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은혜를 많이 받아도 자고 일어나면 다음 날 똑같이 힘들어요. 전날 받은 은혜는 온데간데없고, 우울한 감정에 짓눌려 ‘이게 다 무슨 소용이 있나’ 싶어요.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어요.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요. 나 역시 그렇거든요. 매일 같은 문제로 괴로워요. 고통이 나를 기도의 자리로 이끌지만 기도가 끝나면 다시 반복됩니다.

 

잠시 내 이야기를 해볼게요. 블로그에 쓴 글들로 과분하게 출간 제안을 받았어요. 그런데 출판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첫 책의 원고를 쓰기 시작했는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요. 글이 갑자기 써지지 않았어요. 모니터에 깜빡거리는 커서가 공포스러울 정도였지요.

 

엎드려서 기도했어요. 그러자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다시 글이 써지더군요. 내 생각이 조금 달라졌거든요.

 

‘잘 쓰려고 하지 말자. 그냥 쓰자. 지금 보이는 모니터를 활자로 채우는 게 목표다.’

 

우여곡절 끝에 첫 책의 원고를 마무리하고 출판사에 넘겼어요. 다 끝난 줄 알았더니 더 큰 고통이 찾아왔어요. ‘책이 얼마나 팔릴까’ 하는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가슴이 짓눌려 일상을 살기 힘들더군요.

 

또 엎드려 기도했지요. 하나님이 은혜주셔서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 있었어요. 내 이야기는 해피엔딩이 아니에요. 뫼비우스의 띠처럼 고통과 은혜의 반복이지요.

 

두 번째 책이 나올 때도 같은 일을 겪었어요. 고통이 심해졌으면 심해졌지, 익숙하거나 덜하지 않았어요. 그다음 책을 쓸 때도 똑같은 일이 반복될 거예요. 나는 알았습니다.

 

‘어차피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구나.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할 때, 하나님이 하늘에서 만나 를 내려주셨지요. 유통기한이 하루였어요. 오늘 받은 만나는 내일 못 먹어요. 매일 새로운 만나를 받아야 하루를 살 수 있었지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갓 지은 밥이 좋아요. 윤기가 흐르고 찰져서 먹음직스러운. 나는 매일 새롭게 내려주시는 은혜가 좋습니다. 하나님이 갓 지은 은혜를 내려주시면 살 수 있거든요.하나님이 지어주신 밥을 먹고 힘을 얻어 나 자신에게 복음을 전해요. 복음이 없는 생각에 복음을 전합니다.

 

글을 쓸 때나 원고를 마무리했을 때, 복음 없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아요.

 

‘네 글을 누가 읽어주겠니? 사람들이 더 이상 네 글을 읽지 않으면 너는 끝장이야.’

 

하지만 끔찍한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 생각 속에는 복음이 없기 때문이지요. 복음 없는 생각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나는 선교사를 파송합니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내 생각의 뿌리 끝까지 복음을 전해요.

 

아직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내 가치관과 신념의 땅덩어리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복음으로 무장한 선교사가 복음 없는 생각에 십자가를 꽂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선명하게 새긴 십자가를 꽂고 승리의 노래를 부르지요.

 

문제는 그다음 날입니다. 내가 파송한 선교사는 복음 없는 생각에 순교를 당합니다. 선교사가 꽂은 십자가는 부러진 채, 길 가에 버려집니다. 복음 없는 생각은 참 잔인하고 지독합니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또다시 선교사를 파송하여 같은 지점에 십자가를 꽂습니다. 다음 날 부러져도 또 보냅니다. 복음 없는 생각이 복음으로 변화되는 그날까지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매일 새롭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 없는 생각에 복음을 전하세요. 은혜의 유통기한은 하루입니다. 내일은 또 다른 은혜를 받아야 해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입니다.

 

눈을 뜨자마자 선교지의 상황부터 챙겨요. 부러진 십자가를 발견하면 다시 복음으로 무장한 선교사를 보내요.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듯 생각의 뿌리에 복음을 전해요.

 

아무리 힘들어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예수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나 자신과 온 세상을 향해 복음을 외칠 거예요. 복음 없는 생각이 복음으로 변화되고, 복음 없는 세상이 복음으로 변화되는 그날까지 전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