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운동회가 싫었어요.

난 달리기가 느리거든요.

 

출발선에 서면 다리가 떨렸어요.

꼴찌는 면해보자, 생각했죠.

 

땅!

 

화약 소리와 함께,

친구들 뒷모습이 보여요.   

 

결승점에 도착하면

손등에 도장이 찍혀요.

 

내가 원하던 숫자는 아니었죠.

 

손등에 보랏빛 숫자가 싫어도

지우면 안 돼요.

 

선생님께 혼나요.

 

번호가 있어야 끝나고

노트를 주거든요.

 

난 못 받은 적도 많았지만

번호는 끝까지 지우지 못했죠.

 

어느 날, 삼겹살을 먹는데

고기가 파래요.

 

엄마한테 물었죠.

이게 뭐야.

 

그거 도장이야.

고기 급수 나눈 도장.

 

나는 사람들이 돼지를 때려서

생긴 멍인 줄 알았는데.

 

도장 자국이었어요.

 

내 식탁에 올라온 걸 보면,

적어도 1이라고 찍히지 않았을까 싶었죠.

 

돼지도 달렸나.

달리기 1등 해서 내 식탁에 올라왔나.

 

어린 마음에

쌈 싸먹으면서 피식 웃었죠.

 

나는 이제 달리기 싫어서

달리지 않아요.

 

옆 사람이 아무리 빨리 달려도

나는 걸어요.

 

비웃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요.

등 떠미는 사람도 있고요.

 

나는 뿌리치고 그냥 걸어요.

 

저 앞 편에서 도장 찍어주고

줄 세우는 게 보이네요.

 

아, 내가 길을 잘못 들었구나.

다른 방향으로 걸어요.

 

온 땅이 길인데요, 뭐.

 

참 이상하죠.

사람들이 어떻게 알고 따라왔는지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네요.

 

하얀 분으로

자꾸 레일을 만들어요.

 

끝자락에 하얀 끈을 치고

빨리 뛰라고 손짓하죠.

 

계속 피해 다니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네요.

 

자꾸 길을 정해주고

벗어나지 말고 빨리 뛰라 하니

나는 귀찮을 수 밖에요.

 

달리기하는 사람은

생각할 시간이 없어요.

 

중간에 실수라도 하면

스스로 말하죠.

 

나는 실패했어.

나는 바보야, 정말.

 

힘겹게 도착한 결승점에서

도장을 꽝 찍어줘요.

 

실패자.

바보.

 

그런 도장을 받으러 뛰어갈

필요 있나요.

 

실수는 그냥 실수예요.

실패가 아니고.

 

도장이 싫다면

다른 길로 가세요.

 

가고 싶은 길로.

당신 만의 길로.

 

계속 거기 남아 있으면,

둘 중 하나에요.

 

스스로 낙인찍거나.

남에게 낙인찍히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