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내 이야기를 들려줄게요. 그리고 내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말해줘요. 문제를 발견하면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거예요. 무엇이 문제인지 진심으로 알고 싶어요.

 

나는 초능력자나 예언가가 아닙니다. 만약 내게 사람을 꿰뚫어보는 능력이 있어도 당신의 이야기를 잠깐 듣고, “당신은 이런 사람이고, 이런 문제가 있다”라고 말하고 싶지 않아요. 그건 예의 없는 행동이거든요. 누가 누구를 판단하고 정의하나요.

 

오히려 당신에게 부탁하고 싶어요. 만약 다른 누군가에게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면 아마 당신은 그에게 휘둘릴 거예요. 그러면 관계를 지속하기 어렵지요. 당신을 평가하고 판단한다고 느끼거든요. 관계가 자연스럽지 못하고 부담스러워서 멀리하게 될 거예요.

 

마음을 조금 편하게 가져요.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문제가 있고, 고민하며 삽니다. 문제없는 척하는 것도 문제지만, 문제를 문제라고 말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문제라는 말 대신 다른 표현을 찾아보면 어떨까요.

 

‘상처’라는 말은 어때요? 경우에 따라 받아들이는 의미가 다르겠지만 문제라는 말보다 나은 것 같아요. 문제는 고치거나 해결해야 하는데, 인생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하나의 과정을 마치고 다음 과정으로 들어가지 않아요. 하나의 과정으로 쭉 이어져 있지요. 마무리도, 완성도 없어요.

 

상처에는 치유나 치료라는 말을 쓰지요. 상처가 아물면 그대로 끝이 아니에요. 한번 상처 난 부위는 흉터가 남습니다. 겉은 멀쩡해 보여도 누르면 아플 수 있어요. 상처 부위가 약해져서 같은 곳을 두 번 다칠 수도 있고요. 상처에 완치는 없어요. 계속 조심하며 상처를 돌봐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당신에게 문제가 없다고 말하고 싶어요. 다만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자신 안의 상처를 스스로 발견하기를 바라요. 다른 사람은 절대 당신의 상처를 대신 찾아낼 수 없어요.

 

아파서 병원에 가면 의사에게 “내가 어디 어디가 아파요”라고 합니다. 의사는 여기저기 확인해보고 처방을 해줍니다. 그것이 자연스러워요. 아프다고 먼저 말해야 의사도 왜 아픈지 말해 줄 수 있거든요.

 

만약 의사에게 “내가 어디가 아플까요? 한번 말해보세요”라고 한다면 어떨까요? 이런 기가 막히는 일이 상담실 안에서 자주 일어납니다. 내담자가 원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상담자가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나는 상담자가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에 묶여서 오랜 시간 고통받은 내담자를 적지 않게 만나왔어요.

 

목회자, 상담자를 포함한 그 누구에게도 자신 위에 군림할 기회를 주지 마세요. 상처로 오랜 시간 고통받으면 약해져서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요. 위로나 통찰력 있는 말 한마디를 해 주면 그에게 의존하게 됩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요. 끝이 좋지 않거든요.

 

상담이나 심방을 받을 때나 기준을 최대한 낮게 잡으세요. 내가 모르는 상처를 누군가가 기가 막히게 발견해서 치유하는 게 아닙니다. 내 안에 내가 모르는 무언가는 없어요.

 

이미 충분히 아프고 힘든 문제를 함께 나누세요. 상담하는 과정에서 용기를 얻고 힘을 얻는 거예요. 상담자가 아무리 유능해도 소용없어요. 자기 자신은 결국 자신이 돌봐야 합니다.

 

내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온전히 사랑해주실 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같은 질문을 사람이 아니라 예수께 던지면 당신은 안전할 수 있어요. 그분은 당신 위에 군림하거나 당신의 약함을 이용하지 않으십니다. 당신이 의존하고 싶은 만큼 예수님을 의존하세요. 그럴수록 당신은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사람이 될 겁니다.

 

상담자나 목회자마다 서로 다른 말을 한다면 답은 한 가지에요. 모든 말과 조언을 평정할 만한 가르침은 결국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사람에게 묻지 말고, 예수께 여쭈어요. 그분은 당신이 원할 때마다 딱 맞는 일관된 진리를 계속 말씀해주실 겁니다. 당신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