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상담하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상처를 가져온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아프고 힘든 이야기이다. 

 

부족한 내가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할 뿐이다. 

 

하지만, 나 역시도 슬럼프가 온다. 

 

여러 번의 슬럼프를 겪으면서, 그 원인을 알게 되었다. 

 

마음이 조급해지면, 어김없이 슬럼프가 왔다. 

 

‘내가 더 상담을 잘했다면…’

‘내가 더 관심을 기울였다면…’

‘내가 더 기도했다면…’ 

 

상처 입은 한 사람을 마주하면 절박해진다. 

 

정말로 돕고 싶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예수님보다 앞서가게 된다. 

 

어김없이 넘어진다. 

 

상처 입은 한 사람을 돌보려면, 내 위치를 잘 알아야 한다. 

 

나는 상처를 치유할 능력이 없다. 

 

당연히 알고 있지만, 절박한 상황과 마주하면 마음이 급해진다. 

 

마음이 앞서갈수록, 나 스스로에게 말해줘야 한다. 

 

“나는 상처를 치유할 능력이 없다. 나의 역할은 상처 입은 한 사람을 예수님께 데려다주는 것이다. 예수님이 치유하실 것이다. 나는 목격자일 뿐, 치유자가 아니다.” 

 

나 혼자만 겪는 일은 아닐 것이다. 

 

다른 사람을 돌보는 사람이라면, 자주 겪는 일이다. 

 

아무 능력 없는 자기 자신과 마주하더라도 실망할 필요 없다. 

 

예수님은 당신을 기뻐하신다. 

 

누가복음 5:20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데려다준 친구들의 이야기이다.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를 데려갔지만 사람이 많아 예수님께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그들은 지붕으로 올라가 천장을 뜯었다. 

 

예수님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그들의 믿음에 감동하셨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즉시 중풍병자를 치유하셨다. 

 

그뿐만 아니라, 그를 구원하셨다. 

 

우리는 여기서 분명한 역할 분담을 목격한다. 

 

친구들은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데려다주었고, 예수님은 치유하셨다. 

 

우리의 무능함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에게 부여된 역할이 있다면, 상처 입은 한 사람을 예수님께 데려다 주는 것이다. 

 

내가 치유하고 고치려 들면, 결국 그 무게를 감당 못해 무너지고 만다. 

 

우리는 목격자일 뿐, 치유자가 아니다. 

 

상처를 치유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