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8:22-23>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매 이에 떠나 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

 

예수님께서 내 기도를 듣고 계실까? 확신이 없을 때가 있어요. 그럴 수 있죠. 예수님이 듣고 있다고 직접 목소리로 대답해 주시지 않으시니까요.

 

나도 기도하다 답답할 때가 있어요. 기도를 하는 건지, 혼자 푸념을 하는 건지 딱 부러지게 구분을 못할 때도 있죠.

 

나는 기도가 막힐 때, 성경을 읽어요. 특히, 복음서를요. 예수님의 목소리가 안 들리니까, 이미 하신 말씀이라도 들어보고 싶어서요. 

 

말씀을 읽다 보면, ‘그렇지, 답답한 건 내 감정이지. 예수님이 분명히 듣고 계시지.” 혼자 위로받거든요. 감정이 너무 나를 힘들게 하니까, 말씀으로 감정을 돌보는 거예요. 

 

예수님은 절대로 나를 혼자 내버려 두지 않으세요. 나의 슬픔, 고통, 두려움, 외로움, 모르시지 않아요.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을 때, 우리를 사랑하시고 돌보시느라 몸을 혹사하셨어요. 한 사람이라도 더 치유하시고, 구원하시느라 일분일초가 아까우셨어요. 

 

낮에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이셨고, 밤에는 한 사람 한 사람 찾아다니며 돌보셨어요. 이른 새벽에는 조용히 산에 올라 기도하셨고요. 정말로 쉴 틈이 없으셨죠. 

 

예수님이 제자들과 배에 오르시자마자, 잠에 드신 게 당연하죠. 얼마나 피곤하셨을까요? 

 

예수님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호수를 건너 거라사의 광인을 만나러 가셨어요. 가족에게 버림받은 것으로 모자라, 온 세상 사람에게 버림받은 한 사람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그분이 우리 예수님이세요. 

 

예수님은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쉬지도 못할 만큼 한 사람을 사랑하셨어요. 하지만,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으셨어요. 동시에 모든 사람을 만나실 수 없었어요.

 

이제,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요. 예수님은 더 이상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으세요.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 예수님은 모든 일을 제쳐놓고 우리를 찾아와 만나주세요. 

 

예수님의 사랑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더 많은 것을 해주실 수 있어요. 온 세상의 버림을 받은 상처 입은 한 사람을 치유하시고자, 폭풍을 뚫고 호수를 건너신 예수님이 우리를 외면하실리 없으시죠. 

 

말씀 속에 거하시는 예수님을 만나면, 나는 항상 설득 당해요. 혼자라는 감정을 거슬러 예수님께 나아가요.  

 

‘예수님, 저는 지금 혼자인 것 같아요. 예수님이 느껴지지 않아요. 하지만, 예수님, 지금 제 목소리 듣고 계시죠? 저 너무 힘들어요. 잠깐이라도 좋으니까, 제 힘든 마음 한 번만 위로해 주세요.”

 

외로운 감정이 밀려오면, 성경을 펼쳐서 말씀 안에 계신 예수님을 만나보세요.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은 사랑으로 당신을 사랑하세요. 기억하세요. 속이는 건 감정이고, 진실은 사랑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