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증이 있어요.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저도 모르게 아무 연관 없는 행동을 하면서 불안을 달래요. 예를 들면, ‘내가 지금 이 컵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기면 잘 될거야.’ , ‘내가 지금 설거지를 하면 그 일이 잘 될거야.’ 아무 상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생각과 행동을 멈출 수가 없어요.   

 

솔직하게 말해주셔서 감사해요.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자신이 강박증이라고 결론을 내린 근거가 무엇인가요. 병원에 가셔서 진단을 받으신 건가요, 아니면 상담 센터에서 전문상담사가 말해준 건 가요. 만일 그런 경우라면, 지금처럼 지속적인 치료를 받기를 권장합니다.   

 

하지만, 자매님이 스스로 강박증이라고 진단을 내렸다면 함게 나누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크고 작은 강박 증세가 있습니다. 나도 예외가 아니지요. 자동차를 삐뚤게 주차하면 마음이 편하지 않아요. 다시 시동을 켜고 선을 맞추어 주차합니다. 이유는 모릅니다. 그냥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러니까 괜찮다. 그런 말이 아닙니다. 나는 자매님의 문제를 가볍게 대하고 싶지는 않아요. 다만, 다른 관점을 가져보면 어떨까 제안하는 겁니다. 만약 자매님이 스스로를 강박증 환자로 받아들이면, 그 순간부터 자신을 고치려 들겁니다. 기계가 아닌데 뜯어 고치려고 하는 겁니다. 

 

강박적인 생각을 하면 자책합니다. 물건이 아니니까 버리지도 못하고, 고치자니 고칠 수도 없고, 그냥 데리고 삽니다. 괴로운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강박적인 생각 그 자체보다 중요한 건 강박을 대하는 관점입니다. 자신이 강박증 환자라고 정의내리지 마세요. 

 

나는 진단과 치료를 위한 목적으로 진단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문가들끼리 내담자의 정보를 공유할 때 편합니다. 하지만, 상담실 안에서 진단명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우울증, 불안 장애 등의 말을 쓰기 시작하면 환자가 스스로를 정의내립니다. “나는 강박증이다.” 이렇게 하면, 라벨링이라는 인지 오류에 빠질 위험이 있어요. “나는 원래 그렇다.”라고 정의내리면, 치료 기간이 더 오래 걸립니다. 

 

내담자가 상담실에 들어오기 전에, 자가 진단을 내린 경우도 많아요. 오히려, 진단을 내려보면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 자신을 특정 진단명으로 정의내리면, 그다음부터는 그안에 머물 수 있습니다. 우울증, 불안 장애라는 진단명 안으로 쏙 들어가버리면, 밖으로 빼오기가 더 힘듭니다.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나는 강박증이 있다. 나는 우울증이 있다.” 스스로를 고치려고 듭니다. 다르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는 결핍이 있다. 내 안에 결핍이 자꾸 강박적인 사고를 하게 만든다.” 같은 말이라도 자신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집니다. 자신을 고치려 들지 않아요. 자신의 결핍을 채우려 합니다.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안정적인 환경을 만들 수 있어요. 

 

강박적인 사고를 할 때마다, “너 또 그랬네.”가 아니라 “나 또 왜 이러지.”라고 생각이 달라지만, 일단 성공입니다. “무엇 때문에 이러지, 뭐가 불안하지, 뭐가 무섭지.” 질문에 질문이 꼬리를 문다면, 그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결국, 두려움의 실체를 마주하게 될 테니까요. 

 

그림자만 봐도 놀라는 상황에서는 실체에 다가갈 수 없습니다. 실체가 두려워서 그림자 조차 쳐다보고 싶지 않은 겁니다. 그림자에 미리 놀랄 필요 없습니다. 실체를 확인하고 놀라도 늦지 않아요. 그림자의 주인이 곰인형인지, 실제로 굶주린 야생 곰인지 일단 가까이가서 확인해봐야 합니다. 나는 곰돌이 인형에 여러 번 놀랐습니다. 아직까지 실제 야생 곰을 본 적은 없습니다.    

 

자신을 강박증 환자로 정의내리지 말아주세요. 강박이 아니라 결핍이 있는 겁니다. 고치려 하지 마시고, 돌봐주세요. 시간 오래 걸립니다. 포기하지 말아주세요.