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이라면 당연히 예수님의 사랑과 말씀으로 상처를 치유하고 싶을 거예요.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아서 문제지요.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세요.

 

예수님의 사랑과 말씀으로 상처를 치유하자는 말을 들으면 막연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나 역시 그랬으니까요. 예수님을 사랑하지만, 내 상처를 어떻게 돌볼지 몰라 힘들었어요.

 

예수님을 사랑해도 아프니까 내 믿음이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분을 사랑하면 상처로 고통받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예수님을 오해한 거예요.

 

뒤늦게 내가 고통받을 때, 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았어요. 특정한 상황에서, 특정한 감정으로 고통받을 때, 그에 앞서 특정한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 생각이 파괴적이면 인생이 파괴됩니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시작되지요.

 

예를 들어볼게요. 사람들은 설교 잘하는 목사를 좋아합니다. 나 역시 설교를 잘하고 싶어요. 그래서인지 목회할 때나 지금이나 설교가 항상 부담입니다. 많은 사람 앞에서 설교하거나, 청중의 수준이 높으면 더 큰 부담을 느끼지요.

 

나는 왜 설교를 잘하고 싶을까요? 나는 답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내가 앞서기 때문이에요. 설교 잘해서 인정받고 싶은 겁니다. 뻔한 답이지만 나는 자주 잊어요.

 

설교라는 행위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설교를 대하는 특정한 생각이 문제입니다. 특정한 상황에서 특정한 생각이 찾아오는데, 그 생각에 복음이 없으면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복음 없는 생각을 발견하면, 그 생각을 구체화해서 문장으로 표현합니다. 정확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예수님의 사랑과 말씀으로 돌볼 수 있습니다.

 

설교를 망치면 사람들이 날 무시할 거야.”

“더듬거리거나 실수하면 내가 준비가 안 된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

“설교로 감동을 주지 않으면 사람들이 더 듣지 않을 거야.”

 

모두 거짓말이지만, 내게는 진실처럼 다가옵니다. 이때 나를 돌보지 않으면 나는 빠른 속도로 파괴됩니다. 빨리 멈춤 버튼 을 누르고, 복음이 없는 지점을 찾아야 해요. 그리고 명확하게 복음을 전합니다. 마치 적의 심장부에 폭격을 하듯이.

 

그리고 거짓에 대응하는 진실을 찾아냅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말씀으로 복음적인 문장을 찾아내서 파괴적인 문장과 일대일 대응을 시키지요. 이것은 쉽지 않아요. 복음적인 문장이 떠오 르지 않으면 예수님과 가상의 대화를 시도합니다.

 

“예수님, 설교가 부담스러워요. 제가 더듬거나 실수하면 사람들이 저를 무시하고 속으로 비웃을 거예요. 저는 꼭 사람들을 감동시켜야 해요. 그래야 제 이야기를 들어줄 거니까요. 사람들이 더 이상 날 찾지 않으면 어쩌죠.”

 

예수님이 어떻게 말씀해주실까요? 어떤 말씀을 해주시는지에 따라 내가 그분을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가 드러납니다. 먼저 내가 오랫동안 오해한 예수님을 말해볼게요.

 

“두려워 마라. 내가 너를 세웠다. 담대하게 선포하라. 내가 너를 도울 것이다. 너는 작은 그릇이 아니라 큰 그릇이다. 내가 너를 수많은 사람 앞에 세우고, 내 영광을 드러내겠다. 이제 시작이다. 더 큰 꿈을 꿔라.”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 성경에 비슷한 말씀이 여러 군데 있지요. 문제는 말씀 자체가 아니라 내 욕망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말씀에 교묘하게 섞어서 포장을 제법 잘한 겁니다. 나 자신도 모를 만큼 그럴싸하게 잘 섞어서 나도, 다른 사람도 속인 겁니다.

 

지금 나는 과거와 다른 예수님을 만납니다. 따뜻하게 나를 돌봐주시고, 한없이 사랑해주시고, 온전히 이해해주시는 그분이 말씀하십니다.

 

“그래, 정말 두려울 거야. 하지만 포기하지는 말렴. 지금처럼 용기를 내서 나를 전해주겠니? 나는 사람들이 너를 기억하지 않고 나를 기억하길 바란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에 대해 말해주겠니? 사람들이 널 잊을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단다. 사람 들이 더 이상 널 찾지 않아도, 내가 너를 기억하고 책임질 거니까. 지금부터는 오히려 잊히기 위해 애를 쓰렴.”

 

예수님은 먼저 내 감정을 사랑으로 받아주십니다. 그리고 진실을 말해주십니다. 진실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분의 사랑과 말씀으로 나를 돌본다는 말은, 내 감정을 수용해주시며 진실을 말씀해주신다는 뜻입니다.

 

내게는 말할 수 없이 큰 위로입니다. 나는 상처를 외면하거나 고통을 만회할 대안을 찾지 않습니다. 그저 예수님의 품에 안길 뿐이에요. 그 순간만큼은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나는 매주 여러 번 설교합니다. 부담은 여전하지만 내가 나를 돌보지 않으면 사람들의 인정을 구걸하다가 스스로 포기해버리고 말겠죠.

 

예수님의 사랑과 말씀으로 나를 돌보면서 지속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기억해주시는 한, 그분을 전할 것입니다. 내 설교가 형편없어도 상관없습니다. 그저 예수님을 전하고 싶습니다.

 

고통이 시작될 때, 자신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그리고 그 안에서 복음 없는 생각을 찾아내어 명확한 문장으로 표현해보세요. 그리고 예수님과 솔직한 대화를 시작하세요. 그분이 따뜻한 진실을 말씀해주실 거예요.

 

포기하지 마세요. 평생 반복입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분의 사랑과 말씀으로 나를 계속 돌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