 듣는 기술을 가진 사람이라서 그래요.
 
내가 들어보니
사람들이 모르는 게 있네요.
당신이 누군지 몰라요.
당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당신이 들려준 말을 정리해 볼게요.
어릴 때 부모님이 서로 때리고
물건을 집어던지며 싸웠다고 하셨죠.
 
부모님이 싸우면 당신은 무서워서
침대 밑에 웅크리고 숨었어요.
머리를 땅에 박고 벌벌 떨면서 울었어요.
 
엄마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침대 아래 숨어 있는 당신과
두 눈이 마주한 순간
당신은 집 밖으로 뛰쳐나갔어요.
 
길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경찰에 신고해달라고 했지요.
아무도 신고해주지 않았고요.
그때 나이 7살이라 했나요.
 
나는 지금 당신이 7살로 보여요.
키는 자랐어도 정서는 자라지 않은 거죠.
 
내 팔을 붙잡고 말하고 있어요.
경찰에 신고해달라고.
어떤 방식으로든 도와달라고.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뿌리칠 뻔했어요.
당신이 누군지 몰랐다면,
당신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면,
나도 그럴 뻔했어요.
 
사람들은 당신의 얼굴을 보겠죠.
그리고 거리를 두겠죠.
다 큰 어른이 제구실을 못한다고.
비아냥거릴지도 몰라요.
길가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은
당신을 도와줄 수 없어요.
 
하나만 물어볼게요.
경찰을 찾은 이유가 뭔가요.
경찰이면 도와줄 수 있다고 믿으신 거죠?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안전한 사람이 필요했던 거예요.
그때나 지금이나.
 
당신 말 끝까지 들어줄 사람 세상에 없어요.
사람들은 이미 귀를 닫은 것 같아요.
 
내가 지금 잘 들어준다고 해서
나를 의지하지 마세요.
상담이 끝나면 들어줄 수 없어요.
상담은 영원하지 않으니까요.
 
나는 당신을 그리스도에게로
연결시킬 거예요.
 
두려워 울부짖으며
길가로 뛰쳐나온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품으로
곧바로 달려가 안길 수 있도록
내 모든 노력을 집중할 거예요.
 
얼마나 무서웠니.
얼마나 외로웠니.
이제 괜찮아.
 
나는 보고 싶어요.
당신이 그리스도의 품에 안겨
편안하게 웃는 모습을.
 
당신이 그 품에 안기면
내 역할은 끝나요.
우리 헤어질 시간이 다가와요.
 
떠나보낸 슬픔보다
바라보는 기쁨이 크기에
나는 오늘도 우두커니 당신을 기다립니다.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아요

결혼에 한 번 실패했어요.
혼자 아이를 키우는데 힘들어요.
외로워 견딜 수 없어요.
 
참고 살아보고 싶었어요.
남편의 폭력이 시작되었을 때
더 이상 안되겠다 싶었죠.
혼자 아이를 키우며 사는 게
이렇게 힘든 건지 몰랐어요.
 
아이한테는 미안하지만
나는 누군가를 계속 만나야 해요.
좋은 아빠를 찾아줘야죠.
아이와 날 책임질 사람.
 
사랑?
그런 건 바라지도 않아요.
감정보다 중요한 건 현실이에요.
나는 사랑에 실패했잖아요.
외롭지만 않으면 돼요.
 
이제 누구라도 나와 내 아이를
받아줄 수 있다면 좋겠어요.
같이 있으면 지금보다
외롭지는 않겠죠.
 
누군가를 만나면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거라는 말,
진심인가요.
 
조급한 당신이 혹시라도
지금보다 외로워질까 걱정돼요.
 
결혼해서 당신은 외로웠어요.
혼자일 때보다 더 고통받았어요.
결혼이 당신을 외로움에서
구원해줄 수 없다는 뜻이에요.
 
실패했다고 좌절하지 않았으면 해요.
실패가 아니에요.
당신 잘못도 아니에요.
오히려 당신은 폭력에서
아이를 구해 낸 영웅이에요.   
 
샴페인을 터뜨릴 수는 없어요.
전쟁 영웅의 뒷모습이
트라우마로 얼룩져 있듯이
당신의 삶 역시
상처로 고통스러울 거예요.
 
모진 말 같지만
진실을 말하고 싶어요.
불편하시면 언제든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외로움은 사라지는 감정이 아니에요.
이 세상 사는 동안
당신을 따라다닐 거예요.
 
갈등 많은 부부는 서로의 관계가 회복되면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진실이 아니에요.
 
부부가 행복해도 외로울 수 있어요.
나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지는 몰라도
외롭지 않은 게 아니에요.
외로워요.
말할 수 없이 외로울 때가 있어요.
내 아내도 그럴 거예요, 아마.
 
이유는 설명 못해요.
알 수 없어요.
그냥 그런 거예요.
 
부부가 서로만 바라보고
전혀 외롭지 않다면
하나님을 찾을 수 없어요.
서로만 바라보면 답이 없어요.
서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라고
외로운 감정을 주셨나 봐요.
 
마음속 깊은 곳에   
부부 각자의 나침반을 숨겨두신 거죠.
하나님을 더듬더듬 찾아가도록.
 
외로움은 스스로 돌봐야 해요.
아무도 해결해 줄 수 없어요.
돌보는 게 힘드니까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사람 있어요.
영원히 외로울 수 있어요.
다른 대상으로 해소하는 사람 있어요.
반드시 부작용 나요.
 
외로움을 스스로 돌보면서
아닌 사람은 일단 떠나보내세요.
정말로 원하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힘들어도 견디세요.
 
당신은 알게 되었어요.
누구를 만나면 안 되는지.
당신을 때리는 사람을 만나면 안 돼요.
만나자마자 알 수 없어요.
그러니 조급하면 안 돼요.
 
원하는 사람과 새로운 삶을 시작해도
자신 안에 외로움을 계속 돌봐야 해요.
나 대신 내 외로움을 달래줄 배우자는
세상에 없어요.
 
나 그동안 혼자 외로웠다.
이제 당신이 채워줘라.
그래서 우리 결혼했다.   
서로 외로워져요.
 
자신을 잘 돌봐주세요.
자신을 돌보면서 배우자도 돌봐주세요.
적어도 내 옆에서는 외롭지 않도록.
그래야 서로 외롭지 않아요.
 
내가 잠시 떠든 입바른 소리로
당신이 위로받지는 못했을 거예요.
나도 말하는 내내 미안했어요.
그래서 불편하면 내 말을 끊어달라고 부탁했어요.
끝까지 내 말 들어줘서 고마워요.
 
마음속 외로움 때문에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을 만나면서
당신이 비참해지지 않기를 바랐어요.
 
먼저 자신을 돌봐주세요.
정말로 원하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참고 기다려주세요.
 
백마 탄 왕자는 아니어도
자기를 돌볼 수 있는 남자,
아내를 돌볼 수 있는 남자,
그런 남자가 당신 앞에 나타나기를 바랄게요.

당신은 좋은 부모가 될 수 없어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아요.
용서했지만 친밀해지기 힘들어요.
그냥 그런가 보다 해요.
어쩔 수 없으니까요.
 
나도 엄마가 되었어요.
아이가 어릴 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말이 통하지 않아요.
아이가 날 원망하면 어떻게 하죠.
엄마가 내 인생 망쳤다고.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어요.
나처럼 키우고 싶지 않아서
최선을 다했는데
결국 이렇게 돼버렸어요.
 
나 때문이에요.
내가 상처 없이 자랐다면
내가 사랑받고 자랐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거예요.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당신은 좋은 엄마예요,
라는 말은 안 할게요.
그런 말 많이 들었을 거예요, 아마.
가벼운 위로는 안 하고 싶어요.
 
그 대신 질문할게요.
당신은 당신 엄마보다 좋은 엄마인가요.
네,라고 말씀하셨어요.
나도 동의해요.
당신은 노력했어요.
 
내가 당신의 말을 잘 이해했다면
당신은 희망을 품고 날 찾아온 거예요.
그 마음을 잘 표현하면 이런 뜻이에요.
나는 지금보다 더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
 
지금까지 아이를 잘 키우다가
특정한 상황에 놓여
잠시 절망하신 것 같아요.
지금이 힘든 거예요.
지금까지 잘 견뎌주셨어요.
 
앞으로 어떻게 할까 알려드리고 싶은데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어요.
 
좋은 부모가 되는 방법
나는 몰라요.
내가 좋은 부모가 아니라서요.
어쩌면 당신보다 내가 더 심각한 상황일지 몰라요.
아이들을 끌어앉고 절벽으로 뛰어내렸으니까요.
아빠로서 죄책감이 심해요.
 
가끔 상상을 해요.
누군가 다가와서 말해요.
너는 상처가 많아서 좋은 아빠가 될 수 없어.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가 있어.
내가 화내며 대꾸하겠죠.
 
상처받으며 산 건도 억울한데
상처 때문에 좋은 아빠가 될 수 없다니요.
어릴 때 맞은 매보다 그 말이 더 아파요.
차라리 나를 벌거벗겨 놓고
온몸이 파래질 때까지 때리세요.
그게 덜 아플 것 같아요.
나한테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에이, 말이 그렇다는 거죠?
누가 그런 나쁜 말을 하겠어요.
다들 상식이 있는데.
 
남 일이라고 쉽게 생각하시네요.
내가 나한테 자주 그런 말해요.
애써 부인해보지만 사실이에요.
내 상처 때문에 좋은 아빠 되기 힘들어요.
내가 살면서 느껴요.
 
아무도 모를 거예요.
내가 얼마나 못난 아빠인지.
애들만 생각하면 눈물이 흘러요.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하겠어요.
내 몸에서 나쁜 피를 전부 뽑아내고
새로운 피로 바꿔서라도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어요.
 
나중에 깨달았어요.
그럴 필요 없다는 사실을.
이제 내 몸에는 새로운 피가 흐르거든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그 보혈의 능력으로
나는 새로운 혈액형을 받았죠.
 
내 아이들은 나의 피를 물려받지 않아요.
내 아이들의 몸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흘러요.
그 피로 심장이 뛰고
그 피로 키가 자라고
그 피로 강해질 거예요.
 
예수님을 사랑하는 엄마,
기도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당신 덕분에
아이들은 당신처럼 자라지 않을 거예요.
예수님처럼 자랄 거예요.
 
예수님 닮은 당신을 통해
당신의 아이가 예수님 닮기를
나는 간절히 바랍니다.

당신은 답을 알고 있어요

사귀던 남자에게 상처받고
다시는 남자를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오랜 시간 혼자 지냈죠.
결국 다시 남자를 만났어요.
나는 왜 나 좋다는 사람
거부할 수 없을까요.
누군가를 먼저 좋아한 적이 없어요.
나 좋다는 사람 만났어요.
 
그동안 주님 안에서
성장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전혀 성장하지 못했어요.
똑같아요. 그대로예요.
 
그 사람을 온전히 믿지 못해요.
계속 확인하고 싶어요.
나를 어디까지 받아줄 수 있을까.
이 정도는 받아주겠지.
받아주면 또 시도해요.
이건 못 받아줄 거야.
그런 식으로 여러 사람 떠났어요.
 
상처 주고
상처받고
다시 외로워지고.
이제 지쳤어요.
더 이상 못할 것 같아요.
차라리 혼자가 나아요.
 
잠시만요.
급할 것 없어요.
조금만 천천히 대화해요, 우리.
 
당신 마음 느껴져요.
내 마음이 아파요.
조심스럽게 내 생각 말해도 될까요.
 
나는 왜 당신이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고 느껴질까요.
전혀 성장하지 못했다고
혼자가 차라리 낫다고 말하지만
진실이 아닌 것 같아요.
억지 위로가 될까 두렵지만
솔직히 말하고 싶어요.
 
당신은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어요.
 
자기 문제 스스로 
인식하기 어려워요.
 
문제와 자신이 섞여서 
분리되지 않아요.
 
당신은 문제가 보이나 봐요.
그건 성장이에요.
 
당신은 답도 알고 있어요.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낸 거죠.
당신은 답을 말하고 있어요.
아무도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거예요.
당신 안의 그 지독한 외로움을.
 
그다음은 뭘까요.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거예요.
 
오직 그리스도 한 분으로
마음속 빈자리를 
채우고 싶은 거예요.
 
당신이 맞아요.
백 퍼센트 옳아요.
 
하지만, 답을 안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에요.
쉽지 않아요.
 
답을 몰라서 힘든 게 아니라
과정이 힘들어서 힘든 거예요.   
 
조급할 필요 없어요.
당신에게는 시간이 필요해요.
아주 많이.
다른 사람 보다 많이.
 
당신 잘못 아니지만,
당신이 사랑받으며 
자랐다고 말하기 어려워요.
 
부모에게 절망한 당신은
남자에게 희망을 걸었어요.
자신이 이룰 가정을 꿈꿀 수 있으니까요.
 
마지막 남은 희망마저 내려놓은
당신은 얼마나 불안하고 고통스러울까요.
 
희망이 사라졌다고 절망하지 마세요.
그 희망은 낡은 희망이에요.
새로운 희망이 다가왔어요.
 
새로운 희망을 드릴게요.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유일한 희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지요?
그 고백이 당신을 치유할 거예요.
 
내 마음에 물통이 하나 있어요.
물을 부으면 물이 새요.
구멍이 너무 많아서.
 
나는 구멍 없는 물통을 
받고 싶었는데
내가 받은 물통은 
처음부터 구멍이 많았어요.
 
누구를 탓할 수 있나요.
그건 주어진 거예요.
내가 선택할 수 없었어요.
 
선택할 수 있었다면 
구멍 없는 것을 골랐겠죠.
 
나중에 알았어요.
구멍을 탓하고 있으면
물이 금방 말라 버려요.   
나만 손해죠.
끔찍한 고통이 반복되니까요.
 
나는 구멍을 탓하지 않기로 했어요.
쉬지 않고 물을 부었어요.
부어도 부어도 바닥이 드러날 듯
빠르게 물이 빠져나가지만
포기할 수 없었어요.
더 열심히 했죠.
 
손목 아프고 손에 물집 잡혀서
주전자를 놓쳤어요.
너무 속상해서 고개를 떨구고 있는데
세상에나 비가 내려요.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폭포수 같은 장대비가 쏟아져 내려요.
나 처음으로 하늘에 난 구멍을 봤어요.
그 사이로 엄청난 비가 내렸어요.
 
내 마음에만 구멍 난 거 아니에요.
하늘에도 구멍 났어요.
그 틈으로 주님이 오셨지요.
그 덕분에 난 살았고요.
 
당신 마음에도 구멍이 보여요.
하늘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이
구멍 난 손으로 당신의 손을 잡아주실 때
폭포수 같은 사랑이 쏟아져 내리기를
나는 바랍니다.

과거로 돌아갈까 두려워요

여러 번 삶을 포기한 적이 있어요.
극단적인 선택을 했어요.
다행이죠. 죽지 않고 살았어요.
 
절망뿐인 나에게
누군가 예수님을 전해줬어요.
살아갈 소망을 얻었죠.
 
이제 막 1년 지났어요.
지금이 너무 좋은데 가끔은 두려워요.
예전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하지.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무너지고 싶지 않아서.
쓰러지고 싶지 않아서.
버티고 견디고 참아요.   
 
고마워요, 용기 내줘서.
당신 덕분에 깨달았어요.
내가 요즘 왜 힘들었는지.
이제 알게 되었네요.
 
먼저 사과하고 싶어요.
내가 조급했어요.
조언을 구하는 줄 알았어요.
방법을 알려주면 될 줄 알았죠.
 
그게 아니었어요.
당신에게는 같이 있어줄 사람이 필요했어요.
아주 잠시 동안이라도
괜찮다고 다독여주며 함께 있어줄 사람,
그런 사람이 필요했던 거예요.
 
솔직히 말해줘서 고마워요.
실망해서 조용히 문 닫고 나갔으면
나는 영원히 몰랐을 거예요.
당신이 말해줘서 알았어요.
 
나도 솔직해지고 싶어요.
요즘 마음이 답답했어요.
몸과 마음이 지쳐갔죠.
탈진이라고 하나요.
 
내가 원하지 않았는데
목회할 때처럼 바빠졌어요.
가야 할 곳이 늘어나고
만날 사람이 많아지고
해야 할 일이 쌓여갔죠.
 
나는 바빠지면 불안해요.
뭔가를 놓치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러면 안 되는데
정말 그러면 안 되는데
한 사람을 마주한 게 아니라
일정을 해치우고 있었나 봐요.
 
차분해야 했는데 나는 분주했어요.
요 며칠 예수님 대신
내가 상담했을 거예요, 아마.
가슴에 뭐가 걸린 것처럼 답답했어요.
이유를 몰랐죠.
 
당신 때문에 알게 되었어요.
내가 해결하려고 했구나.
능력 없는 내가 마음이 앞서
해결하려 드니 꼬이기 시작한 거예요.
참 어리석죠.
매번 같은 실수를 하네요.
 
그래도 다행이에요.
예수님이 당신을 보내주셨어요.
당신이 예수님을 다시 모시고 들어올 때까지
예수님은 상담실에 계시지 않으셨어요.
나는 그것도 모르고 그저 열심히 했네요.
바보같이. 정말 바보같이.
고마워요. 큰일 날 뻔했어요.
당신 덕분에 나도 살았어요.
 
과거로 되돌아갈까 두렵다고 했죠.
듣고 보니까 나도 그렇네요.
아등바등 살면 나아질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네요.
 
그래도 포기하지 말아요, 우리.
우리가 찾아가다 지치면
예수님이 찾아와주실 거예요.
너무 걱정은 마세요.
 
당신이 말했죠.
안개 낀 것처럼 인생이 두렵고 답답하다고.
화창한 날 하루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아세요.
안개는 영원하지 않아요.
수명이 짧아요.
해가 뜨면 금방 사라져요.
 
예수님 없이 어두웠던 당신 인생
드디어 찬란한 빛이 비쳤죠.
새벽이 왔어요. 동이 터요.
안개로 자욱하지만
오늘 하루 맑을 거예요.
안개 짙은 날은 유독 맑았으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시겠어요.
괜찮다고 말해주시겠어요.
곧 해가 뜬다고.
파란 하늘 빨갛게 떠오른 태양이
눈부시게 아름다울 거라고.
 
두 번 다시 예전 같지 않을 거예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어요.
절대로 그럴 수 없어요.
당신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에요.
 
마음속 담아두었던 말,
이제 전하고 싶어요.
 
살아줘서 고마워요.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와줘서
정말 정말 고마워요.
당신 덕분에 나도 살았어요.

인생은 과정입니다

인생을 성공과 실패로 평가하는 사람은
반드시 실패합니다.
 
성공과 실패는
개념이 모호한 말입니다.   
 
성공도, 실패도
각자 정의 내리기 나름입니다.
 
흑백 논리라는
인지 왜곡이 있습니다.
 
매사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생각하는
사고방식입니다.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
사랑과 증오.
믿음과 의심.
 
상반되는 두 단어는
두부 자르듯 나눌 수 있게 아닙니다.
 
사람들은 조급합니다.
 
OX 게임을 하듯이,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이 아닙니다.
 
인생을 성공과 실패로 단정하고
실패했다 결론 내리지 마세요.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흑백 논리를 극복하는
방법을 찾아내세요.
 
합리적으로 말해볼까요.
중간 지점이 있습니다.
 
성공인지 실패인지 구분되지 않는
인생의 순간이 있어요.
 
당신에게 아마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일지 모르겠습니다.
 
성공이든 실패든
결정은 우리 자신이 내리는 겁니다.
 
성공과 실패, 그 자체보다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는 기준이 더 중요해요.
 
그 기준은 가치관입니다.
 
나는 어떤 가치관을 가진 사람인가.
스스로에게 물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대한 대답이
나의 오늘 하루를 결정합니다.
 
인생은 과정입니다.
성공과 실패는 없습니다.
 
오르락내리락 반복하면서
궁극의 방향을 향해 걷고 있는 것이죠.
 
멀미가 나더라도
침착하게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여정의 쉽고 어려움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걷는 것이 중요하지요.
 
우리의 목표는
높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걷는 것입니다.
 
거대하고 궁극적인
하나의 의미를 향해서 말입니다.
 
나에게 그것은
그의 나라와 그의 영광입니다.
 
당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세요.
흑백논리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성공과 실패는
가치관으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더 나은 가치관을 선택하세요.
당신의 행복을 위해서 말입니다.

감정 필터 사용법

나는 유명한 사람이 아니니까
댓글이 별로 안 달립니다.
 
댓글 하나가 소중해서
꼼꼼히 살피는 편이에요.
 
대 여섯 개 달리면
일일이 답장해줍니다.
 
언젠가 한 번은
기분 나쁜 댓글이 달렸습니다.
 
댓글이 몇 개 안되니까
나쁜 댓글 하나가 전체 댓글 20%로 느껴집니다.
 
사람 참 이상합니다.
 
좋은 댓글 80% 놔두고
나쁜 댓글에 속상합니다.
 
사람마다 마음속 필터가 있습니다.
좋고 나쁨을 걸러내지요.
 
부르기 편하게 감정 필터라고
이름 붙여볼까요?
 
감정 필터가 정상적으로 기능할 때는
좋은 말은 담고, 나쁜 말은 걸러냅니다.
 
가끔 고장이 납니다. 
나쁜 말이 필터 틈에 끼어서
밖으로 나가지 않아요.
 
정체 현상이 일어납니다.
나쁜 말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덩어리가 됩니다.
 
시커먼 말이 필터에 가득 끼어버려요.
 
필터를 갈아야 하는데
그냥 살아가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나쁜 말을
걸러내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귀찮더라도 뭔가 조치를 해야 합니다.
 
주의할 점이 있어요.
 
필터를 씻어내려 마세요.
괜히 손만 더러워집니다.
 
큰맘 먹고 필터를 교체하세요.
구멍 큰 것으로 바꾸세요.
 
넉넉한 크기의 필터가 좋습니다.
너무 촘촘하면 이것저것 다 걸립니다.
 
작은 말은 그냥 흘려보낼 정도로
넉넉한 크기면 좋습니다.
 
나쁜 말 하나 붙잡고
하루 종일 반복해서 마음에 되새기면
속 쓰리고 잠 안 옵니다.
 
항상 살펴주세요.
필터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자, 구멍 크기 확인하셨나요?
넉넉해야 합니다.
 
어, 방향도 바뀌면 안 됩니다.
좋은 말을 담아야 합니다.
나쁜 말이 아니라.
 
지금까지 감정 필터 사용법
설명드렸습니다.

실수는 실패가 아니에요

어릴 때 운동회가 싫었어요.
난 달리기가 느리거든요.
 
출발선에 서면 다리가 떨렸어요.
꼴찌는 면해보자, 생각했죠.
 
땅!
 
화약 소리와 함께,
친구들 뒷모습이 보여요.   
 
결승점에 도착하면
손등에 도장이 찍혀요.
 
내가 원하던 숫자는 아니었죠.
 
손등에 보랏빛 숫자가 싫어도
지우면 안 돼요.
 
선생님께 혼나요.
 
번호가 있어야 끝나고
노트를 주거든요.
 
난 못 받은 적도 많았지만
번호는 끝까지 지우지 못했죠.
 
어느 날, 삼겹살을 먹는데
고기가 파래요.
 
엄마한테 물었죠.
이게 뭐야.
 
그거 도장이야.
고기 급수 나눈 도장.
 
나는 사람들이 돼지를 때려서
생긴 멍인 줄 알았는데.
 
도장 자국이었어요.
 
내 식탁에 올라온 걸 보면,
적어도 1이라고 찍히지 않았을까 싶었죠.
 
돼지도 달렸나.
달리기 1등 해서 내 식탁에 올라왔나.
 
어린 마음에
쌈 싸먹으면서 피식 웃었죠.
 
나는 이제 달리기 싫어서
달리지 않아요.
 
옆 사람이 아무리 빨리 달려도
나는 걸어요.
 
비웃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요.
등 떠미는 사람도 있고요.
 
나는 뿌리치고 그냥 걸어요.
 
저 앞 편에서 도장 찍어주고
줄 세우는 게 보이네요.
 
아, 내가 길을 잘못 들었구나.
다른 방향으로 걸어요.
 
온 땅이 길인데요, 뭐.
 
참 이상하죠.
사람들이 어떻게 알고 따라왔는지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네요.
 
하얀 분으로
자꾸 레일을 만들어요.
 
끝자락에 하얀 끈을 치고
빨리 뛰라고 손짓하죠.
 
계속 피해 다니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네요.
 
자꾸 길을 정해주고
벗어나지 말고 빨리 뛰라 하니
나는 귀찮을 수 밖에요.
 
달리기하는 사람은
생각할 시간이 없어요.
 
중간에 실수라도 하면
스스로 말하죠.
 
나는 실패했어.
나는 바보야, 정말.
 
힘겹게 도착한 결승점에서
도장을 꽝 찍어줘요.
 
실패자.
바보.
 
그런 도장을 받으러 뛰어갈
필요 있나요.
 
실수는 그냥 실수예요.
실패가 아니고.
 
도장이 싫다면
다른 길로 가세요.
 
가고 싶은 길로.
당신 만의 길로.
 
계속 거기 남아 있으면,
둘 중 하나에요.
 
스스로 낙인찍거나.
남에게 낙인찍히거나.

못난 척할 필요 없어요

요즘 하도 잘난 척하는 사람이 많아서
눈에 잘 띄지 않는 사람이 있어요.
 
못난 척하는 사람이죠.
 
열 개 중 아홉을 잘 하고
하나를 못하면 괴롭습니다.
 
나는 왜 그랬을까.
나는 왜 그 말을 했을까.
 
속으로 생각하다 입 밖으로
생각이 흘러나와요.
 
배우자가 들어주다 지칩니다.
친구들이 들어주다 지칩니다.
 
사람이 떠나가는 게 보입니다.
알약을 새로운 친구 삼습니다.
 
소리 소문 없이, 죽은 듯이
조용히 혼자 삽니다.
 
밤마다 침대에 누워
안방 천장에서 상영되는
실수 비디오를 무한 반복하면서.
 
남의 일 말하듯 하지만,
나부터도 하나 실수하면 괴롭습니다.
 
우승을 다투는 자리에서
귀한 손님이 가져온 꽃다발을
손으로 밀어낸 적이 있어요.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해서 그랬어요.
 
부끄러웠어요.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거든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머릿속 비디오 플레이를 했어요.
 
실수한 거,
반복해서 보고 또 보고.
 
두 번 다시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
괜찮다고 말하지만, 거짓말이에요.
 
실수는 당연히 반복되니까요.
 
절대로 멈출 수 없어요.
실수하는 건.
 
잘난 척할 필요 없지만,
못난 척할 필요 없어요.
 
내 질문에 답변해보세요.
 
당신은 살면서 가족에게 자랑하고 싶은
무언가를 이룬 적이 있나요?
 
당연히 있죠.
 
그렇군요.
 
그럼, 괜찮습니다.
이제 집에 가셔도 됩니다.
 
당신은요?
 
나는 없어요. 전혀.
 
아, 그렇군요.
우리 친구합시다.
 
나도 그렇거든요.
 
알약 친구보다
내가 낫잖아요.
 
아, 그리고.
친구 하나 더 소개하고 싶어요.
 
내가 매일 만나는
따뜻하고 인자한 친구가 있어요.
 
날 있는 그대로 다 받아주는
그런 친구 말입니다.
 
그 친구가 도와줄 거예요.

내가 항상 이렇지 뭐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면
무심코 말해 버립니다.
 
내가 항상 이렇지 뭐.
언제나 그랬어.
 
실수를 일반화해버리면
인생에 꼬리표가 붙습니다.
 
실패한 인생.
 
그렇게 성급하게 결론 내리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요.
 
질문 하나 해보겠습니다.
 
증거 있나요?
당신이 실패했다는 증거 말입니다.
 
아마 당신은 당황해서
같은 말을 반복할 겁니다.
 
실패했으니까 실패한 거지,
무슨 증거가 필요해?
 
아니에요.
조금 더 생각해보세요.
 
당신이 실패했다고 말하기에는
구체적인 증거가 모자랍니다.
 
감정이 앞서고 있어요.
 
감정에 근거해서
실패했다고 말하는 겁니다.
 
감정은 증거가 아니죠.
 
증거를 가져오세요.
명확하고 구체적인 증거 말입니다.
 
증거가 충분하면
내가 결론 내려드릴게요.
 
당신은 실패했다고.
 
아쉽게도 나는 증거가 충분한 사람을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어요.
 
한 사람이 기억납니다.
그녀는 말했어요.
 
나는 나쁜 엄마입니다.
내 딸이 나처럼 살면 안 돼요.
 
아, 그렇군요.
당신이 나쁜 엄마라는 거죠?
증거 있나요?
 
네?
 
증거 있냐고요?
 
증거라니요?
 
증거가 있어야죠.
결론을 내린 근거 말입니다.
 
없어요.
 
그래요?
 
하지만, 난 알아요.
내가 나쁜 엄마라는 걸.
 
나는 모르겠는데요.
증거를 제시해주세요.
 
침묵.
 
성급하게 결론 내리면
당신은 파괴됩니다.
 
판단을 미루세요.
성급할 필요 전혀 없습니다.
 
정 불안하면 증거를 모아
그분에게 가져가세요.
 
그분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없이 당신을 안아줍니다.
 
토닥토닥.
 
수신호와 함께
따뜻한 바람이 붑니다.
 
당신이 가져온 증거 뭉치는
바람에 날려 사라집니다.
 
바람에 몸을 실은 당신은
깃털처럼 가볍게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성급해서 좋을 것은 딱 하나,
그분을 찾는 일입니다.

말을 잃어버린 남자

감정을 표현하지못하는
남자를 만났어요.
 
사랑하는 마음을
가족에게 전할 수 없었죠. 
 
표현할 수 없었어요.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말 안 해도 알겠지.
내 마음 알 거야.
 
그는 그렇게 믿고 있었죠.
나는 안타까웠어요.
 
그의 가족들은
그를 오해하고 있었거든요.
 
상처 주는 남편.
상처 주는 아빠.
 
가족이 말하는
그의 모습이었어요.
 
그와 마주하고 하고
난 알게 되었죠.
 
그의 얼굴 속 해맑은 소년이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어요.
 
소년이 대신 말해주더군요.
그의 진심을 말입니다.
 
그의 진심을 조심히 받아들어
가족들 두 손에 전해주고 싶었어요.
 
아내의 눈물이 멈출 테니까.
가족의 눈물이 멈출 테니까.
 
당신은 알고 있나요?
 
그가 어릴 때 아무도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가 혼자서 슬픔을 삭이며
긴긴밤 눈물로 지새웠던 나날을.
 
그는 표현하는 방식을
잃어버렸어요.
 
슬픔이 슬픔인지
절망이 절망인지
억울이 억울인지
모르고 살았죠.   
 
그 남자가
내 앞에 앉아 있어요.
 
나는 그에게서
내 모습을 봅니다.
 
내가 새로 배운 언어,
당신에게 전해주고 싶어요.
 
A, B, C.
가, 나, 다.
 
처음에는 어려워요.
그래도, 우리 포기하지 말아요.
 
당신과 내가 힘을 합치면
우리 가족이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
 
당신은 아직 서투를 뿐이에요.
시간이 필요해요.
 
내가 당신의 가족에게 부탁할게요.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엄마를 지켜줄 거예요]
 
엄마를 위해 살아가는
청년이 있었어요.
 
그의 엄마는 약하고
슬프고 외로운 사람이었어요.
 
아빠가 술을 먹고 들어와
집안 살림을 때려 부수는 날이면,
 
엄마는 뒤돌아 누워
하염없이 울었지요.
 
그는 생각했어요.
엄마를 지켜주겠노라고.
 
엄마는 아들에게
걱정을 털어놓았어요.
 
아들은 말없이
엄마의 걱정을 들어줬어요.
 
듬직한 아들이다.
아들이 있어 살아간다.
 
엄마는 그런 아들이 고마웠어요.
아들 덕분에 포기하지 않았죠.
 
하지만, 아들은
조용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어요.
 
대가를 치러야 했어요.
언제나 외로웠어요.
 
채워지지 않았어요.
뻥 뚫린 가슴을 메울 수 없었죠.
 
용기 내어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무례하다면 용서해주세요.
 
이야기 잘 들어주는 자녀는
부모에게 축복이 아니에요.
 
그 아이는 언젠가 홀로
혹독한 대가를 지불해야 해요.
 
부모 대신 무거운 짐을 지고
숨조차 수 없는 자녀들을 나는 만납니다.
 
상처투성이 자녀가
부모를 원망하지 않아요.
 
얼굴을 가리고
엎드려 엉엉 울어요.
 
아빠가 불쌍하다며.
엄마가 불쌍하다며.
 
이제 당신 차례가 왔어요.
 
기운 내 일어나
자녀의 눈물을 닦아주세요.
 
당신의 그 무거운 짐은
주님께서 들어주실 테니.

엄마를 지켜줄 거예요

엄마를 위해 살아가는
청년이 있었어요.
 
그의 엄마는 약하고
슬프고 외로운 사람이었어요.
 
아빠가 술을 먹고 들어와
집안 살림을 때려 부수는 날이면,
 
엄마는 뒤돌아 누워
하염없이 울었지요.
 
그는 생각했어요.
엄마를 지켜주겠노라고.
 
엄마는 아들에게
걱정을 털어놓았어요.
 
아들은 말없이
엄마의 걱정을 들어줬어요.
 
듬직한 아들이다.
아들이 있어 살아간다.
 
엄마는 그런 아들이 고마웠어요.
아들 덕분에 포기하지 않았죠.
 
하지만, 아들은
조용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어요.
 
대가를 치러야 했어요.
언제나 외로웠어요.
 
채워지지 않았어요.
뻥 뚫린 가슴을 메울 수 없었죠.
 
용기 내어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무례하다면 용서해주세요.
 
이야기 잘 들어주는 자녀는
부모에게 축복이 아니에요.
 
그 아이는 언젠가 홀로
혹독한 대가를 지불해야 해요.
 
부모 대신 무거운 짐을 지고
숨조차 수 없는 자녀들을 나는 만납니다.
 
상처투성이 자녀가
부모를 원망하지 않아요.
 
얼굴을 가리고
엎드려 엉엉 울어요.
 
아빠가 불쌍하다며.
엄마가 불쌍하다며.
 
이제 당신 차례가 왔어요.
 
기운 내 일어나
자녀의 눈물을 닦아주세요.
 
당신의 그 무거운 짐은
주님께서 들어주실 테니.

내 마음 아무도 모를 거야

요즘 사람들이 나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어요.
 
나도 당신처럼
상처를 극복하고 싶어요.
 
상처받은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요.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상처를 극복하지 못했답니다.
 
당신이 모르는
내 문제가 있어요.
 
어디 가서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처지라 나도 힘들답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약함이 강함이라고.
 
뻔한 말 같지만,
나는 그 말을 받아들였어요.
 
학교 다닐 때
천재 수학 선생님이 있었어요.
 
수학 문제 하나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풀어내는 사람이었죠.
 
해답에 없는 풀잇법을
수시로 만들어 내기도 했지요.
 
연필 없이 눈동자 몇 번 굴리면
답이 척하고 나와버리니 처음 보는 사람은 놀라지요.
 
안타깝게도 그 선생님은
학생들을 오래 가르치지 못했어요.
 
답답했나 봐요.
문제 못 푸는 학생을 이해 못했어요.
 
몇 달 있다가
어디론가 훅 떠나버렸습니다.
 
남들보다 뛰어나면 그 나름
힘든 것도 있나 봐요.
 
수학을 못했던 내게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있어요.
 
내가 질문하면 선생님은 말했죠.
어디, 같이 한 번 풀어볼까?
 
한참을 기다리면
멋쩍어하며 말씀하셨죠.
 
야, 이거 어렵네.
자, 이제 알려줄게.
 
나는 왜 그 선생님이
그렇게 좋았을까요.
 
내담자가 상담실에 들어오면
나도 모르게 말합니다.
 
같이 한 번
이야기해 볼까요?

그러다 완전히 낚인다

아는 사람들과
낚시를 같이 간 적 있어요.
 
낚시가 처음이라 그런지 반나절 동안
나만 물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았어요.
 
옆에 큰 물고기를 두 마리나 잡은 형이
나한테 계속 말했어요.
 
잡을 수 있을 거야.
곧 잡힐 거야. 파이팅!
 
한 번은 들을만했지요.
계속 들으니까 기분이 나빠요.
 
난 여기 놀러 온 건데.
물고기 잡으러 온 게 아니라.
 
위로한답시고 등을 두드려 줄 때
짜증이 절정에 다다랐어요.
 
아, 이 형 옆에서 안되겠다.
자리를 옮겼죠.
 
누가 얼굴에 침을 뱉는 거예요.
손으로 만져봤더니, 하얀 새 똥이에요.
 
아무리 얼굴이 커도 그렇지,
이렇게 넓은 바다에서 얼굴에 새 똥이라니.
 
끼륵끼륵 갈매기 새끼들도
나를 조롱하는구나.
 
하루 종일 한 마리도 못 잡고
집으로 돌아왔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요.
나는 낚으러 갔다가 완전히 낚였어요.
 
편안하게 시작한 일
주위 시선이 부담이죠.
 
내가 좋아서 한 건데
다른 사람 좋은 대로 하고 있죠.
 
이리저리해보다가
더러워서 못 해먹겠다고 때려치웁니다.
 
나처럼 낚인 거예요.
절대로 못 낚습니다.
 
나는 말하고 싶어요.
아주 차분하게.
 
못 낚으면 어때요, 뭐.
못 낚으면 못 낚은 거죠.
 
마음 편히 먹고 바다 한 번 보세요.
낚싯대만 보지 마시고.
 
파도 소리, 새소리.
저 멀리 수평선, 마음에 담아보세요.
 
우리 여기 쉬러 온 거예요.
뭐 하나 낚으러 온 게 아니라.
 
누가 그랬죠.
인생은 잠시 잠깐이다.
 
하루가 천 년이고
천 년이 하루다.
 
바다를 누가 만들었는지 안다면
낚이지 않을 수 있어요.
 
낚이지 않고
낙낙(樂樂) 하게 되죠.
 
드리워진 낚싯대에 존재를 걸지 말고
드넓은 바다를 보며 꿈을 꾸세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그분의 영광이 온 세상에 가득하기를.
 

*희희낙락(喜喜樂樂): 매우 기뻐하고 즐거워함

거대한 성, 거짓의 방

사람마다 마음속
거대한 성을 짓는다.
 
그 안에 수많은 방을
미로처럼 가졌다.
 
제각각 다른 모양이지만,
오직 두 종류의 방이다.
 
문이 활짝 열려
빛으로 채워진 방.
 
문이 굳게 닫혀
어둠에 짓눌린 방.
 
닫힌 방, 문 앞에는
참혹한 거짓말이 쓰여있다.
 
모든 게 너 때문이야.
네가 모든 걸 망쳤어.
쓰레기, 위선자, 루저.
 
닫힌 방은 어둠 속에서
거짓의 지배를 받는다.
 
방법은 단 하나.
닫힌 방을 여는 것이다.
 
빛이 어둠을 몰아낸다.
진실이 거짓을 몰아낸다.
 
문을 연 채로 밖으로 나온다.
또 다른 방을 찾는다.
 
거짓말로 굳게 닫혀
어둠의 지배를 받는 또 다른 방.
 
닫혀 있는 수많은 방을
찾고 또 찾아 열어젖힌다.
 
어둠에서 빛으로.
거짓에서 진실로.
 
내 성에서 닫힌 방 하나 찾았다.
팻말에 쓰인 거짓이 선명하다.
 
그런다고 누가 알아줘.
네 상처나 치유해.
 
소스라치게 놀란다.
팻말을 집어 든다.
 
바닥에 내리쳐 부순다.
손잡이를 비틀어 문을 연다.
 
어둡다.
두렵다.
 
창을 연다.
빛을 부른다.
 
찬란한 빛이
벽에 드리운다.
 
어두울 때 보이지 않던
벽에 쓰인 글귀 하나.
 
너를 통해 상처 입은 한 사람을
치유하기 원한다.
 
이것이 진실이다.
 
당신과 나.
진실 앞에 서야 한다.
 
기억하라.
단순하다.
 
닫힌 방을 찾는다.
거짓 팻말을 부순다.
문을 연다.
빛을 비춘다.
진실을 발견한다.
 
그날이 오기까지
쉬지 않기를 바란다.

엄마를 위한 꽃 한 송이

엄마를사랑하는 딸은
엄마와 하나가 돼요.
 
내가 엄마인지
엄마가 나인지 구분할 수 없죠.
 
엄마가 느끼는 고통을
딸도 고스란히 느껴요.
 
엄마가 아빠를 미워하면
딸도 아빠를 미워하고.
 
엄마가 아빠를 무시하면
딸도 아빠를 무시하고.
 
엄마가 아빠를 의심하면
딸도 아빠를 의심해요.
 
엄마와 하나 된 딸은 결혼해서
아내가 되고 엄마가 돼요.
 
행복한 삶을 꿈꾸던 당신에게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져요.
 
남편은 아빠가 되고
아빠는 남편이 돼요.
 
아빠의 무관심은
남편 집착이 되고
 
아빠의 외도는
남편 감시가 되고
 
아빠의 학대는
남편 무시가 돼요.
 
이 모든 게
엄마와 하나가 되어 벌어진 일이에요.
 
아직도 엄마 등에 업혀 있나요?
이제 내려오세요.
 
우리 엄마 고생했으니 내 차례야.
아니오. 엄마를 업어주지 마세요.
 
그렇게 딱 붙어 있으면
당신은 불행해져요.
 
엄마를 놓아주세요.
당신을 되찾으세요.
 
당신은 엄마가 아니고
엄마도 당신이 아닙니다.
 
우리 엄마 어떡해.
나 없으면 어떡해.
 
당신이 울 때, 나도 따라 울고 싶다면
당신이 믿어줄까요.
 
나도 엄마가 있거든요.
평생 고생만 했던 엄마가 있어요.
 
엄마가 엄마가 되고
내가 내가 되던 그날 밤
나도 펑펑 울었어요.
 
우리 같이 연습해요.
엄마를 위해, 당신을 위해.
 
엄마를 두 손으로 붙잡으면
그분을 붙잡을 손이 없어요.   
 
한 손 먼저 놔줘볼까요, 우리.
빈손으로 그분 손을 붙잡아요.
 
한 손은 엄마,
한 손은 그분.
 
심호흡하고 엄마에게 말해요.
엄마, 나처럼 한 손으로 그분 잡아.
 
엄마도 당신처럼
그분의 딸이랍니다.
 
엄마를 위해
엄마를 놓아주세요.
 
엄마는 엄마가 되고
당신은 당신이 되는 날,
 
당신에게 향긋한
꽃 한 송이 전해질 거예요.
 
치유의 꽃 한 송이를
두 손으로 받아드세요.
 
엄마 한 송이.
당신 한 송이.
 
그렇게 두 사람은
각자가 될 수 있습니다.

결혼은 도피처가 아닙니다

부모에게 상처받은 딸은
집을 벗어나고 싶어 해요.
 
결혼에 대한 확신 없이
결혼으로 도망쳐 버려요.
 
결혼해서 떠나살면
더 이상 상처받을 일 없겠지.
 
아니에요.
진실이 아니에요.
 
시부모, 임신, 육아.
지금보다 힘들 거예요, 아마.
 
결혼으로 도망치면
상처는 깊어져요.
 
앞자리 숫자가 바뀌는 게
두렵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서두르지 마세요.
남은 인생이 달렸으니까.
 
결혼으로 도망치기 전에
자신과 마주하세요.
 
신부화장을 해주듯이
자신을 돌봐주세요.
 
자기 몸에 나쁜 피라도
흐르는 것처럼 괴로워 마세요.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될 수 없을 거라고 자책하지 마세요.
 
당신이 자라온 환경은
당신이 선택한 게 아니에요.
 
그건 주어진 거예요.
당신이 원하지 않았잖아요.
 
내가 분명히 말해줄게요.
당신 잘못 아니에요.
 
그리고, 한 가지 더.
나는 진실을 말해야 해요.
 
결혼 후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당신 책임이에요.
 
부탁드려요.
여유를 가지세요.
 
멀리서 상처라는 부메랑이 날아오네요.
나 없는 사이 누군가 던지고 갔나 봐요.
 
내가 던진 거 아니라고
뒤돌아서서 외면하면 안 돼요.
 
누가 던진 거냐
범인 찾다가 다치는 건 당신이에요.
 
두려워도 마주 서서
정면으로 응시하세요.
 
반드시 두 손으로
안전하게 잡아야 해요.
 
사방팔방 날아오는 부메랑
멋있게 잡아내는 연습해요, 우리.
 
나는 방심하다가
어제 뒤통수 맞았어요.
 
동시에 두세 개 날아올 때는
나도 어쩔 수 없지요.
 
도저히 안되겠다 싶을 때는
무릎 꿇고 엎드리세요.
 
부메랑을 피할 수 있는
괜찮은 방법이에요.
 
나는 맞아서 아파도
당신이 아픈 건 싫어요.
 
그러니, 부메랑을 보세요.
꼭 잡아내시기 바랄게요.

계속 고통받아요, 우리는

내가 더 잘 믿으면
이런 일 없을 텐데.
 
이런 일?
어떤 일을 말씀하시는거죠.
 
더 이상 이런 문제로
고통받지 않을 텐데.
 
아, 그 뜻이군요.
아니에요.
 
그건 진실이 아니에요.
진실을 말할게요.
 
계속 고통받아요,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계속.
 
엥, 아닌데.
다른 사람은 잘 믿고 잘 되던데.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세요.
고통받고 있어요.
 
남의 인생 대충 둘러보고
쉽게 평가하지 마세요.
 
모두, 전부
고통받으며 살아요.
 
그럼, 뭐 하러 하나님을 믿나요.
어차피 고통받으며 산다면.
 
좋은 질문이에요.
답해볼게요.
 
복음의 본질은
문제 해결이 아니에요.
 
복음의 본질은
관계 회복이에요.
 
왜곡된 관계가
온전한 관계가 되는 겁니다.
 
예수님은 왜곡된 관계를
회복시켜주셨어요.
 
하나님과 우리 사이
끊어진 관계를 이어주신 거죠.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누릴 수 있어요.
 
이제 눈치채셨나요?
진짜 문제는 따로 있어요.
 
주변에서 뭐라 하든
성경에서 뭐라 하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는 거죠.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끊임없이 물어요.
 
왜 나만?
왜 나만 이런 거지?
 
아니에요.
우리 모두 그래요.
 
나라고 다르겠어요.
나도 매일 고통받아요.
 
문제 해결에 집착하면
우리는 빠르게 고갈돼요.
 
문제 해결에 전전긍긍하며
믿음을 낭비하지 마세요.
 
미안하지만,
고통은 사라지지 않아요.
 
고통을 피하려고 하면
더 고통스러워져요.
 
하나님은 예수님을
고통 속에서 꺼내주지 않았어요.
 
도와주시지 않고
고통의 잔을 마시게 했죠.
 
예수님이 고통의 잔을 피하셨다면
우린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은 하나님만의
방식이 있어요.
 
고통 한가운데서
의미를 찾아내세요.
 
의미를 찾는 사람은
성장할 수 있어요.
 
의미를 발견하면
고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에요.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지요.
 
말도 안 된다.
어떻게 고통 속에서 기뻐하냐.
 
결국에 뻔한 소리 하네.
뭔가 다를 줄 알았다.
 
맞아요.
고통 속에서 기뻐하기 어려워요.
 
하지만, 아시나요?
 
항상 기뻐한다는 건
물리적인 시간이 아니에요.
 
24시간 하루 종일 기뻐하면
그 사람은 병원에 가야 해요.
 
말도 안 되는 기준을 세워놓고
스스로를 정죄하지 마세요.
 
아침에 잠깐 주님을 찾고
하루 종일 분주할 수 있지요.
 
절망할 필요 없어요.
하나님은 쉬는 시간이 없으시니까.
 
당신이 하나님을 찾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은 당신을 찾아내실 거예요.
 
하나님 한 분 만으로
영원토록 기뻐하는 것.
 
당신과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이자 목적입니다.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아

하나님 사랑이
느껴지지 않아요.
 
하나님은
날 사랑하지 않아요.
 
사랑받은 적 있나요.
누구에게라도.
 
아무도 없었군요.
내 마음이 아파요.
 
내 부모도 날 사랑하지 않았어요.
이제 하나님도 날 거부해요.
 
하나님이라고 부르면
그나마 괜찮은데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면
마음이 불편해요.
 
아버지라고 하는 순간
복잡한 감정이 밀려와요.
 
무서운 아버지.
무관심 아버지.
 
그 아버지가
이 아버지가 아닌데.
 
이상하다.
참 이상하다.
 
외롭고
쓸쓸해져요.
 
그렇군요.
그럴 수 있어요.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을 수 있죠.
 
사랑받은 적 없어서
사랑받는 게 뭔지 모른다고 하셨죠?
 
자녀를
사랑하시나요.
 
조건 없이
사랑하신다고요.
 
자녀 대신
죽을 수도 있다고요.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했다면서
자녀를 사랑하는 이유가 뭔가요.
 
어디에서
시작된 사랑일까요.
 
당신 안에 사랑이 없잖아요.
사랑받지 못했다면서요.
 
자녀 대신 죽을 수 있다는 말,
진심이란 걸 알아요.
 
혹시,
정말 혹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랑
받은 적 있나요.
 
누군가 당신을 위해
대신 죽기라도 한 것처럼
 
당당해서
물었어요.
 
이제 아시겠나요.
당신은 사랑받고 있어요.
 
부모 사랑으로
하나님 사랑을 느낄 수 없다면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추적하세요.
 
상처투성이 당신도
자녀를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으면서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쉽게 결론 내릴 수 있나요.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사랑을 느껴보세요.
 
내 이야기
잠시 해도 될까요.
 
내 딸이 이마에 깊은 상처를 입어
피를 콸콸 쏟은 적이 있어요.
 
이 삼십 바늘 꿰매서
치료했어요.
 
딸을 지켜주지 못했단 생각에
나는 괴로웠어요.
 
밤이면 밤마다 딸이 잠들면
그 옆에서 울고 또 울었죠.
 
속상해 죽겠는데
하나님이 한 마디 툭 던졌어요.
 
네 딸 살이 찢기니 괴롭겠구나.
나도 내 아들 살이 찢길 때 괴로웠다.
 
온 세상이 멈춘 것처럼
고요했어요.
 
내가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내 딸이 다치지 않았다면.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토록 깊이 느낄 수 있었을까요.
 
부모인 우리는 자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어요.
 
나 외로워요.
당신은 어디 있나요.
 
당신이 하나님을 찾을 때마다
그가 말씀하시기를 바랍니다.
 
네가 네 자녀를 사랑하듯
나도 너를 사랑한다.
 
하나님,
하나님 아버지.
 
당신이 하나님을
어떻게 부르든지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이
당신에게 전해지기를 기도합니다.

복음이 당신을 치유합니다

온갖 상담 이론은
과정을 탐구합니다.
 
결론은 저마다 다릅니다.
궁극의 해답은 없습니다.
 
너도 옳고 나도 옳고
자기한테 맞는 거 갖다 쓰면 된다.
 
상담 이론의 홍수 시대입니다.
물이 많아도 마실 물이 없지요.
 
말씀을 다루는 사람은
답을 알고 있습니다.
 
답을 아니까
과정에서 게을러집니다.
 
성경에 이렇게 쓰여 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냐.
 
풀이 과정을 아는 사람에게는
답이 필요합니다.
 
풀이 과정 한바닥 쓰고
답이 400개가 넘으면 곤란하지요.
 
답을 아는 사람에게는
풀이 과정이 필요합니다.
 
문제가 한바닥인데 풀이 과정 한 줄 없이
답은 3번이다.
 
왜 답이 3번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답은 맞았는데 이상하게 자신이 없습니다.
 
나 우울해요.
나 불안해요.
 
약 드세요.
좋게 생각하세요.
시간 지나면 괜찮아요.
 
나 우울해요.
나 불안해요.
 
기도하세요?
말씀보세요?
그러니까 그렇죠.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나는 답답합니다.
 
너는 뭐 특별하냐.
아니요.
 
내가 특별하진 않습니다.
복음이 특별합니다.
 
너무 익숙해서 지루해진 복음을
새로운 언어로 말하고 싶습니다.
 
나는 여전히 실험 중입니다.
바로 나 자신에게.
 
복음은 과연
나를 치유하는가.
 
나는 오랜 시간 다양한 상담 이론을
내 삶에 적용했습니다.
 
다양한 이론을 내 삶에 적용하면서
나는 깨달았습니다.
 
복음이야말로 세상 모든 이론보다
뛰어난 처방전이란 사실을.
 
혼자만 알고 있을 수 없지요.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복음이 당신을 치유합니다.
복음이 궁극의 해답입니다.
 
아, 편협하다.
아, 배타적이다.
 
이 말을 하는 사람은
둘 중 하나겠지요.
 
복음을 알지 못하거나
복음에 관심이 없거나.
 
당신의 비판을
나는 반박할 수 있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심리학자입니다.
 
오직 말씀이지.
무슨 상담 이론이냐.
 
당신의 비판을
나는 반박할 수 있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신학자입니다.
 
상담하는 목사.
내게 어울리는 말이 아닙니다.
 
나는 복음의 사람이고 싶습니다.
내 삶을 마치는 그날까지.
 
당신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복음만이 당신을 치유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읽어도 은혜가 없네요

말씀을 읽어도 은혜가 없다는
사람을 만납니다.
 
내가 제대로 이해했다면
이런 말이겠지요.
 
예전에는 말씀을 읽을 때
마음이 뜨겁고 감동이 되었는데
요즘에는 뭐가 잘못되었는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가 없어요.
 
은혜가 없으면 조급해집니다.
만회할 방법을 찾습니다.
 
뭔가 잘못되었다.
그러니, 은혜가 없지.
 
불안 요소를 하나둘 제거합니다.
거리끼는 게 없나 계속 살핍니다.
 
그러다 지치면 본색이 드러납니다.
슬슬 화가 나고, 분노가 치밉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안되네.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지?
 
나는 묵상과 글쓰기가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남이 쓴 글을 읽기만 할 때는
전혀 몰랐던 게 있어요.
 
글을 잘 쓰려면
특별한 영감이나
재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특별한 영감이 떠올라야
특별한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틀린 말이에요.
 
가끔 글을 쓰는 사람은
영감을 기다릴 수 있겠지요.
 
유유자적 편하게 지내다가
영감이 떠오르면 글을 쓰는 거죠.
 
미안하지만
그건 영화의 한 장면일 뿐
실제 벌어지는 일은 아니에요.
 
영감을 기다리는 사람은
오랫동안 글을 쓸 수 없어요.
 
매일 글을 쓰는 사람은
저마다 자신만의 루틴이 있습니다.
 
절제된 삶을 살면서
공장처럼 일정 분량의 글을
매일 찍어냅니다.
 
영감 따위는 믿지도 않고
기다리지도 않아요.
 
그런데, 어떻게 매일 글을 쓰나요?
특별한 비결이라도….
 
없어요. 그런 거.
그냥 쓰는 겁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냥 써 내려가는 거예요.
 
반복하다 보면 가끔
놀라운 일을 겪어요.
 
내 수준을 넘는
특별한 생각이 떠오릅니다.
 
아마 사람들이 이런 걸
영감이라 부르나 봅니다.
 
아쉽게도 영감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냥 왔다가
그냥 사라져요.
 
붙잡아두고 싶지만,
어쩔 수 없어요.
 
인정할 건 빨리
인정하는 게 나아요.
 
아! 내가 글쓰기와 묵상이
닮았다고 했지요.
 
나는 매일 글을 쓰기 전에
항상 성경을 읽습니다.
 
특별한 은혜가 없어도
매일 꾸준히 읽습니다.
 
마음이 메마르지 않았나.
그런 고민은 아예 하지 않습니다.
 
하루 세 끼 밥 먹듯이
그냥 앉아서 말씀을 섭취해요.
 
야금야금
잘 씹어 먹습니다.
 
매일 말씀을 읽다 보면
가끔 폭포수 같은 은혜가 느껴져요.
 
매일이 아니라
아주 가끔.
 
성경을 펼칠 때마다
은혜가 있기를 바라죠.
 
하지만, 그건 내 바람일 뿐
현실이 아니에요.
 
내가 통제할 수 없잖아요.
은혜를 만들어 낼 수도 없고.
 
쥐어짜도
발버둥 쳐도
소용없어요.
 
그건 선물이거든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
 
선물을 보내야
선물을 받지요.
 
아까 했던 질문
다시 해볼까요?
 
어떻게 성경을 매일 읽나요?
비결이라도….
 
없어요. 그런 거.
그냥 읽는 겁니다.
 
은혜가 있든 없든
매일 성경을 펼쳐야
평생 동안 읽을 수 있습니다.
 
매일 내리는 비는 장마.
가끔 내리는 비는 단비.
 
둘 중 하나 선택하라면
나는 단비가 좋습니다.
 
매일 비가 내리면
비의 소중함을 모를 테니까요.
 
자책은 이제 그만.
그냥 성경을 펼치세요.

예수님만 바라본다는 말

예수님만 바라보는 삶,
적지 않은 사람이 오해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자고 하면
예수님 보려고 노력합니다.
 
예수님 모습을 떠올리려고
애를 씁니다.
 
커다란 스크린에
예수님이 고난받으시는
장면이라도 틀어주면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흐릅니다.
 
혼자 기도할 때
예수님 이미지가 떠오르면
감격이 밀려옵니다.
 
시간이 갈수록 예수님 이미지는
더 나은 이미지로 교체됩니다.
 
어릴 때 봤던 예수님 얼굴보다
지금 예수님 얼굴이 더 낫습니다.
 
아쉽게도 예수님 얼굴을
실제로 본 사람은 이 세상에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자.
예수님을 보자.
 
두 문장이 같다고 생각해서
발생한 오해입니다.
 
두 문장은
같은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 이미지를
떠올리려 할수록
우리는 약해집니다.
 
예수님 이미지가
효력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이미지는
상상으로 지어낸
허구에 불과합니다.
 
유명 영화배우의 얼굴이나
어느 화가의 작품이겠지요.
 
예수님을 바라본다는 건
예수님 얼굴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예수님 말씀을 바라보는 겁니다.
 
눈보다는
귀를 사용해야 합니다.
 
귀보다는
마음을 사용해야 합니다.
 
예수님 얼굴을 떠올리지 말고
예수님 말씀을 떠올리십시오.
 
예수님에 대한 말씀.
예수님이 하신 말씀.
 
성경 전부를 뜻합니다.
모든 구절을 뜻합니다.
 
치유하는 능력은
예수님 얼굴이 아니라
예수님 말씀에서 나타납니다.

우리는 용서할 겁니다

용서 못하는 사람을 
다그치는 사람이 있어요. 
 
단호하게
큰소리로 말해요.
 
성경에 쓰여있잖아. 
용서해야 천국 가.
 
나도 알아요.
묻고 싶어요.
 
용서 못한 사람이
불편한 이유가 뭔가요.
 
용서 못한 사람을 
용서 못한 건 아닌가요. 
 
용서 못한 사람도
용서해주세요. 
 
당신이 용서한 만큼은 
나도 용서했어요. 
 
세상 모든 사람을 
완전히 용서한 사람처럼
말하진 말아주세요.
 
용서했다고 한 말
믿어 볼게요.
 
그 힘이 어디서 나왔나요?
용서할 수 있었던 힘.
 
당신인가요. 
주님인가요. 
 
당신 안에서 나왔다고 하면
나 뒤돌아서서 갈 거예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주님 안에서 나왔다고 하면
나 참았던 말할 거예요.
 
자기 능력으로
용서한 것도 아니면서 
무슨 생색인가요. 
 
말이 심했죠. 
용서해주세요. 
 
다른 사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부탁드려요.
진심으로. 
 
당신도 아프고
힘들었잖아요.
 
잊지 말아 주세요. 
고통의 기억을.
 
마음 가다듬고 
내가 하고 싶은 말할게요.   
 
나 오늘 용서한다.
다 용서했다.
 
용서를 선언하지 마세요. 
그건 구호일 뿐이에요.
 
선언하고 싶다면
하나님 앞에서만 선언하세요. 
 
성급하게 사람 앞에서
선언하면 부작용 나요.
 
용서는 성취가 아니라 
방향이에요.
 
그리스도를 향해 걷다 보면
우린 용서할 겁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건
고통스러워요. 
 
주님을 사랑하는 건
행복하죠.
 
원수가 미울수록
주님을 사랑하세요.
 
원수를 묵상하지 말고
주님을 묵상하세요.
 
주님을 사랑하면
원수를 사랑하게 돼요.
 
아직 용서 못했는데
나는 주님을 사랑하는 건가요.
 
내 사랑은 가짜 아닌가요.
이렇게 모자란데.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조급할 필요 없어요.
시간이 필요 해요. 
 
복수의 길을 돌아 나와 
용서의 길로 들어섰다면 
이제 안심하세요. 
 
좁고 험하다고
포기하지 말아주세요. 
 
저 끝에
나와 당신의 주님이
미소 짓고 계시니까요.

먼저 믿은 게 잘못은 아니잖아요

당신이 참으세요.
먼저 믿었잖아요.
 
당신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남편은 하나님을 모르죠?
 
희생하고
참고 기다리세요.
 
조심스럽지만
묻지 않을 수 없네요.
 
이런 가르침을 뒷받침할
성경 구절이 있나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아내만을 위한 말씀인가요.
그렇지 않아요.
 
모두에게 전해진 말씀이죠.
남편과 아내 예외가 없지요.
 
먼저 믿은 아내는
마음고생이 심해요.
 
마음 한 편에
죄책감이 쌓여있어요.
 
내 기도가 부족해서 그런 거다.
내 믿음이 부족해서 그런 거다.
 
어디 가서 말하기도
힘들답니다.
 
주변에서 한두 번은 들어줘도
여러 번은 안 들어줘요.
  
또 그 문제냐.
이제 털고 일어나라.
 
나도 그랬다.
참고 기다리니까
결국 돌아오더라.
 
조언하거나
영웅담을 들려줍니다.
 
사람한테 실망하고 나서
깨닫습니다.
 
하나님만 붙잡자.
그리고, 결심합니다.
 
참는다.
견딘다.
버틴다.
 
아내에게
부탁드립니다.
 
그러지 마세요.
좋은 방법 아닙니다.
 
희생하기 보다
대화해야 합니다.
 
대화 없이 희생하면
당신은 불행해져요.
 
희생하는 법을 배우기 전에
대화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대화가 희생보다
어렵습니다.
 
대화하고 싶지 않아 참아버린다면
그건 희생이 아니라 회피입니다.
 
어린아이가 걸음마를 배우듯
남편과 대화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당신의 진심을 전해줄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해주세요.
 
남편의 진심을 알아내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해주세요.
 
희생하며 살기보다
희망으로 살아주기 바랍니다.
 
부부가 대화하며
진심을 공유하기
쉽지 않아요.   
 
시간이 오래 걸려요.
포기하기 쉽지요.
 
사람은 한순간에
바뀌지 않아요.
 
당신이 그렇듯이
남편도 그렇습니다.
 
그래도 대화 없는 희생은
절대로 하지 마세요.
  
당신이 남편과
대화하기를 바랍니다.
 
언젠가 당신의 진심이
남편에게 닿기를 바랍니다.
 
언젠가 남편의 진심이
당신에게 닿기를 바랍니다.   
 
그날이 올 때까지 나는,
쉬지 않고 글을 쓰겠습니다.
 
희생이 아닌
희망을 품고서….
 
내 진심이 당신에게
닿기를 바랍니다.

내 믿음이 형편없어요

내 믿음이 형편없어요.
나 어떻게 하죠?
 
하나님 앞에 부끄러워
나아갈 수가 없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믿음이 제자리에 있으니
괴로워요.
 
믿지 못해 괴롭고
믿고 싶어 괴롭다면
그건 믿음이에요.
 
당신의 믿음을
싸구려 취급하지 말아주세요.
 
사람들은 믿음에
레벨이 있는 것처럼 말해요.
 
진실이 아니에요.
믿음에는 레벨이 없어요.
 
믿음이 있냐, 없냐.
둘 중 하나에요.
 
문제에 집중하면
불안해져요.
 
감기가 낫느냐
암이 낫느냐.
 
1억을 갚느냐.
10억을 갚느냐.
 
암보다는
감기를 고치기 쉽고
 
10억보다는
1억을 갚기 쉬우니까.
 
암이나 10억을 놓고
기도하는 사람에게
 
더 큰 믿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다시 말하지만,
진실이 아닙니다.
 
믿음의 대상이
분명하기 바랍니다.
 
문제에 집중하면 불안해서
더 믿으려고 발버둥 쳐요.
 
문제 너머에 계시는
하나님을 믿어봐요, 우리.
 
감기와 암.
10억과 1억.
 
하나님은 차이를
느끼지 못하세요.
 
예수님이 이방 여인에게 말씀하셨죠.
네 믿음이 크도다.
 
예수님은 믿음의 크기에
놀라신 게 아니에요.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믿으니까
예수님이 감격하신 거예요.
 
얼마나 잘 믿느냐.
그만 고민하세요.
 
무엇을 믿느냐.
고민하세요.
 
문제 해결을 믿으시나요.
하나님을 믿으시나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감사할 수 있으려면
 
문제 너머에 계시는
하나님을 믿는 방법뿐입니다.

당신은 좋은 부모인가요

당신은
좋은 부모인가요?
 
네, 물론이죠.
나는 좋은 부모입니다.
 
두 번 자녀를 키워도
이렇게 못 키워요.
 
우리 애들 부족한 거 없어요.
나는 얼마나 어렵게 컸는데.
 
내가 해줄 말이 별로 없네요.
그럼, 안녕히.
 
당신은요?
당신은 좋은 부모인가요.
 
아니오.
나는 좋은 부모가 아니에요.
 
애들한테 너무 미안해요.
못 해준 게 너무 많아요.
 
나 같은 부모 만나서
우리 애들 고생 많이 했어요.
 
그렇군요.
대화 좀 할까요, 우리.
 
당신은 좋은 부모일지도 몰라요.
한 가지만 조심한다면.
 
그건 뭔가요?
죄책감입니다.
 
죄책감이 자녀를
망칠 수 있어요.
 
자녀 앞에서
당당한 사람 불안해 보여요.
 
자신감 없는 게
오히려 다행이에요.
 
당당한 부모를
만난 적이 있어요.
 
당당한 부모는   
주눅 든 자녀가 있어요.
 
나는 최선 다한다.
넌 이게 뭐냐.
 
왜 노력 안 하냐.
결과가 이게 뭐냐.
 
자녀는 고개만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못해요.
 
그런데, 참 이상하죠.
정반대의 경우도 있어요.
 
주눅 든 부모 옆에는
당당한 자녀가 있어요.
 
내가 이렇게 된 게
다 부모 때문이다.
 
내 인생 망가졌다.
내 멋대로 살 거다.
 
터무니없는 말을 하고
그 말을 믿고 살아요.
 
부모가 죄책감을 느끼는 사이
자녀는 책임감에서 벗어난 거죠.
 
부모가 당당하면
자녀가 주눅 들고
 
부모가 주눅 들면
자녀가 당당하니
 
어떻게 할까요.
답답하죠, 정말.
 
내 이야기 잠시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내 부모님은 나에게
늘 미안하다고 말해요.
 
아니라고 괜찮다고 말해도
소용없어요.
 
많이 우세요.
난 속상하죠.
 
나는 진심이에요.
정말 감사해요.
 
내 부모님은 나에게
예수님을 전해줬어요.
 
모든 것을 받은 거죠.
예수님을 선물 받았으니까.
 
아버지가 시골에서 목회할 때
성도 한 명 없어요.
 
그때는 몰랐죠.
정말로 몰랐죠.
 
내게 복음이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처받은 내가 자녀를
잘 키우고 있을까요.
 
정말 모르겠어요.
확신이 없어요.
 
언젠가 청년이 된 내 아들과
대화하는 장면을 상상해요.
 
아빠, 나 아빠한테
하고 싶은 말 있어.
  
아빠가 나 사랑하고
아빠가 최선을 다했다는 거 알아.
 
하지만, 아빠가 했던 말과 행동이 내게
상처 될 때도 있었어.
 
솔직히 말하면,
나 아빠처럼 살고 싶지 않아.
 
나 이해해줄 수 있지,
아빠?
 
하지만, 나….
예수님처럼 살고 싶어.
 
그래, 아들.
아빠는 괜찮아.
 
아빠처럼 살지 말고
예수님처럼 살아다오.
 
속상해야 하는데.
서운해야 하는데.
 
아빠는 왜 이렇게
눈물이 나고 행복할까.
 
그날을 꿈꾸면서 나는
자녀에게 꾸준히 예수님을 전해요.
 
내 상처가 혹시라도
자녀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무섭고 두려울 때마다
예수님께 말해요.
 
나 대신 내 자녀들
잘 키워주세요.
 
당신과 함께 하고 싶어요.
약속해요, 우리.
 
죄책감이 찾아올 때마다
우리 자녀에게
예수님의 따듯한 사랑 전해주기로.

기억은 지독하다

사람마다 끔찍한
기억이 있어요.
 
기억이 떠오르면
우울해져요.
 
벗어나고 싶으니까
잊으려 해요.
 
잊으려 마세요.
잊을 수 없어요.
 
잊으려 할수록
생생해져요.
 
증명해볼까요.
따라 해보세요.
 
지금 이 순간부터 절대로
토끼 생각하지 마세요.
 
하얀색 털이 뽀송뽀송한
토끼를 떠올리지 마세요.
 
토끼 등에 빨간색으로
숫자 5라고 쓰여 있어요.
 
보면 안 돼요.
절대로 떠올리지 마세요.
 
아….
당신은 결국 보고 말았네요.
 
이제 아시겠죠.
기억은 지독한 녀석이에요.
 
잊으려 할수록
더 생생해지죠.
 
새로운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잊지 않고
기억하는 거예요.
 
끔찍한 기억을 계속
떠올리는 말인가요?
 
아니요.
그런 말이 아니에요.
 
기억하는 방식을
바꿔보자는 말이에요.
 
기독교는
기억하는 종교에요.
 
사람은 자꾸 잊어버리고
하나님은 자꾸 기억나게 하세요.
 
성경 전체에서
계속되는 이야기죠.
 
사람이 은혜를
잊으면
 
하나님은 은혜를
기억나게 하세요.
 
사람이 사랑을
잊으면
 
하나님은 사랑을
기억나게 하세요.
 
언제나 하나님은
잊혀진 기억을 되살려주시죠.
 
기억이 끔찍한 이유는
그곳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이에요.
 
잊지 말고
기억하세요.
 
그곳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지금 무슨 말하는 거예요!
난 완전히 혼자였다고요!
 
하나님은커녕
상처 입은 나만 보여요.
 
맞아요.
쉽지 않아요.
 
부탁드려요.
포기하지 마세요.
 
하나님을
끝까지 찾아내세요.
 
하나님은 그곳에 계세요.
당신은 혼자일리 없어요.
 
어둠 속에서 울고 있는
꼬마가 있어요.
 
울긋불긋 온몸에
멍 자국 난 아이.
 
죽은 시체처럼
담요에 덮여 있었죠.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어요.
 
잊혀지지 않아요.
어제처럼 생생하죠.
 
난 고통받을까요.
아니요.
 
난 혼자가
아니었어요.
 
끔찍한 기억에 찾아와 주신
하나님 덕분에
 
이제 나는 마음 편히
그 사건을 기억할 수 있죠.
 
그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살아나거든요.
 
삶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
나는 그 꼬마와 눈이 마주쳐요.
 
너도 살았으니
나도 살 거다.
 
당신이 내 글을 읽는
이유를 알아요.
 
내 기억 때문이고
당신의 기억 때문이죠.
 
내가 혼자가 아니듯이
당신도 혼자가 아니에요.
 
사건을 기억하면
당신은 불행해져요.
 
하나님을
기억하세요.
 
나는 당신이 행복하기를
바라니까요.

결핍의 또 다른 얼굴, 우상

예수님보다 사랑하는 대상이 있다면
그건 우상입니다.
 
맞습니다.
우상은 모든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이
우상을 대하는 방식에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대상이
눈앞에 있으면
바로 고개를 돌려버립니다.
 
자세히 살피지 않습니다.
무시하고 거리를 두려고 합니다.
 
죄책감 때문일 겁니다.   
우상이란 말을 듣기만 해도
죄책감이 밀려오니까요.
 
나는 우상에게 더 가까이 가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적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적을 제대로 알아야 이길 수 있습니다.
 
질문해보세요.
왜 그 우상을 섬기게 되었을까.
나는 왜 예수님보다 다른 것을 사랑하는가.
 
그 안에는 결핍이 있습니다.
결핍을 다른 것으로 채우려 했던 것이죠.
 
자신 안의 결핍을 직면하기 전에
고개를 돌리면 안 됩니다.
 
우상을 자세히 살펴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 우상에게 굴복하지 않습니다.
 
결핍을 정확히 모르면
똑같은 우상이
계속 다른 색 옷을 갈아입고
평생 당신을 쫓아옵니다.
 
위장술에 속아서
우상을 못 알아보면
평생 괴롭힘당합니다.
 
계속 같은 녀석에게
고통받기 싫다면
그 녀석 얼굴을
제대로 기억해야 합니다.
 
나는 생존해야 한다는
강박이 심합니다.
 
내 안에 자리 잡은
결핍입니다.
 
“아무도 날 지켜주지 않아.”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진다.”
 
나는 성취를 숭배했습니다.
자극적이고 매력적이었습니다.
 
사명으로 포장되니
속도가 붙고 성능이 좋아졌습니다.
 
믿음으로 도전하는 삶을 산다고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도전하고 이루고
도전하고 이루었습니다.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면
나는 전율을 느꼈습니다.
 
군침이 돌았습니다.
이루어내서 보여주고 싶었으니까요.
 
나는 중독되었고
망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내가 숭배하던 실체와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소름 끼쳤고
무서웠습니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더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드디어 그 녀석 얼굴을
보게 되었습니다.
 
검을 꺼내 그 녀석 심장에
박아주고 싶었습니다.
 
그 녀석을 숭배하는 동안
나는 너무나 고통스러웠으니까요.
 
그 녀석을 제거하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난 이제 압니다.
그 녀석 얼굴을.
 
제아무리 변장을 하고 찾아와도
나는 그 녀석을 분명히 알아볼 수 있습니다.
 
당신도 자세히 살펴야 합니다.
당신 안의 결핍을.
 
교묘히 찾아와 더러운 손으로
당신 안의 결핍을 어루만지는 우상을
물리쳐야 합니다.
 
오직 주님만이
당신의 결핍을 채울 수 있습니다.
 
자신 안의 결핍을 직면하고
그 결핍을 주님으로 채우는 것.
 
이것이 우상을 대하는
더 나은 방법입니다.

더 이상 희생하지 마세요

가족을 위해
희생하지 말고
자신을 돌보세요.
 
안돼요.
그럴 수 없어요.
 
나 하나 희생하더라도
가족이 살 수 있다면
나는 괜찮아요.
 
예수님도
말씀하셨잖아요.
 
내가 밀알처럼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오열하는 그녀의 눈물을
누가 닦아줄 수 있을까요.
 
나는 먼저
그녀의 아픈 마음을
위로하고 싶어요.
 
눈물이 마르고
마음이 진정되면
말해주고 싶어요.
그 말씀의 의미를.
 
밀알의 비유는
우리에 대한 명령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에 대한 예고였어요.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많은 생명이 살아날 것이란 의미에요.
 
당연히, 우리도 예수님처럼 살아야죠.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이 아니랍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셨지만,
내가 가는 길을
너희가 결코 따라올 수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내가 주는 잔을 마시라고 하셨지만
내가 마시는 잔을
결코 마실 수 없다고 하셨어요.
 
예수님을 따르기는 하지만,
예수님이 될 수는 없는거죠.
 
밀, 길, 잔.
모두 예수님의 죽음을
예고하는 말이에요.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죽어야 하지만,
우리가 죽어도 예수님의 죽음과는 다르죠.
 
나는 당신에게
말하고 싶어요.
 
가족을 위해 희생할 사람은
당신이 아니에요.
 
가족을 위해 희생할 사람은
더 이상 필요 없어요.
 
예수님이 이미 희생하셨어요.
단번에 완전히 희생하셨죠.
 
당신이 아무리 희생해도
예수님 자리를 대신 할 수 없어요.
 
예수님이 되지 마시고
예수님과 하나가 되세요.
 
어떻게 예수님과 하나
될 수 있나요.
 
예수님은 땅에 떨어진
한 알의 밀이에요.   
썩어져 죽으셨어요.
 
그리고,
예수님은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진
생명의 떡이에요.
다시 살아나셨어요.   
 
밀은 땅에 떨어져 썩어서
많은 열매를 맺고
생명의 떡이 되었죠.
 
예수님이 말씀하셨어요.
나는 생명의 떡이다.
이 떡을 먹으라.
영원히 살 것이다.
 
생명의 떡을 먹으면
예수님과 하나 되어
영원히 살아요.
 
이제는 더 이상 죽지 마세요.
죽을 필요 없어요.
 
살아나세요.
더욱 살아나세요.
 
죽고 싶을 때마다
생명의 떡을 먹으세요.
그래야 살아요.
 
당신이 죽으려 할 때마다
예수님이 되려고 하는 거예요.
 
생명을 떡을 먹을 때마다
예수님과 하나 되는 거예요.
 
예수님이 되지 마시고,
예수님과 하나가 되세요.
 
예수님과 하나 된 당신은
올바른 방식으로
가족과 마주할 거예요.
 
가족을 위해 희생하지 말고
가족을 사랑하세요.
 
희생 대신
사랑을 선택할 때
당신도 살고
가족도 살 수 있답니다.

너 주님 사랑하는 거 맞아?

나 예수 믿는데
내 인생 왜 이렇죠?
 
불행하고
우울하고
힘들어요.
 
예수님 사랑하세요?
네?
 
예수님 사랑하시냐고요?
네….
 
내가 볼 때는 아닌데.
그 정도로는 안돼요.
 
그럼 어떻게 하죠?
알려주세요.
 
더 사랑해야죠.
예수님 사랑하시는 거
정말 맞죠?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사실 잘 모르겠어요.
 
거봐요.
그렇게 확신이 없는데
어떻게 행복하겠어요.
 
목숨 다해 주님만
사랑하세요.
 
주님만 사랑하면
다 해결되는데
주님을 사랑하지 않으니까
괴로운 거예요.
 
옆에서 지켜보려니
나는 마음이 괴롭습니다.
 
나는 당신과
생각이 다릅니다.
 
주님 사랑하자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확신이 부족하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어요.
 
아니, 그럼
예수님 사랑 안 합니까.
확신 없이 천국 갑니까.
 
나는 당신처럼
강한 확신은 없지만,
당신이 부럽지 않아요.
 
내가 불안한 건
맞습니다.
 
솔직히 나는
내가 너무 불안합니다.
 
나는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일까요.
 
모르겠어요.
확신이 서지 않아요.
 
주님을 사랑한다면
내가 이래서는 안되죠.
 
나는 알고 있어요.
내가 얼마나 형편없는지.
 
내가 실수해서 고통받는지
나를 사랑해서 고통을 주시는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정확한 판별법이 있으면
내게 알려주세요.
 
나도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그런 확신도 없이
무슨 목사라고.
 
맞아요.
당신 말이 맞아요.
 
하지만, 나도 당신만큼
주님을 사랑해요.
 
당신만큼 확신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당신이 확신하는 동안
나는 계속 불안할 거예요, 아마.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어요.
확신했던 사람들.
 
베드로는 확신했어요.
다른 사람 몰라도
나는 주님 부인하지 않겠다고.
 
도마는 확신했어요.
내가 손가락으로 예수님 옆구리를
후벼보기 전까지는 믿지 않겠다고.
 
바울은 확신했어요.
내가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되게 하는
그리스도인을 모조리 잡아 처넣겠다고.
 
확신도 그리 안전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어떠세요.
 
내가 확신 없어도
행복한 이유 알려드릴까요.
 
나는 내가 얼마나
주님 사랑하는지
별로 고민 안 해요.
 
생각할수록 좌절되니까요.
내가 주님을 얼마나 사랑해야
나도 안심되고 주님도 만족할까요.
 
어려워요.
다르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주님이 날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루 종일 생각해요.
 
생각할수록 행복하거든요.
너무 너무 행복해요.
 
내가 주님을 사랑하면
얼마나 사랑하겠어요.
 
주님이 날 사랑하시는 거에 비하면
공중에 떠다니는 먼지 같죠.
 
당신하고 나하고 누가 더 주님 사랑하는지
따져 봤자 도토리 키재기에요.
 
당신이 이겼다고 해줄게요.
그래도, 난 손해 볼게 없어요.
 
당신과 나.
주님은 차별 없이 사랑해주시니까요.
 
내가 얼마나 주님 사랑하는가에
집중하지 말고
 
주님이 날 얼마나 사랑하시는가에
집중하세요.
 
내가 불안해도 행복한 이유
이제 아시겠죠.
 
계속 고민하세요.
나 주님 사랑하나.
나 믿음 있나.
 
그게 사랑이고
그게 믿음이니까요.

하나님이 해결해주셔야죠

하나님이
해결해주셔야죠.
 
그렇군요.
나도 그러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당신 얼굴이
왜 이리 슬퍼 보일까요.
 
못다 한 이야기가 있군요.
하나님께 서운한가요.
 
네. 그래요.
이제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아무리 기도해도
상황이 좋아지지 않으니까요.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해요.
나는 더 이상 못하겠어요.
 
당신이 내게 한 말,
언뜻 보면 믿음 같지만
자세히 살피면 절망입니다.
 
내 환경이 달라지겠어?
저 사람이 달라지겠어?
 
바뀌지 않을 거야.
바뀌지 않을 거야.
절대로 절대로.
 
당신의 문제가 풀리기 전에
당신의 마음이 풀리기를
나는 바랍니다.
 
믿음과 절망은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마음이 엉키면
절망입니다.
 
마음이 풀리면
믿음입니다.
 
눈물이 강을 이루고
탄식이 산을 이룰지라도
마음이 엉키면
낙원이 아닙니다.
 
강 없고 산 없어도
얼어붙은 땅이 풀리고
작은 겨자씨 하나 피어나면
그곳은 낙원입니다.
 
나는 기도합니다.
나는 소망합니다.
 
당신 마음이 풀어지기를.   
당신 마음이 낙원 되기를.

당신 어디 있나요

어디 있나요.
살아 있나요.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아요.
 
글자 속에 있군요.
동화처럼.
 
나도 남들처럼
만나고 싶어요.
 
배운 대로 했어요.
소용없어요.
 
하늘에 있을까
안구에 하얀 먼지
내려앉아도
 
땅에 있을까
눈물이 망막을
잡아당겨도
 
없어요, 당신은.
절대로, 없겠죠.
 
나타나세요.
어디 있나요.
 
그를 찾고 있군요.
나도 그랬죠.
 
저기 계시나.
여기 계시나.
 
말똥말똥
눈으로 못봐요.
 
두근두근
마음으로 보여요.
 
어디 계시나.
찾지 마세요.
 
그가 계시니
여기 계세요.
 
기록된 말씀,
그분이 계시[啓示].
 
보고 싶은 만큼 볼 수 없어요.
보여주신 만큼 보여요.
 
먼지 후후 불어내고
가죽 표지 들춰보세요.
 
그는 온 세상에 계시지만
그의 말씀은 그 안에 있어요.
 
말씀으로 그를 봅니다.
말씀으로 나를 봅니다.
 
나를 보면 그가 보이고
그를 보면 내가 보여요.
 
말씀을 펼치세요.
말씀을 읽으세요.
 
바람이 불면
마음이 떠집니다.
 
언젠가
보게 될 겁니다.
 
그가 여기
우리와 함께 계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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